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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경제민주화? 재벌회장이 웃는다

 

[오마이팩트] 박근혜 경제민주화 대선 공약 실천 합격점?

16.01.22 07:24l최종 업데이트 16.01.22 10:52l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성적 100점 만점에 80점은 된다."(유일호 경제부총리)
"박근혜 경제민주화 공약 18개 가운데 실천한 건 1~2개에 불과하다."(참여연대·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공약 평가)

과연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일까? 아직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지만, 정부여당과 야당·시민단체의 시각 차가 크다. 정부 말대로 '합격점'이라면 지난 3년 동안 경제민주화는 상당 부분 실현됐을 테고, 시민단체 평가대로 '낙제점'이라면 아직 갈 길이 멀뿐 아니라 현 정부에선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오마이팩트>는 참여연대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에서 지난 12일 발표한 '경제민주화·노동 관련 대표 공약 23개 평가'와 청와대에서 18일 발표한 '경제민주화 성과 관련 참고자료'를 비교·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을 기준으로 정량적 평가를 했더니,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더라도 57.6%에 그쳤고, 시민단체 평가는 26.5%로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시민단체는 '대선 공약', 정부는 '입법과제'... 잣대부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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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1월 16일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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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제민주화 실현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부터 서로 달랐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모두 18개였다. 크게 ▲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 ▲ 대기업 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 행위 근절 ▲ 기업지배구조 개선 ▲ 금산 분리 강화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참여연대는 이 대선 공약을 기준으로 실행 여부를 따졌다.

반면 정부의 잣대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5월 28일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에 따라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제 20개를 정했다.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20대 입법 과제 가운데 13개는 이미 입법을 마쳤고 6개는 국회 계류 중, 1개는 입법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말대로라면 최소 65%는 달성한 셈이고, 국회에 제출한 법안까지 포함하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말한 80점에 가깝다.

사법부는 재벌 총수에 실형, 정부는 '면죄부' 

하지만 대선 공약에는 있지만 20개 입법 과제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내용이 적지 않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 ▲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 엄격히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재벌 총수 일가를 옥죄는 내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18일 "재벌총수 범죄에 대한 실형 선고, 원칙에 입각한 사면 원칙을 확립하여 과거 정부의 유전무죄식 솜방망이 처벌과 반복된 사면이라는 구태를 청산"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 14명을 특별 사면했다(관련기사: 결국 비리 기업인 사면, 박 대통령 또 대선공약 어겼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4년 2월 대법원에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됐다. 최 회장은 이미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된 뒤 같은 해 8.15 특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사법부는 실형 선고로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킨 셈이지만, 정작 재벌총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 공약은 '경제 살리기' 구호에 다시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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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6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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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지난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롯데그룹 총수 일가 경영권 다툼까지 맞물리면서 현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를 불신하는 국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에선 분기마다 경제정책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 2014년 6월 조사에선 정부 기업 정책이 대기업 중심이란 의견이 62.6%였지만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다 2016년 1월 현재 73.2%로 10%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또 정부 경제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재벌·대기업'이란 응답도 1년 반 사이 37.8%에서 45%로 크게 늘었다. 그만큼 국민들이 경제민주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정부 경제 정책이 재벌 대기업 영향권에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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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은 대기업 중심인가? 중소기업 중심인가?(자료: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조사)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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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 대기업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으려고 중소도시에서 대형마트 신규 입점시 지역협의체와 합의하도록 하겠다는 내용과 ▲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입법 과제에는 빠졌다. 

그 사이 복합쇼핑몰 입점을 둘러싼 대기업과 지역상권 충돌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국민연금은 지난해 8월 주주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큰 비판에 직면했다(관련기사: 경실련 "국민연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해야").

경제민주화 공약 실행, 정부 57.6%-시민단체 26.5% 두 배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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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이 21일 오후 청와대와 가까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이행 발표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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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가 약속한 입법 과제는 충실히 지켰을까?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건 ▲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 축소 두 가지 정도다. 순환출자는 재벌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특히 롯데그룹은 순환출자고리가 무려 416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지난해 연말까지 스스로 80% 이상 정리하기도 했다. 

나머지 공약들은 양쪽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우선 참여연대는 ▲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거나 ▲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 금지를 청구하는 제도 ▲ 소액주주 등이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제도 ▲ 이를 위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 소비자보호기금 설립과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도 도입 ▲ 금융·보험회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단독금융회사 기준으로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5%까지 강화 등 여섯 가지는 입법 과제에 포함되긴 했지만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부가 이행했다고 밝힌 ▲ 중소기업 적합업종 실효성 제고 ▲ 대형유통업체와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 근절 ▲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 ▲ 대기업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근절 ▲ 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등은 공약 내용 일부를 반영하긴 했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특히 정부가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라고 주장하는 '표시·광고법상의 동의 의결제(기업이 스스로 피해구제를 약속하면 공정위가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제도) 등 다섯 가지는 애초 경제민주화 공약이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중점 법안이 아닌데도 끼어 넣어 '숫자 부풀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설치 ▲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 금융보험사 주식 의결권 제한 ▲ 집단소송제 도입 ▲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 일곱 가지는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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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공약 잘 지켰나? O는 실행, △는 부분 실행, X는 미실행 (자료: 2016년 1월 21일 참여연대-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경제민주화 및 노동시장정책 23개 공약 평가, 2016년 1월 18일 청와대 '경제민주화 성과 관련 참고자료')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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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18대 대선 경제민주화 공약 18개를 기준으로, 정부는 57.6% 정도 실행했다고 보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에선 26.5%로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오히려 "과거 정부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신규순환출자 및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해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및 편법승계 차단의 기반을 마련했다"라고 자화자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급히 통과돼야 할 구조개혁과 일자리 창출 법안들이 야당의 발목잡기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어렵게 거둔 경제민주화 성과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야당 쪽에 책임을 돌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평가도... "상법, 금융관련법도 고쳐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아직 국민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서 지난 6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진전되지 못했다는 의견이 78.4%에 이른 반면, 진전됐다는 의견은 13.7%에 그쳤다. 그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의견이 각각 43.2%, 15.1%로 60%에 육박했고 야당 책임은 21.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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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는 진전되었나?(자료: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조사, 2015.1.6 발표)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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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걸까? 김상조(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대선 공약 기준으로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불공정 하도급거래 규제 등 공정거래법을 바꿔서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마쳤다"라면서 "하루아침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김 소장은 "남은 건 주주, 채권자, 노동자, 소비자 같은 경제 주체들이 재벌, 대기업에 맞서 스스로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러려면 상법, 금융 관련 법도 바꿔야 하는데 큰 진전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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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왜 정치를 하는가 A.이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칼럼홈 > 임두만  
 
 
 
“우리가 죽어가는 한국정치를 구할 어벤져스!”
 
Q.왜 정치를 하는가 A.이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임두만 | 2016-01-21 09:39: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벤져스(The Avengers)… 지구의 안보가 위협당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지구를 구한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배급하여 2012년 4월 25일 전 세계 동시 개봉했다. 우리나라도 개봉되어 총 관객 700만 명을 넘겼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난관을 이겨낸 용사들을 일컬어 ‘어벤져스’로 명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 국민회의는 ‘한국 정치의 전면교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현역 정치인들 주축이 아니라 신진인사 주축이다. 때문에 언론으로부터의 관심도가 적어서 야권1당인 ‘더민주’나, 이에 필적한다는 안철수 의원 주축인 ‘국민의당’에 비해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현저하게 낮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더 왕성하게 구태정치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리고 이런 진정성에 동조하는 신진인사들은 계속 국민회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신당 국민회의가 한국정치를 구할 어벤져스로 가장 먼저 소개한 3인, 좌로부터 채수장, 장정숙, 김영수씨 © 임두만

국민회의는 이들 신진들을 ‘대한민국을 구태정치로부터 구할 어벤져스'로 명명, 언론에게 소개했다. 국민회의가 가장 먼저 언론에 소개한 3인을 두고 천정배 위원장은 “국민회의 의인클럽 3인으로서 국민회의의 인재상인 ‘용기, 헌신, 성취를 이룬 인재’에 가장 적합한 진짜 인재”라고 자랑했다. 또 “의인클럽 3인은 3不(불안전, 불공정, 불평등)에 맞서 싸워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어벤져스”라고 말했다.

실제 소개된 이들의 면면은 ‘어젠져스’다웠다. 가장 먼저 소개 된 채수창씨는 경찰대학 1기 졸업생으로 경찰대 출신 중 승진도 늘 선두그룹을 달리던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 2012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피의자가 고문을 당했음이 폭로되면서 경찰 조직 전체가 세간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당시 채 서장은 “이 같은 현상은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실적주의 때문”이라며 조현오 검찰청장에게 검거 위주의 실적주의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권력에 맞서다 파면되었다. 하지만 채씨는 이 파면결정에 불복, 2년간의 행정소송에서 승소 복직하여 화순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다 2년 후 명예퇴직을 했다.

▲조현오 전 서울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다 파면되었던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 © 임두만 

채수창씨는 이날 국민회의의 입당식에서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대단한 나라다. 이 대단한 나라가 지금은 지구촌에 한류바람을 일으키는 아시아 중심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안부 협정에서 보듯이 민족의 자존심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젊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다. 이에 부당함에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자존심 있는 나라, 일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나라,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정치를 할 결심을 했다. 이런 나라를 만들려면 제대로 된 야당이 있어야 하고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야당이 있어야 한다. 천정배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회의에서 이 가능성을 발견해서 같이 하기로 입당했다. 국민회의 천 위원장님과 함께 우리나라를 살맛나는 나라로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가진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 입당을 축하한다. 경찰을 하다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서울 강북경찰서장 당시 검거 위주의 실적주의를 반대하였다 파면된 후 꼭 2년 만에 복직되어 화순서장으로 발령받았다.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 파면이 되니까 어째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준비가 없는 해직… 인생을 살면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식당, 이불가게 점원… 나하곤 상관없는 일인 것 같았는데 내가 그 일들을 했다. 그러다 다시 복직되어 경찰서장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나? 사무실에서 과장, 계장들이 결재를 받으러 오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던 생각이 난다. 야인으로 지내며 워낙 마음 고생을 하여 다시 경찰서장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 심정을 잊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정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

- 파면 후 지난한 행정소송을 거쳐 승소하고 복직이 되었는데 왜 다시 퇴직했으며 퇴직 후 소회는?

= 경찰공무원 할 때는 오늘 출근하여 무슨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 걱정할 때가 많았다. 항상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니 지루했던 것이다. 그러나 파면을 당한 뒤의 고초를 이기고 다시 복직해보니 처음엔 감격했으나 다시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좀 더 역동적인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2014년 2월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매일 무슨 일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할까,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까를 고민하는 삶이다. 즉 해야 할 일을 무궁무진한데 능력과 여력이 없어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역동적인 삶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 정치 시작이 이번이 처음인가?

= 아니다. 2014년 명예퇴직하고 서울 강북구청장에 도전했다. 안철수 신당으로 출발했으나 갑자기 당시 민주당과 합당하는 바람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 되었는데, 같은 당 소속이 된 현 구청장과 경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신인으로 역부족이었다. 내가 조직한 권리당원이 없는 상태에서 도저히 경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양당의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때 우리나라 같은 양당체제에서 무소속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여러 가지 출혈이 컸지만 좋은 경험을 했고 만약 다시 한다면 이제는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을 창당 중인데 국민회의에 참여한 이유는?

= 지난 지방선거 낙선 이후 정치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다 지인으로부터 천정배 신당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고심을 많이 하다, 천정배 의원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후 그 분의 열정과 진정성에 감동되어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우리나라의 양당제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왔다. 양당은 서로 결탁하고 야합하기 쉽다. 야합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고 서로의 이권을 묵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깨기 위해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고, 천정배와 국민회의는 이런 면에서 내 소신과 맞았다.

- 정치를 통해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은?

= 내가 실현하고 싶은 정치가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이다. 우리 국민은 5천년 면면히 이어온 문화전통은 물론, 현재 한류 바람을 보듯 대단히 현명하고 열정이 있는 국민이다. 그러나 사회 곳곳의 부정, 부패, 차별, 기득권의 장벽에 막혀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모든 국민이 각자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존중받으며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두 번째로 소개된 김영수씨는 해군 소령출신이다. 그는 현역 소령으로 재직할 당시 군대 내 만연한 군납비리를 폭로해 국방부의 특별조사를 이끌어 냈다. 이로 인해 결국 정옥금 전 해군참모총장까지 구속될 정도로 심각한 방산비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 공로로 김영란 권익위원장 당시 국민권익위에서 근무, 시민권익찾기에 힘을 보태다 퇴직했다. 채씨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영수 씨는 입당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군내에 만연한 방산비리를 고발한 용감한 의인 김영수 전 해군 소령 © 임두만

“국민회의를 선택한 이유는 국민회의가 출발은 미미하지만 가치와 비전을 갖고 정직하고 진정한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국가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를 통해 첫째 국가안보와 군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싶고,둘째는 만연한 방산비리를 뿌리 뽑고 싶다. 내부고발이나 공익성 신고가 들어올 시 이를 철저하게 파해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여 입당했다”

다음은 김씨와 가진 짧은 인터뷰다.

- 국민회의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나?

= 진정성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현 정치권에서 진정성이 가장 선명한 정치 지도자는 천정배 의원이며, 그가 추진하는 정당이라면 그 진정성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되어 국민회의를 택했다. 그리고 와서 보니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 어떻게 입당하게 되었는지… 천 위원장이나 기타 다른 국민회의 인사들과 아는 사람이 있는지…

= 없다. 천정배 위원장을 언론을 통해서 알 뿐이었다. 그런데 국민회의에 참여해 달라는 천 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잠시 망설이긴 했으나 그동안 느꼈던 한계의 극복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 승낙했다.

- 어떤 한계를 말하는가?

= 국민권익위에 국민신문고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게 제 역할을 못한다. 신문고를 설치한 형식적 논리는 맞는데 실질적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공직자들의 자세다. 처음에는 다 의욕적으로 하려고 하지만 안 된다. 하려면 권력에게 맞짱을 떠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공무원이란 직업인이 하기는 어렵다.

-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 국민권익을 위해서라고 판단되면 누구와도 당당하게 맞짱을 뜰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 되는 상태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회에서 그 제도를 법으로 보장하는 법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국회가 권력의 눈치를 본다. 왜냐면 국민권익위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지면 우선 국회의원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국민권익 침해를 조사해보면 국회의원들이 개입된 사례가 다분하다.

- 정치로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겠다고 정치에 들어 온 것인가?

= 그렇다. 권익위의 직원을 직업 공무원 발령을 통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국회도 행정부도 연계고리가 없는 인사들로 앉혀야 한다. 즉 적극적인 외부영입을 통해 緣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다음 업무의 행정화가 아니라 역동적 실질화가 필요하다. 문서보고 위주가 아니라 권익침해를 해소하는 해결위주여야 한다. 공무원들은 열정도 부족하지만 문서보고 시스템이 젖어 업무의 행정화만 유능하다. 나는 국민회의에서 이 일을 하므로 실질적으로 정치가 국민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소개 된 장정숙 전 서울시의원은 시 의원으로 재직할 시 문화관광위 소속 위원으로 서울시향 사건을 물 밑에서 물 위로 올린 공로자다. 즉 박현정 대표의 퇴임까지 불러 온 서울시향 내부의 복마전이 정명훈으로부 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린 공로자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정명훈이 물러나면서 알려진 정명훈 왕국 비슷한 서울시향에서 정 감독이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포착, 끈질기게 박원순 시장에게 질의하는 등 서울시향 정명훈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데 공훈을 세운 의인이다.

▲정면훈 감독 재임시 서울시향이 정명훈 완국이었음을 따져 물은 장정숙 전 서울시의원 © 임두만

채씨와 김씨에 이어 카메라 앞에 선 장정숙 전 서울시의원은 그래서 이런 입당 소감을 남겼다.

“뉴스를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속상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아빠가 아이를 때려서 숨지게 하는 등 사회적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생각해 볼 때가 많았다. 문화인이 사는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무한경쟁 시대에 풍요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서 국민회의와 함께 하게 됐다. 문화·예술인들의 경제적 안정 및 사회적 신분 보장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싶다”

다음은 장 전 의원과 가진 짧은 인터뷰다.

- 국민회의에 입당한 동기는?

= 천정배 의원에게서 나타난 선명성, 즉 그동안 천정배 의원이 보여 준 선명한 의정활동이다. 그리고 앞에 김 소령님이 말했듯이 진정성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현재 정치권에서 선명한 진정성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결사체는 국민회의란 생각에서다.

- 8기 서울 시의원이었는데 지난 선거에서 왜 낙선했나?

=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서울 송파을에 새정치연합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48.2% 득표로 낙선했다. 당선자와 불과 2,000여 표 차였는데 새누리당 아성을 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낙선이 물론 내 역량 부족이지만 송파라는 지역적 한계도 낙선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더 이쉽다.

- 박현정 대표가 물러난 진정한 이유가 뭔가?

= 간단하다. 정명훈을 자를 수 없으니까… 박원순 시장이 해명할 기회도 안 주고 물러나게 한 것 아닌가? 박 대표는 사실 2014년 행정감사가 끝날데까지는 하겠다고 했다. 그랬는데 결국 물러나게 했다. 당시 박 대표의 눈물어린 기자회견이 생생하다. “박 시장님과 정 감독님에게 서운하다. 온 세상에 망신을 주고…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인권을 중시한다면서 (내) 인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등의 박 대표 말이 지금도 가슴 아프다.

- 언론에 보도된 세간의 정명훈 감독 얘기들은 사실인가?

= 내가 알기에는 사실이다. 부인, 가족, 비행기표, 뭐 모두가 사실이다. 특히 박 대표를 몰아내는데 부인이 작용했다는 설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한국적 풍토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 감독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부인이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도 정 감독이 부인 단속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낳은 거장을 한국이 내친 거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 앞으로 국민회의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 정 감독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문화예술계도 권력이 있다. 심지어 무슨무슨 마피아 어쩌고의 말들도 돌아다닌다. 이런 문제의 해결도 결국은 정치의 몫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다. 아니 꼭 하고 싶어서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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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북한에 경의를 표한다’

 
분석과 전망 2016.01.20 15:51

아무튼 북한에 경의를 표한다

<분석과전망>패배한 적장의 담대한 실토 그리고 오마마의 침묵과 북미평화협정

 

자주통일연구소 한 성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왜북한과 북핵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지?

 

이에 대해 누군가 무시전략이라고 분석을 했던 모양이다연합뉴스가 보도해주었다많은 사람들이 웃었다비웃음이었다반북적이라는 점에서 선동성은 나름 있었지만 신빙성은 형편없이 낮았다현실적이지 않은 분석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접근해 당신이 오바마라면심경이 어떻겠는가?

 

북한의 2차 핵시험이 2009년 5월 25일이었다당신이 취임한지 불과 4개월만에 생긴 일이었다재선에 성공해 2기 행정부를 출범시킨 한 달 후인 2013년 2월 12당신은 또 다시 북한의 핵시험을 맞았다그것으로 끝이 아니지 않는가당신은 급기야 임기 막바지에 이르른 지금에 와서 또 다시 북한의 핵시험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당신이 대통령을 하는 동안 북한이 세 번에 걸쳐 핵시험을 하는데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당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에 대해 당신은 뭐라도 한마디 정도는 해야되지 않는가?

 

당신은 지난해 초북한을 두고 머지않아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왜침묵하고 있는가무시하는 것이라고아니면 관심을 접은 것이라고그렇다면 당신은 바보거나 천치란 말인가핵시험이 애들 장난이 아니지 않는가더구나 소형화된 수소탄이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침묵하는 그 사이당신 나라의 일각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있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1- 위트, “아무튼 북한에 경의를 표한다

 

'조엘 위트'

미 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이다현재 미국에 최고가는 대북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전문성에 현실성과 객관성을 잘 섞어 융합시킨 결과다북한의 이번 4차핵시험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전망을 내놓았던 것으로 인해 그 명성은 더 치솟고 있다.

 

위트는 18일 뉴욕타임즈에 북핵 위기의 주범은 미국의 잘못된 대북관이라는 글을 기고했다길지 않음에도 글은 자기성찰로부터 그 시작을 떼고 있었다. “지난 25년 간 미국 정부와 학계를 오가며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위트의 현실인식은 냉철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양적으로 늘어났고 질적으로 정교해지고 있으며 중국과 에티오피아 등 다수 국가와 꽤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등 많은 국가가 암묵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 것이다.

 

아무튼북한에 경의를 표한다

두고 두고 회자시켜도 될 만큼 대단하거나 흥미로운 말이다미국의 최고가는 대북전문가에서 나오는 말인 만큼 씌워진 권위도 상당히 두껍다정치적으로는패배한 적장의 담대한 실토다.

 

위트는 북핵 위기의 주범역할을 한 미국의 잘못된 대북관의 한 예로 북한지도자를 미치광이라고 묘사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상기시켰다그러면서 대부분의 북한 관리들이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주의적 판단에 따라 외교 현안을 결정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북한 관리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이 중국·한국·일본의 현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도 곁들이면서다.

 

위트가 글에서 결론적으로 강조한 것은 주먹구구식의 전술적 대응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 북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북한의 위협을 중단하기 위한 장기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렇지 않게 된다면 미국은 또 다시 “2~3년 뒤 북한의 다섯 번째 핵실험을 목도하고도 발만 동동 구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베테랑 포 피스, ‘평화협정은 한국 미국 세계에게 윈윈

 

베테랑 포 피스(Veterans For Peace)

미국의 주요 재향군인들이 주측이 된 평화 기관이다참전 군인 특히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평화운동을 벌이는 주체가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고 치룬 사람이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평화운동이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과 지속되고 있는 북미대결전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도 당연히 관심을 끄는 요소가 된다.

 

북한의 이번 소형 수소탄 시험은 미치광이의 짓이 아니라 미국이 끊임없이 취하고 있는 적대적 행위에 대한 반응이다

VFP가 발표한 성명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19일 외신전문사이트 뉴스프로가 보도했다.

 

 

VFP는 미국의 그 적대행위 중에 최근에 있었던 세가지 행동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2015년 11월 13미얀마 북한 대사와 북한 회사에서 일하는 세 명의 관료를 대상으로 제재를 가한 것을 그 첫 번째로 꼽았다두 번째로 든 것은 12월 8일 북한의 금융기관 관계자 6명과 해운사 3개사 및 인민군 전략 로켓 부대에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이었다또 하나는 1210일 미국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의장으로서 북한인권문제를 유엔으로 끌어와 대북인권공세를 한 것을 들었다.

 

VFP는 북한의 4차핵시험 이후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한껏 세웠다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B-52 폭격기를 한국에 파견하는 것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중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 비판에 힘을 실었다. VFP는 미국이 1952년 마샬군도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한 것을 포함해 1천 회 이상의 핵시험을 해 왔다는 것을 상기시켰다나토 동맹국들과 핵무기를 공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상기를 시켰다아울러 핵무기 및 핵산업 시설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도 언급했다.

 

그 모든 것들이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하는 미국의 행태라는 것이라고 했다.

 

VFP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경제제재군사 위협 그리고 심리전에 대해 각별한 방점을 찍었다.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한 것인데 이는 단순히 법리적 해석과 판단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미국의 대북적대가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 그 핵심문제의식이었다대안 제시로 나아가기 위한 문제의식이었다.

 

VFP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지난해 북한이 제안한 두 가지를 들었다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핵시험을 중단하겠다는 것과 북미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VFP는 끝으로 평협에 대해 모든 한국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유리한 윈윈의 해결 방안라고 강조를 했다.

 

강조할 것도 없이 정확한 주장이다북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20여년 간의 북미대결전 역사는 VFP가 제시하는 평협이라는 대안이 특별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가히 철리처럼 보여준다.

 

위트 연구원은 물론 미국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지그프리트 헤커박사 더 나아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바보나 천치가 아니며 더구나 미치광이 또한 아니다노벨평화상 위원회는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도 바보나 천치나 미치광이에게 평화상을 주지는 않는다.

 

오바마는 자신 역시 대안이 평화협정 체결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이번 신년사에서 북한 그리고 북핵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오바마라면 그렇지 않겠는가그렇다면 당신비명처럼 외치라그렇다라고

 

위트가 말했던 것처럼아무튼 북한에 경의를 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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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도 울고 갈 북녘 미인도-만수대창작사 작품들

[사진여행]신윤복도 울고 갈 북녘 미인도-만수대창작사 작품들
 
 
 
nk투데이 박준영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6/01/20 [23:2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진여행]은 다양한 북한 사진들을 통해 독자분들과 직접 북한여행을 가듯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북한 예술가들의 눈에 비친 북녘 동포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DPRK North Korea Culture Art Lifestyle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온 북한 미술작품들인데요.

사진과는 다른 질감으로 북녘 동포들의 생활과 미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작품들은 대부분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수대창작사는 1천여 명의 예술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북한 최대의 예술집단입니다. 

1959년에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조선화 창작단을 비롯해 목판, 도안, 유화, 수예, 조선보석화 등 13개 창작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 전시 및 판매를 위한 해외웹사이트(www.mansudaeartstudio.com)도 운영중인데  피에르 루이지 체치오니라는 이탈리아 사업가가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현수막을 보니 군인가족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한 군인가족들의 모습인 듯합니다. 

공연을 떠나는 흥분인지, 공연은 마치고 채 흥분이 가지시 않은 것인지 볼이 발그스레합니다. 

버스를 타기 직전 손을 흔들어 주는 작품 속 그녀에게 두 팔을 들어 답례하고 싶습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여서일까요?

북한 미술작품을 보면 많은 작품에서 사실주의적 작풍이 진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인물화가 그러한데요. 

사진보다 더 사진같을 뿐만 아니라 사진이 차마 담지 못하는 살아있는 인물의 생생한 감정까지 화폭에 담겨 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눈매, 입매, 손끝과 발끝에까지 그들의 감정이 흐릅니다. 

장구춤을 추는 여인의 흥겨움이 봄꽃의 향기로움보다 더 진하게 묻어납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조선의 신윤복이 울고갈 미인도가 탄생했습니다. 

두 마리 새를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에 시선이 멈춘 채 움직이지를 않네요. 

이를 두고 절세미인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저 단아한 손끝 좀 보십시오. 

치맛자락을 붙잡은 손끝에까지 우아미가 흐릅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한복과 기타. 

그림을 보니 꽤 잘 어울립니다. 

작품 속 여인의 노랫소리는 바닷빛깔 푸른 한복만큼이나 시원하고 깊을 것 같습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눈매가 시원합니다.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화가 시원한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여인의 생김새는 여름보다 더 시원하네요.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새침한 듯 깊은 눈빛 속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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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네요. 피아노 연주자를 담은 것 같습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교복을 산뜻하게 차려입은 여학생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바람에 살짝 날리는 시원한 단발머리에서 청춘의 생동감이 묻어납니다. 손에는 손전화인 듯 한데, 그렇다면 그린지 얼마 안 된 그림이겠네요.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이젠 좀더 다양한 인물들을 담은 그림을 보실까요?

이 그름은 식물 연구가들을 담은 그림 같습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이 그림은 전쟁 그림이네요. 전쟁의 포화가 그대로 생생히 느껴집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북한에 교통관리를 담당하는 여성 경찰들이 유명하죠? 남성 교통관리원도 있나 봅니다.

남성 교통관리원이 여선생님과 함께 어린이들을 챙기고 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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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사나운 바다에서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거대한 기중기가 뒤로 보이는 것을 보니 간석지 공사판의 생동한 모습을 화폭에 담은 듯 합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발레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앙증맞습니다. 

한복을 개량한 듯한 발레복이 눈을 잡아 챕니다. 

발레를 좋아하는 제 딸에게도 꼭 입혀 보고 싶네요.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북녘 시골마을에서 사는 여느 가족의 모습인가 봅니다. 

아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 아빠는 일을 마치고 염소 떼(앞선 염소들도 한 가족인듯 싶네요)를 앞세워 집으로 향합니다. 

발을 바꿔가며 깨금발로 종종 뛰어가는 딸내미의 손을 맞잡은 엄마 아빠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실 일이 없겠습니다. 

 

Yaroslav Grabskiy님의 페이스북

출처 : 페이스북

"무거울텐데, 들어줄까요?"

앞니 빠진 사내아이 품에 안긴 항아리를 대신 들어준다는 핑계를 대고서라도 함께 걷고 싶은 가족입니다. 

아니면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 여자아이의 노랫소리에 맞춰 발장난을 하고 싶은 여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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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이 그림은 산골에서 양떼들을 모는 한 여성을 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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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강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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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시골의 풍경입니다. 소가 추수를 끝낸 옥수수 입을 뜯으며 휴식을 즐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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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맑은 계곡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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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북녘 노동자들의 모습인가 봅니다. 

공들여 무언가를 생산해 낸 모양입니다.

흐뭇한 큰 웃음을 짓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네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웃음에는 웃음으로 답하는게 이치인가 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있자니 제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집니다.

 

박준영 객원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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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 노동당 통전부장, 대남비서도 겸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1/21 10:45
  • 수정일
    2016/01/21 10: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단독> 소식통 "베이징서 북측 인사 '비서'라고 두 차례 호칭"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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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20  13: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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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왼쪽)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에 기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북한이 2014년 10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3차례 전통문을 보내 긴급단독접촉을 제안하면서 김영철 총국장을 특사로 내세웠지만 결국 유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대면한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연말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후임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70)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김양건이 겸임했던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에도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철의 통일전선부장 임명 소식을 전한 정통한 소식통은 19일 “지난주 베이징에 나온 북측 인사가 김영철을 분명하게 ‘비서’라고 두 차례 호칭했다”고 추가로 확인했다. 이 북측 인사는 김영철 총국장의 직위 변동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전날 “중국에 나온 북한 고위급 인사로부터 통일전선부장을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노동당 비서 겸직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김양건 후임으로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맡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남 총책이 된 것. 노동당 비서는 각 영역을 책임지는 북한 권력의 핵심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직접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2000년대 후반부터 대남분야는 김양건, 김영철 투톱 체제로 운영해왔다”며 “김양건이 사망함으로써 한축이었던 김영철이 대남분야를 총괄토록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1989년부터 남북회담에 참가해 온 김영철은 인민군 대장으로, 2009년 대남 공작을 담당하는 군 정찰총국장에 임명됐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도 겸직했다.

특히 2014년 10월 서해교전 사태 당시 북측이 남측에 ‘긴급단독접촉’을 제의하면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파트너로 김영철을 내세운 바 있다.

한 전문가는 전날 사견임을 전제로 “김양건 후임에 김영철을 내세운 것은 군 출신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대북 책임자인 남쪽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영철을 강경파로만 알고 있는데 실상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장에서 김영철을 지켜본 적이 있는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미시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영철을 단순히 매파로 봐서는 안 된다”며 “순간 순간 재기가 넘치고 오히려 융통성 있는 모습을 봤다”고 평했다.

김동엽 연구위원은 “김영철은 오랫동안 군사, 안보분야와 협상장에서 내공을 닦아온 인물”이라며 “핵을 가진 북한이 남북대화는 물론 평화체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임자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교수는 “김영철의 등장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관광 재개도 이야기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해소 방안에 집중할 것임을 예고한다”며 “조만간 5월 당대회 이전이라도 남북관계를 큰 틀에서 풀자고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수정,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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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김석기가 국회의원 되는 건 막아야지

 

[용산참사 7년] 끝나지 않은 용산, 우리는 여전히 모여서 싸울 수밖에

16.01.20 11:33l최종 업데이트 16.01.20 11:3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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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월 22일 오전 용산 남일당 진압작전 도중 사망한 고 김남훈 경사 영결식이 열린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영결식장에서 진압작전을 승인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떠나는 운구행렬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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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7년 전 오늘 아마도 지금쯤. 서울 용산에서 망루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에게 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물론 조금 더 늦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어제처럼 무지하게 추웠던 날이었다. 누가 죽었는지, 몇 명이 죽고 잡혀갔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정오 무렵 용산에 모여 기자회견을 했고 바로 철도웨딩홀에 모여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 

엄청나게 많은 단체들과 개인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언론도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누가 봐도 경찰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금세 정부와 경찰이 수습하기 위해 사과하고 보상하고 책임자 처벌을 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단체들에서 쟁쟁한 인물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나 정도는 그냥 지켜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특별히 업무지시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김형태 변호사가 전화를 해 와서는 용산에 큰일이 났는데 가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와 있다고 답했고 이사장은 중요한 일이니 잘 도우라고 당부했다. 그때까지도 난 내가 1년이 넘게 희생자들의 시신이 있는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과 용산 남일당 참사현장을 오가며 살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고, 지금까지도 용산참사로 파생된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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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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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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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그랬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많이 모였던 단체들과 사람들이 시신과 유족들을 두고 그리 빨리 떠나 갈지도 몰랐었다. 용산참사 싸움은 정말 많은 분들의 놀라운 연대와 지지로 1년 넘게 현장을 지켰지만 당연히 같이 해줄 줄 알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면 당했던 싸움이었다. '화염병과 도심 테러리스트'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우리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는지, 사실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난 유가족 지원을 담당했고 사무를 맡았고 대정부 협상대표를 맡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을 했지만 지금까지도 아직 이행되지 못한 합의사항들 때문에 서울시를 만나고 협의하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족들과 철거민들을 수시로 만나고 크고작은 민원들을 처리하고 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이 웬만한 일들은 다 해결하지만, 각을 잡고 호들갑을 떨며 내가 해야만 하는 난감한 일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는 당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용산참사는 내게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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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에서 철거민들이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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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 저녁 7시 30분 종로 3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용산참사 다큐 <두개의 문> 특별상영회와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용산참사를 뉴스로만 보고 들었던 분들께 꼭 오늘 오셔서 관람하시길 권한다. VOD로 집에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게 감동과 느낌이 완전히 다른 영화다. 백남기 어르신 큰 따님 백도라지씨도 오셔서 용산참사 유족들과 만나고 식사도 같이 하실 것이다.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오시면 좋겠다. 

내일(21일)은 밀양할매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의 기록 <밀양아리랑>, 모레(22일)에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싸움을 기록한 영화 <나쁜나라>의 초대 상영회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연다. 이 영화들도 그냥 오셔서 말하고 무료로 보시면 되니까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날이 여전히 차갑다. 이제 마석 모란 공원 용산참사 희생자 묘역으로 출발한다. 묘지 앞에서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말씀 드리고 잘 해결하겠다 다짐하고 와야지. 별 수 있나. 난 또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들을 하는 수밖에. 용산참사 과잉진압 책임자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20대 총선에 경주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일은 막아내야지. 그거라도 해야 돌아가신 분들께 면목이 서지 않겠는가. 

오는 23일 오후 1시 신용산역 남일당 용산참사 현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추모대회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면 좋겠다. "여기 사람이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라는 우리의 외침들이 아직도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 무색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 믿으며 함께 가야지.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모여서 함께 싸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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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7주기 추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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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생태공동체 선애빌 마을

삶도 일도 같이 또 따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불편’

김정수 2016. 01. 20
조회수 509 추천수 0
 

보은 생태공동체 선애빌 마을
 

 직업도 종교도 다 다른 22가구 40명
 명상동호회 인연으로 마음 모아
 
 형편대로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돈 내 법인 만들고 땅 2만평 사 
 
 돈 액수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
 똑같은 형태·크기로 집 지어 
 
 1인당 월 19만원 내 공동 생활비로
 주식 100%, 부식 30% 이상 자급
 
 재래식 공동변소 쓰고 자연농법
 화석연료 안 쓰고 식사도 공동
 
 울력·마을회의 참여도 느슨한 의무
 애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꿔

 

03441.JPG»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생태공동체 선애빌 주민들이 지난 12일 저녁 마을 명상센터에서 이종민 대표 주재로 회의를 열고 마을 일을 의논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이 이 대표다.   

 
변소를 집 안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한 수세식 변기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환경과 자원순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발명품은 아니다.

 

한 번 물을 내릴 때마다 소중한 자원인 물을 10리터 안팎이나 소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삭혀서 땅에 뿌리면 먹거리가 돼 돌아올 양분을 하천을 더럽히는 오염물질로 바꿔버린다. 이런 문제점을 잘 아는 사람들도 수세식 변기의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에 있는 생태공동체 선애빌에는 자연을 위해 이런 편리함들을 기꺼이 포기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약사, 은행원, 회사원, 정보기술전문가, 농민, 자영업자, 교사, 환경단체 활동가, 만화가, 목수 등 다채로운 전직에 종교적 배경까지 다양한 22가구 40명이 그들이다.

 

이들이 이용하는 마을 한가운데 공동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생태화장실이다. 모아진 분뇨는 근처 퇴비장에서 왕겨와 화목을 태운 재와 섞여 발효돼 이들의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를 키운다. 
 
지식과 재능 주변마을 주민과 나눠

 

IMG_0263.JPG» 선애빌 마을 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선애빌의 저녁 모습. 주택들 뒤 화목 보일러실 지붕 위로 솟은 연통에서 난방용 화목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들은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외에도 방 안에서 스위치만 켜면 태울 수 있는 석유나 가스 등 화석연료 대신 버려지는 나무와 같이 재생가능 바이오 에너지를 태우는 화목 보일러로 방을 덥힌다.

 

텔레비전과 전자레인지같이 많은 가정에서 필수품이 된 가전제품을 포기하고, 세탁기는 세 집이 한 대꼴로 공동 사용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전기 없는 날을 마치 축제처럼 즐긴다.

 

공동 식사를 통해 취사용 에너지 소비와 음식물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사용하고,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쓰고,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법을 시도하는 것도 생태적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의 일부다.
 

IMG_0183.JPG» 선애빌에 있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인 ‘생생화장실’. 선애빌 주민들은 환경을 위해 수세식 화장실 대신 마을에 하나 뿐인 이 재래식 화장실을 함께 쓴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은 없어도 컴퓨터는 갖춰 놓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살피며 소통하고 있다. 외부에서 강사나 문화단체를 초청해 강연회나 문화행사 여는 것을 즐기고, 자신들의 지식과 재능을 주변 마을 주민들과 나누는 일에도 열심이다.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이 휘어 돌아가는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선애마을이 들어선 것은 2011년이다. ‘선을 사랑한다’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수선재라는 명상단체를 통해 인연을 맺은 명상동호회가 기초가 됐다.
 
영암과 고흥에도 동시에 같은 마을


선애마을이 설립될 때까지의 이야기는 몇년 전 <생태공동체 뚝딱 만들기>라는 책에 일부 소개됐다. 하지만 책 제목대로 마을이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입주하기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공동체 설립 제안에서부터 따지면 5년의 짧지 않은 준비가 있었다. 돈을 모으면서 이미 설립된 공동체 마을들을 견학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들으며 공부한 기간이다.

 

IMG_0245.JPG» 마을 공동식당 '낙생'에서 설겆이를 하고 정리해 둔 각자의 식기 모습.

 

12일 마을을 안내하던 이종민(48) 선애빌 대표는 “책 제목 때문에 공동체운동 어른들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환경 관련 엔지오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는 2006년 생태명상마을 동호회를 창립하고 기대리와 전남 영암과 고흥 등 세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선애빌 설립을 주도했다.
 

기대리 선애빌 사람들은 2010년 각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씩 낸 돈을 자본금으로 마을 이름을 딴 한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임야와 농지 등 2만평의 땅을 구입했다.

 

그 땅 한가운데 똑같은 형태의 주택용 건물 15동과 창고, 식당, 명상센터, 대안학교 등의 부대 건물을 지었다. 실평수 18평에 방 4개와 욕실, 주방 겸 거실 등을 갖춘 주택은 가족에게는 독채, 미혼이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온 사람에게는 두 명에 한 채씩 배정됐다. 
 

선애빌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1인당 월 19만원씩의 생활비 납부다. 마을 영농팀이 가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짓는 농사로 주식은 100%, 부식은 최소 30% 이상 자급하고 있어 이 돈으로 세끼 식사와 개인 통신료를 제외한 전기요금 등의 공과금까지 모두 해결된다.

 

매주 한 번씩 하는 공동 노동인 ‘울력’과 마을회의 참여,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돌아오는 공동식당 도우미 봉사도 의무 사항이다. 하지만 이행하지 않는다고 제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규율이나 명문화된 규칙 없어


IMG_0196.JPG» 12일 아침 선애빌 주민 집단노동인 ‘울력’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을 앞에 야적된 난방용 화목을 트럭에 실어 주택 보일러실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12일 마을 입구에서 벌어진 난방용 화목 운반 울력에 참여한 주민 성철경(43)씨는 “처음에는 뭐든 함께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공동으로 일할 때도 사정이 있으면 안 나오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하는 식으로 한다”며 “키부츠(이스라엘의 공동소유 형태 집단농장) 같았던 공동체가 지금은 개인의 특성을 많이 인정해주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아이티 전문가로 일하다 3년 전 아내와 딸과 함께 기대리 선애빌로 들어와 마을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생태마을 체험 프로그램 운영, 천연비누 만들기, 야영장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사업을 펼치거나 준비 중인 사회적기업 ‘선애마을보은’에는 이 대표를 포함해 이 마을 주민 12명이 평균 12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기대리 선애빌에는 공동체 운영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지는 엄격한 규율이나 명문화된 규칙이 없다. 이 대표는 “계속 이것저것 실험을 해나가는 상황이어서 너무 틀에 박아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가치지향적인 공동체를 떠올리면 으레 상상할 수 있는 비타협적인 완고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면서 개인의식을 성장시킨다는 지향점과 마을 설립에 내놓은 돈의 액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을 제외하고는 어떤 변화도 논의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다. 이는 3년 전 마을의 혁명적 변화로 이어졌다.
 
인디언식 원탁회의와 만장일치제 
 

기대리 선애빌은 애초 주민들이 집단농장식으로 농사를 지어 마을 운영비를 충당하고 수익을 나누는 형태로 출발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주민들이 마을 내외부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해 수입을 얻고 그 가운데 일정액을 걷어 운영비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뀐 것과 같은 이 체제 전환은 마을의 의사결정 방식인 인디언식 원탁회의와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화백회의를 거치며 큰 충격 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가치지향적인 사람들이 다양한 갈등을 조율해가며 6년간 공동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명상을 통해 늘 욕심을 비우고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 가운데 함께하고 싶다는 이들도 제법 있다. 이 대표는 “우리 뜻에 동의하시는 분이면 받아들일 수 있고 2년 전에 그렇게 들어오신 분도 있지만, 지금은 더이상 공간이 없어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마을 공동식당 ‘낙생’에서 만난 주민 정래홍(42)씨도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해 이제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하다 2012년 선애빌로 온 그는 “여기서 내가 필요한 돈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여서 가끔 외부 강의로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자연농법과 토종종자 보급 활동을 하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며 “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적은 비용으로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보은/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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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천정배 통합, 문제는 당권·공천권

 

[이슈분석] 공개적으로 통합 논의 착수, 최대 변수는 '김종인 선대위'

16.01.19 20:57l최종 업데이트 16.01.19 20: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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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국민회의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가 열리는 김대중컨벤션센터 대강당 입구에서 김영집 광주시당위원장(맨 오른쪽)과 함께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그가 야권연대와 통합 국면에서 누구의 손을 잡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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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천정배 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장 사이의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측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통합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문 대표가 1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측의 통합을 공식 제안하고, 천 위원장 역시 같은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논의 사실을 인정했다. 반면, 그동안 국민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천 위원장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 대표의 통합 공식 제안 등 더민주와 통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의당과 관련해 "안철수 의원 쪽이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그쪽도 고려사항이 있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국민의당과의 통합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방향은 더민주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 정치권 전반의 분위기다. (관련기사 : '호남정치 복원' 다들 써먹고, '뉴 DJ'는 안 모이고)

국민회의 측에 따르면, 문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천 위원장은 "더민주가 당의 해체에 준하는 변화로 기득권 해체를 실천하는지 좀 더 지켜보겠다"라며 "우리는 비전과 가치, 반패권, 승리와 희망의 연대라는 3원칙 아래 박근혜정부와 맞서는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드려왔다"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표의 사퇴만으로 당의 기득권 해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더민주와 최종적 통합에 조건으로 내건 것은 '당 해체에 준하는 변화', '기득권 해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다 정치공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 위원장의 요구는 통합 이후의 '당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천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강력하게 여러 가지 변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는데, 종합적으로 과연 변화 가능성이 있는가, 기득권 해체의 가능성이 분명한가 좀 더 판단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천 위원장이 더민주와 통합 이후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지가 관건이다. 탈당 명분이었던 '호남정치 복원', '뉴DJ 발굴' 등을 달성하려면 본인이 직접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 대표 등 그가 '기득권'이라고 칭하는 소위 '친노'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당 체제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역설적으로, 더민주가 그가 말한 것처럼 '해체 수준의 변화'를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당 해체 수준의 변화" 요구의 역설

천 위원장의 통합 조건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지분'이다. 문 대표도 한 차례 언급한 것처럼 국민회의가 창당준비위 단계까지 나간 상황에서 천 위원장이 더민주로 '복당'하는 형태의 통합은 어렵다. 결국 당 대 당 통합이다. 그러려면 당권과 공천권 등에 일정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14년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의 통합 과정과 같다. 양측은 당시 당 구성과 공천 지분을 5:5로 하는 것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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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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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가 김종인 선대위원장 추대를 발표하면서 "호남,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공동선대위원장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언급한 것 역시 당 대 당 통합 이후의 천 위원장의 지위를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는 문 대표가 사퇴를 천명한 상황에서 사실상 김종인 선대위 체제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단독 선대위원장이라는 조건으로 수락했다"라며 '공동 체제'에 선을 분명히 그었다. 

만약 천 위원장 측에서 선대위원장 내지 그에 준하는 조건으로 공천권을 요구할 경우 김 위원장의 반대로 통합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천 위원장이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등의 역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정치제도의 역량 등에 대해서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천 위원장의 상대는 이제 물러나는 문재인 대표가 아니라 김 위원장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문 대표에게도 큰 고민거리다. 그는 곧 사퇴해야 한다. 스스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인재 추가영입과 통합 작업을 마무리하고 물러난다는 구상이다. 그가 "김종인 선대위가 지도부"라고 말한 것은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사퇴하면서 당무위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모든 당의 권한을 넘기겠다는 얘기다. 그가 물러나는 것이 통합의 조건이 되지만 반대로 통합의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문 대표에게 최상의 수는 사퇴 전까지 천 위원장과 상징성 있는 통합 선언을 하고 이후 구체적인 통합의 절차는 천 위원장과 김 위원장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범야권의 통합과 연대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김 위원장도 이견이 없다"라고 강조했지만 김 위원장의 온도는 다르다. 그는 일 대 일 구도를 강조하면서도 "나간 사람들과 통합이 쉽게 이뤄질 거라 보지 않는다"라며 통합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본래 천 위원장의 선택지는 더민주 또는 국민의당과의 통합 아니면 독자적으로 총선 치르는 것 이상 세 가지였다. 기존 호남 의원들의 입당과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국민의당과는 멀어졌다. 또 스스로 "승자가 1명만이 나오는 소선거구제에서 야권의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독자노선의 비중도 크지 않다. 남은 것은 하나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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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 전세버스 노조 간부는 왜 분신 사망했을까

 

회사 노조 탄압에 대표이사 면담 후 자결

“이제는 갈 길이 정해진 것 같네요. 제가 노조설립 할 때 목숨 걸고 하겠다고 조합원 여러분께 약속 한 바 있습니다.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지난 18일 저녁 전세버스기사 신형식(59)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의 일부다. 신 씨는 전세버스노동조합 지부장이었고 문자는 조합원들에게 전달됐다. 문자를 보낸 후 신 지부장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했고 15분 만에 숨을 거뒀다. 회사 대표이사와 면담을 마친지 1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故 신형식 지부장이 지난 18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故 신형식 지부장이 지난 18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민중의소리

노조관계자에 따르면 신 지부장은 이날 저녁 대표이사와 장시간 면담을 가졌다. 신 지부장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을 하자고 요구했고 대표이사는 거부했다. 조합원들은 신 지부장을 “평소 온순하고 냉철했던 형님”으로 기억했다.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조합원들을 살뜰히 챙기는 신 지부장이 분신이라는 극한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은 회사측의 강도 높은 노조 탄압 때문이라고 조합원들은 입을 모았다.

노동조합이 생긴 것은 지난해 2015년 11월이었다. 한때 노조 가입자수는 전체 70여명의 기사들 중 절반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회사의 압박이 시작되면서 노조원들이 줄기 시작했다. 회사는 1년에 한 번 계약을 갱신하는 점을 이용해 ‘노조에 가입하면 다음 계약은 없다’는 말로 탈퇴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에 가입한 기사들에게 버스를 입고 하고 퇴근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경기도 일산, 마석에 사는 조합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의 방침에 따라 탄천주차장에 차를 두고 집으로 향했다. 사측은 작은 잘못이라도 꼬투리를 잡아 시말서를 요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징계와 해고를 했다는게 조합원들의 증언이다. 특히나 노동조합 간부들이 부당해고의 타겟이 됐다.

신 지부장이 분신을 한 날은 사측은 노조에 대응해 만든 노사협의회 회장 선출을 마무리 했다.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신 지부장은 대표이사와 면담을 시작했고 이자리에서 대표이사는 ‘앞으로 노조와의 교섭은 없을 것이며 노사협의회와만 대화를 하겠다’는 방침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지부장은 면담 직후 분신했다.

조합원들은 신 지부장 분신 다음날인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은 노조 탈퇴 종용, 부당징계, 부당해고를 일삼으며 민주노조를 부정한 대표이사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지부는 ▲사업주 구속 ▲유족에 대한 사측의 사과 ▲부당징계·부장해고 철회 및 노조 인정 등을 요구했다.

신형식 지부장의 시신은 현재 경찰병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노조는 유족들과 함께 장례절차 등을 논의 중이다.

전세버스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오후 분신한 모 전세버스 회사 노조 지부장 신모(59)씨의 죽음이 사측의 갑질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19일 진행했다.
전세버스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오후 분신한 모 전세버스 회사 노조 지부장 신모(59)씨의 죽음이 사측의 갑질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19일 진행했다.ⓒ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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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따라 청년들 앞으로"

[친절한 통일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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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9  2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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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강하면 우리 당과 인민군대가 강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이다. 사회주의 조국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문제인 청년사업에 품을 아끼지 말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5월 열린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 중 일부이다.

김 제1위원장은 청년을 토대로 '청년강국'이라는 구호 아래 당과 국가 강화를 독려하고 있다. 옛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국가를 건설하고 꾸리는 데 있어 청년을 강조했던 것과 같다.

북한의 대표적인 청년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이 지난 17일 창립 70돌을 맞았다. 북한은 청년동맹 70년의 역사 속에 당과 국가 건설을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청년동맹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으며, 김정은 시대 청년동맹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 1946년 1월 <정로>에 실린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 결성 보도내용과 민청 깃발. [자료출처-내나라]

민청→사로청→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변천사

북한 청년동맹의 출발은 1946년 1월 17일 창립된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이다. 물론, 민청의 뿌리는 1926년 김일성 주석이 조직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 핵심 인물인 차광수, 최창걸, 계영춘, 허률, 한영애 등을 중심으로 1927년 8월 28일 북산공원 약왕묘 지하실에서 결성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이다. 1991년 제정된 '청년절'이 바로 공청 결성일이다.

해방 후 국가건설에 나선 북한은 항일유격대 집단이 공청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청년대중조직을 건설하려고 했다. 1945년 10월 6일 공청준비회의, 20일 공청일꾼협의회, 28일~29일 공청열성자대회 등을 잇따라 열며 공청을 조직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당시 첨예했던 이념 충돌이 청년조직 확대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유격대 출신들은 소수 공청 소속 청년들로 정권을 창출,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공청을 해소하고 광범위한 청년을 망라해 대중적 유일 청년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반해 국내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청년공산주의동맹과 같이 노동계급의 당을 위한 후비대를 만들기를 원했다. 이러한 청년조직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1946년 1월 초순 민청을 조직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공장, 기업소, 농촌, 학교에도 조직돼 각계각층의 청년들로 구성했다.

1946년 1월 16~17일 평양에서 북부조선민주주의청년단체대표자회가 열렸고, 여기서 민청이 공식 창설됐다. 1919년 함경남도 출생으로 만주 용정에서 중학교를 나온 김욱진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창설당시 맹원수는 25만명으로 같은해 5월 80만 명, 9월 130만 명 등으로 늘어났다. 

1964년 270만 명으로 맹원수가 늘어난 민청은 5차 대회를 통해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으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 내부를 뒤흔들었던 1956년 8월 발생한 '8월 종파사건'은 민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종파사건 해소와 함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단일지도체계와 유일사상이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 1993년 2월 사로청 제8차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1961년 제4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기 시작한 북한은 청년들을 통한 김일성 유일사상 강화가 중요한 과제였다. 김정일은 1964년 4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청년동맹 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담화에서 사로청으로의 명칭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은 조선노동당의 전투적 후비대이며 우리 당의 영도 밑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청년들의 대중적 정치조직"이라며 "기본임무는 청년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로 적극 조직동원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민청을 사로청으로 고치는 것은 현실발전의 요구이다. 오늘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건설이 힘있게 벌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생활과 풍모에서 커다란 전변이 일어나고 있다"며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즉, 북한이 당과 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민청이 역할을 했다면, 1961년 제4차 당 대회를 계기로, 1964년 5차 민청 대회를 통해 북한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넘어 김일성 유일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후비대로 청년조직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개칭하며 역할 확대.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198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의 후계구도 확립과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사로청의 개편에 영향을 줬다. 1996년 1월 16일 사로청 창립 50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이어 17일 열린 사로청 대표자회에서 '전체 청년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사'에 따라 조직 명칭을 사로청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으로 개칭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사로청에서 청년동맹으로의 개칭은 구소련 붕괴와 연이는 동구권 해체,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던 시기 등 북한 내외부 상황과 맞물려 청년층들을 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묶어두기 위한 예방책으로 청년조직의 표상인 김일성의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6년 1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깃발을 수여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칭 직후인 1월 20일 청년동맹 일꾼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청년조직을 영원히 수령님(김일성)의 청년조직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가려는 우리 당의 철석같은 의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고귀한 이름은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 밑에 승리의 길을 걸어온 조선청년운동의 자랑찬 노정과 숭고한 사명이 반영되어 있다"면서 "사회주의를 압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는 제국주의자들과 반동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된다"고 말했다.

현재 청년동맹은 중앙위원회, 도.시.군 청년동맹위원회, 대학, 학교, 공장.농장 초급청년위원회, 초급단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 근로단체부(비서 최룡해)의 지도를 받으며 14세부터 30세까지 청년들로 망라되어 있다.

   
▲청년동맹 휘장[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당에 입당하거나 여성들이 시집을 가면 청년동맹에서 당, 조선직업총동맹(직맹),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등으로 전맹한다. 현재 청년동맹원은 5백만 명이며, 이 밖에도 소년단 3백만 명도 청년동맹의 지도를 받는다. 현재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전용남이다.

청년동맹 중앙위원회는 조직부, 선전선동부, 간부부, 사적자료부, 대학생청년부, 학생소년부, 노동청년부, 국제부, 총무부, 재정경리부, 속도전청년돌격대지도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외화벌이 기관인 은별무역회사, 간부양성소인 금성정치대학 등을 두고 있으며, 금성청년출판사, 청년전위신문사, 청년문화회관, 청년취주악단, 청년기동예술대, 송도원국제야영소, 학생소년궁전,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등을 관리하고 있다.

사로청 당시 간부의 호칭이던 위원장, 부위원장은 청년동맹으로 개칭되면서 제1비서와 비서 등으로 변경됐으나 2012년 7월 12일 청년동맹 대표자회의에서 규정을 개정, 위원장, 부위원장 등으로 환원됐다.

역대 청년동맹 위원장은 김욱진 (1946~1948), 현정민(1948), 홍순권(1962~1967), 오기천(1967-1970), 김시학(1970-1972), 리영복(1972-1976), 지재룡(1976-1978), 리영수(1978-1986), 최룡해(1986~1998), 리일환(1998~2001), 김경호(2001~2007), 리용철(2007~2012), 전용남(2012~ 현재) 등이다.

   
▲ 청년동맹 역대 회의 내용. [자료정리-통일뉴스]

청년동맹, 당의 후비대로 사상강화. 경제건설 핵심역할

청년동맹은 1946년 1월 창립 당시, 아니 그보다 앞선 1927년 공청 당시부터 북한의 사상을 사회 전반에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당과 국가 건설의 후비대, 척후대, 익측부대로 활약해왔다.

공청이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의 선봉대로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을 조직.지도하는 전위조직의 역할을 하던 것이 해방 후 민청, 사로청, 청년동맹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해방 후 창립된 민청은 김일성의 뜻에 따라 당과 국가건설의 핵심인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육을 일임했다. 또한, 당 건설의 근간이 청년이라는 점에 주목한 김일성은 민청을 통한 간부양성에 주력했다.

1946년 4월 민청 1차 확대위원회에서 "청년이 있는 곳에 민청 초급단체가 있고, 매개의 초급단체가 살아서 활동하여야만 민청 전체가 살고 힘있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이라는 내용의 결정서가 채택되고, 이어 같은해 11월 당 중앙위 상무위원회 제12차 회의에서 김일성은 민청을 '당의 후비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1948년 11월에 열린 민청 3차대회에서 김일성은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은 민청단체들의 기본임무'라는 연설을 통해 당의 사상교양단체로서의 민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혼란 속에서 민청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분열책동과 죄악을 폭로하고, △인텔리 청년들과의 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려 당의 방침을 적극 지지하며,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사상 전위대로의 임무로 이어졌다.

1964년 사로청으로 개칭한 청년조직은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해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화, 발전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대표적으로 60년대 청년선봉대운동, 70년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의미하는 '3대혁명소조운동'에 청년들이 뛰어든다.

   
▲ 허천청년광산을 개발하고 있는 민청원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은 1973년 당 중앙위 비서국 회의에서 "당의 조치에 호응하여 새 것에 민감하고 정열에 불타는 사로청원들을 3대혁명을 수행하는 투쟁에 적극 조직 동원함으로써 청년들이 3대혁명 수행에서 근위대, 선봉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망 직전 해인 1993년 동구권 해체 등 사회주의권 변화에 청년들이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한 듯,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함께, "청년들의 심장은 언제나 주체사상으로 고동쳐야 하며 청년들의 몸에는 오직 주체사상의 붉은 피만 흘러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면서 사상강화를 주문했다.

1996년 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꾼 청년조직은 '김일성'이라는 명칭을 달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중조직을 넘어 조직력과 단결력, 투쟁력이 강한 전투조직으로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2002년 열린 청년동맹 대표자회에서 개정된 규약에는 당의 정치적 후비대로 "당의 선군혁명영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혁명의 영도자를 앞장에서 결사옹위하는 청년전위조직"으로 명시됐다.

1920년대 공청에서 시작해 해방 후 민청, 사로청을 거친 청년동맹은 70년 역사 동안 당의 후비대, 척후대, 익측부대라는 명칭에 맞게 북한 사상의 선본대로서의 역할은 물론, 경제전선에 뛰어들어 국가건설에도 일임했다.

해방 후 민청원들은 사회개혁에 나서면서 초급단체를 중심으로 '승리의 깃발운동'을 전개해 청년노동자의 경제계확달성 경쟁유도운동을 펼쳤다. 농촌으로 뛰어든 청년들은 토지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청년생산돌격대, 청년건설대 등을 조직한 민청원들은 공장 복구와 생산활동을 전개했으며, 원산기관구 내 민청원들은 철도운수 정상화에 이바지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민청돌격대운동'으로 민청원들이 탄광, 광산, 건재공업, 임업 등 가장 고되고 힘든 노동현장으로 투입됐다. 민청에서 사로청으로, 그리고 현재의 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꾼 청년동맹은 자신들의 선배들이 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전선에 뛰어들었듯이 '속도전청년돌격대'의 이름으로 현장으로 갔다.

대표적인 청년조직의 건설사업은 평양-남포 청년영웅도로, 해주-하성 광궤도철도, 라선청년1.2호 발전소,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등이 있다. 이 중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만에 완공된 청년영웅도로는 평양-남포간 46km 왕복 12차선 고속도로로 '강성대국 대통로'라고 불린다.

전후복구시기였던 '해주-하성 광궤도철도' 건설사업은 80km가 넘는 해주-하성 간 광궤도 철도를 놓는 공사로, 88만m³의 흙처리, 5천6백㎡의 옹벽, 38개 다리, 9개 역사, 9개 선로반, 2백 세대 살림집을 민청원들이 75일 만에 끝냈다고 한다.

   
▲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청년동맹의 작품인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의 청년동맹.. "청년중시, 청년강국"

김정일 사후 2012년 북한 최고지도자로 자리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청년의 역할에 주목하며 청년강국을 강조하고 있다.

2014년 9월 열린 제4차 초급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그는 '청년들은 당의 선군혁명위업에 끝없이 충실한 전위투사가 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청년들은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문명국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앞장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2015년 5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 "청년중시는 우리 당과 혁명의 영원한 전략적 노선"(2015년 청년절 축하문), "청년들을 시대의 주인공으로, 총진군대오의 전열에 내세워 강성국가의 문패를 남먼저 달게 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2015년 10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준공식 연설) 등으로 청년중시를 설파했다.

이는 당이 청년을 아끼고 있듯이 사회주의 청년강국 건설을 위한 청년의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4년 5월 '젊어지는 시대'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말보다 일을 많이 하는 젊음, 해놓은 일과 경험보다 해야 할 일의 계획과 착상을 더 많이 논하는 젊음이 얼마나 좋은가. 전 사회에 혁신과, 창조, 애국으로 젊음이 넘치게 하자"고 촉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오늘의 총진군에서 청년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청년들은 청년강국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조국을 떠받드는 억센 기둥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하며 강성국가 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의 창조자, 청년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청년동맹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70돌 촛불행진을 열었다. '500만'은 청년동맹원 숫자를 의미하며, '당을 따라 앞으로'라는 구호를 형상화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에 보답하듯 청년동맹은 '김일성.김정일 청년조직', '김정은의 청년부대, 근위부대'로 지난해 당 창건 70돌에 이어 오는 5월 당 7차대회를 향한 애국보답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에 이어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청년동맹은 오는 5월 당 7차대회에 이어 열릴 9차 대회에서 본격적인 '김정은 청년부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청년동맹은 '청년전위모범초급단체쟁취운동'을 벌리며 철저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강성국가'의 문패를 먼저 달게 하겠다는 김 제1위원장의 청년중시 의지는 청년동맹의 역할 강화와 확대를 불러오고 있다. 이는 젊은 지도자의 '젊어지는 시대' 청년강국 건설에서 청년의 힘이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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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수소폭탄과 휴지조각이 된 미국의 핵태세검토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1/20 10:40
  • 수정일
    2016/01/20 10: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 수소폭탄과 휴지조각이 된 미국의 핵태세검토서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6/01/20 [02: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 방송과 대단하고 있는 패트릭 뷰개넌 기자     ©자주시보

                               

 

북은 새해벽두에 수소폭탄의 폭음을 울리며 미국을 향하여  북미평화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미국 레이건 정부에서 수석고문을 지낸 뷰케넌 미국의 정통 보수논객이 한미동맹에 의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죽은 정책으로 비유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패틀릭 뷰케넌은 미국은 북과 핵전쟁으로부터 발을 빼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핵강대국들이 핵비확산체제로 세계의 핵물질을 규제하여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한 술 더 떠 미국만이 따로 핵태세검토서 발표했다. 해태세검토서란 미국에게 어떠한 위협세력이 등장하더라도 이를 격퇴할 수 있는 전천후 대응능력을 가추고 북과 같은 적대세력이 등장하면 일단 억제를 시도하고 억제가 성공하지 못하면 전쟁으로 패배시켜야한다는 계획서다. 이 계획서에 의하여 리비아와 이라크가 희생당했다.

 

핵태세검토서는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기를 개발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나라들을 향후 미국에 대한 위협국으로 설정하였다. 북한은 이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적성국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시험 뿐만 아니라 위성발사에서도 제재다운 제재를 할 수 없었고 제재의 효과가 미미한 경제적 제재만 가했을 뿐이며 미국의 제재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았기에 미국은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기를 늘 애원하였다.

 

미국은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개발 의혹에 대해서 대체로 관대했고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핵을 개발했다. 1974년 5월18일 인도는 첫 핵시험에 성공하였고 인도의 핵개발에 미국이 제재를 가하려고 했지만 인도는 핵무기개발을 하지 않을 것을 미국에게 약속하며 지내다 1998년 핵시험에 다시 성공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제재를 가하려고 했지만 인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무역거래가 크지 않으며 중거리 미사일에도 성공한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지 못했고 미국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자중하고 만 것이다.

 

수소폭탄과 ICBM. SLBM으로 무장한 북에게 미국은 사실 군사적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북 경제제재는 종이호랑이의 포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을 자국의 군사전문가들에도 듣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는 수구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사람들도 북한의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미사일 성공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이 취하는 핵태세검토서에 의한 북의 제재에 동참하여 국제사회에 강력한 응징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와 유엔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다.

 

1991년부터 시작된 팍스 아메리카가 더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패권시대에서 19세기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도 50년 미만으로 끝난 것은 한나라가 패권국에 오르면 강력한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미국의 어느 정치학자는 팍스 아메리카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의 도전과 견제를 받는다. 그 강력한 세력이 바로 러시아. 중국. 북한이다. 미국은 지금 북미전쟁이냐 아니면 평화협정이냐 기로에 서있다.

 

미국이 북과 화합적 태도를 취하면서 지구평화에 솔선수범한다면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의 수명은 그만큼 늘어나지만 미국이 오만한 태도로 힘만 앞세우고 일방주의 태도로 나온다면 팍스 아메리카는 단 한순간에 무너지고 미국의 영광은 잿더미에서 찾게 될 것이다.

 

미국은 자국 보수논객으로 닉슨. 포드. 레이건 정부에서 수석고문을 지낸 뷰캐넌의 주장과 미국이 북 EMP탄 단 한 발에  소멸될 수 있다는 2013년 5월 2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의 울시 전 CIA국장의 발언을 헛 튼 소리로 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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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촉구 ‘가두서명’ 나선 박근혜, <조선> 등 보수언론도 질타

 
한겨레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수법”, 경향 “총선 임박 선거중립 위반 소지”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열린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 행사장을 찾아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관련 입법’ 촉구를 위해 경제단체들이 벌이는 1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하자,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 뿐만 아니라 보수언론들까지 나서 박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9일자 立法 촉구 서명 운동 위해 길거리로 나간 대통령”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이 마치 입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관전자나 평가만 하는 심판처럼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길거리 서명 운동에 나선 것은 적절한 대응이라고 하기 힘들다”면서 “자칫 대중(大衆)을 선동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더구나 지금 입법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바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이끌 때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국회 선진화법’이 아닌가”라면서 “대통령이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간 것은 다른 민주국가에서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이 입법 촉구 가두서명에 나선 초유의 사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야당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국가원수인 대통령마저 장외(場外)로 나서는 현실은 안타깝고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동아>는 “선진화법은 2012년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 주도해 통과시킨 법”임을 상기시키면서 “박 대통령은 야당 탓만 하기 전에 ‘원죄’를 인정하고 아프게 반성했는가”라고 질타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열린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 행사장을 찾아 서명 후 박용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은 서명운동을 벌이기 이전에 과연 얼마나 야당과 대화했는지부터 자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대통령이 ‘입법 서명운동’에 참가하다니”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과 단독으로 만난 건 취임 직후 단 한 차례뿐”이라면서 “여야 지도부를 함께 만난 것도 5차례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또 “과거에도 대통령과 국회가 갈등을 빚은 적은 있으나, 대통령이 ‘국민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해 이렇게 포퓰리즘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면서 “1975년 유신에 대한 야당과 재야의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동원해 체제 정당성을 억지 인정받은 장면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박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기대 법치와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며 “그것은 독재자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그런가하면 <경향신문>은 박 대통령의 입법 촉구 서명 참여가 선거 중립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국정 시스템 무시하고 직접 국민 상대하는 박 대통령”이란 사설에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민간이 주도하는 입법 촉구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이는 국민의 대의기관이자 입법기관인 국회를 외면한 채 국민을 상대로 직접 정치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향>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국정 시스템을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거듭 지적하며 “4.13 총선이 임박한 만큼 선거중립 위반 소지도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가두서명 참여에 대해“국민이 직접 나선 서명운동에 동참해 국민과 같이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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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캐나다 동포들의 세월호를 잊지않기 위한 노력

영국, 미국, 캐나다 동포들의 세월호를 잊지않기 위한 노력

 


– 영하 17도에도 열린 세월호 정기집회
– 캐나다 토론토, 30일 <나쁜 나라> 무료상영

편집부

2016년 첫 달 셋째 주말인 지난 16일과 17일에 해외동포들의 세월호 집회가 영국과 미국, 캐나다의 대도시에서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는 21차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가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정기적으로 열리는 침묵시위가 21차에 이르렀고, 2월 20일에 22차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이들 동포들은 한국 정부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세월호의 보존 인양, 실종자 완전 수습,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난방지 특별법을 요구했다.

미국 시카고에서는 세월호를 잊지않는 시카고 사람들의 모임(시카고 세사모)이 영하 17도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정기피케팅을 계획대로 진행했다. 눈보라가 휘날렸던 뉴욕 맨해튼에서도 뉴욕뉴저지 세사모의 세월호 정기집회가 있었다. 뉴욕뉴저지 세사모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영상과 유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영상메시지(https://youtu.be/9ODpOZlmwRw )를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다.

또 캐나다의 밴쿠버에서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밴쿠버 사람들(세기밴)의 정기집회도 있었다. 노란 몸자보를 입은 캐나다 동포들은 노란 리본 등 한국에서 공수해온 액세서리들을 나누고,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오는 3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상영회가 열린다. 미국 엘에이와 댈러스에 이어 해외에서 세 번째로 상영되는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세기토)가 노스욕 시청 대회의실을 빌려 무료 공동체 상영을 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해외동포들도 2주기 전에 공동체 상영을 준비 중이다.

<다이빙 벨>이 세월호 침몰 직후의 구조 작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나쁜 나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진상규명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를 밝혀달라며 시작된 싸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에서 동거차도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한편 세기토는 세월호사건 642일째 17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와 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하는 해외동포 단식 릴레이(518일째)를 이어오고 있다.

토론토에 사는 김경천 씨는 “여럿이 함께라면 험한 길도 즐겁다”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와 함께 페이스북에 단식 후기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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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휘호처럼 우리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루 한 끼 세월호를 기억하며 단식을 이어온 나날이 벌써 518일째입니다. 이 길이 험한 길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즐거운 길도 아니었습니다. 자식 잃고 길바닥에 던져진 채, 목숨 건 단식에, 삭발에, 삼보일배에, 오체투지에, 수십 번을 걸어서 팽목항까지, 이제는 동거차도에서 천막치고 인양작업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비바람치고 눈보라는 혹한에도 그분들은 길 위에 계셨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험한 길을 걷고 계시고, 서로를 보듬으며 소소하게 즐거움을 느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이야 말 그대로 그분들과 함께 서 있겠다는 마음뿐이며 저희들의 이 마음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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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길도 아니고, 즐거운 일도 아니었지만 우리 동무들은 518일 동안 ‘함께’ 어깨 걸고 왔습니다. 각자의 순전한 마음을 모아 서로가 격려하고 밀고 당기며 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갈 것입니다. 1,000일이 되더라고 문제없습니다. 우리는 ‘함께’할 것이니까요. 2016년 1월 17일 단식릴레이를 이어갑니다.” (토론토, 김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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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런던에서 열린 21차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

(사진 제공: Remembering Sewol Disaster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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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눈보라 속에서 열린 뉴욕 세월호집회 (사진 제공: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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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밴쿠버 사람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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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수업 "사회변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영상] 06년 6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고별 강의 '신영복 함께 읽기'

16.01.19 08:34l최종 업데이트 16.01.19 09:14l
글·영상: 강신우(fabiuse)

 

 

지난 2006년 정년을 맞은 고 신영복 당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매주 목요일 3시간씩 수업하던 <신영복 함께 읽기> 강의 중 마지막 1시간을 떼어 일반인에 공개했다. 그 마지막 고별 강의 현장을 오마이TV가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 강의에는 김성수 당시 성공회대 총장과 교수들,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학생과 시민, 기자들까지 몰렸다. 평소보다 열띤 분위기였던 강의 직후에는 즉석 사인회가 열리기도 했다.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으로 20년 20일을 꼬박 복역한 고 신영복 교수. 출소 후 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이래 정년이 되기까지 그는 쉬지 않고 마음껏 담론과 사상을 펼쳐왔다. 

"사람은 일생동안 참 멀리도 여행들을 떠나는데, 가장 먼 여행은 어디인가?"

고 신영복 선생의 10년 전 마지막 강의 영상과 10년 뒤인 18일 영결식 영상을 함께 엮어 재구성해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다시보는 신영복 선생 고별 강의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어디?" 오마이TV가 생중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지난 2006년 마지막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참 멀리도 여행들을 떠나는데, 가장 먼 여행은 어디인가?"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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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책연구원 "조선과 무조건 대화해야"

 
 
군축비확산센터 "외교적으로 가능할 때 북 비핵화해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1/19 [07: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미국 정책연구원의 관계자들이 대조선 제재는 ‘보잘 것 없는 결과’만 냈을 뿐이라며 미국은 조선과 무조건 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의소리방송은 19일 네 번째 핵 시험을 감행한 북한(조선)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 중국이 적극적인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미국이 전제조건 없이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필립 코일 수석연구원을 비롯한 미국 정책연구기관 군축비확산센터의 연구원들은 18일(현지시간) 언론 기고문에서 지금까지 조선에 대해 이뤄졌던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가 "보잘것없는" 결과만을 냈을 뿐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군축 비확산센터 연구원들은 조선한 비핵화 회담이 성과를 내기 위한" 이들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안정되고 비핵화 된 조선이 중국의 이해에 맞기 때문에" 중국은 더는 조선을 감싸고돌아서는 안 된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구원들은 구체적으로 중국이 "유엔에서 동맹(조선)을 보호하겠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면 북 비핵화를 위한 회담이 제자리를 맴돌 것"이라며 "중국이 추가 제재를 통해 북 지도부에 압력을 가하면 북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수소탄 핵 시험 이후 중국이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려하면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미국이 현재 조선에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조선의) 비핵화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조건을 없애야 한다."고 연구원들은 강조하며 조건 없는 대화를 주문했다.

 

연구원들은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고, 외교적으로 조선의 핵무장을 해제할 수 있는 동안에" 북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이란이 핵협상을 통해 핵개발 능력을 크게 줄인 것과 같은 방식을 조선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며 정치 외교적 노력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한편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존스홉킨스 교수는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 연구소를 통해 밝힌 논문에서 “조선의 핵 프로그램이 어느 때보다 굳건해진 상황에선 기존의 제재 방식이 해결책이 아님을 인식하고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인 모든 상황을 고려한 전략 가운데 효과적인 방법을 내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기존의 재재가 능사가 아님을 밝혔다.

 

부시 정권 후반 한반도 비핵화 6자회담에 관여했던 힐 차관보도 기존의 대북 제재 방식 보다는 한.미.중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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