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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주 유럽 순방, 최근 북한 '공세외교' 주목

당국자 "고립.제재 이완 염두..목표달성 쉽지 않을 것"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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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2  11: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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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유럽 국가를 순방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강 비서는 이르면 이번 주 후반부터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하고 벨기에서 유럽연합(EU) 측과의 일정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2일 오전 “강석주 비서가 9월 초중순경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를 방문한다”며 기간은 열흘 내외라고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강석주가 유럽에 가는 것은 ‘당 대 당’ 교류”라며 “강석주가 행정부 안에 직책이 없고 당비서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북한 노동당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정당의 초청으로 가는 걸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외교적 고립, 또는 국제사회에서 취하고 있는 대북한 제재의 어느 정도의 이완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공세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핵.미사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북핵 불용’ 입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목표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개인적 판단을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EU는 △북한 핵문제 △북한 인권문제 △남북관계 개선에서 진전이 있어야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비판적 관여(critical engagement)’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강석주(75) 비서는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부터 북핵외교의 핵심 담당자로서 부총리를 거쳐 당비서를 맡고 있으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어 그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 비서의 스위스 방문 시기 일본 총리실 납치문제대책본부 수장이 제네바에 머물 것으로 알려져 북.일간 고위급 접촉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일각에서는 중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북.중 협의나 유럽지역에서 북.미 접촉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최근 리수용 외무상의 중동.아프리카 순방 등을 예로 들며 “강석주 유럽 방문도 포함해서 북한외교가 공세적 모습 띠는 것 아닌가 생각든다. 우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분야 핵심 실세인 강 비서가 유럽행을 선택한 것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북.중관계도 원활치 않은 조건에서 유럽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인 2009년경 ‘포괄적 세계전략’을 수립하고 ‘북.미관계’ 일변도에서 남북관계는 북.일관계를 등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도 공세외교를 펼치는 구상을 세원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최근 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억류된 미국인 3명을 <CNN> 인터뷰에 내세우고 리수용 외무상이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참가에 이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대외 외교를 펴고 있어 강 비서의 유럽 방문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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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만탑산 핵실험장, 분주한 서해위성발사장

조용한 만탑산 핵실험장, 분주한 서해위성발사장
 
한호석의 개벽예감 <12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9/01 [20: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1 > 이 사진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3차원 영상기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흰색 줄로 그어진 거대한 계곡이 지하핵실험장 지표면 구역이다. 거기서 갱도를 얼마나 깊이 파고 들어가 얼마나 많은 격실들과 차폐문들을 곳곳에 만들어놓았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북은 국토면적이 좁기 때문에 핵폭발력이 큰 핵탄을 폭발실험에 사용할 경우 인근도시들에 인공지진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폭발력을 줄인 소형핵탄을 폭발실험에 사용하였던 것이다. 올해 들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서는 지난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들이 나타났는데, 요즈음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용한 분위기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 자주민보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에 드리운 커다란 가림막이 벗겨지는 날

 

지난 8월 11일 미국의 대북정보웹사이트 <38 노스(North)>에 주목할 만한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서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었는데, 요즈음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조용하더라는 것이다. 그 기사를 쓴 분석가 잭 류(Jack Liu)는 요즈음 북의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이 왜 그처럼 조용한지 알 수 없다고 궁금해 하였다. <사진 1>


지난 5월 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은 미국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서 북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를 가림막으로 가려놓았다고 하였다. 지난 6월 25일 미국 관영언론매체 <미국의 소리>에 실린, 미국 스탠포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CISAS) 객원연구원이며 위성영상자료분석가인 닉 핸슨(Nick Hansen)의 대담에 따르면, 북이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를 가림막으로 가려놓으면 군사정찰위성 또는 민간관측위성이 갱도입구로부터 25~30m에 이르는 범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이 지난 시기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때마다, 길이가 25~30m나 되는 커다란 가림막을 지하핵실험장 갱도입구에 설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닉 핸슨은 그 날 대담에서 그런 식으로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북한식 위장술”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위장술이라는 말을 썼지만, 위장이라기보다는 은폐이므로 은폐술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갱도입구에 도착한 특수수송차량에서 핵탄상자와 관련장비들을 꺼내어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촬영하지 못하게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은 무슨 은폐술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집중감시를 받지 않는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같은 핵보유국들은 지난 시기 핵실험을 실시할 때 가림막을 드리울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으면서 미국으로부터 집중감시를 받는 북이 가림막도 드리우지 않고 지하핵실험을 준비하는 작업을 적대국에게 노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과 미국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현실을 망각한 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비적대적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북의 행동을 인식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오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은 지하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핵탄을 폭발시키기 직전에 갱도입구를 봉쇄하고 가림막을 걷어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위에서 언급한 <CNN>방송 보도기사는, 북이 커다란 가림막으로 갱도입구를 가려놓은 것은 지하갱도 깊은 곳에 마련한 특수격실에서 핵탄을 폭발시키는 시각이 가까웠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북은 갱도입구를 봉쇄한 시각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핵탄을 폭발시키게 되는데, 북이 갱도입구에 드리워놓은 커다란 가림막은 미국군 정찰위성의 시야를 가려 갱도입구가 언제 봉쇄되는지 알지 못하게 하므로 미국은 북의 핵실험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미리 알지 못한다. 가림막 아래서 갱도입구를 봉쇄한 북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지하핵실험장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대를 피해 가림막을 걷어낸 다음 즉시 핵탄을 폭발시킴으로써 지하핵실험 실행시각을 미국에게 미리 노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북이 갱도입구에 가림막을 드리우는 바람에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징후가 나타났던 지난 4월 하순, 언론계보다 군부가 한 발 더 먼저 움직였다. 위에서 인용한 <CNN>방송의 보도가 나오기 며칠 전인 지난 4월 21일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에 대비하기 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지난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기간에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태세는 핵탄폭발에 임박한 상황까지 도달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지금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은 왜 그처럼 조용한 것일까? 위성영상자료에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고 적막감마저 감도는 것 같은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의 ‘이상한 분위기’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첫째, 북의 핵무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한 각종 오류정보들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북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때마다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기 위한 핵폭발실험을 실시했다는 식의 주장을 계속해왔다.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고 핵폭발실험을 실시한다는 주장은 핵보유국들이 컴퓨터모의실험기술과 임계전핵실험기술을 아직 몰랐던 1980년대에나 들을 수 있는 ‘옛 이야기’인데, 21세기를 사는 핵전문가들의 입에서 그런 엉뚱한 소리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 데서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남측 국방부다. 이를테면, 지난 4월 23일 남측 국방부는 “한미정보당국의 분석결과 북한이 탄두중량을 1,500kg 이하로 줄였지만, 1,000kg까진 줄이지 못했다.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가 가시화하고 있지만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남측 국방부의 그런 주장은 아마 그들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다. 북이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부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북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한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핵탄을 다종화, 정밀화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뜻한다. 나는 지난 8월 19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북의 핵개발사 다시 쓰기와 ‘최후 결전’ 예견’에서 국내외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북이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였음을 논증한 바 있다.


그러나 남측 국방부는 북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2014년 5월 8일부 보도기사가 해명해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만약 북한이 (핵탄의) 소형화, 경량화를 달성했다고 하면 핵무기 보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이는 곧 한국의 북핵정책 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책 및 핵비확산정책의 실패”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남측은 북이 핵탄을 아직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는, 자기들도 믿지 않을 황당한 주장을 어쩔 수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둘째, 북이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2006년 10월 9일)과 제2차 지하핵실험(2009년 5월 25일)은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북미협상에 의도적으로 난관을 조성한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협상을 재개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을 철군담판으로 끌어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차례의 선행 지하핵실험들과 달리, 북이 2013년 2월 12일에 실시한 제3차 지하핵실험은 대미압박이 아니라 대미응징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2013년 2월은 철군담판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2009년 7월 이후 근 4년이나 지난 때였으므로 북은 2013년 2월에 지하핵실험으로 미국을 압박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2013년 2월 당시 북은 2012년 12월 12일에 자기들이 실시한 인공위성발사를 ‘범죄행위’로 몰아가며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대북제재조치를 추가한 미국의 적대행위를 물리적으로 응징할 필요가 있었는데, 북의 제3차 지하핵실험이 바로 그런 대미응징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집요한 거부로 철군담판을 더 이상 추진할 필요가 없게 된 이후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박차를 가해오는 북은 미국을 압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북은 미국을 압박하려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려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북의 핵실험은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미국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응징하기 위해 실시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금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지하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북은 미국이 북의 위성발사를 ‘범죄행위’로 몰아 대북제재조치를 또 다시 추가하는 적대행위를 감행할 경우 핵실험으로 미국을 응징하려고 대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예견하는 것처럼, 북이 지하핵실험으로 미국을 응징하는 것은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을 전제로 한 행동이다. 
북의 핵개발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한 미국은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는 것이다. 그런 의도를 지닌 미국이 북의 위성발사를 또 다시 ‘범죄행위’로 몰아 제재조치를 추가하는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대북적대행위를 감행할 경우 북이 그에 상응하여 그보다 더 강경한 보복행동에 나서는 것도 역시 불가피하다.


이처럼 미국의 적대행위와 북의 보복행동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조국통일대전’에서 북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할 때까지 계속되면서 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책임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철군담판을 끝내 거부하고, 대북적대행위에만 집착해오는 미국에게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4년 9월 현재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와 북의 대미보복행동의 반복적인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 매우 긴장된 상황에 놓여있음이 자명해진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지금 북이 신형 위성운반로켓과 신형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자기의 우주개발사업을 막바지에서 힘껏 다그치고 있으며, 멀지 않아 위성발사폭음을 울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시해야 할 곳은 핵실험준비를 완료하고 조용히 대기 중인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이 아니라 각종 공사를 벌이며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서해위성발사장이다. 

 

▲ <사진 2> 2012년 4월 북이 외래기자들과 외래전문가들에게 공개한 서해위성발사장 종합지휘소의 벽에는 위와 같은 총배치도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북은 그 모든 시설들을 완전히 일신시키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며, 오는 10월과 11월 사이에 완공하게 된다. 더 많은 위성들을 우주공간에 쏘아올리며 우주개발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려는 북의 원대한 구상과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자주민보

 

60m로 증축된 거대한 위성발사탑과 궁금증 불러일으키는 수송열차 지하구간

 

북이 지하핵실험을 단행하는 목적이 대미압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의 우주개발을 막아보려는 미국을 응징하는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목적도 대미압박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우주개발을 추진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의 위성발사는 북미관계의 변동상황과 무관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북이 자체로 정한 우주개발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북이 위성발사준비를 모두 끝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서해위성발사장에 위성운반로켓을 세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그 동안 벌여온 대대적인 공사를 마무리단계에서 다그치고 있는 중이다. 그 공사는 기존시설을 부분적으로 보완, 보강하는 공사라고 하기보다는 기존시설을 현대적인 대형시설로 대체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라고 보아야 한다.


2012년 4월 북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언론인들과 위성전문가들에게 공개한 서해위성발사장 종합지휘소에는 커다란 ‘서해위성발사장 총배치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 배치도를 보면, 종합지휘소, 관리운영소, 위성발사장, 련동시험장, 발동기시험장, 원격관측소, 숙소, 도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2> 그런데 지금 북은 그 모든 시설들을 완전히 일신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개건공사에 대해서는 지난 8월 21일 닉 핸슨이 <38 노스>에 실은 글 ‘북코리아의 서해위성발사장: 증축공사 거의 완성, 더 많이 발사하려고 준비하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닉 핸슨이 이전에 서해위성발사장에 관해 쓴 몇몇 글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번에도 민간관측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는 글을 썼다. 최근 그가 <38 노스>에 발표한, 서해위성발사장에 관한 글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서해위성발사장 발사장은 길이가 200m로 매우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생겼고 전체가 콘크리트로 포장되었는데, 거기에 이동식 발사대(movable launch platform)와 발사탑(gantry tower)이 설치되었다.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벌어지기 이전에는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탑에 세울 때 쓰는 높이 11m, 길이 28m의 대형기중기가 발사탑 맨꼭대기에 얹혀 돌아갔는데, 그 대형기중기는 지난 7월에 철거되었다. 대형기중기를 철거한 것은, 3단으로 분리된 위성운반로켓 동체를 이동식 발사대 위에 조립해 세운 뒤에 그 이동식 발사대를 발사탑으로 이동시켜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탑에 장착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벌어지기 이전에는 3단으로 분리된 위성운반로켓 동체를 대형수송차량 세 대에 각각 나누어 싣고 발사탑까지 가서, 발사탑 꼭대기에 설치된 대형기중기로 들어올려 조립하는 식이었다.

 

▲ <사진 3> 이것은 서해위성발사장의 위성발사탑을 컴퓨터도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위성발사탑을 증축하기 전 모습이다. 북은 이 위성발사탑을 10층에서 13층으로 증축하여 높이를 46m에서 60m로 높였다. 60m로 증축된 위성발사탑이라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릴 수 있으며, 장차 우주선도 쏘아올릴 수 있다.     © 자주민보
▲ <사진 4> 이 사진은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3호 2호기를 쏘아올리는 장면이다. 위성발사탑 윗부분에 증축한 3층을 흰색으로 표시하였고, 은하-3호보다 25m나 더 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 길이를 붉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 자주민보


둘째, 위성발사탑 증축공사는 이미 끝났다. 독일의 미사일전문가 노르베르트 브뤼게(Norbert Brűgge)의 분석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위성발사탑은 10층에서 13층으로 증축되어 높이가 46m에서 60m로 높아졌다. <사진 3>


60m 높이로 증축된 북의 위성발사탑을 중국의 위성발사탑, 우주선발사탑과 비교하면, 우주개발에서 북의 위성발사탑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중국 시촨성(四川省)에 있는 시창위성발사중심(西昌衛星發射中心)의 위성발사탑 높이는 45m이며, 중국 고비사막에 있는 주콴위성발사중심(酒泉衛星發射中心)의 위성발사탑 높이는 45m이고, 우주선발사탑 높이는 75m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북의 위성발사탑은 중국의 위성발사탑보다는 15m 높고 우주선발사탑보다는 15m 낮은 것이다. 하지만 북의 위성발사탑이 중국의 우주선발사탑보다 15m 낮다고 해서 북의 위성발사탑에서 위성만 쏘아올릴 수 있고 우주선은 쏘아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며, 60m 높이의 발사탑에서도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다. 


60m로 높아진 서해위성발사장 위성발사탑에서는 길이가 55m가 되고, 지름이 4m가 되는 위성운반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 북이 지난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은하-3호 위성운반로켓은 길이가 30m, 지름이 2.4m였는데, 북이 쏘아올릴 새로운 위성운반로켓은 은하-3호보다 길이가 25m나 더 길고, 지름이 1.6m 더 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멀지 않아 등장할 그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이 과연 은하-9호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나게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셋째, 서해위성발사장을 일신하는 전면적인 개건공사가 끝나면, 위성발사준비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짧아지게 된다. 지난 6월 25일 <미국의 소리>에 실린 닉 핸슨의 대담에 따르면, 이전에는 평양에서 제작된 위성운반로켓과 인공위성을 함경북도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으로 옮겨 조립하고 발사대에 세우고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기까지 준비시간이 약 45일이나 걸렸는데, 2011년 초에 완공된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준비시간이 두 주간이나 단축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2012년부터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위성발사준비를 30여일만에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서해위성발사장이 전면적으로 개건되면, 위성발사준비시간은 30일 미만으로 더 단축될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위성발사준비시간을 그처럼 크게 단축시키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수송조건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다. 이번에 북은 위성발사장으로 통하는 폭넓은 도로를 새로 닦았을 뿐 아니라, 1.42km에 이르는 철도지선까지 깔아놓았다. 도로건설공사와 철도지선부설공사를 위해 기관차 두 량, 철로부설차량 한 량, 부속차량 두 량, 수송열차 18량이 동원되었다. 도로건설공사와 철도지선부설공사는 이미 지난 7월 초에 끝났다. 새로 놓인 철도지선은 위성발사장에 이르러 마치 갱도처럼 생긴 지하구간으로 연결되는데, 수송열차가 통과할 지하구간은 길이가 120m이고, 폭이 4m다.


수송열차 철도지선을 평지에 부설할 수 있는데, 북은 왜 공사하기도 힘든 땅속에 수송열차 지하구간을 건설한 것일까? 위성영상자료만 보고서는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 <사진 5> 이 사진은 서해위성발사장에 신축되고 있는 반구형 건물을 촬영한 위성영상자료다. 지금은 외부공사를 마치고 내부공사도 거의 끝냈다. 이 건물의 지름은 50m이고, 4층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건물의 쓰임새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은 체육관 같기도 하고, 음악공연관 같기도 한 이 건물을 무엇을 위해 위성발사장 한 쪽에 세운 것일까? 지금은 상상력을 동원해도 잘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북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리는 날 그 정체가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 자주민보

 

쓰임새 알 수 없어 궁금증 불러일으키는 반구형 건물 두 채

 

닉 핸슨이 위에 언급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서해위성발사장을 전면적으로 개건하는 공사에서 외부인들에게 가장 커다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반구형 건물이다. 2013년 중반에 착공했던 반구형 건물 두 채는 약 1년 동안 신축공사를 마치고 지난 7월 초 마침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내부공사가 거의 마감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제1반구형 건물은 지름이 50m인데, 지름이 30m인 반구형 지붕을 덮었고,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폭 20m의 고리형 지붕이 그 반구형 지붕을 둘러싸고 있다. 그 건물에는 커다란 출입구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한 개씩 나있다. <사진 5>


제1반구형 건물의 외부는 연한 파란색으로 도색되었다. 그 건물에 도색된 연한 파란색은 지난 3월 31일에 제정된 북측 국가우주개발국 표장의 위성자리길(위성궤도)에 칠해진 바로 그 색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그 표장 안에 연한 푸른색으로 표시된 위성자리길에 대해 해설하면서 “우주의 모든 궤도에 공화국의 위성을 계속 쏘아올리려는 우주개발전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둘째, 제2반구형 건물은 제1반구형 건물 인근에 신축되었다. 제2반구형 건물은 지름이 18m이고, 내부가 2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건물에 씌워진 반구형 지붕은 지름이 10m이고, 제1반구형 건물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외부가 연한 파란색으로 도색되었다.


셋째, 제2반구형 건물 옆에 길이가 28m인 직사각형 건물이 신축되었는데, 그 앞마당에 깃대 네 개가 한 줄로 서 있는 것을 보면, 실내주차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지름이 50~60m인 평평한 원형공간이 신축되었고, 그 원형공간으로 통하는 폭 4m의 도로가 신설되었다. 그 공사는 지난 8월 초에 끝났다. 그 평평한 원형공간은 제1반구형 건물로부터 16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바깥쪽에 폭이 각각 5m인 원형통로 두 개를 이중으로 배치하였고, 안쪽에는 지름이 33m인 원형공간을 조성하고 표면에 콘크리트를 깔아놓았다. 그 원형공간 출입구에는 폭이 15m이고 길이가 18m인 앞마당이 펼쳐져 있다. 그런 공간배치를 보면, 이 평평한 원형공간은 헬기착륙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제1반구형 건물과 제2반구형 건물이 무슨 쓰임새로 사용될 건물들인지 알 수 없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8일 반구형 지붕을 아직 덮기 전에 촬영된 위성영상자료에서 제1반구형 건물내부를 엿볼 수 있다. 제1반구형 건물내부는 4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건물내부 북쪽 공간에는 2층을 얹지 않은 대신, 건물내부 남쪽 공간에만 2층을 얹었다. 3층은 말발굽형으로 빙 둘러 얹었다. 이것은 2층과 3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2층과 3층에 좌석만 들여놓으면 마치 음악공연장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제1반구형 건물에는 반구형 지붕을 떠받쳐주는 커다란 중심기둥 한 개가 정중앙에 세워졌는데, 그 중심기둥의 맨꼭대기 부분이 반구형 지붕 정중앙에서 마치 꼭지처럼 밖으로 튀어나와 원뿔형 부착물이 반구형 지붕 꼭지점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평양에 세워진 대표적인 원형 건물들은 류경정주영체육관, 인민극장,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이다. 25,000석의 대형체육관인 류경정주영체육관과 북의 전략미사일들을 곧추세워 전시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은 모두 반구형 지붕을 씌운 원통형 건물들이고, 인민극장은 평면지붕을 씌운 원통형 건물이다.


그런데 위에 서술한 내용을 보면, 서해위성발사장에 신축된 제1반구형 건물은 그 내부구조로 봐서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에는 없는 중심기둥이 제1반구형 건물에 있다는 것이다. 북이 위성발사장 경내에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을 신축할 리 없지만, 정중앙에 중심기둥을 세운 것을 보더라도 그 건물이 체육관이나 음악공연관이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그 건물은 위성운반로켓전시관인 것일까?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에는 중심기둥이 없는데, 제1반구형 건물에는 중심기둥이 있고, 전략로케트관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제1반구형 건물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건물은 위성운반로켓전시관이 아닌 것 같다.


쓰임새를 알기 힘든 제1반구형 건물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세워진, 그보다 작은 제2반구형 건물도 무슨 쓰임새로 사용될 건물인지 알기 힘들다. 만일 위성운반로켓 발사장면을 전망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면 모양과 크기가 서로 비슷한 반구형 건물을 한 곳에 두 채나 세울 리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살펴보면, 북이 다른 위성발사국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식의 독특한 건설계획을 가지고 서해위성발사장을 특색 있게 개건하였음을 직감할 수 있다.


     
개건공사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까닭

 

닉 핸슨의 예견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는 2014년 가을에 완전히 끝날 것이라고 한다. 오는 10월이나 11월에 완공된다는 뜻이다. 이전에 쓴 글에서 그는 2015년에 가서야 그 개건공사가 끝날 것으로 보았으나, 올해 들어 공사속도가 매우 빨라져 완공예상시점을 몇 달 앞당긴 것이다.


예컨대, 북은 반구형 건물 두 채에 반구형 지붕을 덮는 작업을 탑식 기중기 한 대만 설치해놓고 40일만에 끝냈는데, 이것은 작업을 매우 빠른 속도로 진척시킨 것이다. 북에서 쓰이는 통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불이 번쩍 나게 와닥닥 해제낀 것”이다. 요즈음 북의 생산현장과 건설현장에서 구호로 내세운 ‘조선속도’가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에서도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그처럼 서해위성발사장 개건공사속도를 얼마 전부터 갑자기 부쩍 높인 까닭은, 거기에서 쏘아올릴 위성운반로켓 제작이 완료되는 때에 맞춰 개건공사도 끝내려고 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위성운반로켓 제작은 로켓엔진연소실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2014년 2월 13일 일본 <NHK> 방송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3년 12월 25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여섯 번째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북이 2013년 한 해 동안 평균 두 달에 한 차례씩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한 것인데, 그 사실만 봐도 북의 위성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성적으로 노력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북의 위성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모습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 <사진 6> 2012년이 저물어가던 12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광명성-3호 2호기를 지구궤도에 올려놓은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을 모두 평양에 불러 영웅으로 축하와 환대를 베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올해 10월 10일 당창건기념일에는 그들에게 위성과학자거리를 통째로 안겨주어 좋은 거주환경에서 생활하며 일하도록 배려하였다. 감격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형 위성운반로켓과 신형 인공위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들의 열정이 빚어낸 위성운반로켓과 인공위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 멀지 않았다.     © 자주민보


<로동신문> 2013년 1월 3일부 기사에는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데 공헌한 북의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각별한 신임과 배려로 평양에 모두 올라가 영웅으로 축하와 환대를 받던 중 갑자기 몸이 불편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하였던 어느 위성과학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에서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병상에 누운 그가 기념사진촬영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배려하였다고 한다. 생각하지도 못한 특별배려를 받고 크게 감동한 그 위성과학자는 “얼굴과 옷자락이 온통 눈물범벅”으로 되어 “더 많은 위성발사로 보답하겠다”고 맹세하였고, “단숨에 <은하-9>까지 쏴올릴” 결의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심정과 결심이 어찌 그 한 사람에서만 일어났겠는가.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과 광명성 계열의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 공헌한 북의 위성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도 모두 그와 같은 심정을 느끼고 그와 같은 결심을 세웠으리라.


닉 핸슨이 위성영상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북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지난 5월 초와 7월 초에 각각 한 차례씩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런 추세로 가면, 북은 9월 초에 또 다시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게 되는데, 만약 9월 초가 지났는데도 로켓엔진연소실험이 실시되지 않는다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은 이미 8월 중에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탑재할 신형 인공위성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일정까지 생각하면 올 가을에는 모든 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북은 전면적으로 개건된 위성발사장에서 새로 만든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에 새로 만든 인공위성을 실어 우주로 쏘아올리게 될 것이다. 북에는 국가명절에 즈음하여 중대사를 치루는 관행이 있는데, 그런 관행을 고려하여 발사시기를 예측한다면 북에서 ‘광명성절’로 지키는 2015년 2월 16일 직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는 압박과 전횡으로 북의 핵개발을 막으려다가 결국 실패한 미국이 자기의 실패경험을 망각하고 북에게는 통하지 않을 압박과 전횡으로 북의 우주개발을 또 다시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북을 대미응징과 ‘조국통일대전’으로 떠미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북은 우주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은 북의 우주개발을 막아보려는 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와 북의 대미응징이 중첩되면서 그 동안 쌓여온 적대감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2015년에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2015년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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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야크의 숭고한 공생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9/01 11:53
  • 수정일
    2014/09/01 11: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못생긴 야크의 숭고한 공생

고진하 2014. 08. 28
조회수 408 추천수 0
 

 

[휴심정]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 순례기

척박한 고원, 수행자보다 거룩한 야크의 ‘공생’


라다크, 히말라야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지구의 오지.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어 그렇게 부르는 것조차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미 라다크에 대해 많이 들은 터라 나는 ‘오래된 미래’라는 환상은 접은 터였다. 라다크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레에 짐을 푼 나는 고산증이 조금 수그러든 뒤, 도시를 벗어나 티베트 사원들과 시골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레보다 더 높은 산속에 있는 헤미스 곰파(사원)를 찾아가는 길이었던가. 눈앞에 펼쳐지는 장쾌하지만 험준한 산세, 3500미터가 다 넘는 까마득히 높은 봉우리에도 만년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초록 한 그루 품지 못한 뼈만 앙상한 잿빛 바위산들만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그 산들 아래로 흐르는 인더스 강줄기를 따라가다가 가파른 계곡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물은 온통 잿빛 흙탕물이었다. 그래도 그 물이 라다크를 살리는 생명의 젖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야크3.jpg

*황량한 라다크의 산. 사진 고진하

 

까마득한 바위 벼랑에 세워진 헤미스 곰파를 경이에 찬 눈으로 둘러보고 그 뒤에도 몇 개의 곰파를 더 보았지만, 나는 이 척박하고 혹심한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온 라다크 사람들의 삶으로 자꾸 시선이 쏠렸다. 설산이 흘려보낸 물을 받아 물길을 만든 곳마다 보리나 밀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보리나 밀의 크기가 겨우 한 뼘이나 될까. 물질의 풍요 속에 뒤룩뒤룩 비곗덩어리만 키워온 철없는 인간의 눈으로도 미처 자라지 못하고 낟알을 맺어야 하는 저 황량한 대지의 생명들을 바라보면서 울컥울컥 눈시울이 젖어들곤 했다. 돌투성이인 박토를 뚫고 나와 간신히 싹을 틔워 자란 저 초록의 생명들 앞에서 문명이니 지성이니 종교니 하는 허명의 옷을 걸친 채 거들먹거리는 건, 그 얼마나 가증스럽고 염치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랬다. 그 황무지에서 자라는 보리와 밀! 그것들을 보고 나서 나는 그냥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헤미스 곰파에 걸려 있던 구루 파드마삼바바의 초상, 알치 곰파의 빛바랜 아름다운 벽화, 곰파 주위에 산재해 있던 수많은 초르텐(탑)들도 시큰둥한 눈길로 마지못해 둘러보긴 했으나, 어느 날 보리밭으로 들어가 이삭 하나를 손으로 쓱쓱 비벼 문득 입에 넣어본 낟알들이 라다크의 모든 것을 다 수렴해주고 있었다. 라다크의 높은 고원에서 양, 소, 말, 야크 같은 동물들에게 뜯어 먹히는, 간신히 잎을 틔워 자라는 초목들이 라다크의 메마르고 빈한한 삶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야크2.jpg  

*야크 똥을 모아 쌓아놓은 농가 풍경. 사진 고진하
 

양들은 풀의 뿌리까지 먹어치워 
땅을 더욱 헐벗게 하지만 
훨씬 덩치가 큰 야크는 
이슬과 미생물을 핥으며 산다 
야크의 배설물로 자라난 보리는 
황량한 라다크 사람을 키운다


한때 라다크를 ‘이상향’이라 불렀던, 그래서 누군가 ‘오래된 미래’라고 호명했던 ‘공생’과 ‘상부상조’의 미덕은 지금도 살아 있을까. 빈약한 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으며 생존을 영위하는 짐승들 속에나 살아 있을까. 밀 보리밭을 일구고 짐승 똥을 산더미처럼 쌓아 말려 연료로 삼는 시골의 늙은 농부들 속에나 살아 있을까. 10세기께 유명한 수행자였던 나로파가 머물며 살았다는 라마유르 곰파를 찾아가는 길에, 함께 갔던 소설가 박범신 선생이 들려준 얘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원에서 풀을 뜯으며 살아가는 동물 중에, 양들은 풀의 뿌리까지 모조리 뜯어 먹어 대지를 더욱 헐벗게 하는데, 야크란 동물은 덩치가 양보다 훨씬 더 크지만 어린 풀들도 송두리째 뜯어 먹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야크는 열심히 고원의 땅을 핥지만, 풀잎과 땅에 묻은 아침 이슬과 이슬에 묻은 미생물이나 기타 영양소들을 핥아서 살아간다는 것.

 

야크1.jpg

*히말라야 라다크 고원의 계곡에서 검은 야크들이 물을 마신 뒤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현

 

나는 참으로 못생긴 동물 야크 얘기를 들으며 절로 외경심이 일어났다. 야크는 척박한 고원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공생의 유전자가 몸속에 새겨져 있겠지만, 오늘 지구의 철부지 인간은 어떤가. 공생의 관습을 망각한 채 온갖 지구 생명들과의 불화의 관습으로 스스로 망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있어 비로소 내가 있다’는 ‘오래된’ 공생의 지혜와 자비심을 과연 우리는 되돌릴 수 있을까. 그걸 되돌릴 수 없다면 현생 인류에겐 ‘미래’도 없는 게 아닐까.


짧은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목마름으로 시골 농가를 찾아가곤 했다. 오래된 왕궁과 곰파가 있는 스톡 마을. 높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퇴락한 왕궁과 사원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와 도랑물 소리가 들리는 골목길로 스며들었다. 도랑 옆에는 키 작은 보리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리밭을 지나 어느 농가 대문 앞에 서서 집 안이 궁금해 돌담 너머로 기웃거렸더니, 늙수그레한 아낙이 나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뜻밖의 환대가 고마워 따라 들어갔더니, 얼굴 모습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그네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집 안으로 불러들여 정성껏 차를 끓여 대접해 주었다. 고원의 따가운 볕에 그을어 얼굴은 검고 이마의 주름살은 짜글짜글했지만, 얼굴 가득 머금은 해맑은 미소는 그들이 방 안에 모시는 부처님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매일매일 악다구니하며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미소였다. 낯선 타인들을 아무런 경계나 의혹의 마음도 없이 받아주는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여인이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차 한 잔이 그렇게 달고 고마울 수 없었다. 어쩜 오래된 미래는 그 아낙의 순박한 미소 속에나 있지 않을까.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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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자유혼 예수, 노자, 장자, 조르바를 영혼의 길동무 삼아 강원도 원주 근교의 산골짜기에서 산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쳤고, 대학, 도서관, 인문학카페, 교회 등에서 강의한다. <얼음수도원>, <수탉>, <거룩한 낭비> 등의 시집과 <이 아침 한 줌 보석을 너에게 주고 싶구나>, <목사 고진하의 몸 이야기>,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우파니샤드 기행> 등 책을 냈다.
이메일 : solss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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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변화의 분수령이 될 9월

한반도정세 변화의 분수령이 될 9월<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64)
정창현  |  tongil@to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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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1  07: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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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무상이 15년 만에 이달 중순에 열리는 69차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방문은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 단 2차례(1992년과 1999년)밖에 없었다. 이후 한두 차례 북한 외무상 등 최고위 당국자의 미국.유엔 방문이 추진됐으나 ‘돌발변수’로 무산됐다.

특히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맞춰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김 위원장 일행과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 사이에 보안검색 문제가 불거져 결국 미국 방문이 무산된 사건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었다. 당시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이 지체돼 그해 10월 초 조명록 차수가 특사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불발됐다. 이후 북한은 외무성 부상(차관)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북한 외무상의 방미는 흔치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외교가의 관심이 쏠린다. 리수용 외무상이 방미 기간에 내놓을 메시지 때문이다.

일단 리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은 향후 북한이 적극적인 국제외교를 펴나갈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볼 수 있다. 리 외무상의 국제 외교무대 참석은 8월 10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이후 두 번째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여러 분야에서의 국제적 협조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미합동군사연습 등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비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정당성, 인권문제 등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에 대응해 북한이 자체적인 ‘인권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표방한 만큼 리 외무상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의 박명철 최고재판소장은 러시아를 방문해 인권보장.테러척결 협력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의 비밀접촉

그러나 리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할 수 있겠지만 미국과 비공식 접촉에 나서거나 새로운 대미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각에서는 최근 비밀리에 이뤄진 북.미접촉에 주목한다. 북.미관계의 새로운 추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16일 미 정부 인사가 미 공군기를 이용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는 것이 북미접촉설의 기본 내용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접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북.미접촉 자체는 사실인 듯하다. 2012년 김정은시대에 이미 3~4차례 똑같은 방식의 비밀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연합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지고, 일정도 하루 앞서 종료됐기 때문에 이번 북.미접촉이 더욱 주목을 끈다.

주목해야 할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9월 중순이후 비슷한 기간에 인천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미국 뉴욕에서는 리 외무상이 참석하는 유엔총회가 열린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재개를 모색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계기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과거 3~4차례 북미접촉에서도 대화의 ‘장기국면’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은 평양에 수감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의 석방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에도 비밀리에 고위 당국자들이 방북해 억류 미국인 석방문제를 논의했고, 미 대표단의 방북직후 미국인 메릴 뉴먼 씨가 억류 42일 만에 풀려났다.

미국은 곧 남은 배 씨의 석방을 위해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방북을 추진했고, 북한도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 2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에 미국의 핵우산 핵심전력인 B-2 스텔스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가 연습에 참가해 무력시위를 하자 북한은 초청 계획을 취소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중순의 미 대표단 방북도 배 씨의 석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 라인 변화

다만 향후 정세 변화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안보진용 개편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우선 1년이 넘도록 공석으로 비워두었던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산하 6자회담 특사에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관을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2년 4월과 8월의 대북접촉에 관여했던 경험이 있다. 6자회담 특사는 대북정책특별부대표 자리를 겸하면서 6자회담 재개 시 차석대표를 맡는 자리다. 대북정채특별대표로 임명된 성김 전 주한 미대사와 함께 6자회담 재개문제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사일러 담당관의 후임에도 오랫동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앨리슨 후커가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북 안보진용 개편을 전후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원싱턴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오바마 행정부 1기의 대북 제재정책을 주도한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전략적 인내’로 대변되는 현 미국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며 북한과의 예비적 양자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는 “북한문제를 단순히 ‘관리’하려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라며 “이제는 북한에 대한 능동적 대화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앞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할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exploratory discussions)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북.미 비밀접촉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단기간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변할 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은 여러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해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6자회담 재개를 계기로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 측은 북.미 불가침조약으로 상징되는 문서화된 안전보장을 최종목표로 논의하는 것이 대략적인 밑그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 10월 12일 국방위원회는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대조선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우리가 핵무기를 내놓으면 대화도 있고 관계 개선도 있으며 불가침도 있다는 감언이설로 감히 그 누구를 흔들어보려고 꾀한 것”이라면서 미국 협상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북.미 양측은 상대에게 의지가 없다며 비난에 나섰고, 함께 불거진 이란과 시리아 문제 등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여전히 워싱턴에는 북한과의 ‘협상무용론’이 득세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막후접촉을 통해 대화의 조건을 타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북.미접촉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병기 국정원장 취임을 계기로 대북정책의 일정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8월의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 제안이 상징적 조치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8.15경축사, 북측 응원단 파견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을 볼 때 대북정책 기조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제2기 외교안보라인이 그리는 대북정책의 밑그림은 이번 달에 이뤄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 윤병세 외교장관의 유엔총회 참석, 국정원의 조직 개편 등이 이뤄진 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일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북한

북한은 남측이 제안한 2차 남북고위급접촉에 대해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심’으로 마련된 대외정책이 미국의 견제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남쪽에 1월 ‘중대제안’과 6월 ‘특별제안’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북.일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5월 북일간 스톡홀름합의에 따라 7월 4일 발표된 일본 납치 피해 문제 등을 조사할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원 면면은 북한의 적극적인 자세를 잘 보여준다.

며칠 후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생존하는 납치자 30명 명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즉각 반박한 것처럼 이 보도는 오보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 정부가 수긍할만한 조사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북한이 일본이 거론하고 있는 생존 납치자 중에서 일부의 존재를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스톡홀름합의 후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우리측은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북한은 특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면서 “조사는 어느 한 대상분야만을 우선시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동시병행적으로 진행한다”며 “필요한 대상들에 대한 조사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측 관계자와의 면담, 일본측 해당 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서와 정보들에 대한 공유, 일본측 관계장소에 대한 현지답사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기본방침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확정된 것이다.

새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일본이 제기한 납치피해자와 일제강점기에 사망해 북한 지역에 묻힌 일본인들 외에도 해방 후 북한지역에 잔류한 일본인과 그 후손들,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입국한 일본 여성 등 자진입국자들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선택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북한은 이러한 조사에 기초해 일본에 친척이 있는 일본인의 일시 귀국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만경봉호를 타고 일본을 방문할 경우 북측이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화객선 ‘만경봉 92’의 일본 입항 재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9월중으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일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북한과 일본 당국은 북한 거주 일본인의 일본 방문 등 일본 내의 방북정서를 완화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행사의 결과와 아베 총리의 최종결정 여부에 따라 북한은 동북아정세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북.러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국내의 한 언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8월말에서 9월초에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관련 질문을 받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부인했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이 현재로서는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올해 10~11월로 추진되고 있는 일본 방문 일정이 무산될 경우 평양을 방문하거나 러.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그 전후에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우려했던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연습기간을 위기고조 없이 넘긴 9월의 한반도정세는 ‘대화국면’을 만들기 위한 모색기에 접어들었지만 미국과 한국의 정책기조가 변화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긍정적 변화가 모색되더라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6개국의 복잡한 논의과정이 다시 진행되고, 수감된 케네스 배 씨의 석방이 북.미대화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겠지만 그것이 6자회담 재개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현재로서는 북.일회담의 진전이 한반도정세의 변화를 이끄는 도화선이 되고, 이것이 남북대화, 북.미대화,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최종 선택이 1차적인 변수이고, 이에 대한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2차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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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와 새누리당

‘유병언법’으로 국민을 협박하는 이상한 나라
 
‘유병언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와 새누리당
 
임병도 | 2014-09-01 09:17: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8월 31일 일요일, 정부는 긴급 관계 차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일명 '유병언법'이라 불리는 '범죄수익은닉규제및처벌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가 빨리 처리해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사고수습 비용 대부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라며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세금으로 세월호 사고 수습을 해야 한다고 겁을 줍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모든 언론은 일제히 "유병언법 처리 지연 시 6천억 원 국민 세금 부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수사권,기소권을 둘러싼 세월호특별법으로 여,야가 진통을 겪고 있는데, 빨리 '유병언법'이나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정부의 말처럼 유병언법이 모든 중심에 있으며, 그 법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수 있을까요? 


' 유병언이 죽었는데도 유병언법만 밀고 나가다니'

현재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유병언법'은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2014년 5월 28일 발의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입니다. 

상속,증여에 의해 범죄수익이 자식 등에게 귀속되어 있더라도 그 재산이 범죄에 의한 재산임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몰수, 추징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유병언의 배우자와 자녀 등에 숨겨진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입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발의한 '유병언법'의 가장 큰 문제는 몰수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범인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유병언이 사망한 상태로 6월 12일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제328조 공소기각의 결정을 보면 '피고인이 사망하거나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아니하게 되었을 때'는 공소기각의 결정을 합니다. 

즉. 유병언이 사망했음으로 몰수의 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병언법'만 밀고 나간다고 모든 일이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유병언법'을 통해 재산을 몰수하려면 이와 같은 법률을 먼저 다시 개정하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유병언 사망 이전에 발의된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다른 의도로 '유병언법'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가족, 보상 지원만 부풀리는 정부와 언론' 

유병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세금이 나간다고 난리를 치는 정부와 언론은 6천억 비용 중에서 유독 가족,보상 지원 항목만 강조합니다. 
 

 

 

MBC뉴스테스크는 세월호 수습 비용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사고수색,구조 항목은 공란으로 놔두고, '가족보상,지원'이라는 항목에 대해 4천580억 원이라는 금액을 표기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대다수의 시청자는 SNS에서 유언비어로 떠 다니는 세월호 유가족 특혜 등을 떠올리며 '저런 엄청난 지원을 왜 국가의 세금으로 해주나?'라는 의문과 반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부가 유병언법이 통과되지 못하면 세금으로 지원된다는 가족보상금은 정부의 세금이 아니라 보험회사에서 지급되는 돈입니다. 

세월호는 한국해운조합의 4개 공제상품(선주배상,선박,선원 여객공제)에 가입되어 있어 사망자 1인당 3억 5천만원까지 배상이 됩니다. 또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동부화재 여행자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1인당 상해사망 1억 원까지 보상받습니다. 

국내 보험회사들은 대형 보험의 경우 해외 재보험사에 재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금은 국내 보험사와 해외 보험사가 함께 지급합니다. 1
 

가족보상과 지원으로 4천580억이 소요되고, 이 모든 것이 세금으로만 나간다는 내용은 너무 과대하게 포장되고 있으며, 왜곡과 악용될 소지의 우려가 있습니다. 
 

 

 

 

세월호 선박,인양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는 1천420억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액이 과연 타당한지도 의문입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 20일 뒤 5월 5일 영국 해양구난 컨설팅업체 'TMC해양'과 인양 자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는 구조작업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 여전히 남아 있을 때였습니다. 해수부는 TMC해양에 1인당 자문료로 하루에만 280만 원씩 (2명)총 자문료로 10억 원가량을 지급했습니다. 2

정부는 정확히 선박인양을 어떤 업체와 어떤 방식으로 계약했고,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정확히 알려야할 것입니다. 3


'유병언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와 새누리당'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연일 '유병언법'이나 '수사.기소권있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왜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병언법을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근혜 정부가 실제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4 이후에 논의됐던 다양한 몰수,추징 법안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최근 5년간 추징금이 얼마나 집행됐는지 조사해봤더니 25조 이상의 추징금(2013년 8월까지)이 집행되지 않았고, 집행률은 겨우 1% 미만이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자 등을 포함하여 추징금은 99% 환수되지 않은 것입니다. 

'유병언법'이 통과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정부와 언론,새누리당은 떠들지만, 과거에도 1% 미만만 추징금을 거둬들인 정부가 과연 유병언 일가 재산을 제대로 몰수할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일이 '자력구제'를 금지하고 있는 형사법을 위반하고,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사인소추제도'를 통해 시민이 사인소추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5 개인이 사인소추를 하는 일이 드물지만, 법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에서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논리대로라면 영국은 미개한 나라이겠죠?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일은 자력구제가 아닙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검증되고 믿을 수 있는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 제대로 수사를 해달라는 일입니다. 

미진한 법과 시스템을 보완해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하는 요구는 결코 무리하거나 헌법에 위배된 것이 아닙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유병언법'에 대해 '범인에 대한 추징의 재판을 제3자를 상대로 집행하는 것은 몰수와 추징의 일반 법리와 모순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은 검사 출신 의원들이 대거 나서서 '수사권.기소권 부여 세월호특별법'이 형사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건지, 검찰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이들은 검사 출신이면서도 오히려 실제 법리에도 맞지 않는 '유병언법'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세금을 운운하며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법을 잘 모르는 국민을 상대로 법을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주장만이 법리에 맞는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일이 법적으로 위배되지 않는다는 법학자들의 주장과 정반대 주장을 펼치는 새누리당과 정부를 보면 진실을 끝까지 은폐하겠다는 속내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된 세월호특별법이 두려운 자들이 권력을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세월호특별법을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1.국내 보험사의 최대 손실분은 약 30억~40억 수준
2.6월까지 2억 원의 자문비가 지급된 것은 확인됨,
3.해양구난은 정가가 없기 때문에 외국 업체와의 계약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적정한 가격에 계약을 했는지 주목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4.전두환 추징금때 적용됐던 법률
5.1995년 십대 흑인 스티븐 로렌스가 살해당하자, 가족이 국가의 미온적인 부작위에 좌절, 살인혐의자에 대해 소추를 제기하였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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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1일 3차 협상 앞두고 기자회견... 새누리는 '난색'

"유가족들 배후 누구냐고요?
살려달라 애원한 우리 애들입니다"

[현장] 세월호 유가족, 1일 3차 협상 앞두고 기자회견... 새누리는 '난색'

14.08.31 20:19l최종 업데이트 14.09.01 00:1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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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새누리당과 3차 면담을 하루 앞둔 31일 세월호가족 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은 "내일 가족들과 새누리당이 만나는 자리에서 며칠 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얘기했던 '기존의 여야 합의안이 최대한 양보한 부분'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라면 더이상 면담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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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분명히 밝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가족들의 배후는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엄마, 아빠를 간절히 부르며 구조를 요청했던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돕지 못해 마음 아팠다던 분들입니다."

일순간 말이 끊겼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오영석군을 잃은 어머니, 권미화씨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식이 살려달라 애원하는데 그걸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지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면 우리 애들이 와서 얘기하나 싶고, 비가 오면 애들이 많이 화났나 싶어요. 천둥 벼락이 떨어지면 누구한테 꼭 갔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권씨 옆에 서 있던 유가족들이 하나 둘 눈가를 훔치기 시작했다. 너나 없이 한 마음이 된 세월호 유가족들은 벌써 10일째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비닐 한 장에 의지한 채 무기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31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기소·수사권이 보장된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세월호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137일째이지만 여전히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침묵만 지키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농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열흘째 한뎃잠을 자고 있는 이들의 요구사항은 변함이 없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그 자체를 원했다. 

추석연휴 넘기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

"부디 진실을 알려주세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어요."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섰다. 모두 함께 맞춰 입은 흰색 티셔츠에는 '부디 진실을 알려달라,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9월 1일 새누리당과의 3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만약 새누리당이 '기존의 여야 합의안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것이라면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정기국회 일정이나 추석 등 시일에 쫓겨 촉박하게 협상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추석 연휴를 넘기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중 1명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 기소·수사권을 행사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까닭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여야 원내대표 재합의안대로 특검 임명방식의 '보완'만으로는 충분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첫째, 상설특검법 상 7명의 특검 추천위원을 선발하게 되는데, 대한변협 회장(1), 야당 추천(2) 등 3인을 제외한, 법원행정처 차장(1)·법무부 차관(1)·여당 추천인사(2) 등 4인의 특검 추천위원들은 사실상 정부·여당의 영향력 안에 있고, 또 이들이 추천한 특검후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인 만큼 향후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특검의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기한인 1년6개월 내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해야 현재까지 드러난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들을 장기간 또 안정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야 합의대로 상설특검법에 따른다면 특검 활동시한이 90일이고, 여기에 여야 합의로 연장한다고 해도 최장 180일밖에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상설특검법에 따른 수사로는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셋째,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행사할 경우, 특검과도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원활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유병화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위 세 가지 요건을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낸다면 우리 가족이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위헌적인 주장 계속한다면 논의 진행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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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3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차 협의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시 유가족과 4차·5차 협의를 해서 성의있게 우리와 유가족이 계속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유족과 우리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면 야당이 표결에 참여하면 된다"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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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누리당은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헌적인 수사·기소권 주장을 계속한다면 논의의 진행이 어려워진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김 부대표는 "유가족 대책위와 특히 그분들을 도와주는 많은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과격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도와주기를 바란다"며 유족보다 유족을 돕는 시민단체를 겨냥하기도 했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특히, "유가족 대책위가 수사·기소권 부여 수준의 특검 추천권을 넘겨달라는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면서도 "만약 그 같은 제안을 한다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새누리당은 유가족 측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김 부대표는 또 "상당히 급한 상황임에도 지난 2차 협상 4~5일 뒤인 내달 1일로 3차 면담을 정하는 걸 보면 유가족 내부적으로 의견 교환 절차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판단도 해본다"며 "1일 만날 때까지 다른 접촉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날 기자와 만나, 유가족의 입장 변화를 바라는 여당의 요구를 일축했다. 유 대변인은 "우리(유가족)가 입법 청원한 특별법을 본격적으로 얘기한 건 고작 (새누리당과 2차 면담을 한) 3시간 뿐"이라며 "(여야 원내대표 합의과정에서) 언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어나 봤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재합의안은 아무리 얘기해봐야 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유가족들이 새누리당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면 (소통)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소통 과정을) 뚝 잘라서 '받을래, 안 받을래'라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여당 특검추천위원 몫 2명 추천권을 유가족에게 준다'고 해도 그것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유 대변인은 내달 1일로 3차 면담을 잡은 것은 유가족 내 의견 조율 때문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의 설명과 정반대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유가족이 원하는 바나 심정을 충분히 설명했으니 4~5일간 (새누리당이) 시간을 갖고 충분히 그리고 깊이 고민해보시라는 뜻이었다"며 "그래서 제가 1일로 면담일자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차례에 걸쳐 유족과 새누리당이 직접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달 1일로 예정된 3차 협상에서 과연 세월호 특별법이 극적으로 타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저희 아이들의 희생으로 여러분의 가정은 지켜드리고 싶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시작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농성' 현장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일째 농성이 이어지면서 정체불명의 시민이 나타나 '시비 걸기'를 하는 등 유족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들의 신원에 대해 조사하거나 입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봐주기 논란도 일고 있다. 

31일 오후에도 한 남성이 느닷없이 농성장에 나타나 유족들을 향해 "이제 집에 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은 유가족의 기자회견 도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밥 먹고 왔다, 어쩔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가 높게 든 두 손에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A4용지가 들려 있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했던 것을 비꼰 것이다. 그는 이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모퉁이에 마련된 농성장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의 제지를 뚫고 들어와 몇번씩이나 유가족들을 자극했다. 

낯선 시민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고 이창현군 아버지 이남석씨는 "며칠 전부터 농성장에서 기도회 같은 것을 하면서 피켓을 들고 시비 거는 사람"이라며 "일반시민은 아닌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경찰에 누차 얘기했는데도 경찰도 (저 사람을) 옹호하는 느낌이 들어서 유가족들 마음이 많이 안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성장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가끔 비까지 오지만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수 있다"며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을 못 밝히는 게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유가족은 '세월호 정국'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진상규명에 10년 넘는 기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마음먹고 있다"며 "빨리 끝나길 바라는 국민들도 계시겠지만 어쩌면 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또 그러더라도 인내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진상규명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씨는 그 남성을 향해 "욕하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권씨는 "누구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며 "저희도 (세월호 사고 전에는) 내 자식이 이렇게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읍소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다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멀리 보냈기 때문에 다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기 힘들게 됐다"며 "그러나, 저희 아이들의 희생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은 지켜드리고 싶다"고 말해 주변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권씨는 "(세월호 사고 전과는 다른)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그 자체를 비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규명뿐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대국민 담화 날인) 5월 19일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정씨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벌써 열흘째 노숙을 불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1인시위하는 유가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부산까지 시장을 보러 가고 또 뮤지컬까지 관람하러 다니시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신가"라며 "이런 괄시를 받는 유가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진상규명만 제대로 해달라는 게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가"라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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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김기덕감독 세월호 진실촉구 셔츠 화제

베니스영화제 김기덕감독 세월호 진실촉구 셔츠 화제
 
 
 
정상추 
기사입력: 2014/09/01 [00: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베니스 영화제, ‘폭력에는 폭력’ 세월호 진실에 전 세계 주목
-김기덕 감독 셔츠,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지지 위해’ 기자회견 모습 전 세계에 송출

이번에는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세월호가 국제적인 관심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나은 걸출한 감독 김기덕 감독의 티셔츠 때문이다. 김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한 자신의 영화 ‘일대일’을 홍보하는 기자회견 석상에 입고 나온 검은 셔츠에는 영문으로 ‘”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김 감독은 이 셔츠를 입고 나온 이유에 대해 ‘이것은 지난 4월의 여객선 참사에서 사망한,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인 사망자들의 친지들을 지지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이 장면은 AP에 의해 3장의 사진과 함께 전 세계로 타전됐고 영국의 데일리 메일을 비롯한 비즈니스위크,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 등 외신들이 이를 앞 다투어 보도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영화 스타들이 총 출동할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세계 영화계의 가장 큰 축제여서 김 감독의 이러한 세월호 메시지는 김 감독이 가지는 이미지만큼이나 전 세계 영화인들과 스타, 그리고 팬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AP는 27일 베니스 영화제의 소식을 전하며 두 꼭지의 특별한 소식을 담았다. 그 하나는 ‘FESTIVAL SHOWS SUPPORT FOR IMPRISONED FILMMAKERS-영화제는 투옥된 영화제작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로 러시아와 이란에서 영화제작자가 투옥된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KOREAN DIRECTOR BACKS FERRY DISASTER FAMILIES-한국의 감독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지지하다’라는 김기덕 감독의 세월호 유가족지지 소식이었다.
 
김 감독은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자신이 이번에 들고 나온 영화 ‘일대일’과 비교하며 ‘가족들은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 아버지는 단식투쟁을 계속하다가 병원에 입원됐다’고 말한 뒤 ‘이 아버지의 행동이 그 자신의 영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영화 속에서 무자비한 강간과 살인의 용의자들이 특수한 복장을 한 복수자들 집단에 의해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고 소개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가족들이 잔인한 복수를 행사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작금의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태에 대응을 보는 국민들의 직접적인 복수 열망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김 감독은 유민이 아빠의 단식에 대해 ‘이 아버지는 자신의 대의명분을 위해 평화적인 희생을 했다고 말했다’며 자신의 영화 등장인물들은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영화에 대해 “가난한 자, 평범한 사람들의 어깨를 억누르는 억압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AP는 이 기사의 말미에 Jill Lawless의 ‘”I wanted to find a way to fight violence with violence.”-“폭력에 폭력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라는 트위터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일종의 암시를 던지고 있다. 베니스 영화제는 스타와 상업성 위주의 칸영화제와는 달리 사회적 메시지와 작품성을 중점에 두는 영화제다.
 
김 감독의 이번 세월호 메시지로 세월호 참사와 이의 진상규명은 이번 베니스 영화제의 화두로 떠올라 이를 뭉개고 넘어가려는 박근혜와 그 정권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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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숨지기 직전 “살려주세요” 마지막 애원

등록 : 2014.08.31 12:05수정 : 2014.08.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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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 가혹행위 현장검증 사진 윤아무개 일병 사망 나흘 뒤인 4월11일 진행된 군의 현장검증에서 가해 병사(왼쪽)가 윤 일병(오른쪽)한테 바닥에 토한 음식물을 핥게 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군은 당시 윤 일병의 부모 등 유족이 공개에 소극적이라며 현장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했으나, 8월 4일 <케이비에스>가 군 수사 기록에 첨부된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화면 갈무리

사건 당일 ‘핵심 목격자’ 김 일병 진술서 추가 공개
구타 당시 음식물 튀어나와…기도 폐쇄 보기 어려워
가해자들 “이거 살인죄, 조용히 해달라” 은폐 시도도

“살려주세요….”

 

선임병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사망한 육군 28사단 윤아무개(21) 일병이 숨지기 직전 사경을 헤매며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 선임병들 역시 자신들의 가혹 행위로 윤 일병이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군 검찰이 ‘폭행 치사 혐의’로 기소된 가해 병사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진술이어서 군 검찰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31일 <한겨레>가 입수한 군 재수사 기록을 보면,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핵심 목격자인 김아무개(20) 일병은 윤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 “저렇게 맞다가는 맞아서 죽든지, 윤 일병이 자살해서 죽든지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김 일병은 천식으로 의무대에 입실했던 환자로, 윤 일병 사망 당시 현장을 지켜봤다. 김 일병의 진술서는 지난 13일 군 검찰이 전역한 김 일병을 찾아가 추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됐다. 김 일병의 진술은 이전에도 일부 알려졌지만 이번에 추가 진술서 공개를 통해 윤 일병 사망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게 됐다.

 

지난 4월6일 오후 4시, 김 일병은 이아무개 병장과 하아무개 병장, 이아무개 상병, 지아무개 상병 등 선임병들이 김 일병을 괴롭히는 소리에 잠을 깼다. 만두와 닭튀김을 먹던 중, 이 병장이 ‘음식을 왜 쩝쩝거리면서 먹느냐’며 윤 일병의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고 다른 선임병들은 폭행에 가세하거나 망을 봤다.

 

가해 병사들은 힘이 빠지면 교대로 엎드린 윤 일병의 배를 걷어차는 등 폭행의 강도를 높였다.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침상을 오르내리게 하고 의무대 안을 뛰어다니게도 했다. 또 이 병장과 이 상병은 평소에도 윤 일병에게 “너 계속 이러다 맞다가 죽는다. 네가 제대로 해야 안 맞잖아’”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김 일병은 증언했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린 5일 오전 경기 양주시 은현면 28사단 군사법원에서 군인들이 피의자를 태운 호송버스가 지나가는 동안 줄을 서 일반인들이 접근을 막고 있다. 양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건 초기 군은 윤 일병이 목에 음식물이 걸려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목격자 김 일병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윤 일병이 뺨을 맞을 때 음식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가 침상에서 헐떡일 때에도 음식물이 목에 걸려서 숨이 찬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김 일병은 진술했다. 윤 일병이 침상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이 먹고 싶다’고 하자 이 병장은 3초를 줄 테니 물을 먹고 오라고 했다. 윤 일병이 필사적으로 달려갔지만 3초 안에 물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다시 주먹질이 계속됐고, 결국 윤 일병은 다리가 풀려 소변을 지리며 침상에 쓰러졌다.

 

윤 일병이 사경을 헤매며 마지막으로 웅얼거린 말도 “살려주세요”였다고 김 일병은 털어놨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이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은 돌아가면서 배와 가슴 등을 사정없이 폭행했다. 그 뒤 윤 일병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윤 일병은 깨어나지 못했다.

 

또 가해 병사들은 자신들이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병장 등은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 날 김 일병에게 “제발 조용히 해주세요. 이거 살인죄예요”라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이 상병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수첩과 노트의 내용을 찢었고, 지 상병은 윤 일병의 물건을 더블백에 담아 어디론가 가져갔다고 김 일병은 진술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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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유족들이 개·고양이만도 못한가"

[현장] 청와대 앞 농성 9일 맞은 유족들 "개가 짖어도 나가 보는데…"

선명수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31 01:41:06
 
"우리는 죽고 싶어도, 아이들 곁으로 당장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부모들입니다. 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하늘나라에서 애들 얼굴을 차마 볼 수 없는 그런 부모들입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다른 건 원하지 않습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우리는 철저한 진상 규명 하나면 됩니다. 내 목숨이라도 내놓을테니, 제발 우리 애 살려서 보내주세요. 그게 안 된다면, 제발 진상 규명이라도 해달라는 겁니다."
 
마이크를 잡은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청와대 앞 노숙 농성 9일째.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故)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인 유 대변인은 "동네 개가 짖어도 시끄러워서 나가 보고, 고양이가 울어도 기분 나쁘다고 내다보는데, 우리 유족들은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모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경찰 차벽은 두텁게 유족들을 둘러쌌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은 유족들의 농성장과 도로 하나를 마주한 채 길 건너편에서 고립됐다. "인도로 지나갈 테니 길을 내 달라"는 요구에도, 경찰은 '불법 집회'라며 해산 명령을 반복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청와대 인근 노숙 농성이 9일째를 맞은 30일, 이날도 유족들은 불과 450미터 거리에 있는 청와대를 지척에 두고도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오가는 길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단원고 희생자 고(故)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유족들 앞을 빼곡하게 막아선 경찰 너머 청와대를 향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소리쳤다. 
 
"원하는 답만 주면, 우린 돌아갈 수 있어요. 빨리 안산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분향소 가서 애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집에 가서 영정 사진 한 번 더 만져보고. 사진이라도 안아보고 싶어요. 우리 애 있는 하늘공원도 못 간 지 오래됐어요. 진상 규명만 해 달라는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 3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 3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중국인 관광객은 수십 명씩 오가는 길, 유족들에겐 허락하지 않는 정권
 
청와대로 가는 길목은 막혔지만, 이날도 광화문광장에는 "청와대가 응답하라"며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몰렸다. 유가족과 시민 5000여 명(경찰 추산 2000명)이 모여 유가족의 뜻이 반영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한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 20여 명이 도착해 유족들에게 실종자 10명의 얼굴이 새겨진 노란색 조끼를 전달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 주변에 차벽을 치고 30개 중대 2400여 명을 투입했으며,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해산 명령을 반복했다. 이에 주최 측은 '서울시로부터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공문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집회 후 참석자 중 일부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행진했지만, 경찰이 가로막으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행진은 "더 이상 다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바람에 따라 오후 10시께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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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명수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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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모인 5천여 시민 "청와대는 응답하라"

 

[현장] '특별법 제정 8·30 국민대회'...오후 9시 40분께 자진 해산

14.08.30 18:57l최종 업데이트 14.08.30 22: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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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청와대앞에서 밤샘노숙중인 유가족들의 박근혜 대통령 면담 요구 수용을 촉구하는 '8.30 국민대회'가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경찰이 버스로 광화문광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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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없는 국가는 도둑떼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유가족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글을 적은 손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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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버스로 광화문광장을 에워싼 경찰이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방패를 들고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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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30일 오후 9시 51분]

이번 주말도 광화문 광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경찰은 어김없이 이들을 '차벽'으로 포위했다.

30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공동 주최한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8·30 국민대회'에는 시민 5천여 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천여 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했다.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을 출발해 20일 동안 도보순례를 이어 온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 열 명이 유가족과 만난 것이다. 호남신학대와 장로회신학대, 부산장신대 학생과 교수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20일 동안 실종자 열 명의 사진을 노란 조끼에 붙이고 걸었다.

무대 위에 오른 순례단과 유가족은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순례단이 입은 조끼는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무대 아래 시민들은 '특별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이 책임져라'라고 쓰인 노란색 손피켓을 흔들며 화답했다. 

조끼를 입고 마이크를 잡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아직 바닷속에 갇혀있는 실종자를 생각하면 일주일 만에 아이를 시신으로 되찾은 나는 행복하다고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라며 "마지막 한명의 실종자가 돌아올 때까지 똘똘 뭉쳐 한 길을 가겠으니 국민 여러분도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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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 10명' 조끼 입은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실종자 10명의 사진이 붙은 조끼를 입고 있다. 이 조끼는 시민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안산까지 도보행진을 하며 입었던 것으로 이날 국민대회에서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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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경찰이 버스로 광화문광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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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대와 경희대 정문에서 출발해 청와대 앞 유가족의 농성장까지 도심 행진을 진행한 박이랑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주 도심 행진 이후 멀리서 바라볼 게 아니라 스스로 유가족이 되어 특별법 제정에 함께 해야겠다고 느꼈다"라고 전하며 2차 행진을 예고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김병권 가족대책위 대표는 "지금까지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위로해 주시고, 진상 규명을 위해 천만 서명에 나서주셨던 분들께도 머리를 숙인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 "여당이 가족과 대화에 나섰지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해 특별법 제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한 뒤 "(지금 포기하면) 아이들의 희생도 헛되어질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성원도 버려지는 것이기에 가족들은 조금 더 힘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 도중에는 경찰의 해산명령이 계속 이어졌다. "광장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경찰의 주장에, 주최측은 "서울시로부터 광화문 광장 사용을 허가한다는 공문까지 받았으니 경찰은 거짓된 방송을 중단하라"고 되받았다.

이날 행사 도중에는 동조단식에 참여했던 남성 시민 한 명이 쓰러져 구급차로 호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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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도중 한 참석자가 쓰러져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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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청와대앞에서 밤샘노숙중인 유가족들의 박근혜 대통령 면담 요구 수용을 촉구하는 '8.30 국민대회'가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글과 구호가 적힌 손 피켓을 든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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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마치고 6시 30분께 흩어졌던 시민들은 유가족이 농성을 하고 있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8시께 다시 모였다. 유가족과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경찰차벽'에 가로막힌 시민 200여 명은 '유가족을 만나고 싶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길 건너편에서는 유가족과 시민 70여 명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주민 센터 옆 도로에서 연좌 시위를 벌였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은 '특별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은 응답하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1시간 넘은 대치 끝에 결국 만났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포함한 유가족 9명이 길을 건너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은 유 대변인은 "이곳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며 "그럼에도 가야할 길은, 길이 없어도 가야만 한다"며 끝까지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시민들은 박수와 함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하며 오후 9시 40분께 자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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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농성 중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모인 시민 200여 명. 경찰과 1시간 넘은 대치 끝에 유가족과 만난 이들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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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의 참여와 투쟁만이 공평과 존엄 실현

[번역]케인즈도 죽이는 신자유주의 : 오래 사는 마르크스
필자 : 이스마엘 호싸인-자데흐 / 역자 : 정성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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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30  15: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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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이스마엘 호싸인-자데흐 미국 드레이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자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Global Research> 2014년 8월 26일자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라며 뉴딜-사회민주주의 개혁정책으로 특징되는 케인즈주의 처방이 만병통치약인양 주문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자본주의 나라 그 어디에도 케인즈주의 처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진단하고 ‘공평과 존엄’에의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글이다/역자 주

많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케인즈주의의 부활을 생각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명백하게 많은 기대를 모았던 케인즈주의 처방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왜? 케인즈 경제학자들은 레이건 대통령 시기에 그 유래를 찾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반대로 케인즈 경제의 신자유주의 경제로의 전환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논할 것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로 넘어갔다. 수요관리정책을 통해 경제를 조절하고 회복시키는 정부의 능력에 대한 케인즈주의자들의 믿음은 국가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적 인식과는 다르게 공공정책은 단순한 행정적 기술적 선택 그 이상이었다. 계급정책이 훨씬 중요했다.

또한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정책으로 실업의 전염병이 돈다고 보는 케인즈주의보다 노동예비군론에 기초한 마르크스의 실업론이 만성적 고실업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음을, 마찬가지로 높은 고용과 임금을 확장적 경제순환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보는 케인즈주의 개념보다 마르크스의 최저생계비론이나 빈곤임금론이 어떻게 왜 궁핍의 일반적 우세와 가난을 탈피할 수 없고 높은 이윤과 부의 집중을 가져다주는지 더 설득력 있게 해명해주고 있음을 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깊은 것

케인즈주의자의 총수요관리전략에 의문을 갖고 서서히 포기한 것은, 많은 급진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단지 우익=공화당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이나 레이건의 개인적 선호 때문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와 시장의 조건이 실제 구조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뉴딜-사회민주주의 정책은 대공황의 여파로 추진되었는데, 경제적 조건이 양보했을 때, 그리고 노동자, 농어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되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했다.

그 양호한 경제적 조건이란, 전 세계에 걸쳐 2차 대전 이후 경제 재건에 투자가 요구되었고 미국 공산품에 대한 거의 무한대의 국내외 수요가 있었으며 미국의 자본과 노동 모두에 경쟁자도 없었던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안성맞춤의 상황에 아래로부터의 압력까지 동반되어 미국 노동자들이 괄목상대한 임금과 소득을 얻고 높은 고용율을 자랑할 있었다. 그 다음 높은 임금과 강한 수요는 공정한 방법으로 전쟁 직후의 장기적인 확장적 경기순환을 촉진하는 유쾌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 이르면, 미국의 자본과 노동 모두 이제 더 이상 세계시장에서 비경쟁적이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2차 대전 직후 확장적 장기 순환 동안 미국 제조업체들은 고정자본이나 공장 증설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왔고-주로 공장과 설비 부문에서 거대한 양의 이른바 "잠겨있는 비용"이 너무 많아 1960년대 말부터 이윤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세계화로 케인즈주의 정책 거부”

그 무엇보다도, 실제 생산조건의 이 같은 중요 변화, 그에 따른 세계시장의 재조정이 케인즈주의 경제를 서서히 보류하고 결국 거부하게 되는 계기였다.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 지지자들의 되풀이되는 불만과는 반대로, 뉴딜 개혁을 해제시키는 계획 뒤에 놓여있는 것은 로널드 레이건의 생각이나 술책이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자본가의 이윤추구에 매력이 없다고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단념하게 한 것은 먼저 자본의 세계화, 나중에 노동의 세계화이다. 그 이후 레이건과 신자유주의 긴축경제가 나왔다.

2차 대전 직후 금융규제, 자본통제와 새로운 국제통화시스템이 브레턴우즈에서 창설되었을 때도 국제 금융 및 신용 시장이 효과적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미국 달러와 약간의 금이 국제 무역과 신용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신용은 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여기에서 돈을 빌리고 갚는 통절 가능 국가의 중앙은행을 통해 일어났다.

그러나 국제 신용 및 금융 시장의 모습이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부터 점차 변했다. 이들 시장이 수천억 달러의 규모로 성장함으로써 국제신용거래가 IMF-중앙은행 채널 밖에서 이뤄졌다. 국제 금융시장의 급팽창을 심대하게 야기한 2가지 주요 요인은 1) 컴퓨터를 이용한 국제신용, 2) 유로 달러, 즉 해외은행에 예치한 미 달러의 끝없는 증식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자유자재로 글로벌 금융과 신용이 그렇게 커져서 국내 또는 국가의 통제와 조절이 사실상 효과가 없어졌다.

통제와 조절을 통한 보호 장치의 약화나 와해는 명백히 어떤 정치인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의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실제 국제금융시장 변화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레이건이 백악관에 들어가기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 정책이 좋아 케인즈주의 정책을 거부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간 198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명백한 증거가 확인하는 바, 케인즈주의 처방은 적어도 그 보다 12년 전에 만료되었다. 수요관리를 통한 경제 확장이라는 케인즈주의 정책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김이 빠졌으며, 레이건이 조타석에 앉았을 때 갑자기 끽 소리를 내며 멈추지 않았다.

에버그린주립대 알랜 낫세르 교수가 지적했듯이, "경제적 공평 정책은 효율이란 측면에서 비싸게 교환된다."는 주장은 레이거노믹스가 그런 논리를 펴기 오래 전에 민주당 정부의 경제자문역이 한 것이다. 아더 오쿤과 찰스 슐츠가 민주당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공평과 효율 : 큰 교환>(오쿤, 1975년)에서 "더 큰 공평을 위한 정부 간섭주의자들의 목표로 인해 민간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비효율적 대가를 지불해왔다". 똑같이 슐츠도 "공정과 공평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는 정부 정책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다"고 주장했다. 또 그런 정책은 "그 대단한 민중정책 입안자들을 지키려다 민간경제의 안정을 깼다."고 비판했다.

제롬 카루르도 "정부의 규제와 조절을 없애려는 상업-영업 원탁회의 방의 시도는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최소 9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기업의 법정 대리인, 루이스 포웰은 그 원탁회의 방에서 지금 잘 알려져 있는 비망록 '미국 자유기업제도 공격'을 설파했다. 포웰이 노동과 규제 표준을 법적으로 공격하면서 대기업은 재빨리 노조 조직화를 방해하고 미국기업연구소(1972년), 헤리터지 재단(1973년), 카토연구소(1977년) 같은 싱크탱크 선전기관이 봇물처럼 분출했다.

그 이전부터 민주당의 선각자들이 뉴딜-케인즈주의 경제에서 180도 이론적 방향 전환을 하면서 카터 정부에서 그 이론의 정책적 이행이 시작되었다. 레이건은 신자유주의의 점진적 아젠다에 관한 민주당의 복사판을 정돈해 추진함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라는 미사여구를 탐욕과 이기심을 촉발하는 험악한 개인주의라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표현으로 바꾸어놓았다. 클린턴은 레이건의 공급 일면의 경제정책을 완화하지도 못했고 오바마는 그런 정책의 집행을 망설이지도 않았다.

국가의 역할 : 희망, 신화, 환상

정부가 재정과 금융 정책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을 유지하도록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는 케인즈주의 입장은 자본주의가 국가에 의해 통제되거나 조절될 수 있고 정부 부문의 경제전문가에 의해 모든 이해관계가 관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그러므로 케인즈주의 모델의 유효성은 주로 희망이나 환상에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제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의 힘 관계는 언제나 다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자들의 인식과 대조적으로 경제정책 입안은 행정적 기술적 선택의 문제 그 이상이다. 국가와 정책 생산기관의 계급적 본질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사회정치적 문제가 더 중요하다.

케인즈주의자들의 환상은 두 가지 신화에 의해 키워지고 은폐되고 있다. 첫째 신화는 케인즈의 재능으로 대공황과 2차 대전 이후 뉴딜과 사민주의 경제개혁을 추진한 데 따른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증거들이 보여주는 바, 그러한 개혁 추진과 두드러진 케인즈의 부각은 결렬한 계급투쟁의 산물이며 케인즈와 같은 전문가들의 두뇌보다 민초들의 불가항력적인 압력의 결과이다. 사실 케인즈는 협소한 아카데미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뉴딜정책 대부분이 구사된 미국의 상황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둘째 신화는 1948~1968년 케인즈주의 수요관리 경제정책에 의한 미국의 장기적 경제 확장에 따른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 확장적 정부정책이 그 시대 환상적인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가적인 양호한 조건이나 요인도 확장정책을 도왔다. 세계적으로 황폐한 전후 경제재건 투자 필요, 자본상품은 물론이고 소비자를 위한 전후 방대한 글로벌 수요, 세계시장에서의 미국 상품-자본의 경쟁 미약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전쟁 직후 성장과 확장을 위한 어마어마한 여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케인즈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신화와 환상을 숨기고 2008년 금융위기와 이어지는 대불황에서도 케인즈주의 경제의 새로운 부활이라는 밝은 희망만을 상상했다. 지난 6년 가까이 아주 명백하게 케인즈주의 해법은 귀머거리 장애자로 전락하고 있다. 케인즈주의자들의 희망과 환상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파울 크루그만 교수는 <뉴욕 타임>지 칼럼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케인즈주의 경제 확장과 일자리 창출 정책을 모른다고 자주 빈정대고 있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의 낙담과 실망의 중심에는 경제정책은 지적 산물이고 정책생산은 본래 기술적인 전문분야와 개인적 선호의 문제라는 비현실적인 이해가 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경제정책 수립이 좋거나 나쁜 것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정책의 문제이다.

선한 마음이나 인정어린 배려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공공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놓치지 않는 것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레이건을 사악한 왕으로 혹독하게 거듭 비난하고 루스벨트를 현명한 왕으로 칭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왜 지배계급이 현명한 왕을 내쫓았고 사악한 왕을 받아들였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런던 메트로폴리션대학의 페터 고안 교수는 "케인즈주의자들은 규제와 조절에 심취되어 국가와 월스트리트의 동일성을 보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거짓 주장을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과 고용 : 케인즈 대 마르크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경제발전을 설명하면서 케인즈주의의 종말과 부정확한 신자유주의의 부활을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실업문제와 경제침체를 진단하고 있다. 케인즈주의 지지자들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대신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고실업을 집요하게 비난함으로써 실업문제의 구조적 체계적 원인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끊임없이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추세는 상당한 규모의 실업군, 즉 마르크스가 얘기한 '노동예비군'을 양산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기본법칙은,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정례적으로 노동예비군이나 "잉여인구"을 양산하는 시장의 힘에 의해 무겁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노동예비군은 자본주의 생산에서 노동현역군 만큼이나 중요하다. 마치 관개 댐에서 수량을 정기적으로 때맞추어 조절하는 것이 물의 원활한 흐름을 안정화하듯이, 적정한 규모의 실업군은 자본주의 생산에 유리한 것이다.

생산과 고용의 세계화 시대에서는 노동예비군은 국경을 넘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1980년~2007년 세계화된 노동력이 63% 증가했다. 또한 전 세계 도시화 또는 탈농화로 인해 실제 노동예비군의 비율은 50%에 육박하여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세계화된 노동력의 절반이 넘는다.

“1980년~2007년 세계화 노동력 63% 증가, 그 중 실업자 50% 이상”

이는 세계 어디든 생산의 이동에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엄청난 유용한 실업군이며, 노동계급, 특히 자본주의 중심국의 노동계급에게 임금-소득 격감, 해고와 노조 탈퇴, 시간제 임시직 노동 등의 혹독한 내핍과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많은 케인즈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우익 공화당이나 사악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악한 의도가 조금도 아니다.

경기침체를 끝내고 실업율을 줄이기 위한 케인즈주의 패키지 처방에 대한 최근 몇 년 거듭되는 요청이 왜 계속 공허하게 들리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일국 단위에서 세계로 생산조건이 변화된 조건에서, 노동자와 민초들의 불가항력적인 정치적 압력도 결여되어 있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국가 단위의 환경이나 프레임에서 추진된 케인즈 박사의 처방을 다시 채워 넣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이론적으로 높은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에 대한 케인즈 전략은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심각한 경기하강에 직면하여 대규모 정부지출은 고용과 임금을 끌어올리고 구매력을 높인다. 차례대로 생산자의 투자와 고용을 자극하고, 다시 고용, 임금, 수요, 공급을 무한히 끌어올린다. 그 전략이 비교적 단순하고 아주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많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케인즈주의 정책의 결함

첫째, 고용주와 정부정책 입안자들이 완전고용 구현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데, 아무도 이 목표를 어떻게 실현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완전고용은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이거나 이윤극대화에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다. 기업이나 정부정책 입안자의 실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정한 실업자들은 자본주의 이윤추구에 일정한 고용노동자들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가능한대로 노동비용을 줄이고 노동계급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저실업과 고임금 보다 고실업과 저임금을 선호한다.

이는 예를 들어 실업률 상승 보고서가 나올 때 주식가격이 오르고 실업률 하강 보고서가 나올 때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또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이용해 자본주의 중심국의 독점기업과 정부정책 입안자들은 노동자를 위축시키고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출 삭감과 공공부문 감축의 전례 없는 긴축 프로그램을 강제해왔다.

둘째, 신자유주의나 고용주의 반대만 아니라면 높은 고용, 높은 임금, 높은 성장의 선순환은 비교적 쉽게 성취된다는 케인즈주의자의 주장은, 고용주(생산자)가 자신의 이익을 아무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오직 그들의 사업에서 소문난 "포드임금"의 장점만을 신경 쓴다면, 케인즈주의자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를 도와 전체를 위한 성장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 밑에서 노동비서관을 지낸 저명한 자유주의 교수, 로버터 라이히의 이 문제에 관한 시각은 다음과 같이 케인즈주의자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20세기 대부분, 미국경제 중심의 기본계약은,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자신들이 파는 상품을 구매만큼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그 기본계약이 높은 생활수준, 많은 일자리와 좋은 임금의 선순환을 만들었다. 이 기본계약이 끝났다... 임금이 하락하고 회사가 고용을 하지 않아 기업의 이윤은 당장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해가 되는 게임이다. 충분한 소비의 뒤받침 없이는 이윤 있는 날이 얼마 안 된다. 임금 삭감에 의한 이윤 증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문제점은 미국의 생산자들은 고용은 물론이고 상품판매에서 국내 노동자에게만 의존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마치 닫힌 경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 생산자들은 고용이든 상품판매든 국내 노동자들에게 점점 덜 의존하고 있다. 그들은 확고하게 생산과 상품시장을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 공급(고용)과 수요, 모든 면에서 미국의 노동자이자 소비자는 긴요한 존재가 점점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주장의 둘째 문제점은 임금과 이윤이 중앙계획경제와 같이 총수요에 대한 거시적 국가적 범주의 계획이 아니라 개별 고용주나 기업주에 의한 미시적 개별적 범주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크고 작은 개별생산자들은 우선 임금과 이윤을 생각하는데, 맨 먼저 주요 생산비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려 하고, 그 다음에 자신들의 상품판매에 우회적으로 기여하는 국가적 총수요를 고려한다.

마르크스는 주로 가난하고 유순한 노동계급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실업자군을 형성하는 자본주의의 의지와 능력을 "궁핍화"와 노동력의 굴복으로, 자본축적의 "일반법칙"에 필수적인 메커니즘 형성으로 특징지은 한 바 있다.

결론

실업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의 노동예비군 이론에 기초해 있는데, 장기적인 고실업을 더 확고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실업병을 잘못되거나 나쁜 신자유주의 정책 탓으로 돌리는 케인즈주의자의 입장보다 말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최저생계비 또는 빈곤 임금 이론이 궁핍의 일반적 전국적 우세는 물론, 그 빈곤 임금이 어떻게, 왜 높은 기업 이윤과 주식가격에 연동될 수 있는지 더 설득력 있게 해명해주고 있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확장적 경제순환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는 케인즈주의 개념보다 말이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의미 있고 지속적인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은 오직 대중의 압도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압력을 통해, 그것도 국제적 규모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견해가 세계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겪는 경제적 고통에 대한 더 논리적이고 전망 있는 해법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품위 있고 학구적이며 본질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한 케인즈주의자의 국가 차원의 자극제보다 말이다.

“경제 안정화는 오직 대중의 불가항력적인 압력을 통해”

일자리와 그 밖의 뉴딜 개혁을 위한 착한 케인즈주의자들의 구걸이 아무리 끈질기고 요란하고 열렬해도 그 정책 수행은 돈 많은 강력한 이해집단이 선출하고 통제하는 정부에 의해 완전히 무시될 것이다. 케인즈주의 수요관리정책이 갖는 근본적인 약점은, 그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구조인 계급정책이 빠진 인기 영합적 제안을 묶어놓은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것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자, 민중이 참여하고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일하는 대다수의 경제적 안전과 인간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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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패퇴하는 미국

세계 곳곳에서 패퇴하는 미국
 
<분석과전망>이라크 반군 그리고 우크라이나 반군에게 목을 조이는 미국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8/31 [10: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을 알려면 미국이 세계에서 수행하고 있는 군사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빠른 길이다정세전문가들이 일치되게 지적하고 있는 말이다.

 

당장에는 이라크의 반군인 이슬람국가’(IS)와의 대립만을 봐도 알 수가 있다미국에 이라크전은 악몽 그 자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2003년이었다침공 이후 곧바로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면서 미국은 골칫거리였던 이라크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전쟁종결에 대한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였다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테러가 판을 쳤다이에 대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당연하게도 보복이었다그러나 보복이 끝나면 또 다른 테러가 발생했다다시 보복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었다.

거기에 이라크의 사회적 혼란도 가중되었다심각한 것은 반미 무장세력들의 활동이 날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한결 같이 다 미군병사들을 표적으로 하는 군사활동들이었다.

이라크 해방이라는 말은 무색해져갔다이라크사태에 대한 피로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했다.

 

이것들이 미국이 전쟁개시 8년 만에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까지 겪어야했던 악몽들이었다.

2011년 철수하는 미군들에게서 읽히는 것은 누가보아도 승전의 행진이 아니었다패전의 모습이라고도 할 만했다그것이 아니라면 미군의 표정에서 묻어있던 환호는 악몽에 벗어났다는 안도일 뿐이었다세계가 그렇게 읽었다.

 

IS, “모든 장소들에서 미국인들을 공격하며 모조리 피바다에 처넣겠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후 미국은 다시이라크에 대한 악몽 앞에 맞딱뜨려야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본격적인 것은 이라크 반군인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 기자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 그 계기였다지난 19일이었다미국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공습이었다. 20일 이라크 북부 모술댐 부근의 IS 목표물을 향해 미국은 무려 14차례나 되는 공습을 감행했다처음하는 공습은 물론 아니었다이미 지난 8일부터 시작되었던 공습이었다.

 

"정부는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며다른 국가들과 함께 IS에 맞서 싸울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미국은 앞으로 이라크 북부 아르빌과 모술댐 부근을 중심으로 IS에 대한 공습의 고삐를 바짝 죌 것으로 보인다그곳에는 미국의 국민들이 있고 시설들이 있다미 국방부가 그곳에 최대 300명의 치안요원 증파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7일 현재 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은 100회를 넘어섰다. ‘제한적 공습기조이기는 하다그렇지만 그 기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IS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수용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인질인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트로프를 추가로 살해하겠다고 밝혀놓은 상태다인터넷 성명을 통해서는 는 모든 장소들에서 미국인들을 공격하며 모조리 피바다에 처넣겠다” 말로 공개적으로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정도면 명백히 이라크 악몽의 재연이다.

이라크악몽을 불러온 당사자가 아닌 오바마가 그 악몽 앞에 서야하는 것은 사실,고통스러운 일이다이라크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된 2011년 철군결정을 외교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오바마여서 더 그렇다.

 

일부 외신들은 미국이 미지상군파견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하고 있다이것이 현실화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오바마가 2011년 이라크에서의 철군을 주요 외교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그것이 <신 외교안보 독트린>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신 외교안보 독트린>은 미국의 안보가 직접 위협을 받거나 대규모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만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정책이다이에 따라 지상군 투입 등 전면개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해 왔던 것이 오바마 행정부였던 것이다.

세계의 언론들이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타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와는 장난을 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미국이 IS로부터 이라크 수렁에 다시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형국에서 미국에게 심각한 것은 또 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군의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9(현지시간남부 소도시 노보아조프스크를 점령한 우크라이나 반군이 전략적 항구도시 마리우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군이 이제 와서는 남부 지역으로까지 세력확장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우폴은 인구 45만의 항구도시로서 3월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를 잇는 길목에 있다요충지인 것이다만일 반군이 마리우폴을 장악하게 되면 러시아와 크림을 잇는 지역 전부를 장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미국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반군이 친 러시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우크라이나 반군이 들고 다니는 깃발이 '노보로씨야'(Novorossiya) 깃발이라는 데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된다. '노보로씨야'는 '새로운 러시아'라는 뜻이다.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미 CNN방송은 최근 영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러시아군이 45천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로 이동시켰다고 전하고 있다우크라이나 반군의 세력확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속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에게는 또 다른 심각한 사태가 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7개 회원국들의 군사적 움직임이 있는 것이나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는 것도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차원이다.

영국과 덴마크네덜란드노르웨이 등 NATO의 7개 회원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사단급 규모로 최소 병력 1만 명 정도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내용이다. EU의 대응은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러시아 제재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만있지를 않았다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을 인용한 연합뉴스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푸틴은 "러시아는 대규모 갈등을 원하지도의도하지 않고 있으나 러시아와는 장난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단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힌 것이었다구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날 NATO에 회원국 가입을 공식 요청하며 무기지원을 호소한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EU의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지원호소를 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푸틴의 경고는 매우 힘이 실리는 것이었다푸틴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우크라이나 반군 진압을 1941년 나치의 구소련 레닌그라드 점령에 비유하는 데에서 이는 잘 확인된다그 전쟁으로 당시 1944년 초까지 계속된 봉쇄로 67만 명이 사망했다.

친서방인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푸틴의 공세는 종국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대립을 높이는 것이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푸틴이 서방에 그러한 엄포를 놓으면서 자국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가장 강력한 핵무기 보유국 중 하나이고 핵능력을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서 그리고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러시아의 군사개입이 점점 노골화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경찰임을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군사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패퇴 양상이다.

바야흐로 군사패권을 앞세우는 미국의 힘이 갈수록 약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세계는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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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청와대로 청와대로! 김영오씨 단식 중단 보도

 

 

WSJ, 청와대로 청와대로! 김영오씨 단식 중단 보도
-세월호 가족 야영, 김영오씨 시위의 중심
-회복되면 투쟁에 다시 참여할 것

외신들이 세월호 정국에 대해 정리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교황의 방한 이후 외신들은 세월호 정국에 주목하며 비교적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신들의 보도는 가족들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 요구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헌법 침해라며 거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박근혜가 입법은 국회의 몫이라며 나 몰라라하고 있다는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이 28일 ‘세월호 참사 시위자 단식투쟁 중단’이라는 제목으로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 중단 소식을 전하며 희생자 가족들이 야영을 하고 있으며 시위의 중심에 김영오씨가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씨의 시위가 교황 방한 중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며 문재인의원과 다른 사람들이 단식에 합세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김 씨가 노모와 둘째딸의 호소로 단식을 중단했다고 전하며 시위자들은 새로운 조사위원회에 희생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어떤 사람도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힌 뒤 집권여당이 이를 사법절차 위반이라며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위대들과 김영오씨가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에 저지 당했으며 이에 청와대는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도 단식을 하는 사람이 확실히 있다며 김영오씨가 건강이 호전되면 투쟁에 다시 참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코 앞에서 간절하게 요구하는 가족을 외면하고 민생탐방이라는 이유로 부산시장방문, 뮤지컬 관람 등으로 바쁜 박근혜.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on.wsj.com/1qP3v6H

 

Ferry Disaster Protestor Ends Hunger Strike

세월호 참사 시위자 단식투쟁 중단

By JAEYEON WOO   3:18 pm KST Aug 28, 2014

Capture WSJ 김영오씨 단식투쟁 중단Capture WSJ 김영오 씨 단식

Kim Young-Oh during his hunger strike in downtown Seoul Agence France-Presse/Getty Images
서울 중심부에서 단식투쟁 중인 김영오씨

One of the most prominent reminders of April’s ferry tragedy in Seoul is a downtown encampment of protestors demanding a new investigation into the incident. A central figure in the protest group is the father of a schoolgirl who died in the sinking.

한국의 지난 4월 여객선 참사를 상기시켜주는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사고에 대한 새로운 조사를 촉구하는 시위자들이 시내에서 야영하는 모습이다. 이 시위 그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침몰로 사망한 여학생의 아버지이다.

The man, Kim Young-oh, has been on hunger strike since July 14 as part of the protest. On Thursday, he ended his refusal of food amid growing concerns for his health.

이 남자 김영오씨는 7월 14일 이래 시위의 일부로서 단식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목요일 그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던 가운데 그는 단식을 중단했다.

Mr. Kim’s protest received extra attention when Pope Francis briefly met him during his recent visit to Korea. Others have joined him in the hunger strike, including Moon Jae-in, an opposition lawmaker who lost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to Park Geun-hye.

김 씨의 시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중 교황이 그를 잠시 만났을 때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패배한 야당의 문재인 의원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그에 합세하며 단식투쟁에 참여했다.

During a televised briefing Thursday morning, Yoo Kyung-geun, a spokesman for the protestors, said Mr. Kim ended his hunger strike after strong pleas from his family members, including his second daughter and ailing mother. Last Friday, Mr. Kim was admitted to hospital due to his deteriorating health.

목요일 아침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된 짧은 보도에서 시위자들의 대변인인 유경근씨는 김 씨가 둘째딸과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강력한 호소가 있은 후 단식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지난 금요일, 김 씨는 악화되는 건강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됐다.

Mr. Kim said that opposition party lawmakers should also stop their hunger strike and go back to the National Assembly to “do their own job to make Korea a safer country,” according to Mr. Yoo.

유 씨에 따르면 김 씨는 야당 의원들 또한 단식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가 “한국을 더 안전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하라고 말했다.

Since the April accident, the country’s parliament has been paralyzed by a deadlock over the terms of a new probe into the sinking. Among the contentious issues is a demand from the protestors for the new body to have the power to prosecute anyone found responsible for loss of life in the accident. The ruling party has rejected that demand, saying it would breach judicial procedures.

4월의 사고 후, 침몰에 대한 새로운 조사와 관련된 조건들을 두고 교착상태에 빠지며 국회는 마비되어 왔다. 논쟁이 되고있는 사안들 중에는 새로운 조사위원회에 사고 희생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어떤 사람도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라는 시위자들의 요구가 있다. 집권당은 이것이 사법절차를 위반한다고 하며 이 요구를 거부해왔다.

The protestors have also sought to bring President Park into the issue by staging marches aimed at reaching the Blue House that have been blocked by police. Mr. Kim has also tried to reach the Blue House. Presidential spokesman Min Kyung-wook has said that the issue should be resolved by the National Assembly.

시위자들은, 경찰에 의해 저지되기는 했지만 청와대로 가려는 것을 목표로 행진을 벌이며 박 대통령 또한 이 사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김 씨 또한 청와대에 가려고 시도했다.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은 이 사안은 국회에서 해결돼야한다고 말했다.

Under mounting pressure to solve the problem, the ruling party and the protestors have met twice in recent days to seek a breakthrough, while opposition lawmakers have taken to the streets to press the ruling party to compromise.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력이 가중되어지는 가운데, 집권당과 시위자들은 돌파구를 찾기위해 최근 2차례 회담을 가졌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집권당이 협상하도록 압력을 가하기위해 장외투쟁을 벌여왔다.

Meanwhile, the protest in Gwanghwamun plaza continues. As of Thursday afternoon, there were still people apparently on hunger strike. Mr. Kim has also said he plans to rejoin the protest when he gets better.

그러는 가운데 광화문 광장에서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목요일 오후 현재로 여전히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었다. 김 씨 또한 자신의 건강이 호전되면 투쟁에 다시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apture WSJ 김영오 입원

Kim Young-oh is being taken to a hospital on August 22. European Pressphoto Agency
8월 22일 김영오씨가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번역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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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대통령, 가까운데 한번 나와주시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8/30 19:34
  • 수정일
    2014/08/30 19: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노숙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 만나 '힐링'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30 01:32:55
"아따, 어렵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방송인 김제동 씨가 29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노숙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얘기 좀 오래 하다 갑시다. 집에 가면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라고 너스레를 떨던 김 씨는 1시간 20분 동안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김 씨는 닷새 동안 자신을 포함해 10명이 수작업으로 만든 스티커 200장을 유가족에게 전했다. 스티커에는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스티커 문구를 자신이 직접 정했다던 김 씨는 "이 스티커를 만드는 자원봉사자가 20명이고, 저도 새벽에 한 번씩 광화문에 나옵니다"며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김 씨는 "잘 아시겠지만, 적극적으로 여러분을 지지합니다"라며 "해드릴 것은 뒤에서 마음을 보태드리는 일밖에 없습니다. 앞에 전면에 나설 만큼 크게 인기가 있지도 않고요. 대신 뒤에서 길게 오래가겠습니다. 저기 뒤에 계신 수녀님, 목사님, 신부님, 스님처럼요"라고 말했다.
 
▲ 자신이 손으로 직접 만든 스티커를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김제동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 자신이 손으로 직접 만든 스티커를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김제동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특별법과 진상규명은 사람의 문제" 
 
이날 김 씨와 유족의 만남은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어졌다. 김 씨가 "어머니, 어떤 게 필요하세요?"라고 묻자, 한 유족이 "특별법과 진상규명"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특별법과 진상규명은 굉장히 명확하고 단순한 이야기죠"라며 "사람이 죽었으면 어떻게, 왜 죽었는지 밝히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나 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사람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분도 계시지만, 다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 대통령에게 과연 책임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저는 그 질문에 대해 '태평양, 대서양도 아니고 내 나라에서, 내 바다에서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갔으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라며 "(유가족이 바라는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것이)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가까우신데, 한번 나와주시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어머니가 영정사진을 들고 그 시절 청와대에 갔고, 육영수 여사께서 직접 맞으셨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모님이 하셨던 좋은 일, 좋은 전통을 이어받으면 좋겠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 얘기를 못 들어줄 이유가 뭐 있습니까?"라고 덧붙였다.
 
▲ 김제동 씨와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스티커.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라는 문구는 김 씨가 직접 정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김제동 씨와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스티커.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라는 문구는 김 씨가 직접 정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만 좀 하라? 소가 새끼 잃어도 그렇게는 안 해"
 
한 유족은 "그만 좀 하라는 말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 씨는 "어떤 국회의원이 '국가 유공자에게도 진상규명, 대우도 제대로 못 해주는데, 애들까지 대우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심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라고 전하면서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면 '앞으로 국가유공자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하고, 아이들 진상규명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어떤 국회의원이란 "6·25전쟁에서 국가를 지킨 참전용사들도 힘겨운 여생을 말없이 살아가는데 특별법이란 말도 안 된다고 본다"는 카카오톡을 보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을 일컫는다. 심 의원은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그만두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슬픔이 멈추는 날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그만하라는 얘기는 맞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나 아빠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송아지를 팔았던 우리 삼촌, 동네 아저씨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습니다.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함께 느꼈습니다. 저도 그 소의 눈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소를 어루만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 소는 왜 우냐'고 타박하는 이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입니다. 기한은 정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여러분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도록 우리도 바깥에서 마이크 들고 이야기하겠습니다"라며 "마이크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끝까지 특별법이 제정되고, 여러분의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대통령님과 국회의원님께서도 잘 결단을 내려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님이 본인께서 하신 약속을 지키도록 박수 한 번 쳐주십시오. 사람이라면 응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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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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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CCTV가 말해주는 진실 은폐 음모

세월호 CCTV가 말해주는 진실 은폐 음모
 
검경 CCTV 증거인멸 시도, 이래서 수사권-기소권 반드시 필요해
 
육근성 | 2014-08-30 13:13: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버티는 진짜 이유가 뭘까사법체계가 흔들린다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대지만 모두 거부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수사권-기소권 안 될 이유없어여당 주장은 거부 위한 변명 

헌법에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형사소송법상 영장청구권을 검사가 행사하도록 돼 있을 뿐이다필요하다면 입법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 이외의 누구에게나 부여할 수 있다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피해 당사자인 개인이 직접 소추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미국과 영국 등은 대배심제도를 통해 형사사건 기소권을 시민에게 부여하고 있다.

왜 거품 물며 안 된다고 손사래 치는 걸까이유는 간단하다청와대와 정부도 가해자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대통령과 정부가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게 싫기 때문에 저토록 반대하는 거다또 수사 과정에서 뭔가 드러날 경우 정권이 송두리째 무너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돼야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물증이 있다세월호 내부CCTV 영상이 그것이다세월호 DVR PC에 64개의 CCTV 영상이 저장돼 있는 게 확인된 상태다이 영상물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이것들을 발견하고 복원한 건 검찰과 경찰이 아닌 유족들이다수색작업을 하고 있던 바지선이 이 DVR PC를 건져 올렸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마대 자루에 담아 방치돼 있었다이것을 유족들이 발견해 검경 합수부에 신고하고 실물 보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세월호에서 건져 올린 DVD PC. 검경이 방치한 것을 유족들이 발견해 복원했다.>

검경이 방치한 64개 CCTV 영상 유족이 발견해 보전조치 

검경은 이 귀중한 자료를 폐물 취급했다유족들의 보전조치로 PC가 목포부두에 도착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빠르게 부식이 진행되는데도 그대로 방치하려 했던 것을 유족들이 나서 서둘러 조치를 취하고 복원을 시도해 그나마 유실을 막을 수 있었다왜 중요한 수사 자료를 방치하려 한 건지 궁금하다 

은폐와 조작 의혹도 있다. CCTV가 멈춘 시각은 사고 당일 아침 8시 30분 59정부가 밝힌 급변침 시각(8시 49)보다 18분 앞서 CCTV가 꺼졌다복원 업체는 CCTV가 꺼진 이유를 정전 때문이라고 주장했고이것이 일부 언론에 의해 기사화됐다증거보전 조치가 취해져 검증기일이 정해졌는데도 업체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꺼진 이유는 정전 때문이라고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 검찰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있다유족들과 변호인은 “DVR을 가지고 복원을 의뢰하러 업체를 방문했을 때 이미 대검찰청 직원이 먼저 와 있었다고 말했다. CCTV가 말해줄 중요한 증거를 은폐하려 했던 건 아닐까.

CCTV 멈춘 이유 정전’ 때문이라고 거짓말, 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정전 때문에 CCTV가 멈춘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CCTV 영상을 저장하고 제어하는 DVR PC는 CCTV가 멈춘 뒤에도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정전이 있었다면 PC도 CCTV와 같은 시각에 멈춰야 했다그런데 PC는 CCTV가 멈춘 3분 뒤인 8시 33분 38초까지 작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에 의하면 당일 아침 정전은 없었다그렇다면 CCTV가 작동을 멈춘 것도, DVR PC가 꺼진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란 얘기다침수에 의한 정전이 아니라면 누가 고의로 껐다는 건데 대체 누굴까왜 그랬을까 

검찰에 의혹이 쏠린다검찰이 복원업체에 유족들보다 먼저 와 있었고복원 업체는 정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CCTV가 멈춘 이유에 대해 복원업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데 굳이 나선 이유가 뭘까 

CCTV 영상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진상규명에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이미 세월호 직원의 위증과 검찰의 부실수사 정황이 영상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세월호 3등기관사 이씨는 해양심판원조사에서 사고 직전(8~830)에 커피를 타고 있었으며 배가 기울어 냉장고 등이 굴러 넘어졌다고 진술한 바 있다.

수사-기소권 반대무엇을 숨기려 하나 

또 검찰 조사에서는 기관실에서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복원된 CCTV 영상에 잡힌 배안 모습은 평온했으며 그 시각 이씨는 기관실에서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영상이 복원되지 않았더라면 검찰의 부실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족들이 DVD PC를 발견해 부식방지와 실물보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64개의 CCTV 영상은 복원 불가능 상태가 됐을 게 분명하다진상을 규명하는데 열쇄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자료가 검경이 아닌 유족의 노력으로 확보된 것이다 

해경과 검찰은 바지선이 건져 올린 DVD PC를 그대로 방치하려 했다이는 증거인멸 행위나 다름없다이런데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 줄 수 없다고 거품을 문다무엇을 숨기려고 저토록 악쓰며 반대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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