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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통령에 그 장관…윤 대통령이 이상민을 감싸고도는 이유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60

국민·야당에 안 지겠다는 대통령
독재 때도 국회 해임안 받았는데
“막연한 책임 안돼” 되레 방어막
참으로 기괴한 정권이라고밖에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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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괴이한 정권입니다. 150명 넘는 국민이 사고로 한꺼번에 숨졌는데 두달이 다 되어가도록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윤희근 경찰청장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1965년생으로 전북 익산 출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서울대 법대 4년 후배입니다. 사법시험 9수를 한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해 오랫동안 판사를 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뒤에는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해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했고,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사회위원장을 거쳐 인수위원회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취임 뒤 “국민이 재난과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선진화된 재난 안전 관리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10·29 이태원 참사가 터졌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보수 언론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다”

 

저는 텔레비전 생중계로 이 장면을 보면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정도 대형 사고가 터지면 해당 장관은 사고 수습과 진상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무조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도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라는 사람이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고 발뺌부터 한 것입니다. 민심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이때 물러났어야 마땅합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곧 이상민 장관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이상민 장관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선 수습 뒤 사퇴 수용’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 상식과 양식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니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했는데도 제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퇴로를 막았습니다.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일선 경찰을 강하게 질책하며 그 유명한 ‘딱딱 발언’을 했습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저는 이 말을 수십번 다시 듣고 다시 읽어봤습니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법률가의 좁은 식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 뒤 정부 여당에서 이상민 장관 경질론이 쑥 들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1일 동남아 출국 때 배웅 나온 이상민 장관의 왼쪽 팔을 두 차례 두드려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11월16일 귀국 때는 이상민 장관에게 악수를 청한 뒤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습니다. 이상민 장관도 <중앙일보>와의 문자 메시지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었습니다. 11월23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고,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의결했습니다. 민주당은 11월25일 이상민 장관을 28일까지 파면하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11월30일 해임건의안을 발의했습니다. 해임건의안은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고, 12월11일 재석 의원 183명 중 찬성 182명 무효 1명으로 가결됐습니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여야 합의 직후에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를 추진한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참사 직후에 해야 했을 일을 뒤로 미루는 바람에 모양새가 구겨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해임건의를 의결한 이상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 장관을 해임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들도 이상민 장관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그게 상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아는 상당히 보수적인 지인들도 대통령이 왜 그토록 ‘이상민 보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무슨 인과관계가 있어서 자르냐’고 생각한다면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을 자를 수 없으니 장관을 자르는 거다.”(<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시민 158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이 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난 인사가 없다.”(<중앙일보> 사설)

 

“아리스토파네스가 조롱한 소피스트들은 오늘날로 치면 법률가들이다. 법률가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처음에는 예방 불능론을 들먹이더니 돌연 일선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법은 일선의 책임은 무한하고 고위층으로 갈수록 책임을 묻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책임 전가야말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딱 맞는 재료가 아닐까.”(<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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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에 책임 분간 못 하는 대통령

 

이상민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와 언론의 경질 요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해임은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국회의 해임건의는 이상민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동문서답을 한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상민 장관을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장관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편하게 전화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장관입니다.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두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라고 증언합니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자존심 때문입니다. 국회 해임건의 직후 정부 여당발 ‘1월 개각설’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상민 장관을 슬쩍 끼워넣은 개각 전망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바꾸고 싶을 때 바꾸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국정의 동반자인 야당을 어떻게든 이겨먹겠다고 심술을 부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행정안전위원회 관련 법안 처리 결과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행정안전위원회 관련 법안 처리 결과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19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사례도 조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1년 국회가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공동 여당이었던 자민련이 가세했습니다. 임동원 장관은 사퇴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동 정권을 포기했습니다. 뒷날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9월3일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자민련의 가세로 통과되었다. 이로써 자민련과의 공동 정권이 무너졌다. 3년8개월 만이었다. 정국은 1여 2야의 구도로 재편되었다. 우리에게는 소수 정권의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지만, 이는 햇볕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나라 안팎에 천명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에는 국회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김두관 장관 재임 기간 행자부는 부처의 업무수행 평가와 혁신 평가에서 1위를 할 정도로, 그는 장관직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장 출신 군수’라며 끊임없이 비아냥거리고 멸시하더니, 끝내 학생시위를 이유로 국회에서 해임권고 결의를 했다. 나는 워낙 부당한 결의인데다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결의여서 계속 버텨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정국 경색이 장기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김 장관이 스스로 사직을 청해왔다. 결국 대통령이 사직을 수리했지만,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의 횡포가 그와 같았다.”

 

 

대통령과 장관이 답 내놓을 때

 

그렇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이 주도한 해임건의를 수용했습니다. 사유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임동원·김두관 사례에 견주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상민 장관 해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20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이 유가족들에게 간담회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유가족 대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민 장관이 파면되든 스스로 사표를 멋있게 던지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마음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저희 갈 길을 가겠습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장관이 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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