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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체육상 등 北 선수단 본진 87명 인천 도착

김영훈 체육상 등 北 선수단 본진 87명 인천 도착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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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17  00: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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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북측 선수단 본진 87명이 16일 오후 고려항공편(JS-615)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북측 선수단 본진 87명이 16일 오후 고려항공편(JS-615)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북측 체육상인 김영훈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과 손광호 부위원장, 김명렵 선수단장을 비롯해 역도와 사격, 체조 종목 선수들로 구성된 선수단 본진은 당초 도착시간인 오후 7시 10분을 조금 넘긴 오후 7시 22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날 7시 50분 경 입국장 안쪽에 모습을 나타낸 북측 선수단은 수화물 짐을 찾는 등 여장을 정리한 후 7시 57분부터 8시 20분까지 대표단이 먼저 나오고 시차를 두고 선수단이 차례대로 입국장을 나섰다.

지난 11일 선발대가 들어올 때와 같이 흰색 상의에 파란색 하의 정장을 맞춰 입은 선수단은 환영나온 남북공동응원단에게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이들은 오후 8시 50분 경 대기하고 있던 버스 3대에 올라 인천시 구월동 선수촌을 향해 출발했다.

   
▲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 등이 북측 김영훈 NOC위원장 등 대표단과 입국장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측 선수단은 이후 19일 33명, 22일 41명, 28일 7명 등이 서해직항로를 통해 추가로 입국하며,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소속 선수, 기자 등 10명은 일본에서, 스위스에서 활약중인 박광룡 선수(축구)는 현지에서 직접 인천으로 들어 올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 축구와 수영, 양궁, 육상, 복싱, 카누, 체조, 유도, 공수도, 조정, 사격, 탁구, 역도, 레슬링 등 14개 종목에 선수 150명을 출전시킨 북측은 이번 대회에서 12년 만에 상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수단은 28일과 10월5일, 두 차례에 걸쳐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귀환할 예정이다.

   
▲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 50 여명이 나와 한반도기와 미리 준비한 현수막을 흔들며 선수단을 환영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공항에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 50여명이 나와 한반도기와 미리 준비한 현수막을 흔들며 선수단을 환영했다.

이들은 '인천아시안게임 북측선수단 환영 및 10.4공동선언 발표 7주년 기념'이라고 쓰여있는 현수막에 각각 '북녘 동포여러분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북측 선수 여러분, 좋은 성과 기대합니다', '5.24조치를 넘어 체육평화통일로!', '아시안게임 북측선수단 환영' 등의 환영 문구를 새겨 환영 분위기를 돋웠다.

또 북측 선수단이 탄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대형 한반도기와 소형 한반도기를 연신 흔들며 '통일합시다', '환영합니다' 등의 환영 구호를 계속 외쳤으며, 일부 응원단은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열렬히 환영하리라. 남북공동응원단의 사전 연습 장면. '통일합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손내밀어 만져보고 싶고 말한마디 나누고 싶지만 한반도기를 흔들면서도 가로막힌 분단은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하나된 한반도를 원한다. '우리는 하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측 선수단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인천아시안게임 공동응원단은 '인천아시안게임 북측선수단 환영 및 10.4공동선언 발표 7주년 기념'이라고 쓰여있는 현수막에 각각 '북녘 동포여러분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북측 선수 여러분, 좋은 성과 기대합니다', '5.24조치를 넘어 체육평화통일로!', '아시안게임 북측선수단 환영' 등의 환영 문구를 새겨 환영 분위기를 돋웠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버스 창을 뚫고 들어가라고 목청껏 외친다. 통일 코리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측 선수단은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안에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건너편 인도에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는 공동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반갑습니다', '애쓰십니다' 공동응원단을 바로보며 출발하는 북측 선수단 임원(?). 흐린 화면처럼 표정을 알 수 없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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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키신저-이명박 라인이 배후인가?

 
결국 키신저-이명박 라인이 배후인가?
 
박영선의 거듭된 뻘짓이 결코 실수가 아닌 이유
 
조시형 | 2014-09-16 13:23: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정국이 박영선의 거듭된 뻘짓으로 수렁에 빠지는 형국이다. 이젠 뻘짓이 아니라 의도된 정치공작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안철수가 처음 시작한 이 해괴한 내부 자중지란의 정치적 목적은 분명하다. 데자뷰! 안철수의 출현 이후 고비마다 반복되는 이 현상! 여당에 향해야 할 공격의 칼날을 틀어 야권에 돌려 약한 고리를 끊고 초토화 시키는 이 장면! 첨예한 정치적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켰던 바로 그 안개현상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것도 더욱 진하고 매캐한 연무로 갈 길을 막고 있다.

대선 개표부정으로 시작된 이 참칭정권의 사기와 조작질의 끝에 일본의 한반도 재진출을 위한 세월호 참극이 벌어졌다. 온 나라의 시민들이 힘을 모아 진상규명에 애쓰고 있다. 그런데 수사권마저 포기한 박영선과 김완구의 야합에 제동을 걸기 위해 문재인의 10일간의 단식이 있었고 이제 유가족과 시민들은 장기항전을 대비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박영선이 이상돈이라는 지난 18대 대선 부정의 1등 공신을 야당의 얼굴로 영입하려 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시점에 문재인을 속여가며 3자 대면까지 성사시키는 언론플레이 이후 이제는 탈당과 신당창당이란다. 친노 강경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 정국이 불안하단다. 문재인이 수렴청정하려는 당이라 희망이 없단다.

하기야 문재인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멸시를 겪고 수족을 잘라내면서도 대선 단일화를 이루어내었다. 단일화 전제조건이란 해괴한 새-정치 룰에 걸려 제대로 정권비판도 부정선거에도 대비하지 못하고 정권을 강탈당했다. 급기야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하라는 안철수와 김한길들의 집요한 압력에 묵묵히 인내하고 몸을 사려온 2년이었다.

황당한 안철수의 기초공천 무공천을 당원과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처음으로 소신을 보였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시와 견제, 언론의 분열조장 왜곡보도를 겪고서는 지난 9.4 재보궐선거 공천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저 지역을 누비며 지원 유세에 열중했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 후 눈에 띄지 않게 진도로 안산으로 유가족을 만나고 위로하고 함께 굶어가며 첨으로 대중적인 투쟁을 선도하였다. 그래서 하마터면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끝날 세월호 참사를 국민적 쟁점으로 이끌어내는 데 일말의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제 유족들의 장기전에 발을 맞추기 위해 국회로 들어가 장내투쟁에 전념하려는 와중이다.

이 와중에 갑자기 온 언론 방송과 매체가 문재인과 친노 강경파를 성토하기에 난리가 났다. 이상돈 영입을 함께 추진해놓고 이제 와서 부인한다고 아주 파렴치한으로 떠들어댄다. 박영선과 이상돈 그리고 조경태는 신이 난 듯 연일 문재인이 동의했었다, 문재인이 거짓말한다, 연신 언론플레이에 열중이다. 그리고 당을 쪼갠단다. 이에 새누리는 자기들이 만든 선진화법도 무시하고 야당의 자조위난으로 인한 자중지란을 틈타 단독국회를 연단다. 그리고 이른 바 김한길과 안철수계의 30여 이른바 온건파(?) 의원들은 여기에 동조한다. 민생법안에 분리대응 한단다. 지지자와 당원 그리고 국민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박그네와 새누리가 바라는 대로 기어코 세월호참사의 문제를 덮고 가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좌우와 진보 보수를 망라하고 가장 증오하는 친노 강경파와 결별하고 분당을 하겠단다.

아무리 친노가 밉기로 서니 왜 이리 무리수를 범할까? 그동안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문제가 하나 있다. 도대체 노무현 사후에도 더 커져가는 기득권세력의 극도의 히스테리에는 뭔가 깊은 내막이 있지 않을까? 뭔가 뿌리 깊은 죄의식을 건드리는 원죄와도 같은 업보가 숨어 있지 않을까? 이명박과 박그네 정권의 공신들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엄청난 범죄… 그리고 공범의식으로 똘똘 뭉쳐 솥뚜껑만 봐도 눈이 뒤집히는 자라에 물린 상처를 감추려 안달이 난 듯 친노만 보면 으르렁대는 건 아닐까? 노무현의 죽음엔 미스테리한 판도라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지난번 박영선과 이완구의 세월호법 1차 협상이 있었던 7월8일 국회로 성김 주한미대사가 직접 찾아와 새누리 김무성 신임대표를 만났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모르나 그날 이후 눈에 띄게 김무성이 세월호 문제에 대해 완고해졌다. 분명히 이전에 김무성은 세월호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주어서라도 빨리 세월호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절대 재협상은 없다는 이완구의 거듭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철도 파업 때 청와대까지 제쳐가며 여야와 노조의 타결을 이루어낸 실세 아니던가? 차기를 향한 꿈을 부인하지 않는 그가 국민 다수가 바라는 세월호 난국의 타개를 시도해 볼 법도 한데 전혀 꿈쩍하지 않는다. 김기춘에게도 맞짱 뜨는 유일한 실세가 왜 이리 조용해진 걸까?

성김을 통해 미국의 시그널이 전해진 걸까? 어쩌면 그 신호는 박영선에게도 전해진 게 아닐까? 상왕 이명박에 BBK 칼날을 휘두르던 박다르크를 하루아침에 쥐다르크로 둔갑시킨 현실적 힘은 태평양 건너 워싱턴과 뉴욕을 오가는 유대 왕의 주술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이후 유일하게 유임된 주한미국대사 성김은 김무성과 박영선에게 무슨 주문을 걸었을까? 혹시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도 미국의 빠다가 칠해진 것이 아닌가? 그 빠다 냄새가 가시기 전에는 절대 수사권은 절대 안 된다는 만다라가 그려진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판은 엄청나게 글로벌 해진다. 교황도 그래서 자기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한 건가? 한국 방문 이후 교황의 조카 가족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미혼의 신부에겐 가장 가까운 혈육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어제도 교황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혼례식을 직접 주재했다 한다. 카톨릭이 변할까? 교황이 먼저 떠날까?

나의 글쓰기도 이제 더욱 글로벌하게 치밀하고 치열해져야 할 것 같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6&table=c_jshpapa&uid=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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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보면 YTN 불법사찰이 떠오른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9/16 11:27
  • 수정일
    2014/09/16 11: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노종면 등 체포과정서 국무총리실 개입 인정하면서도 ‘타당’…“사법부, 민주주의 기대불가”
 
입력 : 2014-09-15  15:59:33   노출 : 2014.09.16  10:06:08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만큼 ‘황당’한 판결이 또 있다. 바로 노종면 전 언론노조 YTN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 4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기각판결이다. ( 관련기사 : 노종면 등 YTN노조, ‘불법사찰’ 소송서 패소 )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009년 3월 22일, 총파업을 하루 앞둔 언론노조 YTN 지부 조합원 4명(노종면, 임장혁, 조승호, 현덕수)을 경찰소환 불응을 이유로 체포했다. 사측이 같은 해 1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한 YTN지부 조합원 19명 가운데 이들 4명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경찰 담당 수사관과 일정 조율을 통해 3월 26일 출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도 이들이 긴급체포된 것과 관련, 이후 이 과정에 국무총리실의 압력과 불법적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이들 4명은 2012년 국가와 YTN 사찰 담당자였던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을 상대로 “경찰의 불법체포로 유무형적 손해를 입었다”며 손배소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부장판사 이성구)는 지난 5일 국무총리실의 언론사 사찰과 체포 과정서의 개입을 확인했으면서도 “체포가 타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며 외려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 2009년 3월 22일 경찰에 의해 기습체포됐던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노종면 지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 (사진 = 이치열 기자)
 

재판부, 국무총리실 개입 인정했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충연 전 조사관의 언론사 불법사찰 기록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의 방문 및 만남을 인정한 김기용 전 남대문경찰서장의 증언(기사링크) △YTN 기자와 김기용 전 경찰서장의 대화에, 국무총리실 등과 협의를 거쳐 체포영장을 신청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YTN 사태에 관한 동향파악 및 원고들의 체포여부에 관한 의견제시가 국무총리실 사무와 관련된 것이므로 담당 수사관이 관계 국가기관과 협의 등을 거쳐 체포영장을 신청한 것을 가리켜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국무총리실의 불법사찰을 정당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무총리실 인사들이 경찰서장을 만나서 YTN 얘기를 한 사실이 증언을 통해 확인됐고 재판부도 개입 정황을 인정했다”며 “그럼에도 재판부는 국무총리실 직무범위에 있다며 형식 논리를 들어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원고인 임장혁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도 “한마디로 판결을 요약하면, ‘국무총리실 압력을 받아서 체포한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소송을 했던 이유는 원충연 전 조사관이 불법 사찰한 내용을 가지고 압력을 넣어 경찰 체포가 이뤄졌으니 그것의 부당함을 가려달라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되레 불법사찰을 정당화했다”고 전했다.

파업 직전 사측, 경찰에 노조 자료 전달

YTN 조합원들은 재판에서 긴급 체포의 목적이 일반 수사에 있지 않고 ‘합법 파업의 저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이 다른 목적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종면 등은 파업을 빌미로 계속해서 출석을 미루거나 출석하지 아니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체포의 필요성이 있다”는 경찰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손재화 YTN 법무팀장이 2009년 3월 17일, 노조의 임단협 최종 요구안을 협상이 끝나기 전 경찰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점 △YTN지부가 이미 담당 형사와의 조율을 통해 3월 26일에 경찰 출석하기로 한 점 △수사기관이 “피의자들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며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까지 요청한 점 등은 “체포 사유가 수사 목적에 있다”는 경찰의 주장과 이를 수용한 재판부 판결에 의문을 갖게 한다. 

임 위원장은 “체포 이전까지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고,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파업 때문에 조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체포해야 한다는 건 경찰의 ‘예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2009년 3월 22일 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지도부 긴급체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이치열 기자 truth710@)
 

특히 체포 직전 법무팀장이 노사 협상의 중요 내용을 경찰에 전달한 것은 체포가 파업저지와 결부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능케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YTN지부 측은 “임단협 협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고소인인 사측이 노조의 협상안을 경찰에 전달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부당할 뿐 아니라 경찰의 체포가 노조 파업 저지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체포영장의 신청 이유 중에 원고들이 파업에 가담하는 것을 저지할 목적이 포함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며 애매모호한 표현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기각’이었다. 한편, 손 팀장은 15일 해당 사실을 묻는 기자에게 “(기자의) 취재 목적이 불분명할뿐더러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법부, 계속 눈치보기식 판결만 내려”

이들은 현재 항소 여부를 고심 중이다.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끝난 것에 대해 우려가 가시지 않아서이다. 임 위원장은 “원세훈 판결과 YTN 불법사찰 손배소 판결은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현 사법부의 판단이 이렇게 치우쳐 있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다”며 “항소는 당연한 것이나 정권에 경도돼 있는 현 사법부에 비춰봤을 때 이후의 항소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도 “행정부의 권한 남용이나 범죄 행위가 있을 때 확실하게 처벌해야 하는 곳이 사법부”라며 “이석기, YTN, 원세훈 등 최근 판결을 보면 사법부가 계속 눈치보기식 판결을 내리고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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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울고만 있지 마세요”

굳이 나서는 사람들을 보라

조현 2014. 09. 16
조회수 88 추천수 0
 

 

[조현의 휴심정]

“더 이상 울고만 있지 마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정녕 몰랐다. 지난달 방한 때 그가 서울공항에 도착하면서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공감해준 것만으로도 숙제는 한 셈이었다. 그 뒤부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반감을 무마해줄 차례였다. 그런다 한들 어쩔 것인가. 권력자를 위한 추임새에만 열중해 약자의 믿음 같은 건 헌신짝처럼 버린 종교지도자들을 한두번 봐온 것도 아니다. 더구나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그가 방문국 국가원수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시종일관 ‘어정쩡하게’가 아니고, 확실히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동행해 주었다.

 

아르헨티나영웅페이지.jpg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메르세데스 소사, 체 게바라,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의 독립영웅 산 마르틴(1778~1850)도 그럴 것까지는 없었다. 남미에서 스페인군을 몰아낸 뒤 영광을 누리길 거부하고 고국을 떠나 삶을 마칠 필요까지 있었을까. 체 게바라(1928~67)도 그랬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던 그는 민중혁명 같은 게 없어도, 기득권을 누리며 살기에 충분했다. 쿠바까지 가서 혁명에 성공해 중앙은행장을 맡은 그가 다시 볼리비아의 정글로 떠나 게릴라전에 나서 사살될 것까진 없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던 메르세데스 소사(1939~2010)도 노래나 부르면 됐지 독재자에 항거하다 체포되고, 추방돼 망명할 것까진 없었다. 7월 월드컵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힌 리오넬 메시도 우승국 독일의 주공격수 토마스 뮐러처럼 수비가 다가오면 넘어져 반칙이나 얻어내면 됐지, 상대 선수가 치고받아도 오뚝이처럼 달릴 것까지야 없었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는 의인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폭력과 마약 복용으로 물의를 빚은 축구 악동 마라도나뿐 아니라 1976~83년 ‘더러운 전쟁’에서 3만명을 희생시킨 독재자 비델라와 군인·법조인·언론인들도 아르헨티나인들이다.
7월 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인들이 인접국 아르헨티나의 상대팀만을 응원한 걸 본 시청자들은 눈치챘겠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을 ‘밥맛없어하는’ 남미인들이 적지 않다. 인종전시장 같은 브라질 등 다른 남미국들과 달리, ‘인종 청소(살육)’를 너무 깨끗이 해 버려 백인 일색인 아르헨티나인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기들이 마치 유럽인인 양 행세하는 탓이다.

 

남미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신에게조차 이런 혹평을 받는 이들이 아르헨티나인들이라고 비웃는다. 아르헨티나는 석유자원도 풍부하고, 대지도 비옥하고, 재앙도 없고, 풍광마저 아름다워 “왜 아르헨티나에만 좋은 걸 다 줬느냐”고 따지자, 신이 “그래서, 그 땅에 (형편없는) 아르헨티나인들도 함께 주지 않았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인간미 넘치는 교황과 산 마르틴과 체 게바라와 메르세데스 소사와 메시가 나고 자란 곳은 그런 아르헨티나인들의 나라다. 그 밥맛없는 땅에서 그들은 ‘밥맛’이 되었다. 뮤지컬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라고 해놓고는, 정작 자신은 약자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이렇게 노래하는 에비타가 바로 그들이다. “진정 나는 당신들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난 당신들과의 약속을 지켜요.”

 

박근혜 정권 들어 깊은 어둠에 절망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가기관이 전방위적으로 대선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도 모자라 이를 가리기 위해 국가정보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왜곡하고, 수사 지휘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폭로해 내쫓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마저 외면하고 유족들을 음해해 두번 세번 죽이는데도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들마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 굳이 굶지 않아도 될 텐데 광화문에서 함께 굶는 이들을. 굳이 지지 않아도 될 십자가를 지고 법치주의의 무너진 기둥을 어깨에 진 한 판사를. 권력과 욕망의 불빛으로 향하는 대열에서 나와 자신을 태워 길을 밝히는 밤하늘의 수많은 불빛을. 그래서 우리도 주저앉아 더 이상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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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씨 아버지, 딸 수습 후 첫 인터뷰

"딸 시신 돌아오는데 54일... 생지옥이 따로 없지"

[인터뷰] 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씨 아버지, 딸 수습 후 첫 인터뷰

14.09.15 21:24l최종 업데이트 14.09.15 21: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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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 가족 위해 진도 찾은 단원고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교사 고 유니나씨의 아버지 유진수씨가 추석 연휴 뒤 첫날인 11일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유씨를 포함한 단원고 유가족들은 2박 3일씩 번갈아가며 진도를 찾을 예정이다. 12일 유씨가 진도군실내체육관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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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뒤 첫날인 11일 안산에서 출발한 진도행 버스가 제법 북적였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교사 유가족들이 진도를 찾은 것. 이날 진도를 찾은 유가족을 포함해 단원고 유가족들은 실종자 가족을 위해 2박 3일씩 돌아가며 안산-진도를 오갈 예정이다.

11일 오후 8시께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교사였던 고 유니나씨의 아버지 유진수씨가 체육관 복판에 앉아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의 아내 유백형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씨는 낮은 목소리로 "빨리 (양 선생님이) 나오셔야 할텐데요", "(잘 기다리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11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도에 머문 유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유씨는 "실종자 가족들도 있는데"라며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가 되는 걸 꺼려했다. 이번 뿐만이 아니라 그는 딸이 세월호에서 나왔을 때를 제외하곤 사고 이후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왔다.

그는 진도를 떠나던 13일 기자와 실종자 가족의 설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데 동의했다. 딸 니나씨가 발견된 6월 8일 이후 유씨가 처음 한 언론 인터뷰다.

"실종자 가족, 생지옥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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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속 딸 니나씨 사진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교사 고 유니나씨의 아버지 유진수씨가 추석 연휴 뒤 첫날인 11일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유씨를 포함한 단원고 유가족들은 2박 3일씩 번갈아가며 진도를 찾을 예정이다. 13일 유씨가 진도를 떠나기 전 딸 니나씨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를 기자에게 내보였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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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의 딸 니나씨는 사고 발생 54일째인 6월 8일 세월호 3층에서 발견됐다. 구조가 가능했던 세월호 5층에 있다가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간 니나씨는 결국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배 왼편에 위치해 물이 차오르는 걸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던 데다가, 니나씨의 의로운 행동까지 더해져 2학년 1반은 열 개 반 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구조될 수 있었다(37명 중 19명 생존). 유씨는 딸이 2학년 1반 담임교사를 맡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쓴웃음을 내보였다. 

"원래 3학년 담임교사를 맡을 예정이었는데 이번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업무가 덜한) 2학년 담임으로 바꿨지. 일이 터질려니 참…."

쓴웃음 뒤 유씨는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적 오랜 기간 딸을 기다린 유씨는 "그래서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진도를 찾기 전에도 몇 차례 진도에 내려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유씨는 딸을 기다린 54일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을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딸을) 늦게 찾아간 편이지만, (딸을 찾은) 그때로부터 벌써 석 달이 지났잖아. (54일 기다린 나도) 지옥이었는데 실종자 가족들은 오죽하겠어. 생지옥이 따로 없지. 숨만 쉬고 있는거야. 빨리 찾아야 할텐데."

"외국에서 우리나라 어떻게 볼까... 언론에 상처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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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 오르는 단원고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교사 고 유니나씨의 아버지 유진수씨가 추석 연휴 뒤 첫날인 11일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유씨를 포함한 단원고 유가족들은 2박 3일씩 번갈아가며 진도를 찾을 예정이다. 13일 2박 3일 동안 진도에 머무른 유씨가 다시 안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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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직도 정쟁을 벌이는 정부와 정치권을 질타했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이 꼭 세월호 희생자만을 위한 법은 아니잖나"라며 쓴소리를 했다.

"이후 세대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특별법은 꼭 필요하지. 세월호에 탔던 수많은 희생자들이 우리 세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간건데…. 이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있으면 정말 안될 일이지. 엄청난 희생으로 드러난 나라 곳곳의 문제를 그냥 묻어버리면 이건 정말 한심한 나라인 거야."

유씨는 "외국에서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를 어떻게 여기겠나"라고 한탄했다. 유씨가 말한 '이런 상황'은 세월호 침몰 뿐만 아니라, 지금껏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정치권을 겨냥하고 있다.

유씨는 "언론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그가 진도를 찾은 11일에도 MBC에선 "세월호 유가족의 광화문 천막 농성은 불법"이라고 보도했다. 유씨는 기자에게 스마트폰에서 MBC 기사를 찾아 기자에게 내보였다.

"처음에 외신에서 엄청 취재를 나왔었어. 그때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게,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창피해서 인터뷰를 잘 안 했지. 그런데 우리나라 몇몇 언론 봐봐. 말도 안 되잖아. 외신이 있어서 그나마 전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는거지."

유씨는 2박 3일 동안 진도군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13일 오후 2시 진도군실내체육관 앞에서 안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유씨를 만났다. 그는 휴대폰에 담긴 딸 니나씨의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의 니나씨는 아버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씨가 버스에 타기 전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진도에서? (실종자 모두 수습해서) 여기선 이제 그만 봐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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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밥’, 통일이 ‘일자리’가 되려면?


 노동자가 지역통일운동에 앞장서야..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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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15  11: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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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연습, 9월 인천아시안게임과 유엔총회, 10월 한미안보협의회의 악재들로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서광이 비치지 않고 있다.

진정 평화가 ‘밥’이고 통일이 ‘일자리’인가? 긴장과 대립, 분열과 분단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을까?

<통일뉴스>가 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민주노총의 신승철 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노동자 통일운동을 평가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보았다. 대담은 9월 11일(목) 오후 2시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 편집자 주

 
   
▲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먼저 6.15시대의 물꼬를 트는데 이바지한 1999년 8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노동자 통일운동을 평가해주시겠습니까?

■ 신승철 위원장 : 1999년 8월 남북노동자 축구대회는 남쪽 노동자들에게 통일의 의제를 확산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남쪽 노동자들이 북에 갈 수 있고 북쪽 노동자들과 만나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찌든 노동자들 속에서 화해와 교류협력,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습니다. 또 노동자에게 통일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기회였지요. 

남북교류사업 위주 노동자 통일운동의 한계

 

   
▲ 신승철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9월 11일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그 이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각종 남북공동행사에 참여했으며 노동자 통일선봉대, 나아가 전국 각 지역의 노동자 통일실천단을 구성해 매년 전국을 돌면서 통일운동을 노동자들 속으로 확산해왔습니다. 한국노총과 함께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약칭 '직총')을 파트너로 남북노동자 교류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 통일운동이 대중화되었지만, 남북노동자 교류사업이 계속 유지, 확대되지도 못했고 일상적 통일운동으로 질적 발전을 가져오지도 못했다고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당국에 의해 허용된 교류사업을 위주로 노동자 통일운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 민간교류, 특히 남북노동자교류를 차단해온 지난 6년, 노동자 통일운동 자체도 약화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평화와 통일 의제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정부 주도의 관제화를 경계했지만, 교류협력 중심의 통일운동 전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상적인 노동자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중요성이 희석되고 평양으로 갈 수 있냐 없냐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교류가 차단된 이후에는 구호성 통일운동에 그치는 측면이 있습니다. 노동자 통일운동 역량을 축적하고 자주 평화 통일 의제가 노동자에게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실천하는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요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나 의식상태가 예전에 비해 저조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노동자들이 고용임금문제와 경제발전문제와 평화통일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주평화통일운동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좋은 방안이 없을까요?

■ 신승철 위원장 : 2012년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전국적 샘플을 가지고 조합원 통일 의식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이 노동자대중 자신의 요구임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요구가 실천으로 외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북의식’이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남북노동자 자주교류가 차단된 2007년 이후 정권의 반북이데올로기 공세는 현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지 않고 만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어떤 계기로 불신이 더 확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경제주의, 통일운동은 정치군사주의

 

   
▲ "통일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계급운동을 부차시하고 계급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통일운동을 홀시하는 편향도 있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또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당면 투쟁에 피로가 쌓여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고 통일운동은 교류협력이나 정치군사적 소재 위주로 전개되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가슴에 와닿게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통일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계급운동을 부차시하고 계급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통일운동을 홀시하는 편향도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당면 투쟁이 노동자 통일운동과 밀접히 결합하지 못하고 이분화된 것입니다.

제가 기아차노조 위원장 시절에 매향리투쟁이 있었는데, 매우 부담스런 일임에도 회의를 거쳐 조합원 파업대오를 결합시켰습니다. 조합원들이 평택 미군 이전 확장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다 알고 참여한 것은 아니거든요. 화성공장 위로 날아다니는 미군 폭격기의 소음에 분노한 조합원들을 매향리 방문 파업 프로그램으로 인도하니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용임금문제와 경제발전문제와 평화통일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계속 넓혀야 하지만, 간부들은 몰라도 조합원들까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과 부문의 어떤 관련 현안이나 정세흐름의 어떤 계기를 포착해 조합원들에게 생동감있게 해설하고 다양한 수준의 실천을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일의 상과 경로가 노동자들에게 선명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정부 주도의 교류협력이나 통일을 반대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재벌들도 통일을 얘기하는 상황입니다. 저들은 자본주의 흡수통일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간교류는 막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사업에 제약을 가했습니다.

어떤 통일? 어떻게? 노동자들 속에서 공론화돼야 합니다. 6.15공동선언 2항의 연합연방과 그 이후의 노동자의 삶, 노동자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져야 노동자 통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또 기층민중의 자주교류가 허용되거나 힘으로 쟁취해야 올바른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간부 역량 강화하고 일상적 실천 개발해야

 

   
▲ "노동법 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바꾸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간부역량을 강화하고 아래로부터 노동자 통일운동의 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교류가 차단된 이후 일부에서 '북에 갈 수도 없다’, '이제 뭐하냐’는 식의 패배감이 있었지만, 평화기행, 통일교과서와 강사단, 통일학교, 조선학교 지원 등으로 대중적 기반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올해 노동자 통일선봉대가 300여명을 넘었습니다.

조선학교 지원사업은 ‘조선인 노동자 징용 문제’를 소재로 역사왜곡, 집단자위권, 위안부문제 등 일본 신군국주의 반대와 친일잔재 청산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양대노총이 일본을 방문, 징용 노동자 추모제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 자주통일운동의 또 다른 중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요즘 대기업 공기업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투쟁을 전개하면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상황입니다. 정권과 자본, 보수언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노동운동을 위해 비정규직과 함께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동시에 겨레의 염원, 평화통일에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요?

■ 신승철 위원장 : 맞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 노동유연화 등의 신자유주의 조치, 한반도의 평화위협과 분열분단을 그대로 두고 임금인상, 근로조건 유지, 노동법 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바꾸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평화를 실현하고 남북경협과 북방경제, 통일민족경제로 나아가야 일자리도 생기고 임금인상도 가능한 번영의 터전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진보정치의 힘을 기르고 외자-재벌 중심의 경제를 민주화해야 노동자, 민중이 정치와 경제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천이 기업 울타리 안에서, 노조의 틀으로는 담보되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미래전략위에서 논의하는 내용인데,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공장이나 직장에서 지역이나 동네로 나가야 하며 주민들과 결합해 생활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주와 평화와 통일 의제의 실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앞장서 지역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매년 5천여명이 참여하는 경남 창원 통일마라톤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대중적 지역통일운동의 모범사례입니다.

기업 울타리 벗어나 지역으로 나가야 대중적 통일운동 열린다

 

   
▲ "노동자들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진보정치의 혁신통합,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로 지역운동에 적극 결합하는 경로를 밟아야 합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조직된 노동자들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진보정치의 혁신통합,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 이 세 가지 주제로 지역운동에 적극 결합하는 경로를 밟아야 합니다. 자기 호주머니 채우는 것에 머무는 노동운동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지역운동에 참여하는데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비정규직운동, 진보정치운동만이 아니라 자주평화통일운동도 몇몇 운동꾼들이 일방적으로 선도하는 식이면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소극화된다는 것입니다. 대중적 통일운동의 주체 형성과 실천방도를 강구하는 데 깊은 사색과 고뇌가 있어야겠지요.

□ 정성희 소장 : 북미 또는 6자회담은 재개되지 않은 채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계속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재연기되며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의 일환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평택 미군기지에 배치될 상황입니다. 노동자들이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합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민주노총은 올해 한미일 군사동맹 저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 동참 반대를 주요 평화투쟁으로 삼고 그 중간 고리로 집단적 자위권 등 일본 신군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도 전개해왔습니다. 관련해 ‘2014년 평화소책자’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습니다.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풍부한 자주평화 실천방안 개발해야

 

   
▲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통일대박'을 노동자들이 지지하겠어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그런데 이런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조합원들에게까지 교육선전할 것인가 고민입니다. 경제주의 조합주의 사고가 만연한 조합원들이 자주평화문제를 자신의 요구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더 풍부하고 더 대중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는 나라는 미국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 쉽게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는 안일한 인식도 작용하고 조합원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평화실천을 다양하게 개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주장하고 '통일준비위'를 구성했지만, 여전히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박근혜 정권의 통일정책에 대해 평가는커녕, 더 이상 입에 담을 가치도 없다고 봅니다. 민주도 통일도 과정이 중요한데, '통일대박’은 결과만 있어요. 또 누구를 위한 '통일대박'인지 묻고 싶습니다. 명백히 자본 주도의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빈부격차, 부정부패, 실업과 해고와 비정규직 같은 신자유주의 단계의 자본주의 병폐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통일대박'을 노동자들이 지지하겠어요?

‘통일대박’, 신자유주의의 한반도화일 뿐 
 

   
▲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1천명의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은 참가하고 응원단은 못온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 응원단이 못오더라도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화해협력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북측 응원단이 오게 되면 인천 아시안 게임이 세계적 이목을 끌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올라가고 남북 공동응원으로 민족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 남북관계도 개선되고 이를 지렛대로 북미관계도 변화시킬 수 있는 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인공기가 부담스러워 북측 응원단이 못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 이외 시내의 참가국기 게양을 취소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형제가 남보다 더 못하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정치적 스포츠 분야에서 먼저 통일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단일팀 구성이나 공동 입장을 성사시키지 못할 망정, 북측 응원단도 못 오도록 하고 선수단 환영인사도 전투경찰로 차단벽을 치는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운을 높이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1천명의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민주노총 창립 20년, 분단 극복 70년에는 반드시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입니다.

1천명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 조직할 것

 

   
▲ 인터뷰 후 신승철 위원장(왼쪽)과 정성희 소장이 함께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마지막으로 긴장과 대립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고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전국의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주십시요.

■ 신승철 위원장 : 평화와 통일은 노동자에게 ‘밥’ 입니다. 일자리의 창출과 안정도 평화와 통일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존중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는데, 생명은 평화를 통해 지켜지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은 올 하반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총력 투쟁하겠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열심히 실천해갈 것입니다.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노동형제들께서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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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위로 떠오른 북의 핵격잠수함

해수면 위로 떠오른 북의 핵공격잠수함
 
한호석의 개벽예감 <13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9/15 [23:3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이 사진은 미국 상업위성이 북의 서해함대사령부 휘하 디젤-전동식 잠수함들과 잠수정들이 정박되어 있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미국 정찰위성은 이보다 더 해상도가 높은 위성사진을 촬영한다. 얼마 전 미국 정찰위성은 해수면 위로 떠오른 북의 핵공격잠수함 한 척을 촬영하였다. 북이 핵공격잠수함을 보유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알려지면, 미국의 동맹국들과 추종국들이 심각한 불안과 동요를 느낄 것이고 군사전략균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므로 미국은 그 사실에 대해 침묵하였다.     © 자주민보

 

사상 처음으로 모습 드러낸 북의 핵공격잠수함 

 

이제껏 실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던 북의 핵공격잠수함이 마침내 해수면 위로 떠올라 자기 모습을 드러낸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북의 핵공격잠수함에 관한 진실이 알려지면, 국제사회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2012년 9월 17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0616)에서 북이 핵공격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하였다. 그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추가정보들을 살펴보면, 그 글에서 몇 군데 수정해야 할 점이 눈에 띄지만, 지금 북이 핵공격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글은 북에는 노후화된 소형 잠수함들만 있다는 미국의 왜곡선전을 깨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글을 집필하던 때만해도 북의 핵공격잠수함이 해수면 위로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북의 핵공격잠수함이 해수면 위로 떠올라 마침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 모습은 정찰위성으로 북을 감시하는 미국만 관측할 수 있었다. <사진 1>


북의 핵공격잠수함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전략적 가치와 비중을 가진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분에 사로잡히게 될 그 놀라운 이야기는 지난 8월 26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워싱턴자유횃불(Washington Free Beacon)>에 실린 한 편의 흥미로운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그 기사는 우파 언론인 빌 거츠(Bill Gertz)가 쓴 것인데, 그가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민감한 군사정보를 기사화할 때마다 미국 언론계와 군사전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난날 그가 써낸 많은 군사관련기사들 가운데는 북의 군사문제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기사도 있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26일 “미사일잠수함 건조 중인 북(North Korea Building Missile Submarine)”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빌 거츠는 “북의 잠수함에 관한 정보를 잘 아는 미국 국방부 관리 두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가지고 그 기사를 썼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북의 잠수함에 설치된 미사일발사관(missile launch tube)이 얼마 전 미국 정보기관들에 의해 관측되었고, 평양의 공산주의정권의 미사일과 핵위협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잠수함이 해수면 아래서 지상목표물을 향해 쏘는 잠대지 미사일은 핵탄미사일이므로, 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한 잠수함은 당연히 핵공격잠수함(nuclear attack submarine)이다. 요즈음 핵공격잠수함들은 모두 소형 경수로를 동력원천으로 하는 핵추진식 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들이어서, 핵공격잠수함과 핵추진식 잠수함이 동의어로 쓰이지만, 핵추진식 잠수함만이 핵공격잠수함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잠대지 핵탄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면 그것이 디젤-전동식 잠수함(diesel-electric submarine)이건 핵추진식 잠수함이건 모두 핵공격잠수함으로 통칭한다. 


그런데 빌 거츠는 그 기사에서 핵공격잠수함이라는 말을 한 차례도 쓰지 않고, 미사일 잠수함 또는 신형 잠수함이라는 약간 모호한 용어만 줄곧 쓰면서 북의 핵공격잠수함 보유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읽어보아도 그 기사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관측하였음을 알려준 것이고, 또한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관측한 미국 군부와 정보기관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았음을 말해준 것이다. 


빌 거츠는 그 기사에서 관측(observe)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은 미국 정보기관 요원들이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육안으로 보았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의 핵공격잠수함 위성사진을 보았다는 뜻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촬영한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잠수함에 몸소 승함하여 잠수함실동훈련을 지도한 이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디젤-전동식 잠수함을 타고 조선인민군 해군 제167군부대의 잠수함실동훈련을 직접 지도한 날은 2014년 6월 15일이었으므로, 미국 정찰위성은 지난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기간 중 어느 날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촬영하였던 것이다. 


그 기사에서 빌 거츠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관측한, 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북의 신형 잠수함은 북이 1970년대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각각 수입한 로미오급 잠수함(Romeo-class submarine)을 개조한 것이거나 북이 1990년대 중반에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급 잠수함(Golf-class submarine)을 개조 또는 모방생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론하였다. 


그런데 함체 높이가 8.5m인 로미오급 잠수함에는 길이가 13~14m인 미사일발사관을 수직으로 설치하지 못한다. 따라서 군사전문가들의 관심은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의 핵공격잠수함과 북이 오래 전에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급 잠수함의 상관관계에 자연히 집중되게 된다. 그 기사에서 빌 거츠도 영국의 ‘제인스정보집단(Jane's Information Group)’이 펴낸, 세계 각국 전투함들을 수록한 연감인 <제인스 전투함(Jane's Fighting Ships) 1994-95>에 실린 리처드 샤프(Richard Sharpe)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북의 핵공격잠수함과 러시아의 골프급 잠수함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였다. 영국 해군장교 출신인 리처드 샤프는 그 연감이 출판된 1994년 5월 당시 그 연감의 편집인이었다.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의 핵공격잠수함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려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94년은 북의 잠수함개발사에서 전환적 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였다. 북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자체 기술로 디젤-전동식 잠수함을 건조해오고 있었는데, 그 잠수함들에 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하지 못했고 어뢰발사관만 설치되었다. 그러던 북이 1994년부터 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신형 잠수함 개발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신형 잠수함을 개발하는 북의 전략사업은 러시아에서 골프-II급 잠수함을 수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북에서 핵공격잠수함대 창설하기 위한 전략사업의 출발점 

 

북이 러시아에서 골프-II급 잠수함을 수입한다는 정보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준 것은 <도쿄신붕> 1994년 1월 16일부에 실린 한 편의 보도기사였다.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의 고위급 지휘관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그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골프-II급 잠수함 10척을 북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다. 그 지휘관은 골프-II급 잠수함 10척을 북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러시아 언론과 미국 언론에 보도된 더 정확한 정보에 따르면 그보다 2척이 더 많은 12척을 수출하는 계약이었다.


북과 러시아의 잠수함 거래는 군사정세를 뒤흔드는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에 두 나라는 구체적인 사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고, 그런 사정으로 내용이 서로 엇갈리는 보도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를테면,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ce Weekly)> 2004년 8월 4일부 기사는 북이 1993년에 러시아에서 골프급 잠수함과 팍스트롯급 잠수함(Foxtrot-class submarine) 12척을 수입하였다고 하였다. 수중배수량이 2,475t인 팍스트롯급 잠수함은 골프-II급 잠수함보다 덩치가 작다. 다른 한편, 위에서 인용한 <제인스 전투함 1994-95>는 북이 러시아에서 퇴역잠수함 40척을 수입했는데, 그 가운데 골프급 잠수함과 로미오급 잠수함이 여러 척 포함되었다고 하였다. <뉴욕 타임스> 1994년 1월 20일부 보도기사는 북이 “노후한 공격잠수함” 40척을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 <사진 2> 이 사진은 지난날 소련이 건조한 골프-II급 잠수함이 순항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북은 1994년에 러시아에서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수입하였다, 당시 북이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수입한 것은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핵위협에 맞서 독자적으로 핵공격잠수함대를 창설하려는 전략사업의 출발점이었다.     © 자주민보


위에 열거한 보도기사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첫째, 북은 골프-II급 잠수함 12척 이외에 다른 종류의 잠수함도 여러 척 수입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북이 잠수함 12척을 수입했다는 보도도 있고 40척을 수입했다는 보도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북이 잠수함을 40척이나 한꺼번에 수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2척보다는 많고 40척보다는 적다고 보아야 하는데, 20여 척을 수입하였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사진 2>


당시 북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잠수함 20여 척 가운데는 골프-II급 잠수함 12척 이외에 양키 놋취(Yankee Notch) 잠수함 2척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양키 놋취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1,500t인 핵추진식 잠수함이다.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2005년 4월 8일부 기사에 따르면, 북은 1993년에 러시아에서 양키급 잠수함(Yankee-class submarine) 12척을 수입하였다고 하였는데, 핵추진식 잠수함 12척을 수입하였다는 것은 오보였고, 퇴역한 양키 놋취 잠수함 2척을 수입한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2월 2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종적을 감춘 핵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9010)에서 논한 바 있다.


1994년 2월 10일 서울에서 발간된 주간지 <시사저널> 제224호 기사에 따르면, 북이 러시아에서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수입하는 계약을 중재한 일본의 도엔상사 사장 시바타 아리요시(柴田在慶)가 그 거래를 중재한 시기는 1993년 10월이었다. 북이 러시아의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던 1993년은 소련이 붕괴된 때로부터 2년밖에 되지 않는 때여서 러시아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1985년에 당권을 장악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소련의 국방비를 삭감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소련 대통령에 취임한 1990년에는 국방비 삭감조치가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그에 따른 군비부족으로 소련 해군은 군함과 잠수함을 199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대거 퇴역시켰다. 잠수함 분야만 살펴보아도, 디젤-전동식 잠수함들인 골프급 잠수함과 팍스트롯급 잠수함, 그리고 핵추진식 잠수함들인 노벰버급 잠수함(November-class submarine), 호텔급 잠수함, 양키급 잠수함이 그 기간에 줄줄이 퇴역되었던 것이다.


이런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1993년은 북이 러시아에서 잠수함을 수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 기회에 북은 골프-II급 잠수함을 한꺼번에 12척이나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던 것이다.


지난날 소련은 골프급 잠수함을 모두 23척 건조하였는데, 1966년부터 1972년 사이에 건조된, 성능이 개량된 골프급 잠수함 14척이 골프-II급 잠수함으로 분류된다. 북이 1994년에 수입한 그 잠수함 12척은 러시아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건조한 잠수함들이었으니 북이 노후잠수함을 수입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소련 해군은 골프-II급 잠수함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퇴역시킨 것이 아니라 군비삭감조치에 따라 퇴역시켰으므로 그 잠수함은 얼마든지 계속 사용될 수 있었다. 예컨대 지금 미국이 운용하는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Los Angeles-class submarine)들 가운데 1970년대 후반에 건조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잠수함이 언제 건조되었는가 하는 것보다 평소에 얼마나 수리정비를 잘 해왔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째든 북은 소련이 건조한 골프-II급 잠수함 14척 가운데 12척을 수입하였으니, 통속적인 말로 ‘싹쓸이’를 하다시피 한 것이다. 북은 왜 골프-II급 잠수함을 그렇게 많이 수입한 것일까? 그 까닭은 골프-II급 잠수함이 덩치가 작은 디젤-전동식 잠수함이면서도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쏘는 핵공격잠수함이기 때문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 속담은 골프-II급 잠수함을 두고 하는 말로 들린다. 북의 골프-II급 잠수함 대량수입은, 북이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핵위협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강력한 핵공격잠수함대를 창설하는 전략사업의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사진 3> 이 사진은 골프-II급 잠수함이 해수면 아래 40-50m 깊이에서 잠항하면서 R-21 잠대지 핵탄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그 잠수함에는 잠대지 핵탄미사일을 쏘는 수직발사관 3문이 설치되었다. R-12 탄두부에는 800킬로톤-1메가톤급 전략핵탄 한 발이 장착되는데, 사거리는 1,650km다. 그런데 북이 그런 핵공격미사일 12척을 수입하였으니 북의 숙적들인 미국과 일본이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자주민보

 

수입한 잠수함의 수직발사관에 미사일이 들어있었다

 

골프-II급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3,553t, 함체 길이는 98.9m, 함체 너비는 8.5m, 흘수선 높이는 8.2m다. 이 잠수함은 3,880킬로와트급 전동기 3개를 돌리면서 수중에서 시속 23km로 잠항한다. 해수면 위에 전망탑(sail)을 드러내고 순항하는 항속거리는 29,600km이고, 공기흡입관(snorkel)만 해수면 위에 내밀고 순항하는 항속거리는 22,200km다. 최저작전심도는 해수면으로부터 300m에 이른다. 승조원 83명을 태우고 70일 동안 계속 작전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골프-II급 잠수함의 무장장비인데,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쏘는 수직발사관 3문이 설치되었으며, 533mm 어뢰를 쏘는 중어뢰발사관 6문도 함께 설치되었다. 중어뢰발사관은 함수에 4문, 함미에 2문이 각각 설치되었다. 수중에서 지상목표를 향해 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인 R-21은 탄체 길이가 12.9m이고 탄체 지름이 1.4m인데, 800킬로톤~1메가톤급 전략핵탄 한 발을 싣고 1,650km를 날아간다. 골프-II급 잠수함은 전시에 그런 잠대지 핵탄미사일을 척당 3발씩 싣고 출동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 잠수함이 해수면 아래 40~50m에서 시속 7.4km의 속도로 잠항하면서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 3>


만약 800킬로톤~1메가톤급 전략핵탄 3발이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강타하면 미국은 멸망할 것이다. 북이 그처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 36발을 탑재하는 골프-II급 잠수함을 무려 12척이나 수입한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경악과 충격에 빠진 쪽은 북의 숙적들인 미국과 일본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은 러시아에게 그 잠수함들을 북에 수출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러시아는 그들의 압박강도를 완화하려는 의도에서 두 가지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첫째는 골프-II급 잠수함을 북에 인도하는 작업을 보류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골프-II급 잠수함에서 R-21 잠대지 미사일과 수직발사관을 제거하고 북에 고철로 팔았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를 들은 <도쿄신붕>은 1994년 2월 2일부 보도기사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압력을 받은 러시아가 북에 골프-II급 잠수함을 인도하는 작업을 보류하였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는 북과 체결한 계약에 따라 정해진 기간에 그 잠수함들을 모두 북에 인도하였던 것이다.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 1994년 4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일본 외무성은 러시아가 북에 인도한 잠수함들이 고철로 해체되는지를 감시할 러시아 전문가를 북에 파견할 것을 러시아 정부에게 촉구하면서, 만일 북이 러시아에게 잠수함해체 현장감시를 허락하지 않을 경우 북과 러시아의 잠수함 거래를 훼방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서툰 협박이 북에게 통할 리 만무하였다. <연합뉴스> 1994년 5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골프-II급 잠수함을 고철로 해체하는 북의 작업현장에 러시아 전문가를 파견하고 싶다는 의사를 북에게 몇 차례 전했으나, 북은 러시아에게 현장감시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가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과 수직발사관을 제거한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북에 고철로 수출하였다는 미확인 정보를 들은 미국 언론매체들은 북이 실전에서 쓸 수 없는 골프-II급 잠수함을 해체하여 고철로 쓰려고 수입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북은 다른 나라에서 고철을 수입할 정도로 철생산량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더욱이 핵공격잠수함을 해체하여 고철로 쓰려고 수입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미국과 일본의 반발을 의식한 러시아는 자기들이 북에 수출한 골프-II급 잠수함의 상태에 대해 함구하였으나, 북과 러시아의 골프-II급 잠수함 수출입계약을 중재한 시바타 아리요시는 <워싱턴 타임스> 1994년 5월 24일 보도기사에서 “(잠수함들의)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제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은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과 수직발사관이 제거되지 않은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수입하였다는 말인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워싱턴자유횃불> 2014년 8월 26일 기사에서 빌 거츠는 국제평가전략센터(IASC)의 아시아군사문제 선임연구원 리처드 피셔(Richard Fisher)의 말을 인용하면서, 러시아가 북에 수출한 골프-II급 잠수함 12척 가운데 한 척에는 북과 러시아의 계약조건에 따라 SS-N-6 잠대지 탄도미사일 1~2발이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가 지적한 SS-N-6 미사일은 러시아 해군의 양키급 잠수함에 탑재되는 사거리 2,400km의 R-27 잠대지 핵탄미사일의 미국식 별칭인데, 골프-II급 잠수함 수직발사관에 R-27 잠대지 탄도미사일 1~2발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은 약간 빗나간 추정이었다. 왜냐하면 골프-II급 잠수함에 탑재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은 R-27이 아니라 R-21이기 때문이다.


시바타 아리요시가 말한 것처럼, 북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은 수직발사관이 제거되지 않은, 관리상태가 양호한 잠수함들이었다. 또한 리처드 피셔가 추정한 것처럼, 그 잠수함들 가운데 어느 한 잠수함의 수직발사관에는 핵탄두를 제거한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 1~2발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 <사진 4> 이 사진은 북에서 건군절을 맞은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 앞에서 당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었던 김광진 차수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1995년 4월 당시 놀랍게도 북은 자체 기술로 신형 핵공격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자주민보

 

북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신형 핵공격잠수함

 

골프-II급 잠수함 12척을 러시아에서 수입한 북이 그것으로 만족하였을 리 만무하다. 북은 그 잠수함 12척 가운데 적어도 한 척을 분해하여 역설계하면서 그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신형 핵공격잠수함을 독자적으로 건조하는 기술을 습득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사진 4>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사진은 2012년 7월 14일 북의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에 게시된 기록영화 ‘련속참관기-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제9회’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 기록영화에서 해설강사가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된 이 사진은 북에서 건군절을 맞은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 앞에서 당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었던 김광진 차수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1997년 불치의 병으로 별세한 김광진 차수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를 북의 주체전법과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현대화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집행하며 공을 세운 무력강화사업 책임자였다. 그런 김광진 차수가 건군절에 신형 잠수함 모형에 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은 1995년 4월 당시 북이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당시 북이 추진하기 시작한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은 골프-II급 잠수함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신형 핵공격잠수함을 자체 기술로 건조하는 사업이었다.  

 

▲ <사진 5> 북의 핵공격잠수함 모형에 나타난 특징은, 잠수함 함체 등부에 2층 공간을 얹은 것이다. 그에 따라 잠수함 함체 높이가 높아졌다. 이 모형에 따르면, 그 확장된 공간에 잠대지 핵탄미사일이 들어가는 수직발사관 10문이 설치되는 것이다.     © 자주민보



<사진 4>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을 확대한 <사진 5>를 보면, 북이 1995년 당시 개발하기 시작한 핵공격잠수함 모형에서 뚜렷한 특징이 돋보인다. 당시 북이 개발하기 시작한 신형 잠수함은 함체 등부(dorsal)에 2층처럼 생긴 공간을 얹은 독특한 구조로 설계된 것이었다. 북이 함체 등부에 2층처럼 얹은 확장공간은 수직발사관이 들어가는 공간이다.

 

▲ <사진 6> 지난날 소련은 골프-II급 잠수함에 수직발사관을 설치하기 위해 함체 밑비닥을 아래쪽으로 확장하고, 거기에서 전망탑 맨 꼭대기에 이르는 공간에 수직발사관 3문을 설치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골프-II급 잠수함의 전망탑 꼭대기에 있는 수직발사관 뚜껑을 열어놓은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민보



골프-II급 잠수함에 탑재하는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의 탄체 길이는 12.9m이므로 그 잠수함에 설치된 수직발사관의 길이는 그보다 조금 더 길다. 그래서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골프-II급 잠수함에 수직발사관을 설치하기 위해 함체 중앙부 밑바닥 공간을 아래쪽으로 더 확장하였고, 거기에 설치한 수직발사관은 전망탑 맨 꼭대기까지 이르도록 설계되었다. 그런 까닭에 골프-II급 잠수함은 R-21 잠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때,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전망탑 맨 꼭대기에 있는 뚜껑(hatch)를 열고 쏘게 된다.


골프-II급 잠수함의 공간이 일부 확장되었다고는 하지만, 확장된 공간은 그리 넓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잠수함에는 수직발사관을 3문밖에 설치하지 못했다. 그와 다르게, 북은 함체 등부에 2층 공간을 얹는 방식으로 수직공간을 크게 확장하였다. <사진 5>를 다시 살펴보면, 전망탑 앞쪽과 뒤쪽에 각각 2층 공간을 확장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전망탑 앞쪽 2층 공간에 수직발사관 5문, 전망탑 뒤쪽 2층 공간에 수직발사관 5문을 각각 설치하여 모두 10문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직발사관 10문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함체 공간이 확장된 비율에 따라 잠수함 크기도 당연히 커졌다. 이를테면, 북의 신형 핵공격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5,000t, 함체 길이가 110m, 함체 너비가 13m, 흘수선 높이가 11m인 것으로 추산된다.


북이 스텔스 잠수함을 개발하였다는 소식이 남측 언론매체에 처음 보도된 때는 2010년이었으므로, 북의 핵공격잠수함들은 당연히 스텔스 잠수함으로 개조되었을 것이다.

 

▲ 북한 당창건 65돌 기념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북한의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 10호타격부대  ©자주민보

 

▲ <사진6>은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군사행진에서 처음 공개된 화성-10이다. 이 미사일은 하부에 방향조종날개가 없는 점 등을 보아 잠수함발사 겸용으로  추정됨

 

북은 두 종류의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

 

북은 핵공격잠수함을 자체 기술로 건조하면서 거기에 탑재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도 만들었다. 북이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는 정보가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때는 2003년 9월이었다.


미국에서 조선인민군 연구자로 유명한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 Jr.)는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2004년 8월 4일부에 실린, ‘신형 미사일들을 배치한 북코리아(North Korea Deploys New Missiles)’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은 2003년에 신형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고, 2004년에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다고 서술하였다. 그가 말한, 북이 2003년에 작전배치한 신형 지대지 탄도미사일은 화성-10호다. 버뮤디즈는 화성-10호를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라고 보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것이다.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사행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화성-10호가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되어 등장하였으므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 미사일을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 화성-10호는 원래 잠대지 탄도미사일이다.


화성-10호의 탄체 길이는 6축12륜 자행발사대의 차체 길이보다 훨씬 짧아서 미사일과 자행발사대가 불균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균형한 모습은 원래 잠수함 수직발사관 안에 들어있던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공개하기 위해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옮겨 싣고 군사행진에 참가하였던 것임을 말해준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작성한 추정자료에 따르면,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의 탄체 길이는 12.9m이고, 탄체 지름은 1.4m인데, 화성-10호의 탄체 길이는 12m이고, 탄체 지름은 1.5m라고 한다. 추정자료의 수치들이 실제 수치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R-21과 화성-10호는 탄체의 길이와 지름이 서로 똑같은 잠대지 탄도미사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이 1994년에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II급 잠수함 12척 가운데 한 척은 역설계를 위해 해체하였고, 나머지 11척이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대에 작전배치되었다면, 그 11척 잠수함의 수직발사대에 들어가는, R-21과 똑같은 크기의 잠대지 탄도미사일 33발이 당연히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북은 탄체의 길이와 지름이 R-21과 똑같은 쌍둥이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화성-10호다.


북이 수입한 골프-II급 잠수함 11척의 수직발사대 33문에 들어갈, R-21과 똑같은 크기의 화성-10호를 33발을 만들기 위해 방대한 생산설비를 제작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북은 잠대지 탄도미사일과 지대지 탄도미사일로 겸용하는 화성-10호 생산체계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잠대지 탄도미사일 화성-10호가 지대지 탄도미사일로 ‘변신’하여 군사행진에 등장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위에서 인용한 버뮤디즈의 글에는 북이 2003년에 신형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고, 2004년에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다고 서술되었는데, 2003년에 작전배치된 신형 잠대지-지대지 겸용 탄도미사일이 화성-10호라면, 2004년에 작전배치된 또 다른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은 무엇일까?


북은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II급 잠수함을 역설계하여 그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신형 핵공격잠수함을 건조하였는데, 거기에 탑재할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북은 자체 기술로 건조한 신형 핵공격잠수함들에 탑재할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따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버뮤디즈의 글에서 언급된 신형 잠대지 탄도미사일이다.

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북이 2000년대 초에 개발한 두 종류의 잠대지 탄도미사일들을 화성-10호(가), 화성-10호(나)로 각각 부른다.


그런데 버뮤디즈는 자신의 글에서 화성-10호(나)의 탄체 길이와 무게, 탄두 무게, 명중률이 알려지지 않았고, 다만 탄체 지름이 1.5m라는 사실만 알려졌다고 서술하였다. 북의 핵공격잠수함 실존 여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거기에 탑재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의 제원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성-10호(나)는 북의 신형 핵공격잠수함에 탑재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이므로, 화성-10호(가)보다 크기와 무게가 조금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북의 신형 핵공격잠수함 한 척당 10발씩이나 탑재되는 잠대지 미사일이 골프-II급 잠수함에 한 척당 3발씩밖에 탑재되지 않는 잠대지 미사일에 비해 크기와 무게가 조금 축소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화성-10호(가)는 탄체 길이 12m, 탄체 지름 1.5m, 탄체 무게 12t, 탄두 무게 1,000kg, 사거리 4,000km이며, 그 가격은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포함하여 한 발에 1억 달러가 넘는다.


화성-10호(나)가 화성-10호(가)에 비해 크기와 무게가 조금 축소되었다면, 탄체 길이는 12m에서 10m로, 탄체 무게는 12t에서 10t으로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체 지름은 버뮤디즈가 지적한 것처럼 서로 같은 1.5m이고, 탄두 무게는 다탄두인 경우 1,000kg이고 단탄두인 경우 650kg인 것으로 보인다. 군사행진에 등장한 화성-10호 탄두부가 우유병 꼭지처럼 뭉툭하고 크게 생긴 것은 그 미사일에 다탄두가 장착되었음을 의미한다. 화성-10호에 장착된 다탄두에 관해서는 2011년 8월 15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우유병 꼭지’ 보고 놀란 미국의 태도변화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697’에서 논한 바 있다. 


지난날 소련이 1970년대 기술로 만든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1,650km인데, 북이 2000년대 기술로 만든 잠대지 탄도미사일들인 화성-10호(가)의 사거리는 4,000km로 확장되었고, 화성-10호(나)의 사거리는 3,000km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북의 잠대지 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핵탄두는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지난날 소련이 1970년대 기술로 만든 R-21 잠대지 탄도미사일에 장착된 핵탄두 한 발은 800킬로톤~1메가톤급 전략핵탄이었는데, 북이 2000년대 기술로 만든 잠대지 탄도미사일들 가운데는 그만한 폭발력을 가진 전략핵탄을 장착한 것도 있고 핵폭발력을 그보다 감소시킨 전술핵탄을 장착한 것도 있고, 다탄두 핵탄을 장착한 것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사진 7>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부문을 시찰하는 모습을 촬영한 이 사진은 북의 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 2 조국수호의 전초선에 계시여'에 나오는 것이다. 시찰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진에 나타난 것은 신형 잠수함 함체다. 그것이 신형 핵공격잠수함인지, 아니면 다른 신형 잠수함인지 알 수 없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할 막강한 핵공격잠수함대를 창설한 것은 한반도 군사전략균형을 뒤집은 획기적인 사변이 아닐 수 없다.     © 자주민보

 

미국의 종말을 경고하는 북의 신형 핵공격잠수함

 

북이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기 위해 설계공정, 시제품 건조공정, 시험운항공정, 생산설비 건설공정, 건조공정, 잠대지 탄도미사일 개발공정 등을 거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보면, 북은 늦어도 2002년부터는 신형 핵공격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이 신형 핵공격잠수함을 건조하는 능력을 연간 1척씩이라고 하면, 2002년부터 오늘까지 12년 동안 북은 신형 핵공격잠수함 12척을 건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이전에 러시아에서 수입한 골프-II급 잠수함 11척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인민군 해군 핵공격잠수함대에는 핵공격잠수함 23척이 작전배치된 것이다.


그 23척 핵공격잠수함에 탑재된 잠대지 탄도미사일은 모두 153발이다. 전시에 그 미사일 153발에는 단탄두만이 아니라 다탄두도 장착될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해군 핵공격잠수함대는 전략핵탄과 전술핵탄을 153발 이상 보유한 초강력한 잠수함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의 도입부에 미국 정찰위성이 북의 신형 잠수함을 지난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기간 중 어느 날에 촬영하였다는 빌 거츠의 기사를 인용하였는데, 북의 핵공격잠수함이 해수면 위로 떠올라 미국 정찰위성에 자기 모습을 노출한 것은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잠수함실동훈련을 실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핵공격잠수함을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한 것은, 미국이 북의 핵무력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핵공격잠수함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북의 핵공격잠수함을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였을 때, 미국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컸다. 정신적 충격을 받고서 얼마나 급했던지, 당시 필리핀해에서 머물다가 긴급출동명령을 받고 전속력으로 북상한 7함대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는 일본 사세보항에 들러 군수지원을 받을 새도 없이 부산항으로 허겁지겁 직행하여 거기서 군수지원을 받았다. 조지워싱턴호가 황급히 부산항에 나타난 날은 지난 7월 11일이다. 미국은 그처럼 조지워싱턴호를 한반도 남해로 긴급출동시킨 가운데, 원래 10월에 실시하던 한미일 해상연합훈련을 앞당겨 7월에 서둘러 실시하며 부산을 떨었다. 이것은 미국이 받은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미국이 항모타격단을 한반도 남해에 긴급출동시킨 것은 패착이었다. 해수면 위에서 자기 위치를 노출한 채 움직이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해수면 아래 바다속에서 자기 위치를 노출하지 않고 은밀히 움직이는 조선인민군 해군 핵공격잠수함대를 당해내지 못한다. 스텔스 잠수함 자체가 막강한 전략무기인데, 거기에 더하여 절대무기인 잠대지 핵탄미사일까지 153발 이상 보유한 북의 초강력한 핵공격잠수함대는 은밀성과 타격력에서 이미 미국의 7함대 항모타격단을 압도하는 것이다.


북의 핵공격잠수함 출현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미국이 항모타격단을 남해로 긴급출동시킨 그 이튿날 북측 국방위원회는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담화에서는 “지난 세기의 <포함외교>나 다름없는 미국의 핵공갈과 위협에 놀랄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이) 부질없는 핵공갈과 위협에 매달릴수록 첨단수준에서 항시적인 타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우리의 자위적 핵무력은 더욱 더 강화될 것”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북의 스텔스 핵공격잠수함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위의 경고가 미국의 종말을 경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전시에 북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초정밀 전술핵탄미사일로 선제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대북핵공격을 개시하려는 징후를 보이는 경우, 북의 스텔스 핵공격잠수함들은 해수면 아래서 은밀히 잠항하여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뚫는 최적의 공격위치로 이동한 다음, 핵탄이 장착된 잠대지 탄도미사일을 쏘면서 동서남북에서 미국 본토를 향해 전방위동시다발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미국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지금 북의 신형 핵공격잠수함들은 미국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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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다시 국회'로... "힘 모으겠다"

세월호 유가족 '다시 국회'로... "힘 모으겠다"

여당 '민생법안 처리' 주장에 "고통으로 내모는 법 민생이라 속여"

14.09.14 18:10l최종 업데이트 14.09.15 08: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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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 해달라"고 촉구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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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 봄이었던 계절이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았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5개월여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화문, 국회, 청와대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해답만을 기다려 왔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 법안을 분리 처리해 시급한 민생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오는 15일 단독 본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세월호 가족 대책위는 다시 '국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월호 가족 대책위는 14일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이 지났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아갈 것"이라며 "오늘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 대책위 대변인은 "서울에만 세 군데서 자리 잡고 있는데 당분간 가족 인원은 국회에 집중될 것 같다"라며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잘하도록 격려도 하고 항의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민생법안? 평행수 뺀 세월호처럼 위험 사회로 내몰 법"

세월호 가족 대책위는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민생법안'에 대해서 "안전을 근간으로 하지 않은 민생법안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 일갈했다. 이들은 "민생법안은 서민들에게만 세금을 많이 내라는 것이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의료비를 폭등시킬 우려가 높은 의료 민영화법"이라며 "이는 평행수를 뺀 세월호처럼 대한민국을 위험 사회로 내몰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대책위는 "더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모는 법안을 민생 법안이라 주장하면서 국민들을 속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며 "거짓 민생을 강조하기 전에 진짜 민생법안인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가족대책위는 '국민간담회'를 병행할 예정이다. 대학교, 지역 모임 등 세월호 참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곳에 직접 찾아가 설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가족 대책위는 일반인 생존자, 화물 피해자, 선원 피해자들의 고통을 헤아려줄 것을 부탁했다. 유 대변인은 "지난 추석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내면서, 그럼에도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건 많은 국민이 우리를 기억해주고 광화문에서 함께해주는 걸 보면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며 "세월호에는 우리 아이들만 타고 있던 게 아니다. 일반인 희생자, 생존자들, 선원들도 있다, 그 분들에게도 관심을 보내주시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위한 여야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1일에 이어 13일 연달아 회동했지만 기존 방침을 고수해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세월호 특별법 협상 무산에 이어 당 비상대책위원장 외부 인사 영입까지 무산된 박영선 원내대표가 진행하는 논의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도 '지지부진'의 또 다른 이유다. 애초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을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만나지 않기로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정기국회 정상화를 위해 오는 15일 여야 지도부 연석회의를 소집할 계획이지만, 새정치연합이 내홍으로 이에 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일단, 정 의장은 새누리당 단독 본회의 소집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최형두 국회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정 의장은 특별법 합의 가능성이 멀지 않고 시급하게 타결지어야 하는 만큼 내일 본회의는 여야 입장을 살펴 결정하겠다는 생각"이라며 "여당 단독이라고 야당이 반발하면 장기 파행을 거듭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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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원내대표 곧 사퇴 표명할 듯…탈당까지 언급

등록 : 2014.09.15 01:12수정 : 2014.09.1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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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생법안 관련 정책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처럼 생각이 다른 의원들과 함께 할 수 있겠나” 
새정치 ‘영입 파동’ 후폭풍…오늘 의총 고비 될 듯

두차례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와 외부 인사의 비대위원장 영입 실패로 인해 당내에서 원내대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을 뜻을 밝혔다고 14일 측근들이 전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곧바로 사퇴할 경우 지도부 공백이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시기와 방법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핵심 측근들과 연 비공개회의에서 의원들이 여러 모임을 열어 자신의 원내대표 사퇴론이 쇄도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처럼 생각이 다른 의원들과 함께 할 수 있겠느냐”며 한때 탈당까지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후임 비대위원장을 먼저 선출한 뒤 원내대표직을 그만둘 것인지, 원내대표 사퇴 표명을 먼저할 것인지 등을 고민중인 것으로 복수의 당 관계자들이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은수미, 최민희, 최규성, 홍영표, 유승희 의원(왼쪽부터) 등이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모임을 열어 당의 진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날 모임에는 최재성, 우원식, 이목희, 오영식, 김용익, 도종환, 전해철, 노영민, 이원욱 의원 등도 참석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날 오후 우원식·유승희·은수미·최규성·최재성 등 15명의 의원 등은 긴급모임을 열어 박영선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박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같은 당 의원들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라고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다만 대책 없이 유일한 선출직인 박 원내대표가 즉각 사퇴할 경우엔 당이 공중분해되기 때문에 갈무리를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주현 이승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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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꼼수까지, 역대 최단기 ‘이명박기념재단’ 설립

 
 
 
MB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임병도 | 2014-09-15 08:33: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가 퇴임 1년 6개월 만에 '이명박 기념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명박 기념재단은 자산 총액 6억 2500만 원으로 8월 14일 정부의 설립 인허가를 통과하고 8월 19일 등기를 마쳤습니다.

이명박 기념재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을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지구촌 공동체 동반 성장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명박 기념재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에 대한 교육·연수·연구·편찬·출판·홍보 및 국제 협력,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자료·물품 등 사료의 수집·정리·열람 및 전시, 이명박 대통령 기념관·도서관 등 기념 시설 설립·운영'등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합니다. 



' 역대 최단기 대통령 기념재단 설립'

MB의 '이명박 기념재단' 설립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너무 빨랐기 때문입니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 중 기념재단이 설립된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김영삼 기념재단은 1998년 퇴임 후로부터 12년 뒤인 2010년 6월 10일 설립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대통령 기념 재단'이 가장 빠른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기념재단은 2009년 10월 30일에 설립됐는데, 2008년 2월 24일 퇴임부터 계산하면 약 1년 8개월 만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설립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기념재단도 김 대통령의 서거 이후인 2011년 9월 15일에 설립됐습니다. 즉 대부분의 대통령 기념재단은 퇴임 후 10년이 지나거나 서거 이후에 설립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MB는 퇴임 후 불과 1년 6개월 만에 '이명박 기념재단'을 설립해, 역대 대통령 중 최단기 '대통령 기념재단'을 설립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 재임 기간에 법까지 개정하며 꼼수를 부린 MB' 

MB가 자기 돈으로 '이명박 기념재단'을 설립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개인의 활동이니 비판이 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직 대통령 시절 철저히 자신의 퇴임 이후를 준비하며 꼼수를 부렸습니다.

 

 

 

2011년 MB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시켜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6조의 2(기념사업의 지원)에 명시된 지원 내용을 대폭 확대합니다. 

'문서,도화 등 전시물의 대여나 사업 경비의 일부 보조' 등으로 한정되었던 기념사업 지원 내용이 개정령에는 <전직 대통령 기념관 및 기념 도서관 건립 사업>이 포함됩니다. 

여기에 <기록물,사료 수집 정리 사업>, <업적 연구 편찬 사업>, <전시 열람 사업>, <학술 세미나 강좌 사업>,<국제 학술회의 개최 사업> 등으로 엄청나게 세분화시켜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령을 보면 '이명박 기념재단' 등기부 등본 목적에 있는 '교육,연수,연구,편찬,출판, 홍보, 국제 협력, 열람,전시' 등의 내용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원래 기념도서관 등은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거 이후 전직 대통령 예후 차원에서 국고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1그러나 MB는 퇴임 1년 6개월 만에 기념도서관을 설립하겠다고 하면 반발이 생길까 봐 아예 법으로 명시해버린 것입니다. 

퇴임 이후까지 미리미리 준비해놓은 그의 철저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 MB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MB의 '이명박 기념재단'의 가장 큰 문제점은 꼼수를 부려 법을 개정한 부분 이외에 아직도 그에 대한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명박 기념재단' 목적에서 밝힌 주요 사업에는 '녹색성장'이 있습니다. 이는 4대강 사업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일인데, 이 사업이 과연 기념할만한 사업인지는 의문입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나왔듯이, 4대강 사업은 후손에게 경제적 부담과 환경 파괴를 안긴 실패한 사업입니다. 아직 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도대체 '녹색성장' 사업을 홍보하겠다는 이명박 기념재단을 보면 황당하기만 합니다.

그가 4대강 사업을 해외에 알리면 알릴수록 더 국격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말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MB정권은 2008년 12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을 폐지했습니다. 이 법은 단순히 3.15부정선거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개정안을 만들었다면 대선이나 정치 공작을 엄중하게 법으로 금지할 수 있는 요소를 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폐지됐습니다.

선거가 있는 해에 정치개입은 있었지만,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독대를 했던 인물이 MB입니다. 국정원장 독대를 금지했던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다시 정보기관에 의한 정치 개입이 있었던 것입니다.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대통령이었던 MB도 수사 대상에 있어야 하지만 그는 아무런 수사조차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라고 지원을 받는다면 그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더 엄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MB가 퇴임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심판이나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혜택과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헌법상의 임기는 형식적 5년입니다만 정신적으로는 종신'이라는 이병석 당시 국회부의장의 말을 바꿔 말하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과 역사의 공소시효는 '종신'이어야 합니다.

1. '김대중도서관'은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이 도서관 건물과 노벨평화상 상금, 2만 6천여 건의 자료와 도서를 기증하며 설립됐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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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조세 정책, 최악의 건강 정책

최악의 서민 증세, 대처도 그러다 피 봤다!

[서리풀 논평] 최악의 조세 정책, 최악의 건강 정책

 
 
 
아마도 최악의 조세 정책과 최악의 건강 정책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정부가 내놓은 담뱃세 인상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설마 '최악'일까 하겠지만 두고 보면 알 일. 설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안이 바뀌더라도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먼저 건강 정책부터 보자. 금연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물론 잘 알 것이다. 이번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젠 대중이 공유하는 지식의 수준도 꽤 높다.
 
우리 연구소는 벌써 3년 전에 담뱃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바로 보기)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흡연의 불평등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해결하지 못하면 전체 흡연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담배 규제 정책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가격 정책과 비가격 정책 모두를 강화해야 한다. 가격만으로 흡연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몇 가지 비가격 정책을 같이 발표했지만 면피용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셋째, 담뱃값을 인상한다면 어떻게 쓰는지가 명확하고 합당해야 한다. 담배를 사는 사람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담배 부담금 자체의 소득역진성과 흡연율
 
빈곤층과 취약 계층의 흡연율이 더 높다. 담배 정책이 이 문제를 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고려할 때, 흡연자에 대한 의료 및 금연 서비스 제공에 좀 더 집중적으로 쓰여야 한다."
 
건강증진기금이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쓰여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러 군데서 지적했으니 더 상세하게 보태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강증진기금은 전체가 여전히 요령부득이다. 처음부터 나온 지적인데 갈수록 더 거세지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담배 정책은 건강 정책 가운데서도 동의와 지지를 받기 쉬운 편에 속한다. '도덕적' 정책이라고 할까. 반대한다 하더라도 소극적이거나 현실론(예를 들어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에 머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정책 시행에 유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얼마나 일관성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특히 기업의 탐욕과 왜곡된 경제 논리, 그리고 말초적 정략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담뱃값 인상은 아예 건강 정책을 포기했다. 그동안 내팽개친 정책들을 마지못해 덧붙였으나 때는 늦었다. 건강 정책 비슷하게라도 보이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믿음을 얻었어야 했다.
 
그동안 담배 규제 정책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궁금하면 2012년 11월 12일의 <서리풀 논평>을 참조하시라. (☞관련 기사 : 참가국 176개 서울 국제 행사, MB는 왜 외면하나?)
 
결국 이번 담뱃세 인상은 건강 정책의 허울을 쓴 '서민 증세'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성과 진정성은 약화되고 꼼수 증세의 들러리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다. 최악의 건강 정책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정책은 또한 조세 정책으로서도 실패다. "결과적으로 증세"라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오만하고 부도덕한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꼼수와 겁박으로 인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실패는 변하지 않는다.
 
공약한 복지 정책을 최소한으로 하는데도 증세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정권의 애처로운 고백이다. 그렇다고 서민의 부담과 고통이 정당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장 역진성이 높은 세금을 올리고, 게다가 이젠 주민세와 자동차세까지 같이 올리겠단다.
 
올린 담뱃세는 주로 안전에 쓰겠다고 그럴싸한 용처까지 미리 생각해 놓은 모양이다. 복지 증세라는 말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나, 보통 사람들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일반 재정에 무슨 꼬리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용도를 지정했다?
 
실패로 보는 더 중요한 이유는 납세자의 불신에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조세 정책에 무슨 믿음이랄 것이 있었느냐고 되물으면 할 말은 없다. 조세 정책과 운영, 조세 당국을 믿지 못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이번 담뱃세 소동은 그렇지 않아도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완전히 없애 버린 꼴이다. 그 덕분에 앞으로 모든 조세 정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없다. 재원 마련이 목적이든 또는 소득 재분배가 목적이든 마찬가지다. 경제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을 목표로 해도 조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공공 재정의 기반을 확충하는 데에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이번의 실패는 또한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증세의 꼼수 정치를 스스로 감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에 충실하므로, 스스로는 성공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다시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장과 단기도 장담하기 어렵다. 서민 증세의 폭발력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강했던 영국 대처 총리가 1990년 왜 자리에서 물러났던가. 바로 '서민 증세'가  직접 원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당시 보수당이 새로 도입한 주민세는 세대당이 아닌 가족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게 했다. 누가 봐도 소득 역진적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인두세다. 스코틀랜드에서만 이 세금의 미납자가 5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관련 기사 : 영국서 주민세 반대 최악의 유혈 폭동 발생). 전국적으로 항의와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유혈 폭동까지 발생했다.
 
ⓒtopincomes.g-mond.parisschoolofeconomic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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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기 영향이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은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되고 있다. 며칠 전 국내 신문에도 보도된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s Database)>에서 생생한 실상을 직접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보기)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상위권이다(이젠 놀랍지도 한다). 상위 1% 또는 10%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하든,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등 안에 든다.
 
게다가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같은 사이트에서 직접 그려본 것을 아래에 첨부했다. 위쪽은 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 아래쪽은 상위 10%의 비중이 변하는 추세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가 시작된 이후 추세는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다.
 
ⓒtopincomes.g-mond.parisschoolofeconomic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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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당에 소득 역진성이 강한 간접세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집하는 '부자 감세'와 짝을 이루어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킬 뿐이다. 아예 조세 정책의 파탄을 감수하기라도 할 참인지.
 
최악의 조세와 건강 정책을 마주한 심정은 참담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세와 건강 정책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일단 담뱃세 인상과 증세를 완전히 분리하라.
 
건강 정책이라는 점에서 담뱃세 인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확인한 것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담뱃세를 증세 논의에서 떼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담뱃세를 활용할 수 있도록 건강 정책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을 덧붙여 강조한다. 현재로서는 담뱃세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정책, 사업, 체계, 인력, 기술과 지식 등 모든 것이 허약하다. 건강증진기금이 많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쓸 방도가 없다(1인당 얼마씩 그냥 나눠줄 수야 없지 않은가).
 
조세 정책도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도 이미 여러 차례 주장했고, 사회적 합의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소득의 형평성을 강화하는 증세에 그리 큰 반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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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재가동 1년, 어디까지 왔나

개성공단 재가동 1년, 어디까지 왔나[친절한 통일씨] 개성공단의 역사와 현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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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14  19: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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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동 10년, 재가동 1년의 개성공단 전경. [자료사진-통일뉴스]

오는 16일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재가동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개성공단은 2004년 6월 시범단지가 준공된 뒤 부침을 거듭하며 발전해왔다.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 당국과 현대그룹 등 민간기업이 함께 만들어 간 개성공단은 지난 2013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빌미로 3월 북측이 군 통신선을 차단하고, 4월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하더니, 급기야 북측 김양건 대남담당 당 비서가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남측도 개성공단 현지 인원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10년도 채 못돼 개성공단에서 160여 일,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북한 말로 '쉬쿵한' 소리가 멈춘 것이다.

그러나 남북 당국 간 계속된 협의 끝에 지난해 8월 재가동에 합의, 9월 16일 북측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개성공단은 남북 간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일컫는다. '5.24조치'로 인한 남북 간 경제협력 중단, 금강산.개성관광 중단 등 남북 간 경색국면 속에서 개성공단은 남북 화합의 마지막 상징이었다.

가동 10년, 재가동 1년의 개성공단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발전해왔는가. 개성공단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살펴보자.

   
▲ 개성공단 내 신발공장에서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들. 개성공단 재가동 직후 모습이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개성공단의 출발 배경과 과정

개성공단은 민간기업의 요구와 당국의 뜻이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2000년 6.15선언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6.15선언은 1988년 '7.7선언'과 때려야 땔 수 없으므로 남북 경제협력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11월 남북 경제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남북 간 경제협력의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1985년 5차 남북 경제회담을 끝으로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1988년 노태우 정부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 뒤이어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7.7선언'에는 경제인을 포함해 남북 주민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허용하고, 남북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간주, 문호를 개방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우방국들의 대북교역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분단 이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개성공단 착공식이 2003년 6월 30일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후, 김대중 정부는 남북경제공동체 구축을 핵심으로 담은 '베를린 선언'을 발표, 2000년 6.15선언을 통해 남북 간 대결국면을 화해협력 국면으로 전환, 대표적으로 개성공단 건설의 토대가 됐다.

개성공단 건설 협의는 2000년 8월 현대그룹과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합의서 체결로 본격화됐다.

2000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평양을 방문, 공단 개발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개성지역을 공단 후보지로 제시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0일부터 사흘간 현대의 공단부지 조사단이 개성지역을 조사했다.

이어 현대그룹과 북측 아태위.민경련은 8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경협사업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서와 함께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 개성공단 건설의 남북 민간 합의가 이뤄졌다.

남북 당국도 개성공단 건설을 위해 수차례 당국 간 회담을 가졌다. 2002년 4월 당시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평양을 방문, 개성공단 건설에 대한 협의가 있었고,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 2004년 10월 20일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건설 착공식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리고 2002년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에서 북한의 개성공단지구법 제정을 합의, 2003년 제5차 경추위에서 개성공단 착공식 개최에 합의, 2003년 6월 30일 역사적인 개성공단 착공식이 열렸다.

당시 착공식에 참석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많은 개성주민의 환대를 받으며 89년 정주영 고 현대 명예회장의 방북 이래 15년여 만에 착공식을 갖게 됐다"고 감회를 표시했고, 북측 최현구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6.15공동선언이 낳은 뜻깊은 결실이다. 고려 이후 경제 중심지였던 개성에 북남 공동번영의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2004년 6월 시범단지가 조성되고 기업이 본격 입주한 뒤 같은 해 12월 첫 생산제품이 반출된 가운데,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협력해왔다.

남북은 수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에서 △개성공단의 내실 있는 추진을 위한 협력 및 안정적 투자여건 조성(15차, 2005년 6월), △2단계 개발 조속 추진(16차, 2005년 9월), △경협을 통한 공동번영(17차, 2005년 12월 / 18차, 2006년 4월), △개성공단 활성화(20차, 2007년 2월) 등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2차 경추위에서 개성공단 본격협상 개시 이후, 13차 경추위에 이르기까지 남북은 △개성공단의 국제경쟁력 확보 및 이를 위한 법.제도 정비, △통행.통신.통관 간소화, △입주기업 애로사항 해결 등 실질적 합의를 해왔다.

   
▲ 2013년 현재 개성공단 전경. [자료사진-통일뉴스]

그 결과 '개성공업지구법',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을 비롯하여 4개 합의서와 4개 경협 합의서, 5개 기타 관련 합의서 등 개성공단 발전을 위해 남북은 합의 성과물을 내놨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필요에만 의한 것이었을까? 당시 북측에서도 개성공단은 중요한 과제였다. 북측은 1984년 합영법과 함께 1991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개발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나섰고, 2002년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금강산관광지구 등을 지정하면서 경제특구를 마련했다.

이어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를 지정,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하는 등 개성공단을 중요시했다.

정경분리 원칙이 사라진 개성공단의 위기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발전의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만은 아니다. 남북 간 정치적 문제는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못했고, 개성공단도 피할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6월 북측은 남측의 통행.통신.통관(3통) 합의 불이행을 주장하며 인력.물자 통행 시간제한을 통보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공단 체류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 남북 통행시간대와 통행 인원을 축소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다 2009년 현대아산 소속 유성진 씨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탈북을 조장했다는 혐의로 136일 동안 억류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데리고 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발생으로 남측이 '5.24조치'를 발표, 개성공단 발전의 길이 막혔다. 2단계 개발은 고사하고 신규투자조차 금지됐고, 이에 북측은 육로통행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경고한 뒤, 남북 교류협력 관련 군사적 보장을 전면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5.24조치'이후 갈림길에 선 개성공단은 2013년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빌미로 가동중단이라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 2013년 4월 북측의 근로자 철수조치에 남측도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렸다. 당시 개성공단에 있던 남측 근로자들이 차량을 이용, 생산품을 싣고 도라산CIQ를 넘어오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개성공단을 떠나는 남측 차량 위로 수많은 생산품이 바리바리 실려 나오는 장면을 두고 한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과 흡사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남북 당국은 극적으로 협의를 시작, 8월 14일 7차에 걸친 실무회담 끝에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개성공단 중단사태 재발방지 및 정상운영 보장, △신변안전보장 및 투자자산 보호, 통행.통신.통관 문제 해결, △개성공단 국제화,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설치.운영, △출입.체류, 투자자산 보호 제도적 장치 마련 등 5개 항에 서명했다.

그리고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 관련 사항을 논의했으며, 지난 6월 5차 개성공단 공동위원장단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이 밖에도 개성공단에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설립 이후 2013년 현재 남측 근로자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근로자를 비하하고 음주난동, 문화재 밀반입 등으로 15명이 추방됐다.

그리고 2009년 이후 2013년까지 92건의 산업재해, 27건의 교통사고, 19건의 화재, 4건의 형사사건 등 142건의 각종 사고가 발생했고, 최근에는 개성공단 내 한 공장에서 '벤젠'으로 추정되는 화학물질에 인한 산업재해가 처음 발생했다.

가동 10년, 재가동 1년 개성공단의 현재

개성공단은 2003년 첫 삽을 뜨고, 2004년 본격 가동과 첫 생산품 반출 이후 10년의 역사를 지녔다. 그리고 2013년 가동중단이라는 최대 위기를 겪고 재가동된 지 1년이 됐다. 가동 10년, 재가동 1년의 역사를 지닌 개성공단의 현재 모습은 어떠할까.

남북 간 합의로 터를 잡은 개성공단은 황해북도 개성시와 판문점 평화리 일대 총 66.1km², 약 2천만 평의 부지에 있다. 평양-개성공단 2시간, 개성공단-서울.인천 1시간 거리라는 입지적 조건을 가져 서해 삼각 경제권역으로 불린다.

   
▲ 개성공단 총 계발계획. 3단계 사업이지만 현재 1단계 사업에 그친 수준이다. [자료출처-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총 계발계획은 1단계 3.3km²(1백만 평), 2단계 8.3km²(250만 평), 3단계 18.2km²(550만 평) 사업과 함께 개성시와 확장구역까지 36.3km²(1천1백만 평) 확대개발계획이 있다. 하지만 현재 개성공단은 1단계 사업에 머물러 있으며, 이마저도 시범단지 조성 이외에는 확장되지 못한 상황이다.

2011년 현재 총 210개사가 분양을 받았지만 2014년 현재 125개사가 입주했으며, 나머지 기업은 '5.24조치'로 인해 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첫 15개 기업에 비하면 입주업체 수가 늘어난 것이다. 재가동 이후 2개 사가 신규 입주했다.

업체별 개성공단 분양단가는 4만 5천 원/㎡, 평당 14만 9천 원으로 2054년 4월 12일까지 토지사용권을 부여받는다. 이는 구미4단지(39만 원), 시화공단(150만 원), 중국 상해 금교(45만 원), 베트남 딴뚜언(40만 원)에 비해 평당 분양가격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업종별로는 섬유가 73개로 가장 많고, 기계금속 24개, 전기전자 13개, 화학 9개, 종이목재 3개, 식품 2개, 비금속광물 1개 등이다.

북측 근로자는 2005년 당시 약 6천 명이었으나 2014년 6월 현재 5만 2천742명, 여성이 70.6%, 평균연령은 37.9세로 20~40대가 대부분이다.

북측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각종 수당을 합해 평균 130.8달러(약 13만 5천 원)이고, 최저 월급은 60.05달러(약 6만 2천 원) 수준이다. 연간 인건비 총액은 8천7백여만 달러 규모다.

   
▲ 개성공단 생산액 및 북측 근로자 현황 [자료출처-통일부 홈페이지]

개성공단 생산액은 본격 가동이 시작, 첫 집계가 된 2005년 1천491만 달러(약 154억 원)이었으나, 2012년에는 4억 6천 950만 달러(약 4천855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중단 여파로 2013년 2억 2천378만 달러로 반토막났다.

2014년 6월 현재 2억 2천895만 달러(약 2천367억 원)로 예년 수준을 회복, 개성공단 가동 10년의 누적 생산액은 23억 685만 달러(약 2조 3천857억 원)이다.

개성공단 내에는 입주기업 외에 철도, 도로, 전력, 통신, 정배수장, 폐수종말처리장, 폐기물처리장 등 인프라가 구축됐으며,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탁아소, 소방대, 협력병원 등 지원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남북 간 합의에 따라 북측이 부지를, 남측이 설비를 제공했다.

개성공단 운영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위원장 홍양호)가 맡고 있다. 이는 남측에서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으로 부른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는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단장 이강우)이 담당한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 위치, 남측 기업의 창구역할을 일임한다.

북측은 당국 차원에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있으며,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통해 남측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와 함께 기업을 관리한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중단 이후 남북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설치, 당국 간 협의창구로 활용하고 있으며, 통행.통신.통관(3통) 분과위원회, 출입체류 분과위원회,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 분과위원회, 국제경쟁력 분과위원회 등을 두고 해당 논의를 진행하며, 사무처를 개성공단 내에 상주, 연락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재가동 이후 개성공단의 모습. 북측 근로자들이 점심시간에 나오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과제

남북은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협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5.24조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북 간 논의는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발전의 핵심인 통행.통신.통관 문제는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무선인식(RFID) 기계를 설치해 일일단위 상시통행에 대해 합의했지만,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개성공단 내 인터넷 사용 문제, 통관 간소화 문제 등도 답보상태이다. 심지어 휴대전화 등 반입금지품목에 북측은 벌금부과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제재 수위를 높여 개성공단 일시 통행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여기에 개성공단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사건을 다룰 남북 공동기구인 '상사중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지난 3월 첫 회의 이후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해 외국계 기업 투자유치를 위한 '외국인 투자지원센터'가 최근 문을 열었지만, 외국계 기업은 3통 문제를 이유로 투자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는 분기별 개최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1분기 회의는 열리지 못했고, 지난 6월 7차 회의를 가졌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귀환길에서 개성공단을 둘러봤다. [사진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무엇보다 개성공단 발전의 열쇠는 '정경분리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5.24조치'는 개성공단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셈이다.

대북투자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5.24조치'는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 발목을 잡고 있다. 1단계 사업을 2단계로 확대해야 하지만 1단계 사업마저도 '5.24조치'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기존에 분양받은 업체들은 '5.24조치'로 인해 개성공단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고, 북측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 문제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구상하는 개성공단 국제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기업인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를 외치는 남측의 요구에 '5.24조치' 철회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북측의 입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측 근로자들의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물론, '5.24조치'가 해제되지 않는다고 해서 3통 문제나 신변보장 문제 등이 답보상태에 있을 이유는 없다. 남북이 개성공단을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서로가 통 크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현재 비정상적인 개성공단 상황이 기존 계획대로 정상화되고 국제화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가동 10년, 재가동 1년을 맞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와 국제화는 '5.24조치' 존폐 유무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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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낙하산' 이석채의 KT, 비리 집합소 되다!

'MB 낙하산' 이석채의 KT, 비리 집합소 되다!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②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한다. 이 기획은 추상적인 논쟁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정책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두 번째 기획이었던 MB 정부의 자원외교에 이어 이번에는 기업비리 및 특혜에 대해 알아보겠다. MB 정부가 친기업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개입해 경제 비효율성을 증가시키고 비용을 발생시킨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회에서는 KT를 조명한다. 편집자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① 부실 논란 제2롯데월드, 알고보니 특혜? 

 

 

KT는 정부의 지분이 0.1%도 없는 완전한 민영기업(1)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말 기준 KT의 주요 주주 지분 비율은 외국인 43.9% (NTT도코모 5.46%, 실체스터 5.01%), 국민연금 8.65%, 자사주 6.6%, 미래에셋자산운용 4.99%, 우리사주 1.1%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꾸기만 하면 KT의 사장(이석채 이후부터는 회장)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고 임기가 끝날 무렵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를 받는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임명된 이석채 회장은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 시장 규범을 외면하고 독단적으로 임명한 인사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잘 보여준다.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2009년 1월 KT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말이 오고 갔다. KT 사장추천위원회는 “이석채 사장 후보는 KT의 비전 실현과 혁신에 필요한 기획력과 추진력에 있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또한 KT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전략적인 사고능력이 뛰어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KT의 경영혁신을 주도하여 주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해서 장기적인 가치증대를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후보자로 평가됐다"(2)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통신업계와 KT 내부에서는 이석채 회장을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KT 정관은 “최근 2년 이내에 KT 경쟁업체와 공정거래법상 동일기업군에 속하는 업체에 임원으로 있던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LG전자와 SK C&C 사외이사로 있었던 이석채 회장은 사장 후보로 응모할 자격조차 없었다.

 

결국 KT 사장추천위원회는 ‘정관을 개정한다는 조건’으로 이석채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는 꼼수를 부리게 된다 (<한겨레>, 2008. 12. 09). 이러한 환경 하에서 KT 사장으로 임명된 이석채 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성에 관계없이 정부 및 권력기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를 무리하게 영입함으로써 또 다른 왜곡을 낳게 된다. 

 

 

▲이석채 전 KT 회장 ©연합뉴스

▲이석채 전 KT 회장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말해, 주주가 알아서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인 KT사장 임명이라는 현안에, 개입할 자격이나 권한이 하나도 없는 정부가 무리하게 직접적인 개입을 함으로써 중요한 기간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산업의 경쟁력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무리한 방식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임명된 이석채 회장은 2009년 3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KT에 다양한 형태로 손해를 입히게 된다. 언론과 검찰에서 발표된 중요한 혐의를 모아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무궁화 위성 불법 매각 △ KT 사옥 39곳 중 28곳 헐값 매각 △ 친인척 회사 과다투자 또는 고가인수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 4년 임기 동안 임직원에게 지급한 상여금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2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1) 무궁화 위성 불법 매각

 

KT샛(KT 위성사업 자회사)은 2011년 9월 무궁화 2호와 3호 위성을 각각 40억4000만 원과 5억3000만 원에 홍콩 위성서비스 회사 ABS(Asia Broadcasting Satellite)에 매각했다. 설계수명(3)이 다했다는 이유였다. 설계수명이란 보험계약을 위한 품질보증기간을 말한다. 무궁화 2호 위성은 설계수명이 10년으로 1996년에 발사되었으며, 무궁화 3호 위성은 설계수명 12년으로 1999년에 발사되었으니, KT샛의 설명은 명목상으로는 맞는다. 하지만, 위성체는 설계수명보다 연료수명(4)이 더 중요하다. 설계수명이 끝나면 보험료가 약간 올라가게 되지만,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계속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료수명은 위성체가 가지고 있는 액화가스 연료 잔여량에 의해 계산된다. 위성체의 연료가 바닥나면 자세제어가 안되므로, 안테나 방향이 서서히 틀어지고 위성체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수명이 다하게 된다. 잔여연료량은 지상 관제소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므로 잔여 연료수명 계산도 용이하다.

 

 

▲ 무궁화 위성 3호 ⓒ KT

▲ 무궁화 위성 3호 ⓒ KT

무궁화 3호 위성의 경우는 매각할 당시 잔여 연료수명이 11~13년으로 예측되었다 (<오마이뉴스>, 2014. 01. 09). 특히, 2.8톤의 대형 위성체인 무궁화 3호는 기계적인 고장도 거의 없었고, 송신안테나의 방향을 지상 관제소에서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첨단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연료소진으로 경사궤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안테나의 조정 기능을 통해 정상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ABS조차 잔여수명을 13년으로 예측했다. 무궁화 3호 위성은 국제서비스나 군사용으로 활용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유승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직접 비용만 총 4500억 원 이상 투자한 무궁화위성 2호, 3호를 1% 수준인 45억 원에 매각해 고철값도 안 되는 헐값에 국가적 자산을 매각했다. … 특히 3호는 설계수명 12년 종료 직후인 2011년 9월에 매각해 잔존 연료와 기기성능 모든 면에서 무궁화위성 2호 보다 훨씬 더 많은 가격을 받아야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위성 불법 매각의혹을 제기했다.

 

유승희 의원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홍콩 ABS는 KT로부터 5억3000만 원에 구매한 무궁화 3호 위성([그림1] 참조)을 통해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나토(NATO)와 미군, 러시아 방송사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연평균 성장률 55%, 연간 4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얻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가 2013년 12월에 “전략물자인 무궁화 3호 위성을 대외무역법에 따른 적법한 수출허가를 받지 않고 홍콩에 매각한 것은 강행법규 위반”이라며 “무궁화 3호를 매각 이전 상태로 되돌리라”고 KT샛에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조선닷컴>, 2014. 01. 03) 해결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이미 운영에 들어간 위성을 되찾으려고 할 경우, 국제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ABS 측은 이미 2년 넘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성을 리스하는 방식으로 KT샛에 넘겨준 뒤 운영권한은 ABS가 갖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할당받은 우주영토에 타국 소유의 위성이 운영되는 우주궤도영토상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오마이뉴스>, 2014. 01. 09).

 

즉, 1999년 무궁화 3호 위성을 발사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적도 동경 116도의 우주 궤도 영토를 할당받았는데 현재 해당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은 홍콩의 ABS가 사실상 소유‧운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국제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남아 있다. 

 

또한 무궁화 3호가 앞으로 10년간 더 운행된다면, 더욱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10년 후 수명이 다한 무궁화 6호(예상수명 15년, 2010년 12월 발사)를 대체하여 발사하게 되는 무궁화 7호 위성 또한 동경 116도에 발사되어야 하는데, 공동점유자인 ABS 조정을 받아야 한다. 만약 ABS가 무궁화 3호 위성과의 간섭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조정을 거부하면 무궁화 7호 위성의 발사는 불가능하게 되고 한국은 중요한 우주 궤도 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조선닷컴>, 2014. 01. 03).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위성으로부터 거둬들일 직접적인 수익 5200억(400억×13년)에 무궁화 7호를 발사할 경우 생기는 잠재적 최소 수익 5200억을 더해서 무궁화 위성을 불법적으로 매각한 데 따른 비용으로 잡을 경우 최소 1조4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분단 한반도의 현실에서 군사적인 정보를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대체수단을 찾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과 미국 및 일본 의존도의 증가 등을 감안할 경우, 그 비용은 10조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판단된다.     

 

(2) KT 사옥 39곳 중 28곳 헐값 매각

 

KT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39개의 사옥을 매각했다. 이중 11개 사옥은 정상적인 가격에, 나머지 28곳은 감정가보다 훨씬 낮게 매각했다 (<미디어오늘> 2013. 9. 3(5)). 감정가보다 24~25%정도 싸게 매각한 사옥은 2011년 노량진 강동 성남 등 20개소, 그리고 2012년 고덕 반포 성북 등 8개소이다. 이 사옥들은 모두 KT AMC라는 KT 손자회사에 매각됐다. 2011년 용산빌딩 등 20개 지사는 '케이리얼티1호' CR리츠에 약 4704억 원에 매각되었고, 2012년 고덕지사 등 8개 지사는 '케이리얼티2호' CR리츠에 1440억 원 정도에, 2013년 11월 이석채 회장 사퇴 직전에 5개 부동산이 '케이리얼티4호' CR리츠에 약 1000억 원 정도에 매각되었다. [그림 2]는 KT의 보유부동산 매각현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KT AMC CR리츠 주요 투자자는 부동산펀드와 농협, 신한생명 등이다. 또한 KT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9곳의 부동산을 팔고 이를 다시 임차했는데 매년 임대료를 최대 4%까지 올려주겠다는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 kt의 보유부동산 매각현황. ©김용진

▲ kt의 보유부동산 매각현황. ©김용진

반면 KT가 KT AMC가 아닌 다른 회사에 팔았던 부동산은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강남 사옥 4~7층, 장유 사옥, 팽성 사옥 등 3곳은 2010년 Alpha Invest-ment에 매각되었는데 감정평가 대비율이 106%, 숭인동 사옥, 충정 사옥, 의왕 사옥 등 7곳 또한 2010년에 GE AMC에 팔렸는데 감정평가 대비율이 103%였다. 목동 정보 사옥은 2012년에 AMC 펀드에 매각되었는데 감정평가 대비율은 100%였다. KT를 고발한 참여연대는 KT가 감정가의 75~76% 수준으로 보유 부동산을 27곳을 KT AMC에 처분하면서 회사에 최대 869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머니투데이>, 2013. 11. 25). 

 

 

(3) 친인척 회사 과다 투자

 

친인척 회사에 대한 과다 투자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스마트(SMRT) 애드몰 사업 관련 60억 원, 이석채 회장과 8촌이면서 이명박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관련, 회사 2곳(OIC랭귀지비주얼과 사이버MBA)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각각 60억 원, 77억 원씩 손해를 보면서 총 200억 원대에 이르는 손해를 끼친 것이다(<오마이뉴스>, 2013. 02. 27).

 

스마트 애드몰 사업

 

'스마트 애드몰' 사업은 서울 지하철 5‧6‧7‧8호선 역사와 전동차 LCD 모니터 등 IT 시스템을 구축해 실시간 열차운행 및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활용한 상품광고 전시, 판매가 연계되는 2140억 원 규모의 광고권 임대 사업이다(6). 이 사업은 2010년 8월 참여연대 고발로 재판이 진행 중인 음성직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의 배임‧뇌물수수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다.

 

2010년 말 KT '가치경영실'에서는 'SMRT Mall 사업 지분출자 및 경영정상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이석채 회장에게 보고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몰 사업의 예상 매출은 2010년 3월 추정치인 6118억 원보다 약 1800억 원이 감소한 4351억 원이며, 이에 따라 투자시 순현재가치가 165억 원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4월 기준으로는 375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 회장은 적자 예상 및 추가 자금 투입 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사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이 회장 취임 이전인 2008년 10월에는 KT에서 지급 보증 없이 특수목적법인에 지분 양도 후 철수할 수 있도록 사업 위험을 최소화하는 의사 결정을 했는데 이 회장 취임 이후 오히려 출자금을 늘리고 지급 보증을 통한 연대보증 의무 설정과 적립금 설정이라는 불리한 약정을 체결해 KT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2013. 02. 27).

 

즉, KT가 수백억 원 적자를 예상하고도 이석채 회장 지시에 따라, 애초 3개월경과 후 사업성에 따라 탈퇴가 가능하도록 체결했던 계약을 바꿔 사업자금제공에 대한 연대책임의무(지급보증)를 지는 금융약정을 체결했고, 애초 5억 원만 투자했던 특수목적법인(SPC)에 60억 원을 재투자하면서 계열사로 편입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단지 투자 원금 5억 원과 재투자된 60억 원 이외에 적자로 인한 손실 1650억 원(165억 원×10년)까지 떠맡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체 손실 가능금액은 1700억여 원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사이버 MBA 주식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인수

 

KT가 2012년 7월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이 회장으로 있던 ㈜사이버MBA에 77억7500만 원을 투자해 지분 50.5%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액면가보다 9배 정도 비싸게 주고 주식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7) 유종하 전 장관은 이석채 회장의 여동생 남편인 이태식 전 외교통상부 차관과 8촌 친척관계로 외무부에서 같이 근무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고문단으로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유종하 전 장관은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08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었다 (<미디어오늘>, 2013. 02.04). 이 거래는 사업성이 불투명한 회사에 투자했던 유종하 전 장관 등에게 지분을 팔고 나가게 함으로써 KT가 그 위험을 떠안으면서 이석채 회장 친척에게 금전적 이익을 주려 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 2013. 02. 27).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사이버MBA(현 KT이노에듀)는 2000년 5월 9일 설립됐는데, 유종하 전 장관은 2004년 5월 사이버MBA 회장이 되었고, 2005년에는 이 회사 주식 24만730주(10.03%)를 보유했다. 유 전 장관은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 시절부터 2008년 10월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될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기준 ㈜사이버MBA의 보통주는 290만 주였고 주당 액면가는 500원이었다. 2010년 유 전 장관의 사이버MBA 지분은 9.63%였다. KT가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참고했을 2009~2011년 동안의 사이버 MBA 성과는 좋지 않았다. 사이버MBA가 한국거래소에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약 6억 원 적자, 2010년 약 3억 원 적자, 2011년에는 1억여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KT는 ㈜사이버MBA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2012년 7월 1일 주당 4445원, 전체 77억7500만 원을 투자해 이 회사 지분 50.5%(174만9000주)를 매입했다. 유 전 장관이 이 시점에서 주식을 매도했다면 상당한 수익을 남기게 되었던 셈이다. KT이노에듀 경영전략실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1월 현재 유종하 전 장관의 사이버 MBA 지분은 4%대다.

 

OIC랭기지 비주얼 비싼 값에 인수

 

OIC랭귀지비주얼은 초등학생 대상의 영어교육 업체로서 KT의 콘텐츠 사업을 위해 KT가 2억 원, 유종하 전 장관이 8억 원을 투자해서 설립된 회사이다. 유종하 전 장관이 가진 지분을 황경호 이퓨처 사장에게 매각하는 과정에서 KT가 증자를 했는데 이를 통해 유 전 장관은 약 2년 만에 8억 원 정도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증자를 통해 OIC랭귀지비주얼을 계열사로 편입했던 KT는 교육 콘텐츠 사업을 위해 60억 원을 투자해 운영하던 KT에듀아이를 7000만 원에 매각하게 됨으로써 KT에듀아이에 투자했던 돈을 그냥 날리게 되었다.

 

(1)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말 기준 kt의 주요 주주 지분 비율은 외국인 43.9% (NTT도코모 5.46%, 실체스터 5.01%), 국민연금 8.65%, 자사주 6.6%, 미래에셋자산운용 4.99%, 우리사주 1.1%이다.   
(2) http://www.data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818
(3) 설계수명이란 보험계약을 위한 품질보증기간을 말한다,
(4) 연료수명은 위성체가 가지고 있는 액화가스 연료 잔여량에 의해 계산된다. 위성체의 연료가 바닥나면자세제어가 안되므로, 안테나 방향이 서서히 틀어지고 위성체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수명이 다하게 된다. 잔여연료량은 지상 관제소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므로 잔여 연료수명 계산도 용이하다.
(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840
(6)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90
(7) http://www.humankt.org/xe/index.php?document_srl=2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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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 김영오 “세월호 특별법, ‘일베’까지 아픔 겪지 않게 하려는 것”

 

세월호 참사 151일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열려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시간 2014-09-13 20:18:39 최종수정 2014-09-13 20:18:39
 
세월호 촛불, 특별법 기소권 보장하라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151째 되는 13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과 함께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추석 연휴를 거쳤음에도 이날 촛불집회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주의 자주통일 대학생 협의회, 민주동문회, 한국대학생연합 등 교사·교수·대학생 단체를 비롯한 시민 2000여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마음을 모았다. 광화문광장에서 40일 넘게 단식농성을 했던 단원고 故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와 이날로 23일째 단식농성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도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대학가에서 서명운동과 대행진이 잇따르고 있는 것을 성과로 꼽기도 했다.

대학생·교수·졸업생 참가자 일동은 결의문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들 모두의 미래를 위해 가장 앞장서고 계시는 유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그 앞장에 나란히 함께 서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9월 27일 더 많은 학우들, 졸업생들, 교수들과 함께 다시 이 자리를 찾겠다"며 "학내에서 세월호에 대한 토론을 더 많이 해서 416개의 과·동아리 선언을 들고 오겠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민주노총 김경자 부위원장도 “후회하지 말고 빨리 끝내려고 노력하지 말고 잘 끝내자. 반드시 승리할 때까지 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민아빠' 김영오 "사고 때와 달라진 것 없다"

40일 넘게 단식을 마치고 현재 병원에서 복식하며 치료 중인 김영오 씨도 발언대에 올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돼 진상규명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영오 씨는 단식으로 인해 여전히 마른 몸 상태였지만,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영오 씨는 "자식 잃은 부모가 단식까지 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요청하는데 설마 외면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따라서 단식을 하게 됐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차가운 무대응과 무시로 일관하고 진실을 호도했다. 4월 16일 진도에 내려갔을 때 경험했던 것이다"라며 "사고 때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 상황을 보면서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서서히 불길이 일어났고 어느 순간 폭발했다. 교황 시복식 때엔 전세계에서 우리 유가족을 주목했다. 저는 40일만에 쓰러져 병원에 갔지만, 많은 지지와 동조단식이 이어졌다"면서 "그러나 단식을 마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영오 씨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전날 유가족들에게 '대통령을 믿어달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오히려 묻고 싶다. 우리가 믿음 가질 수 있도록 어떤 모습을 보였나"라고 반문하며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언제든지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했지만 딸 잃고 한 달 넘게 단식 중인 애비가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는 것조차 막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과 여당에 묻고 싶다.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철저한 진상규명, 재발 방지한다는 것이냐. 왜 그 방법은 내놓지 못하면서 우리의 정당한 요구만 거부하냐"며 "그러면서 대통령을 믿어달라는 말이 나오나. 저라면 부끄러워서 그런 말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영오 씨는 오직 진상규명을 통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제 인생과 행복이 다 무너졌다.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철저히 바꿔야 한다. 이 사고가 대한민국이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한다. 그것만이 유민이와 친구들이 헛된 죽음을 면하게 하는 방법이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자식 잃은 부모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반드시 승리해서 안전한 나라 만들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 유가족과 지지하러 오신 모든 분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반대하는 분들, '일베', '어버이연합'까지 다시는 우리 유가족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영오 씨는 "제가 이순신 동산 앞에서 단식할 때 많은 분들이 응원오셔서 제 얼굴만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이제 단식이 끝나 죽도 잘 먹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웃으면서 싸우자. 웃으면 힘이 난다. 힘이 나야 이긴다"고 말했다.

대학생과 교수, 교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날 촛불집회는 전교조 세월호 대응 활동 보고, 대학생연석회의 활동 보고, 참가자 결의문 낭독과 함께 대학생들의 노래 공연 등으로 꾸며졌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하는 아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하는 시민들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하는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들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특별법 위해 23일째 단식 중인 정청래 의원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23일째 단식농성 중인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참석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다시 세월호 촛불 밝힌 46일 단식 김영오 씨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 대학생, 교수, 교사 촛불문화제'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가 함께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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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내 새로운 흐름들

진보정당끼리 '너희는 악마'... 이제 그만 좀 하지?

[진보정치 연속 집담회 ②] 

14.09.13 21:10l최종 업데이트 14.09.13 21:10l

 

 

진보정치의 희망은 있는가? 6.4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적 주변화에 내몰린 한국 진보정치에 대한 조롱과 냉소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전문가들 역시 수많은 주문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대부분 '외부 시각'에 머물러 있다. 당사자들은 진보정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고 있을까? 몇 차례에 걸쳐 진보정치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 기자 말

NL과 PD. 진보정치를 둘러싼 여러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다. 혹자는 이를 '정파'라 부르고, 누군가는 '의견그룹'이라고 부른다. '진보정치'를 매개로 결합되어 있는 다양한 생각들은 'NL적 견해'와 'PD적 견해'로 너무 쉽게 단순화되어 버린다. 80년대 후반, 일명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확립된 이 구도는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 혹은 '노선'만이 아니라 진보정치를 주도하는 인물들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진보정치가 이 두 가지 생각의 흐름으로 단순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최근 진보정치의 위기와 때로는 사망선고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런 구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넘어서려는 작은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진보정당 당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 30대/40대초 친목모임'(이하 '친목모임')은 소속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새로운 진보정치 전망을 함께 모색하려 시도하고 있고, '진보정당을 평가해보자'(이하 '진정해')는 모임은 평당원의 시각에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에서 이들이 모였다.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한 '금강초롱'(필명·38·진보당), '진정해'를 진행하고 있는 추공(필명·49·노동당), 6·4지방선거에 성남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배준호(31·정의당), 친목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윤경준(41·비당원)씨다. 이들 역시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NL(금강초롱, 윤경준)과 PD(추공, 배준호)로 구분할 수 있지만, '핵심'이 되지 못한 '주변인'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0년간 다른 정파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도 몰랐다"

- 진보정당 내 다양한 정파에 소속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모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런 모임을 만든 이유부터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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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초롱(필명·38·통합진보당 당원) 울산 미포만에서 태어나 노동운동의 태동기와 부흥기, 쇠락기를 모두 지켜보며 커왔다. 학생운동시절 국민승리21 활동을 시작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평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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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진보당) : "나도 진보당 내에서 특정 정파에 속해 있긴 하지만 다른 정당은 물론 같은 당 내 다른 정파의 비슷한 또래들을 잘 모른다. 심지어 그들이 무슨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조차 몰랐다.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진보정당은 계속 분화하기만 했다. 

수직적인 정파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이걸 흔들 수 있는 가로축이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했다. 30대에서 40대 초는 각 정당에서 허리세대라 기존의 정파 축을 가장 효과적으로 흔들 수 있는 세대다. 그래서 나이도 생각이 비슷한 43세까지로 제한했다(웃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또래들이라 그런지 호응도 좋고 진보당, 노동당, 정의당, 녹색당 당원은 물론 진보정당 당원이 아닌 분들도 참여하고 있다."

추공(노동당) : "노동당 내부에서 진보정당의 지난 과정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몇 년 전부터 나오긴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당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실현할 공론장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나라도 먼저 연속 토론회 형식으로 평가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방선거 이후 네 차례 정도 진행됐고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다. 주로 노동당 당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간간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당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 만든 사람 생각과 참여하는 사람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배준호(정의당) : "정의당에서는 정파논리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상황이고 후진양성을 위한 당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 다른 정당과의 모임은 사실 절박함이 없다. 그렇지만 다양한 진보정당들 간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창구는 필요한 것 같아 참여하려 한다. 꼭 4개 정당이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악마화할 필요가 있나? 기성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소통과 공감의 욕구가 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윤경준(비당원) :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당하면서 탈당했지만 여전히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유지하면서 살아 왔다. 정파와 정당을 초월한 3040친목모임이 만들어졌다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이 모임이 단순한 친목도모에서 끝나면 안 되고, 정견과 입장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파시스템 없이 서로 다른 입장이 어떻게 상호공존하고 대중과 만날 수 있을지, 이 모임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진보정치의 인적 재생산, 이미 한계 왔다

- 두 모임의 강조점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특히 친목모임은 30대와 40대초로 모임대상을 제한한 것이 특이하다. 그동안 진보정치 1세대는 주류로 활동했고 20대는 '청년세대'라는 의미에서 주목받아 왔지만, 30대에서 40대초에 이르는 세대는 가장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른바 '낀 세대'의 반란으로 봐도 되나?  

윤경준 : "반란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우리에겐 지하 고문실에 끌려가던 선배세대와는 다른 가벼움과 자유로움, 발랄함이 있다. 그런데 진보정당에만 들어오면 우리의 발랄함을 잃어버리고 경직된다. 왜 그럴까?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고장난 정파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 몸에 맞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 놓은 (정파)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니까 거기에 맞춰갔다. 밖에서는 비판해도 막상 자기가 속한 정파조직 안에서는 말도 못하는 분위기... 결국 이런 경직성이 자기교정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정파가 정치적 책임을 진 적도 없다. 쓸 만한 사람들은 정파 체계에서 질식하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키워낼 수 없었다. 역량 손실이다."

금강초롱 : "국민승리21 때부터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는데 민주노동당 10년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파 당원들과 정서적, 화학적 결합이 전혀 없었다. 구386세대라 불리는 선배세대가 진보운동을 처음으로 활성화한 분들인데, 진보운동의 후퇴기라고 하는 지금도 그분들이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 기간이 벌써 20년이 넘는다. 30대에 앞장섰던 선배들이 50대가 되어서도 앞장서고 있는 거다. 우리는 그동안 뭘 했나? 나쁘게 말하면 그냥 '몸빵'한 거다." 

- '몸빵'만 했다는 것은 진보정당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지금 30대 초에서 40대 초에 이르는 활동가 중 눈에 띄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다. 진보정당에서 이 세대의 위치나 이미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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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호(31·정의당 당원) 2006년 말 민주노동당 가입 후 2011년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2012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 폭력사태 후 통합진보당에 입당, 분당 때 진보정의당에 합류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성남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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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 "좋지 않다.(웃음) 30대, 40대 선배들을 보면 당직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어떤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선배들의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자기 갈 길을 잘 찾아 가거나 선배들에게 자리를 넘겨받는 과정을 본 적이 없다. 전반적으로 우울해 보인다. '나는 저런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 나를 희생하고 버려가면서 (정당활동을)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정치 활동과는 별개의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윤경준 : "우리는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대학생활을 했고, 이게 진보정당 활동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지금 진보정당을 주도하는 선배들과 학생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후배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 세대다. 그동안 진보정치가 어려워져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그러면서 자기 개발도 못하고 계속 소진만 됐다. 선배들은 여전히 '주역'으로 남아 있고 후배들은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지만 우리는 그냥 '낀 세대'다."

추공 : "나는 낀 세대가 아니라 '주도하는 세대'에 속하지만 주도해본 적은 없다.(웃음) 그렇지만 친목모임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것도 있다. 구체적인 진지함보다는 아직은 친목활동 중심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정립이 있어야 기존 세대를 비판할 수 있다. (선배세대가) 보기보다 경험과 고민의 깊이가 깊은 사람들이라 웬만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정말 세대교체를 하겠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서 수없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야 한다. 

사실 진보정당의 문제를 세대문제로 접근하는 건 좀 별로인데, 자꾸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의미는 분석해봐야 한다. 진보정치운동을 시작했던 주체가 지금도 계속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명망가 리더들이 진보정치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했던 사람들이 계속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진보정당 1세대가 (자신의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 주고) 다른 일을 찾거나 후배들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장을 열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후배들을 신뢰해야 한다. 일을 맡길 때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중 안 해본 사람들을 시킬 수 있어야 후배들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한다." 

정파 시스템으로 인한 분열, 불가피했나?

- 세대 문제가 제기되는 주된 이유를 정파 시스템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30대와 40대초 세대가 선배세대와 정서적 공감을 이루면서도 기존의 정파 질서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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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준(41·비당원) 학생운동을 하다가 2006년 민주노동당에 입당,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때 탈당해 비당원으로 남아 있다. 촛불시위에 자주 참여하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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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준 : "그렇다. (운동하던 사람들) 모두가 진보정당에 입당하고 있었던 2000년 초중반에는 '다 정당에 들어가면 운동은 누가하나?'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막상 (나도 진보정당에) 입당해 보니 이건 완전히 운동권 정당이었다. 운동권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장점은 지켜야 하지만 운동문화와 경험이 없는 당원들은 숨 막혀서 도망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분당 이후 진보신당에 전형적인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촛불시민'들이 대거 입당했다. 그분들과 기존 정파들이 아름답게 결합했나? 

아니었다. 갈등이 심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동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과 기름도 이렇게 섞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 이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은 엄청난 성과지만 결국 그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어땠나? 변호사나 전문가들이 자기 이익을 포기하면서 당에 들어왔다. 그런데 결국 못 버티고 대부분 다시 나갔다. 왜 이런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았을까? 결국 정파시스템 문제다."

금강초롱 : "진보정당이 가장 실력이 있었던 시절이 민주노동당 초창기였던 것 같다. 지지계층과도 끈끈한 관계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은 대부분 그때 민주노동당이 법안 제출하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당의 활동을 (모든 정파, 개인들의) 공동 성과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사실 그 많은 성과 중 어느 한 정파가 독자적인 힘으로 이뤄 냈던 것이 얼마나 되나?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자신의 실력을 너무 높게 봤다. 분당해도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나가는 사람들을 잡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을 실력이 있다는. 결국 실력을 과신한 분열이었다. 진보운동은 같이 함께 하는 사람들 간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 의리가 없을 때는 느슨해지고 힘을 모을 수 없다."

추공 : "의리에서 해법을 찾는 건 위험하다. 의리 이전에 과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파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다. 외부에서 비판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사실 분열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파가 문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시스템이 없는 게 문제다. 공개 시스템이 있으면 (정파활동이) 정치적인 유연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분열은 정파 시스템 문제 때문이었지만, 합치는 것도 정파 시스템(의 혁신)으로만 가능하다. 

그동안 대중정당과 정파 시스템 간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대중노선이 뭐냐고 물었을 때, (현재의 진보정당들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대중노선은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해서 민주적 합의를 구성해서 나와야 하는데 특정 정파의 이데올로기가 대중정당의 이데올로기로 되어 버린다. 패권주의도 특정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NL이나 PD나 다 같이 가지고 있는 문제였다. 대중노선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금강초롱 : "그렇지만 죽더라도 치열하게 안에서 싸웠어야 하지 않나? 2008년 분당 때, 지지자들은 벼락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특히 노동계급 내에서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추공 : "참다 참다 못해서 나간 것이다.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면 남았겠지. 지금까지는 그런 가능성이 다 봉쇄되어 있었다. 다수파의 봉쇄 작전으로 아무 가능성이 없었던 아닌가? 누구든지 먼저 다수파가 되었을 때, 같이 연합하고 연대할 (대중정당)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평등파가 다수파였을 때도 못 만들었다." 

배준호 : "나도 2008년 분열이 꼭 나빴다고 보지는 않는다. 변화가 필요했고, 내부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충격이 필요했다. 당연한 순서였던 것 아닌가? 분열 때문에 진보정당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이미 쇠퇴한 것이 분열로 확인 된 것이다." 

윤경준 :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우리 지지층을 놓고 봤을 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지금 10%지지율을 누가 1%씩 더 가져갈까 하는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16%, 23% 지지율 찍을 때, 우리를 쳐다봐 줬던 그 국민들이 지지층이 될 수 있는 외연의 최대치다. 지금의 분열상이 10%를 넘는 그런 국민들의 지지를 수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진보정치 재편? 먼저 매력적인 모습 갖춰야

- 기존 정파시스템을 비판하지만 분당에 관해서는 자주파, 평등파의 시각차이가 여기서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정치의 전반적 위기 속에서 서서히 진보정치 재편 논의가 일어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여전히 정파 논의 중심이다.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윤경준 : "논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계속 미뤄 놓으면 2016년 총선 직전에 또 가치는 버리고 실리 중심의 접근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리 논의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금강초롱 : "지금은 누구랑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보다 자신들의 진보정당 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자기 성찰하는 국면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좀 더 제대로 된 평가를 내놔야할 시점이라고 본다. 가장 많은 당원을 가지고 있는 진보당에게 계속 제기되는 과제가 있다. 패권적인 부분과 대북관 같은 것들. 자기 과제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진보정치 재편 논의가 빨라질 것이다. 진보당은 최근에 평가와 전망 위원회를 만들어서 토론했는데 긍정적인 출발이다. 노동당도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서로를 만나가는 과정 같다." 

추공 : "노동당 내에서도 통합, 재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회의적이다. 내용이 반영되지 않으면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통합을 하든 재편을 하든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평가도 제대로 안하고 무슨 근거로 통합을 하나? 노동당 일각에서는 제3지대에 당을 새로 만들고 나서 정의당과 합당하겠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당은 빠져 있는데, 왜 인천은 되고 울산은 안 되는지 설명해 줘야 한다(흔히 자주파는 경기동부, 울산, 인천 등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과정에서 인천 일부는 정의당으로 합류했고 나머지 그룹은 잔류했다. - 기자 말). 진보당은 종북세력으로 몰려 있으니까 그런 것인데, 너무 실리적인 발상이다." 

배준호 : "옛 애인이 그립다고 다시 만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물론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다시 매력적으로 보일 때다. 지금 (진보정치 재편) 정서는 힘드니까 다시 만나자는 것이다. 새롭게 사랑을 느꼈을 때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외로움에 사무쳐 다시 만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돈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연애하자고 손 내미는 현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이 다시 만나려면 각자의 매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7·30재보궐 선거 이후 새정치연합 일부 의원들은 정의당과의 통합을 거론했다.- 기자 말). 과거 지지율에 대한 향수? 잊고 시작해야 한다. 이 비전이면 되겠다는 판단이 들 때 재편 논의를 할 수 있다. 현재의 패배감 때문에 옛날 생각을 하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되지만 진보정치 하는 사람들의 각오로는 부적합한 생각이다."

진보정치 부활, "어떤 노력이라도 시작할 때"

- 진보정치 재편은 역시 어려운 주제다. 아직 모든 것이 막연한 상황에서는 '상대'보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모임 역시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노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판만 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넘쳐난다.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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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공(필명·49·노동당 당원)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뒤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정당활동을 했다. 용인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다 노동당 내에서 진보정당 평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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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공 : "내가 진행하고 있는 '진보정당 평가해보자'를 줄이면 '진정해'가 된다. 일단 서로 좀 진정할 필요가 있다. 당원들의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탈정치'쯤 된다. 정파중심의 당운영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파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정파가 당원을 향한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선의에 의존하거나 대오각성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당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이 제도화 과정과 맞물린다. '진정해'를 진행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직자, 정파 활동가들은 평당원들도 자기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실력이다. 노동당만이 아니라 진보정당 전체의 문제다." 

금강초롱 : "이제 과거 형태를 답습하거나 같은 사람들이 순서만 바꿔 나오는 시스템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이 진보정치의 꿈을 꽃피우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30대, 40대 초인데 진보정치에서 전면적으로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정과 에너지를 많은 당원들의 힘과 열정, 지혜로 운영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써야한다.

그동안 실력 있는 젊은 세대들이나 진보적인 꿈을 가진 사람들이 중앙당이나 정책연구소에서 일하지 못했다. 기성정당에서 일하고 있는 진보정당 당원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이 중앙당이나 정책연구소에 들어와서 그동안 연구한 내용이나 현장 경험들을 쏟아내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지금은 (진보정당에) 못 들어온다. 실력보다 정파차원의 안배에 치중한 인사 때문이다."

- 그런 대안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가? 주장만 해서 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됐을 것이다. 구체적인 대책이 있나? 세력화하겠다는 것인가? 

금강초롱 : "세력화? 우리가 정파를 초월한 젊은 당원들의 친목모임을 만든다고 하니까 '또 다른 정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다. (웃음) 필요하다면 시도해볼 생각은 있다. 우리의 시도가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가게 된다면 당내에서 다양한 제어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새로운 흐름들조차 없다면 활력 없는 노쇠한 진보가 될 수밖에 없다.  

정파의 긍정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지금의 정파 시스템은 가장 자주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할 진보정당을 너무 딱딱하게 만들고 있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개인의 사리사욕보다 민중이 주인으로 서는 세상을 만들려는 목표를 더 앞세운 사람들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세대부터 수동적인 자세나 정파적 경직성을 버리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실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공여부는 알 수는 없지만 이런 흐름이 계속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윤경준 : "두 번의 분당과정을 겪으면서 지지율 자체는 얼마 안 빠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많이 잃었다.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이런 사람들이 돌아와야 진보정당 내에서 정파혁신이든 정풍운동이든 가능하다. 지금처럼 경직된 정파가 주류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혁신 주체를 만들기 어렵다. 물론 떠난 사람들도 성찰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찰하고 힐링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모임에서는 여러 정당, 여러 정파, 비당원들이 일단 함께 어울려 보는 엠티 같은 것도 준비 중이다. 물론 정파를 배척하려는 태도는 맞지 않다. 그들은 당에 대한 애정과 헌신성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 사람들이 실수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는 못한다. 우리는 그런 혁신 공간을 만들려는 거다." 

배준호 : "난 좀 밝은 것부터 해봤으면 좋겠다. 당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우울함 같은 것이 베여 있는 것 같다. 후배들이 따라서 살고 싶은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선배들과 달리 '상처 받지 않고 저렇게 유연하게도 당활동이 가능하구나'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진보정치 문화를 젊고 밝고 즐겁게 바꿔야 한다. 농담 섞어 이야기해보면, 젊은 미혼당원들끼리 만나는 미팅같은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웃음) 어렵고 복잡한 문제보다 문화적인 교류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정치는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받는 영역이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법들 역시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서는 과정 자체가 주목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각 진보정당 내에서 시작되고 있는 작은 흐름들은 여러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물론 이 집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시도에 어떤 대표성을 부여하거나 무조건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진보정치 부활의 필요조건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진보는 더 이상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흐름, 더 다양한 목소리에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부질없지 않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정리: 정경윤, 장소후원 : 용인 '당신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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