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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인권센터, 첫 발 내딛다

‘인권중심 사람’ 생일잔치 하던 날

 

[스케치] 권력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인권센터, 첫 발 내딛다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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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4.30 07:33:03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만들어진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이 2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문을 열었다. ‘인권중심 사람’이 위치한 조용한 주택가는 개관을 축하하려 모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날 오후 ‘인권중심 사람’ 2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개관식에는 홀의 수용 한도인 80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모두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 감수성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어려운 시간을 거쳐 ‘인권중심 사람’이 개관했다는 데 각별함을 느끼는 듯했다.

 

 

   
▲ 29일 오후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 개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미디어스

 

“시민과 함께하는 인권운동 위해 인권센터 만들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왜 대중으로부터 고립돼 있는지, 시민과 함께하는 인권운동을 만들 수 없을지 고민하다 인권센터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박래군 이사는 “어렵게 모인 돈을 가지고 당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노동자, 빈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며 “현안 싸움도 중요하지만 멀리 보고 가자는 데 많은 분들이 동의했다”고 전했다.

김철환 인권재단 ‘사람’ 이사장 또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들에게 필요하다”며 “기획회의를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만들 곳이 없어서, 공간을 마련하는 게 급하다는 데 이사들이 뜻을 같이하고 사무국이 뛰었다”고 거들었다.

김철환 이사장은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철회되고 보훈처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듣기 싫다면서 몇천만 원을 들여 새 노래를 공모하는 등 (인권 탄압의)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떨어지는 인권을 지탱이라도 하고 5년 간 (탄압을) 막아내기라도 하려면 활동가들에게 기대야 하고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인권중심 사람' 2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공공기관이 못 하는 일, ‘인권재단 사람’이 한다”

용산참사 유가족 및 구속 석방자, 서울시 인권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 서울시 혁신기획관,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등 개관식 참석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과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 등은 같은 마포구에 둥지를 튼 ‘이웃’ 자격으로 ‘인권중심 사람’을 방문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나지현 위원장은 “사무실이 여기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인권중심 사람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단체가 이웃으로 이사 와서 예쁜 집을 만들어 함께한다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며 “조합원들과 제가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다양한 인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도록 애쓰겠다”고 다짐했다.

성미산 마을 주민이기도 한 사람과마을 느리 대표는 “‘인권중심 사람’이라는 배려 깊은 집에 오시는 분들은 속을 캐묻지 않아도 다들 아름다운 분들일 것”이라며 “그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29일 오후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 2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개관식에는 홀의 수용 한도인 80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미디어스

 

게이코러스 지보이스(G-Voice)는 노래로써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은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끝마친 다음, 맨 앞에 앉은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을 겨냥해 “이 자리에 차별금지법 제정 철회에 동의하신 의원들이 오신 것을 알고 있다”며 “저희의 노래를 듣고 저와 저희들, 제 친구들,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해주시면 좋겠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개관식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하는 이들의 축하 인사도 전해졌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시민들이 국가가 책임 못 지는 인권을 책임지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되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해줬으면 좋겠다”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세상의 주춧돌을 놓는 일이 이제 시작”이라고 격려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상을 통해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서울시 인권위원회와 인권조례를 만들었지만 서울시가, 공공기관이 결코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그런 것이 바로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중심 사람을 중심으로 채우고 만들어야 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인권의 둥지, 지푸라기 나르며 함께 만들어요”

‘인권중심 사람’이 문을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10년 10월 문정현 신부 헌정 공연을 시작으로 모금 활동이 시작된 뒤 3년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 동안 총 9억 2천만 원 가량이 어렵게 모였다. 인권재단 ‘사람’은 여기에 재단 기금과 민주열사 박래전 인권 기금 등을 더해 총 17억여 원을 만들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개조하고, 세금을 낼 수 있었지만, 부족한 화장실을 짓고 집기를 들이기에는 아직 조금 모자라다. 실제로 ‘인권중심 사람’의 많은 공간은 세간 없이 썰렁한 모습이었다.

 

 

   
▲ 박래군 상임이사를 비롯한 인권재단 사람 이사들이 '인권재단 사람' 개관을 축하하며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미디어스

 

이에 대해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새가 둥지를 틀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는 것”이라며 “인권의 둥지인 우리가 함께 만들었는데 여러분이 새가 되어 주시면 좋겠다”고 말해 박수를 자아냈다.

박김영희 대표는 이어 “우리만의 인권의 둥지를 만들고 둥지 하나가 또 다른 둥지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이 넓은 날개로 넓은 세상에서 지푸라기를 많이 물고 오는 새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기에, 알차게 꾸려 나갈 수 있을지 여부 또한 시민들의 손에 달렸다. ‘인권재단 사람’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의 함박웃음은 일말의 걱정을 털어버리기 충분했다. 기꺼이 ‘새’가 되어 ‘지푸라기’를 물어 나를 사람들은, 이 귀중한 둥지에 모여 인권의 불모지처럼 변해 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인권중심 사람’, 어떤 공간인가요?

 

   
▲ '인권중심 사람'의 건물 외관.ⓒ미디어스
‘인권중심 사람’ 건물의 만듦새에는 교통약자를 배려한 티가 가득하다. 엘리베이터는 버튼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이 층마다 이동하기 쉽도록 맞춤형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방과 복도 사이에는 문턱이 없어 휠체어로 이동할 때 허리에 충격을 받는 일이 없다.

 

1층에는 인권재단 사무실, 다양한 인권활동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사무실, 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인권교육실이 있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물론,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해 성별 표지가 없는 화장실도 마련되었다.

1.5층에는 박래군 인권재단 선임이사의 동생인 박래전 열사의 필명을 딴 ‘동화 인권도서관’이 오는 11월에 들어선다. 인권 도서와 인권활동자료 등을 비치하기 위해 기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2층에는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홀과 교육장이 있으며, 3층에는 섬돌향린교회가 장기전세로 입주해 있다. 4층 옥상에는 곧 텃밭이 꾸려질 예정이며, 화장실이 한 개 더 추가된다.

남서쪽 벽 아래 조성될 ‘자유의 뜰’에는 주춧돌 이름벽이 세워진다. 이 이름벽에는 주춧돌 기금 마련에 동참한 시민 2914명의 이름을 새긴 철판이 붙는다. 추후에도 새로운 주춧돌 시민들의 이름을 새로운 철판에 새겨 붙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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