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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버지 잃은 가족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두 바퀴 배달 인생의 죽음] ③ 업무 인과관계보다 도로법 위반만 따지는 산업재해

[두 바퀴 배달 인생의 죽음] ① 배달원 남편의 사망, 비극은 멀고 현실은 가까웠다② 배달하다 사망한 아빠가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화가 나는 건, 남편의 산업재해를 심의하는 위원들의 면면이었어요. 남편이 하는 배달 일을 하나도 모르더라고요. 그런데도 어떻게 심사를 하지 싶더라고요. 위원들은 의사 아니면 변호사들이었어요. 이들이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들 처지는 알까요?" 
 

 

김성연(가명, 44) 씨의 남편 이주성(가명, 당시 53) 씨는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다 사망했다. 일하다 사망했으나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 이유였다. 배달 중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하다 차량에 부딪혀 사망했다.

 

김 씨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불법 차선 변경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일지는 모르나, 남편이 그렇게 불법을 할 수밖에 없는 배달업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자신이 죽을 줄 알고도 불법을 저지를까.

 

더구나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다. 김 씨와 남편 사이에는 열일곱과 열아홉 딸이 있었다. 김 씨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삼사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이유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도로교통법 위반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 씨는 재심사 청구까지 제기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프레시안(허환주)

어디까지를 '범죄행위'로 규정할 수 있나


 

산재보험은 일반적으로 '무과실책임주의'가 적용된다. 재해 발생에 있어 노동자나 사업주의 잘못이 있건 없건, 재해와 업무 간 인과관계가 있으면 산재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노동자의 과실이나 부주의가 있더라도 보상을 해준다는 이야기다.


 

단, 예외조상을 두었다.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는 '근로자가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다.


 

즉, 일하다 사망해도 그 원인이 범죄행위일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애매한 것은 어디까지를 '범죄행위'로 규정할 수 있느냐다.


 

일례로 산재보험법에는 '범죄행위' 이외에도 '고의, 자해행위'가 원인이 된 재해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렇지만 이들 '고의, 자해행위'로 사망한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자살이 대표적이다. 자실은 대표적인 '고의, 자해행위'이나 예외로 '업무상 사유'와 연관이 있을 경우, 산재로 인정해준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다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살한 경우 등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마찬가지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불법차선 변경이나 신호등 위반 등의 가벼운 도로교통법 위반은 '범죄행위'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러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망한 배달 노동자들은 대부분 산재로 인정받았다. 업무상 인과관계를 '범죄행위'보다 우선해서 따져봤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보다 도로법 위반만 따지는 산업재해


 

자료를 보면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2017~2020년 퀵서비스(배달앱) 재해조사'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총 3명의 사망 배달원이 산재를 신청했고, 이 중 2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이들 산재 승인 받은 두 명 모두 불법, 즉 도로교통법 위반을 하다 사망했다는 점이다.

 

A : 재해자는 배달을 위해 00면 소재지 방면에서 00군 방면으로 편도 1차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중앙선을 넘었고, 이때 반대 방향에서 진행하던 포터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 

B : 재해자는 배달을 완료한 후, 다른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직진신호에서 불법으로 좌회전을 하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그런데 2020년으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2020년 한 해 동안 16명의 사망 배달원이 산재를 신청했는데, 이중 11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2017년과는 달리 산재 승인 받은 11명 중 단 한 명만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다 사망했을 경우,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자료를 보면 2020년에 불승인된 5건 중 4건에서 도로교통법 위반 사실이 포함돼 있었다.(나머지 한 건도 무면허 내지는 헬멧 미착용 등으로 추정된다) 

불과 3년 만에 산재 불승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범죄행위' 분야에 '도로교통법 위반'이 포함된 셈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용노동부는 2019년 8월,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지침)'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과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위원장에게 보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2항에 규정된 '범죄행위' 관련해서 '별도의 규정이 없어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실무처리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며 도로교통법 위반을 '범죄행위'에 넣어서 산업재해 유무를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이후부터 산재 유무를 따질 때, 자살처럼 인과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도로법 위반 여부만을 우선시해서 따지는 식이 된 셈이다. 

그에 따라 이 시기와 맞물려 산재 불승인 건도 대폭 증가했다. 배달앱 사망자 산재 관련, 2017년과 2018년에는 1건에 불과했던 불승인 건이 2019년에는 3건, 2020년에는 5건으로 늘어났다.


 

전체 배달앱 산재 신청 건수와 불승인 건수를 비교해보면, 이는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11건과 8건이 불승인 됐으나 2019년에는 58건, 2020년에는 2배가 넘는 130건으로 증가했다.

 

▲ 배달앱 산재 통계 자료. ⓒ김주영 의원실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배달 노동자들은 자비로 병원비를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쳐서 쉬는 동안 수입은 제로가 된다.

다치기만 하면 다행이다. 사망할 경우엔 답이 없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한 푼이라도 있어야 아이들 대학교를 보내지 않겠어요? 남편이 그렇게 가고 나서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아이들 등록금은 못 대요. 절대로요. 그런 우리에게 아빠의 산재 보상금은 희망이었어요. 그래서 산재 재심의도 요청하고, 없는 돈에 변호사 비용까지 써가면서 소송까지 진행했죠. 남편이 죽고 저 혼자만 남았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은 아니지 않나요. 대학도 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꿈을 꾸지 못할까봐 그게 너무 싫었어요. 아이들에게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했어요.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행여 꿈을 포기할까봐 걱정됐거든요. 만약 다른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을 지지하고 끌어주고 싶어요. 무엇이든 아이들이 돈 때문에 포기하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막막하기만 해요."


 

오토바이 배달 사고로 남편을 잃은 김성연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건 빚뿐이었다. 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한 달 230만 원 받는 게 수입의 전부다. 두 딸은 이제 20살, 22살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181959110932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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