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가 미국이 제1도련선(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선)에서 물러나 제2도련선(일본 오가사와라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잇는 가상의 경계선)으로 후퇴해야하며, 이를 위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대만에 대해선 불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나.
“미국의 현실적인 군사력 투사 능력(군사력을 멀리 보내는 능력)을 냉정하게 반영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비용을 늘리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따져 보면, 미국이 지금처럼 군사력을 투사할 수는 없다. 제1도련선은 이미 방어 불능이고, 제2도련선도 방어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드론과 무인 능력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중국이고, 그런 중국과 미국의 싸움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전술핵을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려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현재 군수 능력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나마 미국이 유리한 것은 아직 핵 전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군사 전략의 변화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미국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면 제2도련선 밖으로 물러나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로 이런 전략을 실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다만 한국은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에는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도 외교안보 라인에서 고립주의, 우선주의, 전통적 동맹 유지 등 여러 세력들이 경합하고 있다.
“백악관에는 적어도 다섯 갈래 세력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 같은 고립주의 그룹이다. 둘째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차관처럼 미국의 힘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중국 대응에 집중하자는 그룹이다. 셋째는 외곽의 정치적 포퓰리스트들, 넷째는 재무부 장관 같은 경제적 이익 중심 인사들이다. 다섯째는 트럼프 자신인데,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 중심으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큰 그림은 갖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정 안 되면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중심으로 갈 수 있지만, 거대한 미국이 그렇게 빠르게 (세계 질서에서) 후퇴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부수는 동맹으로부터 자금과 산업 능력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 미국 사회를 빠르게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활용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을 벌고, 미중 관계를 관리하고, 동맹들을 최대한 압박해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국에도 호르무즈 파병 요구를 포함해 더 많은 압박을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예측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동맹들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면서 캐나다 총리 등을 중심으로 중견국 연대 구상이 나온다. 한국에 의미 있는 길이 될까
“우리에겐 여전히 한미동맹이 근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동맹에 의존하고 몰입하는 구조는 벗어나야 한다. 국력 요소를 자강의 역량, 동맹, 국제 연대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이젠 자강을 중심에 두고 동맹과 국제 연대의 결합을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연대의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다. 그 비중은 때로는 0이 될 수도, 30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을 혼돈의 시기라고 하는 이유는 조건과 과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미중 관계도 예측하기 어렵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연대는 결국 필요하다.”
—중국이 올해 ‘한반도 질서 관리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한중은 서로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 서로의 체질 차이를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두 나라는 지금도 갈등할 여지가 많고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솔직하게 서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럼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하나는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불안정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주변 강대국과는 절대 적대적 관계로 돌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지정학적 무게다. 적어도 그런 원칙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중국과 필요하다. 중국과는 협력해 북한 도발 같은 문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동북아의 불안을 확대하는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함께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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