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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까닭

위험한 2015년 정세를 전환시키기 위한 것인가?
 
<분석과전망>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까닭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5/01/06 [12:05]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크며 또한 대담하다. 

남북고위급회담은 물론 부문별 회담 더 나아가서는 최고위급회담까지도 직접 언급한 것에 그것은 집중적으로 표현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한반도 정세가 좋게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확인되는 많은 사실들은 북한의 대남 대화 태세가 정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아주 엄혹한 정세인식에 기초해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준엄한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일 수 있다” 

북한의 5일자 노동신문에 있는 문구이다. 올해 2015년 정세에 대한 전망이다. 미국의 새로운 전쟁도발 책동으로 인해 정세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군정치, 병진노선에 우리의 승리가 있다'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엄혹해질 2015년 정세-최고조로 오를 미국 ‘반공화국 압살책동’ 

 

북한이 올해 정세를 엄혹하게 보는 것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북한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반공화국 압살 책동’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을 연구분석하는 전문가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문구다.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이 대북인권공세에 집중을 했을 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문구다. 

그 전에 가장 많이 쓰여진 경우가 미국 주도의 대북경제제재가 가해졌을 때였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 때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문구이다. 

가장 비근하게는, 미국이 소니 픽쳐스 해킹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것에 대한 북한의 반발에서도 확인된다. 

 

‘반공화국 압살 책동’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대한 규정이다. 경제제재, 한미연합군사훈련, 인권공세 그리고 소니해킹 배후설 등은 모두 대북적대시 정책의 구체적 표현들인 셈이다.  

 

그동안 미국이 중심이 되어 별여온 대북경제제재는 지금도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가장 첨예한 모양새로 형성되는 북미대립각이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당시 좋게 만들어지던 남북관계 개선 사업을 파탄시키는 데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는 북미대립각의 날을 더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로 만들어진 북미대립각은 미국 정보기관의 최고수장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조건 없이 석방하는 조건에서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10월에 북한 고위급인사의 전격적인 인천방문으로 물꼬가 트일 법 했던 남북관계개선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던 것도 미국의 이 대북인권공세였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불거진 소니 픽쳐스 해킹 사건 역시 북미대립각을 한층 더 날카롭게 하는  중요한 정세지점들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북미관계를 좋게 반전시킬만한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든 북한이든 정세의 전환적 국면을 마련하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북미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긴장이 오랫동안 상존하고 있는 관계로 체감도가 떨어져 있을 뿐이지 객관정세는 위험천만한 지경에 도달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정세를 어떻게 해서든 좋게 전환시키려는 북한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미국이 여기에 빗장을 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을 소니 해킹 사건의 주범으로 특정한 데 이어 새해 연초에 새로운 대북제재 조치를 취하고 만 것이다. 

 

결코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단순하게 볼 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첨예하고 위험천만한 지경으로까지 도달한 정세상황 속에서 새롭게 더해지는 미국의 새로운 반북공세여서이다.   

 

결국 북한이 올해의 정세를 엄혹하게 보는 것은 이렇듯 미국의 ‘반공화국 압살책동’이 극점에 달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북미대결구도- ‘선군정치와 병진노선’ 대 ‘반공화국 압살책동’

 

올해를 엄혹한 정세로 바라보는 북한은 그렇다면 이후 어떤 대응을 하게 될 것인가? 

확인되는 북한의 입장은 언제나 그러하듯 선명하며 단호하다. 

5일 노동신문의 글을 통해 북한은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면 우리는 적들의 반공화국 압살 책동을 짓부수고 최후 승리를 안아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제시한 방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로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를 했었다. 

 

이것들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북한이 보이고 있는 강력한 의지가 정세가 저절로 낙관적으로 변화될 것을 예견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엄혹한 정세를 어떻게 해서든 낙관적인 정세로 전환시키고 더 나아가 이를 그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것임을 보여준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동력도, 대화를 추진하고 성과를 내오는 동력도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에서 나온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핵압살책동’에는 핵.미사일 능력을 끊임없이 고도화하는 것으로, 대북경제제재에는 경제발전으로 맞설 수 있는 것도 그리고 대결에 맞서 대화의 국면을 열어내는 것도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에서 나온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대결(전쟁)에도 대화에도 다 준비되어있다는 북한의 말에서 이는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올해 정세가 대결도 대화도 아닌, 일반적인 대립과 긴장이 지속되는 이전과 같은 그런 양상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임을 예견케 해주는 것들이다. 

대결이라면 국지전을 포함하는 전쟁 혹은 그 상태에 진입하는 상황으로까지 진입할 수 있고 대화로 국면이 전환된다면 이전처럼 ‘질질 끄는’ 대화가 아닌, 되돌릴 수 없는 즉, 불가역적인 대화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대결인가 대화인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모양새로 2015년은 그렇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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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5.30담화’와 내각 상무조

김정은 ‘5.30담화’와 내각 상무조<신년기획> 김정은, ‘북한의 덩샤오핑’될 수 있을까? ①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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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6  14: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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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집권 4년째를 맞으며 여전히 경제발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전략적 노선으로 선택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현 시점에서는 경제 건설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도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사회적 인프라와 생산 시스템이 약화됐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어려운 조건에서 과연 북한이 경제건설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주체사상을 통해 정치사상강국을 건설했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를 내세워 핵무력에 기반한 군사강국을 건설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경제발전을 통해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자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 제1위원장은 ‘5.30담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고,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같은 정책구상이 구체적인 경제적 조치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올해 북한의 경제전망을 대내적인 경제관리 개선 조치와 대외적인 경제개발구 건설 전략, 협동농장과 식량 메커니즘, 그리고 남북경협 전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김정은 ‘5.30담화’와 내각 상무조
2. 쌀 ‘협정가격’ 알아야 북경제가 보인다
3. 기업소 지배인의 ‘수입병’ 왜 생겼나?
4. 관광개발구, 경제개발구의 ‘미끼 전술’?
5. 남북 모두 먹고 싶은 ‘그림의 떡’
 



5.30담화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로작'

‘5.30조치’, ‘5.30방침’. 말로만 무성하던 지난해 5월 30일자 북한의 주요한 경제정책이 다름아닌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5.30담화’임이 확인됐다.

‘5.30담화’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국가.군대기관 책임일군(간부)들과 지난해 5월 30일 진행한 담화 ‘현실발전의요구에 맞게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데 대하여’인 것이다.

   
▲ 5.30담화 첫 쪽, 대외용 발췌본으로 추정된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통일뉴스>가 처음으로 입수한 ‘5.30 담화’ 문건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로작’으로 명기돼 있으며, A4 용지 4쪽 분량으로, 연도표기 방식 등으로 미루어 대외용 발췌본으로 추정된다.

담화는 이미 알려진 대로 병진노선에 입각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과학기술’을 강조한 대목도 눈에 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담화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기위하여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하여야 한다”고 제시하고 “경제관리방법을 개선하는 것은 현시기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전략적로선을 관철하여 부강조국건설을 앞당기기 위한 절실한 요구”라고 밝혔다.

북한은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한 바 있다. 병진노선에 입각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확립을 주문한 셈이다.

담화는 “일군들이 경제관리방법을 개선한다고 하면서 제나름대로 사회의주의 본성에 어긋나는 그릇된 방법을 끌여들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이룩하신 령도업적을 훼손시키는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면서 ‘우리식’을 강조했다.

“경제를 지도관리하는데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소유를 옹호고수하고 집단주의원칙을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한다”는 것.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금년 신년사에서 “모든 공장,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자재,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며 당에서 내세운 전형단위들을 따라배워 자기 면모를 일신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수입병’을 지적하고 ‘국산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원칙'과 '실리' 모두 강조, 방점은 어디에?

그러나 이같은 원칙을 강조한데 이어 담화는 “경제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객관적경제법칙과 과학적리치에 맞게하여 최대한의 경제적실리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사실상 ‘실리’에 방점을 찍었다.

담화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과학기술과 생산경영관리를 결합하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켜나가는 혁신적인 관리방법으로 되어야 한다”며 “경제지도와 기업관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선차적인 힘을 넣고 생산과 기업관리의 모든공정과 요소들을 과학화하여야 한다”고 밝혀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소유에 기초하여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하여 당과 국가앞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들이 생산과 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관리방법”이라고 규정해 주목된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현실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개념규정을 지은 것으로 이는 향후 북한 경제정책의 근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담화는 “기업체들에게서는 또한 제품개발권과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을 행사하여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기술, 새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제품의 질을 개선하여 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며 과학자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을 최첨단돌파전의 주인으로 내세워 기업체가 새기술의 적극적인 수요자, 창조자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공장, 기업소들과 협동농장들에서는 직장과 작업반, 분조단위에서 근로자들이 담당책임제를 실정에 맞게 제시하여” 기계설비와 토지, 시설물 등 국가적, 협동적 소유의 재산을 관리, 이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또한 “기업체들은 로동에 대한 평가와 분배방법을 사회주의원칙대로하여 근로자들이 누구나다 일한것만큼, 번것만큼 보수를 공정하게 받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일한 만큼, 번 만큼 분배하는 ‘사회주의적 분배 원칙’을 명문화한 셈이다.

"일한만큼, 번만큼 보수 받도록 해야"

담화는 “경제사업에서 당위원회의 집체적지도를 철저히 실현하도록 하여야 한다”면서도 “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는 어디까지나 집체적지도이며 정치적 지도”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달리 표현하면 ‘지배인 책임관리제’이므로 당위원회의 월권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당과의 집체적 지도를 명문화 한 ‘대안의 사업체계’를 폐기한 것은 아니다.

담화는 “모든 당조직들은 모든 활동에서 후방사업은 오늘날 ‘사회주의수호전’이라고 한 당의 의도와 요구를 철저히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당일군들에게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면서 “일군들이 선진적인 경영관리지식을 습득하고 지도관리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는 “10.3담화에 비해 경제관리개선에 대한 구체성과 경제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라며 “7.1조치 이후에 제도와 현실간의 갭이 더욱 확대되었기에 이를 반영,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경영자율권을 언급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입수된 5.30담화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들은 담기지 않아 발췌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수입병’ 등 신랄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은 제외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 교수는 “얼핏 보면 김정일시대의 IT에 기초한 단번도약론과 유사한 논리같지만, 자체 보유 경제발전 원천들에 토대를 두고 경제발전에 힘쓰겠다는 것으로서 병진노선을 반영한 경제관리개선조치의 방향성”이라고 평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이미 마련된 자립경제의 토대와 온갖 잠재력을 최대로 발동하여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건설에서 전환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외경제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경제개발구개발사업을 적극 밀고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적 경제제재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 등이 힘을 받기 어려운 조건에서 ‘자립경제 토대’와 ‘온갖 잠재력’에 근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시행계획 짜는 새 세대 '실무 상무조'

김정은 제1위원장의 ‘5.30담화’는 경제관리방법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문건인 만큼, 이를 현실화한 구체적 조치가 올해 내에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1년 ‘10.3담화’에 따라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가 나온 바 있다”며 “현재 내각 사무국과 국가계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성.위원회 간부들로 ‘실무 상무조’가 구성되어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짜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2002년 7.1조치를 이끈 박봉주 총리가 다시 전면에 나서 제2의 7.1조치를 추진하는 모양새지만, 실제 ‘실무 상무조’는 훨씬 젊은 세대로 교체된 것으로 보이며, 7.1조치와 같은 전면적 조치를 일거에 취하기보다는 시범사업에 의해 성과가 확인된 분야나 조치들부터 점진적으로 경제관리 개선조치들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김정은 시대에 들어 이미 독립채산제와 차별임금제, 그리고 경제개발구 설립 등을 골자로 한 2012년 ‘12.1 조치’와 협동화폐제 실시 등을 담은 2013년 ‘3.1조치’가 나온 바 있다.[12.1조치 관련기사 보기] [3.1조치 관련기사 보기]

광복 70주년이자 북한으로서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이 되는 올해, 북한은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이라는 ‘10월의 대축전장’을 향해 돌진할 것으로 보이며, 그 성패를 가르는 핵심 사안의 하나는 경제발전,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인민생활 향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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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세력이 꿈꾸는 유사파시즘

 
 
제2의 유신독재는 가능할까?
 
조시형 | 2015-01-06 10:00: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수구세력이 꿈꾸는 유사파시즘-제2의 유신독재는 가능할까?

국민 다수는 현 집권세력에 반대한다. 이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거시적 차원에서 굳어진 사실이다. 지난 대선도 사실상 야권의 승리였다. 다만 지식인 양하는 입 진보들과 지역주의의 포로들만 이를 애써 외면하고 대선패배책임론으로 친노와 문재인을 거세하려 했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문재인의 민주당 대선후보 당선이후 투표 직전까지 자행된 안철수를 통한 교란작전으로 얼마나 커다란 대적전선의 균열과 아군역량의 소진을 가져왔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안철수 개인의 성향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을 불법적으로 탈환유지하려는 집권세력과의 교호작용의 산물임을 또한 잘 알고 있다. 지능적이고 간교한 술수로 정권교체를 막고 저간의 부정과 비리를 은폐하여 마침내 영구집권을 획책하려는 무리들의 작전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들 수구세력이 오매불망 꿈꾸는 체제는 모든 반대세력을 지하로 매장하고 오로지 유일한 영도자의 지도에 절대복종하는 전체주의 체제일 것이다. 모든 가용한 수단을 써서 수직적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국민은 정신적, 경제적 노예인 臣民이 되어 복종의 굴레에 매어 사는 그런 세상이 그들의 유토피아일 것이다. 삼권분립은 무너지고 언론은 견제기능을 상실하고 지배체제의 한 축이 되었으며 의회 내 저항세력은 지리멸렬해 보이니 곧 가능한 근 미래라 착각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갈수록 다수 국민들의 이들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지배세력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적 통치수단이 먹히지 않게 되는 不感의 영역(Zero Point)을 넘어서 사실상 약발이 다한 금단현상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다음 목차들에서 상구한다. 


1. 드라마 추적자를 통해본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하여 

 

 

가. 지난 대선시기의 화제작 SBS ‘추적자’는 지금도 이 사회의 화두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 추적자가 우리 사회의 실체적 단면을 아주 생생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스토리는 생략하고 내가 보는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유력한 뼈대만 추려보자. 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우리 사회의 최고 권력자는 한오 그룹 서회장이다. 그는 대법관, 검찰총장, 심지어 총리까지도 전화 한통으로 사실상 쥐락펴락한다. 그의 힘은 금력에서 나온다. 심지어 대선에도 수천억대의 정치자금을 동원 직접 개입한다. 심지어 최고의 지지율로 청와대 입성을 눈앞에 둔 자신의 사위 강동윤 마저도 진정으로 꿈꾸는 자리는 서회장의 그 막강한 한오 그룹의 오너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헌법상 최고 직위도 그 목표를 위한 징검다리 일 뿐이다. 서회장 역시 이런 사위의 야심을 경계하며 자기의 혈육인 아들 서영욱에게 온전히 자기의 지위를 승계하려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이 사회 최고의 권력이 재벌, 즉 독점자본가에 수중에 있음을 그래서 국가기구마저 사실상 이 독점자본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나. 사회구성체론의 재검토

이런 우리 사회를 전통적 사회구조론자들은 ‘사회구성체’란 개념을 통해 ‘국가독점자본주의’라 규정했다. 세계체제자본주의 구조 하에서 각국 자본 간의 세력구조와 이익조절 시스템이 드러난다면 보다 완결된 자본주의 세계상이 드러나겠지만(이 지점이 과거 사구체논쟁당시에 ‘신식민지’또는 ‘종속성’의 문제이며 이는 미국과 남한사이의 단순한 지배-종속을 넘어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자본과의 관계문제로 확장된다.) 그런대로 여전히 ‘사회구성체론’은 한 국가시스템의 총체적 이해에 유용한 도구이다.

사회구성체론의 이론적 뿌리는 마르크스의 토대-상부구조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한 사회는 경제적 생산양식을 토대로 하는 하부구조가 그 정치적 상부구조인 국가권력의 성격을 규정하여 국가는 경제적 생산양식을 결정하는 생산관계(자본주의라면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의 노동에 대한 지배관계)를 수호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즉 국가는 생산수단 사적소유 보장이라는 신탁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억압적 폭력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 국가는 ‘조직 노동자의 군대’로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소박한 이해는 20세기의 시민 민주주의 확대와 진보당들의 의회진출 나아가서 집권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사회구조론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재정립된다. 정치적 상부구조로서 국가는 경제적 토대로부터 비록 최종심급에서는 규정되지만 그렇지 않은 차원에서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이 명제의 의미를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국가(최고 기구로서 통치권)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서 하부구조( 즉 경제적 생산양식-이는 부의 생산, 교환, 소비 또는 분배방식 시스템 전체를 좌우한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최종심급의 차원 -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화 단계’라고 말하는 사회의 근본적 변화의 핵심적 단계를 말한다. -에 도달해서는 막연한 개혁조치로는 넘어설 수 없는 경제적 토대로 부터의 반발 규정력이 압도적으로 밀려들 것이지만 말이다. 즉 쉽게 말해서 국가 권력을 누가 어떤 정치세력이 장악하느냐의 문제는 한 사회(구성체)의 근본적 변혁의 과정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사회구성체 이론으로 우리는 국가라는 상부구조가 단지 억압적 경찰기구나 관료적 사법, 행정기구만이 아니라 법, 종교, 교육, 이데올로기, 문화 영역 등 여러 세부시스템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 상부구조의 여러 중층시스템의 작동원리-하부구조인 경제구조를 지탱, 유지하려는 기능에 충실한-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20세기 이후 지배세력의 주된 관심은 물리력을 동원한 폭압적 통치방식에서 세련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지배방식에 쏠려왔다. 이는 이전처럼 군화발로 짓밟고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탄압하는 방식에 앞서 대중의 허위의식을 조장하여 체제에 순응하게 하는 통치술로 현대 정치 헤게모니 투쟁의 중요한 수단이다. 학교, 군대, 교회, 각종 매스미디어에 의해 전파되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주입과 정보 조작과 이를 통한 여론 왜곡이 그 주된 내용이다. 심지어 현대에 와서는 상품판매광고전략을 응용하여 주로 선거 시기에 대중들의 욕구와 무의식을 교묘히 조종하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상부구조에서 기능하는 이데올로기의 주된 기능은 위와 같은 여론조작을 통해 경제적 토대의 모순에 의해 촉발되는 근본적, 사회 변혁적 주제가 직접적으로 사회의 공론장에 출현하지 못하게 막는 작용을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공론장 그 자체를 파괴한다. 즉 경제적 빈곤과 소외와 같은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전면화 되어 계급 간 갈등으로 촉발되어 이런 근본문제로정치가 작동하기 전에 그것을 봉쇄하려는 모든 기도가 이데올로기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

다. 공포와 분열을 목적으로 동원되는 이데올로기

이 글에선 그 중에서 우리 남한 사회에 압도적 위력을 떨쳐온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반공-반북주의’와 분열 지배원리의 토종산인 ‘영호남 대립을 축으로 하는 지역주의’에 대해 집중하려한다.  

‘반공주의’는 6.25전쟁 종료 후 한국의 지배세력의 이익에 배타적으로 기여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왔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서, 반공법, 국가보안법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사회 개혁적 요구는 빨갱이의 이름으로 매도되고 그 어떤 진보적 운동도 반공의 칼부림에 스러져 갔다. ‘지역주의’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박정희 집권기간 그 중에서도 대미 종속적 수출경제체제가 서울-영남을 축으로 차별적 산업화를 진행하던 유신시대 이후 ‘호남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시작되어 이후 30년간 영남출신의 자본가 정권 체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저곡가 정책’으로 고통을 받았던 다수의 농민들이 도시의 저임금노동자로 도시빈민으로 혹독한 고통의 대물림을 해왔다. 그 중에서 최대의 곡창지대의 다수 인구를 구성하던 호남인들이 다수였음은 지역주의의 최대 피해자가 호남민중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경제토대의 핵심적 모순(자본을 소유한 자들이 다수 노동자를 지배하여 이익을 취하고 배를 불리는)에서 발생하는 사회갈등은 늘 그 본질적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의 해결과정에서 반공주의와 지역주의(우리가 남이가 묻지마 투표 등)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좌절해왔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아 이 허위의 이데올로기의 근본적 물적 토대를 극복하지 못하고선 어떤 의미의 진정한 사회변혁도 난망함을 보여준다.

라. 반공주의와 지역주의의 균열

그런데 마침내 우리의 진정한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이 바로 이 거짓된 반공주의와 지역주의와 맞서 싸워 마침내 그 돌파구를 열었다. 김대중의 집권은 바로 반공주의와 호남 차별적 지역주의를 최초로 극복하고 진정한 사회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의의가 있다. 바로 남북간 대결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615선언을 선포한 제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였다. 이로서 남북의 8천만 한민족은 실시간 중계방송으로 서로의 속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던 정례적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과 각종 스포츠 문화교류로 질긴 적대감정을 쓸어내며 평화통일의 대장정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의 문제는 DJP연대의 논리였던 ‘지역등권론’의 한계에서 드러났듯이 김대중 집권 5년 내내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지역차별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의 문제는 지역주의의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일부 정치인이나 진보진영, 노동운동에 빨간딱지를 들씌워 고립시키는 반면 지역주의는 수혜자나 피해자가 모두 교활한 지배세력의 농간에 희생되고 그 파급범위가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 지역의 식민화로 국민국가 건설에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그 해악은 반공주의의 그것을 넘어선다.

이 지역주의 30년 광풍을 잠재울 시대적 사명은 김대중 집권당의 세력도 미미한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이었다. 그는 정치인생 전부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헌신했다. 숱한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오뚜기 처럼 일어서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다.

전국적 정당으로서 열린 우리당을 창당하고 지역패권정당을 극복하려는 그의 시도는 일단 실패했지만 그가 전국토균형발전전략에 따라 지방화시대를 선포하고 추진한 신행정수도이전, 공기업지방이전과 기업혁신 도시건설의 추진은 많은 논란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이래 30년간 괴물이 된 지역주의의 물적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로써 미국의 하위체계에 포섭된 한국의 수도권-영남을 잇는 산업 축은 서해안과 중부권 중심의 새로운 발전 축과 DJ의 남북경제공동체의 축과 맞물려 위기의 세계경제시대에 한민족의 21세기 새로운 번영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온갖 허위와 기만이 난무하는 세기말의 한국사회에서 양심적 실천가로서 온갖 역경을 딛고 최고 권좌에 오른 후에도 이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운 두 거인이 2008년 연이어 세상을 떠나셨다. 희대의 악귀 아퀴히로가 그 두 분의 실존의 자리는 빼앗았으나 그 두 분이 열어 제친 진정한 사회진보의 길은 더욱 그 폭을 넓히고 있다. 근본적 사회변혁의 걸림돌이던 반공반북주의와 지역주의라는 괴물이 비록 아직 나 죽지 않았어!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지만 두 괴물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라고? 통진당도 종북으로 해산되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고? 다음 목차에서 상구하려한다. 


2.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실패해온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 

가. 무력해진 반북-반공 공세

생생히 기억하는 천안함 사건을 보라. 당시 이명박 정권은 이를 북의 어뢰폭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반북반공몰이 광풍을 일으켰다. 가히 2010년 상반기는 천안함 사건으로 온 나라의 모든 뉴스가 뒤 덮었다. 그러나 과거 같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매카시즘의 광풍이 희한하게도 이 사건에선 그 위력이 없었다. 심지어 파란매직 기호1번 어뢰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국민여론은 절대다수가 북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연이은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승리가 이를 증명한다. 그 이후 연평도 포격사건도 천안함의 진상을 덮고 대북 악마화 프로젝트의 기획이라는 정황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단지 지방선거 압승을 노린 게 아니라 더 큰 목표-제2의 유신독재를 실현하기위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소기의 성과는커녕 국민의 60%가 북의 소행이 아니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공작의 실패는 이 정부 들어와서 간첩사건의 대부분이 무죄로 판명 나는 것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또한 아직은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세월호사건 역시도 당초의 기획과는 달리 실패한 배경으로 나는 김대중-노무현의 한반도 평화정착 프로젝트를 주목한다. 

최근에 들어선 이석기 사건을 빌미로 원내 제3당인 합법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한 사건의 여파를 봐도 더 이상 종북몰이가 별 신통한 정치적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재판결 당일 잠시 대구·경북 중심으로 결잡하던 박그네 지지도는 3일도 못가고 곤두박질쳤다. 이래가지곤 파시즘체제 구축은커녕 이원집정부제개헌도 물 건너갔다.

나.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은 지역주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부산에서 40% 가까운 득표를 했다. 이는 과거 김대중의 득표울 10%를 훨씬 뛰어 넘는다. 물론 문재인이 부산 출신이라는 소지역주의의 귀결일 수도 있지만 PK 지역 전체적으로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새누리에 필적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제 영남이든 호남이든 과거의 ‘묻지마, 내 사랑’이라는 일방적 지지는 포기한지 오래다. 최근엔 TK지역에서도 이런 지역주의를 흔드는 조짐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 최악의 지역경제 상황에도 박그네에 대한 철옹성 같은 결집력을 과시하던 대구에서도 과반수 붕괴가 현실화되더니 지역 차기지도자로 김부겸이 떠오르는 이변이 일고 있다. 더 이상 자신들과는 무관한 총자본의 이익수호자라는 박그네의 정체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그리 될 것이다.


3. 수구세력 최후의 카드인 분열공작에 맞설 우리의 전략

유신독재는 총과 칼로만 유지된 게 아니다. 반만년 가난극복의 성장신화, 개발과 발전의 근대화 욕망에 바탕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수구세력에게 그런 것을 가능케 할 물적 자산이 없다. 국고는 거덜 났다. 수탈할 자들의 주머니는 텅 비었다. 수탈자들의 숨겨 논 곡간이 위험하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기득권 사수를 위해 남은 것은 총칼의 협박과 분열공작 뿐이다.

분열공작이 선행되었다. 온오프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공작조와 테러조들의 활약이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루머를 만들어 전파하고 아군을 갈라놓는다. 서로를 험하게 비난하고 조롱하며 상처를 가하여 악화를 양산한다. 부정적 전망과 불신조장으로 정치적 허무주의를 한껏 고무한다.  

이에 우리는 긍정과 희망 그리고 상호신뢰와 연대를 통한 힘의 결집으로 맞서야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를 북돋아서 정치적 참여의 장에 더 많은 시민이 나서도록 유도한다. 공정한 절차로 우리의 대표가 선출되었다면 그를 믿고 정당성과 힘을 부여하여 강고한 저들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고무해야한다. 노무현의 고군분투에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 주었다면 이토록 간난신고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수구세력이 꿈꾸는 제2의 유신독재체제와 같은 파시즘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문제는 반파시즘을 넘어서서 온 국민이 갈망하는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의 실현의 경로이다. 그래서이다 2015년 1월 초의 정국이 중요한 이유다. 이제.. 또 실패한다면 합법적 절차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도전을 우리는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가급적 아니 절실히 우리의 헌법과 법이 보장한 절차로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평화적으로 진보와 개혁이 이루어지고 모두 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의 이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제일과제는 야당의 철저한 개혁이다. 야당이 지역주의 방패에 은거하여 이권에 몰입하는 정치자영업자들에 좌지우지되어선 대한민국엔 희망이 없다. 개혁 주체로서의 야권의 철저한 재편이야 말로 수구세력의 유신독재 부활에 맞서 가장 시급히 착수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자 유력한 반파시즘 대항전선이다. 사소한 차이로 분열하지 않고 통 크게 대동단결할 광범위한 국민전선의 핵으로 야권이 재편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못해서 지배세력의 분열공작에 또 국민의 힘의 분산된다면 남은 것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강대 강의 물리적 충돌과 유혈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과 사회적 부가 손실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소명을 가진 책임있는 정치인과 시민들이라면 부디 야권 대통합의 대의에 충실해주길 당부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6&table=c_jshpapa&uid=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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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쿠바외교 승리' 평가...美 면피용 '북한 때리기'

[친절한 통일씨] 미국-쿠바, 53년만의 수교 선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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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02: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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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북한 <노동신문>은 "얼마전에 쿠바는 중단했던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회복할 데 대한 결정을 발표했다"며, "이것은 쿠바외교의 승리이며 쿠바인민이 장구한 투쟁속에서 이룩한 역사적 승리"라고 밝혔다.

이날 신문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쿠바혁명 승리 56주년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다는 별도의 보도와 함께 "라울 카스트로 동지는 쿠바인민은 자기의 자주적인 사상과 사회적 정의에 충실하여 그 어떤 곤란도 박차고 사회주의를 계속 건설해나갈 것이라고 언명했다"고 소개했다.

이같은 북측의 반응은 지난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53년만에 양국간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하는 특별성명을 각각 발표한 이래 공식매체에서는 처음으로 나온 것인데, 오랜 동맹관계인 쿠바측 기류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재일 <조선신보>는 지난해 12월 31일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는 조선국내에서도 사람들의 화젯거리로 되고 있다"며 "미국이 제재와 압력으로 세계에 대한 지배와 간섭을 일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 항간의 평가"라고 북한 내 분위기를 소개했다.

특히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앉기 전에 미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대국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조선에 대해서는 이제껏 구태의연한 대결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천명한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로 북핵문제를 풀겠다고 천명했으나 아직 진척이 없는 상황을 쿠바의 상황에 빗대 꼬집었다.

미국과 쿠바가 관계 개선에 들어간 만큼 이후 눈길이 북한과 미국 관계로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선포하는 연설에서 △반세기 이상 유지해 온 대 쿠바 봉쇄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장려하는 것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으며, △미국의 고립정책은 중남미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는 등의 주목할만한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먼저 오바마 연설 중 쿠바라고 써 있는 자리에 북한을 대입해 넣어도 논리 전개에 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반세기 이상 유지해 온 대북 봉쇄정책이 실패했으며, 북한을 실패한 나라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미국의 고립정책은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읽어도 크게 무리하지 않다는 주장이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쿠바와 달리 북한은 핵·미사일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쿠바에 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훨씬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북한이 현재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쿠바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연설 후인 지난달 18일 오바마 1기 행정부 시절 북한의 핵 관련 조치 이행을 대가로 제재 완화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북한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반박한 바 있다.

더구나 쿠바와의 관계정상화 발표에 대한 일부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북한 때리기'에 나섰고, 미국 정부는 2일(현지시각)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 책임을 물어 북한 정찰총국을 비롯한 3개 단체, 김영철 등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그러나 쿠바와 북한의 긴밀한 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선언은 북미관계에도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쿠바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인 지난해 12월 29일에도 평양에서 양국 정부 사이의 2015년 경제 및 과학기술협조발전을 위한 회의 의정서와 2015년 상품교류에 관한 의정서를 조인했으며, 카스트로 의장은 이틀 전인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를 맞아 추모 전문을 보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28일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반쿠바 봉쇄 철회 요청 결의가 23년째 연속 채택됐으며, 10월 14일에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에 "미국의 반 쿠바 봉쇄가 해제될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북측 매체들이 라울 카스트로 의장을 인용해 "장기간에 걸치는 끈질긴 협상을 통해 마침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강조하는 것이나, 지난해 연말 중간선거 참패 이후, 오바마 행정부 당국자들이 북한과의 직접대화 의지를 공개적, 사적으로 적극 밝히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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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문어 ‘살신부화’ 모성, 안 먹고 알 4년반 동안 품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06 11:05
  • 수정일
    2015/01/06 11: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홍섭 2015. 01. 05
조회수 6888 추천수 0
 

수심 1400m서 우인잠수정으로 추적 관찰 결과, 동물 가운데 최장기 포란

알 적게 낳고 최대한 키워 생존율 높이려는 전략…어미는 유령처럼 초췌해져

 

76619.jpg» 1400m 심해에서 4년 반 동안 알을 품은 심해 문어의 포란 모습. 사진=MBARI

 

문어 숙회의 담백하고 쫄깃한 맛을 즐기는 이라면 문어의 애틋한 최후를 아는 것이 이 연체동물에 대한 작은 예의가 될 터이다. 문어 암컷은 바다 밑 수심 50m쯤 되는 바위틈에 알을 5만개쯤 낳고 알이 깨어날 때까지 6개월가량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키고 돌본다.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기진맥진한 암컷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런데 이런 얕은 바다의 문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장기간 동안 심해 문어가 알을 돌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몬터레이 만 수족관 연구소(MBARI)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깊은 협곡에서 원격 조작정 무인잠수정을 이용해 다양한 연구를 한다.
 

2007년 4월 이 잠수정은 수심 1397m 지점의 바위 언덕 비탈에서 심해 문어의 일종(학명 Grandeledone boreopacifica)을 관찰했다. 이 문어의 몸에는 독특한 흉터가 나 있어 개체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다음달 같은 지점에서 이 문어를 또 발견했는데 이번엔 알을 품고 있었다.
 

MBARI_Deep-sea-octopus.jpg» 알을 품은 심해 문어가 동일한 개체임을 보여주는 흉터(원과 화살표). a, b는 2007sus, c, d는 2009년, e는 2010년, f는 2011년 촬영한 것이다. 문어가 수척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MBARI

 

연구진은 이 문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알을 품는지 정기적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관찰은 4년 반 동안 18번에 걸쳐 이뤄졌다. 
 

20011년 9월까지도 이 암컷 문어는 끈질기게 알 무더기를 지키고 있었다. 10월 잠수정이 다시 찾았을 때 어미와 알에서 깬 새끼는 모두 사라지고 절벽에는 알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

 

알 품기가 무려 53달 동안 계속됐음이 확인됐다. 동물 가운데 여태껏 없었던 긴 포란기간이 자연생태에서 직접 관측된 것이다.
 

oct1.jpg» 4년 반의 알 품기가 끝나고 알 자리에 남은 알껍질. 얕은 바다 문어가 수만개의 알을 낳는데 이 문어는 155~165개를 낳았다. 사진=MBARI

 

동물 가운데는 알을 오래 품는 종이 있다. 헌신적인 부성애로 유명한 황제펭귄은 남극의 혹한 속에서 2달 동안 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품는다.
 

뱃속에서 더 오랜 기간 동안 알을 지키는 동물도 있다. 코끼리의 회임 기간은 21달이고, 주름상어는 42달, 고산 도롱뇽 가운데는 48달도 있다.
 

그러나 알을 낳은 뒤 장기간 돌보기에는 문어를 따르기 힘들다. 추운 바다에 사는 문어의 일종은 7도로 수온을 유지한 실험실에서 14달 동안 알을 지킨 기록이 있다.
 

몬터레이 만의 심해 문어가 사는 곳의 수온은 3도밖에 안 된다. 관찰 기간 동안 이 문어는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포식자로부터 알을 지키고 퇴적물이 쌓이지 않도록 산소가 많은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이 문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관찰이 이뤄지지 않는 동안 먹이를 먹거나 혹은 자신의 알의 일부를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행동은 관찰되지 않았다. 
 

무인잠수정은 로봇팔을 이용해 문어가 좋아하는 게와 새우를 주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 들이밀었을 때는 그저 밀어냈을 뿐이다.
 

처음 관찰했을 때 이 심해문어의 피부는 팽팽했고 질감이 있는 연한 자주색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창백한 흰색으로 바뀌었고 피부가 늘어지고 눈빛은 흐려졌다.
 

반대로 알은 점점 커졌다. 처음 길이 1.5㎝, 지름 0.5㎝이던 것이 마지막 달에는 길이 3.3㎝, 지름 1.6㎝로 커졌다.

 

oct2.jpg» 2010년 43개월째 품은 알. 크기도 제법 커졌고 새끼 문어의 윤곽이 나타나 검은 점처럼 두 눈이 보인다. 사진=MBARI 

 

이 심해 문어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알을 품는 걸까. 또 어떻게 어미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내는 온라인 과학저널 <플로스원> 지난해 7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심해 생태계에 적응한 번식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찬 바닷물에서 문어는 신진대사를 아주 느리게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지방도 축적하지 않고 어떻게 그 긴 기간을 버틸 수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남극 바다에는 5달 동안 알을 지키는 물고기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어미 문어에게 알을 품는 것이 생의 마지막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미는 다음번 번식을 위해 알을 낳고 일찍 떠날 필요가 없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1973m__NOAA.jpg» 연구자들이 관찰한 것과 같은 종류의 심해 문어. 수심 1973m에서 촬영했다. 사진=MBARI

 

오랫동안 알을 지키면 그만큼 알이 커지고 깨어난 새끼가 생존할 확률도 높아진다. 알이 깨어난 흔적에서 추정한 알의 수는 155~165개에 지나지 않았다. 수만개에 이르는 얕은 바다 문어 알과 대조된다.
 

적은 수의 알을 낳지만 잘 키워 생존율을 높이려는 전략인 것이다. 사실 이 심해 문어는 캘피포니아 심해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아 이런 번식 전략은 성공적임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얕은 바다에 사는 문어의 수명이 대개 2년 이내이며 생애의 4분의 1을 알 지키기에 들인다는 데 비춰, 이 심해 문어는 최장수 연체동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추정 수명은 18년이다.
 

연구자들은 또 “이번 연구는 우리가 심해에 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를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bison B, Seibel B, Drazen J (2014) Deep-Sea Octopus (Graneledone boreopacifica) Conducts the Longest-Known Egg-Brooding Period of Any Animal. PLoS ONE 9(7): e103437. doi:10.1371/journal.pone.010343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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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자?

[손석춘 칼럼] 청와대에 가서 다큐를 ‘고발’하는 게 학자의 본분인가
 
입력 : 2015-01-05  10:35:45   노출 : 2015.01.06  09:55:40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
 

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잔다. 새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고운 말’을 한 사람은 이인호다. 자신의 경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 KBS이사장을 여든 살의 나이에 덥석 받은 서양사학자다. 현직 언론인들의 ‘사표’로 존경받고 있는 원로 언론인 김중배가 MBC사장에 연임되었을 당시, 고희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용퇴한 모습과 참 대조적이다.  

이인호는 “새해가 다가오니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인터뷰했다. 조선일보는 그를 “역사학자이자 지성계, 여성계의 원로”라고 추어올렸다.

KBS 이사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취임 뒤 “왜 그렇게 거친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나”는 기자 질문에 그는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언죽번죽 답했다. 구체적 사례로 ‘백년전쟁 다큐 비판과 고교 교과서 선정 싸움’을 들었다. 

   
조선일보 2015년 1월3일자 B1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명확한 사실을 내놓고 왜곡해서다. 그가 KBS이사장에 취임할 때  거센 비판을 받은 이유는 식민사관에 절은 ‘문창극 동영상’을 적극 비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TV조선에 출연해 문창극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제정신이 아닌”,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양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살천스레 몰아세웠다. 심지어 그는 “이같은 이유로 문 후보자가 낙마해야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고 사뭇 울뚝밸을 터트렸다. 

어떤가. 문창극이 낙마한 직후 그는 나라를 떠나기는커녕 권력이 임명한 KBS이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의 할아버지 친일이력이 논란을 빚은 이유도 그가 식민사관에 찌든 문창극의 ‘눈빛과 강연에 감동받았다’고 공언해서다. 친일 행위가 명백한 증거로 남아있는 조부에 대해 이인호가 ‘내 조부가 친일파라면 그 시대 중산층은 모두 친일파’라는 해괴한 주장을 펼 때, 나는 저 이가 과연 학자인가 싶었다. 더구나 그는 ‘친일파 청산’이 ‘소련의 지시’라고 호도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친일파 비판을 ‘좌경’이나 ‘종북’ 따위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수구세력의 ‘색깔 공세’를 체화한 ‘원로 사학자’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나에 대한 공격이 특수한 정치적 의도를 품은 어떤 세력이 한 일이지, 국민 또는 KBS 구성원 전반의 반대는 아니라고 믿었다”고 언구럭 부렸다. 대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단 말인가. 이인호에 따르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고 “양심이 하나도 없”고 “특수한 정치적 의도를 품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성찰할섟에 되레 “기가 막혔다. 나의 80년 인생 전부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이 이상해졌다는 징후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일자 ‘대한민국이 이상해졌다’고 추정하기란 심각한 과대망상 아닌가. 

나는 이미 본란을 통해 정중하게 ‘학자로서의 겸손’을 촉구했다(원로교수 이인호의 마녀사냥, 2014년 7월7일자). 그가 서양사학자이기에 한국사에 들씌워진 식민사관, 정체·타율성론을 모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학자, 더구나 사학자라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책무인 진실을 외면 또는 모르쇠하고 있다. 기실 청와대에 가서 권력 앞에 다큐를 ‘고발’하는 작태부터 학자의 본분을 벗어났다. 

이인호는 역사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고질화되고 있다며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의도가 나쁜 사람으로 악마화한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거짓과 궤변을 동원하는 나쁜 관행이 성행”한다고 개탄했다. 행여 내가 이인호를 악마화한다고 생각할까 싶어 묻는다. 지금 이 글에 ‘왜곡’이나 ‘거짓과 궤변’이 있는가? ‘무조건’ 당신을 비판하고 있는가?  

더 역겨운 대목은 다음이다. 그는 “세속적 성공이나 쾌락을 죄악시하는 것도 위선이다. 사회관계를 모두 갑을 관계로 보는 것도 큰 함정에 빠지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정말이지 궁금하다. 이인호는 그에 대한 비판이 그의 ‘세속적 성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 손석춘 언론인
 

백번 양보해서 사회관계를 모두 갑을관계로 보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함정’이라고 치자. 다시 정말이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갑’의 부당성에 대해 얼마나 글을 써왔는가? ‘을’의 처지에서 진실을 얼마나 증언해왔는가?  

80평생 ‘따뜻한 곳’에서 살아온 이인호에게 더 늦기 전에 간곡히 권한다. 인생 앞에 겸손하기를. 후학들의 정당한 지적에 감사하기를. 새해 KBS수신료를 올리려고 이사장으로 동분서주할 계획을 세우기보다 지금이라도 물러나 고요히 자신을 성찰하기를. 하여, 지금 이 순간도 골골샅샅에서 아우성치는 민중의 고통을 제발 ‘따뜻한 눈’으로 바로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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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이자, 보수기자가 쓴 ‘종북몰이’ 송곳비판

탈북자이자, 보수기자가 쓴 ‘종북몰이’ 송곳비판①
 
耽讀  | 등록:2015-01-06 08:55:51 | 최종:2015-01-06 08:5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재미동포 신은미(왼쪽)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릴 토크 콘서트를 앞두고 “토크 콘서트는 통일운동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가 쓴 글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탈북자에 대한 선입관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이 극단적이기때문입니다. 종편에 나와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모습과 우리 사회 진보세력을 ‘종북’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지난 해 말 잇따라 쓴 글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 박사는 지난 달 28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탈북자 하면, 저도 방송에서 탈북자 분들 많이 만나보지만, 북한에 대한 비판, 비난, 비방이 많다. 그럴만한 상황이라고 본다. 또 탈북자 하면 대북 전단지 날리기, 또는 친정부 집회, 이런 식으로 평가해왔고, 저도 부정적으로 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성하 기자는 탈북자 출신인데, 이번에 12월에 블로그에서 아주 신선한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것도 동아일보 기자다. 아주 보수적인 색깔의 신문 기자, 그것도 탈북자 출신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말의 옳고 그름은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기자가 있다는 것,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신선한 울림이 있었다”며 주성하 기자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럼 주성하 기자가 어떤 주장을 했기에 이런 평가를 내렸을까요? 그는 지난 달 22일 블로그에 쓴 <신은미 콘서트와 2014년판 마녀 사냥>이란 글을 통해 “신은미 종북 콘서트 사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소니 해킹 사건, 통진당 해산 결정, 전작권 포기 등이다. 나는 이 모두를 지켜보면서 찜찜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오늘의 주제는 이른바 신은미 종북 콘서트 사건”이라며 “나는 이것을 2014년 현대판 종북 마녀사냥의 대표적 사례라 생각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이성을 잃게 됐을까 안타까움이 든다”고 신은미 씨 종북 마녀사냥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그는 <조선일보>에 대해 “나는 소규모의 청중을 둔, 별 것도 아니고 이 동네 한구석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무시할 수도 있는 별 것도 아닌 강연보다 수백 만 명이 보도록 몰아간 마녀사냥이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언론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면서 “비록 나는 프레임도 잡지 못하고, 조선 뒤따라간, 또 보수층 장사도 제대로 못해 3등으로 처진 신문의 기자이지만, 이런 식으로 얻은 1등은 부럽지 않다”고 질타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제1국방위원장 암살을 다룬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 사건과 관련해 북한 에 대한 고강도 제재방안이 포함된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해킹했다는 증거는 내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뉴욕포스트>는 소니 내부 소행이라는 보도도 했습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앞서 주 기자는 지난 달 24일 <왜 해킹만 터졌다면 북한의 소행인가> 글에서는 “대형 해킹 사건, 잊힐만하면 터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된다”며 “헌데 수사 결과라고 발표되는 레파토리도 똑같다. 해커의 수법과 사용된 악성 코드가 과거 북한이 벌인 사이버 테러 수법과 똑같다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는 이어 “이번 소니 해킹도 북한의 소행이란 근거가 지난해 한국 언론사와 금융권을 공격한 해킹 공격과 수법과 코드가 같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지난해 보도를 보라. 그럼 또 그 당시 발표 역시 또 과거 북한 해커의 수법과 코드 어쩌고저쩌고 한다….이렇게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도대체 북한 해커의 수법과 악성 코드의 기원이 어디서부터인지 찾을 바가 없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해킹 할 때 북한 아이피가 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나오겠지…북한에 해커가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거늘, 그들이 한국 이곳저곳 찔러본 흔적이야 남아 있겠지…하다 못해 이 블로그에 조차 해마다 수십 개의 북한 아이피가 나온다”며 “지난해 해킹 때도 북한의 소행이란 근거가 1300여개의 아이피 중 북한 것이 13개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이 블로그가 해킹돼도 1년에 천 만 건이 넘는 접속 아이피 중 북한 아이피 수백 개가 나왔으니 북한 소행이란 것일까”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는 “해킹 이슈만 나오면, 정부의 발표도, 언론의 호들갑도 이제는 어떤 스토리로 흘러갈지 너무 뻔하다. 지겹다. 해킹이 벌어지면 굳이 발표 안 해도 국민들이 안다. ‘또 북한 소행이라 하겠지.’”라고 했습니다. 특정 사건이 터지면 북한 소행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충고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580&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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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인, 이것은 가능한 인간인가

 

좋은 노예제도가 없듯 좋은 비정규직 좋은 정리해고는 없다

15.01.05 19:46l최종 업데이트 15.01.05 19:46l

 

 

이들은 누구인가
이곳은 어디인가
대체 언제인가
대관절 무엇 때문인가


사람에게 다가가고파 /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것
너무도 외로워 / 고립을 결단한다는 것
소곤소곤 말하고파 / 목이 터져라 외친다는 것
따뜻한 아랫목이 간절해 / 하늘에서 칼바람을 맞는다는 것
늘어지게 자고파 / 긴 밤을 새운다는 것 
구수한 밥상이 그리워 / 식음을 전폐한다는 것
지상에 서고파 / 고공에 매달린다는 것
살고 싶어 / 죽는다는 것


이것은 가능한 언어인가.
불가능한 언어가 현실로 구현되는 이 세계에
우리가 있다.


우리가 눈 뜬 세상은 우리가 눈 감은 세상
목 메인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활이 되기는커녕, 
구경거리 헐~이 되는 세상


굶고, 오르고, 외친다.
굶고, 오르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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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5월 29일 평양 을밀대



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양 을밀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작은 체구의 여인이 무명천으로 엮은 줄을 타고 위태롭게 기와지붕 위를 기어올랐다. 5미터 높이라고는 하나, 11미터 축대 위에 지어진 누정이었기에 떨어지면 죽음이었다. 사실 죽기로 작심한 터였다. 목을 매려던 무명천이었다. 허나 마음을 달리 먹었다. 

지붕 위에 쪼그려 앉아 아침을 맞은 그녀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비로소 외쳤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그마저 다시 깎고 해고를 남발하는 공장주의 횡포를! 규탄했던 그의 이름은 강주룡, 평원고무농장 노동자였다. 

9시간 30분의 점거농성 끝에 그녀는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그로 인해 해고됐으나, 그로 인해 노동자들은 임금인하를 막아냈다. '체공녀' 강주룡, 이듬해 8월 빈민굴에서 서른한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는 최초의 고공농성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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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13일, 경기도 평택 대추리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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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3일, 경기도 평택 대추리

진압경찰에 포위된 평화운동가들이 지붕 위에서 농성하고 있다. 대추리는 수난의 땅이었다. 1943년 일본군 해군시설대가 비행장을 짓겠다며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주민들은 땅을 잃은 설움을 토로하지도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해방이 되어 이제 사는가 싶었는데, 전쟁이 터졌다. 1952년 갑자기 쳐들어온 미군은 비행장이 필요하다며 주민들을 밀어냈다.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한겨울에 쫓겨난 주민들은 산목숨을 끊을 수 없어 언덕 아래 움막을 지었다. 그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노인과 아기들이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갯벌을 다졌다. 고향 땅이 그리워 미군기지 캠프험프리 옆에 다닥다닥 집을 짓고 새 삶을 시작했다. 그러길 반세기. 대추리와 도두리를 잇는 황새울 들녘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옥토가 되었고, 마을은 평화로웠다.

허나 2006년 가혹하게 집행된 미군기지 확장사업은 마을공동체와 들녘을 산산이 파괴했다. 진압복을 입은 경찰과 굴착기를 앞세운 용역이 구름처럼 밀려들 때,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붕 위에 올라 끝까지 저항하는 일뿐이었다. 정부가 "극렬좌파들의 투쟁"이라 불렀던 그것은 참으로 '가련하고 처연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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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4철거구역 남일당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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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4철거구역 남일당 빌딩

망루가 불타고 있다. 철거민들이 망루를 세운 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경찰의 특공작전이 전격적으로 펼쳐졌다. 이들이 왜 망루를 세웠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는 자는 없었다. "도심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응징의 대상일 뿐이었다. 

경찰청장에 내정됐던 김석기의 공명심은 아무런 대화도 타협도 없는 잔인한 진압작전을 감행케 했다. 철거민 다섯 명과 진압경찰 한 명이 화마에 쓰러졌다. 숯 덩어리가 된 철거민의 시신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다시 난도질당했고, 장례는 1년 동안 치러지지 못했다. 그날의 참사로 김석기는 경찰청장의 꿈을 접어야 했다. 허나 오사카 총영사관으로, 공항공사 사장으로, 아울러 차기 정치인으로 행복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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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17일 한낮의 광주, 금남로 분수대 앞 교통감시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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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7일 한낮의 광주, 금남로 분수대 앞 교통감시탑 위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 이주석과 유제휘가 68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을 새로 뽑을 때 정리해고자를 우선 채용하겠다"던 회사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일자리를 돌려 달라!" 그 한마디가 이들의 요구였다. 

고용주가 귀를 막고, 지역사회도 힘이 되지 못하는 좌절의 시간 끝에 이들은 내려왔다. 70일 만이었다. 몸 하나 펼 수 없던 0.5평 좁은 철탑 위의 두 달 열흘은 육신을 갉아먹는 파괴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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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20일 한낮의 광주, 석 달 뒤 다시 찾은 금남로 분수대 앞 교통감시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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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0일, 석 달 뒤 다시 찾은 금남로 분수대 앞 교통감시탑 위

해고노동자 이주석과 유제휘가 떠난 그곳엔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쇠사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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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0월 15일, 한강 양화대교 북단 고압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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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5일, 한강 양화대교 북단 고압 송전탑

15만 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허리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매달려 있다. 콜트악기는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차지하며 매해 흑자를 기록해 왔는데도, 박영호 사장은 더 싸고, 말 잘 듣는 노동력을 찾아 위장폐업과 공장 해외이전을 단행했다.

123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다. 창문마저 없는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고분고분했던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섰다. 거리투쟁, 단식투쟁, 고공투쟁, 법정투쟁까지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법원도 이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박영호는 요지부동이다. 어느새 3천일이 흘렀다. 미칠 듯한 복직투쟁의 나날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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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19일 평택, 저 건너 쌍용차 공장이 보이는 15만 볼트의 고압 송전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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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9일 평택, 쌍용차 공장이 보이는 15만 볼트 고압 송전탑 위

어둠 속의 철탑 위로 함박눈이 쏟아진다. 3천 명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2009년, 77일간의 목숨 건 옥쇄파업 끝에 64명이 구속됐다. 

서맹섭 김봉민 김을래는 70미터 공장굴뚝에 올라가 86일 동안 "살인해고 철회!"를 외쳤다. 2013년 5월 10일, 저 건너 쌍용차 공장이 보이는 15만 볼트의 고압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던 한상균 복기성은 171일 만에 눈물을 쏟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함께 올랐던 문기주는 건강악화로 116일 만에 내려온 터였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해고 이후 6년, 26명이 삶을 등졌다. 살인해고란, 빈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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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12일 아침,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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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2일 아침,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15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출입문을 걸어 잠근 채 "해고노동자들이 복직되지 않으면 결코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2003년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129일간 고공 크레인 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었다. 한국 시민운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발적 연대운동이었던 '희망버스'는 크레인 위에서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되었다. 

6월 1차에서부터 11월 6차 희망버스까지 수천 명의 시민들이 그녀의 고공농성에 연대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침내 11월 10일 노사합의가 이루어지면서 김진숙은 땅으로 내려왔다. 309일만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선별복직의 꼼수와 복직 후 바로 휴직을 시킴으로써 사실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는 죽으란 얘기와 다를 바 없었다. 같은 해 12월 21일 노조 조직차장 최강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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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0월 20일,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옛 사옥 앞 포클레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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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0일,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옛 사옥 앞 포클레인 위

시인 송경동과 해고노동자 김소연이 포클레인 위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6년 넘도록 피눈물 나는 복직투쟁을 벌여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초라한 천막을 철거하려고 포클레인이 달려들 때 그들은 삽날을 타고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포클레인이 멈추자 경찰이 들이닥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송경동이 매달린 건 전깃줄이었다. 그는 고함을 낭송했다. 

"너희가 다가오면/ 나는 손을 놓는다/ 손을 놓는 건 나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너희들이다." 

경찰은 물러갔다. 2010년 11월 1일, 기륭사태는 타결됐다. 1895일 만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고도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급기야 2013년 12월 30일, 최동열 회장은 직원들 모르게 야반도주를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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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21일,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옥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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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1일,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옥상 위

해고노동자 여민희와 오수영이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136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일 되던 8월 26일, 그늘은 '하늘집'에서 내려왔다. 그날 '협력와 상생을 위한 노사합의문'이 체결되었다. 

이후 해를 넘기며 20여 차례의 노-사 단체협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2014년 8월 20일 서울고법은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단체협약은 물론 노동조합도 의미 없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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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5일, 울산 현대차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고압송전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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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5일, 울산 현대차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고압송전탑 위

현대자동차 비정규노동자 최병승·천의봉이 "불법파견, 하청제도 철회"를 외치며 15만 볼트 고압 송전탑에 올라 81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8월 8일, 296일에 걸친 '하늘집' 생활을 마치고 그들은 땅으로 내려왔다. 

그들을 기다린 이들은 경찰이었다. 대법원은 "최병승을 현대차 정규직원으로 인정한다"고 판결했지만 인사발령을 내고도 일을 주지 않았다. 언제나 법을 앞세우던 이들이 법을 우습게 아는 세상에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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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15일, 경부고속도로 충북옥천 지점 대형광고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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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5일, 경부고속도로 충북옥천 지점 대형광고판 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온 유성기업은 살인적인 야근으로 악명 높았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제발 잠 좀 자자"는 거였다. 회사는 컨택터스라는 용역구사대를 동원, 노동자들을 짓밟았다.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2013년 10월 13일, 노동자 이정훈이 고속도로의 굉음이 귀를 찌르는 대형광고판에 올라가 '하늘집'을 지은 건 그 때문이었다. 해를 넘기고, 전국에서 그를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몰려왔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6월 28일, 극심한 디스크 통증과 탈수로 그는 내려왔다. 259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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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9월 2일,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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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길목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의 해군기지를 주민들은 반대했다. 구럼비 해안은 천혜의 자연유산이자 마을공동체의 숨통이었다. 정부는 주민들을 회유해 이간질했다. 오랜 세월 따습던 마을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않자, 9월 2일 새벽을 기해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구럼비를 장악했다.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은 망루로 기어 올랐다. 이날 하루만 36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2명이 구속되었다.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용암습지 구럼비는 완전히 파괴되고, 그 자리에 지금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아름답게'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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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2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산꼭대기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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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산꼭대기 움막

76만5천 볼트가 흐르는 초고압 송전탑이 산과 마을과 들녘을 가로지르며 들어선다는 말에 늙은 농부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한전은 막무가내였다. 2012년 1월 16일, 일흔네살 이치우 어르신이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겨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12월 2일 일흔네살 유한숙 어르신이 음독을 하고 나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송전탑은 강행되었다. 높이 100미터가 넘는 초대형 송전탑을 저지하기 위해 노인들은 산 위에 움막을 지었다. 함정을 파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2014년 6월 11일, 대규모 경찰병력이 들이닥치자 '하늘집'은 순식간에 철거되었다. 지금 이 자리엔 127번 송전탑이 번뜩이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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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9월 1일, 종로구 청운동 세월호 유가족 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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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일, 종로구 청운동 세월호 유가족 천막

빨랫줄에 노란 수건이 걸려 있다. 영석이 엄마 권미화씨는 노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이렇게 서럽게, 날마다 울게 될 줄은 몰랐다. 4월 16일 이후 그녀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왜 영석이가 구조되지 못하고 세월호에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 호소했을 뿐인데, 대통령은 외면했고 국회의원은 조롱했다. 자식 팔아 팔자 고치려 한다는 악마의 저주마저 들었다. 

3백여 명이 수장된 이 참사 앞에 정치는 무능했고, 교활했다. 아이들 따라 엄마도 하늘로 올라가고만 싶지만,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걸 알지 못하면 아들을 만날 면목이 없기에 엄마는 청와대가 보이는 아스팔트 위에 천막을 지었다. 그것이 엄마의 망루이자, 굴뚝이었다.

9시간, 70일, 77일, 116일, 129일, 171일, 309일, 1895일, 2013일, 2350일....

굶고 오르고 외쳤다,
굶고 오르고 외쳤다.


울었다, 
때로는 죽었다.


이것이 인간의 굶음인가.
이것이 인간의 오름인가.
이것이 인간의 외침인가.
이것이 인간의 숫자인가.


이것을 '기록'이라 부른다면,
이곳은 잔인한 기록갱신의 나라.


말로 활을 쏘아도,
눈물로 활을 쏘아도,
죽음으로 활을 쏘아도,
하늘에서 활을 쏘아도,
아무도 맞지 않는 평화세계.


말로 쏜, 눈물로 쏜, 죽음으로 쏜 화살이 도처에서 날아와도 꿈쩍 않고 용맹정진하는 건강사회.
누구 말마따나 "100% 대한민국!"


폭력을 탓하는가.
세상 모든 폭력은 '공조'와 '방조'로 완성된다.
'자조'로 추앙된다.


'체공녀' 강주룡은, 
여전히 / 우리들, 
머리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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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27일, 평택 쌍용차 공장 안 70미터 굴뚝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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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12월 27일, 평택 쌍용차 공장 안 70미터 굴뚝 위

조금 전 해고노동자 김정욱과 이창근이 안간힘을 다해 굴뚝에 '사랑해'라고 썼다. 붉은 글씨가 보이는가. 그들은 12월 13일 새벽 4시 공장 안 70미터 굴뚝으로 기어 올라가 기약 없는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진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꼭 저래야 하느냐고 묻는가. 꼭 올라야 하느냐고 묻는가. 그들에게 기댈 곳이 어디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굴뚝인' 김정욱과 이창근은 "우리가 기댈 곳은 법도 아니오, 권력도 아닌 바로 당신뿐"이라고 조용히 외치고 있다. 

저 붉은 글씨, '사랑해'는 온 힘을 다한 구조요청이다. 굴뚝인은 저 멀리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에도 있다. 차광호가 200일 넘는 굴뚝투쟁을 견디고 있다. 우리는 왜 이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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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24일, 서울 마포대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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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12월 24일, 서울 마포대교 위

10년이라는 "미칠 것만 같은 세월"을 복직투쟁에 바친 기륭의 해고노동자들은 끝내 복직을 포기했다. 고공농성 3번, 국회 점거투쟁 2번, 집단단식 94일, 1080명의 동조단식 등 "죽는 것 빼놓고는 다해 본 세월 10년"이었다. 2010년 국회에서 조인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복직하였으나, 회사는 일도 급여도 주지 않았고 급기야 2013년 겨울 야반도주를 자행했다. 이것이 악덕자본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만의 만행인가. 

10년 투쟁의 교훈은 이것이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노동'의 뜻이 '불안'과 '차별'이 되어버린 이 사회를 바꾸지 않고는 제2, 제3의 기륭을 막을 수 없다는 자각이었다. 복직을 포기한 해고노동자들은 구로동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한겨울 길바닥에 온몸을 던지며 호소했다. 

"좋은 노예제도가 없듯이, 좋은 비정규직과 좋은 정리해고란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마포대교를 기어가던 노동자들이 잠시 쉬기 위해 벌러덩 누웠다. 누군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리 위에서 올려다 본 겨울 하늘에 기러기가 날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끙끙 기어가는데, 저 녀석들은 훨훨 날아갑니다."

비정규직 1천만 시대, 당신과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친구는 이 몹쓸 노예제도에서 자유로운가. 나만은 굴뚝인이 아닐 거라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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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7일~11일, 2차 오체투지가 시작된다.
ⓒ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위한 오체투지행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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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다시 구로동에서

2차 오체투지가 시작된다. 이번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맨 앞에 선다. 아니 맨 앞에서 긴다. 우리사회의 지렁이들이 '꿈틀!'하기 위해 긴다. 청와대를 향해 긴다. 우리 사회 또 다른 지렁이들의 응원을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지렁이들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긴 줄이 70미터와 0미터를 잇는 밧줄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 밧줄을 타고 모든 굴뚝인은 내려와야 한다. 

이윤, 오로지 이윤을 앞세우다가 차가운 바다에서 304명을 잃었다. 모든 것이 '근혜' 탓이고, '아해' 탓인가. 구경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가해'가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격월간 <말과 활> 창간호(2013)에 실었던 글과 사진을 수정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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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몰고 오는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

 
 
한호석의 개벽예감 <144> 새해벽두 한반도 정세전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1/05 [11: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12월 19일 소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였고, 2015년 1월 2일에는 그에 따른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하였다. 그러나 소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그의 발표내용은 객관적 증거로 입증되지 않은 자의적 가설을 진실로 규정해버린 날조였고, 그런 날조에 의거한 대북제재 행정명령은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이 빚어낸 불행한 산물이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줄 것이다.     © 자주민보

 

 

오바마는 왜 하필 1월 2일에 대북추가제재조치를 발동하였을까?

 

미국은 새해 벽두부터 위험천만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 북을 쏘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Sony Pictures Entertainment)라는 영화제작보급사에 대한 해킹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것에 따른 대북추가제재조치를 발동한다는 내용의 대통령 행정명령이 지난 1월 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동되었다. <사진 1> 그 행정명령에서 지정된 미국의 제재대상들은 북의 정찰총국,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조선단군무역회사, 그리고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소속 개별인사 8명, 조선단군무역회사 소속 개별인사 1명, 그리고 관리인 1명이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쏘니 해킹이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주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미국연방수사국(FBI)이 북을 ‘해킹범죄국’으로 지목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중앙정보국(CIA)과 미국국방정보국(DIA)에서 정보기술담당직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2013년 6월에 폭로한 내용이 전 세계에 경악과 충격을 안겨준 바 있는데, 그 폭로내용에 따르면 미국국가안보국(NSA)은 2009년 이후 전 세계에서 61,000개 이상의 대상들을 해킹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최악의 해킹범죄국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연방수사국은 증거도 없이 북을 ‘해킹범죄국’으로 지목해버린 것이다. 세계 최악의 해킹범죄국이 해킹대상국들에게 사죄하기는커녕 증거가 없는데도 제멋대로 북을 ‘해킹범죄국’으로 지목하고 그에 따른 추가제재조치까지 발동하였으니,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라는 북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북이 미국의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전면 부정,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14년 12월 21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미국은 함부로 남을 걸고들기 전에 저지른 악행을 놓고 인류 앞에 심각히 사죄하여야 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미련방수사국이 발표한 모든 근거라는 것이 분명치 못한 과학기술적 자료와 꾸며낸 요설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며, 따라서 미련방수사국의 성명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날조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북을 걸고든 “미국의 날강도적 처사”를 비난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014년 12월 27일에도 ‘고의적인 악행에 매달릴수록 상상 밖의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담화에서 “<쏘니 픽쳐스>에 대한 해킹공격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줄임) 미국이 <쏘니 픽쳐스> 해킹공격자가 우리라고 계속 강변하려면 지금이라도 반드시 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만약 미련방수사국의 표현대로 <민감한 정보원천보호> 때문에 증거를 공개할 수 없다면 우리와 비공개리에 공동조사를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성향에 젖은 남측 언론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의 싸이버보안업체들과 정보기술보안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발표한 ‘북의 쏘니 해킹설’을 부인하는 견해들이 속속 제기되었다. 그로써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발표한 ‘북의 쏘니 해킹설’은 미국 내부에서 강한 의혹과 비판을 받기 시작한 것인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14년 연말 미국의 싸이버보안업계에서는 쏘니 해킹이 누구의 소행인지 입증할 수 없다는 입증불가론이 제기되었다. 입증불가론을 제기한 수많은 미국인 전문가들 가운데 미국 언론보도에 등장한 주요인사들을 열거하면, 싸이버보안업체 ‘트러스팃쎅(TrustedSec)’ 최고경영자(CEO) 데이빗 케네디(David Kennedy), 싸이버보안업체 ‘태아이어 글로벌(Taia Global)’  최고경영자 제프리 카아(Jeffrey Carr), 싸이버보안업체 ‘파이어아이(FireEye)’ 최고경영자 케빈 맨디아(Kevin Mandia), 싸이버보안업체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정보기술보안전문가 마크 로저스(Marc Rogers), 국제적으로 소문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 출신 헥터 먼시거(Hector Monsegur), 정보기술보안전문가 스캇 보그(Scott Borg) 등이다.


둘째, 쏘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쏘니 해킹은 그 영화제작보급사에서 해고당한 정보기술담당직원 6명이 자기들을 해고한 회사측에 불만을 품고 저질렀다는 내부범행설이 제기되었다. 싸이버보안업체 노스(Norse)의 선임부회장 커트 스탬버거(Kurt Stammberger)가 그런 내부범행설을 제기한 바 있다. 2014년 12월 29일 이 싸이버보안업체는 내부범행설에 관한 자기들의 독자적인 조사결과를 쏘니해킹사건수사를 담당한 미국연방수사국에 설명하였다.


2014년 연말에 위와 같은 입증불가론과 내부범행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쏘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미국연방수사국의 수사결과가 허위날조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 그런 수사결과에 근거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발표한 ‘북의 쏘니 해킹설’도 중상모략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이 미국 여론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만일 미국연방수사국이 발표한 수사결과가 허위날조로 판명되는 경우, 미국은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북을 중상모략하였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상황이 그처럼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바마 대통령은 자기들이 꺼내놓은 ‘북의 쏘니 해킹설’을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로 만들어줄 긴급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의 싸이버보안업계에서 제기된 입증불가론과 내부범행설이 더 이상 파급되지 않도록 여론을 돌려세워야 하였다. 워싱턴 디씨에서 멀리 떨어진 하와이의 골프장 잔디밭에서 골프채를 연신 휘두르며 연말연시 망중한을 즐기던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이례적으로 휴가지에서 서둘러 대북제재행정명령에 서명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쏘니 해킹이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 영화제작보급사에서 쫓겨난 해고자들의 소행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제시되었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쏘니 해킹이 북측 정찰총국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였다는 사실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오바마의 그런 행동은 북의 정찰총국을 ‘해킹범죄집단’으로 중상모략한 것이다.


지난 시기 남측 언론들에 보도된 관련내용을 종합하면, 2009년 2월에 통합, 신설된 북의 정찰총국은 국방위원회 직속기관이라고 한다. 북의 헌법 제100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로 명시하였고, 북의 헌법 제106조는 국방위원회를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으로 명시하였다. 이런 헌법규정을 이해하면, 북의 정찰총국은 북의 최고영도자에게 직접 보고하고 직접 지시를 받는 핵심기관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북에서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찰총국을 증거도 없이 ‘해킹범죄집단’으로 지목하고, 그에 따른 대북추가제재조치까지 발동하였으니,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의 그런 행위는 정찰총국에 대한 중상모략이고, 더 나아가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에 대한 도발로 보일 것이다.

 

▲ <사진 2> 2015년 1월 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그 어떤 도발과 전쟁책동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징벌을 가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북은 자기를 증거도 없이 '해킹범죄국'으로 지목하고, 그에 따른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한 미국의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고 징벌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으로 지금 북미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전쟁위기는 전례없이 심화되었다.     © 자주민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번에 미국이 북의 정찰총국을 ‘해킹범죄집단’으로 지목한 것도 모자라 대북추가제재조치까지 발동한 것은 북을 극도로 자극하여 격노와 징벌의지를 불러일으킨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이 미국으로부터 그런 중상모략과 도발을 받고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그 어떤 도발과 전쟁책동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징벌을 가할 것입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 2>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제재행정명령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5년 신년사를 발표한 다음날 발동되었으므로, 2015년 신년사에는 대북제재행정명령을 발동한 미국의 도발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지 않다. 백악관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제재행정명령이 나오도록 발표시점을 조절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북의 정찰총국을 ‘해킹범죄집단’으로 지목하고 그에 따른 대북추가제재조치까지 발동함으로써 적대적인 북미관계를 극도로 자극한 미국의 도발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전운을 몰아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으로 벌어진 현 사태는 너무 심각하다.

 

 

‘우뚜바’와 ‘날치’로 강화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력

 

미국이 이번에 쏘니 해킹을 빌미로 하여 대북적대행위를 추가하기 훨씬 전부터 북은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2015년에 더욱 험악해져 전쟁위험이 다가올 것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를 완료하였고, 2015년에 접어든 지금 조선인민군 전군은 최후결전에 돌입할 시각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4년 한 해 동안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몇몇 글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와 관련하여 최근에 나온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몇 가지 새로운 정보를 추가로 서술한다. 


첫째, 조선인민군은 최근 기습공격력을 급속히 강화하였다. 2014년 12월 25일 남측 국방부가 펴낸 ‘북한 및 주변국 군사력 현황’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말을 기준으로 북의 군용기가 230여 대 증가하였는데,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4년 12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북에서는 군용기 중에서도 특히 북에서 ‘우뚜바’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자국산 저고도침투기 AN-2와 북이 자체로 생산하는 무장헬기의 지속적인 증강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저고도작전기들인 AN-2와 무장헬기는 모두 기습공격전에 동원되는 공중이동수단들이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의 자료에 따르면, 북이 보유한 AN-2는 모두 500대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이 최근 2년 동안 AN-2 증산에 힘을 집중하였으므로, 그 보유대수는 2015년 초를 기준으로 약 700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2014년 5월 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에 참가한 AN-2는 “30m의 초저공비행”을 하면서 지상표적물을 향해 로켓포를 연속발사한 바 있다. 이것은 북이 AN-2를 저도고기습침투기로만 사용하지 않고 저고도로켓포공격기로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N-2에 장착된 로켓포발사기에는 사거리 5km의 로켓포탄이 16발씩 장전된다.


한국군 당국의 정보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4년 1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4년 11월 중순부터 AN-2를 동원한 항공륙전대 공수강하훈련을 연속적으로 실시하였는데, 훈련빈도가 예년에 비해 무려 20여 배나 급증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는 미국군 공수특전단에 대비되는 공중침투부대다. 위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4년 11월 중순에서 12월 초까지 실시된, AN-2를 저고도기습침투기로 이용한 공수강하훈련에는 항공륙전병 10,000~15,0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가 저고도기습침투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수강하훈련을 지난 연말에 실시하였음을 말해준다.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아시아경제> 2014년 1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말에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는 AN-2를 이용하여 최장 300km에 이르는 장거리기습공격훈련을 “이례적으로”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는 왜 ‘이례적’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보도기사에 따르면, 지난 시기에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는 백두산에서 가까운 량강도 삼지연비행장에서 AN-2를 타고 비교적 짧은 거리를 비행하면서 저고도기습침투훈련을 실시하곤 하였는데, 2014년 초 동계훈련에서는 함경북도 어랑비행장에서 AN-2를 타고 함경남도 함흥비행장까지 200km를 비행하는 저고도기습침투훈련을 실시하더니, 2014년 말 동계훈련에서는 어랑비행장에서 강원도 원산비행장까지 300km에 이르는 장거리를 남하비행하는 저고도기습침투훈련을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 <사진 3> 2014년 11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527대련합부대와 제630대련합부대 관하 구분대들의 연합협동훈련이 실시되었다. 서해 해안에서 진행된 이 훈련에서는 공기부양정 20여 척에 분승한 조선인민군 해상륙전병 1,000여 명이 평안북도 선천군 해안을 출발하여 서해 멀리 나가 우회하더니 평안남도 온천군 해안까지 100km가 넘는 장거리를 고속으로 남하항해한 뒤에 갯벌에 상륙하여 대상물을 습격하는 장거리기습침투훈련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해상륙전대가 충청남도까지 순식간에 점령하는 실전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 자주민보


최근 조선인민군의 장거리기습침투훈련은 그처럼 공중에서만 실시된 것이 아니다. 2014년 11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572대련합부대와 제630대련합부대 관하 부대들의 연합협동훈련이 진행되었다. 서해 해안에서 진행된 연합협동훈련에서는 공기부양정(hovercraft) 20여 척에 분승하고 평안북도 선천군 해안을 출발한 조선인민군 해상륙전병 1,000여 명이 서해 멀리 우회하여 평안남도 온천군 해안까지 100km가 넘는 장거리를 고속으로 남하항해한 뒤에 갯벌에 상륙하여 대상물을 습격, 점령하는 장거리기습침투훈련이 실시되었다. 조선인민군 해상륙전대는 미국군 해병대에 대비되는 해안상륙부대다. 조선인민군 해상륙전대가 탑승하는 기존 공기부양정은 시속 90km로 항해하는데, 완전무장한 해상륙전병 50명을 태울 수 있다. 북이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2011년 8월부터 실전배치하고 있는, 북에서 ‘날치’라고 부르는 최신형 공기부양정은 해상륙전병 60명을 태우고 시속 110km로 고속항해하는 매우 위력적인 해안상륙수단이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북은 공기부양정 150여 척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3>


조선인민군이 2014년 하반기에 실시한 “동계훈련의 가장 큰 특징은 200km 이상 작전반경범위의 침투강하훈련”이라고 지적한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아시아경제> 2014년 1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는 AN-2들에 분승하여 충청남도까지 남하비행하는 기습침투훈련을 실시한 것이고, 조선인민군 해상륙전대는 황해남도 해안에서 공기부양정을 타고 고속으로 충청남도 해안까지 남하항해하는 기습상륙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이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와 해상륙전대가 충청남도까지 순식간에 점령하는 실전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둘째,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4년 12월 29일 조선인민군 제851군부대 관하 여성방사포병 구분대들의 포사격훈련을 검열하는 것으로 2014년 한 해 동안 끊임없이 이어온 자신의 조선인민군 전투태세검열을 마감하였다. 제851군부대는 강원도 원산 인근에 주둔하는 전투부대다. 조선인민군 여성방사포병 6명이 12련장 107mm 방사포 한 문을 다루는데, 그 방사포는 해안상륙을 노리는 적의 해상무력을 상륙 전에 격파하는 무기다. 미국의 대북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 Jr.)가 2011년 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이 보유한 12련장 107mm 방사포의 사거리는 8.5km이고, 전기장치로 약 8초 동안 12발을 연속발사하며, 재장전시간은 3분이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4년도 전투태세검열을 왜 여성방사포병들의 포사격훈련을 검열하는 것으로 마감한 것일까?


17세에 입대하는 조선인민군 여성군인들의 군사복무기간은 9년이며, 최희숙군관학교에서는 여성군사지휘관들을 양성한다. 조선인민군의 여성군인 비율이 10%가 넘는다고 하니, 여성군인만 약 120,000명이나 된다. 현재 정규군 병력수가 120,000명대에 이르는 나라들이 스페인(123,000명), 필리핀(120,000명), 폴란드(125,000명)인 것을 생각하면, 북의 여성군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 <사진 4> 2014년 12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제851군부대 관하 여성방사포병 구분대들의 포사격훈련을 검열하는 것으로 2014년 한 해 동안 이어진 조선인민군 전투태세검열을 마감하였다. 이 사진은 그 날 최고사령관이 검열현장에서 불시에 내린 사격명령을 받은 여성방사포병들이 107mm 방사포를 해안 모래밭에 끌고 나가 해상목표구역을 타격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여성방사포병들의 방사포사격훈련을 2014년 연말에 마지막으로 검열한 것은, 조선인민군 전군이 최후결전에 총돌격할 준비가 이미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 자주민보


조선인민군 여성군인들 가운데 신체적 훈련부담이 가장 큰 여성군인들은 육중한 포를 다루는 여성해안포병들이다. 그래서 북에는 여성해안포병에 관한 군가도 있는데, 여성해안포병 가운데서도 해안견인포를 다루는 여성군인들보다 해안방사포를 다루는 여성군인들이 더 고된 훈련을 하게 된다. 그들은 약 500kg에 이르는 107mm 방사포를 통행로가 나지 않은 해안지대 모래밭에서 맨손으로 밀고 끌면서 사격지점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여 해상목표구역에 대한 조준사격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해안방사포를 다루는 여성군인들이 신체적 조건에 대비해 가장 고된 훈련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고된 훈련을 하는 여성방사포병들의 해안방사포 사격훈련을 2014년 연말에 마지막으로 검열한 것은, 그들의 최고사령관이 임의의 시각에 명령만 내리면 조선인민군 전군이 최후결전에 총돌격할 준비를 2014년에 완료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진 4>


셋째,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한 반면 대미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언급하였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장장 70년 간 민족분렬의 고통을 들씌워온 기본장본인인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 언급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과의 대화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적대적 북미관계를 총결산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적대적인 북미관계를 총결산하려는 북의 행동이 통일대전으로 전개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 <사진 5>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동부전선 시찰 중에 진행한 '선군절' 경축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속적인 불시검열은 조선인민군 전군이 이미 2012년에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를 완료하였음을 말해준다. 북의 언론보도내용을 분석해보면, 민족해방 70주년이자 민족분열 70년이 되는 올해 2015년에는 통일위업 실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단호한 결심임을 알 수 있다.     © 자주민보

 

 

전쟁우려관점에서 전망하는 2015년의 긴박한 정세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이 적대적인 북미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결국 전면전을 촉발하는 전운이 감돌게 되었다. 자기에게 굽실거리는 친미추종국들을 거느린 백악관은 마치 세계 전체가 자기에게 굽실거리는 것으로 착각하였고, 그런 착각이 백악관을 오만의 함정으로 떠밀었다. 날이 갈수록 오만할 대로 오만해진 백악관은 자기에게 적대적인 나라들을 모략하고 압박하고 위협해도 그 나라들이 감히 물리적으로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오만이요, 현실을 거꾸로 뒤집어놓고 바라보는 심각한 오판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백악관의 대북적대행위는 오만과 오판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백악관은 지난 시기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오판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그 전쟁들에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수치스러운 패전의 연속이었건만, 백악관은 패전의 수치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만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북의 통일대전은 미국에게 패전의 수치를 안겨준 이전 전쟁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특별한 전쟁으로 될 것이다. 이전 전쟁들에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한 미국이 북의 그런 통일대전에서 이기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기상천외한 양상으로 전개될 북의 통일대전은 미국에게 패전의 수치를 안겨주는 게 아니라 사실상 멸망의 치명상을 안겨주는 미증유의 전쟁으로 될 것이다.


원래 조국통일대전이라는 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동부전선 시찰 중에 진행한 ‘선군절’ 경축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통일전쟁이라는 말 대신에 통일대전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기 시작하였을까? 통일대전이라는 말에 담긴 다음과 같은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진 5>


첫째, 북이 동아시아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주한미국군을 태평양쪽으로 밀어내고, 한반도를 통일한다는 뜻에서 대전(great war)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필연적이며 절대적이고, 한반도의 영구분단은 반통일세력이 꾸며낸 허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사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세기를 이어오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이제 더 이상 참을 수도 허용할 수도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통일방식이다. 한반도의 통일방식은 평화통일이 될 수도 있고, 무력통일이 될 수도 있다. 민족사의 관점에서 논할 때, 한반도의 통일과업이 절대적이고 확정적이라면, 그 과업을 실현하는 방식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통일방식 중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되는가 하는 문제는 적대적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대화와 협상이 막히고 적대감과 전쟁위험이 높아진 정세 속에서는 무력통일이 실현될 것이고, 북미관계정상화와 남북관계개선이 크게 진전되는 정세 속에서는 평화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예컨대, 6.15 공동선언과 북미공동코뮈니케가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4개월 시차를 두고 각각 채택, 발표되었던 2000년에는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있는 정세가 조성되었다. 그와 정반대로 북과 미국 사이에서 대화와 협상이 모두 막혀버리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상호적대감이 악화되고 전쟁위험이 매우 높아진 현 정세에서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회가 사라지고 무력통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에서 통일대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연설에 바로 그러한 정세변화가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이제껏 그 어느 나라도 공격하지 못한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북이 사상 처음으로 공격한다는 뜻에서 대전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통일대전전략이다. 북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 60돐’을 맞이한 2014년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결의대회’ 연설에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핵타격의지를 명백히 밝혔는데, 이것은 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통일대전전략을 공식천명한 것이다. 


셋째, 북이 태평양작전구역의 수많은 미국군기지들에 배치된 총 30만명에 이르는 미국군병력을 동시다발적 순간타격으로 진압하여 지구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방대한 공간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배를 폐절시킨다는 뜻에서 대전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3년 3월 30일 북의 정부, 정당, 단체 특별성명은 “우리 혁명무력의 첫 (순간)타격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 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이 녹아나”게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처럼 강력한 타격력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넷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자처해온 미국을 패망시켜 미국이 지배하는 낡은 세계질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한다는 뜻에서 대전이다. 첨단무기와 기축통화를 움켜쥐고 세계질서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해온 미국이 북미전쟁에서 패망하는 경우, 핵보유국들이 모두 참가하는 핵군축협상이 시작되는 등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예견하기 힘든 새로운 세계질서가 등장할 것이고, 그 새로운 세계질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북에서 말하는 ‘세계의 자주화’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운명적인 2015년을 맞은 오늘 전쟁우려관점에서 올해 정세를 전망하면, 미국에게는 백악관의 오만과 오판이 불러온 위험천만한 전면전 위기가 몰려오고 있지만, 북에게는 그들이 정전 이후 60여 년 동안 기다리며 준비해온 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적대적 북미관계의 시각에서 이제 막 시작된 2015년의 긴박한 상황을 보면 그런 의미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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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1/05 12:14
  • 수정일
    2015/01/05 12: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 정권, 노동자에게 선전포고
정치권만으로 노동문제 못 풀어"

[인터뷰]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15.01.05 08:10l최종 업데이트 15.01.05 09:3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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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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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남문 앞에서 복직요구 굴뚝 농성을 하고 있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차지부 정책실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 한 위원장 뒤로 농성 중인 굴뚝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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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많이 얼었냐, 잘 모아둬야지. 나중에 식수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식수가 차단돼 에어컨 냉각수를 끓여 먹어야 했던 때가 떠올랐을까. 75미터 굴뚝에 매달린 동료들을 위해 그는 물 걱정을 했다. 그리고 건강은 괜찮은지, 책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영하 10도의 날씨, 동료가 머물고 있는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굴뚝에 있는 이들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13일 새벽,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공장 내 굴뚝에 올라갔다. 

'변방의 해고노동자', 총파업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2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3년 임기를 시작한 한 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쌍용차지부장으로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주도했고 3년의 수감생활이 이어졌다. 그리고 171일간의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간 있었던 일과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포부를 듣기 위해서다. 

한 위원장은 임기 시작과 함께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노사만의 틀 안에서는 수많은 노동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인 이른바 '장그래'(인기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을 확산 시키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같은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폭주를 막기 위해 총파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파업 성공을 위해 그는 "우리가 싸워야 할 목표가 무엇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를 조합원들에게 선전할 것"이라며 "내부에서 투쟁 명분을 쌓고 국민들에게도 사전에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2일,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투쟁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장그래들을 위한 대책도 내세웠다. 이른바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다. 그는 "케이블방송 씨앤앰 노사가 해고자 복직을 이끌어낸 '진짜사장나와라 운동본부'와 비슷한 성격의 시민·노동운동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야권 일부의 '진보정당 재구성' 논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상하 수직 관계로 잘못 설정돼 왔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정당에 돈과 조직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분열과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다음은 한상균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아내가 전체를 봐야 한다고 했다,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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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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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일 옥쇄파업, 3년 수감생활, 171일 철탑 농성을 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첫 직선제 선출이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옥쇄파업 도중에 내 동료가, 회사가 쥐어준 파이프를 들고 돌진해오는 모습을 옥상에서 지켜봤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동자가 단결하지 않으면 자본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민주노조는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본의 압박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 위원장 당선 뒤, 가족 반응은 어땠나. 
"세월의 풍파를 겪었는지, 아내는 담담하게 생각하더라. 아내가 쌍용자동차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체를 봐야 하니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운동가를 지도하는 내조를 보여줘서 놀랐다.(웃음)"

- 선거 공약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천명했다. '총파업 하자'는 단순 구호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먼저 왜 해야 하는지, 총파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설명돼야 할 것 같다. 
"지금 이순간에도 여러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그 현장들은 노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전교조의 법외 노조 투쟁,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한 손해배상 가압류, 노조파괴, 정리해고 등을 비롯해 공기업 구조조정, 공무원 연금 개악 등은 단순히 노사관계로 풀 수 없다. 전부 다 박근혜 정부와 싸워야 할 일이다. 

박근혜 정부를 향한 승리는 총파업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의 투쟁에서 금속, 의료 등 산별연맹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이제는 전체 노동자의 명운을 건 투쟁이어야만 한다. 그걸 우리는 총파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각각의 의제들을 선제적으로 끌어모을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목표가 무엇이고 상대가 누군지를 조합원들에게 선전할 것이다. 내부에서 투쟁 명분을 쌓을 것이고 국민들에게도 사전에 공감을 얻을 것이다." 

- 올해 상반기에 총파업 여건을 조성하게 되는 것인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물론 비정규직 종합 대책, 공무원 연금 개악은 올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다. 그때 가서 싸우기는 힘들다고 본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1월부터 총파업 투쟁 본부 체제로 전환한다. 이후 2월 12일에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가 있다. 여기서 투쟁 방침을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 그럼 구체적인 시점은? 
"정부가 도발하면 싸워서 붙어야 한다. 어마어마한 일들을 선제적으로 준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4월 임시국회 전에 준비를 끝내 놓겠다." 

- 정말 총파업이 가능할까.  
"함께 꿈을 꿔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노예의 삶을 청산하자. 우리의 분노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 분노를 자본과 정권의 심장부에 겨누자." 

- 민주노총은 현재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대화 채널을 만들 것인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정부와 대화 채널은 열려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박근혜 정권이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전교조 법외 노조화 시도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또 현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비정규직 종합 대책, 노동시장 개악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 들러리가 될 수 없다. 대화 이전에 선결과제에 대한 진정성을 정부가 보여야 한다."

-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맞서서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출범을 제안했다. 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 역량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 문제는 결부돼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시급 1만 원을 내걸고 투쟁하겠다. 사실 집집마다 장그래가 한 명씩은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장그래의 문제를 내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투쟁을 해도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그런 장그래가 전국에 9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을 민주노총이라는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시민운동으로 확산시키겠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씨앤앰 노사는 해고자 복직을 합의했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과 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했고, 여기에 '진짜사장나와라 운동본부'라는 시민운동이 결합하면서 승리했다. 이 운동을 '장그래살리기 국민운동본부'와 연결시켜서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비정규직들이 '스스로 내가 노동자다',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깨달을 만한 기회가 적었다. 민주노총이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 땅의 900만 장그래들을 책임지겠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상하관계...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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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남문 앞에서 복직요구며 이창근 금속노조 쌍차지부 정책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올라있는 굴뚝을 바라 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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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왔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나머지 정의당, 노동당 등이 흩어져 있다. 현재 야권 일부에서 대중적 진보정당 재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런 논의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게 되나.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상하관계였다. 민주노총이 정당에 돈과 조직을 제공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분열했고 이는 곧 민주노총의 분열과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이 투쟁을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문제로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인가. 
"지금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재구성을 리드해 낼 역량도 안 된다. 또 조합원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억지 춘향으로 그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조합원들에게 신뢰가 쌓이기 전에 말로만 떠드는 진보의 재구성은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나서서 '진보정치 모여라', '통합해라'라고 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계급을 스스로 확인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원 몇 명이서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힘이 없으면 진보정당 의원 100명이 있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안 바뀐다. 그걸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내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진보정치는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적 사상과 노선에 따라서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 당선 기자회견에서 '변방의 해고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처럼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 소수파다. 20년 민주노총,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제가 직선제로 당선된 배경에는 민주노총이 거듭나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엄중한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전체 단결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갈 것이다. 소수파가 당선됐으니 한 색깔로 도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내에 다양한 뜻이 있다. 이것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활동가들에게 변혁적·계급적 관점이 있어야 하지만 고인 물이 썩듯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투쟁 기조에 동의하도록 설득해내면 민주노총은 바뀔 수 있다." 

- 해고노동자 2명이 굴뚝에 올라가 있다. 제2의 쌍용차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강하다. 맞설 수 있는 방안은? 
"지금 쌍용차처럼 힘든 사업장이 여럿이다. 쌍용차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정리해고 남용을 막겠다고 공약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시키려고 한다. 지록위마가 따로 없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량해고가 가장 쉽다. 정규직들에 대한 고용안전망이 가장 열악하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측) 결단의 문제다.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면서 시대의 아픔, 갈등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6년의 세월 동안 해고자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회사가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시민사회와 함께 부단하게 쌍용차사측에 요청할 것이다. 정리해고 문제가 마무리돼서 하루빨리 김정욱·이창근 동지가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 80만 조합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근혜 정권이 노동자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더 쉽게 정리해고를 하게 하고 임금을 깎아서 기업을 배불리게 하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과 싸워 이기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들은 2015년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준비할 것이다. 조합원 동지들도 다부지게 준비해서 승리를 함께 만들기 바란다. 투쟁의 앞자리에서 당당하게 나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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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어제 오늘과 내일

자주민보 어제 오늘과 내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1/05 [01: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자주민보를 창간한 다음달 즉, 2호 표지, 창간하자마자 6.15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진행되어 자주민보 기자들은 긴급하게 이를 특집으로 보도하느라 숱한 밤을 세워야 했다. 생에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 자주민보

 

 

지하사무실 습기만큼이나 열기 가득했던 월간 자주민보 창간 시절

 

96년 연대항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도 당시 야당 최고지도자로서 연대인문대를 방문하면서 한총련을 비판하고 진보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도 청년학생들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한겨레신문’은 물론 ‘말’지와 같은 진보적 언론에서마저 한총련 학생들의 입장은 거의 보도해주지 않고 친북좌익세력으로 매도하는 극우 흐름에 동조해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전국대학생기자연합회 출신 젊은 기자들이 모여 ‘월간 자주민보’의 기치를 들게 되었습니다.


이창기, 장동욱, 백운종, 박준영, 황혁, 나풍자, 이소영, 이철웅, 손지은 등의 젊은 양심가들, 애국의 열혈청춘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99년 8.15 창간준비1호 시작으로 몇 차례 창간준비호를 발간한 후 2000년 5월 창간호를 발간하였는데 초창기에는 청년학생들의 입장을 많이 취재 보도하였고 주된 애독자층도 청년학생들이었습니다.

 

10여명의 기자와 편집위원들 모두 거의 교통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서도 지하 사무실에서 마감기사와 거듭하는 퇴고, 편집디자인과 반복 수정,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최종편집본을 인쇄소로 넘기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세웠는지 모릅니다.


여름 장마철엔 지하 사무실 장판위로 스며올라오는 물을 닦아내야 했고 곰팡이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했습니다. 그때 하도 습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이후 사무실을 얻을 때 비용이 들더라도 지하나 반지하는 적극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창간하자마자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오게 되어 얼마나 신명이 났는지 모릅니다. 청년학생 중심 편집에서 민족문제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이동했고 발빠른 보도를 위해 2001년부터는 인터넷 자주민보까지 창간하여 월간지와 병행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황선 방북기 ‘어머니 여기도 조국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쏴라’, ‘통일 참 쉽다.’ 등 10여권의 단행본도 발간하여 많은 청년학생과 독자들에게 북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어떤 책들은 수만권씩 팔리기도 하는 등 그 반향도 뜨거웠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 자주민보 1차 구속 사건 때 대책위에서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모습     © 통일뉴스 펌

 


1차 구속과 ‘월간 우리’

 

2001년 10월 21일 국정원은 자주민보 발행인과 편집장, 전 편집장 3인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체포를 단행했습니다.
결국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위반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지만 3개월만에 모두 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국정원에서는 북과 연결된 무슨 대단한 배후 조직의 지휘를 받는 언론사로 추정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무실과 기자들의 주택과 차 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 법원에서 보석으로 내보내주었고 재판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하였습니다.


2002년 9월 자주민보 1차 구속 사건을 계기로 좀 더 대중적인 언론사로 거듭나기 위해 판형을 ‘말’지 크기로 확대하고 이름도 ‘월간 우리’로 바꾸어 재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책 크기로 자주민보를 제작하다보니 사진 등을 큼직큼직 시원시원하게 편집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시사종합지로 거듭나기 위해 더 많은 제작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생계 등의 여러 이유로 그만 둔 기자들도 있었고 이미경, 김영준, 이명승, 이종출, 박현선, 신형석, 김은숙, 심현실, 정유진, 박미설 등의 기자, 편집인 등이 새로 들어와서 애국의 필봉을 틀어쥐었습니다.


황선 방북기 세번째 책인 ‘서울동무 평양친구’, 시집 ‘일편단심’ ‘칡꽃이 필 때 만난 사람’ 등 단행본도 계속 발간하였습니다.
조직체계도 정비하여 발행인이 전체 자주민보의 대표가 되고 박준영 편집국장, 이명승 재정국장이 각 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자주민보로 전환

 

원래 구독료만으로는 기자들 교통비도 지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인쇄비는 따로 재정사업단을 꾸려 금강산관광 대학생모집사업, 대학생기념품사업 등을 통해 급한불을 꺼가는 식으로 유지하다보니 월간지 제작에 따른 인쇄관련 빚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감에 따라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국 2005년 월간 자주민보는 접고 보조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인터넷 자주민보로 중심을 이동하는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마침 인터넷신문 등록법도 만들어져서 인터넷 신문도 언론사로 등록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되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언론사”라는 창간목적으로 등록신청하여 “서울, 아00132”이라는 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인터넷을 통한 언론활동을 전면적으로 전개해오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자주민보로 전환하면서 월간지 편집디자인을 담당했던 성원들 등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나게 되었고 인터넷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회사에 시스템관리를 맡기게 되면서 시스템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도 민주노총 등으로 직장을 옮겼으며 그간 마감 기사 쓰느라 진이 빠지곤 했던 여러 기자들도 기자보다는 단체활동을 해보고 싶다며 정당이나 노조 상근 간사 등으로 많이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장기간 무보수에 따른 어려움도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 모두 기자들을 필력을 높여주고 재정도 확충해서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활동비라도 지급했어야 했던 이창기 대표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돌이켜 가장 후회스런 시기가 바로 이 시점입니다. 그때 끝까지 함께 하자고 기자들을 왜 붙잡지 못했을까. 왜 그 시기만 넘기면 다들 훌륭한 기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뼈아픈 후회가 듭니다.


당시엔 자신도 기사 쓰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어서 그 힘든 일을 계속 하자고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심한 변명임은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동지는 죽어도 살아도 영원한 동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 즉, 동지애만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는 동지들이었습니다. 이창기 대표는 결정적으로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이창기, 박준영 기자 둘이서 인터넷 자주민보를 운영해오다가 박준영 기자도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아기르는 과정에 여러 차례 육아휴직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2009년까지 이창기 대표는 홀로 인터넷 자주민보를 운영해오면서도 개인적으로 가게를 운영하여 그간 쌓인 인쇄소 빚은 다 갚았습니다.

 

이때 자주민보에서 가장 집중했던 기사가 정세분석기사였습니다. 2006년 단행된 북의 1차 핵시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긴박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는데 자주민보는 사건이 터진 당일, 늦어도 다음날 오전까지 관련 심층분석기사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황우석사태, 광우병사태 때는 이틀 동안 한 숨도 못자기도 하면서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창기 대표는 인쇄소 빚을 갚기 위해 돈도 벌면서 자주민보 글을 전담해서 쓰느라 수면 부족 등간에 무리를 주었던지 그때 활동성 간염이 발병하여 지금도 계속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한 덜 떨어진 대표가 바보같이 제 몸 관리마저 실패한 것입니다.

 

당시에 글을 쓰는 기자가 이렇듯 혼자였지만 대신 여러 외부 기고가와 필진을 확보하여 월간 자주민보보다 더욱 다채로운 기사를 올릴 수 있었으며 특히, 매년 진행했던 만주항일유적지 취재도 꾸준히 진행하여 자주민보만의 색깔과 특색을 구축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자주민보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갔고 2010년 한성 기자를 필두로, 정설교 객원 만평가, 권말선 시인, 이정섭 기자, 이용섭 전 후원회장 등이 이후 자주민보에 결합하여 더욱 탄력을 받게 되어 점차 조회수와 영향력도 커져갔습니다.


특히 2012년 한호석 소장이 자주민보에 정기적인 연재글을 올리게 되는 등 다른 언론사에서 접하기 힘든 한반도문제 관련 심층기사들이 많이 늘어 국민들뿐만 아니라 증권전문가, 다른 언론사 정세전문 기자, 정치경제연구원 등 여러 전문가들도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고 예측하는데 자주민보를 많이 참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정섭 기자(현 자주민보 대표)가 그 어떤 언론사보다도 북에 대한 속보를 발빠르게 보도하면서 한반도 문제 관련 속보경쟁에서 자주민보가 단연 독보적인 언론사로 부각되게 되었습니다.

 


2차 구속과 자주민보 폐간 소송

 

자주민보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가 평균 2만건, 접속 아이피가 3000건을 안정적으로 넘어서게 되었던 2012년 2월 공안기관에서 전격적으로 이창기 대표를 구속하고 이후 한성 기자, 정설교 객원만평가를 구속하고, 권말선 시인, 이정섭 현 대표, 이용섭 전 후원회장 등도 기소 불구속 재판에 넘기는 등 모든 자주민보 성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진행된 전격적인 탄압으로 자주민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렸지만 수많은 애독자들의 지지 격려와 이정섭 현 대표의 눈부신 활략으로 오히려 자주민보의 접속자 수는 배로 폭증하였으며 이창기, 한성 기자 등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중단 없이 옥중에서 계속 원고를 써내어 감옥 안에서까지 다시 한 번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자주민보에 올리는 일을 진행한 권말선 시인 집마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사상 초유의 공안탄압이 자행되었습니다.

공안탄압이 자행되는 동안, 구속된 정설교 만평가도 옥중에서 계속 만평을 그려 보내오고 있고  정찬희 객원기자, 이성원 후원회장이 새로 결합하여 자주민보의 가시 수가 어느때보다 다채롭고 많아졌으며 접속자 수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이 새누리당 회의와 국회 등에서 마이크 앞에 설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워 자주민보 폐간을 선동하고 블루투데이 인터넷 뉴스 등 보수 언론에서 대대대적 이를 보도하자, 블루유니온이라는 극우보수단체에서 이에 호응하여 자주민보를 폐간시키라는 시위를 연일 박원순 시장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 시청 앞에서 벌이며 압박을 가하자 결국 서울시에서 ‘그러면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자’며 자주민보 등록취소 소송을 걸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1심, 2심에서 자주민보 등록취소 결정이 났고 현재 자주민보에서는 이에 불복하여 즉각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한 상황입니다.

자주민보측 변호인단에서는 서류만으로 재판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대법원에서 이 1, 2심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해서 자주민보 성원들은 현재 즉각 제2의 자주민보 창간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마을 아이들이 놀기 좋게 구불구불, 천방지축 송아지 망아지 고삐 기둥으로 튼실하게, 소금땀죽 농부들 선선달콤한 낮잠 위해 너실너실, 마을로 불어닥치는 바람에 강잉하게 맞서는 아! 언제봐도 더없이 정겨우면서도 강인한 마을숲 소나무, 자주민보도 늘 애독자들 곁에서 마을숲 소나무처럼 함께 하겠습니다.     © 자주민보

 

제2 자주민보 창간을 위하여

 

변호인단과 상의한 결과 자주민보 이름을 이어서 쓰는 것과 현재 기사를 다 옮겨가는 것은 또 다른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새로운 자주민보2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자주민보는 늘 화를 복으로 만들어내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탄압으로 이미 자주민보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며 후원인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번 제2의 자주민보 창간으로 더 참신하고 대중적이며 다채로운 자주민보2를 만들어낸다면 이번 탄압은 자주언론 건설에 있어 정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들의 지지와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제안, 좋은 자료, 좋은 글도 많이 보내주시고 무엇보다 우리 자주민보 필진들이 언론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을 더욱 확대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대로 가면 멀지 않아 자주민보도 광고수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광고주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광고영업에 치중하기보다는 십시일반 작은 돈이지만 여러 후원인들이 모아주신 후원금을 기본 운영자금으로 삼아왔던 것입니다.

 

현재 자주민보를 운영하는데 기자 취재지원비와 객원필진 원고료, 서버 임대료 등으로 나가는 비용이 매달 3백만원쯤 됩니다. 여기에다가 기자 중 한 사람이라도 재판에 회부되면 변호사비 등으로 목돈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해외 취재나 지방 순회취재를 나갈 경우엔 훨씬 더 많은 금액이 들어갑니다.


현재 정기 후원금은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이창기 전 대표가 따로 직장생활을 해서 받은 월급으로 메꾸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후원금으로 메꿔질 수 있다면 이창기 기자도 좀더 자주민보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더 많은 객원필진과 기자를 충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독자 여러분께 이런 부탁드리는 것이 마음 아프긴 하지만 우리 모두 사생결단으로 독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이 살풍경한 박근혜 정부 공안정국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들게 이렇게 간곡히 호소드리는 것입니다.

 

새해엔 자주민보 창간 15주년을 맞이합니다.

홀로 바쁘게 돌아치다보니 10주년 기념식도 치르지 못해서 올 15주년은 애독자들도 모시고 성대하게 치러보려했는데 아쉽게 되었지만 새로운 자주민보2 창간식을 더 멋지게 치르리라 다짐하니 새로운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정말 만 15년의 시간은 자주민보 성원들에게는 더없이 보람넘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나날이 늘고 뜨거워져 왔던 애독자 여러분들의 사랑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어 늘 행복이 가득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4년 12월 31일 내곡동에서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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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사람이 오체투지 지렁이 벗들에게

[기고] 쌍용차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리해고 법제도 폐지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입력 : 2015-01-05  09:08:31   노출 : 2015.01.05  09:40:35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 굴뚝농성 223일차) |media@mediatoday.co.kr 
 

혼자 공장 굴뚝에 오른 지도 벌써 223일째다. 가동이 멈춰져 있는 공장은 밤이 되면 무척이나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까마득한 무인도에라도 버려진 듯 아득할 때가 많다. 가끔 쌍차 공장 굴뚝에 오른 김정욱과 이창근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낮밤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라도 나니 말이다. 가끔 혼자 노래도 불러보고, 아아 하고 말도 해본다.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불길이 가슴에 타고 있어 추위를 견뎌본다. 저 아래 세상이 조금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엔 사회 여기저기 아픔이 많았는데, 올해는 모두에게 조금씩은 희망이 다시 움트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새해의 첫 희망을 만들겠다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기륭전자분회원들, 콜트-콜텍 해고자들, 스타케미칼 해고자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씨엔엠을 이어 투쟁 중인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 알바연대 청년들 등이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1월 7일 아침 9시, 서울 쌍용자동차 구로정비공장 앞에서 오체투지로 다시 국회와 청와대를 향해 간다고 한다. 대개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투쟁해오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1차가 ‘비정규 법제도 전면폐기’ 선포였다면, 2차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리해고제 폐지를 위한 오체투지’라고 한다. 

쌍용자동차 지부는 잘 알려진 데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시작으로 대한문 분향소 투쟁과 몇 번의 단식과 2번의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회계조작이 밝혀져 정리해고가 잘못 되었다는 고등법원 판결도 받았었다. 대법원은 해당 법리의 오해가 있는지 정도를 판단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명확치 않은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기환송이라는 형식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찬물을 끼얹었다. ‘해고는 살인이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다 죽어간 26명의 목숨도 부족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에게 죽어라 한다. 김정욱과 이창근을 다시 저 하늘굴뚝으로 밀어 올린 것은 그런 대법원의 살인적인 판결이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2008년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기륭전자 정문 경비실 옥상에 올라 94일 동안을 굶어야 했다. 세 번의 고공농성과 두 번이나 국회의사당 점거를 했다가 끌려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고도 해결이 안되다 2010년 겨울에야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 했다. 간만에 반가운 소식, 정규직화였다. 온 사회가 내일인양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뿐 2013년 12월 30일 기륭 최동열 회장은 회사를 통째로 야반도주 한 후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인수 당시 1000억대에 달하던 회사 자산은 모두 빼돌려 6천만 원짜리 껍데기 회사를 만들어 놓았다. 텅빈 사무실을 350일 동안 지키다 지난 연말 5일간의 오체투지로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 방법뿐임을 가르쳐 주었다. 

콜트-콜텍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박영호 사장은 기술과 물량을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우곤 빼돌렸다. 조삼모사도 이런 조삼모사가 있을까. 국내 법인은 ‘경영상의 위기’였다. 한진중공업 조남호가 그렇게 필리핀 수빅에 2조원대 조선소를 지어 수주 물량을 빼돌리곤 국내 조선소는 ‘경영상의 위기’로 만들어 정리해고 명분을 삼았다. 2007년이었다. 그후 법정투쟁을 비롯해 공장 앞 천막농성, 15만 4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고공 단식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왔다. 박영호 사장 자택, 낙원상가, 국회, 노동청 등에서 항의 집회와 문화제 등을 열어 실태를 알리기 위해 애썼고 미국, 일본,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악기 박람회에 총 여섯 번에 이르는 해외 원정투쟁까지 다녀와야 했다. 투쟁 과정에서 한 조합원이 분신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더 나아가 ‘현재의 경영상의 위기’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를 까닭으로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만으로도 언제든지 쫒겨나야 한다. 

한때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처럼 우리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조그마한 희망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스타케미칼 전신인 구 한국합섬이 파산한 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명백한 경영상의 위기’에도 우리는 어떤 회사로 인수 합병이 되더라도 ‘고용승계’와 ‘노조 승계’와 ‘단체협약 승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과 싸웠다. 산업은행의 대주주가 정부이니 정부와 맞서 싸웠던 셈이다. 5년이 걸렸다. 그 5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다시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온몸으로 밀고가고 있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따내고 스타케미칼로 복직했었다. 그렇게 복직할 수도 있다는 꿈과 가능성을 이 사회에 남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은 1년 8개월 동안 공장을 돌리는 시늉을 하더니 금세 먹튀 자본의 본색을 드러내 공장의 자산을 분할매각하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우리들의 목에 다시 칼을 들이대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 우리가 이 높고 가파르고 외로운 공장 굴뚝 위로 오르고 싶다 했는가. 언제 우리가 이 추운 겨울 땅바닥을 기고 싶다고 했는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일자리 하나를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 못된 세상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결론이 우리가 오늘 도달한 결론이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제2의 쌍차, 제3의 스타케미칼, 제4의 기륭, 제5의 정리해고자들, 제6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끝없이 양산되고, 그 고통과 아픔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싸움을 못해서, 싸움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각 단위사업장의 투쟁만으론 이긴다 하더라도 언제나 불안정한 삶의 자리일 뿐이다. 이 모든 불안정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비정규 악법과 정리해고 악법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누구나 다시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박근혜 정부와 자본가들은 선거가 없는 올해를 기회로 자본에게 유리한 법들을 만들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정규직은 더 해고하기 편하게 하고, 비정규직의 합법 사용 기간은 늘리는 내용이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 법을 만드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듯도 하다. 

이 굴뚝 위의 차광호만 김정욱만 이창근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현재가 위험하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험하다. 우리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안전한 삶의 자리를 줄 수 없는 세상이다. 먼저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 오체투지에 같이 하면서 선전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임금 조금 올리는데 한 눈 팔려 있는 그 사이에 당신의 일자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칼자루를 자본에게 쥐어주는 법이 저항 없이 통과될 수 있다. 소탐대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굴뚝은 우리가 잘 지킬 수 있다. 오히려 모두가 이 오체투지 지상군들로 함께 나서주기를 바래본다. 박근혜 정부의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 양산은 오늘보다 수만배는 더 많은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진에 함께해서 저들만의 안식처인 국회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를 향해 느리지만 거대한 존엄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굴뚝사람들 역시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다시 선전하고 조직하고 연대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 굴뚝농성 223일차)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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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사를 통해 본 북한의 정책방향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70, 최종회)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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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09: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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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년 연속 새해 첫날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의 키워드는 예상대로 ‘해방과 당 창건 70주년’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새해 2015년은 조국해방 일흔돐과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모두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체 군대와 인민이 10월의 대축전장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북한의 정책방향이 ‘10월의 대축전장’, 즉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혁명적 대경사’로 맞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0월에 35년 만에 노동당 7차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를 위해 신년사에서는 ‘정치사상.군사강국’의 강화, 인민생활의 향상, 평화적 환경 마련 등 3가지 과제를 중요하게 거론했다. 북한은 과거 당대회의 선결조선으로 안보문제의 해결(평화협정 체결), 경제건설, 남북관계(통일문제)의 진전 등을 예시한 바 있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심화

우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치사상.군사강국’의 강화를 위해 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당의 유일적 영군체계를 확고히 세우는 한편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당 창건 70돌을 맞는 올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켜 전당이 당 중앙과 사상과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 하도록 해야한다”며 “모든 당조직들은 당의 노선과 정책관철을 당사업의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당정책을 어느 하나도 놓침이 없이 무조건 끝까지 관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과 ‘당조직들의 기능과 역할’ 강화는 북한이 매년 신년사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올해는 당사업의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사상사업 강화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김 제1위원장은 “모든 당조직과 당일군(간부)들이 세도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극복”해 “당사업 전반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일관시켜 전당에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에게 의거하는 기풍이 차 넘치게 하고 당 사업의 주되는 힘이 인민생활향상에 돌려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제시했다.

2013년 첫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란 구호를 제시한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일군을 위하여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일군이 있다”라고 강조한 연장선상에서 올해도 간부의 사업방식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 후 첫 방문지로 평양의 고아시설인 육아원와 애육원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한 마디로 김정은 제1위원장 중심의 유일영도체계를 확고히 하면서 ‘세도와 관료주의’ 척결과 간부의 대민 사업자세 변화를 꾸준히 추진해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주의, 부정부패 등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이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는 점에서 얼마나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사상사업과 관련해 김 제1위원장은 “사상사업을 공세적으로 벌려 우리 혁명의 사상진지를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합니다”라며 “위대성교양과 김정일애국주의교양, 신념교양, 반제계급교양, 도덕교양” 강화를 주문했다. 유일영도체계 확립에 따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대성 교양’을 강화하고, 외부의 대북전단 살포와 사상 공세, 해외교류 확대 등에 맞춰 내부 사상교육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국방분야에 대해서는 “올해의 혁명무력 건설과 국방력 강화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 군사강국의 위력을 더 높이 떨쳐야 하겠습니다”라며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 관철을 촉구했다.

“인민군대에서는 전군에 당의 유일적 령군체계를 확고히 세우며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과 근위부대운동을 힘있게 벌려 당이 제시한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로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오증흡7연대칭호쟁취운동’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군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모든 인민군장병들을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의 친위대, 결사대로 만들기 위한 집단적 혁신운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튼튼히 서고 당의 자위적군사사상과 군사로선을 관철하는 투쟁에서 특출한 위훈을 세운 조선인민군 부대, 련합부대들이 수령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근위칭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두 운동 모두 기본적으로 최고사령관과 당의 노선에 대한 충실성을 판정해 칭호를 주는 것이다. 결국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대목은 군내에 유일적 영군체계를 확고히 하고(총정치국의 강화), 두 운동을 통해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과 당에 충실한 군대로 만들어 당이 제시한 군력강화 노선과 3대과업을 관철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제1위원장이 언급한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노선’과 ‘3대과업’이란 무엇일까? 북한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지난 3년 간 김 제1위원장의 발언과 군부대 현지지도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김 제1위원장이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이란 단어를 공개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지난해 12월 1일 인민군 제963군부대직속 포병중대의 ‘전투정치훈련’을 시찰했을 때이다. 당시 그는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 모든 인민군 장병들을 진짜배기 싸움꾼들로 준비시키며 최정예 혁명적 강군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올해 신년사에 포함된 국방분야의 과제들을 볼 때 여기서 언급된 4대전략적 노선은 1) 전투정치훈련에서 형식주의, 고정격식화 배격 2) 인민군 후방사업의 획기적 전환 3) 노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의 전투력 강화로 자기 향토를 지킬 수 있는 전민항전 준비 태세 확립 4) 군수생산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등으로 보인다.

다만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일 현지시찰 때 “모든 지휘성원들과 군인들이 정치학습에 빠짐없이 성실히 참가함으로써 오직 당이 가리키는 한 방향으로만 총구를 내대고 나아가는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 전위투사들로 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위의 4가지 중 하나가 빠지고 유일사상교양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교양사업의 강화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또한 ‘3대과업’은 신년사에 언급된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군력강화의 3대과업’이란 측면으로 해석한다면 ‘4대전략적 노선’을 추진하는데서 제기되는 3가지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4대전략적 노선’을 1960년대 채택된 ‘4대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군의 간부화, 전지역의 요새화, 전군의 현대화)으로 해석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군대가 작전, 전역, 전투, 교전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군사교리’를 새롭게 만들고, 이를 적용한 훈련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1960년대의 ‘4대군사노선’과는 질적으로 다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훈련내용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여 훈련의 질을 높이는데서 전변”을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후방사업(군인의 복지 및 후생)을 ‘사회주의 수호전’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특히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군인의 먹거리와 생활환경 개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군인들에게 더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며 모든 대대, 모든 중대들을 최정예전투대오로, 당중앙위원회의 뜨락과 잇닿아있는 병사들의 정든 고향마을과 고향집으로 꾸려야 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확립 강조

관심을 보았던 경제개선 조치와 관련된 언급은 올해 신년사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심지어 협동농장에서 시행에 들어간 포전담당책임제도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 확립’을 언급해 그동안 시범적, 연구 차원에서 진행됐던 경제개선 방안이 마무리 단계에 있음을 시사했다.

김 제1위원장은 “내각을 비롯한 국가경제지도기관들에서 현실적 요구에 맞는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어 모든 경제기관, 기업체들이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5월 30일 당, 국가, 군대기관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데 대하여〉)에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과학기술과 생산경영관리를 경합하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켜나가는 혁신적인 관리방법으로 되어야 합니다”라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핵심내용으로 제시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하여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하여 당과 국가앞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들이 생산과 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관리방법입니다. 기업체들에서는 또한 제품개발권과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을 행사하여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기술, 새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제품의 질을 개선하여 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며 과학자,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을 최첨단돌파전의 주인으로 내세워 기업체가 새기술의 적극적인 수요자, 창조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이고 지식경제에로 나가는 길입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서 직장과 작업반․분조단위로 근로자들의 담당책임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근로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미 북한은 협동농장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전면 실시해 식량증산에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지난해 목표로 했던 식량 생산 600만톤에는 미달했지만 가뭄 등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2013년보다 증산을 이룬 것도 포전담당책임제 도입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5.30담화’에서 “경제지도일군들은 물론 모든 일군들이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경제문제와 인민생활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자신을 깊이 반성해보아야 한다”며 “일군들이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나 경제관리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혁신적으로 풀어나가 것”을 주문했다.

올해 신년사에 경제개선조치들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확립을 언급함으로써 앞으로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후속조치들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2002년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 조치(7.1조치)처럼 종합적인 조치가 한꺼번에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여건이 마련되는 사안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해 시행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과제로는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 축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과 중앙과 지방 경공업공장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는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김 제1위원장은 대외경제와 관련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언급하며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경제특구 정책의 지속성을 확인했다. 금강산 특구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금강산관광 재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평화적 환경 조성과 최고위급회담 언급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처음으로 최고위급회담(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언급하며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내놓은 ‘중대제안’, ‘특별제안’,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측근 3인방’의 인천방문 시 발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립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언급에 화답하며,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한 ‘대통로’란 발언이 정상회담을 의미한다는 점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강력하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1월중에 남북고위급접촉(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회담이 잘 될 경우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돌파구에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는 지난해 2월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오히려 갈등이 격화됐던 경험이 반영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곳곳에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우선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리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라며 남북관계 개선 위해서는 긴장 완화와 평화적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고위급회담을 언급하면서도 분위기와 환경 마련을 거론했다.

지난해처럼 한미합동연습이 강화되고,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된다면 언제든지 남북 간 합의가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이 체제의 안정과 경제난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대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올해 당대회 개최를 염두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다양한 대화를 공세적으로 제의하며 유연한 태도로 실제 성과를 내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는 10월 4일 북한 ‘측근3인방’의 방한을 계기로 12월 중순경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기로 외교안보라인에서 의견이 모아진 듯하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임하는 남북 간 동상이몽의 간격이 워낙 커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외교라인의 갈등과 무능력, 대북강경파의 견제 등으로 상반기 안에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와 같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다. 일단 대북전단 살포 중지와 금강산관광 재개가 변수다. 2월 안으로 두 가지 문제(소통로)에 진전이 있어야 대통로로 이어지는 국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신년사에서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남북관계 대전환의 지름길이 제시된 천금과 같은 기회를 놓침이 없이 남측이 결단을 내려야 교착상태가 타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내외 냉전구조를 깨는 결단을 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설사 지난해 말 남북 간에 모종의 접촉이 있었고, 그 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논의됐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잃어버린 1년의 시간을 벌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이 아닐까. 지난해보다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전환을 기대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 2013년 5월 〈김정은시대 북한 읽기〉란 연재제목으로 첫 기사가 나간 후 70회가 됐습니다. 김정은체제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나면서 김정은시대 북한의 정책노선도 상당히 구체화 되었고, 사회시스템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 잡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연재를 끝낼 시기가 됐다는 판단입니다. 그동안 연재에 보내주신 과분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부터는 다른 내용과 형식의 기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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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포토스케치] 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오열하는 어머니, 사진 속 웃음으로 화답하는 아이들

손문상 화백 2015.01.04 08: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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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너른 창에 햇볕 한가득 부서지고 있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들어온 이승의 교실은 부서진 햇살이 아이의 책상 위에 소복소복 내려 쌓여 천상인 듯 평화롭고 한없이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 가라앉은 아이들 책상 하나하나 마다 작은 꽃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 꽃잎 주위로 그리움으로 쓰다듬은 애절한 사랑의 손길이 작은 종이에 조각 글로 넘쳤고 책상 위 사진 속 아이들이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2015년 1월 3일 오후, 안산 단원고 2학년 각반 교실에 한낮 풍경은 이곳이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곳임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이날 교실을 찾은 2학년 7반 손찬우 군의 어머니가 찬우 군의 책상 옆에서 오열을 하고 있다.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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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왕’ 영웅이라고? “비정규직 노예처럼 부리는 곳”

MBN 신년기획 ‘희망 일구는 소영웅’ 첫편 청소업체 구자관 대표 구설
 
입력 : 2015-01-03  18:07:38   노출 : 2015.01.03  19:03:54
김유리 기자 | yu100@mediatoday.co.kr   
 

MBN이 소영웅을 찾는 신년기획에서 첫 번째 영웅으로 내세운 구자관 대표의 청소업체 삼구아이엔씨가 사실상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탄압했다는 증언이 나와 구설에 올랐다.

MBN은 지난 2일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세요”…‘청소왕’ 구자관 대표>라는 기사에서 “청소부 1만7000여명과 함께 청소기업 왕국을 만들고 있는 ‘청소왕’ 구자관씨”라고 구 대표를 소개했다.

MBN은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영웅이 별로 없는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며 희망을 일구는 소영웅을 신년기획으로 취재했다”라며 구 대표를 소개한 꼭지 취지를 밝혔다.

MBN은 청소업체 삼구에 대해 “청소 대행기업 대부분이 계약직 사원을 고용하는 상황에서 모든 직원의 정규직 채용을 고집하며 심지어 명함까지 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수익 대부분을 직원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정해진 월급만 받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사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삼구에 소속돼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구 대표에게 붙은 ‘청소왕’ ‘영웅’이라는 수식어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삼구는 서울여대에서 2013년 11월까지 약 9년 동안 청소 등 시설 관리 업무 계약을 맺었다. 당시 서울여대에서 근무했던 환경미화 노동자 A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영웅’으로 미화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 등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직전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을 일 했고 월급으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63만원을 받았다.

   
▲ MBN 방송화면 캡쳐.
 

 

A는 “1년 단위로 매년 계약을 갱신했고 연차도 쉬는 토요일에 쓰라고 해 연차를 쓰기는커녕 연차수당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아 봤다”며 “작업화를 한 번 사줘봤나, 심지어 청소에 필요한 걸레도 지급하지 않아 기숙사를 나가는 학생들이 버리는 천으로 걸레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A는 또 “회식 때에도 비싸다고 맥주도 먹지 못하게 했고 고기도 정해진 양 이상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며 “비정규직에게 밥이나 한 끼 제대로 사주고 그런 말을 했으면 억울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고용도 불안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환경미화원은 그냥 자르기도 했다”며 “‘까만 봉투 해고’가 가장 유명하고 어이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까만 봉투 해고’는 연말에 사측에서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작업복을 까만 봉투에 담아오라고 해서 연초 출근해서 자신의 작업복이 없어지면 비로소 해고라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A는 “당시 소장의 비위인지 삼구 기업 차원의 비위인지를 다 가려낼 수는 없지만 연차를 못쓰게 하는 게 소장 개인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겠느냐”며 “기업에서 소장을 내려 보냈으면 소장의 그 비위까지 관리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삼구는 2014년부터 이화여대 청소 용역 업체로 계약을 맺고 운영 중이다. 이화여대에서 고용 업체를 바꿔가며 8년째 일하고 있다는 환경미화 노동자인 B씨는 “현재 삼구에서 일하고 있는데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B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인정받았고 이전 청소용역 업체의 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해 삼구에서도 4대 보험 등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N에 출연한 구자관 삼구아이엔씨 대표
 

회사에서 명함을 지급하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B는 “회사에서 개인당 몇장씩 해주기는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며 “그런게 다 낭비고 그럴 여유가 있으면 환경미화 노동자에게 필요한 걸 하나 더 해주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A는 “회사와 명함 업체의 친분 때문에 해준 것으로 안다”며 “그럴 돈이면 청소 도구나 제대로 사주는 게 낫다”고 일침을 가했다.

삼구 소속으로 현재 이대 용역업체를 맡고 있는 박미용 소장은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정규직”이라고 말했으나 “지난해 1월 이화여대와 청소용역 계약을 한 후 노동자와는 6월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올해는 계약서 재서명 없이 고용이 승계됐다. 근로계약서에는 1년 단위로 돼 있고 자동 갱신되는 형태”라고 인정했다. 사실상 계약조건이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비정규 계약직이다.

이에 대해 김윤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청소 대행업체가 원청과 계약해지가 될 경우 소속 직원이 자동으로 해고 되는 수순에서 청소 대행업체 직원의 정규직화는 어불성설이고 특히 삼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어 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며 “4대보험·퇴직금 등은 노조와 사측의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한 것으로 대행업체가 정규직 조건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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