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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사실상 사형선고, 박정희 복권 외칠 텐가

 

유신 사실상 사형선고, 박정희 복권 외칠 텐가
 
5.16과 유신 정당화 시도는 명백한 위헌 행위
 
육근성 | 2013-03-22 09:44: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긴급조치는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의 핵심인 1,2호와 9호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아무리 보수편향의 헌재라 할지라도 ‘긴급조치는 합헌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게다.

 

 

긴급조치는 1인 종신독재를 위한 ‘도깨비 방망이’

 

 

유신헌법 제53조를 근거로 긴급조치가 발동됐다. 대통령 1인의 판단에 의해 국정 전반에 걸쳐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고(53조1항), 필요한 경우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2항) 돼 있다. 게다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4항)라고 못박아 무소불위의 초헌법적 권한을 갖도록 했다.

 

 

‘박정희 1인 독재’가 가능하게 만든 ‘도깨비 방망이’였다. 긴급조치 1호에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와 비방,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할 수 없으며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게 긴급조치 2호다. 수사는 중앙정보부가, 재판은 법원이 아닌 비상군법회의가 맡도록 했다. 사법기능까지 파괴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었을 때(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긴급조치의 ‘총정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비판과 정치활동의 금지, 언론의 폐간과 대학의 폐교, 해임과 제적 등을 멋대로 할 수 있었다.

 

 

사형, 투옥, 고문...희생자 수천 명

 

 

긴급조치는 종신 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유신헌법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위상은 절대왕정의 황제 그 이상이다.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회 해산이 가능했다. 대통령 선출은 거수기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이뤄졌다. 임기는 6년으로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했다.

 

 

 

 

긴급조치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했다. 총 589건이 기소돼 974명이 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했다. 무고하게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간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 가장 악명이 높았던 긴급조치 4호(민청학련)의 경우 1024명이 수사대상에 올라 180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사형 9명, 무기징역 21명 등 이들에게 내려진 형량을 모두 합하면 1650년에 달한다.

 

 

 

 

아버지가 종신 독재를 위해 흉측한 유신헌법을 만들고, 긴급조치를 발동해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일 때, 그의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당시 20대 중반이었으니 인식력과 판단력이 충분할 수 있는 나이였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그가 본 유신은?

 

 

청와대 밖에서 입법, 사법 등 모든 권한을 오직 1인에게 복속시키기 위한 사법살인이 자행되고 있었다. 민주헌정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항거하던 이들을 고문하는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바로 그 때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안주인이었다. 종신 독재를 완성하기 위해 광적으로 몸부림을 쳤던 아버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이와 관련해 방송에 나와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청와대를 나온 지 10년만인 1989년 5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이 MBC의 시사토론(‘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에 출연한 것이다. 그 당시 유신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

 

 

“5.16과 유신은 매도당해 왔다...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5.16과 유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바로잡는 일이다...아버지는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유신을 하셨다.”

 

 

 

 

긴급조치 위헌 결정, 사실상 ‘유신 사망확인서’

 

 

이후에도 이런 시각은 변하지 않는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유신이 없이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변했고, 최근 들어 과거사에 대해 포괄적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도 5.16은 쿠데타이고 유신은 위헌이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단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헌재가 긴급조치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40년만에 긴급조치가 최종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지난 2010년에도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이번의 경우와는 다르다. 대법원의 판결은 해당 사건에 한하여 효력이 발생하지만 헌재의 결정은 법원의 선고에 구속력이 있어 관련된 사건 모두에 효력이 미친다.

 

 

하지만 헌재는 긴급조치의 근거가 되는 유신헌법 53조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것이 헌재의 역할일 뿐, 헌법 조항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건 곤란하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유신헌법을 부정한 거나 다름없다.

 

 

 

 

유신 정당화가 목적인 박근혜의 ‘역사 바로 세우기’

 

 

헌재가 긴급조치 위헌 여부를 1974년 당시 헌법인 ‘유신헌법’에 비춰 판단했더라면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53조4항)”는 규정 때문이다. 그러니 헌재의 위헌 결정은 이 조항과 이 조항을 포함하는 유신헌법을 부정한 것이 된다. 유신헌법을 무시하고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헌재가 ‘유신헌법 53조는 위헌’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어도 이번 결정만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과 국민주권주의를 크게 침해했다고 판단한 헌재에 의해 유신헌법이 사실상 사법적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입을 열어야 한다. 유신이 매도당해 왔고, 유신 없이는 대한민국도 없었을 거라는 주장과 대척점을 형성하는 헌재 결정이 나왔다. 매도당한 게 아니란다.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질서의 근간을 훼손한 ‘악법’이란다.

 

 

▲위헌 결정을 환영하고 있는 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 관계자들(출처: 경향신신문)

 

 

잘못된 역사, 범죄행위...정당화할 수 없다

 

 

헌재의 결정에 따르려면 박 대통령 자신이 주장해 온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할 것이다. 헌재의 긴급조치 위헌 결정에 담긴 의미가 무언가. 박정희가 만든 역사는 잘못된 것이며, 그가 한 통치행위 중 상당부분은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 아닌가. ‘유신이 매도당해 왔으니 역사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역사와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한 말이 있다.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복권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복권’은 ‘5.16과 유신을 정당화하는 역사 세우기’를 의미한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가 헌재로부터 사실상 사형선고와 사망 확인을 받았다. 그래도 ‘박정희 복권’과 ‘뉴라이트식 역사 세우기’를 주장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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