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조선노동당 7차대회가 5월 6~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5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36년 만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7차대회가 끝났다. 당대회 기간 동안 북한을 이끄는 조선노동당은 김정은 위원장의 개회사와 사업총화보고, 당대회 사업총화결정서 채택, 폐회사, ‘전체 인민군 장병들과 청년들, 인민들에게 보내는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호소문’ 등을 통해 1980년 6차당대회이후 진행된 사업을 총화하고 향후 추진할 노선과 정책을 제시했다.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는 주체사상의 평가원칙인 ‘승리사관’에 따라 36년간을 “우리 당의 오랜 력사에서 더없이 준엄한 투쟁의 시기”였지만 “위대한 전변이 이룩된 영광스러운 승리의 년대”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반사회주의, 반혁명의 역풍”으로 “전대미문의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맞았지만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통해 “사회주의 수호전”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제국주의의 고립압살책동이 강화되는 속에서도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냈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은 셈이다.
총화보고는 ‘주체사상․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당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등 총 5개 제목으로 나눠 결산한 후 향후 과업을 제시했고, 이 내용은 거의 대부분 사업총화결정서에 그대로 담겼다.
큰 틀에서 보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김정은 후계자 시절 내부 토론을 거쳐 마련한 정책방향,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4월 당중앙위 책임일꾼들과의 담화와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밝힌 기본방향, 그후 김정은 위원장 이름으로 나온 분야별 문건(‘노작과 담화’), 신년사, 현지지도에서 제시된 내용 등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후계자가 결정된 후 2009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당․정․군의 실무간부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새로운 정책방향을 확정했다. 후계자가 강조한 두 개의 키워드는 '세계적 추세'와 '실리 추구'였다. 당시 정책 마련의 기준점은 1990년대 초반 김일성 주석 시절에 나온 마지막 정책노선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정책방향을 준비, 확정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정책방향에 맞게 김정일 위원장은 북중 및 북러 관계를 개선하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접촉을 추진(이른바 ‘포괄적 대외전략’)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새로운 경제노선에 맞는 ‘본보기단위’를 집중 현지지도하고,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시험, 경제특구 확대 등 ‘신경제정책’(실리사회주의의 전면화)의 토대 마련에 주력했다.
2012년 김정은 제1위원장 공식 승계이후에는 당․정․군에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해 나가면서 각 분야별로 김정은시대의 특색을 보여주는 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이란 3대 기본정책 방향을 계승하면서 시대적 환경 변화와 ’세계적 추세‘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번 7차당대회에서 제시된 정책방향은 이러한 일련의 내부 논의와 흐름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체계화 해 제시됐고, ‘사회주의 완전 승리’라는 장기적 목표 아래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의 추진목표로 내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노선과 정책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로 제시된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당의 최고 강령은 김일성-김정일주의
| |
  |
|
| ▲ <표1>조선노동당 7차대회 노선. [자료사진 - 정창현] |
김정은 위원장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조국통일’, ‘세계자주화’ 실현을 3대 과업으로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가 노동당의 최고강령임을 재확인했다.
2012년 4월 6일 김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규정하고, 당의 최고강령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고 선포한 바 있다. 이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후계자 시절인 1974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명명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내세운 것과 유사한 행보였다. 북한에서는 후계자(계승자)가 선대 최고지도자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이를 전 사회의 규범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업으로 설정돼 있다.
김 위원장은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관한 이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라고 정의했다. 총화보고의 소제목이 ‘주체사상․선군정치’란 점이 주목된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체계화했다고 하는 주체사상을 기초로 김정일시대의 선군정치를 새로이 포함시켜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규정한 셈이다.
북한 철학계에서 논란이 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위상과 관계에 대해 2010년 개정된 당규약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이 당의 지도사상이고, 선군정치는 “당의 기본 정치방식”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그는 또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란 “모든 성원들을 참다운 김일성․김정일주의자로 키우고 모든 분야를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요구대로 개조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인민대중의 자주성 완전 실현’은 공산주의 사회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주체혁명’의 마지막까지 견지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투쟁 과업으로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의 완성"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과제로 인민정권 강화와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을 거론했다. 김일성 주석은 “인민정권에 3대혁명을 더하면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두 가지 과제는 1980년 6차 당대회에서도 강조된 것으로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건설의 전 기간 수행하여야 할 계속혁명의 과업”이라고 설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당대회에서 이 두 가지 과제에 전략적 노선으로 ‘자강력제일주의’를 추가로 포함시켰다.
특히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결정서는 “사회주의강국건설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기 위한 투쟁의 력사적 단계”이며 “사회주의의 기초를 다지고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현단계 국가목표로 제시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는 당의 최고강령을 실현하는데 1단계 과제이며, 이 과제는 ‘사회주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와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하는 단계의 연속적인 두 과정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기조에서 6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당의 최종목표와 김정일시대에 내건 강성대국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즉 정치사상강국으로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통한 일심단결의 강화, 군사강국으로서 정치군사적 위력의 강화, 경제강국으로서 과학기술 강국과 문명강국 건설 등을 정책방향으로 내세웠다.
혁명단계 설정 =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
| |
 |
|
| ▲ <표2>북한의 혁명단계. [자료사진 - 정창현] |
김정은 위원장은 당대회 개회사에서 당면 시기를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로 규정하고, 이번 대회가 ’김일성-김정일 주의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북한은 김일성시대를 ‘주체혁명의 선행시대’로, 김정일시대를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라며 ‘선군시대’로 명명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일단 지금 시기를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로 규정한 셈이다. 앞서 이야기한 ‘사회주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혁명단계별로 인민민주주의혁명기(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기)→사회주의의 이행 과도기(사회주의 건설기→사회주의 완전 승리)→공산주의 사회(낮은 단계→높은 단계)로 나눈다.
북한은 1958년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후 사회주의 건설기를 거쳐 ‘사회주의 완전승리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며,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공식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완전 승리’란 말 대신 당의 최종목표를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라고 수정했고, ‘사회주의 완전 승리’란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현실의 어려움을 반영해 사실상 ‘혁명단계’를 낮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사회주의 완전 승리’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고, 마지막날 채택된 호소문에도 “당 제7차대회의 모든 결정들을 철저히 관철하고 조선에서의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온 세상에 긍지높이 선언하자”라며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강조했다. 그만큼 내부적으로는 ‘선군시대’로 규정된 ‘사회주의 수호전’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 새로운 경제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즉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를 거쳐 다음 단계인 ‘사회주의 완전승리 단계’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결국 국가적 목표로 제시된 사회주의강성국가 완성은 곧 혁명단계론으로 보면 ‘사회주의 완전승리 단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당규약에 ‘경제 건설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 명시
김정은 위원장은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에 견지해야 할 전략적 노선으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제시했다.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핵 병진노선’을 재확인한 셈이다. 개정된 당 규약에도 이를 포함시켰다.
김 위원장은 ‘경제-핵 병진노선’이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병진노선이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하루빨리 건설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안보가 튼튼해야 하고, 안보를 위해서는 재래식 무기경쟁이 아니라 비대칭전력으로서 핵무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미국과 협상해 평화협정을 체결해 평화체제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단계 더 추론해보자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안정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최종적인 비핵화’에 나설 뜻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해석하면 평화체제가 구축돼 북한 입장에서 안보 우려가 해소되면 최종적으로 비핵화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병행해서 추진하자는 제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 |
 |
|
| ▲ 36년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7차대회 전경.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경제-핵 병진노선’에 의거해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3대 지표인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중 “정치․군사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섰지만 경제부문은 아직 응당한 높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그는 낙후된 경제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경제전반을 놓고 볼 때 첨단수준에 올라선 부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있으며 인민경제 부문들 사이 균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선행부문이 앞서 나가지 못하여 나라의 경제발전에 지장을 주고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북한을 방문해 보면 선전과 달리 뒤떨어진 분야가 많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기본목표도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여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설정했고, 5개년 전략의 철저한 수행을 강조했다. 당대회에 앞서 이미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 수립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성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인민경제 발전을 위한 단계별 전략을 어김없이 집행해나가야 한다”고 발언해 당면한 5개년 전략 외에 더 장기적 ‘단계별 전략’의 수립도 시사했다.
그러나 4, 5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6개년 또는 7개년 인민경제계획이나 6차 당대회에서 나온 ‘사회주의 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보다 구체적이지 않다. 구체적 목표치보다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국제적 경제제재 속에서 목표 달성이 불확실하다고 봤을 수 있다. 다만 내각에서 수립한 5개년전략에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경제 건설을 위한 전략노선을 “자력자강의 정신과 과학기술을 틀어쥐고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마련하여 주는 것”으로 설정됐다. 언급된 기본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자립적 민족경제의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경제강국 건설의 도약대를 마련”한 만큼 이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기능을 강화하고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내각책임제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반적 경제사업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모든 경제부문과 단위들이 내각의 통일적인 작전과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규율과 질서를 엄격히 세울 것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각 총리를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하고, 당과 내각의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곽범기 전 경제비서, 로두철 내각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 오수룡 계획재정부장을 모두 정치국위원으로 선출했다. 내각책임제를 실질적으로 이끌 경제관료를 중용한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리개선의 핵심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확립을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요구에 맞게 경영전략을 잘 세우고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하여 생산을 정상화하고 확대발전”시켜 나갈 것을 지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경제관리방식의 개선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업경영방식과 협동농장의 포전담당제 도입이 시범적으로 실시됐다.
특히 김 위원장은 2014년 5월 30일 당․국가․군대기관 책임일군(간부)들과 진행한 담화 ‘현실발전의요구에 맞게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데 대하여’(5.30담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관리방법으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해 실제적인 경영권을 갖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해 당과 국가 앞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들이 생산과 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관리방법”이라고 정식화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당대회에서 경제개혁 조치가 발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지만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전면적으로 확립, 실시될 경우 북한 경제운영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2002년 7월 시행된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보다는 더 포괄적인 ‘경제개혁’이 단행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셋째는 과학기술강국에 기초한 경제건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과학기술강국’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오늘 우리가 선차적으로 점령하여야 할 중요한 목표”라고 제시했다. 과학기술이 경제강국건설에서 기관차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경제의 현대화, 정보화를 달성하고 자강력을 증대시킨다는 구상이다. 북한은 2012년까지 경제발전에서 차지하는 과학기술발전의 기여율을 30%로 올리겠다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어, 5개년 전략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수치가 제시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기간에 추진해야 할 방향을 분야별로 제시하면서 전력문제 해결과 식량 자급자족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전력문제 해결이 5개년전략수행의 선결조건이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의 중심고리라고 규정하면서 “당에서 제시한 전력생산목표를 반드시 점령”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포함해 대규모 발전소와 중소형 발전소 건설, 풍력과 조수력․생물질과 태양에네르기에 의한 전력생산, 발전소 생산공정 및 시설 정비보강, 발전설비 효율 증가와 전력생산 원가 체계적 절감, 국가적 통합전력관리체계 구축, 송배전망 개건보수 등을 제시했다. 다만 전력생산목표를 수치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전력 부족이 경제건설에서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식량문제와 관련해서는 식량의 자급자족 실현을 강조하면서 “식량생산을 지속적으로 늘이며 농업을 세계선진수준에 올려 세울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2013년의 식량생산량이 566만t이라며 식량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벨라이 데르자 가가 FAO 북한사무소 대표도 2014년 10월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7
본문
| 시진핑도 뜨끔한 중국의 부정부패 |
| |
| |
| |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
| 기사입력: 2016/05/13 [20: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
| |
|
중국지도부의 부정부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지금껏 19세기 청 왕조나 장제스의 중화민국은 부정부패로 민중의 지지를 잃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중국공산당이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중국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국민들은 예로부터 부패한 공산당 지도부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그 불만을 정치에 활용하였습니다. 시진핑은 자신이 국가주석에 오르고 난 후인 2014년, ‘부정부패 척결’을 선포하였습니다. ‘부정부패’를 내세워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무산대중의 정당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건드리기만 해도 각종 부패사건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재벌 뺨치는 시진핑 가족
그런데 부패척결의 과정에서, 급기야 시진핑 주석도 뜨끔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친인척들에게서도 역시나 비리의혹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큰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와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는 시진핑 주석이 상무위원에 오른 2007년부터 막대한 재산을 긁어 모았습니다. 이들은 2007년 12월 한 국유은행과 제휴해 투자회사인 베이징 친촨다디(北京秦川大地)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시진핑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치 부부로부터 지분을 인수한 금융인 샤오젠화(肖建華)의 대변인은 매입 당시에도 “이 매각은 가족(시 주석)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공산당 상무위원인 시진핑은 수입에 변화가 없는데 상무위원 동생을 둔 누나는 천문학적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요? 비리의혹이 파다하게 퍼진 것입니다.
이들은 그저 한 두 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 시진핑 일가의 재산규모는 재벌급입니다. 2012년 6월 블룸버그 통신은 치 부부 재산까지 합친 당시 시 국가부주석 일가의 재산규모가 3억7,600만 달러(약 4,31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재산이라면 한국의 재벌총수에 비교될 만합니다. 계급철폐를 내걸었던 중국공산당이 후대에 와서는 투자회사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충격입니다. 그런데 시진핑 가족들이 독점자본을 능가하는 천문학적 재산을 축적했다는 것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에 목숨을 바쳤던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이 지하에서 뒷목잡고 쓰러질 반전입니다.

시진핑 가족은 이후 행각도 의심스럽습니다. 큰 누나인 치 부부는 막대한 재산이 논란이 되자 재산을 차례로 처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벌 뺨치는 재산이 동생의 권력가도에 부담을 준다고 봤던 것입니다. 치 부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도 부동산과 광산을 중심으로 10개 회사에 투자했던 자산을 처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진핑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보도를 인용해, 덩자구이가 2008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부동산 개발 관련 유령회사를 세워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2년에 <블룸버그>가 지목됐던 홍콩 고급주택 중 상당수도 여전히 치 부부가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넘쳐나는 중국 당 간부
그런데 중국공산당에서는 시진핑의 누나만 천문학적 부를 쌓아올린 것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간부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이 하나의 보편적 유행이었습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 1월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2000년부터 조세회피처 법인 설립을 통해 중국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산은 최대 4조 달러(약 427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중국이 약 4000조원, 그러니까 우리나라 10년 치 예산이 넘는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폭로된 명단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이 나오고 중국 8대 혁명 원로의 자손인 푸량(傅亮) 등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일례로 중국공산당 최고위직인 공산당 상무위원에게 16년형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2015년 6월 11일, 상무위원 저우융캉은 부인과 아들, 측근 등이 1억 2977만 2113위안(약 232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중국 법원은 판결문에서 "저우융캉이 받은 뇌물 액수가 매우 크고 직권 남용, 기밀 누설 등의 죄목이 매우 무겁다"며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발표했다가 16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 부패혐의로 법정에 선 저우융캉(주영광) © 자주시보 |
|
저우융캉은 베이징 석유학원 출신으로 석유공업부 부부장, 석유천연가스공사 사장, 국토자원부 부장 등을 역임하다 장쩌민 전 주석의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저우융캉의 비리 구속사건을 두고 시진핑의 장쩌민계 저격이라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비리혐의를 빌미로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시진핑은 실제로 지난 1월 12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치적 야심이 큰 이들은 “살아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지도부 거처)에 들어가고 죽어 바바오산(八寶山·중국의 혁명열사 묘지)에 들어가겠다”고 거들먹거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은 저우융캉(周永康)의 핵심 측근인 장제민(蔣潔敏) 전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부패척결인지 권력투쟁인지 아리송한 장면입니다. 이것도 중국공산당 내부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푹푹 썩었기 때문에 가능한 현실입니다.
중국의 혁명 원로 중 하나인 보이보(薄一波)의 아들인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는 엽기적 행각으로 중국민중의 지탄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보시라이도 처음에는 충칭시의 부정부패를 적발하고 조직폭력 범죄자를 처형하는 실적 공개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무려 1500명의 부패사범을 적발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알고 봤더니 보시라이 자신이 부패의 몸통이었습니다.
| ▲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는 보시라이 © 자주시보 |
|
2011년 11월, 충칭시의 한 호텔에서 보시라이 일가와 친밀한 닐 헤이우드(Neil Heywood)가 사망하였는데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살해에 관여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시라이 부부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불법 자금을 조성하고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습니다. 아울러 보시라이가 100명이 넘는 내연녀를 두었다는 사실도 공개되었습니다.
아버지 보이보는 자본의 착취를 끝장내기 위해 한 생을 바쳤는데, 그의 아들은 100여명의 정부를 거느리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민중의 피땀을 해외로 빼돌리는 민중의 적이 되었습니다. 지하에 있는 중국공산당 1세대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여기겠습니까?
사회주의에 먹칠한 중국공산당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모택동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중국공산당이, 실제로 그 내부가 푹푹 썩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중국사회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경제는 중국민중의 삶보다 자본의 성장이 중시되는 자본주의 경제제도로 완전히 정착되었습니다. 사회주의라던 중국사회에서 노-사 갈등이 다시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중국이 사적소유를 전면적으로 용인하고 더 엄중하게는 부의 세습마저도 인정해 불로소득, 스스로 일하지 않고 남의 땀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용인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중국이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면, 정치에서도 다당제를 받아들여 상호간의 견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경제제도는 자본주의이면서 정치제도는 공산당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일당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민중보다 자본이 우대받는 사회에서 독재는 그 당이 제 아무리 자본을 배척하는 공산당이라고 하더라도 필연코 부르조아 계급의 독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적어도 부정부패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며 비판하였던 청 왕조나 중화민국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데 정치적 독점이 지속되면 그 권력은 천문학적 자금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천문학적 자금을 경계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결국 사회주의 정권에서는 집권당이 민중을 위한 정치, 민중을 위한 권력을 구축하느냐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속하는 핵심요인이 됩니다. 나라의 중앙권력이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본을 쫒는 정치를 하는 순간, 그 나라가 제 아무리 사회주의를 표방하더라도 부의 양극화는 시작되고 민심은 집권당을 떠나고 말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또한 민중을 위한 정치에서 이탈해 부정부패 척결을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이 향후 끝없는 권력투쟁으로 치달을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진핑의 경쟁세력들은 향후 재벌 뺨치는 자금을 긁어모은 시진핑의 누나를 조준할 것입니다. 물론 시진핑도 누나를 지켜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 앞으로 권력에 더욱 집착할 것입니다. 결국 ‘중국’은 공산당 간부들이 개인 치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순간 국기만 붉은 색일 뿐, 하는 행색은 자본주의 정당과 차이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국공산당의 부패는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 운동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합니다. 지난 1991년,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붕괴하자 세계인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시도는 죄다 실패”하였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마찬가지로 2016년, 거대한 중국이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자 국제적으로 “사회주의는 죄다 부패”라는 인식이 갈수록 확산될 판입니다.
중국이 부정부패를 제대로 척결하려면 해법은 한 가지입니다. 중국공산당의 주요 간부들이 청렴해지고 나라의 모든 재부가 중국의 진정한 주인인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대변화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 가능합니다.
부패한 중국공산당 간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부패한 중국자본이 중국경제를 거머쥔 국면이 지속된다면, 언젠가 중국공산당도 청 왕조와 중화민국처럼 분노한 민중에 의해 붕괴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법칙입니다. <끝>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5
본문
| |
| |
| [칼럼] 여론조사 불신여론이 깊어지면 국가와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
| |
| 임두만 | 2016-05-14 09:45:42 |
 |
| |
|
| |
|
언론들이 여론조사 문제점을 작심하고 심층보도를 통해 퇴출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중앙일보는 지난 5월 6일 1·4·5면에 대대적으로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칼을 빼들었다. 중앙일보만이 아니다. 아래 표에도 나타나지만 최근 많은 언론들도 이를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번 총선을 통해 여론조사 회사의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정치행위’에 대한 폐해가 심각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여론조사로는 민심을 알 수 없다’는 심리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
여야, 민간 여론조사에도 안심번호 도입 추진 공감대 연합뉴스 - 2016. 5. 11.
“여론조사 응답률 낮은 경우 ‘편향 오차’ 커질 수 있어” JTBC - 2016. 5.15
응답률 1%대 ‘속 빈’ 여론조사, 논란에도 버젓이 공개 JTBC - 2016. 5.15
[단독] “여론조사 응답률 10% 못 미치면 공표 금지 추진” 중앙일보 - 2016. 5. 11.
그 업체 알고 보니선거용 ‘떴다방’ 시사IN - 2016. 5. 11.
“여론조사 업체 자격 강화…선거철 저가 ARS·떴다방 막자” 중앙일보 - 2016. 5. 11.
“이대로 놔두면 2년 뒤에 또 틀린다” 시사IN - 2016. 5. 11.
양정열 한국조사협회 회장 "집전화 의존한 조사는 한계" JTBC - 2016. 5. 11.
4·13 이변 다시 한 번?…대선은 총선과 다르다 한겨레 - 2016. 5. 10.
[정동칼럼]여론조사는 ‘공공재’이다 경향신문-2016. 5. 10.
[뉴스룸 레터] 여론조사도 구조조정 중앙일보-2016. 5. 11.
20대 총선 여론조사는 왜 실제 표심 반영 못했을까 미디어오늘-2016. 5. 5.
|
이에 여야 3당 지도부 또한 부정확한 선거 여론조사의 폐해를 막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11일 “20대 총선처럼 부정확한 여론조사의 폐해가 극심한 적이 없었다”면서 “당 차원에서 여론조사 개혁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고, 신뢰도가 낮은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 스스로 지난 2012년 8월 ‘정당 지지도나 당선자를 예상하는 여론조사 응답률이 10% 미만인 경우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현재 이 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여론조사의 조사방법·표본크기·응답률을 조사 결과와 함께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조사 신뢰도와 직결된 응답률 수준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지난 총선 당시 우후죽순처럼 하루 단위로 나온 각종 여론조사(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보고된 조사들)에 따르면 평균 응답률은 8.9%로 10%에도 못 미쳤다. 실제 통계학자들이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다며 권장하는 평균 응답률은 20%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자료에도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이 권장 평균치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민주 이종걸 19대 국회 원내대표도 “부정확한 여론조사는 ‘통계적 흉기’나 다름없다”면서 “신뢰성·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 인증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중앙선관위 신우용 법제과장은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프랑스조차 국가 권력이 개입해 별도의 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두고 선거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여론조사협회에서 자율적으로 응답률이 30%가 넘지 못하면 발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난 총선 당시 깃발을 날렸다가 참패한 여론조사 회사들은 지금 국회의 규제법안 제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공식적으로 여론조사 불확실성을 사과하면서 국회에 “여론조사 회사도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제도 때문만일까? 휴대전화 안심번호가 도입되면 여론조사 회사의 ‘여론조사란 정치행위’를 막을 수 있을까? 아래의 분석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특정 여론조사 회사의 특정인 특정당에 대한 선호 형태가 매우 분명하다는 것이다.
 |
|
▲이미지출처 : 한국갤럽
|
리얼미터 응답률 5%대(유무선 통합 자동응답) 조사 결과 : 문재인 26.2%, 안철수 17.6%, 오세훈 12.9%로 문재인 1위, 갤럽 응답률 24%(무선전화 전화면접)조사결과 : 안철수 20%, 문재인 18%, 오세훈 9%로 안철수 1위… 양쪽 모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각각 ±3.1%p로 발표…
이 두 사례는 가장 최근인 5월2주차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등답표다. 그런데 이 조사를 비교하면 리얼미터의 조사는 문재인만 유별나게 특출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리얼미터 조사의 안철수 지지율은 17.6%, 갤럽 조사의 안철수 지지율은 20%이므로 리얼미터와 갤럽이 발표한 표본오차를 감안하면 안철수의 국민적 지지율은 20%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리얼미터의 오세훈 지지율은 12.0% 갤럽 지지율은 9%라면 이 또한 각각 오차범위 안에 있으므로 오세훈의 국민 지지율은 10%대가 정당한 평가다.
그런데 문재인에 이르면 리얼미터의 조사 신뢰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즉 리얼미터의 문재인 지지율은 26.2%, 갤럽 지지율은 18%다. 양측 모두 표본오차가 ±3.1%라고 발표했으므로 이 두 수치는 표본오차를 벗어나서 리얼미터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
이뿐 아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이 타당에 비해 훨씬 후한 수치가 나타난다. 리얼미터 5월2주차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31.0%, 더민주 28.6%, 국민의당 20.8%였다. 그런데 갤럽의 같은 기간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31% 더민주24%, 국민의당 21%다.
이를 분석하면 새누리당은 31%로 갤럽과 리얼미터가 갖고 국민의당은 0.2% 차이이므로 사사오입이면 21%로 갖다. 하지만 더민주 지지율은 리얼미터 28.6% 갤럽 24%로 리얼미터에서 4.6%가 후하게 평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리얼미터의 조사로만 보면 새누리와 더민주가 오차범위내 1,2위를 다투고, 국민의당은 멀찍이 3위로 처진 형국이지만 갤럽조사는 새누리당이 오차범위 밖 1위이며, 2,3위를 오차범위 안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경쟁하고 있다. 결국 이 두 회사의 여론조사에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가 확실히 문재인과 더민주에게 후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응답률 10% 이하의 여론조사는 신뢰성이 없으므로 공표금지를 해야 한다는 법안이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제출되어 있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조사 응답률은 조사기간 3일 평균이 5.56%(9일 5.4%, 10일 5.5%, 11일 5.8%)로 이 법의 규제를 받으면 공표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리얼미터는 어떻든 현재는 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므로 평균 5%대 응답률 조사결과를 매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더민주 지지층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 조사표를 최대한 활용,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정치적 코너를 벗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평가를 받는 여론조사 회사는 그 스스로 자신들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은 소비자의 신뢰가 최우선인데 소비자로부터 편파적이란 평가와 비판을 받는다면 그 생명은 길 수 없다. 그런데 어찌 보면 리얼미터는 아예 이런 비판도 감수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다. 이런 정치행위, 이제 멈춰야 한다. 법의 규제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기업 양심으로라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 그것이 기업의 장래로도 나라의 장래로도 이롭다.
|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4
본문
2016.05.13 17:54:57
[살림 이야기] 몬산토 반대·①
'몬산토반대시민행진(March Against Monsanto: MAM)'은 다국적기업 몬산토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풀뿌리운동으로, GMO와 글리포세이트에 기반을 둔 제초제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2013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2015년에는 52개국 400여 개 도시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몬산토반대시민행진을 처음 기획한 사람은 주부이자 두 딸의 엄마인 타미 먼로 커낼 씨다. 그가 살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2012년 11월 GMO를 포함한 식품에 GMO 여부를 표기하도록 하는 '제안 37'이 주민투표에 붙여졌으나 부결됐다. 그 과정에서 몬산토가 제안 37이 통과되는 걸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썼고, 그 일이 커낼 씨의 "눈을 뜨게 했다." 커낼 씨는 두 딸을 위해서라도 몬산토에 반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2013년 소셜미디어를 통한 캠페인으로 전 세계의 공감을 얻었다. 그 결과 2013년 5월 25일 전 세계 330여 개 도시에서 몬산토반대시민행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2014년에는 40개국 400여 개 도시에서 시민행진이 열렸다.
▲ 세계 각지에서 펼쳐진 몬산토반대시민행진 모습. '씨앗은 몬산토가 아닌 자연의 것', 'GMO에 반대한다', '몬산토는 먹을거리에서 떠나라' 등의 구호를 내걸고 있다. ⓒ2016 몬산토반대시민행진 홈페이지
페이스북에 'GMO 없는 한국'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고종혁 씨는 2013년 한국에서 처음 시민행진이 시작될 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고종혁 씨가 몬산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소주' 때문이다. 특정 소주만 마시면 소위 '필름이 끊겼는데', 알고 보니 그 소주에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스파탐은 유전적으로 조작한 박테리아로 제조하는데, 1990년대까지 몬산토에서 특허를 갖고 있었다. 흔히 다이어트 콜라 등 '0' 칼로리 음료에 들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막걸리와 소주 등에 아스파탐을 넣는다.
이를 계기로 몬산토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2011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 관련 정보가 없어 외국 뉴스 등을 보고 정보를 나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몬산토에 따른 세계(The World According to Monsanto)>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에서 몬산토반대시민행진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혁 씨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한국에 들어와 있던 원어민 영어강사 중심으로 약 5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규모는 작았지만 GMO나 몬산토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전남 광양이나 부산에서도 올 정도였다. 같은 해 5월과 10월에 두 번 시민행진을 했고, 2014년부터는 1년에 한 번 5월에 진행한다.
2013년에는 홍보용 전단을 500장 찍었는데 다 못 돌렸다. 2014년에는 2000장을 찍었는데 역시나 많이 남았다. "사람들이 GMO가 뭔지도 모르고 전단을 받지도 않더라"는 게 종혁 씨의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2000장 찍은 건 몽땅 다 나갔을뿐더러 모자라기까지 했다. GMO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걸 느낀다. 또 2014년까지는 외국인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지난해부터 한국인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다. 올해는 GM벼 재배 이슈 때문에 농민 단체들도 관심을 갖고 있어 시민행진 규모가 좀 더 커질 것 같다.
▲ 2015 몬산토반대시민행진. ⓒ2016 몬산토반대시민행진 홈페이지
기술 악용하는 악덕 기업 퇴출돼야
몬산토반대시민행진은 과격한 시위라기보다는 몬산토가 뭔지, GMO가 뭔지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알리는 창구이다. "시민운동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GMO 없는 한국'을 운영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꾸준히 고민하고 바꿔 나가려 하는 게 중요해요."
고종혁 씨가 활동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 "'카더라'가 아닌 사실이 중요해요. GMO 찬성 논리에 잘 대응하고 내 주장이 묻히지 않으려면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정보를 이중 삼중으로 확인한다. "GMO에 관심은 있지만 정보를 너무 몰라요. 단순히 '나쁘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죠. 그러면 GMO 찬성론자에게 빌미를 잡힐 수 있어요." '유전자조작이나 육종이나 돈 벌려고 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 잡종 1세대인 F1 씨앗과 GMO 씨앗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듬해 씨를 받아 심어도 같은 게 나오지 않는 F1 씨앗과 달리 GMO 씨앗은 재생산할 수 있다. "GMO 씨앗은 받아서 기를 수 있어요. 단, 그렇게 하면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몬산토로부터 제소를 당할 수 있죠."
고종혁 씨는 유전자조작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악용해 건강에 해를 끼치고 그 사실을 은폐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몬산토라는 악덕 기업을 퇴출시키는 게 주목적이다. 그런데 "최근 몬산토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던 몬산토의 기세가 조금은 꺾인 듯도 싶다.
종혁 씨는 "시민행진으로 단기간에 큰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사실을 알리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행진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많이 모여서 세를 과시하기보다는 자기가 아는 바를 실천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종혁 씨는 친구들에게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그중에 한두 명이라도 알아들으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먹을거리를 스스로 바꾸는 게 중요하잖아요?" 종혁 씨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먹을거리 관련 글에 '좋아요' 한번 안 누르던 친구가 채식을 시작했다고 하는 등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종혁 씨는 GMO는 문제의 일부분일 뿐, GMO만 없앤다고 해서 먹을거리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텃밭을 가꾸고, 가까운 먹을거리를 먹고. 결국 소비를 제대로 해야 생산도 제대로 되겠죠. 내가 소비를 바꾸면 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생협에서 몬산토에 반대하는 이유와 함께 먹을거리 철학도 더 잘 알리면 좋겠다.
앞으로의 바람은 "외국의 관련 단체들과 좀 더 긴밀하게 연대해서 시민행진의 영향력을 넓혀 가는 것"이다. 또 토박이씨앗 지키기 등 다른 운동과도 잘 연결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GMO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 "그때그때 직접 몸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내 관심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시나리오만 잘 쓴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전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중요한 건 일상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떤 먹을거리와 환경이 필요한지 알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참고
- March Against Monsanto 홈페이지(www.march-against-monsanto.com)
- 2016 몬산토반대시민행진 홈페이지(nongmokorea.wix.com/mam-korea-2016)
- GMO 없는 한국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groups/gmofreekorea/)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3
본문
| 러시아 특파원, 북 지상낙원 만들자 결의 |
| |
| |
| |
이창기 기자 
|
| 기사입력: 2016/05/13 [08: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
| |
| ▲ 4일간의 7차 당대회를 마치고 축하행사를 함께 하기 위해 연단에 들어선 김정은위원장 © 자주시보 |
|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축하행사 © 자주시보 |
|
조선노동당 7차 대회 성료를 기념하는 군중대회에서 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일성 광장 인민 궁전 연단에 올라 "우리는 조선(북한)을 지상 낙원으로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고 "군중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며 12일 안드레이 이바노프 스푸트니크 특파원이 스푸트닉에 보도하였다.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를 성사시킨 축하 행사는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된 김정은위원장이 연석에 등장한, 정확히 10시에 시작됐다. 알록달록한 색색의 수천개의 풍선, 축포와 더불어 김정은을 본 군중들은 '만세!'를 연호했다. 풍선이 날아갔고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반 시간 가량 축하 연설을 했다. 그는 "노동당의 영도아래 미국의 저항에도 북한은 지상 낙원과 선진 강국으로 바뀌고 있다"며 "당대회는 북한 인민들의 사상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성사 축하행진 ©자주시보, 스푸트닉 |
|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성사 축하행진 © 자주시보 |
|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축하공연 © 자주시보 |
|
연설이 끝난 후에는 대회가 시작됐다.
축제 의상을 입은 시민들은 '만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을 외치며 '승리자의 대회', '선군 정치' 같은 표어가 적힌 카트와 탄도 미사일 및 우주 로켓 모형의 설치물들과 함께 연단 옆을 행진했다.
같은 날 7일 저녁 광장에서는 콘서트가 열렸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횃불 행진이 진행됐다. 횃불을 든 젊은이 수 만 명이 '선군', '김일성', '핵강국이라 적힌 플래카드를 순서를 바꾸면서 실수하지 않고 대오에 맞춰 걸어갔다.
외신 기자들을 통솔했던 가이드는 "횃불 행진을 위해 학생들이 할애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지 않고는 조국을 지상낙원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스푸트닉은 전했다.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성사를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축하하는 북 주민 행진대오 © 자주시보 |
|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성사를 축하하는 청년들의 북소리 행진대오 ©자주시보 |
|
축하행사와 청년들의 횃불행진을 보면 그렇게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연습했음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을 보면 북 주민들과 청년들의 조직규율과 열정이 어떤지 짐작이 간다.
|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성사 축하행사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북 인민군 군악대,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이런 행사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스푸트닉은 보도했다. © 자주시보 |
|
관련기사
-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이렇게 진행되었다
- 새로 신설된 ‘조선노동당 위원장’ 직책은?
- 북, 7차 당대회 결정서 관철에 벌써부터 부글부글
- 북 주민들, 7차 당대회경축 평양시군중대회에서 열렬히 환호
- 김정은위원장, 7차당대회를 승리자의 대회로 평가, 폐막선언
- 중국 시 주석, 북과 함께 가겠다는 축전 보내
- 북, 당 중앙위 결정서 채택, 핵심 과업 결정
- 김정은, 세계적 핵강국 선언, 미국 대화에 나설 수도
- 김정은위원장 당대회 개회사, 수소탄시험과 광명성4호는 특기할 사변
- 오히려 미국이 급해진 북미평화협정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2
본문
|
6.15남측위, 6.15공동위원장회의 추진 입장 밝혀5월 20~21일 중국 선양에서 진행..정부 승인 없이 진행할 듯
|
|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원회)는 ‘6.15공동위원회 남북해외위원장회의’를 오는 20~21일 중국 선양(심양)에서 진행한다고 12일 발표했다. 정부는 불허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위원장 김완수)는 4월 21일자 서신을 통해 “6.15민족공동위원회의 앞으로 활동방향과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북,남,해외 위원장회의를 오는 5월 중순 중국 심양에서 진행했으면 하는 의견”이라고 제안했다.
6.15남측위원회는 “북측의 공동위원장회의 제안을 민간교류 재개의 계기로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며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9명의 대표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 위기와 민간교류 전면 중단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북 제재국면과 별개로 민간교류는 하루 빨리 재개되어야 한다”며 “6.15남측위원회의 대북접촉 신청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 이해와 협조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초 북한의 핵시험과 인공위성 발사 등을 이유로 팩스 교환 등 간접적 대북접촉마저 전면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북한에 민간이 있느냐”면서 “통전 차원의 정치적 교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정부로서는 동의할 수 없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진정성 있는 변화를 보이는 것이 먼저”라고 답했다.
앞서, 통일부 관계자는 6일 “지금 핵 심험 이후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이고 추가 핵실험도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이런 것은 적절하지 않고 적전분열이다. 북한에 이용당하기 딱 좋은 행사”라며 “자기들(북측)은 평화 이미지이고, 마치 이 것에 불응하면 ‘반통일 분자’, 이런 식의 구도를 만들어가는 통전(통일전선)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정부가 불허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6.15남측위원회가 회의 추진을 발표한 것은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 하더라도 회의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돼 귀추가 주목된다.
| |
 |
|
| ▲ 2013년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는 정부의 승인 없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6.15남측위원회는 2013년 7월에도 정부의 승인 없이 중국 베이징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를 강행해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등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은 바 있다.
한편, 2005년 6.15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 해외위원회가 함께 구성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6.15 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 해외위원회 위원장들이 참가하는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회의’를 주요한 회의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1
본문
안재구 선생 회고록3권 ‘수학자의 삶’1952년 대학입학과 4.19혁명의 격동기 기록
|
|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 3권 ‘수학자의 삶’을 연재한다. 1권 ‘가짜 해방’, 2권 ‘찢어진 산하’에 이어진다. 1952년 대학 입학과 재학시절, 그리고 4.19혁명의 격동기에 대한 기록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친일잔재와 분단이 남긴 비극을 한 대학생의 고뇌를 통해 읽게 된다. 특히 군 복무 시기에 맞은 4.19혁명을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 게재된다.[편집자] |
전쟁의 한가운데서 대학생이 되어
새 냇가 새 바위에 푸른 숲속에 피 끓는 젊은 넋이 자라는 전당
이상은 하늘같이 높기도 하고 정성은 바다처럼 가득도 하다
경북대학교는 우리의 자랑 경북대학교는 세계의 자랑
1952년 5월 28일.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합창단의 목소리가 기념식장(지금의 경북대학교 본관 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로 경북대학교 개교의 노래다. 고운 물색의 겨레 옷을 입은 여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따라 곱고 어린 음색의 노래와 풍금소리가 늦은 봄날의 기념식장을 은은하게 채웠다. 또한 기념식장을 둘러싼, 학교의 교색으로 지정받았다는 자금(紫金)의 빛이라는 익은 감 빛깔의 천이 노랫소리에 따라 춤을 추듯 펄럭이고 있었다.
개교라는 정다움을 더욱 따뜻하게 감싸주는 자금의 장막은 이 땅의 허리를 잘라놓은 외세의 꼬드김으로 서로 죽일 내기에 정신이 빠져있는 세월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입학 축전의 이 순간에도 조국 반도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자른 전선에서는 이곳 봄날의 ‘자람의 잔치’와는 상극되는 ‘살육의 전쟁판’으로 밤낮이 없었다. 그러니 우리들에 대한 이 축복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석단의 중심에는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백낙훈(白樂薰) 박사와 대구의과대학(경북대 의대의 전신) 학장으로 초대 경북대 총장에 선임된 고병간(高秉幹) 박사가 그 권위를 상징하듯 박사학위 정복에 금빛수실이 찬란한 학위모를 쓰고 앉아 있었다. 또한 도지사와 대구시장을 비롯해 많은 하객들이 함께 그 지위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이 대학교의 첫 신입생으로서 주석단 앞의 넓은 공간에 내놓은 강의실 학생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했다. 두어 해 전, 어린 우리 청소년들까지 목숨을 담보하고 겨레의 분단을 반대하여 싸웠던 2.7투쟁과 남조선 단독선거 반대투쟁의 세월. 오늘 축복의 자리에 선 내가 과연 그 세월의 내가 맞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웠다. 무릉동 학습조의 동무들과 박철환 선생님의 안부는 어떤지, 손기용 선생님의 그 처참한 주검과 구정식 선생님의 생사는 또 어떤지……. 기억이 여기까지 이르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눈이 아픈 양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제는 모두 만날 수 없는 스승과 동무들이었다.
당시 경북대학교는 일제 때 관립학교로 설립된 대구사범학교, 대구의학전문학교, 대구농림전문학교가 8·15해방 이후 대구사범대학과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으로 승격된 뒤 이 세 대학을 합쳐 1951년 10월 경북대학교로 개편했다. 여기에 문리과대학과 법정대학을 신설해 1952년 모두 다섯 개의 단과대학으로 정식 개교한 것이다.
학교 이름에 거창하게 도명을 붙인 경북대학교는 1951년 가을부터 도민들한테서 설립기금을 모금해왔다. 이 기금은 농가마다, 월급쟁이는 월급봉투마다에서 떼 내어 모은 것이다. 도민들은 후대를 위한 교육이라는 취지에 군소리 한 마디 없이 기성회비라는 이름으로 돈을 모아나갔다. 이 돈으로 산격동 공동묘지 일대를 부지로 사들였다. 그 터전 위에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연구실을 세워 나갔다.
명색이 대학교라지만 그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미군 부대에서 쓰다 남은(나중에는 이것들조차 원조라며 모두 높은 값을 쳐서 갚아야 했다.) 허드레 각목과 판자, 아스팔트 루핑과 창문용 셀룰로오스 철망 등으로 후다닥 지은 판잣집이 교사(校舍)였다. 그렇게 강의실과 연구실을 대충 맞추어 나갔다.
하지만 개교 기념식이 열린 당시만 해도 공동묘지의 묘를 연고자들이 이장하고 난 직후라 험상궂은 교정 곳곳에는 황토가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운동장도 그냥 터만 대충 불도저로 밀어놓아 그 바닥에 잡석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굴러다니는 공터였을 뿐이다.
대학은 2월 20일경에 수강신청을 시작했고, 3월부터 강의도 시작됐다. 이때는 대구 시내 경북도청 옆 대구야간대학에서 낮 시간 동안 강의실을 빌려 수업을 했다. 그러다 개교 직후인 6월부터 비로소 산격동 교정으로 강의실이 옮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나는 3월에 들어 강의시간표에 나온 시간에 맞춰 지정된 교실로 찾아들어갔다. 그런데 강의 시작을 기다려도 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강의시간에 맞춰 교실을 찾아온 2학년 선배학생들이 한 10분쯤이나 앉아 있었을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쯤 온 다른 학생들도 창문 너머로 강의실을 힐끗 들여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다. 나는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나의 이 황당한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선배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신입생입니까?”
“예, 선배님. 오늘 강의는 안 합니까?”
“보아 하니 아마 휴강인 것 같소.”
하고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대학이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이 교수는 다다음 주쯤 되어야 강의를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는 먼저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텄다.
“나는 2학년인데 신진숙이라 합니다. 근데 어째 신입생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말씨에 김천 지방의 억양이 묻어 있었다.
“아닙니다. 신입생 맞습니다. 저는 안재구라고 부릅니다. 선배님, 인사드립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교사 경력을 가진 내게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참 냄새가 나지 않은 듯싶었다.
“이 강의를 하는 박 교수는 휴강하기로 유명합니다. 한 학기에 강의실에 세 번 오면 보통이고, 때로는 두 번만 강의하고 학기가 끝날 때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학점은 어떻게 줍니까?”
“학점이야 리포트라고 시험지 2, 3매를 적당히 써서 내면 됩니다. 물론 이 교수가 좀 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대학 강의라는 게 다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나는 도무지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둘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학생 몇 명이 강의실 문을 열고 고개를 드밀었다가 가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신진숙 선배로부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착실히 받고 있었던 셈이다.
“선배님, 그런데 교수님이 강의는 잘 하시는가요?”
“나야 뭐가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잔뜩 영어에다가 독일어에다가 흑판에 열심히 써나가는데 당최 구름 잡는 것만 같아서…….”
“수학에 무슨 영어고, 독일어는 뭐지요?”
“글쎄, 내가 압니까?”
“그러면 질문해서 뭣인지 설명해달라고 하시지요?”
“그러다가 잘못 보이면 학점도 못 따고 졸업도 못하려고?”
박 교수는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국대안 반대투쟁’이 거세어지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대구사범대학에 강사로 왔다고 한다. 전쟁 이전부터 국대안 반대투쟁의 여파로 실력 있는 교수들이 대거 북으로 가면서 남쪽에는 대학 교수가 절대 부족했다. 일본의 구제(舊制)고등학교(대학 예과에 해당)를 졸업한 실력쯤 되면 대학 교수로 환영을 받는 시대였다. 이런 정도의 학습능력을 갖춘 사람조차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다.
|
안재구 선생 약력
아버지 안의환(安義煥), 어머니 김태숙(金兌淑) 두 분의 장남으로 1933년 10월 24일 달성군 구지면 외갓집에서 출생. 고향 밀양에서 항일혁명가이신 할아버지 우정(于正) 안병희(安秉禧) 선생 슬하에서 성장
1940년 밀양제이심상소학교에 입학,
1946년 밀양중학교 입학
1947년 밀양중학교 1학년 때 노동절집회 참가사건으로 퇴학.
1949년 대구시 달성군 구지국민학교 교사
1952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 입학
1956년 경북대 수학과 강사. 영남고등학교 교사, 1961년 2월까지 근무
1958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수학과 석사과정 졸업
1956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에서 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역임.
1976년 ‘국가관 미확립’과 ‘학생운동’ 동정을 이유로 경북대 교수직 재임용 탈락
1976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 중앙위원, 교양선전선동부책, 통일전선부책
1977년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 교수로 임명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조직노출로 검거. 1심에서 사형. 세계수학자들의 항의와 진정으로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1988년 만 9년 2개월의 징역을 살고 가석방
1990년 ‘철학의 세계 과학의 세계’를 출간함
1991년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에서 교양학부 강사.
1994년 구국전위 전위조직사건으로 재구속 무기징역 선고
1999년 형집행정지로 석방
[저서]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광야, 1989), <철학의 세계 과학의 세계>(죽산, 1990), <수학문화사>(일월서각, 1990),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돌베개, 1996),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 2003), <끝나지 않은 길>(내일을 여는 책, 2013), 기타 수학에 관한 교양서적 다수
|
편집국 news@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80
본문
| |
| 돈에 환장한 권력 |
| |
| 권력에 취해 미친 듯 칼을 휘두르던 망나니들이다 |
| |
| 강기석 | 2016-05-13 08:14:13 |
 |
| |
|
| |
|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나빠도 이인규, 홍만표, 우병우, 이 세 놈 이름만은 평생 잊지 못한다. 권력에 취해 미친 듯 칼을 휘두르던 망나니들이다.
 |
|
우병우 이인규 홍만표
|
이인규(58)는 2009년 7월 검사 옷을 벗은 후 2010년 한 해에만 120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인규는 불쌍한 서민들의 피땀어린 돈을 사취한 부산저축은행을 변호하려 나섰으며 막대한 금액의 성공보수까지 약속받았다.
홍만표(57)도 2011년 8월 검찰에서 나오자마자 9월 개업해 최고의 전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변호사 2년차인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월 평균 7억 6000만 원, 연 91억 2000만 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공개됐다. 당해년도 국내 개인소득자 중 15위, 법조인 중에는 압도적 1위였다. 그런 막대한 수임료가 어디서 나왔는가. 돈 있는 자들이 싸놓은 똥 치워주는 대가로 벌어들인 것 아닌가.
참으로 지저분한 자들이다. 파렴치한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니 통분하기 이를 데 없다.
민정수석 우병우(49)는 매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마다 400억을 오르내리는 재산을 신고한다. 공직자 중 최고 재산가라 한다. 이 자는 청와대에서 나와도 변호사 개업을 안 해도 되련만, 누가 아는가. 연 100억에 달하는 전관예우가 아까워 이 자 역시 눈알이 뒤집힐지 모른다.
대개 권력에 미친 자들은 돈에 환장한 놈들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8
본문
 |
| ▲ 서울대 경제학부 이인호 교수 |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거침이 없었다. 줄곧 한국은행(중앙은행)을 짓누르는 정부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한국은행에 덤터기를 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이 없으면 구조조정이 안 될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도 했다.
정부는 조선·해운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자본출자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일 기업구조조정 지원 방안을 두고 '출자'보다는 '대출'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와 이견을 보인 것이다. 이 총재의 발언 이후 지난 2009년 마련한 자본확충펀드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본확충펀드는 채권(차용증서)을 담보로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준 후 기업이 정상화 되면 갚는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발권력을 통한 직접지원이 아닌 간접지원이다.
이날 오후 한국은행이 내놓은 새로운 해법과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이 교수의 생각을 듣기 위해 교수실을 찾았다. 이 교수의 하얗게 센 머리 뒤로는 방대한 분량의 전공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UCLA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35년 여간 금융시장과 금융정책의 효과에 대해 연구해 왔다.
 |
| ▲ "지금 우리 경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외환 위기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 등 위급상황이라면 돈을 찍어도 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이 교수는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한국은행이 최대한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으로 기업의 부실채권(채무자의 사정으로 받기 어려운 돈)을 사주고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한 후 돌려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표했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발권력을 동원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국회를 통하지 않으려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경제 상황, 한국은행이 발권력 동원할 정도 아니다"
- 이주열 총재가 지난 4일 자본확충펀드를 사례로 들었다. 정부는 발권력을 통한 한국은행의 출자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확충펀드는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고 회수 가능성도 높아 최선의 대안이다. 직접투자를 할 때는 투자를 하려는 곳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 돈을 얼마만큼 빌려줘야 하는 것인지, 빌려주고 나서는 빌려 받은 대상이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정부는 돈을 내놓으라고는 하는데 부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으니 얼마를 달라는 것인지 대답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한국은행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우리 경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외환 위기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 등 위급상황이라면 돈을 찍어도 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는 것. 하지만 정부는 발권력 동원을 택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국회를 통해 예산을 받아내는 것은 어려움이 있는 데다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당장 해결해야 할 부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 기재부 등에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에 대한 계획을 6월 말까지 완료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할까?
"(고개를 저으며) 6월이면 19대 국회도 끝나고 시간이 촉박하다. 또 방안을 내기에 앞서 산업은행의 대주주 문제 등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등 분식회계(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림) 의혹에 대해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알면서 안 한 것은 잘못한 것이며 진짜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돈을 빌려 줄 때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전문가만을 믿고 그냥 빌려줬을 리가 없다. 또 빌려준 후에도 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전문가를 불러서 사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
| ▲ "구조조정을 얘기하자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말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얘기가 안 나오고 있다. 이상하다.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서 지원한 돈이 많은데 이 돈을 못 받으면 법정관리까지 가게 되니까 장사가 안 된다는 논리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은 근본적으로 용선료 인하나 해양플랜트 적자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그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해명에 대해 "바보 같다"고 했다. 또 정말 몰랐다면 "(자리에서)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산업은행에서 내려 보낸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이 몰랐을 리가 만무한데 그렇게 해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정부는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이 있는 듯하다.
"(강한 어조로) 한국은행이 돈을 안 넣어서 구조조정을 못 하겠다? 이런 생각은 이해를 못하겠다. 한국은행이 지원을 하든 하지 않든 (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 물린 돈이 많다. 한국은행은 주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이 들어간다."
"기업들 정부 도움없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 정부가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은 어떻게 보나?
"정부가 그동안 산업은행을 통해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대주주가 되면서 여러 문제가 나왔다. 그래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재정을 직접 동원하지 않게 된다.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국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빚이다. 문제는 그 빚을 언제, 얼마를 갚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없다는 거다."
 |
| ▲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하면 재정부담은 없지만 이것도 국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빚이다. 다만 언제 얼마를 갚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없다. 재정적자가 너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일부 학자는 폴리시믹스를 제시했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재정과 금융을 같이 분담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 정책 조합)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것을 재정으로 하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 수출입은행은 한국은행에서 어느 정도 출자를 할 수 있으니 부분적으로 한다. 한국은행이 갚을 돈이 없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 유 부총리가 구조조정 재원을 두고 "5조 원 갖고 될지", "며칠 새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유 부총리의 이 발언은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책당국도 얼마가 필요할지 모르는 것이다. 잘 모르지만 일단 꿔달라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무거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에서도 정부는 잘하지 못했다. 지금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 교수께선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는 구조조정보다는 이해 당사자들의 구조조정을 주장해왔다.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에 대해 지원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은 조선·해운 등의 전문가가 아니다. 시장에서 몇 십 년을 지내온 사람들이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시장은 예전과 달리 매우 복잡해졌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싸워야 한다. 이 과정은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도출하기 위한 절차다."
-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위기시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자생력이 없다고 하는데 (정부는) 혼자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스스로 일어서기 어렵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정권에 잘 보이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커지고 기업들은 정권에 잘 보이려고 줄을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책은행(산업·수출입은행)의 인사들이 민간 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문제도 있는데 고쳐야 한다."
끝으로 이 교수는 정부가 국민으로 부터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결국 국민인데 돈을 찍어 낼 사람만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소위 등을 통해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이제 삼당 체제가 됐으니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위급한 사안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온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
| ▲ "위급한 사안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온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7
본문
[인터뷰] 국회 떠나는 장하나 더민주 의원 “옥시 때려잡는 정부, 포청천 코스프레 말고 책임을 져라”
“기자님, 3개월 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기사 쓰실 건가요?”
질문을 하러 간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5월 말이면 국회를 떠나야하는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에게 물었다. 2011년에 본격화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 5년이 지난 이제야 공론화됐다. 이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피해자 접수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2013년 7월에서야 시작됐다. 정부는 2014년 3월에야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공식판정을 내린다. 검찰수사는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에서야 시작됐다.
장하나 의원은 뒤늦은 관심에 갑작스레 바빠진 인물 중 한 명이다. 장 의원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를 상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을 물었고 매번 보도자료를 냈다. 2013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5월 29일이면 자연인 신분으로 국회를 떠나는 ‘말년’ 장하나 의원이 갑자기 몰려드는 언론 인터뷰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게 된 이유다.
 |
| ▲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오전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나
“19대 국회 개원한 초창기에 피해자 분들이 돌아가면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2011년 문제가 터졌을 때 이명박 정부에서 김황식 총리가 주도적으로 TF팀도 구성하고 그 후 조용했다.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등원하는 길에 그 분들이 서 있는 거다. 그래서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 거다. 황당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 분들도, 나도 잘 만난 거다”
- 그간 피해구제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통과가 안 됐다. 왜 안 된 건가
“정부는 정부의 책임이 없기에 정부예산, 국민세금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처음엔 환경보건법을 통한 지원을 요구했다. 환경성 질환이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거다. 근데 정부는 화학제품으로 인한 피해기 때문에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 못하겠다고 했다. 대기가 오염된 경우가 아니니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관련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진짜 의지만 있으면 정부도 법 만들 수 있다. 근데 국회보고 만들라는 건 새누리당을 앞에 내세워 방어하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
관련 기사 : 새누리당 “가습제살균제, 교통사고와 형평성 안 맞아”
- 법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나
“환노위원장이 야당 소속이었기에 여러 피해구제 특별법이 통과 목전까지 갔다. 2013년 8월에는 통과시키려고 했고 8월 임시국회가 열렸는데 정부가 그제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해서 지원하겠다고 했다.”
- 왜 입장을 바꾼 건가
“특별법 통과가 가시화되자 싸게 먹히는 방법을 택한 거라 본다. 이래서 피해당사자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 5년을 보냈다. 그렇게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되자 ‘지원 시작했으니 이제 특별법은 필요없겠네요’라며 특별법이 유야무야 됐다.”
- 특별법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해 지원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정부가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행령에 의거하기에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른다. 하지만 법으로 못 박아놓으면 정치지형의 변화와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지금 이루어지는 지원은 가해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다 보니 등급을 나눠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인원에게만 지원한다. 사망자에게는 장례비, 생존자들에게는 의료비, 치료비를 지원하는 정도다. 물론 이런 지원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억대의 돈이 들어가는 폐 이식 수술로 인해 엄두도 못 내던 피해자들이 수술을 해서 산소통을 뗀 사례도 많다. 하지만 이런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들은 바깥출입도 어렵고 경제활동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요양수당, 생계비 지원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 정부의 지원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폐 질환 중 딱 한 가지 소견(폐섬유화), 그 증상과 일치하느냐 마느냐만 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 정도 유독물질이면 폐 이외의 다른 장기손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지금의 기준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 늦었지만 옥시가 나서서 사과까지 했으니 이제 잘 풀릴까.
“사과할 기회는 5년 전부터 있었다. 피해자들이 1인 시위 매일 하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는데 그 때마다 기업들은 진상취급, 악질 민원인 취급을 했다. 한 번은 피해자들과 같이 옥시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국회의원이 가니까 그래도 문은 열어줬다. 근데 직원 식당 같은 데 앉혀놓고 책임 있는 사람도 안 나왔다. 이런 히스토리가 있는데 이제 와서 사과하니까, 그 사과가 사과로 안 들리는 거다.”
 |
| ▲ 5월2일 옥시 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 및 사과 기자회견 직후 최승운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 대표가 연단 위에 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옥시 레킷벤키저 관계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
- 지금 상황은 마치 검찰과 정부가 잘못한 기업을 때려잡는 것 같은 그림이다
“포청천 코스프레 하고 있다. 정부가 해당 가습기 판매허가 다 내줬다. 가해기업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본다. 잠깐 팔린 것도 아니고 15년 동안 800만개가 팔리는 동안 가만 놔뒀으면 그건 정부 책임이다. 구하기 힘든 물건도 아니고 동네마트만 가면 다 널려있었다.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식의 정부 태도가 가장 큰 재앙이고 문제의 본질이다. 이걸 못 고치면 이런 사고 다시 일어난다. 아무리 검찰 수사를 하고 교수를 조지고 옥시를 조지고 해도 죽음의 행렬을 막으려면 정부가 책임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끼워야한다.
- 검찰 수사 대상에도 이런 정부의 늑장 대응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자들이 정부는 수사 안 하냐고 물어보면 수사 선상에 없다고 한다. 옥시 등 몇 군데만 건드리고, 질병관리본부 발표결과에 없다는 이유로 다른 PB상품은 수사도 안 한다. 하지만 이마트 PB상품만 썼는데도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럼 검찰이 다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 검찰이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고 결국 과징금 얼마 내게 하고 끝날 거란 우려도 많다.
“가습기살균제 광고에 ‘아기들에게 무해하다’ ‘99.9% 천연물질’이라고 나왔다. 마셔도 될 것처럼 광고했다. 근데 그걸 사용한 사람들 수백 명이 죽었다. 허위과장광고라고 5200만원 때렸다. 독약에 안전하다고 써 붙여 팔아서 사람이 죽어도 5200만원만 내면 끝인 거다. 그런 선례를 봐왔으니 검찰 수사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도 청문회 한다고 하지만 국민의당까지 3당 체제가 됐으니 원 구성이 19대 때보다 2~3개월 더 지연될 수도 있다. 6~7월 되면 더민주, 새누리당 전당대회로 시끄러울 거다. 3개월 후에도, 기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기사를 쓸까? 관심이 식으면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킬까.”
-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 후 청문회’를 주장하던데.
“수사에 영향을 준다고 검찰 수사 후에 하자고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당연히 수사에 영향을 줘야하는 거 아닌가? 국회가 청문회 통해서 진상을 밝혀내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쳐야지.”
의원회관 709호 장하나 의원 사무실 앞에는 각종 토론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가습기 살균제 대책, 노동권, 해고노동자, 동물권 등등. 장 의원이 지난 4년 간 다룬 의제는 이처럼 사회에서 ‘소수의 것’로 취급되면서도 쉽게 해결하거나 (의원 입장에서) 성과를 볼 수 없는 의제들이 대부분이다.
- 장하나 의원은 속칭 ‘답 없는’ 이슈들을 파고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의원 입장에서 언론에 뭔가 해결했다고 보여주거나 치적을 삼을 수 없는 이슈들을 뜻한다.
“국회의원 의정활동도 언론에 얼마나 주목받느냐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반짝 하다 마는 경우가 많다. 이슈 되면 이 의원 저 의원이 다루다가 잠잠해지면 다른 이슈로 옮겨간다. 4년 내내 하는 의원은 없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도 19대 개원했을 때 특위도 만들고 했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도 잘 안 풀리거나 언론 관심도 떨어지면 안 다루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100% 만족하지 못한다.”
- 이제 장하나가 없으면 이런 이슈는 누가 다루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제가 다루는 노동이나 환경 등등이 원래 주로 진보정당이 다루던 이슈인데, 19대 때 진보정당이 내적‧외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농담으로 ‘장하나 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하신다. 틈새시장에서 활동한 셈이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보기엔 장하나의 태생적 한계도 있었던 것 같다. ‘민주당 나부랭이’로는 성에 안 차셨을 거다. (웃음) 20대 국회에선 현장에서 많이 만난 박주민 변호사가 저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 정치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장하나가 박주민을 대신할 순 없고 박주민이 장하나를 대신할 순 없다. 그래서 재선하려고 했지만 또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늦게 들었던 것 같다.”
- 더민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이 들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운동권’ 이라는.
“당 안에서도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비권(비운동권) 출신이다. 학생운동도 안 했고. 따라서 ‘운동권 정치인’ 비판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감방에 간 적도 없다. 김종인 대표보다 깨끗하다. (웃음) 내가 2번을 달았던 이유는 정치권력을 얻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점, 나도 알고 있고 인정한다.”
- 정치면보다는 사회면에 많이 등장한 것이 재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은 안 했나. 소위 당 안에서 줄도 타고, 라인도 만들고 해야 하는 데 그런 걸 못했으니.
“내가 소수자와 정치적 약자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이상 재선이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하지 않은 위치에 서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사실 난 정치를 잘 모른다. 4년 있어 봤는데도 모르겠다. 계파니 뭐니 하는 협소한 의미의 정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알 수도 있었지만 발 담그거나 연루되기 싫었다. 무엇을 위한 권력싸움일까. 왜 권력을 갖고자 하는 걸까. 국민들도 망각하기 쉽다. 어느새 스포츠경기 보듯 정치를 누가 누구랑 싸워서 이기고 지는 걸로 여기게 된다. 정치가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랑은 달라야 하지 않나.”
 |
| ▲ 인터뷰 중인 장하나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인터뷰 내내 장하나 의원은 ‘일반인’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보좌관 없이 홀로 의원실에서 기자를 맞이했고, 의원실에 걸려오는 전화도 직접 받았다. 인터뷰 도중 택배가 오자 직접 받으러 나갔다. 이제 그도 일반인으로서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 이제 무엇을 하고 살 건가. 4년 뒤 다시 국회로 올 수도 있나
“언제든지 돌아올 생각은 있지만 쉽지 않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기 참 힘들더라. 언제든지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은 있지만 국회의원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집착도 없다. 어제보다 더 멋지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살겠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는 것을 보면, 20대 때도 국회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걸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6
본문
권순택 기자 | 승인 2016.05.11 19:50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독재자라서 나빠요.”
어린이 대상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 발언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품위유지’ 조항 위반을 들어 행정지도 제재를 결정했다. 불쾌감·혐오감을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쳤다는 결론이다. 삼단논법의 한 ‘예문’으로 나온 표현일 뿐인데,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부적절했다는 게 이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11일 재능방송(JEI) English TV <한마디로 영어> 4월 26일 방영분 관련 건을 심의했다. 해당 방송에서 진행자 박기범 씨는 영어 동사 ‘have’의 “~와 함께 하나가 돼서 존재한다”라는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독재를 했습니다’, ‘독재자는 나쁩니다’라는 두 가지 문장에서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느냐”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독재를 해서 나쁘다’를 추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 분들의 지지자들은 저를 욕하겠지만 예문을 든 것이니 흥분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
| JEI English TV 페북 페이지 캡처 |
“순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정치적인 비유는 비정상…역사적 사실도 아냐”
이에 대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과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 간 의견은 크게 갈렸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부적절한 예문”이라며 행정지도를 주장했다. 반면,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됐느냐”고 문제없음 의견을 밝혔다.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재능방송 시청 대상은 어린이 아니냐”며 “(그런 시청자들을 상대로)진행자가 철딱서니 없게 발언했다. 치기 어린 진행자의 치기 어린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순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독재자를 운운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런 걸 문제없다고 해버리면 그것이 문제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남신 심의위원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대상을 봐야 한다”며 “통념상 드레스코드라는 것도 있다. 회의하는데 잘못 입고 올 수 없지 않느냐.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정치적인 비유를 드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하다. 수용가능한 적절성이라는 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무슨 조항을 걸 수 있느냐’는 지적에도 하남신 심의위원은 “독재자라고 하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라면서 “굳이 영어 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의 독재까지 운운하는 게 튄다는 말이다. 그게 영어 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방송의 품위에 어긋난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4명이 독재자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도 손을 못 대는 부분”이라며 “(4명의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건)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어떻게 할 것이냐. 행정지도에서 의견을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성묵 소위원장은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처음에는 ‘문제없음’을 주장했다가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다수 행정지도 주장을 내자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해당 비유를 든 것이)비정상적인 게 맞는 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걸 조항이 없다”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주의국가를 완성시켰고 박정희 대통령은 후대에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큰 공과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여기에 끼어 있는 건 부적절한 비유를 했지만 문제없다”고 말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독재자는 나쁘다’라는 삼단논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어린아이를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적절한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며 “노태우 대통령이 독재자인가. 뒤로 돈을 먹은 건 잘못했지만 독재자와는 달리 (통치는)민주적이었다”고 말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어, “행정지도 ‘의견제시’라면 합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단논법의 한 비유…독재자에 독재자라고 한 건데 문제없다”
반면, 야당 추천 윤훈열 심의위원은 “독재자에 독재자라고 한 것인데 문제될 게 없다”며 “노태우 정권 또한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분들도 많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장낙인 상임위원 또한 “삼단논법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를 든 것”이라며 “노태우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유한 것은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또, 재능방송이 어린이 대상으로에서 부적절한 비유라고 제재한다면 ‘사회현상’을 예로 든 모든 방송들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해 ‘문제없음’ 의견에 동조했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논란 끝에 해당 건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호 위반으로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표결 이후 장낙인 상임위원은 “해당 방송이 불쾌, 혐오감을 준 것이냐. 이런 걸 제재하니 방통심의위가 희화화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권순택 기자 nanan@mediaus.co.kr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5
본문
| |
 |
|
| ▲ 36년 만에 열린 북한 최대 정치행사인 노동당 7차대회가 6일부터 9일까지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36년 만에 열린 북한 최대 정치행사인 노동당 7차 대회가 9일 공식 폐회했다. 하지만 대회를 축하하는 평양시 군중집회와 청년전위 횃불행진 등으로 이어져 7차 대회 공식행사는 5일 동안 진행됐다.
당 대회 기간 동안 북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대회는 계속된다'고 마무리해 눈길을 끌었다. 당 대회는 폐막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대회는 계속된다'는 분위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당 대회 개회 발표에서 당 대회 본 회의 등을 요약 정리한다.
지난해 10월 당 7차대회 소집 공고..'70일전투' 돌입
지난해 10월 30일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위업 수행에서 세기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를 주체105(2016)년 5월 초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고 결정서를 발표했다.
이어 2월 23일 당 중앙위원회는 전체 당원에게 편지를 보내 '70일전투'를 호소했다. "조선노동당이 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를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로 빛내이기 위한 역사적 진군에서 반드시 승리를 이룩할 것"이라며 당 7차대회를 앞두고 속도전에 돌입했다.
2월 23일부터 5월 2일까지 실시된 '70일전투' 결과, 계획의 144%이상 수행됐고, 공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배 장성했다.
| |
 |
|
| ▲ 당 7차대회가 열린 평양 4.25문화회관 전경. [자료사진-통일뉴스] |
4월 26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는 "조선노동당 7차대회를 2016년 5월 6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회할 것을 결정한다"는 결정서를 발표했다. 당 대회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이에 앞서 북한 당 조선인민군대표회, 평양시, 평안남도, 함경남도, 황해북도, 나선시, 양강도, 강원도, 황해남도 등 각 시.도 대표회가 열렸으며, 김정은 당 위원장을 당 대회 대표로 추대하고 대회 대표자 및 방청자들이 선정됐다.
당 7차 대회 개회를 앞두고 중앙사진전람회, 중앙미술전시회 등이 열렸으며, 5월 2일 당 7차대회 참가를 위한 각 도당 대표자, 방청자 등이 평양역에 도착했다. 당, 무력기관 관계자들이 이들을 역에서 맞이했으며, 여성취주악단이 노래연주로 환영했다.
평양에 도착한 당 대회 대표자들은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만수대언덕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등이 이들의 숙소를 방문했다.
당 대회 개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혁명가극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국립교향악단의 '당에 드리는 노래' 등을 관람했으며, 만경대, 만경대혁명사적관, 대성산혁명열사릉, 청년운동사적관, 과학기술전당, 조국해방전쟁사적지 등을 참관했다.
| |
 |
|
| ▲ 당 7차대회가 개회된 6일 김정은 당 위원장이 혁명전우를 호명하며 개회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당 7차대회 개회 1일차, 혁명전우들 호명
김일성.김정일 초상화와 마치.낫.붓이 새겨진 당기로 물든 평양 4.25문화회관. 6일 오전 9시(현지시각) 김정은 당 위원장이 김영남, 황병서와 함께 주석단에 등장하면서 당 7차대회가 개회했다.
당 7차대회에는 3천 467명의 결의권 대표자와 2백명 발언권 대표자 전원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당 정치일꾼대표 1천 545명, 군인대표 719명, 국가행정경제일꾼대표 423명, 근로단체일꾼 52명, 과학.보건.문화예술.출판보도부문 일꾼대표 112명, 현장 핵심당원대표 786명, 항일혁명투사 6명, 비전향장기수 24명으로 구분됐다. 대표자 중에는 여성이 315명, 방청자 1천 387명이 참가했다.
김정은 당 위원장은 인민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친애하는 대표자 동지들!"이라고 운으르 뗀 뒤, 앞서간 항일혁명투사, 혁명동지, 선군혁명전우, 과학.문화예술.체육인들, 통일애국인사들을 호명하며 개회사를 했다.
북한 애국가가 연주되자 김영남 당 비서의 사회로 집행부 선거, 주석단 성원 추천, 축전 및 축하편지, 축하꽃바구니, 선물.메달.명예칭호.상장 소개, 서기부 선거, 재일총련.재중총련 축하단 축하문 낭독 및 축기 증정 등으로 회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개정, △김 제1비서를 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실데 대하여,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등의 의정이 승인됐다.
김 당 위원장은 당 대회의 핵심인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시작했다. 1980년 10월 6차 대회이후 36년을 "당 제6차대회가 진행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 당의 오랜 역사에서 더없이 준엄한 투쟁의 시기였으며, 위대한 전변이 이룩된 영광스러운 승리의 연대였다"고 결산했다.
첫날 당 대회는 관영 <조선중앙TV>가 밤 10시(현지시각) 녹화중계 보도했으며, 상세한 내용은 이튿날 관영 <조선중앙통신>, 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이 보도했다.
| |
 |
|
| ▲ 북한 김정은 당 위원장은 6일부터 7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를 보고했으며, 8일 결론과 결정서가 채택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당 7차대회 2일차,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
당 7차대회 2일차인 7일 김정은 당 위원장은 전날에 이어 이틀째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를 보고했다. 2일차 회의 소식을 담은 <노동신문> 8일자는 총 24면을 발행 9면에 걸쳐 사업총화를 실었다. 사업총화만 A4 분량으로 77매에 해당된다.
김 당 위원장은 총화 보고에서 "북과 남은 여러 분야에서 각이한 급의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켜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조국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출로를 함께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당의 조국통일노선이 '조국통일3대헌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북확성기 방송, 대북전단 살포 중지등 실질적 조치를 제안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우선 북남 군사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주, 평화, 친선'의 당 대외정책 이념을 재확인하며,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속적 핵개발 의지는 이어갔다.
이와 함께,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전력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을 제시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결합이라고 설명했으며,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세계자주화 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사업총화 보고가 끝나자 김기남, 리명수, 조연준, 박봉주, 장철, 왕창욱, 김채룡, 오춘영, 김상민, 허영춘, 리수용, 김동일, 박승학, 김영철, 최룡해, 장창하, 최용, 최학수, 박태성, 리영식, 최부일, 김수길, 전인철, 지동규, 김길성, 리종무, 전경선, 강영철, 박정남, 고병현, 최동철, 김승두, 강명학, 박춘남, 김정관, 김두일, 리향걸, 강하국, 차종범, 계훈녀 등 40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들은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는 "완벽한 해답을 준 백과사전적인 정치대강"이라고 지지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는 내용을 발표했다.
| |
 |
|
|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총 24면을 발행 9면에 걸쳐 사업총화를 실었다. A4 분량으로 77매에 해당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당 7차대회 3일차,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결정서 채택
당 7차대회 3일차인 8일에는 김정은 당 위원장이 사업총화에 대한 결론을 발표했다. 그는 "전당, 전군, 전민이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과업관철에 총매진하여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제시했다.
그리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에 대한 결정서가 대표자 전원 찬성으로 채택됐다.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가 사실상 3일에 걸쳐 진행된 셈이다.
두 번째 의제인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최승호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이 보고했다. 그는 △당 재정 유일관리제를 통한 집행, △자체의 힘으로 당 재정문제를 푸는 원칙 및 당 자금을 효과적으로 쓰는 원칙 등을 통한 당 자립적 재정토대 강화 및 보장 △당 재정예산 정립 및 당 재산관리 강화, △당 재정규율 강화를 통한 낭비 방지, △당 재정관리사업의 당 위원회 사업화 등을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체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이 당 제7차대회에 드리는 축하문'이 발표됐으며, 조선소년단 축하단의 꽃바구니 증정 및 축하문 낭독,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축하단의 꽃바구니 증정 및 축하문 낭독 등이 있었다.
관영 <조선중앙TV>가 이날 회의를 당일 보도하지 않아 한때, 하루 쉰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이튿날 보도됐으며, '특별 중대방송'으로 김정은 당 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두 차례 녹화중계했다.
| |
 |
|
| ▲ 당 7차대회 대표자들이 붉은 색 당원증을 들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당 7차대회 폐막 4일차,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추대
종반으로 치닫은 당 7차대회 4일차인 9일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당 규약개정, 김정은 동지를 최고수위에 높이 모실데 대하여,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등이 진행됐다.
당 규약은 2012년 4월 열린 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개정된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라는 부분이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이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조선노동당의 상징이시고 영원한 수반이시다", "조선노동당은 조선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 등이 새로 들어갔다.
특히, 당의 최고 직책을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규정하고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당을 대표하고 전당을 영도하는 당의 최고영도자"라고 정의했다. 당 제1비서가 삭제되고 당 위원장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비서직제를 부위원장으로, 도.시.군당위원회와 기층당조직의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직제를 각각 위원장, 부위원장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의 명칭을 '정무국'으로, 도.시.군 당위원회 비서처의 명칭을 '정무처'로 바꾸는 등의 당 규약을 개정했다.
당 규약 개정에 이어 네 번째 의제인 '김정은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추대할데 대하여'가 다뤄졌다.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당 규약에 새로 들어감에 따라 김정은 제1비서가 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김영남 당 비서가 추대사를 읽고, 황병서, 전용남, 주영길, 리명길, 태형철 등이 토론으로 지지찬동했다.
| |
 |
|
| ▲ 당 7차대회가 열리는 평양 4.25문화회관으로 입장하는 대표자들. [자료사진-통일뉴스] |
마지막으로 당 중앙위원회 선거가 열렸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는 김정은 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등이 포함된 129명, 후보위원 106명이 올랐으며,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15명의 명단도 발표됐다.
당 중앙위원회 선거에 앞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당 위원장이 회의를 지도, 정치국 상무위원에 박봉주, 최룡해가 새로 들어가 5인 체제를 구축했다.
당 정치국 위원은 리수용이 포함된 19명, 후보위원은 리영길 등 9명, 새로 신설된 정무국 당 위원장에 김정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최룡해, 김기남, 최태복, 리수용, 김평해, 오수용, 곽범기, 김영철, 리만건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박봉주가 포함되는 등 11명, 당 중앙위원회 부장 15명, 당 기관지 <노동신문> 책임주필 리영식, 검열위원회 위원장 홍인범 등이 선거됐다.
이를 담은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 내용이 당 7차대회 마지막에 통보됐으며, 당 중앙검사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 결정내용도 통보됐다.
이어 전체 인민군 장병들과 청년들, 인민들에게 보내는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호소문 '만리마속도 창조의 불길 높이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향하여 총공격 앞으로!'가 발표됐다.
| |
 |
|
| ▲ 조선소년단 축하단이 8일 김정은 당 위원장에게 꽃바구니를 증정하고 축하문을 낭독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그리고 김정은 당 위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역사적인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는 전체 대표자 동지들과 당원들,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의 높은 정치적 열의와 열렬한 축원과 기대 속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이제 자기 사업을 끝마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는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천만년 드놀지 않을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우리 당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모든 대표자 동지들과 우리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전체 당원들,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의 굴함없는 공격정신과 영웅적인 투쟁에 의하여 당 제7차대회가 내놓은 혁명적 노선과 방침들이 철저히 관철되고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위대한 전환이 이룩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역사적인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폐회를" 선언했다.
당 7차대회 취재를 위해 외신 기자 약 130명이 평양에 들어갔으며, 한 동안 대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다 마지막날인 9일 약 10분 정도 취재가 허용됐다. 한때, 8일 오전 인민문화궁전에서 고위인사 회견을 준비하는 듯 했으나 돌연 취소돼 외신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 |
 |
|
| ▲ 당 7차대회가 끝난 뒤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경축 평양시군중대회 및 군중시위가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평양시 군중대회 및 청년전위 횃불행진으로 마무리
4일간에 걸쳐 진행된 당 7차대회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당 7차대회 경축 평양시군중대회 및 군중시위, 청년학생 야회 및 청년전위 횃불행진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에 열린 평양시군중대회 및 군중시위에 김정은 당 위원장은 양복이 아닌 인민복을 입고 등장했으며, 밤에 열린 횃불행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양 목란관, 인민문화궁전, 옥류관, 청류관 등지에서 당 7차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36년 만에 열린 북한 최대 정치행사인 당 7차대회는 공식 일정을 마쳤다. 당 7차대회 대표자들도 이제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당 7차대회에서 채택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결정서' 학습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국가 건설을 승리로 맺고 우리 세대의 이름으로 주체조선의 만리마동상을 온 세상이 보란듯이 세우자. 당 7차대회는 만리마속도창조운동에서도 세상을 놀래우는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자는 것을 다시한번 열렬히 호소한다"는 7차대회 호소문처럼, 당 대회는 공식 행사만 마쳤을 뿐 "대회는 계속된다".
|
|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4
본문
[현장] 도교육청 관계자 등 농성장 찾아... 단원고 교장 "3월 발령받아 제적 몰랐다"
16.05.12 05:43l최종 업데이트 16.05.12 07:57l
 |
| ▲ "사과하러 왔습니다" 단원고의 세월호 희생학생 제적처리에 관여한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학교 본관 앞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 사과했으나, 유가족들은 "진정한 사과 아니다"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왼쪽부터 도교육청 김동민 장학관, 양동영 단원고 교감·이득규 교무부장, 안산교육회복지원단 나경록·박헌순 장학관, 고기윤 장학사. |
| ⓒ 박호열 |
관련사진보기
|
"1월에 몰래 제적 처리하지 않았냐. 우리가 몰랐으면 계속 이대로 갈 거 아니었나? 우리가 알았기 때문에 사태 수습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과하러 온 거 아니냐. 제적처리된 걸 원상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왜 이제야 하는 거냐. 교실 빼 준다고 약속했는데도 어떻게 제적 처리할 수 있느냐. 협약식 사인하기 1분 전에 제적 처리 사실 알고 무효하지 못한 게 원망스럽고 한스럽다. 언제까지 우리는 양보만 해야 하나. 어떻게 자식 잃은 우리들이 끝까지 양보만 해야 하나.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진심 어린 사과를 해라."
- 11일 밤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농성장에서 어느 유가족 발언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원고 희생학생 246명의 제적처리(미수습 학생 4명 유급)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이 11일 오후 제적처리 취소와 학적 복원 절차 추진을 발표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께 농성장에 있는 유가족과 시민 등 100여 명에게 "이 교육감이 제적처리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원상복구 시킬 것을 약속하는 공문을 보내 왔다"며 "잠시 후 제적처리 과정에 관여했던 도교육청 등 관계자들이 방문해 사과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교육청 김동민 장학관과 안산교육회복지원단(이하 회복지원단) 나경록·박헌순 장학관, 고기윤 장학사, 단원고 양동영 교감, 이득규 교무부장 등 6명이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 "유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희생학생들을 제적 처리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들의 사과는 "모른다", "기억 안 난다", "사과한다"로 일관했던 국회 청문회를 축소한 모습 그대로였다. TV 청문회를 보다 방바닥을 치며 개탄했던 국민들처럼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으며 통탄했다.
양동영 교감은 "제적돼도 생활기록부가 완전히 삭제되는 것은 아니며 희생학생은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 후, 신입생 입학 등 학사업무에 대해 설명하다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로 말문이 막혔다.
유가족은 "(교감이) 재학생 부모들과 희생학생 부모들이 충돌하도록 부채질하지 않았냐"며 "사과를 하러 왔으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게 먼저 아니냐. 그동안 침묵하며 나 몰라라 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길게 하나.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그쳤다.
김동민 장학관은 "제적처리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 설명하는 게 맞다"며 "희생학생들의 데이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요구한 대로 원상복구를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교육자인지 의심스럽다. 부끄럽지 않나? 아이들을 무시해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나"며 "어떻게 부모들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아이들을 제적처리할 수 있나. 아이들이 문서의 숫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냐.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는 없다. 당신들도 새누리당과 똑같다"며 항의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죽어간 아이들 생각했다면 이럴 순 없다"
 |
| ▲ 단원고의 세월호 희생학생 제적처리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지난 9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제적처리를 사과하러 온 도교육청 관계자 등에게 항의하고 있다. 일부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이며 연신 눈물을 쏟았다. |
| ⓒ 박호열 |
관련사진보기
|
'창현 아빠'는 "어제 교감이 제적은 회복지원단 공문을 받아 했고,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것도 회복지원단에서 공문을 받아 그렇게 했다고 했는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회복지원단 장학사에게 질문을 했다.
나경록 장학관은 "미리 가족들에게 안내를 못한 점 사죄드린다"며 "공문은 도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에서 단원고와 회복지원단이 같이 받았는데… 2월에 가족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못 알렸고, 제적 처리한 상황은 당시에 몰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유가족들은 "어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니 지금 실토하는 거냐. 제적 처리 날짜도 1월인지 2월인지에 대해 말이 엇갈리는데, 대체 어느 말이 맞는 거냐"며 "말을 할 때마다 믿을 수 없게 한다. 제적처리 관련 회의 자료를 공개하거나 정보공개 신청을 해 상세한 내용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유족은 "아이들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법대로 제적 처리했다는 것이냐"며 눈물을 쏟았고, 다른 유족은 "우리는 모르고 당신들만 아는 법이 따로 있는 거야.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을 해 사과조차도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며 반발했다.
김동민 장학관은 제적 처리와 관련 교육부의 지시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교육부에 질의를 했다. 졸업대장을 한꺼번에 부여할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제적 처리를 했다"며 "또 명예졸업이나 신입생 데모 우려 때문에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알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 유가족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죽어간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식으로 제적 처리할 수 없다"며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 채 농성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숨기지 않았겠냐"며 오열했다.
양동영 교감은 제적 처리 절차에 대해 "잘 몰랐는데, 현행 민법을 지침으로…"라고 말을 했고, 나경록 장학관은 "전화로 질의는 했는데…"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가족들은 분노했다.
유가족은 "법대로 했다고 하는데, 왜 가족들에게서 서류 접수도 안 받고, 사망신고도 받지 않고, 부모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는지 설명해 달라"며 "당신들 유리한 법대로만 하고 우리에게는 왜 그 법조차 알리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도교육청 관계자 등, 유가족 농성장 앉아 대화 이어 가
 |
| ▲ 단원고의 세월호 희생학생 제적처리를 사과하기 위해 온 도교육청 관계자 등이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 농성장 위로 올라가 유가족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 ⓒ 박호열 |
관련사진보기
|
'지성 아빠'는 "인간적인 진심어린 사과인지 되묻고 싶다.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아버지로서 솔직하게 말해 달라"며 "그리고 기억교실이 보존돼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가부를 말해 달라"고 물었다.
김동민 장학관은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교실 보존 협의회를 같이 해 왔다. 아픔을 알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지속해 왔다"고 에둘러 말하자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김 장학관은 "아버지로서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교실을 보존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했는데…"라며 즉답을 피했다.
'지성 아빠'는 "미안하지만 여러분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우리가 다시 밤새우고, 피켓 들고 농성하는 거 다 알면서… 이건 사과가 아니다. 교육자 이전에 아버지로서 양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유가족은 "교육자 이전에 양심도 없고, 소신도 용기도 없고 상부의 눈치만 보고 밥그릇만 챙기는 교육자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비판했다.
유가족들의 항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단원고 교사가 신변보호를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해 경찰차가 출동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동민 장학관 등이 농성장을 빠져 나가려하자 유가족들이 가로막고 나섰다.
유가족들은 "이재정 교육감과 추교영 전 단원고 교장 등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며, 김 장학관 등을 밤샘농성을 한 곳으로 안내해 깔개가 깔린 농성장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정광윤 교장 "3월에 발령받아 (희생학생) 제적 처리 몰랐다"
 |
| ▲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학생 제적처리 원상복구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는 단원고 본관 앞에 이 학교 정광윤 교장(오른쪽)이 유가족들의 질문을 받고 제적처리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왼쪽은 양동영 교감. |
| ⓒ 박호열 |
관련사진보기
|
20여 분이 지나 정광윤 단원고 교장이 농성장을 찾았다. 유가족들이 정 교장이 학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해명을 듣기 위해 부른 것이다.
정광윤 교장은 "발령 후 우리는 다 피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잘 될 거라고 믿었다. 갈등의 중간에 있었지만 그래도 충돌이 없기를 바랐다"며 "제적 처리와 지난 5일 이삿짐센터 차량이 교실에 들어 온 것, 어제(10일) 학부모회의 후 유가족과 충돌한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3월 1일 부임해 (제적처리)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히고, 이삿짐센터 차량 진입과 관련해 "4월 15일로 예정된 협약식이 무산됐지만 재학생 학부모는 원래 계획인 5월 1~3일에 유품 수습한 후 4~5일에 이전하는 걸 원했다. 하지만 5월 9일로 협약식이 연기되면서 불가피하게 6~8일 사이에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 온 것"이라며 설명했다.
유가족은 "왜 제적 처리된 사실을 협약식 하기 전에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정 교장은 "3월에 부임되어 온 사람이라 몰랐다"고 말했다. 상식 밖의 답변에 유가족들은 다시 거센 항의를 했다.
유가족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 인수인계도 안 하는 학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교장이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도 양보하며 협약식에 서명했으면 그 전에 제적처리 상황을 알려 주는 게 도리 아니냐. 이건 기만이고 속임수"라고 항의했다.
정 교장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고… 단원고 정상화를 위해 발령받고 왔다. 그래서 희생학생 부분은 국가가 해결할 것으로 믿었고, 학교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정 교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 마음도 아프다"고 말하자 분위기는 다시 어수선해졌다.
전명선 위원장이 사회를 보며 진행된 일문일답에서 정 교장은 "제적 사실 모르고 협약식 잘 될 거라 믿고 갔다"며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양동영 교감은 "전임 추 교장이 인수인계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다시 반발을 샀다.
양 교감이 "제적 관계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하자, 한 유가족은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는데 이재정 교육감과 전임 교장을 불러 삼자대면을 통해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2년 동안 온갖 모욕과 굴욕을 참고 참았지만 끝까지 속이고 끝까지 무시하고… 교육자라는 사람들마저 대한민국에서 믿을 사람 없게 만들고 있다"며 한탄했다. 결국 해명을 위한 대화를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전명선 위원장 "416교실 이전 시기·방법 정확히 합의해야 농성 해제"
한편 전명선 위원장은 농성 해제와 관련 "먼저 제적 처리에 관여한 담당자들이 유가족 앞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단원고를 비롯해 교육청 관계자들 중 현직에 없는 관계자도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학교 측에서 아이들 유품을 강제 정리하려고 했고, 재학생 학부모도 책걸상을 빼내는 등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협의회와 학교 측의 교실 이전 시기와 방법이 정확하게 합의되고 약속이 이행돼야 농성을 해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416교실에 대한 경찰 보호신청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책걸상을 빼내면서 유가족을 쓰러트리는데 앞장선 장기 전 운영위원장에 대한 법적 대응은 변호사들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랙백 주소
http://blog.jinbo.net/pulip41/trackback/7472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