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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과 김상조 : 재벌개혁을 추구한 실용주의적 활동가들

 
 
이상민 전문기자
발행 2017-05-28 20:43:58
수정 2017-05-28 2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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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인선이 발표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인선이 발표되면 찬반양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찬반양론은 보통 진영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예를 들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반대했던 사람이라면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사건의 정부 측 대리인 이인걸 공안검사가 청와대 행정관에 임명되는 걸 반대하고, 같은 이유로 김이수 헌재 재판관의 소장 지명에는 찬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새 정부의 인사 중에 유독 찬반양론이 많은 인물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찬반양론에는 진영논리를 초월한 무엇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얘기다.

장하성, 김상조는 한 쪽에서는 경영의 자율성을 해치는 ‘사회주의적 과격 단체’를 이끄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외국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상반되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가진 이미지 중 어느 것이 진실에 부합하고 어느 것은 오해에 지나지 않을까? 법정에서는 보통 쌍방의 주장에 다툼이 없는 부분을 먼저 나열하고 다툼이 있는 부분은 증거를 통해 드러난 부분만 판단한다. 이런 형식으로 장하성, 김상조를 판단해 보고자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양지웅 기자

주장에 다툼이 없는 부분들

먼저 주장에 다툼이 없는 부분이다.

장하성, 김상조는 소액주주운동을 이끈 재벌개혁론자다.

장하성, 김상조가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다만, 두 사람의 학문적 접근방식은 차이가 있다. 장하성은 경영학자고 김상조는 경제학자다. 장하성은 기업의 회계, 재무 구조를 통해 기업지배구조, 재벌 구조를 파악하지만, 김상조는 금융, 금융관계법, 경제구조를 통해 재벌 구조를 파악한다.

시작은 달랐지만 재벌이라는 종착지는 같다. 장하성, 김상조 모두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재벌 집중도가 주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재벌 내에서의 ‘총수 집중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특히, 이들은 소액주주운동이라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을 한국에 도입한 인물이다. 재벌 총수의 독점적 의사결정에 맞서는 기존의 방법은 노동조합을 통한 실력행사가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장하성, 김상조는 사실상 사문화 되었던 상법상의 소수주주권을 발굴해 주주총회 참여, 회계보고서 열람청구나 주주대표소송 같은 방법론을 처음 사용해 재벌 총수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성과를 냈다.

주장에 다툼이 없는 건 또 있다.

장하성, 김상조는 상아탑 학자가 아닌 현실 참여 활동가(activist)라는 점이다.

보통 대학 교수가 ‘현실 참여형’이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정부의 각종 위원회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장하성, 김상조는 정치인과 관료가 마련해 준 자리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거쳐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 그리고 소위 ‘장하성 펀드’ 등을 직접 만들어서 정치권과 관료에 대항하는 활동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교수들이 만드는 대개의 연구소처럼 학자들이 학회를 만들고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소가 아니다. 회계사, 변호사, MBA 출신 미국 변호사, 시민단체 출신 박사 등 실무형 전문가들이 상근으로 근무하며 시장과 기업, 국회의 법제정 동향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연구소다.

자매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경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그 입장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을 하는 ‘애드보커시 NGO’다. 특히 이들은 ‘장하성 펀드’라는 펀드를 만들고 운용자문을 함으로써 시장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양지웅 기자

‘장하성 펀드’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장하성, 김상조는 우리나라의 재벌의 기업 지배구조가 매우 낙후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경제 정의 차원의, 그러니까 낙후된 기업지배구조가 불평등을 발생시킨다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는다. 나쁜 지배구조는 주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며 결국 시장의 비효율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장하성 펀드의 정식 명칭은 ‘라자드 한국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 이다. 단순히 시세차익을 얻는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일정부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획득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해서 발생한 효율로 주식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펀드다.

라자드 측이 투자를 청산하여 장하성 펀드가 문을 닫은 현재 시점에서 장하성 펀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장하성 등 재벌들의 지배구조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 활동에 그치지 않고 이를 변화시키겠다며 시장에 직접 참여한 이들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가라고 봐야한다.

언젠가 김상조 교수가 사석에서 하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경영학이 학문이냐?”고 농담을 하면서 (많은 경제학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무시하는 농담을 즐긴다) “나는 장하성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많은 활동가, 운동가를 무수히 많이 만나본 사람이지만 내가 평생 만난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활동가로서 장하성 교수를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상조 교수의 ‘농담’과는 달리 장하성이 김우찬 KDI교수 등과 공동으로 쓴 『지배구조로 그 기업의 시장가치를 예견할 수 있는가, 한국의 사례로부터』라는 논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논문 톱10에 속한다. 참고로 김상조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면서 장하성, 김상조에 이은 세번째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직은 논문 공동저자인 김우찬이 맡게 되었다.

장하성 교수는 ‘장하성 펀드’의 자문 수수료를 ‘두둑’하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장하성 교수가 받은 자문 수수료는 장하성 재단(공식명칭은 2020 재단이다)에 전액 기부되어 지역공동체, 시민사회운동, 아시아연대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장하성 펀드는 문을 닫았지만 장하성 재단은 지난해에도 약 7,000만원을 기부했다.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등에 각각 1,500만원을 지원하는 식이었다. 최근 들어 청년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적 관심을 넘어 청년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해 온 장하성이 김상조의 말처럼 활동가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논쟁에 속하는 지점들

이제부터는 주장의 다툼이 있는 부분, 그러니까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 외국금융자본의 앞잡이 설.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비판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것은 장하성, 김상조가 ‘외국 금융자본의 앞잡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SK그룹-소버린 사태, 그리고 ‘장하성 펀드’가 외국 자본인 라자드라는 사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외환은행과 론스타사태 때문이다.

2003년 다국적 자본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주)의 지분 14.99%를 취득한 일이 있다. 외국인이 적대적 M&A를 통해 한국 대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최초로 현실화된 사건이다. 그런데 당시 (장하성 등이 이끌었던) 참여연대는 분식회계 등 SK그룹의 지배구조가 가진 여러 문제점에 대해 주총 에 참석해 주장을 펴거나,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는 ‘소액주주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소버린자산운용은 이 과정에서 폭락한 SK(주) 지분을 매입하고 최태원 회장의 퇴진과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계열사와의 부당 거래 근절 등 지배구조 개선안을 요구했다. 소버린의 요구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이끌고 있었던 장하성, 김상조의 주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장하성은 소버린이 1조 5,000억원이라는 분식회계를 한 경영진에게 지배구조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한다. 소버린이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하기 시작한 지 2주만에 최대주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다. (소버린의 매집으로 주식가격이 반등하자 SK의 채권단 은행들도 주식을 매도했다.)

다시 말하면 소버린은 지배구조개선을 통해 SK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2년 4개월 동안 455%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얻었다는 것이다. 만약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단기적 시세차익 여부로 평가한다면 소버린은 2년 4개월 동안 한 주도 매매하지 않았으니, 몇 달 이상 보유하지 않는 한국의 개인투자자는 물론 기관 투자자에 비해서도 단기 투자자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장하성은 소버린의 행위가 ‘먹튀’는 맞지만 국부유출은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SK의 시가총액은 소버린이 보유하는 동안에 5조 원이 증가했다.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으로 5조원의 ‘국부’가 국내에서 창출되었고 이는 소버린이 가져간 8,0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규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상조는 소버린의 행태에 대해 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

당시 참여연대의 행동에 대해 비판이 있으면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기업지배구조의 불완전함을 먼저 해결하지 못하면 외국자본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소버린이 SK(주) 주식 매입 당시 시가총액(약 2조원)은 SK(주)가 보유한 SK텔레콤의 지분 20%에 해당하는 가치(약 3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즉, SK(주)가 들고 있었던 SK텔레콤 주식이 ‘무수익자산’을 넘어 ‘무가치자산’이 되는 터무니없는 현실을 해결하지 않고는 외국자본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의미다.

장하성 펀드는 해외 투기자본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 장하성 펀드의 ‘출신성분’에 대한 논란을 생각해보자.

왜 장하성 펀드는 라자드 자본으로 이뤄졌을까?

일명 장하성 펀드의 정식 명칭은 앞서 말한 것처럼 ‘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다. 장하성 교수와 그가 이끄는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이 펀드의 투자 자문을 역할을 맡아 약 6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펀드의 실체가 국내자본이 아니라 적대적 M&A 투자 경력이 있는 라자드 자본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당혹스럽다.

당연히 장하성은 해외 자본만을 상대로 장하성 펀드에 들어와 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금융지주 등 국내 자금도 펀드에 참여했다. 그러나 역시 해외자금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다. 이는 장하성 펀드에 국내투자자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단기 투자차익을 노리는 해외 펀드 위주로 투자를 받고자 해서 생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장하성 펀드에 참여한 외국 투자기관을 보면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캘퍼스)이나 버지니아대학, 조지타운대학 재단 등 단기 차익을 노리는 성질의 자본이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론스타의 매각과정에서 김상조가 내놓은 주장을 보자.

김상조는 론스타의 ‘몰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그 연장선에서 하나은행이 론스타 지분을 인수해 외환은행을 합병하는 걸 사실상 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김상조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취득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경영할 수 없는 비금융주력자(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담은 질의서를 금감위에 보냈고, 외환은행의 주총에 참여해 같은 주장을 펼쳤다. 법원에 여러건의 정보공개 소송을 낸 것도 그다.

김상조가 론스타 주식 ‘몰수’를 주장하지 않은 것은 몰수라는 방법론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고 결론이 지어지고 그래서 외환은행의 대주주자격이 박탈된다 하더라도 주식취득을 무효화하는 방법보다는 과징금, 벌금 등의 범죄수익 몰수의 방식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전반적으로 김상조는 론스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보다 론스타를 승인한 감독당국을 비판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했다. 이는 론스타 류의 문제가 한국에서 재발하는 것을 막고 투기자본의 폐해를 막는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그의 설명이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신자유주의적 발상인가?

장하성, 김상조의 소액주주운동이 주주자본주의 운동이며 이는 ‘신자유주의의 트로이의 목마’라는 주장도 있다.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나 이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사회로의 전환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장하성, 김상조가 주주자본주의 첨병이라는 부분에서 두 사람의 대응에는 차이점이 있다.

장하성은 주주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논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벌 총수가 사실상 모든 인사권을 가진 현 상황에서 과도한 인센티브와 단기 성과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주주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단기 성과주의는 주주자본주의가 가진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주식시장 제도와 기업 경영의 ‘형태’ 때문이고, 나아가 한국에서 주주들의 압력 때문에 회사가 근시안적인 경영을 했다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주주가 아니면 회사의 채권자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 이 경우에도 문제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김상조는 다소 조심스럽다. 주주자본주의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어느 편을 들기보다는 주주자본주의로 해석되는 일련의 행동들은 다만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상적인 경제모델을 설계하는 상아탑 학자가 아니라 ‘경로의존성’과 ‘제도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는 현실 참여적 활동가로서 보다 현실 개입능력이 있는 방법론을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상조는 주주행동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주주자본주의에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주행동주의의 가치를 이념적 이유에서 거부하면 진보의 주요한 수단을 버리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舊)자유주의의 기본인 소유권의 개념조차 미천한 한국 현실에서는 소수주주권이라는 수단을 통해 구자유주의적 개혁과제를 실현하는 것은 충분히 개혁적이라고 설파한다.

물론 이런 운동이 단계적(특히, 80년대식 사구체 논쟁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운동이며 자본의 수단을 이용한 자본주의체제 내의 운동이라는 비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임단협을 진행하는 것도 고용의 주체로서 자본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체제내의 운동이라는 비판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실천의 여지를 축소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결국 김상조는 주주 자본주의, 또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같은 30년 뒤에 도달될 최종 목표를 설정해 놓고 운동하는 사상가나 이념가는 아니다. 단지 30년의 과도기 동안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보며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문재인(왼쪽부터) 대통령,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보며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문재인(왼쪽부터) 대통령,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뉴시스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과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장하성, 김상조가 소액주주운동을 도입한 이유는 시장을 감시하는 장기투자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소액주주는 기업을 개선하기보다는 주식을 팔고 나가는 것이 더 간편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공적연금이나 대학기금 등이 적극적 감시자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장기투자자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들은 시민단체를 통해서, 또는 직접적 시장참여자로서 재벌을 감시했다.

장하성, 김상조의 역할은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사상가나 이념가라기보다는 현실 참여적인 활동가 성격을 띠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송곳도 필요하고 망치도 필요하다. 굳건한 장벽을 망치로 쳐서 넘어뜨리는 사람도 물론 필요하지만 송곳을 정확한 곳에 찔러 넣어 효율적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들이 주도했던 경제개혁연대의 창립선언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구체적 성공 경험을 축적하여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이러한 역할에 천착한 사람이 바로 장하성, 김상조다. 거대 담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현실 개입 능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실무적인 운동방법이 장하성, 김상조의 운동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거래위원장 같은 재벌을 감시하는 실무 집행부서의 장으로서의 김상조와 실질적인 액션플랜을 마련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의 장하성은 그 역할에 어울릴 것 같다.

장하성, 김상조를 경제사상이라는 큰 틀에 넣는다면 케인스주의자라고 평가될 수 있겠다.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장하성, 김상조는 국가 개입의 현실적 수단인 관료를 신뢰하지 않는다. 관료를 단순히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영혼 없는 집단’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관료 특유의 조직논리로 무장되어 있고 재계의 이해관계와 유착된 ‘모피아’라는 게 이들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관료를 비판하던 사람도 장관이 되거나, 혹은 대통령이 되어도, 관료의 영향에 휘둘렸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관료들이 가진 정보와 논리를 뛰어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관료가 가진 정보와 논리를 디테일에서도 뛰어넘을 수 있는 현실 참여형 전문가가 조직의 수장이 되면 어떨까?

“모피아에게 정책적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고 모피아를 개혁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국정철학과 컨트롤 타워를 확립하는 것이 성공적 개혁의 필요조건”이라는 김상조의 말을 ‘이제 공무원이 된’ 그들이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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