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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회원 목숨 건 단식투쟁중! ... 묵비단식9일째, 갑상선암투병중에 생명 위험한 상황

  • [사회] 김혜영회원 목숨 건 단식투쟁중! ... 묵비단식9일째, 갑상선암투병중에 생명 위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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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이 현재 사투중이다. 김혜영회원은 오늘로 묵비단식9일째를 맞고있다. 헌데 월요일 서울구치로소 송치될 예정이었는데 보수대(서울시경보안수사대)가 수사를 2일 더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오늘도 10시부터 보수대에서 남대문서에 유치된 김혜영회원을 옥인동대공분실로 끌고가 강압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김혜영회원은 2번이나 갑상선암수술을 받았으며 매일매일 약을 먹지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건강상태다. 헌데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원칙적으로 투약도 중지하지않으면 안됐다. 그래선지 지금 심각한 구토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갑상선호르몬이 민감하게 작용하는 심장에 이상이 생길 지 모르는 위급한 상태다. 
     
    이런데 보수대는 현재 체포영장이 떨어진 다른 동료들을 잡겠다며 유일하게 수사중인 김혜영회원을 무리하게 강압수사를 벌이려 하고 있다. 원래는 보수대도 김혜영회원의 건강으로 자칫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까봐 우려돼 월요일에는 송치시키려 했다. 허나 지금은 모험을 해서라도 추가수사를 해야겠다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발상으로 김혜영회원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갑상선환자와 장기단식자에게 가장 위험한 고도의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현재 김혜영회원은 과거 전두환군사파쇼독재에 항거하며 옥중에서 40일단식투쟁을 벌인 고 강희남범민련의장의 결사항전의 정신을 따라 끝까지 묵비단식투쟁을 전개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김혜영회원은 보수대의 잔인한 강압수사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에 코리아연대측이 1) 오늘 정오즈음 해서 옥인동대공분실앞에서 강력한 규탄집회 2) 경찰청·서울시경·옥인동대공분실·남대문서앞 동시다발1인시위(남대문서는 철야1인시위) 3) 항의방문단 조직 4) 시민들의 항의전화조직 5) 규탄성명 6) SNS홍보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수대의 야수적인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김혜영회원의 생명을 구원하는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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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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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운동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영화 <암살>, 보고 즐기는 것은 자유지만…
 
김갑수 | 2015-08-03 14:04: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영화 <암살>을 오락으로 즐기거나 영화적 리얼리즘에 공감하는 것에 유감을 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 영화의 픽션을 역사적 사실인 양 거론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사람 눈에는 이 영화가 재미있거나 진지해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므로(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영화로 인해 우리의 독립운동과 무장항쟁이 왜곡되어 알려지는 것 같아 노파심에서 이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 글에서 나는 우리의 객관적인 독립운동사를 최소한으로 요약, 평가해보려 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크게 셋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상해에서 중경에 이르는 임시정부 중심 세력, 광동봉기에서 대장정 그리고 연안에 이르렀던 중국인민혁명 참여 세력, 마지막으로 (오는 8월 8일부터 시작되는 민갑 답사 노정과 거의 겹치는) 간도 즉 동북만 반일무장투쟁세력이다.

이 셋을 편의상 각각 상해파, 관내파, 동북파라고 호칭한다. 상해파는 광복군, 관내파는 조선의용군, 동북파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들었다. 요즘 북에서 말하는 ‘백두산 혈통’은 바로 이 동북파를 가리킨다.

다만 이렇게 단순히 3분법으로만 논의하다 보면, 국내 항일 의병의 뚜렷한 지도자였던 왕산 허위 선생과 동북에 가서 미리 투쟁했던 이상설 선생과 안중근 의사와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 홍범도 그리고 김좌진과 이범석 등을 놓칠 수가 있고, 이른바 북경파로서 무정부주의와 관련되는 이회영. 신채호 선생 등을 또한 놓칠 수가 있다.

그리고 양세봉 장군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조선혁명군 지도자로서 ‘군신’ 칭호를 얻은 탁월한 무장투쟁가였다. 양세봉 장군은 이념을 배격했다. 어느 면에서 그는 가장 순수한 무장투쟁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유일하게 남과 북 국가묘지에 동시 안장되어 있다.

상해파의 최대 공로자는 예관 신규식과 백범 김구이다. 신규식은 상해임시정부를 만든 분이고, 김구는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킨 분이다. 제국주의 군부에 인상 깊은 테러 공격을 감행한 윤봉길의 상해홍구공원 거사는 백범 김구의 작품이었다. 참고로 연길 동북항일연군기념관에는 상해파 중에서는 유일하게 신규식 선생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상해파의 약점은 무장투쟁보다 외교노선에 치중했던 점이다. 또한 무장투쟁 역량이 없다 보니 간헐적으로 테러공격을 수단화하기도 했다. 신규식 선생은 국내에서는 의병투쟁을 했고 중국에 가서 손문혁명대에 투신하여 무장투쟁을 했는데 임시정부를 창업한 이후 임시정부의 분열에 항변하는 단식 끝에 작고했다.

한편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윤봉길 거사를 중국군 몇 개 사단의 공로 이상으로 치하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김구에게 “일본군 장군을 하나 죽이면 또 하나의 일본군 장군이 뒤를 이을 뿐”이라며 테러공격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해파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아무튼 이들은 8.15 이후 국내로 돌아가, 정확히 말하면 이남으로 가서 또 다른 시련에 봉착한다. 여러분은 한독당, 즉 한국독립당을 알 것이다. 그들을 궤멸시킨 세력이 누구인가? 미군정과 친미 이승만 세력이었고 여기에 친일지주세력 한민당이 야합했다. 이승만이 만든 자유당은 오늘날 새누리당의 전신, 또 다른 친일세력 한민당은 오늘날 민주당 즉 새정치연합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극이라면,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이었던 한독당이 망해버린 데에 있다. 반대로 말해서 친일세력이 득세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민국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이자 모순이다. 한독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는 8.15에서 불과 4년도 안 되어 안두희의 흉탄에 숨졌다. 그런데 안두희의 배후는 누구였나? 김구 암살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의 합작이었다.

독립운동 세력의 제2열이라고 할 수 있는 관내파와 제3열인 동북파는 8·15 이후 북으로 귀환한다. 관내파에는 오성륜과 박영과 김산 등이 있었다. 박영은 광저우에서 만난 김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혁명이 완성되기 전까지 내게 평화는 단지 고통일 뿐이다.”

김산의 본명은 장지락으로서 흥미로운 책 <아리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밖에 중국인민혁명군가를 작곡한 음악가 정율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본격적인 관내파로서 조선의용군과 관련되는 양림과 무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중국혁명군 내에서도 크게 인정받은 우수한 혁명 열사들이었다. 특히 무정은 중국 인민혁명군 전체의 ‘포병대장’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약산 김원봉을 추가할 수가 있다. 이들은 이북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작업에 참여했다가 몇 년 후 김일성에 의해 정리된다.

독립운동의 제3열, 3열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하며 체계적이고 자주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한 세력이다. 리홍광, 이동광, 허형식, 최용건, 김책, 김일성, 최현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살아남은 최용건 김책 김일성 최현 등은 조선인민공화국의 건국 핵심이 되었다.

이들은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군과 합작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조선인들의 자질이 워낙 출중하여 따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호칭이 부여되기도 했다. 김일성이 지휘한 항일유격전 중에서 보천보 전투와 간삼봉 전투는 특히 유명하다. 김일성은 친화력과 리더십이 있어서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았다.

최용건은 김일성보다 13살, 김책은 김일성보다 9살이나 많았지만 러시아 령 하바로프스크에 합류한 이후부터 줄곧 그를 지도자로 받들며 협조했다. 이것은 중국 인민혁명 과정에서 주덕과 주은래가 후임 마오쩌둥을 끝까지 보위한 경우와 비슷하다. 김일성이 첫 부인 김정숙과 결혼한 것도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동북 반일항쟁파의 강점과 미덕은 첫째 무장투쟁의 방식이었다는 점, 이것은 독립운동의 본격성을 의미한다. 둘째 유격투쟁 방식이었다는 점, 이는 즉 뛰어난 전략 전술성을 의미한다, 셋째 투쟁 과정의 높은 도덕성에 있다. 그들은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극한상황,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약탈, 테러, 단식, 이밖에 비인간적인 기만행위 등을 삼갔다.

1958년 북의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민일보>는 아래 글을 사설로 내놓았다.

 

중국 인민은 북벌의 전화(戰火) 속에서, 장정(長征)의 길에서, 항일의 간고한 세월 속에서, 장개석의 통치를 뒤엎는 승리의 진군에서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중국인민과 공동투쟁을 했으며, 자기 생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중국혁명과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원조한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1958. 11. 22자 인민일보)

 

그렇다. 신해혁명의 혁혁한 조력자 신규식 선생, 광동봉기에 참여한 오성륜, 박영, 김산 그리고 8,000km 대장정에는 1,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참여했으며, 항일무장투쟁에는 2만 명의 조선 젊은이가 참전했고, 국공내전에는 무려 7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전투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무공을 세웠다.

일신교도들은 ‘신의 역사’를 말한다. 반면 한국의 사학자 김준엽은 ‘역사의 신’을 말했다. 내 개인적 소회로 ‘신의 역사’는 터무니없지만 ‘역사의 신’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숱한 역사 왜곡으로 역사의 신을 모독하고 있다. ‘신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의 용어를 빌리면 ‘독신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장악하여 미래를 지배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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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강정, 쓰러지지 마라…전 세계에서 응원"
[언론 네트워크]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생명평화마을 제주 서귀포시 강정. 지난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에서 주민 1200여 명 중 불과 87명만이 참석한, 그것도 마을 정관까지 어겨가며 소집된 임시총회를 통해 '박수'로 해군기지가 유치 결정된지 어언 3000일. 강정을 생명평화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길고 험난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범국민문화제-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 평화콘서트 현장에 이동편집국을 마련해 강정마을의 생생한 생명평화 기운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 강정마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하 대행진)이 5박 6일의 일정으로 무사히 끝났다. 무더위 속 고된 행진을 평화의 마음으로 즐겁게 감내한 참가자들은 강정천 운동장에서 열린 평화콘서트로 그동안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리며 다시 한 번 '강정의 평화'를 기원했다.

올해 대행진을 갈무리한 평화콘서트는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강정천 운동장 특설무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평화콘서트의 부제는 '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이다. 전체 주민 1200여명 가운데 87명의 박수로 결정된 해군기지 유치에 분개하며 강정주민들이 일어선지 3000일, 그 동안의 험난했던 여정을 위로하며 앞으로의 3000일 역시 '함께 가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5박 6일의 행진에 이어 8월 1일 열린 평화콘서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1일 낮 12시 30분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만난 동진·서진 행렬은 서로의 손을 잡는 인간 띠 잇기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고, 강정천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쌓인 피로와 이야기 거리를 풀었다. 이후 준비된 식사와 풍성한 프리마켓으로 기분전환에 나섰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평화콘서트는 1부 해단식과 2부 공연으로 나눠 진행됐다. 해단식은 춤비숨비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동진 단장 강동균 전 마을회장과 서진 단장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소장의 행진 마무리 인사, 대행진 영상 관람, 국제 참가자들의 연대 발언, 인디밴드 액트(ACT)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2부는 본격적인 공연으로 꾸려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인 '쌍차 노래패',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눗방울 퍼포먼스, 격려기금 전달, 가수 반하리,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가 순서대로 무대에 오른 후 모두 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 평화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한 꽃다지의 공연. ⓒ제주의소리


그야말로 '목이 완전히 가버린' 두 단장은 해단식에서 아무 탈 없이 따라와 준 동지들에게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강동균 단장은 "어린 친구들, 학생들이 어느 때 보다 많이 참여해 감격했다"며 희망을 주목했고, 홍기룡 단장은 "이 시간이 끝나서 각자 생활 속에 돌아가도 함께 했던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행진은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특히 해외 참가자는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마리아나 군도 티니아 섬 등 대부분 전쟁과 군사기지로 몸살을 앓는 지역에서 왔다.

미군과 수십 년을 싸워온 오키나와, 마찬가지로 미군과 갈등을 빚어온 필리핀, 중국·미국의 힘 싸움 가운데 놓인 대만, 태평양전쟁 당시 군사기지가 있던 티니아 섬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실은 B-29기가 출격한 지역이다. 

연대 발언에서 강정과 끈끈한 관계인 오키나와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대행진에 참여하겠다는 든든한 마음을 전했고, 대만에서 온 인원은 3000일간의 투쟁에 대한 찬사로 "GangJeong is Amazing!"(강정은 정말 놀랍다)이라고 외쳤다.

필리핀 참가자는 불끈 쥔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어느 누구도 여러분(강정주민, 지킴이)의 영혼을 빼앗을 수 없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티니아 섬에서 온 인원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러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부디 (해군기지 투쟁을) 멈추지 마라. 포기하지 않고 연대할 때 우리는 언젠가 승리한다"고 밝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어 대행진 종료 소감을 밝힌 문정현 천주교 신부는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올까' 걱정이 앞섰지만 수백 명이 신청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며 "(여러분이 있기에) 나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정을 지키자. 우리의 불꽃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행진 참가자들에게 반갑게 고마움을 전하는 문정현 신부. ⓒ제주의소리


2부 공연은 지친 피로를 씻어주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열정의 시간이었다. 

3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 극단 '새벽'의 단원들로 구성된 인디밴드 액트(ACT)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쌍차 노래패는 강정, 용산, 밀양, 세월호 모두 함께 싸워가는 동지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대표곡 '함께 꾸는 꿈'을 열창했고, 성인가요 가수 '반하리'는 뛰어난 무대 매너와 구성진 목소리로 흥을 듬뿍 불어넣었다.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는 멋진 비누방울 퍼포먼스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2부 순서 가운데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됐다. 강정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잠시 떠난 평화운동가 실버, 파코가 6주 동안 미국 10개 도시를 돌며 모금한 강정투쟁기금을 전달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실버는 "미국에서 강정을 알리면서 느낀 점은 강정에서 함께 싸웠던 평화운동가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서도 강정을 위해 어떤 역할이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했다.

소중한 정성을 받은 조경철 마을회장은 "비록 우리도 싸우고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강정이 되겠다"며 3000일에도 굴하지 않은 '강정인'의 의지와 성숙함을 보였다.

다시 이어진 공연은 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와 국내 대표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무대로 절정을 향했다.

강정을 포함해 많은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 '바위처럼'을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진 꽃다지는 원조다운 실력을 뽐내며 큰 호응을 받았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2007년 강정에 공연하러 왔다가 경관에 매료돼 앨범 사진까지 이곳에서 찍었다는 남다른 사연을 자랑했다. 
 

▲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누방울 퍼포먼스에 환호하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강정에 평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 ⓒ제주의소리


리더 최철욱 씨는 "3000일 동안 꿋꿋하게 걸어오셨는데 저희 음악이 강정에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모두를 일으켜 세운 킹스턴 루디스카의 신나는 무대가 끝나고 평화콘서트는 '강정댄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다 함께 노래 '바위처럼', '강정마을 좋아송'에 맞춰 춤추는 장관이 연출됐다. 

불안으로 시작한 대행진은 희망으로 끝이 났다. 작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참가자들과 넓어지는 구성은 강정이 아직 살아있음을 입증했다.

여전히 비난의 화살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돈 받고 온 것 아니냐', '더운데 생고생이다'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것은 '조건 없이 함께 하는 연대를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들의 슬픈 질투'일 뿐임을 대행진 참가자들은 말이 아닌 몸으로 일축시켰다.

물론 강정천 운동장을 채운 1000여명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쳐도 다음 날 아침이면 공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행된다. 당분간은 공사를 멈추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강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강정이 쓰러지지 않기를 전세계에서 바라기 때문이다. 그 바람의 증명이 바로 생명평화대행진이다.

평화콘서트는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와 어른이 손을 잡았다. 강정 그리고 평화는 손에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그렇게 이어졌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강우일 주교)
 

▲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제주의소리

 

▲ 쌍차 노래패. ⓒ제주의소리

 

▲ 평화운동가 실버(맨 왼쪽)와 파크(가운데)가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에게 투쟁기금과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다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평화콘서트 마지막 무대에서 즐겁게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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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녘 독도, 일본 순시선이 다가왔다

등록 :2015-08-02 19:12수정 :2015-08-03 01:15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A  data-cke-saved-href="mailto:hyopd@hani.co.kr"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① 독도에서 본 광복 70년

 

독도에 파랑이 일었다. 너울이 허연 거품을 앞세워 동도 선착장 너머로 거칠게 밀려 들어왔다. “오늘은 배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고, K2 소총을 멘 채 동남쪽 바다를 지켜보던 한 경비대원이 말했다. 심상한 표정과 어투였다. 파도가 치면 1주, 2주 갇히기 일쑤인 독도의 날씨를 일상으로 겪으며 밴 심상함일 터이다.

 

과연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들은 이날 선착장에 닿지 못한 채 독도를 한바퀴 돌고는 되돌아갔다. 6월12일 속절없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주 2회 독도 한바퀴 돌아나가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은 
밀어내기 대치로 막아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뒤 
일, 집요하게 ‘영유권 주장’

 

 

다음날에도 짙게 낀 구름은 새벽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말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에도, 독도경비대 2층 상황실에는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나중에 전해들었다. 새벽 5시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독도 동쪽 영해선을 향해 접근해왔다. 독도 동도 꼭대기 98.6m 지점에 설치된 레이더가 이를 포착했다. 레이더병은 일본어와 영어로 배가 한국의 영해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고 영해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당직관은 곧장 해경 경비정 5001함과 해군·공군 부대로 상황을 전파했다. 24시간 독도 주변을 돌고 있는 해경 경비정이 즉각 일본 순시선 쪽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순시선은 여느 때처럼 12해리 영해선을 넘지 않은 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독도 주변을 한바퀴 돌아 울릉도와 독도 사이 공해로 빠져나갔다. 일본 순시선은 주 2회가량 독도로 접근한다.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이 영해선 안쪽에서 밀어내기 자세로 대치하며 따라 돈다”고 송지원 독도 주둔 경찰경비대 지역대장(경감)이 말했다.

 

일본 순시선의 독도 접근은 장구한 기간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미군 포고에 따라 일본 선박들은 한동안 독도 해역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1년 한국이 빠진 채 연합국과 일본 사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 순시선들이 독도에 출현했다. 1953~54년 일본은 한국의 영토 표지를 2차례 제거하고, 4차례 일본령 표지를 세웠다. 한국도 그때마다 이를 뽑아냈다. 53년 7월12일에는 울릉도경찰서 독도순찰반이 영해를 침범했다가 달아나는 일본 순시선을 향해 경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하기도 했다.(정병준 <독도 1947>) 한국전쟁의 한편에서 한때의 식민 강점국 일본과 신생 대한민국 사이에 독도를 둔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독도는 작고 외로우리라는 선입견을 깨고 우뚝했다. 울릉도에서 망망대해를 두시간여 배로 달리면 수직으로 치솟은 서도가 먼저 눈길을 잡는다. 168.5m지만, 바다 위에 돌출해 한층 웅장했다. 승객들이 너나없이 “와” 하는 탄성을 토했다. 서도를 마주보며 동도는 151m 거리에 밀착해 있다. ‘국토의 솟을대문’(이근배 ‘독도 만세’)이라는 시인의 묘사는 적확해 보였다.

 

일본은 대한제국 영토 중 가장 먼저 독도를 강점했다. 바다 한가운데 솟구친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러시아의 방해로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했던 일본은, 10년 뒤인 1904년 2월 대한제국에 다시 군대를 진주시키면서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1905년 1월2일에는 뤼순 요새를 함락시키고, 러시아 극동함대(제1태평양 함대)에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그 직후인 1월28일 일본은 각의 결정으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복속시킨다. 발트해의 기지를 떠나 동해로 향하던 러시아 최강의 제2태평양 함대를 감시할 망루를 독도에 세우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시 내무성에서는 “지금의 국면에 한국 영지로 생각되는 황막한 일개 불모지 바위섬을 접수하여 여러 외국에 우리나라가 한국 병합의 야심이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야마자 엔지로 외무성 정무국장은 “이러한 때에야말로 영토 편입을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라, 망루를 건설하고 무선이나 해저 전신을 설치한다면 적함 감시가 매우 좋아질 것”이라고 일축했다.(와다 하루키 ‘독도의 역사적 의미와 해결법’)

 

 

독도, 우리 국토의 ‘솟을대문’…군사적 가치 커 일본 일찍이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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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전초기지’ 전략성 중요성 알고 
집요한 영유권 주장 억지 
방위백서, 독도에 ‘빨간 동그라미’ 

한국전쟁 와중에도 
독도 둘러싸고 한-일 충돌 기록도

 

 

독도를 삼킨 일본은, 220일 동안 지구 둘레 4분의 3인 2만9000㎞를 돌아오느라 지친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대파했다. 이어 달아나는 러시아 함선들을 울릉도 동남쪽 독도 인근 해역까지 추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러시아를 이긴 일본은 미국이 중재한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러시아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일본은 곧이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5년 뒤인 1910년에는 한반도 전체를 강제병합한다. 독도를 잃은 대한제국은 나라까지 빼앗겼다. 2차대전 패전으로 한반도에서 물러나고도 끝까지 독도 영유권만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일본의 욕망이 불길한 이유다.

 

독도를 일본령으로 삼아 군사적 전초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44년 뒤 미국에 의해 부활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준비 과정에서 미국은 초반에는 줄곧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는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1949년 11월 주일본 미정치고문실의 윌리엄 시볼드 정치담당관이 “리앙쿠르암(독도의 서구 명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함. 이들 섬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보임. 안보적 고려에서 그곳에 기상 및 레이더 기지를 상정해볼 수 있음”이라는 의견서를 낸다. 독도를 불안정한 한국보다 만만한 일본 영토로 만들어 대소련 전초기지로 손쉽게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쪽으로 180도 입장을 뒤집고 만다. 이후 일본이 두고두고 ‘미국도 독도가 일본 땅임을 인정했다’며 독도의 분쟁지역화에 나서게끔 만든 배경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노골적 책동에도 독도는 꿋꿋이 한국 영토로 서 있다. 첫째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 의지를 뚜렷이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 체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1947년 시행된 일본 평화헌법 제9조는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 및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했다. 1953년 독도 충돌 때 일본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안에서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헌법 금지 사항”이라며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평화헌법 체제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미-중 패권 다툼 가능성이 부상하는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신념에 따라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며 미·일 군사일체화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중국 또한 이에 맞서 ‘대국굴기’의 ‘중국몽’을 꿈꾸며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팽창시키고 있다.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 미-일 동맹의 확장판으로서 한-미-일 삼각공조 구축에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는 점은 급변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복잡성을 배가한다.

 

더불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에는 11년째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 기재했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표시 지도에는 ‘다케시마’에 영유권을 뜻하는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과거사 역주행 속에 영토 야심은 폭주하는 양상이다.

 

그 결과는 110년 만에 다시 한번 동아시아 지정학의 ‘열점’으로 독도가 부각되는 지금의 형국이다. 애초 독도는 460만년 전 지각의 틈을 뚫고 마그마가 분출하는 지질학적 ‘열점’의 생성물로 태어났다. 국가 간 힘과 의지가 충돌하는 열점의 운명이 다시금 독도, 나아가 한반도를 덮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광복·분단 70돌을 맞아 ‘징비’의 의미를 가장 먼저 ‘독도’에서 떠올린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겪고, 또다른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삼가는 기록’ <징비록>을 남겼다. 광복 70돌, 구한말 격랑의 그림자가 다시금 어른거린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지식인 500여명은 7월29일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과거사를 둘러싼 충돌이 민족주의 충돌로 이어지고 영토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 회귀는 전쟁 위기와 안보 불안으로 확대되고 각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망국의 그때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나라로 성장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난제를 여전히 품은 위에 열강 다툼의 파열음도 높아가고 있다. 묵은 과제와 새 도전이 한데 몰아치고 있다.

 

류성룡은 변화를 미리 읽지도, 자강하지도 못한 조선의 비극을 징비했다. <징비록> 연구서를 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지정학의 격랑을 이겨낼 것인가? 광복 70돌의 해에 독도 선착장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동아시아의 격동을 헤쳐나갈 담대한 상상력을 묻는다. 13일 오전 10시30분께 파도가 조금 순해진 틈을 타 접안한 울릉행 여객선에 올랐다. 독도에는 주민 2명과 등대원 3명, 경비대원 45명, 수를 셀 길 없는 갈매기들이 남았다.

 

 

독도/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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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괴뢰 대결 광분 댓가 참혹"경고

 
 
"병진 노선 헐 뜯는 것은 악랄한 정치적 도발"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2 [18: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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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시킬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을 비난하며 자신의 노선을 헐뜯는 남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언론들은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이날 '대결광신자들은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괴뢰들이 대화를 극성스럽게 외워대는 그 입으로 우리의 노선과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방미 중인 김무성 대표의 우드로윌슨센터 오찬연설을 지목해 "김무성 역도는 상전 앞에서 온갖 아양을 다 떨며 북이 병진노선을 포기하도록 외교안보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망발을 줴쳐댔다"고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괴뢰통일부 대변인이라는 자도 우리의 병진노선에 대해 감히 그 무슨 '삶의 질 향상과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느니, 개탄이니 하며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자주와 존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얼간망둥이들과 어떻게 민족의 운명를 논하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대결을 구하는 남조선괴뢰패당은 우리의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고 피력했다. 

 

논평은 "괴뢰들이 대화를 떠들면서도 우리의 병진노선을 헐뜯는 악담질에 미쳐돌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대화가 아니라 대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했다.

 

특히 "우리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는 것은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갈 전략적 노선"이라고 주장하고 "괴뢰역적패당이 병진노선에 대해 시비질하며 못된 수작을 늘어놓는 것은 우리에 대한 악랄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우리의 자주적 노선과 존엄 높은 체제에 감히 도전하는 자들과는 애당초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며 "남조선 괴뢰들은 대화 상대방을 함부로 헐뜯으며 대결에 광분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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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 [사회] 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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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가 11일간이나 완강한 묵비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3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됐으나 이상훈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철폐, 보안수사대·국가정보원해체, 박근혜폭압<정권>퇴진을 요구하며 묵비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상훈공동대표는 또한 코리아연대에 대해 이적단체혐의를 들씌우고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개악해 이적단체로 판결나면 강제해산하려고 하는 박근혜<정권>의 파쇼적 음모를 폭로하며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투쟁하고 있다. 
     
    현재 이상훈공동대표는 보안수사대의 강압수사로 인해 앉아있기도 힘들정도로 건강이 상해있다. 
     
    한편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도 지난 26일 연행된 이래 오늘로 8일째 역시 인정심문도 거부하고 철저히 묵비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김혜영회원은 암수술을 2번이나 받았으며 지속적으로 투약해야 하는 몸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단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투약을 중단하고 있다. 그로 인해 심각한 구토증상을 보이고 있으나 고통을 감내하며 묵비단식투쟁을 완강하게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헌데 김혜영회원이 수감된 남대문경찰서는 일요일이라고 생수반입을 금지하는 등 상식이하의 반인권적 행태를 보여 코리아연대회원들과 시민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있다. 
     
    남대문경찰서는 그렇지않아도 지난 4월말 코리아연대회원들을 연행한데 대해 항의하는 여성회원을 성추행하고 회원들을 폭행한 사건으로 현재 법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에 코리아연대측은 오늘부터 그동안 종로서에 집중했던 1인시위를 남대문서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후 가장 강력히 항의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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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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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유신공주로 자기 세계에 갇혀...
박 대통령 기본개념 전혀 없어"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창간15주년 인터뷰]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15.02.13 11:16l최종 업데이트 15.08.03 00:50l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년 73세. <오마이뉴스>는 김수행 교수의 생전 인터뷰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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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지난 2년 박근혜 정부에 대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 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다"며 "경제는 더 나빠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았나"고 평가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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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지금 지옥이에요, 지옥…. 뭐하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게 있나 봐. 정치도, 경제도, 복지도 그렇고….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종북'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리고 말야. 이런 사회에서 무슨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어요."

그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했다. 그의 입에선 '지옥', '엉터리', '나쁜 놈', '말도 안 되는 소리' 등의 단어가 계속 터져 나왔다. 백발의 노(老)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72)다. 예전에도 그와 수차례 인터뷰를 했던 기자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라며 "지금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에요"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그는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프랑스대혁명 시절에 있는 것 같다"면서 "그게 1789년 이야기인데, 그때나 볼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래서야 되겠어요?"라며 다시 되물었다.

지난 2월 6일 오후 고려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국내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포럼인 '맑시즘 2015' 첫날 강연을 마친 다음이었다. 문과대 202호 강의실은 학생과 직장인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김 교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하얀색 칠판 위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자본론을 강의했다. 그는 당초 예정됐던 1시간 30분의 시간이 못내 아쉬웠던 것 같았다.

- 강의 후에 학생들 질문이 많았던 것 같던데요.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여러 고민들도 보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이 부족했지. 이런 강의는 항상 그래요. 어느 외국인도 질문을 하던데, 나중에라도 좀더 토론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 지난해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국내에 소개되고, 장하성 교수도 '한국자본주의'를 펴내면서, 불평등과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은 말그대로 부(富)를 말하는 거예요. 맑스의 '자본'과 다르지. 다만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분배 문제인데, 그동안 자본주의 병폐가 불평등과 양극화 잖아요. 그것을 수백년의 자료로 입증해 보인 거예요. 주류경제학 입장에선 그의 주장에 '쇼크'를 먹은 거지."

김 교수의 말은 계속됐다. 이미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미 지난 수십 년동안 미국 등에선 부자감세를 비롯해 사회보장제도가 해체되면서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양극화에 따른 부의 불평등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이미 맑스가 살던 시대부터 개혁과제를 내놨어요. 1848년 공산당 선언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위해 소득 누진세를 도입하고,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상속 제한 등 말이에요. 무상 교육도 있었고…. 나중에 서구국가들이 1950년대에 들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고…."

"복지를 줄인다고? 여기는 지옥이야, 지옥...."

그는 이어 "당장 자본주의가 없어지거나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 2년 평가로 흘러갔다.

- 박근혜 정부가 만 2년이 지나고, 3년차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그래, 벌써 그렇게 됐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어. 그냥 MB 것 거의 그대로 했는데…. 경제는 더 나뻐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아요?"

- 애초 내걸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공약이 줄줄이 사라지고, 인사파동으로 시간만 보냈다는 지적도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든, 경제든 기본적인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머리가 없어요. 그냥 유신공주로서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아. 내가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세월호 사고를 보고 저 사람이 대통령인가 싶기도 하고…."

그는 '세월호 사고'를 꺼냈다. 작년 4월 기자가 김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관련기사: "박근혜 대통령 자격없다, 집권층 무너져도 혼란없어"). 김 교수는 "정말 자기 자식 죽은 부모의 심정을 그 사람(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해결해줘야 하지 않은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올들어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와 복지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지금 청와대나 여당 모두 결국 복지 지출 줄이자는 거 아니에요. 오이시디(OECD)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에서 거의 꼴지라고 하는데, 지금 무엇을 얼마나 쓰고 있길래 줄이자고 하는지…. 내 생각엔,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복지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야."

- 여당에선 무상급식이나 보육 등에 들어가는 부담이 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돈이 없다고 하면서 이미 증세로 서민들한테 돈을 거둬가고 있잖아. 담뱃세부터 말이야. 그런데 부자들은 모두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기업들도 마찬가지고…. 부자들부터 제대로 세금을 거둬야지."

"MB의 4대강 등 그 아까운 돈들을... 정말 나쁜 놈들"

-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해서 고용 늘리면 세금도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민간기업들은 이윤을 볼 수 있는 정도만 사람을 고용하잖아. 거기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자야. 기업들은 실업률 같은 거 신경도 안 써요. 정말로 실업률 낮추고, 일자리 만들려면 정부가 나서야지."

김 교수의 비판은 계속됐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정부 1년 예산이 수백조 원이에요. 그것부터 제대로 잘 쓰면 돼.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와 복지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쓸데없이 돈을 써버리잖아.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4대강 사업한다고 22조 원인가 쓰고, 자원외교한다고 수조 원 날리고…. 그 피 같은 국민들 돈을 말이야…. 정말 나쁜 놈들이야."

-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극복했다고 썼는데요.
"(목소리를 높이며) 무슨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기가 무슨 옛날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는 모양이구만. 4대강사업 한다고 그 돈을 대기업들한테 다 나눠줬는데, 무슨 위기를 극복했다고…."

- 요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조기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자업자득이지. 누가 좋아하겠어. 지금 사람들 사는 것이 지옥이에요, 지옥. 그래도 처음에 무슨 복지국가한다고 했으니 기대라도 했지만, 아니잖아. 청와대서 나오는 이야기 보면 무슨 지들끼리 권력싸움이나 하고 있질 않나, 그 사람들한테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어요."

"참으로 더티한 나라, 과거로 후퇴한 민주화, 다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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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보수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보다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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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여전한데요.
"야당에 있는 친구들이 말이에요. 새누리당과 같은 수준의 복지 이야기를 하면 안 돼. 좀더 진보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줘야지. 지금 실업,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요. 정말 기업들이 맘대로 해고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를 하든지, 노동조합의 권한이나 지위를 대폭 높여서 기업들과 대등하게 해주든지."

김 교수는 "아마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도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 민주화의 후퇴를 가장 우려하며 "후퇴가 정치·경제·사회 등 우리 전반에 걸쳐 있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표현의 기본 자유가 침해받는 현실을 두고 "참으로 더티한(dirty, 더러운) 사회"라고 평가했다. 1시간을 훌쩍 넘는 인터뷰 내내 그의 직설은 계속됐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물었다.

"(웃으면서) 3년이나 남았나. 어떻게 하겠어, 계속 이야기를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얻은 민주화인데, 지금 이렇게 후퇴해 버리면 되겠어요? 사상적으로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말이야. 참으로 더티한 사회야.  그래도, 이래선 안 되니까, 계속해서 정치든, 경제든 다시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싸워야지. 그래야 바뀌지 않겠어. 나부터, 당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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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協, 주말 도심서 ‘82대 과제’ 브리핑 나서

 

수중 속 선체 영상 공개.. “정부, 시신 유실방지 조치 약속 어겼다”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안전사회 대안마련·추모지원을 위한 ‘82대 과제 길거리 브리핑’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15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4.16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가 진상규명을 위해 제시한 ‘82대 과제’ 길거리 브리핑에 함께 했다.

브리핑에 나선 4.16 가족협의회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박 변호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심사 당시 제출된 자료를 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명시돼 있다”며 “실제로 청와대가 참사 당시 계속 지시를 내렸고 나중에 와서 말을 바꾸며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123 정장만 검찰이 기소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감사원에서 감사만 했다. 목포해양경찰서장은 현장지휘 태만으로 해임했고 서해지방해경청장은 사전구호조치소홀로 강등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목포해경 서장은 해임되었다가 서해지방청으로 옮겼고 서해지방청장은 정년퇴임했다”며 “유정복 당시 안행부장관은 중대본의 책임자임에도 작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사임했고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청와대도 A4 2장의 확인서를 감사원에 준 것으로 감사가 끝났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그러나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한다’는 지시를 내린 10시 30분, 그와 동시에 민경욱 대변인이 통화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며 “대통령의 전화를 실시간 도감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이 두 번째 지시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김혜진 4.16연대 운영위원도 안전사회 대안마련과 추모지원을 위한 과제들과 관련, 시민들에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김 위원은 “550만명의 서명을 만들어서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조사위를 통해 진실을 규명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정부는 예산을 지급하지 않고 쓰레기 시행령을 만들어 냈다”며 “메르스 사태를 통해 국민안전처가 절대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우리는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의료민영화라고 비판해 온 원격의료 등 안전 돈벌이만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있으면 되는 일이 없고, 특조위에만 맡겨서도 되는 일이 없겠죠?”라고 반문했고, 시민들은 “그렇다”고 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은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선체의 수중 촬영 영상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며 온전한 인양을 위해 왜 가족들이 직접 수중 촬영을 주장하고 나섰는 지 강조했다.

앞서 지난 29일에도 피해 가족들은 뚫린 창문에 차단봉과 그물망이 설치되지 않은 장면이 담긴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며 “시신 유실방지 대비를 철저히 해 세월호를 봉인하겠다던 정부 약속과 달리 유실 방지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유 집행위원장은 “400명이 탄 대형 여객선에 배가 침몰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겨우 해경 대원과 20여명이 탈 배 한척을 보내는 해경과 정부였다”며 “자동차 사고 시 달려오는 렉카차보다 못한 해경과 정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양 업체 선정 등 모든 과정에 유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유가족들이 납득 못하는 과정들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양수산부가 수중 촬영에 허가하고 말고 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해야 할 도리를 하기 위해 허가 사안이 아님에도 여러 차례 공식·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보냈다”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면 허가와 관계없이 선체 촬영을 위해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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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특혜받는 박정희 일가 ① 설악산 케이블카

 
 
‘박정희 사위 일가, 44년간 설악산 케이블카 독점’
 
임병도 | 2015-07-31 08:48: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설악산에 새로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정상 부근에 관광호텔과 레스토랑을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 중입니다. 7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지속성장 방안 마련 세미나’를 주최한 전경련은 ‘설악산 산악종합관광 조감도’를 제시했습니다.

전경련의 ‘설악산 산악종합관광 조감도’를 보면 설악산 산장과 대피소 중간에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4성급 관광호텔 수준의 숙박시설을 조성해 개별 객실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습니다. 오색케이블카 사업과 연계한 설악산 개발 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전경련 측은 ‘일반적인 숙박 시절이 아닌 비상시 대피를 위한 대피소를 숙박시설로 제공하여 공간이 협소하고 시설이 열악해 여성 및 외국인의 이용이 어려우며 쾌적한 휴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
 
설악산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입니다.2 인간이 조금 편하자고 자연을 파괴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악산 개발과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보면 아버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벌어진 일과 비슷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를 어떻게 따라 하고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34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의 수출진흥위원회’

2014년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확정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을 빨리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거나 설악산에 케이블카와 호텔 등을 건설하기 위한 ‘산지관광 특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아버지 박정희가 주재했던 ‘수출진흥회의’를 정례화시킨 것입니다.3 박정희 사망 이후 유명무실했던 회의를 딸이 34년 만인 2013년에 부활시킨 셈입니다.4
 
박정희의 ‘수출진흥회의’나 박근혜 대통령의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비슷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박정희는 기업들이 수출이나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그 규제에 대한 정확한 검토 없이 무조건 허용했습니다.

특히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2012년 2013년에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두 번이나 거절당한 사업입니다. 환경을 위해 규제되어야 할 사업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신청됐고,5 앞으로 본격적인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강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 사위 한병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승인 특혜’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현재 설악산 오색리에서 대청봉 인근 끝청까지 3.5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입니다. 기존 케이블카에서 훨씬 산 정상으로 가까워지고 길어집니다.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정당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 1월 13일 동아일보는 5월이면 설악관광주식회사 (대표 한병기)가 착공했던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된다고 보도했습니다.6 한병기는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의 딸인 박재옥과 결혼한 인물로 박정희의 사위입니다.  
 
1972년 박정희는 ‘제3차 5개년 개발계획’의 하나로 산지개발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한병기 (속초,양양,고성) 공화당 의원이자 박정희의 사위가 정책연구에 나섭니다. 대한민국 산지를 구분해 개발할 곳은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7
 
설악산 케이블카는 1971년 8월에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한병기가 7월에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한병기가 1965년에는 천연기념물로 1970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설악산에 케이블카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의 사위였기 때문입니다.

산지개발을 지시하고 특혜를 줬던 박정희와 산지개발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이 비슷해 보입니다.


‘박정희 사위 일가, 44년간 설악산 케이블카 독점’
 
케이블카 설치가 국민의 편리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설치됐던 설악산 케이블카를 보면 국민이 아닌 특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설악산케이블카를 독점해 42년 동안 수백억을 벌은 박정희 사위 일가 ⓒ민중의소리 유동수 디자인실장

설악산 케이블카의 대표는 한태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입니다. 박정희의 사위 한병기가 ‘설악케이블카 회장’이었고 아들 한태준, 한태현이 ‘설악케이블카(주)’의 대주주입니다.8

한병기가 회장인 ‘설악케이블카(주)’의 매출액 99%가 케이블카 운행으로 벌어들이는 돈입니다. 2011년 순이익이 37억 원이니 44년간 벌어들인 돈만 계산해도 수백억 원이 넘습니다. 단지 박정희의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녀들까지 특혜를 대물림받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은 엄연히 국민의 재산입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권력을 통해 가족에게 특혜를 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그 특혜를 몰수해야 함에도 과거를 잊고 설악산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지난 7월 28일, 국회에서는 ‘2015 친환경 케이블카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8월에 열리는 오색케이블카에 대한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겨냥한 세미나입니다. 국회 케이블카 심포지엄 입구에는 ‘국세청장’, ‘통계청장’, ‘관세청장’이 보낸 화환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케이블카 심포지엄에 국세청장이나 통계청장, 관세청장이 화환을 보낼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설악산 케이블카의 특혜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무조사를 해야 할 국세청장이 오히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화환을 보낸 것입니다.

‘필요하고 가능한 공존’이라고 주장하며 추진 중인 오색케이블카 사업, 과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어떻게 승인됐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공존’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공존’이 아닌 ‘특혜’가 될 케이블카 사업은 승인보다 감사가 우선입니다.


1. 설악산 정상인근에 관광호텔 추진, 환경파괴 불가피 미디어오늘 2015년 7월 27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18 
2.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예정지에 '산양' 서식. 오마이뉴스 2015년 2월 17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001 
3. 이명박 정권 때도 열렸지만 정례화되지 못했다. 성장 다급한 정부, 수출에 올인? 한겨레 2008년 5월16일. http://english.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288079.html 
4. 1965·2013 … 박 대통령의 '수출 DNA' 코리아데일리(중앙일보)뉴스. 2013년 5월 1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668545 
5.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논의 본격화…환경단체 '반발' 뉴시스강원 2015년 6월 13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612_0013725031&cID=10805&pID=10800 
6. 1970년 1월 13일 동아일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0011300209207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0-01-13&officeId=00020&pageNo=7&printNo=14848&publishType=00020 
7. 매일경제 1972년 4월 5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4050009920301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04-05&officeId=00009&pageNo=3&printNo=1871&publishType=00020 
8. 박정희 사위 일가, ‘설악산 케이블카’ 42년 독점·특혜운영 민중의소리. 2012년 11월1일.
http://www.vop.co.kr/A00000556872.html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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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지난 26일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동행 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6일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동행 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등록 :2015-07-31 20:38수정 :2015-08-01 09:44

 

 

[토요판] 커버스토리 / 김무성과 아버지 김용주

더 상세히 드러난 아버지 친일행적
아들은 왜 미국에서 큰절을 했을까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여느 정치인이 아니라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이기에 더욱 그렇다. 커다란 몸집과 당당하던 태도는 태평양을 건너자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넙죽넙죽 올리는 ‘큰절’은 환영은커녕 비웃음만 사고 있다. 아프리카 추장 같다거나 아예 부채춤을 추라는 조롱마저 날아간다. 그런데도 그는 내년에 또 큰절을 하겠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김무성 대표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서부터 발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료를 뒤적여보기 시작했다. 아뿔싸. 선친 김용주의 과거 친일 의혹은 빠르게 지워져가고 있었다. 대신 절세의 애국자로 변모하고 있다. 친일이 애국으로 둔갑하는 현실을 막아보고자 김 대표 부친의 과거 친일 발언을 공개한다. 천황폐하를 위해 자식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고약한 내용이며 A4 용지 3장 분량이다. 그런 부친의 과거를 바꾸려는 시도나 미국에서 하는 큰절이나 모두 한뿌리에서 나온 콤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천황폐하 찬양…아들은 미국 장군묘에 “감사합니다”

 

 

▶ 김무성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일제 때 발언을 보면 그가 상당한 인텔리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부터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역사를 넘나들며 일본과 조선이 한민족 한뿌리임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발언의 귀결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태평양전쟁에 용감하게 나서라는 것이다. 화랑 관창처럼, 사육신 성삼문처럼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다만 그 충성의 대상이 일본 천황일 뿐이다. 천황을 위해 벚꽃같이 지라고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미국을 방문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기행’을 보면서 “왜 저러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국내 보수층의 지지를 다지려는 의도’라고들 많이 분석하는데, 선뜻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이미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부동의 1위 아닌가. 표를 얻으려면 왼쪽으로 가야지 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만 가는지 설명이 안 된다. 분명히 손해 보는 짓인데 말이다. 그래서 ‘아!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김 대표가 초대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의 묘 앞에서 큰절을 두번 올리고 나서 묘비에 묻은 진흙과 새똥을 직접 손수건으로 닦으며 “아이고, 장군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는 기사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평가한 친형 이상득의 말도 떠올랐다.

 

“그런데 저래도 되나?”라는 게 이어진 의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1985년 작고) 전 전남방직 회장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김용주 회장은 일제 때 친일 행적이 분명한 사람이다. 해방 뒤에는 미군정청의 지원을 받았고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 전남방직을 전쟁중에 불하받아 부자가 되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그런 가계도 때문에 김무성 대표를 ‘친일-반공-보수세력의 총아’로 지칭한 적이 있다. 그러니 김 대표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라도 눈에 드러나는 친미 행위는 피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영 반대로 가고 있어 의아해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6일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한 뒤 묘비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6일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한 뒤 묘비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는 2년 전 ‘친일행적’ 정정한 적 없어

 

하도 이상해서 네이버에 김무성, 김용주, 친일 등의 단어를 쳐놓고 검색을 해봤다.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김용주 회장은 친일을 의심받기는커녕 절세의 애국자로 둔갑해 있었다. 각종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김용주의 친일을 해명하고 애국을 칭송하고 있는 거다. 2년 전쯤 분명히 같은 검색어로 찾아봤는데 그때하고는 하늘땅 차이였다. 글들을 클릭해서 읽어보고는 더 놀랐다. 그런 변화에 나 ‘김의겸 기자’가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년 전쯤 ‘백년전쟁은 계속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김무성 대표를 거론하면서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비판한 것이다. 김 대표는 즉각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는데 내 나름으로는 김 대표의 요구를 선선하게 받아줬다.

 

내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칼럼에서 “김 의원이 ‘빨갱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표현했는데, 알고 보니 종북주의자, 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라고는 했어도 빨갱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라고 정정해줬다.

 

부친의 친일 행적 부분도 반론을 보도해주는 걸로 쉽게 합의를 봤다. 그래서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 조선인 농민들의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였으며, 김 의원의 부친은 사재를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고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애국자적 삶을 살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없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라는 반론보도 문구를 김 대표의 변호사와 함께 작성했다. 반론보도는 정정보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정보도는 기자가 사실보도의 착오를 인정하고 내용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보도는 양쪽의 주장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방어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자인 나야 사실관계가 틀림이 없고 친일파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아들인 김무성 대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칼럼을 쓸 당시는 김무성 대표의 행위(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NLL) 발언 왜곡)에 분개했지만, 돌아가신 부친까지 끌어들인 건 나도 나중에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이런 곡절을 거쳐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그 직후 김 대표가 출입기자들에게 돌린 문자가 나한테도 한 다리 건너 전달이 됐다. 김 대표가 반론보도문의 성격을 자기한테 너무 유리하게만 해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더 이상 보도가 확산되는 걸 막으려는 걸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경악하기 전까지는.

 

2년 동안 생산된 기사나 블로그 글들의 제목을 몇 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김무성 “우리 부친은 친일파 아닌 애국자”

 

-김무성 친일 논란 정리, 해촌 김용주 선생의 애국활동

 

-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

 

-김무성 대표 아버지가 친일파가 아닌 13가지 이유!

 

-“아버지가 친일파라고…차라리 나를 모욕하라” 김무성 의원이 직접 말하는 ‘나의 개인사와 가족사’

 

2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는 김 대표의 가족사를 거론하며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 대표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 선친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무시하거나 관용으로 대했지만 이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고소 등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대응이 방어 차원을 넘어서 아예 공세로 넘어간 모양새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해명을 넘어 애국자, 애국활동으로까지 미화되고 있다. 김 대표 쪽의 적극적인 언론 접촉과 논리 제공이 있었을 테고, 가까운 언론매체나 지지자들이 글을 양산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런 환경 변화에 힘입었는지 김무성 대표의 공식사이트에도 ‘나의 아버지’가 비중있게 소개되는데, 부제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다.

 

경이로운 변화다. 게다가 내가 내보낸 ‘반론보도문’이 이런 세태 변화에 공헌하고 있다는 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김 대표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당시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해촌 선생이 친일행적을 보였다고 보도하자 김 대표는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애국자적 삶을 살았다’고 강조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을 요청했다. 결국 한겨레는 지난 2013년 10월 언론중재위 조정에 따라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를 냈다.” 정정을 해준 건 빨갱이 부분일 뿐인데 이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마치 친일 부분이 정정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어서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특정세력의 명백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기자인 내가 졸지에 공작 정치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을 간단하게 거론하는 <오마이뉴스>의 어느 기사를 보니 중간에 엉뚱하게 내가 작성한 반론보도문이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원문이 아니라 첨삭이 된 문장이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쪽에 기사 정정을 요구하며 그 반론보도문을 들이댄 모양이다. 내가 별생각 없이 합의해준 반론보도문이 나도 모르는 새 다른 언론의 재갈을 물리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겨레와 내가 조롱감이 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느 기사에서는 이런 치욕적인 글귀를 발견했다. “한겨레는 이전에도 김무성 대표와 관련된 기사에서 오보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부친이 친일파라는 보도와 김무성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허무맹랑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도 정정보도를 낸 적이 있었다.” 내가 허무맹랑한 기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닌데 회사마저 망신을 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 여당 대표
선친의 친일행적 의식했다면
방미 중 발언과 행위 안 나왔을 것
친일 콤플렉스 떨쳐 버린건가
굴욕적 친미발언과 큰절이라니

 

“진정한 내선일체…충실한 황국신민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질 영광”
‘미영 격멸’ 공직자대회 보도한
1943년 10월3일치 <매일신보>와
대회기록집에 김용주 상세 발언

 

 

A4 용지 3장 분량으로 드러난 김용주 발언

 

알고 보니 김무성 대표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김 대표의 부친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표적인 친일파로 등재됐다’고 논평을 냈다가 뒤늦게 동명이인임을 깨닫고 김 대표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김용주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니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러니 “김무성 부친 친일인명사전 민주당 거짓말! 사실 부친 김용주는 애국자” 등의 글들이 즐비하게 된 거다.

 

인터넷 경제전문지인 <스페셜경제>는 당시 “김무성 대표 부친 ‘친일 의혹’…거짓 속에 묻혀버린 진실. 알고 보니 애국자였다…친일 의혹 ‘명백한 공작’”이라는 단정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 기사에서는 “아울러 배 대변인의 거짓 논평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 역시 친일 의혹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면서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김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사정을 몰랐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알고 나서도 계속해서 침묵한다면 나는 역사 왜곡의 공범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친일을 감추고 싶어하는 것과 친일을 애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또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한겨레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다.

 

1941년 12월7일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 김용주 경북도 도회 의원이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가결됐음을 알린 <매일신보> 12월9일치 3면 기사.
1941년 12월7일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 김용주 경북도 도회 의원이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가결됐음을 알린 <매일신보> 12월9일치 3면 기사.
나는 사실 김무성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자료를 이미 2년 전에 확보하고 있었다. 김 대표가 “법적 대응에 임할 것”이라며 내용증명까지 보낸 판이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 말고도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에 나가서 새로 입수한 자료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확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미군정-전쟁-독재로 이어지는 뒤틀린 우리 역사에서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 후손들을 다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정서에서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가 아직도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가 여느 정치인인가. 집권 여당의 대표이고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차기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선친의 친일 행적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방미 중의 발언과 행위가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친일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쳐버렸기에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굴욕적인 큰절이 나오고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발언을 태연하게 뱉을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또 친일 타령이냐’거나 ‘웬 연좌제냐’는 얘기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건 <매일신보> 1943년 10월3일치 2면의 기사다. 징병제 시행을 고마워하며 미국과 영국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를 다룬 기사로서, 제목은 ‘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2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 각 의원들의 열론’(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이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일본명 金田龍周, 경북도회 의원)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敬神崇祖 報恩感謝)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가 간단해서 더 구체적인 자료가 없을까 찾다가 이 대회 사무국이 1944년 1월에 발간한 <징병제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을 발견하게 됐다. 그 책자에는 김용주의 발언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옮기고 보니 A4 용지로 3장이 넘는 분량이나 몇가지만 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회의에서 첫번째 의제는 “징병제 실시에 즈음하여 그 완벽을 기함과 함께, 2천500만 민중에게 고마우신 성지(聖旨)를 철저하게 젖어들게 하도록 구체적 시책 의견”이었다.

 

김용주는 박수를 받으며 등단해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고 말하며 구체적 방책들을 제안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 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이다. 그는 이어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부모들이 천황폐하를 위해 기꺼이 자식의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면 단위마다 신사를 세워 신앙심을 고취시키자는 고약한 내용이다. ‘일본동맹통신사’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김용주는 말만 내세운 게 아니라 실제로 대구신사를 건립하는 데 2천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온다.

 

더 심한 건 신라시대 화랑 관창과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의 사례를 들며 “우리는 이처럼 의용충렬한 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자손인 자가 분투하여 굳건한 각오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논리를 편다. 우리 조상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오늘에 되살려, 일본 천황을 위해 떨쳐일어나자는 얘기다.

 

 

2년 전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행적 비판한 ‘한겨레’ 칼럼
반론기회 줘 반론보도문 게재
그뒤 인터넷 포털에서 김용주는
친일은커녕 애국자로 둔갑했다

 

김무성 대표 쪽은 언론중재위에서
“매일신보 믿을 수 없다”고 반박
한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가
반도의 민지 계발에 공헌한다”며
한글판 추가발행까지 제안하기도

 

 

김용주는 자서전에서 친일행적 숨겨

 

김용주는 이어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한글판을 매주 1회 발행하자고 제안하며 그를 통해 “영미화란의 과거 수백년 동아침략의 실정 및 과거 현재에 통틀어 약소하고 전쟁에 패한 국가민족의 말로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애달기 짝이 없는 것인지를 명시하여 정부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일억 국민은 굳게 단결하여 죽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맺는다.

 

김용주는 두번째 안건에도 등장해 발언을 한다. 안건은 “대동아전쟁 바야흐로 저편과 이편이 결전양상으로 바쁘고 어지럽고 맹렬하게 됨을 돌아보고, 더욱 미영격멸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 조선서 필승 신념을 고양하며, 전력증강, 전시생활의 확립을 한층 심화 철저히 하는 건설적 의견”이다.

 

그는 이 의제와 관련해 “반도 2천500만의 반수인 부녀자의 생산방면 활동”을 높이기 위해 “취사는 아침 밤 2번으로 하고, 점심은 도시락제로 할 것” “요릿집, 음식점 등 유흥음식 시간을 미영격퇴까지 당분간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 자료를 통해 <매일신보>를 바라보는 김무성 대표 부자의 시각차가 드러나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는 2년 전 칼럼에서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를 근거로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는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썼다. 실제 그날치 신문 기사를 보면, 김용주는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다. 거기서 그는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했고, 이는 만장일치로 가결된다. 그리고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에 선출되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쪽은 “<매일신보>가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고 당사자가 작성하지 않은 기고문조차 매일신보 기자가 임의로 작성해 보도한 사례가 있는 만큼 믿을 수 없다”고 언론중재위에서 반박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는 반도의 민지(民知) 계발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다”며 <매일신보> 한글판을 추가로 발행하자고까지 했으니 우리 역사의 씁쓸한 한 단면이다.

 

김용주도 해방 이전 자신의 행적을 숨긴다. 그는 작고 1년 전인 1984년 <나의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을 펴내는데, 일제 말 행적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이러한 시국하에서는 만사에 있어 조심스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43년부터는 일제 치하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 후퇴하여 8·15 해방에 이르기까지 칩거생활로 들어간 것이다.” 1943년의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 발언은 깨끗하게 지운 것이다.

 

 

긍정적 평가할 대목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자료로 인해 김용주 전 회장이 단박에 ‘친일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용주 전 회장의 일대기 가운데 후손들이 평가해야 할 대목 또한 많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교육받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경영난으로 존폐위기에 처한 영흥학교를 새롭게 설립한 점이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당시 주일공사였던 김용주가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 5대 궁궐과 4대문 등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해가며 우리 역사 유물과 주요 문화재들을 보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하니 크나큰 공로다. 단지 이 자료를 계기로 있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시인 김수영이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고 노래했듯이 친일과 독재라는 우리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고쳐나가려는 용기만이 우리를 진창의 역사에서 구원해줄 거라고 믿는다. 큰 꿈을 꾸는 김무성 대표가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라야 열강의 틈바구니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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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민군 성조기 짓 밟으며 반미 의지

 
 
미국에 굴복하지 않고 짓밟겠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1 [21: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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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지난달 열린 정전협정 체결 62주년 기념 공군지휘관 전투비행술 경기대회에서 성조기를 짓밟는 의식을 하며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연합뉴스는 1일 조선중앙TV가 새로 제작한 기록영화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2돌을 맞으며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2015를 지도하시였다'를 방영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대회는 개건 확장된 강원도 원산의 갈마비행장에서 지난달 29일 진행됐다.

 

연합뉴스는 기록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투비행술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열린 인민군 종합군악대의 군악예식과 연주회에서 조선인민군 군인들이 성조기를 짓밟는 의식을 벌이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군인들이 하늘 높이 쳐든 인공기와 달리 바닥에 질질 끌며 행사장에 입장한 성조기 두 장은 이내 군악대의 군화에 무참히 짓밟히는 '수모'를 당했다고 표현했다.

 

기록영화에는 이번 경기대회 의식 중 하나로 조선 군인들이 미국 성조기를 짓밟는 장면이 담겼다.

 

북 매체들은 조종사들의 출격에 앞서 인민군 종합군악대의 군악예식과 연주회가 있었다고 전했는데 
이 때 성조기를 짓밟는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 군인들이 성조기를 행사장 잔디 바닥에 넓게 펼치자 군악대가 대형을 바꾸면서 잇달아 성조기를 밟고 지나갔다.

 

시커먼 군화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성조기는 본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군악대가 정전협정 체결일(7월27일)을 뜻하는 '7.27' 대형을 갖추자 인공기와 최고사령관기를 든 군인 두 명이 성조기 두 장을 각각 밟고 올라 인공기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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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전역에 버려진 쓰레기 수백 톤, 썩어가고 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8/02 09:55
  • 수정일
    2015/08/02 09: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보에 가로막힌 금강, 떠내려온 쓰레기에 '몸살'

[현장] 금강 전역에 버려진 쓰레기 수백 톤, 썩어가고 있다

15.08.01 18:20l최종 업데이트 15.08.01 18:2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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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보 상류 450m 지점 수상공연장 부근에도 각종 부유물과 쓰레기로 긴 띠를 이루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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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보에 가로막힌 쓰레기와 죽은 물고기가 뒤섞여 강에 악취가 진동한다. 관리의 손이 닿지 않는 둔치공원은 잡풀만 우거진 채 방치돼 있다. 이용객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달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양일간 찾아간 금강의 모습이다. 한낮 기온이 33℃까지 오르면서 폭염주위보가 내려진 가운데 지난 장맛비에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가는 곳곳 널브러져 있다. 수자원공사(아래 수공)로부터 용역을 맡은 업체가 보트까지 띄워서 치우고 있지만, 여전히 강변에는 죽은 물고기와 쓰레기가 뒤섞여 나뒹굴고 있다.

먼저 찾아간 세종보 수력발전소에서는 작업자들이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를 걷어 내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부유물 유입을 막기 위해 수공은 오탁방지막을 설치했지만, 밀려드는 쓰레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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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보 상류 500m 지점 마리너선착장에 장맛비에 떠내려온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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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은 녹조와 부유물을 밀어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물고기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수차(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기계)를 이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수차는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단골코스인 공주보 상류 쌍신공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티로폼, PVC 페트병과 각종 생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죽은 이끼벌레와 죽은 물고기에는 구더기가 생기고 날파리까지 뒤엉켜 악취를 풍긴다. 상태로 보아 오래전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이번 장맛비에 떠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도 금강을 따라가는 동안 강물과 강변에 떠다니는 쓰레기는 끝이 없었다. 일부 수거가 된 것을 제외하더라도 어림잡아 수백 톤에 이른다.  

"사용도 못하는데..." 무용지물 공원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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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보 하류 400m 지점 웅진공원의 자전거 보관소와 벤치(화살표)가 수풀에 가려져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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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끝난 강변 둔치는 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되면서 사람들이 찾는 장소는 잡풀이 우거져 있다. 야생동물들이 놀아야 할 곳에는 꽃이 심어져 있는 등 비효율적인 관리로 예산만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들어 놓으면 뭐해요, 사용도 못 하는데."

세종시에서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한 이용객은 공주보 자전거 도로 옆에 설치된 공원시설물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공무원인 이아무개(남 46)씨는 "장식용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공원을 만들었으면 관리를 해야지 풀이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용하느냐"며 관리주체를 비난했다.   

공주보 하류 웅진공원은 주차장과 보의 특수성 때문에 그나마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과 더위를 피해 찾아 온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웅진공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잡풀이 많이 우거져 이용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자전거이용객을 위해 설치한 보관대와 벤치에도 잡풀에 뒤덮여 있다. 넓은 공간에 설치된 데크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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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도 찾지 않은 공주시 탄천면 견동리 청남지구에 공주시가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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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서 공주시 탄천면 청남지구 견동리 쉼터와 인근 둔치 6만 평 정도는 공주시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4대강 사업 이후 코스모스를 심고 가꾸는 곳이다. 도심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20분가량 걸리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예산낭비의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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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자원공사로부터 강변의 부유물 수거 용역을 맡은 업체가 공주보 상류에서 보트를 이용하여 쓰레기 수거에 나서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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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관리가 엉망인 곳은 비단 공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종시, 부여군, 청양군, 논산시, 서천군과 전북 익산시, 군산시 등 일부 구간도 잡풀이 우거진 채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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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없는 것은 ‘미래’

 
 
야당은 당 밖에서 홀로 외치는 천정배만 있을 뿐
 
이진우  | 등록:2015-07-31 18:07:15 | 최종:2015-07-31 18:14: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직업상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들과 자주 접하면서, 저희 세대(옛 386)와 2030세대 간 소통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전두환 군사정권, 광주민주항쟁, 87년 직선제 개헌, 88년 서울올림픽, 여소야대 국회와 5공 청문회 등이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현재의 2030세대에게 그것은 그저 역사 교과서 속의 평범한 내용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이 별반 다르지 않으며, 도리어 박태환이 수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김연아가 피겨 금메달을 딴 2010년 벤쿠버 올림픽이 더 의미 있는 대회로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 큰 아이가 올해에 대학생이 되었고, 이제 내년 총선에서는 유권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세대의 경우에는 더 큰 간극이 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2년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2002년 월드컵 4강, 2002년 노무현 열풍... 이 모든 것 또한 역사 교과서 속의 평범한 내용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오직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해서만 단편적인 기억을 갖고 있을 뿐이죠.

정치인 문재인과 격랑 속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직시해야 할 현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의 생존 사이클 속에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40대 후반 이상의 기성세대에서 보수여당이 비교우위를 누리는 상황에서 진보야당이 가야할 길은 현재의 2030세대와 앞으로 매년 새롭게 유권자로 유입되는 현재의 10대 후반과 소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까지도 김대중, 노무현, 호남, PK, 민주화, 6.15선언, 촛불집회, 반독재, 민중, 반미, 반제국주의 등의 레토릭을 20년 넘게 그대로 외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로 넘어오는 권위주의 정권보다 참신하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030세대와 제 자식 세대에게 있어서는 역사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똑같은 ‘과거’일 뿐이죠.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한동안 격변의 연속이었습니다. 1992년 역사 바로 세우기와 5공/광주 청문회, 1997년 헌정사상 첫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2002년 노무현 돌풍까지… 정말 질풍노도의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선거의 승자는 항상 ‘미래’를 이야기한 세력이었고, 대선 이후의 정국 또한 미래를 위한 개혁과 쇄신이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 대선부터 이 같은 프레임이 깨져버렸습니다. 이 무렵부터 진보야당은 보수여당과 차별화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명박이 박정희의 향수를 자극할 때 민주당은 과거-현재-미래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가운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가 참패를 면치 못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먼 과거를 이야기하는 보수여당에 맞서 가까운 과거를 이야기하며 또다시 패배했습니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까지도 ‘노무현 프레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와 쇄신을 말하지도 못하고, 혹 말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보야당… 그것이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입니다.

야당이 헤메고 있는 사이에 새누리당은 그들 수준에서 미래를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김무성은 열린 소통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며 탈권위주의적인 새로운 계파수장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고, 유승민은 ‘따뜻한 보수(합리적 보수)’를 표방하고 있고, 남경필과 원희룡은 도정경험을 토대로 상생정치를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야당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현재 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이 국민의 관심을 못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김대중 시즌2’와 ‘노무현 시즌2’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는 빤히 보이는 시나리오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는 그 향배가 중요할지 모르지만 2030세대와 제 자식세대에게 있어서는 과거와 과거의 노선투쟁일 뿐입니다. 중국 공산당으로 말하자면 모택동과 등소평 중 누가 맞는가를 놓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오픈프라이머리…탕평인사…우클릭…개헌…선거제도 개펀…국회의원 정수 조정…이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거기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 쏟아내는 메시지, 당직인선, 제도개혁 중 어느 곳에서도 ‘미래’를 향한 꿈, 의지, 열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승민은 현직 대통령과도 맞짱을 뜨며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야당은 당 밖에서 홀로 외치는 천정배만 있을 뿐 당내에서 문재인과 맞짱을 뜨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대로 가면 현재의 권력 프레임에 이어 미래의 권력 프레임까지도 보수여당에게 선점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2007년 대선에서 과거 냄새가 물씬 풍겨났던 이명박이 미래를 이야기하고 미래 향기를 듬뿍 쏟아냈어야 할 정동영이 과거로 비쳐졌던 아픔을 2017년 대선에서 또다시 겪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 문재인과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없는 것은 바로 ‘미래’입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29&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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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고래가 시장바닥 생선입니까"

[작은것이 아름답다] 고래·① 고래 사랑의 시작은 '분노'
 
정일근 경남대 교수2015.07.31 17:44:18
 
 

저는 시인입니다. 대학에서 강의하지만, 고래와 무관한 전공입니다.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울산에 주소를 둔 1992년 뒤로 '고래의 파수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울산광역시는 자칭 '고래도시'입니다.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속의 고래부터, 천연기념물 제126호인 귀신고래회유해면인 고래바다를 가졌습니다. 여기에 장생포항이 있습니다.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고래잡이에 대한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한 1985년까지 포경기지였습니다. 장생포 일대는 전국 유일의 고래문화특구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 주체인 고래들에겐 죄짓는 일입니다. 이런 환경이 저를 고래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생포에는 고래를 잡을 때보다 고래잡이가 중단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20배나 많은 고래고기 식당이 즐비합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일의 그 처음은, 분노에서 시작됐습니다. 고래에 대해서는 분노할 줄 알 때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울산에서,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고래를 사랑하는 일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 우리 고래의 현주소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 고래보고서는 시인으로 다소 '감성'적이고,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으로 지극히 '감정'적인 보고서라는 것 또한 밝힙니다.

 

▲ 울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참돌고래. ⓒ정일근


당신은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텔레비전이나 영화, 수족관 속 돌고래가 아니라 우리나라 바다에서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고래박물관의 고래모형이 아닌 살아 있는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비싼, 죽은 고래고기가 아닌 우리 바다에서 힘차게, 살아서 헤엄치는 고래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고래의 가장 큰 매력은 장엄한 항진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누구나 반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고래는 절대 제 모습을 온전하게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고래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고래의 출현은 순식간입니다. 한순간의 만남, 그것만으로 사랑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픈 사실이지만, 고래는 죽어서야 제 모습을 다 보여줍니다.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를 언론이 '바다의 로또'라는 '치 떨리는 비유'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금액까지 밝히는 일은 고래 살상에 대해 암묵적으로 사행심을 조장하는 동의입니다.

고래와 돌고래는 같지만 다른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웨일(Whale)'과 '돌핀(Dolphin)'으로 분명히 분류됩니다. 둘 다 바다 포유류이지만, 큰 고래는 가족 단위로, 작은 돌고래는 무리지어 행동합니다. 

울산에서 돌고래류는 자주 마주치지만, 고래류는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역설이지만 고래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연구원이 아닙니다. 불법포획꾼들입니다. 한 번 보기 힘든 고래를 많게는 수백 마리씩 잔인하게 잡아갑니다. 잡아서는 감시의 눈을 피해 바다에서 해체합니다. 어느 핸가 불법포획꾼들이 고래 100여 마리를 잡아 해체해 지리산 대형 창고에 보관하다 적발된 사실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살아야 할 고래가 죽어 지리산이라니! 지금 이 시간, 고래는 처참한 살육의 방식으로, 죽음의 사이렌을 울리며, 자신의 피로 바다를 붉게 적시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 귀에는 고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 지난 5월 19일 울산 앞바다에서 통발어선의 어구 줄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밍크고래. 이 고래는 경매를 통해 1710만 원에 팔렸다. ⓒ연합뉴스

 


저는 고래와 돌고래를 대체로 많이 만난 편입니다. 우리 바다에 대형 고래류는 대부분 멸종 상태입니다. 제 눈으로 본 고래는 10미터(m) 정도 크기의 밍크고래가 전부였습니다. 브라이드고래는 죽은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울산시가 2000년 초반에 고래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고래보호운동가의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울산고래축제를 만드는 울산고래문화재단의 이사와 감사를 지냈습니다. 그 무렵부터 울산시가 본격 고래조사를 시작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고래를 찾아 바다로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고래와 시인은 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영애 울산환경교육연구소 대표는 '울산에서 정일근 시인과 몇 번 고래조사를 함께 나갔었는데, 신기하게 시인은 고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곤 했다. 필자는 시인이 고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어딘가에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원시여서 두툼한 렌즈의 안경을 씁니다. 그런 제 눈이 고래를 발견하는 확률은 높았습니다. 고래의 발견은 "저기, 고래!"라고 환호하는 일순간의 짜릿함입니다. 그 순간 고래는 가족을 데리고 바다 깊숙이 숨어버립니다. 그 찰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살아진다"(정일근 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일입니다. 

돌고래는 낫돌고래와 참고래 떼를 자주 만났습니다. 돌고래는 많게는 수천 마리씩 몰려다닙니다. 그 대형 행진의 한가운데에서 장관을 보는 일은, 동해라는 푸른 피아노를 돌고래가 건반이 돼 연주하는 열정 소나타 연주를 듣는 일입니다. 돌고래는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200여 개 언어를 가졌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돌고래 떼와 사람이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온갖 묘기를 보여주며 장난을 치며 놀리다 갑니다.

20년 전 고래를 사랑하면서부터 제가 내건 슬로건은 '고래는 문화다!'였습니다. 고래는 바다에 생존하는 살아 있는 '문화 아이콘'입니다. 남북을 자유롭게 회유하는 '통일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고래가 가진 위대한 모성은 죽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되살려줍니다. 

저는 '고래시'를 쓰고, 노래로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2005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울산에서 개최됐을 때 <고래와 노래>란 한영시집을 만들어 선물했습니다. 김남조, 고은, 신경림 시인을 비롯해 한국의 대표시인 50명이 참여했습니다. 국제 NGO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시집은 세계 최초의 고래시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고래는 통과의례가 됐습니다. 

울산 해안선 155킬로미터(km) 밖의 바다를 '고래 바다'로 선언하고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을 만들어 '고래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고래의 날을 기념하며, 전국의 문학인을 초대해 '대한민국 고래문학제'를 개최해왔습니다. <고래와 문학>이란 무크지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장생포에 돌고래 생태체험관이 만들어지고 난 뒤 일본 돌고래 4마리가 찾아왔습니다. 돌고래들에게 한국 이름과 주소와 주민번호를 선물해 장생포 주민으로 귀화시켰습니다. 한국시인협회에 건의해 그 돌고래들에게 '자연시인증'을 선물하고 명예회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 '고래의 날'인 지난 4월 25일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대표 시인 정일근·경남대 교수)이 주최하고 푸른고래가 후원한 '고래를 위한 헌정시 콘서트(Tribute Concert for Whales)'가 시인과 시 낭송가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시 남구 장생포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이런 문화와 생태를 바탕에 둔 고래콘텐츠를 행정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래의 날'이 그렇습니다. 울산 남구청의 요청으로 고래의 날 주도권을 양보했습니다. 해마다 해오던 공동기념식을 올해는 통보 없이 취소했습니다. 그래도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은 조촐하지만, 고래의 날 기념식을 했습니다. 새 구청장이 전 구청장이 하던 고래사업을 '깔아뭉갠다'고 공무원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고래밥상'도 그렇습니다. 고래축제에 고래고기를 판매해 20억 원을 투자하는 '울산고래축제'에 대한 여론과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고래밥상이란, 고래가 좋아하는 밥상입니다. 고래축제의 이름값을 찾기 위해 미역과 울산지역 바닷물고기로 밥상을 차리자고 제안했는데, 고래고기로 만드는 고래밥상으로 변질됐습니다. 

여전히 정부와 행정의 고래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바다 포유류며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 상태인 고래를 환경부가 아니라, 농림수산식품부가 관리하는 것을 아십니까? 그건 정부가 바다의 꿈인 고래를 '생선 취급'하는 것입니다. 생선이라 하기에 고래는 바다의 오염으로 중금속 오염이 높은 동물입니다. 정부는 고래고기의 중금속 오염에 대해 입 다물고 있습니다. 그건 '너희들 알아서 처먹어라'는 대국민 욕과 같습니다. 저도 정부에 욕 좀 해야겠습니다. 

"젠장, 고래가 어디 시장바닥서 파는 생선입니까?" 

단지 바다 생선을 좋아하는 이유로 부산시민 중금속 오염이 서울시민에 비해 3배나 높습니다. 고래고기는 12가지 맛이라 자랑합니다. 그러나 중금속까지 13가지 맛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고래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검어지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울산 남구청은 태화강과 장생포로 이원화된 고래축제 장소를 고래고기의 본산인 장생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고래박물관은 잔인한 포경박물관이고, 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를 만나고 나오는 어린아이들 눈앞에서 고래고기를 삶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고래고기를 파는 현실은 최근 파문을 일으킨 '잔혹 동시'보다 더 잔혹한 동화의 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최근 장생포 고래마을을 만든 것은, 고래잡이의 추억을 되살려 결국은 우리 바다에서 포경을 재개하겠다는 '악의'로 읽힙니다, 저는. 

또 묻습니다. 당신은 우리 바다에서 고래가 공식으로 6시간에 한 마리씩 죽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불법포획으로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래가 죽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은밀하게 불법 거래된 고래고기들이 당신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똑같이 10개월을 임신해, 제 새끼를 출산해 미역을 먹고 젖을 불려 자식을 키우는, 우리 어머니 같은 고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고래는 생명이며, 모성이며, 문화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쩌자는 것입니까? 고래를 멸종시켜 바다를 죽이고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환호하는 바다의 꿈까지 모조리 멸종시키려는 겁니까? 시인 한 사람 키우지 못하는 무뇌(無腦)의 바다를 만들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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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뽑았던 농민, 벼 들고 상경한 까닭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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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8/01 12:50
  • 수정일
    2015/08/01 12: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전국농민대회, 1000여 명 농민 참가

15.07.31 21:47l최종 업데이트 15.07.31 21:5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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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쌀용 쌀 수입에 분노한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미국산 칼로스 쌀 포대를 망치로 내리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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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쌀 반드시 지켜 주겠다드마 잘 지켰네, 잘 지켰어! 우리 집에 못 판 쌀이 쌓여있어!"

'두 줌'의 벼를 들고 여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남윤관(61)씨는 "벼 두 줌이 밥 한 공기인데, 100원이야 100원!"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현재 산지 쌀 한 가마니(80kg) 값은 약 16만 원이다. 한 가마니로 150공기의 밥을 지을 수 있으니, 벼 '두 줌'은 약 100원인 셈이다. 그는 이 가격이 1995년 쌀값과 같다고 주장했다.

1000여 명의 농민이 31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23일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식품부)의 '밥쌀용 쌀 입찰공고'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우리 쌀이 남아도는데도 미국 눈치 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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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농민대회,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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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쌀 손수레에 싣고 정부서울청사로 향하는 농민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한 농민이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의 가면을 쓴 채 수입쌀을 손수레에 싣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국내 쌀값 폭락과 쌀 재고 문제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밥쌀 수입을 강행하는 것은 정상적 정부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며 "정부의 밥쌀 수입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오는 11월 14일 10만 농민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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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쌀은 두 종류로 나뉜다. 밥쌀용과 가공용이다. 밥쌀용은 말 그대로 밥 짓는 데 사용된다. 막걸리 등 쌀을 넣은 가공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가공용이다. 밥쌀용은 실제 밥상에 올라가는 것이므로 품질이 좋고 가격이 높다. 따라서 밥쌀 수입은 쌀값이 정해지는 데 중요한 요소다.

쌀 시장 개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관세를 매기거나 의무수입물량을 정하는 것이다. 수입쌀에 부과하는 관세의 수준을 정하는 방식이 쌀 관세화이다. 다른 하나는 정해진 물량만큼 쌀을 수입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쌀 관세화 이전까지 한국은 의무수입물량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중에서도 30%는 반드시 밥쌀용을 수입해야 했다.

지난해 정부는 쌀 관세화를 추진했다. 513%의 관세를 매겨 쌀을 수입하겠다는 '양허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지난해 9월 제출했다. 이때 양허표에서 30%의 밥쌀용 쌀 수입을 비롯한 의무 조항 또한 삭제되었다. 그래서 관세화로 인해 밥쌀 수입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쌀 수입을 계속 추진해 농민들이 화가 난 것이다. 올해는 쌀 수입을 두 차례 시도했다. 지난 5월 정부는 쌀 수입을 추진했으나 농민들의 반대로 인해 유찰되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는 밥쌀용 3만 톤을 포함한 쌀 4만1000톤을 수입한다는 구매입찰 공고를 지난 23일 냈다.

"나도 박근혜 뽑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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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농업 챙기겠다는 약속 이행하라"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한 농민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적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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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써 키운 벼 뽑아 집회 참석한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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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가 미국에 가서 하는 짓 보셨습니까? 우리나라 여당 대표 맞습니까? 그러니까 미국이 쌀 사라고 얘기하면 밥쌀 수입하지 않겠다던 우리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 이동필 장관은 '미국 쌀 판매과장'입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마이크를 잡는 순간부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13% 관세율로 쌀 관세화를 했으면 의무수입을 없애는 게 주권국가의 자세"라며 "우리나라에 쌀이 남아도는데도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밥쌀을 수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여주 농민회의 박아무개(63)씨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에 새누리당이 온 농촌 지역을 돌아다니며 우리 쌀을 지켜내겠다고 홍보했다"라며 "나도 박근혜를 뽑았었다"라며 탄식을 했다. 이어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노인들도 이 사안만큼은 비판하고 있다"라며 "이제 대놓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는 농민 단체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3학년 남아무개 학생은 "지난 5월에도 (시위하러) 서울에 올라왔는데, 또 올라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 꿈은 농사를 짓는 것"이라며 "수시 합격한 대학교 학과도 농사 관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사를 공부하기도 전에 쌀값 폭락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상경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답게 살려고 농사지어도 남는 것은 쭉정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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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쌀용 쌀 수입 저지 위해 거리로 나온 농민들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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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은 농사꾼 특유의 흥으로 메워지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하던 중 한 아이가 벼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동필 장관의 사진을 내려쳤다. 농민들은 박수를 치며 다 같이 함성을 질렀다. 농민들은 서로에게 "노래 한 소절 해보라"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한 농민들은 수입 쌀 여러 포대를 바닥에 깔고 큰 망치로 내리쳤다. 쌀 위에는 이동필 장관의 사진도 함께 놓여 있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청사 앞에 있지만, 사실은 미국 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같다"라며 "한국과 미국의 대표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두 대표가 나와 협상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다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밥쌀 수입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아낼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라며 "우리는 11월 14일 10만 농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선포했다.

농민들은 이날 집회 현장을 '아스팔트 농사'라고 표현했다. 집회 중엔 수시로 농민들의 노랫가락이 곳곳에 퍼졌다. 마지막 정리 집회 또한 노래로 마무리됐다.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사람답게 살겠다고 죽자사자 일해도 남는 것은 쭉정이뿐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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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농민대회, '밥쌀 수입 중단하라'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자협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밥쌀용 쌀 수입 정책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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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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