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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임병장 사건] 문제많은 휴전선 철책근무

곽동기  | 등록:2014-07-17 08:31:41 | 최종:2014-07-17 09:30: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6월 21일 발생했던 강원도 고성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 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해당부대는 휴전선 최전방의 동부전선 끝자락이었다. 

이 사고는 그동안 꾸준히 문제로 지적되었던 휴전선 최전방 근무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적막한 최전방에서 밤낮이 따로 없는 경계근무가 지속되면 장병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수류탄과 실탄을 실제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이 우리 장병들에게 실탄을 쥐어 준 채 스트레스가 많은 휴전선 철책근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군의 부대현실에서, 서로가 스트레스를 동료에게 떠넘기는 행태가 만연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총기사고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지경이다.

사고 당일 임 병장도 6월 21일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 55분까지 GOP 주간 경계 근무에 투입됐다. 그는 근무에 투입되면서 K-2 소총 1정과 수류탄 1발, 실탄 75발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그는 병영근무의 과정에서 동료들로부터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고 하였으며 특히 그날의 근무에서는 동료들이 자기에 대해 낙서한 것을 보고 격분해 총기사고를 일으켰다고 한다. 위 그림이 임 병장이 격분하였다는 그림이다. 무엇보다 긴장이 팽팽한 휴전선 철책근무일지에 이런 낙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점이다.

원래 규정상 근무 후 소대로 돌아와 이들 무기를 반납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짜증이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림을 보고 격분한 임 병장은 무기를 즉각 반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분 뒤인 오후 8시 15분경 GOP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동료 장병에게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다. 도망가는 장병을 대상으로 총격을 계속했고 생활관에 들어가 복도에서 보이는 인원에게도 사격했다. 이로 인해 장병 5명이 사망했고 7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GOP란 무엇인가?

임 병장이 근무하였다는 GOP는 동부전선 휴전선 철책근무를 말한다. 휴전선은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하면서 형성된 선인데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은 쌍방의 전선에서 서로 2km씩 군대를 뒤로 물려 중간에 폭 4km의 군사적 완충지대(DMZ)를 형성하고 이후 쌍방의 최전선을 철조망으로 둘러 오늘날의 휴전선의 모습을 갖추게 하였다.

GOP(general outpost)는 휴전선 남쪽 한계선 지점에 설치한 전초기지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최전방에서 적의 침공정황을 누구보다 빨리 포착해 주력부대에 알리게끔 하기 위해 최전방에 설치한 요새이다.

이 지역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상황에 따라 북한군과 맞닥뜨릴 수 있는 최전방이므로 실탄이 지급되며 우리 군 특성상 실탄이 지급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매우 커다란 업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반면 근무는 매우 단순한 편이다. 정해진 구간을 끊임없이 오고가며 철책선이 정상인지 확인하는 업무, 때로는 수리-보수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래서 GOP 근무는 매우 고되고 외로운 근무라고 한다. 외부 부대와 단절되어 있으므로 부대 선임자에 따라 가혹행위와 부조리가 나타나기 쉽다. 일부 선임사병들의 경우, 철책근무의 스트레스를 바로 옆의 후임사병들에게 쏟아내는 형식이다. 실탄을 지급해놓은 상황에서 격한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GOP 근무는 일종의 폭탄돌리기와 같다.

더욱 심각한 GP

GOP는 그나마 비무장지대(DMZ) 남방에 존재하지만 경우에 군은 휴전선 비무장지대 내에도 GP(Guard Post)라는 요새를 구축해놓고 최전방 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비무장지대 내의 요새인 GP는 휴전선 완충지대를 비무장지대로 할 것을 약속한 정전협정의 위반이다. 북한도 비무장지대 내에 GP를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휴전선 최전방인 GOP도 외부와 단절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비무장지대 내에 존재하는, 그래서 정전협정 위반사항으로 지적받는 GP에서 근무는 고립감이 훨씬 강하다.

그리하여 2008년에는 공수창 감독의 “GP506"이란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는 실제 있었던 GP내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배경이 된 530GP사건이란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제28보병사단 530GP에서 김모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당시에도 사회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군은 대책마련에 부심하며 이 때에도 28사단을 전면적으로 해체하였다가 재편하기도 하였다. 육군 내 만연했던 구타와 얼차려, 내무부조리 등 병영악습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휴전선 근무의 문제점은 정확히 10년만에 고성 총기난사 사건으로 다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해결책은 평화협정  

휴전선 철책근무의 문제점은 휴전선이란 개념에서부터 출발한다. 휴전선은 말 그대로 전쟁을 쉬고 있는 전선이다. 화산활동을 쉬고 있는 휴화산처럼, 전쟁을 쉬고 있는 휴전선.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이 휴전선은 그대로 “전선”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군은 전통적으로 휴전선 근무를 “전시”에 준하는 상황으로 강요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혼란이 발생한다. 너무나 명백하게 대한민국은 교전국이 아니라 평시체제이다. 만일 대한민국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간이나 이라크와 같은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 장병들은 누가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가족의 평화를 위해 근무에 전념할 것이다.

그런데 장병들의 기억과 경험, 상식으로 대한민국은 평시상황인데 휴전선에서 전시수준에 준하는 근무를 강요하니 장병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북한군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교육받으면서도 북한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이 모순이 핵심이다.

현 휴전선의 대결적 근무체제를 완전히 전환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해법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 60년을 끌어온 “정전”을 매듭짓는 것이다. 전쟁이 영원히 종식되고 남북관계를 전망적으로 개선해나간다면 휴전선도 이름이 바뀌어야 할 것이고 GP와 GOP의 팽팽한 긴장감도 누그러질 수 있다.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미간 관계개선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미국이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하기 전에는 관계개선은 있을 수 없으며 한국과 일본도 미국의 입장에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정녕 그렇게도 한반도 관계개선이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면, 차라리 최전방 철책근무를 주한미군이 하라.

저들은 용산에, 평택에 앉아서 지휘를 하고 있고 우리 장병들은 휴전선에서 최전방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부조화 속에서 어찌 한미동맹이 동의를 받을 수 있겠는가.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여하며 응원단 파견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GOP에서는 오늘도 장병들의 총에 실탄을 쥐어주고는 북한의 침략 가능성을 강조하는 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해법은 비정상이 된 국방의 정상화이다. 국방의 비정상을 낳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장병들에게 안보위기를 발생시키는 군사적 대립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안보위기를 경감시키는 관계개선을 요구해보라. 누구나 웃으며 남북관계개선에 주인된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40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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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6.15공동선언, 예고된 실패작

 통일준비위 구성 발표를 접하고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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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6  11: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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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15일 발표한 통일준비위원회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었지만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각각 부위원장을 맡아 나름대로 진용을 갖춘 모양새다. 4개 분야별 민간위원들도 중진급에 속한다.

통일준비위는 당초 남북관계가 삐걱이고 있는 근본 이유는 해결하지 못한 채 민주평통이나 통일부를 제쳐두고 뭔가 그럴 듯한 옥상옥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내보이려는 시도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됐던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통일준비위 구성 면면을 보면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간위원 30명의 명단을 얼핏 보면 상당히 화려해 보이고 극단에 치우치지는 않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간 남북관계 전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경험을 축적한 정관계나 민간 인사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 남북관계를 담당했던 정관계 출신 인사들, 민간교류나 남북경협에 실제로 앞장섰던 인사들은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관록있는 한 전문가는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 분야가 무슨 상원(上院)이라도 되는 것 같다”며 “외교부 장관에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도 있는데 유독 남북관계를 직접 다뤄온 통일부 장.차관 출신들이 없는 것은 뭐냐”고 지적했다.

6.15공동선언의 설계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나 남북협상의 중심에 섰던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등은 물론이고, 민간 통일운동의 대명사인 6.15남측위원회 백낙청 전 상임대표나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민화협 의장 출신들의 이름도 통일준비위에서는 찾을 수 없다.

남북경협에 앞장섰다가 지금은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협업체 대표들의 이름도 없다. 다만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연합체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대표인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의 이름만 포함됐다. 남북관계가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히 교류의 맥을 이어온 종교계 인사들도 배제됐다.

이는 한마디로 속빈 강정으로 박근혜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인하는 토대 위에서 ‘통일 대박론’ 실현을 위해 ‘드레스덴 구상’ 수준의 남북관계를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통일준비위 구성이 발표된 당일, 통일부가 5.24조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진료소 지원사업, 온실 지원사업, 낙농 지원사업 등 3개 분야에 총 30억 원을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하겠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공모를 발표한 것도 이같은 정부의 기류를 확인해준다.

‘6.15시대’의 남북교류를 전면 차단하고 있는 ‘5.24조치’를 그대로 두고 드레스덴 구상 실현이라는 자기 입맛에 맞는 일방적 기준에 따라 대북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가감없이 드러낸 셈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요즘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진심이 아니면 귀찮게 하지 말라’(非诚勿扰)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을 법한 상황으로 보인다. 남쪽 입맛에 맞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응해줬더니 금강산관광 재개 등 현안은 쏙 빼놓고 이제는 느닷없이 드레스덴 구상을 실현하겠다고 달려드는 모양새다.

북측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대북정책이란 결국 국내 정치용 쇼에 불과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동안 통일준비위가 조직을 구성한다, 회의를 개최한다 떠들썩하게 언론을 타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 ‘통일 항아리’ 사업처럼 실제로 남북관계 진전에 어떤 도움이 될 지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통일준비위가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해 제 몫을 하고자 한다면 북측도 호응할 수 있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토대로 삼아야 하고 이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5.24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명백한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6.15공동선언 14주년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구상 실천을 위해서는 6.15공동선언 준수 확약과 5.24조치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재개, 인도적 지원 추진, 교역과 경협, 다방면의 왕래와 교류협력 재개 그리고 개성공단사업 활성화 조치 등으로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일준비위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통일준비위가 이제 막 구성됐을 뿐이지만 국내정치 용도 외에는 ‘예고된 실패작’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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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수첩은 죽음공책?

[기자의눈]박근혜 수첩은 '데스노트(?)'
 
후보자마다 불미스럽게 낙마..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07/16 [23:50]  최종편집: ⓒ 자주민보
 
 

또 박근혜 정부 장관인선에 오른 후보자들이 우수수 낙마사태를 맞고 있다.
정성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가 결국 자진사퇴했다.
2013년 인수위원장 출신 김용준을 시작(현재 변호사)으로 이번 정부 들어 
중도에 낙마한 총리 및 장차관급만 10명에 이른다. 

 
▲ 윤창중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 .. 너나 잘하시지...?     © 네이버 책소개


일부 낙마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일부 낙마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 김용준(총리후보): 후보 지명 5일 만인 지난해 1월29일 아들 병역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으로 자진사퇴.

- 김학의(법무부 차관): 임명이 된 지 6일 만에 온 별장 성접대 연루 의혹으로 차관직을 벗었다.
                           현재 그 피해여성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면에 등장하여 다시 시끌시끌

- 김종훈(미래부 장관후보): 미국에서 밤의 황태자였다는 한인사회의 소문 등 추문에 휩싸이며
                        자진 사퇴.  미국 시민권자 상태에서 지난해 2월14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
                        했으나, 미국 국적을 1년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함에 따라 2014년 2월 
                        한국 국적 말소. 

- 윤창중(청와대 대변인): 야당의 극렬반대속에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임명되었으나 
                                 미순방길 성추문을 일으켜 전세계 망신을 당한후 사퇴. 

- 윤진숙(전 해수부 장관): 야당의 극렬반대속에 대통령이 '모래속에서 건져낸 진주' 라며 
                                  임명강행하였으나 결국 경질

- 문창극(국무총리 후보): '일본식민지배 하나님 뜻' 동영상이 공개되어 맹비난 속에 사퇴 
- 김명수(교육부 장관 후보): 논문표절, 글 도적질등 뿐만 아니라 대화불능 
 
- 정상근(문체부 장관 후보): '청문회 중 폭탄주' '사생활 논란' 등 으로 사퇴 
                                  
등등

그야말로 박근혜 정부 취임 겨우 1년 5개월만에 숨가쁠 정도의 낙마사태가 빚어졌다.
여당 이재오 의원조차 '비리백화점인가. 박정부 허망' 이라며 탄식했다.

네티즌들은 연이은 낙마사태에 뼈있는 댓글을 투척하기도 했다.

'박근혜 수첩은 데스노트인가. 인선만 오르면 다 털리고 나가떨어지니..'
데스노트는 일본의 만화 원작으로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이 죽는 사신(死神)의 노트' 이다.

박근혜 수첩 참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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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접할 수밖는 이들에게

[기고]가자지구는 ‘충돌’, ‘분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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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16  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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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스라엘이 매일매일의 공습에 더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지만 다시 철수한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무장한 채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며 가자-이스라엘 국경에 대기 중인 상태다. 한쪽으로 휴전을 얘기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지상군을 투입했다 뺐다 하며, 이 침공을 계속하는 것도 중지하는 것도 모두 이스라엘의 선택에 달렸음을 모두에게 자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대규모로 이어지면서 한국 언론들도 앞 다퉈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에게 이번 전쟁이 줄 득실을 따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설명해 주지 못 하고 있다.

 

   
▲ 호주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 대해 대피령을 내렸다고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14일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이해를 돕기 위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

 

현 상황을 이해하려면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건국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땅의 이름은 원래 ‘팔레스타인’이었다. 이 원래의 팔레스타인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역사적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땅에는 원래 팔레스타인인들-다수의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이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설립하겠다며 테러, 협상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추방해 절반가량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만다. 이 때 살아남은 많은 이들이 난민이 되었고, 이들 절대다수는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국가 설립 없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가 각각 이집트와 요르단의 점령 하에 있었다. 주변 국가들과의 긴장 속에서 1967년 6월 3차 중동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은 크게 승리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얘기를 하려면 최소한 1967년 점령 얘기부터 해줘야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점령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령은 의견이 갈릴 만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팔레스타인은 점령과 함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22%로 더 줄어든 팔레스타인이다. 지금은 그나마의 22%도 유지되지 못한 채, 섬처럼 조각나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서로 맞닿은 곳이 없고, 그나마의 서안지구는 소위 ‘평화협정’이라는 것을 통해 갈갈이 조각나 60%이상이 이스라엘 군대의 통치를 받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은 점령과 영토 확장을 통해 가자와 서안을 갈라놓은 뒤 양쪽에 다른 정책을 편다. 가자는 봉쇄하고, 서안에는 불법 ‘정착촌’을 만든다 ─ (불법 정착촌 문제는 ‘링크’를 참조 ) 봉쇄를 통해 이스라엘은 지금 이 순간까지 가자를 성공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가자 봉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항상 쓰는 카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마스’다.

 

   
▲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사진=AP연합뉴스)
하마스는 원래 이슬람 자선 단체에서 출발한 그룹으로 사회 시스템이 없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복지’에 대한 열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도를 높였다. 몇 년 전까지도 국제단체들이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하마스가 더할 나위 없이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초기에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원만했지만 하마스가 이스라엘 점령군에 무장 투쟁을 결의한 뒤에는 당연하지만 이스라엘과도 사이가 나빠지고 미국한테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 처음으로 참여하는데, 여기서 132석의 의석 중 총 74석을 차지해 팔레스타인 의회의 다수당이 된다. 그렇다. 하마스는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패배한 기존 팔레스타인 리더쉽-파타(Fatah)는 참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양측은 파타의 쿠데타라 부를 수 있는 내전을 거치며 서로 단절해, 그때부터 하마스는 가자를, 파타는 서안을 각각 통치해 왔다. 하마스와 파타가 제3국의 주재로 화해 혹은 통합을 논의한다는 뉴스가 가끔 나오고, 이번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직전에도 통합을 논의 중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대대적 가자 침공의 원인을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을 막기 위해서라고 얘기하며, 이스라엘도 이를 딱히 부정하는 것 같진 않다.

 

이스라엘의 대대적 가자 침공의 원인, 파타와 하마스 통합 막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저항 세력이자 정치 세력인 하마스와 파타가 결별한 직후인 2007년 6월, 이스라엘은 테러 조직 하마스가 무기를 수입할 수 있는 루트를 막아 이스라엘로 로켓포를 쏘지 못하게 하겠다며 가자지구를 육해공으로 봉쇄한다. 하지만 가자에는 하마스 조직원들이나 지지자들만 사는 것도 아니고, 180만 명이 살고 있는 땅을 완전히 봉쇄해 일체의 물자 반입을 차단하는 것은, 제4차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는 ‘집단 처벌’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은 간혹 이집트와의 국경을 열어주며 물자 반입이나 병원 치료가 급한 이들의 이동을 ‘허용’하며 봉쇄가 비인도적 조치가 아니라고 항변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그 허용마저도 몹시 불합리하게 이뤄졌다. 이스라엘이 반입을 금지하고 허용하는 데에는 특정 기준을 찾아볼 수 없는데, 예를 들어 어느 시기 참치캔은 허용하지만 과일 통조림은 안 되고, 커피는 되지만 초콜릿은 안 되는 식이었다.

여담으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집트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이집트 역시 가자지구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매우 제한된 물자와 인원의 통행을 허가해 왔다. 가자를 고립시킨 책임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함께 나눠져야 하며, 이 둘이 가자 봉쇄를 작당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있음을 지적해 둔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반전평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중단을 요구하며 피랍·살해된 팔레스타인 10대 소년의 넋을 기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08년 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침공해 불과 22일 동안 1400여명을 죽이고 5천여 명을 부상 입힌다. 인명, 재산 피해에 더해 그나마 있던 도로, 병원, 전기, 상하수도 시설, 발전소 등 인프라가 대거 파괴되면서 가자 주민들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때에 따라 인구의 50%에서 80%에 이르는 이들이 유엔의 식량 지원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에 세계적으로 가자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려는 시도 높아지는 가운데 침공 후에도 여전히 봉쇄 중인 가자지구에 의료품, 생필품, 건설자재 등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선박들이 조직되는데, 2010년에는 가자로 향하던 비무장 구호 선박을 이스라엘군이 공해상에서 공격해, 비무장한 국제 활동가 10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문제들로 이스라엘은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해 국제사회로부터 수많은 규탄을 받지만, 안보리 의결마다 번번이 이스라엘 규탄 의제에 반대하며 항상 이스라엘을 비호해 준 미국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은 2012년 11월에 또 가자 지구를 공습한다. 그리고는 지금 또 공습하고 지상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 따위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하고, 점령군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이에 저항하는 이들이 생기고 하마스 등 무장 세력들이 생겨난 것이다. 인과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이스라엘의 점령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은 점령 얘기를 쏙 빼고 ‘분쟁’, ‘충돌’ 등의 중립을 가장한 단어들을 선택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문제의 원인을 짚는다며, 하마스가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보복을 계속할 것이라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국내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외신을 받아쓰기해와서인지, 점령 상태를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알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국내 언론, ‘점령’ 쏙빼고 ‘분쟁’, ‘충돌’로만 보도

 

   
▲ 뉴데일리 기사 캡처
그런데 국내 언론이 최근 하마스의 로켓포를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방호시스템 ‘아이언 돔’을 보도하는 방식이 2012년 가자 침공 때와 같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2012년의 침공 전, 이스라엘은 신형 무기 아이언 돔을 한국 등지에 팔기 위한 선전전을 적극적으로 벌였는데, 마침 그 성능을 침공을 통해 대대적으로 자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미디어에서 아이언 돔이 로켓을 요격하는 영상과 그 상세 스펙에 대한 보도가 보도자료 받아쓰듯 연이어 나오더니, 어떤 보수 신문은 한 술 더 떠 “높아지는 북 미사일 위협, 한국형 ‘아이언돔’ 도입(이) 절실”(링크)하단다. 성능 대비 가격을 이유로 한국정부가 구입을 보류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후 마침 절묘한 타이밍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이 들리더니 가자 침공이 진행 중인데도 아이언 돔 찬양 기사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침공을 중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엠바고도 필요한데, 언론이 정부에게 이스라엘 무기 구입을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언 돔의 성능 대비 가격은 여전히 한국정부를 망설이게 하는 것 같지만, 이것만으로 아이언 돔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가자를 테스트베드 삼아 신형 무기의 위력을 손쉽게 광고하고 그 입증된 무기가 팔리는 방식이라면 이스라엘더러 다음에 또 새로운 무기를 팔라면 가자 침공을 통해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꼴밖에 안 된다.

 

요즘 국내 언론만이 문제가 아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중립을 가장한 편향 보도로 BBC와 뉴욕 타임즈 등 거대 언론사들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언론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접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고, 그 전쟁에서 아이언 돔이라는 성능 좋은 무기를 통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있다는 잘못된 내러티브를 가질 위험이 크다. 언론이든 개인들이든, 모든 상황이 점령에서 비롯됨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단지 학살 중단을 넘어 이스라엘이 점령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하도록 만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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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사수는 민주주의와 민족의 운명 문제

[상보] 자주민보 사수는 민주주의와 민족의 운명 문제
 
 
 
자주민보 
기사입력: 2014/07/15 [11: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자주민보 폐간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첫 재판이 열린 인천지법 부천지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그간의 경과  

박근혜 정부 들어 블루유니온 등 보수세력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자주민보 폐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지방선거를 앞 둔 박원순 서울시장을 압박하자 이에 서울시는 박근혜 정부의 정보통신부에 자주민보의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게 되었고 정보통신부에서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위법한 언론사, 북을 찬양고무하여 나라를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는 언론사라는 답변서를 서울시에 보냈습니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수많은 자주민보 독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주민보 등록취소 행정심판을 제기하였습니다. 

현행법상 서울시장이 일정기간 발행을 중지시킬 수는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며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오직 법에 의해서만 제한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행정법원에 대리인 변호사를 내세워 제소하게 된 것입니다.

법원에서는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가 부천에서 살고 있는 점을 배려하여 부천지법에 이 사건을 배당했고 부천지법 행정법원에서는 지난 6월에 내린 1심 판결에서 자주민보 등록취소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자주민보폐간지를위한범국민대책위는 즉각 법무법인 정평에 의뢰하여 항소를 제기한 상황입니다.
     

판결문 요지


부천지법 행정법원의 판결문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 이창기 전 대표 등 기자들과 기고가들이 북의 적화통일에 동조하거나 북의 지도자와 체제를 찬양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기사를 반복적으로 제작 반포했다는 점.

특히 주체사상, 선군정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등 북의 이념이나 체제, 정치력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북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미화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였으며 북한의 군사력을 허위, 과대 선전, 북의 주한미군철수, 반미자주화, 국가보안법철폐 등 북의 주의주장에 적극 동조 선동함.  

2.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창기 전 대표가 ‘다방면적 식견이 풍부한 김정은 원수’, ‘왕자루이, 김정일 위원장을 스승이라 지칭’ 등의 기사를 작성하여 북한 지도부를 미화, 찬양하거나, ‘북의 대미 물리적 공세, 실행에 옮길 것인가’, ‘광명성 3호, 미사일 요격체계 완전 무력화’, ‘미국도 전쟁 임박했다는데 정부는 뭐하나’, ‘북미전쟁, 왜 필연적인가’ 등 북한의 군사력과 전쟁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미국에서도 무기 사오면서도 애걸복걸’, ‘이러니 미국 식민지란 말 듣지’, ‘한심한 정부의 대북 정보력’ 등 우리 정부의 국방정책, 대북정책 등을 비판하는 취지의 제목으로 약 500건 이상 기사를 계속 반복해서 작성하였고 그것을 현 이정섭 대표 등 자주민보 기자들이 도와 보도했다는 점.     

3. 이창기 전 대표가 1년 6월 실형을 선고받고 나와서도 계속해서 북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기사를 작성 보도하고 있다는 점,

특히 2014년 4월 19일 자주민보에 ‘세월호 사고원인, 잠수함과 충돌 가능성 높아’라는 기사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미국 잠수함과의 충돌설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사고 원인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함.    

크게 이 세 가지를 들어 ‘민족의 통일과 민족정기를 세우는데 일조할 수 있는 언론을 만들고자 함’이라는 창간 목적을 현저히 위반하였으며, 북의 적화통일에 동조하고 북의 지도자와 체제를 찬양 고무하는 등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였기에 자주민보의 등록 취소 결정을 판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주민보의 입장     

자주민보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뜻이 전혀 없으며 위반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검찰의 공소장이 보게 된 순간부터 공소장에서 문제시한 부분들을 이후 자주민보 기사 작성에 적극 반영하려 노력하였으며 자주민보 이창기 기자도 1년 6월 실형을 살고 나온 후에 판결문의 내용을 적극 고려하여 위반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음에도 부천지법에서 이런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단,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그 전 재판 과정에서 이창기 기자가 작성한 기사 중 공소장에서 문제시한 기사는 딱 1편뿐이었고 나머지 수천 건의 기사는 특별히 문제 삼은 것이 아니어서 문제를 삼지 않은 기사들에 준해서 언론활동을 전개하면 되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기사를 내리라거나 수위를 낮추라거나 하는 말도 없이 언론사 자체를 폐간시켰다는 점이 정말 가슴 아픕니다.      

이럴 바에는 아예 제가 구속 될 당시에 제가 쓴 기사가 모두가 문제라고 공소장에 제기했더라면 그에 맞추어 다시 글 쓰는 방향을 잡았을 텐데, 정말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이창기 기자도 세금을 내고 살고 있는 국민인데 도대체 어느 기준에 맞추어 쓰라는 것인지는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자주민보의 세부적인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국가보안법은 유엔인권위에서 인권탄압법이라며 전면 개정 및 폐지를 권고하는 결정을 여러 번 내렸으며 특히 찬양고무죄 조항은 유엔뿐만 아니라 미국정부에서도 반인권 독소조항이라며 즉각 폐지할 것을 촉구한 악법 중의 악법이며 세계의 웃음거리 법안입니다.

사실 어떤 대상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누구를 찬양한 것을 문제삼아 법으로 처벌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성문법이란 것은 그 위반 여부를 정확하게 명문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위반이 되는지를 명백히 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그 위반여부를 다투는 기준이 매우 애매하며 더군다나 찬양고무죄의 경우 어떤 표현 어떤 방식의 문장이 찬양고무로 되는지 그 기준을 제시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 판결을 보면 찬양하는 내용을 보도하거나 퍼나르기했다고 하더라도 명백하게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해칠 소지가 없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적지 않게 나왔으며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져가던 중 이명박 박근혜 정부들어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결이 갑자기 엄격해진 면이 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 자체도 이렇게 적지 않게 왔다갔다는 하는 상황인 것만 봐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애매한 법, 귀걸이코걸이법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국가보안법이기에 폐지할 것을 주장해온 자주민보이지만 엄연한 현행법이라 이를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북과 관련된 기사들 중 북의 제도 등을 ‘좋다’, ‘훌륭하다’ 등 직접적으로 찬양한 문구와 ‘북은 이런 무상교육제도라서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남은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하기 힘들다’라는 식으로 남과 북을 대조하는 문구 등을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죄에 해당된다는 그간 판례를 참고하여 자주민보에서는 이런 직접 찬양과 북과 대조하는 표현 등은 철저히 금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창기 기자 재판 판결문에서도 ‘북에 대한 직접적인 찬양 표현은 없지만 내용적으로 북에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어’라며 유죄판결을 내린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주민보에서 국가보안법을 어기지 않으려했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자유게시판을 폐쇄한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수 년 전 창원경찰서에서 자주민보 자유게시판에 북을 찬양하는 내용의 글이 있다며 그 삭제요청 목록을 보내왔기에 일일이 다 삭제하였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 되자 아예 자유게시판을 폐쇄했던 것입니다.     

또한 자주민보는 정보통신부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기사 목록을 보내와 삭제를 요청했을 때도 단 한 편도 어기지 않고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왜 삭제를 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달라는 요청서를 보내 그 공문에서 지적한 내용을 반복하여 어기지 않으려 노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듯 자주민보는 애초에 국가보안법을 어길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 국가보안법에서 허용하는지 그 기준이 너무 애매한 점 때문에 저희들이 다소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지적을 해주면 적극 반영할 확고한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창기 전 대표가 감옥에서, 그리고 나와서 문제의 기사를 반복적으로 계속 쓰고 있어 아예 자주민보 자체를 폐간시켜야 한다는 재판부의 지적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창기 전 대표의 공소장을 보면 이창기 기자가 쓴 글은 ‘세계를 뒤흔들 김정은 대장’이란 제목을 기사 딱 한 편을 문제시하고 있고 나머지 50여 편의 기사는 모두 이창기 기자가 편집해서 올린 외부 기고가의 글입니다.

하기에 애초부터 이창기 기자가 쓴 기사를 가지고서 현저히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보기엔 누가 봐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도소 안에서 그리고 실형을 살고 나온 이후 이창기 전 대표가 쓴 기사들은 재판을 받기 전보다 훨씬 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쓴 것들입니다.     

문제가 된 외부기고가의 글 중에서도 가장 주가 된 글은 예정웅 미주 동포의 기사였습니다.

하여 재판을 받는 도중 그리고 실형을 살고 나온 이후 예정웅 동포가 지속적으로 이창기 기자의 메일로 기사를 보내왔지만 단 한번도 자주민보에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반복적으로 현저하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재판부와 국민들께 드리는 호소     

국가보안법을 자주민보가 지킬 의지가 전혀 없고 실제 지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재판부에서 등록취소 즉 폐간 조치를 내리는 것을 그래도 좀 납득할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부당한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현행법이기에 정부 공안기관의 요구나 지적을 단 한번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 수용했으며 검찰의 기소나 실형 선고 이후 판결문의 내용을 적극 고려하여 더욱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 노력해온 자주민보를 폐간까지 시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국가보안법을 현저하고 반복적으로 위반했다고 하는데 현저하게 위반한 표현이 어디 있으며, 반복적으로 위반할 시간적 여유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이창기 전 대표가 확정판결을 받은 것은 출소 4개월 전 지난 2013년 중순경입니다. 확정판결을 받은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반복적으로 위반하려고 한들 얼마나 했겠습니까.     

물론 이창기 전 대표는 출소하자만자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기자들에게 국가보안법을 더 엄격히 적용하여 다시는 위반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당부를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외부기고가의 기사들도 더욱 엄격히 다듬고 있으며 그 과정에 여러 필진들과 마찰을 빚고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는 자주민보 전화통화 등을 실시간 감청을 하고 있는 공안기관에서 더 잘 알 것입니다.      

이런 수준의 자주민보와 같은 언론사도 허용하지 못한다면 6.15남북공동선언은 물론이고 과거 유신정권보다 더한 독재정권임을 박근혜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사를 폐간한 예는 독재정권으로 전세계의 규탄을 받은 박정희 유신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족일보 폐간 딱 한 건밖에 없었습니다.
광주학살 만행의 극악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도 몇개 언론사를 없앨 때 통폐합이라는 모자는 쓰고서 했지 이렇게 버젓이 행정심판으로 감히 언론사를 폐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언론으로 통해 가감없는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지 않고서는 국민들이 올바로 판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곧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며 국민을 마소 취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언론사 폐간은 무지막지한 민주주의 교살행위입니다. 
특히 자주민보 폐간을 선동했던 보수단체에서는 보수 언론에 나와 내놓고 자주민보 폐간은 시작이며 이땅에 진보 언론은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자주민보가 폐간되면 다른 진보적 언론사들도 계속해서 폐간되는 수난을 겪을 것이 자명하며 북에 대한 악담만 난무하는 남북대결의 광풍시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대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자주민보는 오직 6.15남북공동선언만이 평화통일의 길이며 우리민족이 살길임을 강조해온 언론사입니다.

북의 군사력을 소개하는 기사를 자주 올린 것도 무력충돌은 결국 남과 북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고 부디 평화적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은 모든 기사에 명백히 다 나와 있습니다.
     
하여 자주민보를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를 사수의 문제이며 우리민족 생존이 달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부디 공명정대하게 판결해줄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주민보를 지키는 데 애독자 여러분과 뜻있는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자필로 쓴 탄원서 한 장이 재판부의 심금을 울린 예가 많이 있습니다.

탄원서에 동의하는 한 줄의 동의 서명도 도움이 됩니다.

작은 후원금이라도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주민보 사건을 알리고 국민의 힘을 모으는데 소중한 동력이 됩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동참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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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자주민보 폐간 반대 투쟁 지지합니다'
 
자주민보 폐간시도는 통일, 민주주의 스스로 부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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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시민들아 함께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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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힘내세요'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해 도보 행진을 하는 가운데 한 시민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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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움직임, 큰 기적'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기적을 20140416"이 적힌 깃발을 가방에 꽂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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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벗고 휴식 취하는 학생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도중 휴식 장소에서 신발을 벗고 엎드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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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켜봐줘, 잊지 않을게'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 첫 날 시민들이 일정을 마치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환영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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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취재 : 강민수·유성애 기자
사진 : 이희훈 기자
방송 : 박정호·최인성·강연준·곽승희·강신우·송규호 기자

[7신: 16일 오전 10시 15분]
생존 학생 5명 추가로 합류... 총 43명 2일차 도보행진 출발

밤사이 생존 학생 5명이 도보행진에 추가로 참여하기로 했다. 전날 출발한 38명에 이어 2일차 도보행진 참가 학생은 43명이다.

장동원 생존 학생 학부모 대표는 16일 오전 "참가에 부정적이던 부모들이 <오마이뉴스>의 생중계를 보고 마음이 돌아서신 것 같다, 여론의 힘"이라며 생존 학생 5명의 추가 합류 소식을 전했다.

장 대표는 "어른들이 물집 잡힌 것처럼 똑같이 열일곱 학생들도 물집 잡혔다"며 "전체적으로 어제 행진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제 자기 전에 '속이 후련하냐'고 물었더니 '좋아요'라고 답했다"며 "초유의 사태를 겪은 아이들에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생존학생들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농성을 벌이는 국회로 출발할 예정이다.

다음은 2일차 도보행진 일정이다.

- 오전 10시 30분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광명종합운동장-광명시청-광명시청소년수련관 : 20분
- 11시 광명시청소년수련관-구로ic교차로-구로동거리공원 : 1시간 4분
- 12시 20분 구로동거리공원-성락주유소앞(좌회전)-도림사거리(우회전)-우신초교앞(좌회전) : 40분
- 1시 20분 우신초 인근 점심 식사
- 2시 15분 우신초-영등포로타리-여의도금융감독원 앞-국회의사당 : 45분
- 3시 국회의사당 도착

[6신 : 16일 오전 2시 50분]
늘어나는 시민 행렬... 응원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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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어난 시민 행렬 '얘들아 힘내!'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 시민들의 참여로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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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명으로 시작한 시민 행렬이 15일 자정이 지나면서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세월호 학생들이 행진이 안산, 안양을 거쳐 광명 인근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면서 그들의 뒤를 따르는 시민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16일 오전부터 이어질 서울 도심 행진에서도 시민 참여가 더 늘어날지 주목된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시민들은 생존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학생들 뒤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도, 태블릿 PC에 '잊지 않을게, 힘내'를 띄운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자정 넘었는데도 늘어나는 시민들

행진에 참가한 광명에 사는 중학교 교사 임아무개(33)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들이 광명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냥 자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 걷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킨 기성세대로서 죄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부끄러워 할 줄 시민이라면 내일 생존학생들과 거리로 나와 함께 걸어야 한다"며 "무리가 많아져야 정치권과 국회가 겁을 먹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명에 사는 김동원(38)씨도 "자려고 했는데 근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나섰다"며 "그냥 학생들 뒤를 함께 걸어주고 싶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도 행진에 함께 했다.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에게 금일봉을 전하기도 한 그는 "정치권이 힘이 되지 못해 답답하다"며 "(아이들을 보니까) 괴롭고 미안하다, 어른들이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응원을 나오기도 했다. 광명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아들 영록(16)·영수(14)군과 아내의 손을 잡고 한 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걸었다. 김씨는 "학부모는 다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학생들이 걷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저 선량한 학생들이 죄인마냥 왜 걸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행진에 대해 아이들에게 얘기하니 아이들이 먼저 함께 걷자고 하더라"며 "잊지 말자는 의미로 같이 걷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재은(42)씨도 아내 고미자(37)씨의 손을 잡고 학생들 뒤를 따랐다. 강씨는 "아이들과 그저 같이 걷는 것 외에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유족들은 단식을 하고, 아이들은 1박 2일을 걸어야 하는 이 상황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세계에서 학생들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며 "계속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니 결국 이런 식으로 의견을 피력하게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주민 30여명, 학생들 숙소에서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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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도보행진 완주, 시민들의 환영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 첫날 코스를 완주하고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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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숙소인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 앞에서도 인근 주민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숙소 앞에 도착한 것은 16일 오전 1시 35분. 주민들은 "잘 왔어" "수고했다"라며 박수로 학생들을 응원했다. 장동원 생존 학생 학부모 대책위 대표가 "너희를 응원하러 기다리신 분들이 있다"며 주민들을 소개하자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숙소 입구에는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쓴 "고맙다 얘들아, 잊지 않을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유가족참여 특별법 제정" 등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복지관 앞에서 이들을 기다린 하안동 주민 윤아무개(46)씨는 "(생존 학생들은)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어야 할 아이들인데, 이렇게 행진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어른들도 선거로든, 특별법 제정으로든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들은 지쳐 보이기도 했지만 행진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꺄르륵", "깔깔" 거리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기도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길을 걸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넣어 "OO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OO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를 함께 불렀다. 한 여학생은 숙소에 도착하자 주저 앉았다. 그는 "다리에 경련이 올 것 같다"며 "배도 고프고 졸리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휴식에 들어간 뒤 16일 오전 10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해 광명종합운동장-광명시청-서울 구로동거리공원-영등포로타리-여의도금융감독원앞-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5신 : 16일 오전 12시 20분]
도보행진 7시간째...시민 20여명 함께 걷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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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행진 이어지는 도보순례길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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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15일 오후 도보행진을 시작한지 7시간 째. 오후 11시 50분 현재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광명역 근처를 지난 학생들은 처음에 비해 다소 지친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웃으며 장난을 치는 등 여전히 활기찬 모습이지만, 발목이 붓거나 힘들어하는 일부 학생들도 있어 구급차 등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행진을 직접 응원하겠다며 이들이 걸어가는 경로에 미리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달간 봉사를 하던 대구 출신 자원봉사자도 도보 행진 소식을 듣고 합류했다.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힘내라", "건강히 다녀와" 등의 응원 외에도 시원한 음료수 등을 나눠주며 힘을 불어넣었다. 아예 학생들과 함께 걷는 시민들도 20여명 가까이 됐다.

경기 안산 상록구 부곡동 길목에서 학생들과 만난 안산 주민 김경숙씨는 "아이들이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십자가를 지고 팽목항으로 순례를 떠난 유가족(고 이승현군 아버지)을 보고 학생들이 이번 도보행진을 기획했다고 들었다"며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고 덧붙였다.

경기 시흥시 목감동 목감교차로(IC) 부근 주유소에서는 안양, 시흥 등 경기도 시민들이 "얘들아 사랑해"라 쓰인 노란 피켓을 들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천에서 왔다는 김광수(40)씨는 빨래대를 좌판 삼아 노란 천을 두른 뒤 학생들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20여개 준비했다. 그는 "살아남은 학생들이 행진한다기에 어른으로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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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째 도보 행진이 이어지면서 학생들은 다소 지친 모습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걷는 학부모들도 "무리하지 말라"며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구급차나 미니버스로 가서 쉬게 하고 있고요. 그런가하면 이들을 응원하는 주민들도 길에 나와있네요. 경기 안양시 석수동 주민 박효서(40)씨도 생존학생들의 행진 소식을 SNS에서 접하고 12살 쌍둥이남매와 함께 응원하러 왔습니다. "앞으론 이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니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모습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씨. 생각보다 밝은 생존 학생들의 모습에 정말 감사하다는 그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하다 결국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 박씨를 옆에서 보던 딸 장영인 양은 "(단원고) 언니들이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저를 보고 웃으며 손 흔들어줘서 좋았어요"라며 배시시 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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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어머니도 있었다. 경기 안양시 석수동 주민 박효서(40)씨는 생존 학생들의 행진 소식을 SNS에서 접한 뒤 12세 쌍둥이 남매와 함께 차를 타고 달려왔다. 박씨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니까, 이렇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는 마음으로 왔는데 밝은 학생들 덕에 웃으며 돌아간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로 외동아들을 잃은 한 아버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세월호 사고로 아들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아직 이유도 모른다고, 그런데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이 입던 옷을 입고, 아들이 신던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하는 분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지난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버스 보고대회'에서 만난 희생 학생의 아버님 얘기를 하다가 결국 울먹거리는 박씨.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박씨의 딸 장영인(12)양은 "(단원고) 언니들이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저를 보고 웃어줘서 좋았어요, 손 흔들어줘서 고마웠어요"라며 엄마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도보행진 중인 생존 학생 38명은 16일 오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경기 광명시 하안동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들은 숙소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뒤 광명시청과 구로동공원, 영등포를 거쳐 오후 1시 45분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하게 된다.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는 "아이들이 각자 배낭에 매단 노란 깃발을 국회 정문 앞에 꽂아놓고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4신: 15일 오후 9시 40분]
세월호 유가족 7명, 행진 학생들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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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미씨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단원고 이보미 양의 어머니입니다. 숨진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그 진실을 밝혀달라며 40여km 도보행진에 나선 아이들을 응원하러 여의도 국회에서 안산까지 직접 왔습니다. "딸아이 친구들을 보면 아직도 딸 생각이 나요. 그 때 보미가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갑판으로 나왔더라면, 어쩌면 우리 딸도..." 여전히 딸 이야기를 하며 울먹거리던 정씨. 정씨는 길 떠나는 딸의 친구들에게 "잘 다녀와, 엄마들이 응원할게"라며 꼭 안아줍니다. 어떤 이들은 서명으로, 어떤 이들은 걷는 것으로 마음을 더합니다. 세월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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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존 학생들을 보면 딸 생각이 나요. 살아남은 아이도, 배에서 제 딸을 가장 마지막으로 뵜다고 해요. 그때 인사하고서 친구는 갑판으로, 우리 아이는 선실로 들어갔었죠. 그 때 갑판으로만 나왔으면 어쩌면 우리 아이도….(울먹)"

세월호 참사 유가족 7명이 행진 학생들을 찾아와 격려했다. 2학년 9반 고 이보미양의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고맙다, 힘내라'며 '내일 국회에서 보자'고 말했다"며 "아이들이 끝까지 잘 해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비가 와서 걱정되긴 하는데, 응원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침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여학생 두 명과 껴안고 "얘들아 잘 다녀와, 엄마들이 응원할게"라고 외쳤다.

국회에서 농성중인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정과 미안함에 나선 우리 아이들의 길"이라며 "고약한 어른들의 시선 말고, 우정이 가장 중요했던 17살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란다"며 글을 남겼다.

안산 어머니들의 모임인 '노란손수건' 소속 10여명의 주부들도 격려했다. 이들은 행진 시작부터 오후 8시까지 학생 곁을 지켰다. 박찬희(39)씨는 '가족들이 가족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라고 적힌 노란 손수건을 펼치고 걸었다.

한편, 학생들은 안산읍성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소나기가 내려 인근 주유소에서 십분간 비를 피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도중에 일부의 학생들이 발목을 다치거나 피로를 호소해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함께 이동했다.

[3신: 15일 오후 7시 11분]
한쪽 발에 붕대 감고도 40km걷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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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까지 약 40km 도보행진에 나선 단원고 생존학생들. 그중 A학생은 얼마전 사고로 오른발을 다쳤습니다.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가 부러졌는데도 함께 걷겠다며 붕대를 다시 감고 있습니다. 함께나선 학생들 부모님들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학생을 다독이네요. 다친 발목으로도 수십킬로미터를 걷게 만드는 힘, 뭘까요. 생존학생들은 "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주세요"라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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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속 걷고 싶은데... 조금만 더 걸으면 안돼요?"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약 40km 도보행진에 나선 단원고 생존학생 염아무개 학생이 학부모 대표에게 말했다. 얼마 전 사고로 복숭아뼈가 부러진 염군은 오른쪽 발바닥부터 무릎 아래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15일 오후 5시께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 38명이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 달라"며 단원고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염군은 결국 지원을 나온 안산 H병원의 구급차에서 붕대를 다시 감은 뒤 행진 대열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빨리 걸어"라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학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행진에 나서게 된 걸까. 생존 학생 김아무개군은 "그냥 (국회에 있는) 친구 부모님들께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1박 2일, 꼬박 40여km를 걷는 대장정이지만 "별로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생된 친구들 이름표 가방에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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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억울하게 죽은 친구들, 그 진실을 밝혀달라"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숙하고 단식 중인 국회를 향해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나 가는 안산 시민들도 학생들을 알아보고 "힘내라" "어른들이 미안해"라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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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나라', '유예은', '김해화'... 생존 학생들은 희생된 친구들의 이름표를 가방에 달고 있었다. 또 노란색 나비들이 수놓인 손수건으로 머리를 묶거나 가방에 매달았다. 손수건에는 "희생자 여러분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란 말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헌정된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수 임형주)' 가사가 적혀있었다.

이번 행진에는 생존 학생들뿐 아니라 일부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단원고 학부모 김동수(58)씨도 이번 세월호 사고로 41세에 낳은 첫 아들을 잃을 뻔했다. 김씨는 "아이가 살아돌아와 천만다행이지만 기쁜 내색도 할 수가 없다"며 "아이들이 국회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도록, 다치지 않게 옆에서 같이 걸으려 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현재, 안산 시내를 행진한 학생들은 안산 부곡동 하늘공원 내 안산시립납골당에 도착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친구들 103명이 안치돼 있는 곳이자, 지난 6월 3일 49재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20여분간 참배한 뒤 다시 행진 채비를 하고 있다.

[2신: 15일 오후 5시 41분]
생존 단원고생 38명 학교 정문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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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손 꼭 잡고, 함께 걷는 단짝 친구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해 도보 행진을 하는 가운데 두 학생이 노란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깃발에는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고 멀리 떠나버린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억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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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주세요"

대열 선두에선 학생이 든 노란 깃대에는 그들의 간절한 희망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노란 깃발을 들거나 가방에 꽂은 채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또 다른 학생의 깃발에는 검은색으로 '잊지 말아주세요',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학생들의 1박2일 도보행진이 시작됐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 38명이 경기도 안산 단원고 정문에서 출발한 것은 15일 오후 5시. 대부분 여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옆 친구와 대화를 하며 웃음을 짓는 등 밝은 표정이었다. 목에는 손수건을 둘렀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게 팔토시도 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부모 10여 명, 세월호 참사 시민대책위 관계자 10여 명이 함께 길을 나섰다.

출발에 앞서 신아무개군은 취재진을 향해 짧은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읽는 내내 신군의 두 손은 멀리서도 보일 만큼 심하게 떨렸다.

"지난 4월 16일, 온 국민이 보았습니다. 저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들은 법을 모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 나섰습니다. 가감없이 저희들의 뜻을 전해 주십시오."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파이팅', '힘내라' 등을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경찰 호송차량과 구급차, 미니 버스 등이 대열의 뒤를 지켰다. 단원고를 출발한 이들은 잠시 뒤 안산시청과 안산청소년 수련관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1신: 15일 오후 3시 25분]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부모님들 위로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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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고 쓴 깃발을 들고 단원고 생존학생 40여 명이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리멤버 0416' 등 노란 깃발을 가방에 꽂고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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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 학생들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도보행진에 나선다. 생존 학생들의 단체 행동은 지난 4월 안산 합동분향소를 단체 조문한 이후 두번째 일이다.

세월호 생존자 학생 가족대책위원회 소속 학부모들에 따르면 생존학생 46명과 학부모 등 70여 명은 15일 오후 5시 20분경 안산 단원고를 출발한다. 출발에 앞서 학생 대표가 편지를 낭송하고, 학생들은 가방에 꽂을 깃발에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새길 예정이다.

가족대책위 측은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부모님들을 위로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두 가지 소망을 가지고 출발한다"며 "친구들을 잃은 서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광명에서 숙박한 뒤 16일 오후 국회에 도착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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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 배웅 나온 엄마 "조심히 다녀와"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5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해 도보 행진을 하는 가운데 한 학부모가 출근길에 배웅을 하고 있다. 이 학부모는 손목에 세월호침몰사고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팔찌'를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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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날 자정께 경기도 광명 하안동 서울시립 근로청소년 복지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16일 오전 8시 다시 출발해 이날 오후 1시 45분경 국회의사당에 닿는다. 생존학생들은 국회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할 예정이다.

이날 행진은 유가족 3명의 안산-진도 행진에서 촉발됐다. 행진 소식을 들은 생존 학생들은 '우리도 팽목항에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이에 학부모들이 생존 학생들의 심리적 치료 차원에서 국회 행진을 추진하게 됐다. 생존 학생들은 지난달 25일 눈물의 등굣길로 사고 71일 만에 학교에 복귀했다.

장동원 생존자 학생 가족대책위 대표는 "학생들은 숨진 친구들에 대한 우정과 친구들에게 무엇할 수 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에서 참가하게 됐다"며 "또 국회에서 친구 부모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대표는 "행진은 생존 학생들의 가슴 속에 진 응어리를 풀어주는 체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유가족 15명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국회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1박2일 일정의 단원고 학생들 도보 행진을 동행 취재하며, 오마이TV에서는 이를 생중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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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남북은 힘을 합쳐 전쟁을 막아야 한다

 작성일 : 14-07-16 03:44
[초점]남북은 힘을 합쳐 전쟁을 막아야 한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3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편집실]미국은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벌여 온 침략범죄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또한 무고한 다른나라들 양민들을 학살하며 그 나라들의 주권을 짓밟아 온 잔인무도한 인권유린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특히 코리아반도에서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코리아를 분단시켜 한국을 식민지 인질로 만들어 전쟁을 유발시켜 놓고서는 60년이 넘도록 조선과의 평화협정을 회피하여 오면서 이제와서는 조선을 핵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코리아반도에서 핵전쟁연습을 반복하여 왔다.

 

이러한 미국은 또다시 다음달 중순부터  위험천만한 핵전쟁연습을 계획하면서 한국군은 물론 일본자위대까지 끌어들여 코리아반도를 위험천만한 열전지대로 만들어 가고 있어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13년 10월2일 이른바 제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통하여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군사적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선제타격한다는 소위 《맞춤형억제전략》에 한국측 군부가 서명하도록 하여 놓은 상태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가.

 

돌이켜보면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억제력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이미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처럼 몇차례 공습을 시도했을 것이다. 다시말하면 조선의 자위력이 없었다면 몇차례 전쟁들이 터졌다는 말이다. 조선이 이에 대하여 사전대비한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무장력을 갖춰 놓았기 때문에 미국의 또다른 침략행위는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코리아반도에 전쟁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제국주의자들의 본성은 다른나라들을 침략하여 생존하는 방식을 가져왔다. 아직도 미제국주의자들의 본성이 달라진 징표들이 없다.북미간에 평화협정까지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관국들이 해야할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코리아반도 긴장의 주범이 되어 온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거두고 침략범죄행위를 중단하는 한편 조선과 평화협정을 통하여 상생하는 정책으로 나가야 미국도 유익하고 조선도 한국도 모두 유익하다. 그렇지 않고 미국이 계속하여 대북적대시정책으로 긴장을 조성한다면 미국의 미래도 밝지 못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조선은 지구상 그 어느나라들보다 미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에도 그리고 전쟁에도 모두 준비된 상황으로 파악되고 있다.조선은 또한 미국과 그 일부 추종세력을 제외한 국제사회에서의 지위와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 높아져 가고 있다.게다가 자연지하자원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산업무기인 CNC를 포함하여 핵융합기술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이 날이 갈수록 놀랍게 발전하고 있어 조선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조선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현주소와 그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다시말하면 로마제국의 몰락과 그 쇠태를 보는 모습이다. 이러한 분석과 관점은 국제사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조선은 어떠한 입장과 자세로 임해야 될것인가에 대하여 양측 모두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실천해야 된다.사실상 양측이 나아가야 할 진로는 이미 남북 양측 최고지도자들에 의해 합의되고 선포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7.4남북공동성명이며 6.15남북공동선언과10.4평화번영선언이다. 

 

이제는 남북이 힘을 합치면 못해 낼 일이 없다. 남북이 의견투합만 하면 주변국들인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그 어느나라도 지난시기처럼 간섭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못한다.

 

남북정상들이 세계에 선포한 공동선언들은 이미 조국통일에 관한 방안들까지 제시했다. 남북 양측의 이념이나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연방제나 연합제의 절충을 통하여 통합단계를 실천하자고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좌,우 이념대결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결이 있을 수 없고, 신앙이나 정견의 차이로 갈등이 있을 수 없고, 여야간의 차이로 마찰이 있을 수 없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북이 힘을 합치면 또한 코리아반도 물류시스템으로 인한 경제문제의 돌파구가 열리기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제경쟁력에서 우세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는 한편 남녘의 실업자들 문제와 복지문제가 완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에게 유익한 환경이 조성된다.

 

남북이 힘을 합치면 7백만 해외동포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안겨준다.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 기업인들이 통일조국에 기여하는 숫자들이 엄청나게 늘어 날 것이다. 또한 해외동포들이 통일조국의 경제사절이 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늘이는 한편 통일조국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하는 밝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면 해외동포사회는 지역마다 발전되고 부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자라나는 2세, 3세, 4세 등 자녀들은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고 통일조국에 적극적으로 이바지 할 수 있다. 이것은 남이나 북의 당국자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환경이 되겠는가.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그 자체가 복지의 나라, 희망의 나라를 건설하는 첩경이 된다. 불필요한 예산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자들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정의가 살아나고 평화가 꽃피는 세상이기 때문에 코리안들은 통일조국에서나 지구촌 어디에서나 하나된 민족, 하나된 겨레에 대한 자부심과 존엄성을 갖게된다.

 

그래서 남북 해외동포들은 힘을 합쳐 전쟁을 막아야 한다. 남북이 힘을 합치는 것이 해내외 동포들 모두의 행복이며 미래의 희망이다.(끝)

 

2014년 7월15일  

 

 

 

 

 

 

 

"미국의 쇠퇴몰락은 력사의 필연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백서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며 세계우에 군림하였던 미국이 오늘날 전횡과 독단으로 인한 고배를 삼키며 쇠퇴몰락하고있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정책은 더는 통할수 없는것으로 되였다. 《거대한 제국》 미국이 정치,군사,경제,사회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헤여나올수 없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다.

  인류는 미국주도의 세계지배체계로서의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주도의 평화)시대가 끝장나고있음을 시시각각 목격하고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국제무대에서 날로 패권적지위를 잃고있는 미국이 그 가련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것은 력사의 필연이라는것을 확증하는 백서를 발표한다.

 

  허울만 남은 《초대국》

 

  랭전종식후 미국은 일극세계를 실현할 야망에 들떠 세계도처에서 거리낌없이 전쟁의 불을 지르고 독단과 일방주의정책으로 국제무대를 어지럽혀왔다.

  《부쉬주의》가 극도에 달하였을 당시 적지 않은 미국의 보수파 학자들과 정객들은 《미국식평화》니 《아메리카제국》이니 하는따위의 궤변들을 부쩍 여론화하였다.

  미국 보스톤대학의 국제관계학교수 앤드루 바세비치는 신문 《워싱톤 포스트》 2003년 4월 20일부에 기고한 《우리는 힘을 가졌다. 자,어떻게 그 힘을 쓸것인가?》라는 제목의 글 서문에서 《세계는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들어서게 되였다.》고 력설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앞에서 파멸선고를 받은 산송장신세가 되고말았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은 지역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침략과 간섭의 전략이였다. 다시말하여 무력으로 지역대국들의 영향력과 세력권확대를 견제하고 미국식지배주의질서를 세우자는것이였다.

  미행정부는 《미래의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과 관계되며 미래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은 미국에 달려있다. 그 어느 국가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지배하지 못할것이다.》(로씨야 이따르-따쓰통신 2010년 1월)라고 공공연히 떠벌임으로써 지역에 대한 저들의 패권주의적기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그것은 즉시 지역나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으며 오늘날 전면파산에 처하였다.

  지난 5월 20일 로씨야와 중국은 정치,군사 등 각 방면에서 서로 힘을 합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에 대항하는것을 내용으로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두 나라가 손을 맞잡고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에 맞불을 놓고나섰다.》고 평하였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대해 외신들은 오바마의 전략적구상과 실제적인 집행과정을 놓고 미국회는 물론 지어 민주당내에서도 의견상이가 존재하고있다,총체적으로 놓고볼 때 오바마의 전략은 《자원불균형》,《정력불균형》,《동력불균형》이라는 3대도전에 직면해있다고 전하였다.

  이것은 오바마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이 지역나라들로부터 여지없이 된서리를 맞고있을뿐아니라 미국내에서까지 실현불가능한 정책으로 간주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세계도처에서 미국의 패권적지위가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지고있다.

  로씨야잡지 《엑스뻬르뜨》는 《미국의 군사적우세가 이 나라가 말려드는 지역충돌에 의해 제지되고 종당에는 사라지고말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지정학적문제들에서 련합과 분렬,리간과 포섭 등 갖은 수단을 제멋대로 구사하던 행동공간은 제한을 받고있다. 미국은 명백히 힘이 딸린다.》고 지적하였다.

  지금 이라크를 휩쓸고있는 내전에 대해 미국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고있다. 내전의 수렁창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라크에 다시는 대병력을 들이밀지 않겠다고 뻗치면서 지난 시기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이란에 《협력》을 구걸하는 형편이다. 내전을 일으킨 그루빠는 다름아닌 이전에 미국의 테로지원을 받은 이슬람교극단주의단체이다. 미국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제가 빠진 격이 되였다.

  로씨야신문 《쁘라우다》 2014년 6월 16일부는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테로분자들을 후원하고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정책은 잘못된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전략은 반대로 미국의 지배권을 면전에서 눈처럼 녹게 하고있다.》고 보도하였다.

  아프가니스탄문제를 놓고서도 미국은 호미난방의 처지에 빠져있다.

  전쟁초기 탈리반에 대해 《테로분자들과는 그 어떤 회담도 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미국이 지금에 와서 탈리반을 합법적인단체로 인정하고 그들과 평화회담에 나선 사실(로씨야신문 《꼼메르싼뜨》 2013년 1월 14일)은 어쩔수없이 비굴하게 나오지 않으면 안되게 된 미국의 무력함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지난 5월 27일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아프가니스탄주둔 미군철수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3만 2,000명의 철수가 시작되여 2016년말까지는 거의다 철수하게 된다.

  이에 대해 미국회 상원 의원 그라함은 트위터를 통해 오바마가 전쟁을 끝내는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한것이라고 명백히 밝혔다.(미국 VOA방송 2014년 5월)

  결국 영예로운 철수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패주로 되고말았다.

  또한 우크라이나문제를 둘러싸고 로씨야와 정면대결에 나선 미국은 렬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다. 자기의 민족적리익을 놓고 한치도 양보하지 않을 강경자세를 보이는 로씨야에 대해 제재몽둥이를 들고나섰지만 김빠진 소리에 불과하였다. 중국과 인디아가 제재조치에 반기를 들었다.

  이번 우크라이나문제를 두고 여론들은 로씨야,중국,인디아와 지역의 동반자들이 국제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고 서방이 《정의독점》권을 상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신하고있다고 전하였다. 그러면서 국가들과 국가그루빠들의 호상의존이 점점 더 심해지는 현시대에 새로운 랭전이 일어난다면 승자는 없을것이며 오직 패자만 있을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로씨야의 소리》방송2014년 3월)

  이미전에 미국 예일대학 력사학교수 폴 케네디는 신문 《워싱톤 포스트》에 기고한 《제국의 위험》이라는 글에서 미국에 이런 비평을 던졌다.

  《력사가 반드시 똑같이 반복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력사는 력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쓴맛을 보여주었다.》

  력사에 도전하여 안하무인격으로 놀면 반드시 종말의 위기를 겪을수밖에 없다고 미국에 경종을 울린것으로 된다.

  료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반미기운으로 하여 세계도처에서 미국이 두들겨맞고 고립배격당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로 되고있다.

  2013년 3월 13일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세계각지에서 진행한 조사결과를 발표한데 의하면 당시 미국에 대한 평균반대률은 2009년에 비해 4% 올랐다. 특히 파키스탄인들과 팔레스티나인들속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한 비률은 각각79,77%에달하였다.

  또한 지난해말 《갤럽》이 65개 나라의 7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많은 응답자들이 미국을 가장 위험한 나라로 꼽았다고 한다.

  미국은 동맹국들로부터도 눈밖에 나고있다.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을 발표한 이후 미국은 유럽에 저들의 전략을 지지하며 방위분야에서의 부담을 나누어 맡을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한 유럽나라들의 반응은 쌀쌀하였다. 《보류적인 태도》,《강건너 불보듯》,《속에 불만》(중국 신화통신 2013년 2월),이것이유럽나라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일본은 미국이 강요하는 환태평양경제련대협정체결이 상전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과 직결되여있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시장개방문제에서는 미국에 단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있다. 일본의 《마이니찌신붕》은 환태평양경제련대협정과 관련한 일미사이의 마찰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미국의 질서구축에 그늘을 드리우게 될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모든 사실은 미국이 세계적으로 전쟁과 간섭을 일삼은 결과 응당한 대가를 치르고있으며 《초대국》이라는 지위는 허울만 남게 되였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프랑스에서는 《아메리카제국》의 종말을 예언한 책 《아메리카이후》가 발행되여 대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2013년 12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연구쎈터는 미국이 국제문제들에 지나치게 간섭하고있는데 대해 국민의 80%가 반대의사를 표시하고있다는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미국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정부의 반동적이며 침략적인 정책에 등을 돌려대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민심을 잃은 제국의 운명은 멸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히틀러의 나치스제국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제국》의 운명도 비극적으로 끝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딸라제국의 붕괴는 시간문제

 

  오래전부터 미국은 핵무기와 함께 딸라를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2대기둥으로 삼아왔다.

  알려진바와 같이 현 국제금융체계는 미국이 1944년에 서방나라들을 설복하여 《브레톤우즈체계》,즉 미국딸라를 자본주의세계의유일한 통화로 만드는 제도를 내옴으로써 형성된것이다. 그것을 리용하여 미국은 많은 경제재정적리득을 챙기였다.

  미국이 걸핏하면 다른 나라들에 가하는 금융제재가 무시할수 없는 효력을 발휘하고있는것도 결국은 현 국제금융체계가 미국딸라를 기축통화로 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러한 딸라에 의거하고있는 미국경제가 지금에 와서 산소호흡기에 매달려있는 신세에 처하였다.

  지난 2008년부터 미국을 휩쓸기 시작한 금융위기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재촉하는 계기로 되였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전에 존재하였던 영국주도의 세계지배체계는 제2차 영국-보아전쟁이 끝난 1905년이후 당시 영국이 이 전쟁에 막대한 돈을 탕진한것으로 하여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은 결과 몰락한것으로 력사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그 자리를 넘겨받은 《팍스 아메리카나》가 역시 같은 원인으로 림종을 눈앞에 둔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던 2008년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가 미국 이전에 세계유일초대국이였던 영국의 쇠퇴과정과 현재 흔들리고있는 미국의 모습을 비교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 죤즈 홉킨스종합대학 교수 후꾸야마는 잡지 《뉴스위크》에 《〈주식회사〉-미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미국이라는 상표가 금융위기로 종말에 처하게 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금융위기가 남긴 후과는 심각하며 미국경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말았던것이다.

  출로가 없는 막다른 《골목거리 1번지》,이것이 미국경제에 붙여진 《주소》이다.

  이러한 경제실태를 두고 국제신용평가단체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즈는 설립된 이후 70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었다.

  외신들은 그것이 미국경제의 《심장》에 타격으로 된다,미국경제가 《제2차 쇠퇴》에 빠질것이다,경제적으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 미국에 있어서 자기의 패권적사고방식과 행동을 반성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으며 미국경제는 키가 없는 돛배가 되여 정처없이 헤매는 신세가 되였다.

  국가채무,예산적자위기가 걷잡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16조 7,000억US$였던 채무한도를 높이기로 합의한지 하루만인 지난해 10월17일에 미국의 국가채무는 3,280억US$나 부쩍 늘어나 력사상 처음으로17조US$를 넘어섰다.(《로씨야의 소리》방송 2013년 10월)

  프랑스의 한 경제학자는 《미국은 멸망하고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 미국의 국가채무는 한해 국내총생산액과 거의 맞먹는액수이라고 하면서 미국경제가 거의 파산상태에 직면하고있는 조건에서 앞으로 2018년경에 가서는 채무액수가 적게 잡아서 지금보다 근 1.5배정도 늘어날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9월말에 끝난2013회계년도에 미국의 련방예산적자는6,800US$ 달하였다.(미재무성 2013년 10월 30일)

  심각한 재정난으로 하여 2013년부터 미국정부는 재정절벽,련방정부자동지출삭감,정부페쇄,채무불리행 등 전대미문의 각종 사태와 악순환을 치르며 곤경을 겪고있다.

  이러한 속에 딸라의 지위는 급격히 약화되고있다.

  1971년 미국정부는 딸라와 금과의 교환정지를 선포함으로써 저들이 지고있는 막대한 빚을 금으로 상환할수 없는 처지에 스스로 빠졌다. 그로 인하여 발생한 제1차 딸라위기는 1980년대 중엽 제2차 딸라위기로 이어져 그때부터 미국은 채권국으로부터 채무국으로 전락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미국딸라는 세번째로 되는 위기를 맞음으로써 그 존재가치는 더더욱 희미해졌다.

  결국 미국딸라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 국제금융체계의 붕괴가 본격화되고있다.

  미국 UPI통신은 《이제 세계는 금융체계에서의 변화를 목격하게 될것이다. 미국은 더이상 국제금융체계를 통제할수 없게 될것이다.》라고 보도하였다.

  세계는 제명을 다 산 미국주도의 국제경제체계,미국딸라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금융체계를 배격하고 다극화의 길로 확고히 나아가고있다.

  로씨야가 루블의 사용범위를 확대하는데 큰 힘을 넣고있다.

  로씨야정부는 최근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루블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있다고 하면서 루블을 준비화페로 사용하는것이 가능하다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대표적실례로 까자흐스딴은 집단안전조약기구내에서 군수품을 구입할 때 로씨야루블로 청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지난 5월 21일 로씨야대외무역은행은 중국은행들과 웬에 의한 국제결제를 정식 시작하였다. 이미 량측 은행들은 2005년부터 쌍무거래와 관광봉사를 루블과 웬에 의한 결제방식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던것이 이번에 대외무역에로 결제범위를 더욱 확대시킨것이다.(《로씨야의 소리》방송 2014년 5월)

  지난해 중국인민은행과 유럽중앙은행사이에 화페교환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였다. 이로써 무역에서 딸라에 의존하던 종전의 금융체계에서 벗어나 직접 웬과 유로를 결제화페로 리용할수 있게 되였다.

  미국의 끈질긴 금융제재에 대처하여 미국딸라에 의한 원유거래의 중지를 선포한 이란정부는 2012년부터 수출하는 원유대금의 일부를 해당 나라들의 화페로 지불받고있다.

  브라질,로씨야,인디아,중국,남아프리카로 구성된 다무적협조기구인 브릭스가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세계를 일떠세우는것을 구호로 내걸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이딸리아신문 《라 레뿌블리까》는 신흥대국들로 이루어진 브릭스는 미국주도의 서방식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구락부》가 형성되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평하였다. 브릭스나라들은 자체의 개발은행을 창설하여 딸라중심의 금융체계에 도전하려 하고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알바성원국들은 몇년전부터 공동화페 쑤끄레를 성원국들사이의 무역화페로 정식 리용하고있으며 전망적으로 대륙의 모든 나라들에 도입할것을 예견하고있다.

  아프리카대륙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5개 나라가 서부아프리카통화지역창설을 위한 공동화페도입을 결정하였으며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성원국들은 2018년까지 단일화페를 내올데 대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밖에 만지역의 원유생산국들이 중동지역의 단일화페도입을 론의한것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단일화페도입을 위한 노력이 강화되고있다.

  금융분야에서의 이러한 다극화추이는 압력과 전횡이 란무하던 미국주도의 국제경제질서에 통구멍을 내고 정의와 평등,민주주의에기초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데로 이어질것이다.

  미국이 딸라를 휘둘러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때는 이미 지나갔으며 딸라제국의 붕괴는 시간문제로 되고있다.

 

  말세기적풍조가  미국식사회

 

  미국은 물질생활과 정신문화생활분야에서 나타나고있는 말세기적풍조로 하여 오래전부터 망조가 든 사회이다.

  물질생활이 극도로 기형화되고있다.

  지금 미국의 억만장자들속에서는 날로 늘어나는 재부를 탕진할데가 없던 나머지 애완용개들에게 1만 5,000US$어치의 금강석목걸이를 걸어주고 수십만US$어치의 생일대연회를 차려주는것과 같은 믿기 어려운 놀음들이 극히 자연스럽게 벌어지고있다.

  그것도 모자라 끔찍한 뱀들을 애완용으로 기르는데서 쾌락을 찾는 변태적인 풍까지 만연되고있다.

  이런 비인간적수요를 일확천금의 기회로 본 돈벌레들이 세계각지에서 뱀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이고있는탓에 지금 미국에서는 《뱀산업》이라는 소름끼치는 말이 류행되고 독사,구렝이를 비롯한 250만마리이상의 각종 뱀들이 이 나라 억만장자들의 궁궐같은 집들에서 호사를 누리고있다.

  한쪽에서는 4,650만명이나 되는 빈궁자들이 살길을 찾아헤매고(미국인구조사국 통계자료 2013년 9월 17일) 한해에 평균 10%이상씩 뛰여오르는 살림집값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제 집마련의 꿈을 버리고 한지에서 지내고있을 때 한줌도 안되는 부자들은 수만US$짜리 뱀들과 하나로 뒤엉킨채 질탕하게 놀아대고있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을 놓고 2011년 9월 18일 영국신문 《옵써버》는 《두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뉴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뉴욕시의 14구역과 16구역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14구역은 미국경제의 명맥을 쥐고있는 금융계거물들이 살며 쾌락을 즐기는 곳이다. 부자들은 호화아빠트에서 살면서 값비싼 나이트클럽들에 매일밤 돈을 퍼붓고있다. 그러나 빈곤층이 살고있는 16구역은 강력범죄가 판을 치는 무서운 곳이다. 이곳의 방랑자들은 강도행위로 생계를 유지하고있으며 그에 대한 형벌로 감옥에서 죄수밥을 정상적으로 먹는것을 호화생활로 간주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빈부가 낳은 두 세계의 대조적인 생활모습이다.》

  정신문화생활도 날로 빈궁화되고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근로대중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저들에게 순종하는 돈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반동적인 사상문화와 썩어빠진 부르죠아생활양식을 대대적으로 류포시키고있다.

  현재 미국에서 방영되고있는 TV오락편집물가운데서 80%가 류혈적인 살인내용을 담고있으며 매일 시청률이 높은 시간에 방영되는 편집물가운데서 폭력화면은 시간당 평균 8~12번이나 펼쳐지고있다.

  미국은 전무후무한 《강도대학》,《따기학교》까지 차려놓고 범죄자들을 체계적으로 키워내고있다.

  2009년에 100만여명을 망라한 2만개 수준이였던 미국의 강도단수가 2012년에는 140만명을 망라한 약 3만 3,000개로 부쩍 늘어났다.(미련방수사국 2012년 3월 15일)

  정신문화적으로 부패타락한 미국인들속에서는 총기류,마약범죄와 같은 각종 흉악범죄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있다.

  총기류범죄가 고칠수 없는 하나의 《악성류행병》으로 되고있다.

  미국의 개별적주민들이 휴대하고있는 총기류수는 무려  3억정에 달하고있으며(미국 CNN방송 2013년 4월) 해마다 총기류에 의한 범죄로 3만여명이 죽고 20여만명이 부상당하고있다.

  지난 4월 2일 텍사스주에 있는 포트 후드군사기지에서는 한 미군병사의 무차별적인 총질에 의해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기지에서는 2009년 11월에도 총기류범죄로 단번에 45명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건이 터져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낸바 있다.

  총기류범죄사건이 지난해 뉴욕시에서만도 1,093이나 감행되였다.

  총기류란사로 체포된자들은 자기의 범죄동기에 대해 《강탈과 복수를 위해서》,《총구앞에서 피를 터치며 쓰러지는 인간들을 보고싶은 충동때문에》,《영화에서 본 살인장면을 재현해보구싶어서…》 등으로 대답하고있다.

  총기류범죄의 심각성과 관련하여 미국의 한 출판물은 《미국인들이 서로 죽일내기를 하며 중세기적암흑속에서 불안과 공포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개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고 밝혔다.

  유엔은 미국을 살인률에서 세계 1의 나라로 발표하였다.

  인간을 정신,육체적으로 타락시키는 마약범죄 역시 미국의 골치거리로 되고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조사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마약람용자수는 전국적으로 2,260만명에 달하고있다.

  미국에서 헤로인소비량은 최근년간에 80%나 늘어났다.(로씨야 이따르-따쓰통신 2014년 2월)

  각종 범죄의 증대는 수감자증대를 낳기 마련이다.

  현재 미국은 수감자수에 있어서도 220만명으로 세계의 맨앞자리를 차지하고있다.(로씨야 이따르-따쓰통신 2014년 3월)

  불어나는 죄수들에 비해 감옥들이 현저히 모자라다나니 개인들이 저마끔 감금시설을 차려놓고 돈벌이하는 현실까지 펼쳐지고있다.(중국 《세계신문보》 2014년 4월 7~13일부)

  이에 대해 로씨야의 한 TV방송은 《미국에서 개인감옥의 리윤이 이렇게 많은것으로 하여 지금 부유층이 이에 대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힐것이다.》라고 조소하였다.

  미국의 교육실태는 더욱 한심하다.

  2011년 8월 펜실바니아주정부는 교육사업에 쓰기로 되여있던 10억US$의 자금을 떼내여 범죄자들을 가두는 감옥건설에 돌림으로써 사람들의 격분을 자아냈다.

  교육사업에 대한 태도가 이러하다나니 교육의 질은 나날이 떨어지고 그로 인하여 전국의 중학생들중 대다수가 지도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을 찾지 못하고있으며 고등학교 학생들중 40%가 대학에 입학하거나 일자리를 얻는데 필요한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채 졸업하고있다.

  미교육장관은 자기 나라에서 1,100만명의 성인들이 영어를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고있으며 3,000만명은 그 어떤 문건이나 은행행표에 겨우 수표나 할수 있는 정도라고 발표하였다.

  썩어빠진 사회현실은 무서운 분노의 폭발을 낳기 마련이다.

  2011년에 독점자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뉴욕시의 월가에서 일어난 반월가시위가 미국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최대규모의 반자본주의투쟁으로 전개된것은 극도로 첨예화된 사회계급적모순이 낳은 필연적산물이다.

  기형적인 물질생활과 빈궁화되여가는 정신문화생활로 하여 미국의 종말은 더욱 다그쳐지고있다.

  제반사실은 《아메리카제국》의 붕괴가 현실로 되여가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미국이라는 난파선이 바다속에 완전히 수장될 날은 멀지 않았다.

 

[출처:조선중앙통신사2014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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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휴심정 2014.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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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의 편지 표지사진.JPG 

책 표지

 

 

프란치스코와 에우제니오.JPG 

프란치스코 교황과 언론인 에우제니오 스칼팔리 

 

 

무신론자의 불온한 질문…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교황 프란치스코·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외 지음, 최수철·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신앙인과 무신론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36년생.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1924년생. ‘띠동갑’ 두 사람이 신문 지상을 통해 대화를 펼쳤다. 베르골리오는 누구인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난해 3월 로마의 대주교, 곧 교황이 된 사람. 그가 취한 이름 프란치스코는 역사상 어떤 교황도 택하지 않았던,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에게서 따온 것이다. ‘청빈’에 살고 ‘불의’에 눈감지 말 것을 온통 삶을 통해 요구했던 이의 이름이다.

 

스칼파리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1976년 이 신문을 창간해 96년까지 이끌며 우파 성향의 다른 일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지로 키워낸 언론인이다. 스칼파리는 지난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는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매력적인 발명품”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는 너스레도 곁들였다.

 

한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교황이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인간 존재와 공동선에 관한, 이른바 세속 식자층을 대변하는 무신론자 지식인과 교황의 흉금을 튼 대화. ‘세기의 대화’라 함직한 이 만남은 교황이 보낸 편지 한통에서 시작됐다. 이 책은 이 논전을 담았다.

 

“신앙은 다름을 존중하는 공존 속에서 성장하죠”

 

한 무신론자 언론인이 교황에게 물었다. ‘교황은 인류도 다른 존재처럼 언젠가 소멸할 것이라 했다. 우리가 사라지면 생각 또한 사라지고 아무도 신을 생각지 않게 된다. 그러면 신도 함께 죽는 것인가?’ 이에 교황이 답장을 보내왔고,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애초 제기한 질문은 지난해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회칙 ‘신앙의 빛’에 관한 것이었다. 기독교 신앙과 근대적 이성의 충돌을 짚으면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 교리의 여러 논점을 질문 형식으로 지적하고, 왜 이 회칙에서 신앙심과 이성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았는지를 교황에게 물은 것이다. 진리가 하나인가라는 질문에 가톨릭 교회가 비켜가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신은 정중하면서도 진솔했다.

진리는 하나인가?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신자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신도 사라지느냐는 질문에는 “하느님은 인간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대문자로 시작되는 궁극적인 실재다”라고 답하고,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른다”고 했다.

 

스칼파리는 1962년 소집됐던 가톨릭교회의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기한 과제를 거론했다. 이 2차 공의회는 진리와 자유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 교회와 근대성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천명했다. 쉽게 말하면, 교회의 사명을 선교(개종)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과 공동선 실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가톨릭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2차 공의회 정신은 이후 좌초했다.

 

스칼파리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발표 무렵에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을 치른 것을 짚고 넘어간다. 요한 23세는 2차 공의회의 초석을 놓은 반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퇴행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둘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이에 교황은 편지 서두에서부터 그 회칙은 “귀하의 표현처럼 자신을 ‘오래전부터 나사렛 예수의 행적에 관심을 두고 경탄해온 무신론자’로 규정하는 분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답한다.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것이 아니며 외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류의 공동선 추구와 이를 위한 대화 의지의 강한 표명인 셈이다.

 

교황이 언론인이 쓴 칼럼에 답한 건 전례없는 파격이었는데, 편지가 끝이 아니었다. 얼마 뒤 스칼파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이렇게 ‘편지 논전’은 교황의 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 작은 방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최수철 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한 언론인에게 답한 교황의 편지로 말미암아 벌어진 지상 논전과 이후 직접 만나 행한 대담, 그리고 그에 뒤이은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주제 삼은 릴레이 글을 책으로 엮었다. 여기엔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파문당한 신학자 매슈 폭스를 비롯한 저명 학자와 문필가 13명이 참여했다. 신학자 보프는 2차 공의회 정신을 잇는 3차 공의회 개최가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교황은 스칼파리와의 대담에서 2차 공의회 정신을 되살려 적극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2차 공의회는 “현대적인 정신으로 미래를 보면서 (교회가) 현대의 문화에 문을 열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우리는 그분들이 제시한 방향으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했”지만 “이제 저는 다시 그 일을 해내고 싶은 겸손함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강인함과 끈기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가닿는 공통지점은 인류를 위한 공동선의 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자기에 대한 사랑(나르시시즘)과 타인에 대한 사랑(아가페)이라는 사랑의 두 측면이 어느 쪽이 앞서지 않고 적어도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교회의 현실태와 교회 밖 현실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기왕에 많은 언론에 보도됐듯이 이 책 안에도 곳곳에 박혀 있다. 스칼파리가 “바티칸의 벽들 사이에서, 교회의 제도조직 속에서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무척 강한 것 같다”고 하자 교황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줄고 에고이즘(이기주의)이 늘어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의 경제 현실을 두고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저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는 것이 강자를 더 강하게 하고 약한 자를 더 약하게 할 뿐이어서 결과적으로 소외를 더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지나치게 벌어진 격차를 바로잡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라면 정부의 직접 개입도 허용해야 한다.”

 

스칼파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꿈꾸는 교회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의 소명은 혁신적인 두 메시지 위에 기초한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청빈한 교회와 (마르티니 추기경이 추구했던) 수평적 교회다. 여기에 더해, 세 번째는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하느님이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청빈한 교회를 내세우는 교황의 행위가 이 세상에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또하나의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국춘심 옮김, 솔 펴냄)도 나왔다. 예수회 신부인 안토니오 스파다로가 지난해 8월 역시 교황의 거처 ‘산타 마르타’에서 세 차례 만나 대화한 책이다. 교황은 교황 관저를 거절하고 ‘산타 마르타’의 작은 방을 택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황궁 안에 자리한 교황 관저는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에요. 커다랗고 널찍하지만 입구가 정말이지 좁아요. 사람들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 아니에요.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해요.”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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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습니다, 진짜 사퇴할 사람이 누군지??

등록 : 2014.07.14 15:18수정 : 2014.07.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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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학술원 개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7시15분 당신의 첫마디 “구명조끼 입었는데 발견 힘듭니까”
사고 후 8시간이나 지나도록 당신은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이번엔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광화문에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를 무고하게 잃은 부모들의 목숨을 건 호소이니, 도끼를 지고 엎드려 상소하던 조선조의 ‘지부상소’나 다름없습니다. 국회의 국정조사가 새누리당의 방해로 진상에 접근하기는커녕 눈꼴사나운 파행만 일삼고, 이번엔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진상 규명보다는 진실을 미궁에 빠트리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참다 못해 단식을 택한 것입니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심중의 말도 꺼냈습니다. “국민이 여당에 대해 기대조차 안 한다는 것! 이 얼마나 불행한 나라입니까.” 유가족들은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까 그동안 어느 당에도 기울거나 어느 당도 멀리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만 삭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새누리당을 지목했습니다. 오로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유가족에게까지 온갖 설움과 모욕을 줬던 이들에 대해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 겁니다. 유가족의 말대로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불행하고 서글픕니다.

 

그러면 유가족의 가슴에 그렇게 한을 쌓아올린 게 새누리당만일까요? 모든 게 내 책임이라던 당신의 책임은 지난 6.4 지방선거로 사라진 것일까요? 아마도 당신은 청와대 경내, 비서실장도 모르는 어디선가 이 상황을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눈총은 새누리당으로 쏠리고, 덩달아 새정치민주연합도 외면당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이달 말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세월호 악몽은 영원히 말소될 것 아닌가.

 

그래서 일거수 일투족은 ‘선거 모드’로 바뀌었나봅니다. 후보 등록이 끝나자마자, 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경기도 김포의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된장 두부 양파 콩나물 따위를 장바구니에 넣고, 지역 쌀로 만든 떡이나 인삼음료도 마시며, 선거 때마다 당신이 빼놓지 않고 하던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누가 그것을 민생 행보 혹은 창조경제 고무 차원으로 보겠습니까.

 

사실 그런 로컬푸드 직매장은 이미 전북 완주 등에서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김포가 처음인 양 추어 세웠으니, 여전히 국민이건 농민이건 언제든 속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참사가 일어나도,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 열심히 여당을 도와주는 야당 지도부가 있는데 얼마나 쉬운 일인가, 다행히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가 있으니 세월호 탈출은 시간 문제!’ 게다가 새누리당 전당대회에까지 참석해,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골백번 치러진다고 한들 세월호 참사에서 당신의 책임이 사라질까요? 참사 당시 ‘당신의 진실’이 바닷속에 수장될까요? 새누리당이 이번 국정조사에서, 유일하게 한 일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지방 선거에서의 기상천외한 대국민 약속을 실천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회의장에서 쫓아내고, 출입을 금지시키고….

 

그러나 설사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부단한 도움으로 선거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때 아이들이 죽어갈 때 세월호 선장이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져 나타나지 않던 당신의 책임은 잊혀질 수 없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그런 역사적 죄과에서 벗어나는 길임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그럼에도 당신과 새누리당은 유병언씨처럼 도망과 기망을 능사로 알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2014년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왼쪽)과 2014년 4월16일 ‘침몰하는 세월호’(오른쪽) 모습 /이정용 김봉규 기자
국정조사에서 여당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일부 새로 드러난 사실도 있었습니다. 특히 4월16일 대통령과 청와대의 행적이 조금은 드러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당신은, 참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질 않았고,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은 해경 이상으로 태만했고 우왕좌왕 했습니다. 그 상황을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다시는 이런 청와대, 이런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7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 보고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4월16일 오전 10시부터 6~7시간 동안 당신의 소재에 대해 ‘모른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동선은 안보상의 이유로 사전에 비밀에 붙여집니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특별한’ 사생활이 아닌 이상 원하는 이들에게 공개됩니다. 퇴직한 대통령도 사저에서 국민이 나오라고 하면 베란다에 서야 했는데, 현직 대통령의 지난 공적 일정에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35년 전 그때 그 대통령처럼 안가에서 유흥을 즐겼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것은 08:48분이었고, 단원고 최덕하 군이 전남소방본부에 처음으로 신고한 것은 08:52분 이었습니다. 이후 08: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신고가 다시 접수됐고, 해군은 09:03분 사고를 인지했으며, 1분 뒤 안전행정부에 보고가 됐습니다. 안행부는 09:24 공무원들에게 재난 발생 문자를 발송했고, 해양수산부는 09:45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렸습니다.

 

그날 청와대는 09:19 뉴스채널 YTN을 통해 사고 발생 소식을 알았고, 1분 뒤 해경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은 당시 08:30부터 김규현 차장 주재로 실무조정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김장수 실장이 대통령에게 첫 서면보고를 한 것은 10:00였고, 대통령은 10:15 전화를 걸어와 김기춘 비서실장이 구두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땐 이미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난 뒤였습니다. 뒤늦게 유선상으로 나타난 당신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엉뚱한 지시를 합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가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객실과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라.’ 10:30엔 해경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선체가 이미 물속에 가라앉았는데 특공대라니…, 대통령은 당시까지도 참사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 실종과 무지의 시간은 계속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인지하고 청와대가 조치한 일이란, 구조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현장 생중계 모니터를 설치하라고, 멋있는 구조 장면을 보내라고 해경에 닦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니터를 연결한 것은 11:10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대통령이건 비서실장이건 모니터를 통해 현장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긴 멋진 구조 장면, 국민에게 생색낼 장면이 없으니 볼 맛도 안 났겠지만요.

 

청와대가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정보에 매달린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11시쯤부터는 그것이 오보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팔짱끼고 있던 청와대가 구조 인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은 점심 밥 배불리 먹고 와서입니다. 13:00 해경에 생존자 숫자를 물어보고, 01:04 해경은 그때도 생존자 368명이라고 여전히 오보를 날립니다. 3분 뒤 국가안보실은 서면으로 이 내용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설사 368명이 구조됐다고 해도 그럴 순 없는 일입니다. 그때는 이미 탑승객이 470~480명 정도라는 것이 확인된 뒤였습니다. 생존자가 368명이라면 여전히 100여명은 갇혀 있거나 실종 상태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참사였지만 대통령도 청와대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통령은 그 보고를 받았는지 무시했는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3:30에야 청와대는 생존자 숫자가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 해경에 구조 인원을 확인합니다. 그러자 해경은 368명이란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고 발을 뺍니다. 그리고 14:24 생존자가 166명이라고 정정해 보고 합니다. 그 보고를 듣고 비서실이 걱정한 것은, 대통령의 진노뿐이었습니다. 300여 실종자가 아니었습니다. 비서실은 20여분 동안 우왕좌왕 했습니다. 14:50에야 김장수 안보실장이 구조인원을 166명으로 정정해 유선으로 보고합니다.

 

더 심각한 일은 그런 보고를 올렸는데도,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했길래 대통령은 대참사 앞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17:15에야 중대본에 모습을 나타낸 대통령의 첫 마디는 이러했습니다. “구명조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 지금은?”(박 대통령)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안행부2차관) “아 갇혀 있어서요?” 이 천연덕스런 말처럼 국민의 복장을 뒤집는 건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사고 후 8시간이 지나서도 아무런 상황 파악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이들이 배 안에 갇혀 버둥대다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때까지 유선 및 서면 보고가 스무번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고 발생 후 8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비서실이나 안보실이 보고를 제대로 한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고를 제대로 읽거나 듣지도 않은 셈입니다. 대통령이 보고를 읽거나 들었다면 비서실이나 안보실이 엉터리 보고를 한 셈입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질 사람은 국무총리나 비서실장, 안행부 장관, 해수부 장관 등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책임지고 사퇴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날 모두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당신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당신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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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여관방에서 혁이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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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동환(혁이)님. 2009년 3월 당시 찍은 사진.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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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활동명, 본명 오동환)가 죽었다. 혁이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는 한낱(?) 건설일용노동자였다. 죽기 전까지는 연로한 어머니를 따라 고물을 주우러 다니거나 거리 노점을 하며 살았다. 그는 스무살 초반에 일찍 결혼했지만 곧 이혼하고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니 두 아들은 노모와 동생들이 건사해 줬다.

지난해 11월이었던가 보다.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는 "열심히 노점을 하며 살고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 가끔 하혈을 한다고 했다.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그는 "감 장사를 해보고 싶은데 감이 많이 나는 충북 영동에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나는 아는 이 한둘을 소개시켜 줬다. 나중에 들어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단다. 전북 남원에 '인드라망'이라는 사회연대 무료쉼터가 있으니 가서 요양을 좀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우선은 벌이를 해야 만성혈전증 약이라도 사 먹는다"라고 답했다.

그는 1964년생, 쉰 하나. 어느 신문에서는 65세를 노인이라 불러야 하는지 아닌지를 묻는 설문을 조사했단다. 그는 아직 창창한 나이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장례식장에 가서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왔던 '여름비'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이야기였다. 어제(7월 12일) 오후 7시께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그는 허름한 여관방을 빌려 생활하고 있었는데 여관비가 밀려 쫓겨날 형편이라고, 돈을 조금만 부쳐 달라는 전화였다. 전화도 없어 여관주인 휴대전화를 빌려 건 전화였다.

그가 "오후 9시 반까지는 하루 치라도 내야 한다"라고 해서 여름비는 우선 10만 원을 부쳐줬다고 했다. 경찰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날 오후 10시 20분께. 그는 인사불성으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여름비는 "빨리 병원으로 옮겨 달라"라고 했고, 홀어머니께도 연락을 해뒀다. 하지만, 그날 오후 11시께 그가 운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가 여름비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여름비가 지혜롭게 어머님 전화번호를 그날 따놓지 않았다면, 어떤 행려병자처럼 우리 곁을 떠나거나 간신히 연락을 받은 가족들만의 쓸쓸한 장례가 되고 말았을 터였다.

'하늘까치' '한서정' '일권' '요요천사' '주먹이운다' '호위무사' '홍반장' 등등 이름보다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촛불시민들이 와 있었다. '학현이'는 온다는데 소식이 없고, '초심'은 늦게야 온다고 했단다. 늘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혁이의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될 때,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이였냐고 물을 때 그래도 조금은 상처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우리가 함께 지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혁이의 아이들이 다시 아이들을 낳았을 때, 조금은 부끄럽지 않게 혁이를 그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그를 마석모란공원 납골당에라도 모시자고 했다.

궂은일 도맡았던 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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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0월 15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기륭전자 노조 농성장 강제철거 규탄 결의대회. 집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대우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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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쩍 마른 혁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였다. 화상이 남은 얼굴과 손, 병약한 몸 그러나 눈빛과 말만은 늘 기운과 신념에 차 있었다. 당시 혁이는 광우병 촛불항쟁에 열성적으로 함께한 이후였고, 여타 촛불시민들과 달리 비정규직 투쟁에 촛불시민들이 함께 해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기륭 농성장을 찾았다.

농성장에서 만난 시민·학생·노동자들이 모여 '함께맞는비'라는 이름의 기륭네티즌 연대를 꾸리고, 또 하나의 기륭대책위가 돼 일을 할 때 혁이도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당시 네티즌 연대로 함께했던 이들 중 베자스와 이재명·구영탄은 지금도 기륭조합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동안 우리는 매일을 농성장에서 함께 살았다. 기륭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륭농성장을 거점으로 해서 뉴코아이랜드 투쟁 현장으로,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 현장으로, KTX여승무원 투쟁으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현장으로 우리는 한 패거리가 돼 몰려다니곤 했었다.

건설일용노동자 출신인 혁이는 늘 궂은일 당번이었지만 단 한 번도 생기를 잃어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당시 혁이와 함께 네티즌 연대를 꾸려가던 씨니 부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리는, 부엉이는, 곰탱이는, 라이카는 어디에 있는지, 중견소설가 티를 단 한번도 내지 않던 고양이(송경아) 동지는 잘 있는지.

생계 때문에 다시 공공노조 어디로 갔다는 신현원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과정에서 만나 이젠 작은 아이를 낳고 사는 원수와 가리봉 감독은 잘 지내는지. 이젠 진보논객이 돼 가끔 지면을 통해 보는 한윤형도 '함께 맞는 비'로 만났었던 기억이다. 아참, 그 뒤로 지금껏 모든 현장에 연대하는 루시아가 있긴 하다. 그들 사이에서조차 늘 헌신적이던 혁이는 연대의 모범이었다.

두 번의 고공농성과 두 번의 국회의사당 점거농성 그리고 94일에 이르던 집단무기한 단식에 이어 마지막 망루 투쟁을 할 때. 한 단 한 단 아시바(발판)를 쌓아 올라가던 혁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경찰과 용역들과 구사대가 3각 편대가 돼 에워싸오던 숨막히던 현장이었다. 어떤 이들은 공장 안으로 끌려들어가 이가 깨지고, 얼굴이 공처럼 붓도록 얻어터지던 날이었다.

경찰에게 항의를 하다 눈을 얻어맞은 안티MB 까페지기 '윤활유'가 한쪽 눈을 실명당하기도 했던 날이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당시 처음 만났던 홍반장이 "만날 우리만 얻어터질 거냐"며 "우리도 물리력을 준비하자"고 안타깝게 얘기하던 날이기도 했다. 나도 결국 표적 연행됐던 날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었기에 당시 누구도 경찰 카메라들 앞에서 버젓이 망루를 쌓는 일을 선뜻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 혁이가 보였고, 혁에게 그 일을 부탁했다. "건설일을 해본 당신이 적임자"라고,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던 다급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후일 그 일로 경찰조사를 받고 왔다고 자랑스러워하던 혁이의 얼굴이 선하다. 그는 늘 바쁘게, 기민하게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그때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 윗니·아랫니 두 개인가가 빠져 있었는데, 매번 '치이라도 함께해 줘야 할 텐데' 서로 미안해하고 걱정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일이지만 나 역시 하루하루 차비 걱정을 하며 살 때였다.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해야 한다던 그

우리는 용산참사 현장에도 함께 갔었다. 혁이는 기륭 네티즌연대와 함께한 이후 자연스레 2008년 광우병 촛불항쟁 당시 나왔던 수많은 촛불시민들과 함께했다. 그들 모두는 이름이 없었지만 어떤 진보적인 단체나 조직의 성원들보다 열성적이었다. 용산 철거민학살 투쟁의 큰 축의 하나도 이들, 이름 없는 촛불시민들이었다. 공안탄압 분위기에 밀려 용산참사 투쟁이 도심지에서 밀려 용산4가 현장으로 퇴각해 들어올 때 '현장 스쾃'(점유운동) 운동에 결합할 단위들을 기존 사회운동 단위에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가운데 현장을 점거하고 지켰던 것은 용산범국민대책위 상황실과 파견미술팀, '조약골'과 '채은' '도영' 등 독립미디어센터 활동을 했던 팀 그리고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사람들뿐이었다. 그 외 유일한 단위가 당시 2008년 광우병촛불항쟁 이후 여러 인터넷 카페모임 등으로 남아있던 이들이 모여 만든 '촛불시민연석회의' 사람들이었다.

촛불 시민운동은 수직적인 체계의 대표자를 두지 않는다는 뜻에 따라 촛불연석회의는 책임일꾼이라는 이름으로 실무책임자들을 뒀다. 당시 혁이와 여름비도 실무책임자 중 핵심들이었던 기억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 매주말 도심 가두시위를 쫓아다니곤 했다. 어느 날이던가. 민주당사를 찾아가는 당산동 어느 도로에서 경찰의 습격을 받아 다시 연행될 때 경찰차 문 앞에서 끝까지 나를 구해 주려고 하던 이들 중 한 명도 혁이였다.

용산4가에 둥지를 틀고 살던 그들은 용산투쟁을 축으로 끊임없이 사회연대운동에 몸을 바쳤다. 그해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대한문 분향소를 경찰들과 싸우면서 세우고 끝까지 지켰던 이들도 이들 이름 없는 '촛불시민연석회의' 사람들이었다. 나만 해도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생전의 평가가 달라 분향조차도 맘을 내기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순정하기만 했다.

가끔 시민분향소에 가서 혁이를 만나면 그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밀어붙였던 비정규직 확산법안 통과나 이라크 파병,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확장, 한미FTA 등 반노동자·민중적 정책들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를 죽음으로 몰아부친 이명박 정권은 용서할 수 없다고 겸연쩍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그곳에서 전체 자원봉사단 단장 역할을 맡아 단 한시도 분향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어떤 권력과 자본의 떡고물조차도 얻어본 적 없는, 이름 없는 건설일용노동자 출신일 뿐이었는데…. 왜 그런 그가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날 "싸워야 한다"라며 방송차를 끌고 나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어야 했을까.

그는 쌍용자동차 77일 파업 현장에도 함께했었다. 잠깐 연대하고 오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도 천막을 세우고 현장을 지키다 무자비한 공권력 폭력에 의해 농성장이 싹쓸이될 때 함께 끌려 나와야 했다.

몇 년이 지나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일구는 주축이 됐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일도 혁이와 함께했었던 기억이다. 그는 건설일용노조를 통해 노동운동을 배웠던 이였기에 여러 촛불시민들과는 다르게 무엇보다 비정규직 투쟁에는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간절히 바랐다... 그의 삶이 조금은 넉넉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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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동환(혁이)님의 사진. 2009년 12월 촛불송년회 당시 찍은 사진.
ⓒ 블로그 '파랑새울다' 토란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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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그 스스로가 이름 없는 노동자고 시민이었기에, 이름 없는 촛불시민들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고 그들의 즉자적인 분노나 저항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할 줄 알았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씨니와 함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전국 자전거 투어'를 하고 돌아왔던 그의 얼굴이 선하다. 자전거 투어의 마지막 장소였던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서 결국 그도 경찰들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혁이는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도 함께했다. 1차 희망버스 당시 재능교육 농성장 앞에 모였을 때 진행자 표식이었던 '깔깔깔' 모자를 쓰고 있던 그가 기억난다. 2차 희망버스 이후 나는 수배 생활 탓에 나머지 버스는 타지 못했는데, 여름비를 만나 들어보니 혁이는 다섯 번의 희망버스를 모두 탔다고 한다. 그때마다 촛불시민버스를 만들어 함께했었다고 한다.

2009년 말, 혁이는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혈전증 등에 대해 '위독 판정'을 받고 병원에 실려 들어갔다 나온 뒤 끊이지 않는 투약과 투병 생활을 해나가던 중이었다. 생각해 보니 당시 여름비가 병원비 모금 관련 글을 쓰라고 해서 함께했던 기억도 난다. 혁이는 당시 흩어져 있던 촛불시민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촛불 1주년 송년회' 준비책임자였는데 치료 시기를 넘겨버려 폐기능까지 악화돼 여러 번의 긴급 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가 여러 촛불투쟁의 책임을 지고 수배 생활을 하던 때이기도 하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혁이와 간간이 집회 현장에서 마주치거나, 전화 통화만을 했던 기억이다. 여름비에게는 몇 번이나 너무 힘들다며 급전 요청도 했다는데, 내겐 주로 누구를 소개해 달라는 전화를 했다. 혁이는 지역에 내려와서도 이런저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활동 근황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여름비만큼 내가 편하지는 않았던가 보다.

하지만 그를 잊어본 적은 없다. 나 역시 아무것도 없이 천대만 받던 깡 건설일용노동자로 출발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그런 나의 계급을, 나의 상처를, 나의 분노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왠지 모를 연대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가 몇 년째 해 넣지 못하고 있던 빈 치아 틈새만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해지기도 했다. 하혈을 자주 해 아이들용 기저귀를 하곤 노점일을 한다는 혁이의 아픔이 가슴을 후벼 팠다. 싼 감을 떼어다 팔아보고 싶다는 그의 설움이 내 눈에 덮이곤 했었다. 굳이 활동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슨 도적질을 해서라도 그의 삶이 조금은 평온해지고 넉넉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는 한낱(?) 건설일용노동자 출신에, 두 아들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못난 아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해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 투쟁에 함께했다. 지역운동 외에도 몇 년을 거리에서, 여기저기 농성장에서 살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소리를 해보지 않았던 이였다.

어떤 그럴싸한 단체나 조직의 상층에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온갖 투쟁에 앞장서고 연대하며 헌신적으로 살았다면, 이미 무슨 배지라도 하나 달 수 있을 삼삼한 경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여기저기 강연이나 참석 요청에 바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명예'라는 것도 생겼을 것이다. 그가 이를 해 넣을 충분한 돈이 있었다면, 하혈을 막을 치료비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혁이'가 남기고 간 최고의 선물

하지만 그는 그 무엇도 챙기지 않았다. 이 세상 전체가 그에게는 마지막 생을 내려놨던 허름한 여관방처럼 깃들 곳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겪어봤건대, 그는 마지막까지도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답고 정겨운 곳이 되기를, 모두가 조금은 더 행복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노동운동의 길을, 열혈 촛불시민의 길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최고의 선물은 그런 믿음이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지난 12일 긴급히 연락을 받고 모인 이들끼리 마음을 모아, 마석모란공원 언덕배기 저 위에 있는 납골당에라도 그의 작은 집을 마련해 주자고 했다. 화장해서 저 산 어디에 뿌리고 말겠다던 어머님도, 원망뿐일 두 아들도 마음을 열어주셨다.

꼭 혁이만을 기억하자는 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처럼 이름 없이 오늘도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모두를 기억하자는 뜻일 것이라고 서로 생각했다. 광우병 촛불항쟁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이름 없는 촛불시민들의 운동을 기억하자는 뜻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진정한 연대는 사회적 주목이 이뤄지는 무슨 전선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닐 것이라는, 함께했던 이들 중 누군가가 가장 힘들어할 때 그때 벗이 돼주는 최소한의 인간미와 동지애들이 살아있을 때, 조금씩 우리 공동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혁이가 죽었다. 동이 터오고 있는데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언제라도 그가 다시 전화를 해올 것 같다. 이번엔 배를 조금 받아다 팔아보고 싶은데, 나주 어디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우린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모두는 조금은 가난하지만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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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동환님 민주동지장 웹자보
ⓒ 오동환 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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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남이 서로 가까워질수 있는 길

작성일 : 14-07-15 03:02
[북 교수 수필]북과남이 서로 가까워질수 있는 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5

 

김형직사범대학의 최충일교수가 북녘 인터네트 언론 '우리민족끼리'에 기고한 글이다. 그는 북과남, 남과 북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지난 6.15시대를 돌아보며 그 추억에서 북과남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찿는다. 그는 특히 오는 제17차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그러한 6.15통일열기를 다시 뿜어댈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의 글 전문을 여기에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북과 남이 서로 가까워질수 있는 길

*글: 김형직사범대학 교수 최충일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친척보다 이웃이 더 가깝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지 이웃이 돼서 가까운게 아니라 자주 접촉하고 오고가는 과정에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정이 두터워지는것을 의미한다.

북과 남도 마찬가지이다. 땅은 비록 한지맥으로 잇닿아있고 혈육이라고 하지만 접촉과 래왕이 없으면 자연히 멀어지기 마련이다.

북과 남은 한 피줄을 나눈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남이 되여 오해와 불신만을 키워왔다.

그러던 북과 남이 마음이 통하고 정이 통하는 하나의 민족임을 페부로 절감한 때가 있었으니 바로 6. 15통일시대였다.

지금도 6. 15의 혜택으로 땅길, 하늘길, 배길이 열리여 북과 남이 서로 오가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감격적인 모습들이 눈앞에 선하다.

만나면 반가움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헤여질 때는 아쉬움에 석별의 정을 누룰길 없어 눈시울이 붉도록 눈물을 펑펑 쏟던 북과 남이였다.

그때 북과 남이 느낀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에서 살아왔지만 북과 남은 달리될수 없는 한피줄을 나눈 하나의 민족이며 만나면 순간에 한식솔이 되는 하나의 겨레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만나면 풀지 못할 오해가 없었고 해결못할 문제가 없었으며 만날수록 더욱 정깊어지고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고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때에는 누가 오늘과 같은 북남관계의 악화를 상상이나 했는가.

꿈같이 지나간 6. 15통일시대가 북과 남, 온 겨레에게 웨치고있다.

만나면 하나가 되고 통일이 된다!

우리 공화국이 정부 성명을 통해 북남사이의 접촉과 래왕, 협력과 대화의 길을 활짝 열어놓을것을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남조선의 인천에서 진행되는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우리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한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요구와 민족의 념원으로부터 출발한것이다.

북과 남은 이번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하여 지난시기 대구와 부산, 인천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열기를 한껏 부풀려올려야 한다. 하여 그 통일열기가 6. 15통일시대로 다시 이어져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궤도를 타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길로 줄달음쳐나가야 할것이다.

백두산의 장쾌한 해돋이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여 북과 남의 작가들 통일열기를 한껏 부풀리는 우리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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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위험한 SAREX와 수륙기동단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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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7/15 00:54
  • 수정일
    2014/07/15 00: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7/14 [13:1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2013년 5월 15일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벌어진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부산항에 들어갔다. 미국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부르는 대규모 해상작전연습은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전술핵탄을 전쟁억제수단으로 하는 실전연습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대전에서 전술핵탄은 과시용이 아니라 실전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술핵탄을 탑재한 미국 항공모함이 한반도 인근해역에 나타날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위험에 몰리게 되고 남과 북은 공히 미국의 핵위협를 받게 되는 것이다.     © 자주민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북측 국방위원회가 남측 정부에게 ‘특별제안’을 보낸 날로부터 9일 만에, 그리고 북측 정부가 “남조선당국이 호응해 나서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불과 2일 만에 남측 정부의 ‘본심’이 드러났다. 지난 7월 9일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한미일 수색구조훈련(Search and Rescue Exercise, SAREX)을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동원되는 해군무력은 방대하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이번에 미국 해군은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Nimitz-class super carrier)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 순양함 두 척, 구축함 한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하고, 한국 해군은 구축함 두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하고, 일본 해상자위대는 구축함 한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한다. 

도대체 무슨 수색구조훈련이기에 항공모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네 척, 항공기 세 대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을 동원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통상적인 수색구조훈련에 해군무력이 어느 정도 동원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인 수색구조훈련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선례를 손꼽을 수 있다. 

첫째, 2008년 8월 5일 미국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실시된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미국 해군 순양함 한 척, 한국 해군 구축함 한 척,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한 척, 미국 해안경비대 경비정 한 척이 동원되었다. 이 훈련에 동원된 순양함 한 척과 구축함 두 척은 가상조난선박 역할을 맡은 경비정에게 의료와 기관수리를 지원해주는 구조활동을 벌였다. 

둘째, 2013년 9월 9일 미국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미국 해군과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합동으로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였다. 그 훈련에 미국 해군은 순양함 한 척, 부속함선 한 척, 해상작전헬기 두 대를 동원하였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구축함 한 척, 호위함 한 척, 해상작전헬기 한 대를 동원하였다. 

셋째, 2014년 4월 12일 베트남 다낭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과 베트남 해군이 합동으로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미국 해군은 구축함 한 척, 구난함(salvage tug) 한 척을 동원하였고, 베트남 해군은 소해정(minesweeper) 한 척을 동원하였다. 

위의 세 가지 선례가 말해주는 것처럼, 원래 수색구조훈련에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두 세 척 정도 동원되고, 구난함이나 가상조난선 역할을 맡은 선박이 동원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색구조훈련에 초대형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는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네 척, 항공기 세 대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된다. 정작 수색구조훈련에 동원되어야 할 구난함도 없고, 가상조난선 역할을 맡은 선박도 없다. 이것은 이번에 실시되는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해상작전연습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호는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 북쪽 바다와 목포 남서쪽 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합동으로 해상작전연습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한미연합 해상작전연습은 해상기동, 항공모함 호위, 항공기 요격 등으로 진행되는데, 조지 워싱턴호를 주축으로 미국 해군 순양함 두 척과 구축함 한 척, 한국 해군 구축함 두 척이 동원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지 워싱턴호 같은 초대형 항공모함은 아무 때나 동원되는 게 아니라, 항모타격단 출동에 동원된다. 명백하게도, 미국 해군의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은 적국을 불시에 침공하기 위해 벌이는,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무력침공연습이다. 미국 해군이 한반도 인근해역에서 자주 감행하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군은 핵타격전에 사용할 전술핵탄을 적진과 가까운 지상기지에 고정배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국이 정밀타격미사일로 지상기지를 불시에 급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투종심이 매우 짧고, 주한미국군 군사시설의 위치가 북에게 모조리 노출된 한반도에서, 정밀타격미사일을 집중배치한 조선인민군의 기습타격위험에 맞서야 하는 미국군이 북에게 위치가 노출된 기지에 전술핵탄을 고정배치하는 것은 자멸을 부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작전할 때는 북의 정밀타격미사일 조준을 피하기 위해 전술핵탄을 이동수단에 탑재할 수밖에 없는데,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한반도 인근해역에서 돌아다니는 이동수단이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핵타격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이 북을 향해 24시간 겨누고 있는 전술핵탄은 전폭기에서 쏘는 공중발사 전술핵탄과 잠수함에서 쏘는 수중발사 전술핵탄으로 구분되는데, 만일 전쟁징후가 나타나면 항모타격단은 그런 전술핵탄들을 발사하며 선제핵타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2009년 12월 27일 <니혼게이자이신붕> 보도에 따르면, 1973년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삼고 작전하던 미국 해군 항공모함 미드웨이호(USS Midway)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일본 영해에 들어가도 미국은 전술핵탄 반입문제를 사전에 일본과 협의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었다고 한다.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는 1976년 8월 21일 ‘판문점사건’에 대처한다면서 원산 앞바다까지 바짝 접근하여 대북선제핵타격을 노렸으며, 광주시민군이 전두환 군사독재만행에 항거하여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던 1980년 5월 하순에도 항공모함 코럴 씨호(USS Coral Sea)와 교대로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대기하면서 대북선제핵타격을 노렸다.

둘째, 지난 시기와 달리 요즈음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북에 가까운 동해나 서해까지 감히 북상하지 못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출동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조준하는 정밀타격미사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긴급출동하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격침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데, 북에서 직선거리로 600km 정도 떨어진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이동 중인 항모타격단을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600km 밖에서 정밀타격미사일로 격침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 600km 밖에서 이동하는 항모타격단을 격침하려면 잠수함련합부대를 제주도 남쪽 바다로 출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련합부대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2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15)’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전시에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로 긴급출동하게 될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자기들을 기습공격할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에 대응하여 대잠수함 항모호위에 무력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대잠수함 항모호위에 동원되는 것이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 해군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실시하는 장면이다.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항공모함 주위를 둘러싸고 호위하는 가운데 항공모함이 전속력으로 항진하고 있다. 2006년 5월 17일 일본 언론에 공개된 일본 자위대 극비문서에 따르면, 미국 해군 7함대 항모타격단이 자주 출동하는 제주도 남쪽 바다는 대잠수함전과 항모타격단 호위작전을 벌이는 해상작전구역으로 표기되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미국 해군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항모타격단 호위대로 동원될 것이다.     © 자주민보


<사진 2>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일본의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항모타격단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긴급출동할 것이고,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항모호위대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전시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한 미국은 오늘과 같은 평시에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동원하여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자주 실시하는 것이다. 
     

8년 전 극비문서에서 드러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의 실상   

2006년 5월 17일 <아사히신붕>에 공개된 충격적인 군사정보가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에 관해 말해주었다. 당시 공개된 군사정보는 일본 자위대가 작성한 몇 건의 대북전쟁계획 극비문서들인데, 자위대 관계자가 2006년 1월 21일 사고로 인터넷에 유출시키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극비문서에 담긴 일본 자위대의 대북전쟁계획에서 주목되는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극비문서에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모군(母軍)’으로 표기되었고, 한반도 전역은 ‘모군작전지역’으로 표기되었고, 항모타격단이 출동하는 제주도 남쪽 바다는 대잠수함전과 항모타격단 호위작전을 벌이는 해상작전구역으로 표기되었다.

둘째, 한반도 유사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한반도에서 작전을 전개하고, 동해에서도 해상저지작전(MIO)을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력부대인 자위함대는 작전해역으로 향하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호위하고, 육상자위대 부대를 적진에 상륙시키기 위한 해상수송작전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셋째, 일본 해상자위대는 2003년 11월에 열흘 동안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한 대북전쟁연습을 ‘주변사태’와 ‘방위출동사태’로 구분하여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하였는데, 군함 80척, 항공기 170대, 병력 25,000명이 동원되었다.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모타격단이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실시해오는 긴급출동연습은, 원래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실시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 직후 항공모함을 동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2008년 8월부터 줄곧 실시해왔다. 그러다가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화성-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2012년 4월 15일 직후인 6월부터는 훈련장소를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제주도 남쪽 바다로 갑자기 옮기고,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대북공격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특히 북과 미국의 군사대결상황이 격심했던 2013년에 미국은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5월과 10월 두 차례나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강행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수색구조훈련이라고 부르는 해상작전연습은 수색이나 구조와는 거리가 멀고, 실제로는 한반도를 전술핵탄으로 위협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대북선제핵타격연습이라는 점을 명백히 말해준다. 
     

항공모함은 왜 닷새 전에 부산항에 들어갔을까?     

남측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실시되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은 이전에 실시된 같은 종류의 연습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첫째, 미국 해군 7함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일찌감치 지난 7월 11일에 부산항에 입항한 것이다. 조지 워싱턴호는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 북쪽 바다와 목포 남서쪽 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합동으로 해상작전연습을 실시하게 되는데, 왜 닷새 전에 일찌감치 부산항에 입항하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조지 워싱턴호의 최근 출동상황을 추적하면, 그 항공모함은 지난 6월 16일 중국 홍콩 빅토리아항에 입항하여 20일까지 머물렀다가 6월 26일에는 싱가포르에 있는 창기해군기지에 정박하여 나흘 동안 머물렀고, 지난 7월 1일 창기해군기지를 떠나 필리핀해로 북상하였다. 미국군 지휘부는 지난 7월 9일 필리핀해에서 대기 중이던 조지 워싱턴호에게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출동명령을 받은 조지 워싱턴호는 필리핀해를 출발하여 7월 11일 부산항에 입항한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미연합해상작전연습 개시일보다 닷새나 앞서 부산항에 들어간 조지 워싱턴호는 해상작전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군으로부터 군수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8일 필리핀해에서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북상하는 길에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에 들러 군수지원을 받을 시간여유가 없었던 조지 워싱턴호는 필리핀해에서 부산항으로 직행하여 한국군으로부터 긴급히 군수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처럼 급히 서둘렀던 것일까?

둘째, 오는 7월 21일과 22일에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는 미국 해군, 한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가 연합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된다. 특히 조지 워싱턴호 같은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한 척이 출동하면, 매일 약 44만 달러씩 경비를 써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처럼 방대한 무력규모와 막대한 소요경비에 비하면 이번 연습시간이 너무 짧다. 불과 24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수색구조훈련’을 하면서, 그들은 왜 그처럼 방대한 해군무력을 동원하고,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는 것일까? 

위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얼마 전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1일 미국 군부는 하와이에 있는,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PCSS)에서 진행된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서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관해 상대측과 협의하였다. 그 회의와 관련하여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2014년 7월 2일 보도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일은 수색 및 구조훈련(SAREX)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이번 림팩훈련이 끝난 직후에도 SAREX훈련을 한다. 이런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문제 등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을 읽어보면, 그는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 오는 8월 1일에 끝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 직후 통상적인 수준에서 실시될 것으로 예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군부는 그런 예견을 뒤엎고 시일을 훨씬 앞당겨 7월 21일에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군부가 필리핀해에 있던 조지 워싱턴호를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급파하고, 시일을 훨씬 앞당겨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바로 얼마 전에 실시된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훈련을 보고 놀란 미국 군부가 그에 긴급히 대응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6월 15일 함경북도 리원만에 있는 차호 잠수함기지에서 잠수함을 타고 동해로 나가 잠수함련합부대의 항모격침훈련을 지도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6월 2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에서 논한 바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도한 잠수함련합부대의 항모격침훈련을 보고 놀란 미국 군부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문제를 7월 1일에 있었던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서 남측과 일본에게 통보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2014년 7월 9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 이번에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실시될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 “군사전술적 훈련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훈련”이라고 주장하였고, 다른 한국군 관계자는 이번 연습을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시에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대북공격에 나설 항공모함이 한반도 남해에 출동하여 벌이는 2자 및 3자 연합해상훈련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가리켜 인도적 차원의 훈련이니 통상적인 훈련이니 하며 억지를 부리는 것은 대북전쟁연습의 실상을 감추고 국민을 속이는 기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 상륙하여 전쟁범죄 저지른 왜군의 후예들이 수륙기동단으로 출현한다     

지난 6월 11일 수전 라이스(Susan E. Rice)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신미국안보센터(CNSA)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한미일 3자 안보협력과 상호운용성의 심화를 추구한다고 지적하면서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과 함께 방위협력지침을 보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편, 지난 7월 8일 <마이니치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응하기 위한 ‘주변사태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미일군사협력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한미일 3자 군사동맹 강화추세에 맞춰 ‘미일방위협력지침’을 보강하고, 일본은 그에 발맞춰 ‘주변사태법’을 새로운 미일군사협력법으로 대체하려는 목적과 의도는 무엇일까?

기존 ‘미일방위협력지침’이나 기존 ‘주변사태법’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자위대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미국군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인데, 지금 미국과 일본은 그런 내용을 변경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자위대가 대북공격에 나선 미국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돌격대로 출전하여 대북공격의 최전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현대전에서 공격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무력단위는 적진해안에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수도로 진격하는 해병대다. 해병대 상륙전이야말로 최전선 공격전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과 일본이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주변사태법’을 각각 개정하여 일본 자위대의 대북공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보강하려는 것은 일본 자위대에 해병대를 신설하려는 것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지난 7월 11일 척 헤이글(Chuck Hagel) 미국 국방장관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한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극우내각의 집단자위권 행사 결정이 “대담하고 역사적이며 획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냈는데, 바로 그 결정의 내밀한 의도는 자위대에 해병대를 신설하여 대북공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보강하려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은,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한 일본 극우내각이 1930년대 일제전범들의 침략야욕을 집단자위권이라는 명분으로 부활시켜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자위대 창설 60주년을 맞은 지난 7월 1일 일본 각의(남측에서는 국무회의)에서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가 결정되었을 때, 일본 방위성은 충격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 사진은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은 일본 자위대 정찰부대가 해안으로 접근한 쾌속선박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해안에 상륙하는 연습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 나온 정찰부대는 일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보통과련대 소속이고, 사진에 나온 상륙전연습장소는 미국 하와이 카네오헤 해병대기지의 상륙전연습장이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7월 10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콴티코 해병대기지에 오노데라 일본 방위성 장관이 나타나 케네스 글룩(Kenneth J. Glueck) 미국 해병대 사령관을 만났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내각의 조치가 결정되던 날을 골라 일본 방위성이 육상자위대 상륙전연습을 언론에 공개하고 그로부터 열흘 뒤 방위성 장관이 미국 해병대기지에서 해병대 사령관을 만난 것은,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길러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려는 일본 극우내각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2014년 3월 4일 미국 일간지 <월 스트릿 저널> 보도에 따르면, 오노데라 일본 방위성 장관은 3,000명 병력을 3개 연대로 편성한 수륙기동단을 최대한 빨리 신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4년 3월 30일 <니혼게이자이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까지 나가사키현 사세보 해군기지에 수륙기동단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수륙기동단 신설을 향한 일본 자위대의 발걸음에 그처럼 가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2014년 5월 23일 일본 육해공 자위대 1,300명 병력은 사세보 해군기지에서 9,000t급 상륙수송함 시모키타(JDS Shimokita)를 타고 가고시마현 아마미군도(庵美諸島)의 무인도에 상륙하는 연습을 실시하였다. 
 
▲ <사진 3> 이 사진에 나타난 큰 함선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운용하는 휴가급 헬기 항공모함이고, 크기가 작은 함선은 이즈모급 헬기 항공모함이다. 지금 일본은 휴가급 헬기 항모 두 척, 이즈모급 헬기 항모 한 척을 운용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미 강력한 상륙전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하는 일본의 극우내각이 대외침략을 위한 상륙전능력을 갖추고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한반도에 상륙하여 전면전을 도발하려는 재침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 자주민보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확보하려는 일본 극우내각의 의도는 상륙전에 요구되는 각종 군사장비를 도입하는 데서도 드러났다. 2013년 12월 14일 <아사히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서 육상자위대의 전차 보유량을 삭감하는 대신 상륙전능력을 갖춘 수륙양용부대를 새로 편성하기 위해 수륙양용차량 52대를 도입하고, 주행속도가 빠른 기동전투차량 90대를 배치하고, 수직이착륙 수송기 17대와 무인정찰기 세 대를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2014년 2월 3일 중국 홍콩에서 발간되는 <문회보>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 따라 배수량이 40,000t이나 되는 초대형 강습상륙함 두 척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것이고, 2014년 7월 12일 <도쿄신붕>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8일 오노데라 일본 방위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해군기지를 찾아가 강습상륙함을 시찰하였다고 한다. 원래 강습상륙함(amphibious assault ship)에는 수륙양용차량, 수직이착륙 수송기, 대잠작전헬기, 해상공격기, 해병대 병력 등을 실을 수 있다. 예컨대,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에 전진배치된 미국 해군 7함대의 40,000t급 강습상륙함 반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는 해상작전헬기 42대, 해상공격기 5대, 대잠작전헬기 6대, 해병대 병력 1,800명을 싣는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 해상자위대는 19,000t급 헬기 항공모함 한 척과 27,000t급 헬기 항공모함 두 척을 이미 보유하였는데, 일본 육상자위대는 40,000t급 강습상륙함 두 척을 도입한 수륙기동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일본 육상자위대의 수륙기동단은 병력 3,000명을 3개 연대로 편성한 해병대로 조직될 것인데, 40,000t급 초대형 강습상륙함 두 척, 수륙양용차량 52대, 기동전투차량 90대, 수직이착륙 수송기 17대, 무인정찰기 세 대 등으로 무장한 강력한 상륙전부대로 출현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해병대가 일본 육상자위대의 수륙기동단 신설준비를 이미 2012년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은 2012년 8월 21일부터 37일 동안 일본 육상자위대와 함께 서태평양에 있는 섬들인 괌(Guam)과 티니안(Tinian)에서 강습상륙함, 공격헬기를 동원한 상륙전연습을 실시하면서 일본 육상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증강시켜주었다. 2014년 7월 1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10일 미국 콴티코 해병대기지에서 진행된 미국 해병대 사령관과 일본 방위성 장관의 회담에서 미국 해병대 사령관은 일본 육상자위대가 수륙기동단을 신설하는 것과 관련하여 기술과 장비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하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시켜온 미국 해병대 병력 8,600명과 부속인원 9,000명을 2016년까지 괌으로 이동배치하게 되는데, 일본 육상자위대가 그에 대처하여 수륙기동단을 신설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변동은 미국이 자국 해병대 병력을 괌으로 멀리 이동배치하는 대신에 일본의 수륙기동단 신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군사동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이 돌격대로 대북공격 상륙전에 앞장서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일본 자위대는 수륙기동단 신설을 위한 자기들의 상륙전연습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상륙하는 섬상륙연습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런 위장술책을 간파하지 못한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이 낙도탈환연습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에 중국인민해방군이 기습상륙해 점거할 것에 대비하여 일본 자위대가 낙도탈환연습을 실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수륙기동단이 그 작은 무인도에 상륙하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과 공군은 수륙기동단의 해상보급선을 끊어놓고 무인도에 고립시킬 것이며, 무인도를 겨냥한 집중적인 미사일공격으로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이런 사정만 예상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은 낙도탈환연습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은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는 것일까? 미국은 중국과 전면전으로 맞붙을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미국 해병대가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는 연습을 실시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도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기 위한 연습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자위대가 상륙전을 연습하는 목적이 낙도탈환도 아니고 중국 본토 해안상륙도 아니라면, 그들의 작전목적은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상륙전을 연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 해안에 상륙하는 침공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자위대가 대북전쟁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자위대 육상막료감부가 2005년에 작성한 극비문서 ‘방위경비계획’에서 드러났는데, 그 극비문서는 일본의 적국들인 북, 중국, 러시아 가운데서 북을 일본과 실제로 전쟁을 벌일 위험이 있는 유일한 나라로 지목한 바 있다. 
 
▲ <사진 4> 2012년 8월 21일부터 37일 동안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과 함께 서태평양에 있는 섬들인 괌(Guam)과 티니안(Tinian)과 그 주변바다에서 대규모 상륙전연습을 실시하였다. 이 사진은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이 일제의 침략전쟁마당에 나부끼던 '욱일승천기'를 다시 날리면서, 미국의 대외침략을 상징하는 '성조기'를 날리는 미국 해군 함선과 함께 연합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는 장면이다.     © 자주민보


멀지 않아 출현할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은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상륙전연습에서 단독으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연습을 하지 않고,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뒤를 따라 한반도에 돌격대로 상륙하는 미일연합상륙전을 연습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뒤를 따라 미국 제3해병원정단과 일본 자위대 수륙기동단이 한반도에서 연합상륙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지난 시기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이 이 민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재앙을 가져다주었음을 증언한다. 

1592년 4월 1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왜군 150,000명을 부산에 상륙시켜 임진왜란을 도발하였다. ‘징비록’에 따르면,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그 성에서 조선인 60,000여 명을 학살하였으며, 우물을 메우고 집에 불을 지르고 소와 말은 물론이고 닭과 개까지 남김없이 죽여 없앴다고 한다. 왜군이 어찌 진주성에서만 그처럼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겠는가. 그들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저지른 극악한 만행은 한반도 전역에 참혹한 재앙을 몰아 왔다.

1904년 2월 8일 중국 뤼순(旅順)에서 그 곳을 점령하고 있었던 러시아군이 왜군과 교전을 벌이자, 왜왕 히로히토(裕仁)는 이튿날 새벽 왜군을 제물포항에 상륙시키고 서울에 들어가게 하여 일제의 대러전쟁에 협력하라고 조정을 강요, 협박하면서 ‘한일의정서’라는 것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이 땅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진중일지(陣中日誌)>에 따르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기세가 등등해진 왜군 제12려단 병력 1,291명은 1907년 7월 26일 부산항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한반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제의 조선침략에 항거하는 항일의병을 잔인하게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항일의병에게 협력한 주민들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기들이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을 내세웠고, 러일전쟁 당시 히로히토는 자기들이 러시아를 칠 테니 일본에게 협력하라고 조선에게 강요하며 식민지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그런데 지금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히로히토의 후예들이 집단자위권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한반도 재침야욕을 드러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징후가 나타나면, 일본은 자기 군대가 대북공격 돌격대로 나설 테니 남측은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을 내세워 부산항에 대거 상륙할 것이고, 대북전쟁에 나선 일본 자위대에게 협력할 것을 남측 정부에게 강요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예상하면, 오늘 이 민족은 항일선열들의 자주정신을 되살려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고 대일공조를 하루 빨리 실현해야 할 급박한 전환점에 다가섰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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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 단식농성 돌입 "특별법 제정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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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제정 촉구하며 단식 돌입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단(사진 맨 앞줄)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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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에게 감사의 큰절 올리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한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단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써 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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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4일 낮 12시 43분]
유가족들 "이젠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이렇게 단식까지 왔다. 우리가 죄인도 아닌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단식에 돌입하며, 김병권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장은 착잡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14일 김 위원장을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 15명이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곡기를 끊었다. 이 가운데 5명은 광화문 앞에서, 10명은 국회 앞에서 단식을 진행한다.

이날 가족대책위는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단식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병권 위원장은 딸의 이름을 부르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우리 딸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다"라며 "제대로 된 나라,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섰다"라며 단식에 돌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2학년 1반 김수진양 아버지는 "늦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고 청와대도 가고 국회도 가고 단식까지 하게 됐다"라며 "굶어본 적도 없는데 해야 할 거 같다, 쓰러져 실려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할 거 같다"라고 말했다. 2학년 7반 이준호군 아버지는 "애비의 무능력함 때문에 아들이 죽고 법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라며 "굶어서라도 우리 아들의 희생을 찾아주고 싶다"라고 울먹였다.

단식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한 가족대책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답을 촉구했다. 가족대책위는 "이제는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특별법에 유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약속도 허망하게 사라지고 있다"라며 "국회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를 촉구한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가족 대책위는 "우리는 국회와 광화문에서 곡기를 끊으며 그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50여 명의 유가족들은 '유가족 참여 특별법 제정'이라 적힌 손팻말을 들고 단식자들 뒤에 섰다. 이들은 '잊지 말아주세요 0416'이라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잔뜩 고개를 숙인 채 낮게 흐느꼈다.

가족대책위가 요구하는 바는 명징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또 피해자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절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대책위는 "그래야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다"라며 "안전사회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모든 내용을 청문회 등으로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야와 가족대책위가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12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상태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날 오전,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 입법 TF'는 회의를 속개했지만 여야 입장 차는 여전하다. 가장 첨예한 지점은 조사위원회의 수사권 부여 여부다. 새누리당은 수사권을 부여하면 형사사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때문에 특별법 발효와 동시에 상설특검을 가동하거나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사위 안에 검사나 특별사법경찰관을 두어 조사권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는 전례가 없는 비극이며 기존 형사법 체계로는 결코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 그러니 전례가 없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국가배상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우리는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통해 반드시 정부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유가족들은 "끝으로 대통령님 국회의원님 꼭 기억하십시오,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은 유가족들의 큰절로 마무리됐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참사 이후 국민들은 우리를 끝까지 믿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350만 서명을 통해 그 뜻을 전달해줬다"라며 "그 뜻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국민에게 감사드리며 목숨 걸고 여러분의 뜻을 이루겠다"라며 국민을 향해 큰 절을 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세 번씩 외치며 특별법 제정 의지를 다졌다.

한편,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오는 15일 350만 국민의 의지와 뜻을 모은 세월호 4.16 특별법 서명을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더불어 15일 10시 30분 여의도 공원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 청원 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1신 보강: 14일 오전 10시 9분]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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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잔디밭에 놓인 침몰한 세월호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밭에 침몰한 세월호를 표현해 만들어 놓은 노란종이배가 놓여져 있다.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사흘째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 회원들은 여야 세월호 특별법 TF팀에 가족대책위를 참여하는 여야 3자 협의체 구성과 조원진 새누리당 간사의 세월호 국조특위 배제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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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 '잊지 말아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수십 개의 노란종이배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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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오늘부터 국회와 광화문 광장에서 15명이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10명은 국회 본청 앞에서, 5명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한다"며 "가족들의 건강을 고려해 농성 인원을 제한해서 시작했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가족들이 많아 앞으로 인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족 요구안이 담긴 특별법 제정과 더불어 여야와 가족대책위가 참여하는 '3자협의체' 구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2일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3자 협의체 구성이 안 된다면 참관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안 논의를 원만히 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이다.

여야는 다음 날인 13일에도 TF 회의를 열고 세월호 특별법 마련을 위한 논의를 재개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국회 본청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던 유가족들이 추가로 단식 농성을 결의한 것이다.

유경근 대변인은 "3자 협의체를 만들기 싫으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마련해 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며 "그러나 새누리당은 가족들의 이같은 요구를 일체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유 대변인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족대책위는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 농성 관련 입장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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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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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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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정책이 어떻게 수립되는가라는 질문은 세계적 차원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몇 가지 힌트를 제공하겠다. 미국을 살펴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 중요성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 미국은 유일한 위상을 가진 존재다. 둘째, 미국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내부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 즉 미국 국민에게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여기서 거론하는 정책구성에 대한 원칙은 다른 강대국에도 적용된다.

학계 연구, 정부 공식 발언, 공적 토론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표준 버전(received standard ver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에 따르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안보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1945년 이후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존재는 러시아였다.

이 독트린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첫 질문은 이것이다. 러시아가 의미하던 위협이 1989년에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이 뒤를 이었나? 답은 별다를 것 없이 모든 게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속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곧장 파나마를 침범하고 그 과정에서 대략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낳으면서 미국에 유리한 정권을 세웠다. 미국의 지배적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는 흔히 있던 일이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의 중대 외교정책 행위가 러시아의 위험과 무관한 상황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대신 조금만 살펴보면 단번에 무너질 핑계, 즉 침략에 관한 거짓 이유를 잇따라 만들었다. 미디어는 파나마를 격파한 미국의 성과를 열심히 찬양했다. 침입을 하게 된 구실이 엉터리라는 점, 파나마 침범이 국제법 위반행위라는 점, 또 특히 남미국가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이를 아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한 채 말이다. 또 UN안전보장이사의 만장일치 결의도 무시됐다. 미국은 파나마 침공 시 미군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규탄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늘 반복되는 일이며 또 늘 잊혀지는 일이다.

엘살바도르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조지 H.W. 부시 정권은 전세계적 경제붕괴에 대응해 새로운 국가안보정책과 그에 따른 국방부 예산을 제시했다. 예전과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이번엔 새로운 구실이 따랐다. 세계 모든 나라를 합친 군사력을 버금가는 최첨단 군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이었다. 그 이유가 흥미로운데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비에트 연방에 대응한 조치가 아니라 점점 더 섬세하고 정교해지는 '제3세계'의 최첨단 기술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제력 높은 지성인들은 적절한 침묵을 지켰다. 왜냐하면 그 터무니없음에 놀라 쓰러져버리는 행동이 적절치 않게 받아들여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획은 미국이 '방위산업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일반적으로 첨단산업이라는 완곡어법으로 돌려 말하곤 하는데, 이 첨단산업은 연구개발 차원에서 국가의 광범위한 개입에 의존한다. 즉 펜타곤의 보호 아래 연명하는 미국 '자유 시장경제'의 일부인 것이다.

새로운 계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중동국가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워싱턴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러나 '크렘린을 탓할 수 없는' 중대사건에 대비해 군사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0년간의 거짓말이 조용히 걷히고 그때까지 진짜 걱정은 러시아가 아니라 '과격한 민족주의'라고 불리는, 즉 미국의 통제가 불가능한 개별적 민족주의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순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끝나자 중요한 사건들이 곧장 이어졌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중 한 곳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엘살바도르였다. 엘살바도르는 또한 최악의 인권상황을 가진 나라였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사실 사이에는 익숙하고 친밀한 연관성이 깔려있다.

엘살바도르의 사령부는 아트라켈 여단을 예수회 대학에 침투시켜 그 시절 라틴 아메리카의 최고 지성인으로 주목 받던 교수 6명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모두 교수 겸 신부였는데 이그나시오 엘라큐리아 총장도 함께 살해됐다. 또 그 참사를 목격한 가정부와 딸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아트라켈 여단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포트브래그의 존 F 케네디 특별전투센터에서 주최하는 고급 훈련을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또 그들은 이미 엘셀바도르 내에서 수천명의 희생자를 낳은 미국 주도의 대테러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이 대테러 작전은 미국이 진행하는 중미 지역 작전의 일부로 통상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미국과 동맹국에게 다 잊힌 사건인데, 이 또한 통상적이다. 그러나 제대로 주시할 의지가 있다면, 실제로 세상을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정책을 좌우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다음엔 유럽에서 일어났다. 소비에트 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독일 통일과 통일된 나라의 나토 가입, 즉 소비에트 체제에 적대적 군사단체에 들어가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현대 역사에서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양보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인 제임스 베이커는 나토가 "1인치도 더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즉, 동독으로 말이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나토는 동독 내부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격분한 고르바초프가 항의하자 워싱턴은 그 이야기는 신사협정, 즉 구두 계약이었기에 유의미하지 않다고 답했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면, 누구 탓을 하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는 일이었으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나토 확장 또한 늘 있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한 술 더 떠서 클린턴 대통령은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밀고 들어갔다. 오늘날 존재하는 국제적 위기는 바로 이런 정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곤 약탈

또 다른 증거는 비밀 해제된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국가정책의 동기를 살필 수 있는 기밀서류 말이다. 내용은 복잡하지만 지속해서 나타나는 몇 가지 맥락이 지배적 역할을 한다. 그 중 하나는 1945년에 멕시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나온 미국의 선언이었다. 워싱턴은 경제 민족주의를 퇴치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경제 헌장'이라는 것을 강요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은 예외라는 것이었다. 엄청난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미국은 경제 민족주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에게 미국이 강요한 경제 민족주의 타파는 사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의 정책과 상충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외무부 고위 관료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민족주의 철학은 더 폭넓은 부의 분배를 통해 전체 인구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국의 한 정책분석가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자원 개발에 따른 첫번째 수혜자는 바로 국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워싱턴은 당연히 '첫 번째 수혜자'는 미국 투자자들이고 라틴아메리카의 역할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정부가 이후에 입증했듯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도한 산업개발"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미국 기업들이 더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저품질 철강사업을 개발할 수 있지만 그게 "과도"해져서 미국기업과 경쟁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미국의 우려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연했다. 미국이 지배해야 할 글로벌 체제가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민심에 힘입은 "과격한 민족주의 정권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우려는 1953년과 1954년 이란과 과테말라의 정부와 수많은 다른 정권을 전복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란과 관련해 가장 큰 걱정은 이란의 독립이 당시 영국 식민지배 문제로 혼란에 빠진 이집트에 미칠 영향이었다. 과테말라의 경우 새로 탄생한 민주 체제가 다수 민중에게 힘을 실어주고 미국 기업의 현지 자산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워싱턴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미국이 세운 인근 독재 정권 국가들이 겪을 불안이었다.

두 상황이 낳은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953년 이후 미국은 이란 국민을 계속 괴롭혀왔다. 또 과테말라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최악의 공포 체제로 남아있다. 그 옛날 레이건 대통령과 미국 고위간부들이 뒷받침한 군사작전 때문에 지금도 산악지대에 사는 마야족들이 거의 집단학살에 가까운 위험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다. 과테말라의 옥스팸 대표가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인권운동가를 겨냥한 공격이 지난해에만 300% 늘었다. 민간 부문과 군부 사이의 조직적인 계획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부를 제압한 이 두 세력은 체제 유지와 자원 채취 경제모델을 지향하면서 광산업, 아프리카 야자, 사탕수수 농장 같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냈다. 게다가 이런 조치를 반대하는 사회적 움직임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회운동 리더들이 수감됐고 다수가 살해됐다."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이런 정보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외무부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체제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대중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고 "미국에선 불가능한 민중의 단합을 이룰 수 있다. 늘 부자의 재산을 약탈하고 싶어하는 빈곤층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부자가 빈곤층을 약탈해야 한다는 독트린을 따르는 미국은 빈곤층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쿠바의 사례

미국 외교정책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한 예가 1959년에 독립을 성취했을 때의 쿠바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쿠바를 겨냥한 군사공격이 시작됐다. 얼마 후 아이젠하워 정부는 비밀리에 정권을 교체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고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는 취임 후 곧바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를 대표로 하는 연구기관을 조성했다. 그리고 슐레진저는 새 대통령에게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슐레진저는 독립국이 된 쿠바가 의미하는 위협이란 "카스트로식 주권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 대중에게 아주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토지와 국가 자산의 분배가 유산계급에 매우 유리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쿠바의 사례는 빈곤층 등 버림받은 사회계층에게 큰 자극이 됐고 그들은 이제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늘 미국이 직면하는 딜레마였다.

CIA도 "카스트로주의의 과도한 영향력은 쿠바의 힘과 무관하다. 카스트로의 그림자가 길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기존 정권과 맞서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동요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라틴 아메리카에 만연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즉 쿠바 모델이 다른 국가들에 좋은 사례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케네디는 쿠바를 향한 러시아의 지원이 개발전략의 '모델'이 될 가능성, 즉 소련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미국 외무부 산하 전략정책위원회는 또 이렇게 경고했다. "카스트로의 존재에서 오는 가장 큰 위험은... 그의 정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라틴 아메리카에 퍼져있는 좌파 세력에게 주는 의미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카스트로는 반미의 성공 사례를 대표한다. 이는 우리가 거의 150년에 걸쳐 유지해 온 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다" 1823년에 공표된 먼로 독트린을 뜻하는 것이다.

이 독트린이 나온 것은 쿠바를 손에 넣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는데 그때는 불행하게도 영국 제국이라는 상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로 독트린과 미국 영토 확장론의 창시자격인 전략가 존 퀸시 애덤스는 쿠바가 언젠가는 꼭 미국의 관리하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미국의 "정치적 중력의 힘"에 끌려서 말이다. 그는 미국의 힘은 증가하고 영국의 힘은 감소할 것이라고 믿었다.

1898년이 되자 애덤스의 예견은 적중했다. 미국은 섬을 독립시킨다는 구실로 쿠바를 침입했다. 실제로는 미국의 행위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막고 오히려 쿠바를 "식민지"나 다름없는 형태로 추락시켰다고 역사학자 어니스트 매이와 필립 젤리카우는 말한다. 그리고 1959년에 독립선언을 할 때까지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 그 후 쿠바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적 압박을 받아왔으며 테러 행위의 표적이 돼왔다. 러시아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러시아의 잠재 위험에 대한 방비라는 구실로 실행됐다. 침범의 합당성에 대한 토론은 대체로 빈약했고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이 이론이 정확한지 알아 보려면 러시아의 위험 가능성에 대한 작은 우려라도 생겼을 때 미국의 반응을 보면 된다. 1992년 대통령이 된 클린턴을 포함한 진보적 민주당 인사들은 보수파의 대표인 부시보다 더 쿠바정권을 몰아세움으로써 정권을 쟁취했다. 적어도 액면대로라면 이런 상황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기존 독트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영향은 미미했다.

민족주의 바이러스

헨리 키신저의 말을 빌리면 독립적 민족주의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병균" 같다. 이 말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빗댄 것인데 여기서 병균이란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 정치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이런 병균의 위험을 막는 방법은 병균을 제거하고 폭압적인 안보통치로 감염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다. 칠레에서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이런 개념은 세계 어디서나 만연하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런 이유로 1950년대 베트남 민족주의를 반대하면서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를 탈환하려는 노력을 지지했다. 베트남의 민족주의가 인근 국가들, 특히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로 퍼질까 우려한 것이다. 일본이 산업과 상업의 중심으로 아시아권 신체제를 형성하는 것도 우려했다. 즉 일본이 아시아 학자 존 다워(John Dower)가 이야기한 '슈퍼 도미노'를 이루게 될 가능성을 견제한 것이다. 그런 전개는 미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궁극적으로는 진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인데, 특히 195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치료방법은 명확했고 대체로 효과가 있었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쑥대밭이 됐고 '병균'을 전염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는 군사독재 정권 국가들에 포위됐다.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역임했던 맥조지 번디는 은퇴 후 베트남 전쟁을 1965년에 끝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즉, CIA가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모택동과 비교한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설립한 후 곧바로 동남아에서 빠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엄청난 피바다'를 일으킨 장본인인 수하르토를 미국이나 서방국가의 언론은 오히려 반겼는데, 그 이유는 전염병의 위험이 제거되고 서방국들은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착취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번디가 나중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순간 이후 전쟁은 불필요했다.

이 즈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제거하든지 적어도 더는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될 정도로 미국은 민족주의 세력을 제압했다. 1960년대에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를 겨냥한 탄압은 그 대륙의 폭력적인 역사를 감안한다 해도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잘 알고 있듯이 1980년대 레이건 정권하에 이런 정책이 중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중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독특한 관계는 이스라엘이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의 주축인 이집트를 공격한 1967년에 성립됐다. 이 작전은 그때 예멘에서 이집트와 맞서고 있던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극심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이자 와하비즘을 가장 열심히 전파하는 국가이다.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영국처럼 미국도 독립과 전염을 초래할 수 있는 세속적 민족주의보다 극심한 원리주의 이슬람 체제를 지지하는 성향이 높다는 것이다.

비밀의 가치

훨씬 더 많은 예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기록된 역사의 증거물만 보더라도 기존의 독트린이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안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정책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일반적으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독트린을 평가할 때 '안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하나의 답은 국력을 위한 안보이다. 여러 사례가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예를 보자. 지난 5월에 미국은 시리아의 전쟁범죄에 관한 UN 안보리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결의를 지지하겠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예외를 주장했다. 즉, 이스라엘의 범행은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또 불필요하게도 스스로에 대한 그러니까 워싱턴에 대한 예외도 고집했다. 이것이 불필요한 이유는 미국은 국제형법제도에서 스스로 면책을 행사하는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침범법'으로 유럽에 알려진 법이 있다. 미국 국회가 실제로 입법한 그 법 조항에 따르면 헤이그 재판 피고가 미국 국민일 경우 미국 대통령은 무력으로라도 그를 구출할 권리를 행사해도 된다. 국력을 위한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럼 누구를 상대로 한 안보인가? 미국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기록 보관소를 많이 뒤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진짜 보안 때문에 기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기밀은 국민을 암흑에 쌓이게 하는데 이용된다. 저명한 진보 학자이자 정부 고문을 역임한 하버드대 교수 새뮤얼 헌팅턴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미국 국가체제를 설계한 이들의 과제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어둠에 가려진 힘은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햇빛에 노출되면 그 힘이 증발된다."

1981년 냉전이 다시 뜨거워질 무렵 그는 이렇게 적었다. "군사적 중재행위 또는 작전은 소비에트 연방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허위를 명분으로 삼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계속 이런 방법으로 행동해 왔다." 이 간단명료한 진실은 거의 인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그 영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국가 권력은 내부의 적, 즉 국민으로부터 보호 받는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국민은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한다. 현재 사례로는 오바마 정권의 전방위적 감시 프로그램의 헌법 훼손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안보라는 말로 스스로의 행위를 변명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하자 간부들은 그 프로그램이 54건의 테러행위를 예방했다고 주장했다. 질문이 계속되자 그 수는 열댓개로 줄었다. 그런데 정부 위원회가 이후에 파악한 바로는 단 한 건의 테러 예방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 소말리아에 8,500달러를 보내는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의 법도 마음대로 위반해 얻은 총 수확이 바로 이것이다.

영국의 반응이 재밌다. 가디언에 따르면 2007년 영국 정부는 워싱턴의 초대형 첩보조직이 "수사망을 통해 영국 국민의 이메일, 팩스 번호, 휴대전화 번호, IP주소를 수집하고 분석"해도 된다고 동의했다. 영국 정부가 생각하는 자국민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워싱턴의 요구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민간 기업체의 안전 보장이다. 그 예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태평양과 환대서양 무역협정이 있다. 이 협정들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비밀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상세한 협상 조약들을 직접 준비하고 있는 수백 명의 기업체 변호사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몇 건의 누설을 생각해 보면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AFTA 등과 마찬가지로 이 협약들은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투자자 권리협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지지층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보가 중요한 것이다.

인간 문명의 마지막 세기?

너무나도 많은 사례가 더 있다. 자유사회에서라면 초등교육에 포함해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명백한 사실들 말이다.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을 지키고 민간 기업체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방침이 정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물론 그런 과정이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요즘 흥미 있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건 위 두 가지 부분이 대립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같은 정책 형성은 위에 제시한 '표준 버전'과 상당히 상충한다.

그럼 질문을 하나 해보자. 그럼 국민의 안보는? 국민에 대한 걱정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부분적 요소밖에 안 된다. 현재 두드러진 두 가지 사례를 보자. 지구 온난화와 핵무기.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 두 문제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막대한 재앙이다. 그런데 국가 정책을 살펴보면 이 두 위험요소를 더 극심하게 하는 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국가와 민간 기업체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보자. '향후 100년간의 에너지 자유'를 외치는 미국은 '다음 세기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는 것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현재의 정책이 지속되면 인류의 마지막 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런 사례는 안보에 대한 정부의 관점을 명백하게 나타내 준다. 적어도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또 현재 앵글로-아메리칸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즉 당장 누릴 수 있는 이익에 비하면 우리 후손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계산 말이다.

이런 결론은 선전 체계를 보면 확실해진다. 대형 에너지 산업체들과 다양한 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홍보캠페인은 지구 온난화가 사실이 아니거나 적어도 인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캠페인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 미국은 다른 여러 국가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약하다. 특히 부자와 기업 부강을 최고로 여기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대는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낮다.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실린 흥미로운 글에 따르면, 이런 결과는 미디어의 '공평함과 균형 보도 방침'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런 방침 하에서는 만약 어떤 언론이 과학자 97%가 동의하는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도 반대 입장을 가진 에너지 기업의 의견도 함께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도 방침이 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푸틴의 크림반도 침략을 규탄하는 논평을 어느 언론이 실었다고, 미국이 100년 전에 쿠바의 주요 항만을 포함한 남동 지역을 점령하고 쿠바 독립 이후 그 지역을 되돌려 달라는 쿠바의 요청을 계속 무시한 행위에 비해 이번 러시아의 침범은 더 합리성이 높다는 기사를 실어줘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다른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즉 미디어의 공평함과 균형 보도 방침은 힘을 가진 일부를 위해서는 적용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무시된다.

핵무기에 대한 이제까지의 기록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초기부터 국민의 안전은 논의 거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아직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많은 사례를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핵무기로 무장했던 전략 공군 사령부의 지휘관이었던 리 버틀러 장군의 비통한 말을 빌려보자. 그는 이제까지 핵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재능과 재수와 신의 개입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마지막 요소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책 전문가들이 종말을 자초하는 룰렛게임을 하는 동안 신의 개입만을 계속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환경파괴와 핵전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존재의 유지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 이유 하나만으로라도 이념적인 구름을 걷어버리고 정직하게 현실감각을 갖고 정책 형성과정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어떻게 그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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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준 두 가지 숙제, 박근혜의 선택은?

[정세현의 정세토크] 한국이 미중 간 '중재자'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 없어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14 10:22:59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시 주석은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전략에 한국이 일본처럼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역사 문제를 고리로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는 한편, 한국에 두 가지 숙제를 던져주고 갔다. 
 
시 주석이 던진 숙제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라는 것, 그리고 CICA(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AIIB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의 ADB(아시아개발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기획한 것으로,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정 전 장관은 "AIIB는 겉으로는 경제 문제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문제"라며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요청"이라고 분석했다. 
 
CICA 역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북아 역내 외교안보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CICA에 대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끼리 해결하자는 것"이라면서 "이는 곧 아시아 지역안보 문제에 미국은 손을 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중국은 AIIB를 통해 우리에게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 질서에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CICA를 통해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정치 및 안보질서에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기도,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는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이번 정세토크에 함께한 황재옥 원광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교수 겸 (사) 평화협력원 부원장은 "한국이 미‧중 간 협조가 불가피한 틈새를 파고 들어가 양자의 협조를 촉진시키는 이른바 '촉진자(facilita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우리에게 미국과 동맹관계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도 중요하다"며 "이를 가장 절묘하게 조합하는 것이 시 주석이 던진 과제를 국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촉진자'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지에 따라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날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의 사회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대담을 나누고 있는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황재옥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대담을 나누고 있는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황재옥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시 주석이 이른바 '혈맹'이라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먼저 찾았습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상황이구요. 시 주석이 이처럼 한국을 먼저 찾고 김정은 제1위원장보다 박 대통령을 더 자주 만나면서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한 것 아닌가, 중국이 북한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습니다. 
 
황재옥 : 중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었다거나 북한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과대평가된 것 같습니다. 중국은 6.25 이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북한이 미‧중 사이에 완충 국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가끔 북한 '길들이기'는 하지만, 북한을 완전히 버릴 수 없습니다. 거리를 두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시진핑의 이번 방한 목적은 북‧중 관계보다는 중국의 대미, 대일 전략 차원에서 분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 주석이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한미일 관계가 중국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반미 한중 통일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일 간 역사 문제 등을 활용해서 한국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면 최소한 '반일 한중 통일전선'은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작심하고 한국을 찾은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에는 중국이 다른 차원에서 반대급부를 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정세현 :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미·중 대결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한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떼어 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봅니다. 
 
<중앙일보> 박보균 논설위원이 10일 칼럼을 통해 이번 시진핑 방한을 보며 '신 조선책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던데. 저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조선책략>은 19세기 말 청나라 외교관인 황준헌이 쓴 책으로,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한국 방문도 이와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역사 문제를 매개로 한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일본을 견제하고, 나아가서는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 편에 있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일본 우경화에 공동대처하자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본의 우경화를 밀어주고 집단적 자위권까지 인정하면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자는 내용이 은연중에 담겨 있습니다. 
 
양국이 이번 만남을 통해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됐다고 했는데, 중국은 그 용어를 쓸 때 한국을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적어도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한국이 일본과 같이 하수인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중 간 경제 분야는 진전이 있었던 반면, 지역 안보 문제는 별다른 합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균형 잡힌 결과라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역 안보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황재옥 :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 그 후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북핵 문제가 접점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남북 대화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북‧미 대화, 그리고 북핵을 위한 6자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 기본 틀을 견지한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먼저 있어야한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던 것 같아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정세현 :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된 북핵 문제와 관련된 합의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또 우리 쪽 발표문에는 들어가 있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는 빠져있는 내용이 있는데요.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표현을 언급하며 중국이 이전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는데 정작 중국 외교부의 발표문에는 이 부분이 빠졌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을 끌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단어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데, 그 말 속에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없애라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이 북핵 때문에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 핵우산은 중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한중 간 경제 분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한중 FTA 연내 타결에 합의했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정세현 : 일단 중국이 우리에게 가입을 공식 제안한 AIIB 문제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안이 될 것 같습니다. AIIB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의 ADB(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에 대응하기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의 아시아지역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IIB는 겉으로는 경제 문제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요청인 만큼 이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미국 측은 사실상 반대 의사를 우리 쪽에 밝히지 않았습니까. 
 
또한 중국은 지난 6월 CICA(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에도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CICA가 뭡니까.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끼리 해결하자는 것 아닙니까. 아시아 지역안보 문제에 미국은 손 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CICA에 참여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미국과의 안보 관계 약화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중국은 결국 AIIB를 통해 우리에게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 질서에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CICA를 통해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정치 및 안보질서에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결국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시 주석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과제를 던지고 간 것입니다.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질서와 지역 안보 질서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한 것이죠. 우리 정부가 앞으로 굉장히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문제도 있는데 이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미·중 간 위안화 절상문제로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거래를 시작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우리한테까지 전달될 수 있습니다. 원화와 위안화의 직거래로 우리가 경제적 이득을 보는 측면도 있지만, 미·중간 경제 갈등의 파급효과가 우리한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황재옥 : 양국은 한중 FTA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자고 합의했는데, 이것이 예정대로 타결되면  우리가 중국의 내수시장으로 많이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수년 동안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이 3% 정도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3% 중후반대로 잡았는데 여기에 3%가 더해지면 6% 후반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공산품 팔려다가 저가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농촌이 어렵습니다. 중국 농산물이 지금도 시장에 많이 있는 상황에서 FTA까지 체결되면 우리 농민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책을 미리미리 마련해가면서 FTA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중 FTA가 타결되면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중간 교역액은 미국, 일본과의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한중 교역액이 2300억 달러이고 한미는 1100억 달러, 한일은 950억 달러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대중 무역에서 600억 달러의 흑자를 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FTA까지 타결된다면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교역을 무기로 한국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역할론' 벗어나 '한국 역할론'으로 
 
프레시안 : 북핵 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입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기존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구요. 그런데 일본이 납치문제로 북한 제재를 일정 부분 해제하고 북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대북 공조가 흐트러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 마당에 우리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한의 성의 있는 선(先)조치만 요구하면서, 이와 관련된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을 중국에 요구하면 북핵 문제 풀 수 있을까요? 기존의 북핵 문제 해법을 재고해야 할 상황 아닙니까? 
 
정세현 : 재고해야 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배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9, 10일 미국과 중국은 베이징에서 전략경제대화를 가졌는데. 중국이 6자회담 빨리 열자고 이야기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성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미·중 간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이 주장하고 한국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른바 '중국 역할론', 즉 중국이 나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장은 결국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제하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른바 '대비책'을 덧붙입니다. 북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주한 미군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이것은  북한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드는 고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본심이 이렇다면 우리는 중국 역할론을 이야기하는 미국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북한과 대화를 통해 북의 진짜 속내를 파악하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도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이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는 하고 있지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 남북대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중국더러 끌어내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끌어내야 합니다. 즉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의 입장을 갖고 문제 해결에 임해야 합니다.
 
황재옥 : 북핵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 입장은 미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입장을 고수할 경우 6자회담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핵 한미공조를 당연히 재고해야 합니다. 압박과 제재, 선행동 요구만으로는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협상밖에 없는데,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협상 개시의 조건을 제시해 놓고 그것이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북한은 최근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면서 적극적인 대남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30일 국방위원회 특별제안에 이어 지난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까지 보낸다면서 남북 교류와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은 임기 중에도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대북 정책을 끌고 간다면 요동치는 동북아에서 우리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질지 우려스럽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미·중 간 6자회담에 대한 입장 차이를 절충할 수 있는 중개자(mediator)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북핵 문제 해법도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6자회담에 대한 미‧중 간 입장의 차이도 조율하지 못하고 간극도 메우지 못한다면 6자회담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6자회담을 재개시키고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 대화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인도적 지원부터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한국이 인도적인 문제를 내세워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제안 중에 안보적인 측면만 강조해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국내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적으로 입지가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지지마저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유연한 대북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핵무기를 '민족의 보검'이라고 주장하고,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중지하라고 했다는 걸 이유로 북한의 대남제안이 비현실적이라고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북한이 으레 하는 말입니다. 북한 내부를 다지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이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처럼, 북한도 그런 행태를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좀 헷갈리게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잘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동해로 방사포와 미사일을 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북한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항모나 비행기가 서해나 동해로 들어온다든지 훈련을 한다든지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측면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북한도 군사적인 차원과 남북관계 차원이 완전히 표리의 관계로 연결된 것은 아닌데, 우리가 이런 것들을 밀접히 연관돼있다고 해석하니까 북한의 진짜 의도를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미·중 간 중재자 역할 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 없어 
 
프레시안 : 지난 1일 일본이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같은 날 한미일 3국의 합참의장이 하와이에 모여 안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세 나라 합참의장의 회동은 사상 처음이죠. 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 체결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정황들을 봤을 때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은 이미 사실상 완성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우리는 말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야한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인 것 같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면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좋은 취지였는데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 상황은 한미일 군사동맹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일 군사동맹에 한일 군사동맹까지 추진되면서 한국이 일본의 하위체계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외교 안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조율해주는 곳이 국가안보실인데, 지금 안보실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안보 상황을 동북아라는 너무 좁고 한정된 곳에서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국가 안보는 미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유럽 등의 문제에 얼마나 개입하고 있고, 역량을 얼마나 쏟아 붓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의 대외안보 역량 중에서 우리가 미국과 얼마나 협조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국과는 어느 정도 협력을 할 수 있는지를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은 미국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주로 군사적인 판단만 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는 미국 것을 빌리고 우리는 팔다리만 쓰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과학장비에만 의존하고 대증요법만 쓰는 것 같습니다. 위성사진 판독해서 문제 있는 곳에만 신경 쓰는 이른바 '대증요법'으로만 접근하고 있는데, 국가 안보는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체력이 어느 정도이고 어디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식의 한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외과적 접근이 아니라 내과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미국과 협조하면서도 우리 독자적 판단과 전략수립을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역할과 위상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를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말 따로 실제 행동 따로' 움직이는 형국이 된 겁니다. 저는 우리 정부더러 한미동맹 깨라는 게 아닙니다. 일본과 군사정보공유까지 하면서 일본 밑으로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우리 경제에 막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결과적으로 불편하게 만들면 어떡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미국에게 쓴소리 한 번 안 하면서 무슨 재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걱정됩니다. 외교에서는 진짜 자기 나라 입장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호불호를 결정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 미‧중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장기적으로 안보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황재옥 :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은 결국 자신들의 국익 추구에 매진할 것입니다. 한국도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할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고 봅니다. 시 주석이 AIIB 가입 요구를 비롯해 우리한테 곤란한 과제를 여럿 주고 갔는데, 오히려 이 과제를 풀어 나가는 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국익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나아가 통일입니다. 좀 더 큰 그림을 보아야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도 찾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국익을 달성할 것인지 손 놓고 있을 것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국과 동맹관계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를 가장 절묘하게 조합하는 것이 시 주석이 던진 과제를 국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이 미‧중 간 협조가 불가피한 틈새를 파고 들어가 양자의 협조를 촉진시키는 이른바 '촉진자'(facilitator)가 돼야 합니다.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를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미·중 간 동아시아의 패권, 지배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속셈은 다를지언정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은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미·중이 대화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 황재옥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황재옥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다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동맹인 미국에 우리의 행보를 잘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가까워지더라도 미국과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미국에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납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우리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미·중을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합니다.
 
정세현 : 쉽게 이야기하면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닌 외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미·중간에 촉진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지만, 이와 더불어 북미 간에도 대화가 가능하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미·북 간에 촉진자 역할을 해서 2005년 9.19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 내는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 편에 서서 확실하게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 혹은 중국 편에 서서 중국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동북아 평화가 흔들립니다. 반면 어느 한쪽에 확실히 서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촉진자'(facilitator)나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떠오르고 있고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면서 중국이 섭섭해할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섭섭해할 정도로 중국에 가까워지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프레시안 : 우리가 촉진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돼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바꿔야 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도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지난 7일 성 김 대사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를 불필요하게 지연시킬 필요는 없다, 미국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전작권 환수를 계속 연기해야만 하는지 우리가 재고해야 할 중요한 사안 아닌가요? 
 
정세현 : 우리가 전작권을 지금처럼 계속 미국이 가지고 있도록 하면 대북 협상 면에서도 우위에 설 수 없습니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을 감행할 수 있는 이유도 한국에 전작권이 없기 때문에, 즉 한국의 전면적 보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968년 1.21사태나 1983년 10월 9일 랑군 사태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남북 간의 보복공격을 통한 확전을 바라지 않거든요. 전작권이 우리에게 있으면 북한이 이렇게까지 맘놓고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보복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우리가 전작권이 없어서 단독으로 북한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마음 놓고 연평도를 포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작권 환수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전작권이 우리한테 돌아오면 북한이 핵을 마음 놓고 개발하기도 어려워집니다. 북한의 핵능력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가 독자적으로, 국방부가 즐겨 쓰는 말로, 원점을 때리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 능력과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작권은 미국이 우리에게 넘겨주고 싶어합니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化)를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국방예산이 점점 감소되는 상황에서 많은 곳에 군을 주둔시킬 수 없는 미국이 현재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현재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이동 반경을 넓혀야 합니다. 주한미군도 예외가 아니죠. 
 
그런데 주한미군이 전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 밖으로 나가기가 힘듭니다. 만약에 미군이 주변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기 위해서 잠시 주둔지를 떠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공격을 하면 미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군의 신속기동화와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부시 정부 때 추진된 겁니다.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해달란다고 해서 된 게 아닙니다. 그것도 북한에 대해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한 겁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미국은 확전을 싫어합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예산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판이 커지면 책임 못 진다고 말하는 것이 미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작권을 갖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겁니다. 한국이 대북억지 능력은 물론이고 대북협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작권 환수를 더 이상 연기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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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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