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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경쟁이 부른 종편 참극

신정아 해프닝, '벗고' 씹고' 막장 뺨치는 선정성 경쟁

[종편 생존 전략 ④] 시청률 경쟁이 부른 종편 참극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06 오후 1:29:43

 

 

2년 전, 종합편성채널(종편)의 탄생을 앞두고, 많은 언론학자가 미래를 예언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방송 시장에서 드라마와 연예·오락 등 방송 콘텐츠의 선정성 경쟁, 상업주의 경쟁으로 방송의 공공성이 크게 위축될 게 분명하다" (김승수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기업과 신문이 신규로 방송 진입하면 일부 채널의 광고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광고는 댐과 같다. 물이 위에서 다 차야 아래로 흐른다. 콘텐츠 내용이 경쟁에 의해 선정성과 폭력성이 증대되는 건 뻔히 예상된다." (정상윤 방송균형발전연대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 경남대학교 신문방송정치외교학부 교수)


종편의 선정성 경쟁은 '예고된 참사'다. 출범 이후 1년간 종편은 수치를 맛봤다. 평균 시청률이 고작 0.4%~0.6%대에 머물렀다. 시청률에 목마른 종편은 갖가지 원색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누군가를 '쾌도'로 '난마'하고, '저격'했다. 이따금 출연자를 벗겼다.

덕분에 시청률은 올랐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종편 4곳의 지난 8월 평균 시청률은 각각 MBN 1.284%, TV조선 1.242%, 채널A 1.081%, JTBC 1.002%를 기록했다. 또, 7월 전체 종편의 시청시간은 1시간 31분, 시청률은 4.780%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종편은 부쩍 늘어난 시청률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 언론계와 시청자들은 한숨을 내쉰다. '막장 방송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3일 언론노조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종편 4사 심의 내용 및 결과 집계' 자료를 보면, 종편 4사는 지난 2011년 12월 1일 출범 이후 2013년 7월 31일까지 허위 사실 공표, 품위를 떨어뜨리는 표현 사용 등 방송심의규정 위반으로 총 150건의 제재를 받았다. TV조선은 개국 이후 현재까지 40건('주의' 이상 법정 제재 18건)의 제재를 받았으며, 채널A 39건(법정 제재 23건), JTBC 38건(법정 제재 26건), MBN 33건(법정 제재 17건) 등이다.

지상파 방송과 비교해보면 더욱 심각성이 드러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간한 <선거 방송 심의 백서>를 보면,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종편 4사의 방송 심의 규정 위반에 따른 제재 건수는 27건, 지상파는 5건을 기록했다.

채널A <쾌도난마>, 연예인 가정사 폭로에 정치인 외모 품평까지

종편 대부분이 제작비가 적은 데 비해 시청률이 잘 나오는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면서, 시사 프로의 막장화가 제일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집단 토크쇼'를 표방한 온갖 시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방통심의위원회의 관심 1순위는 단연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쾌도난마)>로 꼽힌다. 지금까지 방통위로부터 받은 제재 건수는 총 17회에 달한다.
 

ⓒ채널A


지난 3월과 5월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봉규 시사평론가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에 대해 "각선미가 아주 예쁘다"고 표현하는 등 여성 정치인의 외모를 품평하는가 하면, 역사 다큐 <백년전쟁>을 '꽃뱀'에 비유했다. 이에 따라 채널A는 방통심의위로부터 각각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 및 프로그램 중지'와 행정 지도 '권고' 조치를 통보받았다. <쾌도난마>는 또, 가수 장윤정의 가족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개인의 불미스런 가정사를 긴 시간 동안 흥미 위주로 전달해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런 제재 이후에도 <쾌도난마> 출연진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박종진 앵커는 지난 8월 29일 프로그램 오프닝에서 내란 음모 혐의로 압수 수색이 예정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조롱하는 말투로 "왜 이러십니까, 무슨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잇몸이 보이도록 환히 웃어 보이십니까"라고 말했다. 또 이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원들을 겨냥 "당신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출연한 김성만 해군작전사령관은 "복지 예산을 줄이면 안 되니까 다른 방향으로 북한이 빨리 무너지도록 군사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위험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앵커는 "군사 인사를 잘하면 북한을 금방, 몇 년 안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냐"며 김 사령관의 말을 곱씹었다.

같은 날 출연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채동욱 전 검찰청장과 내연 관계인 것으로 지목된 여성에 대해 술집 운영한 경력을 언급하며 "임 마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조평통 성명, 종북 좌파들 지금 기분 좋을 것"

채널A에서는 <쾌도난마>가 '막장 방송'의 선봉대에 나섰다면, TV조선에선 <돌아온 저격수다(저격수다)>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변 대표의 활약은 <쾌도난마>에 이어 <저격수다>에서도 이어진다. 변 대표는 지난 8월 8일 방송에서 "방심위에서 이번에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참 가관이었는데, 노골적으로 안철수 거짓말을 비호하다 보니까 헛소리들 정말 많이 했다", "아무리 여야 추천이라도 너무 그렇게 민주당의 충견 노릇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지난 25일 회의에서 여당 추천 위원 3인은 법정 제재인 '주의' 처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TV조선


<저격수다>는 최근엔 모 회사인 조선일보사를 도와 채 전 총장 혼외자 여부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월 11일부터 나간 16번의 방송 중 채 총장 관련 내용만 15번을 다뤘다. 딱 한 번 빠진 셈이다. 출연진은 혼외자 의혹을 기정사실화 했고, 진성호 전 의원은 혼외자와 내연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임 여인은 어딨나. 수배령이라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또 이산가족 상봉 연기를 통보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언급하면서, '이석기 의원이 북측으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황당 발언을 남겼다. 진 의원은 "조평통 성명을 보면, 국정원 해체를 위해 이석기 동무 참 잘하고 있다. 진보민주인사들 열심히 하라는 보고다. 말하는 순간 종북 좌파들 지금 기분 좋을 것"이라며 "이석기 의원이 감옥 속에서 드디어 북에서 나 인정하는구나(생각할 거다.)"라고 말했다.

최근 보도국 개편으로 '공정 방송' 찬사를 받고 있는 JTBC도 선정성 논란에서 예외는 아니다. 종편사 가운데 제재를 가장 적게 받았지만, 막장 방송 후폭풍은 거셌다. 지난 2012년 6월 <사사건건>에 출연한 황상민 교수는 김연아 선수에 대해 "쇼" 발언을 해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고, 결국 '방송 출연 제한' 조치를 받았다.

예능 및 드라마 부문에서는 각 사가 돌아가면서 선정성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채널A는 <글로벌 한식 토크 쇼킹>에서 나온 "내 성X 얼마나 예쁜데", "나는 애인과 관계할 땐 꼭 'XX'를 쓴다"는 출연진 발언으로 방심위로부터 '주의'를 받았고, TV조선은 <속설검증쇼 속사정>에서 "결혼도 안 하고 처녀라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못하겠어요" 등 출연진 발언이 문제가 돼 '경고' 조치를 받았다.

JTBC는 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모유 수유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의 신체를 지나치게 클로즈업해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또 현역 정치인들을 대거 투입시켜 주목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 <적과의 동침>에선 의원들이 막대 과자 게임을 하다가 입술을 부딪히는 낯 뜨거운 장면을 내보냈다.

"'신정아 캐스팅', 일단 시청률만 끌고 가보려는 값싼 계획"

종편의 선정성은 프로그램이 방송을 타기도 전에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종편이 호출해 낸 출연진의 면면을 보면 그렇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을 적극 기용, 화제를 생산해내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강용석 전 의원이다. 강 의원은 과거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되며 의원직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불과 1년도 안 돼 각종 종편 프로그램 MC 자리를 꿰차며 '종편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폄하 발언, 개그맨 고소에 대한 거짓 해명 등 여전히 문제적 발언으로 논란을 몰고 다니고 있다.
 

▲ 신정아 씨. ⓒ프레시안(최형락)


최근 화제가 된 '신정아 캐스팅'은 종편의 노이즈 마케팅이 정점을 찍은 예다. TV조선이 새 시사 토크쇼에 학력 위조와 횡령, 고위 공직자와의 스캔들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 씨를 진행자로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여론은 들끓었다. 담당 피디는 신 씨 섭외 이유로 "여성으로 큰일을 겪은 만큼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네티즌들은 "TV조선 시청 거부" 목소리를 높였고,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신 씨 캐스팅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까지 벌어졌다.

여론이 험악해지자 결국 TV조선 측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신정아 캐스팅'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시선을 끌기 위해 어떤 '문제적 인물'이라도 끌고 오려는 종편의 씁쓸한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이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사무총장은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신정아 캐스팅 논란은 마녀 사냥인 측면도 있다"고 전제한 뒤, "다만 시사 이슈 프로그램 포맷에 적절한 진행자인지를 따졌을 때 그렇지 않다. 단지 대중성과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인물을 내세워서, 일단 시청률만 끌고 가보려는 값싼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위 제재도 '씹었다'… 막말 환경 조장하는 종편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종편을 구해내기란 쉽지 않다. 방통위는 선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족족 종편에 '주의', '경고' 등 딱지를 붙였지만, 정작 종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말 방송을 조장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법 제100조는 설령 제재가 출연자로 인해 이루어진 경우라도 방송 출연자에 대해 경고, 출연 제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를 위반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돼 있다.
 
ⓒ최민희의원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종편의 제재 조치 이행 결과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종편은 출연자의 자극적인 발언으로 인한 제재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재 빈도가 높은 채널A는 결국 지난달 25일 사후 조치 불이행으로 건당 500만 원씩, 총 15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더욱이 채널A는 방송 승인 당시 방통위에 제출한 사업 계획서에 '막말 방송 3진 아웃제'를 약속한 바 있다. 결국 스스로 내건 약속을 뒤엎은 꼴이다. 하지만 종편은 시청률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널A 서영아 보도본부 부본부장은 방통심의위 의결 진술 과정에서 "이봉규 시사평론가가 출연하면 시청률이 오르더라는 경험이 있어서, 제작진 입장에서는 시청률을 좀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쓰게 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추 사무총장은 종편의 선정성 전략에 대해 "그게 비판이었든 종편 주 시청자층의 과격한 동의였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종편이 방통위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더라도 생존 경쟁을 해야 하고, 내년부터는 자본금마저 까먹을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시청률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청률 경쟁의 심화, 그로 인한 극심한 선전성 경쟁이 예고되면서, 철두철미한 재승인 심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 의원은 "종편의 공적책임을 위한 약속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며 "재승인 심사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승인 심사 전망조차도 불투명하다. 지난달 5일 방통위는 전체 회의를 열고 2014년도 종편 재승인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심사안 가운데 관심을 모은 '방송의 공적책임·공공성·공익성의 실현 가능성'과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 계획의 적절성'에 대한 과락 기준이 50%에 그쳤다. 당초 재승인 심사 연구반은 두 부분의 점수가 60% 미만이면 재승인을 거부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이보다 일 보 후퇴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이날 논평을 내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 재승인의 거수기 역할을 자처할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내년 3월 진행되는 심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종편의 선정성 문제는 당분간 꺼지지 않을 불씨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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