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시대를 못 따라가는 걸까요?
“시대를 못 따라간다는 표현이 좋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삼성이나 다른 경쟁사들을 만나봐도 ‘삼성이 기술이 부족한가요’라고 물어보면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ISSCC라는 국제고체회로학회에 학회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게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고인 학회지입니다. 이 학회지에 기술적인 논문을 얼마나 싣느냐가 그 회사의 경쟁력 좌우한다고들 평가하는데, 올해도 삼성이 세계 기업 가운데서 가장 많은 논문을 거기에 실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삼성이 떨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때 도입하면 좋은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개념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삼성이 제품의 새로운 메모리를 설계해 내는 능력은 꽤 있는데 이걸 실제로 양산하고 공정을 관리하는 능력에 있어서 뭔가 문제 있는 것 같다는 시각도 있고요. 그런 것이 D램의 위기를 상징할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SK하이닉스가 주 52시간 등 국내 법규 어겨가면서 한 게 아닌데 삼성이 못한다는 게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거든요.
다른 한편, 삼성의 파운드리 부분 실패가 매우 뼈아플 겁니다. 사실은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던 시점에 삼성이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거의 20%였는데 그 뒤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넣었지만 지금 10% 밑으로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던 시점에 절반 이하로 실적이 떨어진 겁니다. 왜 이렇게 실적이 떨어졌을까에 거대한 전략의 실패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전략의 실패가 어디서 나오느냐면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시대의 흐름이죠.”
SK하이닉스는 주 52시간제 다 지켰어도 문제없었다고 하셨죠. 반도체업은 주 52시간제 지키면 사업 못하니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삼성 쪽에서 책임 있는 사람에게 ‘52시간 때문에 개발 못했습니까’라고 말하면 ‘아닙니다’라고 답할 겁니다. 52시간은 무관합니다. 다만 지금은 따라가야 되죠. 삼성은 한시가 급합니다. 제가 최소한 1년 뒤져 있다고 말했는데 그건 D램이고요. 파운드리 부분은 TSMC에 얼마나 뒤져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52시간이 도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근데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근본적으로 52시간과 혁신은 무관합니다. SK하이닉스는 52시간을 지켜가면서 했고, 그 안에 있는 연구진들이 엄청나게 갈아 넣은 것도 아니에요. 제가 SK하이닉스 3D 개발한 연구진들을 만나보면 다들 52시간이 아니고 딱 3교대로 돌아가면서 계속 일하던 만큼 했고 일과 워라벨에 있어서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삼성은 급해졌으니까 뭐라도 하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겉으로 하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죠. 근본적인 문제는 혁신 능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고, 그 혁신 능력을 다시 찾아내려면 인재가 있어야겠죠. 인재 차원에서 보면 52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건 정반대의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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