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70대 노인의 절규 "일제에 놋그릇 뺏길 때보다 더 억울!"

[밀양 희망 버스 동승기] "희망 버스 욕하면 속 뒤집어져"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1 오전 9:36:54

 

"엄청 많다. 아빠. 우리가 질 것 같아."

10살 호성이가 마을 골목마다 늘어선 경찰을 보고 아버지 이모(40) 씨에게 소리쳤다. 주변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11월 30일 오후 4시께, 전라북도 전주에 사는 호성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여수 마을을 찾았다. 이날 오전 10시께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밀양 희망 버스'를 타고서다. 희망 버스 50대에 나눠 탑승한 참가자 총 2000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300여 명)은 단장면 동화전 마을, 상동면 도곡·여수 마을 등 3곳으로 나눠 향했다.

경찰은 충돌이 우려된다며 공사 현장 주변 곳곳에 50개 중대 4000여 명을 투입했다. 참가자 1명당 경찰 2명꼴이다.

이 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은 숫자로 우세를 판단하니까 경찰에 위압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여수 마을 입구에 있는 체육공원에서부터 경찰 버스 20여 대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그저 '송전탑 공사 중지'라고 쓰인 조그만 깃발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경찰력 4000명이 무색했다.

"없는 지역 탄압하는 것처럼 보여"

희망 버스에는 전국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탑승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 대학생, 환경 단체 회원,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민주당 장하나 의원,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등이었다.

이들이 참가한 이유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고령의 노인들이 정부 정책에 희생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그 '정책'이,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작은 마을에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짓는 정책이라면 더더욱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송전탑 반대를 외쳤다. 근본적으로 핵발전소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과 함께 희망 버스에 참가한 서울 시민 이명희(60) 씨는 "있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없는 지역 주민을 탄압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작은 자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고 편의만을 위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불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권력이 아무 때나 사용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울시 중랑구 주민 정경희(여·43) 씨는 9살, 6살인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그는 "서울에서 전기를 쓰면서 한 번도 전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더라. 밀양 사태를 보면서, 아이 얼굴을 봐서라도 이런 방식으로 전기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밀양은 국가가 국민을 배반한 사례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1월 30일 오후 6시께, 상동면 도곡 마을 앞에 희망 버스 참가자들이 모였다. 여수 마을 주민을 포함한 밀양 주민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제 강점기 겪은 노인의 울분…"일제 놋그릇 공출보다 억울"

여수 마을 주민은 생전 처음 보는 이 참가자들을 온몸으로 환영했다.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나서 국가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뀐 밀양 노인들이다. 이들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외지인'인 기자에게 술술 말했다.

마을 노인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묵(남·75) 씨는 "정말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한국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모두 지나온 이 씨다.

그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일본놈 앞잡이였던 군청 직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놋그릇을 다 가져갔다. 그놈들이 집안 어른들의 멱살을 잡아서 아주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러나 그때도 이 정도로 억울하진 않았다. 여든 가까이 살면서 별 고통을 다 겪었지만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이장 박상용(남·61) 씨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123·124번 철탑이 들어선다. 새누리당 당원까지 할 정도로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였던 그다. 그러나 송전탑 주민을 '지역 이기주의', '외부 세력에 세뇌됐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2년 전쯤 당원도 탈퇴해버렸다.

그는 "만약에 싸우다가 져도 손들고 나와 버리지, 한국전력이 주는 합의금은 필요 없다"며 "돈 받으면 다시 우리 같은 사람이 생겼을 때 항의도 못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어차피 받아봤자 껌 값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보상으로 가구당 4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평생 지지해온 당까지 버릴 정도로 국가와 정부에 실망한 그에게, 희망 버스는 큰 힘이 된다. 그는 "'절망 버스'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지고 울분이 터진다"며 "희망 버스 타고 자주 와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96번(동화전 마을), 110번(도곡 마을), 122번(여수 마을) 등 공사 현장 3곳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고 현장 입구에서 참가자들과 경찰이 어깨를 부딪치는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7시에 열리는 밀양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6시께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손을 흔들며 몇 번이고 '또 오세요'라고 소리쳤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몇몇 언론이 '갈등 버스'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밀양 희망 버스의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밀양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은 근 10년간 765킬로볼트 송전탑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765킬로볼트(76만5000볼트) 송전탑은 높이가 140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송전탑이다. 초고압이자 초대형인 셈이다.


 


정부는 신고리 3·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경상남도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 영남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송전탑 161개의 건설이 결정됐다. 이 중 69개가 밀양시에 집중돼 있어 송전탑 사업자인 한국전력과 주민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계속됐다. 급기야 지난해 1월, 故 이치우(당시 74세) 씨가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했다.


 


현재 신고리 3·4호기에서 불량 부품이 발견되면서 완공이 기약 없이 늦어진 상태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의 명분이 없어졌으니 정부와 반대 주민이 일단 대화로 타협점을 모색해보자고 주장해왔다. 또 지중화(송전 선로를 땅에 묻는 방식)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지중화는 시간, 비용상의 문제로 불가능하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