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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겪은 20대 교사의 죽음

아이와 함께 애도와 공존을 배우는 시간... 생존이 기적인 사7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어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둘째 아이가 속삭였다.

23.07.28 05:57l최종 업데이트 23.07.28 06:25l
 
 

"옆에 초등학교 4학년 쌤들이래. 나도 4학년인데!"

아이가 아는 척을 해서인지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대강 이런. 

"중학교 진학 후 연산 때문에 쉬운 문제를 틀리는 학생들이 많은 걸 보면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
"가베를 활용해 볼까? 생활 속 수학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교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까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야 할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곁눈질을 하던 둘째 아이는 좀 들뜬 표정이었다.

"엄마, 울 학교 쌤들도 똑같겠지? 확실히 쌤들은 우리를 사랑해."

초등교사라는 직업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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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논리가 논리인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은 대학생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선행 여부에 관계없이 초등학생은 학습에 대한 실질적 개념이 미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기초단계부터 지도하며 학습과정과 연계한다. 이 어렵고도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초등교사들이다. 

비록 몇몇 교사의 일탈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명과 암이 있고, 사람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사에 실린 사건들을 일반적인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방학에도 출근해요. 오늘은 오전 7시 30분에 나왔어요. 오전 10시부터 부진학생 6명을 가르치면서 학생들 점심도 먹여서 보내죠. 방학이라고 교사들이 다 해외여행 다니고 노는 건 아니랍니다."(20년차 초등교사 친구의 말)

학교는 방학에도 쉬지 않는다. 짧으면 3주, 길어야 4주인 여름방학 동안 교사들은 많은 일을 한다. 가정 돌봄이 어려운 학생들 지도, 학력격차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 진행 및 보조, 경계성 장애학생 지도를 위한 특수교사와의 일정 조율, 교수법을 위한 각종 연수 또는 스터디 모임, 갈등 조정, 다음학기 수업 준비, 일반 행정 업무, 민원 처리 등으로 바쁘다. 이것이 학부모 8년 차(중2와 초4)인 내가 만난 교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7월 18일, 23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업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이야기를 들은 초등학생 아이는 의외로 담담했다. 

"쌤들을 위한 사람은 학교에 없거든.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아이의 말을 듣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의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물었다. 업무 스트레스를 털어놓을 심리 상담사는 있는지, 교육 공무원들의 현실을 잘 알고 업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무사는 존재하는지. 교사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했는데 흘러가는 방향이 이상하다. 교육을 입시 문제로 국한하고 있는 위정자들에 대한 비난이나 교사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적 문제 대신 어디에나 있을 악성 민원, 결별 등을 이야기한다.

시대는 개인의 삶을 종속한다. 한 청년의 자살을 나약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 전에 사회적 요인을 따져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극단적인 선택의 이면에 존재하는 공적 서사를 살펴보고 죽음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의 인권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말하기 전에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만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려 드는 한국의 차별을 이야기해야 한다.

예산 삭감으로 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의 노무사들마저 집회를 하게 만드는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책임을 돌려야 한다. 교사를 포함한 많은 공무원들의 노동에 헐값을 매기며 '봉사'를 강조하는 정부를 문제 삼아야 한다. 

교사의 방학을 언급하며 비난하기 전에 2021년 기준, 세계 4위의 노동시간(OECD)을 가졌음에도 법정근로시간을 늘리기 위해 애쓰는 정부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쉴 수 없는 근로 환경에서 버텨내는 사람만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악한 업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나 직업을 막론하고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녹록지 않은 요즘이다. 과중한 업무에 지친 사람들, 경쟁 사회에서 생존을 걱정하는 불안한 사람들, 불평등한 사회에서 쌓인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번 정도는 문제의 본질을 생각했으면 한다. 

애도를 배우는 시간
 

업무에 시달리다 교실에서 생을 마감한 23세 교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교사들이 보신각에 모였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익명으로 제공하였다.
▲ 7월 22일 열린 추모제 업무에 시달리다 교실에서 생을 마감한 23세 교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교사들이 보신각에 모였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익명으로 제공하였다.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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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회라면 일선 업무에 있는 노동자에게 직급에 맞는 책임만 묻는다. 호봉이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구조여야 낮은 직급의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본인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죽은 교사는 평교사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평교사에게 무슨 권한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안전장치 마련에 무심했던 교장이라는 간부직, 교육청이라는 간부 집단, 그 위의 교육부, 더 위에 있는 대한민국 정부.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고급 공무원과 위정자들이다. 파편화된 업무를 떠맡은 낮은 직급의 공무원과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불특정다수의 국민은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

죽은 교사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살아갈 힘을 모두 끌어다 생을 마감하는 데 썼을까.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업무를 감당해야 했을 그의 고독한 근무 환경을, 그럼에도 힘듦을 꾹꾹 눌러 담고 학기말까지 버티며 학생들을 가르쳤을 소명감을 생각한다. 

7월 22일, 보신각에 검은 옷의 교사들이 모였다. S초 교사의 추모식이 열렸고, 오마이 TV에서 생중계했다. 아이들과 서울시교육청을 찾았다. S초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교사들의 추모 현장을 지켜봤다. 비가 오면 우산을 나눠 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며 슬픔을 공유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공동체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S초 교사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으로 가득한 서울시교육청 입구의 모습.
▲ S초 교사를 위한 근조화환 23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S초 교사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으로 가득한 서울시교육청 입구의 모습.
ⓒ 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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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앞의 수많은 근조 리본에 '동료교사'가 쓰인 것을 보고 아이들이 의아해했다. 지역, 학교가 다른데 어떻게 동료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부당한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며, 공동체 일원의 비극에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다면 모두 동료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터에서 죽음을 선택한 선생님을 애도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웃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학에도 가고 싶을 정도로 학교가 좋은 학생들처럼 선생님들도 학교가 좋아서 다녔으면 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죽음이 호기심과 클릭수를 위한 상품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특정 집단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저기 종로 1가에 모인 선생님들을 본받으라 말했다.

동료 교사를 잃은 슬픔을 절도 있게 표출하고 조용히 분노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배우라 했다. 교실 밖에서도 영락없이 선생님일 수밖에 없는 저분들을 보라는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에 공감하는 법 

23세 교사의 자살은 20대 청년의 자살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자살이고 공무원의 자살이다. 이제 사회초년생인 옆집 아이의 자살이고, 내 아이의 자살이다. 생존이 기적인 사회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타인의 삶과 다른 집단의 슬픔에 공감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겠다. 가정과 사회는 학교와 더불어 공존을 위한 공감 교육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 학교는 사회와 떨어져 존재하는 성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존의 교육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과 더불어 살아갈 교사들 역시 공존의 범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교사들과 나 그리고 내 아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자란 사회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공감의 힘을 믿는다.
 

근무 지역과 학교가 달라도 많은 교사들이 '동료교사'라는 이름으로 화환을 보냈다.
▲ S초 교사를 위한 근조화환 근무 지역과 학교가 달라도 많은 교사들이 '동료교사'라는 이름으로 화환을 보냈다.
ⓒ 임은희  

회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태그:#서이초#추모#초등학교#공교육#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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