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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방조’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 동료는 끝까지 분신 만류했다

건설노조 “악의적 허위 보도, 고소·고발할 것”, 언론노조 위원장은 눈물 흘리며 사과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1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분신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건설노조, 언론노조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 허위보도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2023.05.17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17일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과정을 목격한 동료 A씨가 분신을 막지 않았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왜곡 보도"로 규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A씨가 양 지대장의 분신을 만류했다는 건 현장에서 가장 근접해 있던 또 다른 목격자, YTN 기자들의 진술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역시 이 내용을 인용해 놓고도, 익명의 목격자 주장이 더 신빙성 있는 듯 부각했다. 그러면서 음성이 담기지 않은 CCTV 영상 캡처 화면 등을 근거로 A씨가 양 지대장의 분신 과정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했다.

유가족도 아직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 CCTV 장면들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됐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동료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A씨는 조선일보 보도로 양 지대장의 죽음을 방조한 인물로 매도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조선일보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건설노조가 양 지대장의 죽음을 투쟁에 이용한다며 음모론에 편승했다. 결과적으로 고인은 물론 유가족과 고인의 동료인 건설노조 조합원을 모두 모욕한 보도였다.

 

 

 

통화 내역, 목격자 진술 토대로 정리한 당시 상황
"목격자 도착 당시, 이미 휘발성 물질 뿌린 뒤
불의의 사고 날까 섣불리 접근할 수 없던 상황에서 대화로 설득"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당시 상황을 목격한 A씨에 대한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조선일보 캡처

조선일보는 전날에 이어 이날 지면을 할애해 이러한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 근거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사에는 CCTV 영상 속 양 지대장 분신 전후 A씨의 행동을 자세히 서술됐고, '다수의 목격자' 주장이라며 "A씨가 불을 끄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뒷걸음질 치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뒤 몸을 돌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일보 기사가 보도된 뒤, SNS상에서는 고인의 죽음은 물론 A씨와 건설노조를 비난하는 글이 무수히 쏟아졌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을 교묘히 왜곡한 것에 불과했다. 건설노조 설명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해 보면, A씨와 양 지대장은 초·중·고 선후배 관계이자, 함께 건설현장에서 일해 온 동료였다. 생전 가족들 사이 교류도 잦았을 정도로 친분도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양 지대장의 배우자를 '형수님'이라고 부르고, 양 지대장의 자녀들은 A씨를 '삼촌'으로 부르며 잘 따르던 사이었다. 조선일보는 A씨의 노조 직책을 언급하며 마치 양 지대장의 분신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유추할 수 있도록 보도했지만 두 사람은 가까운 지인이자 동료일 뿐이었다.

건설노조 김준태 교육선전국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양 지대장의 분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국장은 "목격자(A씨)와 조우하기 전 이미 휘발성 물질을 자신의 몸과 주변에 뿌린 상황이었다. 목격자와 조우했을 당시 양회동 열사는 한 손에 라이터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또 다른 휘발성 물질을 들고 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목격자는 양회동 열사가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에 따라 섣불리 접근할 수 없었고, 불의의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해 대화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가 통화 내역과 당사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정리한 상황은 이랬다. 양 지대장은 노동절 당일 이른 아침 노동절 집회를 위해 이동하던 조합원들을 직접 찾아가 배웅했다. 이후 양 지대장은 A씨에게 '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준비 중이니 와달라'고 연락했고, 이전에 교류가 있었던 YTN 기자에게도 '취잿거리가 있으니 와달라'고 연락했다.

양 지대장은 오전 9시 18분께 강원지부 간부들이 모인 텔레그램 방에 유서 형식의 글과 노조 조끼를 입고 '단결 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두른 사진을 올렸다.

노동절 집회 준비를 하던 중 이 글을 확인한 김정배 강원건설지부장은 경찰에 상황을 전달하며 '빨리 양 지대장을 찾아달라고 신고했다. 그 시각 A씨는 분신을 시도하려고 준비 중인 양 지대장을 말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김 지부장이 양 지대장의 소재를 알 수 있을 만한 이들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한 끝에 A씨에게 연락이 닿았고, A씨는 '양 지대장이 휘발성 물질을 뿌려놓고 있다, 내가 말리고 있을 테니 빨리 오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도 '어떻게든 말리라'고 당부했다. 

김 국장은 "이러한 조치를 통해 양회동 열사의 결정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노력이 있음에도 조선일보는 그것을 마치 악의적으로 휴대전화만 만지고 있었던 상황으로 의도적으로 부풀려서 보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A씨에게 양 지대장 분신 사망 이후부터 무리하게 참고인 조사를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노조 배현의 법규국장은 "A씨는 (양 지대장이 분신했던) 당일 그 장소를 떠날 수도 없었고, 집에 갈 수도 없었다. 계속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동료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울부짖었다"며 "A씨는 (양 지대장의 분신에) 큰 충격을 받아서 참고인 조사를 미뤄달라고 했지만, 경찰이 A씨 집 앞까지 찾아가서 조사를 했다. 경찰은 당시 CCTV를 다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으로 질문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 A씨는 양 지대장의 분신에 대한 충격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양 지대장 사망 후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석연치 않은 조선일보 보도에 검경 개입 의심도,
'죄송하다'며 머리 숙인 언론노조 위원장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1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분신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건설노조, 언론노조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기자로써 조선일보 허위보도에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23.05.17 ⓒ민중의소리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럿 발견된다. 건설노조는 조선일보 보도 뒤 분신 장소를 찾아 보도에 등장한 CCTV 위치를 확인했는데, 각도나 방향 등을 볼 때 보도에 등장한 CCTV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검찰이나 경찰의 도움 없이 조선일보는 해당 영상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그 출처를 '독자 제공'이라고만 표기했다.

김 국장은 "그 CCTV(영상 확보)는 검찰 혹은 경찰의 내부 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조선일보라는 특정한 언론을 통해 양회동 열사와 관련한 모든 내용에 대한 논점을 흐리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했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가 A씨의 연락처를 알아낸 과정이나, 목격자들의 참고인 진술 일부가 조선일보에 유출된 배경에도 여러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정치권력이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아 놓고 그들과 한편이 된 언론 권력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혐오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저지르고 있다"며 "조선일보의 보도는 검찰과 경찰로부터 자료를 받아 작성한 것이라는 정황이 여러 가지가 있다. 검찰과 경찰은 유족과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자료를 조선일보라는 특정 언론에 넘겨 왜곡 선동할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조선일보의 처참한 보도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상실한, 의도가 명백한 허위 조작 선동행위라고 규정한다"고 날을 세웠다.

윤 위원장은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 담긴 내용을 하나씩 짚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상 정보와 영상은 보완 취재하는 등 사실 확인 취재를 거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무슨 절차를 거쳤나.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쓴다'고 돼 있는데 이 보도에 확인된 사실이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윤 위원장은 "조선일보의 왜곡 조작 선동은 스스로 정한 윤리 규범 가이드라인을 정면으로 위배할 뿐만 아니라 노동3권을 보호하라고 명시한 한국기자협회 인권 보도 준칙조차 정면으로 무시했다"며 "노조 혐오 정서를 확산시키고 그걸 기반으로 사용자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치졸한 공작"이라고 비판했다.

윤 위원장은 울컥하는 감정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수차례 발언을 멈췄다. 윤 위원장은 "저는 기자다. 현장에서 수없는 취재 보도를 했던 언론인의 한 사람"이라며 "건설노조 위원장께서 악의적인 조선일보의 보도로 갈가리 찢겨진 상처와 마음을 부여잡고 '이 자리에 계신 언론 노동자에게 취재 와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사과하지 않으니, 저라도 사과하겠다. 양회동 열사와 조합원과 그 주변의 동지들, 가장 마음이 아플 유가족에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사과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언론인 출신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자유언론실천재단 이부영 명예 이사장 등도 참석해 조선일보 보도를 규탄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 원로 언론인도 단체 공동 성명을 내고 "사실 확인을 하고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해 달라"며 "후배 언론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조선일보 보도로 심화된 왜곡 공세,
정작 경찰은 “방조했다고 볼 만한 증거 없어”
건설노조, 조선일보 대상 법적 대응 예고

 

박미성 건설연맹 부위원장이 1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분신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건설노조, 언론노조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 양회동 열사 허위보도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5.17 ⓒ민중의소리

조선일보 보도 직후, 양 지대장과 건설노조에 대한 왜곡 공세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양 지대장의 죽음에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던 원희룡 장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며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 밝혀지기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한 보수단체는 A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하지만 양 지대장의 분신과 관련해 수사해 온 경찰은 현재까지 A씨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문제의 보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수사 담당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현재까지 목격자들 진술 등을 고려해 볼 때 A씨가 방조를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참고인 진술이 조선일보 기자에 유출된 경위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어떻게 나갔는지 저희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조선일보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건설노조 100인 변호인단' 소속인 신선아 변호사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전체 사실 중에서 일부 사실만 선별, 부각하며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허위 보도"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해당 기사와 관련해 허위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명예훼손 고소 및 기사 삭제, 정정보도를 청구할 것"이라며 "정신적 충격이 클 유가족과 A씨에게 근거없는 왜곡보도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한층 가중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 변호사는 "기사의 본문에 포함된 영상 사진은 위치 등을 비춰볼 때 검찰청의 CCTV 영상으로 추정되는데, 이 영상을 기자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넘겨받았는지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 측 직원이 넘긴 것이라고 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있고, 경찰 등 수사기관이 넘긴 것이라고 한다면 공무상 기밀 누설죄가 성립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CCTV 유출과 관련해서도 관련 진상을 밝히고 당사자들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고소·고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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