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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안철수’가 나아가야 하는 길

정치인 ‘안철수’가 나아가야 하는 길
(서프라이즈 /뉴요코리안 / 2012-11-30)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분배 정의를 말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극보수 세력의 프레임을 알아야 한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55-60%라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선은 참 기이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여론(?) 주도 프레임이 이를 왜곡하고 있으며 몇 안 되는 진보 언론마저도 이를 깨지 못하고 오히려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 혹은 이른바 아름다운 단일화를 목마르게 기다린 순진한 국민들이나 안철수 개인이 아닌 안철수 현상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적잖게 실망하였을 것이고 이에 따라 이 신화를 창출한 극보수 언론들의 승리의 함성 소리가 필자가 있는 미국에까지 들려오고 있다.

부족한 필자는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로서가 아닌 그 잔재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박근혜의 집권을 막아보고자 여러 글들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역사를 길게 보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안철수 현상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다시 올리고자 한다.

이는 더욱 민주화를 진행시키고 극보수 언론들이 집권욕에 가득 차서 대국민 우민화를 위한 아편 투척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고 또 깨어나는 국민이 늘어나게 하기 위함임을 밝히고자 한다.

아직도 안철수 현상의 근본을 모르고 있는 국민들...

필자가 이러한 글을 올리는 데에는 나름대로 안철수, 혹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외 거주하는 일개 국민에 불과한 필자의 판단이 대선이나 향후 한국의 정세 흐름에 무엇이 중요하랴마는 그래도 깨어나길 희망하는 국민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안철수는 이제 정치인이다. 그가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고백해서가 아니고 그는 이번 정치 입문 과정에서 더 뼈저리게 정치인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문 후보를 지원해 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법륜 스님의 조언(?)을 듣고 손학규를 만나 향후 방향을 떠볼 만큼 그는 정치인이 이제는 다 되었다.

필자는 수차례 안철수 신드롬에 대한 문제점을 글과 댓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정치인은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은 그 기반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익히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정확한 의미의 진보 정치인(국회의원)은 없다. 혹자는 통합진보당을 운운할 줄 모르나 걸음마도 떼지 못한 정치 공학을 모르는 소리는 하지 마시기 바란다.

김영삼은 극보수 기득권 세력의 줄기에서 군사 기반 세력과 각을 세운 것이 특징이며 김대중은 거기에서 한 걸은 나아가 보수 진영과도 일정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던 것이며(김종필과의 부분적 연대가 이 한계를 잘 말해준다.) 노무현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탈기득권, 친서민적인 정책을 펴려고 노력하다가 극보수 기득권 세력의 반동으로 실패하고 만 것이 작금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다.

역사의 흐름에 서지 않으면 정치인 안철수도 보수 세력의 대표일 뿐이다.

필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안철수가 말하는 안철수의 생각(정책)이나 새정치라는 것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가 정의나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 말을 바로 하자면 그는 당연히 극보수 기득권층 내의 다소 하부를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이른바 새정치라는, 국민이라는 전부를 안고 가려고 하는 이상적이고 소설적인 정치 타령을 했으니, 단일화 여부를 떠나도 그는 당연히 실패한 것이고 이 실패를 거울 삼아서 이제 정당을 만들고 극보수 하부 진영부터 연계하여 또 다른 보수정당(본인들은 죽어도 아니라 하겠지만, 즉 새정치를 희망하는 국민정당이라 포장하겠지만)을 곧 만들어 나갈 것임은 이미 두 눈에 훤히 보이고 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안철수 그는 이미 대선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 바른 소리를 하자면, 필자로서는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안 박사 자신이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된 정치 상황을 타개하는 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게 일단은 그래도 다소 진보적인 현 야권으로의 정권 교체를 진행한 다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를 바랐으나, 이는 필자가 그의 기반도 인정할 수 없었고 그의 과도한 욕심도 한몫을 하였기에 당초에 버렸어야 할 희망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호불호를 아무리 논해도 이제는 보수 정치인이 다된 안철수 박사는 정치인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에, 다만 조금의 조언을 하고자 한다. 필자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안 박사가 사퇴 전 의논을 한 법륜 스님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 인터뷰에서 법륜스님은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국민의 열망을 받아서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국민은 더 변화, 더 참신함을 요구했는데, 나쁘게는 안 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렇게 변화시키겠다' 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

너무도 정확한 평가가 아닌가?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함이 바로 저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안철수 개인과 안철수 현상의 본질적인 한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본질적인 한계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분배 정의를 말한다.

필자도 여러 번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아주 선문답 같은 소리만 거듭한 바 있어 이제 쉽게 말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분배의 정의를 추구하고 확립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동하다는 자신들을 보수층으로 알고 있는 30-40%는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 부동한 것이 아니고 분배를 독점하는 1-2%층의 극보수 기득권 세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에 자기들에게 일함에 따른 분배는 어느 정도 되는 줄로 착각하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을 굳이 진보화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분배의 정의를 확립해서 이들이 진정한 보수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 가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쌍용차 사태에서부터 길게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까지 그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자면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집권 극보수 소수 엘리트 세력은 이러한 근본 문제를 국민이 느끼지 못하게끔 즉 국민이 깨닫지 못하게끔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을 이용하여 집요하게 아편의 이념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의 국민들이 깨어나 있었다면, 안철수의 등장과 안철수 신드롬에 환호성을 질렸을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러면 기반이 무엇이며 향후 정책의 방향은 무엇이며, 민주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분배 정의는 어떻게 실현하겠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어쩌면 안철수 거품은 피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선 결과보다도 중요한 한국의 정치 경제적 현실

한국은 정치 경제적 정세의 본질을 말한다면 바로 이러한 분배 정의를 추구하는 싸움의 시작일뿐이다. 박근혜가 되더라도 더욱 소수 1-2%의 극보수 가진 자들의 이익만 추구해 나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싸움은 그칠 수도 없는 역사의 흐름이며 분배 정의라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재벌 개혁, 행정 수도의 이전 공고화를 통한 분배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현실 정치, 경제 개혁의 미진함과 노무현 시절에 보아 왔듯이 극보수 기득권층의 반발로 쉽지 않은 행로를 보일 것이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나름대로 보수와 민주의 선이 다소 분명해져 있다는 차이뿐이다. 점증하는 분배 정의의 요구로 오바마는 경합주에서도 승리하는 등 중산층 이하 세력들의 승리를 가져왔으며 공화당도 이제는 조금씩 가진 자들의 돈을 내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고 선거의 결과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보수 언론이 김을 빼려고 시도하는 단일화가 문제가 아니며 더더욱 대선의 일시적 결과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분배 정의 왜곡의 근본에 있는 군사독재 잔재 세력의 청산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깨어나야 하고 더 깨어나는 국민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더욱 분배 정의를 위한 목소리들이 높아져 갈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가 일부 극보수 언론의 치장으로 새정치라는 신화를 가진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집중되었더라도 그것은 본질이 아닌 것이다. 이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분배 정의의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유이다.

안철수, 그리고 문재인 후보! 역사의 바른 입장에 서면 답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역사적 사실과 사명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식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대선의 기간 동안에 가장 하여야 하는 일차적인 일은 바로 정권 교체일 것이다. 정권을 교체하고 이명박 정권의 부정을 올바르게 심판하고 그리고 분배 정의의 문제를 확립하고 추구하여야 역사의 올바른 길에 서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그리고 정치인 안철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한 것이다. 이제 그가(그들이) 어떠한 길로 나아갈지는 국민과 역사가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정치는 가장 기본인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분배 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장밋빛 정책이나 공약의 남발은 일시적으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으나 곧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 세계의 정치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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