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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8/01 09:41
  • 수정일
    2014/08/01 09: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죽산 조봉암 선생 55주기 추모제 열려
이창훈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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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31  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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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산 조봉암 선생의 55주기 추모제가 31일 오전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의 55주기 추모제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중앙회(회장:김용기) 주관으로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모제에서 김용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죽산 선생의 죽음 이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4.19민주혁명과 이 나라를 수십 년간 독재 치하에 놓이게 한 5.16군사정변이 연이어 일어났다"고는 "만약 죽산 선생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뜻을 이뤄냈더라면 우리 역사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며, “어서 고인의 뜻이 이뤄진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무용가 이삼헌 씨와 정영미 씨의 진혼무 광경.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추도사에 나선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국가원수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지 이사장은 "이러한 때에 사대주의에 빠져 나라의 정신을 팔아먹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죽산 선생 뜻처럼 남북이 하나가 되어 나라의 힘을 키우고 사대주의를 배격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죽산의 장녀 조호정(86세)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각계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 추모국화가 놓여진 죽산 영정.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1953년 광복절 8주년에 중앙청앞에서 경축사를 낭독하는 죽산. [사진제공-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이 1959년 7월 31일 서울형무소에서 오전 11시 3분에 사형된 뒤로 오랫동안 진실이 묻히게 된다.

그러던 중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그의 측근들에 의해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재개된다. 이어 장택상의 비서로 정치에 들어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진상규명을 요청하였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07년 7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당시 위원장 송기인)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재심 등의 상응조치를 권고했다.

이후 법원에서는 재심을 받아들여 2011년 1월 20일 59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더불어 유족들과 기념사업회는 보훈처에 죽산 선생을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편, 북측에서는 자주독립운동과 조선공산당에 참여했던 죽산 선생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애국열사릉에 가묘를 설치하고 1990년에는 ‘조국통일상’을 추서하는 등 민족지사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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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열하루 '세월호 단식' 끝내는 새정치민주연합 4명의 의원들

"정치력 부재와 불신, 내 탓이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대상 아니다"

14.07.31 14:10l최종 업데이트 14.07.31 14:10l

장윤선(sunn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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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11일째 강동원,유은혜,남윤인순,은수미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유은혜, 남윤인순, 은수미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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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처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유가족들께서는 건강을 생각해서 단식을 멈춰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저희가 대신 단식을 하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남윤인순, 유은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20일 '엄마의 심정'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그들보다 엿새 앞서 국회 본청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매일 아침 국회에서 마주치면서 도무지 미안하고 민망해 피할 수 없었던 동조단식이었다. 뒤이어 25일 강동원 의원이 단식대열에 합류했다.  

세월호 참사 106일을 맞이하는 7월 30일 현재까지도 특별법 제정에 한 치도 진전이 없는 도돌이표 상황에서 이들은 단식을 일단 끝내기로 했다. 단식 중이던 유족 20여 명이 이미 실려 나갔고 이젠 둘만 남은 상황이지만, 국회의원 넷이 단식만 하고 있기엔 '싸워야 할' 현안이 너무 많아 8월 새로운 투쟁국면을 위한 전환적 조치인 셈이다. 

그들은 이날 국회 본청 2층 앞 콘크리트 바닥에 철푸덕 앉아 좌담을 시작했다. 야당 국회의원 넷이 무려 열하루씩이나 곡기를 끊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해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생까는' 상황에서 더는 이대로 앉아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들은 "정치실종" "정치의 부족" 등을 성토하며 "내 탓이오"를 외쳤다. 전직 사회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고작 단식이나 하고 있음에 매우 열패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곡기까지 끊었지만 국민들로부터 칭찬은커녕 원성만 자자한 현실도 자괴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일부 댓글엔 "뒈질 때까지 단식을 하건 말건" 등의 냉소도 쏟아진다. 곡기를 끊어도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는 정치현실에 암담한 듯 한숨도 자주 터졌다. 

이들은 또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를 향한 쓴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고 두 대표를 정조준 했다. 

다음은 7·30 재보궐선거가 열린 30일 오전, 네 의원과 나눈 좌담을 정리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이후 바뀌었나? 바뀔 조짐 있나"

- 지난 2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만 열하루가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나. 

은수미(아래 은) :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저희보다 먼저 단식을 시작한 유가족들을 대신하겠다는 거였고, 다른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였다. 그러나 여기서 만 열하루를 보내며 느낀 건 암만 저희가 나선들 유가족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그 장면을 바라보다 저희도 따라 동조단식을 하는 건 정말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가 제대로 섰더라면 유가족들이 단식하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단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단식하는 건 예외적 정치행위다. 이것이 잦아지거나 반복되면 안 된다. 11일간 나는 이 세상을 바로잡지 못한 정치 부족함을 뼈져리게 느꼈다."

유은혜(아래 유) :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도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더 부끄럽고 더 죄송하다. 이유는, 열하루가 지났지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고작 단식밖에 할 수 없느냐, 비판도 있지만, 저 스스로도 이런 상황…. 참담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단지 유가족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어떤 지표로 가져갈 것인지 중차대한 결정을 해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 근간을 바꾸는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다시 고민되는 열하루였다."

강동원(아래 강) :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참사다. 국민과 유가족들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달라고 했다. 그럼 국회는 당연히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계속 딴죽을 걸고 있다. 그럼 이때 뭘 해야 하느냐, 고민하던 중 세 분이 먼저 단식을 결행했다. 여성 세 분이 먼저 결행해서 남성으로서 너무 죄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단 동조단식이라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했다. 오늘로 6일째인데 주로 정치가 국민들에게 무엇으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남윤인순(아래 남윤) : "유가족들도 저희도 막무가내로 시작한 단식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국정조사를 모니터링 할 때 국회의원들이 무슨 생각인지 다 지켜보았다. 그러고도 그분들은 최대한 국회의 절차를 존중하면서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시작한 단식이 벌써 열하루가 됐다. 정치가 먼저  이분들의 손을 잡고 해결해야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그저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밖엔 못했다."

- 네 분 모두 전직 운동가 출신이다.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정치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열하루나 단식을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까. 

 : "우리 당을 많이 비판하는 이유가 있다. 절박하지도 않고, 야성도 없고, 새누리당이 야당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인지 헷갈린다는 분도 계시다. 저는 이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지만 뜻있는 분들의 힘을 모아서 단식 이후에는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7·30 재보선이 끝나면 당 지도부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새로운 투쟁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 본다. 당론으로 힘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을 꼭 제정해야 한다."

 : "무슨 일이든 절박해야 이뤄진다. 우리 정치에 절박함이 있었나? 세월호 참사는 유례도 없는 일로 대한민국의 총체적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탐욕적 자본과 그 자본에 기댄 권력, 인간 같지도 않은 짐승과도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 당이 얼마나 절박함을 갖고 접근했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당의 행동으로, 추진력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해야 한다. 선거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논의를 늦출 수는 없다."

남윤 : "선거 전에는 당 지도부가 재보선 때문이라는 말로 세월호 특별법 추진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만약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조직정비를 해야 한다면서 당무위원회를 새로 정비하고 지역위원장 선출에 몰입한다면 우리 당은 또다시 근본이 서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이합집산할 것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7·30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는 당력을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모아야 한다."

은 "당이 시민의 바다에 풍덩 빠져 정치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 보상문제가 불거지면 그 시점에 당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국민적 여론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근거를 갖고 새누리당과 협상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보상은 해주지만 진상규명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과 진상규명하려면 우리가 먼저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어야 했다. 새누리당의 뒷덜미를 잡고 국민이 원하니 당장 특별법 추진해라, 이런 전환점이 필요하다."

 : "이명박근혜정권을 겪어보니 국가운영을 과거 군사독재시절처럼 한다. 그럼 우리의 투쟁방식도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정도 민주화 됐으니 대충 그들과 화해와 타협? 그걸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맨날 새누리당에 당한다. 이제는 우리 당이 역사의 흐름까지 내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투쟁방식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 게 안 되니까 국민들이 우리를 얼마나 질타하고 있나. 우리는 다 느끼는 것을 왜 지도부는 못 느낄까 싶다."

 : "당이 이제는 세월호 특별법을 원 오브 뎀(one of them,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이슈로 볼 게 아니다. 흩어지지 않고 조직된 힘으로 하나가 되어 싸우는 유가족처럼 우리 당도 이제 실천을 단단하게 묶어가야 한다. 지금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당이 중심을 잡고 행동구심력을 세워야 한다.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 아무도 안 믿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바뀌었나? 바뀔 조짐이 있나? 달라질 조짐이나 희망을 100일 넘게 못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 앞에서 정치불신은 더 커졌다. 정치불신을 없앨 방법에도 지도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해양교통사고 발언, 지도부는 왜 화 안 내나"

- 세월호 참사 이후 적폐를 해소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보수언론은 이제 노란깃발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단식 농성 중 만난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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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11일째 은수미,유은혜,남윤인순,강동원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유은혜, 남윤인순, 강동원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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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 : "새누리당 의원들 중 유가족들과 인사하는 분들은 몇 안 된다. 이 현장 자체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내가 이곳에 열하루 있었지만 유가족들에게 목례하고 지나가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거의 못 봤다. 홍문종 전 사무총장 등이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에 빗댄 건 그 자체로 정부여당이 치러야 할 책임론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다.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넘어가자는 건데 7·30 재보선이 끝나면 그런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 "야당이 강력하게 투쟁하면 여당이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성숙된 모습을 보일 거다. 그런데 오히려 깔아뭉갠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이 우리 당 지도부의 정체성을 너무 잘 알아서 완전 자신만만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다면 우리 야당이 더 강한 정신과 절박함을 갖고 더 세게 싸워야 한다. 

정당의 존립기반은 집권인데, 집권하겠다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나는 현 지도부를 탓할 생각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부터 현재까지 이와 같은 리더십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누리당과 대응하지 않으면 만년 새누리당에게 끌려 다닌다.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 "여당의 야당 무시는 오래됐다. 여당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우리 잘못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정부여당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대통령 눈물 흘린 지 불과 두 달도 안돼 노란 리본을 거두라는 말을 한다.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표변할 수 있나. 우리가 어리숙한 건지 새누리당이 능수능란한 건지 원 구성이나 특별법 관련 등등 뭐든 자기들 멋대로 표변하고 약속도 안 지킨다. 

거기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역할은 대단한 것 같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친박계 여당의원 몇몇 실세가 정말 정국을 농락하고 있다. 국민도 야당도 안중에 없다. 언론까지 전부 장악한 그들은 너무 잔인할 정도로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남윤 : "새누리당과 적당히 타협해서 성과를 얻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표리부동은 새누리당의 문제가 아니다. 표리부동에 순진하게 대응하는 우리가 문제였던 거다. 새누리당 욕하는 건 공허하다. 새누리당 행태에 어떻게 맞서 싸울 건지 우리가 먼저 죽을 똥 살 똥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총선도 가능해질 것이다."

 : "비통하긴 하지만 무시당할 짓을 하니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에서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라고 말한 게 한둘인가? 그럼 당이 화를 내야 한다. 윤리위에 제소하고 징계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당은 지도부부터 아무도 화조차 안 낸다. 만약 새누리당이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자기 이익이 조금이라도 해쳐진다고 생각하면 난리를 친다. 

과거 야당이 그랬다.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새누리당이 여러 번 도발해봤는데, 그때마다 우리 당이 화낼 줄도 몰라, 대응도 안 해, 그럼 밟는 거다. 무시한다. 국상 중인데, 교통사고 운운하는 패륜을 저지르면 의원직 내놓아라 난리를 쳐야 옳다. 노란 리본을 정리하라고? 야당은 통곡해야 한다. 그런데 무감각하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끌고 나가야"

- 단식을 정리하고 난 뒤엔 어떤 활동이 예정돼 있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나. 
 : "1단계는 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도록 의총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 논의를 모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일들이 당 차원에서 안 된다 해도 나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럼 뭘 해야 할까. 그게 참 고민스럽다. 당 차원에서 총력투쟁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는 하향평준화 돼서 일상활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식 이후 그냥 일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당이 국민 속에서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무장해서 당 차원의 투쟁활동을 더욱 총체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

 :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장기전으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한숨). 당 지도부의 결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으러 나가는 자발적 시민모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새로운 국면이 열려야 한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을 끌고 가면서 내일(1일)이라도 당장 의총을 열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다."

 : "전국에서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온 국민이 국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함께 겪고 있는데 왜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나. 이건 코미디다. 지방선거 때는 표 달라고 눈물을 흘리더니, 유가족이 단식하시다가 무려 20여 분이 쓰려졌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를 갔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7시간 동안의 행적 조사하자니까 사생활 소리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우리 지도부가 어떻게 돌파하려고 하는지… 유병언 시신 가짜논란 속의 정치상황에서도 헤게모니를 쥐지 못하는 지도부라면 정말 문제 아닌가." 

- 끝으로 김한길 안철수 두 대표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비판도 애정이 있을 때 하는 거다. 내가 새누리당을 아예 접어버리는 것은 그들이 짐승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정말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 사람이 할 태도가 아닌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나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대안적 깃발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우선적 고민 사항이다.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나 제안은 준비 안 돼 있어 할 말 없다."

남윤 : "선거 끝나면 선거 평가하면서 조직 강화에 나설 것이다. 이때 조직만 강화할 게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두 대표 중 한 대표가 실질적으로 맡아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당력을 여기에 싣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 "두 대표께서는 지금까지 했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 120석이 넘는 의석의 야당.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집권여당이 벌이는 이 기만의 시대, 어떻게 제1야당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당대표로서 절박한 고민의 결과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당력을 모아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졸들에게 작전도 지휘도 못하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전직 대표, 현직 대표 당 중역들 할 것 없이 모두 의견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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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김한길 사퇴’ 뒤에 감춰진 새누리당의 무서움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임병도 | 2014-07-31 08:35: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이 참패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1석을 확보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겨우 4석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2012년 총선 때는 새누리당이 152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27석이었는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158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30석으로 새누리당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이유는 '전략 공천 파문'과 '리더십 부재',' 선거전략 부재' 등으로 이미 선거 전부터 나와 있는 문제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야당이 무능해서만 새누리당이 승리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당이 무능한 부분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의 치밀한 선거 전략이 빛을 발했던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새누리당이 어떻게 선거에 임했는지 분석함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왜 무능하다는 소릴 듣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문제는 경제였다' 

선거 때마다 가장 잘 먹히는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안보'와 '경제'입니다. 북풍과 같은 안보 카드는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경제'는 중산층을 혹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7.30재보궐 선거가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청사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합니다.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규제 철폐와 소비를 증진하기 위해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 등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회의'는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경기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층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40조 7,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풀겠다고 나섰습니다.

 

 

 

야권이 세월호와 야권 단일화 문제에 신경을 쏟고 있는 동안, 조중동과 경제 언론들은 일제히 '가계 경제 회복'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힘을 쏟고 있다는 '경제 카드'를 일제히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이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질질 끄는 수법을 통해 본질을 회피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피로감이 달한 국민을 향한 '경제 카드'는 엄청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새누리당은 선거 전에는 항상 귀에 솔깃한 공약을 내놓습니다. 선거 후에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말하는 공약은 지역 민심을 잘 반영하는 공약들입니다. 
 

 

 

 

 

이번 7.30재보선에도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역 현안과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공약들을 내놓으며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경기 수원병 김용남 후보는 '수원역을 KTX 출발역'으로, 수원을 정미경 후보는 '수원 공군비행장 이전 사업'과 같은 지역 민심이 가장 원하는 숙원 사업을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대전 대덕 정용기 후보는 '연축동 개발 사업'을 충남 서산,태안 김제식 후보는 '태안 기름 유출사고 피해 조속한 보상'을 약속하며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순천과 곡성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예산 폭탄론'을 던져 소외당하고 있는 전남 순천,곡성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했던 말을 표정 한 번 안 바꾸고 뒤집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뻔뻔하게 선거 때마다 달콤한 말을 쏟아 붓습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꾼들의 화려한 언변과 화술, 그럴듯한 약속에 속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지역 현안과 민심을 파고드는 공약을 내밀며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기술만큼은 거의 프로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 읍소전략, 다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은 항상 선거 막판에 '살려주세요','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읍소전략'을 내놓습니다. 
 

 

 

이번에도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선거 직전 '나경원 후보가 어렵습니다','나경원 후보를 살려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 많은 사람들에게 빈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후보도 '죽도록 부려 먹다가 못하면 그때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시더라도 한 번만 제 손을 잡아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읍소 작전'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들의 읍소전략을 살펴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는 점과 또 하나는 그들의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2위 노회찬 후보와 929표 차이로 겨우 승리했습니다. 무효표 1,403표만 아니었으면 질 수도 있었을 상황입니다. 1

새누리당은 여의도연구소 등을 통해 어느 여론조사 기관보다 뛰어난 지지율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1일 단위로까지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역량이 있기 때문에 선거 막판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읍소전략'을 단순히 우습게 보기보다는 그만큼 치밀한 데이터와 행동을 병행한다고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7월 31일 오늘 조선일보 1면의 머리기사는 '안철수,김한길 사퇴'입니다. 7.30재보선 결과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사퇴할 것이라는 예측은 하겠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정치]7월9일 - 7.30재보선, 야당의 무덤이 될 수 있다 (이미 야권 패배는 예측됐던 상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입니다. 야당이 야성을 잃으면 머리를 잘 써서 전략이라도 잘 세워야 하는데 그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력은 더욱 형편없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직력은 분열과 반목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사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새누리당이 얼마나 무섭고 치밀한 집단인지 먼저 분석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도덕성도 가치관도 역사관도 형편없는 새누리당이지만, 선거만큼은 어떻게 이기는지 아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도 여전히 빨간색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1. 노동당 김종철 후보 때문이라는 억측은 하지 말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표심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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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박근혜 대신 ‘새정치-야권’을 참혹하게 심판했다

[기자칼럼] 세월호 참사와 국정파탄에도 새누리 싹쓸이, 순천곡성마저 내준 진짜 이유는
 
입력 : 2014-07-31  01:02:43   노출 : 2014.07.31  08:10:49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온갖 실정과 국정 실패를 이어갔지만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야당을 견제세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심은 박근혜 정권이 아닌 새정치연합을 혹독하게 심판했다. 


30일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전국 15개 지역구 가운데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해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새정치연합은 4곳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나경원(동작을), 배덕광(부산 해운대기장군갑), 정용기(대전 대덕구), 박맹우(울산 남구을), 정미경(경기 수원시을-권선구), 김용남(수원시병-팔달구), 유의동(경기 평택시을), 홍철호(경기 김포시), 이종배(충북 충주시), 김제식(충남 서산시태안군), 이정현(전남 순천시곡성군) 후보가 당선됐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은 권은희(광주 광산구), 박광온(수원시정-영통구), 신정훈(전남 나주시화순군),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군) 등 전남지역 3곳과 수원 1곳에서 당선됐다.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선거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영남권 기반 정당에 의석을 내줬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요인으로 우선 35%도 안되는 낮은 투표율(32.9%)을 들 수 있다.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데엔 여름 휴가철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으나, 제1야당으로서 야권을 대표하는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휴가철 여부를 떠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서민의 고통, 민주주의 파괴에 신음하는 시민의 분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하고 기댈 곳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들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선택하지 않았다.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진도앞바다 한 복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박근혜 정권이었는데도 민심은 혹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보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이 더 컸다. 무능한 정권보다 더 무능한 야당이 된 것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당선자의 유세 장면.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인가. 이번 7·30 재보선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의원 배지라는 권력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한 것이 야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최대 전략지역이었던 서울 동작을에 기동민 후보를 공천하면서 ‘동지를 배반하게 한 공천’이라는 오명을 낳으며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참사라는 최악의 국정운영을 견제해야할 시급한 시기에 신뢰를 잃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공천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남에는 새정치가 아무나 공천하면 다 된다고 여기는 오만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을 뿐 아니라 권은희 스스로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양심적 내부고발자로서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공천을 둘러싼 복마전은 결국 사상 첫 새누리당의 전남지역 의석 확보라는 이변을 낳았다. 이정현이라는 정권 실세의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서갑원 새정치연합 순천곡성 후보의 공천 역시 잡음이 많았다. 서 후보는 부적절한 '전력'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사람이었다. 

막판에 나름 극적이었던 서울 동작을 지역의 단일화도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노회찬 후보는 나경원 후보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900표 차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생채기 후에 이뤄진 단일화 효과가 빛이 바래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공천 과정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새정치연합이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맞설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여름휴가 때 사진. 사진=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인사파동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 사건, 시국선언에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 수백명이 수장되는 실황을 전국민이 목격하고 있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무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권력집단이었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은 이런 국가비상사태에서 박근혜 정권을 대체할 만한 역량도, 이에 맞서는 순교자적 헌신과 자기희생의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무슨 짓을 해도 30%는 박근혜를 지지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1년 반 동안 끌려다녔다.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야당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각종 파동을 겪으면서도 선거운동하는 동안 두각을 나타낸 후보도 없었다. 거물이라는 이유로 손학규, 김두관을 내세웠지만 알려진 이름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 선거였다.

이와 함께 각종 실정에도 다시 집권여당에 158석이나 안겨준 선거결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온갖 정권의 악재에도 최악의 결과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재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야권을 재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다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환골탈태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쇄신을 촉구하기 전에 야권 스스로 전면쇄신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에선 이런 야권의 붕괴를 틈타 박근혜 정권이 일방 독주를 펴는 것 역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3분의 2가 박 대통령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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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

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北, 국경 통과 승인..南, MDL 통과 승인할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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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30  18: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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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지난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오는 8월 15일 북측을 거쳐 MDL을 통과해 남측으로 들어온다.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오는 8월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온다.

'고려인이주150주년기념사업회'(공동대표 이해찬, 정몽준)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고 직접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남북 군사분계선을 8월 15일 넘어서 올 예정"이라며 "우여곡절 끝에 북한 당국에서 승인을 내어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MDL 통과 협조가 공식적으로 접수될 경우, 필요한 절차에 따라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도 도라산 남북출입경사무소(도라산CIQ) 통과와 관련한 절차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 고려인들의 MDL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이동 경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진행 중인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은 고려인 38명이 차량 11대를 이용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을 거쳐 러시아 동쪽 하산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들은 다음달 8일 러시아 하산에 도착, 나진-하산 철도를 이용해 방북, 나진시에서부터 평양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어 다음달 14일 개성에 도착, 평화음악회를 가진 뒤, 15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다.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일정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특히, 이들은 북측에 차량 3대를 기증할 예정이며, 오는 8월 교황방한 일정에 맞춰 18일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다.

이들 고려인들은 남측에서 서울시 환영행사 및 축하공연, 현충원 참배, 국회 및 국무총리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부산을 거쳐 동해로 이동, 24일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과 관련해 남측 행사에 동참할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모집내용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려인들과 함께 자동차 대장정에 동참하는 내용을 골자로 남측 1백여명, 차량 25대 등을 예상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다음달 4일까지이며 신청문의는 '동북아평화연대'(1688-705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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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이전계획, 전면 수정되나?

<분석과전망>한반도군무력을 강화하려는 미국, 물 건너가는 자주국방
 
한성 
기사입력: 2014/07/30 [17: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그것이다. 한미양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고 이를 경기 북부에 주둔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 구체이다. 지난 25일 최윤희 합참의장이 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세세한 내용까지도 흘러나왔다. 경기북부에 산재한 미 보병 2사단 중 포병여단과 한국군전방 부대 중 포병, 기계화 부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동두천이나 의정부 등 경기 북부에 주둔시킨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는 것은 한미연합야전사령부의 부활이었다.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된 것은 지난 1992년이었다. 한미당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게 되면 22년 만에 한미양군당국이 전투임무를 함께 수행할 연합부대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으로 된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은 여기에서 멎지 않았다. 용산기지 안에 있는 한미 연합사령부 역시도 서울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29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사안이다. 

이것들은 한미당국이 수립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폐기되고 있음을 대단히 화려하게 보여준다.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경기북부와 용산에 있는 모든 주한미군을 2016년까지 전부 한강 이남으로 배치되게 하는 계획이다. 

동두천 등 해당지역의 주민들에게서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 뻔하다. 미군기지가 떠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계획을 철회시키냐면서 반발할 것이다. 해당 지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드러냈다. “미군기지 이전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다만 한미 연합방어 수준을 최상으로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라는 국방부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30일 SBS뉴스가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수사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미군기지 한강이남 철수’라는 명제는 수정 없이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동두천에 있는 미군기지를 우리 정부가 이양받고, 우리정부는 그 자리에 한미연합 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미군기지는 없다. 다만 미군만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부리는 기가 막힌 ‘꼼수’라는 말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는 이유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에서 그 누구도 우리나라의 군사력 강화 혹은 안보 강화를 읽지 못한다. 복잡할 것 없이, 이는 결코 군사력강화가 아니다. 안보강화도 아니다.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미명이기도 하다. 그 미명을 스스로 깨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미국의 우산에 맡기는 꼴이 된다. 미국의 우산에 의존하는 안보는 어떤 경우든 강한 안보가 아니다. 안보의 약화. 그것이 본질적 모습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국방력을 흔히 자주국방이라고 한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에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군기지 한강이남 배치를 합의하면서 내세웠던 것도 이 자주국방이었다. 전시작전권을 당초 2012년에 돌려 받기로 합의했던 결정적 문제의식도 그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주국방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말았다. 비근한 예가 전시작전권회수문제이다. 2012년 회수되었어야했던 전작권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했다. 이도 모자라 현 정부는 또 2022~2023년 정도로 재연기했다. 이것만으로도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은 완전히 소멸되었음이 확인된다. 

“국방정책이 걸핏하면 바꾸는 그 무슨 부동산정책이냐”
적지 않은 전문가들에게서 수도 없이 나왔던 지적이다. 그러나 국방정책을 부동산정책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현 시기 정세를 관통하지 못하는 문제 있는 관점으로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으로 둔갑하는 것에서 확인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의 한 구체이다. 

한국의 주한미군부대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대한반도군사력공고화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에 따른 것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코 부동산정책이냐는 말로 비판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 미국이 태평양지역에 군무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결정적 이유이다. 

레이 마부스 미 해군장관이 28일 최신예·최현대식 장비를 태평양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첨단 스텔스 구축함을 태평양지역의 특정한 곳에 배치하는 것을 필두로 미국의 연안전투함(LCS) 32척 중에서 4척을 싱가포르에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와 사세보에 현재 있는 상륙준비단 이외에 또 하나의 상륙준비단을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이 확정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주한미군 한강 이북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아울러 이는 2020년대 환수하게 된다는 전시작전권문제를 또 다시 흔들어놓을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사드(THAAD)도입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한미연합 부대 창설과 전시작전권 재연기는 하나의 패키지”
SBS가 30일 보도한 것으로 군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요원한 것인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떠나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이 일치되게 내놓고 있는 말이다. 일종의 탄식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가장 급 높은 회의체가 한미안보협의회(SCM)이다. 8월과 9월이 지나 10월에 있게 될 SCM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주목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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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가자에서: 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가자는 살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포위된 작은 면적에 인구는 넘쳐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친절하다. 또 먹거리가 일품이고 해변이(약간 지저분하지만) 있어서 자유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민에게 준다. 또 이스라엘의 전투함이 앞바다에 수없이 떠 있는 사이로도 석양의 아름다움은 부인할 수 없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주로 아이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행상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택시를 한 번 탑승해보라. 아마 하차하기 전에 새로 만든 친구, 즉 택시기사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이다.

시장은 완전 카오스인데 실로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통혼잡시간이라고 해 봤자 UNRWA(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학교)나 바르셀로나 또는 레알마드리드 로고가 붙어있는 티셔츠를 입은 어린 학생들이 하교 후에 집에 가기 위하여 길에 쏟아져나오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난 가자의 인구가 얼마나 젊은지 깨닫는다. 밤거리도 대낮만큼 활발하다. 해변이나 카페에서 물담뱃대를 물고 시샤를 피우는 모습 아니면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쉬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즉, 가자인도 보통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해변도 삭막 그 자체다. 학교는 죽음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는 수많은 난민의 임시처소로 변하였다. 아름다운 삶의 음향이 끔찍한 사망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무인 항공기는 공중에서 감시하고 제트 전투기는 큰소리로 허공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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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몸에 국기를 두른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한 지역을 지나고 있다. ⓒAFP

 

늘 저만치에 폭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저만치'라는 말은 매우 상대적인데 바로 집 앞의 폭발로 창문이 깨지고 내 심장도 자신의 놀란 고함에 깨질 수 있다. 순간적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죽었다는 소리 아닌가. 이런 일이 하루에 수없이 반복되고 결국은 지쳐서 집안 한 어두운 구석에 몸을 구겨 부근에 계속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이 자신을 못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가자의 주민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다시 한 번 받고 있다. 6년 사이에 세 번째다. 미사일이 민간인의 집을 맞추면서 온 가족이 단번에 사라진다. 한꺼번에 식구 25명이 죽은 사례나 또 다른 가족에서 18명이 비슷하게 사망한 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이유도 없이 가장 가난하고 사람이 들끓는 지역에 퍼붓는 끊임없는 폭탄 세례와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구급차나 민간보호단체의 접근을 막는 그런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민간인은 겨냥하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측은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만약에 정상인이라면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군."이라고 말이다. 이스라엘은 최첨단의 정교 무기로 현재까지 약 1,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중에 80%가 민간인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추측한다. 그 중에 약 200명이 어린아이인데 그들 일부는 목이 잘리고 내장이 터지고 완전히 까맣게 탔다. 또 한 NBC 기자 아이먼 모헤딘은 이스라엘 전투함이 쏜 미사일을 맞은, 해변에서 놀던 바쿠르 가족의 어린이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또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대학살의 현장 알 슈자이예(Al Shujayah)에서는 사건 후 잃어버린 사촌 형제를 그 잿더미에서 찾겠다고 헤매며 돌아다니던 젊은이 하나가 저격수의 총알을 맞고 죽는 비극에 비극을 더 하는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무인 항공기는 아침 식사로 요거트를 사러 나온 아리프 가족의 두 형제를 미사일로 죽였다. 또 닭과 비둘기 먹이를 주러 자기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어린아이 셋도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수천 톤의 폭탄을 떨어뜨린 이스라엘의 무력에 희생된 사람들은 아래 또 있다. 한 번의 공습으로 아부자메 가족의 26명이 죽었다. 알 나자 가족은 20명을 잃었고 알 바치 가족은 18명알 카사스 가족은 9명, 알 케일라니 가족은 7명, 카와레 가족은 8명, 하마드 가족은 5명, 등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안락한(?) 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거다.

휴전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마스 쪽에서 대포 발사를 중단한다면 이스라엘도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지속적인 폭력을 중단할 것인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말로는 뭐라고 하던 현실은 팔레스타인 측에서 무력항의를 중지한다고 이스라엘이 이 지역 점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포위되었던 유대인들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다 죽겠다."고 하였었다. 현재 게토에 포위되어있는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보편적인 개념을 참 잘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정복을 반대하는 자세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고 또 존엄성 속에서 죽는다.

우린 전쟁에 지쳐있다. 적어도 나는 피의 장막과 죽음, 그리고 온갓 파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뿌리 깊은 부당한 예전의 상태로(Status quo) 돌아간다는 것은 더 받아드릴 수 없다. 더는 이 야외 감옥에 존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두 죽음의 사이에.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한 죽음과 이스라엘이 가자를 가로막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말이다.

아무 때나 가자를 들락거릴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 학생이라고 왜 원하는 해외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없느냐 말이다. 가자 바깥에서의 치료를 막는 이스라엘 때문에 주민들이 죽는 게 말이 되는가? 어업 종사자들은 총에 맞아 죽임당할 걱정 없이 바다에서 일하고자 한다. 물과 전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의 땅만 점령한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운명까지 점령하려고 한다. 이런 불합리는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 이 글은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Mohammed Suliman가 허핑턴포스트US에 기고한 블로그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 From Gaza: I Would Rather Die in Dignity Than Agree to Living in an Open-Air Prison

가자지구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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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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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박근혜 마케팅’ 없이 선거 치르는 새누리

등록 : 2014.07.29 20:24수정 : 2014.07.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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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대전 대덕에 출마한 정용기 후보(왼쪽)가 22일 오전 대전 회덕역 앞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대전/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 대통령 당 위기 때마다 힘 됐지만
당보다 낮은 지지율 탓에 언급 줄여
앞으로 지지율 반등 어렵단 전망에
‘선거의 여왕’ 없는 선거 지속될 듯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 하루 전인 29일 아침 수원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김무성 대표는 “수원의 발전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힘이 꼭 필요하다”며, 민생경제, 지역일꾼, 경기부양책, 경기회복 등 경제 관련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박근혜’라는 단어는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3년 7개월 남은 임기 동안 민생경제 활성화로 서민들의 주름살을 펴드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하는 정도에 그쳤다.

 

7·30 재보선의 뚜렷한 특징은 ‘박근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빨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반바지를 입는 등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팔지는 않는다. 심지어 후보들의 유세 차량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지도부나 후보들이 ‘박근혜 마케팅’에 몰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왜 그럴까?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7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새누리당 정당 지지도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선 현실을 새누리당이 정확히 포착해 대응하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빨간 옷만 보고도 변화를 믿어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변화 이벤트가 계속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에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은 지방선거에서 이미 소진된 쟁점이다. 경제 살리기와 세월호 심판론이 맞붙으면 경제 살리기가 유리하다. 여당의 제스처는 놀라울 정도로 현란한데 야당은 너무나 미숙하다.”

 

‘박근혜 마케팅’이 사라진 것은 일시적인 것일까, 지속적인 것일까? 새누리당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다시 올라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선거에 직접 개입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지속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정치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선거의 여왕’이었다. 탄핵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당시 그는 손에 붕대를 감고 한나라당 의석 121석을 방어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얼굴에 칼을 맞고 압승을 이끌어 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고 색깔도 바꾸었다. 새누리당은 예상을 깨고 152석을 차지했다.

 

신화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원희룡 제주지사가 탄생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전 교통정리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선거의 여왕이 수렴청정을 한 셈이다.

 

반면에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선거는 예외없이 부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런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난히 선거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특수한 신분,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 민심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진정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작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선거의 여왕’ 신화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특집 정치토크, 7.30 재보선을 말하다 [성한용의 진단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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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무능이 체계적으로 덮이고 있다

[시민정치시평]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거짓을 버리는 싸움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30 07:32:39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희생자들 말고는 외견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는 수사권 부여를 놓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건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다. 오직 진상과 책임 규명이라는 한 가닥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분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냉정하고 차갑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 사람이 책임을 가리겠다는 이 해프닝 같은 현실. 거듭되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생하는 안전사고. 단순히 사람의 실수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제도의 작동 불능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희생자뿐이랴.

 
분명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다. 나라의 기본이라고 할 신뢰가 사라지고, 온갖 불신과 맹신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 서로의 일상이 기대될 때 신뢰가 생기고, 그때에야 비로소 서로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대가 사라지면 자신의 편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돌변한다. 유병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신뢰가 무너진 사회 공권력의 민낯인 것이다.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이 앞장서 선정적인 보도로 진실을 현혹하는 것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시민의 행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사실 불행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이른바 진상 규명은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그 잘잘못을 가리는 첫 번째 단계이다.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원하는 것도 이런 진상 규명의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의혹이 생기면 한 점 의심이 없도록 일관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의혹이 일 만한 것을 낱낱이 가려내는 일이 진상 규명의 본령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단지 무능력의 탓일까. 아니다. 무능력 이상의 것, 단순히 진상 규명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 100일, 잔인한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24일 서울광장에서 추모공연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00일, 잔인한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24일 서울광장에서 추모공연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대응은 실망 수준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건만, 답보 상태에 있다. 천만인 서명에 돌입한 것도 이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과 시각은 실망 수준을 넘어 불순한 의도까지 느끼게 한다. 핵심 쟁점인 '수사권과 공소권', '특검 추천권'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직접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야당의 입장에 대해 '사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여당의 현란한 수사적 논변이 제기된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자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 당략적인 이해타산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지난 일요일, 야당은 '특검 추천권'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 상설특검이 수사를 하되, 야당 추천의 특검이 임명한 특검보를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실질적인 수사권을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물론 법과 제도의 창출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드는 취지이다. 이번 경우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다. 진상 규명은 진실에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다. 특별법은 더욱이 한시적이다. 그런데 여당은 특별법을 일반법과 연계시켜 마치 일반법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혹 밀어닥칠 쓰나미 파국을 막겠다는 심산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사건 진상의 규명에는 당략적 접근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명분에 몸을 숨겨 당략적인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희생자, 유가족, 시민의 간절한 요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진행 과정이 불신을 키우고 있다. 사건의 진상을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철저히 무시할수록 거짓을 조직적으로 은폐한다는 의혹이 커져가는 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불신을 키운 것은 바로 정부다. 공권력 집행의 무원칙과 부패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진상을 가려내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세월호 참사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이 무능력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것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라는 일종의 채찍질이다. 깊은 반성과 올바른 행동은 자신의 무능을 던져버리는 현명한 방법이다. 정부는 그 쉬운 선택마저 마다했다.
 
무능을 체계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시도가 기만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거짓이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음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말하는 바다. 체계적인 거짓이 작동하는 체제는 항상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쫒는다. 신뢰의 자리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권력의 동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권력 게임의 최후 승자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진정한 관심은 진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민주주의 권력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일련의 진행 과정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제도는 권력 게임의 놀이판이 아니다. 우리를 지킬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왜 발생했는지 모른다. 100일이 지나도 우리가 왜 이런 무지의 상태에 있는가. 진상 규명을 회피하면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면 진상 규명이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은 그 이상이다. 조직적인 은폐, 제도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활용해서 고의적으로 속이는 것, 즉 체계적인 은폐에 대한 진실 규명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현실에 대한 진실 규명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일부 논객이나 의원이 말하는 보상이 아니다. 그 핵심은 진실을 막는 우리 안에 절대적 악과 싸우는 데 있다. 오로지 진실의 힘으로 맞서야 하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기만이라는 유령과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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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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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활성화에 올인한 북한, 그 이유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7/30 12:04
  • 수정일
    2014/07/30 12: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반도 현안 톺아보기 3] 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조성찬  |  landjustic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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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9  11: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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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의 관광 활성화 전략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중국 여행객이 직접 자동차를 타고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거나, 북한이 러시아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소식은 일부에 불과하다. 북한은 현재 도로, 철로, 비행기 등 인프라 시설 정비에서 시작하여 인터넷 관광상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관광을 통한 치열한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관광 활성화에 올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관광이 빠른 시간 내에 민생을 챙기면서도 부족한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관광이 갖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 8강의 신화를 일구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코스타리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경향신문, 7월 7일자). 2013년 국내총생산(GDP)이 1인당 1만 2900달러로 세계의 102위에 불과하지만, 영국 신경제재단이 진행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2009년과 2012년에 1위를 차지한 코스타리카의 핵심 발전전략이 바로 생태관광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이기 때문이다. 생태관광이라는 말만 들어도 바로 금강산 관광이 떠오른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전략은 생물 다양성에 기초한 코스타리카의 발전전략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핵무기 개발로 주변국의 지속가능한 존립 자체를 부정할 것처럼 보이는 북한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북한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화석에너지 고갈이나 탄소배출 등으로 인한 대기 및 환경오염 등의 우려가 없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속가능한’ 경제개발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즉, 북한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경제발전이 농업에서 출발하여 경공업 및 더 나아가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생태관광이 ‘지속적으로’ 발전 동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느냐의 차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생태관광이 경제의 연쇄적인 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 특유의 지속가능성은 경제개혁 및 경제의 단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

관광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인식 변화 이유는?

 

   
▲ 마식령스키장내 호텔 전경. 북한은 작년 말 마식령스키장을 개장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스키관광객을 모집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은 기본적으로 자연명소와 역사유적지 및 온천 휴양소 등 관광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곳이다. 다만 당국이 관광에 대한 폐쇄적 인식으로 인해 그 활용 가능성을 현실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광은 자본주의 문화의 일부라고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외국인의 방문이 많아질수록 체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관광에 대해 다소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는 관광을 외자유치 유망분야로 지정하여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그 역할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한국관광공사, 2001).

관광에 대한 북한의 인식태도가 크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1980년대 시작된 북한의 경제위기가 가장 주된 배경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대만이나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본 북한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비교적 적은 투자로도 단기간에 상당한 외화 획득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한국관광공사, 2001).

결정적으로 제2차 핵실험(2009.5.25)에 성공하자 안보에 자신감을 갖게 된 북한이 관광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가장 우선적으로, 핵실험 성공 이후 김정일은 외화 획득 수단으로 광산, IT산업과 함께 관광을 지목했다. 후계자인 김정은은 이러한 전략을 승계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을 촉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관광산업 촉진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 바로 2013년 1월에 군용으로 사용되던 삼지연공항(백두산 부근), 어랑공항(칠보산 근처) 및 갈마공항(원산)을 민간용 공항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정권 때보다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을 독려하고 있는 분위기는 베이징의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의 가렛 존슨(Gareth Johnson) 이사의 논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6년 이상 북한 관광을 추진하고 있는 그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김정은 체제 이후의 변화를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변화의 핵심 동력은 내부 자원 고갈과 국제사회의 고립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난을 해결하려는 국가적인 차원의 관광전략이라고 지목했다. 그리고 관광의 성격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나진·선봉에서는 관광객들이 시장과 은행을 이용할 수 있고 회령에서는 중학교도 가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도 예전처럼 전면 금지는 아니에요. 김정은 체제 이후 변화는 놀랍다고 할 만큼 큽니다."(북한전략센터, 2014.06.18).

가렛 존슨은 논문에서, 북한이 관광산업을 얼마나 장려하고 있는지 다양한 관광상품과 정책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관광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종식시키고자, 북한이 관광객 유치를 적극 장려하고 있어서, 기자(journalists), 한국인, 한국 거주 미국인을 제외한 모든 관광객에게 여행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북한 여행은 일정 정도 규제가 따르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북한의 관광산업 육성 전략의 핵심은?

 

   
▲ 올해 5월 발표된 '원산-금강산지구 총계획도'. 위로부터 원산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이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관광산업에 대해 일정 정도 경험을 축적한 북한이 최근 취하고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광특구 및 관광개발구의 지정을 통한 입체적인 관광전략의 추진이며, 둘째,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관광상품의 개발이다.

2002년에 금강산 관광특구를 지정한 북한은 2013년 5월 29일에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1월에 경제특구와 13개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설치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4년 6월 11일 북한의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는 정령으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특구)’를 발표했다. 북한은 최근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13개의 경제개발구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개발구’가 2개이며, 관광 기능이 포함된 경제개발구는 모두 4개였다. 이처럼 북한의 발표는 사실상 관광산업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관광활성화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의 6월 24일자 방송에 따르면, 북한에서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도 지방정부 스스로 광산개발이나 관광개발 또는 외국과의 합작기업도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일연구원이 격주로 발간하는 ‘주간통일정세’를 기초로 하여 최근(6월-7월) 관광 관련 기사를 정리해 보니, 다양한 관광상품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다양한 관광상품 및 관광전략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이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방법은 크게 국가관광총국이 산하기구를 통해 직접 판매하는 방식, 합작합영회사를 설립하여 판매하는 방식 및 해외 여행사에 의뢰하여 판매하는 방식이 있다.

둘째, 북한 관광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 4월에 북한 단체관광을 정식으로 개시하였으며, 매년 6~7만 명의 중국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특히 단둥과 평양을 오가는 국제열차를 이용하는 관광객 규모는 연간 1만명 규모로 집계되고 있다(신화통신, 2014.7.10).

셋째, 북한은 관광산업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러시아, 일본, 말레이시아는 물론 심지어 미국 등 서양의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넷째, 지방정부를 주축으로 민생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지방정부는 그동안 외국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했던 내부의 여러 생활 자원들을 관광자원화 하여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북한은 이미 철도·도로 등 관광 편의를 위한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중국 여행객의 방문 편의를 위해 베이징-평양 직항노선 외에도 상하이-평양 직항노선, 다롄-남포 여객선 운항계획, 자동차 여행 등 다양한 교통수단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들

 

   
▲ 원산지구 관광구역도. [통일뉴스 자료사진]

 

현재 북한에게 있어 관광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비교우위가 있는 유일한 분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용현, 2014). 북한은 특유의 지정학적 입지와 오염되지 않는 자연환경을 통한 경관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잘 보전된 역사, 문화자원과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남북관광협력단 북한관광팀, 2004), 이러한 평가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풍부한 지하자원과 저렴한 토지 및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대륙의 진입로라는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그나마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북한이 오히려 관광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는 것은 기존 인식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다. 북한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갖는 나름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단기간에 적은 투자로 고수익 등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이 현재 추진하는 관광사업들은 대체로 생태관광 내지 체험관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광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숙박시설, 도로, 철도, 항공 등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인프라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할 때 단기적으로 많은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관광은 대외 정치적 환경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어 정치적 위험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영향을 적게 받는다.

넷째, 북한의 폐쇄적인 상황이 오히려 안보관광의 중요한 상품이 되고 있다.

다섯째, 관광산업은 공업기능 중심의 경제특구, 경제개발구 등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로 연결시킬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관광특구이다. 금강산관광특구의 근거법인 ‘금강산관광지구법’ 제21조에서 첨단 과학기술부문의 투자도 관광지구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관광지구 내 일부를 공단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으며, 실제로 2003년 1월에 공업단지를 마련하기로 양측이 합의하기도 했다.

북한의 관광전략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에 주는 의미

 

   
▲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작성한 '특수경제지대 개발 실태와 전망'에 소개된 온성섬관광개발구.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관광산업 전략은 현 상황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회생 전략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관광상품은 기본적으로 생태관광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환경파괴 등 부정적 효과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격의 관광산업은 외부 및 내부의 정치적인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비교적 지속가능한 사업의 유형에 해당한다.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생태관광 중심의 관광산업(3차산업)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농업, 경공업 및 다른 영역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있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그 해답은 토지사용료 또는 관광수입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가 재정자립을 위해서 도시 및 지역경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서 토지사용료 및 관광수입이 발생한다. 실제로 금강산광관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아산과 50년 토지사용권 계약(2002.11.13 - 2052.11.13)을 맺은 북한은 토지사용료 수입과, 관광객으로부터 관광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개발구의 설치 및 운영이 있다. 그리고 본고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업소와 협동농장에게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대신 토지사용료와 전기료 등을 부과하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관광사업, 개발구 운영,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자율 경영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사업주체 또는 이용주체가 토지 및 자연자원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향유하는 대신 그 대가인 사용료를 지방정부에 납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용료는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지방정부 재정수입을 창출한다. 바로 이러한 구조가 북한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의 본질이며, 그 핵심에 생태관광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이 관광산업에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이러한 재원을 활용하여 농업, 경공업 및 다른 영역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중국인민대학교 공공관리학원 토지관리학과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공저인「중국의 토지개혁 경험(부제: 북한 토지개혁의 거울)」(한울, 2011.6.),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평사리, 2012.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 토지연조제 실험이 북한 경제특구 공공토지임대제에 주는 시사점”, 『한중사회과학연구』(KCI, 2012년 1월, 통권 22호)와 “Introducing Property Tax in China as an Alternative Financing Source”, Land Use Planning(SSCI) 38(2014) 등이 있다.

 

현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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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 나오래" 51세 남편의 폭탄선언

도둑처럼 찾아온 강제해고... 생계 때문에 자존심 굽히고 결국

14.07.30 10:51l최종 업데이트 14.07.30 10:51l

배은주(bb2005)

6월 하순 어느 금요일. 51세 사무직 노동자인 남편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열었다. 출근길에 재수하는 큰아들을 학원 앞에 내려주고, 서울의 동서로 길게 난 올림픽도로를 타고 회사에 출근해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 일과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사장이 부르기 전까지는.


오전이 다 가기 전, (고용된) 사장은 남편을 불러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오늘 부로 일에서 손 떼세요." 

사유는 '노조가 설립되도록 방만하게 관리한 책임'이라 했다. 여태 노조설립과 관련해 어떠한 언질도 없었던 회사였다. 또한 노조설립 과정에 노사 간 불미스런 불협화음도 없었고 당연히 사측도 승인한 노조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책임을 지라니. 사실상 강제 해고였다.   

60세까지 회사 다닌다던 그, 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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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로 일에서 손을 떼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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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아침, 남편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말을 던졌다. 남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최근 사직이나 이직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분명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어떤 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직감했다.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짐을 챙기러 회사에 간 동안 아이들에게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납득할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고 아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받아들이다가는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가는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한 어떤 무언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만에 벌어진 이 상황을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짐을 챙기고 돌아온 남편은 전날에 벌어진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그는 말을 아꼈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남편이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그것을 의심하였다. 남편의 쓸모가 다해지면 언제 어떻게든 버려질 것이라고. 그렇에 짐작했어도 그날은, 도둑처럼 들이닥쳤다.

"엄마는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

불과 몇 주 전, 고등학생인 딸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모르는 척 "노후 준비가 뭐냐"고 되물었다. 딸은 "그러니까...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면..."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딸의 진지한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노후준비라는 거 안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써주는 데가 없는데 나이 더 들어 육십 넘어 무슨 힘과 능력이 있어 일하느냐고 했다. 미래 세대를 재생산하고 또 젊은 시절 열심히 노동했으면 노후는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고 한 발 더 나갔다. 아이는 "현실이 어디 그러느냐" 했고, 나는 "그래서 이런 체제를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노후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내 노후설계는 이 체제를 바꾸는 데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남편의 해고 소식을 듣고 나니, 나는 노후가 아니라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러 생각을 해야 했다. 재산이라고는 낡고 오래된 집 하나가 전부, 물론 이 집이라도 있어 전세금 인상이나 애들 넷 데리고 이사 다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입은 노후를 준비할 만큼 넉넉하진 않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살 수 있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일자리를 잃으니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안하게 다가왔다.   

교육비가 가장 많이 나가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대책도 아닌 것을 대책이라고 가장 먼저 떠올렸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있는 대로 나열해 보았다.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었으니 경력이랄 것도 없고 나이도 많아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었다. 식당종업원, 빌딩청소원, 콜센터상담원, 가사도우미, 건설현장 노동 잡부, 베이비시터, 대형마트 계산원, 보험 판매원... 그것도 건강을 전제하고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러나 그만큼 불안정한 일자리들이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그만 떠나라

남편과 나는 1980년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 남편은 공부를 잘했다. 학문의 길을 가는가 싶었는데 그는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는 돌연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선택했다. 당시 대학 졸업자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남편 또한 어렵지 않게 사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 출신에 꽤 괜찮은 성적에 성실하고 정직한 그의 성품은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모두 가산점으로 작용했다.

남편은 20여 년 동안 세 차례 이직했으며 직전에는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와 교육, 총무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았다. 최근 2년 여 동안은 하루 평균 15시간 일을 해야 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부분 외국기업들이 무노조 경영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남편이 다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영업직 사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었는데, 그것이 사용주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사용주는 그것을 빌미로 남편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사실상 강제 해고한 것이다. 남편에게 잘못이 있다면, 바보같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남편은 평소 자신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소소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매우 꺼렸다. 행여 그럴 여지가 있을 것 같으면 일찌감치 외면하곤 했는데 이번만은 사안이 달랐다. 어떠한 실책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넷 모두 학업중이라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 사는데, 이 상황에서 해고란 그야말로 살인적 행위였다. 우리 가족은 얼마 안 가 빚더미에 앉을 게 뻔했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하든, 사측에 직접 보상을 청구하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은근 소송을 권유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막연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남편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실 남편이 그 벽을 높게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직한 남편, 아빠가 되어 아내와 자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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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아이들 넷이 모두 학업 중이라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때이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 사는데, 이 상황에서 해고란 그야말로 살인적 행위였다. (자료사진)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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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사에 1년치 임금을 보상안으로 내놓았고, 회사는 전례 없음을 핑계로 6개월치 조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부당해고에 동료 노동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사측은 일주일도 안 되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얄팍한 술수였다. 동일한 사용주가 설립한 그러나 별개의 기업체로의 자리 이동이었다. 동일한 보수와 동일한 직책을 보장한다고 하였으나 남편에게 맡겨진 업무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사측은 외견상 해고를 철회하고 새로운 직책을 보장하는 것 같은 카드를 던져 자기 합리화를 완성했다. 그들은 이제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남편의 결정을 기다렸다. 쉰 살이 넘은 남편은 경력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 나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그가 타진해 본 현실은 냉엄했다. 남편은 사측의 속내를 알면서도 이 카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자존심에 상처가 난 건 사실이고..."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말했다. 사측의 교활한 술책보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상처 난 자존심보다 당장 내일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게 남편에겐 우선이었다. 결국 남편은 임금에 합의하고 2년 계약직으로 회사와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

어쨌든 남편은 새로운 회사와 2년 계약을 했고 8월부터 새로운 업무를 한다. 업무 내용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라 한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될까. 어차피 같은 사용주의 다른 회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떤 걸 빌미로 다시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  

지금 남편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씁쓸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매 주말이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아 나에게 잔소리를 듣던 그는, 어찌 되었든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지금 오히려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는다. 

그는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 나무 분진을 먹어가며 뭔가를 만든다고 뚝딱거리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당한 자신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열중하는지 모르겠다. "평생에 이런 휴가를 보낼 기회가 어디 있겠어, 푹 쉬어"라고 나 또한 그렇게 남 일처럼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어느 토요일이나 일요일인 양, 게으름을 있는 대로 부리는 그런 날쯤으로 여겼다. 남편이나 나나 아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인생'도 멈춰서야 비로소 보이기 마련이라고, 하루 15시간 가깝게 일을 하면서 남편은 자신이 쳇바퀴에서 돌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6월 하순 어느 금요일 아침, 남편의 쳇바퀴는 오전이 다 가기 전에 외부의 힘에 강제로 멈춰 섰고 그는 거기에서 끌려 내려와야 했다. 

어지러움과 갈팡질팡도 잠시, 그는 다시 다른 쳇바퀴로 옮겨 타게 되었다. 그의 쳇바퀴는 얼마나 굴러갈까. 얼마나 안전할까. 그리고 그 안에 남편은 예전과 같을까 다를까. 알 수가 없다. 나는 며칠 뒤, 일에 복귀하는 그를 위해 그동안 내팽개쳐 두었던 와이셔츠를 다리고 얼마 전에 사 두었던 남편의 옷들을 손질해 두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본 원고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정세와노동> 103호(2014년 7,8월 합본호)에 투고한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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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2014. 07. 29
조회수 3818 추천수 1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1>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맑게 가꾼 화포천으로 어느날 짠!
  2005년 자연으로 돌아간 일본 복원종 한 마리 건너와
 
049.JPG» 화포천 습지에서 먹이 활동하는 봉순이.
“봉순아, 넌 참 대단한 아이였구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공섬에 들어선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면서 나는 네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고 혼잣말을 했단다. 물론 너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제비 같은 여름철새도 바다를 건너 고향을 찾아오지만 그들은 대개 무리를 지어 오기 때문에 홀로 바다를 건너온 네가 더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014.JPG» 상승기류가 형성되면 한바탕 날아올랐다가 제자리로 내려앉는 봉순이.
 네가 우리나라에 온 건 3월18일이니까 여름새들이 오는 날짜와 거의 비슷했구나. 두 살밖에 안 된 네가 한국에 오는 여름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아직 모르지? 내가 사는 곳에 오는 여름새들을 대략 적어볼까? 가장 먼저 오는 녀석이 호랑지빠귀와 되지빠귀라는 녀석이고 그 뒤를 이어 산솔새, 큰유리새, 소쩍새, 울새, 벙어리뻐꾸기, 흰눈섭황금새, 숲새,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꾀꼬리, 두견이, 쏙독새, 호반새, 청호반새, 팔색조, 휘파람새, 상모솔새, 뻐꾸기 등이란다. 모두 이곳이 고향이야.    
 그런데 너는 이곳 경남 김해시 화포천이 태어난 곳도 아니면서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학자들이나 매스컴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신문에 기사 나가자 찾아가 마지막 황새 수컷 총으로 사냥
 
 슬픈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그러니까 네가 상상도 못할 1971년의 일이야. 그해 <동아일보> 4월1일치(하필이면 만우절이람)에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황새 한 쌍이 살고 있다고 보도했어. 1971년이면 인간에게 그리 긴 세월은 아니야. 글을 쓰는 내가 1953년에 태어났으니까. 그 전까지는 이 땅에 황새가 살고 있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우리는 자연생태에 대해 정말 무지했어. 신문에 황새가 살고 있다고 보도되고 사흘 뒤 더 무지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포수가 수컷 황새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야. 
 
001.JPG» 황새는 까치처럼 민가 주변에 둥지를 틀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재미삼아 다른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짜릿한 쾌감을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정말 비인간적이지 않겠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잖아. 그게 무슨 뜻이냐면 인간만이 다른 생명에 대해 배려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뜻이야. 인간이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들고 우주로 날아갔대서 만물의 영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봐봐, 너희들은 두 날개로 가볍게 바다를 건너는데 인간은 어디 그래? 거대한 비행기나 배를 타고 화석연료를 마구 써대면서 다니잖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 후 실수의 연속이었어. 이 땅에 남은 황새 한 쌍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면 포수의 총질에 피해를 입지도 않았을 테지. 거기다가 남은 암컷 황새가 해마다 무정란을 낳을 때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어. 
 그리고 1984년 기어이 암컷 황새가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쓰러졌어. 부랴부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치료를 했지. 우리 안에서 살던 황새는 1994년 삶을 마감했단다. 황새가 멸종위기에 몰려있거나 죽어가고 있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으며 그 많은 생물학자들은 다 뭐하고 있었는지, 황새들은 죽어가면서 인간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너 한 마리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 하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 왜냐하면 봉순이 네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시들해졌거든. 내가 대통령이라면, 내가 문화재청장이라면 내가 경상남도 도지사나 김해시장이었다면, 내가 조류보호협회장이었다면, 너한테 사람을 붙여 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기록하고 살피고 혹시라도 변을 당하지는 않는지 관리했을 텐데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그러지 않았어. 
 우리나라에서도 네가 태어난 일본처럼 황새 복원에 성공했고 2014년 7월 현재 150여 마리로 늘어났어. 그러니까 머잖아 이 땅에서 황새가 너울너울 날아다닐 텐데 봉순이 너 한 마리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사람들이 큰 실수를 하는 거야. 
 
003.JPG» 다가오는 개도 무서워하지 않고 쫓아버리는 봉순이.
018.JPG»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떼어먹기도 하고 거미를 잡아먹기도 한다.
019.JPG» 가끔씩 홰를 쳐 몸에 붙은 기생충을 털어낸다.
040.JPG» 둥지 재료를 모으는 두 살짜리 암컷 봉순이.
041.JPG» 황새는 목소리로 울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부리를 부딪쳐 소리를 내 소통한다.
 네가 어디 보통 녀석이냐? 일본도 우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황새가 멸종하여 바로 복원 작업에 들어갔고 드디어 2005년에 자연으로 날려 보냈어. 너도 그 중 하나였고 유일하게 바다 건너 국외로 건너온 거잖아. 너는 학술적으로도 소중한 존재가 분명하고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도화선 될 수도 있는 거였어.
 
 유기농 들판과 깨끗한 강에 물고기도 새도 몰려와
 
 이렇게 사람들이 너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네가 자주 출몰한다는 화포천과 봉하마을과 퇴래뜰을 뒤지고 다녔어. 5월 말이니까 들판은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려고 써레질이 한창이었어. 
 며칠 뒤였어. 저만큼에서 하얗고 큰 새가 눈에 띄는 거야. 두루미를 오랫동안 관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네가 금방 황새라는 걸 알아챘어. 예로부터 황새, 두루미, 백로처럼 흰 색깔의 새들은 학(鶴)이라고 불렀지. 학의 어원은 ‘희다’는 뜻을 가졌대.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은 너도 학으로 불렀다는 거야. 
 
 017.JPG» 황새의 먹이는 미꾸라지, 뱀, 개구리, 곤충 등 다양하다. 먹이를 발견하고 논으로 뛰어드는 봉순이.
 너를 보는 순간 나는 ‘그가 황새가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어. ‘그’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해. 생전의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내려와 살려고 했어. 마을 뒷산 이름이 봉화산이고 봉우리 밑에 있는 마을이라서 봉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대. 
 
090.JPG» 7월17일 일본 도요오카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5회 국제황새회의에서 오염된 화포천을 생태공원으로 가꾼 노무현 대통령이 소개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앞을 흐르는 화포천을 맑게 가꾸는 일이었어. 수백 트럭 분량의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수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깨끗해진 화포천으로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이 몰려왔어. 화포천은 아름다운 습지공원이 된 거지. 그리고 봉하마을 앞 들판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으로 바뀌었어.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즐겨 입던 우리 민족처럼
 
 그곳을 용케 네가 찾아온 거야. 너희는 오염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무척 정갈한 종족이었어. 슬픈 얘기 하나 더 할까? 음성에서 황새가 발견될 당시만 해도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어. 1971년 국민소득이 300달러가 안 됐으니까. 국민이 배곯지 않으려면 당연히 식량증산을 해야겠지. 
 
025.JPG» 제초제를 살포하는 농민. 유기농을 하지 않는 지역이 더 많아 황새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046.JPG» 함부로 쓰고 버려진 제초제 포장지. 습지에서 사는 생물들에게 치명적이다.
 결국 대량생산을 위해 독한 농약이 개발되고 드넓은 농경지에 농약이 뿌려지기 시작했어. 최근에는 농민의 노령화로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쓰는 나라가 되었지.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면 개구리, 미꾸라지, 새우, 땅강아지, 지렁이, 거미 같은 논습지 생물이 살 수가 없어. 그러면 이들을 먹이로 하는 너희 족속들은 굶을 수밖에 없겠지? 결국 이 땅에서 너희들이 사라진 원인은 우리 인간에게 있었던 거야.   
 
 006.jpg»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은 봉순이. 미꾸라지는 황새들의 주식이다.
 하얀 몸통 검은 꽁지. 옛 사람들은 우선 너의 ‘스타일’부터 좋아했어. 왜냐하면 예전에는 우리도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즐겨 입었거든. 영덕대게처럼 길고 붉은 다리에는 네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아이인지 알 수 있는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고 ‘J0051‘이라는 번호가 선명했어. 그 번호로 우리는 일본 효고현 도요요카 황새마을에서 날아온 녀석이라는 걸 알았지. 
 근데 로봇도 아니고 J0051이 뭐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봉순이’라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한국적인 이름을 지어주었어. 봉하마을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이야. 그 후 사람들도 너를 봉순이로 부르게 되었단다.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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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④] E학생의 법정 증언

14.07.29 01:26l최종 업데이트 14.07.29 10:36l

박소희(sost)

E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 역시 사고 당일 선실(SP-1번방)이 물에 거의 잠긴 뒤에야 빠져나왔다. 28일 다섯 번째 증인으로 나선 그는 처음 배가 기울었을 때 방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내방송이 그를 붙잡았다.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죠.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어요."

E학생은 결국 한참 뒤에 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사고 초반에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을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E학생의 증언 전문이다. 앞부분은 검찰 측, 뒷부분은 변호인 측 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문에 물이 닿더니... 콸콸콸 물 차는 소리가 났다"

[검찰 측 신문]

- 세월호에서 배정받은 숙소는?
"SP-1번방이다."

- 4월 16일 일어났을 때부터 사고 직전까지 상황을 설명해 달라.
"아침에 머리를 감으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머리 다 감고 말린 다음에 밥을 늦게 먹었다. 식사한 뒤에 나는 자려고 (방에) 누웠다. 그때 배가 기울었다."

- 당시 선실 상황은 어땠나.
"일단 배가 기울어지고 나서 창문 쪽으로 애들하고 짐하고 다 쏠려서 친구들이 깔려버렸다. 막 날아가서 부딪치고. '뭐야, 뭐야' 이러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배가 기우니까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반장이 막 괜찮다고 하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한테 '괜찮으니까 침착하게 기다려라'는 카카오톡이 왔다. 안내방송에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배가 점점 기우니까 창문에 물이 닿는 게 보였고, 나중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더라. 불도 다 꺼지고 불안해서 엄마한테 문자 보내고 애들은 통화하고 있던 중에 배가 더 기울어졌다. 갑자기 쩌저적 소리가 나고 콸콸콸 물이 차는 소리가 났는데 (불이 꺼져서) 보이는 게 없으니까 굉장히 무서웠다. 또 갑자기 쾅 소리가 들리면서 캐비닛이 부서지고 아이들이 깔렸다. 나랑 친구는 캐비닛에 갇혀버렸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 캐비닛을 쳐서 빠져나오니까, 위에서 친구들이 올려주고 뒤에서 받쳐주고 해서 복도로 나왔다. 거기서 반대쪽(선수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그쪽이 아니다'라고 해서 뒤편, 꼬리 쪽으로 나왔다."

- 배가 최초로 기울 때 쿵하는 소리나 쇠 긁히는 소리는 못 들었나.
"아뇨, 기억에 없다."

- 안내방송에선 뭐라고 했나.
"가만히 있으라는 게 몇 차례 반복되다가 '주변에 잡을 것 있음 잡고, 구명조끼 입어라'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방송 나오기 전에) 먼저 찾아서 입고 있었다. 애들이 우연히 구명조끼 있는 곳을 찾아서 입자고 하기에 입었다."

"해경이나 선원 없이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 결국 선실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안에 물이 차면서 몸이 떠올라 나온 것인가.
"네. 선실 안에 물이 거의 가득 차서 몸이 떴고 친구들이 도와줘서 나왔다."

- 그때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줬나.
"그런 건 없었고 그냥 우리끼리 (서로) 도와서 나왔다. 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가 (선미 쪽으로) 나왔는데, 바로 밑이 물이었다. 거기 어떤 아저씨가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이미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구명보트로 구조됐다. (해경이) 안으로 들어와서 구해준 건 아니다."

- 왜 사고가 난 직후에 방에서 탈출하지 않았나.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다.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라.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다."

- 선원들을 믿고 기다린 건가.
"네. 그리고 해경도 곧 온다는 방송이 나와서, 해경이 복도 쪽으로 들어와서 우리들을 끌어줄 것으로 알고 계속 기다렸다."

- 탈출하면서 다친 곳은 없었는가.
"(방에서 나오기 위해) 올라 올 때 다리에 힘을 많이 줘서 다쳤다. 나중에 섬에 가서 보니까 막 긁혔더라."

- 정신적으로 힘든 건….
"… 가끔씩 (사고 당시 상황이) 막 생각나고… (이번에 숨진) 애들도 생각나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 마땅한 대가 받아야 한다"

- 다른 피해자들은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도 했다. 같은 생각인가.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의 행동에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혹시 세월호 탔을 때 비상탈출 관련 교육을 받은 적 있는가.
"세월호에 탔을 때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 텔레비전으로 (동영상 보면서) 교육받지 않았나.
"잘 모르겠다."

- 선실이나 복도에 붙어있는 안내문에서 '이 배에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비상벨이나 비상 기적 소리가 울리면 탈출해라'라는 문구나 내용이 있는 걸 봤나.
"아뇨. 전혀 없었다."

- 만약 사고 초반에, 처음 배가 기운 직후에 대피하라고 했다면 더 일찍 탈출할 수 있었나.
"초반에, 그때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거다."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다"

[변호인 측 신문]

- (이준석 선장의 변호인) '해경이 곧 온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했는데.
"네. '해경이 곧 도착하고 헬기도 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 방송이 나온 시각은?
"잘 모르겠다."

- 그럼 혹시 방송 내용에 '5분 안에 온다, 10분 안에 온다' 이렇게 시간이 들어있었나.
"잘 모르겠다."

- 탈출한 시각은 기억하고 있는지.
"거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좀 오래……. 잘 모르겠다. (당시 주변에서 내가) 나온 시각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냥 나오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부모님한테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한 다음 곧바로 섬으로 이동했다. 시간을 볼 겨를이 없었다."

- 그럼 배가 기우는 속도는 어땠나. 조금씩 기울었나 아니면 급격하게 넘어갔나.
"처음에는 확 기울어졌다가 그 뒤에 천천히 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기울었다."

- 마지막에 배가 확 기울었던 시점은 탈출 전부터 대략 언제쯤이었나.
"그건 잘 모르겠다. 처음에 기울고 쭉 안 기울어지다가 확 넘어갔는데…."

- (강아무개 1등 항해사·전아무개 조기장·김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OO학생이랑 같이 갇혀 있다가 방에서 나온 건가.
"같은 방이긴 했는데, 있던 위치는 달랐다."

- (재판장) 물 온도는 어땠나.
"매우 차가웠다."

[관련기사]
[생존 학생 증언 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 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 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생존 학생 증언 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생존 학생 증언 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
[생존 학생 증언 공판 종합] 참사 104일 만에 입 연 단원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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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서방 세력’ 악마화 위해 진실 감추는 서구 언론

김원식 재미언론인    발행시간 2014-07-29 08:40:15 최종수정 2014-07-29 08:36:31 

 

바레인 남자아이

바레인 남자아이가 26일(현지시간) 카라나에서 열린 가자지구 지지 집회 중 가자지구 어린이를 죽이지 말라는 배너를 들고 있다.ⓒ뉴시스

 

외신을 접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이른바 ‘반군’을 뜻하는 ‘insurgent’이다. 폭력을 행사해 반란을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폭도’, ‘반란 무장세력’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단어는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다. 즉, 현재의 정권이나 지배 계급의 권력에 반하는 모든 종류의 행동이 이 ‘반란’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친서방화 되어있는 이라크 정부나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서 다시 이들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는 세력들이 주로 이러한 ‘반군’이나 ‘급진주의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어 각종 서구 언론에 보도된다.

하지만 서구 언론에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아랍의 봄’이나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묘사되는 무장 시위 세력들의 반정부 행위도 당시 해당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반란’이자 ‘반군’인 것이다. 이렇듯 ‘반군’이라는 표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군’들이 득세를 하게 되면 정권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그들을 이른바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국가에 반하는 무장 세력이 등장했을 때에는 역설적으로 진실 보도를 생명으로 한다는 언론, 특히 서구 언론들이 이러한 ‘나쁜 놈’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엄청난 달러를 퍼부어가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나름 친미적인 정권을 세우고 나서 철군을 완료한 미국은 현재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한마디로 ‘10년 공부’가 아닌 ‘10년 개입’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형국에 처한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무장 단체가 ‘이슬람국가(IS)’ 건설을 선포하고 이라크 지역들을 장악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현 시아파인 이라크 정부가 미국의 지원과 돈에만 의존한 채, 엉성하게 국가를 관리하며 부패를 양산한 것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라크 현 정부나 이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들은 이른바 ‘반군’인 것이다. 이러한 반군(?)들이 자라날 토양을 서방 국가 스스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서방은 이제 그들은 무조건 ‘나쁜 놈’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만 남은 것이다.

“4억 달러 강탈해 갔다”?… 그러나 “종이 한 장 사라진 적 없다”

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 세력은 놀랍게도 삽시간에 이라크의 제2의 도시인 모술까지 장악해 가며 세력을 확장했다. 과연 현지 주민들의 동조나 지지가 없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것은 또 달리 평가해 보아야 할 사항이다.

아무튼, 이들은 어쨌든 현재 서방 국가에 반하는 세력이니 이들에 관한 조그마한 소문도 이 잡듯이 잡아내어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야 하는 서방 국가의 절박함이 생겨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서구 언론들이 알아서 총대를 멨다.

지난 6월 이들 무장 세력들이 모술 지역을 장악하자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이들 반군(?) 세력이 모술 중앙은행을 습격해 4억 달러가 넘는 돈과 금괴를 약탈(heist)해 갔다고 보도했다. 6월 20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세력이 약 4억 2천5백만 달러의 돈을 약탈해 갔다”며 “이들이 세계 최고로 ‘부유한 테러리스트’ 그룹이 되었다”고 이라크 정부 관리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모든 서구 언론들이 그대로 보도했다. 한술 더 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일, “‘스탠다드차타드(SC)’와 ‘시티(citi)’등 최근 이라크에 진출한 서방의 대형 은행들이 이러한 내전 상황으로 이라크를 떠나고 있다”고 확대해 보도하면서 더욱 파문을 몰고 왔다.

그런데 스스로 너무 크게 ‘나쁜 놈’으로 만든 데 대한 서구 언론들의 미안함일까? FT는 17일 자 기사에서 처음 약탈 사실을 전했던 이라크 지역 관리가 갑자기 말을 바꾸어 “아직 약탈 사실을 확인해줄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면서 “중앙은행 약탈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24일 자 기사에서 아예 이라크 민간은행협회 대표의 말을 인용하며 “모술에 있는 어떤 은행에서도 종이 한 장 사라진 적이 없다”며 “그러한 약탈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이슬람국가(IS)’를 표방하는 이들 무장 세력은 ‘반군’이라는 이미지 위에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난 다음이었다.

지난 24일에는 IS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11∼46세 여성들을 상대로 할례를 명령하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으며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AFP통신을 선두로 줄을 이었다.

하지만 FP에 의하면, 이 또한 확인되지 않은 낭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의 카이로 지국장인 레일라 파델에 따르면 모술의 의사에서부터 부족장에 이르기까지 현지 주민들은 이 같은 명령(파트와)은 듣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FP는 24일 전했다.

이 사실을 현지에서 처음 전한 것으로 알려진 재클린 배드콕 유엔 이라크 담당 인도주의 업무 조정관을 담당하는 유엔 이라크사무소 측은 배드콕이 무슨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고 FP는 덧붙였다.

FP는 또한, IS가 장악한 현지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성당을 불태웠다는 등 여러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사실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 예로 지난주에는 IS가 성 에프렘 성당을 불태웠다는 외신 보도가 줄을 이었지만, 이 기사와 함께 발행된 사진에 찍힌 교회는 이라크가 아니라 시리아에 있는 가톨릭 교회였으며 이 성당이 불탔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람은 모술 시내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FP는 전했다.

‘여객기 참사’ 조사 시작되기도 전에 ‘말레이기 격추=우크라이나 반군 소행’?

이라크에서 최근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슬람국가(IS)’를 표방하는 무장 세력이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국가에는 ‘반군’ 세력이라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당연히 최근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저항하고 있는 무장 세력이 이들 서방 국가에는 눈엣가시인 ‘반군’ 세력이다.

서방 국가들은 한때 이른바 제2의 ‘오렌지 혁명’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크림 반도까지 러시아에 합병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서방 국가들은 다시 동부 지역 주민들이 친러시아의 분리 국가를 선포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분리주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동부 지역 주민(서구 언론은 ‘반군’이라 표현하지만, 러시아 등 비서방 언론은 ‘민병대’라고 표현)들 간의 내전 상황으로 돌입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상공을 날고 있던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피격되어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가 발생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방 국가나 서구 언론들은 참사를 자행한 범인으로 분리주의 무장 세력인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목했고 이를 지원한 러시아를 정조준했다.

비행기 사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아서 ‘나쁜 놈’은 이렇게 순식간에 정해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정적 증거’라면서 우크라이나 반군과 러시아군 간의 통화 도청 자료를 내놓았고 여객기를 피격한 ‘부크(buk)’ 미사일이 사건 전후 반군 지역에서 러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사진이라며 여러 증거(?)들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이런 내용은 이 물증들의 사실 여부나 검증과는 관계없이 신속하게 서구 언론을 타고 보도되었다. 즉, ‘우크라이나 반군=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세계인들 특히, 서구인들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청과 사진은 조작된 가짜”라는 러시아의 주장은 보도하지 않는 서구 언론

<러시아의 소리> 방송 등 러시아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동부서 격추된 말레이기 증명 기록 가짜, 전문가 인정”이라는 제목으로 이 도청 자료가 과거 분리주의 무장 세력이 군용기를 격추했을 때의 대화 내용 등을 단락 별로 짜깁기한 조작품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미 ‘나쁜 놈’을 만들어 놓은 서구 언론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21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장하는 ‘부크’ 미사일이 러시아로 이송되는 동영상과 사진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군 합참본부 정보국장은 해당 사진에 등장한 지역의 상점 간판을 인용하며 “그 지역은 지난 5월 11일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사진 조작의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서구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객기 참사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 소행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국 정부 누리집에 여러 장의 ‘부크’ 미사일 관련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3월에 촬영된 조작으로 누리꾼들에 의해 밝혀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슬그머니 해당 사진을 내렸다.

부크 미사일 이동 사진
7월 19일 우크라이나 안보국 누리집에 올라왔던 ‘부크’ 미사일 이동 사진, 지난 3월에 촬영된 것으로 밝혀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슬그머니 이 사진을 내렸다.ⓒScreenshot: Vk.com

지난 23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차장급 인사는 이례적으로 대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그는 CIA가 그동안 정보(?)를 슬쩍 흘리는 차원이 아니라 왜 “직접 브리핑까지 하느냐”고 한 기자 질문하자 “러시아가 자신들의 소행을 감추려고 너무 많은 선전전을 펼치고 있어서…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CIA는 이날도 러시아가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군사시설 사진들 몇 장만 제시한 채, 이른바 우크라이나 반군이 ‘부크’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러시아 측으로부터 미국 인공위성이 당시 사고 현장 상공을 비행 중이었는데 결정적 증거가 있다면, 왜 사진을 공개하지 않느냐고 조롱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즉, 이번 말레이기 피격 참사와 관련하여 아직 그 어떤 당사자도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고 있지 못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서구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반군=나쁜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오히려 ‘피격’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꺼리며 ‘추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중국 정부나 중국 언론들이 더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지금 확인된 것은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사실밖에 없으니 철저한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마스’가 3명 납치, 살해?... 천여 명 넘게 죽이는 이스라엘이 ‘나쁜 놈’ 아닌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에 인해 이른바 서구적 시각에 길들어져 있는 우리는 최근 또 하나의 ‘나쁜 놈(?)’을 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이른바 ‘하마스’라는 무장 세력이다. 역시 ‘급진주의’에다가 ‘테러리스트’라는 악명(?)으로 이미 서구 언론들로부터 ‘나쁜 놈’으로 낙인 찍힌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 기자는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학살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보면서 이 ‘하마스’가 대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최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청소년 3명을 납치 살해한 범인으로 ‘하마스’를 지목하고 보복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범행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았고,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들의 공격 명분이 된 이 사건 조사 결과는 발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26일, ‘걸프뉴스’와 ‘데일리스타’ 등 영문판 중동 언론들은 미키 로젠펠드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이 BBC 중동 특파원에게 “유대인 청소년 납치·살해는 하마스 연계 조직이 하마스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들은 이어 로젠펠드 대변인은 “하마스가 납치를 지시한 것이라면 그들이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어야 하겠지만, 하마스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조사하려고 이스라엘은 4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연행하며 최근 학살에 가까운 공습을 감행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이 잡듯이 뒤졌지만, ‘하마스’가 범인이라는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는 없었다. 그렇게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 공습을 이스라엘은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학살에 가까운 보도들은 뒷전으로 하고 여전히 하마스를 ‘나쁜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가자지구 봉쇄를 풀라는 주민들의 절박한 요구의 당위성을 보도하는 서구 언론은 찾기 힘들다. 그러는 사이 무려 천여 명이 넘는 무고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죽어 갔다. 그리고 오늘도 이스라엘은 잔인하게 가자지구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정말 누가 진짜 ‘나쁜 놈’인가.

필자 소개:김원식 재미언론인

66년 부산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행정대학원 외교안보석사 5학기 마침. ‘시민자치를 위한 젊은일꾼 모임’ 공동 대표. 시민단체 추천 고양시장·시의원 선거 입후보. 해커스랩 기획팀장 등 보안전문가. 2007년 도미 후 저널리스트 활동 중. 현재. 시사저널·서울신문(나우뉴스) 미국 통신원.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시민기자. ‘진실의길’ 칼럼니스트. 주권방송 ‘미국에서 바라본 한반도’ 화상 대담 진행. ‘국제 갈등’ 및 ‘디지털 저널리즘’ 수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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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이대로 가면 2008년 금융위기 재발한다"

"규제 완화는 좋다는 생각 바꿔야…박근혜, 약속 쉽게 깨"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28 18:47:41

 

 

 

 

 

 

"막연하게 이런 책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쓸 엄두를 못 냈다."

 
장하준(51)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2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 첫 마디다. 읽기에 부담이 없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경제학 입문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책이 2년 반에 걸쳐 원고를 두 차례나 뒤엎는 노력 끝에 출간됐다.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다. 
 
이 책은 영국의 펠리컨 북스(Pelican Books·펭귄 출판사)의 윌 굿래드 편집자가 지난 2011년 장 교수에게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입문서를 쓰자'고 제안을 하며 만들어지기 시작됐다. 펭귄 출판사는 1937년부터 2878종의 교양 논픽션 문고본을 제작하다 1989년 종간했으며, 최근 25년간의 동면을 마치고 장 교수의 이번 책을 첫 작품으로 복간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출간된 책의 영문 제목은 <Economics, The User's Guide>다. 
 
장 교수는 이날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며 이번 책에 쏟은 그의 특별한 정성을 표현했다. 
 
그는 "보통 입문서라고 하면 논란이 많은 주제나 철학적·역사적 이야기는 빼고 '10가지만 알아라' 식으로 단순화하는데 이는 독자를 깔보는 것"이라며 "독자를 깔보지 않고 복잡하고 껄끄러운 논쟁도 많이 소개했다. 독자들이 스스로 뭐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 44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경제학은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라는 흔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러면서도 9개 경제학파별 주요 논쟁과 그것이 다루려는 현실 경제 문제를 입담 좋게 엮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앞선 그의 책들이 '현안'에 대한 장 교수 나름의 해설본이었다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 전반에 대한 '조감도'다. 
 
큰 그림을 입체감 있게 보이기 위한 책인 만큼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사, 경제학설사 등으로 보통 표현되는 이러한 주제는 결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장 교수는 "9개 학파의 그 모든 이론이 지금도 다 살아있고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경제학 입문서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학계의 절대 주류로 뿌리내린 시카고학파(신고전학파의 한 부류)에서 잠시만 눈을 돌려도,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주제를 좀 더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장 교수가 든 게 생산과 노동 문제다. 장 교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경제를 '교환 관계'로 설명하며 그 주체를 '개인'으로 본다"며 "기업도 개인의 연장에서 보니 '시장' 얘기는 하면서 '생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공장 문제는 사회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하며, 경제학은 '직장 문' 앞에서 끝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로 주류 경제학은 대체로 '노동'이란 근본적인 주제를 누락하고 있다. 장 교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선 얘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사람들을 자꾸 '소비자'로만 두니 어떻게 돈을 벌게 해서 잘 쓰게 할 것이냐에만 집중하고, 노동 강도나 노동 시간, 고용 불안 문제에 대한 고민은 안 하게 돼 정책에서 노동이 배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는 표현을 책에서 썼다. 책 115~116페이지에서 장 교수는 여러 "경제를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데, 혹은 경제학을 '하는' 데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며 "어느 학파도 다른 학파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자기들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숫자를 알아야 현실 경제 '감' 잡을 수 있다"
 
'절대 반지는 없다'와 함께 이 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이 '실제 숫자'다. 책의 2부 '경제학 사용하기'를 구성하는 7개 모든 장에 이 '실제 숫자'란 챕터가 포함돼 있다. 장 교수는 "경제학이라고 하면 흔히 숫자를 많이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제학과 나온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세계 GDP,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잘 없다"며 "'실제 숫자'들과 익숙해지지 않으면 현실 경제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실제 숫자'에 대한 '무감각'으로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나라별 다른 가격 수준을 반영한 GDP 혹은 국민총생산(GNP)의 조정치, 즉 구매력 평가(PPP)를 근거로 '어떤 국가가 세계 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시장 환율은 교역이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공급으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교역되지 않는 서비스 부문이 비싼 나라(주로 선진국)들의 구매력 평가 소득은 낮게 계산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선진국의 생활 수준이 저평가된 지표로 국가별 경제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중국 경제 규모가 커져 곧 미국을 따라잡는다고들 얘기하면서 구매력 기준으로들 흔히 잘못 얘기한다"며 "구매력은 생활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지 세계 경제에서 비중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2010년 각국 GDP를 모두 합한 세계 GDP 63조4000억 달러 중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9.4%, 미국은 22.7%였다. 장 교수는 "모든 숫자를 꼭 다 기억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될 수 있으면 많은 숫자를 (독자들에게) 드림으로써 세계 경제가 대략 이런 식으로 생겼다는 것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모바일 기기에선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이대로면 금융위기 재발…금융 규제로 '경제 안전'도 챙겨야"
 
책에 대한 설명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장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의 상황을 묻는 말에 "2008년 일어난 일이 재발할 거란 게 제 생각"이라고 답했다. 금융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금융위기 재발 우려는 이 책의 8장 '피델리티 피두시어리 뱅그에 난리가 났어요'에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장 교수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숫자들이긴 하나, 세계 GDP와 금융자산 두 개가 1970년대까지는 1.2대 1 정도의 비율을 보였다가 지금은 추산에 따라 4대 1일에서 5대 1로도 계산된다"며 "이래서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났지만 그 뒤에 이루어진 개혁은 매우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켰던 파생상품에 관한 규제도 새로 도입된 것이 거의 없고, 그나마 조금 이루어졌다는 게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7년이란 유예기간을 두며 강화하게끔 한 정도였다"며 "그러니 다시 예전 일이 재현되고 있다. 미국 주가지수가 2007년 가을에 비해 20%가 높은데, 경제지수는 그 때에 비해 1~2%밖에 안 크다. 주가가 엄청나게 거품이라 고꾸라졌는데 그보다 더 큰 거품이 생긴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위기가 다시 촉발될 시기를 점칠 수는 없다. 그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서구가 갈등하고 있는데, 만약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러시아에서 보복하고자 유럽에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면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난다. 어떤 게 뇌관이 돼서 촉발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금융 규제'를 역설했다. 장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낳은 것"이라고 간추리며 "비행기가 떨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물리적 안전만큼이나 경제 안전도 중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깨지지 않은 '규제는 무조건 풀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좀 고쳤으면 하는 경제학자로서의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이 그나마 좋았던 것 또한 "부동산 대출 규제 등에서 다른 나라보다 나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규제를 풀었다가 더 악화된 상태에서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약속 너무 가볍게 깬 것 문제"
사내유보금 과세, 못 할 것 없다…배당도 지원 대상인 건 맞지 않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장 교수의 평가 및 생각을 묻는 말도 이어졌다. 이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떤가
 
박근혜 정부가 처음 했던 양극화 해소나 복지에 대한 약속을 어긴 것이 되게 많다. 일을 하다 보면 경제 사정에 따라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약속을 너무 가볍게 깬 것이 아닌가 한다. 바꾸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잘 설명했어야 한다. 문제가 많았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우리 경제에 어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 한 단계 도약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앞선 대부분 정부가 그랬다. 기술력도 키우고 투자도 많이 하고 시장도 개척해야 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주축으로 하는 새 경제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기업에 쌓인 돈을 풀게끔 하기 위해 과세를 하려 하자, 선진국에선 유례없는 일이란 반발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사내유보금 자체를 문제 삼았던 사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들이 안 한다고 못 할 것은 없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투자를 하거나 임금을 올리거나까지는 좋은데, 배당을 해도 과세 대상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 의도와 맞지 않는다. 배당금으로 주면 30%는 외국으로 나간다. 가계 투자자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외국 투자자들 중심으로 배당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를 더 장려하는 게 우리 경제에 좋은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배당이 끼었는지를 이해를 잘 못 하겠다. 
 
- 한국에선 특히 심각한 문제지만 잘 다뤄지지 않는 게 비정규직 문제다. 이에 대한 생각은. 
 
비정규직이 기업 입장에선 유연성을 늘려 좋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로선 매우 고달픈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 자체도 부족해 문제다. 단기 고용이 많은 네덜란드 등 유럽 나라에선,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복지 제도로 먹고살 수 있어 한국처럼 문제가 안 된다. 한국은 OECD에서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이 개발도상국인 멕시코를 제외하면 단연 꼴찌다.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인 터키나 칠레보다도 못하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문제가 더 되는 이유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 중심의 대외 경제 정책을 반대해 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등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자유무역이란 건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하면 서로 자극이 돼서 좋지만 수준 차이가 크게 나는 나라들끼리 하면 결국 후진국이 손해다. 단기적으론 무역 확대란 이익을 보겠지만 장기적으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1960년대 무역 개방을 했으면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20~30년 뒤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 산업인 제약, 화학 산업, 나노, 생명 공학 등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흔히 하는 평가처럼 2년 사이에 무역이 얼마나 늘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각도의 비판이 아니었다. 20~30년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TPP와 같은 지역 그룹에 가입하는 것은 이젠 정치적 문제가 돼 버렸다. 미·중 갈등 속에 어느 그룹에 들어갈 지란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 등을 봤을 때 어느 한쪽에도 쏠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가 다자간 무역질서를 앞장서서 주창해야 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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