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총체적 언급(번호34)과 1999년 위원회의 의견을 다시 돌이키면서 한국정부에 “국제조약은 어떤 생각이 단지 적대국이 가진 생각과 일치하거나 적대국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이유로 그 생각의 표현이 제약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바이다. 한국정부는 국가보안법 7조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
'위원회는 '기본적 민주질서' 위반혐의로 2014년 헌법재판소가 명령한 통합진보당 해산은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북한(DPRK) 이데올로기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이미 국가보안법 7조에 따른 혐의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했음을 우려한다.'
'정당해산이 끼치는 특별히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할 때 국가는 최대한 자제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정당해산을 사용해야 하며, 비례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번역 뉴스프로)
폐지권고가 새삼스런 일이 아닌 국가보안법
지난해 11월 6일 UN 자유권규약위원회 (UN Human Rights Committee)가 한국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 전반을 심의한 뒤 내린 최종 권고문 중 일부항목들이다. 표현의 자유와 단체결성의 자유에 배치되는 국가보안법 7조 조항의 폐지권고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정당해산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며 비례의 원칙, 바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서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7조를 자유권규약에 부합되도록 개정하라고 권고했던 지난 2006년에 비해 이번에는 7조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경입장을 표하고 있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의 이 같은 국가보안법(특히7조) 폐지권고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미 1999년과 2006년에도 요구한 바 있으며, UN '의사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Frank La Rue)'이 한국을 직접방문, 10여 일간 있으면서 표현의 자유 피해 사례 등을 집중조사하고 한국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국제인권기구와 단체들 심지어 우방국이라는 미 국무부조차 국가보안법의 폐지 또는 대폭 개정을 해마다 촉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의 국가보안법 적용에 따른 인권침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가늠하는 국제적 반영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조차 인권침해의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행 국가보안법은 일제 식민지배 수단의 유제이면서 전후 냉전체제 과정의 산물로서 사상탄압, 체제대결, 분단고착 그리고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하 탄압도구로 악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이 반민주 악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국제인권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평화통일을 명시한 헌법정신에 반하여 남북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그리고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을 그 무슨 반국가 또는 이적 활동으로 몰아 가혹하게 처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제까지의 남북사이 모든 합의를 전면 부정하면서 체제대결을 넘어 상대체제의 붕괴와 흡수통일 망상을 노골화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 적용에서도 인권유린을 넘어 통일운동 자체를 범죄시하는 반통일, 반민족적인 이른바 종북세력 척결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이제 주어진 주제에 따라 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국가보안법 적용의 2014~2015년에 있었던 종북몰이 공안탄압 실태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공안탄압 실태
먼저, 2014년의 공안탄압 실태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리 밝혀둘 것이 있다. 국가보안법 적용 공안탄압은 압수수색, 강제연행, 강압수사,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과정만이 아니다. 공소 이후의 검찰의 공소유지, 유죄입증 억지논리와 재판부의 정치논리에 따른 유·무죄 판단 등 3급심 전 과정도 분명히 공안탄압의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이렇게 국가보안법 적용사건의 재판 전 과정이 공안탄압의 요소로 되어 있다면, 2014년엔 새로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등 공안몰이가 아닌, 이전에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었던 주요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에서의 종북몰이 공안정국이었다.
그러나 재판 그 자체가 모두 공안탄압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재판부에 따라서는 경찰(보안수사대), 국가정보원, 공안검찰의 집요한 공소유지, 유죄입증 등 종북, 공안논리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양심에 따른 공정한 판단(무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의 대표적 종북몰이 공안탄압으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대탄압 사건’,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탄압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내의 의견그룹인 ‘새시대 교육운동’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 탄압사건’을 들 수 있다. 이들 사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기술하기로 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기록하고 있는 2014년의 국가보안법 적용사건의 일부 재판 사례를 보기로 한다.
먼저 무죄판결(<표1> 참조)에서는 대전지법 논산지원에서 북을 찬양하는 동영상 등 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찬양, 고무)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ㄱ'씨 무죄(2014. 1. 8), 대법원 3부 군인 'ㄱ'씨의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기소에 대한 무죄 취지 파기 환송(2014. 4. 21), 대전지법 항소 2부, 이적표현물 소지 등(찬양, 고무) 혐의 조아무개씨에 이적 목적 없었다고 무죄선고(2014. 7. 30), 대법원 2부 박정근이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민족끼리> 글을 리트윗해 게시한 혐의(찬양, 고무) 무죄선고(2014. 08. 28), 대법원 2부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대표에 대한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혐의는 무죄판결을 했고, 다만 찬양, 고무혐의만 인정했다(2014. 9. 29).
<표1> 2014년 무죄 판결 받은 국가보안법 적용사건
월일
법원
혐의내용
사람
선고내용
1월 8일
대전지법
논산지원
북을 찬양하는 동영상 등 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
(찬양, 고무)혐의
공무원 'ㄱ'씨
무죄
4월 21일
대법원 3부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
군인 'ㄱ'씨
무죄
7월 30일
대전지법
항소 2부
이적표현물 소지 등
(찬양, 고무) 혐의
조아무개씨
무죄
8월 28일
대법원 2부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민족끼리> 글을 리트윗해 게시한 혐의
(찬양, 고무)
박정근
9월 29일
대법원 2부
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혐의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대표
무죄판결, 다만 찬양, 고무혐의만 인정
다음 유죄 부분(<표2> 참조)에서는, 광주지법 순천지원 통신연락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이아무개씨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2014. 1. 7), 제주지법 항소부 찬양, 고무혐의 사건-김아무개씨, 징역1년, 집행유예3년 항소기각(2014. 1. 17), 춘천지방법원 항소부 찬양, 고무혐의 등으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A아무개씨 항소기각(2014. 1. 23), 서울중앙지법 서부지원 찬양, 고무 혐의 국민참여 재판에서 최아무개씨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2014. 1. 28), 대법원 형사1부 무단 방북, 금수산기념궁전 참배한 독일 망명가 조영삼씨에 대한 찬양, 고무 혐의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무죄 부분 원심으로 돌려보내다(2014. 1. 29). 울산지방법원. 울산 모대학 B교수에 대한 찬양, 고무 혐의(‘세기와 더불어’를 읽게 한 혐의) 징역1년 자격정지2년 선고(2014. 2. 10), 서울중앙지법, 국가보안법 상 찬양, 고무 혐의 등 6.15청학연대 유아무개 활동가에 징역1년,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2년 선고(2014. 2. 21), 수원지방법원.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당시 인터넷 카페에 추모 분향소 게시판을 개설한 혐의(찬양, 고무) 윤아무개씨에 징역1년,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2014. 3. 20), 대법원3부. 이적단체 가입혐의.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위원회(연방통추)지도위원 박아무개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이적단체 가입 등 유죄 취지로 원심으로 돌려보냄(2014. 4. 20). 서울중앙지법 민족춤패 ‘출’전식렬 대표에 대한 회합, 통신 등 혐의로 징역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2014. 7. 8). 대법원2부.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련) 사건(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으로 기소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징역2년에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고법으로 돌려보냄. 야간시위 금지가 한정위헌이라는 헌재결정에 따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집시법 일부만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했음.(2014. 8. 20). 대법원2부. 찬양, 고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이아무개 상임대표에게 징역10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2014. 9. 1). 청주지방법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아무개 인터넷 논객에게 같은 혐의 추가 기소 사건에서 징역6월을 선고하다. 강아무개씨는 법정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등 구호를 외친 혐의로 5차례나 추가 기소된 바 있음.(2014. 10. 29)
이 밖에도 성유보 전 동아투위 대표에 대한 재심에서의 무죄선고,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재심에서의 무죄 확정과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의 재심공판, 특히 서울시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을 비롯한 탈북자 간첩조작사건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기에서 모두 다루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표2> 2014년 유죄 판결 받은 국가보안법 적용사건
월일
법원
혐의내용
사람
선고내용
1월 7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통신연락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
공무원
이 아무개씨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1월 17일
제주지법 항소부
찬양, 고무혐의
김아무개씨
징역 1년, 집행유예3년 항소기각
1월 23일
춘천지방법원 항소부
찬양, 고무혐의 등으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고 항소
A아무개씨
항소기각
1월 28일
서울중앙지법 서부지원
찬양, 고무혐의
(국민참여재판)
최아무개씨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1월 29일
대법원
형사 1부
무단 방북,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찬양, 고무 혐의 등에 대한 상고심
독일 망명가 조영삼씨
원심(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깨고 일부 무죄, 원심으로 돌려보냄
2월 10일
울산지방법원
'세기와 더불어'를 읽게 한 혐의
(찬양, 고무)
울산 모대학
B 교수
징역 1년,
자격정지 2년
2월 21일
서울중앙지법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혐의
6.15 청학연대 유아무개 활동가
징역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
3월 20일
수원지방법원
김정일국방위원장 서거 당시 인터넷 카페에 추모분향소 게시판을 개설한 혐의
(찬양, 고무)
윤아무개씨
징역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
4월 20일
대법원 3부
이적단체 가입혐의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위원회
(연방통추)지도위원 박아무개씨
원심(징역1년, 집행 유예 3년, 자격정지 1년 6월)을 깨고 이적단체 가입 등 유죄 취지로 원심으로 돌려보냄
7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족춤패 '출' 에 대한
회합, 통신 등 혐의
전식렬 대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
8월 20일
대법원 2부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련) 사건(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원심(2년, 자격정지 2년, 행유예3년)을 깨고 고법으로 돌려보냄
9월 1일
대법원 2부
찬양, 고무 혐의 등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 이 아무개 상임대표
원심(징역 10월) 확정
10월 29일
청주지방법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강아무개
인터넷 논객
징역 6월
위 사례에서 보았듯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는 무죄 판결보다 유죄선고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다시 앞에서 말했던 ‘범민련 남측본부 대탄압 사건’과,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탄압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내의 의견그룹인 ‘새시대 교육운동’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 탄압사건’을 짚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네 사건은 재판과정에서 앞에 두 사건은 유죄판결을, 뒤에 두 사건은 무죄판결을 했다.
무죄판결부터 보기로 한다.
국정원과 검찰은 평통사가 한미연합군사연습 반대, 한미일군사동맹 반대,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철수 등을 주장하고 활동 했다며,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이적동조 혐의로 김종일 공동대표, 오혜란 사무처장, 부천 평통사 신정길, 주정숙 공동대표, 인천 평통사 유정섭 사무국장, 김강연 교육부장, 대구 평통사 백창욱 대표, 대전충남 평통사 장도정 사무국장, 군산 평통사 김판태 사무국장 등을 압수수색, 소환조사 불구속기소(2013. 2. 26 외) 했지만, 2014년과 2015년 동안 1, 2심 공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고 현재 대법에 계류 중에 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전교조 내의 의견그룹인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위원회(새시대 교육운동)'와 관련, 박미자 전 전교조 수석 부위원장 등 교사 4명에 대한 이적단체 구성, 가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2013. 2. 21)하여 법정에 세웠지만, 1심(2015. 1. 23)과 항소심(2016. 1. 19)을 거치면서 이적단체 구성, 가입 혐의 무죄, 그 외 찬양, 고무 대부분 무죄 선고했고, 일부 이적표현물 소지만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완전 무죄가 아닌 것은 아쉽지만 이적단체 구성, 가입 및 이적동조, 이적표현물 소지 등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한 의미가 있었다.
다음으로 유죄부분이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에 따라 결성되었고, 6.15남북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을 앞장서 실천해오고 있는 통일애국 단체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전국적 규모의 대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2013년 6월 26일 김성일 사무차장과 이창호 대외협력국장을, 7월 17일에는 김세창 조직위원장, 7월 19일엔 김을수 의장권한대행을, 12월 6일에는 하성원 범민련 남측본부 부경연합의장을 구속했다. 이들은 2013년 2~3월 동안 한미연합군사연습 반대 시위와 4~6월 사이 반전평화 미군철수 촉구 집회 등을 개최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1년 6월에서 2년 6월까지 징역과 3년에서 4년까지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미군철수 반미집회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이들이 이적단체 구성원이라며 항소심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직도 1명은 항소심에 계류 중이고 대부분 대법 확정을 받았다.
또한 국가정보원은 대선개입, 정치공작 실상이 드러나면서 기구 자체의 해체위기를 맞게 되자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여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구속(2013.9.5)을 비롯하여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수원의료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을 구속했다(8.30). 이어 같은 혐의로 김홍렬 경기도당 위원장, 김근래 도당 부위원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을 구속했다(10.1). 이들 7명에겐 다 같이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혐의도 씌웠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피의사실 유포 등으로 반역집단으로 호된 여론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정식 재판이 진행되면서 ‘내란음모’도 ‘지하혁명조직’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유일한 증거인 국정원의 협조자가 불법 녹취한 녹취록 또한 변조되었음이 드러나고 증인 심문과정에서 공소내용과는 다른 증언이 나오고 있어 사건의 조작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의 살벌한 공포 분위기에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2014. 2.3) 검찰은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이상호, 홍순석, 조양원, 김홍렬, 김근래 씨 등엔 징역 15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그리고 2월 17일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재판장 김정윤)는 검찰의 공소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여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 김홍렬, 이상호, 조양원, 김근래 씨 등에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 홍순석 씨에게 징역 6년에 자격정지 6년, 한동근 씨에겐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장장 45차례나 공판이 이어진 이 재판은 처음부터 유죄판결을 염두에 둔 전형적인 정치보복재판이었다.
2014년 6월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관련자 전원에게 적용했던 원심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국정원과 검찰이 공소 제기한 이른바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의원과 김홍렬 경기도당 위원장에게는 이른바 내란 선동죄를 적용하고 관련자 전원에게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등 찬양 고무죄 등을 적용하여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 김홍렬 도당위원장에겐 징역5년에 자격정지 5년,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에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 홍순석 김근래 도당 부위원장과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에게는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한동근 수원의료생협 이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내란음모’와 ‘지하혁명조직’의 무죄와 실체 없음으로 판단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내란음모 없는 내란선동죄 적용은 역시 정치 재판임을 반증하게 했다. 또한 백번을 양보하여 이적표현물 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다 해도 이제까지 사례로 보아 집행유예로 석방했어야 옳았다.
2014년 유신부활 정권의 민주주의 압살과 종북몰이 공안탄압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빼놓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0월 19일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이른바 위헌정당심판청구사건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이 상실된다는 선고문을 낭독했다. 박 소장과 이정미 주심·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 재판관 등 8명이 인용의견(정당해산)을 냈고 김이수 헌재재판관이 기각(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박한철 소장은 “통진당은 강령에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담고 있고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 등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며 “정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사건과 비례대포 부정경선사건,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등의 활동을 감안하면 정당의 활동도 위헌적”이라고 말하다. 또한 “정당이 해산되었는데 소속 국회의원을 남겨두는 것은 정당이 계속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명문규정이 없지만 의원직도 상실된다고 봐야 한다”고 원고문을 낭독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의원 등의 세력이 정당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 활동을 영위한 만큼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협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다. 또한 “정당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활동에 대한 제약은 극히 제한적으로 최후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밝히다. 다만 “통진당의 문제점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에 의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재에 의한 정당해산이 자행되었다. 또한 선고 즉시 효력이 발생되고 정당의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하게 된다. 대체정당이나 같은 명칭 사용도 금지된다. 유신체제가 모든 정당 활동과 국회를 해산하고 파쇼독재를 자행했듯이 그 딸이 또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남북관계를 파탄나게 했다.
2015년 국가보안법 적용 공안탄압 실태
다음으로, 2015년 국가보안법 적용 공안탄압 실태이다.
2014년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대부분 2013년에 구속(또는 불구속) 기소된 사건들의 재판과정이었다면, 2015년에는 새해벽두부터 ‘통일콘서트’종북몰이,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 추가 구속 등 탄압 사태, 코리아연대에 대한 탄압,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계속된 탄압, 기독교 평화행동목자단에 대한 공안탄압 등,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구속 기소 등으로 한 해 동안을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이 같은 종북 공안몰이는 2014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2014년 12월 10일, 재미동포 신은미 교수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가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하고 있는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토크 문화콘서트’가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렸다. 그런데 이른바 ‘일베’회원으로 알려진 고3 학생이 황선 대표가 출연하고 있는 무대 쪽으로 달려 나와 사제 폭발물을 투척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보다 앞서, 그해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첫 ‘통일 토크 콘서트’가 진행된 뒤 극우 보수세력들은 이를 ‘종북 콘서트’라며 출연자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했고, 공안당국은 두 사람을 소환조사하고 집을 압수 수색했다. 심지어 콘서트를 주최했다며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본부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리고 공안몰이는 여러 갈래로 이어졌다.
12월 3일,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가택수색을 비롯하여 자주통일 민주주의 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회원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12월 22일)과 수배조치했고, 평화교회와 이석 목사 자택의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면서, 살벌한 공안정국이 조성되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마침내 황선 대표를 찬양․고무 동조 등 혐의로 구속했고(1월 13일), 이보다 앞서 신은미 교수는 강제 출국시켰다. 1월 22일에는 대법원에서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상고심 선고재판이 있었고(이 부분은 뒤에 다시 기술), 2월 5일에는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의 정호익 씨를 찬양․고무 등 혐의로 구속했다. 그리고 4월 6일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주한미국 대사 공격사건과 관련 구속됐다(뒤에 국가보안법을 추가 적용했다).
5월 13일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연장선에서 우위영 전 이석기 의원 보좌관과 박미정 전 통합진보당 청년위원장,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시 지부장을 경기도당 정세 강연회에 참석한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 혐의로 구속했다(뒤에 다시 기술). 5월 6일에는 코리아연대 남창우 회원이 찬양․고무 등 혐의로, 5월 26일엔 이적 표현물 소지 등 혐의로 옛 통합진보당 당원 진 아무개씨를 구속했다.
6월 24일에는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 박창숙 총무가 찬양․고무(이적 표현물 소지 등)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7월 26일에는 코리아연대 이상훈 공동대표와 김혜영 회원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결성 등 혐의로 구속됐고, 8월 13일엔 같은 단체 이미숙 회원이, 10월 20일에는 지영철 공동대표가 10월 28일에는 김대봉 회원이, 12월 20에는 최민 회원이 구속됐다. 2016년 1월 10일에는 한준혜회원이, 1월 17일에는 김경구 회원이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리고 2014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를 앞두고 성직자․노동자 간첩 조작 공안몰이로 11월 13일 기독교 평화행동목자단 김성윤 목사 자택과 교회, 최재봉 목사 자택, 그 외 노동자들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김성윤 목사를 강제연행, 구속․기소했다(12월22일). 또한 12월 1일에는 이적표현물 제작소지 등 혐의로 ‘부산 청년한의사회’소속 한의사 9명과 한의대생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밖에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대부분 7조 찬양․고무)로 법정에 세워져 재판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다. 즉 박운성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서울 고법 항소심), 정상규 조국통일 카페논객(광주지법), 양기우 인터넷 논객(광주지법 순천지원), 조종원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대표(대법원), 박미라 통일카페논객(대법원), 통일카페회원 정춘희(대구지법), 권말선 시인(수원지법), 김희정 시인(수원지법), 유영호 북한학전공 박사과정(서부지원), 먹고사니(닉네임), 국가보안법 피해자모임(인천지법), 윤영일 통일카페 전 운영자(대법원), 강영훈 인터넷 논객(광주지법), 윤기진 민권연대 공동대표(대법원), 정설교 농민시인(대법원), 안재구 통일원로(대법원) 등이 있고, 대한항공 기장 김아무개씨(대법원), 젊은벗 대표 진아무개(부산지법), 인터넷 카페 운영자 김아무개(전주지법), 이준일 전 통진당 중랑구위원장(서울 중앙지법), 대구․경북 인권연대 천아무개(대구지법), 최보경 간디학교 교사(대법원 – 무죄확정), 평양주민 김련희(대구 고법), 이정섭 자주시보 기자(서울중앙지법) 외 여러 피해자들이 있다.
이제 위와 같은 많은 탄압 사례 가운데, 이적단체 결성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코리아연대 관련자들과 80에서 85살에 이르는 범민련 남측본부 원로들의 공소 내용과 그 부당성을 알아보고,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연장선에서 구속․기소된 전 통합진보당 관련자들의 1심 공판상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독교 평화행동 목사단에 대한 탄압과 김성윤 목사의 구속․기소 과정을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코리아 연대 탄압사례이다.
지난 2014년 12월 22일 서울 경찰청 보안수사대와 충남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이상준 공동대표를 비롯한 이 단체 회원 11명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결성 등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코리아연대는 이에 항의하여 2015년 1월 8일부터 기독교 회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공안당국은 7월 15일 소환에 따르지 않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11명을 체포하기 위해 농성장을 침탈했으나 농성 현장에서는 아무도 체포하지 못했다. 이후 7월 23일 이상훈 대표, 24일에는 김동관 회원, 26일에는 이동근 전 공동대표와 김혜영 회원을 잇달아 강제연행했다. 그리고 8월 9일 이미숙 회원이 연행됐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현재 8명이 구속기소되었고, 5명이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씌운 혐의는 다 같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가입과 이적 동조, 그리고 이적표현을 제작․반포․소지 등 혐의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고래고기 먹고 화합하자'는 오찬 모임을 6월 20일 진행했다고 한다. 국회 근처 식당에서 펼쳐진 이날 모임에 새누리당 국회의원 약 6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울산에서 공수한 고래고기를 직접 대접하면서 고래고기 먹자파티를 주최한 사람은 울산 중구가 지역구인 5선의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먹은 고래고기는 밍크고래일 텐데, 진짜 놀라운 점은 시중에서 팔리는 밍크고래 고기의 70%가 불법포획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밍크고래 소비량은 연간 240마리로 추정되는데, 이중 해경에서 고래유통증명서를 발급해 적법하게 유통되는 밍크고래는 80마리 안팎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2016 울산고래축제를 앞두고 경찰이 벌인 밍크고래 불법포획과 유통 실태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런 통계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불법으로 잡아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고래고기를 먹고 있는 셈이 된다.
이날 고래고기를 잡수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먹은 고래고기가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유통된 것인지 확인해보았을까? 나아가 고래고기 소비가 '자연에 대한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기막힌 현실을 이날 고래고기를 먹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혼획을 가장한 의도적 고래잡이 의심돼
한국 바다에서 밍크고래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고래고기 식문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불법포경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래가 우연히 그물에 걸렸다고 신고하고 유통증명서를 발급받아 몇 천만 원의 수익을 얻는 혼획 역시 고래를 멸종위기로 몰아가는 커다란 요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특집 기사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 지난 6월 16일자로 실렸다. 한국의 고래고기 식문화와 혼획을 가장한 고래잡이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한 이 기사의 제목은 <(한국에서) 고래들은 어떻게 '우연히' 의도적으로 포획되는가>이다.
필자가 활동하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프랑스, 호주 출신의 고래보호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5월 울산 현장에서 고래고기가 유통되는 실태와 우연을 가장한 의도적인 고래 포경의 문제 그리고 울산고래축제에서 공개적으로 펼쳐진 고래고기 음식 시식회의 모습을 취재하였고,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며 그 실태를 고발했다.
프랑스와 호주 활동가들은 포항 죽도시장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고래고기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놀라워했고, 매년 약 2천 마리가량의 고래류가 한국 바다에서 혼획되고 있으며, 이 중 많은 수가 실은 그물에 의한 의도적 포경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핫핑크돌핀스는 이렇게 한국 바다에서 혼획을 가장한 의도적 고래잡이가 횡행하고 있는 제도적 문제를 통계자료와 언론 기사 등을 바탕으로 프랑스, 호주 고래보호 활동가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고, 핫핑크돌핀스의 지적과 주장에 공감한 이들은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기사를 투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사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집 기사로 공개된 것이다. 이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도된 기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자연에 대한 범죄(wildlife crime)를 특집으로 다루는 특별조사팀(National Geographic's Special Investigations Unit)이 작성한 특집 기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 실린 한국의 고래고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 16일자에 <(한국에서) 고래들은 어떻게 '우연히' 의도적으로 포획되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연을 가장한 밍크고래 포획을 '자연에 대한 범죄'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잡아 돈을 버는 것은 자연(생태계)에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이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해외 매체의 기사를 통해 한국이 불법포경국가라는 사실이 전 세계로 알려지고 있는 형편이다.
밍크고래의 불법포획 문제와 함께 혼획(특정 어류를 잡으려고 친 그물에 우연히 엉뚱한 종이 걸린 것)이 큰 문제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해양수산부가 시행하고 있는 '고래 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고래고시)'는 고래가 그물에 걸렸을 경우 작살을 사용한 흔적만 없으면 혼획으로 인정하는데, 이런 허점투성이 고래고시 때문에 '의도적 혼획'이 횡행하는 원인이 된다.
어민들은 밍크고래의 서식환경과 이동 경로를 파악하여 고래들이 다닐 만한 바다 길목에 엄청나게 많은 그물을 던져놓고 '우연히'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어민은 이와 같은 관행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고래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치해놓은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어도 작살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혼획으로 인정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민은 이렇게 잡은 밍크고래를 수협에 위판하고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연을 가장한 의도적 포획이며, 이를 처벌할 조항이나 근거가 현행 고래고시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제도적 허점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사 역시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이 사실상 밍크고래 불법포경을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아도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범죄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래의 포획이냐 아니면 우연한 혼획이냐 하는 구분은 사실상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혼획을 인정하는 기준이 너무도 느슨하다는 제도적 허점 때문에 포획과 혼획에 모두 '의도성'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밍크고래' 멸종된다
▲ 지난 9일 낮 12시 10분께 대청도 남동방 30㎞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A호(7.93t)의 선장 B(53)씨가 죽은 채 그물에 걸려 있는 밍크고래를 발견해 해경에 신고했다. 이 밍크고래는 길이 6.2m, 둘레 4.2m, 무게 2t으로 죽은 지 1∼2일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에서 고래류를 잡아 돌고래 쇼에 이용하거나, 수족관에 전시하거나, 고래고기로 판매하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돈벌이를 위해 고래들을 잡는다는 점에서 자연에 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고래고기를 먹으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래고기 먹자파티나 벌이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겐 다른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고래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대형 고래류인 밍크고래는 한국 해역에는 약 1600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밍크고래의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 이렇게 매년 200마리 이상의 밍크고래가 불법으로 포획되거나 혼획되고 있는 현재의 추세가 바뀌지 않고 계속된다면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 바다에서 밍크고래는 멸종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밍크고래의 혼획과 불법포획 문제는 자연에 대한 심각한 범죄이며, 철저한 추적과 조사를 통해 그 실태를 밝혀내고 마침내 근절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앞으로 한국의 고래고기 식문화와 밍크고래 불법포획과 의도적인 혼획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의 금지 결정에도 불구하고 남극해 등지에서 밍크고래 포획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밍크고래 포획국이라는 오명(국제적 망신)을 이제 한국도 얻게 생겼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의해 더 큰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할 일이 많다. 아니, 한국 바다에서 사라져 가는 고래들을 지키기 위해서 할 일이 아주 많다.
먼저 해양수산부는 의도적 혼획의 대상이 되어 해마다 2천 마리 정도가 죽어가는 밍크고래와 상괭이를 조속히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해야 한다. 또한 고래고시를 조속히 개정하여 작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고래라도 그물에 걸린 경우에는 개인 판매를 허락하지 않고 몰수하여 폐기처분하는 등 제도를 전면 수정하여야 할 것이다.
코끼리 상아처럼 매매 자체를 금지하고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을 경우 밍크고래는 귀신고래, 대왕고래, 향고래, 큰고래처럼 한국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밍크고래의 혼획을 부추기는 제도적 허점을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방법밖에 없다. 또한 울산, 포항, 부산 등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1백 개가 넘게 영업 중인 고래고기 식당을 전수조사하여 불법포획 고래고기 사용이 드러난 업소에 대해서는 영업금지와 폐쇄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고래 불법포획의 원인은 고래고기의 수요에 있고, 이를 이용한 불법포경조직이 고래고기 유통에 나서고 있기에 이를 엄정히 단속하고, 나아가 고래고기 자체를 금지시키는 등의 강력한 고래보호 정책을 취해야 한다. 밍크고래와 상괭이가 한국 해역에서 사라진 뒤에는 고래보호대책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정책 담당자들은 알아야 한다. 귀신고래가 돌아오지 않는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을 보며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제대로 된 '고래보호법' 필요하다
▲ 울산고래축제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후, 울산 남구청이 행사장 내 명품고래밥상 홍보관 부스에서 고래고기 비빔밥 무료시식회를 열자 장년층이 시식하기 위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언론 역시 문제가 있다. 올해 밍크고래 혼획 사건을 다룬 언론 기사들은 하나같이 밍크고래를 '바다의 로또'로 부르고 있다. 즉 밍크고래를 그물로 잡은 사람에게 '로또에 당첨됐다'며 언론이 사행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이런 언론의 관행이 더더욱 밍크고래 포획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기사를 접하며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욕망을 키우게 된다. 밍크고래는 바다의 로또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야 할 바다의 소중한 친구라는 인식을 사람들로 하여금 갖게 하기 위해서는 밍크고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에서부터 밍크고래 혼획을 바다의 로또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정부기관, 언론,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고래류의 혼획을 과장한 불법 포획을 근절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핫핑크돌핀스는 절박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1. 해양수산부는 밍크고래와 상괭이를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하라
2. 해양수산부는 정부 방침인 고래고시를 개정하여 고래 멸종 부추기는 혼획 고래 유통을 전면금지하고, 제대로 된 고래보호법을 제정하라
3. 울산, 부산, 포항 등 지방자지단체에서는 수은 등 중금속 함유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고래고기의 소비를 부추기지 말고 불법 고래고기 유통을 처벌하라
4. 시중 유통 70%가 불법인 고래고기는 먹지도 않고, 팔지도 않고, 사지도 않겠다는 성숙한 자연보호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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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핫핑크돌핀스가 2016년 6월 20일 발표한 논평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으며, 중복게재는 없습니다.
코리아연대 여성회원2명 연행시 집단성추행을 자행했던 서울시경·종로경찰서가 이번에는 수사과정에서 성희롱·망발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일 코리아연대 2명의 여성회원이 <탄저균·지카 가지고 미군 떠나라! 인권말살 민주파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19차 미대사관진격투쟁을 진행했다. 집단성추행으로 악명 높은 종로서와 서울시기동대는 이번에는 아예 뒤에서 여성시위자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껴안았다. 이 과정에서 두 여성회원은 강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한다.
한편 이 충격적인 사진은 앤서(ANSWER Coaltion)의 대변인이자 교수인 데렉 포드가 직접 촬영해 SNS에 올렸다. 앤서는 미국내 10만회원을 둔 대표적인 반전평화단체다.
종로서에 연행된 두 여성들은 이번에는 수사과정에서 지능팀장의 악질적인 망언과 저질성희롱을 당했다. 종로서 지능팀장 윤국현은 경찰의 부당한 심문에 저항하며 묵비단식하는 두 여성에게 <간첩이냐>, <강제로 하는 거 좋아하냐?>며 두 여성을 능멸했다. 코리아연대회원들은 19차투쟁 내내 일관되게 묵비단식으로 집회·시위,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폭압적인 공안경찰에 항의해왔다.
코리아연대는 이에 격분하며 즉각 종로서와 미대사관 앞에서 규탄시위와 철야시위에 나섰다. 코리아연대회원들은 지금 현재 종로서와 미대사관앞에서 구호피씨와 이미지피씨를 들고 완강히 철야시위중이다.
이어 오는 24일 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거리강연회 직후 집단성추행과 망언·성희롱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미대사관앞-광화문광장-서울종합청사-종로서>코스로 행진하기로 했다.
집회 때는 지난 1년여기간 종로서, 서울시경, 보안수사대, 청와대경비단 등 공안경찰들이 벌인 모든 폭언건, 폭행건, 성추행건, 상해건들을 종합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가령 지난 4월22일 KT집회때 종로서 경비계장이 그 집회에 연대한 여대생의 가슴을 치며 성추행을 한 사실이 있다. 종로서 등의 성추행건은 폭압통치와 성추행정부로 악명높은 박근혜정부 들어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코리아연대는 이 기회에 종로서·시경·보수대의 폭언·폭행·성추행건에 대한 백서를 만들고 그간 모아놓은 성추행과 폭행 사진들과 영상들을 광화문광장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코리아연대는 수사과정에 저질 성희롱과 악질 망언을 한 종로서 지능팀장과 미대사관앞 평화적 반미시위 때 집단성추행에 가담한 관련자들을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 지휘책임을 물어 종로서장과 서울시경총장, 경찰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끝으로 코리아연대는 이 모든 사실을 SNS를 통해 국제적인 연대단체들과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포럼>에 참여했다 추가행사로 마지막까지 남은 누마이선생이 코리아연대의 규탄시위때마다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 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최종 결론이 났습니다. 국토부는 ADPi 입지평가를 토대로 ‘김해 신공항’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국토부는 김해 신공항이 가덕도와 밀양에 비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할 방안이라며 이유를 밝혔습니다.
국토부는 접근성에서 ‘가덕도는 부산 최남단에 위치해 접근이 불편하고 밀양은 대도시와 떨어져 이용이 편리하다고 하기 어렵다’면서 ‘김해 신공항은 영남지역 대도시와 인접해, 도로, 철도 등 교통망을 개선함으로써 영남 모든 지역이 더욱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려됐던 돗대산, 신어산의 북측 산악장애물에 대해 국토부는 ‘새로운 활주로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으며 김해 신공항이 밀양,가덕도에 비해 환경 훼손이 가장 적다’고 밝혔습니다.
영남권 신공항 발표를 놓고 지역 주민과 국민들의 반응은 허탈과 분노가 교차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치인들이 오랜 기간 영남권 신공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영남권 신공항을 놓고 과거에 어떤 발언들을 했는지 모아봤습니다.
‘이명박, 하늘이 열리고 물길이 열린다’
영남권 신공항을 선거에 가장 먼저 이용한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한나라당 후보는 선거 공약으로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을 공식적으로 내세웠습니다. 한나라당 공약집을 보면 ‘동남권에 새로운 공항을 만들어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의 인구 및 물류 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2008년 5월 대구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구 경북 지역이 이제 하늘이 열리고, 물길이 열리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변하게 될 것’이라며 신공항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신공항에 대한 국토연구원의 타당성 연구조사가 시작됐고, 지역마다 신공항 유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박근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3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합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면서 강하게 이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공항 문제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의 비판에 대해 “지역구인 고향에 내려가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도 이해한다”며 “그러나 (대통령인) 내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박 전 대표가) 아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무성,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약속드린다.’
김무성 의원의 영남권 신공항 발언은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2011년 박근혜 전 대표가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비판하며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를 바로 잡는 게 진정한 애국이자 용기”라며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잘못된 공약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2012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는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을 주장했다가 부산 선거 유세에서는 돌연 ‘부산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약속’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신공항이란 게 선거 때만 되면 ‘뭐 큰 공약 없나’ 하고 찾다가 나온 게 시작이다. 일각에서 ‘신공항만이 살길’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 사람들을 최면에 걸리게 했다. 그때 정치인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안 된다 하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 나도 용기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김해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부산 언론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선 그냥 침묵했다.” (2012년 1월 김무성.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후보는 대구 경북 표를 포기했지만, 박 후보는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표를 다 받아야 하는 특수한 입장이다. 박 후보가 조금 애매하게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겠다고 표현해도 알아서 이해해달라. 국제 경쟁력이 있는 공항은 해양공항이 될 수밖에 없다.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약속드린다” (2012년 11월 30일 김무성, 부산 유세 현장)
‘서병수, 신공항 유치 실패 시장직 사퇴/오거돈, 부산은 또다시 속고 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부산시장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놓고 설전을 벌였습니다. 2014년 서병수 후보는 “가덕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오거돈 후보는 신문광고에서 “부산은 또 다시 속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신공항 공약으로 부산 표심을 현혹하고 있습니다”라며 서병수 후보의 신공항 유치 공약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서병수 시장은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고 김해공장 확장으로 결론이 나자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용역결과 발표에 대한 세부 내용을 면밀해 검토한 뒤 부산시의 독자적 대응방안을 포함해 추후 다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라며 사퇴 여부를 뒤로 미루기도 했습니다.
‘2011년 발언과 똑같은 발언이 나올 수도’
“후보 때 국민들께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고 중요하지만, 국익에 반할 때는 계획을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전략기획총괄팀장을 맡았지만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에 포함됐는지는 최근에 알았다” (2011년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 위원)
“신공항 문제가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핵심 요소가 돼 국론분열은 물론 승자 없이 패자만 만드는 일을 정치인으로서 두고 볼 수 없다” (2011년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
“비용편익 비율(B/C)이 0.5도 안 되는 사업을 수두룩하게 국책사업으로 하면서 0.7로 나온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시킨 것은 잘못,정부가 사전에 정한 방침에 짜 맞추다 보니 점수 미달로 백지화시킨 것” (2011년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되지 않겠느냐.” (2011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2011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된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다양한 발언들이 나왔습니다. 위와 비슷한 발언들이 정치권에서 똑같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김해 신공항’이 확정됐지만, 지역 주민에게는 상처를 정치권에는 책임 공방이라는 후폭풍이 남아 있습니다.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과 전문가의 정확한 타당성 조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면 십 년 가까이 벌어진 갈등은 조기에 수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신공항으로 혼란과 갈등을 부추긴 정치인들은 다시는 이런 식으로 국민을 우롱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보호구제청구 재판이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523호 법정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보호구제청구 재판이 21일 오후 2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523호 법정에서 진행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재판은 담당재판부가 인신보호구제청구 대상인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법정 출석 소환장을 발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유포됨으로써 파행의 조짐을 보였다.
이들 종업원 12명 가족들의 위임을 받아 인신보호구제청구를 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2시간의 재판 끝에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고 재판부 교체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날 재판은 2시간에 걸쳐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법정에는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이영제 판사와 국가정보원을 법률적으로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 2명,그리고 민변 소속 변호사 8~9명이 자리를 잡았다.
국정원 참고인으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정부합동신문센터) 인권보호관인 박영식 변호사가, 민변 측 참고인으로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 공민 김련희 씨가 참석했으나 12명 종업원들이 법정에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들은 별도의 발언기회없이 법정에서 나와야 했다.
담당 재판부는 개정 전부터 비공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으나 민변 변호사들이 절차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이날 오후 2시 30분 방청객의 입장을 허용한 상태에서 비공개 재판을 밝힌 후 재판을 진행했다.
이영제 판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피수용자(12명 종업원) 보호를 위해 인정하는 경우라고 판단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며 재판의 비공개 진행을 선언했으나, 민변 채희준 변호사가 개정 선언 후 비공개 진행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제동을 걸었다.
▲ 채희준 민변 통일위원장이 재판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채 변호사는 이어 “피수용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수용자 보호를 사유로 한 비공개 재판은 부당하다고 판단, 이의를 신청한다”고 밝혀 잠시 휴정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나 재판장은 “이날 심문내용에 따라 피수용자의 보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변호사들의 이의를 기각했다.
재판을 마친 민변은 법원 정문 앞과 민변 사무실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재판의 석연치 않은 점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재판부와 국정원을 성토했다.
채희준 변호사는 “이날 재판의 핵심은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들이 법정에 출석해 본인들의 진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민변은 그것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채 변호사는 “재판부는 ‘본인들이 출석을 거부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나도 그럴 생각이 없다. 오늘 모든 절차를 진행해서 종결하겠으니 별도의 보정을 기다린 다음 결정하겠다’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날 재판부가 △피수용자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해 놓고도 재판정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하면서, △그것도 피수용인의 안위를 이유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하고, △재판과정의 녹음과 속기신청을 불허하는 등의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재판진행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민변 변호인단은 재판정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서를 작성한 후 제출했으며, 재판장은 10분 가량의 휴정 후 변호인단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여 재판을 종결하고 다음 기일은 추후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이재화, 채희준, 김용민 변호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재판부의 이와 같은 주요 결정은 모두 재판 하루 전날 제출된 국정원의 답변서를 근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은 국정원 답변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변호인단도 재판 당시에는 숙지 하지 못했다며, '황당한 재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된 상황이어서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기자회견 말미에 “변호인단이 상정했던 최악의 경우를 맞았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이재화 변호사는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한 재판인 만큼 이후 재판부에서는 더욱 신중한 재판을 받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단독에서 합의부로 바뀌며, 통상 15일 정도의 시일이 걸린다.
한편, 국정원이 지난 3일 북한 식당 종업원들에 대한 보호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이날 확인되면서 이 사안이 인신보호법상 쟁점사항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용민 변호사는 국정원이 이들 종업원들을 현재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정부합동신문센터)에서 필요한 조사를 끝낸 후에도 정착교육을 위해 설립된 하나원으로 보내지 않고 계속 보호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거꾸로 이들 종업원들을 즉시 센터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 3권 ‘수학자의 삶’을 연재한다. 1권 ‘가짜 해방’, 2권 ‘찢어진 산하’에 이어진다. 1952년 대학 입학과 재학시절, 그리고 4.19혁명의 격동기에 대한 기록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친일잔재와 분단이 남긴 비극을 한 대학생의 고뇌를 통해 읽게 된다. 특히 군 복무 시기에 맞은 4.19혁명을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 게재된다.[편집자]
▲안재구 선생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조부 안병희 선생은 민족해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운동가로 밀양 지역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았다.
나의 할아버지는 청년 시절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 항일광복운동과 노농대중의 혁명운동에 헌신하셨다. 망국의 시기에 대한제국 정부의 전라남도 순찰사로 계셨던 종조부와 무관학교 시위연대 보병참위로 활동한 숙부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할아버지는 한성학교에 입학했지만 중등과를 중퇴했다.
고향을 떠날 당시 할아버지는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고 서울로 올라갔다. 집안의 노비문서를 몽땅 불태우고, 그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땅까지 나누어주고는 그 시간부로 모두 해방을 선언했던 것이다. 또한 수산으로 가서는 상투머리를 잘라 백지에 싸서 왜놈 이발사에게 주고는 두암집 어른(아버지)에게 갖다드리라고 했다. 이 때문에 집안은 물론 고향 마을 전체에 큰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근대수학교육을 받은 할아버지는 한때 측량기사로 호구지책을 마련했으나, 3.1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항일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할아버지의 항일혁명 활동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을 연구한 학자들의 기록과 일제식민지 고등계 경찰의 수사기록문서와 검찰 행정사무의 수사기록과 증거자료, 당시 동아일보 등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1924년 12월6일 창립된 사회주의자동맹회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자로서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또한 적박단(赤雹團)이란 항일테러단체에도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유학생이나 지식인 출신과는 달리 자생적인 사회주의자였다. 당시 사회주의계열 운동의 파벌로 분류하자면 서울파 계열에서 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파는 1921년 창립된 서울청년회 내부에서 김사국, 이영 등을 중심으로 해서 자생한 사회주의운동 세력으로 북풍회, 화요회, 조선노동당 등과 경쟁했던 그룹이었다. 할아버지는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의 연합을 강조했고, 또 평생을 그 원칙에서 항일혁명운동을 해오셨다. 그런 면에서 서울파가 내세운 자주적인 통일전선 노선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중후반의 사회주의운동은 극심한 종파주의로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좌절하고 실망한 할아버지는 이후 형평사(衡平社)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을 위해 1923년 4월 진주에서 결성된 조선형평사는 백정의 계급해방투쟁과 반일 민족해방투쟁이란 두 가지 투쟁을 함께 벌여나간 조직이었다. 할아버지는 조선형평사 총본부에서 발간한 잡지 <정진(正進)> 창간호(1929년 5월1일 발간)에 ‘형평운동의 정신’이란 글을 게재할 만큼 형평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당시 할아버지가 쓴 글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체 형평운동이라 함은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일을 하는지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이제 우리 동족이 조선 각지에 대개 40만명이나 있다. 조선 전 인구를 2천3백만이라 하면 2천3백만 분의 40만이라는 민족은 즉 우리 형평계급의 민족일 것이다. 하면 다 같은 조선민족이지마는 ‘백정’이니 ‘피쟁이’니 ‘갖바치’니 ‘천인’이니 하여 그 무엇이 특별한 조건이나 있는 것처럼, 왜 천대를 주며 학대를 주며 멸시를 하는가. 하고 또 우리로서는 그 어떠한 조건이나 있는 것처럼 천대와 박대에 슬픔에 신음하면서 억울한 한을 가지고도 의연히 짓밟히고 살아온 것은 무슨 이유일까?(중략)
조선 각지의 우리 계급 40만이 한 몸뚱이와 같이 되는 단결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의미로서 형평사라는 조직이 생겼다. ‘형평(衡平)’이라 함은 이 인간세상을, 이 인간사회를 저울대로 달아서 평탄하게 고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 형평사가 남병산에 동남풍이 불 듯 비온 뒤에 죽순처럼, 곳곳마다 자유를 부르짖고 평등을 요구하며 정의의 함성으로 자유를 찾자, 평등을 찾자, 행복을 찾자 하는 것이 즉 형평운동이다.”
또한 할아버지는 일제 경찰의 분열 공작과 잔혹한 고문에 굴복하고 변절하는 등 도탄에 빠진 항일혁명운동 진영에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며 허무당(虛無黨)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허무당은 러시아에서 유래된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무정부주의운동이었다. 허무당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1926년 1월4일 허무당 선언문을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당시 선언문에서는 “혁명은 결코 언어와 문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유혈과 전사의 각오가 없이는 안 된다. 합법적으로 현 질서 내에서 혁명의 가능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저능아”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여러 차례 체포, 구속된 할아버지는 신분이 노출되어 더 이상 서울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종파분열로 점철된 운동에 실망감도 커졌다. 할아버지는 결국 다시 밀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밀양에서도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1927년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연합해 결성한 통일전선 조직인 신간회에 적극 참여했다. 신간회 밀양지회에서 검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중단 없는 항일혁명운동을 지속해나갔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의 혹독하고 살인적인 폭압에 맞서 단 한 번도 적들에게 굴복한 일없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줄기차게 해방투쟁을 하셨다. 또한 억압받는 무산대중들을 위해 한 생애를 온전히 해방투쟁으로 일관하셨다. 그런 모습을 통해 내게도 대를 이어 민족해방, 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에 일관하도록, 해방투쟁의 전사로 살도록 가르치셨다.
할아버지는 왜놈들의 혹독한 사상전향공작을 끝까지 이겨내고 일제 말기에는 식민지 해방을 우리 민족의 역량으로 전취하기 위해 청년들과 함께 밀양의 북부산악지대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적의 무기를 탈취해 우리 손으로 해방을 맞이하려고 준비하셨다.
민족의 역량을 총결집해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맞이하자는 여운형 선생의 호소에 따라 밀양에서도 건국동맹 지부를 조직하셨고, 일제의 최후 발악적인 징용·징집에 반대해 산으로 들어온 청년들을 이끌고 밀양의 북부 화악산 밀림과 계곡에서 해방의 날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일제의 패망과 함께 산 속의 청년들과 밀양의 북성거리로 입성했다.
그 길로 할아버지는 겨레의 원성으로 찌든 밀양경찰서를 접수했다. 치안대를 조직해 우리 조선 사람의 손으로 치안을 회복했다. 또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밀양지부를 조직한 뒤 항일운동의 선배인 김병환 선생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할아버지는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할아버지는 환중인 위원장을 보좌하며 행정을 확보해 일제가 물러간 뒤의 혼란을 정리해나갔다. 일제의 만행을 피해 고향 땅을 떠났던 동포들이 일본에서, 중국과 동북 만주에서, 또 남양에서, 노령 땅에서 돌아오자 그들을 보살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말로 하는 애국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애국이 무엇인지, 운동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며, 무엇이 참다운 운동가의 모습인지를 할아버지를 통해서 배웠다. 이제 팔십을 훌쩍 넘긴 내가 오늘날까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것도, 또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마감해야 할 것인지도 바로 할아버지의 지난한 삶을 통해 배운 셈이다. 아직도 내 눈가에는 해방되던 날, 청년들의 무등을 타고 밀양 거리로 들어오시던 할아버지의 활짝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13살 때의 바로 그 기억이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온 것이다.
[참고자료]
虛無黨宣言書
革命을 앞에 둔 朝鮮은 不安과 恐怖로서 呻吟하고 있는 이때를 當하여 爆破 放火 銃殺의 直接行動을 主張하는 虛無黨은 奮起하였다.
目下 朝鮮은 二重三重으로 暴惡한 敵의 迫害를 受하고 一步도 前進하기에 不可能한 最後의 悽慘한 絶頂에 서 있다.
집단 탈출 북한 해외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7일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명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은 통일부가 언론에 제공한 것인데, 이 장면이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통일부도 모른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13명 모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6개월간 수용 예정…통상 1~2개월 그쳐 ‘이례적’
국정원, 통일연구원 연구자들 설문조사조차 거절…21일 법원 심리에도 불출석시키기로
중국 저장성 닝보 소재 북한식당에서 4월 초 ‘집단탈북’해 현재 국가정보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합동신문센터)에 70여일째 머물고 있는 남성 지배인 1명과 여성 종업원 12명을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일반적인 탈북자들의 정착지원 과정과 다른 이례적인 조처다. 국가정보원은 또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 소속 북한인권 연구자들의 이들에 대한 면담 신청을 관례와 달리 거절하고, 집배원의 법원 관련 서류 전달마저 두차례 거부하는 등 철저하게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20일 “13명 북한식당 종업원 등을 하나원에 보내지 않고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6개월간 수용하기로 했다. 정착교육도 보호센터에서 받는다”고 밝혔다. 국정원과 수사기관은 탈북자를 최장 6개월까지 보호센터에서 합동신문할 수 있지만, 이는 위장탈북이나 간첩 혐의 등 의심스런 부분이 많을 경우다. 대개 탈북자들은 1~2개월 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은 뒤 통일부 산하 하나원에 보내져 12주간 남한 정착 교육을 받게 된다. 이번 13명은 이미 정부가 ‘집단탈북’이라고 공개했기에 합동신문을 70일 넘게 벌일 까닭이 없다. 하나원 관계자는 4월 하순께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은 6월 초 보호센터에서 나와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을 보호센터에 6개월간 수용하는 것은, 이례적 ‘집단탈북’ 공개에 따른 ‘기획탈북’ 의혹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 접촉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예컨대 국정원은 이달 초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의 이들 13명에 대한 설문조사 요청도 거절했다. 통일연구원은 격주로 보호센터 탈북자들을 면담조사하는 등 연간 200명가량을 조사해왔다.
앞서 국정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법원에 접수한 인신구제청구서 부본을 법원 명령에 따라 집배원이 여성 종업원 12명한테 직접 송달하려는 시도도 5월30일 두차례 거부했다. 담당 집배원은 이튿날 국정원 연락을 받고서야 청구서 부본을 이들 12명한테 전달할 수 있었다. 이때도 국정원 관계자는 집배원한테 ‘종업원들과 관련해 함구하라’고 요구했다. 국정원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비공개 인신보호구제 심리에도 13명을 출석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13명 대신 소송대리인을 법정에 참석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인신보호구제 관련 소송대리를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 3명한테 맡겼다.
정부와 국정원은 이들을 비공개 법정에조차 출석시키지 않는 이유로 북한 가족들의 ‘신변안전’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탈북자 비공개 원칙을 스스로 어기고 이들의 ‘집단탈북’을 즉시 언론에 공개한 사실 등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자신이 탈북자이기도 한 한 탈북자지원단체 관계자는 “입국 3개월이 돼가는 시점까지 이들을 비공개 법정에조차 내보내지 않는 것은 기획탈북 의혹을 감추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은 20일 핵추진 잠수함 미시시피호를 비롯한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핵보복 대응'을 거론하며 위협했다.
20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날강도 미국의 가증되는 핵위협 공갈은 정의의 무자비한 핵보복 대응을 유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화는 미시시피호 한국 입항, 미국 민간 정보회사의 북한 정밀타격 시나리오 공개 등을 거론하며 "가증되는 핵위협 공갈은 우리의 자주권과 최고이익을 침해하고 이 땅에 무서운 핵재난을 들씌워보려는 미국의 가장 포악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연장"이라고 비난했다.
담화는 이어 "핵전쟁은 결코 별다르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며 "투입된 핵타격수단들이 선정된 대상물에 대한 핵공격태세에 진입하면 그것이 곧 핵전쟁으로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담화는 "우리 군대는 'B-52H' 전략폭격기가 이륙하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와 핵동력잠수함이 발진하는 해상침략기지들을 포함해 미국의 대조선 침략 및 병참보급 기지들까지 정밀타격권 안에 잡아넣은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담화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소중하다. 조선반도의 긴장완화도 우리의 변함없는 지향이고 요구"라면서도 "우리는 평화를 구걸과 동정으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평화수호방식은 평화가 소중할수록 그를 해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곳이 어디든, 그가 누구든 즉시적이고 무자비한 우리식의 앞선 선제타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는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논평에서 "미국 전략자산들의 투입은 공화국의 안전과 지역의 평화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라며 "미국이 핵위협을 끊임없이 가증시키고 있는 조건에서 단호하게 맞서나가는 것은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명백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대화에도 물리적인 조치에도 다 준비되어 있다"면서 "오늘날 조선반도 정세의 주요 변수는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나오는가 하는데 많이 달려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이후 국방종합대학 현지지도 외에는 민생경제분야에 대한 현지지도에 집중하고 있으며 군사력을 과시하는 일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최신형 공격형 핵잠수함 미시시피호가 한반도에 나타나자마자 북의 언론들은 일제히 경고성 논평과 담화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 LA급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신형 공격형 핵잠수함 미시시피호, 핵순항미사일을 수십발 장착하고 다닐 수 있는 이 전략잠수함 한 척만으로도 북의 주요도시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다. 북은 이런 미군 전략병기가 한반도 주변에 나타난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잠수함에서 북에 미사일을 발사할 징후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북이 먼저 핵미사일로 미군 거점을 모조리 초토화하겠다고 연일 경고하고 있다.
특히 이번 보도에서는 핵전쟁 발발이 특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발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언급한 점은 매우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이 북을 핵으로 공격할 징후가 명백하다고 판단한다면 북은 먼저 핵선제타격을 가할 단호한 결심을 굳힌 상태라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최첨단이라고 자랑하는 스텔스 핵전략폭격기 B-1, 가공할 무장을 탑재하는 핵전략폭격기 B-52, 수십발의 핵순항미사일을 장착하고 다니는 핵잠수함,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핵항공모함 전단 등 전례없는 핵타격장비들을 동원한 무력시위를 통해 핵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북에 경고를 종종 전하고 있다.
경고와 실제 공격의 차이를 북이 어떻게 구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구별이 결코 명백할 리가 없다.
전쟁사를 살펴보면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중동전쟁에서 훈련을 가장하여 무력을 최전선에 슬금슬금 배치한 후 불의에 선제타격을 가해 전쟁이 발발했었던 일 등 훈련과 실전이 연결되었던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북이 본격적인 핵보유국의 길로 나아간 최근 몇년간 미군이 훈련에 동원하는 무장장비는 언제든 전쟁을 바로 진행하고도 열번은 더 남을만한 전략적이고 방대하기 그지없다. 그것도 매년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미군의 그 위험천만한 연례적인 전쟁훈련은 앞으로도 계속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북이 이미 한반도 주변 미군 전략거점을 타격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다 갖추고 그 성능을 계속 개량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도 언제든 미군에게 선제 핵타격을 가할 준비를 끝낸 상황이며 그 능력을 계속 강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북은 미군의 움직임을 공격징후로 판단한다면 주저없이 핵선제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유고의 시민들도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연평도 포격전 직후 우리 국민들도 처음엔 방송을 의심했었다.
지금도 북의 인민군 전략로케트부대가 일제히 한반도 미군부대와 태평양 미군 거점에 대해 일제히 핵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야 몰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이 나라 전문가들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나라 전문가들과 당국자들도 미군 폭격기 한 대가 뜨면 한 나절 안에 북의 주요 레이더 기지를 완전히 초토화한 후 미군기들이 마음 놓고 북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 땅꺼지게 하고만 있다.
TV조선 시사프로그램 ‘강적들’에서는 구의역 사고를 다루면서 ‘서울메트로 노조의 압력 못 이겨 부도덕한 회사 만든 박원순 시장도 사고의 책임 있다’라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박 시장이 강성노조의 압력에 굴복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진짜 주범은 귀족 노조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구의역 사고의 책임이 박원순 시장과 노조에 있다는 이 발언이 맞는지 알기 위해서는 누가 외주화를 시작했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너희들이 지난 2008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단계적으로 (인력을) 20% 줄이겠다는 것이 기본계획이다. 비능률을 줄이고 서비스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사람과 업무를 함께 분리하는 민간위탁(분사·分社) 방식을 택했다”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
2008년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은 2010년까지 전체 인력의 20.3%인 2,088명을 줄이고, 민간위탁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노조는 김 사장의 인력 감축과 민간위탁에 반발해 총파업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은 언론에 ‘노조가 휴가와 대체 근무 수당을 챙겨가고 있다’면서 도덕적 해이를 주장했습니다. 노조는 ‘사측이 외주화, 위탁 과정에서 전직 고위 인사와 서울시 낙하산 인사에 특혜를 줬다’며 ‘이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려고 편법으로 정년까지 연장하며 시민 재산인 공기업을 갉아먹고 있다’고 맞섰습니다.
▲2008년 9월 서울지하철노조 대시민 광고, 서울시와 공사의 외주화 강행 정책이 ‘낙하산 인사와 퇴물관료들의 이권 뜯어먹기’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
이명박 정권은 ‘공공기관 선진화 대책’을 외쳤고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창의혁신 시정’이라는 명목으로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이 추진한 편법, 탈법적 분사를 승인했습니다. 지하철역 유실물 센터, 구내운전, 전동차 경정비, 모타카·철도장비 운영, 스크린도어 관리는 외주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반대했던 노조 간부 70여 명이 해고, 직위해제를 140여 명이 고소, 고발을 당했습니다.
현재 서울메트로 경영진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며 사죄하고 사표를 내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직원에게도 ‘혁명’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노동자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구의역 사고 이전에도 벌어진 각종 안전사고와 지하철 노동자 자살 등의 근본적 원인은 2008년부터 진행된 ‘공기업 경영 효율화 정책’에 의한 구조조정이었습니다.
메피아와 지하철 문제의 책임은 박원순 시장과 노조가 아닌 서울시 지하철 외주화와 메피아 탄생의 주범인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 강경호, 김상돈, 음성직 전 사장입니다. 이들을 조사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박원순 시장이 밝힌 안전업무 직영화, 그러나 인력부족은 여전히 존재’
▲6월 16일 박원순 시장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대책 기자회견에서 밝힌 안전 업무 직영전환 ⓒ서울시
지난 6월 16일 서울시는 ‘지하철 안전 업무 직영 전환 및 메피아 근절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구의역 사고 이후 드러난 안전 분야 외주화 및 메피아 특혜에 대한 근본대책이었습니다.
서울시는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①PSD(플랫폼 스크린 도어) 유지보수, ②전동차 경정비 ③차량기지 구내운전, ④특수차(모터카 및 철도장비)운영, ⑤역사운영 업무 등 5개 분야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자회사인 도시철도ENG가 담당하는 전동차 정비, 궤도 보수 업무를 모두 직영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밝힌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외주화 문제를 직영으로 하겠다는 발표는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력부족에 대한 대책이 더 보강돼야 합니다. 외주 현업 종사자는 776명인데 60세 이상과 전적자를 제외하면 334명만 현장에 투입됩니다.
2인 승무제를 하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1인 승무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도시철도의 PSD도 인력부족으로 점점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전업무 직영화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지하철 노동자의 인력 충원이 보강되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안전사고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정규직, 인력 충원 발목을 막는 ‘총액인건비제’
인력을 더 충원해야 하는 문제를 박원순 시장 혼자서 해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총액인건비제’라는 제도 때문입니다. 총액인건비제는 ‘인력과 예산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조직의 성과를 향상하기 위하여 각 시행기관이 당해 연도에 편성된 총액인건비 예산의 범위 안에서 기구․정원, 보수, 예산의 운영에 관한 자율성을 가지기는 제도’를 말합니다.
각 시행기관이 자율적으로 인력과 예산을 운영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는 제도이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실질임금을 삭감하면서 정원 감축을 단행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쉬운 해고’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총액인건비 기준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율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통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무기계약직을 늘리게 되면 총액인건비를 초과하게 됩니다. 기획재정부의 방침인 총인건비 예산의 3.0% 이내 증액 인상 방침을 어기게 됩니다. 교부세가 삭감되는 불이익을 받습니다. 예산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박원순 시장이 직영으로 전환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집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이 존재합니다. 국민은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 지속적인 안전을 원합니다. 그러나 언론과 정부는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원인이라고 주장해 국민을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2008년 서울지하철노조는 ‘오세훈 시장의 계획 속에 벌어진 일인 만큼 서울시와 직접 교섭하고 싶다’고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노사 문제’라면서 한편으로는 ‘정부의 공기업 개혁을 서울시가 선도하겠다’며 서울메트로에 압력을 행사하며 개입했습니다.
MB의 공기업 선진화를 오세훈이 앞장서서 따르며 강행한 2008년 서울지하철 사태가 2016년 구의역 사고로 나타났습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또다시 이런 범죄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진짜 범인을 우리는 찾아내야 합니다.
울산공항은 오히려 2013년 92억 원이었던 적자 폭이 지난해에는 100억 원으로 벌어졌다. 포항과 사천공항은 적자가 소폭 늘거나 줄어드는 제자리 수준이었다. 이는 KTX 등 내륙 교통망의 발달로 국내선 이용객이 크게 줄어드는 등의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데 있다. 정부가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공항공사의 특성상 지방공항들의 적자는 정부의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성 없던 지방공항들, 모두 장밋빛이었다
▲ 한국공항공사가 밝힌 2015년 공항별 경영수지. 공사가 운영하는 14개 지방공항 중 11개가 적자를 기록했다. 11개 지방공항의 적자를 모두 합하면 617억 원에 이른다.
호남 지역의 허브공항을 꿈꿨던 전남 무안국제공항이 기록한 지난해 적자는 89억 원. 120억 원의 운영비용이 들었지만 고작 30억 원밖에 벌어들이지 못해 생긴 손해이다. 이 무안공항의 경제성 타당성 조사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98년 합격점을 받은 무안공항의 경제성은 이후 편익·비용 분석항목으로 계상할 수 없는 비목을 계상해 경제성 타당성을 돋보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878만 명을 예상한 무안공항의 이용객은 실제 10만 명 남짓에 불과했고, 166만 명을 예측한 강원도 양양공항도 수요는 뚜껑을 열자 2만 명에 머물렀다.
울진공항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1000억 원이 넘게 든 울진공항은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어 지금은 비행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다. 울진공항 건설에도 태백산맥 넘어 양양·봉화군 주민들까지 울진공항을 이용할 것이라는 뻥튀기 경제성 타당성이 밑그림이 됐다. 이를 두고 AFP는 "1억4000만 달러를 들여 지은 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다"며 울진공항을 2007년 황당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영남권 신공항 역시 2011년 국토해양부 용역에서는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100점 기준) 밀양은 39.9점, 가덕도는 38.3점의 평가를 받아 2개 후보지 모두 공항 입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당시 정부의 판단이었다.
2011년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자 신공항 유치 희망지들은 이번에 기적에 가까운 공사비를 써냈다. 부산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려면 6조 원이 들 것이라 주장하고 있고, 밀양은 4조 6천억 원이면 활주로 2개짜리 공항이 만들어진다고 홍보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서병수 부산시장은 3조 원의 예산만으로 공항을 짓겠다고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나머지 3조 원은 민자를 유치해서 보충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는 정부의 셈법과는 차이가 있다.
2011년 정부가 파악한 2008년 기준 공항 건설 비용은 9조 5천억 원이었고, 2017년 이후 실제 사업에 들어갈 경우를 예상한 금액은 13~14조 원 가량이다. 무안과 양양공항을 30~40개 지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사업에 들어갈 경우, 5조 8천억 원이면 만들 수 있다던 고속철도가 실제 20조 원이 넘게 쓰였던 것처럼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걱정이었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공항이 현재대로 가덕이나 밀양으로 됐을 때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단언했다. 허 교수는 "신공항으로 영남권 항공 수요가 모두 몰린다는 걸 가정하지만 추정된 수요가 정말로 신공항을 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는 "현재의 공항 건설은 정부가 100% 투자하고 운영까지 떠안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면서 "정부가 책임을 지니 지역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어 공항 유치에 뛰어드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을 기획한 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는 영남권 신공항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국제선 항공 노선과 승객이 확보되느냐인데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항공교통의 허브화 추세를 볼 때 미래도 불투명하고 국내경쟁 측면에서도 육상교통의 속도와 편리성을 볼 때 국토가 좁은 우리의 경우 항공교통의 경쟁력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미 국내 다른 공항건설에서 입증되었듯이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는 공항건설은 다다익선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국가전략과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평생에 걸쳐 독점 자본과 싸우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온 한 상원의원이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후보로 독자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출마의 변은 "미국 민중의 정치, 경제 생활을 지배하는 독점 자본의 결합된 힘을 깨부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천연자원과 철도를 공공 소유로 만들고 부자 증세를 단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 선거가 아니라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정치 개혁을 역설했고, 군비를 대폭 축소하자고 외쳤다.
그 동안 기성 양대 정당에 실망했던 많은 이들이 제3후보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노동조합총연맹이 조직적으로 지원했고, 중서부에서는 부채로 신음하는 농가들이 지지하고 나섰다.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던 사회주의자들도 이번에는 한 목소리로 제3후보 주위에 결집했다. 제3후보는 공화당, 민주당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강 구도를 만들었다. 성급한 이들은 미국 정치에 드디어 공화당-민주당 양당 구도를 흔들 도전 세력이 등장한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한 세기 전의 '샌더스', 로버트 라폴레트
안타깝게도 이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야기는 아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 돌파구가 열리길 갈구하던 세계인의 바람과는 달리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낙마했다. <프레시안> 지면에 이미 썼던 것처럼(☞관련 기사 : 샌더스 열풍? 제국의 장벽은 높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이 월스트리트 정당의 본분을 저버리지 않도록 보장하는 장치들은 강력했다.
그렇다고 샌더스가 위의 이야기처럼 독자 후보 출마를 결행할 것 같지도 않다. 샌더스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클린턴 선거 운동에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샌더스 진영의 강경파 사이에서도 대선 이후 신당 건설을 주장할지언정 아예 이번 대선에 독자 출마하자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1964년 대선의 배리 골드워터(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선구자 격이었던) 이후 가장 문제적인 극우파이기 때문에 독자 출마는 말도 꺼내기 힘든 형편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제3후보'는 실은 샌더스가 아니라 한 세기 전 그의 선배다. 1924년 대선에 '진보당(실제 창당은 하지 않은 종이 정당이었다)'이라는 제3당 명의로 출마한 로버트 라폴레트 상원의원이다.
라폴레트는 위스콘신 주지사를 역임하고 상원에서 20여 년간 위스콘신 주를 대변한 원로 정치인이었다(1924년 출마 당시 69세). 본래 당적은 공화당이었다. 한데 이 시절의 공화당은 지금 공화당하고는 좀 달랐다. '공화당은 보수파, 민주당은 개혁파'라는 대립 구도는 뉴딜 이후에 뿌리 내린 상식이다. 20세기 벽두에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에도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혁신주의자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라폴레트는 이러한 혁신파 공화당원 중 한 사람이었다. 독점 규제, 노동권 보장, 여성 참정권 등을 위해 싸워온 그의 정치 역정은 이미 전설이 돼있었다. 그는 이름보다는 '싸우는 밥(로버트의 애칭)'으로 통했다.
라폴레트는 1924년 대선이 미국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혁신주의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양당 안에서 사회 개혁에 진력했지만 부와 권력은 더욱더 월스트리트에 집중되기만 했다. 온전히 노동자, 농민의 입장에 서서 독점 자본과 대결할 새 정당이 필요했다. 라폴레트는 정치 인생 마지막을 이 과업에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대선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라폴레트가 출마를 결행하자 순식간에 진용이 꾸려졌다. 하원에 한 석의 의석을 지니고 있던 미국 사회당은 오랫동안 재창당을 염원하고 있었다. 1901년 창당 이후 20년 넘게 활동해온 사회당은 미국 정치 지형에서는 영국 노동당처럼 노동조합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 진보 정당을 새로 창당해야만 공화당, 민주당과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일부 젊은 노동조합 간부와 시민운동가들을 모아 '진보 정치 활동을 위한 회의(진보 회의)'를 꾸렸다.
마침 분위기도 좋았다. 중서부 곳곳에서 '농민-노동당'이라는 공통 당명을 내걸고 노동자와 소농의 지지를 받는 주차원의 정당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진보 회의에 속속 모여들었다. 진보 회의는 라폴레트의 출마 선언을 당연히 두 손 들어 환영했다.
더 중요한 것은 노총(전미노동조합연맹, AFL)의 결합이었다. 실리주의자 새뮤얼 곰퍼스가 이끌던 당시 미국 노총은 사회당의 바람과는 달리 노동자 정당 창당에 동조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민주당 정부와 협력하는 데 맛들인 노총 집행부는 섣불리 영국 노동당식 실험에 나서서 기성 정당들과의 밀월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라폴레트 운동은 사정이 달랐다. 젊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진보 회의를 통해 라폴레트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한데다 이 정도 대중적 흐름이라면 유력한 독자 정당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싶었다. 노총은 이례적으로 라폴레트 후보에 대한 지지, 지원을 천명했다.
1924년 대선에서 라폴레트 후보는 438만 표, 16.6%를 획득했다. 정치 거점인 위스콘신 주에서는 1위를 했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투표용지에 '사회당 후보'로 나왔는데도 2위를 했다. 미국 역사상 진보 좌파 성향의 제3당 후보로서는 전무후무한 득표였다.
다음해인 1925년에 사회당은 대선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 정당을 창당하자는 안건을 진보 회의에 제출했다. 그러나 대선 기간과는 달리 노총 집행부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들이 결단하도록 만들기에는 500만 표로도 부족했나 보다. 사회당이 제출한 안건은 진보 회의에서 부결됐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라폴레트 의원이 노환으로 사망했다. 대선 운동의 피로가 노(老) 정치가의 건강을 급속히 악화시킨 것이다. 라폴레트 없는 진보 회의에는 이제 더 이상 어떠한 구심점도 없었다. 미국에도 강력한 진보 정당이 등장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이렇게 무산되고 말았다.
기존 대중운동의 혁신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사회당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지만, 이들의 진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새 정치 세력 구축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은 분명 노동조합이었다. 영국 노동당이나 캐나다 신민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운동이 뒤늦게라도 독자 정치 세력화에 나선다면 진보 정당이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1924년 라폴레트 선거운동으로 진보 정치의 성장 잠재력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선택 때문에 진보 정당 없는 정치 지형이 굳어졌다. "미국 노동계급과 민주당의 불임의 결혼"(마이크 데이비스)이 시작됐다.
라폴레트 바람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2015년에 미국에서는 돌연 샌더스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클린턴의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과 함께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샌더스는 대선 후보 경선을 접으면서 오히려 "정치 혁명은 계속된다"고 부르짖었다. 대선 본선에서는 클린턴의 당선(이라기보다는 트럼프의 낙선)을 돕는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민주당 내부 개혁 투쟁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독자 진보 정당의 길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기대가 크다. 하지만 자꾸 라폴레트 운동의 기억이 떠오른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던 그 때의 악몽을 과연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샌더스 바람을 출발 삼아 미국 현실 정치 안에 진보 세력이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누군지는 분명하다. 이번에도 이는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된 대중운동이다.
물론 샌더스 운동에는 이미 나름의 사회적 토대가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질서에 회의를 품게 된 청년층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개 기성 대중 조직들 바깥에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들 조직에 비판적이며 자기 세대에 익숙한 문법에 따라 새로운 대중운동을 표방한다. 스페인에서는 이런 흐름이 포데모스로 나타났고,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대표 당선으로, 미국에서는 샌더스 돌풍으로 나타났다.
21세기의 세계 상황에 더없이 어울리는 지지 기반이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샌더스 진영이 맞부딪힌 두 개의 거대한 장벽에서 이게 드러났다. 두 장벽이란 바로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지역 사회)다. 물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 안에도 샌더스 지지파는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엘리트들과 함께 '불임의 결혼'을 이어가는 지도부 아래서 다수는 클린턴 지지층으로 남았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두 장벽의 위력이 이러했다면, 이후 일상 정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싸우든 새 정당을 건설하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를 뒤흔들고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샌더스 운동은 청년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라폴레트 운동이 갇혔던 숙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란 지난 세대의 대중운동이 시민 사회에 남겨놓은 진지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들은 변혁의 진지라기보다는 월스트리트를 대변하는 민주당 주류의 진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바깥에서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은 이 오래된 진지들을 통째로 적으로 돌리거나 우회해서는 결코 미국 사회 전체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없다. 비록 수고롭더라도 이들 기성 대중운동을 혁신해서 새 세대 운동과 연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100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어떻게든 노동조합(과 흑인 공동체) 진영을 변화의 정치 쪽으로 끌어당겨야 하는 것이다. 샌더스 바람이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은 오직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게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난 10일 정부는 유엔군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해군과 해경으로 편성한 민정경찰(Military Police)을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들여보냈다.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정전협정 발효 이후, 이 지역에 남측 선박이 진입한 사례는 1997년 북측 양해 하에 '유도로 떠내려간 소 1마리 구출작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민정경찰 진입에 대해서는 “63년 만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군사분계선(MDL), 한강하구 중립수역, 그리고 북방한계선(NLL)
▲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정부가 작성한 지도. 붉은색 칠해진 지역이 '한강하구 중립수역'. [자료사진-통일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윌리엄 해리슨 미국군 중장과 남일 북한군 대장이 각각 유엔군사령관, 북한 및 중국군 사령관을 대신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육상에 ‘휴전선’이라 부르는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그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 후방으로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했다. 무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구역인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한 것이다. 이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각각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설치했다.
정전협정은 또한 육상 군사분계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해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한강하구 지역을 ‘중립수역’으로 설정했다. 좁은 곳은 폭이 약 900m인 강을 사이에 두고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어,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서해에는 훗날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졌다.
국제법적으로 바다와 달리 하천에는 자유항해가 보장된다. 특히, 접경지역 하천에는 인접국들 간 무장충돌 방지를 비롯한 안보 우려 해소, 민간선박의 자유 항해를 보장하는 균형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 정전협정 제1조 5항과 그 후속합의가 탄생한 배경이다.
정전협정 제1조 제5항은 다음과 같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부분의 한강하구의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규정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해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지도상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도 서도면 불음도까지 67km 구간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이다.
정전협정 제1조 제5항에 따라, 양측 군사정전위는 1953년 10월 3일 제22차 회의에서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을 채택했다. 1주일 뒤 발효된 이 규칙은 육상 비무장지대(DMZ)에 적용되는 규정을 중립수역에 준용하여, 군사정전위의 허가 없이 군용 선박과 병력, 무기.탄약을 실은 민용 선박 출입을 금지했다.
양측 모두 중립수역에서 쌍방 100m까지 진입할 수 없게 하고, 군사정전위원회에 등록한 선박에 한해서 중립수역 중앙으로 항해할 수 있게 했다.
순찰 목적으로, 양측이 각각 최대 4척의 민정경찰용 선박, 24명을 넘지 않는 민정경찰 인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상대편 만조 때 땅과 물이 경계를 이루는 선을 기준으로 100m 안으로의 진입은 금지했다.
중국어선 단속 근거는 군사정전위 ‘사전등록’
정부가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바로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이다.
△선박이 중립수역에 들어오려면 군사정전위에 등록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고, △대부분 국적 표시 깃발을 달지 않았으며, △야간활동 금지 조항도 어겼다는 점을 들어, 중국 어선들을 ‘무단진입 선박’으로 규정하고 민정경찰을 투입해 단속한 것이다.
문제는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공동기구로 출범했던 군사정전위원회가 현재는 이름뿐이라는 데 있다.
지난 1990년 2월, 한.미가 미군 장성이 맡아오던 유엔사 측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을 임명하자 북한은 군사정전위에 불참하고 별도로 판문점대표부를 출범시켰다. 중국 측도 군사정전위에서 탈퇴해 정전협정의 세 축 중 하나가 무너졌다. 이후 정전협정 사안은 북측 판문점대표부와 유엔사 군사정전위, 또는 북.미 군사회담 틀에서 드문드문 논의됐다. 북한이 지난 2013년 3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에는 그 틀마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중국 어선의 ‘사전등록’을 받아줄 적법한 기구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중립수역에 자국 어선을 들여보내기 위해 중국이 북한을 건너뛰고 유엔사 측 군사정전위에 등록 신청을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중국은 유엔사, 북한과 함께 정전협정의 당사자다.
한.미는 왜 지금 중립수역에 군.경을 들여보냈나?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에도 이 수역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이어지자 외교적 조치의 한계를 인식해 민정경찰을 운용하기로 한 것”이라는 정부 설명이다. 또, 유엔사 군사정전위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미리 북측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20일 현재, 북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가 “한강하구에서 중국어선이 완전히 철퇴될 때까지 작전을 펼칠 계획”이어서, 향후 북측이 대응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번 작전에 나선 한국 정부의 처지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다만, 미군 장성이 사령관으로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63년 만에 민정경찰 작전을 승인한 배경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우선, 한강하구를 비롯한 서해 일대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DMZ나 NLL과 마찬가지로, 한강하구에서 유엔사의 최우선 임무는 우발충돌 방지다. 유엔사가 63년 간 이 지역에 군.경을 들여보내지 않은 이유다.
▲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사진-청와대]
최근 변화라면, 지난 4월 30일 빈센트 브룩스 육군대장이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으로 취임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부임 전에 태평양 육군사령관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아.태 재균형’을 이행해온 대표적인 인사다.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태평양사령부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방안을 입안해온 그가 ‘중국어선 단속’이라는 명분에 본능적으로 이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중국어선을 단속한 시점(6.10)에도 눈길이 간다.
9일 새벽, 중국 호위함 1척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접속수역에 진입했다. 미국의 ‘아태 재균형’에 보조를 맞춰 남중국해 문제 개입을 확대하던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중국에 허를 찔린 것이다. 그 다음날 브룩스 유엔군사령관은 서해와 인접한 한강하구에서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작전을 승인했다. 무려 63년 만의 일이다.
성남시장 이재명이 지난 6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한 단식투쟁을 열하루 만인 17일 오전에 끝냈다. 그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 밥줄을 끊으려 한다면, 나도 끊겠다!”라는 글이 적힌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는 거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살리고 / 노무현 대통령이 키우고 / 박근혜 대통령이 죽이는/ 지방자치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곁들였다. 이재명은 박근혜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지자체들에 교육비니 기초연금제니를 떠넘기고 약 4조7천억원을 뺏어갔다. 정부도 인정하는 액수고 들려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전국의 226곳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220곳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바로 부도가 나는 상황이다. 남아 있는 6곳이 경기도의 수원, 화성, 고양, 용인, 과천, 성남이다. 여기는 정부 보조를 전혀 받지 않고 자체 세입만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6곳에서 5천억원을 뺏어서 다른 지역에 나눠주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은 이재명의 이런 주장에 대해 설득력 있는 변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권 30개월이 다 되어 가는 현재 국민경제가 절망적 침체에 빠져 있는 마당에 기껏 시도한다는 것이 6개 도시의 세입을 빼앗아 나머지 220개 지자체에 나눠주는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니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의 단식에 대해 정부쪽이 보인 반응은 행자부가 “2014년 1월 6일부터 2016년 6월 30일 사이의 특정 날짜를 지정해 이재명의 일정 내역을 제출하라”고 성남시 감사관실에 요구한 것뿐이었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일정을 내놓으면 내 90일의 일정도 내놓겠다”고 응수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68년이 가까워지기까지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단식투쟁을 벌인 지자체장은 이재명이 처음일 것이다. 그가 제기한 문제도 민주제의 근간들 가운데 하나인 지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아주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극우보수언론과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의 단식투쟁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일부 진보적 매체들만이 보도와 논평을 내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싸움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야권의 정치인들이 그를 찾아 응원하고 격려했다.
이재명은 ‘입지전(立志傳)적’이라는 상투적 용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투사’이자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그의 성장 과정 자체가 한국사회 소외계층의 고통과 수난을 상징하고 있다.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헌정을 뒤엎고 정권을 빼앗은 지 3년 뒤인 1964년에 태어난 이재명은 어린 시절부터 지옥 같은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했다. 그의 부모는 경북 안동의 산꼭대기 아래서 화전을 일구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 성남으로 올라온 뒤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를, 어머니는 시장 화장실 문에서 ‘요금’을 받는 일을 했다. 그러니 5남 2녀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부모와 함께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소년 이재명은 야구 글러브 공장에 다니다가 왼쪽 팔목뼈 하나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해 지금도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그는 마음을 다잡은 뒤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에 ‘월급’을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6월항쟁 전 해인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 글의 제목을 “더 많은 ‘이재명’이 필요하다”라고 뽑은 까닭은 초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자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밝은 기운을 안겨주고, 이명박근혜 정권이 숨통을 조아버린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데 앞장설 정치지도자를 갈망하는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지방자치 행정가로서, 정치인으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그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전임자인 이대엽(연기자 출신, 한나라당원)이 8년 동안 시장을 하면서 파탄 상태에 빠트린 재정과 운영을 빠르게 바른 궤도에 올려놓았다. 2014년 선거에서 성남시의 보수적 지역인 분당에서조차 압도적 지지를 받아 시장에 재선된 이재명은 청년 배당, 무상 산후조리, 무상교복 지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극우세력과 보수언론이 ‘좌파’라고 공격해도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내년 12월에는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권과 야권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대권주자’ 명단에 올라 있고, ‘경마 중계방송’ 식으로 보도되는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는 수시로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이재명은 지난 4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정치BAR-라이브톡톡’)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사실상 공식으로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마했을 때) ‘웃기네’ 정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야지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 나오면 한겨울에 뛰쳐나온 개구리 신세가 된다.” 그는 지난 1월 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선 관련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대통령,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안 되니 못하는 것 아닌가? 저 놈 대통령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3% 생겨났다. 하지만 (대권은) 주마가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민심의 문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5% 미만의 지지율에서 시작해 클린턴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수십년 동안 추구하고 실천해온 ‘민주사회주의적 가치와 정책’을 미국의 대중에게 더 알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경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 기득권 체제가 너무 강고하다. 그들이 볼 때 나는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이고 너무 원론적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클린턴 지지자들도 샌더스에 대해이와 비슷한 우려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그가 제시하는 정책과 이념은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저 후보야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이라는 인식을 주권자들에게 심어주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저런 장점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의 대통령선거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수구보수적 체제가 영구화되다시피 하느냐, 그보다 진취적이고 결단성 있는 후보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민주주의와 민생을 살리고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터 통일의 길을 열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야권에서 이재명 같은 정치인들이 선의의 경쟁에 더 많이 참여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루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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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경제협력사업 중단에 따른 소실보상에 관한 특별법안 토론회가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익표 더민주당 의원 주관으로 진행됐다. [사진제공-홍익표 의원실]
앞으로 기업의 귀책 사유없이 정부 정책의 변화로 남북경협 사업이 중단되거나 폐쇄되는 경우 헌법 제23조 제3항의 취지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는 특별법의 제정과 함께 그 내용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대리하고 있는 김광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6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국회의원이 주관한 ‘남북경제협력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안 토론회’에서 앞으로 재개될 남북경협사업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이 같은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경협사업 중단이 안보상의 이유로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손실을 입은 기업 등에게는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미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서도 특별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경협중단으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을 근거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지만 헌법 제23조 제3항이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경협사업 중단조치로 인한 재산권 사용제한으로 손실이 발생한 만큼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해 근거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더욱이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를 법적 근거없이 통치행위로 했다면, 보상 역시 별도의 법률근거가 없더라도 통치행위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업 입장이라고 논박했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대해 정부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결정”이고 “긴급명령으로 한 게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에 다른 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5.24조치 때도 그랬다.
김 변호사는 정부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1996년 “통치행위를 포함한 모든 국가작용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통치행위도 당연히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며, 다만 당해 통치행위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이 명백하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사법적 심사가 자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반박했다.
또 경협 중단 조치는 대통령의 헌법 제76조에 따른 긴급재정경제명령 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4항에 따른 협력사업 취소 또는 정지에 법적근거를 두고 발동해야 했지만 불가피한 경우 사후 국회 보고후 승인, 청문 절차 등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하자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5.24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최근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한 국가배상을 부정하는데 대해서는, 당시 대법원이 개성공단에 관한 한 5.24조치로 인해 신규 진출과 투자 확대만을 금지하는데 그쳤지 경영활동 전면 중단을 포함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이번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물자, 시설 또는 권리를 징발하는 경우에도 징발법 제19조 및 제21조에서 ‘시가’를 원칙적 기준으로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 계엄법 제9조의 2에서도 손실이 교전 상태에서 발생한 경우가 아닌 한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이에 대해 유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도 헌법 제23조 제3항을 근거로 국가는 공공필요에 따라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희생된 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하고 그 보상의 근거가 되는 법률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경협 중단을 야기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남북경협 중단 자체가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며, “남북경협 중단 결정이 명백하게 법률을 위반했다는 점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국가배상법상의 손해배상을 통하여 남북경협 중단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남북경협 중단으로 인한 손실 보상은 헌법 제23조 제3항에 따른 손실보상에 따라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보상의 근거가 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한 보상’에 충실한 입법이 되기 위해서는 공용수용 및 재산권 제한으로 인한 손실 보상에 관한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의 보상 체계를 참조하여 특별법을 제정하되, 남북경협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손실보상 항목과 보상 내용을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 이날 논의된 특별법은 기업의 귀책사유없이 정부 정책의 변화로 남북경협사업이 중단되거나 폐쇄되는 경우 그 절차를 규정하고, 헌법 취지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사진제공-홍익표 의원실]
이날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이사는 지난 2월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로 인해 기업들은 심각한 재산상 피해를 입었지만 이 피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보니 정부의 지원은 실제 기업의 피해규모와는 상관없이 예산 범위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개탄했다.
김 상무는 2008년 금강산관광 전면 중단으로 인한 금강산관광지구 투자기업의 피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이외 내륙투자기업들이 5.24조치로 인해 입은 피해, 그리고 2013년 개성공단 잠정 중단으로 인한 기업의 피해 당시에도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논의됐으나 번번이 정부 여당의 반대로 좌절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내륙지역 투자기업과 임가공·교역업체를 대표해 김한신 ㈜G-한신 대표는 “그나마 개성공단 사업은 여론이 무섭고 총선도 있으니 보상·배상을 지원하겠다고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지만, 약 1,100여 기업(내륙투자 49개사, 교역·임가공 1,048개사)은 8년 동안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하고 관심 밖의 국민으로 치부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정부가 지금까지 남북경협 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에 대해 단 한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며, 정확한 실태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실효적 보상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국회와 정부내에 남북경협기업 피해조사처를 신설하고, △북한에 투자한 자산을 정부가 인수해 줄 것, 그리고 △경협기업과 근로자들에게 긴급생계비와 전업자금 지원, △경협기업 대출금 상환 유예 및 이자탕감, 채무 조정 등 구제방안 검토 등을 호소했다.
신양수 금강산기업인협의회 회장도 지난 19대 국회에서 입법 무산된 ‘5.24조치 등 경협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보상법’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북한 핵문제로 금강산관광 재개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기업들의 투자자산에 대한 완전한 보상과 영업 중단에 따른 피해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금강산 투자기업의 최우선적 바람은 남북관계가 안정되어 다시 금강산에 들어가서 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남북경협 사업을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투자기업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손실보상과 피해지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경제협력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 주요 제안
김광길 변호사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기초로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좋겠다며, 몇 가지 주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새로 제정될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은 ‘남북관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남북경협사업이 중단되어 이에 종사하는 우리 국민과 기업에게 발생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적용 대상과 범위는 ‘남북경협 사업의 중단으로 인하여 손실을 입게 된 남북경협 사업자 전부’로 하고 △5.24조치로 인한 사업중단, △금강산관광사업 중단, △개성공업지구 중단, △개성관광사업 중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 법에 따른 보상은 남북경협 사업 중단 당시 남북경협사업자의 북한 지역 투자자산의 국제시장가치 전부와 일실이익(逸失利益, 손해배상 청구 발생 사실이 없었다면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익) 전부를 보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지연이자는 최대 3년까지 적용한다.
보상 절차가 완료된 물건의 소유권과 권리 등은 국가로 이전되고 통일부 장관이 이를 유지·관리하며, 이 경우에는 ‘국유재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후 남북경협 사업이 재개되는 경우에는 보상금을 지급받은 사업자가 이 법에서 정한 금액을 국가에 지급하고 해당 권리를 환매할 수 있다. 사업자가 남북협력기금법 제8조 제4호의 보험금을 지급받았을 경우에는 보상금에서 보험금을 차감하도록 한다.
특히 손실보상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통일부에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9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심리절차와 감정평가 의뢰, 실지조사권을 부여한다.
손실보상을 받고자 하는 자는 통일부장관에게 손실보상 청구를 하고 손실보상심의위원회는 청구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손실보상에 관한 의결을 하도록 하며, 이에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 불복시에는 90일 이내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 경과후에는 각각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토지이용권, △건축물 등의 토지의 정착물, 흙, 돌 등, △사업권, △북한에서 행하는 영업, 부대영업 등에 대한 보상금 산정의 구체적인 기준, 평가방법 등은 별도 시행령으로 정한다.
또 정부는 남북경협 사업중단으로 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과 협력업체에 고용된 근로자에게 취업알선과 생계비 지급 등을 긴급 지원하되, 생계비 지원금의 지급기준, 금액의 산정 및 지급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통일부령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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