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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남 이야기] 비트코인, 음모론, 그리고 극우화

코인 투자가 극우화로 이어지는 이유

임장표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편집자주

‘이삼남’은 ‘이삼십대 남성’의 줄임말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이삼남 이야기’는 2030세대 젊은 남성 필진들이 번갈아 쓰는 칼럼입니다. 청년 이슈와 온라인 여론 등을 주제로 한 달에 두 번 게재 예정입니다. 혐오와 갈라치기, 무관심과 오해를 넘어 건전한 공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늘날 비트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화폐일 뿐 아니라 극우화의 기제로 되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골럼비아는 자신의 저서 『The Politics of Bitcoin』에서 “블록체인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 프로그램”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은 중앙은행과 정부 규제를 불신하는 세력이 자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미국 극우·자유지상주의 담론과 맞물리며, “정부 없는 돈”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음모론적 사고방식이다. 미국의 ‘연준 음모론’은 “연방준비제도가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 서민의 부를 빼앗는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 주장은 정부를 ‘도둑’으로, 중앙은행을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한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비트코인 극우’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7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이어진 ‘코인 광풍’ 속에서 국내 온라인 공간에는 신조어 ‘코인충’이 등장했다. 인터넷 등지에서는 이들 ‘코인충’을 “암호화폐에 무지하지만 한탕주의에 빠진 집단”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정부 규제는 폭압”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시세가 떨어지면 “정부가 살려내라”고 외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골럼비아가 지적한 미국 극우 담론과 유사한 구조가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2017년 암호화폐 규제 규탄 집회 웹자보 ⓒ필자 제공

이들의 사고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이들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적 기제로 작동하는 건 바로 정부 혹은 국가에 대한 음모론이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극우’들은 중앙은행이 인플레를 의도적으로 조장한다면서, “달러는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원화를 망쳤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집값이 올랐다”는 식으로 표현이 현지화될 뿐이다. 내용이 달라 보여도 ‘국가가 화폐 가치를 훼손한다’는 원형은 동일하다. 그런 맥락에서 비트코인은 ‘정의로운 대안’으로 포장된다. 공급량이 2천1백만 개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다”는 말이 뒤따른다. 그러나 골럼비아는 이 주장이 경제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급이 고정돼도 가격은 투기와 수요 변화로 요동칠 수 있고, 실제로 2018년과 2022년 암호화폐 시장은 값이 80% 이상 폭락하는 경험을 했다.

두 번째 주요 논리적 기제는 ‘자유 대 폭압’ 구도다. 미국 ‘비트코인 극우'들은 “세금은 도둑질, 규제는 독재”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수입해 들여와 “가상자산 과세는 청년 등골 빼먹기” “금융위는 사회주의 집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다”고 언급했을 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만에 10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 ‘발언 철회’와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이는 ‘정부=악’이라는 도식이 어떻게 대중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세 번째로, 이들 ‘코인 극우’들은 ‘한탕주의와 피해망상’에 빠져있다. 소위 ‘코인충'들은 “저점 매수, 고점 매도면 월급은 필요 없다”며 노동을 경시한다. 동시에 가격이 조금만 떨어져도 “정부 때문에 폭락했다”며 국가를 탓한다. 골럼비아가 지적한 미국 사례에서도 “시장 실패는 정부 책임, 시장 성공은 혁명”이라는 논리가 반복된다. 이처럼 비트코인을 둘러싼 음모론은 개인의 투자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이러한 흐름이 한국에 빠르게 퍼진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경제 불안이 크다. 취업난과 부동산 급등으로 청년층은 ‘법정화폐로는 자산 증식이 어렵다’고 체감한다. 둘째, 기술 낙관주의다. 24시간 스마트폰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코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셋째,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플랫폼 구조다. 자극적 급등 예측이나 정부 음모론 영상이 조회 수를 끌면, 추천 기능은 더 극단적인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불만과 투기 심리가 서로 증폭된다.

결과적으로 암호화폐는 한국 극우 온라인 문화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개인투자에 대한 신화, 극단적 개인이기주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현상하는 반사회성,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암호화폐를 극우화의 매개가 되게 한다. 자신은 ‘코인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고, 남들 위에 올라설 수 있는데, 정부 규제가 이를 막는다고 생각하니, 투자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코인 커뮤니티에서는 비트코인 이야기와 함께 ‘큰 정부 비판’ ‘반(反)페미니즘’ ‘반(反)중국’ 구호가 한데 엉킨다. 이처럼 정치·문화적 불만이 투기 열풍과 결합되면, 합리적 규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골럼비아가 “비트코인의 가장 큰 위험은 가격이 아니라 정치적 과열”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호화폐 규제 논의나 가격 변동에 색깔론을 들이대는 주장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흔하다. ⓒ필자 제공

이제 결론적으로 이러한 극우화 흐름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정부와 한국은행은 통화·재정 데이터를 꾸준히 공개하고 규제 근거를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야 한다. 투명한 정보는 음모론이 뿌리내릴 공간을 좁힌다.

둘째, 학교와 언론은 디지털 금융과 블록체인 기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탈정부가 곧 자유”라는 단순 구호를 비판적으로 읽을 힘을 길러야 극단적 담론이 약화된다.

셋째, 플랫폼 사업자는 근거 없는 급등 조장 영상이나 펌프·덤프 방에 경고 라벨을 붙이고 알고리즘 노출을 제한해야 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 보호 장치다.

넷째, 정치권은 코인 과세나 소득 공제를 논의할 때 청년층이 체감할 수 있는 주거·노동 개선책을 병행해야 한다. 실질적 경제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음모론은 계속 다른 모습으로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투명한 정보, 비판적 교육, 책임 있는 플랫폼, 그리고 포용적 경제 정책이 함께 작동할 때 비트코인을 둘러싼 극우화 흐름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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