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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영웅’에 이어 ‘의료공백’ 메꿨지만.. 거리 나온 보건의료노동자

‘의사 부족하지 않다’는 무색한 주장, 의료 현장은..

의료공백 메꾸는 보건의료 노동자

“공공의료 강화, 올바른 의료개혁” 촉구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 사태가 100일을 훌쩍 넘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환자들은 예정된 수술이 밀리고,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이 악화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강대강 대치에 고통받는 건 환자와 국민만이 아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의사들이 해야 할 수많은 업무는 무방비하게 PA 인력(Physician Assistant, 의사 보조 혹은 진료지원인력)에게 떠넘겨졌다.

의사들의 공백을 메꾸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공공의료 강화’, ‘올바른 의료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2024 보건의료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 ⓒ뉴시스

의료 공백.. 누가, 어떻게 메꿨나

윤석열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사인력이 부족해지자 ‘시범사업’이라며 한시적으로 PA간호사의 의료행위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게 전가하는 PA간호사 시범사업은 대리 처방, 대리 처치 등 간호사들을 불법의료로 내몰았다.

이날 병원의 현실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가 부족해 의사 업무를 하는 PA간호사가 2만 명에 육박하는데,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이성진 백병원부산 지부장도 직접 증언했다. “부산 백병원도 100여 명이 넘는 PA 간호사들이 부족한 인턴, 전공의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지만,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한시적 PA, 수술실 전담 PA, 공통 PA 등 각종 명칭의 PA인원이 늘고, 업무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인력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단체의 주장이 무색하기만 하다.

의사가 없는 자리를 메꾸고 있는 보건의료 노동자들. 코로나 위기 때 ‘영웅’이라 칭해졌던 그때처럼 환자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며 버텼지만, 병원 경영악화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 역시 이들이었다.

진료 거부에 따른 병원의 재정적 위기는 임금체불, 희망퇴직, 구조조정 위협, 그리고 원하지 않는 무급휴가, 강제 연차휴가 사용으로 돌아왔다. 중증·응급의료를 책임지고, 수련병원 역할을 해온 부산백병원도 전공의 집단 진료 거부 사태로 경영 위기가 왔고, 임금체불과 병원 존폐가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오는 18일로 예정된 의사들의 ‘집단 휴진’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의정 대립으로 발생한 경영 위기를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면 단호히 투쟁할 것”이라고 외쳤다.

▲ 길어지는 의료 공백 속, 대구시내 한 대학병원의 모습. 2024.04.22.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이들은 보건의료 인력을 갈아 넣는 것이 아닌 ‘적정인력 기준’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환자와 인력이 대형병원으로 쏠렸던 현상과는 달리, 의사 진료 거부 사태로 민간중소병원 상황이 달라졌다.

송수명 인천사랑병원 지부장은 “진료 거부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2차 병원으로 이동하여 환자 수가 다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간중소병원엔 평소 전공의 수가 적거나 없는 병원이 많아 인턴, 레지던트 업무까지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돌아왔다. “업무 과중 때문에 잦은 퇴사자들이 생기고, 인력난이 심각해 365일 수시 채용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

평소엔 대형병원에 밀려 병상 가동률은 현저히 낮았고, 임금부터 복지까지 대형병원과의 격차가 심했지만, 의료공백을 메꾸며 공익을 위해 일하는 지금도 민간중소병원은 정부 지원에선 배제돼 있다.

국립대병원엔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북대병원에서 일하는 18년 차 간호사인 김진아 전북대병원 지부장은 “환자가 사망해도 의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너무 많아 사망선고를 하러 오기까지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처방을 내야 하는 의사의 업무도 바쁘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에게 떠넘기는 실정”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국립대병원의 존재 이유가 의사를 양성하는 데도 있지만, 국민생명을 살리는 의료기관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면서 “의사인력 확충”을 요구했고, “인력을 늘릴 수도 없고, 우수인력을 유지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국립대병원 총정원제, 총액인건비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 서울의 한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 집중치료병동의 모습. 2023.01.04.

또다시 감염병이 오기 전에…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국민생명을 살린 전담병원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공공병원은 아직 회복이 더디다.

2년 반 동안 감염병 대응에 전념한 결과는 ‘병원 존폐위기’로 찾아왔다.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되면서 일반 입원·예약 환자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치료와 관련 없는 의사와 환자가 이탈하면서 적자는 넘쳐났고, 이젠 의료진들 임금까지 체불 상태에 이르렀다. ‘전담병원’이 해지된 후에도 이미 붕괴된 공공병원엔 환자들이 오지 않았다. 병상가동률은 65%대다.

이은혜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지부장은 “국가 의료재난 대응의 자부심은 오간 데 없고, 천덕꾸러기로 토사구팽 당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는 “지방의료원 붕괴는 필수의료 붕괴이며 지역의료 붕괴, 공공의료 붕괴”라고 꼬집으며 “공공병원의 시설, 장비, 인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희선 위원장은 “또 다른 감염병이 오기 전에 공공병원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공공병원이 제대로 된 공공의료를 할 수 있도록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올바른 의료 개혁’이 해법

이날 세종대로에 모인 5천 노동자들이 내놓은 해법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공공의료,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살리는 ‘올바른 의료 개혁’을 하라는 요구다.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에 합의한 ‘9.2 노정합의’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 합의에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인력 기준 마련 ▲증원된 의사를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우선 배치 ▲공공병원 역량 강화를 비롯해,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공익적 의료법인 제도화 ▲수련병원 지원 강화 ▲환자 중심의 안전망을 구축 등이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25일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6월내 ‘4대 의료개혁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4대 의료개혁 과제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개혁의 핵심인 인력정책은 ‘의사인력정책’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고, 전체 보건의료 노동자인력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 공공의료·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적정인력 기준 제도화! 공공의료 강화! 올바른 의료개혁!”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서울역까지 행진했다.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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