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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내국인 역차별' 발언은 위험한 구상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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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11.02 07:00

  • 수정 2026.11.02 07:21

  • 댓글 1

인권보다 '쓸모' 앞세운 '선량한 차별주의' 모순

나흘 연속 이어진 이주민 겨냥 발언의 문제점

논란 본질은 소통 방식 아닌 메시지의 지향점

청년·중도층 불만과 요구 흡수, 중원 확장 전략

자칫 이주노동자 혐오와 배타주의 이어질 우려

성장 우선의 실패와 돌봄 부족이 낳은 희생양

정교한 담론 통제와 재분배 통한 연대 재구성

이재명 대통령이 나흘 연속으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연결되기 쉬운 문제적 주장들을 국무회의에서 하고 SNS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 일을 해도 (임금을) 전부 다 송금하니까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 "다문화가정 지원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불합리하거나 역차별을 낳는 잘못된 구체적 정책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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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공식 석상과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속해서 내놓은 이 메시지들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 및 이주민 정책을 둘러싼 담론의 지형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확인할 것은 이것이 국무회의 생중계나 SNS 활동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투명한 공개나 더 많은 소통은 좋은 것이다. 권력자나 권한을 가진 이들이 어떤 논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더 많이 공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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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진보적 단체들마저 그것이 부족하다. 또, 바로 최근에 브라질 룰라와 노동자당의 SNS 활용을 성공적 사례로 제시하던 이들이 이재명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대중과의 직접 소통 채널을 늘리고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문제는 발언이나 주장의 내용이다. 예컨대 과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비판했을 때 많은 진보적 시민들이 환영했다. 만약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암살자(들)'이나 '닥터X'를 문제 삼는 극우들을 비판하는 트윗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논란의 본질은 소통의 '수단'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 채널을 통해 전달된 정치적 메시지의 '지향점'과 '인권적 가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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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적 시민들이 환영할 발언보다 반발할 발언들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원래부터 진보좌파라기보다는 중도개혁적 정치인과 정치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민의힘이 워낙 극우적이라서 가려져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도 스스로를 '중도보수'라고 했다. 한국 정치 지형의 특수성 속에서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기는 하지만, 시장친화적인 중도의 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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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는 '해외송금하는 이주민보다 내국인을 고용해야 일자리도 늘고 경제발전에도 좋다'거나, '차별은 문제지만 역차별도 안 된다'는 주장이 그냥 '상식'으로 공유되고 있다. 선도 악도 아닌 그냥 팩트라고 여긴다. 이것은 이주민에 대한 심각한 차별에 반대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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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자신도 변호사 시절에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한 적이 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를 비판하며 바로잡은 바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지원과 역차별은 문제'라고 여길 수 있다. 전형적인 '선량한 차별주의자' 현상이다. 인권과 존엄성보다, 국가 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 되는가라는 '쓸모'가 우선하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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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프레임은 일반 대중의 일상적 의식 속에도 깊이 침투해 있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의 관련 트윗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공감과 공유를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박하는 이들도 '무엇이 경제발전에 더 도움 되는지' 따지며 그 프레임 안에 머물게 된다. 이주 노동자의 노동이 한국의 기초 산업과 3D 업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는 반박조차도, 결국 '이주민도 경제적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프레임을 강화해 주는 역설이다.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장하던 '구조적 다수' 구상과도 연결된다. 이런 '상식'적 주장을 하면서 진보개혁의 지지자들을 넘어서 중도나 보수층에게 다가가며 '구조적 다수'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플랜이다. 이것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는 '펨코'(에펨코리아)에 직접 글을 올린 적이 있고, 당선되고 나서도 여성가족부에 '남성 역차별도 조사해 보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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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원을 확장하고 안정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청년층과 중도층 내부에서 제기되는 불만이나 요구를 흡수하려는 계산이다. 그것이, 이번에는 '내국인 역차별'로 쟁점이 이동했다. '여성과 이주민을 차별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성과 내국인의 역차별도 살펴야 한다'는 논리다. '청년남성은 보수화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위선과 무능에 분노해서 반민주당화한 것'이라던 많은 지식인들의 분석은 이런 접근을 더욱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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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은 '펨코에 모인 청년남성들의 목소리도 경청하고 일부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정치적으로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첫째, 이런다고 '남성과 내국인 역차별'을 걱정하는 중도나 보수의 지지자들이 민주당 지지자로 대거 이동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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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제'를 가장 확실하고 강력하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는 보수나 극우 정치세력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미 이재명 발언 이후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우려가 없도록 다문화가족 지원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치고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보수 야당 대권 주자에게 명분과 공격의 멍석을 깔아준 꼴이다.

 

필리핀을 국빈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마닐라에서 인권변호사 시절 인연을 맺은 필리핀 노동자 아리엘 갈락 씨를 만나 자신의 자서전을 선물하고 있다. 2026.3.4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물론 일부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평등과 반차별에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고, 안 그래도 서로 간의 갈등과 다툼 속에서 내부 분열과 사기 저하가 커지고 있는 민주당 지지층은 더욱 소용돌이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잃는 게 더 많다는 말이다. 즉, 이재명 대통령이 기대한 '1(진보 지지층)+1(중도보수 지지층)=2'라는 단순한 산수는 이뤄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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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가치를 지탱하던 잠재적 지지층의 이탈과 환멸, 내부적 논란과 충돌로 인한 비용이 외연 확장의 이득을 훨씬 압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접근은 이 문제들의 구조적 뿌리를 해결하기 어렵다. 왜 '저임금 이주민들은 경제 발전에 도움 안 된다', '다문화 가족이 산후조리원 입실 우선순위인 것은 특혜다'라는 목소리가 커질까? 괜찮은 일자리나 공공복지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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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은 당장 눈에 띄는 만만한 사람들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에 '저성장으로 기회의 총량이 부족하니까 서로 갈라지고 싸우게 된다'며 이것을 지적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성장 우선' 해결책의 쓰라린 실패를 보여준다. 기회의 총량을 늘려 갈등을 해소하겠다던 구상은, 성장의 과실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구조적 모순 앞에서 무력해졌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반도체 초호황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과 수출실적은 국제적,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성과 뒤에서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사람들의 불만은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희생양을 찾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의 고성장이 서민들의 일상적 삶의 질 향상이나 사회적 복지 인프라의 확충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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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공공 산후조리원의 비중이 6%에 불과하다. 반면에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들을 중심으로 2020년 이후에 산후조리원 이용 요금은 40%나 폭등했다. 공공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은데, 기회는 부족하니까 전체 이용자 중에서 고작 5%도 안 되는 다문화 가족 산모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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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 돌봄 인프라의 부족이 엉뚱한 곳에서 피해자를 낳고 있는데,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발언들은 이런 분위기에 올라타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즉, '저성장을 극복하면 기회의 총량도 늘어날 것'이라던 기대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대다수에게 여전한 삶의 고통, 역대급 초호황과 고성장의 성과가 소수에게 독점되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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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이주노동자는 경제발전에 도움 되지만 크게 도움은 안 된다, 다문화 가족에게 지원을 넘어 특혜가 있는지 검토하자'라는 목소리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 자리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족의 특혜를 빼앗고 쫓아내자'라는 목소리가 차지할 수 있다. 작은 균열을 넘어서 노골적인 배타주의와 혐오의 홍수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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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더니, 내국인 역차별을 바로잡자는 취지만큼은 옳다"라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큰 구멍부터 막자"라며 '외국인 실업급여, 외국인 건강보험 무임승차, 중국인 부동산 싹쓸이 등을 모두 바로잡고, 외국인에게는 최저임금도 구분 적용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기회를 더 공격적이고 강경한 이주민 배척 정책으로 이어가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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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과 연대해서 차별 해소와 지원을 요구하던 목소리는 더욱 위축되고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이것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중도개혁 세력의 어정쩡한 타협적 태도와 개혁의 실패가 극우 보수 세력에게 집권의 길을 열어준 과정이었다. 최근에 브라질이 그런 길로 넘어갈 뻔했고, 프랑스에서는 그런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이 2025년 8월 8일 전북 완주군의 외국인 고용 농가를 방문해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대화하고 있다. 2026.07.30. 고용노동부 제공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며 오류에서 배워 다시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정책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일 이유는 없었다. 홍성수 교수는 "평등증진정책을 재조정하거나 일몰할 때는, 그것이 결코 '혐오선동 세력의 승리'나 '특혜 환수'로 여겨지지 않도록 메시지와 담론을 정교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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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그럴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더 진보적 대안 세력이 등장해서 중도개혁 세력을 대체하며, 더 큰 힘을 모아 극우 정치의 득세와 부활을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엄청난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를 재분배하자는 진보진영의 목소리나 사회운동의 공동 투쟁조차 너무 희미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니 걱정만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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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작게나마 그런 주장을 하다가 보수 언론의 집중적 공격을 받고 움츠러들었고, 노동운동에서는 삼성전자 같은 대형 노조들만 자기 몫을 챙기는 형태가 나타나는 중이다. 초과이윤과 초과세수가 역대급이라는 지금, 인간의 존재 가치를 '경제적 쓸모'로 환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손가락질이 더 거세지는 현상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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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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