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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참석한 윤석열의 ‘반동주의’

  •  강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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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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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친파쇼·반공동맹의 산물

미국의 신냉전, 반동주의 재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미국의 ‘초청’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상호 군사정보 공유 확대 등 한국과 나토의 공조 강화 뜻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협력 파트너를 미국에 이어 일본, 유럽까지 급격하게 확장하면서 ‘중국·러시아 견제’ 기조 또한 짙어지는 흐름이다. 미국의 신냉전 구도와 궤를 같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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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반공주의 산물

냉전이 시작된 1949년, 집단안전보장조약인 북대서양 조약에 의해 탄생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이다.

당시 나토의 탄생은 반파시즘으로 들끓던 시대적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전범국 단죄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를 척결하려는 반파쇼 운동은 국제사회에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다. 특히 전쟁의 폐해와 식민지배를 경험한 세계인에게 나치 잔당과 친일파 등 파쇼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미국이 연합군이던 소련의 공산화를 막겠다면서 돌연 나토를 결성해 전범국 이탈리아와 군사동맹을 체결해 버렸다. 1951년에는 군국주의 일본과도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1955년 나치 척결이 한창이던 그때 독일마저 나토에 받아들였다.

미국이 전범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세계를 뒤흔들던 반파쇼 열기는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대신 반공주의가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당시 반파쇼가 워낙 대세였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이때 매카시가 등장했다. 미국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미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킨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매장해 버렸다.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매카시즘 광풍은 세계로 확대했다. 반공주의는 이렇게 나토를 비롯한 미국의 동맹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미국의 반공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반파쇼와 충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특히 파쇼 앞잡이가 반공주의를 내세워 신분을 세탁하고, 반파시즘 운동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당시 반공주의와 반파쇼 사이의 충돌은 한국사회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1948.9.22.)해 친일파 척결에 나섰지만, 곧이어 국가보안법이 제정(1948.12.1.)되면서 친일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되려 일제강점기 순사 출신과 친일 우익 세력들이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빨갱이 사냥에 열을 올렸다.

결국 반공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안보동맹이 전범국 파쇼 세력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미국의 냉전 체제는 이렇게 친파쇼·반공동맹으로 태어났다. 나토가 바로 산 증거물이다.

 

미국의 신냉전, 반동주의 재연

반동주의란 과거의 체제나 질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정치 이념이다. 18세기 프랑스혁명으로 수립한 공화정을 다시 왕정으로 회귀한 부르봉 왕정복고가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의 신냉전은 반동주의의 재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탈냉전 이후 반공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토가 상대할 적국은 사라졌다. 그런데 미국이 탈냉전 30년 만에 냉전을 부활했다.

신냉전 질서 구축을 위해 미국은 과거 반공주의를 강요한 것처럼 ‘자유가치연대’를 부르짖는다. 탈냉전 이후 동맹을 유지하던 중국과 러시아를 다시 악마로 몰아간다.

미국을 추종하는 윤 대통령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반동주의를 재연했다. 반동과 진보의 무한 체제 대결로 치닫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역사의 반동을 선택한 윤석열 정권을 그대로 둘 것인가.

 강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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