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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결, 평화협정이 답이다

[재미동포 의사가 본 통일 미래상]<3> 남북 간 걸림돌, 북핵문제
 
오인동 재미동포 
기사입력: 2014/03/21 [00:3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찬란한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 청사진과 민족사 최고에 이를 경제번영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이를 현실화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남북의 지도자들이 뚜렷한 통일의 미래상을 떳떳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둘째는 조국을 둘로 갈라놓고 그 사이에 틀어 앉은 미국의 굴레에서 남북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61년째인데도 평화체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은 북핵 때문에 안 된다고 논란하고 있다. 평화협정이 되었더라면 북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핵 없던 40년(1953-1993), 핵 의혹만 있었던 11년(1994-2005) 동안에는 왜 안 되었을까? 평화협정과 북핵 개발의 전후 관계를 살펴보면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북은 6자회담 합의 사항도 아닌 영변핵발전소 냉각탑까지 폭파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이행하지 않자   2차 핵시험을 단행했고 미국은 대북 봉쇄와 군사적 압박을 강화해가고 있어 갈수록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에는 3개월 안에 참전유관국회의를 열어 한반도에서 외국 군대의 철수와 평화적 해결을 논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2개월 뒤 협정을 위반하며 남/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영구주둔을 규정했다. 1958년 북은 중국군을 완전 철수시킨 반면 미국은 남녘에 6만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하고 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1960년 북은 남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그 뒤 되풀이해서 외국군 철수와 평화협정을 제안했으나 남은 응하지 않았다. 1974년 남이 북에 불가침협정을 제안하자 북은 군사지휘권이 없어 평화협정 제안에 응하지 못한 남이 불가침협정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며 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에 ‘북미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이에 미국은 1978년 북남이 먼저 대화하고 그 뒤 남북미 3자회담을 제안하자 북은 1984년 남과는 불가침조약, 미국과는 평화협정을 역제안했으나 남도 미국도 응하지 않았다.
 
1990년 공산권이 붕괴되자 남북은 1991년 유엔에 따로 가입하고 북은 유엔회원국 앞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북미평화협정을 다시 제기했다. 남북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고, 미국은 남녘에서 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잠수함과 핵폭격기는 남녘에 드나들며 핵우산을 제공하는 3만 미군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전력 생산을 위해 1992년 북이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하자 미국은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팀스피릿 대북미한합동전쟁연습을 재개하자 1993년 북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의사를 발표했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북핵문제 협상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북핵은 북·미 사이의 문제가 되었다. 
 
남이 북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역할도 못하게 되자 클린턴 정부가 1994년 북과 ’기본합의’를 했다. 내용은 북의 중수로를 동결하면 10년 안에 100만 킬로와트 경수로 2기를 남한의 경비로 건설해 주고, 경제제재를 완화하며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공산국가들처럼 붕괴를 예상했던 북이 흔들림이 없자 미국은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기 시작했다. 기본합의를 관장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보스워스(S. Bosworth)총장은 이런 사실을  “기본합의는 서명한지 2주일도 안돼 고아가 되었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고 했다. 북은 미국에 합의 사항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1998년 태평양 너머로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복합적 의미가 있는 무력시위를 했다. 
 
1998년 출범한 남의 김대중과 북의 김정일 정부가 화해·협력을 표방하고 2000년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내왔다. 남북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002년 9월 중순 북·일정상회담을 하고 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했다. 이에 놀란 미국 부시 정부는 10월 초 켈리(J. Kelly)를 평양에 보내서 북에 우라늄 고농축 의혹을 제기하고 귀국한 뒤, 북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기본합의’를 파기했다. 중수로 동결 8년에 북은 빈손이 된 채 당했다. 이를 보고 북미 기본합의 협상팀에 참여했던 국무부의 위트(J. Witt)는 “북미 합의의 기념물은 콘크리트로 메워진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 라고 했다. 
 
이에 북은 2003년 초 NPT에서 탈퇴했다. 그 해 3월, 핵개발을 저지한다며 핵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을 본 북은 핵무장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마치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패퇴하는 미국을 본 남녘 박정희 정부가 자주국방을 위해 핵무기개발을 비밀리에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북은 이때부터 핵개발에 적극 나선 모습이었다. 퇴임 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북이 1994년 북미 기본합의를 안 지킨 것은 없다.” 고 했다. 
 
대북 강경적인 보수 부시 정부는 중국을 앞세워 2003년 일본과 러시아도 참여하는 6자회담을 출범시켰다. 중국 주도의 6자회담에서 ‘Korea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모색할 2005년 9.19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미국은 돈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은행 북 계좌를 동결했다. 무고한 이 조치에 대항해 북은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10월 제1차 핵시험으로 맞섰다.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고 2007년 2.13과 10.3 원자로 불능화 합의 등에 따라 2008년 북은 영변 핵발전소 냉각탑을 공개 폭파했다. 
 
2007년 10.4 남북 평화번영합의를 한 노무현 정부에 이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남북 정상이 발표한 6.15, 10.4선언 무력화를 시작했다. 한편 집권하면 북과 직접대화 하겠다던 오바마 정부가 2009년에 출범했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로 북의 붕괴를 기대한 남녘 정부가 반대하자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북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기 위해 2009년 4월 인공위성 실은 미사일 발사에 이어 5월에는 제2차 핵시험 시위를 했다. 유엔안보리는 미국과 남의 주도로 제2차 대북제재 조치를 채택하고 북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무시하는 정책을 계속 했다.
 
이런 역사가 지난 60년 동안 북·미 사이에 되풀이되어온 미국의 핵위협 - 평화협정 제안-불응- 미사일 발사- 핵개발 의혹- 북미기본합의- 파기- 핵 시험- 유엔 안보리 제재 반복의 요약이다.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 밖에서 본 한반도>, 오인동 지음, 솔문 펴냄, 2010) 그러면 평화협정과 핵개발 문제로 합의했던 사항을 어긴 쪽은 누구 인가? 
 
미국은 북, 북은 미국이라고 한다. 약육강식이 국제관계 역학의 상식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남녘 보수정부와 수구언론에선 언제나 미국의 주장을 따라 복창해 왔다. 한편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 조차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 (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는 말도 했다. 즉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합의 사항을 어기면 북이 미사일이나 핵시험 시위로 협상을 압박하는 것을 미국은 북의 ‘벼랑 끝 전술’이라 했다. 6자회담에서 북과 미국이 벌여온 논쟁과 타협과정을 지켜본 남녘정부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미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은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남녘 지도계층이 “북의 도발-제재-타협-보상의 나쁜 버릇을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미국 정부 관료들은 어떻게 듣고 있을까? 최근 오바마 정부 국가안보회의 베이더 국장의 저서, 
 
미국의 Korea 전문가 씨갈(L. Sigal)이 말하는 북미 사이의 Tit For Tat(치고받고,티격태격) 의 반복을 돌이켜 보면 북의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주장의 진정성에 의심마저 생긴다. 왜냐하면 미국이 합의 사항 이행을 지연시키거나 ‘골대를 옮겨’ 다시 협상해 합의하고 또 파기하는 동안에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높아져만 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도적이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북에 핵 미사일 개발을 은근히 강요해온 셈이 아닌가.
 
2012년 북은 헌법 전문에 핵 보유를 명기했고 드디어 실용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유엔안보리가 또 제재결의를 채택하자 북은 2013년 봄, 경량화·다종화 했다는 제3차 핵시험을 했다. 그 뒤 미국은 대북 미·한 합동전쟁연습에 스텔스폭격기를 동원해 핵탄 투하연습까지 했다. 이에 북은 ‘핵대핵 대결’을 선언하고 ‘정전협정 백지화’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무효화 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유엔 대북제재조치가 뒤따랐다. 정의든 불의든 15개 유엔안보리 국가들도 각기 국익에 따라 패권 미국의 주도를 따르고 있다. 핵 없던 이라크, 핵 개발 중도 포기한 리비아가 침공당했고 핵 개발하는 이란이 위협받고 있다. 유엔도 언제나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만도 않은 현실 세계이다.
 
이와 같이 미국 국익에 따라 세계 질서를 유지하느라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변화로 무시, 기피, 거부해 오다 보니 미국은 결국 우리 겨레의 한쪽에 핵미사일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강요된 선택으로 개발한 북핵은 지역 평화를 위협하니 폐기되어야 한다고 미국은 또 주장한다. 즉 미국의 핵은 평화를 위한 것이고 남한은 안보의 명분으로 미국의 패권정책을 따르며 복창하고 있다. 그래서 평화협정은 안 되었고 북의 핵무기가 개발된 것이 남북미 상관관계의 현주소이다. 
 
그런데 북핵의 당사자인 남은 이 문제를 미국이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하고, 북은 남의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미국과 타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렇게 북·미(남) 사이에 반복되어온 역사를 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이제, 똑바로 깨달았다면 앞으로 조국의 북녘에 있는 핵을 어떻게 하는 것이 조국 반도에 평화체제를 마련할 수 있고 또 겨레의 만년대계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봄 직하다. 겨레의 앞날은 오직 우리 겨레가 결정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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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조작’ 비공개 재판 녹취록 공개

등록 : 2014.03.19 18:26수정 : 2014.03.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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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중국 연길시에서 만난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도중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다. 허재현 기자

유우성씨 “동생이 너무 무서워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비공개 재판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19일 공개한 녹음파일은 지난해 3월4일, “유가려의 진술이 번복될 수 있다”며 검찰 요청으로 안산지원에서 열린 증거보전 재판 때 생성된 것이다.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유가려씨는 검찰의 140개 신문에 모두 힘없는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유우성씨가 2012년 설날 무렵에 북한 보위부의 지시로 북한 회령에 다녀오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는 내용들이었다. 유가려씨는 법정에 딸린 별도의 방에서 오빠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증언을 계속했다.

 

 

 

 

 

그러나 변호인 반대신문 차례가 되자 유가려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유우성씨는 “동생이 너무 무서워하고 있다. 지금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로) 돌아가게 되면 저도 그 심정 너무 잘 안다. 저 어린 여자애를 독방에 가둬놓고 하루도 아니고. 아무리 여자애라도 그렇지. 그리고 변호인을 보냈으면 변호인을 한 번 정도는 만나보는 게 법체계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우성씨는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여기서 말해.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해. 네가 한국법을 몰라서 그래. 무서워하지 마”라고 흐느끼는 동생을 다독이며 “물론 국정원에서 억지로 얘기하라고 했겠지만 사실은 밝혀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유우성씨는 이날 2012년 설 무렵에 북한에 다녀왔다는 자신의 범죄사실을 깨는 증거를 이날 법정에서 제시했다. 그해 설에 중국 옌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유우성씨는 “내가 중국에 가서 너하고 아버지랑 같이 설 쇠려고 들어갔는데 그때 가족사진도 있다. 그 사진은 뭐냐. 그 사진은 귀신이 찍은 거냐”고 반문했다. 유우성씨는 울부짖었고 오빠가 증언하는 동안 유가려씨는 내내 흐느꼈다.

 

유가려씨는 남한에 들어온 뒤 4개월 가까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유우성씨의 간첩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고 있었다. 변호사를 접견할 수도 없었다. 격리돼있는 상황에서 증언이 이뤄졌지만 유가려씨는 재판이 다 끝난 뒤에 오빠의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검사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주요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인을 피고인과 미리 대면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 우리 형사소송법 인용과 조금 다른 것 같다”며 반대했다. 유씨 남매는 공개된 법정에서 2분 동안 겨우 대면할 수 있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유우성 간첩 조작’ 비공개 재판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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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3/20 14:58
  • 수정일
    2014/03/20 14: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교황 선출 1주년 평가를 위한 지금여기 좌담회 - 1]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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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0  1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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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이후 지난 1년간, 교황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행보는 전세계인을 매료시켰으며,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비롯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왜 기쁨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삶에서 기쁨으로 승화시켜야 하는지 명징하게 되짚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메시지와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세상의 문제를 성찰하고, 가난의 영성을 되찾는데 영감을 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황에 대한 환호가 단순한 이미지 소비에 머무르거나 신화화로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교황 선출 1주년과 방한 결정에 즈음해 좌담회를 마련하고 한국 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그의 방한을 준비해야 할지 묻고 답했다. 우리는 교황에게서 무엇을 얻고 배웠으며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어떤 성찰을 해야 할까. 또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좌담회는 18일 서울 동교동 쿱미디어 사무실에서 열렸으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편집국장의 진행으로,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실행위원 이원영 씨, 그리고 예수회 조현철 신부가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들은 먼저 교황 프란치스코의 지난 1년 행적이 세계 교회와 시민들에게 미친 영향과 많은 이들이 교황에 환호하고 있는 현실이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 분석하고 성찰했다.

 

   
▲ 왼쪽부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편집국장, 조현철 신부,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 이원영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실행위원 ⓒ정현진 기자

한상봉(이하 한) : 교황 프란치스코가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세계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어떤 행동과 말이 매력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조현철(이하 조) : 교황 방한에 대한 일반 시민들과 각계의 반응도 그렇고,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교황에 대한 기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려하는 것은 “교황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를 떠나서, 그분과 가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교황은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고,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을 듣고, 알아야 할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살아내면서 바꾸는 것이 남았다. 교황이 상징적으로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에게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의 주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

김근수(이하 김) : 교황의 인기에는 그분의 소박한 성품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남미 특유의 유머, 평소에 살던 가난에 대한 품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전임 교황과의 대조점이 부각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학자의 통역이 필요 없는,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칼 라너 신부와 비교하자면, 칼 라너는 전통적 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캐낸 분이고, 교황은 성서에서 새로운 의미를 캐낸 분이다. 가난한 사람을 확실히 편들고 비인간적 경제체제에 대해 뚜렷하게 비판한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 교황의 지난 1년 여정이 한국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이원영(이하 이) : 무엇보다 한국 교회 평신도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번 추기경 서임에서 보였듯이, 그 전에는 평신도들이 추기경 서임과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나서서 바티칸에 의견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소통할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것은 평신도들이 교황 선출 이후, 지속적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시국기도회를 비롯해 많은 평신도들이 신앙과 삶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 국제적으로 교황을 따라하는 모방 붐이 일고 있다. 이미지 소비라는 우려도 있지만 다른 맥락에서 보면 긍정적 효과를 갖기도 한다.

 : 교황을 의식하고 따라하려는 움직임은 각 나라의 정치에서도 보인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오바마 케어’ 정책을 진행하는 과정이 한 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의료 혜택을 주장하는 정책에 공화당은 반대하고 나서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지지율에 대한 의식도 한 몫 했겠지만.

그리고 최근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이 교황의 메시지다. 이것은 통계 자료로도 나와 있다. 이런 것도 긍정적인 ‘프란치스코 현상’인 셈이다.

대중들은 엄숙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존재가 탈권위적이고 소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열광하고, 각 나라의 정치인들은 이를 의식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황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삶과 말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일치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자에게 어떤 사람이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삶과 말, 비전이 일치되는 삶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민중이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보여주는 것이 ‘프란치스코 현상’이며, 그것의 본질은 교황의 삶 자체에 있다.

 : 교황의 개인적 성품에 열광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가 제도 개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교회 내적으로 보면 평신도들이 똑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을 보여줬다면, 그 비전에 비춰 가톨릭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다. 즉 교황의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전체 교회의 팀플레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조현철 신부

 : 앞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프란치스코 현상이 교회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대외적으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가 정말로 바뀌기 위해서는 교황의 행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 구조의 변화를 이뤄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교황의 메시지를 통해서 확인하고 받아들인 것을 살아내면서 아래로부터의 쇄신이 일어나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황의 메시지와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어느 순간 만나면 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교황은 교황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 가르침을 받아 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 현재까지의 ‘프란치스코 효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갖는다. 그렇다면 이것이 단순히 ‘이미지 소비’, ‘브랜드 효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 교황의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평신도들은 평신도 운동 활성화 계기를 만들고, 사제들 또한 자기 개혁을 해야 한다. 교황은 성직자 중심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가난한 교회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교황이 다녀간 후에는 헌금도 덜 걷고, 교회의 수입과 지출을 줄이고, 개발 사업을 줄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속화된 사제들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부유한 신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개혁적인 신자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사제로서의 정체성은 흔들릴 수 있고 자괴감이 생길 수도 있다.

   
▲ 이원영 가톨릭행동 실행위원

 : 평신도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 운동이 활성화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복음의 기쁨> 독서 모임을 지역별로 구성하고, 자체 세미나나 강좌를 아주 작은 지역에도 만들어 활성화하는 것이다. 교황의 메시지 하나에서부터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것이다.

교황 방한이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 교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각성하고 성찰하는 평신도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과 그들이 더 큰 공동체를 이뤄서 교회와 사회 자체가 성찰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 교황의 영향 중 하나는 언어의 변화다. 이를테면 ‘가난’을 강조하면서 ‘부자’, ‘부유함’을 내세우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IMF 이후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저어된다는 느낌이다. 교회 안에서도 사라진 ‘가난의 영성’, ‘가난’이라는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고, 복음의 본질이 가난과 닿아 있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다. 강론, 담화문에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고, 그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메시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 그동안 예수의 복음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고, 부자들에게는 불편한 소식이라는 것을 간과해왔다. 이제 이것을 부각시켜야 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 한국 교회가 이 시점에서 어떤 고민과 준비를 하는 것이 교황의 뜻을 잇고, 기쁨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주체가 되는 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 교황과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성찰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결심해야 한다. 특히 평신도 교육과 같은 것. 그렇지 않으면 교황의 좋은 말과 행동이 상품으로만 소비되고 말 것이다.

말씀을 한 번 듣고 넘길 것이 아니라 뜻 맞는 이들끼리 깊이 성찰하고 어떻게 삶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풀뿌리 활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삶 안에서 자체적으로 그분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소비하지 않고 새기고 살아내고 자양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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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제생 종편이 우등생? 심사 아닌 정권 입맛

심사위원 구성 사실상 1인 독재 형태, 공정성 점수도 ‘양호’
 
육근성 | 2014-03-20 12:34: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방통위가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종편 3사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했다. 그간 종편이 보여준 객관적 성적은 형편없이 초라하다. 제대로 평가를 했다면 ‘낙제점’이 나왔어야 마땅하다는 게 중론이다. 

누가 봐도 종편은 ‘낙제생’

심사위원들은 후한 점수를 줬다. 의결권이 있는 상임위원들 과반은 열등생을 우등생으로 둔갑시켜 놓은 심사결과가 타당하다고 손을 들어줬다. 아무리 봐도 종편은 낙제생인 게 확실한데도 말이다.  

먼저 70점이 부과되는 기획·편성 적절성 평가. 2011년 종편 승인 당시 TV조선과 JTBC, 채널A 등은 보도 프로그램 비율을 각각 24.8%, 23.4%, 23.5%을 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방통위는 이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승인해 줬다.

하지만 종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보도 비율은 TV조선 38%, 채널A 33.1%로 계획보다 보도 프로그램을 50%나 더 늘려 편성했다. 그나마 JTBC만 18.1%로 약속을 이행했을 뿐이다. TV조선과 채널A는 사실상 보도전문채널처럼 운영돼 왔다.

그런데도 이번 재승인을 위해 제출한 계획서에는 향후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을 최대 47%(TV조선)와 38.9%(채널A)로 높이겠다고 돼 있다. 이 정도면 마이너스 점수를 줘야 한다. 그런데도 모두 ‘양호’한 점수를 받았다. 

공정성 항목에서도 양호한 점수

‘방송의 공정성 실현’ 항목에서 종편이 얻는 점수는 보는 이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TV조선과 채널A는 당연히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 모두 무난한 점수를 받았다. 낙제점이 나오지 않도록 최고와 최하 점수를 적절히 배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부문은 정성평가만으로 심사가 이뤄진다.  

‘재정 능력(자체 제작비 투자계획)’ 심사 결과 역시 '양호'. 엉터리 평가다. TV조선의 경우 2011년 승인 당시 연간 1188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이뤄진 건 318억원에 불과했다. 채널A는 투자계획의 34.7%, JTBC는 44.2%만 이행했을 뿐이다. 

이번 재승인을 겨냥해 TV조선과 채널A는 투자액을 두 배 정도 늘리겠다는 계획서를 냈다. 하지만 이행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JTBC만 공격적인 경영을 예고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 평균 2027억원씩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제대로 평가를 했다면 JTBC를 제외한 TV조선과 채널A는 재정능력 항목에서 낙제점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두 ‘낙제생’에게 JTBC와 비슷한 점수를 줬다. 낙제생을 우등생으로 만들려고 애당초 작심했다는 얘기다. 

 

낙제생을 우등생으로 둔갑시킨 심사위원들

‘경영계획 적절성(조직 및 인력운영)’ 평가도 엉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종편 3사가 채용한 인원은 모두 1497명. 향후 3년 동안 채용계획은 327명에 불과하다. 2011년 종편 승인 당시 방통위는 종편이 출범하면 1만8000명 규모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장담한 바 있다. 국민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종편 탄생을 부추긴 정부. 종편이야 말로 ‘귀태’다. 

이럴진대 그래도 모두 재승인 기준을 거뜬히 넘었다. TV조선은 684.73점을, 채널A는 684.66점, JTBC는 그 중에서 가장 높은 727.01점을 받았다. 조건부 재승인이나 재승인이 거부될 수 있는 수준이 650점 이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재승인 심사에서 종편이 거둔 성적은 양호한 축에 든다. 

어떻게 낙제생이 우등생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구조적으로 ‘독재’가 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종편 심사위원과 방통위 상임위원 구성은 특정 정파의 입장이 100%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심사위원 구성 사실상 ‘1인 독재’ 형태

종편 재승인 의결권은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행사한다. 5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3명은 여당 몫이고 2명이만 야당 추천이다. 합의제 정신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여당의 입맛대로 의결이 될 수밖에 없다.

평가심사권을 행사하는 심사위원 구성은 1인 독재 형태다. 15명이 정원인데 3명만 야당 방통위원이 추천하고, 나머지 12명은 여당과 방통위원장의 몫으로 선임된다. 법이나 규정으로 심사위원 비율이 정해지는 게 아니다. 방통위원장이 전권을 갖고 결정한다.  

 

평가 방식도 문제다.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량평가가 이뤄져야 하지만 종편 심사위에서 행해지는 방식은 정성평가. 심사위원 개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평가 과정에 얼마든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심사 방법, 항목 구성, 채점 방식 모두 불공정 게다가 특별 배려까지

심사결과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지는 것도 문제다. 심사위원들도 본인 점수만 알 수 있을 뿐, 심사결과를 보고 의결해야 하는 상임위원들에게도 세부항목에 대한 채점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다. 총점만 보고 최종평가를 해야 하니 의결권 행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수밖에.

채점표 구성에도 꼼수를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취약한 항목과 무난한 항목을 한 카테고리에 묶어 큰 항목을 설정해 놓았다. 특단의 항목에서 낙제점이 나와 이것이 ‘재평가 탈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지책인 것이다. 

감점 요인을 최대한 제외시켜 주었다. 행정소송 중인 사안을 감점요인에서 배제한 것이다. 방송심의위로부터 감점을 받은 경우 이의신청이나 소송을 제기하면 감점 인정이 보류된다는 점을 악용하는 종편도 문제지만 이렇게 종편을 살뜰이 배려하는 방통위가 더 큰 문제다. 

야당 뭐하나, 종편 특혜라도 거둬들여야 

심사위원 15명이 내놓은 점수에서 최고와 최저를 제외한 13명의 점수 평균이 최종 평가점수가 된다. 야당 추천 위원이 3명에 불과하다면 심사는 하나 마다다. 심사가 아니라 방통위원장 1인 ‘독재’로 진행되는 요식 행위'나 다름없다.

낙제생을 우등생으로 만들어 놓은 방통위.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종편에 부여된 특혜는 거둬들여야 한다. 종편 1사1랩 허용, 중간광고와 의무재전송 허용, 10번대 황금채널 부여, 소유규제 특혜 등을 그대로 두려는 건가. 

방통위의 독재를 막을 방도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야당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 12대 3의 구조를 만들어 전횡하는데도 얌전히 앉아 조용히 항의만 하는 야당. 방송을 걱정하는 국민들은 이런 야당을 원하지 않는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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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생각으로 전경련 회장 글은 도저히…"

[인터뷰]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성현석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0 08:00:37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을 때, 그는 세상을 떠났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글을 썼다. 글 쓸 종이를 구할 수 없어서, 껌 종이, 과자 포장지에 못으로 꾹꾹 눌러썼다. ‘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닮았다. 둘 다 지독한 독서가였다. 좋은 글의 가치를 알아봤고,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걸쳐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사람이 얼마 전 책을 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이다. 저자 이력만으로도, 관심이 간다. 김대중 정부에선 연설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에선 연설비서관을 지냈다. 말과 글에 대해선, 누구 못지  않게 눈이 높았을 두 전직 대통령 아래에서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었다. 책장을 열어보게 되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그렇다. 글쓰기 내공이 만만치 않다. 한번 펼치면, 놓기 힘들다. 매끄러운 문장이 촘촘히 이어진다. 비문이나 오타 역시 찾기 힘들다. 호흡 조절도 세련됐다. 지루해질 듯하면,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이 정도 필력이 되니까, ‘말과 글’의 최고 고수 옆에서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저자에게 만남을 청했다.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요즘 들어, 대통령의 말이 거칠어졌다.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다는 암 덩어리”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단정하고 힘 있는 말로 정치를 했었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한동안 그랬다. 그런데 집권 2년차에 변화가 생겼다. 말이 길어지고, 비유가 거칠어졌다. 어째서일까.
 
대통령의 말을 곱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치는 결국 말이니까. 말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진다. 대통령의 말이 달라진 데 대한 저자의 생각도 궁금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저자를 만났다.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주간과 이날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편집자>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 도구는 말과 글뿐이다"
 
프레시안 : <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책인 동시에,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법을 다룬 실용서적이기도 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워낙 ‘말과 글’을 잘 다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말과 글’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강원국 : 두 분이 말을 잘하게 된 건, 결국 시대적 산물이다. 말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잘하게 됐다. 두 분은 모두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했다. 대통령은 이런 두려운 존재와 대화하는 자리라고 봤다. 그러니 얼마나 말에 신경을 썼겠나.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하는 건 옛날 방식이다. 권위주의 시대엔 지도자가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엔 다르다.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는 방식은 쓸 수 없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자면 도구가 말밖에 없다. 
 
내가 모셨던 두 대통령은, 말하는데 한 시간을 쓴다면 과정을 오십분 설명하고 결과를 십분 설명하는 식이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려 애를 썼다. 그게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들은 달랐다. 결과를 이야기하는데 오십분을 쓴다. 왜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십 분 밖에 쓰지 않는다. 
 
아마 중간과정을 길게 설명하는 게 시간낭비라고 여기겠지. 성장, 효율만 중시하는 입장에선 그게 당연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믿을 테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가리켜 ‘불통(不通)’이 문제라고 한다.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비판을 듣는 당사자들은 억울할 게다. ‘충분히 설명했는데 왜 불통이라는 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을 듣는 국민은 저절로 안다. 나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설득하는 자세인지, 나에게 지시하고 따르라는 방식인지 말이다. 
 
"대통령이 수첩 보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프레시안 : 늘 주류에만 있었던 이들은 굳이 말을 잘할 필요가 없다. 남을 설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주류 세력, 탄압받는 측, 소수자 집단에겐 설득력 있는 말과 글이 절실하다. 주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에게 낯선 메시지를 설명해야 하니까. 또 탄압에 맞서기 위해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니까 말이다. 
 
강원국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 그리고 최후 진술을 해야 했다. 자기 이야기를 절절하게 해야만 하는 상황, 그래서 남을 설득해야만 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늘 주류에만 있었던 대통령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게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말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말과 글의 중요성을 아주 높게 쳤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도자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발 앞서 이슈나 아젠더를 내놓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을 통해서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기 생각을 글로 쓰지 못하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도자가 자신의 말과 글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래 참모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또 진정성을 담아 국민과 소통할 수도 없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된다. 아마 그런 경험이 거의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누군가가 박 대통령을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된다. 이런 특징이 대통령의 말에 반영돼 있을 게다. 
 
강원국 : 흔히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서, 수첩에 적어놓은 것을 읽기만 한다고 비판한다. 이건 잘못된 비판이다. 미리 적어둔 원고를 읽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문을 읽었다. 심지어 자신이 미리 구술한 내용을 적은 연설문일 때도 그랬다.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본 거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남이 써준 원고를 읽는다는 게 시빗거리는 될 수 없다. 똑같이 연설문을 읽어도 차이가 있다. 국민은 그걸 느낌으로 안다. 글이나 말은 자기 자신이고, 삶 자체다. 살아온 역정이 다르면, 말과 글도 다를 수밖에 없다.
 
'튀는 말'에 대한 노무현의 두 가지 생각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변했다. 말이 길어지고, 거친 표현이 자주 튀어나온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경험에 비춰보면, 어떤가. 이런 변화는 의도된 걸까.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강원국 : 당연히 대통령이 의도한 거다. 다만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간혹 언론사에서 전화가 온다. 후임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는 게다. 광복절 경축사 같은 게 단골 주제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응대한 적이 없다. 
 
튀는 표현은 노무현 대통령도 많이 썼다. 흔히 실언(失言)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썼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 투기 근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강남이 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라고 했다. 솔직히 고급스런 언어는 아니다. 대통령이 쓸 만한 언어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론이 비난도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할 말이 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편지를 계속 보내는데,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한다’라고 했다. 자극적인 표현을 써야 언론이 기사를 내준다는 게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이 외면했다. 
 
자극적인 표현에 대해 대통령은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대통령의 언어, 서민의 언어가 따로 있느냐"라는 것이다. 말이란, 쉽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게다. 다른 한편으론 반성도 했다. 대통령은 고급스런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말에 관해서는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그것 때문에 대통령 잘못 뽑았다고 한다면,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국민이 그걸 모르고 뽑은 게 아니지 않나. 대통령의 언행이 감춰진 채 선거를 치른 게 아니지 않나. 과거 대통령들은 말실수를 안 했을까. 김영삼 대통령은 얼마나 말실수를 많이 했나. 
 
튀지 않는 김대중, 독창적인 노무현
 
프레시안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말을 잘했지만, 말하는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강원국 :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맡았을 때, 그래서 무척 애를 먹었다. 다른 점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은 중요한 메시지를 반복할 때가 많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걸 몹시 꺼렸다. 
 
김 대통령은 일반론을 펴기를 좋아했다. 유명학자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식이다. ‘인류는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혁명 등 다섯 번의 혁명을 거쳤으며, 21세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 문화가 인류 진보를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다. 대신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리와 주장, 구체적인 표현을 좋아했다. 또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탐탁치 않아했다.
 
김 대통령은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어떤 일의 배경부터 파급효과까지 논리적으로 연결된 전체를 이야기했다. 또 김 대통령은 너무 튀는 표현을 싫어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인상적인 첫 한 줄을 원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입부에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고 뒤에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또 자신 있는 표현을 좋아했다. 
 
즉석연설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달랐다. 김 대통령은 반드시 사전에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책임 있는 태도라는 게다.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즉석 발언이 많았다. 청중과 직접 호흡하는 현장교감형 연설을 했다. 그게 오히려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라고 봤다. 
 
대통령 말 끊고 화장실에 달려간 사연
 
프레시안 : 말과 글에 관한 한 대단한 전문가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스트레스가 대단했겠다. 책을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렸다고 돼 있다. 
 
강원국 :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글에 대해선 눈이 무척 높았다. 내가 작성한 연설문 초안이 바로 통과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속 첨삭을 하거나, 아예 새로 쓰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그런데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나니, 말끔히 나았다. 
 
청와대 근무 시절, 시도 때도 없이 배에서 신호가 오는 탓에 고생이 많았다.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창 이야기하는 중에 배가 아파온 적이 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통령에게 차마 이야기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그래서 결국 벌떡 일어났다. ‘대통령님’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눈치를 채더라. 웃으면서 ‘다녀오게’ 그랬다. 후다닥 화장실 다녀오니까, 대통령이 ‘어디까지 이야기했지’라고 묻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작스레 화장실 갈 일이 생길까봐,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아예 관장을 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장을 완전히 비워뒀다. 대통령을 모시고 육로로 방북하는 중에 내가 화장실 가야 한다는 이유로, 차를 세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한 면모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강원국 : 노무현 대통령은 특혜, 특권, 권위의식 등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그게 그분의 철학이었다. 노 대통령은 '역사의 진보란, 소수가 누리던 걸 다수가 누리게끔 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권력이건, 경제력이건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특혜를 누렸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소수가 누린 ‘특혜’를 다수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이 글쓰기였다. 대통령은 재임 중에 나더러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하며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끔 책으로 쓰라고 했었다. 국정상황실에서 중간점검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쓰지 못했다. 정말이지 너무 바빴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도, 대통령은 같은 말을 했었다. 그래도 하지 못했는데, 출판사에 들어온 뒤에야 책을 쓸 수 있었다. 
 
"대통령에게 배운 생각으로, 전경련 회장 글은 못 쓰겠더라"
 
프레시안 : 늘 ‘남의 글’만 썼다. 사실상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였던 셈인데, 이제는 자기 이름을 내건 글을 썼다. 소감이 어떤가.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강원국 : 나는 원래 글을 잘 못썼다. 이런 내가 스피치라이터(연설문 작가)로 밥벌이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대학 졸업하고 대우증권에 입사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대우증권 창립 20주년 사사(社史)>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글쟁이’가 됐고, 사장과 회장의 연설문을 쓰게 됐다. 김우중 대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되고 나선 회장 비서실로 옮겨 김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맡았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실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였다. 이후 8년 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다. 
 
스피치라이터는 글을 아주 잘 쓸 필요가 없다. 글을 잘 쓰면 자기 문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건 곤란하다. 연설하는 사람에 맞춰야 한다. 자기 생각이 너무 분명해도 안 된다. 나처럼 색깔 없이 성실하면 되는 일이다. 연설하는 사람의 생각에 푹 빠져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빙의’돼 있어야 한다. 
 
연설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대우에서 일하던 시절, 김우중 회장은 내게 영웅이었다. 정말 존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들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게 ‘신화 속 영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가문의 영광'이라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청와대를 떠난 뒤, 효성그룹에 취업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조석래 효성 회장의 연설문을 쓰는 게 내 일이었다. 급여와 대우가 아주 좋았다. 게다가 조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연설문의 중요성을 인정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관뒀다. 두 대통령을 모시며 배운 게 많았다. 조 회장의 생각은 그 내용과 달랐다. 내가 배운 것과 다른 글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반 년 동안 놀았다. 
 
그 뒤, 여러 직장을 거쳐 출판사에 오게 됐다. 출판사 일은 재미있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감수를 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 글을 읽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선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해 내가 ‘지적질’만 하면 됐다. 해보니 좋았다. 마침 회사에서 편집자들에게 페이스북을 꼭 하라고 했다. 거기 올라오는 정보도 살피고, 책 홍보도 하라는 게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글’을 쓰게 됐다. 호응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게다가 출판사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쓰는 게 꼭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두 달 휴직하고 책을 썼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내라던, 노 대통령의 지시를 이제야 이행한 셈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방점은 ‘대통령’이 아니라 ‘글쓰기’에 찍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연설문이라는 실용적인 글을 쓰는 요령에 대한 책으로 읽혔으면 한다. 실제로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다음에는 ‘회장님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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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안철수, 6.15·10.4 제외? 역사 의식의 부재"

[인터뷰] "기초 무공천은 새정치 아니다. 재고해야"

임경구 기자, 선명수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18 22:28:53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무공천. 이걸 고리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손을 잡았다. '약속 대 거짓'으로 여권과 각을 세웠다. 하지만 딜레마다. 새정치민주연합 홀로 무공천을 할 경우 풀뿌리 정치의 토양을 생짜로 새누리당에 바치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광역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거에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 지방선거를 내주고도 '새 정치'의 승리를 말할 수 있을까? 기초선거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속이 바짝바짝 탄다. 그런데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어렵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정면으로 문제제기 했다. "기초단체장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다 전멸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18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래도 약속인데. 정 고문은 "이게 양보할 수 없는 새 정치의 핵심이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그런데 무공천이 새 정치인가? 오답인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더욱 그렇다"면서 "선거는 결과가 말해주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서 우리는 도덕적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이 되겠느냐"고도 반문했다.

 

외부인들로 구성된 '새정치비전위원회'가 굴러가고 있다. 여기서 '새 정치' 알맹이를 만들어 제안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결과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 정 고문은 '새정치비전위원회'가 기초선거 무공천에 관한 '유턴'을 제안하는 방식을 거론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라는 안 의원의 생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제 윤리적인 검토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민주당의 '기본 정신'과도 같았던 6.15와 10.4 공동선언을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제외하자는 안 의원 측 제안에 대해선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 당시 안 의원 스스로도 공약 안에 포함시켰던 이 선언의 내용들을 끊어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질타였다. 덧붙여, "이 시대에 남북문제를 이념의 눈으로 봐선 안 된다"며 "남북관계는 능력의 문제"라고 충고했다.  

 

새 정치의 요체로는 '제도 개혁'과 '삶의 정치'를 주문했다. 우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그는 이를 '50대50 비례대표제'라고 표현했다. 국회의원 정원의 절반을 비례대표로 뽑고, 각 정당의 의석을 득표율에 걸맞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정 고문은 "정치 판 바꾸기의 핵심은 민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혁신하는 것"이라며 "승자 독식주의를 깨면 정치의 판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신당이 이를 다음 총선의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고 했다.

 

'삶의 정치'와 관련해 정 고문은 "노동 의제가 신당의 주요한 전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경제 민주화 같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빵집으로부터 골목 빵집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같은 구체적 약속이 신당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며 "좌우 논쟁을 그만두고 아래로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프레시안(최형락)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프레시안(최형락)

 

 

 

"6.15, 10.4 선언 삭제는 역사의식의 부재…즉각 바로잡아야"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 측이 신당의 정강정책 초안에서 6.15와 10.4 선언을 제외해 당내 논란이 거세다. 어떻게 보나?

 

정동영 : 6.15와 10.4 선언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이것을 부인할 민주당원은 없다. 정체성은 당연히 계승되어야 한다. 6.15와 10.4 선언은 분단의 질곡을 넘고자 분투해온 이 땅의 양심세력을 대표해 민주정부가 이룩한 역사적 성과물이다. 따라서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명문화되어야 한다.

 

이것을 정강정책에서 제외한다는 발상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남북문제를 이념의 눈으로 봐선 안 된다. 능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 6.15와 10.4 선언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개혁 세력이 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1972년 7.4 공동성명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연장선 속에서 진화해온 업적이다.

 

프레시안 : 6.15와 10.4 선언을 홀대하면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정동영 : 6.15와 10.4 선언은 앞으로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을 제외하고 부정하자는 것은 남북관계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시기 6.15와 10.4 선언 안에 있는 내용들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 점에 비춰서도 6.15와 10.4 선언을 제외하자는 안 의원 측의 제안은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프레시안 : 이제 본격적인 창당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간의 통합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 우리 정치권에 '새 정치 현상'이 나타난 지도 이제 2년 반이 지났다. 이제 신당을 통해 새 정치 현상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당의 짐이 무거워졌다. 지방선거에서 일단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야 창당의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

 

무엇보다 신당의 핵심은 새 정치 아니겠나. 내가 정치를 한 지 이제 18년이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추구해온 것이 정치 개혁이었다. 우리 정치를 바꾸는데 기여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에 투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새 정치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우리 정치와 정당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민의가 반영되지 못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민의라는 것이 선거 때만 반짝 투표를 통해서 반영될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정치가 내 삶과 동떨어져 버린다.

 

OECD 국가 중 선거 때마다 의원이 절반 가까이 물갈이 되는 국가는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상하원은 현역의 재선 비율이 90%를 전후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계속 물갈이를 하는데도, 여전히 국민들의 욕구는 해소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게 '새 정치'의 핵심 질문이어야 한다.

 

프레시안 : 통합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새 정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동성도 떨어지고 지지율도 답보 상태인 것 아닌가?

 

정동영 : 일단 신당의 목표는 분명하다. 2017년 정권 교체다. 목표는 분명한데, 정권을 교체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림이 아직 없는 것이다.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실패도 여기에 있다. 그 이후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2017년 정권 교체를 이뤄 민주정부 3기를 시작하려면, 지난 1,2기 정부와는 다르고 박근혜 정부와도 다른,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 없이는 집권은 여전히 어렵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새 정치'?…기초선거 대패한다면 安 정치적 책임 있어"

 

프레시안 :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통합의 지렛대가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이었다. 과연 그것이 통합의 명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동영 :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다. 기초단체장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대부분 낙선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 점을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마키아벨리도 반드시 지켜야 할 불가피성이 없다면 잘못된 정치적 약속은 폐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공천 약속은 기본적으로 여야 모두 무공천인 것이지, 새누리당은 공천하고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프레시안 : 그것을 약속으로 통합에 합의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된 것 아닌가.

 

정동영 : 아니다. 불가피한 게 아니라면 잘못된 약속은 시정해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 무공천을 (안 의원에게) 내주지 않았다면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한길 대표의 판단을 존중하고, 또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 역시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게 양보할 수 없는 새 정치의 핵심이라면 물론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공천이 새 정치인가? 무공천을 하면 새 정치가 달성되나? 무공천을 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나? 그런 약속이 오답이라면, 오답인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

 

최소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더욱 그렇다. 당장 통합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기초의원은 차치하더라도 단체장만 놓고 봤을 때, 무공천으로 후보가 난립하면서 대패할 가능성만 커졌다. 무공천 약속은 기본적으로 여야가 함께하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이 문제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지 않나. 선거는 결과가 말해주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서 '우리는 도덕적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이 될까?

 

신당 밖에 설치된 새정치비전위원회가 이번 결정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연 기초선거 무공천이 새 정치 비전으로 옳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모두 기초의원 전국 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무공천을 약속했다. 그들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 보니, 일단 약속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옳지 않은 약속이었다. 정당공천은 정당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그 뿌리를 자른 것이다. 정당을 육성하고 지원하라는 헌법 정신과도 배치된다.

 

새정치비전위원회가 당 밖에 외부 전문가들로 꾸려졌다고 하니, 거기서 원점 검토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공천이 과연 정당 민주주의 발전에 유익한 것인지 해악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라는 안철수 의원의 생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 문제는 윤리적인 검토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양당 기득권 구조 바꿔야…'50대50 비례대표제' 필요"

 

프레시안 : 단순한 '약속 지키기'와 다른, 새 정치의 내용물은 어떻게 채워야 한다고 보나?

 

정동영 :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제도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문제다.

 

일단 제도의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유권자 뜻과 괴리돼 있다. 정치가 그들만의 싸움을 하고 있어, 유권자가 아프고 가려운 부분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와 괴리된 정치의 판을 바꾸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현재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신당이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창당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총선을 통해 정치 지형을 바꿔야 한다. 20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과반 의석을 얻게 되면 정치의 판을 바꾸겠다고 호소해야 한다.

 

 

총선에서 제시할 판 바꾸기의 핵심은 민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혁신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양당 기득권 체제가 공고하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42%의 지지를 얻었는데, 득표율로 따지면 총 300개 의석 중 42%는 126석이다. 그런데 현재 새누리당 의석 수는 150석을 넘는다. 과대 대표돼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36%의 정당 득표율이 나왔는데, 득표율대로 계산하면 108석이 돼야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이 현 정치 시스템의 수혜자인 셈이다. 양당제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감이 높다면 정당성이라도 확보되지만, 그것도 아니다. 정치 불신과 탈정치 현상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새 정치 현상이다. 정치의 판을 바꾸라는 것인데, 결국 유권자의 의사가 한 표 한 표 모두 국회에 대표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열린우리당 때는 상향식 공천과 돈 선거 근절이 정치 개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이런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 시스템 개혁이 새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승자 독식주의를 깨면 정치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정동영 : 그렇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50대50 비례대표제'인 셈이다. 국회의원이 총 300명이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150씩 반반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인 19대 국회에선 이 제도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20대 총선에서, 신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 개혁 약속으로 제시해야 한다.

 

아직 국민들은 새 정치의 내용을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신당이 향후 제도 개혁을 한 축으로, 삶의 문제를 한 축으로 새 정치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현행 제도로는 유권자가 찍은 표가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식의 선거 제도를 개혁하는 걸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만약 신당이 과반 의석을 얻어 이를 실행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 총선에서 생태주의 정당이 나와 5%를 얻으면 국회에서 15개의 의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국가 운영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국민 100명 중 5명이 생태주의 정당에 한 표를 던졌다면, 그런 의사를 가진 5명의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주권자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는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20대 총선 공약으로 돌파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개헌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 개인적인 견해로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우리 개헌의 역사만 보더라도,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12.12 쿠데타, 6월 항쟁 등 혁명적인 상황이나 쿠데타에 의해서만 개헌이 이뤄졌다. 총칼에 의하거나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분출이란 압도적인 힘의 관계에 의해서 헌법 체제가 바뀌어온 것인데, 평시 체제에서 정치 세력 간의 타협 또는 담합으로 개헌이 성사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또 단기적으론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개헌 이전에 현실 가능성이 높은 법 개정을 통해 의회부터 판을 바꾸자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은 2017년 대선을 통해 의제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87년 체제에서 '2020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까지로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고,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당선된 권력의 자기희생을 통하지 않고선 어렵다. 우리 사회 시스템을 87년 체제에서 2020년 체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로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 대선이라고 본다.

 

"좌우 아닌 '아래'로 내려가야…신당, 노동 의제 중심적으로 다뤄야"

 

프레시안 : 신당이 채워가야 할 '새 정치'의 두 가지 트랙 중 하나를 제도 개혁, 다른 하나를 삶의 문제라고 제시했다. '삶의 문제'는 대표적으로 경제민주화나 복지로 좁혀진다. 안철수 의원과의 결합으로 이런 점에서 선명성이 다소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작은 성과라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강정책의 문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란보다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신당의 환경이 나쁘지 않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약속 파기로 일관하고 있고,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제 신당의 규모만 해도 130석이 되지 않나. 정의당 등 야권을 모두 합치면 140석이 넘는데, 이렇게 야권이 거대한 규모를 이룬 적은 없었다.

 

기본 원칙에 있어선 보편 복지가 기본이고, 선별 복지는 보완이다. 이걸 바꿔버리면 새누리당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역시 민주당 강령에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못 박고 있다. 그 역시 손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제민주화와 보편 복지라는 시대적 화두를 선도한 것은 민주당이었는데, 대선에서 확실히 깃발을 든 것은 박근혜 후보였다. 그걸 다시 신당의 정체성으로 끌어오려면, 분명한 원칙 하에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을지로위원회와 같은 의미 있는 활동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사실 민주당에서도 노선 논쟁은 해묵은 화두였는데, 안철수 세력과의 결합으로 더 복잡한 갈등이 노정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우클릭이나 좌클릭 이야기는 무익하다고 본다. 그게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IMF 위기 전엔 소위 봉우리가 하나인 사회였다.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맨 왼쪽의 빈곤층부터 가장 오른쪽의 부유층까지, 거꾸로 된 U자 형태였다. 일단 당시엔 75%의 국민들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봉우리가 하나인 '단봉(單峰) 사회'에선 민주당은 오른쪽으로,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맞다. IMF 위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 봉우리가 두 개인 '쌍봉(雙峰) 사회'로 바뀌었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7%가 스스로를 하류층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른쪽 봉우리(부유층)를 대표하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이동하는 게 맞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깃발을 든 것 아닌가.

 

흥미로운 점은 왼쪽 봉우리(서민층)에서 거의 6대4로 박근혜와 문재인을 찍었다. 그게 패배의 결정타였다. 850만 비정규직, 600만 자영업자, 300만 농민, 200만 청년실업자들이 6대4의 비중으로 새누리당을 뽑아준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새누리당이 포진해 있는 오른쪽으로 가야하나? 그렇게 되면 집권은 불가능하다. 왼쪽 오른쪽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재능교육 등 노동자들의 싸움 현장에 항상 민주당은 빠져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신당에게 그들의 표는 필요가 없나? 그들의 표는 100% 야권에 오나? 아니다. 6대4로 이미 왼쪽 봉우리에서조차 패배하지 않았나. 그래서 더욱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노동 의제가 신당의 주요한 전선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2017년에 정권이 바뀌면 IMF 위기 이후 계속되어온 정리해고 시대, 비정규직 시대를 끝내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정리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게 왼쪽인가? 그건 왼쪽 오른쪽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 같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빵집으로부터 골목 빵집을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신당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좌우 논쟁을 그만두고 아래로 내려가자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계파?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프레시안 : 정치적 노선과 관련한 논쟁의 연장선에서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 갈등이 상당했다. 여기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앙금이 남은 세력까지 한 지붕 아래 묶인 셈인데,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정치 노선과 관련한 논쟁이나 토론은 치열해야 한다. 그게 일종의 건강성의 지표다. 그런데 그에 대한 토론은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친노(親盧)니 비노(非盧)니 계파 논란만 있다. 그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친노 계파 해체 선언을 해달라고 두 번 요구했다. 결국 응답이 없었는데, 그 이후에 (문 후보가) 친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이는 말과 실재가 다른 얘기다. 

 

예컨대 2012년 총선만 해도 어땠나. 계파주의에 함몰돼 계파 한풀이를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170석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민주당의 선거 결과가 어땠나. 우리 정당사에서 가장 편협했으며 실패한 공천이 2012년 4월 공천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 대선 역시, 나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을 하면서 팀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우뚝 선 대선의 상수였고, 다른 후보들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집권하려면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한 팀으로 선거 캠페인을 했나? 아니다. 계파 후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2017년 대선에서 탁월한 후보 한 사람으론 집권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표 결집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국민들이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가장 알기 쉽게 향후 국정 운영을 알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선거 전략이라고 본다.

 

신당 안의 유력 대권 후보들을 보면 새누리당을 압도한다. 다 모아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100% 대한민국을 이야기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구멍 아닌가.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길,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역전할 수 있는 길은 팀으로서의 당을 보여주는 것과 역동성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친노의 해체 선언이 지금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보나?

 

정동영 : 2012년부터 줄곧 얘기해온 주제였다. 친노 뿐만 아니라 계파의 해체가 있어야 하고, 노선과 정체성을 갖고 건강한 토론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이 '호랑이 굴'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동영 : 안 의원이 성공하는 게 신당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함께 협력하고 경쟁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언젠가부터 내부에서 서로에 대한 앙금이 많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는 야당 밖에 못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친박과 친이가 서로 적대하고 갈라져 있었지만, 선거 국면이 도래하니 콩크리트 공조를 하지 않았나. 반면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이번에 어려운 결단을 했다. 연대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통합은 결단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는데, 안 의원의 결단을 보고 다시 평가하게 됐다. 결단을 할 수 있는 지도자인 것 같고, 성공하길 바란다.

 

"경기도 승산있어…오거돈 무소속 출마가 맞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는데, 통합 이후에도 수도권 판세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정동영 : 이번 지방선거의 중심 축이 이른바 경부선이다. 서울과 경기, 부산을 이기면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의 국정운영 방향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의 경우 일단 경쟁력 있는 후보군도 있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개인 인물 경쟁보다 노선 경쟁이 일 것으로 보이는데, 버스공영제라는 의제도 떠오르지 않았나. 일단 의제를 주도하면 새누리당은 끌려온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가 그렇지 않았나. 경기도는 승산이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서울의 경우 저쪽의 경선 흥행이 문제인데, 박원순 시장이 상당히 시정을 잘하지 않았나. 다만 걱정되는 것은 언론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저쪽에는 경선 흥행 찬조부대가 많다. 그런데다 이번 무공천으로 구청장선거까지 난립해 버리면, 우리 구청장들이 패하고 시장 선거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프레시안 : 오거돈 전 국토해양부 장관의 경우 무소속 출마를 고집하고 있다. 신당 입장에선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정동영 : 개인적인 견해로는 무소속 출마가 맞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새누리당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운영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부산에서 심판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신당이 돕는 것이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정 상임고문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진 출마설이 돌기도 했는데, 향후 어떤 정치 계획을 갖고 있나?

 

정동영 : 지방선거는 나의 길이 아니라고 지난해 말부터 일관되게 얘기해 왔다. 지난 총선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최고의 선(善)이 정권교체라고 누차 얘기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엔 어땠나. 국민들은 '이명박 시즌2'도 원하지 않았지만 '민주정부 시즌2'도 원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즌2가 아니라는 것을 포장하는 데 성공한 것이고, 우리는 민주정부 시즌2를 뛰어넘으려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를 18년 동안 해온 경험을 당이 2017년 집권하는 데 밑거름으로 쓰고자 한다.

 

프레시안 : 7월이나 10월 재보궐선거 때 기회가 열린다면?

 

정동영 :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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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난 가창오리 왜 북으로 가지 않나

 
주용기 2014. 03. 18
조회수 1166 추천수 0
 

'90% 떠났다' 정부 발표와 달리, 고창·서천 등에 17만 마리 '남행'

곤포사일로와 먹이 주기 금지로 영양부족 우려…번식 성공률 낮아질 가능성

 

vi1.jpg» 17일 전북 고창 동림 저수지에 가창오리 5만여 마리가 몰려들었다. 북상길에 올라야 할 이 시기에 이례적인 일이다.

 

가창오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예년이면 2월 중순부터 삽교호에 가창오리가 몰려들어 한 달쯤 머물면서 주변 농경지에서 낙곡으로 몸을 불린 뒤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떠난다.
 

그런데 이제 한 데 모여 떠날 채비를 할 가창오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17일 오후 전북 고창 동림 저수지에는 가창오리 5만여 마리가 몰려 있었다. 지난 2월2일부터 40일 정도 관찰되지 않았던 가창오리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vi4-1.jpg» 가창오리 15만 마리가 모인 지난 15일 금강호.

 

충남 서천 금강호에도 지난 한 달 동안 가창오리가 3000마리 정도밖에 없다가 지난 14일부터 10만 마리로 갑자기 늘어났다. 17일 현재 그 수는 12만 마리로 불어났다.
 

동림 저수지나 금강호는 모두 삽교호보다 남쪽이어서 이제 북상해야 할 가창오리가 오히려 남하하고 있는 것이다. 가창오리의 90%가 북상했다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의 발표와도 다른 사실이다.
 

vi2.jpg» 17일 촬영한 동림 저수지의 가창오리 무리.

 

삽교호에는 1월22일 4만 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2월13일 30만 마리까지 늘어났다가, 2월23일에는 15만 마리까지 줄어들더니 지난 16일 관찰한 바로는 3만 마리 정도에 그쳤다. 
 

예전에는 2월 중순부터 삽교호에 40만 마리가 넘는 무리가 모여있다가 북상했다. 그런데 올해는 삽교호에 1달 일찍 모여들더니 지금은 오히려 감소한 상황이다. 
 

가창오리가 정상적으로 북상하는지는 앞으로 한 주일쯤 더 지켜봐야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 징후는 먹이 부족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
 

vi3.jpg» 볏집을 말아놓은 곤포 사일로. 낙곡이 사라져 철새의 먹이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볏짚을 소 여물로 주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감싸는 관행이 널리 퍼져 가창오리가 낙곡을 먹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관련기사철새 먹이주기 금지, AI 방제에 역효과 ). 게다가 이번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로 철새 먹이주기를 정부가 금지하면서 가창오리가 영양 부족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철새는 번식지까지 장거리 여행과 이후 번식에 필요한 영양분을 월동지에서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가창오리가 필요한 영양분 을 미처 축적하지 못하자 하루가 급한 번식지로의 북상을 미루고 먹이를 찾아 떠도는지도 모른다.
 

영양상태가 나쁜 상태로 북상한다면 올라가는 중간에 폐사하거나 도착하더라도 번식 성공률이 떨어지게 된다. 북상 일정이 늦어지면 적당한 번식지를 차지하지 못하고 새끼를 기르는 시간도 줄어들어 새끼의 폐사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이동 실태와 건강상태를 확인해 봐야 할 상황이다. 혹시 집단폐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이주기에  적극 나설 필요도 있다. 
 

가창오리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보전에 관심을 쏟고 있는 종이다. 한반도 등 좁은 월동지에 너무 많은 개체가 몰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취약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2년 수가 너무 많다며 멸종위기종에서 해제했다. 멸종된 뒤 복원한다고 수선을 떨기보다 서식지에서 잘 보전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글·사진 주용기/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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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거부, 모르쇠, 유체이탈... 국정원 왜 이러나

[원세훈 26차 공판] 심리전단 5팀 직원들 '황당 증언' 잇따라

14.03.18 22:18l최종 업데이트 14.03.18 23:3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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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들의 황당한 답변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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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들의 '황당한 답변'이 이어지자 연일 법정에서 웃음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공판을 진행중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전날에 이어 18일에도 또다른 국정원 심리전단 5팀 직원인 김아무개씨를 증인으로 불렀다. 정년퇴직 후 현재 계약직으로 국정원에 있는 김씨는 지난해 10월 17일 긴급체포·압수수색을 당한 직원 세 명 중 한명이다. 그는 대표적인 국정원 트위터 계정으로 지목됐던 @taesan4의 주인공으로,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등 대선후보를 비난하는 수많은 게시글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트위터에 퍼뜨렸다.

하지만 거침없던 트위터 속 모습과 달리 오프라인에서 증인으로 나선 김씨는 이날 무척 몸을 사렸다. 그는 수많은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트위터 계정 부분은 적극적 진술거부권 행사

법정에서 김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김씨는 전날 출석했던 동료처럼 검찰 쪽 질문에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이미 검찰조사에서 진술했던 안보5팀 활동시기, 조직체계, '이슈 및 논지' 전달 방식 등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자신이 안보5팀에 가기 전에 트위터를 사용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 및 게시글 관련 진술에는 모두 진술을 거부했다. 검찰이 범죄일람표 내용을 일일이 제시하며 신문한 '봇(Bot·트위터 글을 자동으로 확산)' 프로그램 사용 여부 역시 답을 피했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말이 "내일모레면 나갈 사람이"였다. 그는 "트윗덱이나 트윗피드를 쓴 적 있냐, 업무매뉴얼을 구두로 전달받은 기억은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 대뜸 "내일모레면 나갈 사람이라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답변만 내놨다.

답답한 재판부가 여러차례 나서야 했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계속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고 있다,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먼저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자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 부장판사는 아예 "질문의 핵심은 OO이다, (증인은) '그런 일이 있다, 없다, 기억이 안 난다'로 답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기비하적 모습까지 보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려켜 "제가 지금 여기 앉아 있지만 제가 제가 아니다, 혼은 거의 딴 데 가 있다, 살아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수차례 검찰 진술을 번복하거나 확인을 거부하자 검사는 "검찰 조사 때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해서 오전10시경 안보1팀 직원에게 이슈 및 논지를 전자우편으로 받았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비슷하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적혀있을 것 같긴 한데, 제 기억력이나 상식으로 보면 제가 이렇게 자세히 (진술)한다는 걸 솔직히 이해하기가..."

결국 조용하던 법정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트위터 활동을 어디서 했냐"는 검사의 물음에 대한 김씨의 답변 때문이었다. 

- 주로 어디에서 트위터 활동을 했는가.
"딱히 기억나는 거는... 그... 발길 닿는 대로 막... 뭐 정처 없이... 유랑자처럼 그냥 아무데나 돌아다녔다."

"혼은 거의 딴 데 가 있다", "정처없이 유랑자처럼..." 횡설수설

증인 신문 말미에 판사는 "오늘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다 번복하는데, 당시에 조서를 확인하고 서명 날인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도 김씨의 답변은 비슷했다.

"지금 재판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말씀인데, 당시 제가 진짜…또 이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제가 30여 년간 나라 위해 일하다가 순식간에, 자식들 다 보는 앞에서 체포됐다. 제가 쌓아왔던 모든 게 무너졌다. 그날 변호사님들이 (검찰 조사 때) 오셨지만, 그건 제가 아니라 딴 데 있던 영혼이 오고…." 

심리전단 5팀의 트위터 활동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핵심으로, 팀원들은 이 재판의 주요 증인이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법정에 선 그들은 황당한 답변으로 웃음거리를 자처했다. 법정 증언의 신빙성을 스스로 떨어뜨린 셈이다.

재판부는 다음달 7일과 14일 심리전단 5팀 장아무개 파트장과 다른 직원들을 부를 예정이다. 트위터 등에 대한 증거능력 판단은 이 시기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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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혹 제기 <신동아>

 

민변 "날조된 간첩 조작사건이 벗겨지는 새국면"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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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9  1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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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간첩 혐의로 유죄를 받고 5년 동안 복역한 탈북자 원정화 씨에 대한 간첩조작의혹이 제기됐다.

월간지 <신동아>는 4월호에서 "원정화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후 몇몇 탈북 인사가 원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며 "이들은 하나같이 원씨 주장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원정화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라고 그동안 주장했지만, 이후 "보위부의 '보'자도 모르는데"라고 말해 '원정화 간첩사건'이 사실상 원정화 씨의 거짓주장과 검찰의 조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혐의 당사자인 탈북자 유우성 씨를 둘러싼 진실공방과 맞물려 주목된다.

<신동아>는 원정화 씨의 주변 인물인 계부 김동순 씨와 탈북자 강 모 씨, 박 모 씨 등의 증언을 새로 입수, 원정화 간첩사건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원정화 씨의 생부인 원 모 씨는 1970년대 초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 시멘트공장에서 근무, 협심증을 앓고 마약에 중독돼 북한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부인 최 씨와 이혼한 뒤 함흥의 한 요양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정화 씨의 생모인 최 씨는 청진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에는 '원정화 씨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 북한공작원이던 부친 원석희는 1974년 남파 도중 국군에 사살됐다. 이후 혁명 열사가족으로 유복하게 살았다. 모친 최OO은 1976년 미술 관련 일을 하던 김동순과 재혼했다"고 적시했다.

또한 '원 씨가 학업성적이 좋아 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에서 일하고, 금성정치대학에서 공부했다'며 '특수부대 교육 중 다쳐 감정제대 한 뒤 국가재산탐오죄로 복역한 후 1996년 중국으로 탈출했다'며 유죄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신동아>는 계부 김동순 씨가 원정화 씨와 나눈 대화를 공개, 원정화 씨가 "(보위부에 있던 적이) 없어요. 나는 보위부의 '보'자도 모르는데"라고 답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김동순 씨는 "우리 집안은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보위부 요원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 집안에 노동당원은 나 한 사람뿐이다. 보위부가 파견한 간첩이라는 원정화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화의 두 동생도 보위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원정화 씨가 1998년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된 뒤 100명이 넘는 탈북자와 한국인을 북송시켰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동순 씨는 "원정화는 북한 보위부가 남파한 간첩이 아니다. 한국에 들어와 중국을 통해 대북무역을 하면서 일부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했지만, 절대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북 당시 중국에 함께 있었다는 박 모 씨는 "당시 정화는 몸이 많이 안 좋아 거의 집에만 머물고 있었다. 탈북자를 체포해 북송시키는 일을 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탈북자인 나부터 북송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면서 100명 북송이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원정화 씨는 간첩혐의로 조사받을 당시, 군 장교들과 관계를 맺고 자료를 빼내, 북한에 넘겼다고 진술했지만, 이마저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남한으로 입국한 원정화 씨는 정착을 위해, '남남북녀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으며, 탈북자 박 씨는 "한국에서 빨리 정착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며 공무원, 군인 등을 소개해줬다는 것.

또한 북한 보위부 요원인 단동무역대표부 부대표 김교학은 원정화 씨를 만날 당시 원 씨가 탈북자인 줄도 몰랐으며, 황장엽이나 국가정보원 요원 살해 지시 등을 받은 적도 없다고 원 씨가 직접 말했다.

게다가 판결문에 원 씨가 김교학을 2002년 10월부터 지령을 내렸다고 했지만, 실제 원 씨와 김교학이 만난 시기는 2004~2005년이라는 것이다.

이에 <신동아>는 "원정화 사건에서 혐의가 인정된 2003년 1월부터 2005년 3월경까지 최대 5회에 걸친 간첩활동의 성립조건이 사라진다"며 "김교학이 원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김교학과 원씨가 보위부의 지령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다는 사건의 대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신동아>는 검찰이 조사 당시, 원정화 씨에게 술을 먹였다는 원 씨의 녹취 내용을 공개하고, 주변 인물들과 인터뷰를 종합해 "원씨의 간첩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는 찾기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정화 간첩사건'은 검찰의 조작과 함께, 원 씨 스스로 '제2의 김현희'가 되고 싶은 생각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결론 내렸다.

<신동아> 보도가 나오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8일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소위 보위부 파견 탈북 여간첩 1호 원정화 간첩 사건은 날조된 간첩 조작사건이라는 것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벗겨지는 새로운 국면"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민변은 "원정화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과 함께 자칭 보위부 소속 탈북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고, 간첩 조작에 가담한 수사기관 종사자 등 범죄자 전원에 대하여 전원 사법처리를 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여태까지와 같이 더 이상은 분단 상황을 악용하여 단순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은 안된다"며 "탈북자들이 반북선전의 도구나 대북정보수집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으로 조작 간첩사건의 대상으로 악용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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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신형 투표지분류기에 중국산 노트북 부착

 
이완규 
기사입력: 2014/03/19 [10:22]  최종편집: ⓒ 자주민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118억원을 들여 교체중인 신형투표지분류기 제어용 컴퓨터가 해킹 위험으로 문제가 되었던 중국회사 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3월 14일 정모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선관위 답변에 의하면, 신형투표지분류기에 붙은 제어용 컴퓨터는 중국 레노버(LENOVO)사 노트북(모델명:IDEA PAD U330 TOUCH)이다. 그런데 중국 레노버사 컴퓨터에는 '백도어' 해킹기능 은닉된 것이 발견된 바 있어 수백억원을 들여 교체하는 신형투표지분류기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중국 레노버(LENOVO)사 컴퓨터는, 작년 7월 PC 제작에 사용된 반도체 칩에서 해킹을 위한 '백도어' 기능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 발견돼 영국 정보기관에서 공무용으로 사용을 금지시켰다. 미국도 같은 이유를 들어 2006년 이 회사 PC 1만5000대를 사용 금지했다고 한국일보가 작년 7월 30일자에 보도하였다. http://goo.gl/c6Wh1I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해킹 프로그램인 백도어(backdoor)로는 논리폭탄(logic bomb), 웜(worm), 트로이 목마(trojan horse) 등이 있다. 이 백도어를 이용한 해킹으로 "컴퓨터 인증을 통과해 원격으로 접속하거나 파일자료와 개인정보 접근 등의 행동을 들키지 않고 실행할 수 있다. 비대칭적인 백도어인 경우는 전산적으로 추적도 불가능하다. http://goo.gl/sbA3p7


 

투표지분류기 컴퓨터의 해킹 위험에 대해서는 지난 2012. 12. 13일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거론한 적 있다, 그는 "북한은 해킹 소프트웨어를 통해 얼마든지 우리 선거를 교란할 수 있다"며, 북한이 우리 선거를 해킹으로 교란할 수 있는 전자개표기는 분류에만 사용하고 마지막 확인은 꼭 사람이 해 달라"고 투표지분류기 해킹 위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관련기사 http://goo.gl/fVNy95)


 

신형투표지분류기 제작을 담당하는 중앙선관위 선거2과 홍진영씨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중국산 컴퓨터의 '백도어' 관련해 우리나라 정부나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언급은 없었다며, 신형투표지분류기 컴퓨터는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기능이 차단되어 있어 외부 해킹 우려는 없다고 하였다.


 

중국산 컴퓨터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제어용 컴퓨터를 선정할 당시인 작년 8월에는 13인치 터치스크린 노트북은 중국 LENOVO사 컴퓨터가 유일했기 때문에 사용하게 됐다며 삼성 제품도 작년 10월경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레노버사 컴퓨터에 백도어가 설치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사전 검토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확실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다만 투표지분류기가 외부 인터넷망과는 유무선 연결이 차단된 상태로 운용되는 '스탠드얼론' 방식이므로, 외부에서 해킹을 할 수는 없는 컴퓨터시스템이기 때문에 해킹프로그램인 '백도어'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선관위는 3월 21일 신형 투표지분류기 공개시연회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중국산 컴퓨터의 외부 해킹 우려가 있으면 그 때 충분히 알아보면 될 것이라고 선관위 담당자는 말했다.

이완규


덧글 : 최신형투표지분류기에 사용할 노트북 입찰 공고하고 기종 선정할 때, 해당하는 제품이 중국 레노버사 제품이 유일해 그걸로 선정했다고 선관위 직원은 말합니다. 삼성 제품도 작년 10월경부터 나오고, 그렇다면 국내에도 없는, 아직 생산하지도 않은 노트북으로, 그것도 중국산 노트북을 신형투표지분류기에 채택하려는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요?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305&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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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850원 올라... "개 부리듯 부려 먹는다"

14.03.18 11:39l최종 업데이트 14.03.18 11:39홍미리(gommiri)  
우편, 우체국예금, 우체국보험 등 우체국 서비스를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기관인 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십수 년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들여다봤다. 우정실무원으로 우편집중국에서 14년째 일하고 김진숙씨의 하루, 그리고 재택위탁집배원 노동자들의 노동상태를 통해 우정사업본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과 착취를 고발한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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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울우편집중국 소형계에서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 우정실무원.
ⓒ 전국우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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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씨(50)는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다. 우편집중국에서 우정실무원으로 일한 지 14년째. 2000년 4월 서울우편집중국에 입사해 2011년 7월 우편집중국이 통폐합되면서 동서울집중국으로 왔다.

지난 12일, 아침 일찍부터 노동조합 일을 본 후 김진숙씨는 낮 1시 40분경 동서울우편집중국으로 출근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맨손 체조를 한 후 오후 2시경 소형계에서 일을 시작한다. 우정실무원 노동자들은 우편집중국 작업장에서 소형계와 대형계로 나뉘어 일한다. 소형계는 크기가 작은 편지같은 우편물을, 대형계는 대형 우편물을 분류한다.

소형계에는 우편물을 분류하는 기계가 있다. 기계에서 분류된 우편물을 우정실무원들이 맞은편 박스에 옮겨 담는다. 우편물 분류 기계가 A에서 D까지 있는데 바닥에서 한 계단 밟고 올라서서 기계에서 나온 우편물을 다시 바닥으로 가지고 내려와 맞은편 박스에 옮겨 담는다.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얻은 건 무릎통증과 하지정맥류

올라갔다 내려섰다를 하루에도 수없이 계속해야 하므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소형계와 대형계를 불문하고 우편물을 분류하려면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과 하지정맥류 등 온갖 질환으로 고생한다. 기계에 들어가지 않거나 기계가 분류하지 못한 우편물은 다시 수작업 구분대로 옮겨 수작업을 해야 한다. 작업장 안에서 돌아다니는 차에 치이거나 부딪쳐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중간에 있는 20분 휴식시간. 김진숙씨는 이 중간 휴식시간을 틈타 집중국 소형계 여기저기 붙여놓은 성명서와 선전물을 떼러 다닌다. 관리자들이 전국우편지부 간부들이 붙인 선전물을 떼라고 며칠 전부터 계속 성화다.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저녁식사 시간이 돼서 동료들과 함께 한숨 돌리며 식사를 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식사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중간에 한 차례 20분간 휴식을 제외하고 우편물 분류작업을 한다.

14년차 우정실무원, 52시간 연장근로에 받은 임금 130만 원

우편물이 많을 때는 연장근로도 한다. 밤 11시까지, 연장근로를 할 때는 막차를 겨우 타고 퇴근할 만큼 심야노동에 시달린다. 저녁시간에 지인을 만날 약속은 꿈도 못꾼다. 아침시간을 후딱 보내고 쌍문동 집에서 나와 1시간 걸려 출근을 하면 오후 2시부터 꼬박 밤 늦게까지 우편물 분류작업에 매달린다. 김진숙씨는 지난 2월 총 52시간이나 연장 근로를 했지만, 임금으로 받아 손에 쥔 돈은 130만 원이었다.

우정실무원 이중원씨는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야간근로를 한다.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이 있기 때문에 우편집중국은 24시간 작업을 한다.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야간근로를 하면 임금을 1.5배로 계산한다. 이중원씨는 지난 2월 연장근로를 12시간 했으며 공제 후 139만여 원을 받았다. 아래 사진은 이중원씨 2월 급여명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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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원 씨의 2월 급여명세표. 그는 임금이 1.5배로 계산되는 야간노동을 하고 있으며 연장근로를 12시간이나 했지만 지난 2월 139만원을 받았다.
ⓒ 전국우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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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보다 시급이 200원 올라 올해 시급은 5340원이다. 우정실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을 한 결과 2012년부터는 복지포인트 연간 35만 포인트, 경영평가성과급 연 60만~120만 원을 받는다. 명절보조금이 지난해 신설됐지만 1년에 1회 총 20만 원이 고작이다. 정규직과 너무 차이가 난다.

"정규직에게 받던 모멸감, 사라져 좋다"

우정실무원으로 오랜 기간 일한 한 노동자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한 말은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동안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게 한다. 

"노동조합이 생겨서 임금을 올리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우리가 그동안 정규직들에게서 받아온 모멸감과 인격침해가 많이 사라진 것이다. 그게 정말 정말 고맙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는 지난해 자신들의 평균 연봉이 1457만9440원이라며 연봉 2천만 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공무직화), 등급제 폐지 및 호봉제 도입, 생활임금 보장, 신분에 따른 차별적 업무 분담 제고,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 내 비정규직 간 차별적 임금제도 개선 및 형평성 제고, 우정사업본부 통합적 예산편성을 통한 비정규직 예산확보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전국우편지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임자와 노조사무실도 제공하지 않는다.

한국의 우편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체신부→ 정보통신부→ 지식경제부→ 미래창조과학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옮겨다니는 수모를 겪었다. 우정사업은 우편사업, 예금사업, 보험사업 등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 물류산업이 추가되는데 전반적으로 앞의 3개 사업이 주된 사업니다.

우편사업은 공공영역, 정부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해야

우편사업은 2010년 이후 우편물량이 감소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공공사업의 영역이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는 "정부가 흑자 논리를 내세우기 전에 공공성을 감안해 우편사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체국에는 총 5개의 복수노조와 비대위 1개 조직이 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이 최대 규모 노조이고,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을 상급단체로 한다. 별정우체국(민간) 사무원과 집배원 150명이 상급단체 없는 별정우체국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는 2011년 8월 설립 후 2012년 2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했다. 우편집중국 우정실무원, 우체국 비정규직 전체와 재택위탁집배원 240명이 전국우편지부에 가입했다. 이밖에 전국우체국노조, 우체국 위탁택배노동자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있다.

우정사업본부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하늘과 땅 차이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 4만3676명 중 정규직 공무원이 3만1300명, 비공무원과 기간제 비정규직을 합쳐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1만2376명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임금과 처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IMF 사태 이후 정규직 업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에게 전가됐고, 정규직은 일괄 관리자로 전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우편지부에 의하면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수배에 달하는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우정실무원들은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근속수당이 전혀 없다. 가족수당과 식대조차 없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고 싸워 그나마 나아졌다는 게 명절보조금 1년에 10만 원씩 두 번, 복지포인트, 경영평가성과급 일부다.

우정사업본부는 소위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부문에서 왜 이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상식적으로 채용해 착취하는가. 그들은 노무사집단을 통해 자문을 받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저들의 비정규직 사용 행태를 두고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까도까도 껍질이 계속 나오는 양파와 같다"고 표현한다.

우정사업본부 재택위탁집배원, 특수고용직으로 분류

그 대표적 사례가 재택위탁집배원이다. 사업자 등록을 강요받는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집에서 편지와 등기 등 우편물을 받아 분류해서 각 가정에 배달한다. 우정사업본부는 2002년부터 재택위탁집배원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우체국장과 합법적 노예계약서를 쓰며 신용보증증권을 제출해야 한다.

우편물이 분실되거나 훼손되면 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편물을 집에서 분류해 배달하는 것 말고는 정규직 집배원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우체국 제복을 입고 공무원 준수사항을 지키며 일하는 이들을 민원인들은 일반 집배원으로 안다.

재택위탁 606명, 통상위탁 82명 등 총 688명의 재택위탁집배원들이 전국에서 일하고 있다. 재택위탁집배원 노동자들은 하루 6시간 기준으로 시간당 5300원(2013년)을 받는다. 노동시간은 4~7시간(6시간 기준으로 임금 80만 원 내외)다.

시간당 담당세대 수 250세대를 기준으로 2013년 5300원을 적용했다. 우편물이 1톤이든 2톤이든 마찬가지다. 이들의 시급은 지난 13년간 850원이 올랐다. 임금 외 별도급여가 없으며, 지난해부터 설과 추석에 각각 10만 원을 명절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유아 재택위탁집배원지회장은 "우정사업본부가 우리를 개 부리듯 부려먹는다"고 말한다.

우정사업본부가 비정규직을 채용해 착취하는 구조는 너무나 방대하고도 복잡하다. 우정실무원 노동자들에게서 미리 자료를 받아 읽은 후 그들을 만나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정사업본부의 비정규직 실태 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비정규직 우정실무원으로 십수 년 일한 노동자들조차 집요하게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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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국 대통령을 기다리는 북한의 어리석음

북한은 무엇이 두려운가… ‘서방 언론’을 적극 상대하라
 
김원식 | 2014-03-17 13:13: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4일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관한 비난 성명을 분석하던 필자는 이 성명의 한 문구에서 놀라움 반 웃음 반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북한 국방위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지금 미국은 마치 우리가 먼저 움직이고 변할 것을 바라면서 그 무슨 '인내전략'에 매달리고 있지만, 미국이 바라는 결과는 영원히 차례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방위는 "오히려 우리가 정상적인 현실적 안목과 사고를 가진 주인이 백악관에 들어설 때까지 높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가 어이없어 했다는 것은 바로 이 성명의 앞선 문단에서 국방위 자신들이 "우리나라의 분열에 직접 관여한 트루맨 행정부로부터 현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백악관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지만,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날을 따라 더욱더 악랄한 내용으로 수정 보충되고 강행되고 있는 것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라고 명기해 놓고선 이러한 상반된 내용을 다시 언급한 점이다.

물론 이는 미국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대한반도 정책을 비꼬기 위해 언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너희가 우리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인내 정책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너희 대통령이 바뀌기를 계속 인내하고 기다리겠다"고 비꼰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북한 입장에서 이 문구를 잘 이해하려고 해도 무언가 허무함이 밀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북한의 이러한 계속되는 성명전에 이제는 지쳤다고 해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외신과 민족 문제를 분석하는 필자가 북한의 성명에 대해 따분하리만큼 지쳤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 말을 듣기가 거북하겠지만, 이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은 입장을 늘 성명 등을 통해 그리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누가 알아주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것이 결국 전략적 실패로 귀결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위한 명분과 이를 바탕으로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핵보유 국가로 부상하게 했다. 이러한 평가는 이제 필자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관해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 전문가라면 거의 동의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물론 바아냥 투이겠지만,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바뀌기를 기다리겠다면, 몇 년을 아니면 몇백 년을 기다리겠다는 것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물론 "정상적인 현실적 안목과 사고를 가진 주인"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또 다른 논쟁거리일 것이다.

그리고 백 번을 양보해도 북한 입장에 서더라도 과연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정치 현실에서 북한의 입장에 딱 들어맞는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왜 필자가 이렇게 이점을 길게 나열하고 있느냐면 그것은 바로 서로 간의 말장난이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서방 인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고려해 본 적이 있는가?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라고 단순하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사회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한은 '김일성민족'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독특한 사회주의 체제 국가이다. 필자는 이를 '신정체제(theocracy)'라고 언급한 바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는 국가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국가이기에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단 이후부터 변화할 리는 없다. 이른바 미 제국주의자들의 침탈론에 관한 그들의 시각과 주장은 3∼40년 전의 성명에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이유이다. 당연히 북한은 미제의 근본이 안 바뀌었으니 이러한 주장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누가 북한의 이러한 입장을 알아주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그것은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반문할 것이다. (마치 모든 성명서에서처럼) 다시 말해 "미 제국주의의 침탈과 압제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 갈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이제 반복하지 않아도 북한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쩌면 "나만 돌처럼 굳은 신념이 있으면 되지 남은 무슨 상관이냐"는 입장이 북한의 주장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북한 인권보고서'에 관해서도 이렇게 성명전으로만 비난하고 마는 것이 북한이다. 물론 서방국가들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매체에서는 이런 북한의 입장을 많이 보도하였다고 북한 매체들은 늘 자랑(?)하곤 한다.

그렇다면 서방국가, 혹은 북한이 늘 주장하는 그 지배계급은 별도로 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은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예를 들어 '북한 인권보고서'가 발표되는 날에도 북한 김정은 제1비서와 히틀러가 함께 외신 매체에 사진으로 도배되며 북한을 최악의 국가로 보도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북한은 이 또한 그들 지배계급의 의도이며 그들의 손안에 있는 언론들의 왜곡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판단을 하고 관망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언론에 종사하는 필자도 아무 근거도 없이 북한에 대한 기사에는 늘 '은둔하는(reclusive)'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외신 기자들에게 수차례 항의를 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은둔하는 나라가 아니라서 항의한 것이 아니고 그 기사의 사실(FACT) 내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런 수식어를 습관처럼 붙여 쓰는 언론인들은 질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언론인들에게 필자 혼자서 북한이 그렇게 머리에 뿔이 난 국가는 아니라고 설명하기는 힘에 부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고 이를 단지 서방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 계급(?)이나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의 탓으로만 돌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북한은 우리들의 실상도 모르면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둔갑시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북한의 생각이 외부 세계에서 보면 어쩌면 돌처럼 굳어 있는 체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 북한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특히, 서방 대중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은둔해 있는 국가로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다.


왜곡과 비방을 일삼는다고 서방 언론과 남한 언론을 상대 안 할 것인가.

필자는 기자로서 최근 새로 부임한 바 있는 유엔 주재 북한 대사와의 인터뷰를 서너 차례 요청한 적이 있다. 물론 필자는 북한의 체제에 관해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쉽게 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올해 신년사를 보면서 무언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북한 대표부 담당자들 이러한 공식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 통화에서 필자의 요청 이유만 줄기차게 들을 뿐 "한번 생각해 봅세다" 이상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필자는 그들을 탓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왜곡과 비방에 이들은 주눅이 들었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북한이 이러한 전략의 변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상층부(국방위)가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위에서 방침이 없는 한 누가 나서서 함부로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서방언론 특히, 남한언론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과 일종의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라 하면 아무리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주장을 펼쳐도 이를 남한 언론이 왜곡해 보도한다면 잘못하면 해당 관계자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필자가 알기에는 특히, 미국에서 과거에도 이른바 미국 주재 북한 관료들이나 미국을 방문한 북한 관료들의 발언들이 왜곡해서 언론에 전해짐으로써 이들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는 여러 사실들은 익히 알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북한은, 북한 당국은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왜곡이 두려워 계속 서방 언론이나 남한 언론은 상대하지 않을 것인가. 필자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라고 제언하고 싶다. 필자는 이미 여러 칼럼을 통해 북한이 한국의 보수 언론들의 비난 보도를 일일이 상대하는 것이 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이 점은 최근 이른바 '최고존엄'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를 비난하는 보도를 보는 것이 참지 못할 분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이렇게 거듭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최고존엄'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거듭 촉구한다.

북한이 비난 성명을 발표한다고 해서 북한 말대로 이러한 비난을 그만둘 남한의 보수 언론도 아니며 이에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일부 서방의 외신들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체질적인 반응이 다시 언론화될 뿐이다. 즉 이것이야말로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를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핵보유국이라면 무엇이 두려운가, 모든 언론을 적극 상대하는 통큰 결단 내려야

필자는 최근 민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인사와 의견을 나누면서 놀라운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북한의 꽉 막혀 있는 체제와 전략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이 인사는 놀랍게도 같은 의견을 피력하면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고도의 전략을 왜 못 택하는지 모르겠다"는 놀라운 의견을 들을 수가 있었다.

북한이라는 국가가 체제의 근본인 투철한 김일성 주체 사상과 노동당 유일 영도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이기에 아마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전략일는지 모른다. 북한은 이것을 융통성이라기보다는 자기들의 명분과 사상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실종 사건을 취재하면서 인공위성 관련 자료를 검토하다 지구 궤도를 잘 돌면서 신호를 주고 있는 남한과 북한의 '나로과학위성'과 '광명성3호'의 위성 실시간 자료 화면을 보면서 다시금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우리 남한은 그나마 러시아의 기술을 빌려서 쏘아 올렸지만, 북한은 어쨌든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감탄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어떤 이유이든 이제는 북한은 핵보유 국가도 되어 버렸다. 이런 국가가 무엇이 두려워 늘 성명전으로만 늘 입장을 발표하고 일부 보수 언론들의 비방에 늘 극도의 신경전을 펼치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은 핵보유국, 미사일 강대국, 그리고 이제는 숱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도 인민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가 서방 언론이나 남한 언론을 상대 못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곡과 중상모략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쳇말로 몇십 년 동안의 서방 언론의 왜곡에 의해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졌는데 이제 더 이상 왜곡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런 강성 국가라면 당당히 서방 언론들도 상대하는 북한 외교관들의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모략이라고만 주장하고 뒤로 숨는다면 아무도 안 알아주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는 어느 한 조직이나 관료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에는 남북관계의 통큰 개선이라는 강력한 전략과 함께 북한 외교관들에게도 권한을 주어 적극적으로 서방 언론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전략을 펼 수 있도록 북한 지도부가 결단하기를 촉구한다.

그들 북한 외교관들이 실수를 하던 서방이나 남한 언론이 왜곡을 하던 강성 국가라면 이를 웃어넘기면 되는 것이다. 북한이 이렇게 자신들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무시하면서 마치 밑으로 기어들어가듯이 적극적인 대 서방 언론전과 남북 관계 개선 전략을 펼친다면 소설보다 더한 북한에 대한 비난은 줄어들고 서방 인민들은 다시 북한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필자의 이 충언이 어쩌면 너무 굳어 있는 북한 체제에 이러한 충고를 전하는 것이 두꺼운 얼음이 덥힌 호수에 작은 돌 하나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이 이제는 남북 관계는 물론 대서방 관계와 대서방 언론 관계를 대하는 전략적 사고와 자세를 바꿀 시기가 왔다는 것을 다시금 충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싫어하든 아니면 그들 (서방 언론)이 멋대로 왜곡하는 것이라고 관심을 가지지 않든 서방 인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북한에 대한 '은둔하는(reclusive)'이라는 수식어를 바꿀 책임은 어쩌면 서방 언론들이 아니라 바로 북한 당국에 있기 때문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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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선구자 성정모교수 인터뷰

 
조현 2014. 03. 17
조회수 429 추천수 0
 

【한겨레가만난사람】

 

성정모1-.jpg 

성정모 교수

 

 

성정모 홍인식 자이메-.jpg 

성정모 교수와 한인교포 해방신학자 홍인식 교수와 빈민촌의 순교자의교회공동체 자이메 신부

 

 

교정에서 성정모-.jpg 

상파울루감신대 교정의 성정모 교수

 

 

 

해방신학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가. 해방신학은 권력자와 부자들의 신, 뜬구름 위의 하느님을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 곁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빈자와 약자들을 연대케 하고, 이들이 신적인 권력과 부로 불의를 일삼는 자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해방신학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등 보수적인 교황들의 견제로 남미 가톨릭 내에서 크게 퇴조했지만, 현실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해방신학 모임 출신이다. 남미 중도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해방신학 모임 출신을 다수 내각에 참여시켰다.

 

 한국에서도 남미 출신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데다, 대선 부정에 대한 종교계의 비판 이래 야기된 ‘종교의 현실 참여’ 논쟁으로 해방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방신학의 탄생지인 남미를 찾아 지난달 4일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성정모(57·브라질 상파울루감신대 인문법대 학장) 교수를 만났다. 7살 때 이민하는 부모를 따라간 성 교수는 해방신학의 지평을 ‘인간의 욕망 문제’로까지 넓힌 선구적인 2세대 해방신학자다. 가톨릭신자인 그는 브라질 최대 빈민촌인 자르징안젤라시의 산마르티네스 교회 등에서 해방신학 모임을 이끌었고, 상파울루의 떠오르는 별인 이바브침례교회 키비츠 목사 등 많은 목사들에게 해방신학을 가르쳤다. 성 교수의 제자로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인 김항섭 교수(한신대)가 <인정 없는 경제와 하느님>을, 홍인식 멕시코장신대 교수가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 등 성 교수의 저서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성 교수는 학문간 경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지식, 통찰력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해방하는 구원관을 제시했다.

 

 

 -해방신학이 왜 남미에서 생겨났나?

 “2차 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되고,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래서 1960년대 남미에선 사회구조를 변혁할 수 있다는 기대가 팽배했다. 그때 도시화로 도시빈민지역이 생겨났다. 그래서 가난의 원인을 찾으며, 가톨릭 신부들이나 대학교수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해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서를 읽으며 ‘하느님은 가난에 반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고 해방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한국에선 ‘교회가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은데?

 “그런 신학자들은 특별히 유럽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18세기부터 유럽의 신학자들이 공적인 문제와 사적인 문제를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미국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실 그 전까지 종교에서 공사가 구별된 적이 없다. 성서에선 공적인 문제와 사적인 문제를 구별하지 않았다. 신학이 추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의 고통에 대해 반응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게 해방신학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알려진 레오나르두 보프 신부 형제는 주로 신학적 관점만을 얘기하지 않는가?

 “해방신학자로선 먼저 후벵 알베스, 호세 미게스 보니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우구 아스망, 후안 루이스 세군도 5명을 알아야 한다. 보프는 교회 울타리 안에 갇혀 있고, 정확한 사회 분석과 인식 없는 신학에 그친다. 사회·경제를 배제한 보프식 해방신학이 등장한 것은 첫째는 바티칸의 (해방신학에 대한) 방해와 압력이 너무 강해서이기도 했다. 한국에 출간된 보프의 책은 남미에서 쓰는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의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한 것이다. 미국 출판사에서는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무엇인가만 찾아서 번역하기 때문에 지구의 남쪽 지역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북쪽(북미)이 컨트롤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보프가 생태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환경신학은 환경의 침해 없이 가난한 나라를 착취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게 돼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불의를 보는 해방신학의 관점은 어떻게 변화해왔나?

 “한 그룹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불의가 불신앙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선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그룹은, 더 소수인데, 현대사회 문제를 불신이 아니라 우상숭배가 가장 심각하다

 

고 보았다. 돈과 물질을 새로운 신으로 숭배하는 게 우상숭배의 핵심이라는 인식이다.”

 -흑인, 여성, 인디오들의 인권운동과 빈자들의 해방신학은 같은 맥락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 여성은 가난한 남성보다 훨씬 더 존중받지만 부자 남성과의 관계에서는 그 아래에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온 성평등 문제는 중산층 이상의 여성을 주로 다뤄 가난의 문제는 다시 소외되었다. 인종 문제도 미국과 남미 간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미국의 흑인 해방신학은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권리를 갖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미의 흑인 해방신학은 자본주의의 극복을 추구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해방신학은 퇴조하지 않았는가?

 “해방신학은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약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것으로 퍼져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엔 ‘왜 이 세상에 가난이 있느냐’고 하면 ‘하느님이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많은 종교인들이 얘기했지만 이젠 누구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이제 이슬람에도 유대교에도 해방신학이 있다.”

 

 -앞으로 해방신학의 과제를 무엇으로 보는가?

 “1970년대식 해방신학에서 변화돼야 할 점은 2가지다. 1960년대엔 이 사회가 빨리 변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둘째는 옛날에 해방은 단절을 의미했다. 옛 세대를 극복하고, 아무 문제 없는 새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예수 시대 메시아가 와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전능한 제국주의적 대왕이 아니라 사랑과 자유, 해방의 하느님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케 하는 모든 과정을 해방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정모와 탐방단-.jpg 

상파울루감신대를 찾은 한국 신학대학원들과 함께한 성정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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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모 교수의 제자인 상파울루 하비브교회 키비츠 목사와 함께한 성교수와 한국의 신학대학원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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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 한인촌에 있는 성당 앞에선 홍인식 교수와 성정모 교수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의는 사라지지 않고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지지 않는가?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패배해도 선한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영성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간다는 것이다.”

 

 -지금 남미에서 성령의 은사를 강하게 추구하는 오순절 그룹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순절 그룹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번영신학이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다. 번영의 간증을 주로 한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가난이 자신의 잘못에 기인한다는 죄책감으로 더욱 고통받게 된다. 둘째는 노예제도와 다름없는 사회적인 죄악의 시스템을 간과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세상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는 다른 가치와 경험을 주는 게 그리스도교 아닌가.”

 

 -해방신학에 욕망 문제를 도입한 것은 왜인가?

 “자본주의는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싶게 한다.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더 들어가지 못해서 불평한다. 사람들은 타인들의 욕망을 모방한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거나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고 욕망한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면 갈등이 발생한다.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폭력이 생기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것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죄악의 경제구조와 함께 인간의 욕망을 극복해가야 해방될 수 있다.”

 

 -해방신학에서 현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수는 이론으로 먹고살기에 이론을 열심히 배운다. 그러나 원래 모든 이론은 실제적인 문제에 응답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론이 성립돼 새 세대에게 가르칠 때가 되면 세상은 달라져 있다. 교육은 오늘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르쳐야 한다.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고 성서를 배우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그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경험했고, 그 문제 앞에서 어떤 해결방법을 찾았는지 배워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해방신학은 공산주의란 비난을 받지 않는가?

 “신학이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가난의 문제를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해방신학자들이 만난 게 종속이론과 마르크스의 이론이었다. 하지만 해방신학자 중에 소수만이 마르크시즘을 공부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신을 믿지 않았다. 만약 어떤 신학자가 프로이트를 인용한다고 해도 그를 무신론자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학자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자본가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보다는 권력에 대한 비판자에게 주로 쓰인다.”

 

 -해방신학이 인간학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오해다. 해방신학자들은 성서에 대해 깊게 연구하며 하느님에 대해 얘기한다. 칼케돈 신조에서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느님이라고 한 것처럼 성서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치 않고 우리와 함께 여기에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나의 영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다.”

 

상파울루/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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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사건 물타기하던 <문화>, 결국 '대형 오보'

민변 "'대북송금설' 등 허위 보도에 법적 대응하겠다"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국가정보원 측의 '조작'으로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피의자 유우성 씨 정체에 대해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문화일보>가 유 씨 보도와 관련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문화>는 17일, 1면과 10면을 통해 '유 씨의 북한 비자도 위·변조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다. "유 씨의 여권을 확인한 결과, 유 씨가 당초 제시한 북한 사증에는 사증번호가 공란으로 돼 있었으나 재차 공개한 사증에는 '3594365'라는 사증번호가 추가돼 있다"며 "두 사증은 사증번호의 유무만 다를 뿐 출입국기록의 필체는 물론, 사증에 찍힌 '국경통행검사소'의 관인과 날짜까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뉴스타파> 보도 화면 사진을 제시했다. 유 씨가 당초 번호가 없는 사증을 공개했다가 뒤늦게 번호가 들어간 것을 다시 제시했음이 <뉴스타파> 화면에 포착됐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를 근거로 나아가 "해당 사증은 지난 2002년 11월 30일 중국에서 북한으로 입국해 12월 18일 출국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두 사증이 공개된 시점이 지난 2월 21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증번호는 올해 들어 추가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문화일보>가 위·변조 근거로 제시한 <뉴스타파> 화면. ⓒ뉴스타파

▲<문화일보>가 위·변조 근거로 제시한 <뉴스타파> 화면. ⓒ뉴스타파


그러나 이같은 보도는 '엉터리 추측'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뉴스타파> 제작진이 사증번호를 화면 배치 등을 이유로 일부러 편집했던 것.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PD)는 해당 보도에 대해 "문화일보가 대형오보를 계속합니다"라며 "뉴스타파가 개인정보를 가리려고 비자번호 모자이크한 화면을 두고 유우성씨 비자가 위조됐다고 난리네요. 동영상 보면 비자번호 그대로 나온다"며 자신의 사회적연결망(SNS)에 밝혔다.

최 PD는 이어 "앵커 어깨걸이에 번호가 죽 나오는 게 보기 불편하니까 편집진이 지운 것인데, 이게 위조라고? 문화일보는 편집 안하나"라며 "문화일보의 이 오보는 국정원을 살리기 위해 언론이 어느 정도로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비자번호 모자이크된 거 발견한 뒤 '위조다'라며 환호했을 문화일보 편집국, 한심합니다. 여러분들이 기자냐?"라고 꼬집었다.

변호인단 "허위 보도 더는 못 참아… 법적 조치할 것"

<문화> 등 일부 언론이 연일 유 씨에 대한 왜곡 보도를 쏟아내자, 유 씨 변호인단이 맞대응에 나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는 이날 유 씨가 대북 송금 사업을 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세계일보>와 <문화일보>가 유 씨가 대북 송금 브로커였다며 처음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17일 <중앙일보>, <조선일보>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세계>는 이에 더해 이날 "지금까지 알려진 이름 이외에 조 씨 성을 가진 중국 이름이 하나 더 있다"는 취지의 기사도 실었다. 이처럼 본 사건과 무관한 의혹 제기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유 씨 변호인단이 나서서 언론의 '물타기 보도'에 제동을 건 것.
 
변호인단은 "유 씨가 2년 반 동안 26억 원을 북한으로 송금했으며, 수수료로 4억 원을 챙겼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관계를 전혀 확인하지 않은 왜곡보도"라며 "당사자에게 반론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은, 언론의 기본적 책무를 포기한 보도"라고 주장했다. 또 "만약 유우성이 프로돈 사업을 하고 4억 원이라는 수수료를 챙겼다면 검찰이 유우성을 기소유예처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씨 성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왜곡보도는 자살시도한 조선족 김모 씨와 국정원 직원들의 변명, 국가보안법상 증거날조죄를 적용하지 않는 검찰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며 "법률 검토를 거친 후 왜곡보도를 진행하는 언론사와 당사자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포함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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