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원하씨는 <한겨레>와 여섯차례 서신을 교환하며 증거조작의 전말을 밝혔다. 그의 글씨체는 정갈했다. 그는 중국의 조선족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1992년 사직한 뒤 한국을 오가며 사업가로 살아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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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의 고백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재판이 6월17일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진짜 책임자가 기소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증거 위조를 몰랐다’고 발뺌합니다.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증거조작을 실행한 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씨만 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김원하씨가 오랜 고심 끝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증거조작 전말을 털어놓았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은 믿기 어려운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실체가 벗겨진 국가 정보기관의 민낯은 참담했다.
지난 2월14일 중국 정부가 증거 위조를 공식 확인하자 검찰은 진상조사에 나섰고 위조 실행자 김원하(62·조선족)씨와 김씨에게 업무를 지시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김보현(48) 기획과장(4급) 등 국정원 직원 4명을 기소했다. 범죄자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고 피해자인 유우성(34)씨는 4월25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5월22일 사표를 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은 잊혀져도 괜찮을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 감춰진 진실의 퍼즐을 풀 유력한 단서는 증거조작 실행자 김원하씨의 증언이다. 김씨는 김보현 과장과 십수년간 친분을 유지하며 김 과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왔던 장본인이다. 지난 3월 자살을 기도하면서 위조 사실을 시인하는 유서를 남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위조를 지시했던 국정원 직원들과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증거조작은 김씨 혼자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김씨와 수차례 서신을 교환했다. 재판이 비공개될 가능성이 커 진실이 묻힐 것을 염려했다. 김씨를 통해 더 밝혀내야 할 것이 많았다. 이 사건 재판은 현재 김원하씨 심문만 공개되고 다른 국정원 직원들의 심문은 비공개되고 있다.
국정원 김보현 과장과 십수년간
친분 유지하며 업무 지시 받고
허심탄회한 얘기 들어온 김원하
위험하다 말려도 위조 계속 요구
국정원도 나중엔 전과정 후회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단둥시
공안국 고위관계자에게 입수
발급기관·관인·날짜 없자
단둥의 조선족 김명석 통해
화룡시 공안국 관인 위조”
1.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의 퍼즐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범인은 검찰 진상조사팀이 끝내 찾아내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유씨 출입경기록 내용이 왜 ‘출입입입’에서 ‘출입출입’으로 바뀌어 재판부에 제출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위조 서류는 총 세가지(유우성 북-중 출입경 기록, 중국 화룡시 공안국 회신서, 삼합변방검사참의 확인서)였다.
유우성씨는 2006년 5월23일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지린성 연변자치주 삼합변방검사참(국경관리소)을 통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출),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입) 하지만 중국 출입경기록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출입경기록 원본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오고(입), 2006년 6월10일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온(입) 기록이 붙어 있다.(출-입-입-입)
반면 위조된 출입경기록은 유우성씨가 2006년 5월23일 북으로 들어갔다가(출), 27일 중국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입-출), 유우성씨가 보위부 남파 요원이 된 뒤 6월10일 중국으로 나왔다고(입) 되어 있다.(출-입-출-입)
유씨를 수사한 검찰 수사팀(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은 여전히 ‘출입경기록을 비외교적인 방식으로 입수한 것일 뿐 기록의 내용을 변조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유씨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증거조작 사건’인지 ‘간첩조작 사건’인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증거조작으로 기소된 이들의 혐의가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가 아닌 ‘형법상 모해증거 위조’인 것도 이런 탓이 크다.
유우성 사건 담당 검사들이 문서 위조 과정에서 국정원과 어느 정도까지 모의를 했는지도 더 밝혀져야 한다. 검찰 진상조사팀은 이문성·이시원 검사에 대해 직무태만 정도의 책임을 물었을 뿐이다. 두 검사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도 살피지 않았고,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수차례 연락한 국정원의 또다른 정보원을 조사하지도 않은 결과였다. (<한겨레> 5월3일치 17면 참조)
이외에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유우성씨 동생 유가려(27)씨의 진술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와 관련한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지닌 채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김원하씨는 더이상 숨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어느 정도까지 국정원의 업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불투명하다. 구치소에 갇혀 있는 탓에 그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간의 전말을 밝히겠다고 나선 국정원 관계자는 김씨가 유일하다. 그의 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씨의 증언을 단서로 삼아 더 정확한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10일부터 여섯차례의 서신 교환과 17일 한차례의 구치소 면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두서없이 적힌 편지 내용이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질의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원문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힌다.
김원하씨는 3월6일 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허망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3월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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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경기록의 위조 전말에 대해서는 검찰이 밝혀내지 못했다. 위조 과정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달라.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단둥시 공안국에서 입수한 내용이다. 당시 단둥시 공안국 고위 관계자를 통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조회하였는데 그는 정식 발급은 불가능하다며 발급 기관, 관인, 날짜 등이 없는 출입경기록만 출력해 참조하라고 제시했다고 들었다. 이 출입경기록을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하려 해도 (공안국) 관인이 없어 공문서의 가치가 없었다. 이 때문에 공판검사(유우성 수사검사)가 관인을 받아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 국정원은 내부 회의를 통해 김보현 과장이 중국으로 가 관인을 받아오게 하였다. 김 과장은 단둥시에 거주하는 조선족 김명석을 통해 관인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김원하씨는 관련 이야기를 대부분 김보현 과장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신뢰할 만한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 단둥시 공안국 ○○ 국장이 출입경기록 위조에 연루됐다는 확인을 받았다.
-유우성이 북한을 오갔을 때 이용했던 삼합변방검사참은 용정시 관할이지 화룡시 관할이 아니다. 국정원이 왜 화룡시 공안국의 관인을 받아오게 한 것일까?
“실수한 것이다. 국정원에서 중국 지도를 보고 삼합검사참이 화룡시 관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삼합검사참은 용정시 관할이 맞다. 중국에서 일 처리를 한 김씨는 국정원의 지시대로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과 관인을 위조해 유우성 기록을 만들었는데 화룡시 공안국에는 출입경관리대대가 있지 출입경관리과가 없다. 김씨는 화룡시 공안국 안을 들어가보지도 않고 관인을 위조했다.”
-출입경기록의 내용이 ‘출입입입’에서 ‘출입출입’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은 기록의 오류가 수정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국정원이 김명석에게 화룡시 공안국의 관인을 받아오라고 지시했을 때 ‘출입입입’이 ‘출입출입’으로 조작된 것이다. 김보현 과장은 김명석을 통해 ‘출입출입’으로 조작되고 ‘화룡시 공안국출입경관리과’ 관인이 날인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받아왔다. 국정원에서 조작을 한 뒤 김씨에게 출입경기록을 보낸 것인지, 김씨가 조작을 해서 국정원에 제출한 것인지 모르지만 조작을 지시한 것은 국정원이 맞다. 기소된 4명의 국정원 직원은 모두 ‘서류를 정식 절차를 받지 않고 입수한 건 맞지만 관인이 위조되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소로울 뿐이다.”
위조 여부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이달 초 ‘피의자 김아무개씨는 국정원 김보현 과장의 진술에 의해 인적사항은 특정되나 소재 불명이라 기소 중지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이름은 ‘찐밍시’라고 전해졌다. 김명석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보현 과장은 ‘출입경기록이 가짜인 것을 몰랐고 김명석에게 속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씨는 국정원의 부탁으로 단순 심부름 역할을 맡은 것에 불과하기에 그 스스로 ‘출입입입’을 ‘출입출입’으로 바뀐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올 이유가 없다. 내용을 변조하라는 국정원의 주문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 확인서’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 역시 김명석(찐밍시)이 한 것이다. 국정원은 김씨에게 ‘화룡시 공안국에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음’이라고 적힌 내용으로 회신공문을 위조하게 했고 그것을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에 보냈다. 선양 영사관 이인철 영사(실제로는 국정원 파견 직원)는 허위로 영사 인증 서류를 만들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확신했나, 아니면 간첩으로 조작하려 한 것인가?
“국정원은 간첩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나도 국정원 설명을 믿었다. 다만 위조 서류를 의뢰할 때는 내게 (김보현 과장이) ‘검찰과 국정원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답변서(화룡시 공안국 위조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신이 국정원으로부터 문서 위조 의뢰를 받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3년 9월 국정원은 나에게 유우성 출입경기록 입수를 의뢰했다. 나는 입수가 불가능하다고 명확히 알려주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출입경기록 입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책회의를 열고 서류 위조를 지시했다. (내가 못하겠다고 하자) 출입경기록 위조를 다른 조선족 김명석에게 부탁한 것 같다.”
김원하씨는 7월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에서 진행된 증거조작 재판에 출석해 국정원과 어떻게 처음 접촉하게 된 것인지 진술한 바 있다. 재판정에서 한 진술과 <한겨레>와 인터뷰한 내용을 묶어 재구성해 옮긴다.
“지난해 나는 한국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해 9월 김보현 과장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입수할 수 있는지 부탁을 하길래 추석 휴가(9월18~20일) 때 중국으로 들어가 알아봤다. 하지만 구할 수 없는 서류인 것을 알고 김 과장에게 안 되겠다고 말했다. 10월에는 김 과장이 화룡시 공안국 관인 도장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12월7일 분당 서현역으로 나를 다시 찾아와 유우성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유우성이 누군지 잘 몰랐다. 김 과장은 그날 유우성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날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재판도 ‘다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우성 쪽 서류를 한번 더 반박할 서류를 만들자고 김 과장은 제안했다.”
유우성 변호인단은 이 당시 삼합검사참으로부터 ‘유우성 출입경기록에 찍힌 2006년 출입입입 기록은 전산 오류로 발생한 것으로 유우성은 2006년 5월27일 이후 북으로 다시 들어간 적 없다’는 취지의 설명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한 반박 서류를 김원하씨에게 부탁한 것이다.
“내가 다른 지역 변방검사참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까 변방검사참은 군의 통제하에 있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고 유우성 변호인단이 제출한 그런 서류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12월8일 김보현 과장에게 알려주니까 김 과장은 (유우성이 받아온) ‘삼합변방검사참 설명서를 반박하는 서류를 받아올 수 없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서류를 제3자가 발급받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돈을 쓰더라도 서류를 꼭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물러서면 화룡시 공안국 발급 유우성 출입경기록 위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다면 가짜로 서류를 만들어오라는 건데 유우성 쪽에서 또 중국에 가서 떠들 텐데’라고 우려하자 김 과장은 ‘그건 걱정 말라. 이번이 (선고 공판을 앞두고) 증거 제출 마지막이어서 (유우성 쪽이) 더 떠들고 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내가 다시 ‘재심(상고심)이 있는 것 아니냐’ 하고 물었더니 김 과장은 ‘재심은 공개재판을 여는 것이 아니고 판사가 서류만 검토한다’며 안심시켰다.
김 과장은 ‘가짜 서류도 괜찮지만 육안으로 볼 때 차이가 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어 우려되는 여러 문제를 논의했다. 중국에서는 (서류 위조가) 범죄인데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국 재판부가 중국에 확인할 우려는 없는지 등 많은 문제를 이야기했다. 김 과장은 문제될 게 없다고만 했다.”
결국, 김원하씨는 이틀 뒤 중국으로 갔다. 12월13일 김 과장이 적어준 내용대로 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유우성 출입경기록 관련 확인서인 ‘일사적답복’을 위조했다고 한다. ‘삼합변방검사참에서는 유우성 출입경기록 관련 확인서를 발급한 적 없고, 2006년 당시의 출입입입 기록은 오류로서 출입출입이 정확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김 과장은 유우성이 소유한 단수비자로도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들 수 있다는 설명이 들어가도록 위조를 지시했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라 김씨는 서류에 그러한 내용은 담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국정원은 김씨에게 통장으로 위조와 체류 비용으로 약 850만원을 보냈다.
2013년 12월 중순께 김 과장은 김씨에게 한국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루 10만원씩 한달 300만원씩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김 과장은 ‘긴박하니까 도와달라’며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2014년 1월20일께 김보현 과장은 이번에는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위조해서 가짜 공증을 받아오라고 김씨에게 부탁한다.
“위조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닌데 어떻게든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김 과장 지시에 따라 ‘유우성이 2회 북한 출입한 사실을 확인한다’라고 주석을 적은 유우성 출입경기록 초안을 작성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김 과장에게 보내어 계속 논의했다.”
하지만 이 출입경기록 위조는 성공하지 못했다. 공증을 받으려 해도 공증처에서는 신청인란에 유우성씨 등의 이름이 적혀야만 공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우성 신분증을 위조해 공증처에 제출해서 공증을 받는다 해도, 이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유우성 변호인의 웃음거리만 될 것이 분명했다.
“2월 초 김 과장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유우성이 아닌) 연변자치주 공안국이 공증을 신청한 것처럼 공증서를 위조하자고 새로 제안을 했다. 나는 너무 위험하다며 안 된다고 했지만 김 과장은 마지막 재판이라면서 거듭 부탁했다.”
그런데 애초 국정원이 갖고 있던 출입경기록에서 오타가 발견됐다. 유우성 쪽이 발급받아 재판부에 낸 정식 출입경기록과 비교해서 이를 발견했다고 김보현 과장으로부터 들었다고 김씨는 증언했다. 출입경기록은 새로 위조됐다.
검찰은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2013년 11월1일과 12월5일 두번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이 두 기록에서 화룡시 공안국 도장이 찍힌 위치가 미세하게 달라 <한겨레>는 2013년 12월22일 심층 보도로 위조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김씨의 이번 증언대로라면, 국정원이 필요에 따라 여러장의 출입경기록을 수시로 위조해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4년 2월14일 김씨는 길림성 외사판공실을 발신인으로 하여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으로 위조된 출입경기록 공증 서류를 보내려 하였다. 그때 김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 정부가 한국 재판부에 위조 사실을 통보했다는 소식이 김씨에게 전해졌다. 모든 위조 작업은 중단됐다. 위조비용으로 1000만원가량이 이미 들었지만 국정원은 김씨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조사 대비해 상의할 때
국정원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 들어 국정원을 믿었다
진술 내용도 그들이 정해줬다
하지만 검찰조사를 받아보니…”
“위조과정을 총지휘한 것은
검찰이라고 주장한다
비공식 출입경기록에 대해
발급사실 확인서 받아오라는 건
문서조작하라는 말과 진배없어”
지난해 12월6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는 유우성씨. 1심에 이어 이날도 무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유씨는 최근 김원하씨가 <한겨레>에 보낸 편지를 읽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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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다오에 머물던 김씨에게 김 과장은 연락해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요청했고, 김씨는 2월23일께 귀국했다. 김 과장은 김씨에게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김씨는 유우성 수사 검사가 자신을 조사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검찰에 위조사건 진상조사팀이 꾸려진 것은 몰랐다.
-국정원과 함께 있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국정원이 마련한 호텔에 있는 동안 검찰 조사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 논의했다. 이때 김 과장은 나와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위조 서류 제작 전 과정을 후회했다. 2월27일 이인철 영사까지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한 심정을 토해냈다. 김 과장은 ‘나(김보현)를 검찰 조사에 나가라고는 못할 것이다. 다 대책회의 토론을 하고 하게 한 일이다. 나 혼자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위조 사실을 확인해줄 것은 미처 예상 못했던 것인가?
“민변이 중국 공안국에 찾아갔지만 위조라는 공식 확인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김 과장은 ‘한국 재판부의 확인 요청에도 중국 정부가 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화룡시 공안국은 검찰 제출 서류는 위조라고 설명했지만 위조 확인서 발급은 거부했었다. <한겨레> 취재진이 지난해 12월 방문했을 때도 같은 설명을 들었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공안과의 대화 장면을 녹화해 재판부에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 조사 때 당신에게 어떻게 진술하라고 지시한 것은 없었나?
“나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김 과장에게 제안도 했지만 김 과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검찰 쪽 제출 문서가 위조라고 통보했지만 어떤 식으로 위조된 건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위조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돈을 주고 받아온 것일 뿐 위조는 몰랐다고 말하라’고 했다.”
김보현 과장은 또 스캐너를 활용해 문서를 위조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화룡시 공안국 도장 문양 일부에 (위조 시 활용한 문서의) 본문 내용이 찍혀버리는 바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쉽게 위조문서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김씨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유우성 수사 검사가 아닌 증거조작 진상조사팀이 자신을 수사하고 있다는 것도 조사받고 나서야 알았다. 3월5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김씨는 이날 여의도의 한 호텔 객실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을 기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정원에 황당하게 당했다는 억울함을 죽음으로 호소하고 싶었다.”
-김보현 과장과 상의해서 당신 스스로 위조한 것 아닌가.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가?
“검찰 조사 받을 것에 대비해 국정원 직원들과 상의할 때 국정원이 다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국정원을 믿었다. 진술 내용도 그들이 다 정해줬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아보니 국정원에서 말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과장은 내가 10년이나 믿었고 국정원과 검찰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나는 진실로 믿고 도와주려 했는데 나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허망했다.”
-김보현 과장과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김보현 과장은 내가 탈북자를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00년 초 이를 확인하고자 연락을 해왔다. 국정원 내곡동 청사에서 김 과장을 만났다. 김 과장은 중국에 상당 기간 머물렀는데 중국 단둥과 선양시 등에서도 만나고 백두산 관광도 함께 했다. 김 과장과는 오랫동안 신뢰하는 관계였다.”
김원하씨 증거조작 증언에 관해
검찰은 “증거가 우선이므로
코멘트할 상황은 아니다”
국정원은 “검찰과 증거확보 위한
협의 했을 뿐 문서위조 협의 안해”
4.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 관계
<한겨레>는 위조 과정에서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김원하씨의 의견을 들었다. 김씨는 검찰이 국정원의 위조 과정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수밖에 없다며 자세한 정황을 설명했다. 김씨가 어느 정도까지 깊숙이 검찰과 국정원의 논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위조사건 실체의 실마리를 추적하기 위한 단서라고 판단해 그의 증언을 그대로 옮긴다.
“(나는) 위조사건을 총지휘한 것은 검찰이라고 주장한다. 유우성 수사 검사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정원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정식 절차가 아니라 중국 내 협조자를 통해 정보협력 차원에 의해 확보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국정원에 ‘화룡시 공안국 명의 유우성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요청했다. 비공식 출입경기록에 대해 중국 당국이 관인이 찍힌 확인서를 찍어줄 리 없다는 건 검찰도 잘 알 것이다. 검찰이 발급 사실 확인서를 국정원에 요구한 건 새로 문서를 조작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화룡시 공안국에 공식 요청할 경우 협조자 보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확인서를 정보협력 방식(서류 위조)으로 받아오기로 결정했다. 김보현 과장은 내게 ‘검찰과 국정원은 모든 과정에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열고 서류 위조를 공모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2013년 9월 국정원이 가져온 출입경기록에 관인이 없어 다시 발급받아오라고 요청했는데 10월 중순 국정원이 가져온 기록에는 발급처의 관인이 정확히 찍혀 있어 그것을 정식 발급 기록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이 이 두번째 기록을 정식 발급 기록으로 믿고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외교경로로는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검찰이 두번째 입수 기록은 정상적이었다는 국정원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씨의 주장과 검찰의 주장은 미묘한 지점에서 서로 대립한다.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이에 대해 증거조작 수사팀 관계자는 <한겨레>에 “김원하씨의 생각이 그렇다 하더라도, 수사는 증거로 하는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 모두 (위조 공모 여부를) 부인하고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검찰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인철 전 선양 영사관 영사(국정원 파견 직원)는 허위 영사 인증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영사는 ‘국정원에서 보내온 문서 내용들을 그대로 믿고 영사 인증을 한 것일 뿐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확인서의 작성은 해외에서 국가보안법 사범에 대한 증거수집의 관행이라 생각하고 국정원 수사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 전 영사에게 ‘절차상 의문이 있더라도 본부에서 숙의하여 결정한 사안이니 믿고 따르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김원하씨의 주장과 관련한 <한겨레>의 답변 요청에 “검찰 조사에 앞서 김씨에게 답변 요령을 교육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검찰이 협의한 것은 유우성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실된 증거 수집과 관련한 것이었을 뿐 문서 위조는 아니었다.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해명했다.
5. 김원하는 누구인가
김원하씨는 재중동포(조선족)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탈북자라고 한다. 김씨의 아버지 고향은 평안북도 안주, 어머니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김씨 부모는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만나 결혼했다. 해방 뒤 김씨 아버지의 고향인 안주로 돌아왔는데 1955년 김씨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세상을 뜨고 어머니 혼자 6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1965년 3월 김씨 가족들은 탈북해 중국에 정착했다. 당시에는 남한에서 탈북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에서의 삶도 힘들었다. 김씨는 망류자(떠돌이)로 분류돼 중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로 독학을 했다. 마을에서 소를 대신 키워주는 일을 하고 생계를 꾸렸다.
김씨는 가짜 호적을 만들어 조선족이 되었다. 공부를 꾸준히 해 조선족 학교의 교사로 채용됐고 1978년 연변 제1사범학원에 입학해 대학 공부도 하게 되었다. 김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를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한국 사람들은 헐벗고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고 교육받았는데 텔레비전에 비추어지는 한국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한국 기업인들의 중국 진출이 많아졌고 나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며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는 국정원의 잘못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한국인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문서 위조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왜 감행했나?
“김보현 과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김 과장은 유우성이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에 들어온 뒤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겼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섬뜩했다.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기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과 검찰이 곤란에 빠졌을 때 내가 도와주면 앞으로 나도 큰 도움을 받으리라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국정원의 요구에 따랐다. 김 과장은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나의 국적 문제(한국 귀화)가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나 구속 직후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진상을 알게 됐다. 지금 유우성씨를 생각하면 대단히 죄송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일로 대한민국에 피해를 준 것에 깊이 사죄하고 나는 죄인이 맞다고 생각한다. 판사께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판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인터뷰가 재판에 영향을 주거나 그러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론 플레이 한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다. 그저 진실을 소상히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친구 김보현 과장을 너무 믿었고 그게 애국이라고 생각한 게 내 잘못이다.”
<한겨레>는 17일 유우성씨를 만났다. 김씨와 <한겨레>가 나눈 편지 내용들을 전했다. 유씨는 “김원하씨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유씨는 “여전히 김씨가 증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가 위조를 안 하려 노력했지만 한국 국적을 받고 싶어서 국정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재판에서 선처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새누리당에 상설특검 1호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택하자고 제안했다. ‘상설특검법안’(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 6월19일 법률효력이 시작된 상태다. 국회 본회의 출석 인원 과반이 동의해야 특검 대상을 정할 수 있다.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북 휴민트’의 노출을 우려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특검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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