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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원들의 진짜 세계…전직 군경 출신 '1순위'

[추적] 이력서 받고 '라인' 등록…"애국심으로 일한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1 09:13:04 

 

 

 

 

 

 

 

 

 

 

국가정보원 조력자, 협력자, 혹은 정보원(통칭 정보원). '그들'을 부르는 말은 많다. '익명' 자체가 그들의 이름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주위에 숨기고 일을 해야 한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그림자처럼 서 있다. 때로는 극도로 위험한 일까지도,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분 하에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신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기관이 그들의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길 바란다. 
 
유우성 씨 간첩 증거 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정보원인 조선족 김 모 씨가 지난 5일 오후 6시 경, 서울 영등포의 한 모텔에서 칼로 목을 그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돈을 받고 국정원 김 사장(구속된 국정원 김 모 조정관)의 요구에 따라 문서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뒤,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익명의 토대 위에 건설된 '그들의 세계'와 이름들로 지어 올린 '우리의 세계'는 이처럼 전혀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김 씨의 유서에는 국정원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피로 '국정원, 국조원(국가정보원을 '국가조작원'으로 비하하는 일종의 은어)'이라는 글자를 모텔 방 벽에 적었다. 무슨 원한이 있었을까. 아들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그는 "오늘까지 떳떳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떳떳하게 살 수 없어. 이것이 내가 떠나는 이유야"라며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 2개월 봉급 300x2=600만 원, 가짜 서류제작비 1000만원. 그리고 수고비. 이 돈은 받아서 니(네)가 쓰면 안 돼. 깨끗하게 번 돈이 아니야"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 요원이 관리하는 '비밀 정보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그의 존재를 검찰에 알렸다. 증거 조작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인 와중이었다. 검찰이 국정원에 의해 지목된 김 씨를 소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쉽게 말해 국정원은 검찰에 김 씨를 넘긴 셈이다. 신뢰도가 추락한 국정원은, 다급한 나머지 비밀 정보원의 신원까지 무차별적으로 노출시켰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김 씨는 '공식적 스파이'가 됐다. 김 씨는 이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한국에서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정보기관과 연계돼 활동하는 정보원들 입장에서 이같은 소식은 달가울리가 없다. 
 
▲국가정보원 입구 ⓒ연합뉴스

▲국가정보원 입구 ⓒ연합뉴스

'국정원 요원'들은 이제 사람을 부리면서 편하게 일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씌우고 '요원'들은 발을 뺀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 기자 칼럼을 통해 "드러난 사례를 보면 목숨 건 사람은 따로 있고, 국정원은 목숨 걸 사람을 돈 주고 고용했을 뿐"이라며 "국정원은 서로를 '전무', '사장'이라고 부르며 편하고 안전한 직장이 될수록 국가와 국민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 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은 정보 또는 그러한 정보 수집 방법)'가 붕괴됐다는 여권 인사의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정권 교체로 인한 국정원 내부 정치에 따른 원인이 컸다고 한다. 정보기관이 '정치'에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정보 수집 활동보다 '한탕주의'에 매몰된 측면도 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정보기관이 그들 본연의 역할 중에서 '간첩 사건 수사'와 같은 정치적 '이벤트'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프레시안>은 한 정보기관에 협력, 정보원으로 일을 했던 인사와 접촉할 수 있었다. 박성훈(가명, 48세) 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한다. 박 씨는 자신의 신분이나 이름이 연상되는 어떠한 내용을 쓰지 말아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를 통해 '정보원 세계'의 실태를 살펴봤다. 그는 기관에 '등록'이 돼 있는 정보원이다. 
 
"이력서 받고 'OOO라인'으로 등록…전직 군경 출신들이 '1순위'"
 
한국은 분단 국가다. 분쟁의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상태다. 서로 총포를 겨누고 있기 때문에 상대 진영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자연스럽게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주목을 받는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한국과 가깝지만 정치적으로 북한과 가깝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남북을 포함 전 세계 정보 기관 요원들과 그 조력자, 협력자, 정보원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박 씨에 따르면 중국에는 주로 국정원과 국군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활동한다. 정보사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첩보 부대다. 일반에겐 과거 북파공작원(HID) 양성소였던 부대로 알려져 있다. 사견을 전제로 그는 "수백명" 정도의 정보 기관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정원과 정보사는 경쟁 관계이지만 서로의 '나와바리(영역을 뜻하는 일본어로, 정보 요원이나 조직폭력단 등의 사이에서 은어로 사용된다.)'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즉 A 씨가 B 요원의 라인으로 '등록'되면 C 요원은 A 씨를 활용할 수 없다. 요원 1인이 다수의 정보원을 거느리고, 그 요원이 거느리는 정보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라인별 점조직' 형태다. 
 
"제 담당자가 한 사람으로 지정이 돼 있다. 그 사람 라인으로 돼 있어서 그 사람(요원)하고만 연락이 된다. 기관 간에 미묘한 라인 싸움이 있다. 만약에 정보사에 등록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우연한 기회에 국정원 사람하고 연결이 된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이 이 사람을 자기 라인으로 등록하려고 하면 (윗선에서) 반려된다. 정보사 쪽에 등록이 돼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라인은 뺏어가지 못하게 돼 있다"
 
박 씨는 처음 정보원 역할을 수락하며 해당 정보기관에 이력서를 보냈다. 이 이력서가 기관에 등록되면 'OOO 요원 라인'으로 분류가 된다. 그래서 다른 기관 요원이 우연히 박 씨를 접촉해 자기 라인으로 등록시키면 자동 반려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는 정보기관들이 자체적 룰을 만든 후 큰 틀에서 모든 정보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정보기관은 어떤 기준으로 정보원에게 접근할까. 전직 군 장교, 전직 경찰, 전직 공무원 출신 등이 포섭 1순위라고 한다. 각 기관 요원들의 개인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할 때도 있다.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척 등의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박 씨는 "정보원 일을 수락한 사람들은 대개 애국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요원들의 요청에 동참을 하게 된다"고 했다. 정보원 포섭 대상은 한국 국적의 기업 주재원, 한국 국적의 사업가, 조선족 무역상, 탈북 브로커 등 다양하다. 
 
대략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면 요원들은 "OOO 소개로 연락 드린다"며 먼저 포섭 대상에게 접근, "윗동네(북한) 출신 인사들과 연결이 가능하느냐"는 등의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보원으로 등록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국정원 소속 요원들은 중국 현지에서도 '블랙요원' 또는 '화이트요원'으로 활동을 한다. 정보사 요원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도 활동하는지 여부에 대해 박 씨는 "관련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노코멘트' 하겠다"고만 말했다. 다만 정보사가 관리하는 정보원은 상당한 숫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편에 계속)
 
▲간첩 사건 증거 조작으로 구속된 국정원 정보원 김 모 씨는 지난 5일 검찰에

▲간첩 사건 증거 조작으로 구속된 국정원 정보원 김 모 씨는 지난 5일 검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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