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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공격인가, 미국 공격인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3/06 12:52
  • 수정일
    2015/03/06 12: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과전망>3.5 리퍼트 피습사건의 성격 그리고 제기되는 배후설
 
한성(자주통일연구소) 
기사입력: 2015/03/05 [22:17]  최종편집: ⓒ 자주일보
 
 

 

리퍼트 피습 사건의 성격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규정한 본질이다. 

 

중동 4개국을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5일 세번째 방문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에서 피습 사건을 긴급으로 보고받은 뒤 "철저한 수사 및 경계태세 강화 등 필요한 제반 조치"에 대한 강조를 하기 전 그렇게 말했다.  

 

명료하다. 군더더기란 찾을 수가 없다. 내용 또한 가타부타 시비를 걸 수가 없다. 누구보다도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있는 대통령이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글자 하나만 다른 같은 규정을 내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는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이어 "배후가 누구인지 철저히 조사해 우리 사회에서 테러행위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도 했다.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열린 '퓨처라이프 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 한 말이다. 

 

‘미국에 대한 공격’

전문가에게서 나오는, 사건의 또 다른 규정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일 연합뉴스에 “미국 대사는 일종의 미국 자체이기 때문에 대사를 공격했다면 미국을 공격한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홍 위원은 이어 미국의 국민감정을 해치게 될 가능성을 이 사건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으로 꼽았다. 

 

리퍼트 피습사건에 대해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게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의 하나인 한국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미국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이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인들의 공포를 한층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충격의 크기와 미 정부 논평의 속도는 정비례했다. 미국 국무부의 논평이 사건 발생 직후 1시간 30여 분만에 나온 것이다.

 

미국에 대한 공격이라는 규정은 리퍼트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명이라는 데에서 더욱 더 설득력을 갖는다. 

 

2005년 당시 연방 상원의원이던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리퍼트 대사는 그 이후 지금까지 오바마 대통령과 줄곧 인연을 쌓아온 관료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수석보좌관과 비서실장,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역대 최연소(41세) 주한 미국대사로 발탁된 것이다. 

개인적 친분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퍼트 피습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 내지는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지은 것은 이 사건이 한미동맹을 흔들게 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주한 미 대사가 한국에서 공격을 당한 것은 양국 간에 감정이 악화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럴 경우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는 사고 직후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반일적인 우리정부의 행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비추었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으로 한미 관계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던 터라 그 우려는 더욱 클 것으로도 보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 마치 한미동맹에 균열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한 태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5일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강북삼성병원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번 불의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포괄적 전략동맹관계를 굳건하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현재 실시 중인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개 들기 시작하는, 리퍼트 피습사건의 배후설

 

리퍼트 피습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 내지는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지은 것은 아울러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이 김무성 대표가 강조한 ‘배후설’과 맞물릴 수 도 있음을 보여준다. 

 

김 대표가 강조한 ‘배후세력’은 서청원 최고위원에게로도 이어졌다. 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회의에서 "범인의 배후 여부를 철저히 가려서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을 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그 회의에서 종북·좌파 세력을 언급한 것이 유달리 돋보였던 이유다. 유 원내대표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 훈련이 진행 중인데 종북·좌파 세력들이 주장하듯이 이게 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하고 테러행위를 저질렀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말을 한 것이다. 

 

리퍼트 대사를 피습한 용의자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 김기종 대표(55)다. 김 대표는 사건 현장에서 체포 연행되어가는 과정에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며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3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설날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이유를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탓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남북대화가 이뤄질 수 없는 분위기"라면서 "1992년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했던 것처럼 전쟁연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김 대표는 지난달 24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우리마당독도지킴이를 비롯한 48개 단체로 구성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그날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이제 그만', '전쟁연습 그만 하고 남북대화 재개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훈련 중단을 요구했었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대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리퍼트 피습사건의 배후설은 미국 그리고 한미동맹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갖는 세력에 대해 특히, 한미연합군사훈련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평화세력에 대해 탄압을 예고해주는 측면이 있어보인다.

이후 사건의 파장을 예의주시해야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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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봄, 한·미 연합훈련은 열리지 않았다

 
이규정 2015. 03. 05
조회수 76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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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를 통해 “남조선 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북부를 선제 기습공격하기 위한 핵전쟁 연습” 
1993년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이렇게 규정했다. 22년이 지난 2015년 북한은 변함없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핵시험 전쟁, 예비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 관계자, 미국쪽 인사들은 입을 모아 한·미 군사훈련은 연례적이며, 방어적인 훈련이라고 못 박는다.  따라서 북한의 중단 요구는 부당한 것이며 핵실험 중단과 같은 정치와 연관시킬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판에 박힌 공방이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양측이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 쉽게 객관화할 수 없다면 양측이 인식을 접근했던 때를 통해서 점점을 찾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남·북이 한미 군사훈련을 놓고 평행선을 달렸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이 유연한 태도를 취하며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은 국제핵사찰을 허용했던 때가 있다. 1992년 봄이다. 
우선 냉전종식으로 미국이 한반도 내 핵탄두 철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 계기였다. 미국과 한국은 남한 핵무기 철수를 남·북 대화, 북·미 대화 지렛대로 사용했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 대화에 자신감과 의지를 갖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며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왔다. 그러나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일단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으로 국제핵사찰을 얻어내자 한미 양국에 한미훈련 중단의 효용이 떨어진 것이다. 

 

  분명한 목적 있으면 한·미 군사훈련 중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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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국 전략폭격기 B-52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까지 이어진 1992년의 남·북 해빙무드는 냉전종식의 산물이다. 냉전 막바지인 1990년부터 미국은 세계적 전술핵무기 철수 문제를 내부적으로 검토했다. 한국 내 미국 핵탄두는 1972년의 경우 무려 763개에 달했다. 1977년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당선된 지미 카터 대통령 주도로 핵탄두는 200여 개로 감축됐고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1989년에는 100여 개로 줄었다. 그리고 1991년 공식적으로 한국 내 미국 핵무기는 ‘0’ 개가 된다. 
  미국의 전술 핵무기 철수에 이어 한국 정부가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이라는 중대결단을 내린 과정을 살펴보자. 1990년10월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 대사, 로버트 리스카시 주한미군 사령관, 두 명의 전임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남한 핵무기 철수를 워싱턴에 건의했다. 해를 넘겨 1991년 봄에는 서울에서 그레그 대사, 리시카시 사령관, 청와대, 국방부 관계자 등이 회의를 열어 핵무기 철수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노태우 정부는 한국 내 미국 핵무기 철수가 안보 불안을 가져온다며 미국 측 제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적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한·미  양측은 핵무기철수문제를 1991년8월7일 김종휘 안보수석과 폴 윌포위츠 국방차관 사이의 하와이 회동을 통해 담판 짓는다. 이 자리에서 윌포위츠는 남한 안전보장을 위해 핵무기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미국 국방부의 입장을 전했다. 남한 측은 이를 수용하되 핵무기철수를 북한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무기로 이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미 양측은 이 회동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도 논의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국 측의 자율성을 보장해준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대통령은 회고록에 ““(팀 스피티트 훈련은)남·북 대화의 진전에 따라 실시여부를 결정 한다”는 한국 측 의사에 따르겠다고 미국 측이 1992년 팀 스피리트에 대해 신축성 있는 입장을 표명해 와 우리 측 정치적 결단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는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방침을 정한다. 
 미국 주도로 한국 내 미국 핵무기 철수는 약 4개월 뒤인 12월 완료됐으며 곧바로 북한 측에 통보됐다. 1991년12월8일 미국 군비관리군축국(ACAD·United States Arms Control and Disarmament Agency) 로널드 레먼 국장은 방한해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완료사실을 북측에 통보해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과 국제 핵사찰 수락을 전제로 남·북한 핵사찰 문제에 대해 북측과 사전 협의했다”고 청와대 측에 확인해주었다. 
북한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가입국가로 의무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의 사찰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상태에서의 사찰은 거부하고 있었다. 이제 미국이 한국 내 핵무기를 철수한 이상 북한은 국제 핵사찰을 피할 명분이 없었다. 한국은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북한이 국제 핵사찰을 받게끔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거론하며 압박에 들어갔다. 
 한국 국방부는 12월16일 “핵안전협정 서명과 상호 시범사찰 수락 의사 밝히면 1992년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할 방침”이라며 북한을 한 번 더 대화테이블로 끌어당겼다. 손풍삼 국방부 대변인은 “이 달 안으로 핵협상의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훈련장비 이동에 따른 소요시간 등을 감안할 때 내년도 팀 스피리트 훈련은 예정대로 실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북한을 재차 재촉했다. 
 이틀 뒤인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에 핵무기 없다”며 ‘한국 비핵화’를 공식화하며 쐐기를 박았다. 이에 북한은 12월23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앞으로 자국의 명백한 입장을 밝히리라는 전제 아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르는 담보(안전)협정에 서명할 것이며 합당한 절차를 통해 사찰을 받게 될 것을 천명 한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은 12월24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허용, 남한과의 핵협정 체결을 공식으로 승인했다. 
 이어 남·북은 12월26일부터 31일까지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어 핵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남측은 실질적인 ‘비핵화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 측은 ‘비핵화 지대’ 주장을 접고 노태우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 응했다. 1991년 마지막 날, 남한은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지하고 북한은 핵사찰을 허용하는 걸 골자로 하는 협상이 타결된다. 이렇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문’이 탄생했다. 
  그리고 1992년 약속대로 팀 스피리트 훈련은 열리지 않았다. 1992년은 건국 이래 가장 많은 남·북 대화(88회)가 열린 해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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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은<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효시켰다

 

‘대화파’ 따돌리며 훈련재개 발표

 

 이렇게 숨 가쁘게 돌아가던 남·북 대화는 1993년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8차까지 진행됐던 남·북 고위급회담도 남한 측의 ‘훈령조작 사건’이라는 황당한 사건으로 남·북 사이에 불신을 키운 채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된다.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는 한·미 국방장관 연례회담에서 갑작스레 발표됐다. 이 결정과정에서 소외됐던 도널드 그레그 당시 미국 대사는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이 결정을 자신의 임기 중 “최대의 실수”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 시기 남북간의 핵통제공동위 협상과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 사찰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핵화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에 대한 초기사찰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얻어 북한이 과거핵 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게 됐다. 국제 핵 사찰단은 북한이 신고한 양보다 많은 플로토늄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그 차이는 g단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례적으로 영변에서 핵물질 재처리시설로 의심되는 건물 2채에서 핵폐기물 시설을 숨기는 장면을 담은 위성사진을 국제원자력기구에 공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결국 한미가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에 들어가고 남북이 훈령조작사건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데 중대한 차질을 빚게되는 상황에서 1993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결의하자 한달 뒤인 3월 북한은 핵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북한은 91년 말 핵사찰을 허가하고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전혀 얻지 못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다음날인 1992년1월21일 미국에서 김용순 당비서겸 국제부장과 아놀드 캔터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만났다. 이는 한국전쟁에서의 휴전협정 이래 북미가 만난 최고위급 접촉이었으며 북은 이 회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재무장 억재 등 동북아 세력균형에 한정된 역할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북미 관계정상화에 대한 어떤 희망적인 발언도 들을 수 없었다. 
 캔터 정무차관은 사전에 준비된 발언요지를 그대로 읽었다. 그는 핵사찰 허용과 핵개발 계획 포기를 촉구하는 미국의 기존요구를 반복할 뿐이었다. 김 국제비서는 후속대화에 대한 합의, 공동성명서 등을 요구했으나 미국 측은 모두 거부했다. 
  92년 한미간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합의에 대해 군은 일찍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한·미  국방장관 연례회담이 열린 1992년5월17일 로버트 리스카시 주한·미 군 사령관은 북한 핵사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93년 팀 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는 남북 핵통제위 협상이 난항을 겪고 북한에 대한 핵의혹이 언론을 통해 본격화하자 93년 팀스피리트 훈련재개를 발표했다.  놀라운 건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게 분명한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 발표에 앞서 이들이 워싱턴, 부처 간 정책위원회 등에 통보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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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북한 영변을 방문한 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이라고 주장하던 시설이 재처리시설임을 주장했다

 

 그레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당시 딕 체니 국방장관이 이 결정의 책임자였습니다. 저와는 전혀 협의가 없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앞서 2년 간 진척된 거의 모든 일들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라고 <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레그 대사는 한국 군인들이 이 훈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이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달려갔는데 한국 군 일부에서는 팀 스피리트 훈련을 그 때 상황의 재연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팀 스피리트 훈련의 재개를 원했던 군 인사들이 있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들은 무지했고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을 모두 무시했습니다. 현재 북한과의 문제는 미국이 이렇게 대북정책에서 연속성을 보이지 못했던 것과 상당부분 관계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라고도 덧붙였다. 
  1993년 재개된 팀 스피리트 훈련에는  3월9일, 한국군 7만, 미군 5만이 참여했으며 해외에서 1만9천명 미군이 추가로 투입됐다.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도 왔다. 91년 말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일은 3월8일  “한반도 북부를 선제 기습공격하기 위한 핵전쟁 연습”으로 이를 규정짓고 전 인민과 군에 “전시 준비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북한 병사들의 휴가는 취소됐다. 전 부대에 탄환이 지급됐고 평양 시내에 청사를 장갑차가 둘러쌓다. 동시에 북한은 IAEA가 결정한 특별 핵사찰 수용 불가 입장을 반복해 알렸다. 그리고는 이 훈련의 와중인  3월12일 NPT 탈퇴를 선언한다. 북한은 첫째, “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최종 연습”인 팀 스피리트 훈련이 NPT 및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정신에 위반되며 둘째, IAEA의 2개 시설 특별 핵사찰 요구는 “북조선을 무장해제시키고 사회주의 체제를 압살하려는 노골적인 우격다짐”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규정 디펜스 21 플러스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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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리퍼 트​​ 주한 미 대사 피습 현장

등록 : 2015.03.05 08:35수정 : 2015.03.0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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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 리버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 리퍼트 주한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초청강연회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대사는 이날 행사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미관계 발전방향을 주제로 강연을 준비했다. 뉴시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를 습격한 괴한이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를 습격한 괴한이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괴한에 의해 습격당한 가운데 리퍼트 미 대사가 앉은 식탁에 피가 묻어 있다. 연합뉴스
미국 CNN방송이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괴한에게 습격당한 소식을 속보로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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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무소속 출마 - 새정치연합 해체 현실화?

 
 
 
 
임두만 | 2015-03-04 17:02: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정배가 사실상 탈당을 선언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여파가 현 제1야당 새정치연합과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문재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에 대한 분석은 이러하다. 즉 보선지역 2패에다 종국에는 당 해체 수순까지 간다는 것이다.

성남중원… 새누리당 후보인 신상진은 그 지역에서 이미 2연승을 했었다. 2연승 후 1패의 전력이 있는데, 그 1패가 지난 총선의 대대적 야권연대 선거 때였다. 그러나 당시 신상진의 패배는 야권연대 위력이 아니라 신상진 자체의 실패였다. 의협 회장까지 지낸 의사 출신에다가, 여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보수층이 많은 의사 집단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것이 그 이유다.

당시 총선은 새누리당과 야권단일후보와의 전쟁이기도 했으나 약사 출신 대 의사출신 대결이기도 했다. 그리고 약사출신인 야권 단일후보 통합진보당 김미희에게 불과 654표(0.7%)라는 근소한 차이로 석패했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신 의원이 의정활동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의사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어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654표는 지역의사회의 지지만 받았더라도 극복할 수 있었던 차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당시 신상진 의원의 홈페이지에 의사들이 “낙선을 축하한다.”는 글을 줄줄이 남길 정도로 그동안의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했다. 즉 신상진 개인의 실패가 그 이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은 해볼 것도 없다는 것이 이 지역에 정통한 사람들의 예측이다. 신상진 후보가 새누리당 고정표만 잡아도 김미희 후보와 새민련 후보, 거기에 정의당이나 국민모임 후보가 출진한다면 완승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최종 투표율이 40%가 나온다고 해도 이중 과반수는 아마 새누리당 지지표일 것으로 예상되는 바 성남중원은 야권에겐 거의 희망이 없어 보인다.

서울 관악을… 새누리당 후보인 오신환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당선자인 이상규 전 야권 단일후보에게 4.9%p차로 낙선했다. 그런데 이 지역구가 지난 1988년 13대 총선 이후 단 한번도 현 여권인 새누리당 후보에게 내준 적이 없는 야당성 강한 지역구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득표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물론 그 지역 전직 의원이자 구청장을 지냈던 김희철 후보가 야권연대 단일후보 경선결과에 불목 출마하여 32,000여 표 28.47%를 얻는 등 야권분열이 있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보궐선거라는 점을 감안하고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것이 예상되므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낙승이 점쳐진다.

특히 오신환 후보의 부친이 호남출신의 신림동 주유소 갑부라는 소문이 있다. 즉 출향한 호남인 중 성공한 부자로서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지역 호남향우회 활동도 열정적으로 했다는 소문은 오 후보에게 나쁜 소문은 아니다. 더구나 현재 제1야당 새정치연합 후보로 유력시 되는 정태호 지역위원장이 영남출신이란 점도 오신환 후보에겐 이점이다.

따라서 이곳도 국민모임 후보와 이상규 후보, 여기에 새정치연합 후보가 뛴다면 철저하게 지역 골목선거를 기획하고 활동 중인 오신환의 무난한 당선을 새누리당은 기대하고 있다. 결국 지난 순천 선거와 마찬가지로 친노 후보를 내세운 새정치연합이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에게 패한다면 지난 1988년 선거 이후 단 한번도 빼앗기지 않은 수도권 텃밭도 새누리당에게 내주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광주 서을… 오늘 드디어 광주정치 복원을 내세운 천정배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를 사실상 선언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경선 후 후보를 내세울 것으로 천명하고 있으나 천정배 대항마로 나오는 후보는 고전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호남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인데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문재인이 권리당원 투표에서 나타난 당심도 호남의 비토기류를 알 수 있다. 때문에 호남정치 복원이란 천 전 장관의 이슈선점은 상당한 파괴력을 보일 것이다.

여기다 만약, 천 전 장관 측과 새정치연합 흔들기에 손발을 맞추기 위하여, 정동영 전 장관 등이 가세한 국민모임이나 정의당이 후보단일화에 합의한다면 천정배 시민단일후보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단일후보와 새정치연합 후보의 야권 적자 싸움이 선거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이 선거는 전국적 관심을 끌 것이다.

만약 정의당 측이나 국민모임 측이 후보를 낸다고 해도 시민단체 연합이 추대하는 시민후보 자격만 획득한다면 야 3당 후보를 이기는 무소속 후보가 되어 천정배는 날개를 달게 될 수도 있다. 그가 원하는 호남의 확실한 포스트DJ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결론… 결국, 어떤 식이든 천정배의 무소속 출마는 새정치연합에게 악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광주까지 새정치연합 후보가 패했을 때 새정치연합의 위상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며 내부균열도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당장 새정치연합에서 현역의원 탈당 러시가 일면서 깨질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문재인 체제 출범이 불과 2달 남짓이고 여론조사상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문 대표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10월 재보선이 마지노선이다. 현재 법원의 판결에 의해 궐위가 예상되는 기초자치단체장 지역은 호남지역만 광주동구, 전남장흥, 전남장성, 전북남원, 전북순창 등 5군데이며 그 외 여타지역도 상당수 궐위 지역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지역 중 9월 30일 이전에 대법원에서 직위 상실형이 확정되면 10월 재보선 지역이 된다.

그런데 호남 선거에서 특정한 위력을 보이지 못하는 새정치연합이라면 전국적으로는 더욱 힘든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이들 선거에서 전패한다면 새정치연합은 존재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권 당시 보궐선거 44:0이 곧 열린우리당 붕괴를 부른 것처럼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붕괴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천정배의 탈당 사실상 선언은 문재인 체제의 제1야당이 험곡을 가야 한다는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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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1호기 수명연장? 우리가 와 이래야 하노"

 

[현장]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집회 열고 강하게 반발... 한수원은 가동 준비

15.03.04 21:35l최종 업데이트 15.03.04 21: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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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심 쌓인 원전 인근 주민 월성원전 인근 봉길마을 한 주민이 3일 오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열린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에 대한 항의 집회에서 비를 맞으며 바닥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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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수명 연장에 안녕하십니까?' 3일 오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한 지역 주민이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항의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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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연장은 파국의 지름길, 월성1호기 살리지 말고 주민 목숨 살려내라."
"수명연장 하려면 지역주민 생계대책부터 세우고 하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있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주민 70여 명이 3일 오후 월성원전 북문(정문) 앞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징과 꽹과리를 치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를 어설프게 따라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평생을 봉길리에서 농사 짓고 고기 잡으며 살았다는 이순연(82)씨는 "와 우리가 비 맞으면서 서럽게 울부짖어야 되노"라며 고함을 질렀다. 주민들은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을 반대한다며 붉은색의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었다. 

노국자(80)씨와 김혜련(67)씨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일방적으로 안전성에 문제없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믿겠나"라며 "주민들을 무시하는 수명연장에 우리들은 무조건 반대한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 월성1호기 수명연장 반대하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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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1호기 연장 운영에 '뿔난' 주민들 3일 오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항의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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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을 무시하지 말라!" 3일 오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항의 집회를 열고 수명연장결정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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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달 27일 오전 1시 야당 추천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을 결정하자 월성원전 주변의 주민들은 매일 집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남면 봉길리 주민들로 구성된 '봉길리 월성1호기 수명연장 반대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6일부터 매일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월성원전 북문에서부터 마을 입구인 청정누리공원까지 약 500m 거리행진을 벌이며 생계대책을 요구했다.

마을주민들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봉길리에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으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이후에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20년이 넘도록 봉길리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혜련씨는 "조상 대대로 이 동네에 살았는데 원전뿐만 아니라 방폐장을 짓고부터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다"고 울먹였다.

김남용 '봉길리 월성1호기 수명연장 반대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원안위가 수명연장을 결정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원안위가 충분하게 심사하지 않았고 부적격한 위원을 참여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개정된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주민의견을 수렴해야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원안위가 떳떳하다면 왜 한밤중에 연장안을 통과시켰겠느냐"며 "수명연장 결정을 4~5개월 늦춘다고 해서 전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의혹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안위가 한 결정은 시험문제를 직접 출제하고 답을 작성하고 체점까지 혼자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성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원전 주변은 죽은 도시, 이주대책 세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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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1호기 쳐다보는 주민 월성원전과 맞붙어 있는 나아리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3일 오후 경북 경주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의 (오른쪽부터) 월성1,2호기를 바라보고 있다. 월성1호기는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수명연장결정을 해 2022년까지 운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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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지난해 8월 25일부터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양남면 나산리·나아리 주민 10여 명은 월성원전 남문 앞 농성장에 모여 원안위와 한수원을 성토했다. 김정섭(70) '나아·나산이주대책위' 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기 전에는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지만 지금은 죽은 도시가 되었다"며 "10가구 중 2가구 정도만 불이 켜져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집을 팔려고 해도, 전세나 월세를 내놓아도 나가지 않는다"며 "마을을 황폐화시킨 원인 제공자인 한수원이 우리 재산을 인수해주고 우리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산리에 사는 김해준(72)씨는 "원전이 들어올 때 우리는 방사능이 뭔지도 모르고 위험한지도 몰랐다"며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난 후에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다, 월성원전은 중수로이기 때문에 경수로 원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은 월성 2, 3, 4호기의 수명연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리는 생계대책도 필요 없고 오로지 안전한 곳으로 이주해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집은 여기서 5대째 살았는데 원전이 들어서면서 토지를 강제수용 당했다"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지키고 싶었지만 더 이상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제발 우리가 원전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914m밖 주민들에겐 아무 보상도... 우린 물고기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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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폐쇄 촉구 나선 주민들 3일 오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항의 집회를 열고 수명연장결정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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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원자력발전소법에 따르면 주민들의 거주 및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경수로 원전의 경우 원전에서 500~700m, 중수로의 경우 914m 밖에 울타리를 치도록 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법이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진곤 양남농협 조합장은 "914m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방사능에 오염되고 915m에 있는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느냐"며 "한수원은 엉터리 법규를 가지고 주민들의 이주대책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리의 한 주민은 "월성원전에서 원전 반경 8km 이내의 바다 어장과 어업권은 보상하면서 914m 밖의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우리들은 물고기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마을주민 대부분은 원전의 수명 연장에 반대한다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원전 앞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동경주(양남, 양북, 감포) 주민들로 구성된 '월성1호기 동경주 대책위원회'도 3일 오전 경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허가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새벽 1시 날치기 통과를 한 것은 우리 주민들을 향한 엄중한 도발"이라며 "원안위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고의적으로 박탈하고 위법한 절차로 표결을 이끌었다"고 비판한 뒤 표결에 참여한 원안위원 7인의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원안위의 결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월성1호기의 가동을 곧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수원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월성1호기의 안전성이 확보돼 있다고 보고했고 원안위가 이를 인정한 것"이라며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추가 보상도 협의할 것"이라며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발전도 주민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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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행사,7년만에 성사될 것인가?

 
 
<분석과전망>6.15공동위, 3자연대사업으로 "자주통일 대통로 열 것"
 
한성(자주통일연구소) 
기사입력: 2015/03/04 [18:33]  최종편집: ⓒ 자주일보
 
 

 

 

 

 

 

6.15공동위,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 결의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6.15공동위)가 결성 10주년을 맞아 4일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6.15공동위는 2005년 3월 4일 금강산호텔에서 6.15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와 6.15북측위원회(위원장 김완수), 6.15해외측위원회(위원장 곽동의)를 구성으로 해 출범한 통일운동 3자연대기구이다. 

 

6.15공동위의 공동결의문 발표는 올해 3자연대 통일사업의 첫 출발을 떼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공동결의문은 크게 세 가지의 결의로 구성되어있다. 

 

“7.4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을 민족공동의 통일헌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들고 앞장에서 실천해 나갈 것”

첫 번째 결의이다. 7.4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을 민족공동의 통일헌장으로 규정한 것은 통일운동이 견지해야할 원칙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재확인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다. 7.4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 등은 박근혜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도 직접 적시되어있는 것들이다. 

 

두 번째 결의는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주동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

현 정세에 대한 임무와 과제를 밝힌 것으로 된다. 

 

이를 위해 6.15공동위는 “겨레의 지향과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든 대결적 군사행동을 단호히 저지하기 위한 전 민족적인 전쟁반대, 평화수호운동을 보다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기어이 열어 나갈 것”이 세 번째 결의이다.

구체적인 사업과 활동에 대한 기조와 상을 제시한 대목이다. 

 

6.15공동위는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가는 데에서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5돌과 조국해방 70돌에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언론인, 종교인을 비롯한 계층별, 부문별, 지역별 단체들 사이의 왕래와 접촉, 통일회합과 협력교류를 활발히 벌여 나갈 것” 등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개최’한다는 것은 당연히 돋보인다.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로 표현되고 있는 민족공동행사는 6.15공동위와 서로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통일운동 3자연대기구의 속성이다.

 

6.15공동위는 2005년 출범한 이래 해마다 3자연대기구답게 민족공동행사를 치루어냈다. 그렇지만 2008년으로 끝이었다. 남측 정부가 남측에서의 공동행사는 물론 북측에서의 공동행사도 불허를 했던 것이다. 그 이후 6.15공동위의 민족공동행사는 없었다. 무려 7년 동안이었다. 

 

민족공동행사 성사로 정세돌파를 

 

통일운동진영에서는 연초 올해 민족공동행사 성사에 대한 큰 기대를 가졌다.

북측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조가 어느 때보다 컸다. 박근혜 정부 역시 여기에 화답하는 태세가 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남북관계 개선 흐름에 대해 미국이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찾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초부터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하는가하면 직접적으로 언론에 나서서는 북한 붕괴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이어 수많은 미국고위관리들이 방한을 했다. 한결같이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미 고위관리들의 모든 방한 행보는 박대통령의 대북접근 기조를 ‘북한 비핵화’에 맞추어지게 하는 것들이었다. 

1월 말 방한한 웬디 셔먼 정무차관에게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비핵화가 최우선 과제(first priority)”라고 했다. 그리고 대북정책 관련한 한미공조는 ‘빛 샐 틈이 없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에 복무하는 남북대화’. 박대통령의 대북접근에 대한 기조를 셔먼 차관은 그렇게 잡아주었던 것이다.

 

남북대화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북한의 개방까지를 주문하는 박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셔먼 차관을 통한 미국의 의지가 우리정부에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통일운동진영에서는 이러한 정세에 대해 그러나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안 좋은 정세가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를 어렵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한다. 투쟁을 해야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지만 통일운동진영은 안 좋은 정세를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켜야할 결정적 이유로 설정을 한다. 민족공동행사 성사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한 것이다. 박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접근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적극적인 대남접근에 대해 종합적으로 실천적 주목을 돌리게 될 때 도달하게 되는 실천적 귀결이 이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올해 통일운동사업의 기조에 대한 문제이다.

 

현 시기 정세를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통해 돌파할 것으로 규정한 것에 따라 통일운동진영은 투쟁보다는 행사성사에 압박보다는 견인에 정치행사보다는 문화예술행사에 방점을 찍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축구를 통해 남과 북이 만나려고 할 것이다. 청년들은 농구로 만나려고 할 것이며 학생들은 민족역사기행길에서 함께하려고 할 것이다.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는 일본강점 피해자들도 함께 만나 민족공동행사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 15주년이 되고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에 문화체육예술 분야에서 각계각층의 접촉과 교류를 실현해내고 민족공동의 통일축전들을 서울과 평양 등에서 벌여내려 할 것이다.

 

이 모든 것, 미국이 아니라 박근혜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민족공동행사, 과연 7년만에 성사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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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위 10주년, "자주통일 대통로 열 것"

6.15공동위 10주년, "자주통일 대통로 열 것"6.15남.북.해외위 결의문, 올해 6.15, 8.15통일대축전 개최 (전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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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4  1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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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 10주년을 맞아 4일 공동결의문을 발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기어이 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6.15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과 6.15북측위원회(위원장 김완수), 615해외측위원회(위원장 곽동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 내외의 분열세력들에 의해 남북선언들이 부정되고 그의 소중한 결실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면서 3가지 결의를 내놓았다.

먼저, “ 7.4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을 민족공동의 통일헌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들고 앞장에서 실천해 나갈 것”이라면서 “남북사이의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전개하며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좋은 합의들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고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도록 계속 앞장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부정하고 비방중상하는 체제대결을 배격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는 온갖 적대행위와 외세의 부당한 간섭행위들을 단호히 저지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주동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며 “겨레의 지향과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든 대결적 군사행동을 단호히 저지하기 위한 전 민족적인 전쟁반대, 평화수호운동을 보다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 땅에서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고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줄기차게 벌여 나갈 것”이라면서 “우리 민족과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식민지침략행위를 미화하고 군사대국화로 줄달음치는 일본 정부에 경종을 울리며,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과 영토 침탈, 재일동포에 대한 민족차별 중지 및 과거사 사죄와 청산을 위해 전민족적 운동과 국제연대활동을 앙양시켜나갈 것”이라고 특별히 언급했다.

세 번째로,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기어이 열어 나갈 것”이라며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5돌과 조국해방 70돌에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하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언론인, 종교인을 비롯한 계층별, 부문별, 지역별 단체들 사이의 왕래와 접촉, 통일회합과 협력교류를 활발히 벌여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6.15남측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6.15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는 6.15민족공동위원회 결성 1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결의문>을 오늘 오전 11시에 발표하기로 합의했다”며 “<공동결의문> 일부 표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 2005년 3월 4일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금강산호텔에서 결성식을 갖고 출범했다. 왼쪽부터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곽동의 6.15해외측위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005년 3월 4일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갖고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와 6.15북측위 안경호 위원장, 6.15해외측위 곽동의.문동환 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출범했으며, 2008년까지 6.15, 8.15 계기 민족공동행사와 부문별 공동행사 등을 주최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에서 6.15 민족공동행사를 가진 후 남측 정부가 공동행사를 불허해 7년째 민족공동행사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결성 10돌에 즈음한 공동결의문(전문)>

조국광복 70돌과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이 되는 뜻깊은 올해를
자주 통일의 대통로를 여는 역사적 해로 빛내어 나갈 것이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장엄한 전성기가 펼쳐지던 2005년 3월 4일,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올해로 10년을 맞고 있다.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결성은 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지켜가려는 해내외 온 겨레의 강렬한 지향과 의지가 만들어낸 자랑스런 결실이며 민족의 대단합과 조국통일운동을 보다 높은 단계로 올려 세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과 북, 해외에서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각 정당들과 각계층 단체, 인사들을 광범하게 망라한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남북선언이행은 명실공히 전민족적 운동으로 힘있게 전진시켜나갈 수 있게 되었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결성 이후 남, 북, 해외의 공동통일행사들과 다양한 연대활동들을 통하여 6.15통일열풍을 세차게 일으켜왔으며, 남북선언들을 이행해가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고비고비마다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 역할을 감당해왔다.
오늘 내외의 분열세력들에 의해 남북선언들이 부정되고 그의 소중한 결실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으며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열어놓은 하늘길, 땅길, 바다길이 모두 막히고 격폐와 대결의 장벽이 날로 높아가는 속에 전쟁의 불안은 더욱 더 짙어가고 있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지난 10년간 걸어 온 투쟁 노정을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돌이켜보면서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뜻 깊은 올해에 반드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놓을 비상한 각오와 의지를 안고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7.4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을 민족공동의 통일헌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들고 앞장에서 실천해 나갈 것이다.
7.4공동성명이 천명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과 남북공동선언들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과 요구가 응축되어 있으며 이미 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애국애족의 기치이다.
남북 사이의 신뢰의 기초도 대화와 관계개선도 바로 이를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는 남과 북, 해외의 온 민족이 뜻과 힘을 합친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강한 민족적 자존심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는 6.15 정신으로 조국통일문제를 민족공동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풀어나가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다.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해내외 각계층과의 대단합, 대단결을 적극 추동하며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남북선언들을 철저히 고수하고 이행해 나갈 것이다.
남북사이의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전개하며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좋은 합의들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고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도록 계속 앞장에서 노력할 것이다.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부정하고 비방중상하는 체제대결을 배격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는 온갖 적대행위와 외세의 부당한 간섭행위들을 단호히 저지시켜 나갈 것이다.

둘째,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주동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
해마다 벌어지는 각종 대결적 군사행동으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가 되었고 대결의 악순환속에서 민족의 운명은 엄중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며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이 겨레의 한결같은 요구이다.
우리는 겨레의 지향과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든 대결적 군사행동을 단호히 저지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전쟁반대, 평화수호운동을 보다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다.
민족성원 모두가 평화의 주인, 통일문제 해결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이 땅에서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고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줄기차게 벌여 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과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식민지침략행위를 미화하고 군사대국화로 줄달음치는 일본 정부에 경종을 울리며,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과 영토 침탈, 재일동포에 대한 민족차별 중지 및 과거사 사죄와 청산을 위해 전민족적 운동과 국제연대활동을 앙양시켜나갈 것이다.

셋째,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기어이 열어 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의 기치 아래 굳게 뭉쳐 조국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것처럼 6.15의 정신으로 단결한다면 얼마든지 분단의 8.15를 통일의 8.15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지난 시기 해내외의 각계층 단체들과 함께 주동적인 활동으로 남북사이의 대화와 관계개선에 도움을 준 많은 전례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5돌과 조국해방 70돌에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하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언론인, 종교인을 비롯한 계층별, 부문별, 지역별 단체들 사이의 왕래와 접촉, 통일회합과 협력교류를 활발히 벌여 나갈 것이다.
우리는 6.15민족공동위원회를 결성하던 역사의 현장에서 뜨겁게 분출된 그 열정과 기개, 그날의 결의대로 뜻깊은 올해를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는 일대전환의 해로 빛나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2015년 3월 4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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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뉴스는 새장 속에 갇혀있으면 안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독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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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상암 신사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중구 순화동의 중앙일보 건물이 오랜 역사를 지닌 신문사의 유산이라면, 지상 21층, 지하 6층 신사옥은 미디어 그룹으로서의 JTBC의 야심이다. 상암은 일종의 미디어 전쟁터다. 시간이 남아 신사옥 앞 커피숍에서 잠시 질문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주변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논현역 주변의 커피숍 테이블에서 부동산 이야기가 오가고, 대학가 주변 커피숍 테이블에서 취업 이야기가 오가듯이 말이다.

신사옥의 가장 핵심인 뉴스룸에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손석희가 있다. 손석희가 JTBC 뉴스룸 앵커이자 보도, 시사, 교양 총괄 사장이 되자 사람들은 환호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집요하게 보도해 닉슨을 사임시킨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를 거론하며 새로운 뉴스를 기대했다. 혹은, 손석희가 중앙이라는 거대 미디어 그룹의 얼굴 마담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났다. 손석희와 뉴스룸은 세월호 참사를 지나오면서 한국 뉴스의 어떤 기준이 됐다. 놀라운 일이라고? 때로는 단 한 명의 리더가 업계의 기준을 새롭게 창조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손석희에게 묻고 싶은 것은 (꽤나 거창하게도) 뉴스의 미래였다. SNS의 시대에 뉴스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우리는 집단지성의 정화 작용을 믿을 수 있는가? 새로운 플랫폼이 난립하는 시대에 뉴스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레드 제플린에 대해서도 물었다. 손석희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레드 제플린의 Since I've Been Loving You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Working from seven to eleven every night, It really makes life a drag, I don't think that's right(아침 일곱 시부터 매일 밤 열한 시까지 일합니다. 그게 제 삶을 지치게 합니다. 옳지 않은 일이에요).

인터뷰의 시작은 손석희의 하루 일과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의 일과는 정말이지 옳지 않았다. 하지만 손석희는 "바쁘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는 말로 그 부분은 싣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가지는 살짝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남자의 일과는 시작부터 끝까지 뉴스로 가득하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손석희는 뉴스다. 글 - 손미나, 김도훈, 강병진 | 사진 - 오계옥

 
 

-뉴스룸의 전체 인원은 몇 명인가요? 매일 탐사 취재도 내보내던데 인력이 빠듯하진 않나요?

=120명 정도입니다. 굉장히 적습니다. 다른 공중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인데 뉴스를 100분 한다니까 놀랄 일이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 다른 거대 공중파에는 거품이 많다고 봅니다. 탐사 취재팀은 여섯 명입니다. 사실 이것도 기절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뉴스룸에는 없는 ‘취재작가’라는 직책이 있는데, 그들이 또 여섯 명 있습니다. 그러니 한 팀당 둘이 하는 겁니다. 탐사 플러스가 일주일에 네 번인데, 죽도록 돌아가는 겁니다. 사실 좀 무리이긴 합니다.

-뉴스룸을 지나치며 보니 평균적인 나이가 젊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JTBC는 시작하는 신생 방송사니까 나이 든 사람들이 와서 하긴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경력 기자를 모집할 때도 젊고 열심히 뛸 사람들을 모아 냈겠죠.

-젊은 뉴스룸의 장단점이 있나요.

=결혼식이 많습니다(웃음). 그래서 축의금이 많이 나갑니다. 아무튼 젊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조직에 여러모로 좋습니다. 경험이 적다고 하지만 저는 반대로 봅니다. 잘못된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뉴스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지금 시대에 '뉴스'가, 특히 '방송뉴스'가 처한 현실에 대한 판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뉴스를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뉴스룸'을 100분으로 늘리자고 처음으로 제안했던 건 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보도국의 오병상 보도총괄 겸 국장이었습니다. 그 제안을 듣고 한 달 정도 고민하면서 한 편으로는 우리 역량 평가를 나름대로 해본 결과 결론은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작환경을 몇 가지 개선한다는 전제하에 추진했습니다. 아무튼 그건 기술적인 문제에 속하는 고민이었고, 그렇다면 '뉴스룸'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 필요하겠지요. 이건 재작년에 '뉴스9'을 새롭게 출범시켰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낮 동안 이미 뉴스를 다 소비한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우리만의 뉴스를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다른 채널들이 이미 상당 부분 연성화된 뉴스 아이템들을 일렬로 나열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차별화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는 그래서 나온 겁니다.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우리 뉴스의 컨셉은 ‘뉴스를 넘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뉴스는 관행적으로 행해 온 뉴스를 말합니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기존의 뉴스 문법을 넘어보자는 것이지요.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 그리고 기존 뉴스의 문법을 넘어서는 뉴스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특히 뉴스의 형식적인 변화에 있어서요.

=주로 전달의 방법상에 변화가 많이 있었던 편입니다. 오늘 뉴스에는 토론이 들어가는데, 뉴스에 토론이 들어가는 경우는 잘 없죠. 하지만 우리는 합니다. 시간의 절반 이상을 터서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고, 리포트로 담아낼 수 없을 경우에는 인터뷰를 통해서 담아냅니다. 사실 기존의 뉴스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잘 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50분 뉴스에 많은 종류의 뉴스를 넣어야 하는 탓에 집중해서 한 아이템에 더 깊이 들어가기 어려운 형식적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모든 뉴스를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뉴스는 분명히 있다는 말을 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방법론은 토론이 될 수도 있고, 인터뷰가 될 수도 있고, 탐사취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탐사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적은 인원에 그 정도의 성과물을 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봐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겠지만, '뉴스룸' 방영 시간이 늘어나서 탐사 보도를 늘리신 건가요, 아니면 탐사 보도를 위해서 시간을 늘린 건가요?

='탐사 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이 원래 따로 존재했습니다. 사실 탐사보도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점점 없어져 가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보도국에서 탐사보도가 없다는 것은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순전히 시장 논리에 의해서 보도 논리가 굴러가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널리즘의 최소한을 지키려면 탐사보도가 있어야 했고, 그래서 '탐사 플러스'를 진행해왔습니다. 만약 '뉴스룸'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탐사플러스'는 계속했을 겁니다. 원래 '뉴스룸'의 2부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가져갈 생각이었습니다. 내내 토론을 해도 좋고, 한 사람과 계속 인터뷰를 해도 되고, 또 기자들이 탐사제작물을 만들어오면 길이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내보낸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요일별로 구성할 생각도 없이 정말 자유롭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력의 제약 때문에 탐사물은 일주일에 끽해야 두세 개가 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막상 '탐사플러스' 코너를 시작하니까 이 팀에서 계속 만들어오는 겁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계속 만들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횟수를 두 번으로 줄이면 더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죽도록 해서 또 가져옵니다. 그러니 매일 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빠지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 겁니다. 이 팀은 남들이 보면 약 먹고 뛰는 것처럼 뜁니다.

-그렇게 죽도록 뛰는 이유가 뭘까요.

=본인들이 알 겁니다 그건.

-하지만 특별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닐까요.

=저는 장을 마련해줬을 뿐입니다. '탐사플러스'가 방송이 나가면 반향이 있습니다. 어쨌든 핫한 이슈를 다 취재하고,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면 문제의 개선으로 실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것으로부터 기자들이 동기부여를 받을 겁니다. '탐사플러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꼭지도 다 마찬가집니다. 김필규 기자의 '팩트체크'도 그렇습니다. 제가 생방송에서 가끔 놀리기도 하지만 너무 열심인 게 좋아서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오 분에서 육 분 정도 진행되는 밀착 카메라 코너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탐사 플러스처럼 만듭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대단히 강합니다. SNS에서도 많이 회자가 되고요. 거기서 오는 동기부여가 있을 겁니다. 새로 생긴 '뉴스키워드' 코너는 제가 좀 살살하라고 말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듣질 않아서 저렇게 얼마나 갈까 걱정할 때도 있지요.

-'뉴스룸'을 런칭할 때, 레퍼런스가 된 해외의 뉴스프로그램이 있었나요?

=특별히 프로그램 전체의 컨셉을 참고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코너, 예를 들면 ‘팩트체크’ 같은 코너는 미국 방송이나 신문에도 있습니다.

-혹시 아론 소킨의 미드 '뉴스룸'이 어떤 레퍼런스나 영감이 된 부분이 있나요? 이름도 비슷할 뿐 아니라, 종종 음악 사용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보여서 재미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없습니다. 그 드라마는 첫 회를 10분 정도만 봤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원래 이쪽 업계 얘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보지 않습니다. 자꾸 현실과 비교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리얼리티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반감만 생기거든요. 그 드라마와 제목이 같게 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보도국에 제목을 공모했을 때 ‘뉴스룸’이란 의견이 제일 많았습니다. 또 외국 방송 뉴스에도 ‘뉴스룸’이란 제목은 이미 몇 개가 있습니다. 음악은 뭘 말씀하시는지 제가 알지 못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그 드라마를 안 봤기 때문에.... 아무튼 저는 그 드라마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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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이 SNS상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를 발굴하고 전하는 입장에서 'SNS'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은 받을 때는 좀 고민을 하게 됩니다. SNS를 무시하자니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추켜세우자니 위험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정리하자면, SNS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뉴스 콘텐츠도 가능한 한 거기에 실으려고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결국엔 SNS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뉴스는 실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뉴미디어만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믿는 쪽은 아닙니다. 또한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계획해서 전력투구로 취재한 내용만 SNS에 실리는 것은 아닙니다.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속하는 엉터리 얘기들도 무궁무진하게 돌아다니니까요. 그것이 이른바 집단지성으로 교정된다고는 하지만 그런 얘기하기에는 너무 한가할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또한 극단적인 진영논리를 전파하고 그것을 수익모델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도 SNS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니까 사실은 우려되는 바가 더 큽니다.

-집단지성의 교정이라는 말이 한가롭게 느껴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번 잘못된 정보가 올라가면 수정까지 시간 차가 생깁니다. 한 시간이든 하루든, 더 긴 시간이 됐든 말입니다. SNS의 전파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한 시간과 지금 SNS의 한 시간은 차이가 납니다. 한 시간이면 이미 잘못된 정보가 다 퍼진 다음이고, 교정해 봐야 늦습니다. 그 시차에서 생겨난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까요. 그런 점에서의 위험성을 이야기한 겁니다. 많은 진보적인 SNS 이용자들이 집단지성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저는 앞에서 말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피해가 난 상황에서는 정정 보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오보는 쉽게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에서의 위험성은 늘 상존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뉴스룸'을 기획하면서 SNS의 존재에 대해 고려했다면, 그 고민이 '뉴스룸'에 담겨있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당연히 고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뉴스는 거의 모든 포털과 팟캐스팅 등을 통해 전달되고, 그것이 다시 클립으로 나뉘어져 SNS를 통해 확산됩니다. 일반적인 뉴스 아이템도 그렇지만 '뉴스룸' 만의 코너들은 SNS에서 공유하기에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뉴스키워드’, '탐사 플러스'등이 모두 그런 고민을 담은 코너들입니다. 또 빅네임들이 많이 나오는 인터뷰 코너 역시 마찬가지구요.

-'뉴스룸'은 지난 2013년 10월부터 네이버와 다음을 통해서도 생중계를 해왔습니다. 보도부문사장으로서 뉴스의 유통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자사의 온라인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 사이트의 채널을 이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뉴스가 처한 상황을 생각한 듯 보입니다.

=자신의 플랫폼을 뛰쳐나간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존의 방송이나 신문들은 거대 포털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든 작든 있습니다. 결국엔 다 뺏기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희 입장에서는 기존의 플랫폼에 갇혀 있는 한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저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만든 뉴스를 새장 속에 갇혀있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밀어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서 거의 모든 채널이 따라왔습니다. ‘다음’과는 공감뉴스라는 스페셜 페이지까지 만들어서 앞서갔지만 그것도 지금은 공중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왔습니다. 포털들도 다른 거대 방송사나 종편들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괜히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바일이든 온라인이든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해 '버즈피드', '복스' 같은 새로운 온라인 뉴스 매체도 평소에 접하는 편인가요? TV 뉴스를 오랫동안 만든 입장에서 볼 때 이 매체들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허핑턴포스트는 가끔 들여다보지만 다른 매체들은 잘 모릅니다. 솔직히 그럴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새로운 온라인 매체들이 기존 프린트 매체들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작년 허핑턴포스트 출신의 마케터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변화의 일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커다란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온라인 매체들과 방송 뉴스가 어떤 형태로든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온라인 매체들이 기존 프린트 매체들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다고요? 벌써요? 물론 저는 SNS라든가 새로운 미디어에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믿긴 하지만 과대평가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젊은 세대층에선 그럴지 모르지만....글쎄요... 전 세대에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 협력한다는 건 말로는 쉽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논의해보면 또 길이 보이겠지요.

-TV를 중심으로 한 뉴스 미디어 역시 상황은 바뀌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TV 뉴스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어떻게 바뀌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너무 뉴미디어 지상주의적인 질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전달방식이 변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습니다. 어찌 보면 기술적인 문제들이란 얘깁니다. 거기에 대해 지나치게 치중해서 얘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허핑턴포스트'의 입장에선 그렇게 얘길 진행하고 싶어 하실진 모르지만... 다만 질문을 하시니 한가지 우려되는 부분만 짚어보자면 이렇습니다. SNS로 뉴스를 접할 경우 취사선택이 가능합니다. 즉, 텔레비전처럼 꾹 참고 50분 이상을 기다리면서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뉴스 꼭지들이 살아남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되면 될수록 뉴스는 흥미위주이거나 자극적인 아이템들이 더 극성을 부릴 것이란 점입니다.

-하지만 개개인에 따라서 더 알고 싶은 뉴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허핑턴포스트'처럼 SNS를 기반으로 한 매체가 독자들에게는 뉴스를 섭취하는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신문은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취사선택해서 보죠. 안 보고 싶은 뉴스는 안보니까요. 기존 방송 뉴스는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더 싣고 싶어도 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걸 기다리면서 봐야 합니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뉴스들은 시간도 공간의 제약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마음껏 뉴스를 취사선택합니다. 물론 그런 장점은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대로 뉴스를 본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뉴스들이 꼭 이용자들에 의해서만 최종 선택되는 건가요? 매체가 특정한 방향의 뉴스만 독자들이 선택하도록 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허핑턴포스트코리아'도 에디터들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인터넷 뉴스의 부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게 시장논리와 맞물리면서 더 부정적인 부분이 도드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거기까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 해결책은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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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시하거나, 당부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센세이셔널리즘은 안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방송한다. 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당부하기 전에 이미 우리 기자들이나 제작진이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참사 직후 팽목항에 각 언론사 중계차들이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잡아낼 수 있는 길목에 모두 모여 있었는데 실종자 가족들이 구급차가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답니다. 그때 부탁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그 자리를 피해 외곽 주차장으로 옮긴 것이 JTBC 중계차였습니다. 현장 PD가 그렇게 결정한 겁니다.

-2014년 4월 21일, '뉴스9'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인 김모씨와의 인터뷰를 연결하려던 도중 그분 따님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비보를 들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참으려 애쓰던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달됐습니다. 그날 방송을 끝낸 후에 생각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재난방송을 했는데 때로는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완전히 담담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두어 번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의 대부분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제가 나이가 들어서입니다.

-예전에는 지나치게 담담하고 냉정하다는 평을 들었던 이유가 뭘까요.

=감정이입이 덜 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컨트롤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겠지만 굳이 컨트롤하려 하지 않아도 감정이입이 안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재난 방송을 워낙 많이 했는데, 예전에는 어쨌든 방송을 사고 없이 잘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진 게 아닌가 합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나이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세월호' 보도에 대해 한 강연에서 "'의제 설정'에서 '의제 유지'로 변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주체적으로 유지하는 미디어의 의지가 대중의 인정을 못 받으면 그 미디어는 외면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뉴스룸'이 유지하고자 하는 의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 건가요?

=뉴스 프로그램들은 수없이 많은 단편적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 따져볼 겨를을 주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이슈’에 대한 기준은 명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깊이, 그리고 다각적으로 고민해 봄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이슈들입니다. 많은 시청자를 갖고있는 힘 있는 뉴스 프로그램들이 의제설정을 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도 굉장한 힘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군소 뉴스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제를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그 의제의 중요성을 천천히라도 공감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는 대표적인 것일 테고,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갑을관계 등에 대한 보도가 모두 그랬습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상을 보도할 때도 '뉴스룸'은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동영상을 그대로 방영하지 않고, 정지화면을 쓰는 등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든 그런 경우에 동영상을 그대로 방송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영상이 도착했을 때 저는 진도에서 방송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서울 본사에서도 그 문제로 의견이 좀 갈렸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곧 동의해줬습니다. 모두 여덟 번의 동영상을 방송했는데 그때마다 정지화면으로 냈습니다. 아마 처음에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부모님들이 저희들에게 동영상을 가져다주셨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방송한 동영상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희들에게 도착한 동영상이 더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방송을 내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뉴스들은 저마다 자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크게 바뀐 것은 없는 듯한 인상입니다.

=보통 그런 계기가 있으면 말들은 쉽게 합니다만 그럴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일상의 보도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고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드느라 바쁘고, 타사와의 경쟁에 매몰되고, 그래서 차분히 앉아서 변화를 철학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인력이 늘고 여유가 늘어나면 가능한 일일까요?

=여유가 생길 정도로 뉴스 인력을 만들어 주는 회사는 없습니다. 일부 있긴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도록 하지도 않고 해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세월호 당시에 다이빙벨 관련 보도로 논쟁 속에 있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에선 중징계도 내렸고...

=심의에 대해선 굳이 더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이빙벨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매우 간단하고도 분명한 것입니다. 참사 발생 이후 우리가 구조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없지 않나요? 골든타임이라고 불리는 그 시간에는 특히 그랬습니다. 해경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 몇 사람을 구한 것 외에는 배 주변을 빙빙 돈 것이 다였습니다. 심지어는 해경이 부른 구난 업체인 언딘의 기술이사가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랬습니다. 그날 밤 자정이 될 때까지 배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업체가 사람 구조하는 업체가 아니라는 걸 명백하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와 첫 인터뷰 했던 희생자 아버지는 ‘언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기에선 지금 구조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절규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입니다. 이종인씨가 있던 '알파잠수'는 해경의 구난등록업체에 엄연히 올라있는 업체입니다. 오히려 해경이 부른 '언딘'이 그 목록에는 없었습니다. 다이빙벨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잠수장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종인씨는 우리 방송에 처음 출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인터뷰 대상으로 섭외한 것은 이런 걸 다 고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다이빙벨이 실패함으로써 논란이 더 커진 것 아닌가요?

=대안을 제시한 것과 결과적으로 성과를 못 낸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당시 해군이 투입했던 원격수중탐색장비(ROV)를 비롯해 별 성과를 못 낸 장비가 한 두 개인가요? 게다가 다이빙벨이 성과를 못 낸 이유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 않습니까? 다이빙벨 때문에 구조작업이 더뎌졌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는 모양인데, 아까 말했듯이 인명 구조작업은 당초부터 이뤄지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더뎌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당시 구조에 실패했던 당국이나 주로 SNS에서 활약하는 일부 사람들은 희생양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영화 다이빙벨은 보셨는지?

=보지 않았습니다. 굳이 안 봐도 당시의 상황은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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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런칭할 당시, 허핑턴포스트 본사에서 말해 준 이 매체의 주요한 철학 중 하나는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강력하게 한 편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였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뻣뻣하게 ‘매체의 중립성’을 요구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것은 많은 매체들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을 쏟아내는 한국 매체 시장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알랭 드 보통과 인터뷰했을 때 그가 바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뉴스에도 ‘좋은 편향성’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다른 매체들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좋은 편향성’의 기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아까 ‘의제 유지’에서 말한, 좋은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정도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좋은’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시민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그 정도로 하지요. 다 알잖아요.

-앵커 브리핑 코너는 어떤 이유로 기획하신 코너인가요? 이 코너에서 전하는 내용은 전적으로 본인의 판단과 생각이 담긴 부분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앵커브리핑인데 앵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나요?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좀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제 나간 뉴스 중에서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브리핑이란 형식을 통해 소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하고 보니 그렇게 가볍게 되지가 않았습니다. 좀 고민이긴 합니다. 앵커가 자기 의견을 집어넣은 코너를 갖고 있는 것은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고 때로는 좀 위험하기도 합니다. 원래 저는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았구요. 그러나 지금은 이를테면 기호지세랄까... 관심들을 많이 가져주셔서 그만두기도 좀 어려운 형국이 됐습니다. 한 가지 위안을 삼는 것은, 결국 매우 상식적인 차원에서 시청자와 공감할 수 있는 정도의 앵커브리핑이라면 그것이 꼭 앵커의 사견 수준으로 폄하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건사고 뉴스들은 점점 참혹해집니다. 성폭행, 자살, 살해와 관련된 뉴스들은 제목부터 자극적일 수밖에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그만큼 많은 화제를 일으킵니다. 트래픽이 많이 나오는 기사들이기 때문에 허핑턴포스트도 이런 기사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편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사고기사에서 어떤 기준으로 보도 내용을 선정하나요?

=자살 관련 소식은 많이 자제하는 편입니다. 이 문제로 편집회의에서 토론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폭행을 비롯한 자극적인 사건사고 소식은 아마 저희만큼 자제하는 곳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뉴스뿐 아니라 저희들은 가급적 개인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개인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면 그 개인의 문제가 시스템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때입니다. 아, 물론 모든 경우에 완벽하게 이런 기준을 적용할 수 없을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인 편집방향은 분명히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의 경우 그 개인의 문제에 빠져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불법적으로 수집되었는가에 더 집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병언 씨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 개인 문제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까 말씀드린 방향으로 대부분 국한시켰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구글 강연에서 ‘뉴스는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최근 뉴스공급과 소비의 방식이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앞서 말했듯이 수없이 많은 단편적인, 그리고 자극적인 뉴스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서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 골치 아프거나 지루하게 느끼곤 합니다. 통조림 같은 뉴스를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서 나른 후에, 마무리는 예쁜 기상 캐스터가 전하는,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는 날씨예보... 이런 것들이 일종의 공식이지요. 사람들은 그래야 ‘아, 이제 하루의 뉴스를 다 정리해서 들었으니 나도 업데이트가 된 거네’하고 안심할지도 모르고요. 그에 대한 문제 제기라면 동의합니다.

-최근 들어, 비단 한국뿐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뉴스의 반복적이고 자극적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뉴스 보도의 과열경쟁을 완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뉴스는 원래부터 경쟁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의 반복을 통해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어지게 하고, 그 무디어진 감각을 건드리기 위해 더욱더 자극적이 되는 것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얘기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정도의 해결사는 못됩니다.

-'뉴스룸'은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악성 댓글은 있을 겁니다.. 혹시 그런 댓글들도 찾아보시나요? 기억나는 악성 댓글에 답글을 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요?

=답글 달아주면 더 신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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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은 정치,사회,경제,문화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해 인터뷰를 나눕니다. 기존의 뉴스가 스튜디오로 초청하던 대상보다는 훨씬 더 카테고리가 넓어 보입니다. 인터뷰 대상의 카테고리에 대해서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카테고리에 제한은 없습니다. 대중문화와 관련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꽤 긴 시간 논의한 끝에 대중문화라고 해서 벽을 두어선 안 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려한 것은 마케팅에 우리 뉴스가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건데, 저는 그런 것에도 너무 장벽을 둘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영화배우가 나와도 개봉 앞둔 영화 얘기만 하고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 호세 카레라스가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하는 것은 괜찮고, 서태지가 인터뷰하는 건 안 될 리가 없는 것이지요. 사실 서태지씨와 꽤 길게 인터뷰한 게 나가니까 어느 매체에선 '뉴스룸'이 무슨 큰 변질이라도 된 듯이 비판을 했던데 참 답답한 비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도 많은 대중문화인들이 '뉴스룸'에 나왔습니다. 신문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다만, 누가 봐도 오로지 마케팅을 위한 출연은 안된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옴으로써 그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면 얼마든지 인터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JTBC로 옮겼을 때 삼성을 비판할 수 있느냐가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는 으름장도 있었죠.

=일단 형식적으로 삼성과 JTBC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말 그대로 형식적인 것이라는 걸 압니다. 인적으로 역사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문제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과 연결된 한국사회 기업의 역사, 시스템, 문화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삼성을 비판하라는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합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가 다룬 삼성 관련 보도들을 무슨 자랑거리 내놓듯 얘기할 생각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우리 사회부 기자들이 삼성의 무노조 전략 문건을 들고 삼성에 가서 이거 당신들 거 아니냐고 들이미는 것은 그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보도가 나가기까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도는 꽤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보여주기라는 의심도 있었습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반응을 보니 ‘삼성이 거기까지는 전략적으로 봐주는 거다’, ‘봐라, 후속 보도가 이어지지 않지 않느냐’ 등등의 폄하도 있더군요.. 그것도 언론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만 반문했습니다. ‘그러는 당신들은 왜 조용한가?’, ‘지난 1년 반 동안 누가 더 삼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했는가?’ 등등... 며칠 전에도 삼성 관련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날 그 기사를 다룬 방송은 우리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삼성이 봐줘서 냈다구요? 소가 웃을 일입니다. 우리가 삼성 관련 보도에 소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다면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삼성이든 어떤 기업이든 대중들에게 인정받으면 그게 궁극적으로 최선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관련된 질문 한가지 더 드리자면,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한 것은 결국 장삿속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채널 이미지를 높이고 나면 결국 팽 당한다는 이야기까지도요.

=JTBC의 채널 전략은 제가 오기 전부터 이미 ‘다양성의 추구’였습니다. 다양성은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고 동시에 지향점 아닌가요? 저는 이 모토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우리 뉴스가 담아내는 관점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와서 ‘장사’가 잘 되는지는 제가 평가할 일은 아닙니다. 아직도 적자가 큰 회사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당혹스럽습니다. 채널 이미지가 높아진 것이라면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채널 이미지가 나아진 것이 저 때문이라는 전제에 동의해 버리면, 제가 팽 당한다는 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순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당신은 당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고 얘기할 겁니다. 늘 얘기하지만 음모론의 특징은 근거를 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언젠가는 저도 그만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럼 그냥 그만두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손석희 이후’입니다. JTBC 뉴스는 다시 손석희 이전으로 돌아 갈 테니 냉정하게 보자는 건데요.

=저는 취임하자마자 퇴임 후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것도 관심의 표현이니까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요? ‘그래.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아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장담해야 하나요? 이건 전적으로 시청자와 보도국의 구성원들이 결정하게 될 문제입니다. 저의 방향만이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저 혼자 결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는 결국 시청자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향성에 대해서 시청자가 동의해준다면 그만큼 견고해지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제가 보도국에 있는 동안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 보도국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공유한다면 그만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저의 답변이 듣고 싶으시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싶고, 그 경험을 함께 쌓아가고 있고, 그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JTBC 뉴스의 기자들이 함께하는 동안 얻었으면 하는 것, 성장했으면 하는 것은 어떤 부분입니까?

=지치지 않고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이건 저라고 잘하는 건 아니어서 저도 목표로 두고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방송기자로서 최고가 됐으면 합니다. 취재도 잘하고, 제작도 잘하고, 전달도 잘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하면 됩니다. 저널에 이즘을 붙인 이유를 늘 생각하면 됩니다. 그냥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저널과 거기에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과 철학이 들어가는 저널리즘은 다르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기자들은 이런 것들을 제게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와 우리 기자들이 서로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겸손하려하거나 추켜세우려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매일 매일 그렇게 하고 있고, 우리 기자들도 아마 제 말에 동의할 겁니다.

-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12년 전 이라크전에서 과장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6개월 동안 무급 정직처분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이 한국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에게 준 고민이 있었을까요? 브라이언 윌리엄스 또한 앵커이자 뉴스룸을 이끄는 매니징 디렉터였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이라면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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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키우시는 동물이 있나요?

=개가 있긴 있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도, 늘 그놈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연으로부터 유리되고, 거세된 동물은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수명이 거의 다했는데, 또 다른 개를 키워야 할지는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서태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번은 기타에만 집중해 듣고, 또 한번은 드럼에만 집중해 듣는 방식으로 음악을 즐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 그렇게 즐겼던 음악이 있다면 어떤 뮤지션의 음악인가요?

=그런 방식으로 듣는 건 일상적인 것이어서 특별히 어느 한 곡을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는 제임스 테일러이고 거의 40년을 들었습니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합니다. 다른 가수의 곡도 듣는 편이지만 결국엔 다시 제임스 테일러로 돌아옵니다.

-특별히 제임스 테일러를 좋아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편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뛰어난 기타 연주자이기도 하고요.

-제임스 테일러는 세대적으로 말하자면, 60년대 히피세대의 격한 시대를 거친 젊은이들을 위로한 70년대의 싱어송라이터지요.

=음악자체는 편하지만 메시지는 늘 있습니다. 보다 젊은 시절에는 저도 엄청났습니다(웃음). 그때는 제임스 테일러 보다는 주로 레드 제플린 같은 그룹의 음악을 들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나이가 30~40대가 되면 음악적인 취향도 조금 바뀌잖아요.

-종종 귀가 가장 보수적이라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10대에서 20대에 듣던 음악을 평생 반복하면서 듣는다는 의미로요.

=저도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지금도 듣습니다. 모든 앨범을 다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 딱 둘인데, 그게 레드 제플린과 제임스 테일러입니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그 이유 외에 특별한 건 없습니다. 모든 앨범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 중에는 제가 이해 못할 것도 분명히 있고(웃음), 전반적으로는 들었을 때 뭐랄까…풀리는 게 있습니다. ‘풀리는 음악’과 ‘힐링되는 음악’이라는 게 좀 다르잖아요? 레드 제플린은 풀리기 때문에 들었고 제임스 테일러는 힐링이 되기 때문에 듣습니다.

-제플린 중에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뭔가요.

=3집 앨범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Since I’ve been loving you'가 들어있지요.

-제임스 테일러는요?

=초기의 음악을 훗날 라이브로 한 것을 좋아합니다. 스튜디오보다 라이브에서 연주나 보컬이 점점 더 발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뉴스룸’의 음악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왜 이젠 음악을 넣지 않으시는 건가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 마지막에 음악을 트는 게 한가롭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져서 음악을 고르고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레드 제플린의 'Since I’ve been loving you' 라이브 동영상

 
 

-JTBC 뉴스룸에는 영화배우들도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 영화도 즐겨보시는 편인가요? 최근에 보신 영화가 있다면 어떤 작품인가요?

=저는 주로 액션 영화를 봅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정은임 씨와 과거에 같이 일할 때 제가 자주 물어봤습니다. “요즘은 어떤 영화가 볼만하니?” 그러면 정은임 씨는 나름 열심히 제게 엄선해서 소개를 해줬지요. 그러면 그렇게 소개받은 영화만 빼놓고 봤습니다. 저는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요즘 영화 중에 대충 어떤 영화인지 아시겠지요. 굳이 제목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어권 출연자들이 나왔을 때 영어 인터뷰를 고수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그들이 편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편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하지는 않습니다.

-날씨 캐스터가 없다. 날씨를 너무 홀대한다는 지적을 들으신 적도 있지 않나요?

=요즘 날씨 정보는 밤 9시가 되지 않아도 모두 압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날씨 정보만 앵커멘트를 통해서 전합니다. 특별한 날씨 정보가 필요할 때는 기자 리포트를 통해서 상세히 전하면 됩니다. 홀대가 아닙니다. 꼭 예쁜 여성이 예쁜 옷 입고 나와서 전해야 날씨를 우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휴가는 얼마나 가십니까.

=일주일 정도 갑니다. 앞뒤로 토일을 붙이면 8~9일 정도 갈 때도 있습니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이제 일 그만두고 놀고 싶다’고 농담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또 그런 생각은 없어집니다. 휴가를 제일 가고 싶을 때는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때라잖아요. 그냥 그 정도 수준입니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건강관리는 대체 어떻게 하시나요.

=시간 날 때 걷는 정도 외에는 별달리 하는 게 없습니다.

-보약이나 비타민은요?

=먹었다 안 먹었다합니다.

-하루 중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시간이 대체 언제인가요.

=방송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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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 겪는 대법관 임명절차, 다급해진 사법부

 

양승태 대법원장, 정의화 의장에게 친서... "임명동의 절차 조속히 진행"

15.03.03 17:22l최종 업데이트 15.03.03 17:22l

 

 

기사 관련 사진
▲  서기호 의원실에서 제공한 1994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검찰 수사 주역들(촬영일은 1987년 3월 1일)' 사진. 왼쪽에 위치한 인물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며 가운데는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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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은 3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절차를 조속히 진행해달라"는 친서를 보냈다. 사법수 수장이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 입법부의 협조를 요청하며 친서까지 보낸 것은 드문 일이다.

지난 1월 21일 양 대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박상옥 후보자를 임명 제청했고, 박 대통령은 1월 26일 국회에 박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후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가 대법관으로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법조계에서조차 반대 성명이 나왔고 야당은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했다. 2월 11일로 잡혔던 박 후보자의 청문회는 현재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다(관련기사: 법조계도 '박상옥 대법관' 반대하는 이유).

또 다시 대법관 공백 사태를 맞은 사법부는 난감해졌다. 특히 박상옥 후보자는 안대희 대법관 이후 맥이 끊긴 검찰 출신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 대법관 후임으로 뽑혔다가 위장전입·부동산문제로 자진사퇴한 김병화 후보자의 전철을 밟을 위기에 놓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으로선 자신이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의 두 번째 낙마를 목격할지 모를 상황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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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적격 박상옥 임명동의 대통령 사과하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와 박종철 기념 사업회는 2월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 시절, 검찰 내 외압으로 은폐·축소수사가 진행된 데 대해서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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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양 대법원장은 '국회의장 앞으로 보내는 친서'라는 유례없는 방법을 택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대신 전달한 편지에서 "현재 대법원에는 연간 3만 8000건에 달하는 많은 사건들이 접수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며 "단 한 명의 대법관이라도 결원된다면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양 대법원장은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각 헌법기관은 각자 맡은 절차를 조속히 처리함으로써, 대법관 공백으로 인한 장애 없는 완전한 형태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보장되도록 최선을 다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법원이 대법관의 공백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사법부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대법관 임명동의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관련 기사] 

신영철 대법관 후임은 검찰 출신 박상옥
점점 커지는 '고문치사 수사 대법관 후보' 논란
야당 "박상옥 대법관 후보 부적절"... 청문회 보이콧 시사
새누리당 '박종철 사건 검사' 박상옥 감싸기
황교안 "박상옥, '박종철사건' 은폐한 것은 아냐"
김무성 "박상옥, '고문치사' 관여했다면 우리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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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에 숨겨진 이데올로기 아세요?

 
 
 
 
김용택 | 2015-03-04 08:39: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두환정권 때 일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정권은 불의한 권력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에 이어 12월 언론 기본법을 제정한다. 전두환정권은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작성,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전두환정권 때 ‘땡전 뉴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뚜뚜전 뉴스’ 혹은 ‘땡전 뉴스’라는 이 말은 저녁 9시 시보가 ‘땡’ 하고 울리자마자 헤드라인 또는 첫 소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이라는 멘트가 나온데서 유래했던 말이다.

박정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출세의 기회를 엿보던 보안 사령관 전두환은 10·26사건을 계기로 12·12 쿠데타를 일으킨다. 18년간 군사독재의 폭압에서 맞은 ‘80년 민주화의 봄’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총칼로 짓밟은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보도지침’이나 ‘땡전 뉴스’는 우리 언론역사에 두고두고 잊어서는 안 될 치욕의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동물의 왕국은 아이들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동물의 왕, 밀림의 지배자. 사자의 위용과 자연의 신비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끽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골고루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순수한 의미에서 보면 그냥 재미로 보고 지나칠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세상은 순수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하지 못하다. 전두환이 88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올림픽을 개최해 경제적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일까? 그가 88올림픽을 유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이 자신에 대한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용한게 3S정책이다. 불의한 집권을 감추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를 통해 국민단합과 애국심을 고취하려 했던 것이다.
 
모든 문화는 순수하기만 할까? 지금도 국민의 놀잇감이 된 화투는 어떨까? 지금은 화투의 그림도 옛날과 달라지기도 했지만 ‘카루타’라고도 하는 이 화투(1543년 포루투갈 상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의 카드)에는 그냥 순수한 재미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송학(松鶴)은 일본에서 설날부터 1주일 동안 조상신과 복을 맞이하기 위해 대문 양쪽에 소나무를 꽂아두고, 학 그림을 걸어두는 일본의 전통을 담고 있다.

매화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피기 전인 2월경 일본 전역에서 축제를 벌일 만큼 일본인에게 친숙한 꽃이요, 벚꽃은 일본의 국화다. 3광 아래에 있는 ‘만막’은 일본에서 벚꽃축제를 나타내는 휘장이다. 오동과 봉황은 일본왕의 도포에 쓰일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며, 비광의 갓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일본의 3대 서예가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x, 894~966)다. 일본은 자국민에게 금지한 화투를 왜 식민지 백성에게 보급했을까?

해방 50년이 되도록 ‘황국신민화’의 ‘국민’을 따 초등학교라는 이름 대신 ‘국민학교’로 쓰였던 것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학교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학교장 훈화’며 ‘주번제도’며 ‘교문지도’가 조선학생을 보다 더 일본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자가 들어간 동중학교는 일본인 자녀가 다니고, 기우는 태양의 ‘서’자가 들어가는 서중학교 조선인 학생이 다니는 학교이름에 붙여졌다.

일본인의 이데올로기가 놀잇감인 화투에까지 침투했다면 동물의 왕국에는 수수한 예술정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가 미국이고 얼룩말을 비롯한 사자의 먹이가 되는 동물은 약소국이라면 힘 센 사자에게 작은 동물이 먹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프로그램 속까지 침투해 ‘힘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힘의 논리가 자연계의 정당한 질서라면, 그런 먹이사슬이 유지되기 위해 ‘힘이 약한 동물은 희생되는 게 당연하다.’ 논리…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게 미덕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 강자의 논리인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순수한 사회에서나 통하는 논리다. 그러나 강자의 논리란 일방의 희생으로 상대방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놓아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약자의 끝없는 희생을 강요한 주장이 아니다. ‘오른뺨을 치거든…’교훈은 오른 뺨을 때리고 맘 아파하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반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대안이요, 교훈이다. 이 성경귀절은 이용하기에 따라 강자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전두환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면 오늘날 양극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는 무엇일까? 순수성이 없는 사회, 이해관계로 얽힌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상이 아닌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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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장군 만세” 외쳤던 조선일보 1950년 6월28일 호외

“김일성 장군 만세” 외쳤던 조선일보 1950년 6월28일 호외
[단독] 최초 공개, 전쟁 발발 사흘째 "공화국 서울을 해방"… 방응모는 왜 서울을 떠나지 않았을까
 
입력 : 2015-03-03  23:06:40   노출 : 2015.03.04  09:31:41
미디어오늘 | media@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이 1950년 6월 28일자 조선일보 호외 원본을 확보했다. 6월 28일은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한 날이다. 이번 호외는 지금껏 조선일보사사(社史)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던 내용으로, 전쟁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6월 28일자 호외 제목은 <人民軍(인민군) 서울 入城(입성)>이며 부제목은 ‘米國大使館(미국대사관) 等(등)을 完全解放(완전해방)’이다. 호외는 “28일 오전 3시 30분부터 조선 인민군은 제 105군 부대를 선두로 하여 서울시에 입성하여 공화국 수도인 서울을 해방시켰다”고 보도했다.

호외는 “입성한 부대들은 서대문 마포 양 형무소에 구금된 애국자들을 석방하고 괴뢰집단의 소위 대한민국 중앙청 서울시청 검찰청 미국대사관 은행 소위 유·엔 위원단 및 중요한 도로 교량 체신 철도 및 각 신문사를 완전히 해방시켰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호외는 “오래 갈망하여 맞이하던 조선인민군대를 서울시민들은 열열한 환호로서 환영하였다”고 밝혔으며 “서울에 있던 만고역적 리승만 도당들과 미국대사관 및 유·엔위원단들은 이미 27일 오전 중에 서울에서 도망하였다”, “서울은 완전히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로 되었으며 서울 전체 시민들의 거리로 되었다. 이제 시민들은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1950년 6월28일자 호외.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호외는 서울시민들을 향해 “치안당국의 지시를 절대 신임하고 반동들의 온갖 모략에 귀를 기우리지 말라”, “반동분자들의 데마(데마고기, 유언비어·선전선동)와 테로(테러) 방화 파괴 등에 최대의 경각성을 돌리라!”고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호외 마지막 부분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우리민족의 경애하는 수령인 김일성장군 만세!”를 적었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조선일보 호외는 조선일보 공식기록에 없다. 조선일보는 1950년 6월 26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을 보도한 뒤 6월 27일 저녁 서울 본사의 신문 제작을 중단했다. 조선일보는 10월 23일에서야 1차 전시판을 냈다. 따라서 이번 호외는 역사에 없던, 전쟁기간 중 발행된 조선일보 지면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 6월 28일자 호외는 누가 썼을까.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한 첫날 북한 기자들이 내려와 윤전기를 장악해 그날 오후 바로 호외를 찍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북한을 지지했던 일부 조선일보 기자들이 호외 제작을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문 그 이상의 미디어, 조선일보>(조선일보 90년시사편찬실, 2010)에는 “6월 26일 조선일보 안에 지하조직으로 있던 좌익세력들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회사 분위기도 급변했다. 신문사에 들어서는 사장 방응모에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때도 모르고 나타나느냐’고 막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있다. 조선일보 내에 북한지지 세력이 존재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태평로일가>(조선일보사, 1983)에 따르면 방일영은 방응모와 함께 6월 26일 조선일보사를 찾아갔을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조부를 가까이 모셨던 총무부장 김석택이나, 또 신문사에 꽤 오래 근무했고 가깝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이 이미 지하조직을 구성해 놓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저만 상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피난을 가지 않고 신당동 자택에 머물던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그해 7월 6일 납북됐다. 그는 1884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언론사 최초로 취재용 비행기(Salmson 2A2)를 구입한 재력가였으며 1946년 8월 한국독립당(위원장 김구)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출된 정치인이기도 했다. 방응모의 납북 후 행적은 “1950년 9월 28일 트럭에 실려 가다 미군기의 공습을 받아 사망했다”는 증언만 있고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조선일보 사람들>(랜덤하우스 중앙, 2004)에 따르면 조선일보에서는 전현직 직원 20여명이 전쟁 기간 중 납북됐다.

방응모는 왜 피난을 떠나지 않았을까. <방일영과 조선일보>(방일영문화재단, 1999)에서 전택보씨는 “방응모씨가 피난을 가지 않은 것은 전체 상황을 잘못 판단한 원인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자기가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이다. 방응모씨는 조선일보를 경영하면서 서중회라는 장학회를 조직하여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이 빈곤해 고생하는 학생 60여명을 도왔는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좌익이 되었고 월북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밝혔다.  

<계초 방응모>(방일영 문화재단, 1996)의 저자 이동욱은 방응모가 피난을 떠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방응모)는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계초장학회 학생들의 일부가 공산당에 가입하고 있었다는 점에 너무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이 같은 서술을 종합하면 조선일보 6월 28일자 호외는 조선일보 일부 기자들의 작품이고, 평소 이들의 성향을 용인해 왔던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이들을 믿고 피난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남아있다 납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임종명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만약 조선일보 직원들이 호외를 발행했다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남한에서 대대적으로 정리된 프락치들이 여전히 살아남아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당시 소련군이 사용하던 어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문법도 확인할 수 있다”며 “역사적 사료로서 유용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선일보 호외와 관련,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은 “조선일보가 발행한 신문이 아니다. 28일에 발행한 신문은 따로 보관되어 있다. (호외가) 발행됐다는 기록도 없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보관하고 있는 28일자 신문은 27일 오후에 발행된 것이다. 당시에는 석간신문을 다음 날짜로 발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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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4대강보다 더 센 놈' 맞다!

 

[정희준의 어퍼컷] 올림픽, 강원도 아니라 국가재정 문제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 2015.03.04 06:58:29
 
 

개최 준비가 너무나 지지부진하고 혈세 낭비가 심한 평창동계올림픽을 지금 이 시점에서 반납할 게 아니라면 분산개최가 답이라는 지난달 23일 자 칼럼에 대한 반론으로, 강원도청 대변인실 관계자가 기고한 '평창올림픽이 동네북인가'를 감사한 마음으로 봤다. 사실 처음에는 강원도민의 마음을 담아 쓴 글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강원도민보다는 강원도청의 바람을 쓴 글로 보였다.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함께 황당함이 가시질 않았다. 안타까움이란 강원도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조차 아직도 올림픽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황당함이란 공무원이라는 분이 뻔한 사실을 이상하게 비틀어 주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 반납해라, 평창올림픽! 박정희도 했다! 

☞ [반론] 평창올림픽이 동네북인가?  

 


누구를 속이려 하는 것인가 

나는 칼럼에서 지금 강원도 곳곳에 13조 원의 '국고 폭탄'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이중 강원도 내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강원도가 25~40%의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고 쓴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이를 '명백한 오해'라면서 철도, 고속도로, 국도 같은 광역 간선 교통망은 '100% 국비'로 건설된다고 반박했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을 속여 미혹시키고 어지럽힌다는 '혹세무민'이다. 광역 간선 교통망이 100% 국비로 건설된다는 점은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그래서 나는 '강원도 내에서 벌어지는 공사'는 강원도도 일정 부분 책임진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굳이 일일이, 길게 근거를 들어야만 하겠는가. 지금 강원도 내에서는 수많은 공사가 벌어지고 있고 그 비용은 내가 언급했듯 강원도도 분담한다. 도로만 해도 지방도 408·456호, 군도 12·13호, 도암 205·209호 외에도 내부연결도로 3곳이 있다. 이것만 해도 1000억 원을 가뿐하게 넘어간다. 여기에 몇 개에 이르는 특구조성사업에도 지방비가 투입돼야 하고, 또 오직 올림픽을 위한 식수공급용 댐을 대관령에 짓는데 여기에도 강원도비 240억 원이 들어간다. (물경 6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식수공급용' 댐은 몇 년 전 지으려 했다가 사업지가 백두대간 보호구역 완충지역 내에 위치하는 등 타당성 문제로 백지화됐던 사업인데, 올림픽을 빌미로 다시 살아난 사업이다. 수몰지구까지 생겨날 텐데 올림픽이 '환경파괴 면허증'이라도 되는가!) 

위 내용은 일반인도 볼 수 있는, 작년 강원도 고시 자료이고 평창조직위에서도 다룬 사안이다. 공무원이 이 정도도 확인하지 않고 글을 썼나? 정말 묻고 싶다. 모르고 한 말인가, 나를 속이려 한 것인가. 혹시 강원도민을 속이려 한 것 아닌가. 과거 그 지역의 한 대학교수도 TV토론회에 나와 강원도민을 향해 "여러분 세금은 한 푼도 안 쓰고 개최할 수 있다"고 뻔뻔스럽게 목청을 높인 바가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강원도민께 추가로 한 가지 더 알려 드릴까 한다. 지금 들으면 상심이 되겠지만, 미리 알고 계셔야 할 듯해서 고언을 드린다. 올림픽이 열리면 강원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 것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럴 일 없을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곳은 언제나 테러의 위협이 찾아들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다가 참으로 번잡스러우면서도 곳곳의 교통이 통제되기 때문에 관광객은 가지 않는다. 선수 등 대회 관계자만 간다. 그러면 올림픽 개최지니까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잘못 알고 계시다. 올림픽 개최했다고 관광 가는 사람 없다. 놀라셨다면 그 부분은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를 욕하시기 바란다.

 

 

 

▲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갈무리.

▲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갈무리.  

 
 

평창올림픽, 다시 봐도 '국고 먹튀' 

여기에서 한 가지 명확하게 할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언론들은 올림픽 개최가 강원도를 재정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강원도 재정을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시의 현실도 처참한 상황인데, 학기 초 이 바쁜 와중에 남의 동네까지 신경 쓸 형편이 못 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혈세, 즉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가. 그리고 올림픽 개최하게 됐다고 해서 "때는 기회다"라는 식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환경을 파괴해도 되냐는 점이다. 

올림픽 예산 13조 원 중에서 경기장 건설비용은 7500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토목공사비용이다. 그런데 이 막대한 올림픽 개최비용의 절대 액수가 최 대변인 말대로 강원도 재정에서 충당되는 게 아니라면, 이는 고스란히 국가재정으로 충당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을 경제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 '시한 폭탄'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중앙 정부도 긴축을 강조하며 올림픽 비용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올림픽 예산은 기어이 뛰어올랐다.   

궁금한 게 있다. 2011년 개최 확정 직후 정부가 발표한 예산 8조8000억 원이 어떤 이유로 무려 13조 원으로 증액됐는가.(강원도청 대변인실 최삼경 씨는 11조5000억 원이라 주장하는데 그렇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경기장 건설예산은 고작 7500억 원뿐인데, 무엇 때문에 4조2000억 원이 늘었는가. 대부분의 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왜 4조 원 넘게 늘어났는가.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한 TV토론에서 평창조직위의 사무국장은 예산이 애초 8조8000억 원에서 13조 원으로 급등한 이유가 동홍천고속도로 비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알아보니, 동홍천고속도로란 서울에서 속초를 잇는 동서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을 뜻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국고 2조4000억 원이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것을 감안해도 나머지 1조8000억 원에 대한 설명은 없어 답답하긴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거다. 이게 왜 올림픽 예산인가?  

이 고속도로는 1997년 타당성 조사를 하고 1998년 기본설계를 한 이후 계속 시간을 보내다 2008년 확정되어 착공에 들어갔는데, 이게 또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최근에야 공사에 속도가 붙었다고 한다. 그게 언제냐? 공교롭게도 이 공사가 올림픽사업에 포함된 즈음이다. 그런데 강원도 최북단을 가로지르는 이 도로는 올림픽과 관련된 시설이라고 보기 힘들다. 홍천과 양양은 올림픽과 아무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거리도 멀다(알펜시아로부터 차로 각각 120km, 70km다).  

그런데 황당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 고속도로는 원래 경제성에 문제가 있던 사업인데, 어느 순간 올림픽사업에 포함되면서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받았다는 사실이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규모에 국비 300억 원 이상 투입되는 모든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 많던 2조4000억 원짜리 국책공사를 올림픽사업에 슬쩍 끼워 넣어 타당성조사를 면제시킨 것이다. 나는 군 면제 비리보다 이런 면제가 더 열 받는다.

'4대강사업보다 더 센 놈'이 온다 

왜곡과 꼼수 외에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바로 올림픽에 대한 무지이다. 최삼경 씨는 내 칼럼의 '디테일'한(작은)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데, 올림픽 개최비용을 그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계상하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 또 없다. 아직도 올림픽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증거다. 올림픽은 한 마디로 '견적이 나오지 않는 행사'다.

우선 그는 올림픽예산 13조 원은 잘못된 수치라며, 사실은 11조5000억 원도 안 된다고 한다. 단언컨대, 올림픽이 11조5000억 원 쓰고 폐막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도 결국 15조 원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 이상 들어갈 것이다. 그는 또 올림픽 준비를 '4대강사업'에 비유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올림픽 개최비용은 4대강사업에 쏟아부은 22조 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올림픽은 '4대강사업보다 더 센 놈'인 것이다.

일단 여기서 정부가 거액을 투입하는 큰 사업들을 예로 들어보자. 대규모 사업 중 삽질 시작한 이후 공사비가 줄어드는 경우 본 적 있는가.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첫 삽 뜨자마자, 곧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뛰어올라도 세 배, 네 배, 심지어는 다섯 배로 뛰어오른다.  

부산의 영화의 전당은 400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했는데, 1800억 원을 들인 후에야 공사가 끝났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1593억 원의 예산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땅값 제외하고도 무려 4840억 원을 쏟아 붓고야 끝이 났다. 서울 고척동의 돔 야구장은 무려 8번의 설계 변경을 거치면서 최초 예산 529억 원의 5배가 넘는 3115억 원을 들이고도, 아직 완공을 못하고 있다. 규모가 더 큰 국책사업은 어떨까. 경부KTX는 예산 5조 원대에서 시작했는데, 결국 18조 원 이상이 투입된 후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자, 올림픽 예산 13조 원. 폐막 때면 얼마가 되어 있을 것 같은가. 4대강사업에 쏟아 부은 혈세보다 적겠는가. 

위에서 나는 올림픽이 개최비용 견적을 뽑을 수 없는 행사라고 했는데 결산도 마찬가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폐막 후 그리스 총리는 기자들 앞에서 적자 규모가 너무 커 "적자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인정해야 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밴쿠버는 폐막 직후 10억 달러 적자라고 했다가 1년이 지난 뒤 100억 달러 적자였다고 실토했다. 적자가 1년 지나 열 배로 뛰었으면 지금은 또 얼마로 뛰었을까.

'개최지 재정 파탄'이 특기인 올림픽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아마 지금 국내에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개최 확정 4년이 지난 지금도 경기장 설계도조차 확정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조직위의 수준을 보며 나는 이를 확신한다.) 바로 안전·보안 비용이다.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200여 개국이 참가하는 올림픽은 테러 집단에게는 그야말로 황금 같은 기회다. 요즘 이름을 날리는 IS가 잠시라도 생각 안 해 볼 것 같은가.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영국이 미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007을 방불케 하는 첩보전을 펼친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테러에 대한 대비 때문에 9·11 이후 올림픽에서 안전·보안 비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래서 아테네올림픽 때 그리스가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입해야 했던 예산이 바로 안전·보안 비용이다. 그게 얼마? 무려 2조 원이었다. 평창올림픽 개최년를 기준으로 14년 전에 그 정도 썼으니, 평창은 과연 얼마를 써야할 것인가. 그 돈은 어디서 빼다 쓸 것인가. 

올림픽을 11조5000억 원으로 치른다고? 지나가는 소가 웃고 갈 일이다. 사실 내기를 하자고 할까 했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 왜? 돈이 얼마가 들어갔는지 도대체 '견적'이 나와야 내기를 할 것 아닌가.

이제 제발 올림픽에 신경 써라 

최삼경 씨는 내 글에 대한 반론을 누군가 쓰겠거니 했지만 "선한 강원도 사람의 심성인지, 내분을 원치 않는 것인지 반박의 글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최근 나뿐 아니라, 정말 많은 언론들이 올림픽 준비에 우려를 표하며 조직위를 질타하고 있다. 강원도 분들이 선한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수많은 언론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한다면 그분들이 정말 가만히 계셨겠는가. 

그렇다면 반론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르겠는가? 다수의 강원도민들도 이러한 우려에 동의하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심지어 강원도 내에서도 '올림픽이 강원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회의적인 답을 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왜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지난달 국회에서 올림픽 시설물 사후 활용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교수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강원도의 약초 등을 활용해 특화해야 한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학예회도 이것보다는 수준이 높겠다. 최삼경 씨는 많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올림픽 시설 사후 활용방안을 고민한다고 했던데, 그게 바로 이것이었나? 미리 알려 드리는데, 고민할 필요 없다. 사후 활용방안 없다. 

대규모 올림픽경기장은 평상시엔 써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아시안게임 한 번 잘못 개최했다가 부시장이 "빚밖에 남은 게 없다"고 실토한 바 있는 인천시가 주경기장 활용방안을 마련하려다 민자 유치에도 실패하자, 도무지 방법이 없었는지 결국 "올림픽을 유치하자"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게 된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동네북이 된 것은 모두 평창조직위가 자초한 일이다. 이제까지 4년 넘도록 한 일이 무언가. 국고 가져오는 데는 눈에 불을 켜고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정작 올림픽 준비는 나 몰라라 내팽개친 것 아닌가. 1조 원 넘는 돈을 쏟아 부어 화려하게 지은 알펜시아에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개폐막식을 열면 되는 일 아니었나? 그 간단한 일을, 왜 굳이 계획을 바꿔 인구 4000명에 지나지 않는 횡계리에 단 6시간 쓰자고 새로 개폐막식장을 지으려 하나. 그것도 1000억 원 가까운 생돈을 들여서 말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 왜 이런 분란을 만들었나. 

평창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싸늘해져 가고 있다. 이게 누구 때문인가. 국민 잘못인가? 비용절감을 위해 분산개최 주장하는 시민사회, 전문가 때문인가? 아니면 강원도민 때문인가?

내 말이면 안 믿을 테니, 해외 유명학자의 말을 전하며 마무리하겠다. '준비된 개최지'였다던 일본 나가노에서 동계올림픽 폐막 후, 영국의 경제학자 쉬맨스키는 나가노 주민들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추운 겨울, 밖에서 비 맞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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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어떻게 되나??

죽으면 어떻게 되나

조현 20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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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불교 배리 커즌 스님 인터뷰

 

배리 커즌-.jpg 

배리 커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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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커즌 스님이 한국에서 티베트불교를 전하는 세첸코리아 대표 용수 스님(왼쪽)과 

통역을 도운 재홍콩교포 추경희씨와 함께 인사동에서 웃고 있다.

 

 

192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티베트 사자의 서> 최초의 영역본이 발간되었을 때, 서양 종교·심리학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인간이 죽은 이후 어떤 것을 체험하는지 사후 세계를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편집 책임자는 미국 학자 에번스웬츠 박사였다. 눈 덮인 히말라야에서 현자를 찾아 헤매던 그는 인도 다르질링 경찰국장의 추천으로 부탄에서 고행중이던 티베트 불교의 고승 라마 카지 다와삼둡이 번역한 것을 서양에 전했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14세기 티베트의 밀교 수행자 카르마 링파가 감포다르라는 산속에 매장돼 있던 것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원저자는 8세기 인도의 고승 파드마삼바바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파드마삼바바는 문수·관음·금강수 등 세 보살이 합일된 화신으로, 석가모니 붓다에 이은 제2붓다로 일컬어진다. 현 파키스탄 동북부 스와트 계곡에서 태어나 날란다대학에서 배우고 히말라야와 현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을 순례하며 깨달음을 얻은 파드마삼바바는 티송데첸왕의 초청으로 티베트에 입국해 티베트 무속인 뵌교(본교)를 제압하고 라싸에 삼예사를 건립한 티베트 불교의 태두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어가거나 방금 죽은 사람이 생사윤회를 초월해 해탈을 얻도록 돕고, 해탈하지 못하더라도 평안한 죽음을 맞고 안정된 다음 생을 얻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책의 영문판이 발간되자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 철학에는 불교심리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며 “이 점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이 <티베트 사자의 서>에 담긴 ‘죽음의 철학’을 전하기 위해 배리 커즌(68) 스님이 지난달 24일부터 3월3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인으로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에서 10년간 의사로 활동하다 26년 전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 배리 스님은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주치의로 활동하며, ‘이타주의 의술’(altruismmedicine.org)이란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타주의자답게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개인 기도시간에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천년 된 등신불이 발견됐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보도하며 그의 언급을 인용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히피였다는 그는 이미 티베트 불교의 중물이 깊게 밴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중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주최의 세미나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관심에 응답했다.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안국동에서 만났다.

 

임종 뒤 사후세계 세밀한 묘사로

서양 종교·심리학자들을 놀라게 한

<티베트 사자의 서>

이 책에 담긴 ‘죽음의 철학’ 전파

호흡 끊어진 뒤 광명을 체험하면

윤회에서 벗어나 바로 해탈

세월호 유가족 위해서 함께 기도

절망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

 

-죽음 준비와 죽음을 위한 수행이 왜 필요한가?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실제를 알기 위한 것이다. 또 죽어가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병과 죽음을 어떻게 여겨야 하나?

“나이가 들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나는 항상 건강하고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병과 죽음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종교가 내세에 대한 확신을 말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계속 수술을 받는 유명 종교인들을 보았는데.

“각자가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이다. 질병에 따라 대처가 다를 수도 있다. 티베트 불교에선 위암에 걸린 노승들을 많이 보았다. 그 수행자들 가운데 위암을 확인하고 수술을 안 하기로 결정한 분들이 많다.”

 

-임종 때 호흡이 멈춘 뒤 광명을 체험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빛 체험이 가능한가?

“요가 수행자들이 임종 때 거치는 8단계를 미리 수행하는 것도 그 투명한 빛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티베트어로 이 맑은 광명을 ‘우세르’라고 하는데, 너와 내가 분리된 이분법적인 의식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그런 맑은 의식이 사는 동안 나타나기도 한다. 재채기할 때도, 섹스를 할 때도, 하품을 할 때도 나타날 수 있지만, 육체의 쾌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죽는 순간에도 명상을 해 삼매에 들 수 있다면 모자상봉을 하듯 그 광명과 만날 수 있다.”

 

-티베트 불교에선 임종 때 바로 해탈할 수 있는 ‘포와’(의식 전이) 수행이 있는데, 사는 동안 선행 공덕을 쌓지 않고도 그 수행만으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생에 나쁜 일만 해온 사람이 포와 수행을 제대로 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선행을 쌓고 수행을 해 카르마를 씻은 이들이 마지막에 포와 수행이 가능하다.”

 

-임종 뒤 중음 단계에서 해탈하지 못하면, 업(카르마)에 의해 내생이 결정된다는데, 그렇다면 우리 생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복잡한 이슈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카르마는 앞으로 하는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의지로 선택이 가능하다’고 했다. 의지로 카르마를 녹일 수 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자신의 희망과 달리 기계에 의존해 생명이 연장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본인의 의사이므로, 기계에 의한 생명연장을 거부한다는 것 등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지 미리 유언을 남겨놓는 게 좋다. 본인의 유언이 없는 가운데 그런 상황을 맞았다면 가족과 의사 등 관련자가 모두 모여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의논해야 한다. 무조건 수명을 연장만 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 수명 못지않게 중요한 게 삶의 질이다.”

 

-티베트 불교에선 임종 후 49일 동안 온갖 부처의 환영이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종교나 무종교인의 사후에 부처의 환영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들은 어떻게 되는가?

“자신의 문화와 종교적 배경, 또는 업에 따라 환영을 보게 된다.”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은 분들이 기도로 함께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너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49재는 끝났지만, 희생자와 인연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튼튼하고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좋다.”

 

-서양 의사로서 티베트 불교 수행자가 된 뒤 건강에 대해 가장 달라진 관점은?

“병이 날 때 몸의 통증을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맑은 의식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의식이 흐려지면 육체 건강의 질도 떨어진다.”

 

-지금 내가 죽어간다면 어떻게 말해주겠는가?

“죽음은 생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신 혼자만 죽어가는 게 아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죽음의 순간, 좀더 평화로워지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죽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보내는 마음을 가져라. 그래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끝까지 잊지 마라. 이는 건강한 때도 중요하다. 임종자를 위해 자비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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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근혜의 대북 메시지는 동문서답"

"북 핵무기 100개, 美 군산복합체 위한 과장"

[정세현의 정세토크]"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동문서답"

이재호 기자(정리) 2015.03.03 11:49:51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서신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촉구했다. 또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수립 등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있지 않다며 남북대화를 외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북한은 3일 대남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체제대결의 망상'을 드러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또다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이 호응해 나오라고 한 것을 두고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북한에게 있어 남북체제가 극명하게 비교되는 정치적 문제이자 부담스러운 사업"이라며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부터다. 남측에서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내부의 정치적인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을만큼의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상봉이 정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북한이)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라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는 햇볕정책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당시에는 북한이 이를 흡수통일로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민간 교류와 협력을 대폭 확대하고 이들을 통해 햇볕정책의 실상을 북한에 전달했다면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을 북한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민간 교류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북한과 정말 대화를 하겠다는 진정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당시 발표문을 북한에 미리 전달해서 내용을 알게끔 했던 것을 언급하며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연구자의 국적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조엘 위트의 분석에도 미국의 이익이 일정 부분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이(DNI)이 당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핵심 당국자들을 불러보아 2013년까지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브리핑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 2013년에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됐나"라고 되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남북 간 군사력 차이가 2대11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는 "턱도 없는 소리"라면서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한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셰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 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했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우선 3.1절 기념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저렇게 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이 '인도주의'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꼼짝 못 하고 나오리라고 생각해서인지, 북한에 회담을 제의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이산가족 상봉을 들고나오는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북한에게 이 문제는 대내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입니다. 남북한 체제 비교가 극명하게 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꺼리는 것을 북측 인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8년 4월 이른바 '비료회담'이라고 불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 때 북측 회담 대표였던 전금철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은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비료 지원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료 20만 톤을 줄 수 있으니, 대신 그해 가을에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북한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적십자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비료 이야기를 꺼냈고, 새 정권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비료에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성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전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담이 많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남측 정권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국민들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다는 식으로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북한 내부의 문제 때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입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계기로, 그리고 중간에도 구실을 찾아서 일년에 서너 번 씩 상봉을 진행했습니다. 불과 2년 전에는 비료도 받지 않고 상봉을 거부했던 북한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는 남측의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과거의 이산가족 상봉이 어떻게 성사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자기들은 배부른 소리 할 처지가 안 된다면서 인권 문제는 없다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습니까?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면 통일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서 남북대화에 나오라고 촉구했는데요.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현 : 박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북한을 개방과 변화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같은 날 기관지인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기만적인 대화 타령을 걷어 치우"라며 통일대박론이나 통일헌법 등이 오히려 체제 대결만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이 자신들을 흡수통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통일준비위원회를 비롯해 통일헌장 제정 착수 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준위나 통일 헌장 등은 흡수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통일을 대비해서 미리 연구를 해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지나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전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들이 사실상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개방과 변화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끌어내려면 대놓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왕래하는 과정에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날 북한이 "어? 우리가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트 상대 만날 생각도 없는 상황에서, 만나기도 전에 "내가 너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면 어느 누가 그 자리에 나가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동안 8.15는 기념사는 대북메시지, 3.1절 기념사에는 대일 메시지가 들어갔는데 이런 정도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것이었다면 차라리 말을 안 하고 지나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현재 실정,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을 대등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일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 연설이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남한에 적대적이었던 북한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 아닙니까?  
 
정세현 : 남북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사고방식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접근인데요. 이런 식이면 북한과 대화 못합니다. 북한이 어떤 심리상태를 가지고 남한을 바라보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강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권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소련마저도 고르바초프 때부터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체제 전환이 일어나던 상황이었습니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북한은 자신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북한 사회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후 3년 동안 홍수와 가뭄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농업 기반은 황폐화됐고 탄광과 철광이 무너져 지하자원을 캐는 것도 어려웠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였습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막 끝내가던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이 무력 도발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선 남북 화해협력을 진행하겠다는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북한은 햇볕정책을 두고 뒤집어놓은 흡수통일 정책이니, 자기들을 녹여먹으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굉장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국력 격차가 심해지니까 남쪽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행동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식으로 나옵니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하는 거드름이나 체면의 뒷면에는 엄청난 대남 열등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대남방어적인 심리를 어떻게 달래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뒤로 빠지고 민간을 앞세우자고 결정했습니다. 햇볕정책이 북한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깨닫게 하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민간 접촉을 시작으로 당국 간 협상의 길을 연다는 이른바 '선민후관'(先民後官) 정책이었습니다.  
 
1998년부터 정부는 민간 차원의 북한 방문 승인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또 민간 기업의 대북 사업을 늘리면서 경제를 앞세워서 북한을 흡수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북한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북한에 보여줬습니다.  
 
베를린 선언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정부는 이 내용을 연설 하루 전에 북측에 통보해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 가서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전해준 겁니다. 상대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죠.
 
이런 것이 진정성입니다. 난데없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북쪽에서 '진짜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어찌 해보려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겁니다.  
 
프레시안 : 우리는 지난해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돼야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경색돼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수순을 밟아야 할까요?  
 
정세현 : 우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김대중 정부에서 장·차관을 했기 때문에 햇볕정책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갑자기 김대중 정부 때 나타난 사람이 아닙니다. 박정희 정부 이후로 통일의 현장에서 뛰면서 북한이라는 대상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3년 8개월 동안 통일비서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통일부에서 30년 이상 북한을 꾸준히 관측하고 분석하며 경험했던 시간들을 회고해보면 북한은 쉽게 붕괴할 집단이 아닐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걸 자극하지 않고 북한을 우리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그나마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은 앞서 말씀드린 '선민후관'(先民後官)을 비롯해서 쉬운 일을 먼저 하고 어려운 일을 나중에 한다는 '선이후난(先易後難)', 경제 교류를 먼저 하고 정치 협상은 나중에 한다는 '선경후정(先經後政)',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官)이 아니라 민(民)이 먼저 나섰기 때문에 북한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북한과 접촉하게 하면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 진정성이 있다, 통준위와 통일헌장 등도 나중에 당신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차원일 뿐이다 등등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더불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이나 교류협력으로 지원해주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응하면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맨입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상응한 대가를 북한의 손에 쥐어주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에 북한이 얼마든지 협조해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매우 간단한 사업입니다. 북한지역에 철도가 통과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미 경의선은 연결돼있지 않습니까? 그거 개통하자고 하면 풀리는 문제입니다. 이걸 진행시키려면 남북관계를 풀면 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마저도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동해선의 끊어진 철도를 복원하는 것을 먼저 하겠다고 합니다. 강릉에서 제진까지 117km 구간을 복원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기 위해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인지 의문입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물류입니다. 부산이나 인천에서 배를 통해 유럽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보다 기차를 이용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면 강릉-제진의 동해선이 아니라 경부선에서 경의선, 평원선(평양-원산),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지는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이미 경의선 철도는 연결돼있기 때문에 남북이 이 노선을 개통하자고 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반면 박 대통령이 말한 동해선 연결 작업은 언제 작업이 마무리될지도 모릅니다. 철도가 지나가야 할 곳이 이미 7번 국도로 편입된 곳도 있고, 심지어는 상권이 조성돼있는 곳도 있습니다. 땅을 사들이고 철도를 까는 작업을 박 대통령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도 동해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경부선을 통해 서울과 개성을 거쳐 올라와야 물류 수요가 있고, 그래야 수익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해선은 연결해봐야 주 목적이 관광이기 때문에 경제적 파급 효과가 별로 없다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굳이 박근혜 정부가 동해선부터 먼저 연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끊어진 동해선을 연결하면 국제사회에 '남한이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네'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한국 국민들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서 일까요? 제 눈에는 실질적인 진전은 없으면서 그저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보면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이 북한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서 남북관계 개선을 하지 못했다는 명분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 식의 제안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측면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해 할 만큼 했는데도 북한이 나오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 정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이런 식의 정치적 계산을 할 시간에 북한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고, 남한이 무엇을 던져야 북한이 호응해 나올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북한, 2020년에 핵무기 100개 보유한다?  
 
프레시안 : 북한과 대화 통로는 막혀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향상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조엘 위트는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무부에 오래 있었고 실무 관료로서 성실하게 본인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에도 말씀하셨다시피 38노스라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위트에 대한 신망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제정치 세계에서 나 아니면 전부 '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을 때 동맹이지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동맹도 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적인 분석에서는 연구자의 국적성이 강하게 개입됩니다. 어느 나라 전문가든 그 나라의 국익을 전제로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위트의 발언에 대해서도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울 때 너무 방어적인 입장에 있는 선생님들로부터 수학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이러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한미 간에 무역 역조 현상이 심해지자 미국은 슈퍼 301조를 만들어 한국시장을 개방하라고 엄청난 압력을 넣었습니다. 6.25전쟁 직후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너그럽게 구호 물품을 지원해주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절감했습니다.  
 
수집한 첩보(information)를 전략적 가치를 갖는 정보(intelligence)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국적이 개입되곤 합니다. 즉 정보의 생산 과정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연방 예산 자동 삭감 제도(sequester)에 따른 국방예산 감축을 저지하거나 한국의 무기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조엘 위트는 북한의 핵 능력을 △저성장 △중간성장 △고성장 등 세 가지로 분류한 뒤에 2020년 예상되는 핵무기 개수와 폭발력을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고성장이 가능할 경우 북한 핵무기 개수가 100개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성장의 경우 20개, 중간성장의 경우 50개 정도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발표를 보면서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DNI)이 한국에 와서 북한의 핵 능력을 추산한 자료를 브리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통일·외교·국방 장관을 비롯해 외교안보수석 등 핵심 관계자들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가정보국은 10년 후인 2013년 북한의 핵무기가 40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도 대북 압박정책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당시는 2002년 10월 미국 켈리 특사의 방북으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밝혀졌다는 것을 구실로, 미국이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를 파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핵 활동 중지 등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휴지조각이 된 뒤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하니 이를 돌리기 위해 이같은 브리핑을 준비한 겁니다. 그런데, 2013년에 정말 북한의 핵무기가 40기가 됐습니까?  
 
조엘 위트도 이번에 유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무기가 100개로 늘어날 수 있는데 무슨 통일을 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이걸 보면서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국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위트의 이번 발표를 두고, 북한의 핵 능력이 커졌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 그 분석에 그런 의미가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7월에 있는 예산 심의에 앞서서 2~4월까지는 국제정세나 국제상황과 관련한 보고서가 많이 나옵니다. 민간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해마다 500억 달러씩 줄여나가야 합니다. 또 미국의 국가 이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은 동북아시아입니다. 중국 때문이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군사력을 증강하거나 최소한 예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7월 예산 심의에서 의회가 군 예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면 지금부터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보고서가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최근 발표한 남북 군사력 비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북한의 군사력이 2:11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군사력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수량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비교 방식이 아닙니다.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합니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쉐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북한의 전투기 중에는 레이더가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조차도 이런 군사력 비교에 대해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집에 옛날에 쓰던 석유곤로가 있다면, 음식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라고 일갈하지 않았습니까. 쓰지도 않는 석유곤로를 조리도구에 포함시키면 숫자는 많을 수 있어도 사실상 의미 없는 도구인 것처럼, 쓰지도 않는 무기를 숫자에 포함시키면 양적으로는 북한이 군사력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의미 없는 수치라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럼 미국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이런 보고서들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력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에 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태평양함대사령부의 예산을 깎으면 안되고, 일본이나 한국이 자체적으로 국방 예산을 늘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헤리티지 재단은 실수한 것 같습니다.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 분석해버리면 앞으로 누가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를 믿겠습니까? 설사 이런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는 너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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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20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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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현준박사.jpg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했지만 ‘김정은 정권붕괴론’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 배경은 김정은 어린 나이와 경험 일천, 잦은 권력엘리트 교체, 장성택 처형, 김정은 건강 문제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 상황에서 볼 때 ‘연목구어’인 것 같다. 북한 붕괴론은 당연히 해야 할 남북대화와 대북 지원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된다. 더욱 나쁜 것은 북한 조기 붕괴를 핑계로 회담을 건성건성하거나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10월에 북미간에 이루어진 ‘북미제네바 합의’였다. 합의과정이 건성건성이었고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배경은 당시 미국측 회담대표였던 갈루치(Robert Gallucci)가 실토했듯이 ‘북한 붕괴론’이었다.    
 

북미 제네바 합의와 북한 붕괴론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사이비’ 북한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김정일 후계체제는 “3일 아니면 3년 내에” 붕괴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세 분석이 1994년 10월 ‘북미제네바 합의’를 가능하게 하였다. 북한이 곧 붕괴될 터이니 북한이 원하는 북미관계 개선 및 경수로 건설을 합의해 줘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고 경수로 건설 중 북한이 붕괴되면 그것은 어차피 남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북미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면서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됨으로써 북한의 대미 불신이 매우 커졌고 북한이 미국의 대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발이 되었다. 즉, 미국은 북한체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든 “북한이 붕괴되기를 바란다”는 인식이 북한 지도부에 박히게 된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북미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의 정착 없이는 어떤 합의나 성명도 그 뒤에는 북한붕괴 의도가 숨어있다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북한붕괴론’이 팽배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시기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최고책임자들 모두가 ‘북한붕괴론’을 믿고 있었다. 이런 믿음은 대북 압박정책으로 나타났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북한이 붕괴되든지 무릎을 꿇고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최근 그의 자서전을 통해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쳤다고 자랑했다. 실로 사오정같은 ‘엉뚱한’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북한이 중국과 더욱 밀착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북한은 부존 광물자원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는 붕괴는커녕 오히려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북한이 남한의 대북 지원에 의해 지탱되는 것으로 오산한 것이다. 
 

 노동당 지배를 통한 '절차적 독재'

 

 그렇다면 지금의 ‘김정은 정권 붕괴론’은 어떠한가? 김정은 제1비서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하지 못한데다 정책 혼선까지 빚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 정치는 급속히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그 배경은 김정은 리더십 스타일 변화 및 주민들의 생활 변화 등 2가지이다. 김정은 리더십 스타일은 부친인 김정일과는 다르게 개방적이고 주민들의 생활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령독재는 지속되고 있지만 최소한 ‘절차적 독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을 약화시키고 노동당에 의한 통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에도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김정은은 부정부패행위 타파를 강조했다. 부정부패 문제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그만큼 관료부패가 심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시인할 것은 시인하자는 입장이다. 김정은도 관료부패를 청산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 것임을 안 것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도 놀랍게 달라지고 있다.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고 부동산 중개업을 필두로 전당포, 계주 등 자본주의식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있다. 주민들의 의식은 이미 자본주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서서히 북한 내에서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처럼 남한의 지원을 통해 생존해 보려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잘살아보려는” ‘발전 전략’ 차원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내부적 생존 문제를 걱정하는 차원은 벗어나 있다. 물론 아직은 외부로부터의 생존 문제는 남아 있다. 김정은 정권은 ‘불행히도(?)’ 장기집권기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인 포석과 전략하에 김정은 정권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는 일부 전문가가 주장하는 ‘북한붕괴론’같은 ‘허상’이 아닌 ‘실상’을 토대로 대북 정책을 펴야 과거 실패한 정부의 전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럼은 남묵물류포럼(http://www.kolofo.org/) 과 함께 공동으로 게재합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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