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하찮고 또 소중하다

 
백찬홍 2015. 04. 19
조회수 91 추천수 0
 

 

 

가장 경이로운 사진 한 장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모티머는 지난해 말 출간된 저서 <세기의 변화>를 통해 인류의 사고를 바꾼 것 중에 하나로 우주 비행사가 달의 궤도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들었다. 인간의 달 착륙이 가지는 의미가 크긴 하지만 깜깜한 우주 공간에서 푸르고 흰 빛을 띠는 지구의 모습이야말로 경이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모티머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진일 것”이라며 “이 사진만큼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지구가 얼마나 작고,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위대한가라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은 없었다”고 했다.

 

gravity1.jpg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도 우주선 보이저호가 태양계 바깥에서 찍은 희미하고 작디작은 지구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독트린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세이건이 말한 대로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일부를 차지하려고 피의 역사를 써왔다. 거기에는 종교도 한몫을 했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공인 이후 계몽주의가 그 뿌리를 흔들 때까지 천년 이상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간주해 박멸했고, 심지어는 같은 신을 섬기는 세력끼리 30년간 전쟁을 벌여 전 유럽을 초토화하기도 했다.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중동과 서남아시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같은 전통을 공유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관용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신교에 대해서는 엄격했고, 최근에도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조직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우주의 작은 점 한 모서리에 살면서,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모서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신론자였던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죽음 앞에서도 저의 신념엔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소멸합니다. 저의 육체와 저의 영혼 모두 태어나기 전의 무로 돌아갑니다. 묘비에서 저를 기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문득 기억날 땐 하늘을 바라보세요.” 과학저술가였던 부인 앤 드리앤도 생전에 그와 생각을 같이했다. 남편과 사별하면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더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사랑이 종교의 본체라고 할 때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더 종교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렇듯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은 인간이 이 우주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는 유일한 존재라는 환상이 얼마나 헛되며, 우리가 이생에서 맺은 가까운 인연들과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