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총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안식년)와 만나 사제단의 현황과 나아갈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승구 신부는 사제단 대표로 선임되며 어리둥절하고 앞이 깜깜했지만, 이제는 ‘삶’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또한 사제단도 세상 사람들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며, 아름다운 인간공동체를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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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어려운 일을 맡게 되셨습니다. 사제단 대표를 맡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리둥절했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깜깜했어요. 하루, 이틀 지나고 신부님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 이제는 받아들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려면 최선을 다해서 잘 해야겠다, ‘일’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 인터뷰를 준비하며 생각해보니, 정작 기자 자신도 사제단이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고 있었어요. 사제단이 하는 일을 소개하신다면?
사제단이 태동한 것은 유신 치하의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등과 관계가 깊어요. 법에도 호소할 수 없고, 힘이 없어서 아픔을 말할 수도 없던 사람들이 사제들을 찾아온 것이죠. 이런 상황 앞에서 사제들이 복음의 눈으로 성찰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던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습니다.
사제단의 전문 분야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복음과 사제의 양심에 비춰, 올바른 일은 올바르게, 올바르지 못한 일은 올바르지 못함을 드러내고, 그것이 제자리 찾기를 바라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새 대표 나승구 신부 ⓒ한수진 기자
- 최근에 사제단에 참여하는 분들이 몇 명 정도 되나요?
사제단은 언제나 인원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용산참사 때는 수백 명이 꾸준히 참여했고, 유신 40주년 시국 미사 때도 많은 사제가 함께했습니다. 그 사안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분이 오시는 것입니다. 사제단 소속 신부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제단은 회원 제도가 없는 모임이에요. 내 양심에 비춰 함께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는 게 사제단입니다.
- 회원 자격이나 명단도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회비도 걷지 않나요?
네, 회비도 없어요. 대신 교구 분담금이 있습니다. 교구별로 사제단에 공감하는 신부님들이 모아 주시는 분담금이 주요 재원이고, 또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전후로 뜻있는 신부님들이 모금해주시고, 후원도 받고 있습니다.
-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치적으로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남북관계도 험악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장기불황 속에 서민 생활이 매우 어렵고요. 이런 상황에서 사제단 차원에서 해보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남북관계가 더 얼어붙고 힘들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제단도 끊임없이 노력할 거예요. 북한의 천주교인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도 할 것이고요. 세상이 어렵고 함께함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그 요청에 기꺼이 응답할 준비를 해야겠죠.
누가 정권을 잡든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어요. 늘 불의가 있었고, 정의와 평화가 침탈당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주어지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우리의 소중한 사명입니다.
- 사제단이 사회적 사안에 대한 발언과 활동은 많이 하지만, ‘교회 쇄신’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교회 쇄신은 언제나 숙제입니다. 또한 사제단의 과제이기도 해요. 그런데 교회 쇄신이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교회 쇄신은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부터 변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속한 교구나 수도회 공동체에서부터 자기 쇄신을 이루어 나갈 때, 교회 쇄신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사제인 제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교회 쇄신의 단초가 될 것입니다.
▲ 작년 10월 22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유신 40주년을 맞아 시청광장에서 연 시국기도회 ⓒ문양효숙 기자
- 사제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뉩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여나 사회복음화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치사제’나 ‘종북세력’이라는 비난마저도 있는데, 이런 양극단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분들이 사제단이 활동하는 곳에 한번이라도 오셨다면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을까요? 언론을 통해서, 또는 일방적으로 조성된 주장을 듣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많이 들은 이야기라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웃음)
안타까운 것은, 사제단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채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인데요. 그건 우리 자신이나,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 사제단 소속 신부님들이 사제 본연의 역할은 소홀히 하면서 사회활동에만 열중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아는 사제단 신부님들은 본당 사목 등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분들이에요. 간혹 어떤 분들이 열정이 넘쳐서 사회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사제 자신에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일입니다.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할 때 다른 일도 힘 있게 할 수 있죠.
그런데 오해도 많은 것 같아요. 사제단 미사나 행사는 대개 월요일에 하거든요. 사제들이 쉬는 날인 월요일을 봉헌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될 텐데요.
- 일주일에 하루뿐인 쉬는 날을 봉헌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원래 놀 때도 힘이 들어요.(웃음) 쉬는 날 시간을 내고, 서울에서 열리는 미사나 행사에 참석하고자 먼 지방에서도 신부님들이 와 주시는 이유는, 그분들이 이 일을 통해 사제직의 본질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사제의 본질이고, 사명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더 힘이 나서 일주일을 잘 살 수 있는 것이죠.
- 사제단 외에도 ‘천주교 창조보전연대’,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 사제연대’ 등 다양한 천주교 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주교 단체들과 사제단의 연대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앞으로 다른 천주교 단체들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맺고 싶으신가요?
매우 고마운 일이죠. 이런 단체들은 사제단의 또 다른 모습, 또 하나의 사제단이라고 생각해요. 사제단이 해결사는 아니에요.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고요. 상황에 맞게, 주어진 소명에 따라서, 가능한 만큼의 일을 할 수밖에 없지요. 각 지역의 사제, 평신도들이 상황에 맞춰 마음을 모아 활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사제단의 외연이 넓어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1999년 사제단 창립 25주년을 맞아 발표한 ‘사제의 고백과 다짐’에서도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본받아 모든 양심인과 연대하여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인간공동체를 이 땅에 이룩하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희는 다른 단체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연대할 것이고, 그건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형제애를 나누는 일이 될 것입니다.
▲ 사제단은 지난 한 해 매주 월요일 대한문 앞에서 '용산참사,쌍용자동차 해고자, 제주 구럼비, 4대강을 위한' 미사를 봉언했다.ⓒ문양효숙 기자
- 사제단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으며, 자체 쇄신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사제단을 주도하는 분들이 중견사제들이고, 사제단 활동에서 젊은 사제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이런 점에서 사제단의 ‘현황’과 ‘과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사람마다 사제단에 대한 느낌이 다르고, 각자가 원하는 사제단의 상이 있을 테죠. 그러나 사제단을 너무 구조적으로만, 하나의 조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인 것 같아요. 무슨 뜻이냐면, 우리 사회에 어렵고 힘든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저희는 농담처럼 사제단이 없어지는 날이 와야 한다고 얘기하거든요. 예전에는 사제단밖에 할 수 없던 일을 이제는 시민사회단체와 뜻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희망버스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사제단에 젊은 신부님들이 안 보인다는 지적에 저희도 공감합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사제들이 사제단에서 편안하게 자기 의견을 나누고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요. 풀어야 할 숙제죠. 그러나 모두가 나와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제단을 사제 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군요.
-가톨릭 사회운동 단체들의 연합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최근 단체명을 바꾸는 것까지 논의하고 있는데, 사제단에서는 이름에 대한 논의는 없나요?
1990년대 초반에 그런 요청이 있었죠. 예컨대 ‘정의구현’은 지나간 얘기니 ‘환경’이라는 담론을 중심으로 삼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논의 과정에서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됐는가’ 따져보았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땅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름이 촌스럽고 구태의연한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또 우리에게 정의구현사제단은 들으면 들을수록 정이 가는 이름이 됐어요.(웃음)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름을 유지하면 누가 함께하겠느냐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이름 때문에 나오고, 이름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면,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이름이 좀 과격하거나 촌티 나더라도, 내용이 충실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추가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는, 그리고 저희 사제단은 지난 5년간 이명박 대통령 시절을 보내며 매우 큰 희망을 봤어요. 용산, 강정마을이 그랬듯이, 정말 어렵고 힘든 자리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일 뿐”이라는 사회에서 그런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죠. 그분들이야말로 사제단에 힘이 되는 분들이고, 또 사제단의 활동이 그분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시국 미사 때 소리 없이 와서 함께하신 수녀님들, 추운 겨울에도 차 봉사하고, 떡 나눠주신 자매님들, 음악, 전례 봉사해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사제단이라고 해서 사제들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분들도 또 다른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입니다.
사제단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 특히 신자들께, 걱정이 되는 만큼 더 많이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또 사제단을 격려하고 싶으신 분들께도 많이 기도해주시기를 청하고 싶고요. 사제단이 1974년에 만들어졌으니 내년이면 40주년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활동하며 지향해 온 것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편안해지는 것, 자기 신앙을 잘 살아가는 것,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같은 뜻을 지닌 분들께서 저희와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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