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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

극기복례

 
임락경 목사 2013. 05. 01
조회수 40추천수 0
 

 

극기복례(克己復禮).

참 좋고도 힘든 말이다. 자기를 이기고(克己), 예의 법도에 따라 산다(復禮)니 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자기를 이기려고 노력한다. 자기를 이기려는 것은 사회의 법도에 따라 살기 위함이다. 사회의 법도에 따라 산다는 것은 타인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되기에 사회적인 질서를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사회 질서란 국가에서 정해놓은 법도도 있겠으나 지방마다 마을마다 예부터 내려와 경험상 정해놓은 질서도 있어 그것이 다 다르다. 그 마을에만 적용되는 법도도 있고 또 그 법도가 표준이 되어 다른 마을에서도 본받아 지켜야할 만큼 여러 사람에게 좋은 법도도 있다. 이렇게 법도를 따라 서로서로 기분 나쁜 사람이 없이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이 예절이다. 그 예절에 엎드려 같이 살아가는 것이 복례(復禮)다.

 

극기는 자기 몸을 복례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사람이 자기 몸이 하고픈 대로 하다보면 타인이 괴롭다. 사람이 그 사회질서에 맞추어 살려면 자기 몸이 하고픈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극기는 처음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먼저 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는 맨 먼저 숟가락 잡는 법부터 배운다. 우리나라 사람 숟가락 잡는 법과 서양사람 잡는 법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숟가락을 손을 엎어서 잡는다. 만약 서양인이 동양에서 살려면 동양인처럼 숟가락을 잡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자면 그에게 처음으로 누군가가 동양인처럼 잡으라고 가르쳐야 한다. 처음으로 가르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달래기도 하고 칭찬도 해주고 더러는 꾸지람도 해보고 심지어는 때려주면서까지 가르친다. 그 모든 방식은 앞으로 동양에서 서양인이 살아가는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그 예의범절에 엎드려 같이 살아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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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예절학교

 

아이가 집안에 있을 적에는 집안의 예의범절만 배우면 된다. 집안 식구들 사이에서 그릇됨만 없으면 잘 자라준 것이다. 그러나 문밖에 나가면 문밖의 질서가 있는데 집안에 사는 것처럼 내 몸이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사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문밖에 있는 아이는 문밖 질서를 지켜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자기 몸을 하고픈 대로 해서는 안 되기에 괴롭다. 곧 문밖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몸이 괴로워야 한다. 그러나 조금만 괴로우면 된다. 문밖 질서에 적응하면 금방 편리해진다. 그런데 집안 질서에 적응 못한 아이는 역시 문밖 질서에도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여기서 극기가 필요하다. 문밖 질서는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더 많아진다. 그때마다 그 질서를 지키려면 역시 자기 몸은 괴로워지고 아이는 괴로움을 이겨 나가야 한다. 복례하기 위해서 극기하는 것이다.

 

어떤 무례한 이들은 자기 집안 질서를 지니고 문밖 질서를 고치려 든다. 주로 옛날 양반들이 그랬다. 그들의 방식은 극기도 복례도 아니다. 한 집안 질서가 온 마을을 괴롭히는 것이다. 일제 때 왜인들은 왜인들의 법도를 지니고 들어와서 조선의 법도를 고치려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극기는 잘했고 복례도 잘되었으나 우리와는 맞지 않는 예절이었다. 8․15 이후 다시 미국인들이 몰려와서 자기들의 극기복례를 지니고 들어와 그 척도에 우리를 맞추어 나갔다. 여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앞장섰고 기독교인들이 덩달아 날뛰었다. 기독교인들 중에 미국서 공부하고 온 이들이 신식․구식 찾으며 문밖 질서를 지니고 들어와서 문안 질서를 어지럽히고 불화를 일으켰다. 서양인들이 극기를 안했다는 것도 아니고 복례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는 그들끼리의 극기복례였던 것이고,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맞는 것도 있고 전혀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서도 어떤 것은 우리에게 일부러 찾아와 가르쳐준 것이 있고, 우리가 이미 지키고 있던 것을 자기들은 그것에 견주어 잘못됨을 알아차리고 도리어 바꾸어 나간 복례도 있다.

 

종교마다 다른 극기복례

종교마다 극기복례가 다르다. 석가는 석가대로 궁중에서 왕자의 극기를 했다. 그 왕자로서 행한 극기는 궁중에서 거추장스런 옷을 입고서 호령하는 극기였다. 그 극기로는 중생을 제도할 수 없어 출가 후 다시 6년 만에 극기를 했다. 이는 중생들의 예의에 엎드려 살기 위함이었다. 어떤 중생에게 얼마나 많이 엎드려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극기를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고 하늘의 극기를 지니고 하늘의 예의범절을 익히고 태어 나셨다. 그러나 그는 한 가정의 사생아인지라 사생아의 극기와 자식의 예의범절을 동시에 갖추고 살았다. 그러다가 12살 때 지난날 하늘의 극기복례와 한 다윗집안의 복례가 맞지 않아서 다윗의 성전에서 6일 동안 따지다가 본인의 처지를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극기에 들어갔다. 그 후 성년이 되어 인류에게 엎드려 살려고 보니 또다시 극기가 필요해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극기를 시작하였고, 평소에 집안에서 익혀왔던 극기와 합쳐보니 자신감이 있어 온 인류의 예의에 엎드려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의 예의는 잘못된 것인지라 따르지 않고 하늘의 예의에 엎드리기로 결정지으셨다.

 

공자(孔子)의 극기복례는 주로 한 가정의 예의에 엎드리라는 말을 많이 남겼다. 그것은 약간 추운 지역의 풍습에 맞추어 엎드려 살라는 것이다. 추운 곳에서는 주로 모여 살아야 서로 도움이 된다. 가족끼리 모여 살아야 서로 좋다. 가족끼리 모여 살려면 맨 먼저 효(孝)를 중히 여겨야 한다. 가족끼리 의견들이 서로 다르겠으나 가장의 결정으로 따라가야만 그 가정이 파하지 않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석가의 예의나 예수의 예의를 배운 가족이 있으면 그 가장이 정해놓은 예절은 파괴되고 만다. 꼭 유지하려면 그 가장의 생각이 넓어지면 그것이 가능하다. 가정을 잘 지켜 나가라는 구멍아들(孔子)의 교훈에 집을 나가라는 석가의 제자가 섞여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가정을 위해 살라는 공자의 교훈 아래서 이웃사랑, 인류구원 앞세운 기독인들의 가르침을 지니고서는 가정을 유지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한 가정의 예절보다는 한 국가가 정해놓은 예의에 엎드려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정해놓은 예의에 극기하려고 한평생 고생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기를 모아 사용하는 이들과 요가를 즐기는 이들이다. 이들은 사회를 지켜나가는 예의에 엎드리기 위해 기 훈련을 한이다. 이 훈련을 많이 할수록 사회가 정해놓은 예절에 문제없이 엎드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극기만 하면서 복례를 안 하고 한평생 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극기의 필요성을 잘 몰라 극기만 하다가 병이 나는 이들도 있다. 원래 극기란 복례하기 위한 것이고 또 자기나 사회의 건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것인지라 자기 건강이 먼저인 것을 모르고 사회 건강만 찾다가 자기 건강 잃고 앓다가 간 사람들도 있다.

 

 

요즘엔 부족한 극기

요즈음 사람들은 극기의 필요성을 찾지 않는다. 자녀를 기를 적에 꼭 필요한 것이 극기다. 자신을 이기는 연습이다. 옛날에는 자녀들이 많아서 자기들끼리 부딪히면서 극기를 했다. 서로서로 부딪혀보면 맞지 않는 점이 늘 발생하게 되고 또 모든 것이 자기 맘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며 극기로서 자랐다. 또 문밖에만 나가면 어울리는 모든 게 극기 훈련의 장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녀들이 하나씩이다. 자(子)만 있기기도 하고 여(女)만 있기도 한다. 있어도 자자(子子)만 있든 여여(女女)만 있기도 한다. 여기서 자녀끼리의 극기가 있기도 하는데 자자끼리 여여끼리의 극기를 지니고는 남여가 섞여 사는 사회에 엎드려 살기란 힘든 일이다. 만약 그런 사회에 엎드려 살려면 또 다른 극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이혼율이 많아 편부 편모에서 익혀온 극기는 부모 밑에서 받은 극기보다 훨씬 힘들게 이겨온 극기이다. 그래서 또 다른 극기를 더 익혀야 남녀노소가 섞여 사는 사회의 예절에 엎드려 살아갈 수 있다. 고아원에서 자란 이들은 남녀의 극기는 잘 익혀 왔으나 노인들에게 복례하는 것은 말로만 배워 자기 몸에 익히지 않아서 역시 사회에 나가면 또 다른 극기가 필요하다. 반대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들은 젊은이들을 대하는 극기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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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컴퓨터 앞에서 모든 아이들이 자라게 된다. 그 컴퓨터라는 것이 게임을 하는 것인데 싸워 죽여야 끝이 나는 게임이다. 요즘 아이들은 의자에 오래 앉는 극기와 문밖에 나가지 않는 극기만 익히고서 큰다. 그 극기를 지니고는 아무 곳에서도 살 수 없고 더욱이 복례란 생각도 못할 단어가 되었다. 컴퓨터 앞에서 익힌 극기로는 복례를 할 수가 없다. 한 가지라도 컴퓨터 밖에 있는 극기를 해야 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극기와는 또 다른 복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가르쳐야 많은 자녀들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 건너 집에 놀러 가면 그 집 50대 가장은 인사만하고 자기 방으로 간다. 어떤 때는 인사도 없이 자기 방에 있다. 알고 보니 컴퓨터에서 바둑놀이 하느라 손님들이 와도 몇 시간씩 있다가 나오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 앞에서 오래 앉는 극기는 하고 있지만 복례는 아예 못하고 무례를 하고 마는 사람이다. 그래서 꼭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로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문밖 예절이 있다는 것을 몇 시간 씩 잊고(무례) 있는 것뿐이다.

 

서로 복례하면 갈등 없어

참 어렵다. 자기가 정해놓은 예절과 극기가 있고 한가정이 정해놓은 극기와 예절이 있으며, 마을마다 사회마다 국가마다 종교마다 정해놓은 극기복례가 다 다르다. 이것들이 같이 맞추어 살아가려면 그 와중에 복례가 아닌 무례(無禮)가 생긴다. 맞추어 살아가려면 서로 복례를 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자기들이 정해놓은 예절에 엎드려 살라고 서로 하다보면 싸움이 일어난다. 전쟁 없이 맘 편히 살려면 사람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종교마다 다 다른 예절이 있으니 자기가 주장한 예절은 자기가 엎드리고 자기 밖의 예절이 있으면 그때그때 때에 따라 장소마다 그 예의에 극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예의인 것이다. 자기가 주장하는 예의는 참신이고 다른 이들이 주장하는 예의에 엎드리는 것은 미신이고, 이렇게 참신과 미신 찾다보면 다툼이 있고 전쟁이 있다. 이런 면에서 어떤 경우 전쟁이 있는 것은 참신이 아니고 미신이라 여겨도 좋겠다. 우리 사는 이 세상에는 참신을 내세우는 미신도 있고 미신 같은 참신도 있다. 아주 간단한 판단이고 변호 없는 판결이다.

 

대개의 경우 자기가 억지로 주장해온 예절과 특정한 종교가 주장해온 종교예절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이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기어코 그것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이는 그 정해놓은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당(堂)을 짓고 사는 이들과는 또 다른 문제다. 이 경우 그 당과 자기 생활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정해놓은 예의, 법도와 당 외의 어느 곳에든 누구에게든 엎드려서는 안 된다. 그 당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쫓겨나면 다른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또 자기 당과 자기 예절에만 엎드리는 이들을 때때로 비난해야 한다. 또 그들을 옳다고 하는 이들도 싸잡아 비난해야 산다. 또 자기 당 안에 있는 우직한 신도들을 더 우직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다 보면 자기도 우직한 신도들처럼 되고 만다.

 

극기 안하면 노숙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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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안하면 노숙자 된다. 일본에도 노숙자들이 많다고 한다. 한곳에 700~800명씩 모여 있다가도 흩어져서 잔다. 일본인 노숙인들 가운데 신분상 천민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학교도 못가고 결혼도 못하고 취직도 못한다. 그날그날 인력시장에 못 나가면 밖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에도 노숙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한국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이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고 나면 전쟁에서 승리의 영광도 누리고 계급승진도 있으나 개중에 양심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괴로우니 술을 마시게 된다. 술 마시고 취한 기운으로는 마음을 달랠 수 없다. 또 자기가 죽인 사람이 밤마다 꿈속에서 괴롭히기도 한다. 이제는 마약을 가까이 하게 된다. 미국의 노숙자들은 주로 알코올 중독자이거나 마약 중독자들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에는 공중변소가 없다.

한국에도 노숙자들이 많다. 회사에 잘 다니다 실직하면 하루아침에 노숙자 된다. 전북 무안에 가면 인력시장이 크게 열린다. 최저 일당이 75,000원이다. 비오기 전날에는 20만원에도 팔려나간다. 이 노숙인들이 무안 인력시장에 가면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왜 대다수의 노숙인들이 거기에 가지를 않고 노숙을 하며 얻어먹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숙인들은 신분상 천민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 평화를 위해 싸운 자들도 아니다. 다만 극기를 안 하고 큰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안 인력시장에 다녀왔고 일을 나갔었더라도 30㎏짜리 2자루 양이 되는 감자를 들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큰 사람들이다. 서투른 일솜씨로 농산물을 들다가 허리나 다리나 팔을 삐고 나면 두고두고 눈에 나타나지 않는 환자가 되고 장애인이 되고 만다.

 

내가 군에 있을 적에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다들 직업이 있었다. 목수, 미장이, 이발사, 세탁소, 양복 만드는 일 등 밖에서 힘을 기르다 입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군부대 교육가서 1만 명 모인 중에 통계를 내보았다. 군 입대 전에 밖에서 일하고 온 목수, 미장공, 이발사 일하던 사람 없다. 다만 컴퓨터 잘하는 사람 나오라면 100% 뛰어 나온다. 이들은 제대 후에 모두가 컴퓨터로 일하는 직장으로 가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직장마다 컴퓨터는 1~2대면 족하니 일꾼은 1~2명이면 되고 나머지는 다른 일을 해야 기업이나 농장이나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100명 중에 1~2명 빼고 나면 나머지는 할 일이 없다. 그들은 힘쓰는 일을 해야 한다.

 

극기의 가치를 모르고 자란 요즘 세대

힘이란 어릴 적부터 써봐야 힘이 난다. 또 요령이 있어야 한다. 작은 체구라도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으려면 힘을 쓰는데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요령이 있어야 한다. 누가 가르쳐줄 수 없는 힘쓰는 방법이다. 이것을 어릴 적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 요령 없이 무거운 물건 들다가 허리나 다리나 팔이나 목을 삐고 나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장애자 된다. 힘이란 쓸수록 생기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써봐야 한다. 지금 60대 나이는 80㎏ 인생들이다. 쌀가마니가 80㎏ 이었다. 이 가마니를 혼자서 들추어 메거나 업어 날랐다. 지금 40대는 40㎏ 인생이다. 지금 30대는 30㎏ 인생이다. 지금 20대는 20㎏ 인생이다. 지금 10대는 10㎏ 인생이다. 우체국 택배에 20㎏포장해서 보내려면 받지 않을 때가 많다. 배달을 안 하려고 한다. 모든 국민들이 80㎏ 인생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이 모두가 극기가 없어서 그렇다. 꼭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의 부모들 스스로가 극기의 가치를 모르고 자기 인생에 불평만 하거나 신세타령만 하고 살아왔다. 자녀들이 자기 인생처럼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 스스로 힘을 기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자녀들에게 극기를 시키지 않고 복례(復禮)를 가르치지 않은 까닭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나 내 딸들은 평소에 시멘트 1포(40㎏)는 들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극기 못하면 복례라도 잘하면 대접받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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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체력 실기시험 모습

 

옛 성현들이나 우리 친구들 중에서 일을 배우지 못했거나 건강상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스승 역할 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한결 같이 복례에 익숙하다. 어떠한 예절에도 엎드릴 줄 안다. 잘못된 예절을 피할 줄 알고 옳은 예절에는 서슴없이 엎드린다. 혹 극기를 못하면 복례만 잘해도 된다. 그러나 극기와 복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선택한다면 극기를 택하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바람직하고 나은 세상살이와 건강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정신과 맘과 몸이 건강하고 사회가 바로 되고 인류평화가 오려면 극기복례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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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경 목사
개신교 목사.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1913~64)과 류영모의 제자인 영성 수도자이다. 30년째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가이자 유기농 농부 겸 민간요법계의 재야 의사. 군인으로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아 1980년부터 시골교회를 꾸려가면서 중증장애인 등 30여명을 돌 보는 한편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igolzz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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