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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윤치호가 독립운동가? 법무부의 황당 동영상

 

[발굴] 광복 70주년 동영상 논란, 독립운동가 '이회영' 이름도 잘못 기록

15.08.14 19:45l최종 업데이트 15.08.15 09:5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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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인터넷에 게시한 동영상.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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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15일 오전 9시 58분]

광복 70주년을 맞아 법무부가 정부기관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윤치호를 독립운동가 12명 안에 넣은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유초중고 학생 교육용 사이트 '법사랑 사이버랜드'와 유튜브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8월 12일 '팔월 광복절'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게시했다. 4분 36초 분량의 이 동영상을 살펴봤더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12명에 윤치호가 사진과 함께 들어 있었다(15일 오전 9시 58분 현재, 동영상이 사용자에 의해 삭제된 상태라 나온다). 

하지만 윤치호(1865~1945)는 105인 사건으로 출소한 뒤 조선총독부 일간지인 매일신보에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중일전쟁에 청년들이 자원입대할 것을 호소한 친일파다. 친일세력을 총망라한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이었던 그는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2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에 윤치호를 포함한 704명의 이름이 실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문서를 보고했다. 윤치호는 같은 해 나온 관보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이 올라갔다. 

윤치호는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친일인명사전>에도 대표적인 친일행위자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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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인터넷에 게시한 동영상.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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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법무부 동영상은 독립운동가 1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희형'이란 인물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 또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이름 두자를 모두 잘못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회영은 현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할아버지다. 

법무부는 이번 동영상에서 "광복절은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날로 기억해야 한다"면서 "광복절을 통해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던 독립운동 선열의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둔갑"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윤치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해 관보에까지 실었는데, 법무부가 그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소개한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면서 "게다가 이회영 선생의 이름까지 엉터리로 기재한 것은 정부가 얼마나 독립운동가를 업신여기는지 뒷받침해주는 징표"라고 비판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도 "이처럼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현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그 내용이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기자는 법무부의 해명을 듣기 위해 해당 사이트 운영 부서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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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8/14 [21: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광복 70년! 분단 70년! 박근혜 정부 통일정책 평가 토론회'     ©자주시보

 

지난 13일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와  '우리사회연구소' 공동 주최 '광복 70돌,남북은 왜 만날 수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광복 70년! 분단 70년! 박근혜 정부 통일정책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측에서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전민족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의 길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남북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정확한 문제점을 알아야 남북관계 개선의 활로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기에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토론회를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발제 :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토론 1 : 박근혜 정부 ‘통일대박의 꿈’은 실현될 수 있나 
(백남주 <통일경제론> 저자)

 

토론 2 :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설치의 문제점 
(김준성 민권연대 정책실장)

 

토론 3 : 북한관련 언론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이동훈 NK투데이 취재보도국장)

 

이중 토론 3의 내용은 이미 자주시보에 보도한 바 있어서 발제문과 두 토론 논문을 하나씩 본지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여기서는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의 발제문 전문을 소개한다.]

 

▲ 광복 70주년 기념 토론회     © 자주시보

 

 

[발제문] 민족공동행사, 왜 이렇게 어려워졌나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올해는 광복 70돌이자 분단 70돌을 맞는 해이다. 남북해외의 온 민족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했고, 6월 15일 서울에서, 8월 15일 평양에서 민족공동행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지난 6.15 민족공동행사에 이어 다가오는 8.15 민족공동행사도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1) 6.15 공동행사를 무산시킨 정부의 개입


이미 지난 6.15 15주년 행사에서부터, 통일부의 개입으로 인해 6.15 민족공동행사 준비가 온갖 난항을 거듭한 끝에 끝내 성대히 개최되지 못하였다. 지난 5월 5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남북해외 실무회담은 일정이 연기되면서도 논의를 계속하였지만 끝내 행사장소를 명기하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5월의 실무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것은 남측에서 그동안의 합의사항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6.15 민족공동행사, 광복 70돌 남측 준비위원회’의 이승환 대변인은 실무회담에 나온 북측인사에게 광복 70돌 8.15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애당초 남, 북, 해외의 민간이 주도하는 6.15 민족공동행사, 광복 70돌 준비위원회는 6.15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논의하면서 8.15 행사는 평양개최를 전제한 분위기였다. 남측 준비위원회도 올해 초 6.15 민족공동행사의 서울개최를 논의하면서, 남북을 번갈아가며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한 관례상 8.15 행사는 평양에서 할 것이라는 구두 논의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5월 5일의 선양 실무회담에 참여한 관계자는 지난 3월 11일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광복 70주년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입체적으로 진행되면서도 “6.15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다면 광복 70주년 행사는 북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승환 대변인은 왜 난데없이 8.15 서울개최를 언급해 회담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여기에는 통일부가 개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통일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 5일의 선양 남북 민간접촉을 앞두고 남측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광복70돌 8.15 행사의 서울개최를 북측과 합의해 오면 6.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것을 승인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했다고 한다. 이것은 “6.15행사보장”을 미끼로 “8.15 서울개최”를 먹어보자는 심산이다. 그래놓고도 정부는 6.15 행사가 통일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는지 6.15 행사를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한 사회문화교류로 허용한다는 반쪽짜리 허용입장으로 제동을 걸었다.


결국 6.15 민족공동행사는 남북해외 실무회담에서 ‘6.15 서울, 8.15 평양’을 전제로 준비가 한창인 상황에 통일부가 중간에 끼어들어 8.15 서울개최를 제시한 격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남북관계란 정부당국의 허가 없이는 순탄히 이뤄질 수 없으니 좋으나 싫으나 정부당국이 제정하는 규범과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남북관계의 핵심은 단순히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아니다. 남북이 지난 시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수많은 교류협력사업을 펼쳤지만 오늘날 이렇게 관계가 가로막힌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북관계를 제도적으로 안착화시킬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의 교훈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간 못 만났으니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식으로 남북공동행사를 개최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 여전히 팽팽한데 박근혜 정부가 8.15 대회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의한 까닭은 어디 있는가?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집권중반기 지지율을 끌어올려보자는 심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8.15 서울개최는 결국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근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8.15 서울개최는 같은 통일부의 입장을 박근혜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른, 통일부 장관의 고심에 찬 결단으로 보아야 할까?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의 입장은 곧 통일부의 입장이었으며 마찬가지로 통일부의 입장은 곧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도 박근혜 대통령 말 잘 들어서 장관직에 오른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통일부의 6.15 행사 개입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해석해도 충분하다.

 

 

2) 8.15 행사에서 재현된 개입


6.15 민족공동행사가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무산된 데 이어 이제 8.15 행사마저도 정부의 개입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8.15행사는 남과 북, 해외의 민간단체들간 합의로 북측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는 북측행사에 참여할 방북대표단을 구성하여 그 명단을 북측에 전달하려 했다.


지난 8월 4일 준비위 운영위에서는 8월 7일까지 사무처와 조직위가 협조하여 100여명의 방북대표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의견을 모으고 8.15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준비위의 이창복 의장은 8.15 민족공동행사 참가를 반드시 성사시키자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승환 대변인은 상임대표들이 100명의 명단을 확인해야 명단을 북측에 보낼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며 방북신청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이를 이창복 의장께 보고도 하지 않아 준비위 내부에서 상황파악에 혼선이 초래되는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결국 북측에 방북인사들의 명단이 도착하지 못해 8.15 행사의 남측대표단 방문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는 정부의 눈초리만 바라보며 8.15 민족공동행사를 정부의 입김에 맞추려 했던 일부 인사들이 빚어낸 묵과할 수 없는 하극상이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민간단체들의 행사도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남북관계가 정부의 관리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북관계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며 이는 광범위한 민간이 주체로 나서야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 정부와 민간은 서로 견제하면서 도와나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야지, 민간이 정부의 눈치만 보려 해서는 보수정권의 아바타를 자임하는 관변단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남북관계의 실무를 말하기 앞서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현재 진보진영의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일정한 역할을 책임지시면서 남북관계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받는 분들은 대체로 지난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부터 이 땅의 통일을 위해 사선을 헤치고 혈로를 뚫어가며 싸워오신 분들이다. 이들은 통일운동의 직선주로를 매진하다 국가보안법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난 70년의 통일운동사에서 통일운동세력이 스스로 보수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통일운동의 숨결을 정부의 장단에 맞추려 노력했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로서 박정희 정권의 사상과 이념을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평가받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와 지원 아래 펼쳐지는 통일운동이란 대북공세와 흡수통일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현 정부가 실제로 박수치고 후원해 준 대북사업도 실제로는 북한인권사무소 개설과 대북전단 살포 밖에 없었다.


지금 일각에서 벌어지는 정권의 눈초리에 8.15 행사를 조절하려는 작태들을 광복 70주년을 빗대어 말한다면 일제의 승인을 얻어 독립운동을 하려는 개량주의 망상의 재현이다. 

 

 

3)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은 박근혜 정권


<노컷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었을 수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첩보보고를 “이런 건 빨리 알려서 북한 실상을 국민들이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고 지시를 해 한국사회에서 온갖 논란을 낳았다고 보도하였다. 당시는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앞두고 남북관계 발전가능성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결국 국정원의 숙청설은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데 일조하였을 뿐이다. 국정원이 야심차게 발표한 숙청설은 3개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확인된 것은 남북관계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것뿐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 당일에 한미정상회담을 예정에 두고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나서기도 하였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5월에 “박 대통령이 6월 15~18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하기 위해 이달 중순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굳이 6.15 15주년의 소중한 날에 미국을 방문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었던가? 6.15 공동선언 15주년인 6월 15일에 미국을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3각 공조를 논의한다는 것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국제적이고 공개적인 모독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메르스 파동을 표면적 핑계로 지연되었으나 10월에 재추진되고 있다.


이번 이희호 여사의 방북과정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채로 온갖 생색내기에 급급하였다. 정부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함께 방북을 신청한 박지원, 임동원, 권노갑, 김옥두 등의 인사의 방북을 모두 불허하였다. 정부는 현실정치인은 방북을 불허한다는 핑계를 대였지만,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정치행보를 펼친 적도 없는 정부관료이다.


무엇보다 8월 4일, 파주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정부는 8월 5일에 통일부장관을 통해 난데없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하였다. 그러자 8월 8일,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면담이 없이 돌아오자 주말을 지낸 직후부터 휴전선 목함지뢰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북한규탄에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남북관계 개선의 일말의 희망을 열고자 노구에 방북길에 올랐던 이희호 여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뢰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면 고위급회담을 제의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반대로, 지뢰사건을 단순사고로 판단하고 고위급회담을 제의하였다면, 이희호 여사의 면담이 불발되자 전면적인 대북공세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4)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물어야


남북이 아무리 휴전선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국가를 책임지려는 정권이라면, 남북간에 최소한의 신뢰는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지난 박정희 정권도 엄혹했던 1970년대에 북한에 밀사를 보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6.15 15주년을 ‘유린’한데 이어 광복 70주년을 통일로 승화시키려는 민족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제 DMZ 지뢰사건이 천안함 사건이 무색할만큼 언론지면에 도배되면서 8월 17일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된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과연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6.15 행사와 8.15 70주년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꼬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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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아베 총리 ‘과거형 사죄’에 네티즌도 뿔

 

與 “아쉽지만 의미 있어” 野 “가해자 책임회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과거형’으로 사죄를 밝혀 SNS 등에서 비난 반응들이 쏟아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일본) 지난 전쟁에서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왔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할을 넘겼다. 그 전쟁과 어떠한 관여도 없다”면서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다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받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아베 총리는 “100년 이상 이전 세계에는 서양 제국을 중심으로 해서 식민지가 확대돼 왔다”며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한 식민지 지배의 파도는 19세기 아시아에도 덮쳐왔다. 그 위기감이 일본에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제국주의를 합리화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전장에서 많은 여성들의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상처를 받게 되는 과거를 이 가슴에 새겨나간다”며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여성들의 마음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나라로 있고 싶다. 21세기인만큼, 여성의 인권이 상처 입는 것이 없는 세기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리드해왔다”고 간접 언급했다.

아베 총리의 ‘과거형 사죄’에 새누리당은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반면 야당은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과 사죄 등의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담화문”이라며 “또한 죄 없는 사람들에게 일본이 끼친 손해와 고통의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단장의 념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한 것을 보면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복잡하고 애통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며 “오늘 담화는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과거형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이 상처받았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반면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하며 가해자로서의 책임은 사실상 회피했다”며 “한마디로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 대신 외교적 수사로 책임회피에만 골몰한 담화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들도 비판 반응들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의 최근 ‘친일발언’을 언급하며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화려했던 제국주의 시대를 잊지 못하는 데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리겠나?”(즐거운**), “박근령이 보상은 충분히 다 받았고 사죄할 필요 없다잖아”(정**), “대한민국 외교부는 뭐하시나. 70주년 행사에 눈코 뜰 정신이 없나”(Qif****), “우리도 정부가 나서서 강력하게 비판해보자”(통기***), “친일파 척살이 대한민국 숙제”(아름답****) 등의 비난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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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친일’로 당 대표 물러났던 신기남의 심경 “김무성은…”

등록 :2015-08-14 17:08수정 :2015-08-15 09:35

 

2004년 8월 18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을 찾아가 아버지의 친일 문제에 대해 김우전 광복회장에게 사과한 뒤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4년 8월 18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을 찾아가 아버지의 친일 문제에 대해 김우전 광복회장에게 사과한 뒤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의겸의 우충좌돌 (25) 
2004년 과거사 청산작업 한창 때 불거져…당 피해 막고 대신 사죄하려 사퇴
아버지에 고문당한 걸로 보도된 두 분 찾아뵀는데 “그런 사실 없다”고 하셔 
국회서 친일잔재청산 관련 입법 앞장…아버지도 하늘에서 박수 보내셨을 것

 

오랜만에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은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는 글을 올린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부친을 미화한 게 논란이 되고 있는 13일이었다.

 

신기남 의원은 11년 전인 2004년 꼭 이맘 때 부친 신상묵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자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언론보도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집권여당의 당 대표직을 던진 것이다. 그 전격성과 신속성에 당시 열린우리당 출입기자였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뒤로 아버지 문제는 신 의원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번호를 누른 것이다. 특히 신기남 의원은 김무성 대표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동갑내기로 ‘친구의 친구’여서 1980년대부터 아는 사이였다. 1996년 15대 때 함께 국회에 등원했고, 집권여당 대표를 할 때 부친이 친일 논란에 올랐다. 물론 그 뒤 보인 모습은 판이하다. 전화 통화가 길어지자, 대화는 마포의 한 중국집으로 이어졌다.

 

신기남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분권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신기남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분권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제 시대 때 부친이 일본 헌병으로서 고문을 한 게 문제가 됐다.

 

 “그렇다. <동아일보>가 그렇게 보도했다. 그래서 당 의장을 사퇴한 직후 아버지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분들을 찾아뵀다. 김 선생님, 차 선생님 두 분이었는데, 두 분 다 아버지를 알긴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고문 같은 걸 받은 적은 없다고 하셨다.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오히려 그때 아버지가 수감돼 있는 두 분에게 빵을 사주는 등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그때 언론보도를 반박하지 그랬는가.

 

 “이미 당 의장직을 던진 상태라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분의 말씀을 녹취하고 공증까지 받아뒀다. 지금도 사무실 어느 구석에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만나보니 두 분 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앞장 서 보훈처에 신청서를 내어 김 선생님은 이듬해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됐다. 차 선생님은 보류가 돼 내가 직접 변호인으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홍영표 의원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나도 글을 찾아서 읽어봤다. 참 통절하게 반성을 했더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후손들이 사죄하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들이 다 걸린 문제다.

 

 우리 아버지도 일제시대 한반도 청년으로서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일군에 들어가 복무했다. 그래도 나름의 지혜와 용기로 동포를 위해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 생전에 하지 못한 역사와 민족 앞에서의 사죄와 화해는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자식인 내가 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막중한 자리였는데 언론보도 사흘 만에 사퇴했다.

 

 “여당 대표의 가족사는 휘발성이 강한 문제다. 뭔가 확실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게다가 동아, 조선 등이 내가 그만둘 때까지 결코 그만두지 않을 태세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청산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터라 당이 입게 될 피해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최소한의 표시가 당 의장 사퇴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말렸던 것으로 아는데.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와서 사퇴를 말렸다. ‘나도 선거 때 장인 때문에 색깔론에 시달리지 않았나. 그래도 끝내 버텨냈다. 당신도 버텨라. 당신이 무너지면 당도 흔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소신대로 하겠으니 양해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후회는 없었나.

 

 “나중에 천천히 복기를 해보니 그때 내가 당 의장을 사퇴한 것이 당의 안정성을 해치는 단초가 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어 괴로웠다. 실제로 천정배 원내대표가 4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이 외로워했다. 그러나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장 되기 전에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섰다.

 

 “2001년 4월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친일잔재청산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친일 논란에 휘말려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게 기폭제가 돼 2005년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서는 나를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봤다. 애비 속도 모른다고 답답해 하셨을까, 아니면 당신이 못해낸 일을 하고 있다며 박수를 보내셨을까.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버지도 한평생 가슴 한 복판에 죄의식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진정으로 사죄하고 화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셨을 거다. 과거사 청산에 나서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셨을 것이다.”

 

-부친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다는데.

 

 “두 분이 대구사범 동창으로 각별한 사이셨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 때 아버지가 청첩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정도다. 아버지가 춘천에서 강원도 경찰국장으로 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춘천에서 사단장 생활을 할 때라 두 분이 자주 어울리셨다고 한다. 두 분 모두 밤늦도록 술 드시기를 좋아해 부인들 고충이 컸다고 한다.”

 

-그럼 박정희 정권 때 출세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인데,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뒤 자신의 차로 직속 부관을 우리 집에 보내 쪽지를 전달했다. “상묵아! 혁명은 성공했다. 내게 와서 도와다오.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인에게 반역은 없다. 당장 민정이양하고 물러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매정하게 거절당하자 실망과 분노가 컸으리라고 추측한다. 그 뒤로 두 분의 인연이 끊겼다. 그 덕에 아버지는 84년 돌아가실 때까지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성사범을 졸업한 엘리트인데도 생계 문제로 다방도 하고 안 해 본 게 없었다. 전셋집을 전전했고 대학 때 등록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서너개씩 했다. 그 점이 나하고 김무성 대표하고의 결정적 차이지. 하하.”

 

이야기 도중 중국집 주인이 들어와 벽에 걸어 놓게 사인을 하나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 의원은 “저를 아세요. 전 이미 잊혀진 정치인인데.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내민 종이에 글귀를 적어주었다. 하긴 53살의 젊은 나이에 여당 당대표까지 올랐다가 부친의 친일 행적 때문에 조명에서 비켜난 지 10년이 넘었다. 아버지를 원망도 할 법하건만 그는 오히려 “오히려 못난 아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아버지를 욕되게 한 건 아닌지 죄송하다”고 한다. 신 의원은 요즘 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술병도 자꾸만 비어갔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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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본 한국' 대박 "한국인 비하하는 거 아닙니다"

 
[인터뷰] 인기 유튜버 '아시안 보스'... "5년 안에 1조 가치 회사될 것"
15.08.14 12:53l최종 업데이트 15.08.14 12:5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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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Asian Boss>로 동영상을 연재 중인 케이와 스티브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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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사람들이 진짜 쓰는 단어예요?" 
"그냥 지금 막 만든 말 같은데…. 이게 정말 의미가 있다고요?"

외국인들은 당황했다. 페이스북 화제 영상 '콩글리시에 대한 서양인의 반응(링크)'에서다.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잘못 쓰이는 영어를 알려주고, 무슨 뜻일지 묻는 이 영상에서 한 여성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S&M(사디즘·마조히즘)과 관계된 거냐"라고 되물었다. 'AS(애프터 서비스: 품질보증)'란 단어를 듣고는 "성매매를 연상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상은 올린 지 2주 만에 조회수 37만, 페이스북에서 4600여 회 공유됐다.  
 


영상을 만든 건 인기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Asian Boss)>. '보스같이, 멋있게 행동한다'는 뜻의 'Like a boss'에서 따온 이름이다. 호주 한인 교포인 스티븐 박(34)과 일본인 아버지·독일인 어머니를 둔 케이 이바라키(35)가 주로 호주 시드니에서 촬영해 올린다. '동양 청년들이 꿈을 잃는 이유', '외국인들이 본 한국', '매너손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 등 이들이 만든 60여 개 영상은 1년 새에만 총 836만여 명이 봤다. 

사전 답사차 최근 한국을 찾은 두 남자를 만났다. 10일 오전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이들은 이름만큼이나 자신만만했다. 현재 7만 6천여 명인 구독자를 1년 내 100만 명으로 늘릴 거라며, 곧 아시아계 유튜버(youtuber: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미디어 기업을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사업 면으로도 추진 중"이라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아시안 보스의 목적은 아시아 사람들의 창의적 재능을 콘텐츠로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는 겁니다. 우리는 한국·중국·일본이 힘을 합치면 '할리우드 2.0'의 문화센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미국 청소년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며 자라는 시대가 10년 안에 온다고 예상하고 준비하는 거죠. 별 재능 없는 우리가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 동서양 문화 차이를 보여주는 이들 영상에는 대개 "그런 줄 몰랐다", "재밌다"는 댓글이 대다수지만, 일부 누리꾼은 "동양인 무시 아니냐", "한국 비하 같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스티븐은 "저희 목적은 외국인들 생각을 알려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라며 "그런 의도(한국 비하)는 아니다, 어느 문화가 옳고 그르다는 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한국에 온 이유도 한국 내 1인 유튜버들과 만나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도록 돕거나, 앞으로 협업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도전 할 수 있다"는 말에 한국은 최근 '헬조선(한국 사회가 지옥처럼 살기 어렵다는 뜻)'이란 말이 나올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반박하자, 스티븐은 "이해는 하지만 불평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인터뷰 말미, 한국 청년들에게 건네고 싶은 한 마디를 묻자 신기하게도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그냥 해보세요(just do it)".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둘의 답변은 하나로 합쳤다.   

"이제는 영상 위주 시대... 한국 청년들, 가능성 믿고 도전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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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Asian Boss>로 동영상을 연재 중인 케이와 스티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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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 보스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일단 우리 둘 다 아시안이다. 이름은 '라이크 어 보스(like a boss)', 뭘 해도 멋있게, 카리스마 있게 한다는 뜻의 숙어에서 따 왔다. 사실 지금까진 서양 문화가 동양에 전파된 게 대부분이지 않나. 흐름을 바꿔서, 미래에는 동양 문화가 서양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1년 사이 60여 개 정도 영상을 만들었는데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영상 조회수는 총 836만 회, 채널 정기구독자도 7만 6900명 정도다. 

젊은 사람들 재능을 살리는 걸 돕고 싶고, 우리가 먼저 글로벌 플랫폼(유튜브)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 독창적인 콘텐츠만 있다면 누구나 스타가 되는 시대다. 실제로 한 캐나다 사진작가는 촬영 에피소드들을 재밌게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금세 유튜브 스타가 되기도 했다. 자신만의 열정이 담긴 뭔가를 꾸준히 올려, 팬들과의 신뢰 관계를 만들고 개인 인지도를 쌓는 게 중요하다."

- 콩글리시 관련 영상이 인기였다. 외국인들이 어떻게 답할지 예상했던 거 아닌가. 
"어떤 답변이 나올지 100% 예상했다(웃음). 그런 단어만 골랐다. '콩글리시'라는, 정보를 얻게 하는 게 목적이지만 재미도 분명 있어야 하잖나. 어찌 보면 이런 게 우리 장점인 것 같다. 둘 다 이민 1.5세대라 동서양 문화 양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다른 재능은 없지만, 문화 차이랄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부분을 찾아 영상을 만든다. 저(스티븐)만 해도 한국에서 열네 살까지 살다가 호주에 이민을 갔다." 

- 영상과 관련한 최근 추세는 어떤가.   
"우리 채널 구독자가 1년 새 정말 가파르게 올라갔다. 그동안 영상을 만들면서 스토리·편집하는 요령이 생겼는데, 영상에서는 독창적인 콘텐츠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돈과 사람은 따라온다. 최근 한국에서 페이스북이 유행이던데, 이제 곧 유튜브로 옮겨갈 거다. 모든 게 영상으로 가고 있다. 요새는 구글 검색을 해도 영상이 먼저 노출된다.  

우리가 분석해보니 한국 트렌드가 흥미롭다. 다른 나라는 보통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 순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은 트위터→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 순서로 들어가더라. 아무튼 유튜브 경쟁력은 현재 구글 다음, 무려 세계 2위 검색 엔진이다. 향후 5년 이내에 구글 검색에서 영상이 중요해진다. 최근엔 아프리카TV 사용자들도 유튜브로 옮겨오는 추세다."

- 지금 한국에서도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9일부터 홍대 근처에서 20, 30대 청년들 상대로 촬영 중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어느 나라 전망이 더 밝다고 보는지 등을 물었다. 그런데 외국과는 사람들 반응이 다르다. 외국인들은 잘 몰라도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일단 피하거나 꺼리곤 한다. '제가 잘 몰라서', '말을 잘 못 해서'라면서, 완벽한 답변이 아니면 시도조차 안 하려고 하더라. 

한편으론 교육의 문제인 듯도 싶다. 우리가 다녔던 호주 학교들만 해도 수업시간에 뭐든 그냥 얘기했고, 쓸모없는 질문을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시아는 다르다.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길 두려워한다. 선생님이 '왕'이고, 학생들은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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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Asian Boss>로 동영상을 연재 중인 스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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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의 경우 변호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가 된 것으로 안다. 
"5년 정도 세계적인 로펌에서 금융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기업 인수 합병(M&A) 건으로 미국 월 가에 갈 기회도 있었다. 근데 일하는 동안 약간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사회가, 부모님이 변호사 되면 좋다고 해서 됐는데 막상 해보니 별것 없었거든.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야근 탓에 살찌고 건강도 나빠지면서 '내가 돈을 몇십억 번다고 해도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었다.

그때쯤 '강남 스타일'이 터졌다(가수 싸이 6집 대표곡, 2012년 7월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적 화제가 됐다-기자 주). 회사 동료들, 50대 서양 아저씨들이 다 '말춤' 추고 다니는 걸 보면서 문화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뮤직비디오 하나가 한 나라의 이미지도 바꿀 수 있구나, 하고. 다 포기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새벽 3시까지 일해도 정말 즐겁다. 제가 하고 싶은 걸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 한국은 '헬조선'이란 말이 나올 만큼 상황이 어렵다. 그저 '도전하라'는 건 무책임하지 않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행동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저만 해도 변호사 그만두고 카페 서빙을, 케이도 옷 가게에서 양복을 팔면서 돈을 모았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른다. 자꾸 시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특히나 대학생처럼 젊은이들은 시간이 많지 않나. 그저 취업 준비만 할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일들을 해보면 좋겠다."

"한국인들, '왜'라는 질문 적어"... '대통령도 질문 안 받는다'는 말엔 "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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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Asian Boss>로 동영상을 연재 중인 케이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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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부터 유독 '질문'을 강조하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 '왜'다.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이득을 모르는 것 같다. 스스로 왜 공부해야 하고, 자신이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자꾸 자문하다 보면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자신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 알다시피 한국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대통령조차 질문을 받지 않는다. 
"박 대통령에 대해 자주 들었다.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특히 오바마와 비교하더라. 오바마는 늘 언론과 상대하고, 비교적 '센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답하는데 한국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질문을 받지 않은 게 이번 한 번인가, 아니면 계속 그랬나. (과거에도 몇 번 그랬다고 답하자) 와우... 정부는 원래 복잡하거나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싫어하긴 하지만..."

- 현재 전업 유튜버로 수익을 벌고 있나. 
"구글 파트너로, 조회수에 따라 들어온다. 계약 사항이라 자세히는 공개할 수 없지만, 초기 한두 달 20~50달러 벌었다면 지금은 훨씬 높다. 조회수나 구독자 성장 곡선이 매우 가파른 편이다." 

- 아시안 보스의 향후 목표는. 
"일단 약 6개월 안에 다시 한국·일본에 돌아와 정식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어쨌든 아시안 보스의 목적은 아시아인들의 재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한·중·일이 힘을 합치면 할리우드 2.0의 문화 센터가 될 거라 본다. 돈이나 이익보다도, 문화적 가치 전달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봤으면 한다. 어떤 영상이든 섹시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은 사전 답사 형태로, 약 4주간 한국에서 가능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분위기를 파악 중이다. 먼저 유튜브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 또 대학생들과 소규모로 소규모 강의를 통해 만날 예정이다. 남는 시간엔 교육·모바일앱·게임 등 다양한 스타트업과 투자자분들을 뵈려 한다. 우리가 보기엔 특히 미디어 가능성이 매우 큰데, 미디어 스타트업 분들도 페이스북(링크)으로 연락 달라. 만나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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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Asian Boss>로 동영상을 연재 중인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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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제가 볼 때는 기회 투성이다. 미디어 쪽은 더 그렇다. 누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저도 일 그만 둘 때 그랬는데, 다 내려놨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걸 했더니, 하루하루 갈 수록 믿음의 긍정적인 힘 때문인지 잘 되고 있다. 리는 5년 안으로 1조 가치를 내는 회사가 될 거다. 확실한 자기 확신을 깔고 일단 해보는 것, 'Just do it'이 필요하다." (스티븐)

"스티븐이 말했듯 뭘 하든 '믿음'이 중요하다. 믿고 시작하면 사람들은 도와줄 거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잘 되길 바라면서 기다리기만 했던 건 아니다. 본인의 명확한 목적지를 가지고, 그걸 위해 행동했다. 한국은 인터넷 스피드만 해도 세계 1위지 않나. 시야와 관점을 넓히고,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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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가운데서 공포 떨던 어린 오리 9남매, 그 후

도로 한가운데서 공포 떨던 어린 오리 9남매, 그 후

김봉균 2015. 08. 13
조회수 2597 추천수 0
 

어미 잃고 중앙분리대 모여 '덜덜', 구조 뒤 센터서 정성껏 길러

석달 뒤 마침내 자연 방사, "고마웠어요" 저공비행 인사에 뭉클

 

du2.jpg» 도로 중앙분리대 부근에서 위태롭게 모여 있는 상태로 발견된 새끼 흰뺨검둥오리 9남매. 
 
2015년 5월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차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하늘도 파랗고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상쾌한 아침이었습니다.
 
약 30분 정도 흘렀을까요? 창 밖으로 야생동물의 주검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실, 도로 위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의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경험이 있어서 운전을 하다가도 야생동물의 주검이 나도 모르게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이미 명을 다한 것이 확실했고, 딱히 조처를 취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굉장히 긴박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지나쳤어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은, 구해내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확인해 보니 역시 아직 살아있는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스쳐 지나갔던 주검은 이 새끼들의 어미였을 테죠.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아 품습니다. 태어난 새끼는 바로 어미를 따라 강가로 이동합니다. 
 
이때는 아직 날지 못하기 때문에 어미의 뒤를 따라 열심히 걸어서 이동하게 되죠.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du1.jpg»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은 뒤 부화한 새끼를 데리고 강으로 이동해 기르는 습성이 있는 흰뺨검둥오리. 
 
새끼가 알에서 깨자 어미는 새끼들과 앞으로 함께 지낼 강을 향해 앞장서 걸었을 것이고, 새끼들은 어미 뒤를 따라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강으로 가기 위해선 매섭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해 이 도로를 건너야만 했겠죠.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의 중앙까지 왔는데 앞에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끼들이 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요.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가 계속해서 이들을 몰아세우고 있었을 겁니다.
  
어미는 얼마든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새끼들을 포기했다면 말이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도로 위에 머물렀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차량에 치여 죽었을 겁니다.
 
그렇게 남은 새끼들은 도로 가운데 위치한 중앙분리대를 벽 삼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거센 바람과 굉음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혹시 사람이 갑작스럽게 다가가면 새끼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질까 봐 몸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서 마주한 새끼들은 서로 몸에 기댄 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작고 아직은 나약한 생명이지만 집어삼킬 듯이 달려오는 자동차를 마주하고도 살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9마리의 작은 생명을 모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du3.jpg»  얼마나 두려웠던지 새끼들은 구조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서로 품에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구조된 새끼들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올해 처음 들어온 새끼 흰뺨검둥오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게 된 구조센터 직원들 모두가 정성껏 돌봤고, 새끼들 역시 무럭무럭 자라주었습니다.

 

du4.jpg» 한시라도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흰뺨검둥오리 9남매.

 
구조된 지 약 2개월이 조금 지난 8월 초부터는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고, 다소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리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가에 서식하는 특성에 걸맞게 수영도 곧잘 했고, 잠수실력도 뽐냈습니다. 
 
처음 30g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몸무게가 어느덧 1㎏이 넘어 그들의 어미를 쏙 빼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어느덧 멋진 흰뺨검둥오리가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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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7.jpg» 제법 많이 성장한 새끼 흰뺨검둥오리의 모습.

  
8월10일 흰뺨검둥오리 남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흰뺨검둥오리들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털 고르기로 분주했습니다. 그들을 하나하나 포획하면서 눈을 맞추고 부디 잘 살아달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의 방생 예정 장소는 충남에 소재한 어느 저수지입니다. 군데군데 자라나 있는 수초와 연꽃…. 그곳에는 이미 원앙, 쇠물닭, 해오라기, 백로 등 다양한 물새들이 살아가고 있어 흰뺨검둥오리에게도 적당한 서식지였습니다.
 
그날 도로 위를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어미와 함께 더 일찍 이런 멋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를 구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자연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상자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안에 있던 흰뺨검둥오리들이 조심스럽게 상자 밖으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로 구조되어 그동안 사방이 철망과 벽으로 둘러싸인 계류장에 머물고 있었으니 넓디넓은 야생이 낯설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멋진 ‘야생동물’이었습니다.

 

du8.jpg» 이송 상자에서 나와 드디어 자연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흰뺨검둥오리.
 
자연으로 돌아간 흰뺨검둥오리들이 모두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저수지에 몸을 맡기고 수영을 즐기는 친구, 꽥꽥 소리를 내며 물장구를 치는 친구,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친구….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한 친구가 저희의 머리 위로, 그것도 아주 가까이 다가와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구해줘서, 그동안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잘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인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고맙다. 다치지 말고 부디 잘 살아라.”

 

du9.jpg» 머리 위로 지나가는 흰뺨검둥오리, “그래, 우리도 고맙다. 부디 잘 살아라.”
 
흰뺨검둥오리와 저희의 인연은 3개월에 걸쳐서 그 첫 번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빈번하고 위험한 사고, 사람과 야생동물 그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로드킬…. 이들의 위태로움과 고통을 흰뺨검둥오리를 통해서 보았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로드킬의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흰뺨검둥오리들이 어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새끼를 데리고 안전하게,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하니까요.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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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대회원들 석방하라!> ... 국제위원회 성명발표

  • [국제] 〈코리아연대회원들 석방하라!〉 ... 국제위원회 성명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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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위원회(남코리아내민주주의적자유를위한국제위원회)가 12일 남코리아에서 연행구속된 코리아연대회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2014년 12월19일 남코리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해산판결이후, 오랜기간 인권을 보호하는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많은 비판을 해온 남코리아의 모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온 국가보안법으로 진보활동가들에 대한 마녀사냥, 특히 코리아연대회원들에 대한 심각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훈과 김혜영이 구속된 것은 남코리아 진보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한층 더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김혜영은 갑상선암치료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김혜영은 수감중에 의약적 치료의 어떠한 접근도 거부당하였다. 그러한 거부는 재소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이로 인해, 코리아연대 진영하회원은 그녀가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에서 노숙단식농성을 시작하였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모든 수감된 코리아연대활동가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한다

     

    2014년 12월19일 남코리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해산판결이후, 오랜기간 인권을 보호하는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많은 비판을 해온 남코리아의 모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온 국가보안법으로 진보활동가들에 대한 마녀사냥, 특히 (통합진보당내 코리아21경향과 연계돼 있던) 코리아연대회원들에 대한 심각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3명의 코리아연대회원들이 48시간 구금된 뒤에 석방되었다 : 강순영(2015년 7월15일 수감), 김동관 (2015년 7월24일 수감), 이동근(2015년 7월26일 수감). 다른 3명의 회원들은 여전히 수감된 상태이다 : 남창우(2015년 5월6일 수감), 이상훈(2015년 7월23일 수감), 김혜영(2015년 7월26일 수감). 뿐만 아니라 두명의 코리아연대회원들이 2015년 8월9일 체포되었다 : 이미숙, 김정희. 
    선고 없이 몇주 또는 몇달 동안 구속시키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이상훈과 김혜영이 구속된 것은 남코리아 진보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한층 더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 
    김혜영은 갑상선암치료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김혜영은 수감중에 의약적 치료의 어떠한 접근도 거부당하였다. 그러한 거부는 재소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이로 인해, 코리아연대 진영하회원은 그녀가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에서 노숙단식농성을 시작하였다.
    남코리아내민주주의적자유를위한국제위원회는 남코리아정부가 모든 통합진보당당원들을 포함해 김혜영을 비롯한 모든 수감된 코리아연대회원들의 즉각적인 석방과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에 대한 탄압중단, 언론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국제법과 국내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2015년 8월 12일

    파리

     

    국제위원회대표 : 졍 살렘(소르본대철학교수) 

    국제위원회부대표 : 사미르 아민(경제학석학, 세계대안포럼대표), 호베흐 샤흐방(니스대학명예교수,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부대표), 프헝쑤와 우따흐(사회학석학, 세계대안포럼부대표), 홀렁 베이(국제민주법률가협회수석부대표) 

    국제위원회위원들 : 끌레흐 알비(영화감독, 마흐느라발레대학교수), 닐 안데르손(국제인권협회공동대표), 프헝씨쓰 아흐잘리에(l’IUFM de Beauvais교수, POLEX대표), 앙드헤 오브히(오뜨드센느지역전상원의원,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대표), 파트릭 바비에(명예언론인, 노동조합운동가), 앙리 부덩(전프랑스진보정당시의원, 전교수), 릴리안 부쎌(노동조합활동가), 빌리 뷔흐졍(발론의회전대표), 빅토리아 깔보(스페인시민), 졍 자끄 깐들리에(진보정당하원의원), 베흐나흐 까쌩(파리8대학명예교수, 세계사회포럼창립자), 아홍 코헨(지리학자, 그레나드대학), 모히스 쿠기에흐만(역사학자, URCF국제책임자), 졍 자끄 드젠느, 뎀바 무싸 뎀벨레(아프리카대안포럼디렉터, 다까르세계사회포럼조직위원장), 도미니끄 디오니지(반제국주의활동가), 가비에 뒤부아(모보쥬지역진보정당시의원), 귀 뒤프헤(CNRS전멤버, CGT전국위원회멤버), 안토니오 가르씨아 상드(노동조합활동가, 스페인공산당활동가), 미쉘 그휘쎌(CNRS명예연구소장), 헤미 에흐하(경제학자), 데흐모 위드송(영국코리아친선협회대표), 파트릭 꿴즈망(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사무총장), 레옹 렁디니(전FTP-MOI레지스탕스활동가), 베흐나데뜨 르꾀흐(POLEX회원), 도메니꼬 로쉬흐도(철학자), 위그 마띠유(오뜨비엔느지역프랑스사회당대의원, CGT서비스공공부문연맹대의원), 구옌 닥 누마이(역사학자), 왈리드 오카이스(법률가), 졍 피에흐 빠쥬(노동조합활동가, 전CGT간부), 졍-마끄 델 뻬흐씨오(리옹대학 정치학박사), 홀렁드 뻬흐리깡(전파리지역상원의원), 폴르뜨 삐에흐손-마씨(법률가), 브누아 껜느데(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부대표), 루이 헤이몽동(프랑스베트남친선협회대표), 시트호 샤하부당(법률가), 앙히 바쉐(브히브라게이야흐드지역 노동조합활동가), 크리스토프 벙츄하(언론인), 코띠에 웨인만(르포레스트지역 프랑스진보정당책임자), 실비 자흐칸(노동조합활동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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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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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탄저균 노출자 31명 중 22명 한국인 충격

 
탄저균 국민조사단, "UN인권사무소 탄저균조사하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14 [11: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탄저균 국민조사단이 미군의 탄저균 실험은 인권에 대한 침해라며 유엔인권사무소가 제대로 된 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 이정섭 기자




탄저균국민조사단이 UN인권사무소가 한국의 탄저균 실태를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탄저균 국민조사단은 14일(금) 오전10시 유엔인권최대표사무소(유엔북인권사무소) 앞에서 한국의 탄저균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민조사단은 진정서에서 "유엔북인권사무소는 북 문제만 집중하고 있을 뿐 다른 인권 사안은 주목하지 않고 있다."며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타당한 권리다. 따라서 인권은 정치적 도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진정으로 인권을 증진시키려고 한다면 한국에 산적한 인권문제에 눈을 돌려야한다."고 지적했다.

 

▲ 탄저균 국민조사단은 탄저균 조사 촉구 진정서를 유엔북인권사무소에 제출했다.     © 이정섭 기자

 

조사단은 "미국은 치사율 95% 위험한 생화학 무기인 탄저균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이라는 국제법 위반이다. 특히 전 세계 탄저균 노출자 31명 중 22명이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발생했다.

 

미국과 정부는 단순한 ‘배달사고’라고 말했지만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사건은 주한미군의 생화학전 대비훈련인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탄저균국민조사단 진정서 전문을 게재한다.

 

[탄저균 사건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를 촉구하는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진정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한국의 탄저균 인권침해부터 조사하라!

 

전 세계 인권 관련 활동을 총괄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2015년 6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일명 유엔북한인권사무소는 북한 문제만 집중하고 있을 뿐 다른 인권 사안은 주목하지 않고 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타당한 권리다. 따라서 인권은 정치적 도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진정으로 인권을 증진시키려고 한다면 한국에 산적한 인권문제에 눈을 돌려야한다.

 

탄저균 국민조사단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한국의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훈련에 대한 조사를 촉구한다.

 

지난 7월에 미국 국방부의 탄저균 배달 사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미국 본토와 해외 8개국의 193곳 실험실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해왔다. 미국은 치사율 95% 위험한 생화학 무기인 탄저균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이라는 국제법 위반이다.

 

특히 전 세계 탄저균 노출자 31명 중 22명이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발생했다. 미국과 정부는 단순한 ‘배달사고’라고 말했지만,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사건은 주한미군의 생화학전 대비훈련인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군산, 평택, 용산 미군기지에도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단장인 한미합동실무단은 4시간 만에 오산 미 공군기지를 생색내기로 조사했다.

 

이는 조사받아야할 사람이 조사를 하는 셀프조사이며, 주한미군에게 면죄부를 주는 전형적인 받아쓰기 조사이다. 우리는 탄저균을 몰래 들여온 것도 모자라 실험, 훈련까지 진행되는 현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에 설치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국제법 위반인 살아있는 탄저균 문제에 대해 즉시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

2015년 8월 14일
탄저균 국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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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은 미군점령 70년의 역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8/14 12:28
  • 수정일
    2015/08/14 12: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참가기] 광복 70년,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4일차
강경태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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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4  11: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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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은 통일원로 선생들이 함께한 가운데 4일째 농성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지난 4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의 지뢰폭발사고에 대해 10일 합참이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는 대북 경고성명을 발표하고 당일 오후부터 군 당국이 대북 확성기를 이용한 방송을 재개하며 더 넓은 전선으로 확대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한반도에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여기에 한·미 최신 첨단무기를 동원한 이른바 ‘2015 통합화력 격멸훈련’이 벌어지고, 오는 17일부터 한미합동연합 군사연습까지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북은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위험천만한 합동군사연습들을 즉시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자리를 지키는 통일원로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외세에 기대어 분단과 대결을 고수한다면 끝내는 전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다시금 떠올리며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에서 진행하는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이 13일, 4일째를 맞이했다.

   
▲ 범민련 서울연합 김규철 명예의장은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치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범민련 서울연합 김규철 명예의장은 “제국주의 일본이 쫓겨 나가고 광복을 맞이했지만 다시금 민족에게 고통을 준 분단의 원흉은 미국”임을 강조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아직 실현되지 않는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개인의 이익을 누리면서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고자질하고 붙잡아가고 고문하던 족속들이 친일파”이며 “광복 이후 민족을 갈라놓은 것은 미국놈”이며 “미국놈이 갈라놓은 것을 지지하는 것은 친미파”라며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에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하여 기생하는 매국노들”을 비판했다.

또 “항상 통합하고 어울리고 협동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을 전제로 “어떤 동물도 식물도 곤충도 어울리지 않고 사는 법은 없다”며 “저 혼자 살겠다고 한 것들은 결국에는 멸망하거나 전멸하고 말았다”면서, 패권으로 멸망해 가는 미국과 그에 기생한 친미파들을 비판하면서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치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광복 70년이고 분단 70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군점령 70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피력하는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송무호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송무호 공동대표는 “현재 해외 주둔 미군의 숫자를 보니 제일 많은 곳이 독일이고 다음이 일본이며 우리나라가 세 번째”라며 “미군주둔의 근거를 위해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다는 개뿔 같은 이유를 댄다면 어느 면에서는 이해는 하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선량한 국가를 남북을 갈라놓고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광복 70년이고 분단 70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군점령 70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미군이 점령한 이 상태를 벗어나야 진정한 광복이 되고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겠나”고 반문하고 “미군은 이 땅 악행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그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만이 겨레의 소원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 한다”고 말했다.

만약 미 대사관 앞 일인시위를 하게 된다면 어떤 구호를 가지고 할지 정리한 메모를 소개하며 ‘남북분단의 기획자이자 주범인 미국은 속죄하라’, ‘70년 동안 전쟁위험 고조를 통해 자신의 패권과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는 미국을 규탄 한다’ 등의 주장을 구호로 소개했다.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을 비판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광복이 되었다는 의미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이룬 것’을 말하지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어떤 조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자주통일을 이루어낼 때만이 진정한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농성 중에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통일원로 선생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분단 70년을 극복하고 자주통일을 이루기 위해 민간부문에서 ‘남·북·해외가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6.15민족공동행사는 서울에서 8.15민족공동행사는 평양에서 개최할 것을 합의’했지만 ‘6.15민족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되고 8.15민족공동행사가 사실상 무산된 것은 한마디로 말해 박근혜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에 의한 방해책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반북대결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이른바 ‘지뢰사건’을 계기로 8.15 광복의 분위기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 일촉즉발의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국면이 전개되고 있으며 광복절을 계기로 삼아 민족자주통일로 이어가야 할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전쟁국면으로 대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성참가자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은 ‘광복 70돌, 8.15 민족통일대회’가 열리기 전날인 14일까지 진행되며 미대사관에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기자회견을 가진 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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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 땅 한복판에서 조-미 대결 총 결산"

 
 
조평통 "UFG는 선전 포고 어떤 방식 전쟁도 상대" 경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13 [07: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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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핵전쟁 도화선에 불을 다는 행위라며 백악관과 청와대가 조준경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하한다고 경고해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언론들은 13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 12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조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선군조선의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을지프리덤 가디언 군사연습은 북침핵전쟁의 도화선에 기어이 불을 달기 위한 극히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이라며  "조국해방 70돌을 계기로 내외에서 조선반도의 정세안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가고있는 때에 
대규모의 북침전쟁연습소동을 벌려놓으려는 미국과 괴뢰패당의 무모한 도발책동은 지금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 담화는 "우발적인 군사적충돌도 전면전쟁으로 번져질수 있는 조선반도에서 '을지 프리덤 가디언'과 같은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을 벌리는 것은 곧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나 같다"고 강조했다.

 

대변인 담화는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이 감히 불질한다면 미국땅 한복판에서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을 총결산하고 괴뢰매국역적들을 씨도 없이 죽탕쳐버릴 것이라는 것을 이미 선포하였다"면서  "그 어떤 전쟁방식에도 다 상대해줄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으며 미국의 핵전쟁도발을 억제할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담화는 "백악관과 청와대를 포함한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들이 우리 혁명무력의 강위력한 
최첨단 초정밀화력타격수단들의 조준경 안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특히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괴뢰역적패당은 역사의 교훈과 현실을 똑바로 보고 분별없이 날뛰지 말아야 한다"면서 "만일 미국과 괴뢰패당이 기어이 선불질을 한다면 빈말을 모르는 백두산혁명강군은 무자비한 불소나기로 도발자, 침략자들에게 선군조선의 본때를 단호히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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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를 아시나요?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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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8/13 08:12
  • 수정일
    2015/08/13 08:1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현 2015. 08. 12
조회수 141 추천수 0
 

 

 암살-.jpg 

영화 <암살>

 

 

 김원봉-.jpg 약산과 김구-.jpg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척결에 나선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위 왼쪽), 

고량주를 따라 죽은 지사들을 추모하는 약산 김원봉(위 오른쪽), 약산 김원봉과 백범 김구(아래)

 

영화 <암살>에서 일제가 항복한 날, 약산 김원봉은 백범 김구 앞에서 고량주에 불을 붙여 동지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너무 많이 죽었다’면서 “잊혀지겠지요. 미안합니다”라며 비탄한다.

 

 그러나 미안한 것은 조국 동포를 위해 헌신한 그들이 아니다. 영화 속 염석진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했던 노덕술 같은 친일파에게 약산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고초를 당하게 한 이 나라다. 이 나라는 해방 후에도 이강국과 염석진과 노덕술의 나라였다.

 

 외세에 기생해 영화를 누린 게 그 개인들만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소외됐던 불교는 일제 때를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백용성, 한용운 같은 지사들도 있었지만, 불교 중흥을 명분으로 전투기까지 헌납하며 친일한 이들이 많았다. 3·1운동의 주축이었다가 일제 말 주요 교단들이 신사참배로 생존을 꾀한 개신교는 미군정 이후 미국을 등에 업고 이 땅을 개신교 국가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제에 가장 협조적이던 가톨릭도 미군정의 수혜로 교세 확장에 열중했다.

 

그들은 민족이나 나라보다 더 보편적인 진리를 앞세웠다. 그러나 민족 동포와 나라를 버린 채 진리만을 내세운 종교가 있던가. 2천년 전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보면, 알렉산더가 북인도에 침략했을 때 세속을 버리고 나체로 살아가던 고행승마저 격렬하게 저항한다. 로마가 가톨릭을 공인한 것도 국가 지배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고, 루터가 교황에 맞서 개신교를 열 수 있었던 것도 독일 민족주의의 호응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선 단재 신채호가 “왜 조선의 공자, 조선의 석가, 조선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 석가의 조선, 예수의 조선이 되느냐”고 비판한 ‘식민 종교’가 주류였다. 민족 동포의 해방을 외면한 이기적 종교들이 득세했다.

 

김구와 김창숙-.jpg 

해방 뒤 백범김구와 함께 한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김수환 심산-.jpg 

심산 김창숙 유택에 큰절을 올리는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사진 심산사상연구회 제공

 

  

 2000년 김수환 추기경이 유학자인 심산 김창숙의 묘소를 찾아 큰절 6번을 올렸다. 일제의 고문으로 하반신 불구가 됐던 심산은 백범 암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승만에게 서릿발 같은 하야 경고문을 발표했던 선비다. 추기경의 절은 종교 간 금기를 깬 행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건 친일 천주교의 참회의 절이 아니었을까. 김 추기경은 나중에 심산연구회의 살림이 어렵자 상금 700만원에 300만원을 더 보태 기부했다.

 

 그런데 일제와 미국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종교들이 미안해야 할 종교는 따로 있다. 무려 10만여명이 일제에 의해 순교당해 아예 뿌리가 잘린 대종교다. 대종교를 연 홍암 나철은 구한말 장원급제를 한 당대의 사상가였다. 일제가 이 땅을 삼키려는 을사조약을 맺자 가장 먼저 을사 5적의 ‘암살’을 꾀한 이가 그다.

 

홍암 나철-.jpg 

1909년 대종교를 연 홍암 나철. 구한말 과거에 장원급제한 그는 1905년 일제와

친일 대신들이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을사5적의 암살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자

대종교를 중광(다시 열다)시켰다.

 

서일등-.jpg 

청산리대첩을 이끈 대종교인들의 북로군정서. 왼쪽부터 총재 서일, 총사령관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북로군정서-.jpg 

청산리대첩을 이끈 북로군정서. 앉아있는 이가 대종교인 백야 김좌진

 

대종교 3인묘 참배-.jpg 대종교묘지 절-.jpg 대종교묘지에 대중절-.jpg 대종교묘지에서 합장-.jpg 

21년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순례를 하면서 연변 회룡시 들판에 방치된 홍암 나철, 서일, 김교헌 대종교 세지도자의

묘지를 찾아 벌초를 하고, 참배를 하는 정토회 법륜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

 

김동삼-.jpg 김좌진-.jpg 신채호-.jpg 우덕순-.jpg 이동녕-.jpg 이병기-.jpg 이상설-.jpg 이시영-.jpg 이회영-.jpg 장지연-.jpg 정인보-.jpg 주시경-.jpg 지청천-.jpg 최현배-.jpg 홍명희-.jpg 홍범도등-.jpg 

대종교의 항일 지사들. 위 왼쪽부터 김동삼, 김좌진, 신채호, 우덕순, 이동녕, 이병기, 

이상설, 이시영, 이회영,장지연, 정인보, 주시경, 지청천, 최현배, 홍명희, 홍범도.

 

그는 국가 패망의 원인을 기득권의 사대주의로 보았다. 강한 외세가 밀려오면 민족과 국가를 수호하기보다는 힘센 외세에 붙어 자신의 영화와 출세만을 추구하고, 세력을 확장해가는 데만 급급한 기회주의가 멸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가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해 1909년 대종교를 열자, 5년 만에 30여만명이 몰렸다. 대종교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자 일제의 탄압이 집중됐다. 나철이 1916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절로써 항거하자 지사들이 더욱더 대종교로 모여들었다.

 

 나철의 뒤를 규장각 부제학을 지낸 석학인 김교헌이 이었다. 그는 동만주에 군관학교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했다. 3·1운동에 불을 지핀 1918년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한 39인의 대부분이 대종교인이었다. 이어 1920년 백포 서일과 김좌진, 이범석 등 대종교인들의 북로군정서는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참혹한 보복을 당했다. 독립운동사는 대종교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해방 뒤 이승만은 대종교 독립지사들 대부분의 단물만 빼먹고 버렸다.

 

친일·친미의 종교들이 해방 조국의 안방을 차지한 사이 나철과 서일, 김교헌은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민족 동포를 위해 살신성인한 3인의 무덤은 중국 연변 화룡시의 야산에 여전히 방치돼 해방을 기다리고 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종교다움의 첫걸음이다. 참회 없는, 참된 종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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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판사의 죽음에 법관들 "또 누가 이런 일 당할지"

 

[간추려서 단 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1]15.08.12 19:01l최종 업데이트 15.08.12 19:01l김용국(jundorapa)매일 쏟아지는 판결 기사, 법조계 소식. 하지만 흥미 위주의 기사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법조계 소식을 쉽게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간추려서 단번에 한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이 법을 보는 올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기자 말

① 대법관 후보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② 한국 사법신뢰도 27%, 그래도 할 말은 있다?
③ 30대 여성 판사의 안타까운 죽음 
④ 채팅남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여성, 법원 판결은? 

대법관 후보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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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택(56·14기) 대법관 후보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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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자 판사. 

법조계 주변에선 대법관이 되려면 적어도 이런 조건은 되어야 명함을 내민다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기택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을 임명 제청(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했다. 헌법(104조 2항)을 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현행 대법관 선발은 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자 3인 추천 ② 대법원장의 임명제청 ③ 국회 인사 청문회 ④ 대통령 임명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후보자는 민법 분야 이론가이며 지적재산권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법원이 그동안 약점으로 끊임없이 지적받아 온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충족 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과 변호사 성공보수금 사건 등에서 대법관 13명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다. 두 가지 사건 모두 일도양단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인데도 모든 대법관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현 대법원의 '성향'을 가늠케 한다. 이 후보자가 기존 대법관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소신있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법관이 또 다시 대법관이 된다면 대법원이 시대 변화나 치열한 논쟁보다는 안정을 선호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에 대법원이 담당했던 상고심(3심) 재판을 별도의 법원을 만들어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대신 대법원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건만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다양한 가치관 반영, 충분한 심리,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권리 보호에 충실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법원 구성으로는 사회갈등 해소도 다양한 가치관 반영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수와 다수가 조화를 이루고, 보수와 진보(또는 개혁)가 공존하는 대법원 구성이 먼저다.

한국 사법신뢰도 27%,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당신은 이 나라의 사법제도와 법원을 신뢰합니까?

지금 누군가 이렇게 당신에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대체로 부정적인 답변이 예상된다. 한국과 다른 나라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 마디로 '처참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정부 보고서'가 단적인 근거다. 2년마다 내놓는 이 보고서에는 사법제도와 관련된 평가가 포함돼 있다. OECD는 갤럽을 통해 42개 나라에서 일반인 1천 명에게 '사법제도와 법원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한국에선 27%만이 "예"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42개 나라 중에서 39등이다.    

덴마크(83%), 노르웨이(83%), 스위스(81%)와 같은 선두권과는 비교할 엄두도 못낼 뿐 아니라, OECD 평균(54%)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역으로 보면 시민 10명 중 7명은 사법제도나 법원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0일 공식자료를 통해 이번 조사에 대해 "단순히 국민의 주관적 인식을 조사한 것으로 재판의 객관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또한 "사법제도는 재판, 검찰·경찰 등의 수사, 협의 집행 등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임에도 사법제도와 법원을 분리하지 않고 묶어서 질문하였다"며 법원으로서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억울한 일일까. 같은 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34%로 26위)도 OECD 평균(42%)보다 낮게 나왔지만 바닥에 떨어진 사법 불신보다는 오히려 나은 수준이었다. 10명 중 7명이 믿지 못한다니 반성과 성찰부터 하는 게 어떨지.  

30대 여성 판사의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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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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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판사가 자택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판사는 과도한 업무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 소속인 이아무개 판사(37)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 판사는 3주 전에도 안면마비 증세가 나타났지만 업무량이 많아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사는 재판업무 외에도 협의이혼, 각종 위원회 활동과 멘토링, 강의 준비 등도 맡아 격무에 시달려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는 고인을 추모하고, 법관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이 판사의 부고글에는 8백여 개의 댓글이, 추모글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에는 판사들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도 적지 않다. 

40대 초반의 C판사는 "(이 판사가) 어린 아들과 딸을 두고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 판사를 추모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C 판사는 "장시간의 고강도 근로, 불규칙한 퇴근, 주말근무, 야근의 만성화 등이 당연시되는 현재의 업무환경에서는 언제 누구에게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며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직원 D씨도 "법원 수뇌부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병들고 힘들어하면서도 자신들의 권리주장조차 못하는 법관들이 다수인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며 "더 이상 법관들의 근로조건과 처우개선을 외면한 채 폭주하는 사건 해결에만 판사들을 내모는 현실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권리구제 기관인 법원은 정작 내부 구성원들의 권리를 잠재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채팅남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여성, 법원 판결은? 

2014년 5월 인천 남동공단 근처 한적한 골목길에서 가방이 발견됐다. 그런데 무심코 그 가방을 열어 본 이는 경악했다. 사람의 상반신 사체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파주시 농수로에서는 하반신 사체가 발견됐는데, 두 사람은 동일인으로 밝혀졌다. 그는 50대 남성 B씨로, 가족들은 가출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누가 왜 그랬을까. 경찰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30대 여성 A씨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1년여간의 재판도 "A씨가 B씨를 살해했다"고 결론이 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와 B씨는 채팅사이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반가워요. 비도 오고 일요일인데 뭐 하시나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던 A씨는 B씨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우리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애인하기로 해요."

당일 두 사람은 파주에서 만났다. 검정색 투피스와 자켓, 모자를 착용한 A씨는 B씨와 함께  모텔로 향했다. 그런데 그 후 B씨가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B씨의 카드 사용내역이 확인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탐문 수사 결과, 경찰은 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검정색 투피스에 모자를 착용한 여성"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A씨의 인상착의와 동일했다.

A씨는 B씨의 카드로 액세서리 구입을 시도하고 모텔비, 주유비 등을 결제했다. 그뿐 아니었다. A씨가 고양시 일산에서 여행가방과 전기톱을 구입한 사실이 CCTV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A씨의 차량이 집을 나와 사체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서 배회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영상이 잡혔다. 그 무렵 A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인천과 파주 등지를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A씨는 모텔에서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칼로 B씨를 41회 찔러 살해하였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전기톱을 이용하여 사체를 절단하고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여 상반신은 인천에, 하반신은 파주에 유기하였다.' 

살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초기 수사 때 범행을 시인하던 A씨가 입장을 바꿔서 "나는 B씨를 알지 못하고 살해한 적도 없으며, 휴대전화나 채팅 사이트의 명의는 도용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범행을 모두 부인하였고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피해자 B씨는 참혹한 고통 속에서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고 피해자의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며 "그럼에도 아무런 피해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대법원도 "징역 30년이 부당하지 않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법원의 정신 감정결과 A씨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스트레스를 당하면 신체증상이 나타나고 부인, 투사(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려 자신을 보호하는 경향), 정서의 과장된 표현, 합리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중심적이고 불안정감이 많다는 것이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임이 틀림없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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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평양의 모습

[영상으로 보는 최신북한5] 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평양의 모습
 
 
 
김혜민 기자 
기사입력: 2015/08/13 [00: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근 백두산마라톤 등의 다양한 북한 관광 상품들이 등장하여 화제를 모우고 있습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요,

외국인들이 북한에 가서 찍은 영상, 사진들이 인터넷 공간에 많이 올라와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상은 바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평양의 모습입니다. 

HD화질로도 볼 수 있는 영상(영상 아래쪽 설정 버튼을 통해 조정 가능합니다.) 은 개선문부터 시작하여, 주체사상탑, 차가 늘어난 평양 시내, 탑에서 바라본 평양의 해질녘의 모습, 호텔에서 식사하는 모습, 웨딩촬영하는 모습, 김일성광장, 만수대 언덕, 대동문, 옥류관, 인민대학습당, 놀이동산, 판문점 등의 다양한 장소와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그 순간의 장면을 보여드립니다.

 

<북한 주민들이 춤을 추면서 노는 모습>

02

 

<개선문과 김일성광장 등 평양시내>

개선문은 광복을 기념하여 제작되었으며, 김일성 주석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북한 안내원이 영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외 김일성 광장, 인민대학습당, 정부 건물, 주체사상탑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평양시내의 사람들>

평양 시내의 모습. 버스, 북한 주민들, 교통경찰, 노동신문사 등의 건물이 보입니다.

세번째

 

<탑에서 내려다본 평양의 모습>

영상에서 2차례에 걸쳐 나옵니다.

네번째

 

<웨딩촬영하는 모습>

결혼하는 남녀가 웨딩촬영을 하는데 주변에서 웃으라고 난리입니다.

다섯번째

 

<북한 주민들>

가수들이 한복을 입고 남문에서 공연하는 모습, 공연에 맞춰 사람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 놀이동산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할머니들의 모습, 외국인 관광객들도 함께 춤을 추는 모습, 바베큐 먹는 모습 등이 담겨 있습니다.

여섯번쨰

 

 <판문점>

 일곱번째

 

<개성의 모습>

여덟번째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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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 계기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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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2  17: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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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된 11일 오후,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평양 등에서 열리는 8.15민족공동행사에 참가할 남측 대표단 선발대를 11일 정오까지 초청해달라는 제안에 북측이 호응하지 않자 이창복 상임대표는 “우리 민족의 하나됨의 길이 정말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창복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 사무실에서 8.15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된 직후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창복 상임대표는 “어제(10일) 우리는 운영위원과 상임공동대표 연석회의를 해서 8.15민족공동행사에 대한 마지막 방침을 결정했다”며 “마지막 선발대 파견 제의를 오늘 12시까지 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실무회담을 통해 협의하려 했는데 성사되지 않으니까 ‘우리라도 직접 평양에 가서 행사를 논의하겠다’고 의논하고 있는 터에 ‘시간이 더 없다. 마지막 한 번 더 북에 제안 해봐서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서울 통일민족대회를 충실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한다’ 이렇게 결정했다”는 것.

그는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북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된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대표단 선발대가 가서 협의해서 이뤄지는 행사라야 민족공동행사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서 수정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에 대해 “퍽 잘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내부 이견도 있고 그래서 조율한 결과”라고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결국 이날 정오까지 북측의 답은 오지 않았고 8.15민족공동행사는 무산돼 분산개최가 기정사실화 됐다. 그는 “상당히 자괴감도 없지 않아 있고, 속상하다”며 “이렇게 진행이 안 되는 게 우리의 정성 부족도 있겠지만 ‘양쪽 당국의 소통이 풍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낀다”고 첫 소회를 밝혔다.

또한 “정부 당국자 간에는 서로 충돌도 있고 티격태격 하더라도 민간의 교류는 터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민간차원의 활동은 더 과감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민족통일대회는 비록 서울에서만 개최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남과 북이 함께하는 바탕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자위하며 “이번 민족공동행사는 종단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민중세력들이 함께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도 힘을 상당히 실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15일 오후 3시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할 8.15민족통일행사에서는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보유 추진 반대, △미국의 한반도 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남북 간의 확고한 기본이념으로 자리잡고 활동의 기준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민족자주’에 방점을 찍었다.

아울러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에게 “김완수 위원장도 얼마나 고심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10.4선언을 계기로 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참 안타까운 것은 통일운동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던 젊은이들이 남북공동행사를 위해서 열심히 뛰다가 ‘공동행사가 안 된단다’, ‘분산개최 된단다’ 이러니까 그 동력이 뚝뚝 떨어진 거다”며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우리의 행보는 멈출 수 없다”고 격려했다.
 

   
▲ 광복70돌 준비위는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8.15민족공동행사 무산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광복 70돌, 평화와 통일선언'을 발표했다. 이창복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상임대표는 12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8.15민족공동행사 무산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광복 70돌, 평화와 통일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며, 인터뷰는 기자회견 이후에 보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11일 오후 3시 40분부터 광복70돌 준비위 사무실에서 이창복 상임대표아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마지막 제안, “답이 없었다”

□ 8.15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광복 70주년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해온 것으로 아는데, 경과와 결과를 알려달라.

■ 우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금년이 분단 70년, 광복 70년이 되는 해이고, 또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이고, 6.15공동위원회 조직을 만든 것이 10년 된 해이니까 금년을 특별한 해로 설정해서 6.15민족공동행사라든지 8.15민족공동행사를 성대하게 치르자고 남북 간에 합의해서 추진해왔다.

그래서 남북.해외 3자가 합의해서 열심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 5일 심양에서 3자 위원장단회의를 했다. 거기서 장소 문제 때문에 조금 논란이 있었지만, 내용적으로는 6.15공동행사는 서울에서, 평양에서는 8.15민족공동행사를 하는 걸로 다 합의가 된 상태였다.

다만, 8.15민족공동행사를 평양에서 할 때 남쪽에서 대표단이 가는 것과 동시에 북쪽에서도 몇 사람이라도 대표단을 보내줘서 남쪽에서 개최되는 민족통일대회를 격려하고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로 쭉 왔다.

그러다가 61.5공동행사 추진 과정에서 5월 중순에 결국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서로 공격적 언사들을 주고받은 결과 실무회담 개최가 어려워졌고, 또 실무회담을 못함으로 인해서 6.15민족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됐다.

우리가 6.15민족공동행사를 열심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5월 하순에 민족공동행사가 결국은 분산 개최로 가닥을 잡게 되니까 동력이 뚝 떨어졌다. 메르스라는 전염병 우려도 있었고, 대회가 취소되는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축소해서 수운회관 교당과 앞마당을 빌려서 3천명이 모여서 민족공동행사를 치르게 됐다.

그 이후에 8.15민족공동행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남북 간에 조율을 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무회담을 개최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끌어 온 거다.

어제 우리는 운영위원과 상임공동대표 연석회의를 해서 8.15민족공동행사에 대한 마지막 방침을 결정했다.

그 결정이 퍽 잘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내부 이견도 있고 그래서 조율한 결과가 마지막 선발대 파견 제의를 오늘 12시까지 해달라고 했다. 만약에 이것이 안 됐을 경우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민족통일대회를 열심히 준비해서 추동해 나간다고 결정했다.

물론, 가능하면 공동호소문을 공동으로 발표했으면 좋겠지만 결국 남쪽 만의 행사가 될 것이다.

북쪽은 해외에서 일부 들어갈 터이니 해외와 함께 행사를 치르게 될 텐데, 우리 내부에서는 북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된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단 선발대가 가서 협의해서 이뤄지는 행사라야 민족공동행사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서 수정이 된 셈이다.

그렇게 열심히 입만 열면 ‘민족공동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자’고 이야기해 왔는데, 결국 그렇게 안 된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의 하나됨의 길이 정말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길게 보고 가야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일말의 기대도 있었을 것 같다.

■ 수행단장이었던 김성재 전 장관이 광복70돌 준비위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히 주문을 하지 않아도 민족공동행사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오면 좋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 백낙청 명예교수가 6.15남측위원회 초대 상임대표를 역임했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지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 백낙청 명예교수와도 특별히 면담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신전심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성사되도록 도와줄 분이라고 생각했다.

□ 선발대 파견 시한을 제시한 것은 이희호 여사 방북 결과를 보고 시간이 촉박해서 판단한 것인가?

■ 선발대로 특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전부터 이야기돼 왔던 것인데, 답이 없었다.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러니까 실무회담을 통해 협의하려 했는데 성사되지 않으니까 ‘우리라도 직접 평양에 가서 행사를 논의하겠다’고 의논하고 있는 터에 ‘시간이 더 없다. 마지막 한 번 더 북에 제안 해봐서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서울 통일민족대회를 충실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한다’ 이렇게 결정했다.

□ 아쉬움이 컸겠다.

■ 그래서 상당히 자괴감도 없지 않아 있고, 속상하다. 이렇게 진행이 안 되는 게 우리의 정성 부족도 있겠지만 ‘양쪽 당국의 소통이 풍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낀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기본이념, 활동기준 돼야

 

   
▲ 이창복 상임대표는 '민족자주의 원칙'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이제 남측 8.15민족통일대회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인데, 이 대회에 대해 설명해달라.

 

■ 광복70년을 맞이하는 민족통일대회는 비록 서울에서만 개최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남과 북이 함께하는 바탕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여건으로 인해 분산해서 대회를 치르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같은 생각이고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당위성을 찾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민족공동행사는 종단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민중세력들이 함께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도 힘을 상당히 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율하는 과정이 상당히 시간이 걸렸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남쪽 대회를 두고도 이견이 있나?

■ 스펙트럼이 다양하니까 같은 민족통일대회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르다. 그것을 조율해 내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 8.15민족통일대회의 구상은?

■ 15일 오후 3시에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하고, 우리사회에서 민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든 세력이 함께하는 대회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생각한 것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70년 동안 유지돼 온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는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에 분단이 이루어진 것은 일본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최근에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집단적 자위권 보유를 추진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 때 한국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런 것이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군 가는 곳에 일본 자위대가 따라가게 돼 있고, 미국 요청으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우리 정부가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한편으로 미국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간간이 이야기했다. 실제 그 무기체계가 만들어져 있는 건지, 성능이 확인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점이 중국을 긴장시키고 러시아에게 불안한 마음을 줄 수 있다.

물론, 북한 미사일에 대항해서 배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레이더 탐지 거리가 3,700㎞까지 미쳐 중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중국이 긴장하게 될 것이고, 우리 정부에 대해 배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상당히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돼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 간의 자주적 교류와 협력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을 확보해야 하고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남북 간의 확고한 기본이념으로 자리잡고 활동의 기준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이번 8.15를 겪으면서 이 점을 깊이 생각해 가면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일방안 문제인데, 6.15공동선언의 1항과 2항이 결국은 중요한 원칙이다. 1항은 민족자주의 원칙이고 2항은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점이 많으니 그런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2항을 북의 연방제를 일방적으로 지지해준 것으로 보고, 매도하는 사람들조차 없잖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설득하고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 6.15공동선언 2항은 양쪽 입장을 절충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북쪽 입장보다는 남쪽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문익환 목사와 허담 조평통 위원장이 합의한 ‘4.2 합의서’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 이야기가 나왔다.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의 담판 속에서 연방제를 점차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렇게 유연하게 해석한 것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남남갈등은 커지는 시류인 것 같다. 이번 8.15행사를 통해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나?

■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는 있다. 그러나 표출이 어렵다. 남북관계가 좋아질 때는 그런 지향들이 다 분출돼서 열기가 차는데 지금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니까 그런 의견들이 표출 안 되고 침전돼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족공동행사를 통해 열기를 불러일으키려고 시도를 했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렇지만 남한 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통일 열기를 고양시키는데 좋은 기회로 삼고 대회를 준비하려고 생각했다.

이런 통일에 대한 의지나 열기를 고양시키는 것은 계기적인 것도 있겠지만 지속적 반복적 활동 통해서 쭉 해나가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집중적으로 8.15를 통해서 좀더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다.

□ 8.15통일대회에 참석할 주요인사는?

■ 아직 더 확인해야 할 형편이다. 적어도 광복70돌 준비위원회의 명예대회장, 상임대표, 공동대표들은 다 참석해 주실 것을 요구하고 있고, 많이들 참석하실 거라 기대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 스님, 김희중 대주교,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런 분들이 참석하실 것이다. 또 민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조직적으로 많이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그날까지 “멈출 수 없다”

 

   
▲ 이창복 상임대표는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위원장에게 오는 10.4선언 계기로 만남을 갖자고 제안했다. 사진은 2013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 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발표할 때의 모습.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위원장에게 한말씀 전한다면?

 

■ 김완수 위원장도 얼마나 고심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10.4선언을 계기로 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

□ 우리 정부나 북측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정부 당국자 간에는 서로 충돌도 있고 티격태격 하더라도 민간의 교류는 터줄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걸 정권의 정책에 반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것마저 꽉 막고 있다. 이게 얼마나 경직된 정치를 하고 있는 건가.

2000년도인가 서해교전이 발생했지만 동해안에서는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었지 않나. 그게 정치다. 그런 멋이 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꽉 틀어막고 있으니까 참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한다.

꽉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비정치적인 일, 특히 체육교류 이런 것은 조금씩 터놓는 모양인데, 다행은 다행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민간차원의 활동은 더 과감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남북 양쪽 다 그렇게 해야 한다.

□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대해 한말씀 한다면?

■ 통일부는 주관부서로서 보다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검토하고 고민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대안도 제시해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이번 같은 케이스에 북의 초청장을 받지 않아도 우린 보내겠다’ 이렇게 선명하게 나오면 북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왜 생각하지 않는지.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통일정책에서 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책으로 전환되기 바란다.

□ 오랜 기간 재야활동을 하면서 늘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이번 과정을 겪은 소회는?

■ 왜 이렇게 민족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이것도 운명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결국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겠다. 특히 통일지향적인 지도자를 만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입만 열면 통일문제, 남북문제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하는데 하나도 실천되는 게 없다. 그래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참 안타까운 것은 통일운동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던 젊은이들이 남북공동행사를 위해서 열심히 뛰다가 ‘공동행사가 안 된단다’, ‘분산개최 된단다’ 이러니까 그 동력이 뚝뚝 떨어진 거다. 그때 느끼는 그런 참담함은 참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을 다시 추슬러서 ‘열심히 하자’고 내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뜀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면 그게 우리가 오늘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70년 동안 안 됐던 것이 몇 달 동안에 된다면 그건 기적 같은 이야기다.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우리의 행보는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이고, 민족의 번영을 보장 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8.15 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젊은 동지들, 특히 활동가들이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열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투신해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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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포토뉴스]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임병도 | 2015-08-12 10:02: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광복 70주년’을 기념한다고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태극기 제작업체가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호황을 맞고 있을 정도랍니다. 관공서 건물은 물론이고 관용차에도 태극기가 부착됐습니다. 지하철 손잡이에도 태극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태극기 달기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부대와 지자체는 태극기 조형물이나 태극기 동산을 조성했습니다.

기업들의 사옥마다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한화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를 내세웠고, 기업 이미지가 하락된 롯데그룹은 ‘광복 70주년이라 국내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 70층에 태극기를 내걸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 마케팅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려 몽둥이로 맞아 죽거나 총살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공포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극기를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니며 태극기를 안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비상식적인 세상에서라면 한국전쟁 당시처럼 ‘너는 태극기를 달지 않았느니 애국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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