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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에 바다를 처음 본 스님

 
청전 스님 2015. 03. 10
조회수 110 추천수 0
 

 

*청전 스님이 라닥의 노스님들과 지난 1월 20여일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3편

 

라자스탄 국경을 넘으면서 구자라트 변경 관리 경찰들이 우르르…. "나마스테 구루지!" 하면서 반가히 맞음은 물론 노시님들께 다가와 극진한 인사를 올립니다. 허긴 이런 먼 곳에까지 승복을 입은 시님들 보기는 드물지요, 여행 잘 하라시며 기쁘게 맞습니다.

 

주 경계선을 넘으니 너무 차이가 나는 풍광이란, 라자스탄의 삭막한 변화 없는 모래 먼지땅에서 이젠 파아란 밀밭이며 활기찬 농촌 입니다. 인심도 곳간에서 나드라고 여유와 풍요가 확연 합니다. 간디 어르신이 태어난 주이며 현 모디 수상이 태어난 곳이라는데서 큰 자부심은 물론 전 주 지역이 채식과 불음주 구역입니다. 어떤 육식 요리는 없으며 맥주 조차도 판매하지 않습니다.

 

길 가면서 가끔 야생 사슴들을 봅니다. 이름 모를 짐승들을 보기도 하는데 참 좋아보입니다. 구자라트는 길이며 경제력이 인도 최고입니다. 현 모디 수상이 두번의 주지사를 행하며 미래의 인도를 이와 같이 만들겠다는 선언에 작년 수상 선거에서 근 90 대 10 의 큰 차이의 표를 얻어 수상이 됐고, 실제로 멋진 시행을 해나갑니다. 아마 이분이 한번 더 수상으로 연임한다면 인도 10년은 무지한 변화가 오리라 믿습니다. 우선 그넘의 공무원 청렴도를 내 걸었고, 쓰레기 없는 인도까지를 천명하기도.

 

길 좋아 잘 달려도 큰 나라 답게 바다는 아직도 먼가 봅니다. 길 가다가 이름 모를 조그만 동네 어설픈 여관에서 하루 묵습니다. 다음날 스님들께 오늘은 바닷가를 외치며 출발입니다. 드뎌 다람쌀라를 떠난뒤 6일만에 바닷가 해안에 닿았습니다. 80 인생길에 바다를 처음 본다는 시님들이라니…. 세 왕걀 노시님은 올 86세 입니다. 이 연세에 바다를 첨 보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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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관을 바닷가에 잡기로 했습니다. 물론 시내 안의 여관보다야 비싸겠지요. 뻬마시님이 알아본다고 하는데 한 얌전한 인도인이 우리에게 접근하며 "붓담 차라남 갸차미! 담마 차라남 갸차미! 샹감 차라남 갸차미!"를 외치며 극진하게 절을 올립니다. 잘 알다시피 "붓다와 법(진리)과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라는 빨리어 게송이지요.

 

얘기를 나누어보니 자기는 힌두교도이지만 부처님도 믿고 얼마전 고엥까 한달 명상쎈타에서 수행하고 왔다는군요. 거기서 조석으로 귀의 게송을 읊었다는 겁니다. 이 도시 포르반다르에 사신다기에 우리 사정과 호텔 얻는데 도움을 바란다니 기다려보라며 보기에 제법 큰 한 호텔로 들어갑니다. 뻬마는 네나 그 호텔에서 돌아와 너무 비싸 못들어가겠다고…. 마후 아저씨가 오더니 이런저런 요금 등등 조건을 말하는데, 알고보니 이 도시에서 최고의 호텔인 삼성급(Three Star) 여관이었습니다. 우리를 특별히 귀빈으로 파격적인 예우를 해 준다며 7명의 손님에게 아침 식사 제공하고, 세금 포함 하룻밤에 8000루삐(우리 돈 약 15 만원)로 해준다니!  야호. 우리 촌넘들에겐 땡 잡은 조건이지요. 역시 별 단 여관답게 크고 깨끗하고 참 아늑한 좋은 방에서 이틀은 쉬어갈 잠자리를 얻은 것입니다. 세방을 얻었고 뻬마에게 따로 엑스트라 침대를 제공해 줍니다. 실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니 의외의 더위가 다가와 에어컨을 작동시키는데 방마다에 깔끔한 자동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틈만 나면 바닷가에 내려가 파도 치는 모습이며 모래사장을 걷었습니다. 식사도 어디 못지 않게 맛나는 채식을 제공해 주네요. 근무하는 식당 직원들이 너나 할것 없이 기념 사진 찍기에 모두가 흐믓해 했답니다. 자기 호텔에 이런 좋은 구루지들이 첨이라나요.이튿날 새벽에 바닷가를 거닐고 호텔 뷔페식 아침을 먹는데, 우리 촌탉 노시님들은 처음 이런 고급 호텔에 오셨기에 어떤 어떻게 드셔야 될지를 몰라하셔 경험 삼아 음식부터 한가지씩 설명해 드리며 천천히 챙겨 드시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드디어 오늘 일정으로 첫 방문지는 간디 어르신이 태어난 생가입니다. 태어나신 방이며 기념관을 둘러보는 시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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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실물 크기의 간디 할배 동상입니다.

 

인도 극 서부 파키스탄과 맞닿은 드와르카의 나게스와르 힌두 쉬바사원에 갔습니다. 사뭇 경비가 심하며 우리도 한번 차량과 소지품까지 다 점검 받았네요. 신전 돌로 지은 건데 과격분자들로 부터 보호명목으로 일체 카메라나 전화기 까지도 못가져가게 하며 출입에 까다로운 검색입니다. 아래 사진은 다른데서 담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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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바신에게 봉헌된 사대 사원중의 하나랍니다. 움머나 이걸 하룻밤에 다 조성했다니!  이걸 누가 믿어?

참고로 인도 순례자들이 일생 한번은 가봐야 될 네개의 사대 쉬바 사원이란: 동쪽의 바로 이곳과 남쪽 라메스와람의 사원, 서쪽의 뿌리 사원과 북쪽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바드리나쓰 사원입니다.아니! 크라문 그런 도 모리고 난 그 네개를 다 둘러봐 뿌렀네그랴. 헌데 우리 쉬바신님이 나에게 팍 영검 잠 주시기 않구로잉.  ㅋ ㅋ ㅋ

사원 마당에서는 엄청난 참배객들이 춤을 추며 신나 합디다. 늘 종교가 뭔지?  극단의 신앙이 뭔지?

 

이곳을 왕복하면서 본 호수의 철새들이며, 산처럼 샇아둔 염전의 소금더미는 대단한 장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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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진기가 영험없는 제품이라 줌이 적어 멋진 철새 조류 도래지를 잘 못담습니다. 아프리카에서난만 본다는 홍학 떼들은 대단한 장관이기도.

 
내일은 또 일정 따라 길을 떠나야 됩니다.  <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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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광주 대건신학대에 다니다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88년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매년 여름 히말라야 최고 오지인 라다크를 찾아 고립된 티베트 스님들과 오지 주민들에게 약과 생필품을 보시하고 있다. 어느 산악인보다 히말라야를 많이 누빈 히말라야 도인.
이메일 : cheongjeon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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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일동안 바닷속에 있는 우리 다윤이 찾게 좀 도와주세요”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난치병 앓으며 혹한에 청와대 1인 시위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씨가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씨가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329일 동안 바닷속에 있는 우리 다윤이를 찾아주세요."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칼바람이 몰아친 10일 오전,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45) 씨가 청와대 앞 분수대 삼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

신경섬유종 앓고 있는 박은미 씨
"우리 다윤이 찾게 좀 도와주세요"

박 씨는 2월 말부터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박 씨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 조차도 힘겨워보였다. 박 씨는 뇌종양의 일종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이라고 한다. 뇌에 자란 종양이 신경을 눌러 청력도 약해졌다. 박 씨는 "치료보다 딸을 찾는 게 먼저"라며 "딸 좀 찾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힘겨워 하는 아내가 걱정된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51) 씨가 피켓을 넘겨 받았다. 박 씨는 바닥에 잠시 앉았다. 고개를 숙인 박씨는 조용히 흐느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어렵게 명함을 건네고 말을 청했다.

"우리 다윤이 얼굴 있는 저 피켓 들고 서 있는 것 조차 미안해요. 다윤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흑흑흑. 딸 좀 찾게 도와주세요."

다윤 양은 용돈을 달라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착한 딸이었다. 밝교 애교도 많던 귀여운 둘째딸이었다. 그런 딸이 깊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배 안에 갇혀 있다. 다윤이의 가방, 다윤이 아빠가 사준 파란색 푸마 운동화, 다윤이가 언니 서윤씨에게 빌려간 검은색 모자는 바닷속에서 나왔지만, 다윤이는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무슨 말로 그 심정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다윤이 생각하면 숨 쉬는 것도 미안하고 먹는 것도 미안하고, 다윤이한테 미안해서 살 수가 없어요. 매일 잠들면서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잠을 안 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요. 저희는 어떤 방법으로 실종자를 찾아낼 수 있는지 몰라요. 50미터 깊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재수색을 하든 인양을 하든 제 딸을 꺼내달라는 거예요. 9명의 실종자들을 다 찾아달라는 거예요.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흑흑흑. 좀 도와주세요."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힘들어하자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가 부축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힘들어하자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가 부축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에 와서 그랬어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까지 다 찾아주겠다고
대통령으로서 한 그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박 씨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박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에게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와서 그랬거든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 까지 다 찾아주겠다고. 나라의 엄마 잖아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국민이잖아요. 국민 덕분에 대통령이 있는 거 아녜요? 국민을 우습게 아는 대통령이 뭐가 필요해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단 한 가지, 내 딸을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것, 재수색이든 인양이든 그건 정부가 방법을 갖고 나와야죠. 우리는 국민이니까, 정부가 책임지고 찾아줘야죠."

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는 직장도 잃었다.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진도에 오래 있었잖아요. 너무 오랫동안 회사에 못 나가서 결국 다른 사람을 쓰고 애 아빠는 회사에서 잘렸어요. 애를 찾으려면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해야 하지만 지금은 생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딸을 찾는 게 중요하니까..."

박은미 씨는 다윤 양이 수학 여행을 가기 전부터 몸이 아팠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제가 많이 아파서 다윤이를 잘 챙겨주지 못했어요. 다윤이 엄마인 게 너무 미안해요."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오늘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내일은 나오겠지 정말 피 말리면서 기다렸는데...
제 딸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세요"

박 씨는 자신에게 이런 사고가 닥칠 거라고 상상도 못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딸을 못 찾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내일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기다렸어요. 정말 피 말리면서 기다렸는데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운 몸 상태인 박 씨는 치료 보다는 딸을 찾는 게 먼저라고 했다. "딸을 찾을 수 있도록, 9명의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날 이석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박은미 씨를 찾았다. 이 위원장은 "세월호 인양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손을 잡고 흐느끼기만 하던 박 씨는 딸을 찾아 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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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어떻게 해결됐나요"

 

로마 교황청 찾은 주교단 만나자마자 첫 질문으로 '세월호' 언급

15.03.10 22:31l최종 업데이트 15.03.10 22:3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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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8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영접 나온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세월호 유가족'이라는 통역 신부의 소개를 받은 교황은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위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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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한 때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 교황청을 찾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 재차 세월호 문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교황청 클레멘스 8세홀에서 사도좌(교황청) 정기방문 중인 한국 주교단을 만났다고 10일 천주교 주교회의가 밝혔다. 

이날 만남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교회의 측에 따르면, 한국어를 거의 잊어버려 통역이 필요하게 됐다는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한 교황은 모임에서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교황님께서 한국을 다녀가신 후에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잘 해결됐는지에 대해 주교님들에게 물으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면담에서, 지난해 방한 이후 한국에서 천주교 입교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느님께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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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방한 때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 교황청을 찾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 재차 세월호 문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사진은 한국 주교단 1그룹이 3월 9일(월)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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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교황은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4박 5일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유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등 세월호 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관련기사: '노란 리본' 단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들 성모님께 의탁한다").

그는 지난해 방한 첫 날, 공항에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손을 잡으며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가 하면, 38일간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56, 단원고 2학년 고 이승현군 아버지)씨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한편 이날 면담에는 김희중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등 한국 주교 14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방문한 주교 25명 중 나머지 11명은 오는 12일 교황을 면담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노란 리본 단 교황님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교황님, 실종자 10명이 가족과 만날 수 있게 기도를"
교황, 세월호 유족 직접 세례... "간절함에 마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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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기자회견

남북 노동자가 함께 ‘통일의 슛’을 날리자!대전지역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남북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기자회견
대전=오민성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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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0  17: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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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주최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김용복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이 노동계를 대표하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냉랭한 남북관계를 대변하듯 찬바람이 부는 10일 오전 11시, 대전시청 북문에서는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주최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개최되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를 위해 5.24조치를 해제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였다.

   
▲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이대식 본부장이 취지발언을 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이대식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본부장은 취지발언을 통해 “올해는 광복 7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지만, 일제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잠시 또 다시 민족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분단의 고통을 겪어왔다”면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되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남북 노동자들이 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김용복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은 “한국노총 대전본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민주노총 대전본부의 의미 있는 활동에 적극 공감하며, 이번 남북 노동자축구대회가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폭넓은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대전지역 예선전에 참가하는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조합원이 ‘5.24조치 해제’라고 씌여 있는 장애물을 축구공으로 넘어뜨리는 vj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5.24조치 해제 없이는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가 불투명하다”면서 “5.24조치는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조차 선별적 지원을 했으며,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 차단시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통일대박을 얘기하면서도 북녘 동포들을 만나는 것조차 가로막는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는 실익도 없는 5.24조치 해제하고, 전면적인 민간교류 보장을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한 지역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전지역은 15일(일) 오전 9시, 오정동 동산초등학교에서 예선전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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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 반응 보도

 
 
도 넘은 사죄는 미국 숭상과 현대판 사대주의?
 
뉴스프로 | 2015-03-10 13:18: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욕타임스,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 반응 보도
-도 넘은 사죄는 미국 숭상과 현대판 사대주의?
-정치인들, 종북몰이로 극단적 정치화
-미 전 외교관, 개인적 폭력행위에 국보법 적용은 지나친 의미 부여하는 것

뉴욕타임스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을 두고 한국인들의 반응이 양분되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기사는 지난주 조찬 강연 중 리퍼트 미 대사가 극단적 민족주의자 김기종씨의 칼에 찔려 얼굴과 팔에 상처를 입은 소식에 시민들이 분노했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방문자들이 리퍼트 대사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쾌유의 메시지로 메웠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어서, 대통령의 제부가 석고대죄를 하고, 군복을 입은 퇴역군인들이 시위를 벌이며 일부 종교인들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등의 도가 지나친 모습에 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이 도에 지나친 사죄는 미국을 “숭상하는” 태도이고 과거 중국에 그랬듯 미국에 대한 현대판 사대주의라고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다. 한 시민은 “나는 미국 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미친 사람을 증오”한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지나친 사과는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그들은 도가 지나치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동맹의식을 손상시킬 뿐이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태생 영주권자인 조승희씨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로 32명을 죽였던 2007년에도 이와 유사하게 지나친 태도를 한국 사회가 보인 바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동정심을 느끼는 것을 넘어 심지어 정치인들이 개인의 폭력 행위를 두고 종북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암시하는 것은 “‘종북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운동과 이를 연관시키고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 단발적인 사건을 극도로 정치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존 딜러리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는 서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前 미국 외교관 데이빗 스트라우브씨의 말을 빌려 김 씨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것은 “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의 폭력 행위를 대단한 것인 양 고양시켜, 그럴 가치도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현명치 못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ENg7Wo

South Korea Split Over How to React to Attack on U.S. Ambassador Mark Lippert
마크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의 반응

By CHOE SANG-HUN
MARCH 9, 2015

South Korean veterans rallied to denounce the attack on Mark W. Lippert, the American envoy, in Seoul. Many from the country’s older generation regard the United States as a savior. CreditLee Jin-Man/Associated Press
서울에서 한국 퇴역군인들이 마크 리퍼트 미 대사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국의 노년층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구세주로 여긴다.

SEOUL, South Korea — The knife attack last week on the American ambassador to South Korea, Mark W. Lippert, set off an outpouring of good wishes here for both the envoy and Seoul’s alliance with Washington.

한국, 서울 – 주한 미 대사 마크 더블유 리퍼트에 대한 과도 피습 사건으로 인해 대사의 쾌유와 한미동맹의 강건함을 바라는 기원이 쏟아졌다.

But the response, led largely by conservative South Koreans, has now provoked a backlash, with accusations that the govern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its supporters are “worshiping” America and politicizing the case to discredit domestic enemies.

대부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 반응은 이제 박근혜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을 “숭상하고” 국내의 반대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반발을 사고 있다.

Kim Ki-jong, a professed nationalist with a history of erratic outbursts of violence, slashed Mr. Lippert with a kitchen knife during a breakfast meeting on Thursday. He left a four-inch gash on Mr. Lippert’s left cheek that required 80 stitches and damaged tendons and nerves in his left hand.

돌발적인 폭력적 행동을 과거에 보여온 공공연한 민족주의자인 김기종씨는 지난 목요일 조찬 회의에서 리퍼트 대사를 과도로 찔렀다. 그는 리퍼트 대사의 왼쪽 빰(역주: 오른쪽 빰)에 80바늘의 봉합을 요하는 4인치 길이의 상처를 냈고 왼쪽 손의 힘줄과 신경을 훼손했다.

When the South Korean news media carried images of Mr. Lippert splattered with blood, the public initially reacted with shock. Well-wishers flooded Mr. Lippert’s blog and Twitter account, and they posted messages on signs that conservative activists put up near the United States Embassy in Seoul. The tone of the messages, however, quickly turned into one of guilt and apology.

한국 언론이 유혈이 낭자한 리퍼트 대사의 사진을 실었을 때 대중의 처음 반응은 충격이었다. 쾌유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리퍼트씨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메우고 서울 미 대사관 근처에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세워놓은 사인들에 사람들이 메시지들올 남겼다. 그러나 메시지들의 어투는 곧 죄책감과 사과로 바뀌었다.

In South Korea, mainstream conservative ideology teaches people to regard the United States as a savior that sacrificed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American soldiers while fighting for the South during the 1950-53 Korean War. But many Koreans, especially those who are older, saw Mr. Kim not only as a senseless criminal but also as an ingrate — the most despised character in Korea’s deeply Confucian culture.

한국에서 주류 보수 이데올로기는 대중에게 미국을 1950-53년 한국 전쟁 당시 남한을 위해 싸우면서 수만 명의 미국 병사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구세주로 여기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특히 나이를 먹은 많은 한국인들은 김 씨를 무분별한 범죄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유교문화에서 가장 경멸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배은망덕한 인물로 보았다.

“So Sorry,” read a banner in front of a lone activist on the street near the hospital where Mr. Lippert was recovering. He said he was re-enacting an ancient Korean custom in which a sinner seeking forgiveness would sit on a straw mat on the street and fast. The man, Shin Dong-wook, is the president’s brother-in-law.

“너무 죄송하다”는 문구가 리퍼트씨가 회복 중인 병원 근처 길바닥에서 앉아 있는 1인 활동가 앞에 놓인 사인에 적혀 있다. 그는 용서를 비는 죄인이 길바닥에 멍석을 깔고 앉아 단식을 하곤 했던 오랜 한국 관습을 재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씨이다.

On Monday, a crowd of older South Koreans in military uniforms, some with canes, rallied near the American Embassy, urging fellow citizens “not to forget what the Americans did for us during the war” and to “eradicate jongbuk,” or sympathizers with North Korea, who they said were behind Mr. Kim’s attack.

월요일, 군복을 입은 노년의 한국인들과 깃발을 든 사람들이 “한국 전쟁 기간 미국인들이 우리를 위해 한 것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종북 척결”, 다시 말하면 그들이 김 씨의 공격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 동조자들을 척결할 것을 시민들에게 촉구하며 미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Such sentiments reflected fears that the episode might harm the alliance with Washington, making South Korea more vulnerable to North Korean threats. A similar reaction engulfed the South in 2007, when Seung-Hui Cho, a South Korea-born green card holder, killed 32 people in a shooting rampage at Virginia Tech.

그와 같은 태도는, 이 사건이 미국과의 동맹을 손상시켜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더욱 취약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반응이 한국 태생 영주권자인 조승희씨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광란의 총기난사로 32명을 죽였던 2007년도에 한국 사회를 뒤덮은 바 있었다.

But this time, it did not take long for a counter reaction to kick in.

하지만 이번에는 반발이 일기까지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This is too much! What they did was almost like god worshiping,” one blogger said. Another compared the wave of “I love America” feelings to shrines that ancient Koreans built to worship China for sending troops to help fight Japanese invaders.

한 블로거는 “너무 지나치다! 그들이 한 짓은 거의 신에 대한 숭배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블로거는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는 감정의 파동을 일본 침략자들을 물리치도록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 중국을 고대 한국인들이 숭배하기 위해 지은 사당에 비교했다.

John Delury, an American professor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said, “South Koreans felt shock and deep sympathy on a personal level for the U.S. ambassador, even a sense of guilt that he suffered this brutal attack as a guest in their country.”

서울 연세대학교 존 딜러리 미 교수는, “한국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미 대사에게 개인적으로 깊은 동정심을 느꼈으며, 심지어 자신들 나라의 손님이 이러한 잔인한 공격을 당했다는 데 대해 죄책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But now government officials and political parties are hyper-politicizing what was really an isolated incident,” he said, “linking it to a campaign against ‘pro-North Korea followers’ and as a way to drum up support for the U.S.-South Korean alliance.”

“그러나 지금 정부 관료들과 정당들은 이 단발적인 사건을 극도로 정치화시키고 있다”며 “그렇게 해서 ‘종북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운동과 이를 연관시키고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Indeed, Ms. Park and conservative leaders lost no time in insinuating a possible link between Mr. Kim and “jongbuk.” They quickly defined Mr. Kim’s deed as a “terrorist attack on the South Korean-U.S. alliance” — rather than an isolated act by a loner, as initial investigations appeared to suggest — and called for a thorough investigation into “behind-the-scene forces.”

실제로 박 대통령과 보수 지도자들은 즉각 김 씨와 “종북” 사이의 연계성을 암시했다. 그들은 초동 수사가 제시했듯이 김 씨의 행동을 개인의 단발적인 행위로 본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의 행위라고 재빠르게 규정하고, “배후 조정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A parade of South Korean leaders, including Ms. Park, visited Mr. Lippert in the hospital. But many South Koreans with deep historical grievances toward the United States, especially ove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to the pro-Soviet North and the pro-American South at the end of World War II, began accusing Ms. Park’s government and its conservative supporters of toady “sadaejuyi,” or big-country worship.

박 대통령을 포함, 한 떼의 한국 지도자들이 입원 중인 리퍼트씨를 방문했다. 그러나 특히 2차 세계대전 말, 친소 성향의 북한과 친미 성향의 남한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것을 놓고 미국에 대해 깊은 역사적 불만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박근혜 정권과 그의 보수 지지자들을 현대판 “사대주의” 또는 강대국 숭배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I hate the crazy man who stabbed the ambassador, and as a Korean, I feel like apologizing deeply to the Americans,” said Kim Mi-hyun, 36, who watched a group of Christian church members perform a traditional fan dance and kneel in contrition across a boulevard from the American Embassy on Saturday. “But this scene makes me sick at the stomach. They are way overdoing it, and it actually will damage the image of the Americans and the alliance among Koreans.”

“나는 미국 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미친 사람을 증오한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인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다“고 토요일 미국 대사관 건너편 대로에서 전통 부채춤을 추고 무릎 꿇고 회개하는 기독교 교회 신도들을 지켜보았던 36세의 김미현씨는 말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그들은 도가 지나치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동맹의식을 손상시킬 뿐이다.”

The police have charged Mr. Kim, the attacker, with attempted murder. But they are also said to be investigating whether they could charge him with violating the country’s National Security Law. On Monday, the main opposition party,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 said the government was using the law and Mr. Kim’s case to “hunt ‘jongbuk.’ ”

경찰은 공격자 김 씨를 살인미수로 기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또한 김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월요일,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국가보안법과 김 씨의 사건을 이용해서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David Straub, a former United States diplomat who served in the embassy in Seoul, said that invok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to deal with Mr. Kim seemed to be “unwisely elevating the violent behavior of one deranged person and ascribing to it a significance it does not deserve.”

서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前 미국 외교관 데이빗 스트라우브씨는 김 씨 사건을 처리하는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것은 “현명치 못하게 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의 폭력 행위를 대단한 것인 양 고양시켜, 그럴 가치도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 듯 하다고 말했다.

In comments posted on the website of the Walter H. Shorenstein Asia-Pacific Research Center, Mr. Straub added, “The U.S. government has criticized that law for decades for the McCarthyite way South Korean governments have sometimes implemented it to suppress alleged ‘pro-North Korean’ thinking.”

스탠포드 대학 월터 H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소 웹사이트에 게시된 논평에서 스트라우브씨는 “한국 정부가 매카시적인 방법으로 소위 ‘친북적’ 사상을 억압하기 위해 때로 이용한 점에 대해 이 국가보안법을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비판해왔다”고 덧붙였다.

 


 

[논평] 현 정권의 공안몰이, 국익에 도움 안돼
– 경호 책임자 문책이 우선, 국익 지킬 방안 마련해야

Wycliff Luke 기자

YTN 캡쳐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피습에 대한 한미 양국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양상이다.

미국은 담담하게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미 국무부는 “이 같은 무분별한 폭력 행위(senseless act of violence)에 한미 양국의 강력한 동맹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이번 사건을 “한미 동맹 찌른 종북테러” 운운하며 공안몰이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배후세력” 운운 하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한편 검찰은 30여 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 대목에서 과연 이번 사건이 향후 한미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미국, 민감한 국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

지난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미국은 박정희가 한국의 최고권력자로 부상하자 우려를 금치 못했다. 미국은 특히 그의 남로당 전력에 경악했다. 바로 이때 이승만 집권 시절 군사 고문관을 지낸 하우스먼이 나서서 미국 정부를 안심시켰다. 당시 케네디는 숙고 끝에 박정희의 취약점을 십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케네디 행정부는 박정희에게 한-일 국교정상화 압력을 가했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1976년 8월 판문점에서 벌어진 도끼 살인사건은 한반도에 일대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서 보니파스 대위, 마크 배럿 중위 등 두 명이 살해됐고, 이에 미국은 한국 해역에 항공모함 미드웨이 호를 급파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민감성을 고려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반도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가 불거졌을 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쳐 나갔다.

이에 비한다면 배후세력 운운하며 공안몰이를 벌이는 한국 정부의 대응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정윤회 국정농단, 불통으로 일관한 기자회견, 인사 기용 실패 등 갖가지 악재로 허덕이던 현 정권에게 이번 사건은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도한 남용은 위험하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한미 외교의 민감한 국면에서 유용하게 꺼내 들 카드로 십분 활용할 것이다. 현 정권은 대통령의 첫 방미 중 불거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원정 성추행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 정권이 리퍼트 대사 피습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해봤자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엔 없다.

현 상황에서 최선의 조치는 경호 관계자에 대한 엄중 문책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김기종이라는 위험 인물이 주한 미 대사에게 접근해 위해를 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담당 책임자의 엄중 문책은 어떤 조치에 우선한다. 사건은 이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 역량을 총 동원해 대미 관계에서 상대의 공세를 차단할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래야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부질없는 공안몰이에 몰두하다 정작 중요한 국익을 놓쳐서는 안된다. 현 정권은 냉정하게 우선순위를 정해 사태를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한미동맹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 강화시키는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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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5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3/09 [12:25]  최종편집: ⓒ 자주일보
 
 

 

▲ <사진 1> 2015년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조선이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사전에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 자주일보

 

 

어느 쪽의 전법이 더 우세한가?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지난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이제는 우리도 미국을 억제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선제타격할 수 있는 힘도 갖췄다”고 말했다. 이 직설적인 발언에서 조선이 생각하는 통일대전의 승산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승산이란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으로 미국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수용 외무상이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戰區)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사진 1>


그런데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을 믿을 사람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핵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공멸전쟁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미국과 한국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 통념은 핵교전 쌍방이 엄청난 참화를 입고 공멸할 것이라는 상상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그런 상상의 출발점은 1954년 3월 1일 미국이 실시한 15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과 1961년 10월 30일 소련이 실시한 50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0메가톤급 수소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핵폭탄보다 약 1,500배나 더 강한 핵폭발을 일으켰으니, 지구종말의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수소탄은 너무 크고 무겁고, 폭발력이 너무 강해서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핵무기경쟁에 몰두한 소련과 미국이 과시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핵전쟁론과 지구종말론을 뒤섞어놓은 상상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상이 차츰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다.


핵전쟁공멸론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하기 위한 군사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전술핵탄은 이미 냉전시기에 개발되었지만, 원형공산오차(CEP)가 10m 수준으로 크게 축소된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가 등장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기들의 위성항법체계를 각각 완성한 2000년대의 일이다.


전술핵탄을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와 결합시킨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핵전쟁공멸론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버릴 수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21세기 핵전쟁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20세기식 대량살육전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핵전쟁이 대량살육전으로 되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는 까닭은, 그것이 오랜 기간 격렬한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며 대량살육을 불러오는 재래식 전면전과 달리 전쟁의 운명을 한순간에 결정하는 정밀유도전술핵탄 선제타격으로 매우 신속히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한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 21세기 핵전쟁의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을 알아야 공상적인 핵전쟁공멸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2013년 5월 18일부터 네 차례 신형 전술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하여 2014년 8월 14일 마침내 초정밀타격도를 지닌 신형 전술미사일개발을 완성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8월 25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한반도 군사정세 바꿔놓은 북의 전술로케트탄 18발’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조선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도 물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 (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7416)


이처럼 조선과 미국이 각각 서로를 공격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으므로,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경우 승패여부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전법에 의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한 무력이 준비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무력을 사용하는 전법이다. 사격법을 모르는 사람이 들고 있는 총이 막대기만도 못한 것처럼, 위력적인 전법을 갖지 못한 군대에게는 방대한 무력이 한낱 무용지물로 되는 법이다. 

 

▲ <사진 2>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전형적인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위의 사진은 미해군이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는 40,000t급 상륙강슴함 반홈리처드호의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 항공모함만큼 커 보인다. 미국의 전법은 그런 식의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의 전법으로는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미국군의 허장성세 뒤에 감춰진 치명적 결함이다.     © 자주일보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약점


조선과 미국은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고 자기의 전법을 개발, 완성하는 데서도 각자 서로 다른 경로와 방식을 택했다.   


미국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에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였는데, 배수량 100,000t급 초대형 항공모함, 적재량 120t급 전략폭격기, 배수량 40,000t급 초대형 상륙강습함, 수중배수량 18,000t급 전략잠수함이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사진 2>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갖춘 무장집단들이다.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중생대에 번성하였으나 자연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진화과정에서 낙오하여 결국 멸종된 공룡처럼,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국군도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라는 것은,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은밀기동력, 불시기습력, 선제타격력이 도입된 무장장비의 전반적 변화를 뜻하는데, 미국의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 같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은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여 현대화되었다고 해도, 선제기습타격이 아니라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것이다.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을 동원하면 적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은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의 주요무장장비들 가운데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에 적합한 것은 잠수함밖에 없는데, 미해군 잠수함은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하지 못하고 반드시 항모타격단에 배속되어 작전하게 되므로 잠수함도 불시기습과 선제타격은 하지 못한다.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군이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2003년에 일어난 이라크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정찰조 침투, 증원군 투입, 공습, 상륙강습, 수도점령이 순차적으로 진행된 이라크전쟁은 미국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20세기형 낡은 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미국군에 맞서는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거대기동타격수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항모타격단, 전략폭격비행단, 상륙강습단을 창설 또는 증강하기 위해 거대기동타격수단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있는데, 그런 노력은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대응전법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군이 프랑스에서 강습상륙함을 수입하려는 것이나 중국인민해방군이 항공모함을 건조한 것은 그러한 대응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대응전략은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식 낡은 전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독자적인 전법을 갖지 못하면,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는 나라는 반드시 독자적인 전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들 가운데서 미국과 맞설 독자적인 전법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에서는 자기의 독자적인 전법을 ‘주체전법’이라 부른다.


조선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주체전법’을 창시하였고, 6.25전쟁 중에 더욱 발전시켰다고 말하는데, 정전 이후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며 군력강화에 힘써온 지난 60여 년 동안 ‘주체전법’은 더욱 심화, 풍부화되어 오늘에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한 것은 조선의 강점


조선에서 말하는 ‘주체전법’의 기본내용은 빨찌산전법과 정규군전법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빨찌산전법이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뜻하고, 정규군전법이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뜻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주체전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핵전법이다. 조선의 언론보도나 공개자료에는 핵전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그것을 사용하는 전법을 개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 글에서는 핵전법이라는 말을 쓴다.


기존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각자 자기들의 핵전법에 도입하였지만, 신흥 핵강국인 조선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은 물론이고 무징후선제기습타격까지 자기의 핵전법에 도입하였다. 조선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과 대량화력집중타격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21세기형 핵전법을 개발한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무징후기습은 미국의 정찰망에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적의 급소를 기습한다는 뜻인데,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무징후상태에서 은밀히 기동하여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선제타격을 하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인민군의 무징후기습은 지하발사기지에 매복한 전략군, 남진갱도에 매복한 핵배낭특수부대, 적진인근수역에 매복한 잠수함대, 초저공-무전파상태로 매복비행을 하는 요격기편대가 동시다발로 자기의 전투력을 총폭발시키는 지하-수중-공중 3차원 기습공격인 것이다. 그런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하여 완성한 것이 조선의 핵전법이다. 이처럼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구성되는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사진 3>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전개되는 기습전법이다. 그것은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유기적으로 배합한 전투조법이 전개되는 독창적인 전술핵전법이다. 위의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전승 60주년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핵배낭부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전시에 남진갱도를 통해 남하한 그들이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의 지하에 핵배낭을 설치해놓고 원격조종장치로 기폭하는 순간, 그 모든 기지들은 사라질 것이다.     © 자주일보


첫째,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초정밀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불시에 초토화할 정밀유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둘째,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는 핵배낭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을 지하핵폭발로 파괴할 남진갱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사진 3>


셋째,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수중발사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전략거점들을 초토화할 수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넷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초저공무전파비행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항모타격단과 상륙강습단을 격침시킬 공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핵전법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조선의 언론에 공개된 조선인민군의 각종 군사활동을 분석, 고찰하여 <자주민보>에 여러 차례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증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늘 조선이 3차원 핵전법을 완성하였고, 그런 핵전법에 사용될 핵탄도 충분히 확보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과대평가가 아니다. 그 동안 조선의 언론보도들과 미국의 언론보도들 속에서 내가 찾아낸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심층정보들이 조선의 핵전법 개발과 핵탄 보유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전술핵전법이다. 전략핵전법은 따로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전술핵전법의 ‘불벼락’을 맞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미국이 전의를 상실하여 보복공격을 포기하고 항복한다면, 통일대전은 사실상 30분 만에 끝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초단기속결전은 바로 그런 핵타격씨나리오에 바탕을 두고 성립된 새로운 전쟁개념이다.


  
미국의 보복공격기도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력


그런데 문제가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으로부터 선제타격을 입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는 조건에서만 전쟁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데,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조선을 선제타격하는 경우 조선이 미국에게 보복타격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데,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상황을 정반대로 오판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이 3차원 동시다발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만에 파괴하더라도,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타격을 하면, 통일대전은 미증유의 핵교전으로 전이되어 교전쌍방이 막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핵전법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하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려면 매우 강한 전략억제력을 가져야 한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군사기지를 잃은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할 경우,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미국은 조선의 전략공격을 받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미국이 깨달으면, 미국은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더라도 감히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난 냉전시기에 양대 핵강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은 각기 상대를 향해 메가톤급 전략핵탄을 겨누고 있었는데, 그런 핵대치상태를 유지하는 양국 관계에서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하는 ‘공포의 균형’이 조성되는 바람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포의 균형’이란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할 의지와 담력을 갖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전쟁을 결심하는 국가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담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냉전시기의 ‘공포의 균형’은 그런 의지와 담력이 없는 두 나라 국가지도자의 공포심, 의지박약증, 담력결핍증에 의존하는 심리적 억제력이었으므로 심리현상만큼이나 가변적이고 불안정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이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심리적으로 억제하려는 냉전식 핵전법이 아니라,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는 전법이다.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강한 힘을 가졌을까?


이 문제에 대한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는,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추정은 미국을 ‘유일초강대국’이라고 믿어온 고정관념에서 흘러나온 의식의 분비물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그런 추정이 빗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략억제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머릿속에 떠올리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조선이 보유한 네 가지 전략억제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은 다음과 같이 다종다양한 전략억제수단들에 의해 세계 최강 수준에 도달하였다.  

 

▲ <사진 4> 미국의 군사위성을 위성요격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은 조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력적인 전략억제력이다. 조선이 위성요격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여러 정보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조선은 그런 전략억제력으로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고, 전쟁피해를 극소화한 초단기속결전을 전개하여 조국통일대전을 순식간에 끝내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극궤도에 진입한 위성요격미사일이 군사위성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 자주일보


첫째, 미국의 군사위성체계에 대한 조선의 미사일공격이다. 이것은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ASAT)을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위성이 회전하는 궤도는 남극과 북극을 지나는 극궤도(polar orbit)다. 미국의 군사위성은 지구표면으로부터 약 800km 떨어진 극궤도 위에서 초속 7.5km로 회전하고 있으므로, 발사시각으로부터 3분 안에 1,350km를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조준발사하면 군사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한 발 앞섰다. 2007년 1월 11일 중국이 자행발사대(TEL)에서 발사한 위성공격미사일이 지구표면으로부터 865km 떨어진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기상관측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미국은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2008년 2월 14일 미사일순향함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정찰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당시 중국과 미국이 각각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은 사거리가 1,500km인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이었는데, 사정권이 1,000~2,750km에 해당하는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은 조선에 무수히 많다. 중요한 문제는,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초속 7.5km로 비행하는 조그만 군사위성을 명중시킬 정밀요격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의 외기권 비행속도와 군사위성의 극궤도 회전속도는 서로 같으므로, 탄도미사일을 외기권에서 요격하는 기술을 가졌다면 군사위성을 극궤도에서 요격하는 기술도 가진 것이다. 조선이 2010년 10월 10일 군사행진에서 요격미사일을 탑재한 3축6륜 자행발사대와 위상배열레이더 탑재차량 등으로 구성된 ‘주체식 요격미싸일종합체’를 등장시킨 것은 초속 7.5km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맞추는 정밀요격능력을 가졌음을 과시한 것이다. 또한 조선이 2012년 12월 12일에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가 극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지상관제소에서 요격미사일을 조종하여 극궤도에 진입시키는 첨단기술을 가졌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이 군사위성을 요격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는 정찰위성, 신호정보위성, 해양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미사일발사탐지위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체계가 파괴되면,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군사위성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의 전쟁수행력이 완전히 마비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조선의 싸이버공격이다. <뉴시스>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1998년 9월 조선이 500명의 전자전 전투원으로 편성된 싸이버전투부대를 창설하였는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 조선의 싸이버전투부대는 3,000명으로 증강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4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전략싸이버사령부 창설을 지시하였고, 조선인민군은 그 지시에 따라 6,000명으로 증강된 전략싸이버사령부를 창설하였다고 한다. 전략싸이버사령부 산하에 직속부대병력 1,200명과 기술지원병력 1,800명이 배속되었고, 연관단위들에 3,000명의 병력이 배속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합킨스대학교의 알렉산드르 만수로프(Alexandre Mansourov) 교수는 2014년 12월 2일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조선의 싸이버전투원이 5,900명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12,000명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싸이버전투부대의 특징은 “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튼튼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18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James A. Lewis) 전략기술국장은 조선이 앞으로 5년 안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싸이버공격인 스턱스넷(Stuxnet)공격을 할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 스턱스넷공격에 대한 방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전에 억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이 조선의 싸이버공격에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사진 5>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수단은 여러 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전자기파무기(EMP weapon)다. 조선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 중앙부 상공 480km에서 전략핵탄 한 발을 터뜨리면, 거기서 방출된 강력한 전자기파가 미국 본토 전역을 뒤덮으며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을 전면적으로 마비시키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게 회복하기 힘든 대재앙으로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공중핵폭발로 방출된 거대한 전자기파가 대도시를 뒤덮는 순간포착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전자기파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므로 실제상황에서는 위와 같은 장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자주일보


셋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자기파(EMP)공격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특별대책국장인 피터 빈슨트 프라이(Peter Vencent Pry)는 2013년 5월 21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SJ)>에 실은 ‘북조선은 미국에 어떻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적국의 전자기파공격이 미국의 전력공급체계와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경우, 미국 전체 인구의 생존과 현대문명을 유지시켜주는 통신망, 교통망, 금융거래망, 식량 및 식수공급망이 모두 끊어져 대재앙에 빠지게 된다고 크게 우려한 바 있다. 2014년 4월 초 미국 국토안보부가 작성하여 미국 국방부에 제공한 보고서는 미국이 조선의 전자기파공격으로 파괴될 위험을 인정하였다. <사진 5> 


넷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인 군사위성체계공격, 싸이버공격, 전자기파공격은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공격은 아니지만, 미국에게 치명상을 입힐 공격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서도 항복하지 않을 경우, 조선은 인명을 살상하는 전략핵공격을 마지막으로 선택할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각지의 지하발사기지들에서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미국 본토 해안에서 가까운 수중매복구역에서 대기하던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수중발사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3월 29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심야에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진행된 작전회의에서 “아군 전략로케트들이 임의의 시각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 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 남조선주둔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고, “전략로케트들의 기술준비공정계획서에 최종 수표”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지시에 따라 2013년 4월 초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아시아태평양전구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을 타격할 사거리 4,000km의 화성-10호를 동해안으로 이동하고 사격대기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미국의 정찰위성은 화성-10호 한 발이 특별수송열차에 실려 동해안으로 이동한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이다.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에서 각종 핵탄미사일들이 사격대기태세를 취하여 초긴장된 시각이 한 초 한 초 흐르던 2013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하였다. 


그런 통고가 나간 이후 지금까지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암시적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해왔다. 올해 조선인민군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것인데, 미국이 무슨 수로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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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후손 뭘로 보고…왜가리에 덤볐다가 되레 밥 된 족제비

 
조홍섭 2015. 03. 09
조회수 16028 추천수 0
 

쇠족제비, 이번엔 왜가리 사냥 나서…부리 물고 늘어져

늪으로 날아간 왜가리 익사 시도, 결국 긴 부리 속으로

 

wea1.JPG» 왜가리의 부리를 물고 매달린 쇠족제비. 차창 밖으로 찍은 사신이다.

 

영국의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쇠족제비와 유럽청딱따구리의 목숨을 건 싸움 모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경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딱따구리를 공격한 쇠족제비의 배포와 등에 올라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근성은 작지만 매운 포식자의 본성을 잘 드러냈다.(■ 관련기사포식자 쇠족제비 태우고 청딱따구리 황당 비행)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을 눈치챈 쇠족제비가 공격을 포기함으로써 딱따구리는 포식자로부터 해방됐다. 둘 다 승부를 가리지 않고 공존한 셈인데, 사실 자연은 늘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은 법이다.
 

최근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쇠족제비의 사냥 장면을 촬영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다. 이 작은 포식자도 역시 자기보다 큰 새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사냥 대상이 제법 컸다.
 

wea2.JPG» 왜가리가 부리를 물고 늘어진 쇠족제비와 함께 늪으로 날아가고 있다.

 

30년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끝으로 조류 탐사에 빠져있던 주노 포르검은 지난주 켄트에 있는 엘름리 국립자연보고구역에서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차창을 통해 왜가리 부리에 길쭉한 동물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월6일그의 블로그에 올린 일련의 사진을 보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쇠족제비는 덩치도 크고 사나운 포식자인 왜가리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왜가리가 커다란 부리로 위협하자 족제비는 그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왜가리는 놀라서, 아니면 혼을 내 주려고 쇠족제비를 매단 채 늪으로 날아갔다. 성가신 족제비를 물에 빠뜨려 질식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wea3.JPG» 늪에서도 쇠족제비의 저항은 계속됐고 부리를 끈질기게 물고 버텼다.

 

wea4.JPG»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부리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쇠족제비.  

 

쇠족제비는 끝까지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결국 그의 몸은 왜가리의 부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공룡의 살아있는 후손은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쇠족제비의 용기는 지나친 것이었나.

 

wea5.JPG» 쇠족제비는 왜가리의 부리에 두 개의 상처를 남긴 채 먹이로 사라졌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주노 포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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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손석춘 칼럼] 언론은 왜 침묵하나… 명백한 조직적 범죄, 원세훈 유죄로 끝날 일인가
 
입력 : 2015-03-09  17:22:37   노출 : 2015.03.09  18:35:15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공안검사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진태의 개탄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서 “과연 하나에 1억씩 하는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거를 누구한테 흘렸고 누가 그걸 과장했느냐가 더 중요한가”라고 야당 의원들을 훌닦았다. 같은 날 MBC와의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는 곳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전부 논이고 밭이다”며 “그러면 밖에다 버렸다고 하는 것하고 논두렁에 버렸다고 하는 게 그게 무슨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어떤가. 나는 ‘공안 검사’출신이 그 차이를 정말 모를까 궁금하다. “집사람이 밖에 버렸다고 하더라”라는 진술과 “논두렁에 버렸다”의 차이는 크다. 굳이 소통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당시 국정원이 ‘심리전’을 강화한 사실만 주목해도 충분하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SBS의 ‘단독보도’ 이후 그 진술이 얼마나 ‘노무현 조롱’을 불러왔고 파국으로 몰아갔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하지만 ‘공안검사 의원’과 시국 인식을 전적으로 같이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법사위에서 문제의 발언을 하며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부르댔다. 그렇다. 나는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저 집권여당 ‘공안의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어찌 우습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공안의원이 국회에서 그렇게 주장한 날, 나는 경향신문에 국가정보원이 ‘국가전복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관련기사 : 경향신문 / 누가 내 생각을 조종한다면]

공통점은 더 있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가 그것이다. 정말이지 길 지나가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 2015년 2월 25일 경향신문 2면 기사

 

 

‘논두렁 시계’가 상징하듯이 심리전은 고도의 세련된 ‘언어 마술’이다. 만일 전직 대통령의 인격을 파탄 내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국정원이 수사검사들의 반대를 묵살한 채 언론에 흘린 게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심리전은 국민의 생각을 조종할 단계에 이미 와 있었다고 보아도 결코 과장된 진단이 아니다. 

더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올곧은 검사들은 곰비임비 옷을 벗거나 좌천당했다. 하지만 그 부실한 자료만으로도 고법은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법정 구속했다. 

그럼에도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나라가 사뭇 조용하다. 민주공화국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까? 명토박아둔다. 나는 국정원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분에 성실한 요원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세훈과 그 일당이 저지른 대선개입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작게는 국정원을, 크게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뒤흔든 반국가사범들이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그런데 보라. 신문과 방송 대다수는 짐짓 모르쇠다. 야당의 ‘분노’또한 어쩐지 시늉뿐이다. 왜 그럴까? 저널리즘 이론에 밑절미 두고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어떤 사안이든 초기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느냐에 따라 공중의 태도가 완고하게 형성된다. 20세기 후반,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권에 민감했던 지미 카터 정권에서 언론 쪽 책임자의 말은 시사적이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호딩 카터는 “만약 심각한 도전 없이 3일 정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안의 맥락을 규정하고 그 사안에 대한 공중의 인식도 통제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카터 정권이 그 수준이라면, 다른 나라, 다른 정권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해볼 일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결과 중간발표로 초기에 ‘사실 무근’이 되었고, 공중의 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공중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손잡은 대다수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에 가담했다. 야당은 ‘대선 불복’의 틀에 갇혀 정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렇다. 대다수 국민은 지금 그 문제를 원점에서 바라보는 데 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언론인이나 학자들마저 침묵해도 좋을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통령 자리를 만끽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사실심 아닌 법률심을 하는 대법원에 지금 어떤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감시는 누가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나는 진실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앞에 이 엄청난 거짓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 땅은 지금 학문의 자유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다. 우국충정으로 쓴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20gil@hanmail.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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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새 내가 TV에... '종북 마녀사냥'의 시작

 

[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①] 돌아온 한국, 그곳에서는...

15.03.09 20:33l최종 업데이트 15.03.09 20:33l

 

 

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2011년 10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과 호기심의 보따리를 싼 채 남편과 함께 북녘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눈물짓고, 미소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 일란성 쌍둥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이 발동하기는커녕 낯설었던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돌아왔다. 

북녘 동포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며, 지혜롭고 성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내 동포들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또한 우리 남녘의 사랑스러운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요, 내 겨레였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다. 나의 북한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 후, 북녘 동포들과 나눈 마음과 정을 내 사랑하는 모국 한국의 동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201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북한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통일 조국은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돼 누리고 살아갈 조국이므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은 보수-진보 관계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사명이며 공의의 실현이므로, 나는 강연 주최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흔쾌히 찾아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경제적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

황선 그리고 '통일의 꽃'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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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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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께로 기억한다. '6·15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2014년 9월에 서울에 와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초청을 받았다. 나는 이 단체로부터 2014년 4월 초청을 받고 전국순회 강연을 한 적이 있어 승낙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4년 11·12월,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 조카 손녀의 돌잔치 등 집안 행사가 있었고, 또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북한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 있는 수양가족도 만날 겸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 "11월과 12월 사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알려진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연유다.

주최 측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토크콘서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한 사람은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이로 이름은 황선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만난 적은 전혀 없지만 언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현직 국회의원 임수경씨였다. 

내가 임수경씨에 대해 처음 들은 때는 그녀가 북한에 불법 입국해 평양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1989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북 뉴스를 듣고 보수적인 성향의 나는 그녀를 꽤나 싫어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난 뒤부터는 임수경 의원을 존경하게 됐고, 한때 그녀를 증오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아!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의원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최 측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내 스케줄에 맞춰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남편과 나는 북한 비자 신청과 함께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인천, 인천→심양, 심양→평양, 평양→북경, 북경→인천, 인천→로스앤젤레스의 복잡한 일정이었다. 

나는 서울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북한의 수양가족, 그중에서도 태어난 지 한 살이 된 수양손자 주의성(첫째 수양딸 김설경의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매일 몇 시간씩을 백화점에서 보냈다. 그래도 북녘동포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이 쓰기가 좋겠지만, 혹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수양손자 볼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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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 김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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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여행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막기 위해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불허한다'는 뜻밖의 뉴스를 들었다. 나는 뉴욕의 유엔본부에 있는 북한 대표부에 연락해 '혹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부득이 평양에 가야 한다면 허락해주겠으나 평양 공항 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된 뒤 이상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평양 출발 예정일인 2014년 11월 26일 전에 북한 입국 불허조치가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준비를 계속했다. 
 
임수경 의원이 말한 토크콘서트
임수경 의원은 통일 토크콘서트 참석 계기에 대해 지난 1월 15일 경찰 출석 당시 "공적인 일로 잠깐 조계사에 들렀다가 토크콘서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또 "행사 기획단계에서 (주최 측이)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임수경 "정치적 공안몰이... 3년 전 일 소환 부적절"). - 편집자 주
주최 측에서도 약간의 변경사항을 알려왔다. '통일 토크콘서트'의 일원으로 참석하려던 임수경 의원이 계획을 바꿔 '깜짝 게스트'만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존경하는 임수경 의원과 토크콘서트를 내내 함께하지 못하게 돼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잠깐이나마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서울에서의 일정은 상당히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11월 19일이었는데, 조계사에서 열리는 첫 번째 토크콘서트가 같은 날 열릴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 

내가 하는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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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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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친척들 그리고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 보는 서울의 친척들이나  토크콘서트가 아니었다. 북한의 수양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토크콘서트 장소인 조계사로 향했다. 2014년 4월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본 사람이 바로 황선씨였다. 아마 그때가 황선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강연의 요지는 '남과 북의 동포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르며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을 한 뒤, 이질감은커녕 '이들은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고 느낀 내 경험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많은 청중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6~7년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일부 언론사나 TV 방송이 내보내는 글·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에는 시장의 진흙 바닥에서 강냉이 알을 주워 먹는 '꽃제비'가 들끓고, 북녘 동포들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들. 여기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탈북 동포들이 가세한다. 마치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며 북한은 인간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증언'한다. 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을 하니 남녘의 동포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북한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 '그것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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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 6.15남측위 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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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통일 토크콘서트'도 평소에 내가 강연 중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녹조라떼'가 돼버린 남녘의 강물을 유머를 섞어 비유하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는 등. 예정대로 임수경 의원이 깜짝 게스트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으니 청중들은 큰 박수로 그녀를 환영했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첫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이틀 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는 자막과 함께 내 얼굴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에 대한 '마녀사냥'은 이렇게 시작됐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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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극우? 김기종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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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대체 누구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의 과거, 발언, 행동, 그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선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그를 ‘종북주의자’이라 부르고, 새정치연합은 ‘극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민족주의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정신병자’라고 지칭한다. 그가 ‘외톨이’였다는 증언도 소개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 단 하나의 ‘딱지’를 붙이는 건 허망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김기종씨를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모아봤다. 어쩌면 김씨의 ‘정체’는 엇갈리고 겹치는 이 시선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kim ki jong

김기종씨가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종북주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6일 "김기종씨 개인은 종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가지 전력, 현장에서의 활동 및 구호 등을 보면 종북주의자임은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시스 3월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를 '종북 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슨 관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3월9일)

 
 

kim ki jong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인용한 김씨의 한 대학동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한 대학 동문은 “(김씨는) 20년 전부터 반미·반일·친북 성향이 강했던 주사파”라며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할 때 본적을 독도로 옮기며 일본 규탄 운동을 하더니 북한에 다녀온 뒤부턴 본격적으로 반미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조선일보 3월6일)

 
 

통일부는 김씨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8차례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와 함께 ‘나무심기’ 활동을 목적으로 방북했다는 것.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극단주의자

김씨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물론 ‘테러’다.

진중권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1 3월5일)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 3월6일)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3월7일)

 
 

 

3. 민족주의자

김씨가 독도수호운동 등을 하는 문화단체를 운영해왔으며, 그가 반미시위에 참가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민족주의의 혐의를 찾는 시선도 있다.

외신들 중에는 김씨를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았다.뉴욕타임스는 김씨를 “민족주의 활동가(nationalist activist)”라고 표현했으며, CNN은 “민족주의 반미 활동가(nationalist and anti-U.S. protests)”로 그를 묘사했다.

kim ki jong

지난 2010년 7월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뒤 강연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종씨. ⓒ연합뉴스

해외에서 민족주의는 흔히 ‘극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배척 등을 주장하는 유럽 정당들은 예외 없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극우 민족주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는 어떨까. 김씨의 민족주의는 극단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씨는 강연장에 가져간 유인물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해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한다’ ‘광복 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3월5일)

 
 

BBC 역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씨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행동을 벌여 온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4. 정신병자

보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김씨가 평소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저렇게 일낼 줄 알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데일리안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용의자 김기종씨(55)에 대해 이웃과 지인들은 김씨가 “평소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90년대 초부터 전통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복원 작업을 함께 했다는 A씨는 김씨에 대해 “몸과 정신이 많이 아프다”며 “특히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6일)

 
 

김씨가 지난 1월말 아이돌그룹 ‘엑소(EXO)’ 공연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당시 그를 조사했던 수사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수사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홍보 책자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나눠주고,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며 “명문대를 졸업했다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3월6일)

 
 

kim ki jong

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휠체어에 탄 채 진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우리마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8년 8월17일 새벽, 김씨가 운영하던 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다. 괴한들은 이 단체 회원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같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한편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김창균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선일보 3월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인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 외톨이

김씨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외톨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사건 직후 SBS가 독도향우회 박남근 수석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2006년 김씨와 함께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인물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김 씨가 ‘내 생활을 내려놓고 시민운동에 몸을 바쳤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언론에는 정치나 명예를 좇는 사람만 나오고 나처럼 순수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관심을 못 받는다’고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을 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분 좋아하면서 ‘처벌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듯이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인 만큼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SBS 3월5일)

 
 

kim ki jong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가 대표로 활동하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진보 성향 문화운동 단체 우리마당. ⓒ연합뉴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벌여왔던 활동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김씨의 활동은 그의 궁핍한 처지와 맞물려 극단적인 폭력 행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전쟁훈련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패한 시민운동가의 ‘악심(惡心)’이 놓여 있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최근엔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 독도지킴이 등의 활동은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민일보 3월6일)

 
 

공정식 KOVA 범죄연구소장은 “김씨가 키리졸브 훈련 중단, 전쟁 중단 같은 사상적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반일과 반미를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자신을 탄압의 피해자로 합리화하고,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과격하게 발현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3월7일)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3월6일)

 
 



 

kim ki jong

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열린 김기종 수사관련 브리핑에서 경찰관계자가 압수서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런 다양한 시선과는 무관하게 김기종씨에 대한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방북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 개최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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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미 대사 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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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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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은 괜찮아? 외국은 ‘징역형’

 
 
 
법이 법의 기능을 상실하면 그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임병도 | 2015-03-10 09:02: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3월 9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임종룡 금융위원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됐고, 보고서가 채택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만 내정하고 중동 순방을 떠났다가, 와서도 외교 관례를 무시한 주한 미국 대사 병문안으로 국민들의 관심은 별로 높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박근혜 내각은 ‘위장전입’ 의혹이 많습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운전면허 취득을 위해 주소를 이전했다고 하고,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녀의 통학 거리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주택 청약 자격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위장전입이 너무 기본적으로 포함돼 혹시나 위장전입이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위장전입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봤습니다.


‘ 학부모들 스스로 적발해냈던 학군 위장전입’

한국에서 위장전입이 일어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학군 때문입니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가 시작됐습니다. 중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소위 일류학교로 불리던 경기중, 경복중, 서울중, 경기여중 등이 폐교됐습니다. 1973년에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발표됐고, 1980년에는 전국 지방 주요 도시로 평준화 지역이 확대됐습니다.

평준화가 시작되면서 신흥 명문 고등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위 강남 8학군 등 잘 나가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군에는 위장전입을 하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8학군에 대한 위장전입은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위원회는 학교 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8학군 위장전입자를 색출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교사, 동사무소 직원으로 편성된 ‘위장전입 조사반’은 실거주지와 위장전입한 주소를 확인했으며, 이런 위장전입 조사는 매년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위장전입 조사결과, 8학군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나 거주 기간이 짧은 학생들은 타 학군으로 배정하기도 했고, 편법 전입이 확인된 가구에 대해서는 최고장을 발부 주민등록을 옮기거나 말소조치까지도 했습니다.

▲교육구청장실에서 위장전입 문제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부모들 ⓒ 동아일보

위장전입에 대한 불만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위장전입이 늘어나서 자신들의 자녀가 원래 학군에 배정받지 못하고 더 먼 곳으로 학교를 배정받아 통학 거리가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은 스스로 위장전입 학생들을 찾아내 명단을 들고, 교육청에 몰려가 위장전입 학생을 조사해서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통학 거리가 멀어 위장전입을 한 것인지, 위장전입을 해서 통학 거리가 멀어졌는지 분명치 않지만, 위장전입은 우리 교육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범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파트 부정당첨 위장전입자 10%가 공무원들’

1997년 경기도 용인 수지지구는 아파트 투기 열풍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11개 건설업체에서 6,442가구를 분양하는 곳에 시세차익을 노린 수만 명이 몰리면서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1997년 용인수지2지구 분양 예정가와 시세 차익 ⓒ MBC

38평 아파트의 주변시세가 2억 4천에서 2억 7천인데 반해 분양가는 1억 3천이라 전국의 부동산 투기꾼들이나 떴다방들은 대거 용인 수지로 몰렸습니다.

시세차익이 적게는 6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이 넘으니 용인시 거주 1순위 통장은 수천만 원씩 거래됐고,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자가 속출했습니다.

감사원이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했다고 적발한 사람만 무려 2천7백13가구였습니다.

위장전입 조사자 2천7백13가구 중 부정으로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이 338명이었습니다. 그중 34명이 공직자였습니다. 아파트를 부정으로 당첨 받은 범죄자의 10%가 공무원이었던 셈입니다.

더 웃긴 것은 이런 위장전입을 알선한 사람들이 바로 용인시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서로 짜고 시세차익을 노린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단순히 주택 청약이나 아파트 청약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얼마나 추악한 거래와 범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장전입은 범죄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위장전입이 너무 흔하니 사람들은 위장전입을 가지고 뭘 그러냐는 소리를 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학부모가 위장전입으로 법의 처벌을 받은 내용의 기사 ⓒABC news

한국에서나 위장전입이 별거 아니지, 외국에서의 위장전입은 1급 문서위조와 중절도죄 등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습니다.

주소를 거짓으로 작성한 행위 자체가 문서위조에 해당하고, 세금이나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혜택을 보는 일을 절도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빵을 하나 훔치는 절도행위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재산과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 혜택을 받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당연히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오히려 부자와 권력을 쥔 자들에게 법이 더 많은 관용을 베풀고 있습니다.

▲위장전입으로 수천만 원대의 세금을 회피하는 실태를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 ⓒ오마이뉴스 선대인

위장전입을 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장전입으로 수천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꾸 위장전입에 대해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니, 위장전입을 해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거나 범죄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이 법의 기능을 상실하면 그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통령부터 법을 지키지 않은 자를 등용하는 사회에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자체가 더 웃기지 않습니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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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대표, “공안당국 도. 감청 미행” 주장

황선대표, “공안당국 도. 감청 미행” 주장
 
시민단체 “사람 머릿속 들어가 사람 생각 재단 공정한 재판 기대”강조
 
이정섭 
기사입력: 2015/03/09 [12:52]  최종편집: ⓒ 자주일보
 
 

 

▲ 민권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의 1심 재판에 앞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희망정치포럼 황선 대표가 국가보안법위반(고무 찬양)혐의 대판에서 공안당국이 자신에 대해 도청과 감청 미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황선 대표는 9일 서울지방법원 502호(형사 제21부 재판장 엄상필, 판사 고종완. 하승우)에서 열린 1심 첫판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감찰의 증거 목록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황선 대표는 이날 재판정에 들어서며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재판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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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황 대표의2차 재판은3월23일 오전10시502호 법정에서 열린다.

▲ 민권연대 김준성 실장이 황선 대표에 대한 재판은 사람의 머릿 속을 재단하는 것이라며 재판부의 합리적 판결을 촉구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이에 잎서 민권연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어 “분단 현실을 핑계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몇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마녀 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을 통한 비이성적인 ‘종북몰이’는 중단되어야한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며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했다.

 

민권연대 김준성 실장은 “안타깝게도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며 “17년 전 작성한 일기장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뿐더러 이와 관련해 황선 씨는 이미 처벌을 받은바 있다.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서신을 문제 삼는 것 역시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부당성을 고발했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 회장은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황선 대표의 발언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적대와 대결이 아닌 서로 친하게 지내야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면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고 있다. 이는 중세기 마녀사냥, 미국의 메카시즘 그리고 한국의 종북몰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황선 대표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 황선 대표의 남푠인 윤기진 대표는 친일 친미 종일 종미 세력이 문제라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황선 대표의 남편인 윤기진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공안당국이나 종편 외에 종북을 본 적이 있느냐.”며 “지금 한국사회는 종미. 종일. 친미 친일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기진 대표는 “우리는 실체도 없는 종북이 아니라 종미. 종일. 친일, 친미를 뿌리 뽑아야 한다. 종북 소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현정권에 종북몰이 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황선대표에 대한 기자회견문과 탄원서 내용을 게재한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한국의 종북 소동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미국의 메카시즘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통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여 구속이 된지 2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광기의 시대입니다. 낙인찍기와 여론몰이로 우리 사회가 분열과 대립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광기의 시대를 합리적 이성의 시대로 되돌려야할 책무가 있으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황선 씨의 발언이나 행동들은 일부 언론 등의 소위 ‘종북몰이’ 등으로 그 진의가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17년 전 작성한 일기장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뿐더러 이와 관련해 황선 씨는 이미 처벌을 받은바 있습니다.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서신을 문제 삼는 것 역시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황선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사용한 자료들은 국내 언론 등에서 이미 발표된 자료들이며,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국내 대다수의 평화단체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검찰은 통일토크콘서트에서 “북한 휴대폰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더라”,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키워준다”는 발언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이미 몇 년 전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보도되었던 내용들입니다. 분단 현실을 핑계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 마녀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습니다.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습니다. 황선 씨의 주장과 이야기들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하나의 의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기자회견문〕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
  
3월 9일 10시 반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심 재판이 열린다. 검찰이 통일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먼지 털이 식 수사를 통해 끝내 통일인사 황선시를 구속 시킨지 56일 째다.
  
종편이 ‘종북몰이’에 나서고,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며, 검경이 그에 다라 수사를 진행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황선씨의 구속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검찰은 이미 처벌받은 지난 일기장과 글의 내용으로 우려먹기 수사를 하고 있으며, 무죄 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편지를 빌미로 삼고 있다. 또한 황선씨가 방송에서 사용한 자료들은 국내 언론 등에서 이미 발표된 자료들이며,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국내 대다수의 평화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검찰은 “북한 휴대폰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더라.”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키워준다.”는 발언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이미 몇 년 전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보도되었던 내용들이다. 똑같은 말을 해도 황선 씨가 하면 유죄라는게 검찰의 주장이다.
  
분단 현실을 핑계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 마녀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다.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을 통한 비이성적인 ‘종북몰이’는 중단되어야한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바이다.
  
2015년 3월 9일
통일인사 황선 첫 재판에 즈음한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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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25주년 빨간등 켜진 한러관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3/09 12:49
  • 수정일
    2015/03/09 12:4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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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 2015. 03. 09
조회수 17 추천수 0
 

 aDSC08461.JPG  지난 6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러 대화 정경 컨퍼런스에서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러시아간 대화채널인 ‘한러 대화(KRD)’(조정위원장 한국쪽 이규형 전 주러대사, 러시아쪽 크로바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총장)는 지난 6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러수교 25주년-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정치 경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러시아쪽에서 베르비츠가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이사장, 쥐르코프 사하공화국 의회 의장, 무신 가스포럼 이사, 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 등 10여명, 한국쪽에서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한러미래 포럼 회장),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 등을 비롯해 교수변호사 등 40여명의 정치 경제 법률 학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오전에 수교 25년 성과와 과제, 남·북·러 3자 협력관계 등을 논의했으며, 오후 경제 세션에서는 경제협력의 현황과 전망, 러시아 내 투자 관련 법적 규제, 극동개발을 위한 협력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발제와 지정 토론이 있었다.
 전직 정부 관료 및 기업·학계를 망라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1.5 트랙의 한러대화는 그동안 정치 경제 문화 등 6개의 분과위에서 한러 양국간 현안에 대해 정부에 건의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날 회의의 발표와 토론에 바탕해 한러관계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남북 지도자를 동시에 초청한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전기념일(전승절) 행사가 한러관계의 미래는 물론이고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참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한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 문제는 올 봄 한국 외교가 맞닥뜨릴 가장 뜨거운 현안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 등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를 "남북러 3각 협력을 진전시키고 나아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계기로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수교 25주년 경고의 빨간 신호등 켜진 한러관계 

 

 올해 한·러는 국교 정상화 25주년을 맞는다. 1990년 9월 30일 당시 셰바르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유엔총회에서의 한러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한소 수교를 발표했다.
  이는 노태우 대통령 당시의 북방외교의 성과이자 1905년 ‘조·일 을사늑약’ 체결후 두나라가 1990년 9월말까지 약 85년간 외교관계의 단절과 냉전적 대립관계에서 벗어난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그리하여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은 두나라의 협력관계가 양자 차원에서 지역 및 세계 차원으로 다양화되고, 협력 범위도 경제·문화 영역에서 정치·외교·군사·안보 분야 등 민감한 분야로 까지 확대되는 등 전면적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이 25년간 두나라 정상은 23차례의 공식·비공식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이를 통해 세계적 외교·안보 이슈는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이슈를 논의 대개의 경우 공통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특히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내건 외교·안보의 3대 핵심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그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러시아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러 관계에 빨간불이 켜졌으며 한러관계가 정체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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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대화 정경 컨퍼런스 오전의 정치국제관계 세션에서 고재남 국립외교원(맨 오른쪽) 교수가 한러 수교 25주년을 평가하는 발표를 하고 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수사’에 불과

 

 이날 한국쪽 러시아 전문가들은 마치 말을 맞춘 듯 한 목소리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재남 국립 외교원 교수(러시아)에 따르면 “상당수의 한·러 관계 전문가들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의 성격규정은 아직까지 ‘수사’(rhetoric)에 불과하며, 앞으로 실질협력이 부재할 경우 양국관계가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9월에 이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서 두나라는 외교·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9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ASEM 정상회담의 참석, 두달 뒤인 11월 푸틴 대통령의 서울 방문은 양국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내실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국가 안보회의간 외교·안보 협력 확대를 위한 협의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런 합의는 빛을 잃었으며 모멘텀을 상실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세계의 대러 제재는 한·러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4년 두나라 사이의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으며, 고위급 외교·안보 인사교류는 축소됐다. 이는 이날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축사를 통해서 지난해 초부터 발효된 비자면제 협정에 힘입어 한 러간 인적 교류가 그 전해에 비해 30% 이상 증가했으며, 동북아 및 유라시아 차원에서의 긴밀한 협력 등 한러 관계가 거듭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와 대조되는 어두운 전망이다. 외교부 차관을 거쳐 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 역시 개회사에서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 비춰 볼 때 “아쉽다”는 말로 25주년을 맞이하는 한러 관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략적 입장 차이 드러낸 전략적 관계


  홍완석 외대 교수(국제지역대학원) 는“양국관계가 적지 않은 불협화음과 파열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온 것만큼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두나라의 상호협력 가능성과 잠재력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가 부족했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역시 외교적 수사(修辭)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로 △세계 GDP 8위 수준인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교역규모는 한·중 간의 그것에 비해 1/10에 불과하고, △인적 교류도 미·중·일에 견주면 미미한 수준이며. △2010년 5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같은 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서도 ‘전략적’ 관계인 두나라가 보여준 ‘전략적’ 입장 차이를 지적했다.
   또 엄구호 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는 두나라 협력관계가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 수사에 그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정치적으로는 미·러관계에 동조화됨으로써 북핵문제에 한정되는 측면이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는 남북관계의 기조에 구속되어 오랫동안 논의된 의제를 집행하지 못하면서 결국 외면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홍완석 교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라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의 불일치를 낳게 된 동인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한·러관계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크게 양자간에 존재하는 ‘내재적 요인’과 지정학적 환경에서 비롯된 ‘구조적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재적 요인은 △양국 간 이익교환의 부조화에서 비롯한 상호불신의 축적△ 한ž러 양국 간 정책목표 우선순위의 비대칭성△ 상호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인식의 반대칭성△ 경협 방식에서 시장주의적 접근(한국)과 국가주의적 접근(러시아)의 충돌 △ 러시아에서 부패와 관료주의에 따른 외국인 투자 유치 제도의 미비△한국 사회 일각에서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냉전의 타력(惰力 관성) 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구조적 요인으로 남북한 분단의 지정학적 현실 (북한 요인)과 한미동맹 (미국요인)이 작동한다.

 aDSC08530.JPG   한러대화 정경 컨퍼런스에 참석한 러시아쪽 관료 및 학계 전문가들

 

  전략적 협력관계의 내실화-남북러 3각협력 확대  

 

 고재남 교수는 지난 한·러 관계 25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협력과 갈등’, ‘접근과 정체’의 이중주로 비유되는 부침을 겪었다면서 문제는 지금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시키기 위한 방안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이 주문하는 핵심 제언은 북러 관계 긴밀화를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남·북·러 3각 협력의 확대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고 교수는 이를 위해  △양국간 전략대화 및 국가안보실 협의의 정례화와 여타 안보협력 틀 구축 △북핵 등 북한문제 해결과정에서 협력 확대 △지역·글로벌 수준에서 안보 협력 실질화 △유라시아 안보협력체에 옵저버 등 비회원국으로 참여 검토를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유라시아에는 다양한 다자 협력체가 존재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협력기구 (SCO)는 중립국을 표방하는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 4개국이 참가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의 주도로 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포괄적 다자 지역협력체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러·중 양국은 1996년부터 발전시켜 온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국제안보 및 평화문제에 대한 전략적 연대를 더욱 강화시켜 오고 있다. 이는 북한 핵문제, 북한의 급변사태 등이 발생할시 러·중 양국이 전략적 연대를 할 가능성이 많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은 사전에 러·중 양국과 전략적 협력의 토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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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완석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러 관계와 미러 관계의 분리 내지 탈동조화


  홍완석 교수는 세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한국쪽에 요구되는 것으로서 미ž러관계와 한·러관계의 탈동조화. 즉 한ž러관계를 미ž러관계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한ž러관계는 미ž러관계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왔으며, 따라서 미ž러관계로부터 한·러관계의 분리가 지속 가능한 협력체제 구축의 성공요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러시아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남북한 분단구조가 제공한 기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러시아 모두 양국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공유이익을 발굴하고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간 이익의 공유 및 그 확대는 전략적 관계의 형성, 유지, 발전을 담보하는 중요한 물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러시아)는 윈윈의  관점에서 북핵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북한과 우호관계를 크게 진전시키고 있는 러시아는 북핵문제의 교착상황을 타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평양과의 직접 대화 및 모스크바와의 공조를 통한 남북러 3각협력 등 교류협력을 강화해 북한과의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한편, 미국 및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북한 체제에 대한 보장 문제와 함께 핵폐기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각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와의 부분균형 동맹 모색 

 

  엄구호 교수는 두 정상들의 결단을 강조하면서 ‘부분 균형 동맹의 틀’을 제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부상,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러관계의 악화 등은 균형 외교의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데,. 4강 중 상대적으로 양자 동맹의 성격이 약한 러시아는 어떤 면에서는 균형 외교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제3의 균형자’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해 한미동맹의 필요성은 특히 군사안보 측면에서 보다 강화되는 상황이며, 또 다른 측면에서 빠른 속도로 글로벌 파워로 부상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가장 큰 레버리지를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은 우리의 대중 외교적 입지를 매우 축소시킬 만큼 커지고 있다. 이런 역설적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입지를 넓히는데 고려해 보아야 할 나라가 러시아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부분 균형동맹(semi-balancing alliance)은 한러관계에서 미국과 중국의 잠재적 긴장을 감소시킬 메커니즘을 찾으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접근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양자관계에 의해 주로 영향을 받는 동북아 정치의 과도한 민감성을 안정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도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동맹을 구축하듯이, 러시아와도 전략적 협력을 통해 자원부문 중심의 경제동맹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특히 잠재성장률 3.5%에 머물고 있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시장, 자원공급자, 물류 연결자가 될 수 있는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한국 경제 발전에 새로운 모멘텀을 줄 수 있는 잇점이 있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러시아를 한국에 유리한 영향력을 북한에 행사하는 소극적 의미의 이익 대상 국가가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핵심 파트너로 보는 적극적 인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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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대화 정경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국 전직 관료 및 학계 전문가들. 맨 오른쪽이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   

 

<보조>

 한-러 수교 25주년의 부침-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의 발전

 

 한·러 관계는 지난 25년 동안 (1) 정치·외교 관계의 정상화 추진기( 1988-1991), (2) 우호·협력 관계의 확립기(1992-94), (3) 건설적, 상호 보완적 동반자 시대(1994-2004), (4)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시대(2004-08), (5)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의 발전기(2008-현재) 등으로 전진해 왔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러시아)는 1992년 11월 옐친 대통령의 방한이 상호·협력 관계의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러 기본관계 조약’과 ‘한·러 군사교류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함으로써 정치·외교 관계의 설정이라는 초기 단계를 넘어섰다.

그에 따르면 그 뒤 ‘협력과 갈등', ‘접근과 정체’의 이중주로 표현되는 부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6월 방러를 통해 양국관계를‘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켰다. 또한 러시아가 1996년에는 북한과 체결한 소위‘군사동맹조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도록 하는 외교·안보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96년 4월 한·미 양국 대통령이 제안한 미중 남북의 ‘한반도 4자회담’에서 러시아가 배제되자 큰 후유증을 낳았으며, 공교롭게도 그해 10월 발생한 블라디보스톡 한국총영사관에서의 최덕근 영사 피살사건 등으로 양국간 외교관계는 일시적으로 크게 냉각됐고, 1998년 7월엔 양국 주재 정보분야 외교관이 맞추방되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는 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실질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조치들을 실행해 나가기로 합의하면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2000년 실리추구의 전방위 외교를 적극 추진한 제1기 푸틴 정부의 탄생,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사태 발발 등은 한·러 양국간 외교·안보 협력을 확대,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고 교수는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대러 관계 개선이 조급증을 낳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잠수함 2척 구입과 같은 과도한 대러 협력 공약과 2001년 2월 푸틴 방한시 공동성명에서 ABM 조약에 관한 러시아 측 입장 지지는 당시 단극 패권의 일방주의적 외교 행보를 보인 부시 미 대통령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면서 관련 외교당국자들의 경질 등을 거쳐 번복되는 사태를 빚으면서 두나라간 신뢰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고재남 교수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한·러 경제·통상 협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러시아의 대한 차관문제를 2003년 9월 재조정하면서 북핵문제의 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더 나아가 동북아 안보공동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여가 필요함을 인식한 것으로 보고 았다. 그 결과 제2기 푸틴 정부 출범후인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러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그에 따라 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6차례의 정상회담과 직접 통화, 그리고 총리회담 및 외무장관 회담시 양국이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공통된 입장을 천명하는 등 성공적으로 추진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모스크바를 방문해 개최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두나라는 드디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에너지·자원 외교, 철도·에너지·녹색 3대 신 실트로드 프로젝트 실현 등을 강조했으며, 비슷한 시기 출범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정부 역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현대화 정책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한·러 외교·안보 협력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9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ASEM 정상회담의 참석, 두달 뒤인 11월 푸틴 대통령의 서울 방문은 양국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내실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국가안보회의간 외교·안보 협력 확대를 위한 협의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였다.

 홍완석 외대 교수(국제지역대학원)는 노태우 정부로부터 시작해 지난 6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며 변화해 온 한·러 두나라 관계를 여섯 단계의 변증법적 진화과정을 거쳐온 것으로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1. 수교 초기의 ‘희망과 기대의 시기’ (노태우)

2. 상호 과잉기대의 거품이 걷히면서 불신이 자리 잡은 ‘실망과 냉각의 시기’ (김영삼)

3. 객관적 현실 인식을 반영한 ‘관계 조정기’ (김대중)

4. 냉철한 국익에 기초해 상호 국익수렴 노력을 보인 ‘동반자적 밀월기’ (노무현)

5. 신뢰의 증진을 토대로 양국관계의 격상을 추구한 ‘전략적 협력 모색기’ (이명박)

6. 형식과 내용면에서 전략적 관계를 일치시키려는 ‘전략적 관계 내실화 추진기’ (박근혜)

 

<미니 1>

인적교류 확대기반 마련한 단기 비자면제협정

 

 2013년 11월 한·러는 푸틴 대통령의 서울 정상회담에서 일반여권 단기 비자면제협정 에 합의했으며, 이는 2014년 1월 1일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교류의 확대는 물론 관광·유학·사업·문예·스포츠·의료 협력 등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4년에 걸친 헙상결과 일반여권 소지자의 60일간 체류를 허용하는(출국후 재입국시 30일 추가) 비자면제협정에 합의했으며, 러시아는 65번째로 일반여권의 단기비자가 면제된 국가가 됐다. 한국은 1960년대 말부터 일반여권에 대한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기 시작한 이래 2014년 말 현재 66개국과 일반여권의 단기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일반여권의 단기비자 면제협정 체결 지역은 셍겐협약 회원국들을 포함한 유럽국 소관 국가들이 32개국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반여권의 소지자에 대한 비자면제협정 체결국가가 2013년 말 현재 30개국으로 많지 않고, CIS 11개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2000년대 후반 일반여권의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였다. 러시아에 대해 한국은 일반여권에 대한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한 OECD 국가들중  이스라엘, 칠레에 이어 3번째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는 최근 EU와 일반여권의 비자면제협정 체결을 협의해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해 협상이 중단된 상태이다.

 

<미니 2>

  한·러 포럼 및 정상 참여의 한·러 대화

 

  한·러 양국은 1998년부터 정치·외교·경제·문화예술·언론 분야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한·러 포럼’을 매년 개최해왔으며, 2008년 전략동반자적 협력관계로 두나라 관계가 격상되면서 ‘한러 대화’라는 또 다른 대화채널을 가동해왔다. 두나라는 한러 포럼을 통해 북핵문제 등 한반도 안정과 평화, 경제·통상 협력, 문화·예술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을 허심탄회하게 피력, 이를 양국관계 발전에 기여하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2 한·러 포럼은 한러 소사이어티(‘Korea-Russia Society') 창설 준비모임을 겸해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2014년 11월엔 모스크바에서 한러 소사이어티 창립을 기해 한러 포럼을 열었다.
  한편 2008년 9월말 이명박 대통령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합의한 ‘한·러 대화 포럼(이하 한러 대화)’이 양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10년 11월, 2011년 11월 서울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양국 대통령은 ‘한·러 대화’에 직접 참석해 분과별로 양국관계 발전 및 협력 방안으로 합의한 제안사항을 경청하고 이를 양국의 상대국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2012년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3차 ‘한·러 대화 포럼’은 푸틴 대통령의 방한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무산됐으며 1년 뒤인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함에 따라  열릴 수 있었다.

 글 사진/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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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의 해명은 거짓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3/09 11:58
  • 수정일
    2015/03/09 11:5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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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홈 > 신상철  
 
 
 
 
선거관리 관련법 개정을 위한 제언 - 2
 
신상철 | 2015-03-09 11:24: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부정선거 관련 기사를 검색하던 중에 작년 10월 미디어오늘의 이재진 기자가 작성한 <투표함 열기도 전에 개표방송이 나온 이유는>이라는 기사를 뒤늦게 발견하였다.

18대 대선에서 개표상황표상 투표지 분류 개시시각보다 개표방송이 먼저 나간 사례에 대한 분석은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개표결과에 의문을 품은 국민들이 '개표상황표'와 '언론에 제공된 개표진행상황표'를 직접 입수하여 분석한 결과로 밝혀졌으며, 국민이 이러한 기초자료를 요구하고 입수하여 분석한 사례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저 뿐만아니라 많은 분석가들에 의해 발표되고 주장되었지만, 메이저 언론사의 기사로 활자화 된 것으로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5년째로 접어드는 천안함 사건관련 재판을 단 한번도 빠짐없이 취재한 조현호 기자의 기자정신과 함께 부정선거 문제의 중요한 부분을 조명한 이재진 기자의 취재에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다음의 관련 기사와 함께, 취재내용 중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이 왜 거짓인지 입증코자 한다. 

 

[미디어오늘] 투표함 열기도 전에 개표방송이 나온 이유는?
18대 대선 개표상황표상 투표지 분류 개시시각보다 개표방송 먼저 나간 사례 나와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 2014-10-21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표상황표의 투표지분류 개시시각보다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하는 개표 결과가 먼저 집계된 것으로 나왔다. 투표함을 열기도 전에 개표 결과가 언론사 방송 자료로 제공된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제7투표구 개표상황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19일 밤 11시 16분에 투표지분류를 개시했고, 밤 11시 31분에 투표지 분류가 마무리돼 수개표를 진행하고 위원장이 자정 12시 16분에 결과를 공표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3월 11일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제18대 대선 개표진행상황 언론사 및 포털사 제공 서울 영등포구’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가 영등포구 대림3동 제7투표구 개표 결과를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한 시각은 밤 10시 35분으로 나타났다.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한 서울 영등포구 자료에서 밤 10시 32분~35분 사이 총 3351표가 누적돼 총 투표수 자료로 제공했는데 정확히 대림3동 제7투표구의 투표수와 일치했다. 32분과 35분 사이에서 데이터는 누적된 총 투표수뿐 아니라 각 후보별 누적 득표수도 일치한다. 10시 32분과 35분 사이 대림3동 7투표구의 개표상황표의 투표수를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한 것이다. 

개표상황표를 보면, 대림3동 제7투표구는 위원장 공표시각인 12시 16분보다 약 1시간 20분 가량 먼저 개표 결과가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됐다. 뿐만 아니라 투표지분류 개시시각인 밤 11시 16분보다도 1시간 가까이 앞서 개표 결과가 언론사 및 포털사에 넘어갔다. 

이 같은 사례는 인천에서도 발생했다. 인천 남구 관교동 제3투표구 개표 상황표에 따르면 투표지분류 개시기각은 2012년 12월 19일 밤 10시 41분이다. 하지만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인천 남구 언론사 및 포털사 제공 자료에 따르면, 12월 19일 밤 9시 21분에 중앙선관위가 인천 남구 관교동 제3투표구 총득표수를 누적한 데이터 결과를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개표상황표와 언론사 및 포털사 제공 강원 춘천시 자료를 비교한 결과, 투표지 분류 개시 시각(12월 19일 밤 9시 14분)보다 1시간 32분 전인 저녁 7시 42분에 개표결과를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한 것이다. 

개표상황표상 투표지 개시시각보다 중앙선관위의 언론사 및 포털사 개표 결과 제공 시간이 앞선 투표소 사례는 파악된 곳만 17곳에 이른다. 

각 지역구 위원장 공표 전에 언론사 및 포털사에 개표결과를 제공한 사례의 경우 ‘수기’로 위원장 공표 시각을 적게 돼 있어 착오로 인한 ‘실수’라는 해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표상황표의 투표지 분류 개시시각과 중앙선관위 언론사 및 포털제공 자료는 데이터 자료이기 때문에 컴퓨터 조작이 아닌 이상 수정이 불가능하다. 

개표상황표의 각 지역구 투표소에서 집계된 투표수와 동일한 자료가 공문서상 투표함을 열기도 전에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됐다는 것은 인과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이 같은 증거는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제18대 대선 개표진행상황 언론사및 포털사 제공’ 자료 28만 건을 251개의 전국 지역구별로 분류해 1분 업데이트 데이터 자료와 개표상황표를 비교 분석해 얻은 것이다. 

   
▲ 지난 3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회 지방선거 대비 사전투표 및 개표 시연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용지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정선거 백서를 출판해 선관위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해 구속 기소된 한영수, 김필원 대선무효 소송인단 대표 재판에서도 투표함을 열기 전 언론사 및 포털사 자료로 제공한 사례가 논쟁으로 떠올랐다. 

변호인 측에서는 공문서상 선거 부정 및 조작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며 이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소송인단 대표의 의혹 제기는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도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라는 책을 통해 해당 문제를 제기한 김후용 목사는 “이미 만들어 놓은 조작된 자료를 개표 방송한 것”이라며 “중앙선관위의 조작된 개표방송 일정에 맞추기 위해 공표시각을 고의로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투표함이 개시되기 전에 개표결과가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됐다는 의혹에 대해 “투표지 분류기에 있는 제어용 컴퓨터에 보면 컴퓨터 시간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현재 오후 6시인데 오전 11시로 현재 시각이 설정돼 있는 경우가 있다. 개표상황표는 이를 근거로 출력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투표함을 열기 전에 개표결과를 먼저 제공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투표지 분류 개시시각과 종료시각이 컴퓨터 시간을 잘못 설정해 발생한 오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기로 적는 위원장 공표 시각도 언론사 및 포털 제공 시간과 차이가 커 중앙선관위의 추가적인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관위 스스로 투표지 분류기의 전산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어서 데이터 조작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동진 대선무효소송인단 사무국장(대행)은 “앞으로도 계속 투표를 할 건데 문제가 있다고 하면 ‘잘못이다’ ‘실수’라고 한들 국민의 신뢰가 단단해지겠느냐”라며 “개표 상황표는 당선의 결과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오류가 발생하면 공직선거법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이 맞다. 진영 논리를 떠나서 선거 관련 제도를 바로 세워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지난 1월 전자투표기 도입을 공직선거법상으로 명기해 공식 도입했는데 이렇게 되면 개표상황표와 1분당 데이터도 개표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증거로 남지 못한다”며 “투표지 분류기의 편의성보다는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부정선거 의혹은 누가 당선이 되던 끊이지 않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주장은 사실인가?

영등포구 대림3동 제7투표구, 인천 남구 관교동 제3투표구,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 등에서 발생한 사례는 분명 부정과 조작이 개입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중앙선관위의 해명이 국민들을 헷깔리게 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투표함이 개시되기 전에 개표결과가 언론사 및 포털사에 제공됐다는 의혹에 대해“투표지 분류기에 있는 제어용 컴퓨터에 보면 컴퓨터 시간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현재 오후 6시인데 오전 11시로 현재 시각이 설정돼 있는 경우가 있다. 개표상황표는 이를 근거로 출력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투표함을 열기 전에 개표결과를 먼저 제공한 것은 없다”고 해명한 것인데, 과연 사실일까?

컴퓨터의 날짜와 시간의 오류에 대해서는 컴퓨터를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수 있다. 따라서 제어용 컴퓨터의 시간에 오류가 있다면 출력한 기록물에 찍힌 시간에 동일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대선 개표라고 하는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 제어용 컴퓨터의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아 그러한 오류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은 '부정'이나 '조작'이 아니라 '실수'가 되어 버린다. 과연 부정과 조작이 아닌 선관위 직원의 단순실수였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명하고 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만약, 제어용 컴퓨터의 시간오류로 인해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일 해당 개표소에서 동일한 개표기기를 통과한 모든 투표구의 자료가 동일한 시간만큼의 오차와 오류를 가져야한다는 사실이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쉴새없이 물려지고 카운트되는 개표결과 가운데 부분적으로 발생한 것은 오류가 아니고 FACT다. 

기사에 언급된 춘천시 동내면의 개표상황표는 다음과 같다.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의 개표개시 시각은 21:14분이고, 개표종료시각은 21:24분이다. 그런데 위원장 공표시각이 19:40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개표진행상황표에 있다.

 

 

중앙선관위에 언론, 포탈사에 제공한 춘천시개표진행상황표에 따르면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의 개표결과는 19:42분에 개표결과가 방송을 탄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원장은 방송으로 나간 시간보다는 앞서서 공표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19:42분보다 2분이 앞선 19:40분에 공표한 것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1:14분과 21:24분의 기록이 컴퓨터 시간 오류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 외에 다른 모든 개표상황표 역시 동일한 오류 만큼의 시간오차가 기록되어야만 선관위의 해명이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가 춘천시 동내면 제1투표구 한 곳에서만 발생했다면, 실수로 봐 줄 수도 있겠고, 실수를 발견하고 즉시 수정했다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디어오늘의 이재진 기자는 <개표상황표상 투표지 개시시각보다 중앙선관위의 언론사 및 포털사 개표 결과 제공 시간이 앞선 투표소 사례는 파악된 곳만 17곳에 이른다>고 기록하였는데, 우리가 파악한 바 전국적으로 백수십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지역만 놓고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작년 2월, 필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중앙선관위원장과 해당 선관위원장을 검찰에 고발을 하였으나 검찰에서는 기각을 하였다. 항고를 하자 다시 기각하였고 재정신청을 한 것 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참으로 슬픈 대한민국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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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 종북 프레임에 꼬이는 외교

 
“대사님 사랑합니다” 퍼포먼스에 개고기 선물까지
[아침신문솎아보기] 야당엔 "종북숙주, 참회록 써라"… 보수 언론, 종북 프레임에 꼬이는 외교
 
입력 : 2015-03-09  08:21:45   노출 : 2015.03.09  09:17:19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가해자 김기종씨가 보인 극단성 때문이다. 리퍼트 대사가 보인 태도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리퍼트 대사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대응했다. 때론 “김치 먹고 힘난다”고 하는 등 위트있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한국 사회와 언론의 태도에선 흥분과 오버가 넘쳤다.  

일부 시민들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요란스럽게 부채춤을 췄다. 여당은 또 다시 야당을 공격했다. “종북숙주‘ 참회록을 써라”는 식이다. 야당 정치인들이 김씨의 예전 국회 기자회견 당시 장소를 빌려줬다는 얘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는 이참에 종북, 폭력과 단절하라고 억지스러운 주문을 하는 신문도 있다. 

신문들이 리퍼트 대사를 걱정하는 사이 정작 우려스럽게 된 건 대한민국 외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정부가 이번 사건을 종북으로 몰고갈 수도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미외교에서 그렇다. 안그대로 대미외교에 치우친 이번 정부의 외교가 자의반, 타의반 더욱 편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음은 9일자 전국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어린이집 보육예산 ‘또’ 바닥…넉 달간 아무것도 안 한 정부>
국민일보 <남북, 임금 충돌 개성공단 ‘암운’>
동아일보 <지역이주 않고 통근 ‘원정 출근’ 130만명>
서울신문 <“한국 경제 디플레 초기”…저성장 위기론>
세계일보 <나랏돈 수혈받고도 낭비炳 못 고친 수협>
조선일보 <‘脫北民 3만명’ 그들의 꿈도 보듬자>
중앙일보 <아파트 전세난민, 연립 사서 옮긴다>
한겨레 <평창 4종목만 국내 분산해도 공사비 3658억 아낀다>
한국일보 <그날처럼 평화의 손 맞잡고>

시민들의 오버 “대사님 사랑합니다”

경향신문은 2면 기사 <리퍼트도 부담스러워할 ‘과공’>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시민과 단체의 열성적인 ‘쾌유 기원’ 행위는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일부 종교단체, 시민단체들이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며 지나칠 정도의 집회의를 열었기 때문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및 국가안위를 위한 경배 찬양행사’를 열고 부채춤과 발레, 난타 공연을 펼쳤다. 

   
▲ 경향신문 9일자 2면 기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도 기도회가 열리고 공연이 벌어졌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엄마부대봉사단’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란 문구를 내걸고 쾌유 기원 집회를 가졌다.

지난 6일에는 연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70대 남성이 “대사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며 개고기와 미역국을 병원에 가져왔다. 이 남성은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의미에서 직접 음식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호팀의 만류로 안내데스크에서 돌아갔다. 부채춤 행사와 개고기 선물은 AP통신, 뉴욕데일리, 폭스뉴스 등 외신에도 소개됐다.

   
▲ 조선일보 9일자 4면 사진
 

조선일보 기사 <촛불‧난타공연…‘세준 아빠’ 응원 신드롬>에 다르면 그가 입원 중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는 시민들인 직접 영어로 쓴 편지, 카드, 리퍼트 대사 가족의 한글 이름과 태극기, 성조기가 새겨진 태권도 도복 여러벌, 대사의 애견을 위한 강아지 사료 등 선물이 잇따르고 있다. 

여당의 오버 “새정치연합은 종북숙주”

새누리당은 8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두고 “야당이 종북과 손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며 제1야당을 비난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여의도당사 브리핑에서 “미 대사 테러범 김기종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같은 북한 주장을 입에 달고 다니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폭력시위 단골 참가자였다”며 “그런 김씨가 시민운동가로 행세한 데는 야당 의원들과의 교류가 한몫했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9일자 4면 기사
 

박 대변인은 “조금의 반성도, 진지한 자성도 없는 야당 모습이 안타깝다”면서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 정치적 이용을 말라며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4면 기사 <여 “새정치 ‘종북숙주’ 참회록 쓸 때”…도 넘은 색깔론 공격>에서 “ 지지율 하락 등 위기정국을 넘으면서 4·29 보궐선거에서 지지표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번 사건을 종북몰이로 활용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 9일자 4면 기사
 

정치권은 김기종씨가 2010년과 2012년 야당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기자회견장을 두 차례 찾은 것도 문제삼고 있다. 중앙일보 4면 기사 <김기종, 국회 기자회견 2번 참석>에 따르면,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8일 국회 사무처로부터 김씨가 2012년 8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 유상호 의원의 일본 방위백서 규탄 회견에 참석했고, 2010년 4월 같은 당 이종걸 의원의 국회 기자회견에 나와 일본 교과서의 독도 표기 승인 취소를 촉구했다. 

한 의원은 “사전 보안검열 없이 무방비로 자유롭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제2의 김기종 사태가 나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며 “국회사무처는 국회 기자회견장 운영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의 오버 “좌파 극단주의에게 관대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을 좌파 극단주의라고 규정했다.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 규정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았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면 누구든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논조는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 조선일보 9일자 4면 기사
 

조선일보는 4면 기사 <민족주의로 포장한 左派 극단주의…제2, 제3의 김기종 나온다>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칼부림 테러'를 가한 김기종(55)이 예전에도 4차례나 시민들이 모인 장소에서 난동을 부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가 사실상 김과 같은 극단적인 폭력주의자들이 기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오랜 민주화 투쟁 기간을 거치며 좌파 극단주의자들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관대하게 대했던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2009년 화물연대가 ‘죽창’을 휘둘렀지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고,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도한 문정현 신부가 경찰관을 폭행하고도 징역8개월에 집해유예2년이 확정된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조선일보는 그 화살을 야당에게도 돌렸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시작된 촛불시위가 '정권 퇴진'을 외치는 폭력 시위로 변질됐지만, 당시 통합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의 야당 인사들은 매일 밤 거리시위에 동참하면서 불법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9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종북 단절 선언’을 하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새정치연합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했다. 그렇게 해서 표를 조금 더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통진당 세력이 국회와 지방정부에 다수 진출하는 데 숙주(宿主)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새정치연합이 아직도 이들을 비호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당 차원에서 종북·폭력과의 단절을 분명히 선언하고 과거 들러리 역할을 한 데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대미외교 목소리 내기 어려워져 

이번 사건의 여파를 차분하게 짚은 언론도 없진 않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 <한국 ‘종북 자충수’…대미외교 입지 위축…더 꼬이는 ‘4강 외교’>에서 “정부가 극단적 사고를 가진 개인의 돌출행동을 ‘국내 반미·친북 세력이 만연한 결과’로 몰고 가면서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미·러 갈등 속에서도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은 한국이 이 같은 외교환경 속에서 힘겨운 ‘균형잡기’를 시도하고 있는 와중에 터졌다”고 분석했다. 

   
▲ 경향신문 9일자 3면 기사
 

경향신문은 “이번 사건으로 한국이 대미외교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및 미사일방어(MD) 참여 문제에서 정부의 선택폭은 크게 제한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한국 외교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동안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해온 5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행사’도 사실상 이번 사건으로 참석이 불가능해졌다”면서 “북한이 이번 사건을 ‘정의의 칼 세례’라고 찬양하는 비이성적 반응을 보인 것도 정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관계에서도 한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이 좁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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