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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도, 압박도 안통하는데 '북한 나빠요'만 외치는 윤석열 정부

'자유의 북진' 추진하겠다는 통일부…북한 비판만 하면 납북자 돌아오나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2.11. 05:18:17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설 연휴를 맞아 이산가족들과 합동 차례를 지내며 이산가족 문제에 북의 호응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인 남북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 통일부의 이러한 촉구가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통일부는 "김영호 장관은 (사)통일경모회에서 주최하고 통일부가 후원하는 '제40회 망향경모제'에 참석하여 이산가족들과 함께 합동 차례를 지낼 예정"이라며 "이 자리에서 격려사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임진각을 찾은 이산가족들을 위로하고, 이산가족 문제는 천륜과 인륜의 문제로서 북의 호응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통일부는 김 장관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억류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하며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망향경모제는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실향민 및 이산가족들이 임진각 망대반에 합동차례상을 마련하고 함께 차레를 지내는 행사로, 매년 설에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로 40번째를 맞이했다. 

 

이제까지 행사에 참석했던 통일부 장관들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실제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확인, 서신 교환, 정례적인 상봉 등은 여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8년 8월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이 실시됐으니, 관련 행사가 열리지 않은지도 5년 반이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이산가족과 같은 인도적 사안이 분단 80년이 가까워오는 세월 동안 해결되지 못한 데에는 북한의 폐쇄적인 태도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꺼리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적인 이유로는 남북 간 국력의 차이로 인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인데, 오히려 이를 감추기 위해 북한의 가족들은 보통 상봉 때 자신이 받은 훈장 등을 들고 나와 "수령님 덕분에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하곤 한다는 게 정 전 장관의 설명이다. 실제 상봉장에는 각 가족들마다 마치 누가 맞춰주기라고 한 것처럼 비슷한 모양의 종이액자에 사진을 끼워 넣고 나오기도 하는데, 이 역시 '보여주기'의 일환이다. 

 

정 전 장관은 기술적·행정적 측면에서도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한국은 이산가족 명단이 전산화 돼있지만 북한은 이러한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남쪽에서 찾는 북쪽 가족이 누군지 알아보고 찾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한다. 

 

가족 중에 월남한 사람이 있어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북한 가족이 이산가족 상봉을 주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이산가족 상봉은 남한 입장에서는 인도주의적인 문제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행사인 셈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유인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남북 간 접촉은커녕, 물리적으로 연결돼 있는 통신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상봉을 치러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산가족뿐만이 아니다. 통일부가 추진하겠다는 다른 사업들도 북한과 접촉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난 5일 김영호 장관은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통일부 장관-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정부는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새해 들어 우리 정부는 자유의 북진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의 북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김 장관은 △핵전쟁 공포로부터의 자유 △연대의 자유 △종교, 언론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자유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질서 입각한 통일 등을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의 국정철학을 네 가지 자유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이 언급한 추진 과제들을 북한이 받아줄 가능성은 매우 낮으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두 개의 교전국가간 관계"로 규정하고 올해 들어 남한과 관련된 기관 및 단체, 법령, 합의서 등을 폐기했다. 

 

▲ 12월 31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의에서 올해 각 부문 사업을 총화하고 내년 당 및 국가사업의 발전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로동신문=뉴스1

 

만나지 않겠다는 상대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보다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적절한 대북 정책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을 비난하고 미국과 함께 또는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쏟아내는 것만 보더라도 북한과 접촉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압박을 통한 행동변화는 현 상황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남한의 압박이 효과가 있으려면 남한이 북한에 영향을 주는 존재여야 하는데, 지금은 개성공단 가동도, 금강산 관광도 모두 중단된 상태다. 북한이 남한에 소위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에서 압박이 통할 리가 없다. 

 

압박을 통한 행동 변화가 어렵다면 북한 지도 체제를 붕괴시키는, 즉 북한의 정권 교체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적 환경이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심화된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북한의 숨통을 틔워줬다. 북한에 대해 어떠한 국제적 합의도 이뤄내지 못하면서, 핵 고도화를 비롯한 북한의 행동이 제어되지 못한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안보리의 결의안에 위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의안'(Resolution)은 커녕 중간 단계 수준인 '의장 성명(Presidential statement)'도, 가장 낮은 수준인 '언론 성명(Press Statement)'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후순위로 미룬 듯하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를 추진하는 이유는 안보리 및 미국 제재를 해제하고 세계 경제에 편입되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강대국 간 대립이 유지된다면 미국과 어렵게 관계개선을 하는 것보다 특정 진영에서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더 편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북한과 접촉할 계획도 없고, 압박은 통하지 않고, 붕괴시키기도 어려운 환경이라면 최소한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국가와 관계를 강화해 간접적으로라도 북한의 행동을 제어하고 영향력을 투사시켜야 하는데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중, 한러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한러 양측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3일 외교부는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되어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하고 직접적인 어조로 외교 상대국 대변인을 비난하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가 이처럼 원색적인 비난 입장을 발표한 이유는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지난 1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노골적으로 편향돼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1월 31일 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며 북한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는데,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에 대한 입장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위와 같은 답을 내놨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스스로 내놓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지금 정부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하는 것은 '북한 나빠요'를 외치는 것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KBS에서 방영된 대담에서 북한을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든 안 하든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톱다운 방식은 곤란하고, 실무자 간 교류와 논의가 진행되며 의제도 만들고 결과를 준비해 놓고 정상회담을 해야지, 그냥 추진한다고 해서 끌고 나가는 것은 아무 결론과 소득 없이 보여주기로 끝날 수가 있다"며 회담 자체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회담에 대해서 이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과 대조적으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입장이 다른 대상이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최소한 일본처럼 접촉에 나서겠다는 의지라도 보여야 한다. 소득 없는 '보여주기식'의 회담이라도 그 회담이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덧붙여, 정부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 문제에서 국민에게 밝힌 가장 큰 약속은 북한 인권 개선, 납북자 문제 해결이다. 북한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 문제들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패션쇼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이념적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 존재의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 지난해 7월 27일 정전협정체결일에 각각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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