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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백년 한(恨)’, 10억 엔으로 엿 바꿔 먹다

[논평]위안부의 ‘백년 한(恨)’, 10억 엔으로 엿 바꿔 먹다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가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 정부의 협상 실패
 
정운현 | 2015-12-29 15:27: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0년 1월 4일자 <한겨레>는 한 면을 털어서 이색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의 ‘정신대’ 원혼 서린 발자취 취재기>. 윤 교수는 이대 영문과 교수로 평양 출신이다. 첫 회 연재를 시작하면서 윤 교수는 서두에 ‘필자의 말’을 장황하게 썼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필자가 정신대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의 비참한 과거를 밝혀 보려는 데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1944년 12월 내가 이화여자전문학교 1학년 때 일제가 한반도 각지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을 마구 정신대로 끌어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많은 학생들이 서둘러 결혼하기 위해 자퇴를 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학교 당국은 “학교에서 책임지고 말하는 데 너희들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우리들은 국민 총동원령에 응한다는 서식에 지장을 찍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의 권고에 따라 학교를 자퇴해 정신대를 모면했지만 그 무렵의 내 또래의 많은 처녀들이 일제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에 일어난 이 끔찍한 일이 자칫하면 21세기에까지 이어져, 제2차 세계대전조차 들은 적이 없는 세대에게로 옮겨갈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나는 이 일만은 잊어버려서는 안 되고 역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야 한다는 믿음에서 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만일 일본이 우리나라 젊은 여성을 왜, 어떻게, 얼마나 끌고 갔으며, 무슨 짓을 했는지, 전쟁 뒤에는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도 돌아오는 사람이 없는 지를 진작 밝히고 응징했더라면 오늘날처럼 기지촌에서 또는 관광지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외화벌이에 나서는 한국의 매춘여성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와 그 밖의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우리의 여성들이 전후 연합군 위안부로 고스란히 넘어간 경우를 발견하고 이런 느낌은 더욱 절실했다.

이 글은 1980년 12월, 1988년 2월과 8월, 그리고 지난해 7월 등 네 차례에 걸쳐 일본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타이 핫차이, 파푸아뉴기니―그러니까 우리 정신대의 피눈물 자국을 따라 현지 신문 등 옛 자료를 뒤지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모아 작성한 기록이다.

‘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한국사회에선 처음으로 공론의 장에 오르게 됐다. 위안부 문제를 처음 거론한 사람은 역사학자도, 여성학자도, 정부 관료도 아닌 영문학자였다.

‘필자의 말’에서 밝힌 대로 윤정옥(91) 교수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비를 들여 해외취재를 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 기억’에다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기생관광’, 기지촌 여성 문제 등 여성 인권이 사회문제여서 접근한 측면도 없진 않다. 

<한겨레> 1990년 1월 4일자에 실린 윤정옥 교수의 위안부 취재기 첫 회 

지난 2000년 3월 1일,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앞 대로변에서 열린 제400회 ‘수요 집회’ 때 만난 윤 교수는 필자에게 “당시 내 고향 친구들 가운데도 여러 명이 정신대로 끌려갔다”며 “70이 된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우리 역사에 엄연히 있었던 일임에도 그 누구도 잘 몰랐던 역사,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역사, 그리고 감추고 싶었던 역사를 윤 교수가 어두컴컴한 지하창고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해방 55년이자 1965년 한일협정이 타결된 지 25년만의 일이었다.

윤 교수의 한겨레 연재는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언론사 기자 못지않은 현장취재와 방대한 증언 채록, 관련 사료를 총망라한 역작이었다. 역사학계, 언론계, 정부 관련부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88년 여름 취재차 찾은 삿포로에서 윤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찾아간 곳은 ‘다치마스 미사키’라는 절벽이었다. 이곳은 매춘 강요를 견디다 못해 조선인 위안부들이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어머니―, 어머니―”하고 울부짖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해방 반세기가 넘도록 위안부 문제가 등한시되고 외면돼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윤 교수는 연재 첫 회에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우리 쪽 기록이 없고, 둘째, 정신대로 나간 여성이 거의 서민층 출신인데다 남성 위주의 한국사회에서 외면당한 점, 셋째, 일본이 자신들의 죄상을 감추기 위해 관련 자료를 폐기한데다 관계자들도 증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두 번째다. 만약 역대 한국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인사의 피붙이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면 이 문제가 이토록 방치돼 왔을까. 일본의 죄악을 결코 도외시 할 순 없지만 역대 한국 정부 책임자들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2.

1965년 한일 간에 체결된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의 주된 목적은 한일 국교정상화였다. 일제 강점 35년사에 대한 과거사 청산문제는 전제조건, 즉, 선결과제였던 셈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은 1952년 2월 제1차 회담 개최를 시작으로 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체결되기까지 14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열렸다.

박정희 정권 출범 초기, 미국의 원조가 대폭 삭감되자 당시 최대 국정 현안은 민생고 해결이었다. 게다가 박 정권은 경제개발을 모토로 내걸고 있어서 거액의 자금이 필요했다. 이때 박 정권이 생각해 낸 것이 대일 청구권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를 성사시킬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자금문제는 해결이 가능할 걸로 봤던 것이다. 

박 정권으로선 행운도 없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자본이 축적돼 기업들이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 정가에서는 소위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 즉,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도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여기에 미국 또한 중공(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안보벨트를 필요로 하고 있어 한-미-일 3자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협상의 핵심은 청구권 문제였다. 박정희는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특사로 파견해 막후협상에 나섰다. 양국은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 간에 소위 ‘김-오히라 메모’를 통해 청구권 문제 해결에 전격 합의했다. 그 내용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연리 3.5%, 7년 거치 20년 상환)에 1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한일협정을 타결한 김종필-오히라 회담. 왼쪽이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문제는 청구권 금액이었다. 제2공화국 때 장면 총리가 요구한 23억 달러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로, 5분의 1정도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청구권 금액도 문제지만 어업권·문화재 반환문제 등에서 우리 측은 거의 백지위임을 하다시피 했다. 야당과 재야, 대학가가 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제2의 을사조약’이라며 연일 반대시위를 펼쳤다.

청구권 자금이 한국의 경제개발에 도움이 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일본상품 및 일본자본의 한국 진출이 급증하면서 1980년대 들어 대일무역 누적적자가 300억 달러에 달하였다. 당시 일본의 대한무역의존도가 8.3%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 일본은 제1수입국으로 의존도 40%, 제2수출국으로 의존도 20%를 차지하였다. 이로써 대일 경제예속이 심화되었고 이후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일협정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모든 과거사 문제는 불문에 부친다’고 규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인적 피해와 관련해 강제징용, 징병 등은 거론(논의)됐었으나 위안부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국이 일괄 처리키로 합의함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한일협정을 거론하며 콧방귀를 뀌곤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하나의 시금석이 된 것은 1990년 11월 16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킨 윤정옥 교수는 같은 대학의 이효재 교수와 함께 37개 여성단체가 참여한 정대협을 발족시킨 후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대협은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수요 집회’를 시작한 이래 24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이달 30일이면 1,211회가 된다.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97년 작고) 할머니의 증언이다. 김학순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시절의 참혹한 경험을 낱낱이 증언했고, 이후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 증언이 잇따랐다. 문서나 제3자의 증언이 아닌 ‘살아있는 증거물’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한일 양국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해오던 일본 정부는 표면적이나마 사죄와 반성을 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우리 정부도 ‘정신대 문제 실무대책반’을 설치했으며, 이듬해 6월에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했다.

1993년 6월 일본 정부는 2차 조사결과를 토대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이른바 ‘고노 담화’다. 이듬해 1994년에는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총리가 특별담화를 통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반성 및 사죄를 표명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이었다.

1995년 7월 일본 정부는 민간모금 형식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이 기금은 피해자들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우선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급한 배상금이 아닌데다 피해자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일시금 지급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금은 2002년에 활동을 중단하였다.

일본 내에서 사태가 급반전 된 것은 2007년 아베 정권이 출범한 때부터였다. 일본 극우세력을 정치기반으로 하는 아베 정권은 “위안부가 폭행과 협박에 의해 끌려갔다는 증거가 없다”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했다. 반면 그해 7월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의 책임 인정 및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은 일본인 2세 출신의 마이클 혼다 의원이었다.

2011년 한국에서 위안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 8월 30일 헌법재판소가 “(한국)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보름 뒤 9월 15일 한국 정부는 외교공한을 통해 일본 측에 청구권 협정상 분쟁 해결절차에 따른 양자협의 개시를 요청했다. 그간 무소신, 무대책으로 일관해왔다는 비난을 사온 한국 정부로서는 큰 변화라면 큰 변화였다.

고 김학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명이 1991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4년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일본 법원 역시 ‘가제는 게 편’이라는 식으로 번번이 일본 정부와 같은 입장에 섰다. 게다가 아베 2차 내각은 “고노담화 작성 경위를 검증하겠다(2014.2.28, 스가 관방장관).”며 퇴보에 퇴보를 거듭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외교장관은 2014년 3월 5일 열린 제25차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은 반인도적·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국제적으로 또다시 망신을 당한 일본 정부는 한 걸음 물러섰다. 급기야 아베 총리는 3월 1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후퇴했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놓고 처음 대좌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한일 국장급 협의 자리였다. 이 실무회의는 금년 12월 27일까지 총 12차에 걸쳐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진행됐다. 양국의 극우정권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더 이상 밀쳐둘 수만은 없는 막다른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8차 회담 이튿날인 지난 6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논의가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며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며 상당한 협상이 이뤄졌음을 암시했다.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2000년 3월 1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 대로변에서 열린 제400회 ‘수요집회’에 참석한 윤정옥 교수 (필자 촬영)

3.

어제(28일) 한일 양국은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타결했다. 국장급 실무협의를 시작한지 1년 8개월만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장관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이 합의한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2) 아베 총리의 사죄 표명
3) 위안부 재단 설립비용으로 10억 엔 지원 등

1, 2항은 별로 주목할 것이 못 되는 게 일본은 총리가 공식 사죄한 것도 뒤집고 무시한 사례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극우 정치인인 아베의 사죄는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눈여겨 볼 대목은 ‘재단 설립비용 10억 엔 지원’건이다. 이에 대해 기시다 외상은 “이 같은 지원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시다의 발언 속에 숨은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베 정권이 형식적으로나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미 하원은 2014년 1월 15일, 2007년의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이튿날 상원을 통과했으며, 그 다음날로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다.

현재 미일 양국은 어느 때보다도 밀월을 구가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이로써 미일 ‘신동맹 시대’가 열렸다. 최근 양국은 안보 관련 부처 핵심간부들이 참여하는 군사협의체를 설치하고 평시부터 미군과 자위대 운용을 일체화하는 등 군사동맹을 가속화하고 있다. 총리의 ‘립 서비스’와 10억 엔으로 미국에 잘 보이면서 국제적 비난을 피해갈 수 있다면 일본으로서는 거저먹다시피 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국 측 반응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윤병세 외교장관은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국 정부에게 위안부 합의는 앓던 이가 빠진 격이니 윤 장관이 반기는 건 당연하다 . 그러나 이런 행태는 참으로 무식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본 정부가 이번에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부터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처사다. 아시아여성기금 운용 사례나 과거사 사죄 발언 번복 등 지난 역사가 입증하듯이 일본은 신뢰를 담보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걸핏하면 역사왜곡과 한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의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다음은 이번 협상결과를 두고 ‘최종적 및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고 한 대목이다. 한 마디로 이는 언어도단이다. 이미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의 사례에서 보듯이 협정이나 조약은 지나고 보면 늘 미비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65년 당시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면 이 문제가 오늘에까지 이어졌을까? 항상 협상은 재논의의 여지를 남겨둬야 하며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차기 정부로 넘겼어야 했다.

이번 합의문의 결정적인 하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명쾌히 규정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언제라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피해 할머니들이 바라는 건 ‘돈’이 아니다. 이미 8, 90이 넘은 노인들이 큰돈을 쥐게 된들 뭣에 쓰겠는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이 바라는 건 진솔한, 그리고 공식적인 사죄다.

그럼에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가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 정부의 협상 실패라고 봐야 한다. 합의문 발표 후 기시다 외상은 소녀상이 이전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으로서는 소녀상이 몹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소녀상 앞에서 ‘수요 집회’를 벌이는 데다 이 소녀상을 시작으로 곳곳에 파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소녀상 하나가 일본 극우세력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런 일본 편을 들고 나섰다. 윤 장관은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한다.”며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소녀상을 이전키로 이면합의를 본 것으로 봐야 한다. ‘소녀상’은 얘기도 꺼내지 못하도록 했어야 마땅했다.

2000년 3월 1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 대로변에서 열린 제400회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필자 촬영)

양국의 합의문이 발표된 뒤 국내 언론의 논조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것 같다. ‘그 정도면 됐다’는 식이다. 평소 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언론의 ‘제3자적 입장’에서야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100년 한(恨)’을 안고 살아온 피해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또다시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에도 없는(없을?) 일본 총리의 사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10억 엔, 그럼에도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소녀상이 현 위치에서 쫓겨나야 한다니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 아니겠는가?  

나라가 없을 때는 나라가 없어서 못된 짓을 당했다고 쳐도 나라가 있고서도 그들은 한동안 제대로 된 보호나 위로를 받지 못했다. 어언 80세가 넘은 고령에다가 건강도 좋지 않다. 지난 5일 최갑순 할머니가 숨지면서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6명이 됐다. 올해만도 아홉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이 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간 해온 처사를 보면 한국 정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위안부 협상은 아베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일본은 해묵은 숙제를 단돈 10억 엔으로 ‘퉁치고’ 이로써 국제적으로도 온갖 생색을 다 내게 됐으니 말이다. 아베는 이제 조만간 ‘북일 수교’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그는 한반도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전부 매듭짓게 되는 셈인데 이를 성과로 내세워 아베가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베에게 반가운 일이 또 있다. 최근 한일 양국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문제를 놓고 한국 국방부와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한국 국방부는 한국인의 국민정서를 감안해 회담 개최 사실을 ‘쉬쉬’해오고 있다. 아베에겐 꿩 먹고 알 먹고 여기에 깃털 뽑아 모자까지 만드는 ‘1거3득’이 아니겠는가?

반면 상대국인 한국은 ‘쓰리고에 피박’까지 덤터기를 쓴 셈이다. 특히 이번 위안부 협상은 피해 할머니들의 ‘백년 한(恨)’을 10억 엔으로 엿 바꿔 먹은 것이나 다름 없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매국조약 체결에 이어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협상은 ‘제2의 한일협정’이라는 비난을 사 마땅하다. 졸속 합의로 일본에 면죄부를 준 데 대해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합의안 발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수용을 요구했다. 그간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나눔의 집’ 한번 방문한 적이 없는 마당에 이런 협상결과로 이해를 구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이해를 구할 것이 아니라 사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의안 발표 직후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정대협이나 피해 할머니들은 협상 진행과정이나 협상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된 채 당국자들끼리 앉아서 탁상공론을 한 꼴이다. 한국 측 협상 실무자가 정대협 홈페이지에 한번이라도 들어가 봤으면 이 따위 협상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정대협 7가지 요구사항>

하나,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둘, 진상규명
셋, 국회 결의 사죄
넷, 법적 배상
다섯, 역사교과서 기록
여섯,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일곱, 책임자 처벌

(사진- 한겨레)

정운현(언론인, 친일문제연구가)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62867518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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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선정 ‘2015년 한반도 10대뉴스’

통일뉴스 선정 ‘2015년 한반도 10대뉴스’8.25합의 / 류윈산 방북 / 민중총궐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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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8  18: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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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은 정초부터 남북이 정상회담 운운하면서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년간 고착화된 한반도 정세에 무언가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변화나 진전이 전무했습니다. 남과 북은 8월 초 지뢰 폭발로 촉발된 위기상황에서 ‘2+2’ 고위급 긴급접촉을 갖고 8.25합의를 이끌었으나 12월 초 후속 당국회담에서 차기 일정도 못 잡고 결렬됐습니다. 북미관계에서도 북한 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미국 측의 비핵화 합의 이행 요구로 지루하게 평행선만 그었습니다.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 때 류윈산 중국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북.중간 관계회복이 점쳐졌으나 이마저 12월 초 공연차 중국을 방문한 북한 모란봉악단 등의 돌연한 철수로 시계제로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2015년은 최악의 해였습니다. ‘빈곤한 해’를 마감하면서 통일뉴스가 ‘2015년 한반도 10대뉴스’를 선정 발표합니다. / 편집자 주

 

1. ‘8월사태’와 8.25합의 (8월 4일-25일)

   
▲ ‘2+2’ 고위급 긴급접촉에서 8.25합의를 이끈 남북 대표단.

8월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이른바 ‘8월사태’는 곧바로 대북 전단 살포 및 확성기 심리전 방송에 이어 남북 포격전으로 상승했다. 군사적 충돌이 우려될 정도였다. 이에 남과 북은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2+2’ 고위급 긴급접촉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 개최’ 등 6개항에 걸친 8.25합의를 이끌었다. 그 성과의 하나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10월 20-26일)이 진행됐다. 8.25합의의 후속 조치로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이 12월 11-12일 열렸지만, 북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한 것에 반해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만을 고수해 회담은 결렬됐다.

2. 북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와 류윈산 방북 (10월 10일)

   
▲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나란히 선 김정은-류윈산.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보도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북.중관계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급속히 냉각된 상태였으며, 더구나 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해 북의 ‘위성 발사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열병식 하루 전 회동한 김정은 제1위원장과 류윈산 상무위원은 양국이 “피로써 맺어진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10일 열병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의 주석단에 나란히 서서 열병식 행사를 지켜봤으며, 함께 박수도 치며 대화도 나눔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혈맹관계’ 복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3.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민중총궐기대회

   
▲ 1차 민중총궐기 대회.

정부가 11월 3일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확정고시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정부의 국정화 시도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당화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를 낳아 국민의 반대 여론이 거셌다. 이에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비롯한 ‘노동개악 저지’, ‘공안탄압 분쇄’,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골자로 한 1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11월 14일 10만명이 넘게 모인 가운데 광화문에서 열려 차벽을 두고 공권력과 공방을 벌였다. 이 와중에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의 직격 물대포를 맞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어 2차 민중총궐기(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12월 19일) 대회가 열렸으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12월 10일 은신 중인 조계사에서 자진출두해 경찰에 연행됐다.

4. 전쟁가능한 나라로 돌아간 일본

   
▲ 미.일 방위협력지침 확정.

올해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 아베 정권은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4월 27일 미국과 일본은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확정했다. 18년 만에 개정된 이 지침은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한 것으로 드디어 일본 재무장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맞춰 아베 정권은 9월 19일 안보 관련법 제.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전후 70년 만에 평화헌법이 붕괴돼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돌아간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동맹국 등이 공격당했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선제공격까지 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북한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과 관련 이는 북한 침략을 위한 것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5.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3월 5일)

   
▲ 피습 당한 리퍼트 미국 대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3월 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했다. 사상 초유의 주한 미 대사 피습으로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 부추겼으나 미국이 “한미관계와 무관한 단독사건”으로 규정해, 그러한 우려를 잠재웠다. 오히려 보수단체들이 그의 쾌유를 비는 부채춤과 난타 퍼포먼스 그리고 개고기 선물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며, 리퍼트 대사는 12월 18일 비공개로 열린 민화협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3월 5일 중단된 강연을 진행했다.

6. 박근혜 대통령 중국 열병식 참가 (9월 3일)

   
▲ 톈안먼 성루에 오른 박근혜-시진핑.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중국 ‘항일 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톈안먼 성루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했다. 사드 한국 배치를 비롯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미.중 남중국해 갈등 등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모처럼의 주체적인 외도(外道)는 그러나 10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미국 쪽으로 심하게 치우치는 말들을 쏟아냄으로써 변함없는 대미 종속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7.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 (10월 29일)

   
▲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

남측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방북해 북측 직총과 함께 2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0만 명의 평양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앞서 1999년 8월 평양에서 대회, 2007년에는 경상남도 창원에서의 대회에 이은 세 번째였다. 아울러 남북 노동3단체는 2016년 축구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백두산에서 노동자행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가 꽉 막힌 상태에서 이뤄진 대규모 행사라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미흡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8. 이희호 여사 방북 (8월 5일-8일)

   
▲ 평양 육아원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8월 5-8일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방북했다. 이 여사의 방북은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오랜 기간, 특히 지난해 12월 김정은 북한 제1위원장의 친서 초청을 통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남측 정부가 ‘개인적 방문’으로 선을 그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방북하는 이 여사를 만나지 않자 이 여사와 김 제1위원장과의 면담은 불발됐다. 이 여사는 귀경 후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방북에 어떠한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면서도 “6.15정신을 기렸다”고 밝혔다. 단발성으로 끝나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남북관계 개선은 멀어졌지만 그나마 6.15정신을 이은 게 성과였다.

9.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 DMZ를 넘다 (5월 24일)

   
▲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의 WCD.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5월 24일 판문점 북측 지역을 거쳐 경의선 도라산 출입경사무소(CIQ)를 통해 남측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를 진행한 것이다. 이번 WCD에는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비롯해 12개국 여성 지도자와 해외동포 평화운동가 등 30여명이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이들 ‘평화 여성’들이 DMZ를 도보로 건넌 것은 곧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는 것으로 한마디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10. 북 모란봉악단 철수 (12월 12일)

   
▲ 북한으로 철수하는 모란봉 악단.

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12월 12-1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의 공연을 앞둔 12일, 돌연 철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구나 북한 공연단의 방중은 지난 10월 류윈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기점으로 일기 시작한 관계개선 움직임을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돼, 그 무산은 아쉬움을 줬다. 북한 공연단의 철수를 둘러싸고 여러 설들이 난무하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주변 정황으로 보아 이 사건으로 양국관계가 다시 틀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중이 관계회복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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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국운이 기울고 있다"

 
[유라시아 견문] '다른 백년' : 대반전의 길을 묻다
 
이병한 역사학자 2015.12.29 10:36:14
 
 
 

 

새 역사

한 해가 저문다. 유라시아 견문 10개월 차다. 벵골만 지나 콜카타에 있다. 아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인도양 세계와 이슬람 세계로 갈 준비를 한다. 새해는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 주력할 참이다. 허나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온라인이 말썽이다. 시시각각 나라 소식이 들려온다. 國運(국운)이 기울고 있다는 방정맞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애가 탄다.

안과 밖의 낙차가 심하다. 북방의 울란바토르에서 남방의 자카르타까지 쏘다녔다. 신장의 카슈가르에서 운남의 샹그리라까지 서역도 살폈다. 동북아와 동남아를 막론하고 한국의 위상을 확인한다. 공항서부터 한국 대기업의 광고판이 휘황하고, 숙소서는 현지어로 더빙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쿤밍에서는 카페베네에서 커피를 마시고, 반둥에서는 교촌치킨에서 맥주를 마셨다. 하노이의 주부들은 '강남 스타일'에 맞추어 춤을 추고, 프놈펜의 어린이들은 하얀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배운다.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컴백한 빅뱅의 음악은 동유라시아 도처에서 흘러나왔고, 따리(大里)와 리장(麗江)의 고성(古城)까지 한글로 된 표지판이 친절하다. 마닐라의 택시 기사부터 만달레이의 식당 주인까지 'Anyonghaseyo!'라고 인사한다. 패션부터 음식까지 한류는 세계인의 일상 문화가 되었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환영받고 환대를 누린다. 대한민국은 필시 세계화의 물결을 가장 잘 탄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들어가면 갑갑하다.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여름에는 학술 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했고, 가을에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 패널로 참석했다. 둘 다 때가 공교로웠다. 전자는 메르스 사태의 말기 국면이었고, 후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의 초입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세월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어지럽고, 어리석다. 國體(국체)는 망가지고, 國魂(국혼)은 흔들린다. 光復(광복) 70주년, 공든 탑이 무너진다.

업이 업이니만큼 국정화 논란에 무심할 수가 없다. 열불이 나다가도 착잡해진다. 사학계 전체를 좌파로 몰아가는 행태가 황당하면서도, 기존의 교과서에 담겨 있는 역사 인식에는 나 또한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백 번 찬성한다. 다만 좌편향은 괴담이다. 실상은 근대 편향이다. 좌/우 공히 근대로 기울어졌다.

내 학창 시절 국정 교과서의 기조가 내재적 발전론이었다. 조선 후기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를 찾는 억지를 부렸다. 경영형 부농을 부르주아와 연결시키고, 실학을 계몽주의와 잇는 식이다. 그래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되치기를 당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기원은 명백하게 일제에 있다. 개항으로 말미암아 조선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되었고, 식민지가 됨으로써 전면화되었다. 부끄러워할 일이 전혀 아니다. 조선이, 동방이, 내발적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할 까닭이 전혀 없었다. 필연보다는 우연이었다. 교통사고 같은 것이었다. 역사도 울퉁불퉁, 돌발의 연속이다. 매끈한 진보사관은 과학이 아니다. 근대의 주술이다.

'자학 사관'도 피장파장이다. 좌/우 모두 전통 문명을 천시한다. 조선은 '중세'로 가두고, 동양은 '봉건'으로 박제한다. 전통과 근대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근대를 華(화)로 섬기고, 전통을 夷(이)로 배척한다. 古今(고금) 간 분단 체제이다. 그래서 내재적 발전론도 식민지 근대화론도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조선 후기냐, 일제 시대냐. 오십 보, 백 보이다.

고로 진보도 보수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드레프트도 뉴라이트도 서구 근대를 전범으로 삼는 도깨비 놀이를 반복한다. 교통사고를 낸 쪽을 따지기보다는 도리어 따르려고 한다. 이 도착과 당착의 기원에 개화파가 있다. 동방 문명에 무지한 새파란 선무당들이었다. 개발파와 개혁파도 개화파의 맹점을 답습했다. 산업화에 성공하고 민주화를 성취했다며 각자 뻐겨댄다.

겉으로는 앙숙이지만, 실제로는 짝꿍이다. 산업화+민주화=근대화의 대서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근대 문명의 파국이 임박한 작금의 시대정신과는 도무지 어긋나는 역사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개발파의 시대착오만큼이나, 개혁파도 구태의연하다. '근대 문학의 종언'(=독립적 개인의 성장사)에 이어 근대 사학(=독립적 국민국가의 발전사)도 종언을 고한다.

새 체제

역사 논쟁의 빈곤은 체제 논쟁의 부실로 이어진다. 한때 87년 체제냐 97년 체제냐 논쟁이 일었다. 내발론과 외인론의 사회과학적 판본이었다. 87년 체제론은 내부의 주체적 역량을 과도하게 추킨다. 민주화 세력의 자긍과 자부가 자충수를 연발한다. 반면 97년 체제론은 외부의 충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만사가 신자유주의 탓, 세계화의 덫이란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도 87년도 97년도 한국만의 현상이 아님이 자명하다. 필리핀, 태국(타이), 대만(타이완) 등이 동시적으로 '민주화'에 진입했다. 즉, 87년 체제는 예외적인 성취가 아니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이다. 그리고 딱 10년 후에 금융 위기가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다. 냉전기 개발 독재 국가들이 축적한 국부를 글로벌 자본주의가 회수해 간 것이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는 차라리 연속적이다. 민주화가 세계화로 가는 디딤돌이었다. 동아시아에 동유럽까지 보태어 유라시아를 망라하면, 냉전형 좌/우 독재를 허무는 '민주화'(=체제 이행)가 자본이 천하를 통일하는 '평평한 세계'의 전조이자 전제였음이 더욱 확연해진다.

새 천년의 역설은, 그럼에도 세계사의 축이 점점 더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에는 아시아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심장으로 약동한다. 중국(Made in China)이 앞에서 끌고, 인도(Make in India)가 뒤에서 민다. 친디아(Chindia)에 덩달아 '이슬람 자본주의'도 약진한다. 중국과 인도와 이슬람이 만나는 동남아는 이미 한 몸(ASEAN)이다. 19세기의 유럽, 20세기의 아메리카처럼, 21세기에는 아시아가 세계의 성장판이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와는 상이한 흐름이 저류에서 크게 일었던 것이다.

그 변곡점에 1992년 한-중 수교가 있다. 1987과 1997년 사이에 대륙과의 재회가 있었다. 시뻘건 '중공'이 아니라 개혁 개방 이후의 중국이었다. 그래서 세계화는 곧 미국화라는 등식도 성립하지 않았다. 한국의 세계화는 중국을 경유하는 세계화였다. 대륙을 발판삼아 세계로 나아갔다. 삼성(三星)이 글로벌 브랜드(SAMSUNG)가 된 것도, 한류가 세계인의 대중문화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래서 냉전기의 미-일 편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여야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남북 관계의 냉온탕과 무관하게 일관된 추세였다. 국지적인 정세의 변동이 아니라 역사의 대국, 대세였다. 그래서 불과 20년 만에 지난 100년의 흐름을 역전시킨 것이다. 목하 한국의 사회 구성체는 북조선 못지않게 대륙과 긴박하게 연동되어 있다.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풍경마저 바꾸어 갈 정도이다. 하여 중국론이 결여된 한국론은 더 이상 성립할 수가 없다. 87년 체제도 97년 체제도 실격이고 실기했다.

실은 분단 체제 또한 한중 수교로 크게 흔들렸다. 본디 신중국의 개입으로 성립된 체제였다. 분단 체제는 1945년(미-소 담합)이 아니라 1953년(미-중 대결)에 확립된 것이다. 53년 체제였다. 미-소의 유럽형 냉전이 아니라 미-중의 아시아형 냉전의 소산이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남-북 분단을 거부하고 장강을 돌파한 것처럼, 김일성은 한강을 건넜고, 호치민은 메콩강으로 향했다.

중일 전쟁의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길항이 국공 내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연거푸 추동했다. '항일'이 '항미'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남북 전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북-중과 한-미가 길항했다. 그중 한-중이 적대 관계를 청산했으니, 분단 체제 또한 결정적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곧바로 불거진 것이 북핵 사태이다. 문민화 대 선군 정치, 비대칭적 분단 체제의 시발이었다.

돌아보면 한중 수교는 '장기 21세기'의 출발이었다. 1894년 청일 전쟁 이후 한국은 탈중국화의 일백년을 경험했다. 식민지가 되고 분단국이 되었다. 식민지 근대화 30년, 분단국 산업화 30년, 속국 민주화 30년이 대륙과 동떨어져 진행되었다. 하여 1992년은 반도의 남쪽이 다시 대륙과 연결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00년 만에 재회한 중국은 동아시아에 자족하는 왕년의 중화제국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국제주의와 중간지대론과 삼개세계론을 경유한 유라시아 제국이었다. 한국 또한 대륙과 접맥함으로써 부지불식 유라시아와 접속한 것이다. 동아시아(론)는 그 일부였을 따름이다. 중국화와 세계화의 상호 진화로 운동하는 중국의 서북 너머까지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담론의 넓이와 깊이 자체가 분단의 소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전기 북조선 지식인들의 경험 세계는 퍽이나 달랐을 것이다. 과연 분단 체제의 길항은 갈수록 유라시아와 태평양으로 갈라지고 있다. 좌우 이념 대결에서 지리-문명(Geo-Civilization)의 길항으로 성격이 달라졌다.

새 문명

2008년 이래 세계 체제의 운명을 중국이 좌우한다. 이른바 '신상태(New Normal)'로 진입했다.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의 3분의 1이 중국에 의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 완화보다도 중국 정부의 과잉 투자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에 처했던 자본주의를 구해냈다.

양적 완화는 금융 시스템의 연명에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실물 경제를 직접적으로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실제 경제를 지탱해온 것은 중국의 투자였다. 자국의 인프라 정비와 주택 건설 등에 재정을 쏟아 붓고, 원자재와 에너지도 왕성하게 수입했다. 그래서 중국이 부진하면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글로벌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단기 처방이다. 오래갈 수 없는 임기응변이었다. 작년(2014년)부터 폐해가 도드라졌다. 거품이 푹 꺼지고 있다. 올 여름에는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 주시할 대목은 당국이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방치했다. 올해부터 투자 증가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대신 '신상태'라는 언설을 널리 유포했다. 중국도, 세계도, 고도성장의 시대는 지나갔다. 향후 저성장 시대가 오래 지속될 것이다. 하여 체질을 개선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신문에서 방송에서 연일, 연중, 떠들어댄다. 선전이고, 선동이다.

물론 반동파도 있기 마련이다. 인위적 경기 부양으로 거품을 재차 일으키고자 하는 관성적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반(反)부패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개혁 개방에 도취되고 성장(의 떡고물)에 중독되어 있던 공산당 상층부 유력자들을 제거해간다. 이들은 언제라도 외세(의 담론적 지원)를 등에 업고 다당제와 시민 사회로 작동하는 '민주화'를 요구할 수 있다. 시민 혁명으로 인민 혁명을 뒤엎어 권력을 시장으로 넘겨 사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동아시아와 동유럽의 '독재 정권'을 타도함으로써 각국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영토를 대폭 확장시켰던 민주화=세계화의 전략을 변주할 수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에 버금간다는 '시황제'의 '독재 권력 강화'에는 이런 측면도 있다 하겠다. 세계 체제의 전체 판세를 살피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민주주의' 타령만 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내부 단속과 척결의 반면으로, 외부로는 새 틀을 짜고 있다. 국내의 과잉 투자를 여타 신흥국으로 돌리는 중이다. '일대일로'의 발진이다. 유라시아 전체의 고정 자산(인프라) 투자를 중국이 주도해 간다. 일대일로가 각별한 점 가운데 하나는 화폐의 전환이다. 종래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달러와 유로를 조달하여 국내에 투자했다. 이제는 중국의 자금으로 세계에 투자한다. 올해 인민폐는 SDR에 편입됨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가 승인하는 기축통화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의 인민폐가 세계의 인민폐가 되어간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식민지 없는 제국'으로 군림했다. 군사 기지 연결망과 달러를 통한 금융망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다. 모든 상품과 자산과 무역 거래의 최종적 가치가 달러로 표시되었다. 탈영토적 지배 방식이고, 비가시적 제국주의였다. 그로부터 70년, 그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대안적 제도들이 속속 등장했다. 브릭스 개발 은행이 IMF와 세계은행을 대체하고, AIIB는 ADB를 대체한다. 19세기 은화에서 파운드로, 20세기 파운드에서 달러로의 이행에 견줄만한 커다란 변화가 진행 중이다.

즉 중국이 경기의 규칙을 새로 쓴다. 미국의 '재균형'에 맞불을 놓고, 맞짱을 뜨기보다는 새 길을 낸다. 미국식 체스 게임에 응대하기보다는 게임의 종목 자체를 바꾼다. 판세를 뒤엎기보다는 판 자체를 갈아버린다. 분단되고 분열된 독립국들을 '거대한 체스판'의 졸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와 각 문명을 잇고, 엮고, 묶어내는 과업에 역량을 집중한다.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는 분할 지배(Devide and Rule)와는 정반대의 접근이다. 나와 남을 가르지 않고, 내 안에 너를 품고, 네 안에 나를 심는다. 초국가적(Trans-National)이고 간주체적(Inter-Subjective)이다. 이로써 유럽과 아시아를 공간적으로 분할하고, 근대와 전근대를 시간적으로 분리했던 19세기 이래의 대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다. 대통합과 대융합, 유라시아의 대일통을 이룸으로써 자본주의 이후의 새 문명을 예비하는 것이다. 더 나은 100년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100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United Eurasia

2015년, 미래가 언뜻 지나갔다. 9월 3일 전승절, 역사적인 사진이 연출되었다. 중국, 러시아, 한국, 카자흐스탄의 정상이 나란히 섰다. 그리고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했다. 22세기의 역사가들이 21세기를 회고하며 즐겨 언급할 사진임에 분명하다. 중원과 북방과 반도와 서역이 (다시) 합류했다. 'United Eurasia'의 부상, 세기적인 사건이다.
 

ⓒ연합뉴스


지난 세기, '抗日(항일)'이 무엇이었나. '脫亞入歐(탈아입구)', 일본이 추종했던 유럽형 근대화에 대한 아시아의 집합적 저항이었다. '진보(Progress)'에 맞선 '道德(도덕)'의 항쟁이었다. 패도에 맞선 왕도의 도전이었다. 20세기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대 축이었다. 21세기에는 유라시아의 대륙주의와 고전적 문명주의가 양대 축이다. 역사의 되돌림, 문명의 되살림. 재생과 중흥이 21세기의 혁명이다.

북경(베이징)은 어느새 다시, 天下(천하)의 중심이다. 모든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베이징으로 통한다. '거대한 체스판'을 촘촘한 바둑판으로 바꾸어간다. 그러나 21세기의 중국이 19세기의 영국이나 20세기의 미국처럼 과잉 성장하고 과대 팽창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중국의 왕도에 막연한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 자체가 허약해졌기 때문이다. 영/미처럼 전일적이고 전횡적인 패권국의 부상을 예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사물을 제 자리로 돌려놓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작업을 주도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있지 싶다. 유럽은 유라시아의 서쪽 동네가 되어갈 것이다. 미국 역시 태평양 건너,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로 돌아갈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진정한 '재균형'이다.

동방의 등불

인도양의 포근한 성탄절, 첫눈처럼 청량한 소식이 들렸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파키스탄의 이슬라바마드를 깜짝 방문했다. 모스크바에서 카불을 거쳐 뉴델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샤리프 총리의 생일 잔치에 맞춤한 선물이다. 알자지라는 하루 종일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1947년 대영제국에서 독립하면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갈라섰던 두 나라이다. 그 후 두 차례나 혈전을 벌였고, 지금도 핵무기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실향민과 이산가족만 1억에 육박한다. 이 남아시아의 분단 국가들이 대화합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한 해의 끝이 훈훈하다.

이들을 아우르고 있는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SAARC) 또한 국가 간 연대에 그치지 않는다. 힌두 대국 인도와 이슬람 대국 파키스탄은 물론이요 부탄과 네팔, 스리랑카와 같은 불교 소국들도 포함하는 문명 간 연합체이다. 19세기가 연합 왕국(United Kingdoms), 20세기가 연합 중국(United States)의 전성기였다면, 21세기는 문명 연방(United Civilizations)의 전성기가 될 법하다.

도래하는 유라시아의 세기에 한반도가 부응하는 길은 20세기형 분단을 종식하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문명 연방(United Eurasia)에 남북의 국가 연합(United Korea)을 조응시키는 것이다. 북조선은 핵 보유와 세습 권력 안정으로 반등의 계기를 확보했다. 비대칭적 분단 체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적극적이다. 중원과 북방과 서역과의 협력을 통하여 나라를 재건하고 更張(경장)해 갈 것이다. 한국도 합류하여 장단을 맞추어야 하겠다. 그래서 70년이 지나도록 못다 이룬 해방과 광복도 완수해야 하겠다. 통일은 대박이고 축복일 것이다. 표류하는 한국호의 (아마도 유일한) 出路(출로)일 것이다.

이곳 콜카타에는 20세기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생가에서 <동방의 등불>을 음미해 보는 것은 각별한 체험이었다. 1894년 좌초한 東學(동학) 혁명에 감화되어 조선의 '가지 못한 길'을 아끼는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래했다. 한 자, 한 귀 소중하게 되새기며, 새해 '동방의 밝은 빛'을 다짐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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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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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결산]한국을 관통한 쟁점들: 메르스, 유승민, 안철수, 기본소득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2/29 10:31
  • 수정일
    2015/12/29 10: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5.12.28 16:35

물뚝심송 추천:10 비추천:0

 

 

 

 

 

벌써 한 해가 저문다. 올 한 해를 또 어찌 버티나 걱정하면서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모르겠다. 노화현상인가?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려니 하고 넘겨 버리고, 올 한해 여야 정치권을 관통하는 총정리를 해 보고 싶어졌다. 결단코 죽돌 부편짱이 닌자를 보내 위협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야..

 

보 통 연말에는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10대 사건 같은 것을 뽑으면서 다이제스트를 해야 제맛이긴 한데, 그런 건 다 읽어 봐야 남는 것도 없고 하니 내 맘대로 방식으로 결산을 하기로 하자. 그것은 여야를 나누고, 각각의 진영을 관통하는 흐름을 설명하는 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선정한 사건들의 시작은 바로,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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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니뭐니해도 2015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가장 큰 사건은 메르스의 유행이었다.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중의 하나인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에 의해 전염되며 전염 방식은 ‘접촉’이라고 알려져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버렸다.

 

사실 이 메르스는 21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사스(SARS)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때 우리 사회는 위기를 기적적으로 잘 피했었다. 그러나 단지 정권이 바뀌었을 뿐인데, 이번에는 호되게 당했다.

 

가 뜩이나 어렵던 경기를 지탱해주던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급감했다. 이로 인해 관련 업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 여파와 함께 때맞춰 엔저를 무기로 들이댄 일본 시장이 중국인 관광객들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지금도 회복이 안 되고 있다. 해당 업계에 종사하던 한 지인은 “차라리 메르스에 걸려 내가 죽어버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표현을 해서 친지들의 마음을 써늘하게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태였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런 내용을 그리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뭐 전염병이 조금 돌았나 보네, 마스크 쓰고 조금 조심하면 되겠네, 하는 정도의 인식을 가졌을 뿐이다.

 

그 러나 현대적인 국가에서 이런 종류의 재난이 발생하고, 그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 조직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국가의 기초체력, 즉 사회적 품질이 드러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메르스 상황으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기초 체력은 말 그대로 빈사 상태였다고 밖에 평할 수가 없다.

 

확 실히 해두자. 메르스 자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은 피해, 그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2015년 12월 6일 현재 메르스의 누적감염자는 186명, 누적 사망자는 38명이다. 물론 단 하나의 생명의 손실도 우주의 붕괴에 버금가는 피해지만 국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38명의 사망자는 그리 크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일 년에 결핵에 걸리는 환자가 35,000명이 넘고,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 가끔 유행하는 독감의 경우도 합병증까지 합쳐 2012년 통계로 2,000명이 넘는 수준이다.

 

문 제는 대처 방식이다. 사망률이 20%에 육박하는 메르스의 경우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올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또한 기존의 전염성 질환들과는 달리 새로운 종류의 질환이기 때문에 대처 방법도 그다지 잘 개발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도 위험성을 더 높이고 있다.

 

그 런 상황에 대한 이 정부의 대처 능력이 엉망이라는 것은 기타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역시 바닥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해주며 이는 우리 사회 자체가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전혀 능동적인 대처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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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탓이나 하고 말이지..

 

어 떤 사회라도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을 구성해 두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그런 대비에는 재정이 소모되고, 만약 재난이 닥치지 않는다면 그 예산은 완전히 낭비라고 볼 수 있는 것 역시 상식이다. 그러나 그런 낭비는 필수적인 낭비라는 것이다. 재정의 일정 비율은 항상 유보시켜 두어야 하며 그런 재난 대처 비용으로 소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간의 경기 불황으로 인해 누적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 정부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여유분을 채워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거 기다가 메르스 유행은 이 정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말로 하는 정치는 좀 하는데, 실무적인 행정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말이다. 정권 초기부터 장관들의 자율적인 결정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였다.

 

진 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 이 정부는 정권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인 '국무회의'를 스스로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각 부처의 장들이 모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회의 체제”여야 할 국무회의는 기자회견도 안 하는 대통령의 대언론 지시문 낭독의 자리가 되었고, 국무위원들은 “적자생존” 즉 노트에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자세로 고개를 처박고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자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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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또 적자..

 

장 관의 재량권은 하나도 없고, 모든 일은 청와대의 비서관들이 결정해서 장관을 바이패스하고 실무국장에게 직접 지시가 내려간다. 문제는 그 몇 안 되는 청와대 비서관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모든 행정 업무를 관장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안건만 관리하게 되는데 기타 각 부처의 업무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운영되어야 할 업무들은 방기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아무리 잘 만들어 두면 뭘 하겠는가? 실무 장관들이 스스로 '바지 장관'을 자처하면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어떤 시스템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이 런 문제는 이미 메르스 이전에도 벌써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바 있다. 바로 수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이다. 그 사건을 그렇게 엉터리로 처리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고도 이 정권은 배운 게 없었다는 점, 바로 그 치명적인 부분을 입증한 것이 메르스 유행이었다.

 

2015년의 가장 큰 사건이며, 동시에 이 정권의 무능이 입증된 사건이 바로 '메르스의 유행'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유승민 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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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여당의 원내대표 유승민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잘려 버리는 사건이었다.

 

좋다. 행정적으로는 무능하다고 치자. 그러면 정치적으로는 유능했는가?

 

박 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녀가 관계하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유일한 실패라면 이명박 후보와 벌였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이었고, 사실은 거기서도 애매한 패배를 겪고 승복했지만, 그리 큰 참패는 아니었던 걸로 봐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단 한 번 도전한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 않는가?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거나 그렇게 선거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인 일, 흔히 '정무'라고 부르는 업무는 잘 처리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 통령으로 일단 당선이 되면 우리 헌법에 규정된 대로 단임에 그쳐야 하며, 따라서 권력은 내리막길을 걷게 마련이다. 당무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하며, 당의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당청 간의 협의에 수완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 어 하나에 의미를 두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청당이 아니고 당청인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고, 그 취합된 의견을 집행하는 것이 행정부의 수장의 역할일 뿐이다. 우리 헌법은, 그리고 우리의 국가 체제는 대통령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 러나 박근혜 정권은 그런 룰조차 무시해 버린다. 단 한 번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집권 여당의 원내 대표를 잘라 버렸다. 말 그대로 내쫓아 버렸다. 그 이후로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은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총선에 공천이나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실 이 사건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적용된 사회에서 권력이 움직이는 그렇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널리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의미부여가 되지 못했던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이 정권은 최소한도의 의회주의에 입각하기는커녕 민주주의자들도 아닌 그런 사람들로 밝혀졌다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 정권이 스스로 정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일단 다가오는 2016년 총선에 사실상 공천권을 청와대가 쥐고 흔들려고 하는 조짐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유승민을 쫓아낸 것도 마찬가지고, 유승민을 지지하던 새누리당 내의 세력들에게 주어진 경고가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그 줄에 서 있다간 공천도 못 받게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다.

 

2016년 총선은 새누리당의 선거가 아니라 청와대의 선거가 될 것이다.

 

그저,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당이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 한마디를 하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겪게 된 대통령이 집권한 시점에서 딱 십 년이 지난 뒤, 우리는 대통령이 직접 배후 조종하는 총선을 겪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총선에서 압승을 한 뒤 개헌을 하고,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서 바지 장관을 넘어선 바지 수상을 세우고 막후에서 섭정을 하겠다는 스토리는 이미 여의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이는 실무적 무능에 비견될 만한 정치적 월권이다. 정치적 월권을 넘어선 삼권분립의 파괴이며 헌법을 초월하는 헌정파괴행위이자,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5년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집권세력은 이렇게 두 가지 사건으로 딱 정리가 된다.

 

실무적으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집권세력인 주제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하는 반헌법적 불법 집단이라는 점 말이다.

 

그런 집단이 지배하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2015년의 대한민국 되겠다.

 

 

안철수의 탈당과 야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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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정부 여당의 맥락이 그럴진대, 야권의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안철수 의원의 탈당 사건이다.

 

실 제로 대한민국 사회의 제1야당, 수권 경험이 있는 집단이자 양당제 하의 유일한 정권 반대세력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식물정당 상태로 2015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후세의 역사가들은 도대체 2015년 한 해 동안 한국사회의 야당은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는지 이해하기에 무척 애를 먹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상 정당정치가 붕괴된 상황이었고, 그 책임은 아마도 집권 세력에게 51%, 그리고 새정연에게 49%를 지워야 할 것 같다. 그게 딱 지난 대선의 지지율 아니었겠는가.

 

대 선 패배 이후로 지리멸렬하던 야당에게 벌어진 초유의 사건은 안철수의 입당이었고, 안철수의 입당보다 더 큰 사건이 바로 안철수의 탈당이었다. 이 상황은 사실상 안철수의 공이 아니다. 야당의 전반적인 상태에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노 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과 탄핵, 그리고 이어진 2004년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 과반수 달성 이후로 사실상 대한민국의 야당은 뼈대를 잃어버렸다. 그 이전까지의 야당은 삼김시대의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적 거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제왕적 총재 시스템이라는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러나 그 의사결정 구조가 붕괴한 이래, 야당은 아직 그 과거의 시스템을 대치할만한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제도 자체를 못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당헌 당규는 수시로 바뀌고 있고, 전당대회의 룰도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굳건한 룰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 내 선거에서 승리해서 당권을 잡고 나면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잘리고, 당권을 잡지 못한 쪽은 자고 일어나면 당권집단에게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당권을 잡으면 역할만 바꿔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당 대표 사퇴하라는 주장은 매우 엄중한 주장이다. 아무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당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주장을 내뱉은 사람이 탈당을 해야 할 정도로 엄중한 말이기도 하다. 정히 당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 의견을 표출할 시스템이 있기 마련이다. 정해진 절차가 있고, 정해진 룰이 있다.

 

이런 모든 원칙을 다 무시하고 서로 당권을 교대로 잡아가며 서로에게 사퇴하라는 말만 늘어놓으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모든 의원들의 관심은 차기 공천에만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쯤 되면 식물정당 이전에 미이라 정당이라고 불러야 한다. 피부와 살은 다 말라붙어 버렸고 당의 간판만 남아 버린 상황이다. 정권을 탈환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각자도생의 깃발 아래 각개약진을 하며 차기 공천만이 주 목적이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다.

 

결국 그 상황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한때 입당하자마자 바로 공동 대표에 취임했던 한 축, 지난 대선에서 양보를 주고 받았던 강력한 야권의 대선 후보 안철수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탈당해버리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 는 하나의 상징적 좌표가 될 수 있다. 탈당하자마자 안철수에게 몰린 지지율의 의미가 뭘까? 딱 그만큼이다. 양당제도 하에서의 이 미이라 야당의 행태에 질리고 질려 버린 사람들이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철수에게는 딱 그만큼의 지지율이 주어지고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전통적인 야당이 자신의 역할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율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어 떤 사람은 이 상황을 '야권의 분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야권의 분열은 이미 오래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상황이다. 호남은 호남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반정권은 반정권대로 온건 보수는 온건 보수대로 갈갈이 찢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은 천재적으로 잘한다. 야권은 거기에 말려 들어 아무도 맥을 못 추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숨은 희망이 있다. 무엇이든지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되어 있는 법이다. 정당정치가 붕괴하고 야권이 미이라화 되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붕괴된 정당정치를 다시 재건할 기회인 셈이다.

 

아 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면 더 내려가도 좋다. 언젠가 한 번은 쳐야 할 바닥이었고, 제왕적 총재가 사라진 이후 정립되지 않은 민주적인 야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언젠가 다시 재건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 시스템이 사라지면 어떤 종류의 국가적 재앙이 오게 되는지 우리 모두 값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다.

 

양당제를 할 것인지, 다당제를 할 것인지,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헌법이 제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 모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봐두자.

 

2015년의 대한민국, 야권의 상황은 우리에게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이다.

 

 

기본소득의 본격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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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오늘도 역시 기본소득으로 마무리한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인 문제다. 아니 사회적인 문제도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정 치권이 개판을 치고 있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니즘을 넘어선 차원의 생존 문제이다. 우리의 정치권이 살벌하게 정치를 잘해봤자 국제적인 현실을 넘어설 방법도 없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목을 가장 심하게 조이고 있는 것은 바로 국제적인 차원의 자본주의의 위기일 수도 있다.

 

그 위기의 실체는 한마디로 “일자리의 소멸에 따르는 자본주의의 붕괴 위험”이다.

 

솔 직히 나는 그간 기본소득에 대해 떠들고 다니면서도 이거 뭐 한 십 년은 지나야 유럽에서 슬슬 논의되기 시작할 거고, 우리 사회까지 오려면 최소 삼십 년은 걸릴 것이라고 나태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지 금 당장, 2015년 말에 이미 기본소득제도가 공개적으로 논의가 되고, 핀란드에서는 2016년 말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집권당의 수상이 공식 선언을 하고, 스위스는 국민투표에 회부하고, 독일에서도 기본소득 지지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온다는 것, 기본소득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다행이라는 느낌보다 훨씬 더 크게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을 2015년 최대의 빅 이슈로 꼽는 것이다.

 

바 로 저 사람들 모두 자본주의의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는 얘기다.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 동안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가 줄어든 만큼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걸로 메꿔 온 셈이다. 이제 갈수록 그렇게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는 속도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언 제나 사례로 드는 얘기들이지만 점점 더 구체화 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몇 년 안에 무인트럭이 화물을 운송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법규를 개정하는 중이다. 벤츠가 양산한 무인트럭이 미 대륙에 상륙하는 순간 이백만이 넘는 미국의 에이틴 휠러, 장거리 트럭 운전수들의 일자리는 소멸한다.

 

구 글의 무인차는 이미 사고율 0%에 도전하고 있으며, 실제로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아이폰을 최초로 해킹해서 유명해진 GeoHot이라는 해커는 겨우 천 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기존의 승용차에 자율주행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장착해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이 런 자율주행 승용차가 합법적으로 운행이 되는 순간 택시 기사들과 대리운전기사의 일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아마존의 드론 택배 시스템은 택배 기사들의 일자리를 소멸시킬 것이며, 우라까이 전문 신문기자 아니 언론알바들을 대치할 자동 기사 생성 소프트웨어는 이미 일기예보와 스포츠 뉴스, 증권 기사들을 자동으로 작성해서 쏟아내고 있다.

 

현 대기아차의 최근 5년간의 통계를 보면 늘어난 매출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일자리만이 생겼을 뿐이다. 극단적인 예측으로는 이미 몇 년 이내에 30%에 해당하는 일자리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 빈자리를 메꿀만한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소득도 없다. 소득이 없다면 소비도 없다. 소비가 없다면 시장도 없다. 시장이 없어지는 순간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이 단순한 논리의 수레바퀴는 이미 오래 전에 굴러가기 시작했으며,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에서 시작하여 일자리의 소멸로, 또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붕괴의 시나리오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2015년 말에 등장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도입 소식인 것이다.

 

잘사는 나라의 돈지랄이 아니라, 줄어들어 가는 일자리와 그로 인한 세수의 감소, 그에 따른 국가 재정의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 핀란드의 수상은 순순히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

 

우리는 어째야 할까? 2015년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생존권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2015년이여, 안녕!

 

그 렇게 올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다가오는 2016년에는 또 어떤 걸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진면목을 보여줄지 걱정이 될 뿐이다. 저게 결코 좋은 소리가 아니다. 최근 들어 한 십 년간 좋은 일로 놀라 본 적도 없고, 좋은 일로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감탄해 본 기억이 없다.

 

이 제 막 시작하는 2016년이라고 해 봐야, 4월에 총선 있고 야당이 대판 깨질 것이 거의 확실해진 상황에서 무슨 낙으로 또 1년을 버텨야 하는가.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도대체 이 내리막길은 언제나 끝날 것이며, 도대체 이 깜깜한 밤중이 언제 끝나고 동녘이 밝아 오게 될지 감히 상상도 잘 안 된다.

 

그 래도 해는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역사를 움직인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는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결코 놓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새해 인사를 드린다.

 

딴지스 여러분, 2015년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고,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그리고.. 새해 벽두부터 울려 퍼질 병신년 드립, 그거 절대 하지 말자. 우리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면서 살아야 덜 쪽팔리지 않겠냐는 얘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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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한.일 합의? 더럽다"

 

정대협, '배신외교'..외교부와 후속조치 협의 거부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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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8  20: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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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 발표에 대해 "더럽다. 무시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을 발표한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더럽다. 무시한다. 건방지다"라고 일갈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외교적 담합"이라며 정부의 후속조치 협의를 거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88세)는 이날 오후 서울 성산동 정대협 사무실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본 뒤, "뻔뻔하다. 무시한다. 내가 돈이 필요해서 이러느냐"고 반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자청, "오늘 보니까 조금도 할머니들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명예회복이다. 책임지지 않고 지금 와서 뻔뻔하게 문제 해결? 보상? 아니다.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약 1백억 원)을 출연하기로 한 합의를 전면 거부한 것이다. 또한, 해당 기금은 국가범죄 책임 이행 방식인 법적 배상원칙과 동떨어져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일본 정부가 1996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을 설치하고 위로금을 지급하려 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법적 배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받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보상은 너희가 돈 벌러 갔으니 불쌍해서 준다는 것이고. 배상은 죄에 대한 것"이라며 "더럽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국 정부의 설득을 위한 접촉도 거부했다. 오히려 "무슨 설득이 필요하느냐. 일본 외교부인지 한국 외교부인지 모르겠다. (설득을) 듣고 있겠느냐. 전부 무시한다. 한 사람이라도 안 된다면 안되는 것"이라며 외교부를 질타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날 입장을 발표,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에 거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정대협도 이날 입장을 발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이번 발표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대독이라는 점, 그리고 범죄 주체와 불법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지금까지 논란이 된 '오와비(おわび)'가 다시 사용됐다는 점도 지적됐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 사죄의 표현은 사과라는 뜻인 '오와비(おわび)'가 아니라, 사죄의 의미인 '샤자이( しゃざい)'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기시다 외무상이 대독한 발표문에도 '오와비(おわび)'라는 표현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전쟁범죄 책임 후속조치는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 역사교육 등 재발방지 조치가 포함되어야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의 기금을 출연하는 것으로 그쳤다는 점도 제기됐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각총리대신 명의라고 했지만, 총리가 자신의 입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다"라며 "진심으로 사죄했다고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재단 설립에 대해 "1996년 일본 정부가 만든 국민기금과 다름없다. 가해의 주체도 빠졌고, 범죄에 대한 언급도 없다. 법적 책임과 연결해 애매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정대협은 이번 합의에서 한국 정부가 △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확인하고, △ 평화비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를 위해 해결방안을 찾으며, △상호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데 대해 "되로 받기 위해 말로 줘버린 굴욕적인 외교"라고 비판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평화비 철거문제가 일본 언론에 나왔을 때, 한국 정부가 항의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 합의에 들어갔다. 이중적인 태도"라며 "철거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외교부의 평화비 이전 협의에 응할 생각이 없다"며 "평화비는 정대협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것이다. 공공의 자산"이라고 이번 한.일 합의 후속조치를 거부했다.

이용수 할머니도 "우리나라에 세운 평화비다. 건방지다. 동경 한복판에 세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디에 옮기라 말라 하느냐. 건방지기 짝이 없다"며 "소녀상 못 옮긴다. 그대로 둬야 한다. 무슨 권리로 옮기느냐. 무슨 검토가 필요하느냐"고 일갈했다.

   
▲ 정대협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가한 이용수 할머니 등은 평화비 이전 반대입장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정대협은 "오늘 한.일 양국 정부가 들고나온 이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그리고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에 다름 아니다"라며 "결코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고 시간에 쫓기듯 매듭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 정부의 국가적, 법적 책임 이행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국내외 시민사회와 함께 올바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설립추진모임' 관계자들은 이날 한.일 외교장관 회담 발표를 앞두고 입장정리에 고심을 보였으나,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의 입에서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평화비 해결방안' 등이 나오자 탄식을 자아냈다.

이용수 할머니도 해당 발언이 나오자 탁자를 치며 "그 돈 너네나 다해라. 소녀상 건들기만 해봐라"라고 화를 삭이지 못했으며, 정대협 직원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합의에 대한 정대협 입장

오늘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열려 마침내 그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들은 광복 70년을 며칠 남기지 않고 열린 이번 회담이 올바르고 조속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 이르기를 간절히 염원해왔다.

금번 회담 발표에 따르면 첫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과 둘째, 아베 총리의 내각총리로서의 사과 표명, 셋째,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일본정부가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이후 양국이 협력하여 사업을 해나간다는 것이다.

비록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지만 일본군‘위안부’ 범죄가 일본정부 및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라는 점은 이번 합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관여 수준이 아니라 일본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또한 아베 총리가 일본정부를 대표해 내각총리로서 직접 사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독사과’에 그쳤고, 사과의 대상도 너무나 모호해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이번 발표에서는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범죄의 가해자로서 일본군‘위안부’ 범죄에 대한 책임 인정과 배상 등 후속 조치 사업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함에도, 재단을 설립함으로써 그 의무를 슬그머니 피해국 정부에 떠넘기고 손을 떼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이번 합의는 일본 내에서 해야 할 일본군‘위안부’ 범죄에 대한 진상규명과 역사교육 등의 재발방지 조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모호하고 불완전한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정부가 내건 약속은 충격적이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하고,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평화비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를 위해 해결방안을 찾을 것이며, 상호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줘버린 한국정부의 외교 행태는 가히 굴욕적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임하면서 평화비 철거라는 어이없는 조건을 내걸어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한 일본정부의 요구를 결국 받아들인 것도 모자라 앞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입에 담지도 않겠다는 한국정부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평화비는 그 어떤 합의의 조건이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평화비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천 번이 넘는 수요일을 지켜내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과 평화를 외쳐 온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산 역사의 상징물이자 우리 공공의 재산이다. 이러한 평화비에 대해 한국정부가 철거 및 이전을 운운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번 합의를 두고 정부가 최종 해결 확인을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이며, 광복 70년의 마지막 며칠을 앞둔 이 엄중한 시기에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커다란 고통으로 내모는 일이다.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지원단체, 그리고 국민들의 열망은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범죄에 대해 국가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다시금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한일 양국 정부가 들고 나온 이 합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그리고 국민들의 이러한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에 다름 아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와 평화를 위해 해결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해결되어야 할 우선과제이지만, 결코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고 시간에 쫓기듯 매듭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지난 2012년 제12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각국 피해자들의 뜻을 담아 채택한 일본정부에 대한 제언, 즉 일본정부의 국가적 법적 책임 이행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국내외 시민사회와 함께 올바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해 나갈 것을 천명한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자료제공-정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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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가해자에게 분노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가해자에게 분노하지 않는가

김찬국 2015. 12. 28
조회수 122 추천수 0
 

확인된 피해자 530명 사망자 143명, 불매운동은 잠잠

800만 사용자 중 어떤 피해 나올지 몰라, "분노하고 행동하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그 시작과 현재

05323593_R_0.JPG » 지난 5월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강나래 어린이가 영국 런던 근교 슬라우의 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촛불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2011년 임신부와 영유아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시작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3 년과 2014년 정부의 1~2차 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총 530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143명(27%)에 이른다. 올해 12월31일까지 3차 피해접수가 진행되는데, 올 1월부터 12월11일까지 접수된 3차 피해자는 모두 310명이고, 이 중 38명(12.3%)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전국적으로 약 800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들 중 증상이 경미해 피해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가지만 시간이 지나 피해가 나타나는 잠재적 피해자가 많이 있을 수 있다.1)

 

04102807_R_0.jpg » 2011년 11월9일 백도명 서울대보건대학원 원장(왼쪽)이 서울 중구 정동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가습 살균제 20개 상품의 명단과 상품별 피해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정아 기자
 
2012년 피해자들이 책임 기업들을 고소했지만 수사를 하지 않고 검찰이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 것도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2014년 우리 정부가 폐 손상 의심 사례 공식 조사 결과2)(거의 확실 127명)를 발표하고 나서도 1년 반이 지난 올 10월에야 해당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기보다는 피해신고 기한을 12월 말로 정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을 편든다거나 사건을 축소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지 난 1~2차 조사를 통해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4등급으로 분류하고 이 중 피해 원인이 명확하게 확인된 1~2등급만 장례비와 폐 손상 관련 의료비 일부를 지급받게 되었다. 이 경우도 폐 이외의 치료비나 정식적 고통에 따른 피해보상은 개별소송을 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거나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돈으로 보상하는 것이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고, 원칙적으로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치료비와 소송비용 등이 부담스러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현재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년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이 받은 처벌은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과징금 5000여만 원이 전부라는 점에서 보면 어쩌면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이 돈일지도 모른다.3)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15곳 가운데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8개 회사의 대표가 기소되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이나 의미 있는 사과가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들 업체는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 유해성이 의심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람을 숨지게 할 의도는 없어 살인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가습기에 이용하였을 때 나타날 독성물질의 위험성을 모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ga2.jpg » 2015년 5월 피해자와 시민단체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와 영국 국회의사당 등을 방문하여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과 살균제로 사망한 아기의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어떤 물질 때문인가? 위험한 염소 화합물
 
가 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은 살균제나 부패방지제로 사용하는 구아디닌 계열의 화학물질이다. 이들은 피부독성과 경구독성이 다른 살균제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살균력이 뛰어나며 특히 물에 잘 녹아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들 물질은 샴푸 등에 첨가되어 현재도 유통되고 있지만 최근 동물실험에서 심혈관 급성 독성, 피부 세포 노화 촉진 등이 밝혀져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이런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되도록 허가받았을까? 올해 9월24일 국회 장하나 의원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을 잘못 이해해 경구독성만 심사하는 바람에 피해를 미리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4)
 
제 조사가 제출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바탕으로 피지에이치(PGH)의 경구독성만 심사하고,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것처럼 제품에 첨가되어 분무 형태로 폐에 흡입되거나 피부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쳐 흡입·피부 독성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다. 흡입 노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흡입독성 평가를 하지 않고 이 물질의 사용을 허가한 셈이다.
 
피지에이치는 우리에게 낯설지 몰라도 위험한 화학물질 중에 익숙하게 들은 염소 화합물이 적지 않다. 쓰레기소각장 등에서 나오는 다이옥신, 페놀 유출 사건에서 발생한 발암물질 클로로페놀 등도 염소가 포함된 유독성 물질이다.
 
낙 동강 페놀유출사건으로 부르는 1991년 ‘두산전자 페놀유출사건’의 경우, 불법방류된 페놀과 수돗물의 소독제인 염소가 반응하여 클로로페놀이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 내었다. 락스와 유사한 냄새가 나는 클로로페놀은 악취발생뿐만 아니라 중추 신경장애를 유발하기도 하며 구토와 경련 등 급성중독을 일으키고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ga4.jpg » 환경보건시민단체가 집계한 가습기 피해자 최근 실태. 12월28일까지 3차 접수한 결과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무책임한 기업과 화학물질 관리에 실패한 우리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하자. 그럼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 
 
그들은 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나?
 
지 금은 더는 판매되고 있지 않지만 당시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인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은 옥시레킷벤키저 사가 제조·판매하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이 어린이와 임신부 등을 죽게 만들었다는 우리 정부의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곰팡이나 레지오넬라균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사과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 업체는 세탁표백제 ‘옥시크린’과 습기제거제인 ‘물 먹는 하마’ 브랜드로 우리 소비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국내업체였으나 외환위기 직후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인 영국의 레킷벤키저에 매각되고 회사 이름을 옥시레킷벤키저로 변경하였다. 이후 옥시의 브랜드 효과에 막강한 자금력 등을 발휘하여 살균제, 세제, 탈취제 등 국내 각종 생활화학용품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매우 다양하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한번 이상 사용했을 제품들이다.
 
옥 시크린, 옥시싹싹 등의 표백제나 세제뿐만 아니라 물먹는 하마 등 하마란 이름이 들어간 제품, 손 세정제인 데톨 제품 등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다. 최근에는 ‘스트렙실’, ‘개비스콘’과 같은 기관지·소화기계 질환 치료제에서도 입지가 있다.5)
 
옥시 제품 불매운동 서명 고작 1천명 
 
가 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제품을 제조·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를 상대로 직접 국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제조·판매사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죽은 상황에서 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일까?
 
책임 있는 자세를 요청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여전히 이 회사의 충실한 소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ga3.jpg » 다음 아고라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 청원 결과 (2015년 12월 22일 화면)  
 
작 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13년 10월부터 작년 초까지 인터넷포털 다음의 아고라 청원광장에 “살인기업(가습기 살균제)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서명이 시작되었다. 2014년 2월10일까지 1000여명만 서명에 참여하였다고 한 온라인매체가 보도하기도 하였다.6)
 
해당 온라인 서명은 그해 4월14일까지 이어졌으나 500만 명의 서명 목표 중 1049명의 서명에 그치고 말았다.7) 가장 보호받아야 할 임신부와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구매한 제품에 의해 고통받다 죽어야 했을 때,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상식 있는 시민,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나 는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 환경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내가 사용하는 석유가 쏟아져서 피해본 태안 주민, 내가 사용하는 전기를 나르는 송전탑으로 피해를 보는 밀양 주민,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까지.
 
이런 점에서 나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해자들과 함께 활동해온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든다.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내가 내 삶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내 마음과 눈길이 가 있는 그곳에서 대신 수고해주는 분들이 참 고맙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환경사건 중 상당한 기간 동안 해당 문제를 붙잡고 끈질기게 다루는 시민단체나 환경단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현실 속에서 더욱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비극은 언제 끝나게 될까? 아니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될 때면 더는 화학물질로 인한 고통은 생겨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가로부터 허가받은 물질은 모두 안전한가? 800만명이나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나와 내 가족에게 나중에 그 피해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나와 내 가족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무 피해가 없다고 안도하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너무 위험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일이 언제 다시 생겨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렇지 않고서야 이런 기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점잖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지 곰곰이 복기해 보아야 한다. 비극적인 사고는 한 번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타계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베테랑이자 세계인권선언의 주역인 스테판 에셀이 자신의 책 <분노하라>에서 강조하였듯이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고 지금이 바로 분노하고 행동할 때일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그 모든 것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1)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150종 이상 화학물질의 세례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들의 만성 유해성과 복합독성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화학물질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상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해 환경상식 톺아보기에서 다룬 “일상 속의 화학물질: 어찌해야 하나?”(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150종 이상 화학물질의 세례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들의 만성 유해성과 복합독성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화학물질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상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해 환경상식 톺아보기에서 다룬 “일상 속의 화학물질: 어찌해야 하나?”(http://ecotopia.hani.co.kr/237868)를 다시 읽어볼 수 있다.

2) 이들 중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확실함’(127명) 또는 ‘가능성이 높음’(41명) 판정을 받기도 하였지만 다수는 ‘가능성 낮음’(42명) 또는 ‘가능성이 거의 없음’(144명)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방에서 같이 잔 아이는 ‘거의 확실함’ 판정을 받고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은 아버지는 ‘가능성이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3)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내려진 벌금은 1천만원이었고, 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이 진행한 일이 가입한 책임보험의 한도인 56억 원으로 배상 책임을 제한해달라는 소송이었다.

4) ‘가습기 살균제 속 유해물질 환경부, 제대로 평가 안 했다’ 경향신문(2015.9.25.)

5) 당신이 이용하는 온라인쇼핑몰이 있다면 “옥시레킷벤키저”라고 검색해보라. 옥시○○, **먹는하마 등 당신의 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리스트를 입력하고 검색해보라. 의약품, 제모크림, 콘돔에 이르기까지 긴 목록이 나타날 것이다.

6) 프레시안 2014.2.11일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3931)

7) 2014년 11월 13일부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에게 책임을 물읍시다”라는 서명 캠페인에는 단 15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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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새누리, 김용판 전 서울청장 공천하라…‘맞짱토론’ 원해”

 

등록 :2015-12-28 10:24수정 :2015-12-28 10:52

 

국정원 대선 댓글·실종 대구 개구리소년 수사 등 포함
“공정경쟁으로 새누리 반드시 이겨 드리겠다” 각오 밝혀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지난 대선 국가정보원 불법 여론조작 범죄 수사 등을 놓고 “맞짱 토론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표 소장은 27일 저녁 자신의 트위터(@DrPyo)를 통해 “새누리당에서는 꼭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공천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경찰 현안과 지난 대선 국정원 불법 여론조작 범죄 수사, 대구 성서초등학교 다섯 어린이 피살사건 관련 맞짱 토론을 해보고 싶다. 부탁 드린다, 김용판을 국회로!”라고 적었다.

 

표 소장은 2012년 12월 대선 직전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선거 개입 활동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오피스텔 안으로 즉각 진입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경찰대 교수직을 사퇴했다. 김 전 청장은 이 당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최근 대구 달서을 지역구에 새누리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김 전 청장은 실종된 개구리 소년들이 유골로 발견된 2002년 9월26일 대구 달서경찰서장으로 있으면서, 사인에 대해 “저체온사로 추정된다”고 밝혀 유족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표 소장은 “자연인으로서 전 새누리당을 싫어한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전 새누리당을 존중한다”며 “공정 경쟁으로 새누리를 반드시 이겨 드리겠다”고 했다.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사진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트위터 갈무리

표 소장은 이어 “현재의 당 지도부를 싫어하는 일부 광주 시민분들께서 제게 이제는 광주에 오지 말라는 연락을 주신다. 그 뜻 존중한다”며 “짝사랑이라도, 저 혼자서라도 광주 정신과 광주 시민, 호남의 멋스러운 문화와 따뜻한 정을 사랑한다. 돌을 맞더라도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지난 대선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여론조작 범죄와 이명박 전 대통령 공개 비판 이후 제 고향 포항에서도 절대 오지 말라, 오면 가만 안 둔다는 분노의 연락 받은 바 있다”며 “그래도 갔다. 가니까 반겨주시더라. 사람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겠다. 새정치민주연합 모든 의원이 다 나가도 당원과 지지자만 남이 있으면 저도 끝까지 지키겠다”며 “전 친노, 친문 이런 것 모른다. 당헌 당규와 절차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정치인의 윤리’는 안다. 저와 함께 가 보시죠”라는 글을 남겨 큰 호응을 얻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관련기사]
▶표창원 “박근혜와 붙으라 해도 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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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통과되면 정권교체 못한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301] 이재화 변호사
15.12.27 20:18l최종 업데이트 15.12.27 20:18l글 : 이영광(kwang3830) 편집 : 김준수(deckey)
 
IS 의 프랑스 테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를 통해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 세계가 안다. IS도 알아 버렸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런데도 천하태평으로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을 수 있겠느냐? 대한민국이 테러를 감행하기 만만한 나라가 됐다"라며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테러방지법 통과가 힘들어졌다. 현기환 정무수석은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에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도대체 테러방지법에 어떤 게 들어있기에 청와대에서 비판을 감수하며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을까. 내용이 궁금하여 이 법을 '유신독재 부활법'이라고 규정한 민변 사법위원장 이재화 변호사를 지난 21일 서울 양재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정무수석의 직권상정 요청, 삼권분립 원칙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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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화 변호사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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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의장에 테러방지법 등의 직권상정을 요청했지만 정 의장이 거절했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있을 수 없죠. 청와대의 직권상정 요청은 국회의 자율적 입법권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한 반헌법적인 행위입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입헌군주제 국가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 그것도 물밑 접촉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했어요.
" 비공개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공개적으로 직권상정을 요청한 것은 국회의장을 대통령의 수하로 인식하는 걸 드러낸 거예요. 이건 헌법을 무시하는 거죠. 위헌적 행위예요. 당연히 부끄러워 해야 하는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대통령을 조선 시대 군주로 착각하는 거예요."

- 과거 이런 전례가 있었나요?
"박근혜 정권의 아버지인 유신정권 때도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죠. 이건 사회를 1980년대 수준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유신보다 더 무식하게 하는 거죠. 안하무인이에요."

- 비판이 나올 줄 알 텐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요?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비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청와대 비서진은 오직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면서 그것이 위헌이든 위법이든 가리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철면피 정권이라고 생각해요."

-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 세계가 안다. IS도 알아버렸다"면서 테러 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는데.
" 박 대통령은 'IS도 우리나라가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데 이건 마치 '살인죄 처벌 규정이 있으면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발상과 똑같아요. 대한민국에 살인죄 처벌 규정이 있는데도 모든 살인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테러단체가 테러방지법이 없는 나라를 골라서 테러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실제로 프랑스와 미국에는 테러방지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를 모두 방지할 수는 없어요. 모든 테러를 방지할 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법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어요. 법으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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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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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가자를 IS에 비유한 대통령, 테러방지법은 대국민용"

- 정부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 지난 14년 동안 국정원에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했으나 국민이 반대해서 못했거든요. 그렇다고 14년 동안 법이 없어서 테러가 발생한 게 아니거든요. 미국 9.11 테러가 일어난 때부터 국정원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주장했다가 못하고, 이번 프랑스 테러 사태를 계기로 다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국정원이 테러를 빙자해서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을 만들면 모든 국가권력이 국정원 산하로 다 들어오고 국정원이 테러방지를 이유로 국민이나 사회단체, 각 정당의 모든 증거나 비밀을 접할 수 있죠. 대통령은 그걸 통해 손쉽게 국민을 통제할 수 있고요."

- 박 대통령이 시급하다던 테러방지법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 한마디로 국정원에 대테러 센터를 두고 국정원이 정부부처나 행정관청을 총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누군가를 테러단체의 조직원이라고 판단하면 그 사람에 대한 출입국 관리기록이나 금융정보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즉, 테러방지법은 해외의 테러정보 수집보다는 대국민용이에요. 박 대통령이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마스크 쓴 시민을 IS에 비유했잖아요. 이처럼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국정원이 시민을 테러단체의 조직원이라고 의심하기만 하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을 필요 없이 개인이나 단체의 금융정보·이메일·각종 온라인 정보를 다 수집할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헌법상 영장주의는 완전히 파괴되는 거죠."

- 다른 우려는 없나요?
"대테러 센터를 국정원에 두기 때문에 행정기관 위에 국정원이 군림하게 돼요. 그러면 국정원에 모든 권한이 집중될 것 아니에요? 국정원은 대통령에게만 보고하게 되어 있어요. 결국, 대통령이 국정원을 통해 모든 걸 통치하려고 하는 거죠."

-군병력 동원도 가능하게 되나요?
" 새누리당 의원이 낸 테러방지법안을 보면, 국정원장이 테러를 방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대통령에게 군 병력 동원을 건의할 수 있고 대통령은 그 건의에 따라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돼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 헌법에 보면 계엄 선포가 아니면 대통령이 군 병력을 동원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계엄 선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군을 동원할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1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대통령이 테러로 규정했잖아요. 그러면 군을 동원해서 시민의 집회 및 시위를 강제로 진압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헌법은 휴짓조각이 돼버리는 거예요. 무시무시한 거죠."

"테러방지법 통과되면 정권교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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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난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던 노동자, 농민, 시민 수만명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중태인 백남기 농민이 입원한 대학로 서울대병원까지 가면을 쓰거나 직접 준비한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한 참석자가 '시위는 테러가 아니고, 시위대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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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방지법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새누리당이 제출한 사이버테러 방지법안에는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는 것도 사이버테러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국정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표현을 마음대로 사이버테러로 규정하고 그걸 핑계로 개인의 통신비밀 등을 영장 없이도 언제든지 수집하게 되는 거죠. 국정원이 국민의 사생활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것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허위사실 유포라고 생각하면 SNS상의 글을 임의로 삭제할 수 있어요. 또한, 국정원은 사이버해킹 사건을 조사할 수 있게 되는데, 국정원이 그 해킹사건 조사 시에 알게 된 정보를 갖고 민간인이나 민간기업에 대해 뒷조사나 압박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 현재 국민은 국정원을 못 믿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더 큰 힘을 가지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요.
" 야당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국정원 댓글 사건이 있었잖아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댓글도 '테러방지용으로 했다'고 하면 합법화되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 활동하는 시민이나 단체를 감시하고 뒷조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정권교체는 불가능할 것이고 보수세력의 장기집권 길이 열린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보수세력의 장기 집권 플랜 중 하나로 봅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아직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깨닫는 게 안타까워요."

- 테러방지법을 '유신 독재 부활법'이라고 규정하셨던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 유신 때는 헌법이 문제가 많아서 국민의 인권을 탄압했지만, 테러방지법은 멀쩡한 헌법을 무력화 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유신헌법 같은 경우는 긴급조치를 통해 유언비어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사람들을 처벌했잖아요, 사이버테러 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이 영장 없이 언제든지 국민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걸 통해 약점 잡아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거든요. 실질적으로는 유신이 부활하는 셈이죠."

- 하지만 헌법 아래 법률이 있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면 법률이 실질적으로 헌법을 무력화한다는 거죠. 그래서 모든 국민과 야당이 사활을 걸고 테러방지법안이 제정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 테러방지법을 잘 모르는 경우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데요. 국민에게 그들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죠, 무엇보다 야당이 이걸 가지고 목숨 걸고 싸워야 해요."

- 테러방지법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정권교체는 없습니다. 야당 지도부가 테러 방지법의 숨은 의도에 주목해서 투쟁을 해주면 좋겠어요.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만약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제가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될 것입니다. 그때 후회하면 이미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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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국장급 협의 개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2/28 10:42
  • 수정일
    2015/12/28 10: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병세 "그 어느 때보다 협의 가속화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국장급 협의 개최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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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7  15: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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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제12차 한.일 국장급 협의가 27일 오후 3시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비공개'로 개최됐다.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각각 대표로 참석했다. 

국장급 협의 직전 출입기자들과 만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그 어느 때보다 협의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시점에 기시다 외상이 내일(28일) 방한하고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는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저희로서는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포함해서 국장급 협의에서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장급 협의에 임하는 우리 수석대표에게 정부의 분명하고 확고한 입장을 하달한 바가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관련 법적 책임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 대해서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민관공동위원회'가 천명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윤병세 장관은 28일 오후 2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서울 사직로8길 외교부 청사 17층 양자회의실에서 마주앉는다. 오후 3시15분에는 3층 국제회의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기시다 외무상의 갑작스런 연말 방한은 24일 저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지난 22~23일에는 아베 총리의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이 극비 방한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위안부' 해법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어 성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측에 거듭 촉구한 바와 같이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간 협상에서 핵심 쟁점은 세가지로 좁혀졌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문제, △책임 인정에 따른 이행 조치,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국장급 협의 결과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오늘 협의한 내용이 결국은 내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논의가 되고 또 끝나면 공동기자회견에서 종합적으로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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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의 두 기둥 - 한국인이 외면하는 제국주의 미국

미 제국의 두 기둥 - 한국인이 외면하는 제국주의 미국 7
 
경제주권을 헌납한 2011년의 한미FTA
 
최천택. 김상구 공저
기사입력: 2015/12/28 [00: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초의 반미시위,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

 

1961년 2월, 한국 경제의 대미경제예속을 항의하는 최초의 반미시위가 일어났다. 협정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원조를 빌미로 한 미국의 내정간섭적 태도에 대한 학생 및 혁신운동세력의 반대투쟁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한미경제협정이

 

①경제적 예속화와 내정간섭을 강요하고

②치외법권 남용으로 인해 통치권을 유린하며

③세금포탈로 재정주권을 침해하고

④원조물자의 일방적 중단을 구실로 정치적 시녀화를 강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편파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그 철회를 미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은 남한에서 전개된 최초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미운동으로서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 ‘반외세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운동 과정에서 처음으로 ‘양키 고 홈’의 구호가 외쳐졌으며, 민족적 자긍심이 원조국가의 예속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학생들의 염원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이어서 주한미군 주둔지 및 인근지역에서 주한미군의 계속되는 범죄행위에 대해 한미행정협정의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도 집요하게 전개되었다.

 

 

 

▲ 한미 경제 및 기술원조협정의 문제점을 보도한 민족일보 창간호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1961년 2월 13일 첫 선을 보인 민족일보 창간호는 한미경제협정조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경제자립성을 모독·침해”라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기사는 이 한미협정을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과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고 정당사회단체들의 규탄성명을 함께 실었다. 아래는 보도된 일부 내용이다.

 

•통일사회당

이번 신협정에서 양측이 확인한 바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1954년 12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1950년 1월), ‘대한민국과 통일사령부간의 경제조항에 관한 협정’(1952년 5월) 등은 모두가 한국이 가장 어렵고 남의 힘이 아쉬운 처지에 놓였던 6·25동 란을 전후하여 체결되었던 것으로 주권 국가로서의 위신과 이익이 상반되는 제조건을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전국민이 이점을 유감으로 여겨왔거늘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악하는 방향으로 단일화한 장면 내각의 반민족적 처사는 전체 애국시민의 규탄을 받아야할 것이다.

 

•사회당창당준위

금번의 협정개악으로 한국민을 위하여 한국민이 써야할 우리의 돈 원조물자 판매대전을 미국이 마음대로 갖다 쓰도록 되어 있는데(제4조) 이것은 미국의 과잉상품을 원조라는 이름으로 강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조물자 판매대전에 미국은 한푼도 갖다 쓰지 말고 그 사용은 한국정부에 일임하라.

 

•민자통 사무총장 담

‘한미경제협정’이란 것은 물론 반대해야한다. 그것은 민족매판자본의 연명을 기도함이며 아울러 민족자주경제건설의 기본적 방향이 되는 민족자주통일을 방해하기 위한 하나의 국제계획의 기도로 되기 때문이다.

 

•혁신당

미국인 및 그 가족과 미국정부 대리상사와 그 고용인들에게 외교관만 부여하는 특전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동 협정은 한국의 독립국 체모를 상실시키는 것이다.

 

•사회대중당

한미협정 제3 제4 제5 제6조는 미국의 속국화하려는 기도로써 한국의 주권을 공공연히 침해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적 조처는 극동원조 내지 외교정책의 일대 과오를 범했다. 양당위원들은 총사퇴를 각오하고 굴욕적인 동 협정의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

 

한미경제협정은 미국이 자국의 과잉 상품 및 과잉 자본을 한국에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재생산구조를 대미의존체제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학생들과 혁신계 정당뿐 아니라 일부 신민당 의원들조차 “남한을 지배하겠다는 미국의 책략 가운데 일부”라고 규탄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의 반응은 이승만 치하 때나 전혀 변함이 없었다. 2월 15일, 장면 총리는 주례 공식기자회견에서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이 북한 괴뢰의 지령에 의한 것이며 그 구체적 증거를 잡았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장면 정부가 내놓은 구체적 증거라는 것은 북한의 평양방송에서 한미경제협정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결국 1961년 2월 28일, 박준규 의원이 제안한 세 가지 양해조건을 조건부로 민의원에서 찬성 32표, 반대 1표로 비준안이 가결됐다. 혁신정당 의원들은 퇴장함으로써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참의원에서는 제적 34명 가운데 찬성 32표, 반대 1표로 통과됐다.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은 비록 광범한 국민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3주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종결되었지만 미국의 대한 원조경제 정책의 목적을 적나라하게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결코 은혜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앞의 글 “최초의 불평등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거론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의 불평등 조약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국의 정책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9월,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부터다.

 

미국은 1945년 9월부터 한국을 점령·지배한 이래, 미군정 시대에 수많은 포고와 군정청 법령을 난발하여 남한경제를 지배·수탈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국은 각종 조약·협약 체결을 강요하며 지배를 계속했다. 45년부터 69년까지 미군포고·군정청법령·각종조약·협약 등에 대한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남한에 이승만 단독정부가 출범한 뒤에, 미국은 이전 군정청과 남한과도정부에게 소속되어 있었던 귀속재산 소유권·관리권을 형식상 승계·이양하였다. 1948년 9월 11일에 최초에 맺은 ‘한미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협정’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은 재조선 미군정청 법령 제33호에 의해 귀속된 전 일본인 공유 또는 사유재산에 대하여 미군정청이 이미 실행한 처분을 승인하고 비준한다’(제5조)고 했다. 남한 총자산의 80%에 해당하는 엄청난 귀속재산 중 많은 부분을 수탈했던 행위에 대해, 이승만정권이 기정사실로 승인하도록 했다.

 

또 이 협정에서 ‘대한민국은 재조선 미군정청 운동자금으로 지칭되는 조선은행 대월당좌에 의해 사용한 자금에 대한 일체의 채무를, 미국정부로 하여금 그 책임을 면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미군정이 통치비용으로 과다 지출하는 바람에 생긴 적자재정을 이승만 정권에게 떠 넘겼다. 더욱이 제3조 3항과 제9조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면, 한국 어느 곳이든 재산의 소유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리고 미국이 희망하는 재산을 양국의 협정가격으로 양도하되 제1회 양도분으로 ‘서울 정동, 송현동, 사간동, 을지로 반도호텔 부근 등 7만 평’을 규정하였다.

 

이 양도 재산만해도 서울의 노른자위로 만만치 않은 액수인데 미국의 일방선언으로 차지해 버렸다. 미국은 이 협정으로 남아 있는 귀속재산을 이승만 정권에게 넘기면서, 동시에 적자 재정 수백억 원과 미 주둔군 비용충당을 위한 차용금까지 고스란히 떠넘겼다. 이렇듯 미국은 원조물자에서 생긴 대충자금(원조물자 판매 대금)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재정·경제에 대한 지배체제를 단단히 다졌을 뿐 아니라, 일방적인 협약을 맺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나중에 미국은 미군 주둔비용까지 한국정부에게 요구하게 된다.

 

기타 주요한 조약으로, 52년 5월 24일 조인한 ‘대한민국과 유엔군 통일사령부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마이어 협정), 53년 12월 24일 조인한 ‘경제재건과 재정안정계획에 관한 합동경제위원회 협약’ 1956년 3월 24일의 ‘한미 간 잉여농산물 구매협정’ 등 각종 협정으로, 한국경제에 대해 우위·지배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 뒤 61년 2월엔 장면정권과 ‘한미 경제 및 기술원조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종교 등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한국경제를 미국 독점자본에 더욱 종속·예속화하였다.

 

한국의 근대화와 IMF

 

미국이 한국과 맺은 불평등 외교협정의 역사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넘어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미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을 대상으로 통상 개방 압력을 강하게 행사하였다. 지적재산권(저작물에 대한 권리), 담배시장 개방, 민간 항공사의 상대방 공항 이용 등 이 외에도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조약이 불평등하거나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내용을 담겨 있는 사례는 허다하다.

 

미국과의 불평등조약은 국방관련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국방관련 과학기술에 대해서 미국과 맺은 쌍무 협상에 의해 국방기술 개발을 제한받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사거리의 경우 300km를 넘을 수 없고, 탄두 중량은 500kg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는 현실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의 중량을 제한한 조약은 2001년 개정 발효된 ‘한미 미사일 지침’이다. 미국은 미사일 탄두 중량이 500㎏을 넘게 되면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고, 사거리가 300㎞ 이상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를 가지고 한국의 미사일 기술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현대 전쟁에서 미사일이 갖는 중요도를 고려해볼 때, 한국의 자주국방 능력은 미국과의 협정으로 심각하게 제약받고 있는 것이다.

 

한미간 불평등 협약은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덩치가 커지면서 경제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1997년 12월 3일, 한국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는 가장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의 하나이다. 의사결정 구조가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IMF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긴급 구제 금융을 조건으로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권한을 요구해 경제정책결정에 노골적으로 개입, 경제의 신탁통치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충격적인 사실은 IMF가 한국 대통령의 통치권까지 제약하려 했던 점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던 한국의 사정에 따라 IMF측은 한국의 3당 대통령후보들이 IMF와의 합의 의향서를 이행한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각서 형식의 문서에 서명했고, 김대중 후보는 서명을 하지 않는 대신 김영삼 대통령 앞으로 별도의 이행 서한을 보냈다. IMF의 이러한 행위는 다음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까지 간접적으로 구속하는 행위라는 정치적 비판을 받았다.

 

당시 IMF의 가혹한 정책 강요 행위는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IMF의 대책과 대조되면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2010년 6월 3일 연합뉴스와 가진 서면인터뷰에서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IMF가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요구한 것들이 너무 혹독했다는 지적에 대해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면서 잘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같은 시기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IMF 구제 금융을 거부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는 IMF와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한 한국을 두고 “주권을 포기해버린 거지”로 묘사하였다.언론들은 일제히 경제주권을 상실했다고 보도했다.

 

한미FTA, 불평등 경제협정의 결정판

 

한미간 불평등 경제협정의 결정판은 한미FTA 협약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의 이행이 한창이던 1998년, 미국은 한국과 또 다른 투자협정 체결을 시도했다. 바로 한미 양자 투자 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다. IMF와 맺은 협정으로 주식과 채권시장 등이 완전히 개방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친 후, 미국은 양자 투자협정 체결로 한국 시장의 개방 폭을 더욱 넓히려 한 것이다.

 

한미 양자 투자협정은 미국이 한국 영화산업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협정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많은 영화인을 비롯한 국민의 반발에 부딪히고,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외국자본에 대한 우려로 2003년에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미 양자 투자협정은 2006년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함께 부활하게 되

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2일, 이명박 정부 아래서 국회는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였다.

 

세계 주요국 FTA 추진 현황 (2011년 12월 기준)

 

 

기체결

협상중

한국

칠레,싱가포르, EFTA,아세안,

인도,EU, 미국

콜롬비아,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터키

미국

NAFTA, 중남미 5개국, 도미니카, 모로코, 바레인, 싱가포르, 오만, 요르단, 이스라엘,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호주

-

일본

ASEAN, 말레이시아, 멕시코,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칠레, 태국, 필리핀

GCC, 베트남, 스위스, 인도, 한국, 호주

중국

ASEAN, 마카오, 칠레, 파키스탄, 홍콩

 

GCC, 뉴질랜드,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호주

EU

EFTA, Faroe Islands, OCTs, PLO, 남아프리카공화국, 레바논, 마케도니아, 멕시코, 모로코, 시리아, 안도라(관세동맹), 알제리,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칠레, 크로아티아, 터키, 튀니지, 한국

ACP, GCC,

MERCOSUR, 이란

 

ASEAN

AFTA(10개국), 일본, 중국, 한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NAFTA, EFTA, EU,

MERCOSUR, Northern

Triangle, 과테말라, 니카라과, 볼리비아, 브라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이스라엘, 일본, 칠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베네수엘라

싱가포르, 파나마,

페루, 한국

 

 

 

 

칠레

Trans Pacific(SEP), CACM,

EFTA, EU, MERCOSUR, 멕시코, 미국, 온두라스, 인도(PTA), 일본, 중국, 캐나다,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FTAA, 베트남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요셉 스티글리츠 (Joseph E. Stiglitz) 교수는 MRZine지와의 인터뷰에서 FTA 는 "해당 국가의 생산구조를 파괴할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스티글리츠는 약소국으로서 미국과의 FTA는 “협상이 아니라 강제부과"라고 까지 말했다. 또, FTA는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고, 약소국으로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실정이라면, 한국정부는 왜 미국과의 FTA를 서둘렀는지 그리고 미국은 한국과의 FTA에 왜 그리 목을 매달았는지 그 속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를 보자. NAFTA, 중남미 5개국, 도미니카, 모로코, 바레인, 싱가포르, 오만, 요르단, 이스라엘,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호주 등의 나라가 2011년 12월 현재 대미 FTA 체결국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 중 가장 큰 무역대국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2011년 기준으로 발표한 수출입을 종합한 세계무역규모 순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한국, 홍콩 등의 순이다. 세계 10대 무역대국 중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스티글리츠는 약소국의 대미 FTA를 우려했지만 오히려 강대국들이 미국과의 FTA를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가장 밀접한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마저 미국과의 FTA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FTA를 채결한 국가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거나, 경제사정이 매우 열악한 약소국들뿐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7번째로 교역량이 많은 경제대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FTA를 체결한 약소국들과는 그 입장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왜 미국과의 FTA 체결을 서둘렀을까? 일단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미국의 재정적자와 한미FTA

 

미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그리고 지속 불가능할 정도의 부채를 초래하고 있다. 2012년 7월 8일 현재 미국 연방의 부채는 15조 8천 6백억 달러를 넘고 있다.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 14조 6천억 달러를 이미 초과했으며, 2012년 미 연방 예산의 4배를 넘어선 수치다. 참고로 2012년 연방예산은 3조 7천억 달러로 1조 1천억 달러의 적자 예산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를 제외하고, 미국은 1792년 회계가 시작된 이래 이처럼 빚을 진 적이 없다. 현재, 달러의 이자율은 낮고 달러 가치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이런 재정적 추락은 우려라기보다는 이야기꺼리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용한 상황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자 세계 준비통화의 발권자로서 미국은 그런 전례 없는 부채 수준을 키우면서 앞으로 10년을 보낼 처지가 아니다. 만약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부채 중독을 억제하려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세계 금융시장이 재정정책에서 급격하고 징벌적인 조정을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의 내핍시대가 될 것이며 재정지원 복지프로그램과 방위비 등 어떤 종류의 연방 지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물론 개인 및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다가오는 시대의 국제관계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책임있는 예산 추이는 지출 삭감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이자 비용은 삭감될 수 없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프로그램도 삭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지출 위주의 전략은 모든 지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방위비와 국내 임의경비 모든 분야 모두 획기적으로 감축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등 제국의 과잉 팽창정책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모습이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의 재정위기를 보면 미국이 왜 FTA에 목을 매고 있는지 그 답이 보인다. 조만간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역국이란 자리도 내놓게 된다. 수출은 2011년 현재,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2016년경이면 중국이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등극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그렇다면 왜 한국인가? 한국의 수출입 비중을 나타낸 표를 보면 정답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본격화된 시기는 2000년 대 초부터다. 이 시기는 미국,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의 수출입 구조가 중국 및 EU 등으로 다변화된 시기와 묘하게 일치한다. 특히 중국은 2000년 대 중반부터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으며 2012년 현재는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무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일본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포함된 전통적 우방국들과 FTA를 먼저 체결하고 싶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어떤 국가들인가? 결국 미국은 한국을 모델케이스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1882년 이래 영원한 속국, 미국은 한국을 선택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우리는 왜 한미FTA를 반대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 글에선 2011년, 민주노동당이 정리한 12가지 독소조항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1) 래칫(톱니바퀴의 역진방지장치) : 한번 개방된 수준은 되돌릴 수 없다.

낚시할 때 쓰는 미늘 같은 것인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선진국 및 산업국가사이의 FTA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소조항 중 하나다.

-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화 되는 상황이 와도 절대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절대 수입을 막지 못한다.

- 의료보험이 영리화되고 병원이 사유화 된 후 아무리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 된 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가 된 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

2)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 명시된 비개방 분야 외 나머지를 모두 개방.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포지티브방식- POSITIVE)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시장은 무조건 모두 개방해야 한다.

- 온갖 도박장, 피라미드판매업 등 미국의 서비스 산업이 국내에 마구 들어오게 될때 군말없이 이것을 수용해야 됨.

3)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 다른 나라에 미국보다 더 많이 개방할 경우에 자동으로 미국에 적용.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 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 FTA에 소급 적용하는 조항이다.

- 일본과 FTA를 체결할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잇을 수 있다. 그래서 콩이나 보리를 개방했을 경우, 원래 한미 FTA에는 없던 콩이나 보리도 즉각 미국에게 개방해야 됨.

 

 

4) 투자자 - 국가 제소권(ISDS) : 다국적기업이 제멋대로 제3의 민간기구에 제소.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 민간 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이 경우 당연히 한국보다 힘쎈 미국의 투기자본 및 초국적 기업이 승리한다.)

한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 시키는 독소조항이다.

- 이 제도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음.

-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음.

- 한국과 유럽의 FTA에 협상에서는 이 독소조항을 논의조차 하지 않음.

- 대한민국의 헌법상의 주권 국가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이 무너짐

- 한국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

5) 비위반 제소 : 사업자가 기대 이익을 얻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국가에 소송을 제기.

FTA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 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민간기구에 상대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자본이나 기업이 자신들의 경영실수로 기대이익을 못 얻었을 경우라도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국제 민간기구에 제소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음.

6) 정부의 입증 책임 :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무조건 개방.

국가의 정책, 규정 등 상대 국가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중 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여론 같은 경우, 과학적 입증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임

-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의 국제적 위상이 취약함

 

 

 

 

7)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 미국인에게는 한국 법보다 한미FTA가 우선 적용.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조항이다.

-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토지 공개념 등 사유를 제한하는 공동체적 법제를 가지고 있음(미국은 한국과 정반대) 그러나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공동체적 법체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

- 한미FTA를 한국정부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상위법인양 해석되게 됨

-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명무실 해질 위험이 있음

 

 

8)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 사업장을 우리나라에 설립하지 않아도 영업가능.

상대국가에서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도 영업을 할 수 있게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에 설립되지 않은 회사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비설립권 조항으로 인해 부과하거나 불법사실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 미국은 각 나라와 FTA를 맺으면서 "FTA이행법" 을 만들었음 : 이 법에서 " 미국법률에 저촉되는 모든 FTA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미국인에게 무효다"라고 선언했다.(미국에서는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 일뿐임)

- 한국정부는 한미FTA에 저촉되는 한국의 모든 법(30여개)을 고치려고 한다. ( 한미FTA가 조약이며 법률이라고 주장함)

9) 공기업의 완전 민영화 +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 미국 자본에게 한국은 100% 먹힌다.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 의료보험공단, 한전, 석유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중소기업은행도시가스, 수도공사, 우체국, 주택공사, 지하철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에게 넘어가 사유화될 가능성이 농후함

-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이 대폭 인상되게 됨으로서 서민경제가 파탄 나게 됨

10)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 한국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단속권을 미국이 직접 행사.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의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고가의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카피약 사용불가능

- 미국의 경우 완벽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성인1인당 1달에 70만원(700$)지출)

- 카페, 블로그, 개인홈피 등 지적재산권 문제로 엄청난 분쟁을 격어야 함

 

 

 

11)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 한국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더 한국금융 시장이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게 하는 조항이다.

- 외국투기자본이 한국 내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됨

- 외국투기자본이 국내은행의 주식을 100%소유할 수 있게 됨

-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감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떼부도를 맞게 됨

- 사채 이자율이 제한이 없어지고 사채천국이 됨

12) 스냅백 조항(snapback)

한국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자동차 협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 관세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 되고 한국경제는 막장으로 내몰리게 됨

 

  FTA 그 후 캐나다, 멕시코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들의 경제현황은 어떠할까?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 중에 내노라할만한 국가는 겨우 오스트레일리아 정도다. 그것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S)를 삭제한 다음에 체결했다. 일찍이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로 결속한 멕시코는 지금 경제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거의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이 추락하였다. EU·일본·북유럽·중국 등 강대국들이 미국과는 단독으로 왜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고 있는지 세계은행(IBRD) 보고서가 간접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상의 세 가지 FTA 유형(type) 중 미국과의 FTA 방식이 가장 혹독하고 예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South-South Type)이 아니고, 또 고유한 경제제도나 토착경제ㆍ문화정책에는 비교적 관대한 범관세 및 무역관련 경제협정(EU Type)도 아니다. 미국과의 FTA 방식은 그 어느 협정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 전반적인 투자 및 경제제도 동조화 협정이 미국식 FTA이기 때문이다.

 

1989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이후 각종 경제통계를 살펴보면, 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5년 미국의 77% 수준이던 것이 10년 만에 68%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간당 8.8달러 이하를 버는 성인 남성의 비율은 1989년 7.9%에서 1993년에는 8.9%로 늘었고, 같은 기간 시간 당 27.6달러를 버는 비율은 9.3%에서 11.6%로 늘어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 자유무역협정 발효 직후부터 1993년 사이 하위 10%에 속하는 남성 노동자의 연간 실질소득은 무려 31.2%, 하위 20%는 20.2% 줄었다. 상위 20%는 연간 실질소득이 2%만 떨어졌다.

 

분배의 악화는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집계한 회원국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감 추이를 보면, 캐나다의 경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1989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2.1% 증가에 그쳐, 이전 10년 동안(1979-1988년)의 연평균 증가율 3.1%보다 1%포인트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회원국 평균치 2.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성장둔화의 요인을 일시적 세계경기 침체 등 다른 외부환경 탓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발효 전 10년 동안에는 캐나다의 증가율이 회원국 전체 평균치(2.9%)를 웃돌았다. 캐나다의 경제성장이 다른 회원국들에 뒤지는 양상은 1994년 나프타 발효 뒤 10년 동안에도 이어졌다.

 

한미 FTA는 미국과 한국 모두 비준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10년 후 모습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10년 후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는 그저 체념만 하고 있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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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불법선거 시효 없다, 2012 대선은 무효
명백한 관권선거 묵인하는 것도 범죄다"

[인터뷰]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13.12.26 08:45l최종 업데이트 13.12.26 12:57l유성호(hoyah35) 장윤선(sunn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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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 세웅 신부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부정선거이고 대선 자체가 무효이다"며 "명백한 관권선거를 묵인하는 것도 민주시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다"고 강조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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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은 전쟁범죄 및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 시효가 없다고 결의했습니다. 관권 불법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주도한 불법선거에 시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개선해야 합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부정선거입니다. 대선 자체가 무효입니다. 명백한 관권 선거를 묵인하는 것도 민주시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함 세웅 신부의 말이다. 함 신부는 아주 명쾌한 논리로 2012년 대통령선거의 불법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우리 역사가 친일파와 독재세력에 의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안 됐기 때문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유신의 핵'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제거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무 엇보다 함 신부는 지난 1년 내내 지속되는 이슈 대선불복과 불법선거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민주시민의 자세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당부했다. 함 신부는 "정보부(국정원)가 앞에 나서고 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정부기관 등이 모두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 아닙니까?"라며 "그럼 선거 자체가 무효다. 선거법상 관권 불법선거는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함 신부는 "명백한 관권 불법선거를 묵인하는 것 자체도 민주시민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고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 같아요"
 
 

함 신부는 또 우리 사회 역사인식이 왜곡되는 주요 원인으로 언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서 언론이 제일 큰 범죄 집단"이라며 "구체적으로 저는 <조선일보>를 지적한다. <조선>의 왜곡된 시각으로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 보여라' (마태오 3,7.8)"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조선>은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들 같다"고 묘사했다.

함 신부는 "70~80년대는 뜻있는 기자들이 정론을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고 진실보도를 위해 불의한 정권에 대항했는데 지금은 불의한 정권의 하수인, 아니 동업자가 된 조·중·동과 KBS, MBC, SBS 등 수구 언론은 진실과 사실 보도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며 "언론인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고 싶다고 했다. 진심으로 언론의 회개를 당부한다고도 전했다.

최 근 무리하게 진행된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는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대문구 서소문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층 회의실에서 했다. 함 신부는 민주주의자 고 나병식 선생의 노제에 참석했다가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감기로 몸살을 앓던 중에도 함 신부는 박근혜 정부와 유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그의 심장에 총을 겨눈 김재규 부장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런 함 신부에게 도무지 '안녕하시냐'고 물을 수 없었다. 끝내, 묻지 못했다.

다음은 함세웅 신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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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웅 신부는 "불법선거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런 공동체에 희망이 있겠나, 오랜 동안 끊임없는 민주화 과정 그리고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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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201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정국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는데, 신부님께서는 현 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의 평화일꾼들, 밀양 송전탑 건설저지를 위한 주민들, 쌍용차 희생자들과 구성원들 그리고 철도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신음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시민들은 지난 대선에 대해 정부가 주도한 불법 관권선거였다고 말했습니다. 개표부정 문제를 비롯해 국정원 댓글이 2200만 건이 됐고, 수사 인력의 한계로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까지 법정에서 제기됐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 지금 이 순간에도 불법선거 의혹이 지속해서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선거법 시효가 다 끝나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새누리당도 늘 그 문제를 제기합니다.
" 유엔은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에 해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고 결의했습니다. 관권 불법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주도한 불법선거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합니다. 40년 전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어둠과 그림자를 늘 체험하게 되는데 그걸 극복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유신독재 회귀를 극복하는 방안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 유신의 핵인 박정희(전 대통령)를 제거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그 문제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고 또 김 부장 역시 권력자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문제제기입니다만, 김 장군의 행업을 공동체적 시각, 역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까지 김재규 부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하에서 김 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1979 년 당시 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향해 총을 쏘았는지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계엄하에서 전두환 정권에 의해 왜곡된 목소리만 전해져 김재규 부장의 진실한 뜻이 왜곡됐고 지난 34년간 나쁜 사람으로만 전달됐습니다. 제가 1979년 10·26 당시 인권변호사들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김 부장은 부마항쟁을 계기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유신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제안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김재규는 왜 '유신의 핵' 박정희 심장을 겨눴나

- 김재규 부장이 부마항쟁을 통해 변화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습니까.
"김 부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요사이 우리 시대 화두가 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 학생의 고백과 선언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실 김 부장은 부마항쟁 현장에서 크게 깨닫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중 정부장으로서 최루탄이 터지는 현장 답사를 위해 택시 타고 가면서 기사를 통해 '유신의 한계가 왔구나, 독재자를 제거해야 할 때가 왔구나'하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부마항쟁 가운데에서 회개하고 깨달은 겁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김 부장은 우리 시민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과 박정희 1인 체제, 유신독재 그것이 핵심적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 핵을 제거시킬 때 공동체의 안녕을 되찾을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시대가 그를 깨우친 것입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삶, 자신의 길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청렴결백한, 참으로 인간적인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중앙정보부장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그는 제2의 권력자로 분명히 유신의 공범자입니다. 그럼에도 공범자로 남지 않고, 청년학생 시민들의 봉기 속에서 '내가 설 자리가 과연 어디인가? 이분들과 함께 손잡고 유신의 핵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책무를 깨달은 겁니다. 

바로 여기에 김 부장의 깨달음과 결단, 회개의 전적 전환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어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핵심을 읽지 못한 채 껍데기 현상만 보고 이말 저말 하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인 셈이지요."

- 1979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신부님은 어떠셨습니까. 김 부장의 결단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될 거라고 감지하셨습니까.
"1979 년 10·26 당시 저는 영등포 감옥에 있었습니다. 함께 구속되어있던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27일 아침인데 교도소가 비상이었어요. 교도관이 모두 군복을 입고 재소자들은 일체 방에서 못 나오게 하고 작업도 취소되고, 교도소 분위가 무척 살벌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동아투위 기자들이 '신부님 아세요?'라고 묻길래 저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어젯밤 김재규 중정부장"이 '그냥 손짓으로 총 쏘는 모양을 하면서' "박정희를 쐈어요. 그래서 박정희가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방에 와서 점심밥을 받아 이불 속에 넣어놓고 낮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된 이스라엘, 모세를 통해 갈대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간 이야기, 바빌론 70년 유배에서 해방된 유다인들의 기쁨과 환호소리. 저는 그 순간 모세의 기적, 유다의 해방 그 기쁨과 감격을 실제로 마음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으리라 그 누가 생각했으며 더구나 어떻게 감옥에서 제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건 은총의 사건, 하늘의 사건, 이것이 바로 기적임을 깨닫고 20여분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는 김재규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의 손길은 뜻밖에 우리를 찾아와 이렇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열망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구나' 라고 종합하면서 묵상했습니다."

- 감옥에서 나온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을 텐데…,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온 거지요?
" 정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저희들이 나오고 며칠 뒤 12·12 전두환 군사반란 일어나 숨 쉴 사이도 없는데 이돈명 변호사님, 황인철 변호사님 등이 저와 동료사제들에게 김재규를 살려야 한다며 구명운동을 재촉했습니다. 그래야 이 땅에 유신체제가 청산되고 참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는 거예요.

80년 3월 명동성당 사순절 특별강론에서 저는 김재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는 성경말씀과 연계하여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김재규 부장의 행업에 대해 공감할 뿐 아니라 감동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목숨을 걸고 유신의 핵을 제거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김 부장의 결단은 회개와 함께 한 전적인 전환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감행한 일로 그는 이것을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전두환 일당의 음모로 그의 혁명은 무산되었지만, 그분의 뜻은 영원히 남습니다."

- 지금은 그 유신의 핵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데요. 이 역사적 현실을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 문영심 작가는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되겠나-김재규평전(시사인북, 2013)>에서 이를 시사하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김재규 부장에게는 역사의 심판, 제 4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심판 그 4심의 순간에 와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에 대한 모든 잘못과 실정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유신 잔당과 졸개 그리고 그 딸의 거짓과 기만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김재규 부장의 뜻을 되새겨야 합니다.

저는 신학도로서, 성서의 가르침, 하느님의 섭리를 늘 확신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70년 뒤인 1979년 같은 날 독재자 박정희가 제거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의 일치입니다만 70이라는 숫자에서 성서적, 상징적 의미를 읽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70은 완결과 해방,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행업이 늘 현실 역사 속에서 이뤄진다는 실천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 제거와 김재규 부장의 독재자 박정희 제거는 70이라는 숫자 안에서 신학적으로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묘한 사건입니다."

공동선 실현을 위한 정당방위... 안중근 그리고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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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 세웅 신부는 최근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압수수색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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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사제로서 신부님께선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는 사제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십계명의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1909년 당시 뮈텔 주교도 천주교 신자는 살인할 수 없다며, 안 의사의 의거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신학적으로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의 행업은 공동체 차원에서는 공동선 실현을 위한 정당방위입니다. 그것은 보편적 사랑을 실천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편적 사랑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신학자 요한네스 멧츠도 사랑의 원리에서 불의한 자를 제거하는 일은 바로 공동선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검사 심문 과정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살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기계적 이해를 넘어 하느님의 손길, 정의와 공동체의 책무를 우선시했습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침략자와 독재자를 제거하는 일은 바로 사랑과 정의의 실천입니다."

- 김재규 부장의 행업도 정당방위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입니까.
" 공동체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정당방위를 신학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김재규 부장이 철권통치, 영구집권을 꿈꾸는 독재자 박정희를 제거한 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한 투신행위입니다. 법정진술에서 확인되었듯이 박정희의 사생활은 말할 수 없이 무질서했습니다. 박선호 과장은 그를 짐승과 같다고 비유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김재규 부장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등 우방국가들과의 우호증진을 위해서도 부도덕한 독재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독재권력의 1차 폭력에 대응하는 공동체의 정당방위 차원에서 우리는 김재규 장군의 행업을 읽어야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선친의 산업화 행업에 대해 민주화세력이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만들어놔서 그야말로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새마을운동 등도 복원하기 위해 국회에 예산신청까지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종합적으로 오늘의 불법 관권선거로 집권한 새누리당과 그 권력자는 양승조 의원 말대로 과거 잘못된 독재자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입니다. 김재규 부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잘 이뤄져야 합니다.

김 재규 평전을 우리 모두가 읽고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성을 지닌 아름다운 마음, 약자를 위한 배려, 불의한 자를 타파함이 김재규 장군의 의지였습니다. 이에 그는 "불의한 권력과 부패세력을 퇴치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정권과 야합한 불의한 재벌, 부패기업들, 부패한 정치세력들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그는 법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 청와대는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창신 신부의 발언 등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정부, 그리고 거짓과 사이비 언론이 말하는 종북몰이, 심지어 사제들에게도 그런 걸 갖다붙이니 그 자체가 모순이며 우스운 일입니다. 강론은 신앙의 영역으로, 하느님의 자리입니다. 성당영역을 정부 공권력이 침해해서 들어갈 수 없듯이, 기도하는 자리, 미사의 영역, 말씀선포의 자리, 그 초월적 영역을 공권력이 넘본다는 발상 자체가 종교에 대한 무지일 뿐 아니라 하나의 폭력이기도 합니다.

불의한 독재자들이 툭하면 정교분리를 말하곤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강론에 대한 공권력 개입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적 발언과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이 발표되어 이 모든 거짓 작태들이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특히 사제들에게 "고통받는 현장으로 가라, 흙이 묻어도 낮은 곳으로 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적 외침은 너무 신선합니다. 한국의 거짓언론과 불의한 권력자들이 회개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종북물이는 오물입니다. 오물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하수구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주제를 품어야 합니다."

"종북몰이는 오물... 오물은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버려야"

- 박근혜 대통령이 왜 종북몰이를 한다고 보십니까.
" 이념갈등과 남북분단은 친일파와 이승만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한 불행한 역사의 산물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는 남북분단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고문하고, 죽이며, 18년간 권력을 유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민족보다 정권을 앞세우는 이념갈등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증거입니다.

민족애를 바탕으로 북과 잘 연계해서 화해와 일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지만, 1천년이 지난 오늘 삼국시대 역사는 모두 우리 선조들의 역사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우리 조국의 뿌리입니다. 100년, 200년 뒤 남북 모두 우리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선조들의 삶이 됩니다. 체제와 이념은 달랐지만 북이 좀 어려웠던 시기에 남이 북의 동포들을 도와줬다면 아름다운 역사로 우리 후손들은 칭송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은 유신세력의 집권이라기보다는 친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은 것과 같다는 해석도 있는데 신부님께서는 이같은 정치권의 분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해방 당시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분단이 영업이 되는 겁이다. 전쟁을 부추기고 분단으로 긴장을 고조해서 우리 국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1945년 친일파와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게 결국 친일, 독재, 분단세력에게 집권할 기회를 준 것이지요. 지금 정권은 또 다시 분단을 빌미로 불법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는 공안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는 바로 친일파, 독재추종자와 똑같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은 읽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분명한 민족사관을 갖고 정의를 기초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 민주화운동을 해오시면서 더울 더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역사관을 갖게 되신 거지요?
"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일하면서 깊이 깨달은 교훈이 있습니다. "일제침략에 맞서 나라 찾기 위해 애썼던 항일독립투쟁, 독립전쟁이 민주화운동의 바탕이 돼야 한다, 해방 공간에서 남북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던 여운형 선생님, 안재홍 선생님, 김구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의 삶이 우리의 자산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위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부와 맞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애쓴 많은 분들의 노고가 이어져야 민족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항일-반독재민주화-통일운동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이며 오늘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역사적 가치입니다.

일제 강점기 역사왜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면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식민사관을 내세워 일본이 우리를 위해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민족정신을 팔아먹는 현대판 매국노입니다. 교과서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매국노입니다.

일제에 항쟁하고, 독재와 맞서 싸우고,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을 왜곡하고 역사를 날조하는 이들은 모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과 야합했던 친일잔재, 독재잔재 후예들로 한나라당, 새누리당 졸개들입니다. 이런 권력지향적 역사관, 늘 분단을 앞세우면서 득을 보자는 역사의식 없는 사람들을 민족사적 관점에서 단죄해야 합니다."

- 한국사회에서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인식이 제대로 박히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오늘의 현실에서 보자면, 언론이 제일 큰 범죄 집단입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조선일보>를 지적합니다. 저는 한평생 <조선일보>를 지켜봤습니다. <조선일보>의 왜곡된 시각으로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 보여라' (마태오 3,7.8)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들 같아요.

우 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하듯이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보를 들어야 합니다. 거짓 소식, 왜곡된 정보를 들으면 우리 판단력은 마비되고 세상에는 온갖 거짓과 갈등이 난무하게 됩니다. 70~80년대는 그래도 뜻있는 기자들이 정론을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고 진실보도를 위해 불의한 정권에 대항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불의한 정권의 하수인, 아니 동업자가 된 조중동과 KBS, MBC, SBS 등 수구 언론은 진실과 사실 보도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습니다. 진심으로 "언론의 회개"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 소위 주류언론들이 권력자들과 야합한 채 진실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의 진실된 자기 성찰과 변화, 회개의 과정도 <조선>과 같은 신문은 왜곡했습니다. "언론과 손잡는 젊은이 일베" 이 사람들이 전부 자본의 노예가 되면서 거짓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해방 당시 남북분단으로 북에서 내려온 젊은이들을 모아 한민당과 김성수 등 친일파들은 통일과 좌우합작을 주장하는 분들을 공격하는 테러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동아·조선>은 이러한 테러행위의 방패막이가 되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이겨내야 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요한복음 1,5) 악의 세력이 교활해도 우리 젊은이들은 언제나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모아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바른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언론인들, 안녕들 하십니까?"

- 철도노조가 벌써 보름이 넘도록 파업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경찰은 영장도 없이 형사소송법 절차를 어기면서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검거작전을 벌였습니다. 이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안 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정부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특히 언론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획일적 문화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움직이는 독재 문화입니다. 언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론인들 안녕하십니까? 자기들이 함께 해야 하는데 조·중·동·종편 같은 거야 공범자들이니 같이 고민할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그 외 깨어있는 언론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입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서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아픔을 겪게 되니까 저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모든 분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소리치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존중의 상식이며 정치도 상식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1년도 안돼 벌써 40%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임기가 앞으로 4년 남았는데 신부님께서는 박 대통령이 어떻게 정국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신학교에서 배운 라틴어 격언에는 페스티나 렌떼(festina lente)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서둘러라. 바쁠 때는 더욱 천천히 하라는 뜻입니다. 두 단어가 모순인데 모순적 행업이 합할 때 조화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음악에도 불협화음이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 불협화음이 아닙니다.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정부의 주장과 노조의 주장에 차이가 있고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 민주주의의 매개가 대화입니다.

'대화를 거치지 않는 공권력 투입은 헌법 위반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권력을 공유하고 있거나 그 주변에 계신 분들이 이 부분을 책임자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국민들 편에서는 불편하고 노동자들은 강경해지는 것입니다. 그 잘못을 정부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그게 독립항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선열들이 일깨워준 지혜입니다."

- 신부님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1년 내내 비판하면 전부 종북이라거나 대선불복프레임으로 엮어서 일종의 '반역자' 취급을 했습니다. 반대하면 대화로 푸는 게 아니라 잡아들이고 구속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대선불복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불복은 결과로 나온 거고 개표과정에서의 불법성, 선거과정에서 정부기관이 개입한 관권불법선거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큰 부정선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부가 앞에 나서고 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정부기관 등이 모두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 아닙니까? 그럼 선거 자체가 무효입니다. 선거법상 관권 불법선거는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헌법을 어겼으니 죄송합니다 이렇게 접근해야지, 불복이냐 아니냐 하는 언어의 유희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합니까?
"단어 자체가 틀렸습니다. 하야는 왕정시대 용어입니다. 4·19 민주혁명 당시 "이승만 하야"라고 했는데 이승만 사퇴로 용어를 정정했습니다. 사퇴라고 해야 합니다."

- 이같은 관권부정선거 앞에서 민주시민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명 백한 관권불법선거를 묵인하는 것 자체도 민주시민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고 범죄입니다. 정치적 선택은 관권, 부정, 불법 선거로 당선된 자가 해야 할 몫이지만 시민으로서는 부정, 불법, 관권선거라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사퇴하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꼭 결과가 이뤄져야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옳으냐, 그르냐, 정의냐, 불의냐, 하는 가치 판단이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그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관권선거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런 공동체에 희망이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끊임없는 민주화 과정 그리고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고 민주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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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을 제한하나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⑩]
 
허환주 기자 2015.12.27 09:06:59

 

김경욱 씨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조직에 힘썼다. 파업 때 비정규직 노동자를 참여시키지 않았나. 첫 단추를 그렇게 채웠다. 이후부터는 그때 파업에 참여한 세 사람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받아야 했다. 단체협약상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을 금지했다. 이에 비밀리에 비정규직을 조직했다. 쉽지 않았다. 정규직 조직보다 백배 천배 어려웠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에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가입하는 사람도 사고를 쳤거나 해고될 위기에 있는 이들이었다. 한 달에 세 명 가입하면 두 명 탈퇴 하는 식이었다. 이게 반복됐다. 이슈가 없다보니 노조 가입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했다. 이슈가 있을 때는 줄기차게 달라붙었다. 2005년 임금협상 때는 주5일제가 이슈였다. 회사는 당연히 주5일제가 임금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노조는 임금문제라며 협상을 요구했다. 당시 노조는 임금이 깎지 않는 주5일제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거부했다. 노사간 평행선을 달렸다. 
 
그 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회사가 임금을 그대로 두는 주5일제를 실시했다. 노조 요구안을 받은 것. 대신 노조와 아무런 협의없이 결정했다. 노조로서는 회사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노조의 성과로 가져가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알아보니 정규직만 임금이 그대로인 주5일제였다. 비정규직은 제외됐다. 김경욱 씨는 비정규직도 동등한 주5일제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곧바로 간부 파업에 들어갔다. 
 

ⓒJTBC

 
하 지만 파업은 쉽지 않았다. '눈물 나는 파업'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참여하는 간부가 거의 없었다. 2명이 참석해 집회를 하는 일도 있었다. 휴가 중인 지부장 몇 명만 나왔다. 그래도 끈덕지게 비정규직 주5일제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비정규직이 주5일제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소식지에 줄기차게 실었다. 까르푸 프랑스 본사와 국제상업연맹에도 이메일을 보내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을 6개월 동안 이어갔다. 그러자 회사가 질려버렸다. 노조가 불법도 안 저지르니 고소도, 징계도 하지 못 했다. 회사가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까르푸 직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주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주5일 근무를 위해 파업까지 포함해 6개월 이상 투쟁한 사례는 흔치 않다.  
 
직원 수당이나 단체보험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차별을 받았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단체보험이 매우 중요했다. 매장 직원 중에는 일반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보험 비용이 비싸다보니 쉽게 가입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들을 위해 회사가 단체보험을 들어주도록 노조가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단체보험이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것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조합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지 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 회사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정규직 조합원의 반발이 김경욱 씨를 힘들게 했다. 정규직 간부들이 노조 회의 때마다 한 말이 '위원장님, 계속 이렇게 할 거예요?'였다. 언제까지 비정규직을 챙길 거냐는 뜻이었다. 비정규직 이슈만을 끌고 오는 김경욱 씨를 질타했다. 김경욱 씨로서는 대의명분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약속한 게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을 다 탈퇴시키고 정규직만으로 노조가 갈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반쪽짜리 노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규직이라서 비정규직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고 하면 나도 여러분을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 나는 관리자다. 관리자가 평직원들을 위해 왜 싸워야 하나.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여러분이 비정규직을 챙기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노조 안 하겠다." 
 
이렇게 넘어가고 넘어가고를 반복했다. 김경욱 씨 말 중에 틀린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 노조 간부들도 할 말이 없었다. 뒤에서는 뭐라고 할지언정 앞에서는 아무 말 못했다. 
 
내부 반발이 이어졌지만 김경욱 씨는 지속해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같은 노동자인데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더구나 같은 노동자끼리 차별하는 구조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조를 시작하며 들은 '노동자란 무엇인가' 강연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 노조, 그리고 노동운동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비정규직도 싸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같은 노동자 아닌가.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은 단체행동권도, 단체교섭권도 가지지 못하나. 그리고 그 권리를 왜 정규직 임의대로 제한해야 하나.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싸울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JTBC

무 엇보다 비정규직 아주머니 세 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약속이 그를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했다. 그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사람이 김경욱 씨였다. 회사가 당장은 불이익을 주지 않지만, 언제 어떻게 해코지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었다. 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보다 근간에는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밀어내고 대신 노조 위원장을 하게 된 '부채의식'이 컸다. '자존심'과 오기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 내가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날리지 않았나. 그에 대한 부채의식과 책임감이 있었다. 70일 파업 동안 까르푸 중앙노조를 잡고 있는 좌파 정파조직 '미래연대'와 줄기차게 싸웠다. 사실상 중앙노조와 지부가 내부싸움을 한 셈이다. 그 결과, 중앙노조 위원장이 미래연대라는 정파와 함께 물러났다. 그때 함께 파업을 지지했던 학생들도 같이 떠났다. 그때 우리 노조는 무주공산으로 붕 떠버렸다. 민주노총 부천지역협의회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텅 빈 듯했다. 그때 우리를 지지했던 학생들이 떠나면서 했던 말이 늘 뇌리에 남아있다. 
 
'관료, 어용, 투쟁을 망치고 훼손시키고 조합원을 후진화 하는 자, 연대를 저버리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적나라한 표현을 노조 게시판에 쏟아 부었다. 내겐 굉장한 상처였다. 학생들과 잘 지냈는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때 학생들이 썼던 글에 답장했다. 
 
'연대를 배신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 과연 연대가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그 리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종의 오기였다. 내가 날린 노조 위원장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300일 넘게 파업을 했다.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갓 노조에 가입한 내가 파업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파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지 않겠나. 지금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업무에 복귀했다고 그를 공격했다.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고 그랬다.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자연히 '니가 밀어냈으니 니가 하라'는 식이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위원장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전처럼 비정규직 배제하고 가야 하나. 노조활동 편하게 해야 하나. 내가 했던 말이 있지 않나. 300일 넘게 싸워서 단협 체결했을 때, 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 자신이 뱉은 말이 있으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했다."
 
부채감, 자존심, 자격지심…. 이런 것들이 비정규직 조직화, 그리고 이후 이랜드 싸움을 이어나가는 힘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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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1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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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자들 총선출마? 대한민국을 세월호로 만들 셈인가”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11] 단원고 희생자 고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씨

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 14~16일까지 3일간 서울 YWCA 대강당에서는 세월호 특조위의 첫 공개 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주로 참사 당시 해경 구조의 적절성 문제에 대해 다뤄졌고, 증인으로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출석했다.

하지만 여당측 특조위원 전원은 청문회 참여를 거부했고 증인으로 출석한 고위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다’ 등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런가하면 지상파 방송과 종편은 생중계를 하지 않는 등 세월호 청문회를 외면했고, 그나마 한 보도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부실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토록 기다려왔던 이번 청문회를 어떻게 지켜봤을까. 지난 21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단원고 희생자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를 만났다. 다음은 전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세월호 희생자 고 임경빈 학생 어머니 전인숙씨 ⓒ 이영광 기자

“세월호 청문회, ‘기억 안 난다’ 등 모르쇠 답변 난무”

-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세월호 특조위의 청문회가 3일간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해지는 건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 같아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는 이번 청문회에서 유행어처럼 도는 말입니다. 이 말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지키는 리더들 즉, 어른들의 답이었습니다. 이러고도 아직도 어른들 말을 믿고 따르라고 합니다.

이번 청문회로 인해서 책임감 없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 하고 자리만 지키려 하는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권력과 돈의 자리는 끝없는 비리만 만들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고 중요하게 일해야 되는 곳까지 자리 차지하지 마시고 책임감과 청렴한 분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 이번 청문회는 주로 구조에 대한 것이었는데.

“구조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제대로 구조가 이뤄진 것도 없었습니다. 답변한다고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구조를 제대로 행하거나 구조로 보이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증언 중에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라는 말도 나왔다.

“그래서 큰소리가 났잖아요. 마이크를 잡고 상황파악을 못 하고 제대로 인지도 못 해놓고서는 아이들이 철이 없다거나 정신이 없었다는 건 절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던 것 같고 책임자로서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를 한 것 같아요.”

- 청문회의 성과는 무엇으로 보세요?

“청문회 성과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또 청문회 자리를 만들어서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자세히 모르고 있던 내용과 억울함을 일부 시민들과 국민이 좀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인터넷방송이라 해도 더 열심히 알려야 하겠다고 태그를 해주시거나 이를 알려주시는 분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저희는 힘을 내서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304명이 죽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니.. 말이 되나?”

- 청문회에 나온 증인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 중 하나는 그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은 아파서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5~6백 명 타는 배잖아요. 여객선이 위험하다고 상황 접수를 받아놓고도 그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고도 그런 생각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고 그 안에 304명의 승객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런 최선을 다할 것 같으면 아무리 못 배운 저도 그 자리 가서 할 수 있어요. 자꾸 예전에 배가 안 넘어갔다는 말을 하는데 왜 자꾸 그런 상황만 설정하고 얘기하는지 납득이 안가는 피해자들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얘기하는 자체가 이해 안 가요.

그런 자리 오면 최대한 양심적으로 변명이라도 하는 게 최대한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대요. 그건 저희에게 하라고 해도 해요. 저희도 할 수 있는 얘기를 그 자리에 나와서 하는지 이해 안 되거든요.

아직도 저희는 4월 16일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민간잠수사들과 당시 사고를 겪은 분들은 4월 16일에 산다는 얘기를 해요. 그 의미는 생생히 기억하고 앞으로도 잊혀 지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정작 책임 있고 구했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지났다고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해요. 지금 304명을 죽이고도 말이 되나요?”

   
▲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3일차인 16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참고인 증언에 참석한 김관홍(오른쪽) 민간잠수사가 증언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가는 나 몰라라, 희생자 가족들만 진실투쟁 전전긍긍”

- 가장 분노한 건 뭔가요?

“그것은 피해자들이 겪지 말아야 할 상황을 겪고 있다는 자체가 저는 분노해요.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거나 다 밝혀졌다고 하는데 가족으로 인해 밝혀지는 것은 늦게나마 하나씩 밝혀지고 있어요. 그런데 모든 자리를 지금 경찰이든 검찰이든 변호사든 정치인이든 변호사든 하나 나서서 뛰는 사람이 없죠. 가족들로 인해 다 밝혀지는 거잖아요. 밝혀졌다 해도 크나큰 게 밝혀지지 않았고 소소하게 작은 것이 밝혀지는 거예요. 그걸 가족들이 한다는 자체가 억울하고 분노스럽고 국민으로 이 나라에 사는 우리가 너무 억울한 것 같아요.”

- 청문회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고 정동수 군의 아버지인 정성욱씨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는데.

“저는 못 봤어요.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그 모습을 부모님은 다 보셨을 거예요. 250명의 아이가 다 똑같아요. 그래서 차마 고개를 들고 볼 수가 없어서 못 봤어요. 그런데 오죽하면 그 사진을 보여줬겠냐고요. 아이들의 억울함과 진실을 풀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감수하고도 동수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님은 아픈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밝힐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수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가 아이들 진실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거보다 더한 것도 충분히 할 것으로 보거든요. 끝까지 감추려는 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저희는 끝까지 할 거라구요.”

-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특조위원들도 우셨지만, 답변자들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힘겨웠던 건 부모들이었던 것 같아요. 온몸에 힘이 빠져서 나가신 분도 계셨고 힘든 과정을 밟고 있는 건 오로지 가족들이었던 것 같아요.”

“국민 알권리 보장 않는 종편, 존재 이유 없다”

- 청문회에 지상파와 종편 등 방송은 생중계하지 않았고 인터넷 언론에서만 중계한 것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종편방송들 존재해야 하나요? 국민의 알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TV를 보시는 분들이 아무리 적다해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방송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잊는다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일 거예요. 그런 상황인데도 굳이 존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번 청문회도 그나마 인터넷 방송이라도 있어서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이미지출처=민주언론시민연합>

“세월호 왜곡‧매도하는 공영방송, 이런데도 수신료 내야하나”

- 청문회 보도는 어떻게 보셨어요?

“지상파나 종편은 저희를 매도하며 방송했잖아요. 그리고 제대로 알린 건 여지없이 인터넷 방송이에요. 우리가 수신료를 이러려고 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 방송 보는 사람은 방송 끊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게 있듯이 그분들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잖아요. 서로를 존중해야지만 대한민국이 충분히 나갈 것 같은데 왜 그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를 무시하고 왜 이런 식으로 하는지 이해 안 가요.

그런데도 꿋꿋이 방송 안 내보내야 할 방송은 내보내고 내보내야 할 방송은 정작 인터넷 방송에서 내보내요. 그건 관심 있는 사람만 보는 방송을 보고 있어요. 근데 자기 돈 내고 보는 사람들이 행사를 못 하게 하는지 이해 안 가요.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느끼지 못해요. 그냥 보는 게 맞는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반대에서 소리를 내시는 분들에게 중간입장에서 보고 생각하라고 하는데 이게 중간에서 보는 입장에서도 세월호 얘기는 이래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으로 중간에서 본다고 하면 모든 방송에서 틀어주는 게 맞다고 봐요.

왜 세월호라고 해서 거기에 정치를 입히고 또 세월호는 노란색을 입혀서 노란색이 보이기만 하면 태클을 걸더라고요. 그럼 노란색은 존재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러나 노란색이 좋아 입는 사람도 있고 노란색이 좋아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은 다 정치인이고 옷을 입지 말아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자꾸 세월호라고 해서 매도를 하고 색을 입히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이라도 제발 좀 중심의 자리로 돌아오면 좋겠어요.”

   
▲ <사진제공=뉴시스>

“세월호 책임자들 총선출마? 대한민국을 세월호로 만들 셈인가”

- 여당 측 특조위원은 모두 청문회에 불참했고 그중에 몇 명은 내년 총선 선거운동을 했는데.

“총선에 출마하겠다고요?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일 처리도 못하고 사고대책, 수습도 못 하고 책임감 또한 없는 것 같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어른들의 무능함을 확고하게 보여줬습니다. 지금 현재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모르겠다고 하는 일관된 답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총선에 출마해서 일하겠다고 하는데 일할 수 있을까요? 국민을 세월호도 부족해서 대한민국 국민호를 만들어서 진도 앞바다로 나갈 것 같아요. 그들에겐 생명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겠다고 하는 의지도 못 느꼈습니다. 아직도 국민의 생명을 아무 생각 없이 이들에게 맡겨야 할까요?

투표하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대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선거를 하는데 회사원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투표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럼 젊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힘들어서 투표를 제대로 못 할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외국은 하루 일당을 주면서 투표하고 결과까지 지켜보도록 하는 국민의식을 갖게 한대요. 물론 우리는 투표하라고 시간을 줘도 놀러 가는 분도 있겠죠. 근데 이런 현실을 사는 분들은 새벽같이 투표를 하시고 개인 볼일을 보실 거 같아요. 그런 의식을 믿어보려고 노력하고 저 조차도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가며 투표를 반드시 할 거 같고.

물론 투표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공약만 보고 했거든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아가며 투표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권리를 우리가 제대로 해가면서 큰소리를 치는 국민이 되길 바래요.”

“아이들 다 살 수 있었는데…사고현장 보는 게 가장 힘들다”

- 600일이 어느덧 지났는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가족들은 정신없고 미친 듯이 살았던 거 같아요. 서명운동도 다니고 분향소와 광화문을 지키는 상황에서 청운동, 국회, 진도까지 갔고 하물며 동거차도까지 지키잖아요. 가족들이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힘들어도 자식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죠. 그래서 600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600일 즈음 순범이 엄마, 웅기 엄마 그리고 제가 동거차도를 들어갔다 나왔는데 제일 가슴 아팠던 게 현장을 보는 거 같아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사고 현장이 있었어요. 청문회에서 마이크 잡은 사람이 현장에 있을 당시에는 최선이었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나 밖에서 봤다면 최선이었단 자체가 이해 안 가거든요

어장 같은 게 많아서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그 아이들 다 살았거든요. 구조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을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배 안에 들어가라고 했는지 아직도 의문스럽고 그걸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600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거 같아요.”

   
▲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 go발뉴스

“단원고 교실, 안전사회 건설 위한 상징적 의미 커…존치해야”

- 단원고 교실 존치 논란이 있는데.

“모든 곳곳에 있는 아이들 흔적의 자리는 다 아파요. 물론 단원고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정말 힘드신 분들은 혼자 못 가서 여러 명이 함께 가는 자리예요. 하지만 가면 아이들이 거기 있는 것 같고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단원고에는 시민 3천 분도 넘게 단원고를 다녀오셨어요. 근데 모든 분이 암울하거나 칙칙한 장소가 아니라 너무 아이들이 느껴지는 장소래요. 그래서 오히려 부모들보다도 시민이 단원고 교실 존치를 주장하세요.

저 개인적으로 분향소, 광화문, 진도를 다 다녀봤어도 학교를 아이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 같고 아이들의 시야에서 학교와 아이의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아이들 친구들 또한 교실에 찾아와서 아이와 얘기하거나 편지 쓰는 자리예요. 또한 저희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위치에서는 교실은 꼭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잖아요. 마음에서 멀어지면 잊혀지잖아요, 그렇지 않으려고 기억하겠다고 하잖아요. 그렇기 위해서는 존치를 해야 한다고 보고 저희가 편하게 아이를 만나러 가는 자리는 여기라고 생각해요. 추모관도 아닌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희는 그곳을 갈 것 같고 존치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봐요.”

- 올해는 어차피 그 아이들이 3학년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에 존치할 수 있었겠지만, 내년엔 단원고도 신입생을 받아야 하잖아요 존치하면 신입생 교실이 부족할 텐데.

“그 문제는 충분히 방법에 대한 답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미 2월부터 이런 얘기가 있었단 말이에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단지 그걸 빨리 시행해서 아이들이 불편을 겪지 않게 미리 마련해줬으면 논란이 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자꾸 부모들에게 얘기하잖아요. 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관여를 하고 부모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 안 돼요. 그것은 교육청과 학교가 협의하고 부모들에게 얘기해줘야 맞는 것 아닌가요? 이러면 정부와 뭐가 달라요.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경기도 안산에서 일어났잖아요. 이것만큼이라도 교육청이 부모님들의 편이 돼서 경기도에 선물을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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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나와라... 한남동 전세냈나?" 현대차 회장 집 앞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

 

[현장] 희망버스 참가자 보행권 막은 정몽구 자택 앞 남성들
15.12.26 20:05l최종 업데이트 15.12.26 20:17l글·사진 : 조혜지(hyezi1208) 편집 : 김지현(diedie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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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 자택 입구 길을 막고 선 사람들. 이들은 정몽구 회장 항의 방문을 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보행을 저지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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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거 없잖아요."

" 경찰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의 집 골목 앞에 30여 명의 무리와 함께 선 이가 한 말이다. 26일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총 세 단계의 저지벽에 가로 막혔다. 한 벽은 경찰 병력, 나머지 두 벽은 '경찰이 아닌' 사복 차림의 무리들이었다. 

가로 막힌 이들은 오는 27일로 비정규직 투쟁 고공 농성 200일째를 맞는 기아차 사내 하청 최정명·한규협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에 희망버스에 오른 이들이다. 정몽구 회장 집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길 입구 인도에 모인 300여 명(경찰 추산 200명)의 참가자들은 "정몽구 나와라" "불법 파견 진짜 사장 정몽구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 중 일부는 "현대 기아차 = 불법파견" "박근혜 노동악법 = 평생비정규직 시대" 등이 적힌 스티커를 전봇대 등에 붙이기도 했다.

최정명·한규협씨는 모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난 6월 11일 서울 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 옛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랐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근로자 소송을 제기한 비정규직 모두가 불법파견 됐으므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4864명 중 465명 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을 뿐, 제대로 된 법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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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 막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길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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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입구부터 겹겹이 막혀... 희망버스 참가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

"집회, 행진이 아닙니다. 정몽구 회장을 만나 직접 묻고자 왔습니다. 왜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습니까."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사전 집회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경찰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라면서 "흩어져서 최대한 (정몽구 회장의 집에) 가까이 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 지만 인도 주변에 배치된 경찰 병력 300여 명은 사전 집회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이 모인 인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참가자들의 보행을 저지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참가자들이 두 세 걸음을 떼자마자 다급히 "촘촘히 서" "행진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며 길을 막았다. 경찰 병력에 가로막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시민 보행권 무슨 권리로 막나"라고 항의했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사 전 집회 전 먼저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던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아닌 이'들에게 가로 막혔다. 이 무리는 골목 중앙과 정 회장의 집 바로 앞 골목 두 군데로 나뉘어 길을 지키고 섰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진입을 시도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짜는 손에는 핫팩이 한 개씩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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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횡단보도 앞에 배치된 경찰 병력 50여 명이 정 회장에게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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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를 막고 선 사람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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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은 어깨에 "집회시위 과도소음 쾌적한 주거 환경 파괴한다"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었다. 지난 9월 12일 희망버스 당시 정몽구 회장 앞을 지키고 섰던 30명의 현대·기아차 관계자들이 두르고 있던 띠와 같은 문구였다(관련 기사 : "쇠파이프 운운 김무성, 집안 단속이나 잘해라").

정 몽구 회장의 집 입구를 지키고 선 30여 명의 무리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아니다, 집회 신고를 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집회를 신고한 단체의 이름이 뭐냐고 묻자 "확인이 안 된다, 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어떤 회사인지는 모른다"라고 답했다.

"여긴 그냥 도로잖아요. 정몽구 회장이 한남동 전체를 전세낸 것도 아니고, 개인 사유지도 아닌데 길을 막으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도 로 중앙에서 보행이 저지된 한 희망버스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무리를 향해 "왜 보행을 막느냐"고 소리치자 무리 중 한 사람은 귀를 막고 "아아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이따금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길을 열고 닫았다. 이 과정에서 차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희망버스 참가자를 붙잡아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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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 자택 앞 입구에서 한 사람이 길을 열어달라고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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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참가자의 얼굴을 찍는 행동을 하자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경찰에 신고해 용산구 내 지구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오후 3시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버스에 오르자 이들도 해산을 시작했다. 무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B조는 여기 남아계시고, 일단 A조만 이동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일행에게 "A, B조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런 걸 왜 기억하나, 기억에서 지워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여기 몇 번째냐"라고 물었다. 기자가 처음 왔다고 하자 "그럼 내가 고참이다, 난 두 번째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동네 곳곳에 붙인 스티커들을 뜯어 쓰레기 봉투에 담은 뒤 "수고했습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등의 대화를 나누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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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정몽구 회장 자택 앞 곳곳에 배치된 사람들이 희망 버스 참가자들의 항의 방문 길을 막았다. 저지에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말에 한 사람이 귀를 막고 뒤돌아선 모습.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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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탑에 오른 두 노동자 "언론마저 외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것"

이 날 정몽구 회장의 집을 찾은 장아무개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무리가 선 전봇대 옆에  항의 스티커를 붙였다. 그는 연말 연휴에 희망버스에 참가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사회가 잘못돼 가는데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게 중요하냐"라면서 "(최정명·한규협씨에게) 전날 통화해서 힘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고공 농성 200일이 다 돼가는데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 어려운 요구가 아니라 정당한 법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불법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의 힘만으로는 맞서기 힘들다, 연말 연초 사랑하는 가족과 있어야 함에도 (투쟁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있는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참가했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아직 고립돼 있습니다, 찾아와주세요).

한 편, 70m위 광고탑에서 199일을 보낸 한규협씨와 최정명씨는 영하 8도에 가까운 한겨울 날씨 속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규협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어 옷을 여러 겹 입고 침낭에 핫팩을 넣어 잠을 잔다"라고 전했다. 발뒤꿈치는 동상에 걸린 상태다. 그는 "지난 25일 의사 두분이 진료를 하고 가셨는데 두 사람 다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들었다"라면서 "울화로 인한 가슴 답답함 때문에 약을 지어 보내주시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노조 조합원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지 못한 두 사람을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눈썰 매장을 가기도 했다. 한씨는 "지금 (투쟁) 6개월이 넘었지만 가족들이 담담하게 지지를 잘해줘 크게 마음 고생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테니 힘을 보태주시라, 싸움에 이겨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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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 자택 인근 전봇대에 희망버스 참가자가 붙인 항의 방문 스티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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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명씨는 "정말 할 것 다해봤다"라면서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직접적인 책임자 정몽구 회장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고공 농성에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법앞에 평등하다'는 가치가 (이뤄지는) 출발이 여기서부터였으면 좋겠다"라면서 "언론마저 노동자의 목소리와 몸부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심에 호소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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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날씨 뜨겁게 달군 기아차 고공농성 200일 연대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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