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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업체 임원의 고백…“안전요? 생각하지 마세요”

등록 : 2014.06.20 20:11수정 : 2014.06.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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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11일 오후 1시30분께 경기도 광명시 광명역 부근 터널에서 부산발 케이티엑스(KTX) 열차가 선로 전환기의 오류 등으로 궤도를 이탈해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커버스토리 철피아의 레일
‘해피아’처럼 뒷북 치기 전에
우리가 미리 알아야 할 것들

세월호 침몰은 관과 민간이 결탁해 봐주기식 관리·감독을 일삼다가 결국 수백명의 목숨이 스러진 국가적 재앙이었다. 검찰은 이런 참극의 재발을 막는다며 소방·원전·철도 등 8대 관피아를 지목하고 이 가운데 철피아(철도 마피아)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한겨레>는 집중취재를 통해 철피아의 실체를 추적했다. 감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철도시설공단 퇴직 임직원 90명이 민간업체에 재취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윤후덕 의원을 통해 5년간 퇴직자 명단과 설계·감리사의 수주 현황을 파악했다. 철도업계 취재를 통해 공단 퇴직 간부 이직 현황과 설계·감리사의 수주액 간 상관관계도 파악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퇴직 간부 영입 인원수와 수주율은 정비례했다. 대기업 시공사들은 공직자윤리법을 피하려 공단 간부를 계열사에 위장취업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피아들이 장악한 선로는 부실했고 열차는 결함투성이였다. 관리·감독은 부실했고 차량 정비는 더 간소화되고 있다. 철도 정책은 어디로 질주하고 있는가.

 

글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cafe@hani.co.kr

 


 

▶ 관피아들의 서식지는 진입 장벽이 높고, 막대한 자금이 움직이는 곳입니다. 철도는 이런 점에서 관피아들이 뿌리내리기 좋은 세계입니다. 철도고·철도대학 중심의 소수 전문 인력이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를 비롯해 설계·감리·시공사에 포진했습니다. 고속철도 사업이 진행되면서 최근 10여년간 철도산업엔 돈이 흘러넘쳤습니다. 학교 선후배로 얽힌 이들은 서로 엄격한 관리·감독을 했을까요. 20여년간 철도 관련 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일한 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철도업체 임원 ㄱ씨의 고백
공단 퇴직임원 영입하자마자 수주율 17위서 3위로

 

 

세월호 침몰은 잘못된 관행과 봐주기식 관리·감독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재앙의 역사를 증명했다. 나비효과처럼 작은 부실이 쌓이고 덮여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관피아 문제가 안전의 핵심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검찰은 8대 관피아(관료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가장 먼저 ‘철피아’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해양·원전처럼 진입장벽이 높은 철도업계는 철도고·철도대학 출신의 소수 전문인력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철피아다. 2011년 2월 선로전환기 오작동 등으로 케이티엑스(KTX)가 광명역에서 탈선하는 등 대형 사고의 전조가 수차례 발생했다는 점과, 문제가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대형 참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철피아 문제는 심각하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압수수색하고 김광재 전 이사장과 간부들을 소환조사했다.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철도시설공단 간부는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철피아들은 어떻게 연결될까. 감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철도시설 안전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철도시설공단에서 퇴직한 공무원 90명이 민간업체에 재취업했다. 철도업계 관계자들은 철도시설공단 기술직 퇴직 임직원을 향한 기업들의 영입 전쟁이 치열하다고 증언한다.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하는 수백억원대의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퇴직 임원이 로비스트로 활용되는 셈이다. 이렇게 철피아들이 돌아가면서 서로의 이권을 챙겨주는 가운데 철도 안전은 멍들고 있다.

 

민간업체들은 퇴직 임직원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영입하는 것일까. 20여년간 철도업계에서 영업직으로 일해온 임원 ㄱ씨를 지난 15일 만났다. ㄱ씨는 “철도는 인맥에서 시작해 인맥으로 끝난다”고 단언했다. 민간업체가 억대 연봉을 주고 퇴직 임원을 영입하는 이유도 인맥 장사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철도시설공단 퇴직 공무원들 
4년간 90명이 민간업체 재취업 
공단 발주 공사 로비스트 활약 
철피아들 서로 이권 챙기면서 
철도 안전은 멍들어가고 있다 

주요 설계·감리사 퇴직임원의 
이직 전후 수주율을 비교했더니 
ㄷ사를 비롯해 대다수 급상승 
특히 고속철도사업부서 퇴직자 
영입회사 수주율 증가 두드러져

 

 

기술본부 퇴직관료는 재취업 거의 100%

 

-철도를 담당하는 양대 공기관은 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다. 열차 운행과 영업을 맡은 코레일에 비해 철도를 직접 건설하는 철도시설공단 임원들을 영입하려는 전쟁이 더 치열할 것 같다.

 

“그렇다. 철도시설공단 퇴직 임직원들의 대우는 직급과 부서에 따라 달라진다. 본부장급 연봉은 3억~5억, 처장급이면 3억 정도다. 관리나 기획 부서 퇴직자는 영입 전쟁이 치열하지 않다. 기술직 본부장들이 인기가 좋다. 철도 건설을 관리·감독하는 건설본부, 설계 심의를 하는 기술본부 퇴직 관료는 거의 재취업이 100%다. 철도를 실제 시공하는 대기업 건설사 기준으로 몸값이 이 정도 수준이다. 철도 설계·감리는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 하는데 이들 기업은 1억5000만~3억을 주고 퇴직 임원을 데려온다. 설계·감리사는 대기업에 비해 큰돈을 못 주는 대신 이들에게 회장, 사장, 부사장 등의 높은 직함을 준다. 물론 판공비는 별도다. 능력 있고 따끈따끈한 분일수록 퇴직한 뒤에 대형 건설사에 갔다가 약발 떨어지면 설계·감리사로 간다. 어떤 분은 퇴직 후에 바로 설계·감리사로 간다.”

 

-퇴직 임원 영입이 수주율에 절대적 영향을 주나? 영입 비용만큼 가치가 있나?

 

“물론, 당연히. 국내에서 비티엘(BTL·임대형 민간투자사업)이나 턴키사업(시공업체가 설계까지 맡는 대형사업)을 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팀 구성이다. 대기업 건설사와 중견기업인 설계·감리사가 한 팀을 이루는데 이들의 인맥이 공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당락에 영향을 준다. 3, 4년 동안 이뤄진 대형 턴키사업을 보면 퇴직 임원을 영입한 회사가 많이 수주했다.”

 

-예를 들자면?

 

“화제가 됐던 분은 3년 전 퇴직한 공단의 이○○ 본부장이다. 철도시설공단 기술본부장 등을 거친 퇴직한 분인데 ㄷ건설사의 계열사로 갔다. 공직자윤리법을 피하려고 업무 관련성 없는 대기업 계열사 임원으로 간 거다.(공직자윤리법을 보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4급 이상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부서와 관련 있는 사기업에 퇴직 후 2년간 재취업할 수 없다. 재취업을 위해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본부장을 영입한 건설사는 2012년 호남고속철도 차량기지공사를 수주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조회해보니 이 본부장은 ㄷ건설사의 계열사 가운데 주택·건설 시스템 관리회사의 영업분야 부사장으로 2011년 1월 영입됐다. 이 계열사는 수십년간 철도산업에 몸담은 이씨를 주택·건설 시스템 영업을 위해 스카우트한 것이 맞을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대기업들이 포진한 시공사보다 규모가 작은 설계·감리사는 퇴직 임직원 영입에 따라 수주율이 상승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한겨레>는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윤후덕 의원을 통해 입수한 연도별 철도 설계·감리 회사별 수주 현황과 퇴직 관료 명단을 통해 이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최근 5년간 퇴직 관료를 가장 많이 영입한 설계·감리사 5곳이 수주율 1~5위를 차지했다. 5년간 설계·감리 수주율 상위 1~5위 업체별 퇴직 관료 수를 보면, 케이알티씨(1028억원·4명), 동명기술공단종합건축사사무소(948억원·4명), 유신코퍼레이션(864억원·5명), 수성엔지니어링(562억원·4명), 동부엔지니어링(428억원·5명) 순이다. 설계·감리 수주율 상위 6~10위 업체 또한 한 곳만 빼고 퇴직 관료 1~3명을 영입했다. 수주율 상위 10위 업체 가운데 9곳이 최근 5년간 퇴직 관료 1~5명을 영입한 셈이다.

 

공단의 퇴직 임직원 영입 전후로 수주율 변화는 어땠을까. 박 의원을 통해 입수한 2007~2013년 설계·감리사 수주 현황과 과장급 이상 퇴직 명단을 분석했다. 철도시설공단이 박 의원에게 제출한 퇴직 명단 329명 가운데 재취업 여부가 드러난 직원은 두 명뿐이었다. “2년간 공단 임원만 재취업 현황을 관리하고 있다”는 게 공단 쪽 설명이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4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퇴직 후 2년간 재취업 심사를 하고 있지만 이마저 엄격하지 않았다. 최근 2년간 공직자윤리위의 재취업 심사로 취업이 제한된 대상자는 39명(심사 대상의 7%)에 그쳤다.

 

 

철도시설공단 퇴직 임직원이 건설·감리사로 재취업한 현황과 수주액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철도는 인맥으로 시작해서 인맥으로 끝난다

 

철도업계 취재를 통해 주요 설계·감리사에서 영입한 퇴직 임직원을 파악하고 이직 전후의 수주율을 비교했다. 상관관계는 명확했다. 2008년 9월 철도시설공단을 퇴직한 배아무개 기술본부장을 사장으로 영입한 ㄷ설계·감리사는 설계분야 수주율이 13위(2009년)에서 3위(2010년)로 급상승했다. 2010년 11월 퇴직한 신아무개 건설본부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한 또다른 ㄷ사는 2010년 설계분야 17위에서 이듬해 3위로, 감리분야는 20위권 밖에서 12위로 올라섰다. ㅅ설계·감리사는 2012년 1월 류아무개 시설관리처장을 부사장으로 영입하자 설계분야 9위에서 4위로 상승했다. 감리분야는 순위 20위권 밖에서 20위로 진입했다.

 

특히 고속철도사업 관련 부서에서 일했던 퇴직 임직원을 영입한 설계·감리사의 수주율 증가가 눈에 띄었다. 또다른 ㄷ설계·감리사는 2011년 10월 퇴직한 남아무개 고속철도사업단장을 사장으로 영입하자 설계분야 수주율이 2011년 17위에서 이듬해 5위로 치솟았다. 2008년 5월 퇴직한 최아무개 경부고속철도 추진점검단장을 회장으로 스카우트한 ㅇ설계·감리사는 이듬해 감리분야 수주율이 3위에서 1위로 증가했다. ㅇ설계·감리사는 퇴직 관료 영입으로 특히 유명한 업체다. 철도시설공단을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국토해양부, 서울시청, 감사원 등을 퇴직한 공무원들이 영입됐다. 4대강과 인천공항 확장 공사 등 굵직한 사업을 따낸 이 업체는 2012년 한국도로공사 장석효 사장에게 뇌물을 줬다. 장 사장은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ㅇ설계·감리사로부터 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ㄱ씨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인맥의 힘’이 실제 철도업계에서 작용한다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철도시설공단 퇴직 직원들이 허위·과장 경력 확인서를 발급받은 사실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경력 확인서를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 사업 부서는 인사 담당자의 확인도 거치지 않고 퇴직자들이 기재한 경력 확인서를 그대로 인정해 발급했다.

 

 

-현재 영입 전쟁이 치열한 퇴직 임직원은 누구인가?

 

“올해 초 퇴직한 본부장들이다. 한 사람은 ㅍ건설 계열사가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나머지는 (연봉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 또한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최근 공단에서 부장·차장급 인사가 있었다. 인사 명단을 얻어내는 것 자체가 일이다. 먼저 인사해야 한다. 명단 입수해서 아는 사람 나오면 바로 ‘형님 축하’ 카톡이나 문자를 보낸다.”

 

-철도분야를 형성하는 주요 인맥은 무엇인가?

 

“철도는 인맥으로 시작해서 인맥으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절대적이다. 철도고, 철도대학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들이 주류이고, 비철도고 또는 비철도대가 비주류다. 철도시설공단 또는 코레일 출신이냐 아니냐로도 나뉜다. 현재 철도 관련 기업의 임원 대다수가 철도고, 철도대 출신이다. 우리 회사도 공단 출신 임원을 영입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철도 마피아라는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아나. 1990년대 후반이다. 철도시설공단 출신 퇴직 간부, 현직 철도시설공단 임원, 설계사, 시공사, 철도용품사. 이 다섯 멤버들이 얽히고설킨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안전성 등의 문제로 철피아를 공격해도 소용없다. 철도시설공단에서는 안전성 문제로 공격을 받으면 방어를 하다가 심의를 받자고 나온다. 그래서 자문위원들이 심의를 해도 공단과 가까운 사람들이 무슨 객관적인 심의를 하겠나. 철도산업은 이렇게 흘러왔다.”

 

-철도 영업에서 술이나 상납이 중요한가?

 

“글쎄, 상납이야 지하세계로 가는 문제이니 알 수 없다. 그것보다 “형님, 나 이번에 잘 좀 봐줘” 이렇게 전화통화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본부장님” 이런 말보다 바로 “형님” “아우” 하면 당연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철도고, 철도대학 출신은 바로 형님, 동생이 가능한 관계다. 그들 간의 관계도 무척 끈끈하다.”

 

-철도시설공단 간부들의 경조사도 남다르다던데?

 

“그렇다. 건설업체 임원보다 공단 처장급 상갓집이 북적거린다. 가서 얼굴도장 찍든지 봉투라도 놓고 와야 이놈이 어려울 때 날 도와줬으니까 다음에 한번 커피라도 마시자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지금도 철도고·철도대 출신 임직원 부고 뜨면 나한테도 메시지가 온다. 철도 영업으로 20년 종사하다 보니 이런 메시지 보내주는 조력자들이 있다. 그 메시지 받으면 거의 다 간다. 결혼식장이 부산이라 해도 간다.”

 

 

철도시설공단 출신 퇴직 간부, 
현직 철도시설공단 임원, 
설계사, 시공사, 철도 용품사 
이 다섯 멤버들 얽히고설켰다 
무슨 객관적 심의를 하겠나 

지난해 철도예산만 6조8491억원 
고속철도로 호황 맞은 철도사업 
감사원 지적사항 실천은 불철저 
부실제품 또다시 납품하기 일쑤 
부적절한 설계변경도 통과, 통과

 

 

입찰 심의도 믿기 힘든 철저한 먹이사슬

 

고속철도 사업이 진행되면서 철도산업은 최근 10여년간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렸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철도 예산만 6조8491억원에 이른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철도분야는 2003년부터 20여회의 감사를 받았다. 특히 철도시설의 유지보수 및 운용을 맡은 코레일보다 실제 철도시설을 건설·관리하는 철도시설공단의 부적절한 입찰 등이 고강도 감사를 받았다.

 

감사원은 지난 4월 약 140쪽 분량의 ‘철도시설 안전 및 경영관리 실태 보고서’를 내고 27개 항목에 대해 주의·시정을 통보했다. 민간업체를 관리·감독해야 할 철도시설공단이 부실 제품으로 판명난 제품을 또다시 납품받거나 건설사의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추정되는 판단을 내렸다.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2010년 부설된 동대구~신경주 일부 레일에서 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파상마모(레일 노후화에 따라 균등하게 마모되는 현상이 아닌, 불균등하게 닳는 현상으로 레일이 처지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가 발생했지만 철도시설공단은 2년 뒤 해당 제품을 원주~강릉 일부 구간에서 또다시 사용하도록 했다. 2011년 광명역 케이티엑스 탈선 사고를 계기로 선정된 117대 안전과제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철도시설공단은 117대 과제로 선정된 지진감시시스템조차 특별한 사유 없이 설치를 연기하고 국토교통부에 과제가 이행된 것으로 보고해 주의 조치를 받았다. 수도권 고속철도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터널 두께를 애초 950㎜에서 350㎜로 바꾸는 설계 변경안을 공단에 제출했으나 별다른 제지 없이 통과됐다. 감사원은 “수도권 고속철도 개착 터널은 구조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설계 변경 승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퇴직 관료를 영입해도 입찰 제안서 평가는 정량적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입찰 과정에서도 주관적인 부분도 영향을 미친다. 1000만원 이상 공사는 입찰 지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격 심사를 한다. 기업에 대한 심사다. 이 심사를 통과하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는데 기술과 입찰 금액을 동시에 평가받는다. 적격 심사든 기술 심사든 정성적 요소를 포함하는 평가다. 설계사와 시공사가 팀을 이루는 턴키사업에서 기술 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면 대기업 건설사인 시공사보다 때로 설계사 인맥이 중요하다. 철도분야는 먹이사슬 구조라고 보면 된다. 입찰을 심의하는 사람은 대학교수인데 이들도 공정할지 의문이 든다. 웃기는 건 이 교수들도 나중에 공단과 국토교통부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라는 거다. 교수들도 공단이나 국토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프로젝트를 딴 후에 심사를 받는다. 이들이 과연 공단의 입장과 떨어져 객관적인 심사를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내가 너를 평가해도, 내일은 네가 나를 평가하는 게 철도업계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운협회 등에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 등이 임원으로 재취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철도는 어떤가?

 

“기능을 제대로 하는 협회는 없다고 본다. 직설화법으로 말하자면 한국철도협회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업체들이 만든 곳이다. 한국철도학회는 사실상 비즈니스의 장이다. 철도학회 교수님들에게 얼굴도장 찍어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교수님들이 입찰 심의위원이다. 여기저기 다 얽혀 있는 집단이 철도다.”

 

 

현재 한국철도협회의 회장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다. 임원사는 대우건설,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로템, 대림산업, 두산건설, 포스코건설, 코오롱글로벌 등의 대기업 건설사와 설계사, 그리고 고강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궤도업체 삼표이앤씨 등이다. 2011년부터 지난 1월 철도시설공단을 이끈 김광재 전 이사장은 한국철도협회로부터 매달 수백만원의 판공비를 받았다. 철도시설공단 윤정일 노조위원장은 “일상적으로 민간업체와 계약을 하는 공단이 업체로부터 판공비를 받아 쓰는 것은 윤리경영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재임 시절 공개석상에서 “철피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공기업 개혁과 비용 절감을 주장했다. 검찰은 김 전 이사장이 금품을 받고 특정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았는지 집중 수사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항공정책 실장 출신의 김 전 이사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철도 부본선을 없애려고 밀어붙이다 국토교통부의 제지로 중단하기도 했다. 철도 부본선은 사고 발생 시 차량이 대피할 수 있는 선로다. 공기업 혁신을 주장하던 그는 오히려 재임 시절 인사 규정과 절차를 벗어난 승진 인사를 벌였다. 김 전 이사장의 고향 후배가 승진 절차상 두 단계를 건너뛰고 공단의 중요 자리인 케이아르(KR)연구원장 직무대리로 지정돼 감사원이 주의 조치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철도시설공단의 처장 이상급 임원 60명 가운데 영남권 인사가 40%인 24명을 차지했다. 김 전 이사장은 대구·경북 출신이다.

 

 

철도고등학교와 철도대학 토목과 졸업생들의 총동창회 수첩. 철도 민간업체 영업직 직원들은 이 수첩을 인맥 관리에 사용한다. 박유리 기자
10만원 주고 입수한 동창회 수첩

 

-철도 영업인들은 철도고, 철도대학 동창회 주소록을 갖고 있더라. 마치 법조인들 연수원 기수처럼 정리돼 있는 수첩 말이다.

 

“(가방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 책이다. 10만원을 주고 입수했다. 어떤 공사에 참여하려고 하면 철도시설공단 조직도를 먼저 본다. 만약 그 조직도에서 권아무개씨가 핵심 공무원이라고 치자. 그럼 이 책에서 권씨가 철도대학 또는 철도고등학교 몇 기인지 확인한다. 내가 권씨와 직접적인 친분이 없으면 권씨와 같은 기수 중에 아는 사람이 있나 찾아본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에게 찾아가 권씨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거다.”

 

‘국립철도학교 토목과 총동창회’라고 적힌 동창회 수첩 앞쪽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들이 광고를 냈다. 철도고·철도대학 토목학과 졸업생들의 총동창회다. ㄱ씨는 철도고나 철도대학을 나오지 않은 자신을 “비주류”라고 했다. 그는 “우리 철도인끼리 술자리에서 잘못됐다고 손가락질하는 걸 외부에 말하고 싶지 않다”며 수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는 철도 안전을 위해 고심 끝에 인터뷰에 나섰다고 했다.

 

2011년 2월 케이티엑스 광명역 탈선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대구역에서 케이티엑스와 무궁화 열차가 3중 충돌했다. 지난 3월15일~4월15일 한달간 화물열차 사고만 12차례 발생했다. 철도차량 고장은 2010년 119건, 2011년 134건, 2012년 112건으로 매년 100건을 넘는다.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으로 여겨지는 철도는 정말 안전한 것일까. 그는 이런 말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철도 안전요? 생각하지 마세요. 그걸 목적으로 철도산업이 수십년간 발전한 게 아닙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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