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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검색하니 온통 서울의사만…주변서도 “일단 빅5 가라” [영상]

 
서울로 가는 지역 암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③ 지역 ‘암 명의’ 찾지 않는 이유
지난해 12월28일 밤 11시께 서울의 한 대형병원 로비, 지역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가 쪽잠을 자고 있다. 지역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다음날 진료나 검사를 위해 밤을 새우며 대기하기도 한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지난해 12월28일 밤 11시께 서울의 한 대형병원 로비, 지역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가 쪽잠을 자고 있다. 지역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다음날 진료나 검사를 위해 밤을 새우며 대기하기도 한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2021년 4월 김현우(가명·35)씨 어머니의 자궁경부암이 재발했다. 아버지를 혈액암으로 떠나보낸 지 2년도 안 된 때였다. “최고로 좋은 곳에서 치료받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첫 발병 뒤 가족의 거주지인 경북 상주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김씨는 ‘이번만큼은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역 명의’ 정보 부족…무작정 서울로

 

서울로 갈 결심은 섰지만, ‘최고 좋은 병원’이 어딘지 막막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궁경부암 명의’를 검색했더니, 서울 ‘빅5’ 대형병원 의사들 이름이 빼곡했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는 “서둘러 빅5 예약부터 걸어두라”는 글이 많았다. 서울 큰 병원이 5개나 있어도 선택권은 없었다. 그해 6월 초 예약일이 가장 빠른 삼성서울병원에 외래진료를 잡았고, 수술은 그달 말에나 가능했다. 어머니는 수술 뒤에도 항암 치료 등을 위해 몇번이나 서울행을 감내했지만, 지난 8일 끝내 김씨 곁을 떠났다.

 

 

대한종양내과학회와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암 환자 대상 소셜리스닝 결과’를 보면, 암 환자 10명 중 약 6명은 김씨처럼 암 관련 정보를 동료 환자나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을 통해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에 퍼져 있는 암 관련 정보는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포털사이트나 암 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암 명의’, ‘암 권위자’ 등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서울 대형병원 의사다. 아버지의 대장암 치료를 위해 강원도에서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안진섭(가명·32)씨는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할지 모르니 보호자들은 인터넷 카페나 주위 권고에 의지하게 된다”며 “그렇게 추천받은 서울 명의는 예약에만 3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너무 막막했다”고 말했다.

 

 

 

 

 

2021년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이 낸 ‘암 적정성 평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암 환자들이 병원을 선택한 이유(복수응답) 가운데 ‘주위의 평판과 추천’이 38.3%로 가장 많았다. 가까운 거리와 적당한 병원 시설과 규모는 26.6%로 뒤를 이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누리집에서 정보를 얻었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받은 2015∼2022년 8월 ‘암 환자의 건강보험 진료 현황’을 보면 국내 암 환자의 68%는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데, 그중 ‘빅5’가 차지하는 비중은 45%다.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이 평균 44곳인 점을 고려하면, 약 9분의 1에 해당하는 빅5가 절반가량의 암 환자를 치료한 셈이다.

 

 

 발병 많은 암은 치료법 표준화

 

사실 일부 희귀암이나 난치암을 제외하고 발생률이 높은 대부분의 암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표준 진료지침’에 따라 치료한다. 암 연구와 임상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 치료요법, 가령 수술,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 등을 정해놓은 것이다. 이 경우 서울과 지역 상급종합병원 간에 치료 방법이나 치료 효과에 별 차이가 없고, 일정 수준 이상 의학 기술이 발달한 나라라면 국가별 차이도 미미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의 분석(2013~2017 중증도 보정 사망률)을 보면, 지역에도 암 환자를 잘 치료하는 병원이 적지 않았다. 가령 위암 환자 사망률이 낮은 순으로 20곳의 상급종합병원을 꼽아보니, 9곳이 비수도권(서울·경기·인천 제외) 소재 병원이었다. 사망률이 낮은 10곳 중 5곳이 비수도권 병원이었으며, 가장 사망률이 낮은 곳은 전남대병원이었다.

 

 

서울과 지역 간 암 치료 격차가 클 거란 인식 탓에 암 환자가 서울 큰 병원으로 쏠리면서, 진료와 수술 대기 기간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한겨레>는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와 함께 지난해 12월15~18일 서울로 간 비수도권 암 환자(보호자 대리 응답 가능) 24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김영애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부센터장의 도움을 받아 유효 응답자(이하 응답자) 188명의 답변을 분석해보니, 절반이 넘는 101명이 최초 암 진단 후 서울 의료기관에서 암 치료를 받기 위해 ‘1개월 이상’ 대기했다고 답했다. 이 중 3개월 이상 걸린다는 응답자도 약 30%(30명)를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2021년 지역 암 환자들이 서울의 병원에서 진단부터 수술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전국 17개 시·도 환자 거주지 기준 최소 109일(제주)∼최대 130일(경기)로 집계됐다.

 

 

문제는 서울 병원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암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암종별로 다르지만 확진 당시엔 식도암 2기였는데, 서울 병원에서 진료와 검사 일정을 두달 정도 기다리다 보니 암세포 전이가 심해 결국 수술을 못하는 등 치료 적기를 놓쳐 상태가 나빠지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이어 “진료 대기 뒤 항암 치료 등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서울 대형병원 대기 기간이 길어져도 세게 항의할 수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합리적 선택 도울 정보창구 시급”

 

김영애 부센터장은 “위암이나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 암 진단 후 첫 수술까지 대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망 위험이 높은 암종은 수도권보단 거주지 지역 대형병원에서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환자 예후에 좋다”며 “암은 치료 이후에도 장기간 추적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 등을 위해서도 환자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가정의학과)는 “심평원이나 암센터 등 공공기관에서 암종과 병기별로 최소한 이 기간 안에는 수술이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암이 의심돼 진료를 받은 이후 2개월(62일) 이내에, 암 환자가 임상진단을 받은 이후 1개월(31일) 이내에 치료를 받도록 권고한다. 이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이 기간 안에 치료를 받는지 추적관리도 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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