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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산유국이 된다면 벌어질 끔찍한 미래

[임성희의 환경리포트]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산유국인가

24.06.13 07:10최종 업데이트 24.06.13 07:10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발표했다. 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단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양이란다. 최소 다섯 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개당 1000억 원이 넘고, 탐사 시추계획은 이미 승인했으며, 내년 상반기까지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니 지켜봐달라고 했다.

매장 가치를 묻는 질문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재가치로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의 아브레우 고문(실소유자)은 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시추뿐이며 성공 확률 20%는 굉장히 양호한 수치라고 말했다.

기대와 환호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해당 지역은 호주의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2007년부터 조광권을 획득하며 탐사에 나섰지만, 결국 장래성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2023년 철수했던 곳이기도 하다.

직원 수가 10명도 되지 않은 액트지오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지, 개인 주택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세금 미납으로 법인 자격까지 박탈당했던, 그야말로 규모도 신용도 부실해 보이기만 한 기업에 동해 심해 탐사 분석을 맡긴 배경이 따로 있진 않은지 등 석유탐사 프로젝트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게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석유매장이라는 희소식 앞에 민주당은 재를 뿌리기에 바쁜 것 같다며, 산유국이 되는 게 그렇게 싫냐고 쏘아댔다.

익숙한 국익 프레임의 등장이다. 많은 것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대부분 국익 프레임의 짜임새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전제로, 찬성하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선, 반대하면 국익을 저해하는 악으로 몰아세우며 사안을 매우 단순하게 정리해 버린다. 국익이 무엇인지, 어떻게 국익으로 귀결되는지 상호 논증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자리를 내주기보다 오히려 이성적 개입을 차단시킨다.

합리적 사고와 논리가 개입하게 되는 순간 선과 악의 대립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안에 대한 본질적 접근과 해석을 배제시키는 전략, 찬·반을 선과 악으로 구획하고, 비판적 입장은 악한 것,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으로 단죄되는 전략적 프레임은 그래서 종종 애용된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뜬금없이 석유 매장 이슈를 깜짝 발표했다느니, 액트지오의 분석이 신뢰할 만한지 등에 대해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산유국 되는 게 싫으냐는, 일종의 역적 논리로 몰아붙이는 그 간교한 우매화에 대해,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억지 논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물론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자원빈곤국의 국민으로 살다, 동해 가스전 개발로 산유국의 꿈을 실현해 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석유에 대한 염원과 갈망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길 간절히 바라지 않았던 국민은 없다. 그러니 산유국 되는 게 싫은 것이냐며 상대편을 함부로 매도하는 류의 질문이라면 그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문제는 더 이상 석유탐사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

 

▲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펴낸 '석유 및 가스 산업의 넷제로 전환 특별보고서' ⓒ 국제에너지기구

 

기후위기를 타개하려면 우선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 화석연료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다 화석연료이고 이 연료들을 연소할 때 이산화탄소, 메탄과 같이 지구 대기에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1.5도 이내로 지구기온 상승을 억제하자고 약속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 예산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비롯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국가별로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지,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연도별로 점검한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140억 배럴이란 규모의 화석연료를 온실가스로 환산하면 47억 7000만 톤이 넘는 양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해마다 배출하는 온실가스 6억 5000만톤(2022년 기준)의 7.3배에 달한다. 이 배출량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1.5도 이상의 지구 온도 상승을 제어하기 위해 인구를 기준으로 배분한 우리나라 탄소예산 33억 톤의 약 1.4배에 달하는 양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 및 가스 산업의 넷제로 전환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며 탄소중립을 위해 석유와 가스 수요는 2022년에 비해 2050년 약 75%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글로벌 석유수요는 2022년 96.5mb/d에서 24mb/d로, 가스 수요는 4150bcm에서 약 1000bcm으로 감소). 이에 따라 석유와 가스 가격도 유사하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21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석유와 가스 개발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개발이 시작된 화석연료 매장량도 채굴을 40% 이상 중단해야만 1.5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는 마당에 새로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에 기대어 첫 탐사에서 생산까지 7년에서 10년의 기간을 들여 30년간 채굴을 한다면,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할 2050년 이후에도 화석연료를 채굴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20% 시추 성공 확률이 높은지 낮은지를 두고 논쟁하며, 시추에 성공이 보장되길 기원할 때가 아니다. 화석연료를 채굴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예산을 투여하는 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화석연료 수요를 줄이고 있는 것에 역행하는 것이며,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운운도 향후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고려하지 못한 낭만적 사고다. 결국은 붉은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적자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지구 기온을 더욱 뜨겁게 달굴 것이란 측면에서.

섣부른 이분법적 국익 논리는 다만 끄트머리를 향해가는 화석연료 산업계만을 위한 선물일 뿐, 국익과도 조응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산유국 #석유탐사 #기후위기 #온실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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