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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 대결과 체제 전복 노리는 ‘북한인권법안’

 

<기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오헌  |  tongil@tongilnew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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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6  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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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최근 언론들에서 자주 다루는 기사에 ‘대통령 관심법안’이란 말이 있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게 국회에 대고 법안 처리를 재촉하는가 하면 입법부의 수장에게까지 ‘직권상정’을 강압하고 있는 법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여당지도부를 불러 세우고선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느냐”며 “뭘 했느냐! 도대체!”라고 따져댔고, 분명 야당을 겨냥해선 (일도 하지 않고) 립 서비스만 하는 “위선”이라고 몰아세웠다.

‘관심법안’이라는 이름의 박 대통령의 끝없는 집착

마침내는 정무수석을 국회의장에게 보내어 “선거법만 처리한다는 것은 국회의원들 밥그릇에만 관심 있는 것 아니냐”며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고’‘아주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 않게’삼권분립의 한축인 입법부 수장을 심하게 모독, 압박했다.

국회의장에겐 특별한 법률안에 대한 직권상정 할 권한이 있지만(국회법 85조), 그 권한 행사를 하기 위해선 ‘국회선진화법’에서 규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바로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그리고 각 교섭단체들과의 합의를 했을 경우이다.

국회의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니 그래서 분명히 밝혔다.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막무가내였다. 대통령은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아 ‘잠을 못 잔다’고 했고, 새누리당은 의원총회 결의로 직권상정을 촉구했다. 어떤 대통령 충직의원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으면 ‘불신임안’을 내겠다 했으며,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발동설까지 내왔다.

대통령이 얼마나 이른바 ‘관심법안’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의도 쪽 풍경들이다. 그렇다. 언론에서 ‘관심법안’이라고 붙인 말은 오히려 얌전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잘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제 구실을 하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테러 위험이 놓여 있으며, ‘북한주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법안만 통과시키면 경제는 활성화될 수 있고, 테러위험도 ‘북한주민’의 인권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노동5법’이고 ‘테러방지법’이며, ‘북한인권법’이다. 그밖에 서비스 산업발전 기본법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도 있다.

법을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정말 국민의 입장에서 아주 절박한 법률안을 늦추고만 있다면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법률안은 그것에 제정, 개정, 폐기시켜서 좋을 수도 있는 반면 더 나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처럼 한쪽이 이로운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관계법은 노·사·정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심의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법안이다. 특히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쉬운 해고’‘임금 삭감’‘비정규직 전면화’등 우려로 노동단체들의 거센 반대, 바로 지난 11.14 민중 총궐기 대회의 주요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또한 테러방지법은 대선개입, 내란음모조작, 간첩사건 조작 등 권력 남용과 인권침해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더 강화시켜 준다는 사회 각계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인권법’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 때문에 시민사회가 반대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온 새누리당

여기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이 집착하고 있는 법안 가운데 이른바 ‘북한인권법안’만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왜 폐기처분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지난 12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3+3) 회동을 갖고 위에서 말한 법안들을 19대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아니면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연내 합의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인권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합의후 처리’의 의미는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김영우 의원 대표발의)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심재권 의원 대표발의) 등 두 법안을 하나로 조율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두 법안은 이름과 내용이 다르지만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법으로 만들어 그 어떤 영향력을 노린다는 점에서 내정 간섭이고 주권침해이며 다른 나라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발의자들이 그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법안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김영우 의원 대표 발의 ‘북한인권법’안을 다루기로 한다.

오늘의 새누리당이 이른바 ‘북한인권법’에 집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해 온 미국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대북 압살정책 말고도 2004년엔 인권을 빌미로 한 체제 붕괴를 노린 이른바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Act of 2004)을 만들자 곧 이어 일본이 뒤따랐고(2006년 제정), 이에 뒤질세라 2005년, 17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등 29명 이름으로 똑같은 ‘북한인권법’을 발의했었다. 이 대결법안은 끝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황우여 의원 등 23명이 낸 ‘북한 인권법안’(2008.7.4)을 비롯하여 황진하 의원 등의 ‘북한인권 증진법’(2008.7.21), 홍익표 의원 등의 ‘북한인권재단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2008.11.11), 윤상현 의원 등의 ‘북한 인권법안’(2008.11.12) 등이 잇달아 발의되어, 국회외교통상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들 법안 역시 발의시효가 지나자 새누리당의 윤상현 의원(2012년 6월), 황진하 의원(2012년 6월), 이인제 의원(2012년 8월), 조명철 의원(2012년 9월) 등이 잇달아 ‘북한인권법안’을 대표발의했고, 2013년 3월 29일 심윤조 의원이 16명 다른 의원과 함께 같은 법안을 발의했었다. 그리고 2014년 11월 21일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34명이 함께 하여 위 다섯 개 법안을 하나로 묶어 ‘북한인권법안’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회부시켰다.

이처럼 오늘의 새누리당은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왔다. 그리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북한 주민 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토론회’(2005.5.12)에서 “악화되고 있는 북한 인권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당시엔 남북 사이 화해와 단합 행사가 이어지고 교류, 협력 등 한 해 동안 수십 만 명이 남북으로 오고갈 때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북한인권법’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미 다른 나라들은 제정이 됐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10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며 “관련 부처에서는 앞으로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해 주시고,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북한인권조사 위원회 권고사항 등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미·일 등의 주권 침해, 내정간섭, 체제 붕괴 행패를 따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이며, 외세 동조, 동족대결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66돌 기념 영상에서는 “북한 인권이 표현 못할 만큼 열악하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들

이처럼 대통령이 법 제정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인권법’(김영우 의원 발의)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그 문제점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북한 인권재단 설립’이다. 이는 이른바 ‘북한 인권증진’을 명분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을 규정하면서 ‘북한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바로 대북비방 전단살포 등 반북단체들에 나라의 세금을 주어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한 문제점이다. 이 법안과 관련 향후 5년간 전체 예산 1361억 원 가운데 ‘인권재단’의 예산만 131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관련자들이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반북단체 지원비로 지출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에서 북측의 체제 붕괴를 노린 반북단체들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범죄 행패를 원용한 모습이다.

다음으로 ‘북한 인권기록 보존소 설치’문제이다. 이는 ‘북한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관련자료를 수집, 기록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이 법안 발의자가 강조했듯이 ‘북한의 과거 청산’‘북한인권 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체제붕괴를 대비한 전형적인 대결정책 조항이다. 특히 새누리당에서 ‘기록’보존소를 법무부에 설치하려는 데서 더욱 분명하다. 미국이 저들의 민주주의 방식, 저들의 가치관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나라와 정부에게 ‘인권’을 명분으로 파상 공격하여 정권을 붕괴시켰던 또 다른 사례의 우려 사항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북한 인권 대외직명대사’를 설치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른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 협력’등 명분이지만, 이 또한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서 국무부에 그 무슨 ‘대북인권특사’라는 것을 임명하고 대북인권공세의 국제여론조장, 반북단체 지원, 탈북자 보호, 북에 외부정보 유입을 위한 <자유아시아방송>(RFA) 지원 등을 주도해 오고 있음을 연상시킨다.

비록 오늘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 속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통일되어 함께 살아갈 한겨레이다. 북에 대한 인권대사를 두어 국제사회와 협의 협력한다는 자체가 동족에 대한 존엄성의 모독이다.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체제 전복을 노린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도구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판 인권특사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법’에는 대북인도적 지원이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에서 강조한 ‘대북 인도적지원’을 받아 안은 모양새지만, 이 또한 실제로는 인도적 지원의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바로 인도적 지원이란 이름 아래 ‘전달’, ‘분배’등을 감시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협력사업이 전달, 분배 등 까다로운 모니터링을 요청하고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을 알아보았다. 법안 발의자들을 비롯한 정부, 여당 인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일찍이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시행(대북인권 공세)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왜 미루어지고 있는가’라고 불평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났듯이, 이 법의 전체 흐름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대북체제 전환 시도의 한국적 반영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인도적 개입입법’이라고 하지만, 인권 개념 또는 구성원들의 인식 범주는 나라와 민족마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편차가 있음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 침해의 가장 큰 범죄 행위는 대량살육의 전쟁 행위이고, 합법적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전복과 주권 침탈행위이다. 수십만, 수백만 명에 대한 살육과 파괴가 뒤따르고, 수백만 명의 전쟁고아 난민이 발생하며 나라를 잃어 식민지 지배를 받거나 나라 밖을 떠돌면서 온갖 고통과 설움을 겪게 된다. 일제 강도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가 그 사례이다. 따라서 나라의 주권, 바로 자주권 없는 인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특정 국가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데는 현지 조사에 의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입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인권 문제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인권 차원에서 국제 전문기구가 조사연구하여 제도말살 같은 공격이 아닌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권고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예로써,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의 조사연구 권고가 그렇고,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직접 현지를 방문조사하여 문제점의 해결책을 권고하는 사례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남의 나라 인권 문제를 어떤 특정인의 편향된 증언만으로 상대를 악마화시켜 특정국가 이름을 가진 법을 만들어 체제 전복 시도 등 공격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고 주권 침해 행위이다.

1, 2차 제국주의 전쟁을 겪은 세계는 그 대량살육과 파괴의 참상을 반성하며 ‘국제연합’기구를 만들었고, 잇달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절대성을 공유하며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오늘 세계는 국제사회의 정의 평화를 위하여 국경과 인종, 체제와 제도의 차이를 넘어 인권의 보편가치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오늘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독립된 나라들이 있다.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 국가도 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도 있다. 전근대적 입헌군주제 국가와 종교적 교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때문에 각기 정치 형태나 제도,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상대 체제를 공격 말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인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사유와 국가의 정체, 신앙과 양심의 자유 등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

순수 인권만을 따진다 해도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떤 나라는 이른바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임하며 세계의 모든 문제를 간섭하고 있다.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국가의 제도와 가치만을 절대시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악마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정신과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왜곡,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정의·평화·인권의 이름으로 묻게 된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칭해온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의 하는 일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한국은 인권문제에서 얼마나 떳떳한가? 말을 넘어 간섭과 제도 전복을 시도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미국은 수천만 원주민을 학살하고 수천만 노예무역과 살인적 강제 노동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고 수백만 명에게 불치의 상처를 입혔다. 수많은 진보적이고 합법적인 민주정부를 뒤엎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 등을 침략하여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다치게 했으며,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게 했다. 전쟁포로에 대한 잔혹한 고문과 학대가 이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 총기난사, 빈부격차가 격심했다. 한국전쟁에서 정전협정이 된지 6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전쟁종식의 평화협정을 거부하며 살인, 강도 폭력 등 미군 범죄에 한국인은 치를 떨고 있다.

굳이 법을 만들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야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는 노동관련법 개악반대, 농민들의 쌀값 생산비 보장,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보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공안당국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수백 대의 차량으로 차벽을 쌓았으며, 집회장소를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고압물대포를 직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쓰러진 사람에게도 계속 물대포를 쏘아대어 백남기 농민은 혼절하여 오늘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공안권력은 적반하장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폭력시위 주동자로 구속기소하면서 소요죄까지 적용하는가 하면, 집회 참가 1200 여명을 구속 또는 소환조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이른바 ‘이석기내란음모사건’조작을 비롯하여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전국 규모 대탄압, 코리아연대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과 회원들 구속 기소, 성직자·노동자 간첩조작 시도, 수많은 사이버공간에서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견 제시를 이적 동조로 몰아 탄압했다. 2015년에만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등으로 80명이 넘게 구속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적용 구속자만도 20명이 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압수수색당하고 소환조사 받았으며,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법정에 세워졌다. 개인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위하여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이 같은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국제인권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권(정치적·시민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사례라면 사회권(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상황은 어떠했나.

우선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다. 김낙연 교수의 ‘한국소득집중 추이와 국제비교’(2012년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소득 상위 0.01%(3895명)의 평균소득은 27억 3084만원으로 전체주민(20살 이상 성인) 평균소득 1639만 원의 167배였다. 20세 이상 인구 3797명 중 상위 10%의 총소득이 48.05%이고 상위 20%의 총소득은 69.29%였다.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은 12.97%이다. 반면에 최하위층 40%의 총소득은 2.05%였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소득불평등이 격심한 상태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날(영국) 발표 녟. 세계노인복지 지표’에 따르면 OECD회원국 65세 이상 인구 빈곤율에서 한국은 48.6%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19.4%, 미국이 19%로 그 뒤를 따랐다.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868만 명(임금노동자의 45%)이었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서는 이보다 10%가 넘는다고 했다. 바로 ‘비정규직규모와 실체’에서 김유선 소장은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되고 특수고용이 자영업자로 역시 잘못 분류되었기 때문이며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어설 것 ”이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빈부격차, 사회양극화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은 규범으로서의 타당성과 사실상의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집행의 주체자와 대상자 사이의 문제나 목적에서 전혀 타당성이 없고 당연히 실효성도 없다. 따라서 동족으로서의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할 상대에 대해 인권문제를 비롯한 어떤 현안이 있다 해도 최근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인권대화’등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 없는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인도적 지원에 마음이 있다면, 적십자사를 통해 이제까지 있어왔던 경로를 실천할 수 있다. 굳이 법을 만들고 국제협력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대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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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공 된 전직 국회의원 “먹고살아야 하니…”

배관공 된 전직 국회의원 “먹고살아야 하니…”

등록 :2015-12-24 15:54수정 :2015-12-25 00:42

 

 

기자와 만난 이상규 전 의원의 모습. 송호진 기자
기자와 만난 이상규 전 의원의 모습. 송호진 기자
[한겨레21]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그 후
이상규 전 의원 “난 불법 해고자, 정치 복직할 것”
“우리가 종북이라면 벌써 잡혀갔을 겁니다”

새벽에 집을 나선다. 하루의 시작을 서두른 사람들을 버스와 지하철에서 만난다. 아침 6시50분 조회에 참석하고, 7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38층 건물을 짓는 공사장이 요즘 그의 일터다. 무거운 파이프를 나르다 타박상을 당하기 일쑤다. 용접 불꽃이 살갗에 화상 자국도 남긴다. 그는 뜨거웠던 지난 7월 어떤 날의 하루를 페이스북에 이렇게 기록했다. “점심밥 먹고 ‘깜박잠’, 오전·오후 잠시의 휴식이 없으면 못 견딜 것 같은 폭염의 노동을 모두 꾸역꾸역 해낸다. 생존이기에.” 오줌이 튀는 것을 받아내며 화장실 소변기 철거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얼굴을 알아본 현장 동료들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할 생각을 했어요?”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 공사장까지 나올진 몰랐다.” 그는 “먹고살아야 하니 나왔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선거 출마로 진 빚, 집 얻을 때 대출받은 돈 등을 갚아야 하니 틀린 말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일당을 벌지 못하면 당장 먹고사는 게 걱정인 사람들”과 공사장 위험 구간에 함께 오르며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고 있다. 12월17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6월부터 배관공으로 살고 있다. 하루 12만원 정도 받는 일이다. 추석 연휴가 있던 9월만 빼고 한 달 평균 25일 일했다. 이제 “이씨” “이상규씨”로 불린다. 공사장으로 출근하는 전직 국회의원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서민들의 삶이 있는 현장에 같이 있어야죠.” 의원 당선 전해인 2011년까지 배관 설비를 한 경험이 있다. 그때 파이프에 찧여 손가락 두 개의 끝마디가 으스러진 적도 있다. 배관공으로 돌아가려고 지난 5월 기능학교에서 20일간 실습도 했다. 공사장에서 실수할 땐 “모욕을 당하기도” 하지만, 7개월째 버텨내는 그를 현장에서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이 전 의원이 작업복을 입고 공사장에서 용접하고 있다. 이상규 제공
이 전 의원이 작업복을 입고 공사장에서 용접하고 있다. 이상규 제공

지난해까지 그는 국회의원이었다. 2012년 총선 당시 모교 대학이 있는 ‘서울 관악을’에서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의원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증거가 은폐되는 정황이 담긴 경찰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증거도 찾아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19일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당과 의원직을 잃었다. 그날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두 돌을 맞은 날이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박한철·이정미·이진성·김창중·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이 해산에 찬성했다. <한겨레21>의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단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2월까지의 판결 중 가장 나쁜 판결에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꼽았다. 심사위원단은 “정당의 흥망성쇠를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게 민주주의다. 헌재가 정당 해산을 결정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헌재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허물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이 “불법 해고됐다”고 말한다. “해산의 법적 타당성이 없다”고 보아서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이석기 전 진보당 의원 사건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내란선동은 유죄)로 선고하면서, 지하혁명조직(RO)의 존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며 내란 실행의 합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앞서 헌재가 정당 해산을 결정할 때의 논리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대법원 선고가 있기 전에 서둘러 정당을 없앴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폭력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다는 정부와 검찰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헌재의 존재 이유를 허문 결정” 이상규 전 의원은 “헌재의 결정은 내란음모와 RO의 실체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과도 위배된다”고 했다. 그는 ‘재판관 8 대 1로 해산된 결정’에 대해 “재판관의 소신이라기보다 정권 의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권 연장의 걸림돌이던 야권 연대를 깨려고 진보정당을 해산시키는 1차 목적을 달성한 뒤 노동자 해고가 손쉬운 노동법 추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는 일들을 정부가 강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진보당 해산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진보당 해산 때 우려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10만 명이 넘는 당원들에게 가해질 ‘종북 딱지’였다. 이 전 의원은 “지역 시민단체 등이 서명운동을 할 때도 같이 하자고 우리(옛 진보당 사람들)에게 손을 못 내미는 상황이다. 끼어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일반 당원들은 당이 없어졌다는 상실감이 크다”고 했다. “많이 겪는 일은 아니지만, 지난 4월 관악을 보궐선거에 재출마했을 때 ‘빨갱이들이 북한에나 가지, 왜 선거에 나왔냐’고 말하는 아주머니도 있었죠. 어떤 식당에선 ‘우리 집에 왜 종북을 하는 사람이 들어오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부족한 게 많지만 우리가 종북이라면 벌써 잡혀갔지요. 잘 헤아려주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는 정당 해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진보당 자체에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흐름을 기억한다. 그는 “정권의 탄압보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10배, 100배 더 심각히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했다”는 것이다. 옛 진보당 인사 4명이 최근 펴낸 책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에서 저자들도 “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국민의 냉담함이었다”고 적었다. 진보정치를 하며 무상급식, 복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전면화했지만 자신들의 신념이 다른 한편으론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나타난 점 등에 대한 성찰이다. 옛 진보당 인사들 출마 준비 중 법을 전공한 이 전 의원은 지역에서 주민들이 요청하는 민원·법률 상담도 해준다. 그는 “정치적 복직”을 위해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고 한다. 같은 당 의원이었던 약사 출신 김미희 전 의원도 지역(경기 성남 중원)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김재연 전 의원도 청년을 위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면서 경기 의정부에서 총선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당 원내대표를 지낸 오병윤 전 의원은 출마할 의사 없이 호남의 한 사찰에서 지낸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정희 전 대표는 심신을 추스르고 있다. 이 전 대표 등 옛 진보당 당원 389명은 12월17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정당 해산 결정의 부당함을 심리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이 전 의원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잡혀갈 때 의원들이 보이지 않더라. 의원으로 계속 있었다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문제, 국정원 해킹 사건에도 집중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공사 현장에 나가면 하루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서민들의 절박함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의원직에서 해고된 ‘배관공 이씨’가 진보정치의 의원으로 복직을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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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3년 실패사

박근령 “언니는 아버지에 대한 왜곡에 괴로워했다”
[토요신문 솎아보기] 아베, 위안부 문제 편지 사과와 10억 주면 끝?…박근혜 정부 3년 실패사
 
입력 : 2015-12-26  11:16:27   노출 : 2015.12.26  13:28:26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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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10억 지원 등 ‘최종 해결’ 원하는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에게 연내 방한을 지시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정부 예산으로 1억 엔(약 9억7260만원) 규모의 기금을 설립하고, ‘책임’ 및 ‘사죄’가 포함된 아베 총리 명의의 편지를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이 협상 타결 시 다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확약을 원해 온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최종 해결’에 대한 의사를 언급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보도했다. 하지만 일본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시다 외무상은 이날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위안부 문제는 매우 어렵지만 무엇이 가능한지 최대한 조율하고 싶다”며 “지난달 한·일정상회담 이후 아베 총리로부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러 번 지시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26일자 3면
 

그는 “그것을 토대로 외교당국이 여러 수준에서 노력해왔다”면서도 “내용이나 결과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예단을 갖고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다.

경향신문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 1억 엔이 넘는 규모의 기금 설립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일본은 2007년 해산한 아시아여성기금의 후속 사업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의약품 등을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올해 약 1500만 엔(약 1억4588만원)의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이 정도 금액으로) 일본의 마음을 전달하기 어려운 만큼 10년분의 자금을 일괄적으로 내서 기금을 만드는 방안도 있다”며 “또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책임’과 ‘사죄’를 언급하는 방안과 주한 일본대사가 피해자들과 면담하는 구상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안부 강제 연행 인정 등 법적 책임 반드시 물어야”

정부는 일본 외무상의 방한과 위안부 문제 협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24일 윤병세 장관 주재로 심야 대책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2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와 관련한 짧은 보도자료만 내고 언론에 일절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기시다 외무상이 오는 28일 방한해 윤 장관과 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한·일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 하루 전인 27일 서울에서 제12차 국장급 협의를 개최한다.

   
▲ 조선일보 26일자 3면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 소식통은 “섣불리 낙관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자신들의 안을 관철하기 위해 언론에 관련 내용을 자꾸 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외무장관 회담에 앞서) 27일 열리는 국장급 공식 협의 결과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오는 28일 한·일 외교장관 협상의 핵심 쟁점은 △사죄문 표현 △사과문 작성과 전달 주체 △강제동원 인정 여부 △지원금 성격과 명칭 등 4가지라며 “한·일 장관급 위안부 담판의 성패는 ‘일본의 국가적 책임 인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일본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총리 등이 사과를 표명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면서 “법적 책임은 위안부 문제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를 ‘최종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아무리 협상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들어줄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 무라야마·고노 담화에서 언급했던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 인정 등이 지켜내야 할 최소한”이라며 “이번 회의가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를 거드는 꼴이 돼서는 안 되며, 협상 내용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도 반영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 중앙일보 26일자 사설
 

박근혜 정부 공안통치 ‘무리수’ 4종 세트는?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3년 동안 국민들은 자주 ‘낯선’ 법조항과 맞닥뜨렸다며 짧게는 22년, 길게는 60년 동안 법전 안에 묻혀 있던 조항들이 정부·여당을 통해 줄줄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첫 번째는 경찰이 지난 18일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혐의에 ‘소요죄’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형법 115조에 규정된 소요죄는 1986년 ‘5·3 인천사태’ 이후 29년간 적용된 적이 없다.

두 번째는 지난 17일 새누리당이 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 검토 주장을 하루 만에 철회한 일이다. 경향은 “헌법 76조 1항의 ‘긴급재정명령권’은 대통령이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할 때 발동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5법’ 등의 직권상정을 거부하자 이를 ‘카드’로 꺼냈다가, 논란이 일자 바로 다음날 ‘언론사가 너무 크게 쓴 것’이라며 발을 뺐다”고 밝혔다. 이는 22년 전인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때 발동된 것이 마지막이다.

   
▲ 경향신문 26일자 5면
 

세 번째는 지난 2013년 검찰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여적죄’ 적용을 주장한 것이다. 형법 90조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인데, 절대적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한 유일한 범죄로,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한 차례도 쓰인 적이 없다. 이에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왔고 검찰 기소에서도 빠졌다.

경향은 “검찰이 이 전 의원에 적용한 내란음모 혐의(형법 90조) 역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며 “대법원은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했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은 없었다고 판단해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 17일 박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외국 언론인이 우리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적은 처음이다. 

중앙일보 ‘올해의 오보’ 쿨하게 사과

중앙일보가 올해 보도한 기사 중 주요 오보 사례를 모아 ‘2015 바로잡습니다’를 1면을 털어 내보냈다. 중앙은 “사건의 내막을 파고드는 심층 보도로 언론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나 화급을 다투는 취재·제작 과정에서의 오류 등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사례가 발생했다”며 “내년에 더 정확한 기사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뵙겠다는 약속이자 반성문”이라고 밝혔다.

중앙이 지난 8월6일자 1면에 보도한 “최태원·구본상·김승연 사면” 기사는 3명의 기업인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였다. 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만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막판에 사면 기준이 엄격하게 바뀌었고, 보도 이후 ‘특혜 사면’ 논란이 일면서 상황이 바뀌어 결국 오보를 낸 것이다.

중앙은 또 11월19일 ‘천재소년’으로 알려진 송유근(17)군이 내년 2월 만 18세3개월의 나이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졸업식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중앙은 “하지만 송군이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실었던 논문이 표절로 판명되면서 송군은 졸업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당연히 박사학위 취득도 무산됐다. 송군의 과거 논문까지 확인하지 못한 성급한 보도였다”고 인정했다.

   
▲ 중앙일보 26일자 20면
 

중앙은 11월10일자 “문재인, 부산 영도 출마 결심…김무성과 맞대결하나” 기사에는 김영춘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위원장이 “문 대표가 부산 영도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코멘트를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이 아닌 부산진구갑지역위원회 이홍찬 사무국장이었음이 하루 뒤에 밝혀졌다”고 바로잡았다. 새정치연합 수첩에 김 위원장의 연락처로 이 사무국장의 전화번호가 기재돼 생긴 착오였던 것.

중앙은 “취재기자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어 ‘김 위원장 번호가 맞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해 김 위원장인 줄 알고 취재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알고 보니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사무국장이었다”며 “당시 바로잡습니다로 정정했지만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과 김 위원장께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박근령, 1988년 창간한 한겨레에 “한겨레가 박정희 비판 많이 해”  

한겨레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박 전 이사장은 지난 8월4일 일본의 동영상 전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사과를 더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고, 일본의 왕을 ‘천황’이라 지칭해 논란이 일었다.

박 전 이사장은 당시 ‘천황’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천황은 그냥 외교적 예우 차원에서 쓴 말이다. 만약 내가 일본에 가서 감정적으로 ‘일왕’ 이래버렸다면 우리 국민은 감정적으로 말한다고 일본 사회가 욕했을 것”이라며 “나는 국익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웃나라와 잘 지내야 할 것 아닌가. 1998년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일본 가셨을 때 천왕 폐하라 지칭했다”고 해명했다.

   
▲ 한겨레 26일자 11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서 그는 “일본이 과거 일으킨 전쟁 때문에 피해 보신 분들이 동남아시아에도 많지만 동남아가 다 들고일어나진 않는다. 다 국익을 생각해 미래지향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일본도 상당히 한류를 이해해주고 <겨울연가>같은 드라마도 다 방송을 해주고 있다.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은 우리 정부가 더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5·16을 쿠데타라고 생각하나 혁명이라고 생각하나?’는 질문엔 “구국의 혁명이었다. 그것을 하지 않았다면 김일성이 적화통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육해공군이 모두 열세였을 뿐 아니라 사회가 무법천지처럼 혼란스러웠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장은 그동안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과거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대통령 재임 시 한겨레신문이 워낙 비판을 많이 해서 마음에 부담이 됐다”고 답했다가 ‘한겨레는 1988년 창간한 신문’이라고 바로잡자“그런가”라고 말하는 등 궁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쓰는 기사들에 속상해했다. 왜 우리한테 확인도 안 하고 그런 기사를 쓰는 거냐며 화내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언니(박근혜)도 아버지가 왜곡되는 것에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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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자 두번 죽인 '단독', 이게 기삿거린가

 

[단원고 특별전형 논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일상적인 것은 일상적으로 내버려두라
15.12.26 12:55l최종 업데이트 15.12.26 12:55l글 : 강남규(slothlove21) 편집 : 박정훈(twenty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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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들지 않은 생생한 국화가 책상마다 놓여 있는 2학년 4반 교실. 학부모님들이 매번 찾아와 꽃을 두고 청소도 하고 갑니다.(2014년 10월 17일)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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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 이스북 타임라인에 기사 하나가 공유됐다. 말머리에 '단독'을 단 <머니투데이>의 기사였다. 어떤 놀라운 폭로를 담고 있기에? 얼마나 위급한 일이기에? 제목을 읽었다. "단원고 학생 4명 특별전형으로 연세대·고려대 합격." 뭐라고? 다시 읽어도 제목은 그대로였다. 이게 왜 단독이야? 아니, 이게 기삿거리가 돼?

기사는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88명 중 4명이 연세대·고려대에 합격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를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있지만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교육 당국과 대학 측의 입장을 담았다.

이 기사에 어떤 댓글이 쏟아졌는지는 따로 인용하지 않겠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이틀 뒤 칼럼에서 이 같은 반응들을 전하며 "당부컨대 단원고 학생들을 비난하는 이들을 원망하기보다는, 관련 기사가 모두 사라지길 바라기보다는,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과 효용성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적었다. 논란을 빚은 기사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좋은 자세이지만, 이미 온갖 반응들이 쏟아진 뒤다. 기자가 생존학생들에게 전한 '당부'의 내용이 그리 적절해 보이지도 않지만 그 얘기는 일단 미뤄두자.

누가 기회를 박탈 당하고 역차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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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7월 15일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두 생존자 친구가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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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특별전형'을 둘러싼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논란은 발생했다.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지는 않으므로 입학전형을 통해 보상하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더 보편적인 보상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부터,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모든 고등학생들이 특별전형 기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특혜시비까지. 그 사이사이를 갖가지 논란들이 채웠다.

당연히 특별전형이 정답은 아니다. 정부 정책은 보편적인 측면에서 추진되는 것이 옳다. 이미 지적된 것처럼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지는 않는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입 특별전형을 통한 보상이 추진되고 정책화된 것은 결국 대학에 가고 졸업장을 따야만 '사람처럼' 대우해주는 학벌 사회의 산물이다.

더 이상 더 나은 학벌을 가진다고 더 나은 삶을 사는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학벌이라도 획득하지 못하면 최소한의 삶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이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대학진학률은 80%를 웃돌고 있다. 이런 현실적 상황 속에서 단원고 특별전형이라는 보상정책이 이뤄졌다.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단원고 특별전형은 추진됐다. 올해 9월 본격적인 수시철이 시작되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박탈감', '역차별' 같은 말들이 논란의 핵심을 이뤘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허구인가?

특별전형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이미 충분히 정리돼 있다(관련 글: 딴지일보: '10문 10답으로 풀어보는 단원고 특별전형 논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들을 알고 있는가. 특별전형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설했고, 이와 같은 특별전형은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실시된 바 있고, 단원고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생존학생은 88명뿐이며, 대학에서는 정원의 1% 내외로 '정원 외'로 선발하고, 그마저도 대학 내부 기준에 미달하면 불합격할 수 있다. 이런 사실관계 속에 도대체 누가 기회를 박탈당하고 누가 역차별 받는가.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자잘한 사실관계들을 바로 아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왜 우리는 잠시라도 생존학생들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가? 얼마 전 누군가와 단원고 특별전형을 두고 논쟁한 적 있다. 왜 특별전형이 부당하지 않은지 이야기하기 위해 '생존학생들의 상황'을 말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사실을 특수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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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향소 앞 삭발식하는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4월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당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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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라는 주제를 깊게 연구한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이라는 학자는 "트라우마는 몸에 직접 각인되어 그 경험을 언어적으로 작업하여 해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경험은 서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생존학생들의 상황은 증언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기에 끔찍한 트라우마다. 다만 가만히 상상해보라. 2014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생존학생들이 마주해야 했을 광경들을. 참사 당일의 기억만도 견디기 어려운데, 사건 이후에 벌어진 그 모든 것들을 견뎌야 했을 이들의 고통을.

특별전형의 대가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트라우마와 고통이라면, 당신은 받겠는가? 올해 4월,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배·보상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들이댔을 때 고 임세희양의 아빠 임종호씨는 이렇게 말했다.

" 보상금이 부러우십니까, 부러우시면 유가족 되시면 됩니다. 바라건대 저희처럼 또 다른 유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들,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처럼 되는 사람들이 더 없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가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단원고 특별전형'이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 존학생들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특별전형에 대해 가장 올바르게 말하는 방법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기사를 쓴 기자는 '좋은 의도로' 썼다고 말하지만, 기사화한다는 자체가 특별전형을 아주 특수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수하게 다뤄짐으로써 트라우마는 되살아나고 상처는 벌어진다. 그저 조금 특별한 사연을 가진 고등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문제일 뿐이다. 이게 기삿거린가? '단독'을 달고 나올 만한 이야기인가? 그들이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과 효용성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일상적인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일상적인 것이 된다. SNS 상에서는 후배의 출신고교와 출신지역을 묻지 말자는 제안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려 깊은 제안이지만 불필요한 제안이다. 당신의 후배 또는 동기가 단원고 출신이며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신이 취해야 할 특별한 반응은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저 아주 일상적인 사실에 불과하니까.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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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경제성장을 보인 북한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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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12/26 14:05
  • 수정일
    2015/12/26 14: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송년특집②]가파른 경제성장을 보인 북한
 
 
 
nk투데이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5/12/25 [09: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2015년도 저물고 있다.

NK투데이는 한 해를 돌아보며 북한에서 있었던 이슈와 변화들을 분야별로 종합 정리하는 특집을 준비하였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당창건 70주년을 계기로 체제 안정성 과시한 북한(정치·국방·외교 분야)
②가파른 경제성장을 보인 북한(경제·사회 분야)
③(문화·스포츠 분야)
④(과학·교육 분야)

 

올해 북한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두 배?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서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인민생활향상과 관련해서는 농·축·수산을 통해 식량 문제 해결과 식생활수준 향상을 강조했다.

또 경공업 부문에서 생산정상화를 통해 질 좋은 소비품, 학용품, 어린이 식료품을 증산할 것을 요구했다.

전력산업, 금속·화학공업, 철도산업과 경제개발구 사업도 강조했다.

청천강 계단식발전소, 고산과수농장, 미래과학자거리 등을 중요 건설대상으로 지목했으며 산림복구도 강조했다.

 

북한은 신년사에 제시된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관심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19일자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올해 공개 활동(12월 16일 기준) 가운데 경제 부문 활동이 68회로 46%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신년사에서 강조한 수산업과 식료품, 농업 분야 등 인민생활과 직결된 부문에 집중됐다고 한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의 경제 성과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은 각종 건설 분야다.

조선신보는 최근 평양의 5대 신축물이라며 미래과학자거리와 과학기술전당, 리모델링한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만수대 분수화초공원, 평양국제비행장, 대동강유람선 무지개호를 꼽았다.

 

과학기술전당. 과학기술 보급을 위해 꾸려진 시설이다.

과학기술전당. 과학기술 보급을 위해 꾸려진 시설이다. ⓒ신화망

 

특히 미래과학자거리는 총 부지면적 40만 제곱미터에 수천 세대의 아파트단지로 53층 초고층아파트가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으며 북한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또 무지개호는 길이 120m에 1200명이 넘는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호화 유람선이다.

이 밖에도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청천강 계단식발전소와 다년간 관심을 모았던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도 완공했다.

 

완공된 청천강 계단식 발전소. 출처 : 인터넷.

완공된 청천강 계단식 발전소. 출처 : 인터넷.

 

또 원산의 갈마비행장도 개건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건설을 촉진하고 있다.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한 농·축·수산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세포등판 축산기지가 풀밭, 바람막이숲, 방목지, 도로, 주택, 짐승우리, 공공건물 등 1단계 건설을 완료했으며, 버섯공장의 표준이 되는 평양시버섯공장이 완공, 생산에 진입했다.

물고기 생산량을 종전의 4배로 늘린 안변양어장, 지난해보다 2배로 생산량을 늘린 메기양식을 비롯해 여러 양어장에서 성과를 냈으며 서해어장에서는 지난해의 2배 이상 어획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공업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김종태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는 단기간에 신형 지하철을 개발했으며, 대안중기계 연합기업소, 상원세멘트 연합기업소, 순천세멘트 연합기업소를 등 여러 단위에서 연간 생산 목표량을 기한 전에 끝냈다고 한다.

 

이런 경제 성과들을 반영하듯 최근 방북 인사들은 대체로 북한 경제가 꾸준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는 북한의 경제성장률 추정치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토론회에 참석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최소한 북한경제가 5% 이상 성장"했다고 추정했다.

정부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7%로 추정하고, 각종 경제기관들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1%, 미국 경제성장률을 2.5% 정도로 추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정종욱 통일준비위 부위원장도 지난 5월 6일 국제토론회에서 "북한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7.5%까지 보는 학자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년층과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보인 북한

올해 북한에서 있었던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육아원, 애육원, 양로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이 개건된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한 후 대대적인 확장이전 공사가 이뤄진 데 이어 올해 원산, 청진 등 북한 전역에 평양육아원, 애육원과 같은 형태의 육아원, 애육원들이 개건되었다.

육아원, 애육원은 북한의 고아원으로 수영장까지 갖춘 고급 시설을 자랑한다.

 

사리원 애육원 원아들 ⓒ국제푸른나무

사리원 애육원 원아들 ⓒ국제푸른나무

 

또 올해 평양양로원이 새로 개원했는데 온돌·침대 침실과 함께 이발소, 미용실, 목욕탕, 치료실, 도서실, 운동실, 오락실을 갖췄으며,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해 국내 언론이 호텔 수준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2월에는 장애인 학생 예술단이 유럽 순회공연을 했으며 10월에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유치원이 처음 문을 여는 등 장애인 복지나 체육,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북한이 청년 사업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창건 7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당의 3대 전략으로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를 꼽았고 '청년대강국' 건설을 독려하였다.

북한은 8월 13~14일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를 열어 청년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또 7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장으로 탄원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고, 8월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자 인민군 입대, 복대를 탄원한 청년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특히 북한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완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청년들의 사기를 돋구었다.

 

북한이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독자적인 표준시, '평양시간'을 선포한 것도 화제를 모았다.

'평양시간'은 일본을 기준으로 한 기존 표준시보다 30분 빠른 시간으로 서울이 1시라면 평양은 12시 30분인 셈이 된다.

북한은 표준시 변경의 이유로 기존 표준시가 일제의 잔재라는 점을 들었다.

 

이 밖에도 올 초 텔레비전 방송을 고화질(HD) 방송으로 전면 전환한 것이나, 나선시 수해 복구를 한 달 만에 끝낸 일 들도 북한 사회의 이슈로 꼽을 수 있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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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송년특집 ④> 북한내부

'김정은식 애민정치'라 전해라

<2015 송년특집 ④> 북한내부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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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5  11: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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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이자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은 연초부터 국내외적으로 많은 기대가 모아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측과 북측은 신년 초 정상회담 운운하며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남북대화 한번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8월초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가 급상승하자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이른바 ‘2+2회담’을 성사시켜 8.25합의를 극적으로 이뤘습니다. 그러나 12월 11-12일 열린 남북 당국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은커녕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결렬됐습니다.

북.미관계도 별 것이 없었습니다. 연초부터 양측은 북한의 공식적인 대미 대화 제안과 미국 측의 거절 등, 대화 제의를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하세월하다, 결국 하반기 들어 북한 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미국 측의 비핵화 합의 이행 요구로 평행선만 긋다 한해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특기할 만한 것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해 북한과 중국이 관계회복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 점입니다. 이어 양측 관계개선의 움직임으로 12월 북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공연을 앞뒀으나 돌연 공연단이 철수를 하게 된 사건이 일어나 양측 관계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통일뉴스는 <2015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의 대외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월 1일 첫 행보로 평양육아원.애육원을 방문했다. 이른바 '김정은식 애민정치'의 서막이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새해의 인사를 드리며 온 나라 가정들에 따뜻한 정이 넘치고 귀여운 우리 어린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의 시작이다. 그리고 "희망찬 새해 2015년을 맞으며 온 나라 가정들에 행복이 깃들기를 축원합니다"라고 갈무리했다. '김정은식 애민정치'의 서막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3년상을 끝낸 2015년 북한은 당 창건 70돌을 계기로 김정은의 당, 김정은의 나라로 나아가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애민'이라는 단어로 점철됐다.

'애민정신'에 입각한 북한은 당 창건 70돌인 10월 10일을 앞두고 다양한 건축공사를 끝마치려고 했고,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인민사랑'을 내세우며 이른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다그쳤다. 

하지만 '애민정치'를 표방하던 2015년, 최측근으로 분류된 최룡해 당 비서가 실각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김기남 당 비서는 좌천된 듯하다가 다시 면모를 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공포정치'라고 부르지만 '인민을 향한 멸사복무', 인민사랑을 위해 당 정책을 끌고 나가려는 김정은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남들이 뭐라 해도 북한은 외부를 향해 시쳇말로 '애민정치라 전해라'라고 하는 셈이다.

그리고 북한은 애민정치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은 나라와 백성이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와 같이 바친다"고 밝힌 데서 출발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핵심은 '인민대중에 대한 헌신적 복무',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이라고 설명한다.

   
▲ 북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자료사진-통일뉴스]

'가정행복'에서 '인민사랑'으로 이어진 '애국'의 정책 구현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하며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에게 의거하는 기풍이 차넘치게 하고, 당 사업의 주되는 힘이 인민생활향상에 돌려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미 마련된 자립경제의 토대와 온갖 잠재력을 최대로 발동하여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건설에서 전환을 이룩하여야 한다"며 "뜻깊은 올해에 인민생활향상에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뜻깊은 올해'는 당 창건 70돌을 의미한다.

당 창건 70돌을 '혁명적 대경사'로 '10월의 대축전장'으로 맞이하기 위해 북한은 각종 건설에 주력했다. 대표적으로 원산육아원.애육원(6월),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6월), 평양국제비행장(7월), 마전유원지(7월), 평양양로원(8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10월), 룡매도간석지 6구역(10월), 종합봉사선 무지개호(10월), 과학기술전당(10월), 미래과학자거리(11월), 청천강계단식발전소(11월), 만경대학생소년궁전(12월) 등이 차례로 준공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인민의 낙원을 일떠세우는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으로 나라의 경제적 위력과 문명수준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간주했다. 이는 '애민정치'의 발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신년사에서 밝혔듯 농산, 수산, 축산을 3대 축으로 한 식생활 수준 높이기, 경공업공장 생산 정상화를 통한 질 좋은 소비품 생산 등에 나섰다. 구체적인 성과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한은 '인민 중심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한, '애국헌신 기풍'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가 10월 새로 개발한 지하전동차를 두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동하고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으로 만들어야 그것이 더욱 소중하고 빛난다"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인민사랑' 구호와 이어진 정책들은 당 창건 70돌에서 정점을 찍었다. 김 제1위원장은 10월 10일 열병식 및 군중시위에서 육성연설을 통해 90여 회나 '인민'을 언급했다.

그는 '사랑하는 전체 인민들에게'라고 운을 떼며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이며, 우리 당의 존재방식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라며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그는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 동지 당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라는 노작을 통해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고 구호를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새해 첫날부터 평양육아원.애육원을 찾는 등의 행보에서 읽혔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분야별 횟수와 동행자 순위. [자료정리-통일뉴스]

24일 현재 김 제1위원장의 총 151회 현지지도 중 69차례가 경제 분야이다. 이는 군 분야 46회, 정치 19회 등 보다 훨씬 많은 수치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 경제가 인민들의 피부에 와 닿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지난 8월 나선시 홍수피해와 관련해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례적으로 홍수피해 복구대책을 지시하고, 직접 두 차례에 걸쳐 현지지도한 모습 등은 인민사랑의 정치적 구호와 함께 '애민지도자 이미지' 구축을 위한 행보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김정은 제1위원장과 당의 애민정치에 북한 주민들은 애국활동으로 보답했다. 올해 성과를 두고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는 눈부신 비약을 이룩하였다"라고 평가했다.

당의 전민과학화기술인재화, 인재강국화 구호에 따라 각 대학은 원격교육을 강화, 지난 10월 김책공업종합대학 원격교육대학에서 1백여 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고 교육을 받는 단위가 1천 5백여 개로 늘었다.

그리고 전국의 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는 2천여 개의 과학기술보급실이 꾸려졌고, 평양강냉이가공공장, 평양메기공장은 과학화된 통합생산체계를 갖췄으며, 식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농업과학원 평양남새과학연구소 등에서는 과학연구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북한 체육인들은 국제경기에서 90여 개의 금메달을 포함한 약 250개의 메달을 획득했으며, 19개 국내 신기록을 수립으로 당에 보답했다.

'국보급'이라고 불리는 청봉악단이 7월 창단되고 모란봉악단과 국가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도 이어졌다. 이들은 김정은 시대 음악정치의 일환으로 인민사랑 의식을 심어주고, 애국열풍을 일으키는 데 한 몫 했다.

이 밖에도 국토환경보호부문 일꾼회의(2월), 제7차 전국체육인대회(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3차회의(4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5월), 전국상업부문일꾼회의(5월),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7월), 제4차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선구자대회(11월), 제4차 전국직맹모범초급단체위원장대회(11월), 제3차 전국재정은행일꾼대회(12월) 등이 열렸다.

   
▲ 당 창건 70돌 횃불행진. [자료사진-통일뉴스]
   
▲ 2015년 창단한 청봉악단의 당 창건 70돌 공연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이 애민정치를 구현한다고 해도 장성택 숙청 이후 최룡해 당 비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을 내치고, 김기남 당 비서가 주석단이 아닌 방청석에 앉다가 다시 복권되는 등 당 기강 잡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김 제1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최룡해 당 비서의 신상변화는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당 창건 기념일까지 모습을 드러낸 최룡해가 지난 11월 사망한 리을설 원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빠졌다.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신념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저절로 유전되는 것도 아니다. 신념을 저버린 인간은 한때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었다고 해도 역사의 쓰레기로 버림받게 되는 것이 혁명투쟁의 교훈"이라고 암시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지난 4월 24일과 25일 평양에서 열린 '제5차 훈련일꾼대회' 참가를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후임에 박영식이 올랐다. 그가 사라진 배경을 두고 '군벌관료주의', '김정은 비하 발언' 등 추측이 나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의 선전선동을 담당하는 김기남 당 비서는 지난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3차회의에서 주석단이 아닌 방청석 세 번째 줄에 앉았다. 그러다 7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천박물관 현지지도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일련의 간부 잡도리를 두고 '공포정치'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모든 당조직과 당일꾼들은 세도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극복하며 인민들을 따뜻이 보살피고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즉, 자신의 애민정치에 벗어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 회장은 최근 열린 특별학술회의 기조발제에서 "병진노선의 핵심은 핵보유, 핵강국이 아니라 바로 경제건설, 인민생활 향상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김정일 시대에 있었던 부패에 연루된 간부들을 징계하고 인민들의 생활현장을 방문하여 인민생활 향상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했다"고 평가했다

   
▲ 지난 5월 시험발사된 SLBM '북극성-1호'. [자료사진-통일뉴스]

군, SLBM 발사 성공 등으로 '인민보위' 표출

"혁명무력건설과 국방력강화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 군사강국의 위력을 더 높이 떨쳐야 한다"는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보답하듯, 북한 군부도 '인민보위'라는 이름으로 애국사업을 펼쳤다.

'혁명무력건설', '국방력 강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5월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호' 시험발사 성공이다. 당시 김 제1위원장은 직접 참관하면서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린 것에 못지 않은 경이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대변인 성명을 발표, "나라의 국방과 안전을 수호하고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의 국방력강화계획은 추호도 흔들림도 없이 비상히 빠른 속도로 더욱 힘차게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북한은 '백두산훈련열풍'을 이어갔다. 지난 4월 열린 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서 김 제1위원장은 개회사와 폐회사를 직접 하면서, "훈련에 모든 힘을 집중하며 전군에 백두산훈련열풍이 더욱 세차게 휘몰아치게 하는데서 도화선이 되고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를 따라 앞으로'라는 구호에 맞게,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의 칼을 날카롭게 벼리라'는 신년사처럼, 새해 초 추격기 및 폭격기연대 비행전투훈련을 시작으로 비반충포사격경기대회(1월), 적 해상목표 군종타격훈련(1월),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장타격 및 복구훈련(3월), 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4월), 여성초음속전투기비행사 비행훈련(6월), 신형 반함선로켓 발사훈련(6월), 고사로켓사격훈련(11월), 쌍방실동훈련(12월) 등이 시행됐다.

또한, 김 제1위원장은 4월 새벽 백두산 정상에 올라 전투비행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행군대를 격려했고, 제1차 정찰일꾼대회(6월), 제4차 전국노병대회(7월), 제7차 군사교육일꾼대회(11월), 제4차 포병대회(12월) 등에서도 인민보위과 백두산훈련열풍을 강조했다.

   
▲ 북한은 2016년 5월 열리는 당 제7차 대회를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제공-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2016년 당 7차 대회를 향한 '인민사랑', '애국열풍' 박차

당 창건 70돌과 관련해 예상됐던 당 7차 대회가 2016년 5월 열린다.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11월 결정서를 발표,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위업 수행에서 세기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를 주체105(2016)년 5월 초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36년 만에 열리는 당 7차 대회를 앞두고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사설을 통해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제일투사, 애국의 불을 달아주는 불씨"가 될 것을 주문하며, "당 제7차대회를 우리 당 역사에 특기할 혁명의 최전성기로 빛내여 나가자"라고 호소했다.

이를 입증하듯 북한 각계는 당 제7차 대회를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삼천메기공장을 찾아 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다음 해 10월 10일까지 현대화를 마칠 것을 지시했다.

농.축산 분야에서 알곡과 축산물 생산 늘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겨울철 물고기잡이에도 집중하고 있다. 식료공업부문, 인민경제의 선행부문과 기초공업부문 등에서도 증산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11월 한달 동안 철도운수부문 물동수송량이 10월에 비해 하루평균 110% 늘어났으며, 삼지연-대홍단-백암도로 기술개건 공사가 완공됐다. 각지의 과학연구, 교육기지들에서 승리의 5월을 마중해가는 과학자, 연구사, 교원들의 열정의 낮과 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북한 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

결국, 2015년 초부터 이어온 '10월 대축전장'을 위한 동력은 2016년 5월 당 7차 대회까지로 연장됐다. "'김정은식 애민정치'라 전해라". 김 제1위원장이 제시한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가 계속 이어지고, 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애국보답'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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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무등산 타잔' 사형 "우리 오빠는 중앙정보부에 자수했다"

[최후의 진술 ① 박흥숙 편] 무등산 타잔, 박정희 시대가 조작한 청년의 죽음
15.12.24 17:06l최종 업데이트 15.12.24 17:06l글 : 이정환(bangzza) 편집 : 손지은(93388030)

모 든 법정 최후 진술에는 사람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떤 사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뉴스라거나 케케묵은 역사책 속에나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들의 최후 진술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도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사형대에 선 스물 여섯 살 청년.
그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1980 년 12월 24일, 그 날은 여느 성탄 전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전국의 성당과 교회에서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미사와 예배가 열렸고, 성탄절을 맞은 길거리에는 가족, 친구, 애인들로 붐볐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명동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1980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영업 시간이 자정까지로 연장됐지만 유흥업소들은 밤 10시가 되자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아걸었다고 한다.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은 서울 은광여고 브라스밴드 59명을 불러 청와대 비서실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답게', 그들이 선택한 사형 집행일은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5.18로 구속됐다가 재판 받고 나오는 날이었어요. 눈이 왔었는데... 그 날 집행됐다고... 안타까웠죠." (위인백 5.18 교육관 관장)

그 날, 사형대에는 한때 법관을 꿈꿨던 청년도 서 있었다. 박흥숙, 그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천장에 숨겨놨던 30만 원이 재로 변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울부짖던 어머니가 스쳐갔을지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철거반원 4명을 죽였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을지 모른다. 그에게, 1977년 봄은, 참혹했다.

"우리 오빠는 중앙정보부에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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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4월 21일자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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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일 하오 2시 쯤 광주시 동구 운림동 산 143 해발 500 미터 무등산 계곡 증심사가 있는 속칭 덕산골에서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던 광주시 동구청 철거반장 오○○씨(42)와 구청 소속 일용잡급직 이○○씨(30) 등 7명이 집을 헐린 심금순씨(52)의 2남 박흥숙(22)에 의해 사제총으로 위협을 받고 빨랫줄로 양손을 묶인 채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아 그 중 오씨와 이씨가 현장에서 숨지고 양○○씨(27), 윤○○씨(37)가 조선대 부속병원으로 옮겨 응급가료 중 숨졌으며 김○○씨(31)는 위독하다." (1977년 4월 21일자 경향신문, 피해자 이름 및 사실과 일부 다른 부분은 지움)

그야말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게다가 범인의 종적 또한 묘연한 상태. 택시를 타고 광주 시내 쪽으로 달아났다거나 "집이 철거됐으니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목격담 정도만 알려졌다. 경찰은 범인이 광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시내 일원에 비상망을 펼치는 한편, 현상금 50만 원을 내걸고 그의 사진 전단 1만 장을 뿌렸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경찰은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 서울에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상계동 이모집에 은신 중 시민 제보로 잡혔다"고 했다. 하지만 박흥숙의 동생 박정자(59·여)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빠는 자수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때문에 자수를 했어요. 엄마하고 나하고 잡혀 있었거든요. (당시 박정자씨는 살인방조혐의로, 어머니 신금순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나중에 오빠한테 들었어. 나, 자수했다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요. 그래서, 중앙정보부에 신고하고 '내가 박흥숙'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수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다 숨겼어. 자수한 것 자체를 다 숨겼어."

믿 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사건 당시 구명운동을 했던 노영숙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 역시 면회 과정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노 사무총장은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한 경찰들도 있었고, 아무래도 간첩 이야기가 나오다보니까 그 부분을 애매하게 넘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이기홍 변호사의 사무장으로 일했던 위인백 5.18 교육관 관장 역시 "그때 본인이 자수했다고 말했었다"고 증언했다.

"짐승 쫓으려고 만든 딱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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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흥숙 편'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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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건 당시 묻혔던 물음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를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경찰에게는, 언론에게는, 나아가 박정희 정권에게는 '느낌표'만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대중에게 이 사건을 납득시켜야 했다. 자칫 당시에 숱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강제 철거에 대한 불만을 폭발하게 만드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물음표는 도대체 어떻게 청년 한 명이 다섯 명을 상대해 그 중 네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냐는 것이었다. 우선 피해자들을 위협한 쇠파이프 사제총 이야기가 좀 더 근사해야 됐다. "산중에 외롭게 살고 있기 때문에 호신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연이 더해졌다. 원래부터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충분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동생 박정자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은 180도 달라진다.

"산 속이니까, 멧돼지나 그런 것들 많았었고, 그때만 해도 늑대도 있었거든요. 실제로도 봤어요. 그 때는 늑대인 줄 몰랐는데, 꼬리가 굉장히 길고 털이 뿌옇고 치렁치렁하더라고요. 눈은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희멀떡한' 색깔? 갈색털이었는데, 내가 개인 줄 알고 다가갔더니 도망가더라고요. 그때는 그랬어요. 짐승들이 집 근처까지 막 내려오고 그랬으니까, 짐승들 쫓으려고 만든 거죠. 그렇지 않았으면, 오빠가 뭐 한다고 총을 만들었겠어요. 그냥 소리만 나는 딱총이었어요. 화약 넣어서 '빵' 소리만 나는."

물론 그 소리에, 처음에는 철거반원들도 놀랐을 것이다. 사건 당시 박흥숙은 한 번의 '빵' 소리를 냈다. 놀란 철거반원들이 포박에 응하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딱총의 조악함을 곧 눈치채고 대항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철거반원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박흥숙은 그들을 데리고 광주 시장에게 항의하러 가려고 했다. 진짜 그렇게 되면, 박봉의 일용직인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에게도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박흥숙의 평소 사진을 보다가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드' <타잔>이 떠올랐을 것이다. 근육질의 몸매로 산 속을 누비는 타잔, 박흥숙은 사자를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힘'의 소유자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에 박흥숙은 키가 작았다. 165cm의 작은 체구로 철거반원들을 혼자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소룡'이 더해져야 했다.

그래서 박흥숙은 평소 무예를 익히고 칼 던지기 등 십팔기에 능숙하며, 태권도, 유도, 기합술 등을 두루 섭렵한 무예의 고수로 소개됐다. "평소에 뒤틀린 영웅심리가 잠재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설도 빼놓지 않았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등산 타잔, 야만의 시대가 왜곡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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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숙이 평소 체력 단련을 열심히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동생 박정자씨는 "평소 오빠가 다리에 납을 각각 차고 다니면서 체력 단련을 했다"고 말했다. 타잔이나 이소룡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박흥숙은 법관이 되고 싶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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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흥숙이 평소 체력 단련을 열심히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동생 박정자씨는 "평소 오빠가 다리에 납을 각각 차고 다니면서 체력 단련을 했다"고 말했다. 타잔이나 이소룡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박흥숙은 법관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으나 교복 살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던 그로서는 사법고시가 지긋지긋한 가난의 탈출구였다.

하지만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과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절감한 한계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었다. 박정자씨는 "오빠가 공부하다가 많이 쓰러졌었다"며 "체력이 약하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년을 운동하면서 사법고시라는 '문'을 두드렸을 즈음, 그의 몸은 "사법고시 패스하기 전에 전국체전에 한 번 나가고 싶다"고 동생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그 런 그에게 야만의 시대는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을 갖다 붙였다. 그리고 그가 살던 덕산골은 경치가 좋아 평소 굿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이유로 '무당촌'이 됐고, 박흥숙은 사이비 종교에 영향까지 받은 이상한 사람인양 묘사됐다. 집이 철거되면 공부방으로 쓰려고 파놓은 구덩이 또한 철거반원들을 죽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각색됐다.

이런 왜곡의 반작용일까. 인터넷에는 박흥숙에 대한 과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할아버지가 빨치산이라서 합격이 취소됐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야기가 도는 데에는 2005년 개봉한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도 한몫 했던 것 같다. 영화 이야기를 꺼내자 박정자씨는 불편한 기색을 표시하며 "보기 싫다"고 했다. 그는 "거의 다 왜곡"이라며 "너무 많이 포장을 했다, 우리 오빠는 그저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빨치산이란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 빨치산 그런 건 아니었고, 증조 할아버지가 동학난 때 영광군 동학대장을 하시다가 관군한테 총 맞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증조 할아버지 묘가 없어요. 영광군, 어디, 그냥 총 쏘고 묻어 버려서, 묘가 없어. 그때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됐다고 해요. 그 전까지는 그래도 집안이 괜찮았대요. 백수인가?(영광군 백수읍) 그쪽에 집이 있었는데, 아름드리 나무 기둥도 쓰고, 집도 컸다고 들었어요."

아직도 유효한 물음표, 왜? 박흥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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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숙의 어린 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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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하는 부분을 공권력 쪽에서는 감추고 싶었겠죠. 그러니까 언론 쪽에, 이렇게 계속, 뭐냐하면, 찾아와 가지고, '불'이라는 단어를 쓰는 기자를 팔목까지 잡을 정도로, 못 쓰게 할 정도로... (중략) 시청 고위 간부들이 떼로 몰려와 가지고 2명, 3명이 기자 옆에까지 아니면 사회부 데스크까지 와서 이렇게 제발 불이라는, 불을 질렀다는 그걸 끝내 못쓰게." (박화강 당시 전남매일 기자, 2005년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흥숙 편' 중에)

1977 년 4월 20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의 물음표는 결국 다시 '왜'로 돌아간다. 왜 박흥숙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을까. 박정자씨는 "그 때 오빠가 살림살이 같은 것들을 스스로 다 꺼내줬었고, 집에 불만 지르지 말아달라고 했었다"며 "철거반원들이 불을 지르고 그제야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고 천장에 모아놨던 돈이 생각나서 울부짖는 엄마를 그래도 말리고 참았었다"고 말했다.

"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가 그랬어요. '저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다'. 그러면서 다른 집에는 제발 불지르지 말아달라고 했었거든요. 우리 동네에 환자 분들이 많았어요. 폐병, 당뇨병, 사회에서 거의 낙오되다시피 했던 분들, 오갈 데 없는 분들이 거기 와서 사셨고, 평소에 오빠가 그 분들을 돌봐드렸는데...

그 런데 좀 있으니까 그 집에서 연기가 타오르고 하니까... 저보고 먼저 시장한테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저 사람들 내가 데리고 시장한테 가서 따져야겠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한테 꼭 저렇게까지 해야겠냐'고, 내가 그래서 '오빠, 그러지 말라'고 말렸는데, 완전히 그때는 오빠가, 자기 정신이라기보다는, 그냥 이성을 완전히 잃은 거죠."

※ 이와 관련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당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아무개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정중하게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 리고 광주시장실 입구에서 "알아서 할 테니 가보라"는 말을 듣고 돌아섰던 동생은, 버스 안에서 오빠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만약, 철거반원들이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박흥숙은 지금 동생 곁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선택은 철거반원들에게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철거만 해야지, 소각은 할 필요가 없잖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철거를 하고 소각하라는 것까지 다 상부 지시가 있었어요, 그때 당시, 본청에서 이제 이렇게 철거를 하고 보고해라, 소각을 해라, 그런 공문이 지금까지 있는가는, 이미 폐기가 돼서 없을 겁니다마는, 그렇게 내려왔어요." (김대옥 당시 광주시 동구청 건축지도계, 2005년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흥숙 편' 중에)

박흥숙 사건의 '불씨',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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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의 박흥숙 모습
ⓒ 백상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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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이 흘렀다. 적어도, 철거 현장에서 누가 불을 질렀다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시대는 됐다. 하지만.

용 산구 효창동, 안산시 단원구, 김포시 풍무동, 부산 문현동. 이들 지역은 최근 한 달 사이 화재가 났던 곳들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재개발 구역이다. 한결같이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보통 재개발 구역들은 화재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동절기라는 특성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뉴스들은 꼭 그렇지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 인천의 대표적인 재개발사업지구인 도화지구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1일 인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6시께 남구 도화동 111의 21 주택에서 불이 나 51㎡를 태우고 16분만에 진화됐다. 빈집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올 들어 도화지구에서 발생한 4번째 화재였다. 지난 해 12월 18일, 20일, 24일 발생한 화재까지 합치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최근 한 달여 사이 도화지구에서만 7건이 발생한 것이다." (2012년 2월 1일자 연합뉴스)

" 재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와 세입자를 쫓아내고 보상금을 적게 지급하기 위해 재개발 지역 내에 수 차례에 걸쳐 고의로 불을 지른 철거업체 대표와 조직폭력배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금까지 재개발 지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철거업체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 4월 28일자 문화일보)

2009 년 보도된 사건의 경우, 최근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이 철거업체 대표는 일반건조물 방화교사 및 살인 미수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박흥숙 사건이 종료형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오늘의 뉴스다. 그 이유를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실제 추진되는 재개발 사업은 법이 정한 절차가 아니라 힘이 정하는 순서를 따른다"고 짚고 있다.

그는 <참세상>에 실렸던 '놓치지 말아야 할 용산 참사 진상 규명의 과제'란 제목의 글에서 "세입자가 권리를 깨닫는 순간 폭력에 직면하게 되고, 권리를 모르거나 알고도 포기하면 개발사업의 마지막 단계가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세입주들이 이제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쫓겨날 수 없다"는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 그리고 폭력에 직면하는 업주들이 있다. 박흥숙 사건이 방화라는 폭력에서 비롯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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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버린 집터에 앉은 마을 주민 지난 11월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해 잿더미로 변한 강남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자신이 사용하던 집기들을 찾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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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흥숙의 최후 진술에서 힘이 정하는 순서를 따르는 재개발에 대한 문제 의식이 읽히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럽다. 동시에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1970년대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자신을 '무등산 타잔'이란 괴물로 만든 시대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그의 최후 진술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 나는 무등산 덕산골에 살며 77년 4월 28일 철거반 공무원 피습 사건의 주인공으로 '한국판 이소룡', '무등산 독수리', '무등산 타잔' 등등 수많은 악의 대명사를 걸머진 그야말로 끔찍하고 흉악무도한 살인마로 알려진 박흥숙이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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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농성장 찾아와…함께 울어준 산타들

세월호 농성장 찾아와…함께 울어준 산타들

등록 :2015-12-24 19:42수정 :2015-12-24 22:18

 

성탄전야 ‘고난의 현장’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 24일 오후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 24일 오후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장 15절)

 

성탄을 하루 앞둔 24일 저녁, 잔잔히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며 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새벽송(성탄절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에 나섰던 기독교계 사회단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고난함께) 회원 20여명도 함께 훌쩍였다. “예은이가 새벽송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2년 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생각나네요.” 유 위원장이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영정사진 앞에서 “우리가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울려 퍼지는 동안, 새벽송에 따라나선 전은수(9), 지수(6) 자매가 언니, 오빠들 영정 앞에 과자 선물을 올렸다.

 

2012년 성탄 전야 때 쌍용차 투쟁 현장 등 5곳의 농성장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고난함께 회원들은 매년 성탄 전날이면 고난받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성탄 소식을 전한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단 하루만이라도 산타클로스가 되어 고통으로 내몰린 이들과 ‘함께 울어주기’ 위해서다. 이날도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 일자리를 잃은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까지 서울 곳곳에 있는 농성장 8곳을 찾아 함께 캐럴을 부르고 기도를 올렸다.

 

 

기독교계 모임 ‘고난함께’ 회원들
서울거리 농성장 8곳 찾아가

 

새벽송 부르며 세월호유족 위로
기아차·풀무원 고공농성 현장도 가

 

“찾아갈곳 없어지길 바라는데
고난의 현장 점점 많아지네요”

 

79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들머리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79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들머리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성탄 전날 밤 찾아갈 현장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어째 가야 할 곳이 점점 많아지네요.” 진광수 고난함께 사무총장(목사)이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사라진 고난의 현장보다는 새로 생긴 고난의 현장, 고난이 길어지는 현장이 더 많이 늘어갔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머무는 옛 인권위원회 건물 광고탑과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이 있는 여의도 광고탑 앞에서 고난함께에 참여하고 있는 전남병 목사는 “하늘로 올라가는 이들은 누구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신에게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이들이다. 그런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돼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 현장이 있다는 얘기는 고난받는 이들에게는 희망이다. 전 목사는 이날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지난해 이날 새벽송에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분들이 복직돼 찾지 않게 돼 기쁘다. 하이디스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응원했다. 학습지 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해고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2822일간의 기나긴 싸움 끝에 지난 9월 직장으로 돌아갔던 점을 얘기한 것이다.

 

진 사무총장은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을 ‘우리 사회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농성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무너지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생기고, 나같이 아픈 사람들이 또 생긴다고 말한다. 그들을 보면서 작은 예수를 본다. 그들이 진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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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때 복면금지, 벌금 3배 인상, 막아냅시다.

 
 
국민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여 헌법에 보장된 자유와 권리를 꼭 지켰으면…
 
임병도 | 2015-12-24 14:41: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집회와 시위 참가자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 12월 14일 발의됐습니다. 새누리당 박인숙, 서상기, 홍지만, 박명재, 김을동, 주호영, 이정현, 김한표, 손인춘, 문대성, 이이재 의원이 발의한 복면금지법은 1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받게 됩니다.

복면금지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면 당연히 발의된 법안이 소관위원회에서 재검토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본회의 심의 때도 국민의 반대를 의식해 국회의원들이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1명만이 찬성 의견을 다섯 차례 낸 것이 전부입니다.

복면금지법은 노골적으로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백남기씨의 부상은 외면하고 경찰관의 부상만 쟁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 (일명 복면금지법)

제 안 이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으로서 적법하고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함. 그러나 최근 서울 도심에서 신원을 파악할 수 없도록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시위의 참가자들이 폭력을 행사하여 경찰관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경찰 차량 50여 대가 파손되는 등 공권력을 침해하고 공공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음.

따라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원칙적으로 참가자가 복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참가자가 복면 등을 착용할 경우, 신원을 알기 어려움을 악용하여 공공의 안녕질서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참가자의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음.

한편, 현행 벌칙규정은 1989년에 개정된 것으로 그 벌금액이 지금의 경제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처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움. 이에 집회 또는 시위를 할 때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고, 벌금형을 상향하여 현실화함으로써 건전한 집회 및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것임(안 제16조제4항제4호 신설 및 제22조부터 제24조까지)

 

새누리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가면, 마스크, 복면 등을 착용하지 못하는 법안을 신설했습니다. 개정안을 보면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가면, 마스크 등의 복면 도구 등을 착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행위'가 금지됩니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의견을 제안하거나 시위의 성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가면도 아예 착용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정치] - 해외에서 ‘복면시위’를 금지한 이유는 극우 때문이었다.

현행

개정안

16(주최자의 준수 사항)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에 있어서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

 

②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의 질서 유지에 관하여 자신을 보좌하도록 18세 이상의 사람을 질서유지인으로 임명할 수 있다.

 

③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제1항에 따른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면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종결(終結)을 선언하여야 한다.

 

④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총포, 폭발물, 도검(刀劍), 철봉, 곤봉, 돌덩이 등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器具)를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이를 휴대하게 하거나 사용하게 하는 행위

 

2.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

 

3.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

 

⑤옥내집회의 주최자는 확성기를 설치하는 등 주변에서의 옥외 참가를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6(주최자의 준수 사항)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에 있어서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

 

②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의 질서 유지에 관하여 자신을 보좌하도록 18세 이상의 사람을 질서유지인으로 임명할 수 있다.

 

③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제1항에 따른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면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종결(終結)을 선언하여야 한다.

 

④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총포, 폭발물, 도검(刀劍), 철봉, 곤봉, 돌덩이 등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器具)를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이를 휴대하게 하거나 사용하게 하는 행위

 

2.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

 

3.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

 

⑤옥내집회의 주최자는 확성기를 설치하는 등 주변에서의 옥외 참가를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4.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가면, 마스크 등의 복면 도구를 착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행위. 다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는 복면도구를 착용할 수 있 다.
. 집회 또는 시위의 성격에 비추어 참가자의 신원이 노출되면 참가자의 인격권 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 우 나. 집회 또는 시위의 목적· 규모·일시 및 장소를 고려 할 때 공공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 다.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

⑤옥내집회의 주최자는 확성기를 설치하는 등 주변에서의 옥외 참가를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새누리당은 단순히 복면금지법만 발의한 것이 아닙니다. 집회와 시위 참가자에 대한 벌금을 상향 조정하여, 지금보다 더 높은 금액의 벌금형을 받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재 설정된 질서 유지 선을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침범할 경우 5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합니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200만 원으로 상향됩니다. 현재보다 3배나 더 높게 벌금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에 관한 국민의 권리를 복면금지나 벌금형 상향 조정 등을 통해 제한하려는 법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온라인에서 복면금지법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것과 입법예고되는 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법률에 반대하는 의견을 등록하는 순간 소관위원회 등에서 정확히 검토할 대상이 될 것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복면금지법을 반대한다는 말보다 공식적인 의견등록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의견제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국회 소관위에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여의도동) 안전행정위원회)에 직접 의견을 제출하는 방법과 온라인에서 의견을 등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회 홈페이지 회원 등록 또는 공공 아이핀을 통한 본인 확인 필요) 

국민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여 헌법에 보장된 자유와 권리를 꼭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복면금지법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 등록하러 가기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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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첨단 석탄 채굴 자동, 지능, 무인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2/25 05:43
  • 수정일
    2015/12/25 05: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탄광 전용 프로그램 개발 안정성 속도 높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2/24 [18:0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조선이 석탄 채굴생산에서 첨단기술로써 탄광전용소프트웨어제품이며 채굴공정의 안정성과 속도를 높여주는 ‘수자탄광설계지원체계’를 새로 연구 도입했다고 밝혀 주목된다.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웹싸이트는 24일 조선의오늘을 인용 “북에서 인민경제 선행부문인 석탄생산을 더욱 높이는데 필요한 첨단기술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의오늘은 수자탄광설계지원체계는 김책공업종합대학 광업공학부에서 연구 개발했다면서 “현시기 많은 나라들에서는 지하자원탐사와 채굴공정에 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수자탄광이란 한마디로 채굴공정의 자동화, 지능화, 무인화가 실현된 탄광으로서 탄광의 지상과 지하의 모든 생산공정 및 생산환경에 대한 정확하고 세밀한 모형작성, 가상현시, 공정모의, 지능분석과 결심채택 등이 통일적인 시공간자리표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탄광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수자탄광기술은 석탄채굴공정전반을 현대화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안전조건을 개선하며 환경보호형 녹색채굴을 실현하는데서 필수적인 첨단기술로 인정되고 있으며 21세기 탄광건설에서 관건적 고리로 되고 있다.”며 “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은 각지 탄광들에 나가 탄광개발 및 채굴실천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여 마침내 높은 수준의 수자탄광설계지원체계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수자탄광설계지원체계는 탄광3차원 통합 모형화, 개발 및 채굴공정설계, 탄층 및 지층 모형화, 다른 설계지원체계와의 호환성과 안전성 등 모든 기능과 특성지표들에 한하여 선진수준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탄광전용 소프트웨어제품”이라며 “이 체계는 지하갱 골격구조의 시각화를 위주로 하던 종전체계와는 달리 전용해석프로그람을 이용하여 해당 지하 구조층의 안정성을 해석하고 채굴조건을 평가하여 합리적인 갱도배치설계와 채굴공정설계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     © 이정섭 기자

 

매체는 “탄광들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여러 설계프로그램자료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자료구축이 매우 간편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새로운 설계지원체계를 받아들이면 탄광개발 및 채굴공정설계기간을 1/20 ~ 1/10로 단축하면서도 헛굴진을 대폭 줄이고 석탄 채취율을 훨씬 제고할 수 있다고 하였다.”고 장점을 강조했다.

 

특히 강동지구탄광연합기업소, 순천지구탄광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전국각지의 수십 개 탄광들에 도입되어 과학성과 실리성이 충분히 검증된 수자탄광설계지원체계는 얼마 전에 진행된 제26차 전국프로그람경연 및 전시회에서 1등으로 평가되었다며 우수성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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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목을 놓아 금순이를 부른다

 

<정삿갓 북한 방랑기> 동포시인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 여행 (14)

정찬열  |  noproblem10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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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4  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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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 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 이른 아침 함경남도 함흥 성천강 다리 위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함흥시의 아침 풍경

10월 17일(금) 맑음. 북한 방문 14일째다. 아침 6시 기상. 혼자서 호텔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텔 앞 노점상은 벌써 문을 열었다. 어제 저녁 홍시를 사왔던 곳이다. “건강에 좋은 두부 곡차를 판매합니다. 수푸있습니다.” 삐툴삐툴 쓴 글씨를 작은 종이에 걸어놓았다. 바로 옆 노점상은 식당인 모양인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옆에 안내판이 붙어있다. “일화장식사봉사안내 - 메밀국수, 강냉이 속살국수, 닭알우유지짐빵, - 단체주문 받습니다.” 라는 안내판이다. 
 
아주머니가 길을 쓸고 있다. 호텔 앞 차도에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청년 세 명이 길 한 복판을 발맞춰 뛰어가고 있다. 함지박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아침 식사는 호텔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손님은 우리 일행뿐이다. 식사 후 산책을 나갔다. 인도를 따라 여인들이 백팩을 메고 걸어간다. 출근하는 모양이다. 남자들도 백팩을 메고 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잘 지은 멋진 기와집이 보여서 무슨 건물이냐고 김 참사에게 물었다. 신흥관이라고한다. 함흥냉면의 본산이란다. 평양에는 옥류관이요 함흥에는 신흥관이라는 얘기다. 함흥에 왔는데 함흥냉면 맛을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점심을 여기서 먹자고 한다.  
 
‘함경남도 혁명사적관’ 건물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 높은 곳에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서있다. 멀지 않은 소나무 우거진 쪽에 자그마한 정자가 보인다. 성천각이라고 한다. 정자에 올라서니 시내가 한 눈에 바라보인다. 함흥이 아침 안개에 쌓여있다. 어제 건너왔던 성천강 다리 위로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저 강을 경계로 동쪽은 농업지구, 서쪽은 공업지구로 나눠진다고 했다.

사람들이 오갈 뿐,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다. 출근 시간이면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에 시달리던 생각을 해 보니 별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30여명 남녀가 줄을 맞추어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다. 무엇하러 가는 사람들이냐고 김 참사에게 물었다.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인사하러 가는 행렬이라고 한다. 회사 설립일이나 결혼 같은 특별한 날에 지도자에게 인사하는 것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의 하나라고 설명해준다.

   
▲ 호텔 앞 노점상. [사진제공-정찬열]

 

   
▲ 함흥의 아침 풍경, 백팩을 맨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 아침 안개에 쌓여있는 시가. [사진제공-정찬열]

 

   
▲ 함흥시내 풍경. [사진제공-정찬열]

 

흥남비료공장 방문

흥남을 향해 출발한다. 운전사 방 동무의 처갓집이 이 부근이라서 어제 저녁 다녀왔다고 했다. 처갓집 다녀온 얘기를 한다. 처할머니가 86세이고 장인은 47세이신데. 두 분이 식사 때마다 반주 한 잔씩을 빼지 않는다고 한다. 3대가 함께 산다고 했다. 평양에서 대학을 졸업한 다음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처남을 칭찬한다. “... 고런 징표를 다 갖췄으니, 소꼬리보단 닭대가리가 되겠다고 지방에 내려온 기 아니겠시유.“
 
함흥 시내를 빠져 나간다. 인도 위로 우마차가 지나간다. 마부는 마차 위에 걸터앉아 끄덕 끄덕 소를 몰고 간다. 소 뒤에는 소똥을 받아내는 똥받이를 달아놓았다. 그 옆으로 사람이 걸어가고, 자전거가 뒤따르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뒤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평양, 함주 간을 운행하는 기차라고 했다. 교통순경이 자동차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9시경 흥남비료 공장에 도착했다. 말로만 들어왔던, 일제가 1930년에 세웠다는 비료공장이다. 정문에 ‘26호모범기대련합기업소’라는 표지가 보인다. 이 비료공장은 해방 이후 한국의 최대 비료공장이었다. 분단이 되면서 북한은 남한에 대한 비료공급을 중단했다. 남한은 자력생산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화학비료를 전량 수입했다.
 
공장 입구에 “검사원의 아낌없는 찬사”라는 큰 글씨로 쓴 간판이 보인다. 그 밑에 <2보수직장 제관 2반 용접공 홍성일 동무 주야간 계속되는 가스청정직장 변탈 1,2탑 환산관 교체작업에서 속도와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 모든 사람들 감탄!>이라는 사연이 적혀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출근하는 사람이고 나가는 사람은 퇴근하는 사람들이다. 근무 교대를 하는 모양이다.
 
공장을 걸어서 들어간다. 한 건물 앞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다녀가신 건물”이라는 글씨가 빨강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걸려있다. “백두산의 아들 김정일 장군을 천만년 높이 받들어 모시자!”라는 글이 백두산 그림 위에 크게 써 있다.
 
홍보관으로 안내를 한다. 흥남비료공장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이 년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다. “흥남비료공장은 우리나라의 비료생산에서 생명선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어록이 사진과 함께 벽에 붙어있다. 6.25사변 때 폭격으로 공장이 파괴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건설되었고, 2011년 10월 뇨소비료를 생산하게 되었다는 얘기 등을 안내원이 청산유수로 설명한다.     
 
종업원은 산하 공장 4개 직원을 포함 약 7천명이라고 한다. 공장 안에 화학공업대학이 있다고 한다. 80만톤 질소를 생산할 예정이었는데 금년은 100% 달성했다고 한다. 요소는 논농사에 필요하고, 질소는 밭농사에 필요하다고 한다. 종업원들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으며, 공장은 40만 평방m 넓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갈탄재로 블록도 만든다고 한다.  전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날이 가물어 수력발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전기사정이 호전되지 못하는가 싶었지만, 금년 농사가 풍년이라니 다행이다.
 
“이 분이 꼭 아바이 같아요.” 김 참사가 한 마디 한다. 인상도 좋고 안내하는 태도가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그제서야 안내원이 이전에 이 공장의 부지배인이었다고 자신을 밝힌다.
 
문을 나서는데 ‘나들문’이라고 써 있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문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안내원이 ‘주은래 방문 기념비’ 앞으로 안내한다. 1958년 주은래 중국수상이 이곳을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다.
 
공장 곳곳을 안내하는데 잘 보이는 곳에 시 한 편이 걸려있다. <인간의 도덕>이라는 제목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면서 지켜야할 도덕 / 그 모든 것 법이 자기의 조항으로 못다 밝히고 / 못미친 생활의 구석을 도덕이 환히 불을 켜고 있다 //  그 불빛은 환히 자기 량심과 사람들의 눈 / 그것이 때로는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거니 사업에서 실수는 만회할 수 있어도 / 한번 저지른 도덕의 실수는 일생을 두고 회복하기 어렵어라 / ..... / 물에 빠진 아이들을 건지려 남먼저 얼음구멍에 뛰어들지 않았다고 / 법의 판결을 받게될 것인가 // 사람이 사람으로 존경받는 것 직위냐 권세냐 / 아니여라 그의 마음속에서 도덕 빛날 때 인간이 인간으로 존경받을 수 있고 // ........ 아름답게 살자 젊은 날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 늙은 날엔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한생을 보람높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 / 이 세상에 있으랴!”
 
꽤 긴 내용이다. 그렇지만 삭막한 공장생활에 시 한 편이 주는 위안과 위로는 작지 않으리라. 서울의 지하철 곳곳에 붙어있는 좋은 시들이 그러하듯이.
 
공장을 둘러보아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 공장장이 뒷짐을 지고 계기를 살펴보고 있기에, “일하는 분들이 다 어디로 갔나요” 하고 물으니 빙긋이 웃기만 한다. 다시 밖으로 나와 걸어 나오는데 공장 한켠에 “장군복 태양복 수령복”이라는 글씨가 크게 보인다.
 

   
▲ 검사원의 아낌없는 찬사, 라는 큰 글씨로 쓴 간판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제공-정찬열]

 

   
▲ 흥남비료 공장 안에 세워진 ‘주은래 방문 기념비’. [사진제공-정찬열]

 

   
▲ 공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진 시 한 편, <인간의 도덕>. [사진제공-정찬열]

 

   
▲ 여성 공장장이 뒷짐을 지고 계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목을 놓아 금순이를 부른다

흥남부두 쪽을 향해 떠난다.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데로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현인이 불렀던  ‘굳세어라 금순아’란 노래다. 노래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자리에 앉은 김 참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바닷가 방파제에 다다랐다. 흥남부두가 멀리서 보인다. 부두 중앙쯤에 거대한 크레인이 서 있고, 오른쪽으로 군함이 보인다. 항구 앞 작은 섬은 ‘대진도’라고 했다.  
 
말로만 들어왔던 흥남부두.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진 항구. 1950년에 저 항구를 통해 흥남철수작전이 펼쳐졌고, 미군과 함께 10만 명 피난민이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갔다.

한국전쟁 당시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의 ‘장진호 전투’는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했다. 영하 30~40도의 혹한 속에 12만 중공군에 포위된 미 해병대 1사단 장병 1만5,000명은 전멸 위기에 처했다. 당시 미 해병은 중공군을 상대로 17일간 사투를 벌이며 이들의 남하를 저지했고, 10만명의 피난민이 흥남 부두를 통해 탈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장진호 전투의 대단원은 ‘흥남 철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간단한 몇 줄로 당시의 상황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좀 더 구체적인 기록이 없을까 살펴보던 중, 다음 글을 읽게 되었다. 2015년 1월 7일자 한겨레신문 칼럼이다.
 
“흥남 철수는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 실패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철수는 기적적인 성공이었지만, 맥아더의 무모한 북진작전은 미군 전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실패였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애초 조중 국경선에서 50㎞ 이남까지만 북진하라고 명령했지만, 맥아더는 정치적 야망 때문에 이 명령을 무시하고 전면적인 북진을 지시했다. 중국 인민군의 개입에 대해서도 오판했고, 그들의 전력을 무시했다. 그 결과 중공군의 유인과 매복 전술에 휘말려 모진 희생을 낳으면서 38선 이남으로 퇴각했다.

개활지가 많은 서부전선은 그래도 나았다. 협곡과 산악지대를 통해 북진했던 동부전선의 상황은 참혹했다. 50㎞의 협곡으로 철수하면서 미군은 무려 6500여명의 장병과 군속을 잃었다. 함흥에 도착했지만 중공군은 이미 원산을 장악하고 있었다. 탈출로는 바다밖에 없었다.
맥아더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26개 이상의 원자폭탄을 북쪽 지역에 투하하려 했다. 1950년 11월26일께 모든 전선에서 철수 명령을 시달하면서, 그는 동해에서 서해까지 국경 지역을 방사능 낙진으로 덮어버리겠다는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전면적인 흥남 철수를 명령하고, 12월9일 그는 다시 원폭 사용에 대한 재량권을 본국에 요청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 원폭 투하는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설사 원폭이 아니더라도, 포격 때문에 그곳에선 쥐새끼 한 마리 살아남기 힘들었다. 당시 함흥 일원에 쏟아 부은 함포 및 로켓포는 인천상륙작전 때의 1.7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주민들은 앉아서 죽으나 가다가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최선은 미군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폭격을 당하지 않을 테니까. 수많은 금순이와 오빠들이 미군을 따라 흥남부두로 몰렸다.”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흥남부두로 몰렸다. 죽고 사는 일이 가랑잎 같은 배 한 척에 달려있었다.
 
흥남철수는 미군 철수를 위한 작전이었다. 피난민을 데리고 가는 계획은 원래 없었다. 피난민을 태우자고 미 10군단장을 끝까지 설득한 사람은 고(故) 현봉학 박사였다. 그는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의사로, 미국 측을 설득해 9만8000여명의 피난민을 미군 수송선을 통해 남으로 내려오도록 했다.
 
흥남철수를 얘기하면서 1950년 당시 35세 ‘레너드 라루’ 선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7,600톤급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이었다. 선원은 12명. 흥남에 입항하여 퇴각하는 미국해군에 연료를 공급하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추위 속에 떨며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영하 이십도. ‘자동차 엔진이 얼어 터지는’ 추위라고 미군들이 당시를 기록했다. 강풍 몰아치는 부두에 서서 애원하는 사람들을 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다.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태우시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한 척의 배에 구출한 인원이 만사천여 명.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큼 많은 인원이었다. 배가 항구를 출발했다. 미국 군함이 계속 포를 쏘아댔다.
  
선원들은 후일 이렇게 증언한다. “해변에 있던 군인들은 떠나고 해변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사라졌죠. 그리고 나중에 항구 자체가 사라졌어요.”
 
선장은 전쟁이 끝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47년간 수도원에서 베네딕도회 수도자로서 살다가, 2001년 10월 14일 생을 마쳤다. 공지영 소설 <수도원 기행2>에 나오는 얘기다. 
 
배를 탄 사람은 살아남았다. 허허벌판에 내던져졌지만 산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던 한이 맺혀 가슴에 멍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은 소주잔을 앞에 놓고 노래로 상처를 쓰다듬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질 때 /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 그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덕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세월을 살아온 지 어언 70년이다. 
 
저 작은 섬 ‘대진도’가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았던 증인이다. 혼자 옛일을 상상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김 참사가 불쑥 한 마디 한다. “저기 저 흥남부두는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완전 쑥밭이 되었디요.”
 
쑥대밭이 되었다, 는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랬구나. 배가 떠난 다음,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사람이 쑥밭 위에 별이 되었겠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이 땅을 일으켜 세웠구나.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를 서로 다독이면서 오늘에 이르렀구나... 마음이 착잡했다.
 
전쟁은 남과 북 모두에게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도 툭 하면 ‘전쟁을 불사해야한다’는 말이 들린다.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곧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흥남부두 전경1. [사진제공-정찬열]

 

   
▲ 흥남부두 전경2. [사진제공-정찬열]

 

   
▲ 흥남부두 전경3. [사진제공-정찬열]

 
비날론(Vinalon) 생산공장 방문, 리승기 박사를 만나다

차를 돌려 ‘2.8비날론 연합기업소’로 향한다. 비날론(Vinalon) 생산공장이라고 했다. 석탄에서 섬유를 비롯한 소금, 식초, 물감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란다.
 
경지면적이 넓지 못하고 목화가 잘 되지 않는 북한에서 인민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다. 북한에 거의 무진장 있는 석회석을 원료로 섬유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었다. 전남 담양 출신인 당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리승기(1905년-1996년) 박사가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1950년 10월, 전쟁 중 김일성은 그를 평양으로 모셔왔다. 안전을 위해 달구지로 산길을 따라 모셔왔다고 한다. 50년대에 ‘비날론’이라는 섬유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공장에 도착. 안내원이 안내를 시작한다. 1957년 첫 비날론을 생산했고, 비날론 생산공장이 여러 곳인데 이곳은 그 중 하나라고 했다. ‘2.8’이라는 이름은 2.8군대가 지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가 짧은 기간에 현대적으로 꾸려지고 비날론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원자탄을 폭발시킨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며 온 나라의 대경사입니다.”

김정일 어록이 벽에 붙어있다. 안내원이 그동안의 과정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솜과 섬유, 소금, 간장, 식초, 물감, 가성소다, 염산, 카바이트, 초산 등, 최고 500가지 정도인데 지금은 170여 가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석회석과 무연탄을 전기분해하여 생산물을 얻어낸다고 했다. 하루에 석탄 600톤이 필요하다고 한다.
 
“강성국가 건설에서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등의 글이 벽에 걸려있다.
 
과학자 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가, 한 인재(人材)가 인류를 위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 를 공장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비날론을 생산하는 공장은 이곳 2.8연합기업소와 함께 남흥청년련합기업소, 승리화합련합기업소 등 5곳이라고 했다.  
 
리승기 박사는 비날론의 발명으로 1961년에 공산주의권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을 수상했다.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정치 체제는 다르지만 이런 분은 널리 알려 민족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 2.8비날론 공장에서 안내원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비날론 제품들1. [사진제공-정찬열]

 

   
▲ 비날론 제품들2. [사진제공-정찬열]

 

   
▲ 비날론 제품들3. [사진제공-정찬열]

 

   
▲ 비날론 공장 내부. [사진제공-정찬열]


함흥냉면 원조 신흥관에서 점심을 먹다 

다시 함흥에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신흥관으로 갔다. 손님이 꽤 많다. 2층으로 안내를 한다. 함흥냉면 원조집이 아니던가. 함흥냉면을 주문했다. 감자지짐, 찰떡, 빵, 감자송편, 물만두 등이 차례로 나온다. 그리고 회냉면이 나왔다.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맛이 깊다. 면발은 쫄깃쫄깃한데 도마도와 오이 씹히는 맛이 어울려 입안에서 시원하게 사근거린다. 안내원이 평양냉면은 메밀을 쓰지만 함흥냉면은 감자 녹마국수라고 설명한다. 자르지 않고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외지에서 온 사람인 것을 담박 알아본다. 
 
후식으로 가재미 식혜가 나온 다음 아이스크림을 내온다. 아이스크림을 찹쌀과 계란 버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 그릇에 육수가 좀 남아있는 것을 본 안내원이 “육수를 다 드셔야 합네다” 웃으며 얘기한다.
 
점심을 먹고 밖에 나오니 한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겠냐고 묻는다. 샘플 사진을 걸어두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는 사람이다. 삼륜차가 지나간다. 바퀴가 셋 달린 작은 트럭이다. ‘릉라도’라고 옆에 써 있다. 무슨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 회냉면. [사진제공-정찬열]

 

   
▲ 신흥관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 [사진제공-정찬열]

 

   
▲ 삼륜차가 지나간다. 바퀴가 셋 달린 작은 트럭이다. [사진제공-정찬열]

 

   
▲ 신흥관 전경. [사진제공-정찬열]

 

울림폭포 가는 길

마식령 스키장을 향해서 출발. 오늘은 그곳에서 머무를 예정이다. 가는 도중에 울림폭포를 들려가자고 한다. 어제 올라왔던 원산 쪽 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운전사 방 동무가 신흥관 냉면 얘기를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빵두 두지, 물만두 나오디, 이것들이 시키디도 않았는데 자꾸 음식이 나와 맛있는 음식을 쓰게 먹었단 말입네다.” “자꾸 나와 야단났다, 그러니 아이스크림이 쓰지 않겠냔 말입네다.” 값이 비싸게 나올까 걱정이 되어 음식맛을 제대로 모르고 먹었다는 얘기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간다. 송아지가 따라가는 걸 보니 암소인 모양이다. 함흥지방 농가도 다른 지역과 비슷한 모습이다. 가을걷이는 거의 끝나고, 지붕에는 울긋불긋 농산물들이 널려있다. 지붕에 무엇을 말리는 모습은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전망 좋은 곳에서 잠시 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야산을 개간하여 밭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황토밭인데 홍수가 나면 대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뒷좌석에 앉아 옆 풍경을 보면서 언덕길을 내려간다. 거의 4면이 깊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움푹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20여 채 되어 보이는 작은 동네다. 지붕 위에 옥수수를 말리고 있는 노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차를 잠깐 세워 사진을 찍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 그새 자동차가 언덕을 꽤 내려 와 버렸기에 그냥 지나쳤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고두고 아쉬운 풍경이 되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길가에서 상자 위에 감을 얹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감이 많이 나는 지역인 모양이다. 저런 모습은 남쪽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원산 가는 길에서 울림폭포 쪽으로 차가 방향을 튼다. 산속 오지 길이다. 시멘트 길인데 포장한 지 오래지 않아 보인다. 김 참사에게 물으니 군인들이 이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참을 가도 사람이나 차가 보이지 않더니,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무거운 자루를 지게에 지고 찻길을 따라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식량인 모양이다. 이 높은 언덕을 저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이 된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면 눈 빠지게 기다리던 아내가 밥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저녁, 온 식구가 밥상에 빙 둘러 앉아 김나는 밥을 맛나게 먹고 있을, 한 가난한 농가의 저녁 식사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울림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울림명승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분 걸어 올라가니 폭포가 보인다. 함께 걸어가던 운전사 방 동무가 한마디 한다.
 
“이 꼬락쟁이 폭포는 나무하러 오는 사람이나 알았지 뭐, 이제는 평양에서도 우야 온단 말입네다.”  
 
김 참사에게 ‘우야’란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우정, 혹은 일부러 라는 뜻이라고 한다.
 
방 동무 말처럼 이 폭포는 하도 깊은 산속이라 나무꾼이나 알고 있던 곳인데, 2001년 정부에서 관광지로 개발하여 오픈한 폭포라고 한다. 강원도 천내군과 법동군 사이에 있다.
 
울림폭포에 도달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물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요란한 폭포 소리가 산을 울리고 있다. 높이가 75m라고 한다.
  
젊은 남자 둘이 가까이 오더니, 그 중 한 사람이 품속에서 산삼을 꺼내 보여준다. 50년생 진짜 산삼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려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뿌리를 라이터로 태워보면 알 수 있습네다. 진짜는 타지 않습네다.” 옆에 서 있는 다른 젊은이가 거든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끼로 싸여있는 삼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한 뿌리니 80달러 정도면 드리겠다고 해서, 북한 방문 기념으로 사볼까 싶은데 옆에 서있던 김 참사가 시간이 없다고 내려가기를 재촉한다. 사지 말라는 신호로 이해했다. 

   
▲ 울림폭포, 75m라고 한다. [사진제공-정찬열]


마식령 스키장, 삭도를 타고 대화봉 오르다
 
다시 차에 올랐다. 첩첩산중이다. 갈지(之) 자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자 제법 평평한 들판이 나온다.
 
남정네 두 사람이 냇물을 따라가며 바위를 들춰 고기를 잡고 있다. 망치로 바위를 때려 고기를 기절시켜 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나무 매나 망치로 물에 잠긴 바위를 꽝 내리친 다음 가만히 바위를 들추면 그 아래 숨어있던 기절한 고기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냇물을 따라 크고 작은 바위를 더듬다 보면 한 냄비 분량의 민물고기가 금시 잡혔다. 붕어, 피라미, 메기, 뱀장어 같은 고기들로 매운탕을 끓여 소주 한 잔 마시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60대가 넘는 농촌 출신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짧은 섶 다리가 보인다. 섶 다리는 Y자형 나무로 다릿발을 세우고, 위에 솔가지 등을 깔고 흙을 덮어 만든 임시다리를 말한다. 옛날에는 남쪽에서도 냇물이 흐르는 곳이면 섶 다리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남이나 북이나 살아가는 방법이 저렇게 비슷하다.
  
평양-원산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10여분 후에 마식령 스키장이 나온다. 3시 30분 경 스키장 도착. 호텔이 꽤 크다. 전체객실이 130개라고 한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리프트를 타고 꼭대기 대화봉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리프트를 삭도라고 한단다. 삭도 타는 값은 1인당 7달러, 스키복은 물론 장비 일체를 빌려서 스키를 할 수 있다. 하루 렌탈 비용이 35달러이다. 김 참사와 방 동무랑 셋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스키시즌은 아니지만 관광객을 위해 꼭대기까지 리프트를 운행한다고 했다. 바람이 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병사 세 명이 스키장 가상자리 허물어진 부분을 고치고 있다. 군인들이 관리를 맡아하는 모양이다.
 
대화봉까지 올라왔다. 1,364미터 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산 넘어 산, 첩첩이 산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다. 안내판에 제1 주로가 5,093미터라고 적혀있다.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서 잠깐 밖을 둘러 본 다음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지만 간단한 음료와 먹거리를 팔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따끈한 커피가 그만이다. 춥다고 하니 종업원 아가씨가 평일에도 봉우리에 구름 낀 날이 많다고, 날이 맑으면 동해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날이 저문다. 내려가려고 리프트를 탔다. 공사하러 올라왔던 남자 직원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막 출발했는데 리프트가 선다. 정전이 된 모양이다.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단다. 사방은 어두워지고 바람 소리가 무섭다. 이렇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밤을 새우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난다. 스키장은 특별관리 지역이라 정전 되는 일이 드문데 오늘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남자 직원이 자기 잘못이라도 된 양 미안해한다. 몸을 웅크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15분쯤 지났을까.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국 스키장에서도 리프트를 타고 가던 중 정지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스키어가 리프트를 타고 내릴 때 넘어지거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스키 초짜들이 타는 리프트는 멈추는 횟수가 더 많다. 오늘 일 또한 그런 종류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깜깜한 어둠 속을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남자 직원은 산 아래 마을에서 산다고 했다. 매일 스키장에 출근 하는데 내려서 집에까지 걸어간다고 한다. 옷이 좀 얇아 보인다.
 
호텔에 들어왔다. 방 동무가 추워서 혼났다며 몸을 떤다. 김 참사는 내게 있던 여분의 잠바를 주었지만, 방 동무는 옷을 가볍게 입었으니 많이 추웠을 성싶다.  
 
저녁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방 동무가 처갓집에서 가져온 술을 꺼낸다. 삼지구엽초 술이란다. 향기가 좋다. 술이 얼큰해지고 피차에 말이 많아진다. 방 동무가 한 마디 한다. “두 벌 자식, 세 벌 자식까지는 어려운 게 아니겠습네까. 세 살 반짜리 손자가 증조할머니에게는 안 간단 말입네다.”

증손자를 안고 싶은 할머니의 뜻과는 달리 아이가 증조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도 3대가 함께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이냐며 노상 처갓집 자랑이다.
 
호텔은 1,2,3,등급으로 구분하여 요금을 받는다고 한다. 1등실은 $280, 2등실 $190, 3등실 $145란다. 4등실은 없냐고 물었더니 종업원이 웃는다. 3등급 방으로 정했다. 금강산에서 이용했던 호텔과 비슷한 수준이다.
 
룸에 들어와 보니 비교적 잘 꾸며놓았다. 필요한 게 없으시냐며 종업원이 다녀간다. 두 명이 함께 움직인다. 평양 호텔에서도 보았던 모습이다. 두 명이 함께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싶다.
 
김 참사가 침대에 벌렁 눕는데 좀 삐걱거린다. 이 모습을 보고 방 동무가 한 마디 한다.  “이거 신혼부부에게 되겠나. 늙은이들이야 뭐 흐물흐물하다가 말겠디만.” 그러자 김 참사가 대꾸를 한다. “아, 늙은이도 늙은이 나름 아이겠나요.”
 
바람을 쐴 겸 아래층에 내려갔다. 프론트에 종업원이 혼자 앉아있다. 이 스키장은 지난해 5월 중순 공사 착수하여 12월 29일 개장했다고 한다. 지난 해 몇 명이나 다녀 갔냐고 물었더니, 통계가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작년에는 장군님께서 조선에 와 있는 외국인들 수백 명이 무료로 스키를 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다고 얘기한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며 작년에는 10월 15일에 20센티 눈이 내렸단다. 금년에는 첫 눈이 내리면 눈포를 쏘아서라도 바로 개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  마식령 스키장 입구. [사진제공-정찬열]

 

   
 ▲ 마식령 호텔. [사진제공-정찬열]

 

   
▲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7달러다. [사진제공-정찬열]

 

   
▲ 스키장 전경. [사진제공-정찬열]

 

   
▲ 대화봉에서 내려다본 스키장 전경. [사진제공-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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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을래?”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 커질 것

이철희 “내년 총선, 샅바 싸움 능한 ‘여왕의 선거’ 될 것”

등록 :2015-12-23 15:39수정 :2015-12-24 10:29

 

 

[한겨레21]
진영 대결로 가면 박 대통령 전략에 말리는 것
야권 분열은 안철수-문재인의 ‘쌍방과실’
“다 죽을래?”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 커질 것
이철희 두문정치전략 연구소 소장이 12월 18일 국회 앞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 연구소 소장이 12월 18일 국회 앞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야권이 분열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안철수 세력, 국민회의(천정배 신당) 등으로 쪼개져 내년 4월 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 정당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야권 지지층은 분화된 야당의 현재 모습에서 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야권의 위기는 여당의 독주를 부를 수 있다. 독주가 지나치면 우리의 삶을 정치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떨어뜨린다. 야권의 위기는 야권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최근 펴낸 책 <이철희의 정치 썰전>에서 “고통보다 불안이 더 큰 위협이다. 새누리당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불안하게 한다”고 적었다. “(새정치연합은) 부정에는 능하나 (이렇게 가야 한다는) 긍정의 자기 어젠다가 없다”고 진단했다. 요즘 가장 대중적인 정치논객으로 평가받는 그를 12월18일 만났다. 야권의 상황과 내년 정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야당 바로세우기’에 관심이 깊은 그는 <7인의 충고, 이철희가 따져본 진보 집권 전략>이란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최근 제1야당 내부의 논쟁이 “혁신 대 수구”로 전환하지 못하고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에 머문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분화된 야권, 연대 없으면 필패 ‘문재인-안철수 갈등’이 안 의원의 탈당으로 이어졌다. 누구의 책임이 크다고 보나. 쌍방과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말한 대로, 두 사람이 갈라설 정도로 생각이 다르지 않다. 2012년 대선에서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의 대상이었다는 건 정치철학이 다르지 않다는 거다. 똑같이 혁신을 외치다 갈라서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사람들에게 ‘안 의원이 왜 탈당했을까’를 물으면 선명한 기치와 명분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문 대표가 왜 안 의원을 잡지 못했을까’를 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라서지 않아도 될 이유로 갈라섰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무협지에 나오는 말처럼 ‘양패구상’(서로 패하여 상처를 입음)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지지율이 떨어져야 자신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제로섬’이 아니라 같이 상승하고 같이 떨어지는 관계다. 너무 일찍 서로를 경쟁 구도로 인식했다. 판을 잘못 읽었다. 이 소장은 제1야당의 위기 돌파의 해법으로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이 손을 잡는 ‘문·안·박 혁신연대(동맹)’를 일찌감치 주장했다. 문 대표가 ‘문·안·박 연대’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게 있었으나 권력을 나누자고 했으니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안 의원이 이걸 받았다면 새정치연합 내부 논쟁이 ‘주류 대 비주류’가 아니라 ‘혁신 대 수구’로 바뀌었을 것이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의 분열에서 보듯 야권의 대권 주자가 분열하면 야당이 패배했다. 내가 ‘문·안·박’을 주장한 것은 야권이 이기려면 대권 주자가 분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구도에선 세 사람(문·안·박) 중 누가 (단일) 후보로 나서도 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문·안·박이 판을 바꾸고 야권 지지층을 넓혀 야권이 집권 가능한 세력이란 신뢰를 주면 세 사람 중 누가 출마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 세 사람이 경쟁을 (야권 지지층을 넓힌) 그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새정치연합 내부의 낡은 질서는 두껍고 강고하다. 세 사람은 이런 기존 질서에서 자유롭다. 제1야당의 기성 질서를 이루는 그룹에는 대선 주자도 마땅히 없다. 세 사람이 혁신연대를 맺어 기성 질서와의 대충돌을 만들면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안 의원이 ‘문·안·박 혁신연대’를 거부한 건 실책이다. 문 대표에 대한 지나친 경쟁 심리와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가 자신을 주저앉혔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문·안·박 혁신연대가 좌절된 건 두고두고 후회될 만한 일이다. 문 대표도 당의 권력을 쥔 대표이니 더 많은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정치력과 포용적 리더십의 부족이란 한계를 보여줬다. 안 의원의 세력화를 두고,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를 흡수해 야권을 ‘확장’할 수 있다는 평가와 ‘야권 분열’이란 시각이 엇갈린다. 창당이 쉽지는 않을 거다.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참패하면 (분열이란)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안 의원이 조직에 묻힐 때보다 개인으로 움직일 때 더 빛났던 것 같다. 안 의원이 (세력화를 진행하면서) 새누리당 일부 지지층을 흡수해 야권의 마켓셰어(야권 지지층의 범위)를 넓힌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기존 야권 지지층까지 포괄해 모두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분화된 야권은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2012년 대선 단일화에서 보듯 ‘1(문재인)+1(안철수)=2’가 아니다. 1.5 정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이 갈등을 겪어서 이제 ‘1+1=2’가 되기 더 힘들어졌다. 지금은 선거 전의 통합보다 야권 연대밖에 없다. 문 대표는 문 대표대로, 안 의원은 안 의원대로 각자 지지층을 넓힌 뒤 그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해선 연대가 최상의 방법이다. 선거 직전 연대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여권에서도 그 점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어디를 봐도 소수파와 진보세력이 집권하려면 연대·연합은 필수다. 연합 없이 독자 집권을 하지 못한다. 연합은 유용한 것이다. 물론 연대를 위한 명분을 유권자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여당은 (제1야당이 종북세력과 연대했다는) 종북숙주론을 들고나와 야권 연대를 공격했는데, 야당이 대응을 잘하지 못했다. 부끄러워하며 소극적으로 연대했다. 단호하게 맞서야 했다. 야권이 담론정치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연대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분열해서) 다 죽을래?’라는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가 심해질 것이다. ‘대안야당’과 ‘선명야당’은 같은 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2월13일 탈당을 만류하기 위해 안철수 의원의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2월13일 탈당을 만류하기 위해 안철수 의원의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당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문 대표의 혁신이 동의를 얻으려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자기 세력부터 쳐내야 한다. ‘친노 세력’의 물갈이부터 시동을 걸어야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다. (문 대표 쪽의) 일부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약하다. 자진 사퇴이든, 문 대표가 용퇴를 시키든 2선 후퇴 또는 백의종군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천 학살을 걱정하며 문 대표를 압박하는 비주류의 명분이 없어진다. 혁신을 기조로 삼아 기존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을)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나중에 공천 탈락자가 당을 나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내부 갈등 때문에 당을 나가도록 관리하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총선에서 이기는) 혁신으로 가려면 ‘어젠다 세팅’이 중요하다. <이철희의 정치 썰전>을 보면, ‘반사이익에 기대는 반대 노선’이 야당을 2등으로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박살이 난 야권이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로 부활한 것은 ‘무상급식’이란 의제가 먹혀서다. 2012년 총선에선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쟁점화했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정치·도덕적 이슈는 메인이 아니라 보조다. 먹고사는 문제, 즉 사회·경제 프레임으로 선거 쟁점(구도)을 전환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처럼 어려운 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슈로 끌고 가야 한다. ‘이걸 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진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선명야당’과 ‘대안야당’은 같은 말이다. (여당에 대비되는) 대안을 주면 야당이 선명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매주 국회와 야당을 공격하고 있다. 왜일까? 정부의 성과가 없어서다. 경제는 0점에 가깝다. 경제는 집권세력의 가장 약한 고리다. 집권여당은 경제문제가 쟁점화하면 안 되니 국회와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왜 선거의 여왕일까? 야권에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어주지 않거나, 여당에 덜 나쁜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선거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만들어지는 ‘프레임 싸움’이다. 씨름으로 치면 박 대통령이 바로 그 샅바 싸움을 잘한다. 여기에 말리면 안 된다. 정치가 보통 사람의 무기가 돼야 이 소장은 “실력은 없고 진영(대결)만 남는 진보는 최악”이라고도 지적했다. 진영 대결로 가는 것은 박 대통령의 전략에 말리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집권 3년간 경제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다수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찬반’으로 가면 반대가 줄어들 것이다. 보수·영남이란 두 개의 큰 덩치가 박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어서다. 이 두 덩치는 투표율도 높다. 총선이 있는 내년 정국을 어떻게 예상하나. 박 대통령은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 총선 때 적극 개입해 ‘박근혜 선거’로 치르려 할 것이다. 만약 여당이 개헌이 가능한 의석(180석 이상)을 얻으면 정권 연장을 위해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교·국방을 대표하고, 집권당에서 배출되는 총리가 일반 행정을 맡음)나 의원내각제(집권당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총리 배출)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에서 강력한 대권 주자가 있으면 (대통령제를 버리는) 개헌을 반대하겠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1위를 달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필승 카드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여당이 총선에서 완승하지 못한다면 선거법 위반 수사 등 사정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정치 지형의 변화를 봐야 한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중도를 포괄하는 제3세력의 공간을 확보하면 새누리당에서 유승민을 배제하기 어렵다. 유 전 원내대표가 그쪽(안철수)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분열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많다. 정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정치가 여의도와 국회에 박제돼 있다. 정치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변혁적 힘을 갖고 있다. 복지국가도 정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통해 사회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열망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정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진보가 유능해져야 한다. 진보가 기성 질서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가진 자의 무기가 되고 있다. 정치가 보통 사람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21> 바로가기 [관련 영상] 연대와 분립, 야권경쟁 막 올랐다/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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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위기를 부른다

 

[주간 프레시안 뷰] 2016년 경제 전망

 

우왕좌왕 알리바이 만들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말씀입니다.

"공급 과잉으로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업종을 사전에 구조 조정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대량 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내년(2016년)도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쉽지 않은 상황 (…) 내년 초반에 일시적인 내수 정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총선 일정으로 기업 투자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나흘 전인 10일, 최경환 부총리는 송년 기자 간담회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이 위기에 선방하고 있다. 대내외 여건을 다 짚어 봐도 (IMF 사태와 같은 위기는) 전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큰 위기"와 "대량 실업"을 얘기하고 경제부총리는 "전혀 아니"라고 합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박 대통령은 18일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과의 오찬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 경제의 회복 지연으로 내년도 경제 여건도 쉽지 않다. (…) 따라서 "[위의 7개 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서, 내년의 각종 악재들을 이겨내기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요즘은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 위기의 조짐이 있지만 이미 발표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만 제대로 실행되면 각종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텐데(서비스 시장 규제 완화와 기업 인수 합병을 간편화하기 위한 "경제 활성화 2법", 그리고 일반 해고의 자유와 비정규직 확대를 목표로 하는 "노동 개혁 5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겁니다. 3권 분립을 무시하고 정무수석을 보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하라고 을러대기까지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대통령과 부총리는 국회가 법만 제대로 통과시켜 주면 위기를 막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위기가 온다고 국회를 협박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원샷법"과 일반 해고 자유가 "선제적 구조 조정의 무기"입니다. 이들은 내년에 경제 위기가 온다면 그건 국회 책임이라고 열심히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김무성 대표 이하 새누리당의 '박근혜 키드'들이 날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라도 내년 초에 경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면 그건 야당 때문이라고 선전하려는 거죠. 요즘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원인을 1996년 노동 악법이나 금융 개혁안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는데요, 히틀러의 괴벨스가 한국에 다시 태어난 게 틀림없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과연 그런지 내년도 경제 전망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지난 16일에 관계 부처 합동의 이름으로 발표한 '2016년 경제 정책 방향'의 부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성과 구체화"입니다.

이 정부의 "경제 혁신"은 "구조 개혁" 또는 "구조 조정"에 다름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가 구제 금융의 대가로 요구했던 대내외 평가 절하가 바로 그것이다, 자국 통화의 절하(외부 평가 절하) 그리고 임금 인하, 기업 구조 조정, 긴축 정책을 통한 내부 평가 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 등. 요즘 대통령이 입에 달고 다니는 "선제적 구조 개혁"이 바로 그겁니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1999년엔 두 자릿수 수출 증가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메커니즘에 의한 경제 회복은 이번에도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수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한다는 건 확률 0라고 봐야 할 테니까요.
 

▲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5-2016 경제 전망> 65쪽. ⓒ기획재정부


16일에 '정책 방향'과 함께 공개된 <2016년 경제 전망>을 보면 내년 수출 증가율을 2.1%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위 표에서 보듯이 지난 세 분기 동안 수출 증가율은 –3.0%, -7.2%, -9.5%로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그 폭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수출이 2.1% 증가로 뒤바뀔 수 있을까요?

정부는 세계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무역량도 늘 것이라는 IMF의 전망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지만, '완만한 회복'은 지난 5년 동안 매년 되풀이 된 얘기고 실적치는 매년 1%포인트 가량 낮았습니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률(한국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이 극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없고, 미국이나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 증가율이 현재의 추세대로 –10% 정도라면 국내 총생산이 5%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수입 증가율이 더 많이 떨어져서 대외 부문에서는 흑자가 날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제조업 경기가 극히 나쁠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정부는 매년 소비가 3% 정도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고 실적치는 언제나 1% 포인트 이상 낮았습니다. 그래서 경제 성장률 전망도 약 0.5% 정도 틀렸죠. 다행히 금년에는 2.4%로 낮춰 잡았습니다만 위 표를 보면 매 분기 민간 소비 증가율은 1% 후반대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림 1] 가계 부채 규모 및 증가율. 한국은행이 펴낸 <금융 안정 보고서>(2015년) 23쪽. ⓒ한국은행


[그림 1]에서 보듯이 가계 부채는 최경환 부총리 재임 1년 6개월여 동안 급증해서 지금은 약 1200조 원에 달할 겁니다. 최 부총리가 "선방"했다고 자화자찬한 바로 그 정책의 결과입니다. 부동산 공급을 늘리면서 동시에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유일한 방법이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저금리였으니까요. (☞관련 자료 : 금융 안정 보고서(2015년))
 

▲ [그림 2] 처분 가능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 처분 가능 소득 증가율, 가계 부채 증가율. 한국은행이 펴낸 <금융 안정 보고서>(2015년) 25쪽. ⓒ한국은행


그 결과 가계가 뜻대로 쓸 수 있는 '처분 가능 소득' 대비 부채는 143%(3/4분기 기준)에 이르렀고, 처분 가능 소득 증가율은 4.3%인데 가계 부채 증가율은 10.4%로 두 배가 넘기 때문에 이 부채 비율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 [그림 3] 처분 가능 소득 대비 부채 상환 지출 비율(왼쪽)과 가계 지출 증가율(오른쪽). 한국은행이 펴낸 <금융 안정 보고서>(2015년) 27쪽. ⓒ한국은행


이제 가계는 처분 가능 소득 중 무려 41.4%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고([그림 3] 왼쪽 막대 그래프), 급기야 가계 지출 증가율은 –0.5%를 기록했습니다([그림 3] 오른쪽 그림 푸른 선). 즉 정부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소비는 기껏해야 제 자리 걸음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여기서 1% 가량 성장률을 부풀린 겁니다.

정부의 전망에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린 항목은 투자 부문(건설 투자와 설비 투자)입니다. 건설은 정부의 정책 의지에 따라 증가할 수 있는데 SOC 예산을 10.4% 증가시켰고 주택 쪽 건설이 여전히 활황을 보일 거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 [그림 4] 건설 투자 추이.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5-2016 경제 전망> 7쪽. ⓒ기획재정부


[그 림 4] 오른쪽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과연 건물 건설은 증가세입니다. 하지만 현재 가계 상태에서 주택 공급이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018년부터는 자산을 축적하는 인구보다 줄이는 고령 인구가 더 늘어난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정부는 내년 건설투자를 현재 전망 이상으로 늘릴 겁니다.
 

▲ [그림 5] 설비 투자 추이.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5-2016 경제 전망> 6쪽. ⓒ기획재정부


기 업의 설비 투자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항목입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대로 동물적 본능으로 결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림 5]에서 보듯이 2014년 이래 설비 투자는 전년 동기비 5% 가량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푸른 선).

하지만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데 기업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할까요? [그림 6]은 부정적인 대답을 하도록 만듭니다.
 

▲ [그림 6] 제조업 재고율과 가동률(왼쪽), 설비 투자와 수출 증가율(오른쪽). <동향과전망> 2015년 10월호에 실린 표를 가져왔다. ⓒ우리금융연구소


[그 림 6]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기업의 평균 가동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재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비 투자를 늘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수출과 설비 투자 증가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2014년 말부터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결국 정부의 내년 경제 전망 3.1%는 매년 그랬듯이 또 하향 수정될 겁니다. 수출과 소비, 그리고 설비 투자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 또는 총선용 조작이 이런 수치를 만들어 냈다고 봐야겠죠. 특별한 내외부 쇼크가 없다 해도 내년 경제 성장률은 1% 후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돼도 "경제 위기"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새로 임명된 유일호 부총리 역시 최경환호의 경제 정책, 즉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계속 밀어 붙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이들의 뜻대로 "선제적 구조 조정"이 일어나면, 위기를 맞지 않은 기업도 모두 정리 해고에 돌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두산인프라코어나 삼성의 예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은 지금 "7법" 없이도 대량 해고에 나서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구조 조정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건, 그로 인해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때뿐입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이 이뤄진다면 내수마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당연히 투자도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됩니다. 즉 바로 대통령 때문에 내년에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수 확대형 사회적 대타협"이지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아닙니다. 금년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부동산 경기 부양도 내년엔 오직 건설 부문의 과잉 투자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다시 승리한다면 우리 경제는 앞으로 10년쯤 더 침체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런 소식을 전해 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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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15층 높이 태극기를 설치해야 애국자?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병도 | 2015-12-24 09:05: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보훈처가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는 문제로 서울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보훈처와 서울시는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로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보훈처가 한시적 설치에서 영구설치로 돌아서면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을 마치 매국노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동아일보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서울시가 태극기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일부 우익언론에서는 서울시의 입장이 ‘반태극기 정서’를 가진 박원순 시장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설치하는 문제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정말 박원순 시장이 매국노인지 따져보겠습니다.

①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 설치를 반대했다?
 
보훈처와 조선, 동아일보는 박원순 시장이 광화문광장에 대형태극기 설치를 반대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태극기 설치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사업과 관련해 보훈처와 업무협약도 한 게 아니겠느냐, 다만 항구적으로 광장에 뭔가 설치하는 건 조심해야 하며 한시적으로 설치하거나 이동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얘기였다” 박원순 시장.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 설치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영구설치에 대한 의견을 낸 것입니다. 영구설치는 한 마디로 태극기 설치와는 별개로 광화문광장에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입니다.

광화문광장에는 두 개의 대형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17미터, 세종대왕 동상은 6.2미터입니다. 보훈처가 설치하려는 대형태극기는 45미터로 이순신 장군 동상의 두 배가 넘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15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광장에 15층짜리 조형물이 영구적으로 설치될 때의 모습과 환경을 정확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광복70주념을 기념한다고 해서 무조건 15층짜리 조형물을 광화문광장에 설치하는 일은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광화문광장에 15층짜리 높이의 조형물이 들어서는 일은 서울시가 찬성을 한다고 해도 정부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권을 가진 지자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봐야 합니다.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제가 왜 세웠는지, 광화문광장이 어떻게 사용됐고, 그 안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단순히 태극기를 설치하는 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② 서울시는 보훈처와의 MOU 체결을 어겼다?
 
보훈 처는 태극기 설치에 대해 국가보훈처장과 서울시장이 업무협약(MOU) 체결까지 마친 사업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상시로 설치한다는 계약을 위반했다며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박승춘 보훈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명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업무 협약서’를 보면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영구적으로 설치한다는 문구는 없습니다.

2015년 6월 2일 업무협약을 맺은 보훈처는 7월 2일 박원순 시장에게 2015년 8월 15일부터 2016년 8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태극기 게양대를 운영한다고 보고했습니다. 2015년 7월 2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광장운영을 결정하는 시민 위원회)에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심의안을 제출했습니다.

보훈처는 업무협약 때도, 서울시장 보고 때도, 광장운영 심의안 제출 때도 모두 태극기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것을 서울시가 반대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광장에서 기간을 정해 행사를 하겠다고 했다가 영원히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말을 바꾸고는 왜 계약을 어겼느냐며 적반하장으로 상대방을 계약위반이라고 고소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③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지 못한 이유는 보훈처 때문
 
광화문광장에는 태극기 게양대가 설치되지 못했습니다. 보훈처와 언론은 이 모든 것이 서울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게양대가 설치되지 못한 이유는 보훈처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보훈처는 2015년 6월 2일 광복70주년 기념사업 관련 MOU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예산은 6월 12일에서야 확정됐습니다. 보훈처는 2015년 6월 16일부터 7월 13일까지 태극기 게양대 설치, 운영계획 수립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4회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보훈처가 서울시에 태극기 게양대 심의안을 제출한 날짜는 광복절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7월 23일이었습니다.

행사가 불과 20여 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5층짜리 높이 건물의 조형물을 설치하겠다고 서류를 제출하면 누가 심의를 합니까? 만약 서울시가 졸속으로 행정을 처리하면 언론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서울시는 오히려 2017년 3월까지 태극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훨씬 기간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보훈처는 영구적으로 설치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태극기 게양대의 영구적인 설치를 무조건 받아 들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서울시는 ‘의정부’(조선시대 최고 정치기구) 터의 원형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육조대로 추정 배치도와 현재의 항공사진을 오버랩한 모습. 출처:서울시

보훈처와 언론은 서울시가 이미 추진하는 역사적 유물 발굴 사업을 태극기 게양대 설치를 위해 포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15층짜리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 설치가 역사적 가치보다 더 높게 추진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광화문광장 바로 옆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부지에 설치하면 안 됩니까?

광화문광장에 45미터짜리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해야만 애국자이고, 조선시대 역사 유물은 파손되거나 복원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도대체 어떤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대형 태극기가 애국심의 척도라고 외치는 그들이 과연 일제강점기 시절 태극기를 흔들었는지, 일왕을 향해 신사에서 참배했는지 따져보고 싶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서북청년단은 돈을 벌기 위해 태극기와 이승만 사진을 팔았습니다. 만약 태극기를 사지 않거나 행사 때 태극기를 흔들지 않으면 '빨갱이'라며 몽둥이로 팼습니다. 당시 서청과 보훈처의 주장은 너무나 흡사합니다. 태극기를 흔들고 태극기를 달아야만 애국자입니까?

여름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 아이들과 광화문광장을 걸었습니다. 서울시청 벽에 걸려있는 김구 선생이 들고 있는 태극기를 본 아이들은 ‘저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는지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들은 ‘저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태극기가 지금도 있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찢진 태극기라도 그 안에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에스더가 흥얼거리는 ‘우리나라 태극기가 좋아요’에 나오는 태극기가 꼭 45미터짜리 15층 높이의 태극기라야 애국심이 생길까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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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3일 19시 04분 수요일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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