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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도 포기한 CPTPP 가입 재검토, ‘트럼프 관세’에 자유무역 강화가 해법일까

기재부 “경제동맹 확보 위해 CPTPP 가입 검토”
FTA보다 더 강한 자유무역...‘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조건될지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03.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미국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재검토에 나섰다.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무역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PTPP 가입에 따른 경제적 실효성이 낮고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으로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중 의존도 높은 한국 수출...CPTPP 가입으로 다변화 모색


5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미 관세 협상 후속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CPTPP 가입을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3일 경제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사 입장국 간 경제동맹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에 편중돼 있는 한국의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CPTPP가 제시된 것이다. 2024년 기준 대미 수출 비중은 약 18.7%, 대중 수입 비중은 19.5%다. 특정 수출국에 집중된 만큼 수출 품목도 자동차·반도체·기계류 등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소수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일부 품목에만 집중될 수록 통상 리스크가 커진다. 관세뿐 아니라 미중 간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의 공급망 안정성과 미래 산업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CPTPP가 한국의 무역 다변화 전략에 있어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CPTPP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영국 등이 가입돼 있다. 자원과 시장을 갖춘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와 새로운 수출 시장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가입 검토를 재개한 것이다. 여기에 모두 미국 관세에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연대해 공동대응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섞여 있다.

사실 한국 정부는 이미 CPTPP 가입을 오래전부터 검토해 왔지만 아직까지 결론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1년 CPTPP 가입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2022년 4월에는 'CPTPP 가입 추진 계획'을 의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과의 외교 갈등, 농어민 단체의 강한 반발 등에 부딪혀 가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CPTPP 가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정부 내부 검토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가입국 대부분과 FTA 맺은 한국, CPTPP 실효성 의문


국제 통상의 양축인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경제협력체라는 점에서 CPTPP는 수출 다변화를 꾀하는 한국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CPTPP는 한국 수출 다변화에 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CPTPP 가입국 대부분이 이미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회원국인 호주, 캐나다, 베트남,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등 10개국은 이미 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이에 CPTPP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관세 인하나 시장 접근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중복 협정으로 인한 '무역 전환 효과'가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중이 배제된 경제협력체이지만, 미중 패권 전쟁에서 무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CPTPP는 본래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주도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과거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무역 질서를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전략 아래 TPP를 추진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탈퇴했다. 이후 협정은 지금의 CPTPP로 재편됐다.

미국이라는 핵심 축이 빠졌지만, CPTPP는 여전히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중국은 CPTPP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가입 신청까지 제출했으나, 일본이 적극 반대하면서 중국 견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환태평양 국가가 아닌 영국이 최근 CPTPP에 가입하고, EU(유럽연합)도 가입에 관심을 보이면서 CPTPP는 서방세력의 경제협력체로 기울고 있다. 미국이 빠졌지만, CPTPP는 여전히 미국의 환태평양 전략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기존 FTA보다 높은 자유무역 기준…국내 산업 부담


더구나 CPTPP는 한국이 기존에 체결한 FTA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과 규범 준수를 요구한다.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투자·서비스·지식재산권·노동·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한 법을 개정해야 했던 한미FTA처럼 CPTPP도 국내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PTPP는 회원국 간 상품 무역에 대해 평균 96.3%의 관세 철폐율을 요구한다. 이는 한국이 체결한 FTA의 평균 관세 철폐율 79.1%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농축수산물 분야에서 민감한 품목에 대한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은 개별국가와의 FTA에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해 협상에서 제외하는 등 보호장치를 두고 있지만, CPTPP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CPTPP는 검역절차를 비관세장벽으로보고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은 FTA를 통해 대부분의 농산물을 개방했지만, 검역을 이유로 외국산 농산물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 CPTPP에서는 이 같은 조치들이 원천봉쇄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CPTPP 회원국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농업 강국의 값싼 농산물과 수산물이 대거 국내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CPTPP는 디지털 무역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특히 위한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현재 수요가 높은 K-콘텐츠 산업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국내 산업이 새로운 규제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CPTPP는 공공조달 시장의 개방과 외국 기업의 참여 확대를 요구한다. 이는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특히 의료·교육·법률 등 일부 민감 서비스 분야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진입 가능성도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비교적 경쟁력이 높은 한국의 제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 제한 사태를 생각하면 한국의 소부장 시장이 일본에 장악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08.23. ⓒ뉴시스

사실상 일본과의 FTA...'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가입' 조건화 우려


가장 큰 문제는 일본과의 관계다. CPTPP는 미국이 빠지면서 사실상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CPTPP 가입은 곧 일본과 높은 수준의 FTA를 맺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일본은 한국의 CPTPP 가입을 두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일본산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과거사 문제다. 과거 정부에서도 CPTPP 가입과 관련해 가장 큰 반대를 받은 부분이다. 만일 CPTPP 규범에 따라 일본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요구 등을 수용해야 할 경우 반대 여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

여기에 CPTPP는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하고 있어 다른 회원국의 요구사항도 들어줘야 한다. 각국 FTA에서 한국 정부가 막아놨던 보호장치들이 해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광장세력' 반대 재점화될 듯...더 강한 신자유주의가 해법일까?


정부의 CPTPP 가입 재검토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이끌었던 '광장 세력'의 큰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CPTPP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계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기존 FTA에서 관세를 철폐하지 않았던 품목들은 쌀, 고추, 마늘, 양파 등 대부분 우리 국민의 주요 먹거리이자 농민들의 주요생산품목"이라며 "이마저 개방한다면 우리 농업과 생산기반은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CPTPP 가입은 자동차 몇 대, 휴대전화 몇 개 팔아보겠다고 우리의 생산기반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식량주권 없이는 세계화시대에 당당한 자립국가가 될 수 없다'는 남태령 시민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입 검토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CPTPP 가입 재검토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기존 자유무역 질서는 흔들리는 가운데 대안으로 제기된다. 자유무역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니 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체제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고 지적한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CPTPP의 문제 핵심은 국민국가의 권한을 시장 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를 피하고 싶으면 CPTPP를 해선 안 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권력이 국가 권력을 침해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미국의 제조업 몰락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반대 기조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더 강한 자유무역체제는 또 다른 트럼프를 낳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다.

나 교수는 "우리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통상 정책을 하려면 각 나라의 정책적 자율성이 지켜지고, 보편적인 규범이 통하는 비지니스가 돼야 한다"면서 "관리되고 규범이 있는 자유무역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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