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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최저 성장률, 최고 재정 적자 박근혜 정부’

 
김무성이 말한 ‘좌절과 분노’ 유발자는?
 
‘역대 정부 최저 성장률, 최고 재정 적자 박근혜 정부’
 
임병도 | 2016-01-19 09:15: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신년기자회견 모습 ⓒ새누리당 홈페이지 갈무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새해는 늘 덕담으로 시작하는 게 관례지만, 국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그렇게 말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많은 국민들이 지금 이 시대를 ‘위험과 불안의 시대’로 인식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덕담도 하지 못할 정도의 ‘위험과 불안의 시대’ 만든 주범은 누구일까요? 김무성 대표는 후진적인 정치,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평가를 받는 19대 국회가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김무성 대표의 말이 사실일까요? 도대체 위험과 불안의 시대를 만든 주범이 누구인지 경제 수치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역대 정부 최저 성장률, 최고 재정 적자 박근혜 정부’

김무성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문에서 ‘경제’라는 말을 15번이나 했습니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현 상황이 매우 불안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한 경제 상황을 만든 당사자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엄청난 공격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역대 정부의 성장률과 박근혜 정부를 비교해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실질 GDP 성장률은 3.1%로 역대 정부 최저 수준입니다. 김대중 정부 5.3%와 비교하면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보면 3년 연속으로 세수결손에 적자 추경 편성, 재정 적자 및 국가채무 급증 등 나라 재정이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4.5%까지 올랐던 성장률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3.2%, 박근혜 정부는 3.1%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주야장천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고 연달아)’창조 경제’를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 채무는 12년말 443.1조 원에서 15년(추경) 579.5조 원으로 136.4조 원 증가했습니다. 집권3년차 국가채무 증가폭을 비교하면 역대 정부 최고 수준입니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재정 적자는 5년간 167조로 예상됩니다.

성장률은 최저, 재정 적자는 최고인 상황을 만든 사람이 야당입니까? 7년간의 집권 세력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표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경제 수치로 본 노무현 정부 vs 박근혜 정부’

김무성 대표는 ‘경제가 위축되면서 일자리가 줄고 가계의 소득 창출이 어렵다 보니, 삶이 팍팍해지고 ‘좌절과 분노의 어두운 분위기’가 온 사회에 퍼져 있다’ 말했습니다. 일자리와 가계 소득 등의 경제 수치를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보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집권 말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은 2.7%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2013년 0.8%까지 떨어졌다가 2014년 2.1%에 도달했습니다. 소득은 낮아졌지만, 가계 부채는 2007년 665.4조에 비해 1,100조 원까지 늘었습니다.

2007년 7.2%였던 청년실업률은 2015년 6월 10.3%까지 치솟았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과 쉬운 해고를 할 수 있는 노동개혁만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노동개혁을 하지 못해 경제와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859.7조 원이었던 대기업의 매출 총액은 2014년 1,539조 원으로 늘었습니다. 대기업과 재벌의 자산총액은 2,258.4조 원으로 2007년(1,161.5조 원) 이후 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한국 자동차회사가 전기차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 땅에 10여억 원이나 투자하고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아파트 짓고 면세점 특혜나 받으려 하고 세금 감면해달라고 하고 특혜업체는 매일 법통과 시켜달라고 여당압박해서 지금 그 법들 갖고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원샷법 재벌법 아닙니까? 외촉법 재벌법 아닙니까? 그래서 14,000개 일자리 만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00개도 안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관광진흥법 이거 재벌법이구요 서비스산업발전법 이거 다 재벌법 아닙니까? 한국재벌이 이러니깐 한국의 성장동력이 망가지는겁니다. 양극화 때문에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것을 지금 부총리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거에요. 저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자, 표를 봐주세요. 지금 박근혜 정부 사상 최대 재정 적자 납니다. 5년간 167조 재정 적자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167조 어디로 갔습니까? 167조 재정 적자 내면서 누리과정 돈이 없다고 그것을 지방정부에게 맡기는 게 박근혜 정부의 정책 아닙니까? 167조 어디 갔습니까? 도대체!(더불어민주당 홍종학 의원)

대한민국을 위험과 불안의 시대로 만들고 이 사회를 좌절과 분노의 어두운 분위기를 만든 사람들은 박-대한민국을 위험과 불안의 시대로 만들고 이 사회를 좌절과 분노의 어두운 분위기를 만든 사람들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고,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은 ‘너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이 정도 경제 지표와 재정 적자, 실업률이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위험과 불안의 시대에 그저 팍팍한 삶을 살아가면서 좌절 속에서 어둠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분노와 좌절 유발자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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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시작된 수소탄개발비사

2005년에 시작된 수소탄개발비사
 
한호석의 개벽예감 <18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6/01/18 [10: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선의 수소탄개발은 2005년에 시작되었다
2. 조선이 진행한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
3.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왜 만들었을까? 
4. 다시 읽어보아야 할 조국통일유훈과 2016년도 신년사

 

▲ <사진 1> 조선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에서 핵탄보유선언을 하면서 핵무력증강결심도 표명하였다. 당시 미국과 한국에서는 조선의 핵탄보유선언과 핵무력증강결심표명을 대미협상력을 높이려는 벼랑끝전술이니 뭐니 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은 2005년부터 핵탄을 증산하는 것과 함께 수소탄을 개발하기 위한 극비사업에 착수하였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6년 1월 6일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자력으로 만든 시험용 수소탄이 거대한 폭음을 울리며 기폭하였다.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알려면, 조선의 수소탄개발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의 사진은 조선의 녕변핵시설에서 근무하는 핵기술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촬영시점은 알 수 없다. '확인 또 확인'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 자주시보

 

1. 조선의 수소탄개발은 2005년에 시작되었다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공세를 전례 없이 강화하면서 정세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2005년 초, 조선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적대공세에 상응하는 보복공세를 취하였다. 당시 조선이 취한 대미보복공세들 가운데 하나가 핵탄보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2005년 2월 10일 조선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사진 1>


조선이 그처럼 명백한 어조로 핵탄보유를 선언하고 핵무력을 더욱 증강하겠다는 결심까지 표명하였는데도, 조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핵탄보유선언에 대해 “대미협상력을 높이려는 벼랑끝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핵탄보유사실 자체를 부정하였다. 조선의 핵탄보유사실을 부정하였으니, 핵무력을 더욱 증강하겠다는 조선의 결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성명이 나왔을 때, 미국과 한국의 관심은 조선의 핵탄보유가 아니라 조선의 핵물질생산에만 집중되었었다. 그 때로부터 어언 13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13년 동안 미국과 한국이 조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조선은 13년 전 외무성 성명에서 언명한 대로 자기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켰고 마침내 수소탄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13년 전 조선이 외무성 성명에서 언명한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은 핵탄증산대책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핵무력증강대책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책을 취할 것”이라는 그 말에는 핵탄증산결심 이외에 수소탄개발결심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조선은 핵무력을 증강하겠다는 결심을 표명한 2005년 초에 수소탄개발에 착수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조선이 핵무력증강대책을 취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였던 13년 전, 조선이 설정한 최종목표는 핵탄증산을 넘어 수소탄개발에 가닿아 있었다. 

 

▲ <사진 2> 조선은 2005부터 10여 년 동안 수소탄개발사업을 비밀리에 진척시켜왔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최첨단 첩보위성을 동원하여 조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미국은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이 미국의 시야를 캄캄하게 가려놓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미국이 조선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사실상 패하였음 말해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최첨단첩보장비를 동원하여 조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미국은 조선이 2005년부터 추진해온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이 미국의 시야를 캄캄하게 가려놓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미국이 조선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사실상 패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2>


그런데 미국이 조선의 수소탄개발에 대한 정보파악에서 그처럼 완전히 실패한 것보다 더 한심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선이 2016년 1월 6일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뒤를 따라가는 한국의 모습도 미국의 그런 모습과 마찬가지다. 지난 13년 동안 반복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 자체를 부정하는 이상한 난기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하지만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부정하는 난기류의 흐름을 뜯어보면, 합리적 판단은 실종되고 오해와 편견만 흐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부정하는 까닭을 거론하면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의 진동에너지가 자기들이 생각한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 매우 약한 진동에너지로 나타났기 때문에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제1차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제4차 핵시험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수소탄(열핵융합탄)이 핵탄(핵분열탄)에 비해 100배, 1,000배 더 강력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지극히 단순한 기초상식만 가지고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바라보면 오해밖에 생길 게 없다. 오늘날 복잡하게 전개되는 정세에서는 단순한 기초상식으로 해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때로 나타나곤 하는데, 조선의 수소탄시험이야말로 단순한 기초상식으로는 해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수소탄에 관한 기초상식을 들먹이며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횡설수설할 게 아니다.


수소탄은 군사과학기술의 최상위 종합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어떤 나라가 그것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몇 해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하기까지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고심어린 탐구와 실험을 진척시켜온 기나긴 개발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언론에 공개된 관련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 개발과정을 더듬어 가면,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조선의 수소탄시험의 실상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2012년 3월 7일 미국의 군축문제전문지 ‘과학과 세계안보(Science and Global Security)’에 스웨덴의 기상학자 라-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가 집필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그 논문에 따르면, 한국, 일본, 러시아의 방사성핵종측정소들이 측정한 자료들을 정밀분석하였더니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핵시험장에서 2010년 4월 중순과 5월 11일에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매우 약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킨 핵시험이 두 차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 뜻밖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국제핵과학계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자, 2013년에는 크리스토퍼 롸잇(Christopher M. Wright)이나 저하드 워타와(Gerhard Wotawa) 같은 과학자들이 데예르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는 논문들을 ‘과학과 세계안보’ 또는 ‘방사분석 및 핵화학(Radioanalytical and Nuclear Chemistry)’ 같은 학술전문지들에 잇달아 발표하였다.

 

▲ <사진 3> 이 사진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에 있는 지하핵시험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영상자료다. 촬영시점은 알 수 없다. 조선이 2010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바로 이 지하핵시험장에서 수소탄개발시험을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스웨덴, 미국, 중국의 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에 입증되었다.     © 자주시보

 

그런데 다른 학자들은 2010년 4월과 5월 중에 조선에서 인공지진파가 발생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위에 열거한 세 과학자들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대해 의혹의 물음표를 달았다. 그러나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지진학자들인 장먀오(張邈)와 원롄싱(溫聯星)이 2015년 1월 지진학전문지 ‘지진학 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0년 5월 중에 기록된 지진측정자료를 새로운 미진검측방법으로 조사하였더니 2010년 5월 11일 오전 8시 8분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핵시험장에서 인공지진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3>


2010년 5월 12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식으로 독특하게 설계된 열핵반응장치에서 핵융합반응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보도하였다. 언론보도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한국의 핵과학자들은 조선이 핵융합반응시험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다. 한국의 핵과학자들은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오랜 습관에 길들어졌으니 그런 신중하지 못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2. 조선이 진행한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


2010년 5월 12일 당시 조선은 핵융합반응시험에 성공하였다고 밝혔지만, 오늘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는 수소탄을 개발하기 위한 시험, 다시 말해서 수소탄개발시험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이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2010년 5월 12일 이후에도 조선의 핵시험장에서 새어나온 방사성핵종이 몇 차례 더 검출되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11년 3월 27일 방사성핵종인 제논(Xe)을 대기 중에서 검출하였고,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기간에도 제논이 평상시 기준값을 넘어선 이상현상이 세 차례나 더 나타났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는 가동되지 않고 멈춰있었으므로, 2011년 3월과 2013년 6월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대기표본에서 검출한 방사성핵종은 녕변의 흑연감속로에서 새어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이 비밀리에 진행한 수소탄개발시험에서 새어나온 것이 확실하였다.


그런데 2013년 6월 하순 이후에는 방사성핵종이 검출되었다는 한국의 언론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므로,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은 2013년 6월 하순에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2010년 4월 중순부터 2013년 6월 하순까지 총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을 비밀리에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문제는,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에서 얼마나 강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데예르는 50~200톤에 이르는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자기 논문에서 밝혔고, 장먀오와 원롄싱은 약 2.9톤(오차범위 0.8톤)에 이르는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자기들의 논문에서 밝혔다.


그런데 양쪽에서 각각 제시한 측정값이 너무 큰 격차를 보인다. 이것은 그 두 측정값 가운데 어느 하나가 오류라는 점을 말해주는데,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장먀오와 원롄싱이 제시한 측정값이 오류인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핵탄을 기폭하여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때, 아무리 극소형 핵탄을 기폭시킨 극소규모의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더라도 폭발에너지가 3톤밖에 발생하지 않는 현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융합반응시험에서 50~200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지적한 데예르의 견해가 이치에 맞는다.

 

▲ <사진 4> 2013년 6월 마침내 수소탄제조기술을 완성한 조선은 2014년 3월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을 진행할 것임을 예고하였는데,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이란 곧 수소탄시험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인 2016년 1월 6일 조선은 예고한 대로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6년 1월 6일 평양역 광장의 대형옥외전광판에서 조선의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긴급소식이 전해지자 그 앞에 모여든 평양시민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조선은 50~200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는 극소규모의 수소탄개발시험을 2010년 4월 중순부터 2013년 6월 하순까지 여섯 차례 진행하여 수소탄제조기술을 3년 만에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소탄제조기술을 3년 만에 완성한 조선은 2014년 3월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수소탄시험을 예고하였다. 조선은 그 성명에서 “적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다음 단계조치들도 다 준비되여 있다.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수소탄시험을 예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고한 때로부터 약 8개월 뒤, 조선은 마침내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다. <사진 4>


2016년 1월 11일 <자주시보>에 실린 ‘경이로운 50킬로톤급 시험용 수소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조선이 1메가톤급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2만분의 1로 축소시킨 50킬로톤급 시험용 수소탄을 2016년 1월 6일에 성공적으로 기폭시켰음을 논증하였다. 그 날 진행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50킬로톤(50,000톤)의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면, 이전에 진행된 수소탄개발시험들에서 발생하였던 폭발에너지의 최대값인 200톤보다 250배나 더 강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2016년 1월 6일에 진행된 수소탄시험에서 성공하였다는 것은, 이전의 수소탄개발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보다 250배나 더 강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켰다는 뜻이다.

 

관련기사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5155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1월 6일에 진행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1킬로톤급(1,000톤급) 핵탄이 기폭제로 사용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조선이 2006년 10월 9일에 진행한 제1차 핵시험에서 사용한 핵탄이 1킬로톤급 핵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왜 만들었을까?


조선이 50~200톤급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극소규모의 수소탄개발시험을 진행하였다는 말은, 20톤급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여 그 시험을 진행하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극소형 핵탄은 그 폭발에너지가 최소 1킬로톤에 이르는데, 조선은 20톤급밖에 되지 않는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만든 것이다. 이것 또한 핵탄에 관한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일이다.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쓰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과연 만들 수 있었을까? 

 

▲ <사진 5> 이 사진은 1962년 7월 17일 미국이 네바다 핵시험장에서 터뜨린 극소형 핵탄의 폭발시험장면이다. 그 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는 18톤밖에 되지 않았다.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다. 수소탄개발에 힘쓴 조선의 핵과학자들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쓰기 위해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만들었다.     © 자주시보


이 의문을 풀려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극소형 핵탄을 만들어낸 미국의 선행경험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1962년 7월 17일 미국이 네바다 핵시험장에서 극소형 핵탄을 시험하였는데, 그 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는 18톤이었다. 핵탄에 관한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폭발에너지가 18톤밖에 되지 않는 극소형 핵탄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다. <사진 5>


그렇다면 조선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시험의 기폭제로만 사용하려고 만들었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핵탄개발선례를 살펴보아도, 극소형 핵탄이 핵융합반응시험에서 기폭제로 사용된 것만이 아니라 실전무기로도 배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그런 선행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도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만들어 핵융합반응시험 기폭제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 핵탄으로 두 종의 실전무기를 만들어냈다. 조선은 지난 6.25전쟁 시기부터 미국에게 피맺힌 원한을 갖게 되었으므로, 오늘날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첨단군사과학기술로 만들어내는 실전무기들은 미국에게 복수하려는 최후결전에서 사용할 첨단무기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만든 두 종의 실전무기도 그런 최후결전무기들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지난 시기 미국의 핵과학자들이 밟아왔던 핵탄개발경험을 살펴보면, 1960년대 초에 그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전술무기와 전략무기를 각각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1960년대 초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전술무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k-54 핵배낭과 Mk-54 핵포탄이다. 1961년부터 1962년 초에 이르는 기간에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Mk-54 핵배낭은 400개에 이르렀다. 


둘째, 1960년대 초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내장한 전략무기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폴라리스(Polaris) A-1 잠대지탄도미사일(SLBM)이다. 조선에서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대지상로케트라고 부른다. 1960년 7월 미해군은 폴라리스 A-1 잠대지탄도미사일 1차분 16발을 제조사에서 인도받아 실전배치하였는데, 바로 그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된 것이 W-47 수소탄이다. W-47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600킬로톤의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탄두화된 수소탄이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 폴라리스 A-1이 발사된 장면이다. 1960년 7월 미해군은 이 미사일 1차분 16발을 제조사에서 인도받아 실전배치하였는데, 그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된 것이 W-47 수소탄이다. W-47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여 600킬로톤의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탄두화된 수소탄이었다.     © 자주시보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미국 핵과학자들의 핵탄개발선례를 그대로 반복한다고 볼 수 없지만, 최근 조선이 세상에 공개한 두 종의 위력적인 전술무기와 전략무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조선에서 전승절로 경축한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열병행진에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핵배낭부대가 처음 등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핵배낭부대를 열병행진에 등장시킨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또 다시 등장하여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였다. 열병행진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를 보고 충격을 받은 한국군 관계자는 그 배낭 속에 방사능방호복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였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장입된 핵배낭을 메고 남진갱도를 통해 돌격명령이 내린지 1~2시간만에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핵배낭을 설치한 뒤 그것을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는 전술핵공격을 전개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7> 

 

▲ <사진 7>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가지고 핵배낭도 만들었다.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행진에 등장한 데 이어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도 등장하였다. 위의 사진은 당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핵배낭부대의 행진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핵배낭부대를 열병행진에 등장시킨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핵배낭 속에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장입되는데, 전시에 핵배낭을 멘 특수전병력은 남진갱도를 통해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핵배낭을 설치한 뒤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는 전술핵공격을 전개할 것으로 예견된다.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므로 자폭공격이 아니다.     © 자주시보


둘째, 2013년에 핵배낭부대를 처음 세상에 공개한 조선은 2014년 10월부터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발사대에서 발사하는 사출시험을 진행하더니, 마침내 2015년 5월 8일 그 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쏘아올리는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였고, 2015년 12월 21일에도 또 다시 전략잠수함에서 그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수중발사하였다. 2015년 11월 28일에도 그 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수중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미국과 한국의 언론보도는 오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 12월 7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나의 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는 없었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관련기사: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4597

 

▲ <사진 8> 이 사진은 2015년 12월 2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관측선박에 탑승하여 참관하는 가운데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진행된 잠대지탄도미사일 수중발사시험 중에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사한 북극성-1호가 화염을 뿜으며 하늘 높이 솟구쳐오르는 상승비행장면이다. 미국 군부는 2015년 5월 8일에 진행된 수중발사시험에서 북극성-1호를 발사한 잠수함을 신포급 잠수함이라고 지적했었는데, 2015년 12월 21일에 진행된 수중발사시험에서는 고래급 잠수함이 그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밝혔다. 고래급 잠수함은 이번에 처음 그 이름이 알려진 잠수함이다. 조선에서는 신포급이니 고래급이니 하는 분류명칭을 쓰지 않으므로, 미국 군부가 자의적 분류명칭을 달아놓은 신포급 잠수함과 고래급 잠수함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 힘들다. 미국 군부는 북극성-1호를 수중에서 발사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신포급 잠수함인지 고래급 잠수함인지 헷갈리고 있다.     © 자주시보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20톤급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수소탄두가 그 잠대지탄도미사일에 장착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개발한 잠대지탄도미사일의 이름은 북극성인데, 그 이름은 미국이 1960년 7월에 처음 실전배치하였던 잠대지탄도미사일의 이름인 폴라리스와 같다. 북극성을 영어로 폴라리스라고 한다. 조선이 자기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에 붙인 이름을 미국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 이름과 똑같이 지은 것은 우연한 일치현상이 아니라, 폴라리스 A-1에 600킬로톤급 W-47 수소탄두가 장착되었던 것처럼, 북극성-1호에도 그에 상응하거나 또는 그보다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진 1메가톤급 수소탄두가 장착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016년 1월 12일 <조선중앙통신사>는 ‘병진에 터쳐올린 정의의 폭음’이라는 제목의 논평기사에서 “우리는 소형화, 표준화, 규격화된 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까지 완전무결하게 장비하게 되었으며 다종의 핵탄들을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제한없이 운반할 수 있는 최첨단타격수단들을 그쯘히 갖추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사진 8>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핵배낭이나 북극성-1호는 전형적인 비대칭무기들이다. 전시에 전개될 작전상황을 예상하면, 남진갱도를 통해 은밀히 침투한 조선인민군 특수전병력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폭파하는 비대칭전에서 핵배낭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수중에서 은밀히 접근한 전략잠수함이 주한미국군기지 폭파에 보복하려는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할 때 북극성-1호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조선이 2010년 5월 12일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한 수소탄개발시험에 성공하고, 2013년 7월 27일 20톤급 전술핵탄으로 무장한 핵배낭부대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고, 2015년 5월 8일 20톤급 핵탄을 기폭제로 내장한 수소탄두를 장착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쏘아올린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고, 2016년 1월 6일 50킬로톤급 수소탄시험에 성공한 일련의 과정은 지난 5년 동안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되어왔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의 핵과학자들,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이 수소탄개발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을 부정하였고, 조선이 핵배낭부대를 공개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고, 조선이 북극성-1호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고, 조선이 수소탄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다. 조선이 핵무력증강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들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처럼 무조건 부정으로 일관해온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시작된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이 지난 10여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로 완성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한반도 군사정세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4. 다시 읽어보아야 할 조국통일유훈과 2016년도 신년사


조선에서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강조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선에서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말로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선이 국가적 과업으로 추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구체적인 의미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남북해외 각계각층 대표들이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통일회담을 열어 평화통일방도를 합의하고 그것을 즉각 실행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조선이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지만, 그것은 철군반대론자들이 꾸며낸 기만에 우롱당한 결과다. 현실은 그런 우려와는 정반대로 전개될 것이다. 이를테면,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공고화될 것이므로 주한미국군 철수 이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한 전민족적인 통일회담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기 조선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핵협상도 진행하였고,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과 민족통일대회도 진행하였다. 그러나 조미핵협상의 성과로 나온 제네바 기본합의와 9.19공동성명,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나온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일방적인 파기행위에 의해 실행될 수 없게 되었다.   

 

▲ <사진 9> 이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행진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전차의 앞쪽을 확대한 사진이다. 이 사진에 보이는 전차는 조선에서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라고 부르는 전차다. 그 전차의 앞쪽에 '일당백'이라는 구호와 함께 '조선인민의 철전치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가 나란히 적혀있다. 이 전투구호는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모든 군사장비들에 적혀있다. 조선의 조국통일통일전략에 따르면,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하는 조국통일대전"과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실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은 상호모순되는 대립물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한반도 정세에 미증유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정세변화의 폭발적 전개과정이라고 한다.     © 자주시보


이처럼 극도로 악화된 정세는 조선에서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라고 극렬히 비난하며 적대시하는 미국군이 한국(조선에서는 남조선)에 주둔하는 한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없으므로, “최후결전을 벌여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해야” 남과 북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그들의 기존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어주었다. 오늘날 그런 확신을 지닌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하는 조국통일대전”과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으로 실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은 상호모순되는 대립물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한반도 정세에 미증유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정세변화의 폭발적 전개과정으로 보이게 된다. 조국통일문제에 대한 조선의 그런 관점과 견해를 파악할 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여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라는 유훈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진 9>


조선의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에서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은 어떤 정치선언이나 결의표명이 아니라, 국력을 집중하여 하루빨리 관철해야 할 최고당면과업이다. 예컨대 일본의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03년 1월호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이나 2013년 8월 <동아일보>에 보도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전시사업세칙’ 요약본을 읽어보면, 그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 선군절을 맞은 2012년 8월 25일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때때로 공언하는 것은 어떤 정치선언이나 결의표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통일대전으로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을 하루빨리 관철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조선이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았을 때 피동적으로 전개할 반침략전쟁이 아니라,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결정적인 시기’에 주동적으로 전개할 유훈관철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 조국통일대전이 하루빨리 관철해야 할 유훈과업으로 제시되었어도, 그 전쟁에서 승리할 조건이 갖춰져야 유훈과업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피차 국운을 걸고 격돌하게 될 전쟁은 재래식 전쟁이 아니라 핵전쟁으로 될 것이므로, 조선은 핵전쟁으로 전개될 자기의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확실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문제를 군사학적 견지에서 살펴보면, 조선이 갖춰야 할 조건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 조건은 공격징후를 교전상대에게 노출하지 않으면서 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선제기습타격, 초정밀타격을 벼락 같이 집중하여 교전상대를 단숨에 제압할 초단기속결전 준비를 완료하는 것이고, 둘째 조건은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포위공격을 받아 궤멸되는 경우 그에 격노한 미국이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을 파병하고 보복핵타격을 감행하게 되는 확전상황을 즉각적으로 차단, 억제할 전략적 타격수단을 보유하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발표한, 군사정세를 분석한 많은 글들에서 거듭 논해온 것처럼, 지금 조선은 위에서 언급한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를테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초정밀타격력을 지닌 핵탄장착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가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고, 조선인민군 잠수함부대가 수소탄두를 장착하는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성공하고, 조선의 군수공업부가 만든 시험용 수소탄의 폭발시험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두 가지 조건이 마침내 완비되었음을 실증해준 사변들이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하면, 지금 조선에게는 그들이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택하는 일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길게 서술한 내용을 이해한 뒤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6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침략자, 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한 정의의 성전, 조국통일대전으로 단호히 대답해나설 것”이라고 단언하였고, 그로부터 이틀 뒤 수소탄시험 최종명령서에 수표하였고, 다시 그로부터 사흘 뒤 인민무력부에서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6년 1월 9일 인민무력부 회의실에서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을 때, 현장에서 연설을 경청한 사람들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지휘성원들”이었다. <사진 10>

 

▲ <사진 10>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6년 1월 9일 인민무력부를 방문하고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자리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지휘성원들"이 참석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한 직후, 인민무력부를 방문하여 중대한 연설을 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구실로 조선을 자극하면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시보


다른 나라 대통령들이 새해벽두에 발표하는 의례적인 연두교서는 추상적인 언사로 장식되지만,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새해 첫날 발표하는 신년사에는 해당년도에 조선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방침과 과업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전군과 전민이 신년사를 학습하고, 거기에 제시된 방침과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한 해 동안 힘쓰는 것이다. 더욱이 조선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역사적인 정치회합’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는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발표된 신년사는 그 대회를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과 과업이 제시된 것으로 하여 특별하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특별한 신년사에서 조국통일대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수소탄시험을 명령하고, 계속하여 인민무력부에서 중요한 연설을 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구실로 조선을 자극하면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도 지금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조선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자극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중이다. 조선이 그러한 물리적, 심리적 자극을 도발행위와 적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조선외무성은 2016년 1월 15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이러한 도발행위들과 적대행위들은 조선반도에서 정세를 격화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코 불꽃이 튀게 할 것이다. 일단 화약고에 불이 당겨 폭발하게 되면 그 후과에 대한 책임은 도화선을 늘이고 불을 단 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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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70만원만 벌었으면” 청년 절반 근로빈곤 위기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⑤ “딱 170만원만 벌었으면” 청년 절반 근로빈곤 위기
등록 :2016-01-17 19:16수정 :2016-01-18 11:15

 

지난 7일 안정애(가명)씨가 경기도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의 장사를 돕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A  data-cke-saved-href="mailto:bong9@hani.co.kr"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지난 7일 안정애(가명)씨가 경기도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의 장사를 돕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bong9@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
방과후교사·안내원·공장…
일해도 가난한 정애씨 
해외여행 한번 가보는게 꿈
지난 7일 경기도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안정애(가명·28)씨가 손님들에게 떡볶이를 덜어주고 있다. 포차 안쪽의 오뎅통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 정애씨의 부모님이 보인다. 부모님의 포장마차는 밤 9시 무렵이 가장 붐빈다. 그는 종종 퇴근 뒤 이곳에 들러 일을 돕는다.

 

수도권 전문대를 졸업한 정애씨는 한 공공기관 안내데스크에서 일한다. 한달에 130만원을 받는 파견사원이다. 2009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정애씨는 그동안 다섯 군데나 회사를 옮겼다. 방과후교사(월급 70만원)→백화점 카드고객센터(월급 130만원)→공공기관 고객안내(월급 120만원)→살충제 생산공장(시급 5580원) 등을 전전했는데 모두 계약직이나 파견직이었다. 정애씨는 “200만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달에 딱 170만원만 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보는 게 꿈이다. 아직 여권을 만들어본 적도 없다.

 

네 식구인 정애씨 가족의 월소득은 정애씨 월급에 부모님의 포장마차 수입 150만원을 합쳐 280만원 정도다. 정애씨보다 두살 어린 여동생은 대학을 나온 뒤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둔 뒤 몇달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50대 중반인 정애씨 아버지는 “애들 대학 보낼 때만 해도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몇해 전까지 식당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뒤 포장마차를 차렸다. 지난해 정애씨네는 갑자기 1억원의 빚까지 지게 됐다. 월세를 21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가족은 정애씨가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니다.

 

정애씨는 우리 사회 ‘가난한 청년’의 전형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말 작성한 ‘청년 근로빈곤 사례 연구’ 보고서(초안)를 보면, 19~34살 청년층 가운데 ‘근로빈곤 위기계층’이 47.4%(2013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취업자, 실업자, 취업준비자, 구직활동 포기자 중 중위소득 50% 미만자인 ‘근로빈곤층’이거나, 불안정 취업과 실업의 반복으로 미래에 빈곤해질 징후가 보이는 이들, 즉 임시·일용직과 실업자, 취업준비자, 구직활동 포기자, 무급 가족종사자 등 ‘불안정 근로빈곤 상태’에 있는 이들을 ‘근로빈곤 위기계층’이라고 정의했다.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는 청년들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1990년 33.2%였던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까지 올라갔고 이후 내림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도 70.8%에 이르렀다. 현재 청년세대는 70~80%가 대학을 나왔고 나머지도 거의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고학력 세대’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학력인플레’만 강요했을 뿐,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일자리는 주지 않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통용됐던 것은 지금은 힘들어도 성실히 일하면 월급이 오르고 삶의 기반이 튼튼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때로는 가족들의 빚까지 껴안고, 기약없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떠돌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먼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학자금대출 ‘빚의 시작’…“돈 벌어도 내돈이 아냐”

 

지난 7일 안정애씨가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는 모습.(위) 이승철씨가 지난 9일 서울 마포의 옥탑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아래)  한영수씨가 지난 8일 지방의 한 호텔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아래)  김봉규 김경호 선임기자 <A  data-cke-saved-href="mailto:bong9@hani.co.kr"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한영수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안정애씨가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는 모습.(위) 이승철씨가 지난 9일 서울 마포의 옥탑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아래) 한영수씨가 지난 8일 지방의 한 호텔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아래) 김봉규 김경호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영수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8년 일해도 월급은 130만원 정애씨가 8년째 회사를 다니면서 받는 월급 130만원은 최저임금(월 126만원가량, 주 40시간 근무 기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올해 기준으로 1인가구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은 162만원이다. 빈곤선인 중위소득 50%보다 아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실직이나 질병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정애씨는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밀려날 수 있다.

 

 

‘불안정 노동’ 정애씨

 

8년 일해도 월급은 130만원
비정규 탈출못해 ‘빈곤의 늪’

 

 

빚에 짓눌린 승철씨

 

학자금대출에 신용대출까지
“결혼? 또 빚내는 일은 절대 안해”

 

 

‘가난 대물림’ 영수씨

 

190만원중 100만원 가족 부양
“햄버거 사 먹는게 유일한 사치”

 

 

정애씨의 첫 일자리는 초등학생을 돌보는 방과후 교사였다. 하루 5시간씩 일하고 한달 70만원을 받았다.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미련없이 다른 곳을 알아봤다. 남들처럼 하루 8시간 일하고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싶었다.

 

두번째 직장인 한 백화점의 카드고객센터에선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고객들을 응대하는 일을 했다.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나온 파견회사를 통해 들어갔다. 명절이 되면 카드회원을 직원 1인당 4~5명씩 늘려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월급은 130만원으로 시작해, 6개월마다 5만원씩 올려줬다. 정애씨는 “그나마 여기서 일할 때는 여름휴가비도 5만원 정도 나왔고 명절 선물도 줬다. 지금 회사에선 추석에 김이나 참치세트도 안 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는 파견회사가 3년마다 교체되는데, 이번 회사는 “월급이 짜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구내식당에서 먹는 점심식사비도 대주지 않는다. 월급에서 고스란히 8만원가량이 나간다.

 

1년8개월 만에 정애씨는 다시 일을 그만뒀다. 백화점은 2년이 지나면 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을 채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랬다. 이후 들어간 곳은 지금 일하는 곳과는 또 다른 공공기관이었다. 한달 120만원을 받으며 2년 가까이 일했다. 2년이 가까워오자 역시 그만둬야 했다. 일하는 동안에 2년을 다 채우고 정규직이 된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해엔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도 일했다. 바퀴벌레 살충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제품포장 업무를 맡았다. 최저시급 5580원(2015년 기준)과 주휴수당만 달랑 주는 곳이었다. 정애씨는 “일이 있으면 나가고 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 불규칙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2주씩 혹은 한달씩 일이 몰릴 때만 일하는 파견사원이었다.

 

정애씨는 ‘서비스 매니저’(고객 관련 업무를 분석·관리하는 일)로 경력을 쌓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업할 때 그런 지원 동기를 물어보는 곳은 없었다. 그는 “회사를 너무 많이 옮기다 보니 사람이 점점 소심해지고 내가 부적응자인가 싶은 자책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애씨는 앞으로 퇴근 뒤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남자친구와 늦어도 4년 뒤에 결혼을 하고 싶어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저축’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대략 계산해보니 한달에 70만원정도는 적금을 들어야 결혼을 할 수 있겠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층 절반가량이 ‘근로빈곤 위기계층’으로 분류된 가장 주된 원인은 불안정 노동으로 첫 일자리를 얻은 이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15년 8월)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대 임금근로자(348만4천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45.9%(160만명)에 이른다. 비정규직은 일자리가 불안정할 뿐 아니라 임금 수준도 낮다. 정규직의 절반 수준(49.8%)이다. 정애씨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임금 수준은 시간이 흘러도 오르지 않는다. 취업, 결혼, 출산, 내집 마련 등의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밟기 어렵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노인·장애인 등 근로능력이 없는 이들에 대한 빈곤 개념만 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 개념이 생겨났다”며 “우리나라의 근로빈곤은 저임금 고용(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이 비중이 국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90년대 초반까지 낮아지다가 외환위기 이후 다시 높아진 저임금 고용 비중은 현재 80년대 후반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15년 8월)를 바탕으로, 청년층(15~29살·시간당 임금 기준) 저임금 고용 비중은 28.1%에 이른다. 이 비율을 국제비교 기준인 15~24살로 보면 46.1%나 된다.

 

■ 빚으로 산 대학졸업장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지게 된 학자금 대출은 청년들이 가난에 허덕이게 되는 또다른 이유다. 경북지역에서 대학을 다닌 이승철(가명·32)씨는 8학기 내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미디어유통 분야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는 그는 한달 200만원을 벌어서 원리금 상환에만 70만원을 쓴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1200만원의 빚을 더 갚아야 한다. 그는 “이제 절반 정도 갚았다”고 말했다.

 

 몇해 전 “집 사는 데 돈이 부족하다”는 어머니에게 4천만원을 신용대출로 받아 드리면서 학자금 대출 상환은 더 늦어지고 있다. 승철씨는 “돈을 벌어도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월급을 받으면 방세와 원리금 상환을 위한 돈을 떼어놓은 뒤 신용카드 선결제부터 신청한다. 그래야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대출을 받고 싶지 않아 적자가 날 것 같은 달엔 식비를 줄인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거나 삼각김밥을 사먹는다.

 

 승철씨는 3평(10㎡)이 채 안 되는 옥탑방 안에 등산용 텐트를 쳐놓고 산다. 그냥 자면 너무 춥기 때문에 외풍을 막으려고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서른을 넘긴 그는 결혼·출산 계획이 없다. 그는 “빚을 또 내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35살 이하 청년들의 대출 최초 발생 원인(2013년 토닥토닥협동조합 조사)을 보면, 학자금 대출이 44%로 가장 높다. 학자금 대출 상환을 여섯달 이상 밀린 신용유의자 규모도 2007년 3785명에서 2014년 4만635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한국장학재단 자료)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을 나왔지만 이를 상환하고 저축을 할 만한 안정적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빈곤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2014년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 분석)를 보면, 4년제 대졸자 하위 20%와 2년제 대졸자 하위 50%는 고등학교 졸업자에 견줘서도 임금이 낮다. ‘대졸 빈곤층’이 양산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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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마저 어려우면… 가족부양까지 병행해야 할 경우 청년은 더 가난해진다. 수도권 3년제 대학을 나온 뒤 제주도의 한 중소호텔 시설관리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한영수(가명·25)씨는 한달에 190만원을 벌어 100만원을 집으로 보낸다. 빌딩 청소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다친 아버지의 병원비도 보태야 한다. 집에는 빚도 있다.

 

영수씨는 주야간 교대제로 고된 일을 한다. 길게는 하루 15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회사는 야근수당을 통상임금의 1.5배가 아닌 1.25배만 준다. 호텔 쪽은 “다른 호텔과 다르게, 파견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해주니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호텔업계에서 계약직이나마 신입사원을 직접 채용해주는 일은 많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가 지난달 쓴 돈은 30만5030원이 전부다. 월급을 받더라도 돈이 들어가는 일은 웬만해선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외식비와 휴대전화 통신비, 교통비 등이 주요 지출내역이다.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본다.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교통비는 4250원만 썼다. 집 앞 맥도날드에서 가끔 사먹는 햄버거가 그에게 최대 사치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기숙사와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오게 됐다. 영수씨는 “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서인지, 돈을 쓰지 않고 사는 일이 그닥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기자가 되는게 꿈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당장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준비는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수씨는 “처음에는 제주도에 내려와서 올레길도 걸어보고 했는데, 요즘은 몸이 피곤해서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마음이 종종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청년층이 대부분 부모와 같이 거주하고 있어서 비정규직 취업이 곧바로 빈곤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가족제도가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가족이 이런 완충역할을 할 수 없거나 오히려 부양해야 하는 경우, 저임금일자리는 곧바로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과 지위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현재 노동시장 상황을 볼 때 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한번 빈곤을 경험하면 다시 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지는 빈곤의 점착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청년 근로빈곤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보연 최우리 기자 whynot@hani.co.kr

 

 

 

[관련기사]

 

▶ 바로 가기 : “나도 낙오자 될 수 있다” 불안에 떠는 청년들 
▶ 바로 가기 : 노인이어 청년 빈곤층 내몰려…미래사회 ‘부메랑’ 된다

 

연재더불어 행복한 세상-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 ① 청년 200인보
  • ② 탈조선 난민들
  • ③ 평생 월세세대의 등장
  • ④ 고용신분제 사회의 서막
  • ⑤ 일해도 가난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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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언론이 나쁜 정치를 만든다


[이완기 칼럼] 정치불신과 진영논리 만드는 언론 자정시켜야
 
입력 : 2016-01-18  09:28:13   노출 : 2016.01.18  09:55:05

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 media@mediatoday.co.kr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지나던 행인이 이 사람을 발견하고 여기저기 살피더니 “국회의원인데 이미 숨이 끊어졌군” 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다. 행인의 말에 놀라 의식을 되찾은 국회의원은 행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행인은 “요즘 국회의원의 말을 누가 믿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정치인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담은 씁쓸한 우스갯소리다.

20대 국회의 선량들을 뽑는 총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180석을 넘을 확률이 80%라는 전망이 발표된 가운데, 약체 야당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야당 지지자들은 그마저도 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는 현실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이 가져올 가장 큰 위험은, 극도의 정치 불신과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되고 장기화될 뿐 아니라 그 폐해가 고스란히 유권자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선거는 민주적인 권리행사의 소중한 기회이며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정치수단이다. 물론 선거만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공표된 후보자들의 공약이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폐기되는 일을 숱하게 보아왔고, 급기야는 정치인들의 불통과 독단으로 심화되어 왔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유권자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이러한 정치행태에 대해 감시와 저항이 제대로 표출되었다면 오늘의 정치가 이처럼 국민을 외면하는 관성화된 독재로 퇴락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 국회 본관. ⓒ 연합뉴스
 

어찌되었든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 정치심판의 시점에서 건강한 민주주의 정치풍토를 만들어내는 첫걸음은 유권자들 스스로 선거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것이리라. 국민이 정치를 무시하면 국민 또한 정치로부터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 하더라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주어진 여건에서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길이다. 혹자는 선택을 포기하는 것도 중요한 정치적 의사표명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것과 기권을 하더라도 투표장에 나와 투표인명부에 서명하고 기권표를 행사하는 것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후자는 이 천박한 정치상황을 유권자가 주시하고 있음을 정치인들에게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정치인들의 나쁜 습속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무관심이 만들어준 결과다. 정치권 인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병역비리,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인사청탁, 논문표절 등 추한 정치인들의 행렬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부족했고 선거를 통해 이를 심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치현실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져 마침내 정치를 더러운 자들끼리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왔다. 국민의 무서운 감시의 눈이 있다면 ‘하는 척’이라도 했을 정치인들이 이제는 아예 국민의 눈을 외면하고 유체이탈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안하무인의 뻔뻔스런 작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배경에는 극도로 기울어진 언론지형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선거 때마다 언론은 제대로 된 후보자 정보로 참과 거짓을 가려 대중에게 알리기보다는 “모두가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갔다. 그런 언론보도는 정치불신과 함께 정치적 무관심을 조성함으로써 선거가 끈끈하게 짜여진 진영에 의해 결판나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중과 정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건강하고 객관적인 여론 형성자로서의 지위를 팽개친 채 정파와 이념에 갇힌 패거리 진영의 한 축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다.

진영문화는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기고 지는 것 외에 어떤 가치도 발붙일 틈이 없는 진영문화는 과거 오랜 군부독재정권하에서 파생됐다. 진영문화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약화되는 듯 했다가 군부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집권하면서 매우 깊이 뿌리내렸다. 아무런 가치 기준도 없이 진박, 친박, 중박, 비박, 탈박 등의 해괴한 말들이 횡행하는 것은 바로 이런 천박한 진영문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진영문화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적을 제압하기 위해 온갖 기만술과 선전술, 파괴 공작 등이 동원된다는 점에서 정의와 진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문화와 동거할 수 없다.

선거정국에서 언론의 불편부당과 균형보도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언론이 지키고 경계해야 할 원칙들은 이 외에도 많다. 후보자들이 현재 하고 있는 말과 선전에만 의존하지 않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알려주는 것 또한 언론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야 그들이 하는 말의 진정성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했다”는 식으로 후보자의 말을 경마 중계하듯 보도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진위를 따지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언론은 정치 불신을 야기하는 후보자들 간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유권자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선심성 공약에 대해서도 재원확보의 가능성, 정책의 타당성 등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월14일 총선 90일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시민단체 및 언론현업단체 등 총 28개 단체가 참여한 ‘2016총선보도감시연대’(총감연)가 출범했다. 지금 이들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오늘의 퇴락한 언론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단순한 보도감시를 넘어 편향보도에 대한 행동지침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총감연은 발족 기자회견문에서 “언론이 전달하는 정보는 유권자들이 지지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하고 “국민은 언론에 올바른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총감연은 언론에 대한 모니터 결과를 언론사에 배포하고 공개할 뿐 아니라 극심한 편향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제소함으로써 언론사와 해당 언론인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더 공정한 언론, 더 성숙한 선거,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다짐한 총감연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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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쇠귀(牛耳) 신영복 선생님 영전에

 
[추도사] 꽃처럼, 바람처럼 가버린 선생께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2016.01.17 20:11:36

 

찬바람 몰아치는 이 겨울의 한 가운데, 갑자기 불어온 한 줄기 삭풍이 우리의 귓전을 세차게 때리고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큰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고, 이 사회의 모든 힘든 영혼들, 춥고 외로워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달래주던 신영복 선생님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2년 전 무렵 선생님이 몹씁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으나 곧 외국에서 좋은 약을 구해 치료를 받으신다는 희망섞인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병마는 결국 신영복 선생님을 우리들 옆에 그냥 두지 않고 매정하게 저승으로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20년을 보냈기 때문에 세상 나이에서는 20년을 빼야한다"고 늘 농담처럼 말씀하셨죠. 60대 초까지도 거의 20여년 아래 동료 교수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건강하시니 90세까지는 너끈히 사시겠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보다 20년 더 사셔야 그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길어야 하루 2시간 동안, 그 것도 한 장의 신문지 정도의 햇빛만 누릴 수 있었던 그 20년의 감옥 생활이 이런 희귀병의 원인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통일혁명당, 전향공작, 사상범,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 그리고 20년의 유폐는 분단 냉전 시대를 숨죽이고 살아온 한국의 보통사람들의 일상과는 저 먼 곳에 있는 참으로 무거운 과거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체제비판적인 청년학생 조직의 리더였던 선생님을 '북괴'의 지령을 받은 통혁당 핵심으로 조직도 내에 그려 넣었고, 선생님은 20세기 다른 어떤 독재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혹독하고 값비싼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런 무서운 죄목으로 사형수가 된 순간 이웃과 세상은 선생님을 기억에서 지우고 선생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완강히 부인했으며, 88년 특사로 풀려난 이후에도 과거의 인연을 맺고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피했습니다.  

그러나 <평화신문>이 선생님이 감옥에서 고뇌의 극한에서 한자 한자 박아내듯이 써 내려간 편지들을 소개해 주었고, 성공회대의 이재정 총장님이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선생님을 교수로 초빙하게 되어, 선생님은 20년의 고통에 대해 약간의 위로와 보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열을 거쳐야했던 엽서, 한 달 동안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다듬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적어 내려간 바로 그 엽서 한 장에 빽빽이 담긴 선생님의 보석처럼 빛나는 언어가 세상 사람들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0의 중년이 되어서야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옥중 일기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명 구절들은 세상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보낸 3,40대의 그 아까운 시간들을 되돌려 받을 수는 없었지만, 서화작가로서, 문필가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토해낸 나지막하지만 강한 목소리는 고단한 대중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경제학도가 '대역죄인'으로 몰려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또 앞을 기약할 수 없는 무기수가 되었을 때, 선생님의 느낀 절망감이 어땠을까요?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고 또 다른 10년을 거의 채울 나이가 되어, 20대 말의 청춘이 40대 말의 중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가졌을 참담함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선생님은 이 혹독한 시절을 거치면서 개념과 이론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회과학자에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진실을 이끌어내는 사상가로 거듭났습니다. 선생님께 감옥은 '머리보다는 가슴을', '가슴보다는 발로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 최고의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출옥 후에도 청춘 20년을 앗아간 독재정권에 대해 원망과 분노를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분노와 적의 대신에 촌철살인의 농담과 비유로 세상을 비판했고, 유머로 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조선시대 선비같은 정갈함과 품격을 보이시면서도, 엄격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가슴을 꽝 때리는 탁월한 비유와 적확한 언어, 깊은 성찰 없이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수많은 경구들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준 부드러움은 바로 본인이 겪었을 그 아픔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이었습니다. 

"평시였다면 재상감이다". 같은 사건으로 징역을 살았던 가까운 동료가 오래 전에 선생님을 이렇게 평가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청춘기, 그리고 후배, 제자 세대인 우리의 청춘기 였던 7,80년대 한국은 사실상의 전쟁 국가였습니다. 북한을 쳐부숴서 부자나라로 만들자는 반공주의와 물질지상주의는 맑은 영혼을 가진 자유인들의 꿈을 여지없기 꺾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뒤집어진 세상에서는 감옥 가거나 정치적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 중에 참 인간을 더 많이 차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식견과 인격을 갖춘 젊은이들을 고문, 투옥하고 그들의 정신을 파괴한 그런 정권과 비정한 권력이 오늘의 '헬 조선'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감옥보다 더 감옥같은 이 사회에 대해 내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불모의 냉전 분단체제의 희생자가 되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펼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와 서화에 감명과 위로를 받고 마음속으로 선생님을 흠모해온 수백만의 동시대의 한국인들이 지금 선생님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조문을 하려고 줄을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죽어도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한다"는 선생님의 유언처럼, 수십, 수백만의 사람이 선생님의 말과 서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바꾸었고, '더불어 숲'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고, '존재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삶을 살려하기 때문입니다. 

이 추운 겨울, 선생님은 '꽃처럼 바람처럼' 훌쩍 가버렸습니다.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미련없이 스스로 곡기를 끊으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떠난 이 땅에서 장차 우리는 문사철(文史哲)의 '언어'만이 아닌 시서화(詩書畵)의 '아름다움'으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식인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잎사귀가 아닌 뼈대를 직시할 줄 알고, '석과불식'(碩果不食), 즉 씨 과일은 남겨두어 내년의 풍성한 과일을 생산하는 기반으로 삼는다는 정신으로 미래 시대를 키워낼 수 있는 스승을 다시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강철같이 단단하면서도 물처럼 부드럽고,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한 어른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언제나 제 연구실 앞을 지나면서 "어, 김 선생 나왔네?"라고 하면서 지나가던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된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쓰러져 눕기 직전인 지난 10월 중순에 저의 책 <대한민국은 왜>를 읽고 보내주신 추천사는 선생님이 저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자, 선생님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징역살이 20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70대 중반의 타계가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출옥 후 남겨놓은 수많은 정제된 말들과 깔끔한 서화의 세례를 마음껏 받고, 또 연구실을 마주한 직장 동료, 후배로서 가까이 지내며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성공회대 노동 아카데미를 함께 시작한 일, 그리고 같은 사회과학부의 교수로 보낼 수 있었던 20여년의 시간이 저에는 더 없는 행운이었고 큰 영광이었습니다. 


남겨놓은 말들을 새기면서 남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마지막 강의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담론을 만들고 주체를 길러내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고문 없고 사상탄압 없는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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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뉴스 브리핑] 1.18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1/18 10:52
  • 수정일
    2016/01/18 10: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2년 대선무효 소송 3년째 심리…대법 ‘180일 이내 처리’ 어겨

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 선거무효소송인단, 새날희망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제18대 대통령선거 무효소송제기 3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소송 속행과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1. 18대 대선 무효소송이 제기된 지 3년 넘도록 법원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송인단은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을 무효로 해달라는 신청도 제출해 판결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8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법을 대법원이 어기고 있으니... 이러다 이 정권 끝나야 판결하는 거 아냐?

2. 누리과정 예산 편성 논란 관련 시위를 주도하거나 시도교육감들을 무더기 고발한 유치원·보육 단체장들이 새누리당 당원으로 활동해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음재 한국유치원 연합회 경기도회장은 지난해 새누리당 중책을 맡아온 사실이 처음 드러났습니다.
나중에 뭐 한자리 하실 모양입니다. 근데 그거 불법인 건 알지?

3. 항공 기술자들이 여객기 추락 사고로부터 승객 모두를 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항공 공학기술팀이 긴급상황 발생 시 객실이 통째로 분리되는 여객기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딱 좋기는 한데... 만들어지기는 할라나?

4.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인 차지철 경호실장의 딸이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기회를 달라'고 한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차 경호실장의 딸이 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국민 수천명쯤 탱크로 밀어버리자는 양반이 국가유공자? 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이건 아니지~

5. 최근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아 논란이 됐던 가운데, 경기도 성남시 서민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청소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휴식 시간도 늘리기로 한 결정한 사실이 대비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장님만 멋진 게 아니라 성남 사는 시민들도 멋지시네... 사람 사는 게 이런 게 아닌가 말이지~

6. 2015년 한 해 87만2천대의 자동차가 늘어 우리나라의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가 2천100만대에 육박했습니다.
국민 2.46명당 자동차 1대씩을 보유하는 셈입니다.
어쩐지 차가 많이 막히더라. 근데 나는 왜 차가 없지?

7. 16일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이 지난 두 달여 간 사회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시청률과 수익에서 모두 케이블의 역사를 새롭게 썼고, 사회 전반에 걸쳐 1980년대 복고바람을 거세게 불러일으켰습니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모습.. 근데 88년에 정말 그랬나? 아닌 거 같은데...

8. 성관계 후 급히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을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방안을 두고 당국이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2012년 복지부와 식약처가 일반의약품 전환을 추진한 적이 있었지만, 의료계·종교계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여성 건강을 생각한 방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요.

9. 지난해 수명을 다하거나 화재 등으로 훼손된 화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폐기한 손상 화폐 중 지폐는 3조3천939억 원, 동전은 16억 원으로 이를 새 돈으로 바꾸는데 들어간 비용만 563억 원이 들었습니다.
돈 벌기 힘드시죠? 그만큼 아끼고 소중하게 쓰는 것도 세금을 아끼는 길입니다. 그쵸?

10. 1주일에 3회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당장은 정상 혈압이라도 1~2년이 지나면 고혈압이 발생할 확률이 무려 80%가량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술 안 마셔서 혈압 오르는건 어떡하지? 술 좀 안땡기게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11.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 들어 3대 세습체제 강화를 위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지도자 관련 과목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어 교육이 강조되고 교과서 형식과 내용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려는 경향도 발견됐습니다.
국제적 기준 따른다고 북한이 국정화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우리 꼴이 말이 아닌데 말야.

12. 창업 111년, 국내 대표 장수기업인 몽고식품이 2세 경영인인 김만식 전 명예회장의 직원 폭행 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을’들의 반격으로 매출이 반 토막 났다고 합니다.
기업의 갑질은 불매운동으로 정치인의 갑질은 표로 심판해야 합니다. 꼭 기억했다 잊지 말고 투표하는 걸로~

   
▲ 지난해 12월28일 오후 2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몽고식품 창원공장 강당에서 김현승 대표이사가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근 부친인 김만식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및 폭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13.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6,030원으로 올랐지만, 대학생들이 학업과 병행하며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적은 금액입니다. 
최저임금대로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22일간 일했을 때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월 106만 원 수준입니다.
그나마도 띠어 먹는 양반들이 있다죠? 제발 법 좀 지키고 살자고요.

14. 불황 속 '풍요'라고 오히려 사람들이 더 빈번하게 문을 두드리는 곳이 '점집'이라고 합니다. 
대학가 주변에서 저렴한 가격에 사주나 타로점을 봐주는 이른바 '사주카페'는 문턱이 닳을 정도로 취업, 연애 등 '생활'이 불안전한 젊은 청년들의 '상담소'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재미로 한 두 번은 몰라도 점에 목메지 마세요... 점점 일이 커질지 모릅니다.

15. 국세청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을 공개해 거둔 현금징수 실적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천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왜? 세상에 이름 알리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이럴 때 이름 좀 남기시지 그러셨어~

16. '응팔'의 동룡이가 4,720번 봤다는 영화 '영웅본색'이 재개봉됩니다.
영웅본색'이 개봉 30주년을 맞이해 오는 2월 18일 H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개봉된다고 합니다.
또 이쑤시개 물고 다니는 사람들 좀 생기겠는 걸~ 그때 그 감동이 있을라나 몰라~

17. 손톱과 피부 관리를 정기적으로 받는 남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선 남성의 30%가 손톱 관리를 받는다고 합니다.
생각 보다 여성들이 남자의 손톱을 많이 본다고 하네요... 하긴 때 낀 손톱을 누군들 좋아하겠어요... 청결하게~

18. 병무청이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에게 '신검 통지서'를 발송해 논란입니다.
죽은 아들의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고 가족은 밤새 울었다고 합니다.
전산으로 일괄적으로 보내는 거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작은 배려가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걸 못 해주나 그래~

19. 경기 화성의 한 빌라 4층 침대 위에서 누나들과 뛰어놀던 6세 남자아이가 균형을 잃고 창밖으로 추락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침대 위치에도 신경을 써야겠어요.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자나요~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진 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를 찾은 한 시민이 추모객들이 적어놓은 엽서를 읽어보고 있다.영결식은 18일 11시에 대학성당에서 거행되며, 고 신영복 교수는 지난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지난 15일 끝내 별세했다. 향년 75세. <사진제공=뉴시스>

20. 신영복 교수의 유작 '처음처럼’ 개정판이 다음 달 출간된답니다. 
한국군이 학살한 베트남 피해자를 위로하는 동상이 설치된답니다. 
험지 출마 논란 속 안대희·오세훈이 결국 마포와 종로에 출마한답니다. 
금융당국이 설을 앞두고 대부업의 상한금리에 대한 점검에 들어갑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예멘을 5:0으로 꺾고 2연승을 거뒀습니다. 
겨울 가뭄으로 앞으로 300mm 정도의 비나 눈이 와야 봄 농사를 짓는답니다.

월요일인 오늘은 전국이 대체로 흐리면서 눈이 오고 강한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고 운전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월요일부터 움츠리지 마시고 어깨 피고 힘차게 출발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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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간 화해”

[특별인터뷰]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간 화해”

“당사국들 조건없는 탐색적 대화 통해 해결점 찾아야...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평화적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간의 화해(reconciliztion)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국가정보국(DNI)의 북한 담당관과 비확산센터 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5년 이른바 ‘9.19 공동성명’에 미국 측 차석대표로도 참가한 조지프 디트라니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북핵 전문가이다. 그가 14일(현지 시각) 민중의소리와 특별 인터뷰를 하면서 북한 4차 핵실험에 따른 해결책에 관한 질의에 내놓은 말이다. 디트라니는 “북한은 더 이상 도발을 포기해야 한다”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현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관계 당사국들의 대화와 협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트라니는 “북한은 이번에 자신들의 핵무기 소형화를 과시하기 위해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고,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책은 합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의 복귀를 통해 지난 2005년에 체결된 ‘9.19 공동성명’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조건없는(unconditional) 대화도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대니얼모건아케데미

디트라니는 특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식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탐색적 회담(exploratory meeting)’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북한이 (북한)비핵화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관계 당사국들도 회담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겠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더욱 많은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는 그것을 멈출 기회도 없었으며, 그들(북)을 비핵화로 진전(move)시키기 위해서도 마주 앉아 서로 상대방을 의중을 탐색(explore)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디트라니는 또 “물론, 북한이 회담장에 나와 비핵화를 논의한다면 그것이 가장 평화적이고 최상의 방법이지만, 현재 그 방법이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평화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만, 첫 번째 일은 남북한 간의 화해”라며 “그것이 당장 실현될 수는 없는 일일지라도, 가장 빠르게 추구해야 할 목표(objective)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과의 핵 긴장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조지프 디트라니는 얼마 전 사망한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보즈워즈와 함께 오바마 1기 내각에서 실무적으로 북한 정책을 총괄한 인물이다. 그는 재임 시절 수차례 공식 및 비공식 혹은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북미협상을 주도했다. 퇴임 후에도 북미 간에 ‘민간 대화’와 이른바 ‘1.5 트랙(반관반민) 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현재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출신 교수진이 미래의 정보요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대니얼모건아카데미’의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민중의소리는 디트라니 총장과 14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인터뷰 주요 요지는 아래와 같다.

-질문:북한이 이 시점에서 핵실험을 단행한 이유는?
=답변:북한의 4차 핵실험은 업그레드한 증폭 핵분열탄 실험으로 보이며, 북한이 국제사회에 그들이 계속해서 핵무기 능력을 개선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소형화 능력을 포함해 꾸준히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미 백악관 등 미국 정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른바 ‘전략적 인내’에 기반을 둔 기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관한 입장은?
=미국의 대응은 합당하고 정확하다.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고 지난 2013년처럼 이러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더 제재가 부과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한다면 안전 보장과 여러 가지에 대한 협의를 준비해 왔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무기 감축 협상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을 추진해 왔다.

비핵화를 위해서라도 대화를 해야

-귀하는 지난해에도 “북한을 무시하고 협상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것은 비현실적(unrealistic)”이라고 말해 왔는데. 조건 없는 6자회담을 하자는 것인가?
=비핵화를 위해서라도 탐색적이고 조건 없는 대화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지난 2005년의 ‘9.19 공동성명’에 부합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식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탐색적 회담(exploratory meeting)’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6자회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물론 북한이 (북한)비핵화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관계 당사국들도 회담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겠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더욱 많은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최근까지 그것을 멈출 기회도 없었으며, 그들(북)을 비핵화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도 마주 앉아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미국의소리 유투브 캡처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물론, 북한이 회담장에 나와 비핵화를 논의한다면 그것이 가장 평화적이고 최상의 방법이지만, 현재 그 방법이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평화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만, 첫 번째 일은 남북한 간의 화해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북한은 더 이상 도발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화해)이 당장 실현될 수는 없는 일일지라도, 가장 빠르게 추구해야 할 목표가 돼야 한다.

-비밀 방북을 포함해 여러 번 방북한 것으로 알고 있다. 평양에 대한 인상은?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처해있다. 특히 지방은 더하다. 식량과 의료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들 지도자도 보고되는 일부 개발을 가지고 경제 발전을 자주 말한다. 세계는 단지 새로운 빌딩이나 놀이 센터 등 평양의 시각으로 북한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북한 전체 모습(comprehensive picture)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급속한 붕괴도 주장하는데, 북한의 근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정은은 4년째 집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모부와 군부 장성 등 많은 고위 관료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그가 권좌에서 (확실히) 실권을 쥐고(calling the shots)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나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에게 충고할 말이 있다면?
=북한은 직접적이든, 중국을 통하든 지난 ‘9.19 공동성명’에 부합해서 6자회담의 전개와 조건없는 비핵화 회담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정부에 대한 충고가 있다면?
=만일 북한이 그러한 회담에 들어 온다면, 한국 정부와 다른 회담 당사국들도 그러한 협상에 임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나는 한국 국민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남북한 간의 궁극적인(ultimate) 화해로 북한과의 핵 긴장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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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적 조작…당일 세월호 닻 내리고 병풍도 바짝 붙여 항해”

 
김지영 감독 “의문 물체는 닻 내릴 때 쓰는 장비의 기록지…닻은 현재 다 잘린 상태”
 
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세월호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다큐멘터리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는 김지영 감독이 “해군 레이더 항적이 실제 항적”이라며 “세월호가 앵커를 내리고 항해를 했을 때 보이는 현상들과 딱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세월호 앵커는 지금 양쪽이 다 잘려진 상태”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이날 ‘한겨레TV’의 시사탐사쇼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에서 “바다 위에서 일반적인 항해로 나올 있는 항적이 절대 아니고 반드시 병풍도 옆에 와서 앵커를 내리고 갔을 때 보이는 속도 변화와 꺾임이 딱 일치한다”며 ‘앵커(닻)에 의한 침몰설’을 주장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항적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토대로 공개한 항적, 둘라에이스 선장의 증언에 따른 항적, 한겨레신문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해군에 요청에 받은 해군 레이더 기록 등이 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김 감독은 정부와 해군이 제시한 항적이 모두 실제 세월호의 위치와 맞지 않다며 의문점을 제기했다.

진행자 김어준 총수는 “진도VTS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보면 사고 당일 엉터리 숫자를 부른다”며 “이에 둘라에이스 선장이 (교신상에) 등장해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 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문예식 선장은 사고 당일 둘라에이스의 실시간 레이더를 보며 “현재 위치는 34도 11.4분, 125도 57.3분이다”고 지표를 알려줬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정부 발표와 200미터 이상이 차이가 난다”며 “정부의 항적도가 거의 가짜라고 입증하는 좌표”라고 지적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실을 통해 얻은 해군 레이저 자료에 대해 김 감독은 “지그재그 궤적에 갈팡질팡 행적이어서 고민거리였다”며 “군함도 못하는 턴을 한다, 1, 2번에서 45도 이상 꺾이고 3,4번은 거의 90도 가까이 꺾인다. 6천톤급 배는 절대 이런 항적을 만들 수 없다”고 미스테리였음을 토로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해군 레이다 항적에서 이상한 누락구간을 발견했다. 그는 “레이다는 정전이 되지 않는 한 절대 누락될 수 없다”며 “혹시 해군의 이상한 L자 항적들이 진짜라서 삭제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김 총수는 “이에 둘라에이스 선장이 당일 손으로 직접 쓴 항적을 해군 레이다 항적의 위치로 전체 이동시켜 보니 등고선 모양과 묘하게 일치했다”며 “여기서 소름이 끼쳤다”고 추적 상황을 설명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이와 관련 김 감독은 세월호 침몰 당시 ‘없다가 보이고 다시 사라진 하얀 사각 물체’를 분석했다며 “폭이 30센티 정도의 특수지”로 이것을 쓰는 세월호 조타실내 장비는 2001년 단종된 에코사운더였다고 밝혔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김 감독은 “수심 측정기로 언제 사용하는지 항해사와 선장에게 물으니 투묘, 즉 앵커를 내릴 때 쓴다더라”며 “항구 같은 데서 닻을 내릴 때 깊이도 가늠하고 이쯤에 잘 걸릴 수 있나 보기 위해 에코사운더를 켠다”고 말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이어 김어준 총수 “사고 5분간의 분석은 배가 앵커를 내리고 앵커가 걸릴만한 지형도를 따라왔다”면서 “실제 확 꺾인 부분들은 앵커가 걸렸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당시 세월호가 낼 수 있는 거의 최대의 속력을 내고 있었다”며 “풀가동으로 달리고 있는데 앵커를 내리다 보니 마찰이 생겨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졌다”며 느리고 빠른 구간을 설명한 뒤 “본격적으로 꺾이면서 위험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이와 관련 세월호 생존자 화물기사 최은수씨는 인터뷰에서 “세월호의 항로가 평소와 달랐다”며 “세월호가 섬을 받아버리는 줄 알았다”고 부근 섬인 병풍도에 근접해 운항한 사실을 증언했다. 

세월호 사고 이전 1년 동안 한달에 3회 이상 인천에서 제주도를 가는 배를 타왔던 최씨는 “섬을 나뭇가지까지 봤다. 섬의 거의 다 봤다”며 “나는 섬을 받아버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앵커의 현재 상태와 관련 김 감독은 “세월호참사 특조위가 잠수부들을 데리고 수중 촬영을 했는데 앵커 양쪽을 다 잘라 놨다더라”고 전했다.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 <사진=김어준의 파파이스 화면캡처>

관련 12월 15일자 시사IN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유가족들과 11월19일부터 세월호 선체를 수중 촬영한 결과 선체에서 앵커(닻)가 제거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이 앵커는 핵심증거물이라며 ‘증거 훼손’ 의혹을 제기하자 해수부측은 ‘앵커는 무게 때문에 인양에 방해가 된다. 따로 떼어내서 인근 바지선에 보관하고 있다. 작업 전에 가족협의회와 특조위에 전달한 사항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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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군시절, 신영복 선생님이 없었다면...

 

내 삶의 신조를 만들어주신 선생님, 늘 '처음처럼' 살겠습니다

16.01.17 14:42l최종 업데이트 16.01.17 14:4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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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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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마지막 날 나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였다. 수능을 여섯 번 보면서 늦게 대학에 들어간 탓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운동의 언저리(나는 내가 학생운동의 중심부에 섰던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에서 기웃거리다가 대부분의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듯이 늦깎이 입대를 하게 됐다.

군에 입대하기 전 몇 개월 동안을 늦은 나이에 입대한다는 두려움과 2년을 잃어버린다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많은 방황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전역하면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걱정과 '운동권스러운' 과거의 행적들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했다. 더욱이 과거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나에게 '그렇게 운동할 거면 때려치우라'던 동지가 운동을 접고 삼성에 입사했다느니 고시를 본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괴감도 들었다.

나이 많은 노병(?)으로서 또 학생운동을 하던 신분으로 군대에 가니 참 힘든 점이 많았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 선임의 갈굼, 일상 속의 부조리...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는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게다가 군대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매주 수요일 정훈교육 시간에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건국 아버지 이승만' 따위를 가르쳤다. 도서 반입조차 자유롭지 않아서 인문 교양서적이나 시집 정도를 읽으며 지식욕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만약 신영복 선생님을 몰랐다면 아무 생각 없이 군 생활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어느 변절한 정치인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영감을 준 시 '처음처럼'

어찌 감히 신영복 선생님의 20년 옥살이와 내 2년의 군 생활을 비교하겠냐마는 그래도 비교적 같은 처지(?)에 서니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사색을 하셨다면 나는 군대에서 참 많은 사색을 한 것 같다. 불침번을 서면서 또 지휘통제실 근무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신영복 선생님의 시가 있었으니 바로 님의 <처음처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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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세한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고인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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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소주 '처음처럼'의 서체와 가수 안치환씨가 노래로 불러 더욱 유명한 이 시는 군생활과 내 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신조가 되었다. 사단 지휘통제실 앞에서 어느 봄날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이 시를 떠올리던 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의 제목에서처럼, 그리고 나름대로의 사색을 통해 내가 얻은 깨달음은 언제나 다시 초심을 살피자는 것이었다.

일단 당장의 생활에서부터 처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말년 병장이 되어서도 이병 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후임에게 무엇을 시키기보다는 스스로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후임이 있다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가 부족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군다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내가 대학시절 사회를 바라보던 시선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과 세월호 참사는 나를 전역 후에도 노동당과 '진보결집+', 그리고 현재 정의당 당원이 되게 만들었다. 또한 미약하게나마 진보정당 활동을 하며 한국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게끔 만들어준 두 축이 되어주었다. 

신영복 선생님, 편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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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대에 마련된 고 신영복 교수 빈소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빈소가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 마련되었다.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아 투병중, 최근 암이 다른 장기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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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나의 추억이다. 나는 아쉽게도 신영복 선생님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난 15일, 나에게 삶의 신조를 만들어주신 그분이 떠나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살아생전 꼭 만나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작년 김수행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들은 이후라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을 또 한분 잃은 듯한 기분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안치환의 <처음처럼>을 들으며 내 군생활의 큰 힘이 되어주셨고 나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신 신영복 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언제나 처음처럼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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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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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1/17 15:39
  • 수정일
    2016/01/17 15: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간 프레시안 뷰]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2016.01.16 09:48:43 
 

북한의 4차 핵실험에서 분명히 드러난 한 가지는 '우리는 북한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의 신년사 분석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 등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지만 이러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지난 65년간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려온 북한의 안보 위기의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북한도 세계도 모른다

또 하나 드러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세계 인식이 지극히 좁거나 잘못돼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에 대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의리론을 앞세워 대북 압박 동참을 촉구한 것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6.25전쟁 당시 건국 1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수십만의 병사를 보내 북한을 지켜야 했던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모른 때문이지요. 

당시 중국은 대만 정벌을 포기해야 했고, 마오쩌둥 주석의 큰 아들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지역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타결로 한미일의 대중국 군사포위망이 완성된 현 시점에서 중국이 자신의 보호막인 북한을 압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국제정치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지도자는 이런 상식조차 모르나 봅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북핵 실험은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동북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래 미국 핵외교(실상은 핵공갈)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고, 이후 지금까지도 핵무기를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인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 

미국의 평화운동가 조셉 거슨 박사는 <제국과 폭탄: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핵무기는 억지를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나라의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942년 이후 핵무기 개발 단계부터 미래의 적국인 소련 견제를 염두에 두었고, 이후 1946년 이란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핵위협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수십 개 나라에 핵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핵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은 독일 나치의 핵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저명한 과학자들이 나치의 세계 지배를 막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청원한 때문이지요. 1944년 말, 미국은 히틀러가 이미 (1942년) 핵폭탄 개발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군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딴마음을 먹은 것이죠(이 때문에 훗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핵개발 청원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는 3차례나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핵무기가 세계 지배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자탄은 소련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 

미국의 비판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아메리칸대학 역사학 교수인 피터 커즈닉이 함께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고 나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 절대 아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944년 3월 원폭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조셉 로트블랫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건 당신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말 소련에 대한 핵 선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태평양전쟁을 일찍 종결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무고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이는 무수한 연구에서 드러났습니다. 일례로 미국 전쟁부(국방부의 전신)는 1946년 1월 작성된 보고서에서 "(일본의 항복) 결정에 이르는 토론 과정에서 미국의 원자탄 사용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 일본이 러시아의 참전에 직면하자 항복했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결과 원자탄은 관련이 없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인 셈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 

원폭 투하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의 실제 위력을 시험,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형, 우라늄형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원폭을 투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의 텔포드 테일러 검사는 "첫 번째 원폭 투하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습니다(미국의 원폭으로 조선인 4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전후 처리를 미국 마음대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초 소련은 대일전 참전 대가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공동 점령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핵폭탄에 겁을 먹은 나머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서둘러 원폭투하를 감행한(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후 20일만)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앞세워 소련을 압박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번스 미 국무장관은 몰로토프 소련 외상에게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습니다. 번스가 동유럽 문제에 대해 소련을 압박하자 몰로토프는 "미국도 그리스, 일본, 동남아 등에서 마음대로 하지 않느냐"면서 "당신은 코트 주머니에 원자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번스는 "당신은 우리 남부 사람들(번스는 사우스캐롤나이나 출신) 기질을 몰라요. 우리는 주머니에 대포를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이런 식으로 차일피일 하는 것을 당장 집어치우지 않는다면. () 원자탄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당신에게 안겨줄 거요"라고 말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소련이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 등은 바로 미국의 핵위협에 대한 자위의 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 국무부 출신의 비판적 안보전문가 윌리엄 블럼에 따르면 2차 대전 후 미국은 57개 국가의 정부를 전복했거나 전복을 시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핵 보유국은 하나도 없습니다. 리비아의 가다피나 이라크 후세인도 핵무기가 없었죠.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의 핵공갈과 정권 전복 위협을 받아온 나라입니다.

 

(☞관련 기사 : On North Korea’s Nuclear Test) 
(☞관련 기사 : North Korea: How Many Wake-Up Calls Will It Take?)

세계에서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북한 

우선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은 북한에 63만5000톤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4년간 사용된 폭탄보다도 많습니다. 또 치명적 피해를 일으키는 네이팜탄을 3만2000톤이나 투하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네이팜탄 사용은 세계적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사용된 양보다도 많습니다.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말처럼 한국전쟁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격 피해자들이었던 북한 주민들은 당연히 그 끔찍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수력 댐이나 저수지를 폭파해 수많은 인명을 수장시켰습니다.  

당시 북한 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전략공군사령관은 1984년 미 공군역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3년 동안 북한 인구의 20%를 없앴다"고 자랑했습니다. 북한 폭격을 지지했던 국무부 관리 딘 러스크는 "북한의 움직이는 모든 것, 땅 위에 서있는 모든 건축물을 파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야말로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은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을 시작으로, 중공군에 밀려 미군이 퇴각하던 12월, 한강 이남에서 전선이 교착됐던 51년 4월, 휴전협상 중이던 5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위협을 가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에 따르면, 1945~80년 35년 동안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 구상, 협박, 준비한 일이 26회인데 이 중 한반도가 핵폭탄 사용의 목표로 정해진 것은 5회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아온 나라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1976년 시작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북한을 겨냥한 핵공격 및 상륙작전 훈련으로 미 동맹국과의 합동 군사훈련 중 최대, 최상급이며 실제 전쟁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미국이 1976년 한반도에서 팀스피리트를 시작한 이유는 1975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동맹 35개국이 동서 군사대결 체제의 해체를 약속한 헬싱키선언으로 유럽에서 1개 사단 이상을 동원하는 군사훈련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핵 합동 군사훈련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긴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는 미국의 핵항공모함 두 척, 20여 척의 핵장비 함대, B-52 핵폭격기 편대, 평균 20만의 한미 지상 병력이 참여합니다. 가히 세계 최대, 최강의 군사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훈련기간이 60-90일이나 됩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 북한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모든 기관들이 국토방위태세에 들어갑니다. 매년 2, 3개월간 북한은 전시체제에 돌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에 따르는 미국의 핵위협을 북한은 지난 40년간, 1992년 단 한 해를 빼고, 매년 겪어왔습니다(1991년, 다음 해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 결정되면서 남북 기본합의가 타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당시 딕 체니 국방 장관이 미 국무부 및 그레그 당시 주한 미 대사와 일체의 상의 없이 훈련 재개를 결정하자 북한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이로써 북핵 위기가 본격화된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지구상의 어느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이 감행하지 않은, 오로지 북한에 대해서만 계속해온 핵공격 협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핵위협을 받고도 핵개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1972년 닉슨이 남한에서 고작 미군 1개 사단을 감축하려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자체 핵개발을 시도했던 전례를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을 위반한 오바마 

북한의 4차 핵실험 엿새 후인 1월 12일, 미국은 네바다 사막에서 전술핵무기 B61-12 실험을 했습니다. 적국의 지하 핵무기 창고 또는 핵실험장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미국은 또한 300억 달러를 들여 핵탄두 탑재 순항미사일 등 1천개의 신형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혔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의 심각한 약속 위반 행위입니다.  

그는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주제의 연설을 한 대가로 그해 12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0년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New START) 협상에서도 "미국은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거나 핵무기의 새로운 군사적 역할, 능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재차 약속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2015년 9월 향후 30년간 1조 달러를 들여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핵무기를 이용한 패권 유지 외에 다른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군산복합체의 이윤 추구입니다. 

(☞관련 기사 : 오바마, 북한에 '스마트 핵폭탄' 타격하려나? )

 

▲ B61-12의 낙하 장면 ⓒnytimes.com



핵무기 생산은 미 군산복합체의 황금 알 

2015년 9월 핵무기 현대화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9월 22일 조나선 킹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평화운동가들은 진보매체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 "파멸의 사유화(Privatizing the Apocalypse): 핵무기산업은 어떻게 미 국민의 세금을 착취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핵무기가 미 군산복합체의 엄청난 이윤의 원천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핵무기 등 군사무기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생산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정부에 납품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습니다. 경쟁 입찰이 아니라 생산 비용에 일정 규모의 이윤을 얹어서 정부가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개발, 제작 과정에서 비용이 아무리 늘어나도 정부가 모두 감당합니다. 수억 달러를 들인 개발이 실패해도 모든 개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합니다. 당연히 핵무기 개발, 유지, 보수 등은 엄청난 이윤이 남는 사업입니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는 장사가 바로 미국의 군수산업입니다. 특히 핵무기가 그러합니다. 그런 만큼 그 실상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럽 그루먼, 제네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 핵무기 기업의 목표는 딱 한 가지입니다. 계속해서 핵무기를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란, 북한 등의 핵위협을 엄청나게 과장해서 미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합니다. 그래야 핵무기를 계속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란은 단 한 차례도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고, 북한은 고작 4차례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위협인 양 과장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1000회 이상의 핵실험을 했고, 지금도 임계점 이하의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미국의 책임은 모른 체 합니다. 

(☞관련 기사 : Does North Korea Need Nukes to Deter US Aggression?)

 


미국 핵무기 기업의 장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미 의회예산처(CBO)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15-2024년 10년간 348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연간 350억 달러(약 42조 원) 쯤 됩니다. 핵무기는 그야말로 미 군산복합체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입니다. 당연히 의회 등에 대해 막강한 로비를 합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총선에서 14개 군수기업이 의원에게 뿌린 정치자금이 300만 달러 정도입니다. 2015년에는 718명의 군수산업 로비스트가 67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살포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엄청난 돈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무기는 21세기 지구 현안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핵무기는 지구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제임스 카트라이트 전 합참 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한 정부 고위 위원회는 핵무기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깡패국가, 실패국가, 핵확산, 지역 갈등, 테러리즘, 사이버전쟁, 조직범죄, 지역갈등에 따른 대규모 난민, 전염병, 기후 변화 등 21세기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미국의) 핵무기가 쓸모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핵무기는 문제의 해결책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관련 기사 : Tomgram: Krushnic and King, The Corporate Nuclear Complex)

결국 미국의 패권 유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미 국민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 인류 전체가 파멸할 수도 있는 미국의 핵무기 생산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계속된다. 집단안보만이 해결책" 

호주의 핵안보전문가 피터 헤이스 노틸러스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일 <글로벌 아시아> 기고문(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을 통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첫째, 이번 핵실험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심리적 의미가 있다. 북한이 아직 장거리 탄도 미사일 등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운반수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자위력 과시,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사기 앙양에 이용될 것이다.

둘째, 북한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김정은은 앞으로 청년세대들을 새로운 정치 주역으로 내세울 것이며 핵개발과 경제 발전의 병진 노선을 계속할 것이다.

셋째, 북한이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핵운반 수단을 확보하려면 앞으로 5~15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등은 동북아 집단 안보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이런 길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관련 기사 : 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

결국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남북은 물론 미중 간 군사 대결이 현실화될지도 모릅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의 선공으로 남북 대결로 시작했지만, 결국 미중 군사 대결로 비화됐고 이 때문에 미중 관계는 20년간 군사 대결 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베트남전쟁도 사실은 중국의 팽창을 막겠다는 미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에서 30년이나 계속됐습니다. 1972년 미중 화해 이후 30년간 불안하게 지속됐던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제 북한 붕괴를 노리는 한미의 압력과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일로 매진하는 북한의 대결 속에 새로운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 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듯이 북미 관계 정상화입니다. 이를 위해 앞장 서야 할 나라는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이 나서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화해를 중재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미국의 대중 군사 대결 노선을 추종하다가는 한국의 미중 군사 대결의 선봉장으로 떠밀려 한반도는 또 다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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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러에서도 거론 시작한 북미평화협정

중, 러에서도 거론 시작한 북미평화협정
 
 
 
이창기 
기사입력: 2016/01/17 [10: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미평화협정과 관련된 스푸트닉의 보도     © 자주시보

 

 

 중국, 러시아에서 흘러나오는 북미평화협정 필요성

 

15일 ‘러시아의소리’ 후신인 ‘스푸트닉’에서 평화적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북미평화협정과 같은 구체적인 대북 안전담보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두 전문가의 발언을 소개하였다.

 

[바 잔츈 지린대학교 동북아시아 국제정치학과 학과장이 '스푸트니크'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전쟁이 중단된 후 북한은 평화협정없이 어떠한 안보도 보장받지 못한 채 십 수 년을 보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핵개발 카드를 들고 미국과 협상을 시도하려하며 평화협정 체결에 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시도를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16일 스푸트닉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korea/20160112/984273.html#ixzz3xMd7eHBV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선택한 제재와 압박, 요구 등의 문제 해결 방식은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협상 방법을 찾는 것 등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합의, 상호 양보가 외교의 ABC다. 그렇지만 아직 북한을 위한 합의나 양보 등은 없었다. 그렇지만 합의나 상호 이해 등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16일 스푸트닉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opinion/20160115/992327.html#ixzz3xMcmASHX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게 핵개발을 안 하겠다는 양보를 받아내려면 먼저 핵으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담보를 해 주어야 한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핵확산금지조약의 기본정신이기도 하다.

 

세계대전 당시 러일불가침협정이 하루 아침에 깨졌듯이 국제관계에서 협정서나 합의서도 하루 아침이 물 묻은 종이장 신세가 되기 십상인데 미국이 북에게 그런 합의마저 해주지 않고 연례적으로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무시무시한 무력을 동원하여 북을 압박하는 키리졸브-독수리 합동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등을 해해연년 다달이 진행하여 군사적으로 위협하면서 핵포기하라는 것은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 아니라 힘 즉, 군사패권으로 찍어 눌러 북으로부터 핵 포기 항복서를 받아내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특히 미국은 부시정부 때 북을 예방전쟁 차원에서 핵무기로 먼저 타격해서 없애버릴 대상국에 포함시켰으며 최근 공개된 미 정부의 비밀문서를 통해 미국의 패권을 위해 전세계 인구 10억 명을 핵무기로 제거할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계획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사회주의 시절 중국과 러시아에게마저 조금도 기대지 않고 자주의 길을 걸어온 북이 이런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본다면 결국 북도 미국과 맞설 수 있는 핵무장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위의 두 학자의 견해인 듯하다.

 

그래서 바 쟌춘 지린대 교수는 북은 단순히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핵 시험을 했다고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국과 맞설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번 대담에서 지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는 북이 1960년대부터 핵무기를 개발했다면서 지금은 많은 기술을 축적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북 과학사를 가르치는 강호제 교수도 북이 60년대에 이미 러시아와 공동으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그때 이미 러시아도 인정할 정도로 북의 핵기술이 높았다는 발표를 자주 했었다.

영국 왕립 군사연구소에서 어떻게 보면 수소폭탄보다 실전에 사용 가능성이 높고 위력적인 중성자탄 시험을 2006년 첫 핵시험에서 진행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도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북의 수소폭탄제조는 별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북의 이미 다종화, 경량화된 여러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음을 은근히 공개한 적이 적지 않다. 다만 그것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시험을 통해 공개한 것이 4번밖에 안 되었던 것이고, 가장 최근 공개한 것이 수소폭탄 시험이라는 입장인 것이다.


미국이 안전을 확고하게 담보하지 않는 한 북은 빠른 행보로 핵강국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북의 수소폭탄 전략핵무기를 이 시점에 공개한 이유

 

북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전에 공개할 수 있는 핵무기를 이 시점에 와서야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의 그간 밝힌 주된 공식 입장은 세계적인 무기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제3세계 국가들이 더욱 더 어려움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북의 핵 시험, 화성 14호와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개, 잠수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장면 공개와 같은 행보는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고서라도 꼭 해야 할 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핵 억제력만 구축해놓으면 다른 군사비를 줄일 수 있어 경제발전을 촉진시킬 수가 있는데 북이 지금 그렇게 그간 군사비에 쏟아 부었던 비용을 경제로 돌리면서 1년을 다른 나라 10년 맞잡이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한다. 이것이 핵-경제 병진노선이 추국하는 목표라고 북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이 자기의 인민들에게까지 위력적인 핵 억제력을 숨겨왔던 이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 
어설픈 억제력을 공개했다가 제재와 압박을 당할 경우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북은 어쩌면 공개 후 예상되는 미국과 주변국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이제 거의 다 끝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 미국과 추종국들이 북의 핵과 미사일 시험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 북은 더 강력한 억제력을 맞받아쳐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늘 미국에게 북은 압박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반발하는 나라로 역효과만 초래한다며 너무 과도한 압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해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북이 또 어떤 무서운 핵 억제력을 공개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가지가지의 전투기, 인공위성, 수소폭탄,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지대지, 지대함, 함대함, 지대공 등 각종 미사일, 다종 다양한 다련장로켓포, 전차, 자주포, 잠수함, 스텔스함선, 무인타격기, 무인전투함선 등 최근 북이 공개한 무기들만 봐도 세계 최첨단이며 초강국이라는 나라들도 독자적으로는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들이다.
어떻게 저 많은 무기들을 100% 자체의 기술로 다 만들 수 있는지 사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진짜 실전용 무기, 비장의 무기는 아예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축적된 과학기술, 영토와 인구 등 세계 강대국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한 북이 단기간에 미국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직 북 과학자들과 주민들의 열의열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그 북 주민들의 열정을 높여내는 어선 수조 속의 메기 역할을 지금까지 미국이 충실하게 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은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어떤 제재를 가해와도 좋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더 위력적인 핵 억제력 공개의 명분으로 될 것이며 북 과학자들과 주민들의 열정만 더 불러일으키는 보약이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북이 핵 억제력 공개할수록 궁지에 빠지는 쪽은 미국

 

미국이 현재 중국에게 대북 압박을 애걸과 간청을 하다하다 안 되니 중국 책임이라며 애꿎은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무슨 애들 투정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세계 제1의 제국주의 패권국이 남에게 기대서 다른 나라를 압박한단 말인가. 패권국이면 자신의 무자비한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은 자신들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연일 대 중국 압박이다. 중국이 나서지 않으면 중국의 경제를 더 아작이라도 낼 기세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증시가 폭락하는 등 중국경제를 위기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는데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경제제재를 가하면 중국은 더욱 힘들어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럴 경우 세계경제의 동반 몰락으로 가지 않을 수 없고 조금 나아지고 있는 미국 경제도 아작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적대관계가 강화되면 결국 중국은 러시아, 북과 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미국도 중국에게 간청을 할 뿐 제대로 된 압박을 가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등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러시아에게는 대북 제재라는 말조차 제대로 꺼내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북은 중국과의 교역에만 의존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북은 적도기니와 30억 달러 즉, 한화 3조 6천억 원에 국가기간통신망을 다 깔아주기로 합의했다. 북이 이런 제3세계 나라들과 공개하지 않고 진행하는 군사교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미얀마 등 북과 군사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제3세계 나라들을 급하게 돌아치면서 수폭시험을 한 북을 제재하는데 동참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라들이 미국의 당근 약속만을 믿고 자주국방을 위한 북과의 군사교류를 중단할 지는 미지수이다. 미국말을 잘 들었다가 결국 미국에게 처참하게 희생된 후세인이나 카다피의 최후에서 미국이 내미는 당근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그들도 이제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북의 경제는 점점 중국의 제품을 밀어내고 국산화 비율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와의 북의 교류가 더 증가하고 있고 제3세계 나라들과 북의 교류는 파악조차 힘들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러시아도 북미평화협정을 꺼내들기 시작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학자들의 북미평화협정체결만이 한반도 핵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은 중국과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50년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북미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북미, 북일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학적인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금과 미국의 전쟁 배상금이 북에 지급될 것이다. 갑자기 북의 외화가 넘쳐나는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국 반열에 올라서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 대이란 제재가 점차 풀려 이란의 석유와 석유화학제품이 세계 시장에 자유롭게 나돌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북과 세계의 교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도 그 때가 되면 풀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북관계를 풀지 않는 대통령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경제인들도 더는 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한반도의 통일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북이 핵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미국 못지않다. 하지만 무조건 못하게 할 명분도 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북의 합리적인 북미평화협정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과연 미국이 이런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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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의 ‘이승만 국부’ 발언 놓고 千-安 대결

 
 
“이승만 국부론, 탈당파 현역들도 동의하는가” 입장 밝히라 현역에 포문
 
임두만 | 2016-01-15 14:16: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국민회의(편의상 千신당)와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국민의당(편의상 安신당)의 관계기류가 바뀌고 있다. 양측은 애초 각자 세력을 형성하다가 통합하여 단일대오로 더불어민주당 측과 한판 승부를 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양측이 세력을 형성하면서 경쟁의 정도를 넘어 千신당측의 공세 기류가 다르다. 안 의원과 한 위원장이 이승만 박정희 묘소의 참배를 넘어 뉴라이트의 주장인 ‘이승만 국부론’까지 나아간 데 대해 千신당 측이 연일 날선 공격을 하고 있다. 이는 합당 전 세력 불리기에서 오는 경쟁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통합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이 아닌가 보여지기도 한다.

15일 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회 장진영 대변인은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국립묘지 참배 이후 다시 4.19묘지에 참배하면서도 이승만 국부를 언급한 것에 대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항거하다가 희생당한 300위의 영혼이 모셔져 있는 성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표현한 것은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지난 12일 한 위원장과 안철수 의원이 국립묘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굉장한 헌신으로 근대화 산업화를 몸소 이끄신 분”이라고 평가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게 세우신 분”이며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말한 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데 이은 비판이다.

당시 한상진 위원장은 안철수 의원 등과 함께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 참배한 이후 JTBC인터뷰를 통해 “두 대통령이 국민의당의 정체성 및 정책방향과 합치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장 대변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게 세웠다면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고 4·19혁명정신을 계승한다는 우리 헌법은 무엇이란 말인가”고 질타했다.

또 “산업화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헌신만을 강조한다면 피땀 흘려 노력한 노동자들과 유신독재에 저항하다 희생당한 수많은 죽음은 무엇이란 말인가”고 물었다. 그리고는 “최근 건국절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정치지도자의 역사인식에 대해 어느 때보다 민감한 지금, 국민의당의 역사인식과 자의적인 역사해석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바”라며 국민의당의 급격한 우경화에 우려를 넘어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이를 넘어 수유리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현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국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장 대변인은 이번에는 국민의당에 입당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현역의원들에게 “한 위원장의 말에 동의하는 지 답변을 요구한다”며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15일 장 대변인은 “이승만 ‘국부’ 발언에 대해 국민의당 의원들은 입장을 표명하라”는 성명을 내고 국민의당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의원들의 이념지형에 대해 공격했다.

장 대변인은 이 성명에서 우선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에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말한데 이어 수유리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현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사실을 적시했다.

이어서 곧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희생당한 300위의 영혼이 모셔져 있는 성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표현한 것은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물었다. 그리고는 “우리는 국민의당에 입당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현역의원들에게 다음 사항에 관한 답변을 요구한다” 두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첫째,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부라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하는가?”와 “둘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굳게 세우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굉장한 헌신으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하는가?”다.  이후 장 대변인은 “국민의당과 한상진 위원장은 한 위원장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유족들께 깊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추궁했다. 이어서 “국민회의는 4·19 민주영령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각을 완전히 달리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千신당은 安신당과 대결자세를 취하며 공세의 고삐를 쥐고 있는데 이는 애초 千신당의 창당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뉴DJ발굴을 통한 기득권 현역들과 한판승부로 호남정치권의 개혁을 노렸던 천정배 위원장의 생각과 이에 동조한 신진들이 주력인 千신당과는 다르게,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기득권 현역’들이 安신당에 가입하므로 표적이 安신당 현역들이 된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조가 4.13 총선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호남권에서 2개의 신당이 더불어민주당과 3파전을 형성할 것인지 그도 매우 주목되고 있다. 특히 현역들이 탈당하여 安신당에 가세하므로 함께 같은 신당으로 출마를 노리는 신진들과 현역들의 공천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 경쟁에서 탈락한 측의 반발 등 공천 잡음까지 安신당에서 나올 경우 ‘개혁과 세력교체’를 깃발로 하는 千신당의 기세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회의는 17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국민회의 광주시당 창당대회를 갖고 천정배 바람의 근원지에서 기세를 올리며 그 바람을 다시 북상시켜 오는 31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개최하므로 창당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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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 접어들었나

 
조홍섭 2016. 01. 15
조회수 1326 추천수 0
 

정상이라면 현재는 빙하기여야, 앞으로 5만~10만년 동안 빙하기 없어
인류의 온실가스 탓…플루토늄,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 ‘테크노 화석’ 남겨


1.jpg» 주기적인 빙하기 등 지질현상까지 바꾸는 인간의 영향을 고려한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를 설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린란드에서 시추한 얼음 속에는 눈과 함께 보존된 수만년 전 공기가 들어 있어 과거 환경을 알 수 있다. 사진=미 항공우주국 고다드 우주항공센터 

 
약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맹위를 떨쳤다. 바다의 수분이 육지 빙하로 쌓이면서 해수면은 지금보다 120m나 낮아졌다. 
 
그 바람에 황해는 육지로 변했고 동해는 캄차카 반대에서 홋카이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기다란 육지에 갇힌 내해가 됐다. 이상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등이 경기도 하남시 습지 퇴적층에서 채취한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 당시 한반도 중부 지방에는 현재 백두산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 등이 무성했다.

 

ice age.jpg»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아시아 바다의 모습. 동해는 부산과 규슈 사이의 좁은 해협만 열린 내해였고 황해는 육지였다. 그림=이상헌 외(2010)
 
지구는 260만년 전부터 커다란 빙하기에 접어들어 있다. 그러나 늘 추운 것은 아니고 빙하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온다. 현생 지질시대인 홀로세는 간빙기다. 
 
태양을 도는 지구궤도의 변화로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내리쪼이는 햇볕의 양이 한계 값 이하로 떨어지면 빙하기로 접어든다. 현재 지구는 바로 그런 시기에 놓여있다. 그런데 왜 빙하기는 오지 않을까.

 

ice1_Hannes Grobe_1024px-Iceage_north-intergl_glac_hg.jpg» 지난 빙하기와 간빙기 얼음 분포. 진한 색은 간빙기, 연한 색은 빙하기 때를 가리킨다. 그림= Hannes Grobe, 위키미디어 코먼스
 
안드레이 가노폴스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원 등이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내린 답은 ‘사람 때문’이다. 수백년 전 지구는 막 빙하기에 접어들 참이었다. 
 
연구자들은 산업혁명 이전인 그때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280ppm이 아니고 240ppm이었어도 빙하기 도래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 그 농도는 400ppm을 넘어섰다. 
 
그 결과 인류는 적어도 현재 문명이 계속되는 동안 빙하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빙기는 앞으로 5만년, 온실가스를 많이 내보내면 10만년 동안 오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수만년 단위로 지구에서 벌어지던 지질현상을 바꾸어 놓았다. ‘인류세’란 새로운 지질시대를 설정하자는 논의가 나온 이유이다. 
 
우리는 1만1700년 전 시작된 제4기 홀로세에 살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가 세계에 퍼져 농사를 짓고 도시를 이루던 시기였다. 
 
홀로세란 ‘완전한 최근’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제 홀로세보다 더 최근의 지질시대를 만들자고 한다. 보통 수백만년 간격으로 두던 ‘세’를 왜 1만여년 만에 또 두어야 할까.

 

ChronostratChart2015-01-1.jpg» 국제층서위원회의 2015년판 지질시대 표. 왼쪽 가장 위 1만1700년부터 시작하는 홀로세가 표기돼 있다.
 
지질시대를 결정하는 권한을 지닌 국제층서위원회(ICS)는 이 문제를 다룰 ‘인류세 소위원회’를 운영해 왔는데 올해 말 투표를 위한 보고서를 제출받는다. 이 소위 회원 상당수가 포함된 필진이 8일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인류세는 홀로세와 기능적으로 층서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인류가 남긴 흔적이 바다 밑바닥 퇴적층이나 그린란드 얼음층에 뚜렷하게 남아있어 이를 조사하면 어느 시점인지를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된 지질시대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대기권 핵실험으로 나온 플루토늄239 원소는 1951년부터 전세계 지층과 얼음층에 나타나고 있고 1963~64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앞으로 10만년 동안 이 시대의 표지가 될 수 있다.
 
‘테크노 화석’도 인류세를 상징하는 증거가 된다. 콘크리트, 플라스틱, 알루미늄, 유리 등도 지층 속에서 다른 시기에 볼 수 없는 새로운 ‘암석’으로 출토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생산된 콘크리트만 500억t으로 지구표면 1㎡당 1㎏씩 덮는 양이다. 플라스틱은 해마다 3억t씩 생산되는데 그 무게는 인류를 다 합친 무게에 해당한다(■ 관련 기사플라스틱 돌덩이는 새 지질시대 '인류세'의 지표석?).
 
중생대 지층에서 나타나는 공룡의 종류에 따라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처럼, 테크노 화석은 어느 시점의 지층인지 해상도 높게 가르쳐 줄 것이다. 조사 주체가 후세 지질학자이든, 아니면 인류 이후의 지적 생물이든.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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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인간과 시대의 아픔 아우른 인문학의 큰별 지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ㆍ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ㆍ‘통혁당 사건’으로 고초…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남겨
ㆍ어깨동무체 ‘처음처럼’으로 유명…2014년 암진단 이후 악화

자신의 생각과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10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신 교수가 2006년 10월1일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여럿이 함께’라고 쓴 자신의 글씨체 앞에서 특집 대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신의 생각과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10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신 교수가 2006년 10월1일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여럿이 함께’라고 쓴 자신의 글씨체 앞에서 특집 대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10분쯤 타계했다. 향년 75세.

신 석좌교수의 책을 펴내온 돌베개출판사 측은 이날 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던 신 석좌교수가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결국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더불어 숲> <처음처럼> 등 많은 스테디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 냉철한 사회 현실 분석과 세계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져주었다.

고인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경제학자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있었던 시간 만 20년 20일로 1988년에야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한 고인은 1998년 사면복권됐다. 사면복권된 날 출간된 책이 바로 20년 수감생활 동안 처절하게 사유한 인간에 대한 이해, 세계에 대한 인식의 결과물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써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책은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고인은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변방을 찾아서>,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 <중국 역대 시가선집> 등을 펴냈다.

어릴 때 서예를 배운 고인은 학자이자 저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흔히 ‘어깨동무체’로 불린 독특한 글씨체로도 유명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그의 글씨체를 사용한 것이다.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으나, 지난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강단을 떠나면서 지난해 4월 펴낸 책이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단 <담론>이다. 20여년에 이르는 성공회대에서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그의 사상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담론>은 동양고전인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고인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재해석,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제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0년의 수형생활에서 배우고 깨달은 바를 엮은 제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고인은 이 책에서 ‘감옥은 대학’이라며 교도소에서 보낸 20년 세월은 실수와 방황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이기도 했다는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4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지식인은 비판 담론, 저항 담론, 대안 담론 생산에 충실해야 하고 (그 담론들을 실천할) 사회적 역량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또 청년들의 절망, 고뇌와 관련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젊은 시절 고유의 이상을 잃으면 안 된다. 젊은이들이 작은 숲을 만들기를 바란다. 작은 숲들이 소통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약속할 수 있는 숲들의 연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씨(68)와 아들 지용씨(26)가 있다. 빈소는 성공회대 대성당에 마련되며 발인은 18일 오전이다.

▶[2015년4월 경향신문 인터뷰 전문]10년만에 신간 ‘담론’ 출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시대 넘는 ‘탈 문맥’ 필요… 지식인, 비판·저항·대안담론 생산해야” 

▶“교수님보다 선생님 호칭이 잘 어울리셨던 분”··· 신영복 교수 타계 소식에 SNS 추모 물결 


▶사진으로 돌아본 신영복 교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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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작가 “정부는 일제시대로 가고 싶은가 봐요”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16] 김서경 작가
   
▲ 김서경 작가 ⓒ 이영광 기자

“日,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묻힐 것 기대했는데 소녀상으로 활성, 두려움”
 - 오늘(13일) 수요집회가 열렸는데 어땠어요?

“오늘은 나눔의 집 할머님이랑 정대협 쉼터 할머님들이 다 오셔서 ‘할머님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 무효화시켜야만 한다. 피해자의 의견 없이 피해자와 합의 보지 않은 합의는 무효다’는 기자회견을 하셨죠. 할머님들께서는 분노하고 계십니다. 20년의 수요집회를 수포로 만드는 정부의 합의에 피를 토하시고 계십니다.” 

- 지난 연말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로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 어떻게 보세요?

“정말 국민이 많이 분노하세요. 왜냐면 할머님들의 일제하에서 고통스러웠던 세월과 그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있었지만 수십 년 세월 속에 말을 못하셨잖아요. 그런데 91년도에 처음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을 시작으로 92년부터 할머님들이 수요집회를 처음 시작하셨고 24년이 됐죠.

20년이 되는 해에 1000회 수요집회로 소녀상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일본이 그걸 치워야지 100억을 준다는 건 사죄하는 방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죄라면 그런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사죄를 하고 일본에도 세우겠다고 얘기를 해야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난 거예요. 그런 분노가 재단까지 만들게 했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용수, 김복동 할머니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 인정,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사죄, 사죄의 증거로서의 배상 등을 세계인과 함께 요구할 것이라 전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소녀상이 일본 대사관 앞에 있어서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데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다고 보세요?

“죄지은 사람은 소녀상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엄청 불편하고 두려워서 소녀상을 치우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하나는 할머님들이 지금은 몇 분 안 계시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할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일이 덮이고 수요집회가 계속되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나봐요. 그런데 소녀상이 생기면서 앞으로 계속 더 알려지고 수요집회가 계속된다는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녀상 생긴 후 예술작품도 나오고 참여 많이 늘어”

- 소녀상이 생기기 전과 후가 다른가요?

“네 많이 달라요. 소녀상이 생기기 전에는 이 정도의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았어요. 근데 소녀상이 생기고 난 이후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예술적인 작품도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소녀상을 통해서 할머님들이 아픔을 같이 느끼는 부분들 속에서 더 많은 사람이 수요집회에 나오고 있어요.” 

- 소녀상을 두고 일본 측은 한국이 소녀상 이전에 합의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부인하는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합의는 피해자를 빼놓고 그 부분은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무효화 될 수밖에 없어요. 문서화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합의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소녀상 부분은 뭔가 합의를 하지 않았을까 해요. 일본이 아무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할까 해요. 거기에 대해서 암묵적인 합의를 본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문서화 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들이 오잖아요. 마음이 복잡할 것 같아요.

“요즘 계속 밤에 대학생 친구들이 밤을 새우고 있거든요. 역사의 진실 위해서 하는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뿌듯해요. 할머님들이 저 자리에 계시는 건 개인적인 사죄와 배상이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그리고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외치시며 저 자리에 계시거든요.” 

“소녀상 지키는 대학생들,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 날씨가 상당히 추운데 대학생들이 이렇게 하는 게 가슴 아파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제가 매일까지는 못 오지만 계속 와서 뭐 도와줄까 생각하는데 이것이 저희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이 그런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어묵국도 주시고 1월 1일 날 떡국도 주시고 따뜻한 음료나 간식 등 국민이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국민도 함께 밤을 새우고 계십니다.” 

- 국민이 그렇게 하는 이유 뭐라고 보세요?

“그들이 이 자리에 와서 지키진 못하지만, 대학생 친구들이 그 부분을 해줘서 고마움으로 마음을 주시는 분이 있고 또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 밤을 새우는 게 안타깝잖아요. 그리고 어린 친구들에게 고마움도 있고요. 그래서 국민이 한마음으로 해주시는 것 같아요.” 

   
▲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협상안 폐기 대학생 대책위원회 학생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소녀상을 지켜주세요’ 페이스북>

- 소녀상은 2011년 12월 수요집회 1000회를 계기로 제작되었잖아요.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어요?

“소녀상은 1000회 수요집회까지 할머님들이 의자에 앉아서 하셨어요. 그런데 할머님들이 그 일을 당하신 게 아니라 소녀가 나쁜 일을 당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소녀가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아이디어를 어디 얻었다기보다는 위안부로 끌려갔을 당시가 소녀였잖아요. 그래서 그런 상징적인 조형물로 만들 때 어떻게 하면 할머님들께서 당했을 당시의 아픔과 고통, 분노 등과 할머님들의 20년의 수요집회를 알리려고 했어요. 그 할머님들께서 매주 수요일 눈이 오나 비바람이 치나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법적 배상 그리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위해 외치시고 있잖이요.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지나는 사람들, 이 소녀상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감동을 주고 공감할까라는 부분에서 소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제작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이걸 만들 때 무슨 생각을 많이 했냐면 많은 사람이 소녀가 되어 당시 할머니들이 아팠고 지금 할머니들이 이 거리에 계시는 마음들과 함께 해 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이 부분이 알려 주길 바라고 많은 사람이 같이 참여를 바라는 마음을 계속 담아서 작업했는데 소녀상이 세워지는 날부터 그 마음을 느끼셨는지 목소리를 해 주고 따스한 담요를 덮어 주고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공감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암묵적으로 알다가 김학순 할머니 증언으로 제대로 알게 돼”

- 위안부는 언제 알았어요?

“1991년에 TV를 통해 알게 됐죠. 그리고 그 이전에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죠. 주변에서 ‘저 여자는 끌려갔다 왔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런 역사는 조금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안 건 91년에 김학순 할머님 증언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러다가 오랜 세월 생각을 못 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저희 남편 김운성 작가가 지나가면서 수요집회를 2011년 즈음 아직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정대협을 찾아가서 ‘우리가 미술 하는 사람인데 무엇을 함께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그때는 1000 수요집회를 기리기 위해서 평화비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런 디자인에 대한 논의와 이런 걸 통해서 얘기하다가 일본 정부가 그 조차도 못하게 계속 외압을 행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조형물을 만들자고 해서 합의를 봐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안을 디자인하다가 제가 소녀상을 하면 어떻겠냐며 미니어처를 보여 주면서 얘기를 해서 그게 합의되어 소녀상을 만들게 됐어요.” 

   
▲ 11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부산겨레하나 회원이 소녀상 지키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산겨레하나는 매주 월~금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펼친다. <사진제공=뉴시스>

- 일본 정부는 사과했기 때문에 거론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반응을 하면 안 되죠. 본인이 오히려 소녀상을 일본에 갖다 놓겠다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라고 생각해요. 소녀상을 철거하란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소녀상은 그동안 우리 국민은 목도리를 둘러주거나 모자를 씌워 주는 등 애착을 보인 반면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소녀상 앞에 말뚝 테러 등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소녀상 앞에 말뚝 테러가 있었고 미국의 종이봉투를 씌워서 장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기리는 것이란 걸 알아서 많은 사람이 사랑을 해주고 있어요.

의인화시켜서 사람처럼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생일엔 케이크도 갖다 줘요. 그래서 정말이 소녀는 브론즈고 쇠일 뿐인데 거기에 사람들은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그래서 걱정을 안 해요. 일본인들이나 일본 정부가 하는 자극적인 행위들과 표현들은 소녀상이 생기면서 많은 예술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작품들을 많이 했어요. 글, 만화, 영화 등이 나와 예술적인 승화가 되는 부분에서 또 많이 거 알려주고 더 많이 확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돈 받고 소녀상 팔아먹으면 일제시대 돌아가는 것”

- 작가님에게 소녀상은 무엇인가요?

“소녀상을 처음 하게 될 때 이제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과 함께 너무 죄송했고 이 소녀상을 통해서 많은 사람과 공감을 하고 싶었어요. 할머님은 그 자리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매주 수요일 앉아계실까란 생각을 했어요.

할머님들이 바라시는 건 평화와 여성, 아이들의 인권인데 그런 부분을 널리 알리고 그런 세상이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어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고 공감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했고 또 그런 부분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날부터 사랑을 받았고 받은 사랑들이 이렇게까지 수요 집회에 많은 사람이 오도록 해서 저에게는 ‘평생 이런 작업을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큰 작품이 돼 버렸죠.” 

- 정부는 이번 합의가 잘 된 것이고 이 합의를 파기하면 24년 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건 정부 착각인 것 같아요. 정부가 이 부분을 돈을 받고 소녀상을 팔아 먹으면 그것은 일제시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24년 전이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이 부분은 더 철거되면 안되고 무효화 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부는 일제하로 가고 싶은 가봐요.” 

- 또 정부는 할머님들 나이가 고령이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마음 편히 가실 수 있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요. 물론 할머님들도 빨리 해결 되길 바라죠. 그러나 정상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다들 말씀 하세요. 본인들이 원한을 갖고 정부가 이렇게 한다면 그게 원한이 되신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할머님들이 그래서 오늘도 거리에 나오셔서 계시는 거예요. 인정할 수 없어서 그것은 정부의 착각이죠.” 

-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소녀상을 알려 나갈 거고 소녀상을 알리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할 예정이에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할 예정이고 소녀상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원하시는 분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보급도 할 예정이에요.” 

   
▲ 9일 오후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무효선언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소녀상을 지키자' 구호를 외치고 있는 앞으로 할머니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해 주세요.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고요. 정말로 할머님들이 돌아가셔도 할머님들은 할머니들의 의지는 지금 이 부분이 해결돼서 우리 미래 아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피해받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세요. 그런 부분으로 할머님들이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 뜻을 함께하는 저희로서는 뭐든지 계속해 나갈 거예요. 이렇게 소녀상의 울림만큼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앞으로 해 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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