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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의 국제정치와 또 다시 찾아온 전쟁위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1/14 15:11
  • 수정일
    2016/01/14 15: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태호 2016. 01. 13
조회수 863 추천수 0
 

   대북 강경책을 취했던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아시아담당국장을 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에게 4차 핵실험 이전까지 북한의 모습은 오히려 이례적인 것이었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하고 사드(고고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 배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는 보수 강경파다. 그러나 봉쇄 정책을 반대하는 대북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7월 국내 한 일간지의 한 칼럼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동시에 상당히 잠잠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13년 대미 전면 대결전을 선언하고 3차 핵실험을 한 이래 북한은 대대적인 ‘도발’을 하지 않았다. 또 “북한의 격렬한 외교적 발언들 속에는 대화를 향한 욕구도 공격의 전조(前兆)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은 지금 외부세계에 혼자 있게 가만히 내버려 달라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분석을 받아들인다면 4차 핵실험으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당 제1비서)겸 최고사령관은 ‘외교도 도발도 아닌 모호한 은둔상태에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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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6일 핵실험에 서명하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친필 사인 

 

  그런 점에서 이번 4차 핵실험은 새해 벽두에 사전에 탐지되지 않고, 예고 내지 통보되지도 않은데다 북한이 수소폭탄이라고 발표함으로써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결코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왜 했는가는 아니더라도 왜 이 시점에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가 있을 것이다. 
  보수진영과 대북 강경파들은 6자회담과 북핵 폐기를 명기한 9.19 공동성명의 합의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심지어 핵 개발의 명분과 시간을 벌도록 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의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 3번에 걸친 핵실험은 모두 회담이 좌초된 상태에서 감행됐다. 그에 비춰보면 2013년 2월 핵실험 뒤 지난 3년여의 기간에 6자회담은 물론이고 북미, 남북간에 실질적인 협상이나 회담이 없었음에도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대규모의 도발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빅터 차 교수의 지적처럼 이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때부터 장거리 로켓 발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북한의 새로운 로켓 발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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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봄 발사직전 단계에 갔던 무수단 미사일

 

 지난해 중반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핵실험 준비를 예고하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누리집인 <38노스>는 6월 초 북한이 적어도 올해 가을까지는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에 반해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만큼은 착착 진행시켰다. <38노스>는 7월 28일 최근 촬영한 민간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로켓 발사장 내부의 증·개축 공사가 완료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군 정보당국도 로켓 발사대를 기존 50m에서 67m로 높이는 증축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봤다. 공사가 시작된 게 2013년 말이었으니 1년 6개월여 만이다. 정보당국과 전문가들은 이 발사대 증축으로 북한이 2012년 말 발사에 성공한 은하-3호를 뛰어넘어 미 본토에 도달하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이에 앞서 <38노스>는 2015년 5월 말 상업용 위성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동창리 발사장 발사대 동쪽 끝에 새 건물을 짓고 발사대와 연결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보당국은 이 시설이 미사일 제작과 조립 작업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봤기에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과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때 평양시 산음동 병기연구소에서 로켓 동체를 만들어 동창리 발사장으로 운반했기 때문에 한미 정보당국에 쉽게 포착됐다. 반면에 동창리 발사장에 미사일 제작과 조립 시설이 들어서면 기습적인 발사가 가능해진다. 한미 정보당국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설들은 제작 공장이 아닌 것으로 최종 판단됐다. 
  또 군 당국은 7월23일 이 기지에서 30m에 달하는 로켓 1단 추진체의 연소실험을 한 걸 확인했다. 2012년 은하3호 발사 당시 3단 로켓의 전체 길이가 30m였고, 이중 1단 추진체가 20m였던 것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약 1.5배나 커진 셈이다. 2012년 말 발사당시 남쪽 군당국은 서해에 낙하한 은하3호 로켓의 1단 잔해를 수거, 분석하여 구체적인 성능 분석을 할 수 있었다. 국방부는 1단 로켓이 산화제로 상온 보관이 가능한 적연질산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그 목적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 미사일 전문가인 랜드연구소의 마커스 실러 연구원 등은 2단 및 3단에 저추진력의 엔진을 사용함으로써 당시의 발사는 북한이 주장했듯이 우주발사체 용도였던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므로 북이 은하 3호를 미사일로 발사할 경우 2단 및 3단 추진체에 노동 엔진이나 비슷한 엔진을 쓰면 사거리를 최대 1,000 km까지 더 증가시킬 수 있으며, 어떤 것이든 적어도 700 kg의 물체(탄두)를 8,000 km 거리까지 실어나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신형 장거리 로켓의 사거리는 미 본토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1만㎞를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밖에 국내 언론은 정부쪽 소식통들을 인용해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일을 기념해 ‘인공위성’을 발사하라고 했다는 첩보를 전하기도 하고, 평양 인근의 병기 공장에서 장거리 로켓 제작으로 보이는 징후들이 있다는 얘기들을 내놓았다. 여기에 때맞춰 유엔, 중국, 러시아,영국 등 주요국의 북한 대사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북한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조약이나 의무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쏟아냈다. 그 뒤 <교도 통신>은 8월2일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 발사대에 덮개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 정보당국은 이 작업이 8월 중 완료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덮개가 설치되면 위성의 감시활동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는 9월 들어 14일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장이 “새로운 지구관측위성 개발을 마감단계에서 다그치고 있다”고 밝혔으며, 9월 18일엔 ’인공위성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의 상징이다’라는 제목의 <중앙통신> 논평에서 “국제법적으로 공인된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인 평화적 우주개발을 걸고 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 대한 용납 못할 도발”이라며 발사 강행 의지를 피력했다. 또 9월 15일엔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준비가 있다”(<조선신보> 9월 16일)고 경고했다. 이로 인해 8.25 남북 합의까지 영향을 미쳐, 이산가족상봉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관측들이 확산됐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국이 초청한 9월3일 전승절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위성발사를 강행하겠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를 즈음해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9월25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었다. 
   
    로켓 발사 중단과 세갈래의 대화 기류
 
   그러나 9월 하순 갑자기 기류가 바꾸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9월28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께 이뤄질 것으로 전망돼 온 장거리 로켓 발사 관련 준비가 멈춘 듯한 양상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인공위성 정보에 의하면, 당 창건일을 기준으로 ‘D-15’였던 9월 25일 시점에서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미사일(로켓) 본체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하루 전날인 9월 24일 조선 국가우주개발국장은 <CNN>과의 기자회견을 자청해 “위성발사는 다가오고 있고 최종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우리가 위성을 특정한 축일이나 기념일에 쏘아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라고 했다. 10월 축전을 맞은 위성 발사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날이었다. 또 북한은 기체 낙하에 대비한 선박 항해 금지구역 설정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지난 2012년 12월 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에 비하면 상당히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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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핵실험에 대응한 무력시위 나선 B 52 전략폭격기

 

 북한은 당시 로켓 발사 준비를 했지만 로켓 발사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7월28일 북한의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의 발언도 그렇고 그 핵심은 북한은 ‘위성발사의 권리’를 갖고 있으며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로켓 발사는 무기 이른바 ’군사’의 문제를 넘어 국제정치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민감한 안보현안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문제가 한미, 한중 나아가 미중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외교 현안이 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의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에 영향을 줬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주권적 권리’라고 주장하는 위성발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로켓 발사 중단은 8월 하순 이후 전개된 세 갈래의 대화 흐름이 서로 맞물리면서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 우선 8월초 목함지뢰 사건이 터지자 북한은 준전시상태룰 선포했으며, 남북의 추가적인 맞대응으로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긴장이 고조됐다. 그러나 남북은 김양건 당비서- 김관진 안보실장의 담판을 통해 8.25 합의를 함으로써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두번째는 북중 관계의 변화다. 9월3일 김정은 제1비서의 전승절 불참에도 중국은 공식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을 10월 10일 북한의 당창건 기념일에 보내기로 했다. 그 발표시점이 10월 4일이었다는 점에서 그에 앞서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이 중단된 것은 북중간에 교감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북미 대화의 분위기다. 북미간 대화와 관련해서도 미국쪽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9월 19일(미국 현지시간) 성김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우리는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평양이든 다른 곳이든 장소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그가 방북 의사를 내비친 건 2015년 1월 말 북미 대화가 북한의 평양초청을 그가 거부했기 때문에 무산됐다는 점에서 북미 공식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었다.  2월 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중앙통신>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김 성이 이번 아시아 방문기간 우리와 만날 의향을 표시한데 대하여 평양에 오라고 초청까지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마치도 우리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대화와 접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면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평양이라는 장소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불발되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방북을 금기시했던 성 킴 대표가 평양 방북 용의를 밝힌 것은 변화였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북한의 움직임은 북중, 미중간의 관계가 상호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시기를 전후한 9월25일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은 북미대화의 문을 여는 쪽으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과 핵실험 및 탄두 소형화의 상호 중단  
 
   이런 남북, 미중, 북미간의 상호교감을 바탕으로 북한은 10월 1일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다시 제안했다. 북한은 2015년 1월 30일 성 김의 평양 초청이 무산되자 2월 4월 국방위원회의 담화를 통해서 미국과의 대화 단절을 선언했었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모든 문제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사항을 포함한 모든 문제들이 타결될 수 있다”며 선 평화협정, 후 핵폐기를 제의한 것이다. 미국은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로 가려면 그 전에 비핵화의 핵심 이슈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으로 대응했다.  당창건 기념일 3일전인 10월 7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미 공식경로를 통하여 미국 측에 평화협정 체결에 진정으로 응해 나올 것을 촉구하는 메쎄지를 보내였다. 우리는 미국이 평화협정체결과 관련한 우리의 제안을 심중히 연구하고 긍정적으로 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라며 다시 대미 평화협정 논의를 제시했다. 
   이 평화협정 체결 논의의 핵심은 2015년 1월9일 북이 미국쪽에 전달한 것으로 미국이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 임시 중지등의 화답 조치들로부터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2015년 1월10일 <중앙통신>의 ‘보도’ 형식을 통해 북한이 9일 미국 측에 전달한 메시지에서 “미국이 올 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는 것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을 제기하고 이 경우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데 대하여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어떤 경로로 이 메시지가 전달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뒤 1월1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반관 반민의 1.5 트랙 회의에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의 대가로 핵실험과 함께 핵탄두 소형화 노력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고 거듭 밝혔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9월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중단은 “북한이 지난 2012년 북미간에 합의했던 2.29 합의를 실패로 만든 군사연습과 로켓 발사 강행이라는 두 악재를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축소와 로켓 발사 및 핵실험의 동결 검증과 서로 교환하는 ‘동결식 평화 체제’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이 내비친 평화협정과 적대시 정책 중단의 최소 요구 수준을 미국이 수용한다면, 그리고 미국과 남한이 요구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의 동결과 검증을 북한이 수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월 16일 워싱턴에서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두정상은 이런 북한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utmost urgency and determination)’라는 표현이 들어간 별도의 대북 공동성명을 작성한 것은 북한의 제안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또한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대북 적대시 정책(hostile policy)’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 또한 북의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볼 수 있다. 
   그러자 북한은 한미정상회담 직후인 10월18일 한 급 높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 조미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이다. 유엔도 평화협정체결을 적극 지지 고무해 나섬으로써 조선반도에서 한 성원국과 유엔 군사령부가 교전관계에 있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끝장내는데 자기 몫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북한 초청은 이런 맥락에서도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명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외면하거나 그에 조건부를 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될 것이다”라며,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그 실체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특히 이 성명은 “그 기본표현인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핵타격 수단들의 남조선에로의 반입 등 군사적 도발행위들이 주기적으로 모든 협상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조선반도 정세의 긴장만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있다”라고 하여 적대시 정책의 폐기 여부는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중단과 3대 핵타격 수단의 한반도 반입 금지에 관한 미국의 결정에 달린 것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라는 것은 합동군사연습의 중단 혹은 축소를 최소치로, 평화협정을 통한 정전체제의 대체를 최대치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성 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0월 20일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비핵화 단계를 뛰어 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1월 10일 워싱턴에서의 강연 뒤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비핵화를 위한 진전이 없는 한 응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는 “순서가 반대이다. 최대 문제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북조선 당국자와 “언제 어디서도 만날” 용의가 있지만, 상대가 전혀 그런 의사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9월 중순 내놓았던 북미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북쪽에 잘못이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또한 중국이 북한에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중국은 북조선을 설득하는 데 특별한 책임이 있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며 영향력 행사를 요구했다. 그 뒤 8.25 합의에 따라 어렵게 성사된 12월 11~12일의 남북차관급 당국회담도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됐다. 북한은 이 회담에서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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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1일 김정 국방위원장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의 실험을 보고 기뻐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 제1 위원장이 수소폭탄 개발을 언급한 것은 12월 10일로 바로 이 시점이었다. 그는 이날 개보수를 끝낸 평천 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우리 수령님(김일성 주석)께서 이곳에서 울리신 역사의 총성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 북한은 12월 21일 동해 신포항 인근 수중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016년 1월 7일 이번 ‘수소탄 시험’ 감행의 주요 원인으로 지난해 1월 북한이 ‘한 미 연합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지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지만, 미국이 ‘암묵적 협박(implicit threat)’이라고 일축한 점을 꼽았다. 신문은 또한 “미국에 대하여 8월 사태(목함지뢰 사건을 계기로 한 군사적 충돌위험) 교훈에서 배워 유명무실화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할 것을 촉구하였다”며 “평화협정 체결로 전쟁상태에 종지부가 찍어진다면 조선반도의 안전환경은 극적으로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 등을 결의하면 핵실험으로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1∼3차 핵실험은 모두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1∼3개월 안에 이뤄졌다. 2006년 7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그 해 10월9일 첫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또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인공위성) 발사로 촉발된 위기는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비화했고, 2012년 4월 그리고 12월 두번의 로켓 발사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초래했다.  물론 각각의 정세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2006년 7월은 부시 행정부의 방코델타 아시아은행의 불법거래를 내건 대북 금융제재에 맞선 것이었다. 북한은 이때만큼은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로켓이라 하지 않고 미사일(대포동 2) 발사로 명명했다. 미사일 운반수단을 갖지 못한 핵무기는 기껏해야 자폭수단이 될 뿐이니 미사일과 핵 실험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이 한묶음으로 가는 것은 군사적으로나 북한이 처한 상황으로 볼 때 자연스런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에는 핵 실험 뒤 장거리 로켓 발사에 나설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서로 과거와 다른 협상 방식 고수 
 

  2013년 4월 케리 국무장관은 하원 청문회에서 북핵 문제에서 과거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즉 비핵화의 조건 없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경제적 지원 및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은 더 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방식을 거부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6월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국방위 중대담화에 깔려 있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1994년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과 같은 비핵화 협상 방식의 거부다. 예를 들어 2013년 3월말 핵 무력 강화 및 경제건설 동시추진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직후인 4월1일 <로동신문>사설은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자신들도 이제는 핵보유국이니 주변에서 이를 인정하고, 특히 미국과는 ‘대등한’ 입장에서 핵군축의 구도에서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과거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는 까닭은 핵보유라는 현실 말고도 더 이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건설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38노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교수는 2013년 10월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은 현재 비핵화로 종결되는 ‘다단계(multi-stage) 협상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미국내 대북 전문가이며 이  내용은 9월말 10월초 베를린, 런던에서 있은 북미 1.5 트랙 대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입장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비핵화 협상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러나 대화의 전제조건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대화 초기에 또는 대화를 위한 신뢰구축 단계는 가능하다. 세 번째로 비핵화, 정치, 군사, 경제분야 등 다단계 협상 프로세스다. 그건 과거 제네바 합의 또는 일련의 6자회담 합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치며 양쪽이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핵 프로그램의 해체는 종착역이다. 그러나 위트는 2012년 또 다른 인터뷰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으로 핵문제를 푸는 단계는 지났다”면서 “북한은 안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으며, 북한과 직접 대면해 그들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대량파괴무기와 프로그램의 폐기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의 이런 핵보유국 논리에 입각한 새로운 접근법은 ‘비핵화의 조건 없으면 대화는 없다’는 미국의 강경대응과 충돌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의 유례없는 적극적 중재를 무색하게 만들어 왔다. 2012년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과 유엔제재 이행을 공언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그 어느때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예컨데 2013년 9월19일 왕이 외교부장은 워싱턴서 케리 장관과의 회담 뒤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은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과 우라늄 농축작업 일시 중단 등을 수용한 2012년 2월29일 북미 합의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는 6자회담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9.19 공동성명 합의를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던 북한의 팔을 비틀어 입장을 바꾸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케리 국무장관은 2013년 10월3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발언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이 비핵화 없이 대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2014년 들어서도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중일 순방에 나선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월17일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는 ‘대화재개가 아닌 비핵화 실천’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같은날 북한에 들어갔다 20일 곧바로 남한에 온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북한이 여전히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들어 핵실험과 군사연습 중단 내지 동결을 제의한 북한의 제안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의 선 비핵화를 요구함으로써 협상은 물론이고 대화조차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협상 무용론자들은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의 합의가 북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 3번에 걸친 핵실험은 모두 회담이 좌초된 상태에서 감행됐다. 게다가 6자 회담 또는 협상을 대신한 그 어떤 정책이나 전략도 북한의 핵 위협을 약화시키거나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 또한 너무나 분명하다. 
 
  2013년의 데쟈뷰-북한의 전투준비태세 대 미국의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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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오산공군기지에서 테런스 오샤너시 미 7공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핵실험에 대응한 한미군사대비태세를 설명

 

  큰 흐름에서 보면 1993년의 1차 핵 위기는 10년 만인 2003년에 2차 위기로, 다시 10년 만인 2013년에 3차 핵위기로 묘하게도 10년 주기설을 보여왔으며, 공교롭게도 93년 김영삼, 2003년 노무현, 2013년 박근혜 등 새 정부가 출범하는 2~3월에 북핵 위기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새 정부 출범의 시기가 한반도 정세를 위기로 반전시키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왜 그런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전환이 기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기존 합의가 부정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00년의 미 대선과 2007년 남한의 대선으로 이뤄진 부시, 이명박 정권으로의 교체가 기존 합의를 붕괴시킨 원인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 시기적으로 보면 누적된 갈등과 대결이 팀스피리트, 키리졸브 등 한미 군사연습을 앞둔 상황에서 정면대결의 힘겨루기로 치달은 측면도 있다. 
  2016년 봄 한반도는 정권교체기는 아니다. 그러나 다시 북한의 핵실험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핵무기 등 군사적 시위와 유엔 및 한미일의 강도 높은 대북 추가제재 등을 앞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2월부터는 한미 합동 군사연습인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이 이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이 보여준 괌에서 발진한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격은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맞선 대응조처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당시 미국은 <월스트리트저널>(2103년 4월3일자)에 따르면 이른바 ‘플레이북’으로 대응했다. 작전계획의 하위 개념인 플레이북은 2012년 12월 미 태평양 사령부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응해 새롭게 마련한  일종의 ‘전술교본’이었다. 그 목적은 북이 위협을 가할 경우 훨씬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정부의 지나친 군사적 대응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전면 대결전을 선언한 북한은 2월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그에 맞서 때로는 보다 선제적으로 정전협정 폐기까지 모든 합의를 무효화하면서 전쟁준비를 본격화했다.  미국과 북한은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3월11일을 기점으로 실제 무기를 동원한 ‘도상(圖上)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3월19일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3월에만 세 차례 이상 B-52를 출격시켰다. 또 20일엔 전략핵잠수함인 샤이엔을 연습에 참가시켰으며 이런 사실들을 모두 공개해 힘을 과시했다. 그러자 북한은 3월20일 B-52가 재출격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전략로켓군 부대들과 장거리포병 부대들에 대한 1호 전투근무 태세를 발동시켰다. 당시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은 “지금 이 시각부터  전략로케트군 부대들과 장거리 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 포병군 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 태세에 진입시킨다”고 밝혔다. 1호 전투근무 태세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최종적으로 전략로케트군의 미 본토 괌 일본 등의 미군기지에 대한 타격계획을 비준했다는 걸 의미했다. 실제로 북은 사정거리 4000km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 무수단을 동해안으로 이동시켜 발사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그러자 미국은 3월 28일 B-52를 능가하는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B-2를 미 본토로부터 출격시켰다. 북도 물러서지 않았다. 29일 김정은은 전략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사격 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북한도 이 회의를 언론에 공개했다. 미국은 3월31일 주일미군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킴으로써 이 또한 무시했다.
  4월5일 평양주재 외국공관에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철수권고를 내리며 발사단추를 누르겠다던 북이 무수단 발사 중단 움직임을 보인 건 4월12일이었다. 정면충돌에서 벗어나려는 첫 신호였다. 북이 미사일 발사대기 상태 해제에 나선 이날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한미외교장관회담을 한 날이다.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북미가 2013년 봄의 마주달리는 기관차처럼 서로의 위협수단을 다 드러내 놓고 충돌의 무모한 ‘치킨 게임’이라는 외길에 들어선 듯 하다. 어찌보면 2013년의 봄 대결을 경험한 북미는 서로의 카드를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위험한 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그 때와 달리 북한은 지난해 9월 발사준비의 최종단계에서 중단한 장거리 로켓의 발사라는 카드를 갖고 있다.  북은 굳이 이번 로켓 발사를 인공위성 발사로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2006년 7월처럼 탄두 재돌입을 시험하기 위한 미사일로 쏘아 올릴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미국과 일본 내에서는 로켓 내지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요격 주장이 나온 적이 있지만, 한미일이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은 ‘북핵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utmost urgency and determination)’를 강조했었지만 이번 북한의 핵실험에 이르기 전까지 그런 의지를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북의 전쟁의지를 꺾으려 할 때 북 또한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군사연습이 정례적인 방어훈련이 아니라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조처는 핵동결과 군사연습 등 상호간 적대적 군사행위의 중단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중러가 6자회담 틀 내에서 정치.외교적 해결 외 대안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할 수 있는 명분과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고르 마르굴로프 아태 담당 차관은 성 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6일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행동이 유관 안보리 결의들에 대한 정면 위반이라는 우려”를 표한 뒤, “6자회담 틀 내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치.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8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중국의 특별한 대북 접근법이 작동하지 않았으니 평소처럼 할 수는 없다’는 케리 미 국무장관 발언과 관련해 “한반도 핵문제의 유래와 문제가 중국에 있지 않으며, 해결의 관건도 중국에 있지 않다“라고 ‘중국책임론’을 일축했다. 중국의 이런 자세는 한미일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밀어부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그 역시  ”국제 비핵산 체제 및 동북아 평화.안정 유지라는 대국에서 출발하여, 6자회담 틀 내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국의 합리적 우려를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반도의 장기적 안정을 실현하는 것이 근본 방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중은  그동안에도 북핵 문제의 해결을 놓고 책임공방을 벌여왔다. 2014년 4월 오마바 대통령의 일본과 한국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중국을 압박했다. 그는 2014년 4월1일 워싱턴 DC ‘아시아소사이어티’가 마련한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관련 전화 토론회(conference call)에서 중국이 북한 비핵화란 목표에 진정으로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대북 경제협력에 적극 나서는 등 대북제재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중국이 국경지역, 즉 북한의 안정과 북한의 핵능력 차단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를 놓고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중국이 바라는 진정한 지역안정은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추구하는 한 결코 확보될 수 없다고 말한데 있다. 러셀은 ”북한의 핵무기 능력 추구와 그 운반 수단인 탄도미사일 개발이야말로 지역 불안정의 근본 원인(fundamental driver of instability)“이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중국이 진정한 지역안정을 원한다면 이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그는 “한미일 3국의 군사훈련이나 한반도 주변 병력 집결 등은 북한을 억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중국이 이를 원치 않는다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것임에도 사드 배치의 명분을 북한의 노동미사일 위협으로 내세운 것과 같은 논리다. 중국이 사드가 중국을 위협하는 것으로 지역안정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막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며칠 뒤인 4월10일 워싱턴 DC 미국평화연구소(USIP) 강연에서 우선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강제로 하도록 만들라는 것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에 ‘불가능한 임무’를 요구하면서 ‘만일 중국이 못하겠다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데 있어 건설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그는 비판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회담이 재개되지 않는 책임이 북한에만 있다고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태호 선임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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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난 '통일 대박', 허물어진 '천안문 외교'

 

[주장] 대통령 담화의 안이한 인식, 국내 정치용 '위기 강조'보다 대외 '균형 외교' 신경써야

16.01.14 11:34l최종 업데이트 16.01.14 11:3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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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왼쪽부터)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5년 9월 3일 오전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군사퍼레이드를 관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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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겸한 대국민 담화는 '통일 대박이 파탄 났고 천안문 외교가 모래성이었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제 '통일 대박'은 '쪽박'이 되고 있다.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올라 대문짝만한 홍보용 사진을 제공했던 '망루 외교'는 허물어지고 있다.

또 지난 연말 한일 외교장관이 전격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한 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어설픈 대증요법만 있을 뿐 별다른 해결책은 안 보인다. 안보와 경제 위기를 강조했지만, 정작 위기 상황이 '퍼펙트 스톰'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데도 박 대통령의 진단은 안이할 뿐이다. 

중국, 처음에는 북한 핵실험 '강력 반발'

새해 초 북한이 느닷없이 '수소탄 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은 '경제 건설'과 '핵 무력 병진 노선'에 따른 것이다. 수소탄 실험으로 군사 강국의 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앞으로 군사력 건설에 투입할 비용을 줄여서 경제 건설에 매진할 수 있다는 의도이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수소탄 실험이 경제 건설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변국과 대화와 협력에 따른 경제 건설의 길보다는 고립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은 괌의 앤더슨 기지에서 B-52 전략폭격기를 출격시켰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북한의 핵실험 직후에 이를 규탄하였다. 유엔도 북한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에 착수했다. 미국, 중국, 일본, 유엔이 모두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을 규탄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들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규탄하는 국제공조 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로 한국 정부의 역할이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긴장 상황을 안정시키면서 6자회담 개최를 비롯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할 디딤돌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이틀 뒤인 지난 8일, 중국의 태도는 변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장관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비핵화', '평화와 안전', '대화와 협상'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서 한 가지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조했다. 

한국의 대중 외교가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중국의 입장이 북한을 감싸는 듯이 변한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의 미숙한 초기대응이 큰 몫을 했다.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한중관계 불안해져

북한이 핵실험을 발표한 지난 6일 낮 12시 이후에 한국은 무엇보다도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대중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신속하게 중국과 외교협상 채널을 만들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비상상황을 강조해서 외교장관을 중국에 급파했어야 했다.

중국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할 수는 없다. 모택동이 한국전쟁 때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다던 말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전히 중국에 완충 지역 역할을 하는 전략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중국과 초기에 신속한 협력을 통해서 중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에 합의하는 외교적인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필요했다. 어차피 중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에서 강력한 대북한 제재는 불가능하다.

한국과 중국이 입을 맞추어서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는 가장 강도 높은 제재가 된다. 중국은 이 같은 조치로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책임론에서 벗어나면서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이것이 한국이 초기에 가장 집중했어야 할 조치이다. 

아울러 북한의 핵실험에는 한미 동맹에 따른 확장억제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에 대한 균형외교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과 협력보다는 일본, 미국과 협력을 우선시했다. 결국 중국과는 아무런 창구도 만들지 못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미·일 삼국의 공조체제가 조기에 굳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중국은 북한에 강경하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은 한·미·일 삼각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노력이 막후에서 작용했다. 이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이 진행되고 곧바로 한·미·일 협력 관계가 굳어지자 중국이 긴장한 것이다. 

확성기 방송은 '악수' 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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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란 노래 '백세시대' 포함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군 당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해 '8.25 합의' 이후 5개월간 중단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지난 8일 정오에 전면재개했다.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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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한국 정부의 초기 조치인 확성기 방송에 대해서도 중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확성기 방송은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국제적이고 전략적인 사안에 대한 대응 수단이라기보다는 남북의 국지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중국은 남북의 국지적 긴장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이어지는 것을 염려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중국이 그동안 누차 공언한 북핵 불용의지'를 실제 조치로 연결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중국은 그동안 '북핵 불용 의지'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 평화와 안전, 대화와 협상'을 강조해왔다. 

박 대통령은 중국이 강하게 거부하는 미국의 사드 미사일에 대해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제 사드 배치 논의가 본격화되고 중국은 당연히 이에 대하여 매우 큰 우려를 표명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국의 변경이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미국이 북한 핵실험의 책임을 중국에게 묻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미국은 '중국 책임론'을 부각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북한의 핵 무장을 부추긴다고 반박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미국과 중국은 서로 책임 추궁을 하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중국 책임론을 강조한 것은 천안문 외교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중국·일본의 삼각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북한·러시아와 갈등하는 냉전시대의 대결구조가 부활하고 있다. 냉전 대결 구조 부활은 중국발 경제 불안과 함께 진행된다는 점에서 위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예감할 수 있다. 

박 대통령 담화, 한국에 '퍼펙트 스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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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지켜보는 시민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핵실험과 경제혁신, 노동개혁, 경제활성화 법안 국회 처리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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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경제와 안보의 위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선거를 앞두고 선거전술로 위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피상적이다. 

정작 경제와 안보의 두 가지 위기는 박 대통령의 지적을 뛰어넘어 '퍼펙트 스톰'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퍼펙트 스톰'이란 두 개 이상의 위기가 동시에 발생해서 엄청난 위기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말하는 용어이다. 

지난 8일, 한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하던 날에 상하이발 증시 폭락이 한국경제를 뒤흔들었다. 한국의 확성기 방송에 북한은 '삐라'를 살포하고 무인기를 날려서 군사분계선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앞으로 군사적인 조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는 통일을 이룬 동·서독의 관계가 아니라 당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처럼 충돌과 긴장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불안한 관계로 접어들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코리아 리스크'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안에 미국이 2차례 이상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 경제는 또 다른 충격을 맞이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중국의 반발이 더 커진다면 말 그대로 한국은 안보와 경제에서 '퍼펙트 스톰'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태도로 사과 약속에 대한 확인조차도 거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아베가 놓은 덫에 걸린 꼴이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덫에 걸렸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은 잘된 것인데 정치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것 같다.  

한미 관계, 한중 관계, 한일 관계, 남북 관계,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은 모두 함께 물려서 움직이는 요소들이다. 이런 영역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할 때 '퍼펙트 스톰'이 된다. 유능한 안보를 기반으로, 외교를 수단으로, 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한국경제를 발전하게 만들 '통합 리더십'이 최악의 상황인 '퍼펙트 스톰'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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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못한 세월호 205명 "아들, 오늘이 졸업날이래"

 

[현장] 단원고 졸업식 날, 분향소에선 '다짐의 헌화식'

16.01.12 20:36l최종 업데이트 16.01.12 20:37l

 

▲ 단원고 졸업식, 희생 학생 교실 찾아 온 시민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을 찾은 학생과 시민들이 알고 지내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생 자리에 앉아 글을 남기고 있다.ⓒ 유성호
사랑하는 우리 영만이! 

오늘이 고등학교 졸업날이래. 근데 우리 아들은 영원한 단원고 2학년 6반 26번 이영만. 그곳에서 잘 지켜보고... 늘 행복한 학생~ 또 어른 되겠지. 근데 엄마는 우리 아들 영원히 17살, 그 모습밖에 기억할 수 없어 너무 슬프다. 멋진 청년이 되구 대학생이 되구 어른되어 결혼하고 예쁜 아이 낳아 행복하게 가정 꾸리고 사는 모습도 못 보게 되어 화나. 마음 속에 우리 예쁘기만했던 모습 기억할게. 사랑해 아들~♡
졸업식 날, 고 이영만 군에게 엄마 이미경씨가 쓴 편지. 이미경씨의 허락을 얻어 촬영했다.ⓒ 조혜지
하트를 그리고 펜을 놓자마자 엄마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책상에 앉아 20여 분을 소리내 우는 엄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등을 토닥이거나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기도 했다. 책상 위에는 이영만군의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과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보낸 사람들의 편지를 넘겨보며 겨우 울음을 달랬다.

오전 10시 30분께 제9회 졸업식이 열린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아이들의 졸업식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 이영만군의 엄마 이미경씨는 학교의 모든 졸업 행사가 끝난 오후 2시께 아들의 교실에 들어왔다. 일부 단원고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측이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을 상대로 명예 졸업을 제안했지만, 유가족들은 이를 거절했다. 아직 미수습자가 있는 상황에서 희생 학생들만 먼저 졸업시킬 수 없다는 이유였다.

생존자 학부모 "희생자 부모님들 아픔 잊지 않을 것"
▲ 딸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학년 2반 고 김수정 학생의 어머니가 딸을 그리워하며 책상에 놓인 꽃다발과 선물을 바라보고 있다.ⓒ 유성호
▲ 슬픈 단원고 졸업식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을 찾은 시민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학년 7반 고 이지혜 선생님을 추모하며 교탁 위에 국화꽃을 놓고 있다.ⓒ 유성호
▲ 단원고 졸업식 책상에 놓인 사진 '오래 기억하고 잊지 않을께'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학년 7반 고 국승현 책상 위에 동아리 선후배들이 잊지 않겠다며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유성호
단원고 제9회 졸업식은 일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됐다. 12일 졸업식 당일 학교 정문 앞에선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자를 대상으로 사전에 배포한 초대권과 신원 정보를 확인했다. ⓒ 조혜지
제9회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은 일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 조혜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3학년 몇 반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어머니 친구라는 분이 오셨어요."

12일 오전 10시께 단원고등학교 정문 앞은 여느 학교의 졸업식 풍경과 사뭇 달랐다. 이날 단원고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선 초대권이 있어야 했다. 검지 크기의 코팅된 빨간 티켓이었다. 정문 입구에선 9명의 학교 관계자가 입장하는 참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은 참석자에게 입장이 불가함을 알렸다. 학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전에 600장 정도 배포해 (졸업생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을 들였다"면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 부모님 일부가 요청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 고3들 졸업을 축하합니다' - 부산대 민주동문회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많이 아파한 만큼 더 예쁘게 성장하겠지요?' -하동 노란리본 모임

단원고 정문 앞엔 부산, 대전, 하동 등 전국 각지에서 보낸 졸업 축하 펼침막이 걸렸다. 펼침막 일부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생존 학생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장동원(47) 단원고 생존학생 학부모대책위 전 대표는 이날 딸의 졸업식에 들어가면서 "저희 가족은 (세월호 참사 피해 학생들의) 교실에 들렀다가 분향소에 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희생자) 부모님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활동하시는 데 기꺼이 함께 할 거다, 우리 아이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짜장면 먹을 시간입니다. 졸업식 마치고 가까운 곳에 가서 즐겁게 웃고 떠들며 짜장면도 먹고 삼겹살도 먹고... 그런 작은 일상과 행복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안 좋습니다. 이런 날은 집에 가만히 있고 싶은데... 오늘 졸업하는 아이도 축하해줘야 하고 함께 졸업 못하는 205명의 아이들과 12분의 선생님께도 인사해야하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졸업식이 마무리될 즈음 낮 12시께. 단원고에서 약 3km 떨어진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선 졸업식 대신 '다짐'의 헌화식이 열렸다. 명예 졸업을 마다한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을 기억하고, 아직 미수습된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진상규명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위처럼 말하면서 원래 졸업식 당일 읽으려고 했던 졸업 축사를 가슴팍에서 꺼내 읽었다. 그는 축사를 읽기 전 "오늘 단원고 졸업식에서 아이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를 허락받지 못해 이 자리에서 그 축사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전했다.

"여러분의 졸업은 슬픈 졸업이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축사는 "그동안 잘 해왔지만 앞으로도 절대 주눅들지 마세요, 자책도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잖아요"라면서 "우리들처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어른은 되지 마세요, 절대로, 여러분은 우리들처럼 아이를 잃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인지를 깨닫는 미련한 어른이 되면 안 돼요"라는 당부를 담았다.
 


유씨는 이날 희생 학생들의 교실인 '4.16 기억 교실' 존치에 관한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유가족 동의 없이는 교실을 일방적으로 정리해선 안 된다"면서 "4.16 교실 보전을 저희들이 말하는 이유는 단지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4.16 교실 보전을 말하는 이유는 교육의 정상화 문제이기 때문"이라면서 "단원고에서 시작해야 할 2014년 4월 16일 이후 새로운 교육, 그 교육이 단원고에서 반드시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에 저희는 4.16교실 보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두 번의 참사를 막기 위한 교육에 4.16 교실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고 김웅기군의 큰형 김인기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급급한 명예 졸업식과 주먹구구식 보전 방향으로 이 억울한 참사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의 꽃을 앗아갔음에 반성하고 선체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 명백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저도 (당시 동생에게) 다 잘될 테니 당황하지 말고 말 잘 듣고 있으라 했다, 그 죄책감에 2년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았다, 우리가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고 웃었던, 그 평범했던 아침처럼 다시 만나는 날까지, 우리 가족도 형제 자매도 끝까지 행동하며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들, 딸 책상 위에서 오열한 엄마와 아빠
▲ 아이들 영정사진 보며 눈물 흘리는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정오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희생자들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성호
▲ 졸업식날 희생자 분향소 찾은 단원고 학생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정오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유성호
헌화식에는 희생 학생들의 또래 친구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 자원봉사를 이어온 사람들, 정부에 함께 진상 규명을 요청했던 대학생 등 15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두 여학생은 "친구가 이곳에 있다"며 울먹였다. 한편에선 아들과 딸의 명찰과 학생증을 목에 건 희생 학생들의 엄마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오열하기도 했다. 

헌화식 이후에는 참석자 각자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 등의 손팻말을 들고 안산 분향소에서 단원고까지 침묵 도보 행진을 이어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신요섭(37)씨는 "(거리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못 돌아온 미수습자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미수습자 가족 분들하고 피케팅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말씀하신다, 학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아직 (아이를) 찾지 못해서 단 한 번도 못가봤다고, 제가 학교 간다고 하면 은화, 다윤이 자리 잘있나 봐달라고, 정작 본인들은 못 오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숫자 4와 16에 초침과 분침이 멈춰있는 시계를 들고 행진에 나선 예술가 흑표범은 "(희생 당한 아이들의) 교실을 없앤다고 해서 반대하려고 나왔다"면서 "우리가 아직 교실을, 아이들의 흔적을 지울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는데, 진상 규명도 밝혀진 것 하나도 없지 않나, 기억을 망각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자원봉사자와 함께 행진한 고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래씨는 "교실 존치를 위해 곳곳에서 피케팅 서명하고 있다"면서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 사이에 교육청 앞에서 시위도 한다, 이미 4.16 교실 자체는 교실의 의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의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묵 행진'을 제안했던 대학생 용혜인씨도 이날 행진에 참여하면서 "(여러 세월호 문제들은) 이건 받고 이건 주고 할 수 없는 문제다, 원론적으로 세월호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밝혀지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 맥락에서 교실 존치 등도 이야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0여 분의 행진 끝에 단원고에 다다른 헌화식 참석자들은 졸업식이 끝난 빈 교정을 지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실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교실엔 '명예 3학년'이라는 새 교실 표지판이 붙었다. 

아들과 딸의 의자에 지친 다리를 내려 놓은 엄마와 아빠는 이따금 사진을 쓰다듬거나 책상에 놓인 간식과 편지들을 정리했다. 책상마다 놓인 방명록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명록을 다 써내려갈 즈음엔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1분단 왼쪽 둘째줄에 앉은 영만 엄마도, 1분단 오른쪽 넷째줄에 앉은 승혁이의 아빠도, 2분단 마지막 줄에 앉은 승환이의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책상엔 1년 이상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커피나 지난해 한창 유행했던 감자 스낵이 놓여있기도 했다. 헌화식부터 도보 행진까지 함께 걸어온 김소이(19) 학생은 "왜 세월호 참사를 잊어선 안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또다른 세월호에 내 소중한 사람을 태우기 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김소이 학생이 '다짐의 헌화식'에서 발언한 내용 일부다. 

"세월호 참사를 알기 전 저는 착한 국민이었습니다. 그 어떤 의문도 품을 줄 모른 채 그저 시키는 대로 할줄 밖에 모르는 국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알고 나서 저는 더이상 착할 수가 없습니다. 나쁜 나라에 사는 착한 국민은 제2의, 제3의 세월호 탑승자가 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쁜 나라에는 착한 국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가 남아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외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착한 국민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637일, 진상 규명은커녕 9명의 미수습자는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나쁜 나라는 세월호를 잊으라고만 합니다. 착한 국민이 되라고만 합니다. 단원고 교실을 그만 없애라고 합니다. 저는 여전히 착하기만 해야할까요...(중략)... 진상규명도 안된 상태에서 교실을 치우겠다는 것은 또 다른 세월호에 우리를 태우겠다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진상규명이 마무리되고 미수습자들이 모두 돌아와서 함께 졸업식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단원고 교실을 지켜주세요"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정오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졸업생,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교실 존치를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 단원고 교실 존치 위해 침묵 시위 벌이는 시민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정오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졸업생,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교실 존치를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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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소녀상은 이전, 직접 사죄는 거부”…이재명 “朴, 약속했단 의미”

 
표창원 “朴, 어떻게 할건가”…SNS “명백한 주권침해, 왜 침묵?”
 
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이 “이전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로 사죄의 뜻을 표했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입으로 직접 사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NHK는 이날 아베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소녀상 철거 문제 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민주당 오가타 린타로 의원의 “소녀상의 철거가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의 (10억 엔) 예산 지원의 전제인가”라는 질문에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 만큼 한국 정부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처’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이전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30일 오후(현지시간)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 센터 넬슨만델라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청정에너지 혁신 미션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기다리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오가타 의원이 아베 총리 본인의 입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하자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언급했다”며 거부했다.

그는 “외교장관 사이에서의 회담도 있었고, 나와 박 대통령 사이에서도 말씀(사죄 언급)을 전했다”며 “그것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입장을 대독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아베 총리의 말을 전했다.

같은 날 저녁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과의 15분여 전화회담에서 “위안부들의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일본국의 내각 총리 대신으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겪고 심신의 안식 없는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고 말했다고 <뉴시스>는 보도했다.

관련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은 지난 7일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북한 핵실험 대응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 정신에 맞지 않는 언행이 보도되어 피해자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면서 잘 관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며 “그러한 언행들은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브리핑했다. 

   
▲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아베 총리의 12일 발언에 대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한국 정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약속했다는 의미”이라며 “소녀상이 저절로 갈 리는 없으니”라고 아베 총리 발언을 해석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아베 총리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사죄’를 거부한 것을 지적하며 “이번 한일 합의 무효를 아베 총리 스스로 선언하네요. 그래 아베 총리!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합의 무효입니다”라고 받아쳤다.

네티즌들은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아이디 ‘변**’은 “아베 이야기로 비춰보면, 결국 소녀상 이전과 아베 본인이 직접 사과를 않겠다는 것을 우리 대통령이 인정했다는 것인데”라며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피해 할머님들을 대신해서 민감 사안에 대해 인정한 것인가요? 모르고 했으면 바보이고, 알고 했으면 월권행위 아닌가요? 참 무심한 대통령입니다”라고 개탄했다.

‘에너***’은 “뭘 믿고 큰소리 치는 거지? 대통령 약점 잡았나?”라고 반문했고 아이디 ‘Ug_***’은 “위안부 합의에 무슨 뒷거래가 있길래, 아베가 한국 땅에 세워진 소녀상을 옮기라마라 하는 거야?”라며 “이 명백한 주권침해에 왜 입을 닫고 있는 건지”라고 성토했다.

이외 “박근혜 정부 뭐하십니까? 이전한다 했습니까 안했습니까”(na**), “진정한 사죄가 아니라는 걸 바로 보여준다. 우린 협의 거부한다”(bon***)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한편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학생 등 9명에게 미신고 집회를 개최한 혐의 등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관련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출석 요구를 받은 대학생들이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강제 수사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13일 수요일에도 변함없이 수요시위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다. 제1213차 집회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고 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여성 활동가들도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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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향 강호제 박사, 수소탄 시험을 남북경협 기회

김진향 강호제 박사, 수소탄 시험을 남북경협 기회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1/12 [09: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진향, 강호제 박사 대담     © 자주시보

 

9일과 10일 주권방송에서는 수소탄 시험을 단행한 북을 어떻게 보고 북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였다.

 

* 영상 직접 보기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5168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5146

 

대담자는 김진향 카이스트대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강호제 박사(북한과학기술사 전공), 문경환 nk투데이 기자가 출연하였는데 이들 모두는 이번 북의 수소탄 시험은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북미, 남북대화의 계기로 활용할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장점을 합치면 세계적인 경제강국을 건설할 수 있다며 오히려 이번 사건을 그런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북의 수소탄 시험의 의미

 

김진향 교수는 북의 수소탄 실험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나온 것으로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북이 수소탄 실험을 통해 강력한 핵억제력을 계속 구축해가려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세워놓고 경제발전에 집중하려는 핵-경제 병진노선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실제 김정은시대 핵-경제 병진노선을 들고 나온 이후 북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하였다.

 

김진향 교수는 평양은 물론 지방까지 주택과 공장을 새로 짓거나 보수 확장하고 있는데 이런 대형 공사는 갈수록 늘어가지만 중국과의 교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러시아와도 실질적인 물자교류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조건이기에 이런 북의 폭발적인 경제발전의 동력을 북 내부에서 찾아야 하며 그것은 분명히 그간 군사력에 투입했던 자본의 많은 부분을 민수로 돌려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과 잠수함을 개발한 조건이기에 북은 이제 저비용으로 위력적인 국방체계를 갖추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북의 핵-경제 병진 노선이 계속 언급되는 한 북의 핵억제력 과시는 계속 이어질 것인데 그때마다 대북 제재 운운하며 호들갑만 떨고 야단을 피우다가 한 달 정도 지나면 다시 조용해지는 일을 반복할 것인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호들갑 떨 때마다 한국 경제는 더욱 더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막을 묘수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북은 중국이 제재를 한다고 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 나라이며 점점 중국과의 경제교류의 비중도 줄어들고 북 자립경제가 강화되어가는 추세에 있어 갈수록 경제제재는 그 효과가 더 떨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김진향 교수는 수소탄 시험으로 북이 더욱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보고 그 쪽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며 남측이 경제교류 측면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북과 관계개선도 이루고 어려운 남측 경제를 살려내는데 큰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 북이 단 몇 개월만에 독자 생산한 경비행기, 축척된 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주시보

 

북이 기술을 활용할 새로운 남북경협 관점 필요

 

남북 경협도 이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김진향 교수와 강호제 박사는 똑같이 강조하였다. 북은 기술은 없고 값싼 노동력과 자원만 있는 나라가 아니라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오면서 구축한 경쟁력 있는 기술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특히 강호제 박사는 수소탄을 만들 정도면 핵물리학분야에 있어 매우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강 박사는 북이 위성을 쏘아 올릴 때도 위성을 쏘아 올리려면 고열을 견디는 특수소재기술, 강력한 엔진 기술, 화학, 전기, 전자,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 등이 세계 최첨단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기술을 남측 기업들이 이용하게 되면 단번에 확고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강호제 박사는 이번 대담에서 이런 특별한 분야의 기술만이 아니라 각 공장 기업소에서 축적한 첨단 기술력이 만만치 않은 나라가 북이라며 문제는 북은 그런 기술 중에 어떤 기술이 현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을 경협을 통해 남측에서 함께 고민해주면 큰 상생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대담자들은 남측이 마케팅과 판매, 기획을 맡고 북이 기술과 노동, 자원을 대는 방식의 남북경협을 진행하면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며 단번에 우리나가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바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실 지난해 경비행기이기는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작 명령을 내리자마자 단 몇 개월만에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북의 기업소에서 축적하고 있는 기술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담자들은 끝으로 이제 전경련, 경총 등 보수적인 재계에서도 남측 경제가 살 길은 남북경협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남북경협만 활성화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바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북에 대해 ‘응징’, ‘대가’를 운운하는 것보다 ‘한반도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는 입장 즉, 평화옹호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야 이후 북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데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김진향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북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만나자, 만나서 도대체 왜 수소탄 시험을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자.”라고 북에 적극적으로 대화제의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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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 2016.01.12 10:27:51
 
"정부 측의 비협조로 인해 특조위의 인적,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조사활동 역시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 (중략) ~ 진상조사의 핵심 직위인 진상규명국장에 대한 채용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시행령에 따른 공무원 파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유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정례 브리핑 내용이다. 세월호 특위가 구성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인데도 아직 조사관조차 제대로 뽑지 못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함으로써 당연 퇴직된 석동현‧황전원 두 위원 자리도 아직 공석이다. 여당 몫 위원이지만 새누리당에서는 아직 후임자 선출작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운영에 한시적 기간이 정해져 있는 특위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촉박하다. 삭감된 예산으로 인한 자금난에, 인력난까지 겹쳤다. 거기에 파견 공무원 조사관과 민간 출신 조사관 사이 반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세월호 특위가 안과 밖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예상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권위 산파'다. 국가인권위 설립기획단부터 시작해 인권위에서 9년간 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현병철 국가인권위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얼마 못 가 사표를 제출했다. '더는 인권위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현병철, 비선 가동해 '북한인권 괴문서' 국회 보고")
 
그런 김 소장에게 특조위가 현재 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를 물었다. 국가인권위와 세월호 특위는 조직 정체성과 구성 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그는 인권위와 비교하며 세월호 특위의 문제점을 짚어나갔다.  
 

▲ 김형완 소장. ⓒ프레시안(허환주) 

 
 
"권력 비판 조직, 김대중 정부도 껄끄러워했다" 
 
프레시안 : 인권위와 세월호 특위는 매우 닮은 듯합니다. 구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부에서 이 조직을 무척 껄끄러워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무력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형완 : 맞습니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조직을 상당히 껄끄러워했습니다.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정부는 인권위에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기존 국가권력 작용에 심각한 장애가 생긴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지금까지 '소도'와 같이 여겨졌던 검찰 수사 업무, 교도소 보안과, 징벌방 등을 모두 인권위 조사관이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죠.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간섭을 인권위는 할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게 인권위 역할이니깐요. 
 
현재 국회의원인 A씨가 그때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있었어요. 다른 나라 인권기구는 대부분 특수법인으로 돼 있었죠. 그때 A비서관이 해외 사례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도 인권위를 특수법인으로 만드는 게 맞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어요. A비서관은 당시 신분이 법무부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온 검사였어요. 법무부 입장에서는 인권위를 법인으로 만들어 법무부 산하로 두고 싶었던 거였죠. 인권위 감사는 물론, 인사도 하려는 의도였어요. 법인이 됐다면 인권위는 법무부의 '개'가 될 수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보고서를 받고는 마음이 법인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인권위 설립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대위를 만들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애를 써서 대통령을 설득했어요. 그 결과 대통령도 어디에 소속되지 않는 독립기구로 지금의 국가인권위를 만들었죠. 법무부는 대통령이 번복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니 어쩔 수 없이 수긍했죠.  
 
출범 이후에도 첩첩산중…"지속해서 방해하는 정부" 
 
프레시안 : 국가권력의 견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인권위를 국가 감시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겠죠. 그렇게 어렵게 인권위가 출범했지만 이후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정원을 두고 여러 논란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형완 : 2001년 11월 25일이 인권위 출범 날이었죠. 앞서 6개월 동안은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기간이었죠. 위원 선임하고 사무처를 구성하는 일 등. 하지만 11월 25일이 되도록 조직편성을 하지 못했어요. 인권위 사무처와 행정안전부간 인권위 정원을 얼마로 할지를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프레시안 : 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나요? 세월호 특위 때처럼 정부가 정원을 줄이려 했나요?  
 
김형완 : 당시 우리가 행안부 파견 공무원 힘을 빌려 법이 정한 인권위 업무분석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업무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약 480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법이 정한 업무만 계산했었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480명이 안 되면 법이 정한 업무를 못하는 거예요 하지만 인권위 초대위원장 김창국 씨는 480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행안부와 이야기해봐야 관철될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러면서 '2선으로 안을 하나 더 만들라'고 했어요. 그래서 딱 잘라 '340명 안'을 만들어 갔죠. 그랬더니 저쪽(행안부)에서는 72명 안을 들고 왔어요. 세월호 특위 논란이랑 똑같죠? 이유도 말하지 않았어요. 이유라고 대는 게 여성부 정원이 70여 명 정도 되니깐 그 정도 선에서 정하자는 식이었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어요.  
 
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행안부 장관, 인권위원장이 만나서 담판을 지었어요. 그 결과, 정원 180명, 전문위원 20명, 파견공무원 15명. 총 운영인력을 215명으로 정하고, 차차 늘려가는 것으로 했죠. 그렇게 위원장이 합의하고 돌아왔어요.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죠. 그 합의안을 놓고 '이 인원으로는 일 못 한다'고 반발했죠. 그러자 위원장이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며 나가버렸어요.(웃음) 그렇게 정원이 정해졌죠
 
프레시안 : 세월호 특위와 무척 비슷하군요. 특위도 정원이 애초보다 줄었습니다. 정부는 특위가 세월호 특별법(제15조)에 근거해 요구한 120명(상임위원 5명 제외)보다 30명이 줄어든 90명으로 축소하자고 했죠. 하지만 반발에 부딪히자 90명으로 출범한 뒤, 차차 120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아직도 이 인원은 채우지 못했습니다. 
 
김형완 : 인권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차 늘려가기로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나마도 이명박 정권 때 더욱 줄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정원이 정해졌지만 이후에도 지속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정해진 정원에서 공무원 대 민간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도 싸워야 했죠. 정부는 민간 비율을 최소화하려고 했고 인권위 사무처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오랜 싸움 끝에 공무원 대 민간 비율을 5:5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민간 직원 자격을 두고 싸워야 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자격이 까다롭다 못해 말이 안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민간 지원 자격을 두고 정부는 학사를 취득한 이후 12년 동안 인권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한정했습니다. 이게 사무관 자격 기준이었습니다. 게다가 12년 동안 월급 받고 일한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인권위가 출범한 게 2001년이었습니다. 거기서 12년 전이라면 1980년대 후반이 됩니다. 그때 누가 인권 단체에서 상근을 했겠어요? 그것도 월급을 받아가면서요.  
 

ⓒ프레시안(최형락) 

 
 
의도적인 조직 무력화 시도하는 정부 
 
프레시안 : 지금 인권단체들도 활동가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못하는 실정 아닌가요? 하물며 1980년대 후반이면 말할 것도 없겠네요.  
 
김형완 : 맞습니다. 의도적이었습니다. 정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격요건을 해놓으면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래놓고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그때 우수한 재원들이 인권위에 지원했지만 서류심사단계에서 다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듬해인 2002년 4월까지 인권위 사무처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180명이 정원이었는데 그해 7월이 되도록 70명 수준 밖에 인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들이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한 점도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사람을 뽑을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인권위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인원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죠. 빗발치는 진정서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인원을 우후죽순 충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그때 들어온 인물 중 아직도 기억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면접위원이었죠. 공무원인데 자기가 평소 인권단체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인권단체 3개만 이야기해보라고 했더니 국제앰네스티 하나를 대고는 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황당했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권위에 들어오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하니 '불법체류자'들을 그들 고국으로 강제추방하는데, 무턱대고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인권교육을 시키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프레시안 :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인권위인데 거꾸로 이들의 추방을 돕겠다는 식이군요.  
 
김형완 : 전혀 인권 감수성이 없던 사람이었죠. 그저 인권위에 들어오려 끼워 맞추기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사고'를 낸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뽑혔고 지금까지 인권위에서 일하고 있죠. 현병철 위원장 시절, 요직에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프레시안 :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에 오면서 공무원 사기를 진작시킨다며 공무원 출신들을 요직에 앉혔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건 '인권위 식물화'를 위한 고도의 수법이 아니었나 싶군요.   
 
김형완 : 저는 그런 공무원들과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민간출신 직원들이 그들보다 도덕적 우월성은 물론, 업무적 우월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민간출신 조사관들이 인권위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막 밀어붙였습니다. 일과 시간 이후 인권 관련 학습을 진행했죠. 그러니 불만들이 터져 나왔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인권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공무원에게 헤게모니 넘어가면 아무 일 못 한다" 
 
프레시안 : 그때 당시 김형완 소장님에게 '스탈린'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웃음)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형완 : 공무원에게 헤게모니가 넘어가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국민의 이해나 국민의 편익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죠. 공무원은 조직보위에만 신경을 씁니다.   
 
프레시안 : 소장님은 인권위에 합류하기 전에는 국회 등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인권위까지 합하면 20년 가까이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듯합니다.  
 
김형완 : 그건 공무원 사회 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인권위 있을 때 어느 공무원이 심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과장님, 공무원은 영혼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기 가치관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행정이 제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고민이 돼서 제게 질문한 거였습니다. 많은 공무원이 자기는 영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청문회 때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죠. 공무원 누구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왜 그러느냐'. 자기 본래 사명을 실종한 거죠. 그리고 거대한 권력의 톱니바퀴로써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공무원입니다. 그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지부동입니다. 관료주의의 병폐죠. 
 
물론, 도덕적 부패 문제에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수는 양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다만, 그 양심과 합리성을 담는 그릇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는 거죠. 일도양단해서 공무원은 부패집단이고 반 서민조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내모는 배경, 즉 그릇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월호 특위, 이미 '내부자들'이 들어와 있다" 
 
프레시안 : 세월호 특위는 인권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반면,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보다 힘든 상황인 듯합니다. 한시적 활동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권도 보수정권입니다. 등 떠밀리듯 세월호 특위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협조는커녕 방해만 놓는 실정이죠. 이대로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특위가 해산되기만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김형완 : 지금 특위 내부가 어떻게 돌아갈지 안 봐도 뻔합니다. 백그라운드에 따라 이합집산 된 곳이 세월호 특위입니다. 그 안에서 구성원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난맥상으로 운영되겠죠. 게다가 인권위 경험상 내부에서는 공무원과 어떤 식으로든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야 한다는 어줍잖은 타협론도 이야기될 겁니다. 예전 박사 특채로 인권위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매일 공무원들과 싸우는 제게 '왜 당신은 공무원과 사사건건 부딪치느냐. 협조적 관계를 맺어서 도움받는 순환구조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공무원을 담는 기본 그릇이 잘못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과 협조적 관계를 맺기는 불가능합니다. 자칫 그 그릇에 들어가는 꼴이 됩니다.  
 
하려면 공무원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가능합니다. 그들에게 협조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인권위 민간 조사관들에게 일과 이외 시간에 교육하고 도덕적 우위를 가지도록 당부했던 이유입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공무원을 좌지우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들의 협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더구나 세월호 특위에는 소위 '내부자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특위가 조사해야 하는 행안부, 해수부 소속 공무원들이 파견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데 과연 제대로 조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김형완 : 인권위는 검찰, 경찰 출신 파견 공무원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초기단계에서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죠. 그래서 이 의견을 받았습니다. 대신 검‧경찰 파견 공무원들은 비 조사 부서에 배치했습니다. 언젠가는 친정으로 돌아갈 사람들 아닙니까. 자기 조직 내부 일인데 제대로 조사하기 어렵죠. 그쪽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은 홍보, 교육 등을 맡기는 식으로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월호 특위는 '내부자들'이 조사를 하고 있어요. 세월호 특위 조사관들이 세월호 청문회 전 증인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하기 바빴다고 하지 않나요? 파견 전 자기 부처 상사잖아요. 내부자들이 특조위에 들어와 있으니 청문회는 관심도 없고, 증인으로 나오는 상사에게만 신경 쓰는 꼴이 됐죠. 더 큰 문제는 이후예요. 결국, 이들이 세월호 특위 활동을 어떻게든 축소‧방해하려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특위 활동이 끝나고 돌아갈 자기 조직에 피해가 안 가겠죠. 자연히 자기가 받을 불이익도 없을 테고요. 누가 자기를 건드리는 부하직원을 좋아하겠어요? 그러니 특위 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죠.  
 

ⓒ프레시안(손문상)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스스로 답하게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김형완 : 저는 리더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 인권위 초창기에 여성 직원이 맨발로 샌들을 신고 다녔어요. 그것을 공무원 복무규정에 어긋난다고 공무원 출신 국장들이 징계를 건의했어요. 민간 조사관 길들이기 식이었죠. 그러자 당시 인권위 위원장이 한 마디 했어요. '샌들 신고 다니는 게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을 처벌해야 하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할 말이 없었죠.  
 
위원장 등 세월호 특위 수장들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리더가 되면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포로가 되면 끝이에요. 자기 스탠스를 조금만 움직이면 당파적으로 비칠까 봐, 그리고 그런 잣대가 부당하다면서 스스로를 검열하죠. 하지만 세월호 특위도 그렇고 인권위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해요. 이는 그 조직들의 정체성이죠. 물론, 세월호 특위의 지적을 두고 관련부처가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들이 변명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에요. 감시단체에서 이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검찰이 범죄자의 범죄행위를 두고 불가피성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범죄자의 범죄행위에 따른 문제점만 이야기해요. 그게 본분이고 사명이에요.  
 
세월호 특위도 마찬가지죠. 국가의 치부가 밝혀지는 것을 두고 이것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지, 그에 따라 특위가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특위는 문제점을 밝혀내라고 만들어졌어요. 이는 당파성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문제예요. 그 정체성을 당파성으로 대체하면 정체성이 무력화돼요. 이것을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가 사라져요.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지금은 쓰지만, 나중에 '국가란 무엇인가'에 국가 스스로 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역할 수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외부에서의 '특위 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특위 활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시안>은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에 이어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참사 피해자 가족을 만났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1)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세월호 시작도 안 했다" 
(2) "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3) "세월호 한 달 뒤...내게도 재앙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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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앞에 놓인 세가지 폭탄, 호남·새정치·사람

[뉴스분석] 갑자기 뜬 요인이면서 발목 잡을 딜레마… 낡은 정치 세력과 손잡고 보수 무당층에도 구애
 
입력 : 2016-01-12  00:33:51   노출 : 2016.01.12  09:09:27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안철수 신당, ‘국민의당’ 행이 이어지고 있다. 신당 측 인사들은 호남 의원들까지 가세한다면 총선 전에 원내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 몸집이 불어나는 데 기여한 요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관영 의원은 11일 오전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탈당 및 국민의당 입당 사실을 밝혔다. 권은희 의원도 11일 오전 탈당과 국민의당 합류를 선택했다. 권 의원은 당초 ‘천정배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두 초선 의원의 합류로 앞서 문병호, 황주홍, 유성엽, 임내현, 김동철, 김한길, 김영환 의원에 이어 국민의당에는 10명의 현역의원이 남게 됐다. 김한길 의원과 가까운 주승용 의원도 탈당을 할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고, 탈당을 선언했으나 신당에 합류하지 않은 최재천 의원이 합류할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호남계의 좌장 격인 박지원 의원과 수도권 3선 의원인 박영선 의원도 탈당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11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거의 100% (목포 지구당) 당원들은 탈당을 해야된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박영선 의원은 10일 오후 광주에서 열린 이용섭 전 의원의 북콘서트 자리에서 “정치개혁의 새물결에 헌신하느냐 대통합의 밀알이 되느냐의 지점에 깊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측 인사들은 탈당이 이어져 교섭단체(20명)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유성엽 의원은 11일 TBS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 인터뷰에서 “20명을 충분히 넘겨서 교섭단체 구성이 창당 이전에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환 의원도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2월 전에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수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오른쪽)과 김한길 의원(왼쪽),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있다. ⓒ민중의소리
 

신당의 파괴력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1월 4일부터 8일 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18.7%로 20.3%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딛고 파괴력을 가지게 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동했다. 첫 번째 요인은 호남이다. 호남 의원들이 당에 합류했고 또 합류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도 호남의 민심에 주력을 다하고 있다. 안 의원은 탈당 이후 호남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지난 1월 4일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가 국민의당에 합류하고, 호남을 기반으로 신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신당, 박주선 의원의 통합신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 등이 국민의당과 통합한다면 세는 더욱 커진다. 김한길 의원은 탈당 이후 더민주를 제외한 야권 통합을 제시했다.

두 번째 요인은 ‘새정치를 통한 중도층 공략’이다. 국민의당은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며 중도층을 공략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 이후 무당파 층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안 의원이 11일 현충원을 참배하며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한 것도 지금의 여야 간 대립을 뛰어넘는 새정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 번째 요인은 인물이다. 더민주의 인물 영입에 맞서 국민의당 역시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당 간의 인물 경쟁은 정당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오히려 ‘국민의당’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세를 불리기 위해 호남을 기반으로 삼기로 결정했으나 이는 국민의당이 새정치세력이 아니라 ‘구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준다.

또한 호남 의원들의 목표와 안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 세력의 목표가 같을 지도 의문이다. 국민의당이 성공하려면 호남을 기반으로 수도권까지 세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춘 공천을 통해 호남과 수도권 모두에서 승리해야한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아직 호남 의원들과 신당 내부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호남 현역의원들을 물갈이 대상으로 삼을 경우 갈등은 불가피하다.

안철수 의원이 더민주에 있을 때 제시한 혁신안을 기준으로 하면 지금 국민의당에 들어와 있는 현역 의원들이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임내현 의원의 경우 지난 2013년 7월 출입기자 오찬에서 “서부 총잡이가 죽는 것과 붕어빵이 타는 것, 처녀가 임신하는 것의 공통점은?”이라고 기자들에게 물은 뒤 “답은 ‘너무 늦게 뺐다’”는 농담을 해 파문을 일으켰고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부터 출석정지 30일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안철수 의원이 제시한 10대 혁신안에는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엄정한 조치’라는 내용이 있다.

더욱이 더민주가 호남 지역에 공천을 하며 맞불을 놓을 가능성도 있다. 더민주는 현역을 이기기 위해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을 것이다. 야권연대를 하건 안 하건 국민의당은 경쟁력있고 참신한 후보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다.

   
▲ '국민의당'(가칭) 안철수 의원이 11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故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이 세를 불리기 위해 호남의 기존 정치세력과 연대할수록 새정치와는 멀어지는 셈이다. ‘호남 현역’과 새로운 인물 사이에서 선택해야하는 시점이 온다는 뜻이다. 최재성 더민주 총무본부장은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탈당 의원들을 받고, 정체성도 참신함도 고려하지 않고 일단 받는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새로운 정치를 한다고 한다”며 “이것은 양립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확보하고자 하는 기반은 보수적인 무당층, 새누리당의 소극적 지지자들이다. 호남의 ‘반더불어민주당’ 민심과 이러한 보수 무당층이 한 데 어우러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재성 본부장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해 세게 싸울수록 지지자 중 보수적 무당층은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를 하지 않으면 호남의 지지자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당에 걸맞은 인물을 내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안 의원은 윤여준 전 장관, 한상진 교수를 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세를 확대하고 더민주와 차별성을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참신한 인물은 아니다. 너무 ‘올드’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은 청년층을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 정치인이다. 인사치레로 호남에 한 두 번 갈 수 있지만 새정치를 생각한다면 안 의원은 거리에서 청년들을 만나거나 일하고 있는 공장 같은 현장에 갔어야하지 않나”라며 “끌어들이는 사람들도 청년들이나 젊은 세대가 아니라 올드한 사람들이다. 당장 세를 불리기에 여력을 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물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흘러나왔다. 신당에서 8일 영입한 5명 중 3명이 비리에 연루된 의혹이 드러났고 국민의당은 3시간 만에 영입을 취소했다. 그러나 영입이 취소된 허신행 전 농림부 장관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소명의 기회나 통보마저 없이 ‘영입 취소’라는 대 국민 발표를 함으로써 언론에 의한 ‘인격 살인’을 당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인재영입 과정에서 이런 모습이 반복될 경우 국민의당은 새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점점 높아져가고 교섭단체에 가까워져감에도 국민의당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고민 없이 당장의 세 불리기에만 집중할 경우 안 의원의 국민의당은 어느새 여야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심판 대상에 서게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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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호 기자 | ssai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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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를 전쟁접경에로 ... 미국의 파멸적 후과 더욱 커질 것>

 
  •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 미국의 파멸적 후과 더욱 커질 것>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노동신문의 개인명의 논설 <핵에는 핵으로,이것이 우리의 대응방식이다>를 보도했다.

     

    논설은 <조미대결에서 우리는 통쾌하게 승리하였다.미국은 여지없이 패하였다.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공갈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고 주장했다.

     

    논설은 <지금 미국은 남조선에 핵전략폭격기편대를 들이민다 어쩐다 하며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고있다.우리 공화국의 지위를 깎아내릴 심산으로 그 누구의 핵보유를 인정할수 없다느니,수소탄시험이 아니라 증폭핵분열탄시험이라느니 하면서 비린청을 돋구고있다.그러나 이것은 공포에 질린 승냥이무리의 단말마적발악에 지나지 않으며 맥빠진자들의 넉두리에 불과한것>이라고 지적했다.

     

    논설은 <미국이 우리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필요한만큼 정의로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부단히 강화해나갈것이다.그만큼 미국에 차례질 파멸적인 후과는 더욱 커지게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래는 전문이다.

     

     

    핵에는 핵으로,이것이 우리의 대응방식이다

     
        11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핵에는 핵으로,이것이 우리의 대응방식이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의 핵지형도가 완전히 달라졌다.수소탄을 틀어쥔 우리 공화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당당히 올라섰다.
        온 세계가 끓고있다.우리를 지지하는 나라들에서는 부러움과 놀라움의 목소리가,적대세력들속에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아우성이 터져나오고있다.
        조미대결에서 우리는 통쾌하게 승리하였다.미국은 여지없이 패하였다.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공갈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만일 미국이 최강의 핵억제력을 갖춘 강국으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우리 공화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무분별하게 감히 덤벼든다면 차례질것은 우리의 정의의 핵불벼락에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재가루가 되는 파국적인 재난뿐이다.미국은 이것을 피할수 없게 되여있다.
        미국이 스스로 이런 결과를 몰아왔다.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면서 핵위협을 가증시켜왔기때문에 우리는 불가피하게 핵을 보유하게 되였고 오늘은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을 울리게 되였다.미국에는 우리를 압살할수 있는 수단이 더는 없다.아마 미국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우리 공화국을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것이다.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을 대상으로 흔히 써오던 힘의 방법을 우리 공화국에도 적용하면 능히 목적을 달성할수 있다는 허망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조선정책을 추진하여왔기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력사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미국은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우리에게 핵위협을 가하여왔다.
        이미 조선전쟁때 우리 인민에게 핵공갈을 가한 미국은 전후 1950년대 후반기부터 남조선에 핵무기를 대대적으로 들이밀기 시작하였다.그 수는 1970년대 중엽에 벌써 1 000여개에 달하였다.남조선은 세계최대의 핵화약고,핵전초기지로 되였다.미국은 해마다 방대한 핵무기들을 동원하여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핵전쟁연습을 미친듯이 벌리였다.이것은 우리에 대한 로골적인 핵위협공갈이였다.
        새 세기 부쉬행정부시기에 와서 미국의 대조선위협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미국은 우리를 핵선제공격대상명단에 공공연히 올려놓았다.우리와는 절대로 공존하지 않겠다는것을 정책화하고 핵무력사용까지 시사하면서 분별없이 날뛰였다.
        그 누구도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저지시키지 못하였다.국제기구와 조약이라는것은 오히려 미국의 대조선핵위협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악용되였다.
        조선반도에는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였다.우리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만 있을수 없었다.미국이 핵무기를 휘두르며 우리를 없애버리겠다는것을 명백히 한 이상 그것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였다.그것이 바로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는 미국을 정의의 핵으로 제압하는것이였다.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합법적으로,정정당당하게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은 조선을 잘못 보았다.상대를 모르고 덤벼들면 랑패를 보기마련이다.우리에 대한 무지로부터 출발한 부쉬행정부의 대조선정책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만들어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오죽하면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가 조선의 핵보유선언은 부쉬행정부가 실책을 범한데 있다,부쉬행정부의 조선에 대한 정책은 비리성적이였으며 따라서 앞으로 미국의 대조선정책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하였겠는가.
        미국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다.저들에게는 그 누구도 맞서지 못한다고 으시대던 미국은 세계면전에서 깨깨 망신을 당하였다.잘못된 대조선적대시정책이 낳은 응당한것이였다.미국은 여기에서 늦게나마 교훈을 찾았어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부쉬행정부후에 출현한 오바마행정부는 무엄하게도 우리의 《붕괴설》까지 내돌리며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방대한 핵타격무력을 동원하여 각종 합동군사연습을 벌려놓았다.쩍하면 핵항공모함과 핵전략폭격기를 남조선과 그 주변에 들이밀고 우리의 종심에 대한 핵타격연습을 뻔질나게 벌리였다.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력사적으로 벼르고별러온 우리에 대한 핵공격계획을 기어이 실천에 옮기자는것이였다.미국은 1950년대에 벌써 우리 나라의 평양,원산,청진,신의주,남포 등 주요도시들을 포함한 사회주의나라들의 수천개 주요대상들과 지역들을 목표로 가장 극악한 핵폭탄투하공격계획을 짜놓았다.1969년에는 우리에 대한 핵공격과 그 피해까지 예상한 《프리덤 드롭》이라는 비상계획을 작성해놓았다.
        우리는 극도에 이른 미국의 대조선침략열기를 식혀주기 위해 미국이 무모하게 나오는 경우 그에 따른 대응조치가 있게 된다는것을 알아들을만큼 경고도 하고 충고도 주었다.지난해에는 미국이 북침을 노린 핵전쟁연습을 림시중지하는 경우 핵시험을 림시중지할 용의가 있으며 미국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마주앉을 준비가 되여있다는 아량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 모든것을 거부하였다.끝끝내 핵전쟁연습을 벌려놓고 그것이 우리의 《제도붕괴》를 목적으로 한것이라는것을 거리낌없이 공개하였다.적대세력들을 규합하여 형형색색의 대조선경제제재와 모략적인 《인권》소동에 매여달리면서 우리의 강성국가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가로막고 불순한 목적을 실현해보려고 피를 물고 덤벼들었다.
        미국이 우리를 어째보려는 어리석은 망상에서 좀처럼 깨여나지 못하고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이미 경고한대로 미국의 악랄한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에 대처하여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전쟁억제력을 강화하는 길로 나가지 않을수 없었다.지난 6일 우리의 첫 수소탄시험의 장엄한 뢰성이 천지를 진감하였다.
        미국은 오산하였다.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을 휘두르고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담대한 배짱과 기질,본때를 몰라도 너무나도 몰랐다.력대 미행정부가 이것을 몰랐다.바로 그래서 부쉬행정부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떠밀었고 오바마행정부는 우리가 핵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는 길로 나가게 하였다.
        비극은 미국이 아직도 교훈을 찾지 못하고 실패한 대조선정책의 전철을 밟고있는것이다.
        지금 미국은 남조선에 핵전략폭격기편대를 들이민다 어쩐다 하며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고있다.우리 공화국의 지위를 깎아내릴 심산으로 그 누구의 핵보유를 인정할수 없다느니,수소탄시험이 아니라 증폭핵분렬탄시험이라느니 하면서 비린청을 돋구고있다.그러나 이것은 공포에 질린 승냥이무리의 단말마적발악에 지나지 않으며 맥빠진자들의 넉두리에 불과한것이다.
        미국이 군사적힘으로 우리를 어째보겠다는것은 참으로 어리석은짓이다.이것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는 개꿈이다.
        미국은 력사적으로 지속되여온 조미대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력사는 언제나 우리의 승리만을 기록하고있다.미국은 언제나 패하고 수치만을 당하였다.이 전통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미국이 우리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필요한만큼 정의로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부단히 강화해나갈것이다.그만큼 미국에 차례질 파멸적인 후과는 더욱 커지게 될것이다.미국은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조선중앙통신 2016.1.11

     

    이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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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위협 요소는 '증시' 아닌 '탄소'

 
[유라시아 견문] 일대일로의 사상 ② : 천인합일(上)
 
| 2016.01.12 08:24:12
 
이병한 박사의 후안강(胡鞍鋼)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의 인터뷰가 이번 주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 일대일로의 사상 ① : 지리 혁명과 공영주의(上) "2020년 세계 최강대국은 바로 중국"지리 혁명과 공영주의(下) "미국, 금융 조작-기생 국가")

녹색 중국?

이병한 : 저는 미국의 '재균형' 전략이 중국의 부상을 막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시간을 지연시키고 비용만 더 지불하겠죠. 그러나 자연과 환경의 '재균형' 기제는 중국의 굴기를 주저앉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지는 자비롭지 않으니까요(天地不仁). '홍색 중국에서 녹색 중국으로'의 이행을 주장하고 계시죠.

후안강 : 국정 연구에 종사하면서 중국의 장기 발전의 제약 요소로 환경 문제를 줄곧 강조했습니다. 에너지와 수자원에 관한 보고서도 여러 차례 작성했고요. 자연과 자원은 대국의 운명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좌우합니다. 응당 중국의 미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중국은 유럽과 미국, 일본의 산업화 과정을 반복할 수 없습니다. 후발 주자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지요. 현재의 선진국처럼 지난 100년의 지구 오염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 성장과 동시에 생태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 목표입니다.

이병한 : 대의는 공감합니다. 문제는 각론인데요. 

후안강 : 일단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 자신들의 체제와 문명을 돌아봐야 합니다. 미국식 생활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자각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미국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계가 감당해왔던 지난 세기의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모적인 경쟁이 아니라 생산적인 합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형 발전 모델이란 고낭비, 고소비, 고오염에 바탕을 둡니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남용하고 고도의 소비 생활을 구가하면서 지속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흑색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방의 발전 모델은 자유나 인권, 민주주의 같은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하여 합리화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지구적 관점에서 폐기되어야 합니다. 

이병한 : 서방 모델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책임 대국'의 역할에 모자랍니다. 환경파괴의 대명사는 이미 중국이 된 것 같은데요. 

후안강 : 미국은 세계 인구의 20분의 1이지만 에너지는 4분의 1을 소비합니다. 중국은 세계의 5분의 1이지만 에너지 소비는 10분의 1에 그칩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의 모델을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 중국의 재앙이고 지구의 재앙입니다.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자원 절약형 생산 체제를 건설하고, 적절한 수준의 소비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14억 인구와 자연 및 자원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개혁 개방 초기에는 경제 건설, 정치 건설, 문화 건설의 삼위일체를 강조했습니다. 후진타오 시대에는 사회 건설을 추가했습니다. 시진핑 시대에는 생태 문명 건설을 보탰습니다. 즉, 중국 특색의 근대화는 오위일체로서 추진될 것입니다. 생태 친화형 발전 모델과 녹색 근대화로 '녹색 대국(Green Super-China)'을 실현할 것입니다. 

물 : Governance와 道 

이병한 : 구체적인 사안을 짚을까요. 물 문제가 심각합니다.

후안강 :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생산의 필수이며 생태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객관적 조건이 엄혹합니다. 중국은 인구가 세계의 20%인데 반해 수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합니다. 1인당 평균 수자원도 세계 평균의 30%에 그치지요. 지난 30년간 평균 10%의 경제 성장을 지속하면서 수자원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졌습니다.

가뭄이 빈번하고 물의 수요와 공급 간 모순도 심해졌습니다. 수질 또한 나빠졌고요. 수자원 생태계의 퇴화도 심각합니다. 기후 변화는 물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경제 발전의 주요 제약이자, 생태 문명 건설의 장애가 되었어요. 그래서 '水理(수리)'가 독자적인 학술 영역이 된 것입니다. 

이병한 : 국정연구원 산하에 수리연구센터도 있더군요. 역사적으로 줄곧 그랬던 것 같습니다. 治水(치수)가 治國(치국)의 기초였지요. 

후안강 : 중국만도 아닙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은 모두 대하 유역에서 발원했습니다. 강은 각종 문명의 발원지입니다. 황하를 다스리는 것은 역대 중화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대사였습니다. 예부터 우(禹)왕의 치수가 전설로 전해졌습니다. 한 무제는 황하를 다스림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다졌고요. 수나라는 대운하를 건설함으로써 대당제국의 초석을 두었습니다. 강희제 역시 치수 사업을 통해 대청제국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대하 유역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강력한 중앙 집권적 정부가 공공 사업을 집행하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아시아적 생산 양식은 동양의 정체(停滯)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악용되기도 했는데요. 

후안강 : 중국의 역사는 분열과 통일의 반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분열과 할거의 시대가 거듭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대세는 역시 통일과 재통일이었습니다. 분열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통일의 기간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현재 중국은 유럽의 50개 국가 7억의 인구에 중남미의 34개 국가, 6억의 인구를 합한 규모입니다. 슈퍼 인구이고 슈퍼 사회이며 슈퍼 국가입니다.

왜 유럽처럼 수많은 국가들로 나뉘지 않고 대일통이 반복되었을까요? 여기에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요체가 있습니다. 중국의 지리 조건과 긴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즉, 중국의 자연과 지리가 대규모 치수 사업을 필요로 합니다. 작은 나라들로 쪼개져서는 황하와 장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통일된 중국이 치수에 더 유리하고, 치수의 과정이 다시 중앙 집권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치수가 곧 치국이고, 치수의 길(治水之道)이 곧 치국의 길(治國之道)이 됩니다. 

이병한 : 그러고 보니 길 '道(도)'자에도 물 '水(수)' 변이 들어가 있네요.

후안강 : 중국인들은 '도'라는 글자를 통하여 우주 만물의 진리를 표현하기 좋아합니다. 지고의 지혜를 '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治理(치리), 즉 거버넌스(governance)와 연결시킵니다. 좋은 거버넌스란 곧 良治(양치)의 道(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물을 다스리는 과정 자체가 좋은 거버넌스를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水理(수리)와 治理(치리), 재미난 비유입니다. 궁금한 것은 실제인데요.

후안강 : 국정연구원에서 치수 연구를 본격화한 것도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치수의 도, 양치의 도에 관한 종합적 관점을 형성해가고 있습니다. 계획 경제 시대 황하의 치수는 홍수 방지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대처만으로도 일정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개혁 개방에 따라 수자원의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황하의 곳곳에서 강물의 흐름이 끊어지는 단류(斷流)가 발생했습니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는 지역에서 과도하게 물을 이용함으로써 농촌 지역에는 가뭄이 심해졌지요. 소득 수준의 격차뿐만이 아니라 생태 환경의 격차도 발생했던 것입니다. 즉, 황하 단류의 위기는 겉으로는 자연과 환경의 위기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거버넌스의 위기인 것입니다. 국가 거버넌스부터 지방 거버넌스까지 포함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거버넌스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물 문제는 거버넌스 변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좋은 거버넌스의 신형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병한 : 어떤 모델일까요? 

후안강 : 저는 계획 경제 시대의 전통적 명령과도 다르고 완전 시장형도 아닌 '준(準)시장'을 제안합니다. 지방 정부에 수권(水權)을 부여하고 유역의 상/하 지역에 수시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수권'과 '수시장' 등의 수단을 도입하여 공공성과 시장성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수자원 관리에 시장 기제를 도입하고, 수자원 배분의 공평과 효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치수 실천의 진일보에 따라서 수리 거버넌스의 정보와 지식 또한 증대할 것입니다. 중국 특색의 수자원 관리 이론을 확립해 갈 것입니다. 수리만큼이나 치리 또한 풍부해질 것입니다. 녹색 문명은 세계사적 조류와도 합치할뿐더러 天人合一(천인합일)이라는 중화 문명의 전통적인 大道(대도)와도 부합합니다. 

이병한 : 치수 거버넌스와 일대일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후안강 : 황하와 장강은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합니다. 그러나 지구의 지붕에서 대양으로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황하와 장강만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지만, 동남아에서는 북에서 남으로 흐릅니다. 동남아의 젖줄인 메콩 강의 수원도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에 있습니다. 즉, 메콩강은 황하와 장강의 자매 강입니다. 남아시아로는 갠지스와 인더스 강도 흐르지요. 

즉, 중국 안에서 중앙과 지방이 합작하여 수리 거버넌스를 형성해 가는 것처럼, 중국과 동남아, 남아시아 또한 합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동 관리와 공동 보호로 공생과 공영을 실현해야 합니다. 일대일로의 지리 혁명과 공영주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매우 깊이 연동되어 있습니다. 유라시아 단위의 초국적인 거버넌스 마련이 시급하고 절실합니다. 일대일로의 모든 국가들은 같은 물을 먹고 마시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 후안강 중국 칭화 대학교 교수. ⓒ이병한 

 
 

에너지 : 기후 적응형 사회 

이병한 : 지난 2015년 12월 파리에서 신(新)기후 협정(파리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현장에 계셨지요? 

후안강 : 만족스럽지 않지만,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중국의 책임을 더욱 절감합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세계 여타 국가들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더라도 인류에게 최악의 결과가 도래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중국의 14억 인민부터가 환경오염, 생태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가뭄 피해 인구가 매년 1000만 명에 육박합니다. 홍수와 폭풍 피해 규모는 5000만 명에 달합니다. 인도에 비해서도 1.3배가 많아요. 중국과 비슷한 영토를 가진 미국에 견주면 90배나 많습니다. 

최근에는 기후 이상으로 인한 재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8년 말과 2009년 초 화북 지역에 가뭄이 극심했습니다. 2009년 말에는 서남부에서 가뭄 피해가 컸습니다. 2010년 3월에는 황사가 중국의 절반을 뒤덮었습니다.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아시아 금융 위기나 세계 금융 위기보다 자연재해의 피해가 훨씬 컸던 것입니다. 그 후유증 또한 더 심각하고요.

금융 주권 확보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보복입니다. 기후 온난화가 지속되고 해수면 상승이 현실화된다면 중국에서 가장 발달한 동남부 연해 지방부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개혁 개방의 성취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반드시 중국 자신을 위해서, 또 인류 전체를 위해서 선도적이고 즉각적으로 탄소 배출을 감소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브라질, 인도 등 여타 이산화탄소 배출 대국의 감소 여부와 무관하게 자주적이고 주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근본 이익이며, '과학적 발전관'의 필연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후안강 칭화 대학교 교수의 인터뷰는 계속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 일대일로의 사상 ② : 천인합일(下) 시진핑 책사 "中, 미국-월家 에너지 카르텔 깨부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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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50킬로톤급 시험용 수소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1/12 10:05
  • 수정일
    2016/01/12 10: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호석의 개벽예감 <18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6/01/11 [13: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헬륨을 검출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헛수고다 
2. 5.1 규모의 인공지진파와 50킬로톤급 폭발에너지
3. 여섯 번째 수소탄보유국이 등장하였다
4. 현 위기국면이 지적하는 다섯 가지 사실

 

▲ <사진 1> 2016년 1월 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수소탄시험을 진행하라는 최종명령서에 수표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보도사진을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올린, "수소탄시험준비가 끝났음을 보고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군수공업부 보고서 겉장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중앙은 수소탄시험을 승인한다. 2016년 1월 6일 단행할 것 김정은 2016. 1. 3."이라고 썼다.     © 자주시보

 

1. 헬륨을 검출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헛수고다

 

2016년 1월 6일 조선이 수소탄시험에 성공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다. 그 놀라운 소식은 강력한 지진처럼 지구를 흔들어놓았다. <사진 1>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말쓰임새에 대해 한 가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조선에서는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을 쓰고, 한국에서는 수소탄실험이라는 말을 쓰는데 어느 것이 올바른 말쓰임새일까? 능력평가실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능력평가시험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시험(test)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의 성능을 가늠해보는 행위를 뜻한다. 그와 달리, 화학시험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화학실험실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실험(experiment)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에서 일어나는 현상변화를 조사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수소탄의 성능을 가늠해보는 행위라는 뜻을 나타내는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이 옳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제공용어로도 수소탄시험(hydrogen bomb test)이라고 한다. 


조선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조선의 수소탄시험 성공소식에 대한 반응은 상반되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조선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한 반면에, 조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탄성을 올린 것이다. 더욱이 조선에 대해 혐오감보다 더 심한 적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조선의 수소탄시험 성공소식을 듣고 병적 흥분(hysteria)에 빠져들어 격렬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조선의 수소탄시험 자체를 부인하였다.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이 수소탄시험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한 그들은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을 핵시험이라는 말로 바꾸어놓았다. 수소탄시험 자체를 부인하는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수소탄시험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궤변이다.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이 수소탄시험이었는가 아니면 핵탄시험이었는가를 조선의 외부에서 판별할 두 가지 과학적인 증거는 헬륨(helium)과 인공지진파(artificial seismic wave)밖에 없다. 헬륨은 핵탄시험에서는 나오지 않고 수소탄시험에서만 나오는 무색, 무취, 무해한 기체이므로, 조선의 동해 상공 대기 중에서 포집한 대기표본에서 헬륨이 검출되면 수소탄시험이었음을 확증할 수 있다.


그래서 미공군은 방사성 핵종 탐지설비를 장착한 특수작전기 WC-135W를 동해 상공에 급파하였다. 그 특수작전기가 동해의 공해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대기표본을 포집하면, 그 대기표본에 대한 성분분석을 진행하여 헬륨을 검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동해 상공에서 포집한 대기표본에서 헬륨을 검출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조선의 지하핵시험장에서 외부로 새어나간 방사성 핵종들은 지극히 적은 분량이어서 드넓은 동해 상공에서 포집한 대기표본에서 헬륨을 검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라, 2013년 2월 12일 조선이 제3차 핵시험을 진행한 직후에도 미국은 동해 상공에 출동시킨 WC-135W가 포집해온 대기표본을 분석하였으나 방사성 핵종을 검출하지 못했다.  


미국이 조선의 핵탄시험이나 수소탄시험에서 방출된 방사성 핵종을 검출하지 못하는 까닭은, 조선이 환경오염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하핵시험장을 특수공법으로 건설하면서 환경오염물질이 대기 중에 방출되지 않도록 완벽한 차단장치를 갱도에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헬륨을 검출하지 못하고 쩔쩔매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이 수소탄시험이었는가 아니면 핵탄시험이었는가를 조선의 외부에서 판별할 두 가지 과학적인 증거 가운데 헬륨검출작업이 허사로 끝나게 될 것이므로, 과학적 증거로 남는 것은 인공지진파뿐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지진연구협의회 연구원이 작성한 것인데, 조선이 진행한 3차례의 핵시험 및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각각 발생한 인공지진파가 서로 다른 색으로 표시되었다. 중앙에 보이는 검은색 파형은 2006년 제1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것이고, 청록색 파형은 2009년 제2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것이고, 노란색 파형은 2013년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것이고, 붉은색 파형은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노란색 파형과 붉은색 파형이 거의 겹쳐져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2013년 핵시험에서 발생한 파형과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파형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의 인공지진파를 조선의 외부에서 측정하였더니, 뜻밖의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2016년 1월 6일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의 진폭과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의 진폭이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인공지진강도는 폭발위력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2016년의 수소탄시험과 2013년의 핵탄시험에서 인공지진강도가 서로 비슷하게 나타났다는 말은 폭발위력도 비슷하다는 뜻이다.


수소탄(핵융합탄)의 폭발에너지는 메가톤급이고, 핵탄(핵분열탄)의 폭발에너지는 킬로톤급이다. 1메가톤은 TNT 100만톤이 폭발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같고, 1킬로톤은 TNT 1,000톤이 폭발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같으므로, 1메가톤급 수소탄이 폭발하면 1킬로톤급 핵탄보다 1,000배나 더 강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조선이 2006년 10월 9일에 진행한 제1차 핵시험의 폭발에너지가 약 1킬로톤이었으므로, 이번에 진행한 수소탄시험에서는 그 폭발에너지보다 1,000배 더 강한 1메가톤급 폭발에너지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진행된 수소탄시험의 폭발에너지는 2013년에 진행된 핵탄시험의 폭발에너지와 비슷하게 나왔으니,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조선은 이번에 수소탄시험이 아니라 2013년과 똑같은 핵탄시험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런 주장과 정반대의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이 수소탄시험이므로, 2013년 2월 12일 조선이 진행한 폭발시험도 사실은 핵탄시험이 아니라 수소탄시험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12월 14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핵융합시험 5년 뒤 핵융합탄미사일 등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조선이 2006년 10월 핵탄시험을 하였고, 2009년 5월 증폭핵분열탄시험을 하였고, 2013년 2월 수소탄시험을 하였다고 논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선은 2013년 2월에 제3차 핵시험을 하였고, 이번에 첫 수소탄시험을 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으므로, 이 글에서는 조선의 공식발표를 존중하면서 이번에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를 분석적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2. 5.1 규모의 인공지진파와 50킬로톤급 폭발에너지


이번에 조선이 진행한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강도에 대해서는 지하핵시험장에 설치된 계측장비로 그것을 측정한 조선만이 알고 있는데, 조선은 폭발에너지강도가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강도를 측정한 자료에 근거하여 폭발에너지강도를 추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공지진강도를 측정한 자료를 가지고 폭발에너지강도를 추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공지진파가 방사될 때 지형이나 지질에 따라 그 진폭이 변형되기 때문에 측정소의 위치나 측정기의 성능에 따라 측정값이 다르게 나오는데다가, 인공지진피해를 우려한 나머지 폭발에너지를 억제하는 특수공법으로 지하핵시험장을 건설하고, 갱도를 견고한 차단물질로 완전히 밀폐한 경우 인공지진파의 진폭이 실제보다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진전문가들 가운데는 지하핵시험장에서 폭발한 핵탄의 폭발에너지 가운데 약 0.5%만 방사지진에너지로 전환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조선의 지하핵시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건설되었는데, 해발고가 2,205m인 그 산은 흙산이 아니라 화강암층이 발달된 돌산이다. 토양층을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 암석층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몇 배나 더 힘든데도, 조선이 굳이 돌산에 지하핵시험장을 건설한 까닭은 국토가 비좁은 조선에서 핵탄시험이나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때 발생하는 인공지진피해를 극력 방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지하핵시험장은 우물형으로 곧게 파내려간 수직갱이 아니라 달팽이형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며 파낸 수평갱이다. 우물형 수직갱을 곧게 파내려가는 것보다 달팽이형 수평갱을 굽이굽이 파내는 것이 몇 배나 더 힘든데도, 조선이 굳이 달팽이형 수평갱을 파내어 지하핵시험장을 건설한 것은 국토가 비좁은 조선에서 핵탄시험이나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때 발생하는 폭발에너지를 억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에 나오는 조선의 지하핵실험장 통제실을 가상한 장면이다. 그 영화는 2009년 5월 25일 조선이 진행한 제2차 핵시험을 배경으로 하여 촬영된 것인데, 위의 화면에 나타난 것처럼 지하핵시험장이 달팽이형으로 생긴 긴 갱도로 건설되었고, 모두 10개의 갱도차폐문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이 만탑산 암석층을 뚫고 들어가 달팽이형 수평갱을 파내어 지하핵시험장을 건설한 것은 국토가 비좁은 조선에서 핵탄시험이나 수소탄시험이 진행될 때 발생하는 폭발에너지를 억제하여 인공지진피해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지난 시기 5대 핵강국들도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하는 인공지진피해를 우려한 나머지, 사막이나 태평양 한 복판에서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자기 땅에 사막도 없고, 태평양에 나가서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형편도 되지 못하는 조선으로서는 자기의 비좁은 국토에서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때 폭발에너지가 외부에 방사되는 것을 극력 억제하는 방법으로 지진피해를 방지하여야 하였다.


조선은 이전에 진행한 세 차례의 핵시험에서 계속 사용해온 갱도를 이번에 다시 사용하지 않고, 수소탄시험을 위해 별도로 굴설한, 이전 갱도에서 얼마 떨어진 새로운 갱도를 이번에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이전에 사용한 갱도보다 지진피해방지조치를 더욱 보강한 갱도에서 수소탄시험을 안전하게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조선의 수소탄시험은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된” 것으로 하여 “주위생태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였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핵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강력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수소탄을 시험할 때 방사되는 폭발에너지를 지난번 핵시험에서 억제한 것보다 더 강하게 억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을 때, 세계 각지의 측정소들이 각기 측정한 인공지진파는 조선의 지진피해방지조치에 의해 억제된 것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강도를 측정한 값은 각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게 나왔는데, 그 중에서 신뢰도가 가장 높은 것은 미국지질조사국(U.S. Geographical Survey)이 발표한 측정값 5.1이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도 그와 같은 측정값을 발표하였으니, 5.1이라는 측정값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더 높아진다.


그에 비해, 한국기상청은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강도를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먼저 청와대에 보고하였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가공처리된 측정값을 뒤늦게 언론에 공개하였다가, 다른 나라 측정소들에서 발표한 측정값들보다 너무 낮게 하향조정되었음이 드러나자 두 차례나 상향조정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였으므로 그들이 발표한 측정값을 믿기 힘들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미국지질조사국이 발표한 인공지진강도 측정값을 사용한다.


미국지질조사국은 2013년 2월 조선의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강도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5.1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므로, 미국지질조사국의 측정결과에 따르면 이번 수소탄시험의 인공지진강도와 제3차 핵시험의 인공지진강도는 서로 같다.


지진강도를 나타내는 리히터 규모(Richter Scale)와 폭발에너지를 나타내는 킬로톤(kiloton)의 상관관계를 표시한 켈리킬로톤지표(Kelly Kiloton Index)에 따르면, 이번 수소탄시험과 제3차 핵시험에서 똑같이 나타난 인공지진강도 5.1에 상응하는 폭발에너지는 TNT 45킬로톤의 폭발에너지와 같다. 인공지진파 측정값과 켈리킬로톤지표를 대조하면, 이번 수소탄시험의 폭발에너지와 제3차 핵시험의 폭발에너지는 똑같이 45킬로톤의 폭발에너지인 것이다.

 

▲ <사진 4> 이 사진은 <연합뉴스>가 중국 텔레비전 보도방송 화면을 전재한 것인데,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지진에너지가 방사되었을 때 중국 동북지방의 옌지(연길)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진동위험을 피해 교사 밖으로 대피한 장면이다. 그 진동은 조선의 핵시험장에서 400여 km나 떨어진 단둥(단동)에서도 느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이번 수소탄시험이 2013년 핵탄시험보다 더 큰 폭발에너지를 발생시켰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하지만,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가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보다 좀 더 강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보다 더 강력한 인공지진파가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하였다는데 있다. 이를테면, 이번에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을 때, 중국의 옌지시, 훈춘시, 창바이현 등에서 인공지진파에 의한 강한 진동이 일어났으며, 조선의 핵시험장에서 400여 km나 떨어진 단둥에서도 그 진동이 느껴졌다. 조선에 인접한 중국 동북지방 각지에서 그처럼 강한 진동이 있었으므로, 함경북도와 량강도에서는 그보다 더 강한 진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는 제3차 핵시험에서 발생한 45킬로톤급 폭발에너지보다 조금 더 강한 50킬로톤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50킬로톤의 폭발에너지는 TNT 5만톤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폭발에너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선이 이번에 진행한 수소탄시험은 50킬로톤급 수소탄을 폭발시킨 시험이었다.


만일 조선이 50킬로톤급 폭발에너지보다 더 강력한 수소탄을 시험하였다면, 조선 북부지역에 있는 도시들과 조선에 인접한 중국 동북지방의 도시들에서 건물붕괴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조선이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50킬로톤급으로 제한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3. 여섯 번째 수소탄보유국이 등장하였다


수소탄이 폭발하면 최소 1메가톤급 이상의 초강력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1메가톤급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2만분의 1로 축소시킨 50킬로톤급 수소탄도 존재할 수 있을까? 미국이 1960년대 초에 만든 B28 계열의 수소탄 4종 가운데 제3종의 수소탄이 70킬로톤급 수소탄이다. 미국이 55년 전에 70킬로톤급 수소탄을 만들었다면, 오늘 고도로 발전된 핵공학기술을 가진 조선이 50킬로톤급 수소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선의 핵공학기술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만, 조선은 이미 15년 전에 핵융합기술을 개발할 정도로 핵공학기술의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그와 관련하여 조선정부가 수소탄시험 당일에 발표한 성명을 분석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그 성명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성명을 읽어보지도 않고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거론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이 빚어낸 횡설수설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성명을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첫째, 그 성명에 따르면, 2016년 1월 6일 조선에서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첫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은 제1차 수소탄시험이라는 뜻이므로, 조선은 필요한 경우 제2차, 제3차 수소탄시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핵무력증강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조선이 핵탄시험단계에서 수소탄시험단계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둘째, 그 성명에 따르면,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이번 시험에서 정확히 확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수소탄이라고 간단히 쓰지 않고, 수소탄이라는 말 앞에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시험용 수소탄을 새롭게 개발하였다는 말은 수소탄을 이번에 처음 개발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 수소탄과 구분되는 시험용 수소탄을 이번에 새로 개발하였다는 뜻이다. 이번에 시험용 수소탄을 개발하였다면, 이전에 이미 작전용 수소탄을 개발하여 실전배치해놓은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작전용 수소탄을 가진 조선은 이번 폭발시험에 사용하기 위해 시험용 수소탄을 새로 개발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2016년 1월 1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수소탄시험을 성공시킨 핵과학자, 기술자, 군인건설자, 노동자, 당일군들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불러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조선이 전 세계에서 여섯번째 수소탄보유국으로 등장하였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셋째, 그 성명에 따르면, 조선은 이번 시험에서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이 이번 폭발시험에서 사용하려고 새로 개발한 시험용 수소탄은 소형화된 수소탄이다. 
수소탄을 소형화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수소탄의 크기를 탄도미사일 탄두부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물체의 크기가 작아지면 당연히 무게도 가벼워진다.


또한 수소탄을 소형화하였다는 말은 크기를 작게 만들고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는 뜻만이 아니라, 폭발에너지를 축소시켰다는 뜻도 지닌다. 핵탄이나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축소시키는 것을 열화(劣化)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조선은 폭발에너지를 축소시킨 열화수소탄을 폭발시험에 사용한 것이다. 2016년 1월 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培 晉三)는 조선이 수소탄시험에 사용한 수소탄이 통상적인 수소탄보다 폭발규모를 억제한 수소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이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억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지만,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이 1메가톤급 수소탄을 실전배치하기 시작한 때는 1960년이고, 소련이 1메가톤급 수소탄을 실전배치하기 시작한 때는 1964년이다.  
미국은 1958년에 미국-영국상호방위협정을 맺어 1메가톤급 수소탄을 만드는 첨단기술을 영국에 전수해주었다. 그리하여 영국도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산 1메가톤급 수소탄을 모방생산할 수 있었다.


5대 핵강국들 가운데 수소탄을 늦게 만든 나라는 중국과 프랑스다. 1967년 6월 17일 중국이 진행한 자기의 첫 수소탄시험에서 3.3메가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 1968년 8월 24일 프랑스가 진행한 자기의 첫 수소탄시험에서 2.6메가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8년 5월 11일 인도가 200킬로톤급 수소탄을 시험하였지만 45킬로톤의 폭발에너지밖에 나오지 않아 실패하였다.


미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1메가톤급 수소탄을 만들어 실전배치한 때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뒤에 조선도 자력으로 1메가톤급 수소탄을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고, 이번에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여 수소탄보유사실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조선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수소탄보유국이 된 것이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핵탄개발→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핵융합기술개발→증폭핵분열탄개발→수소탄개발로 이어진 장장 30여 년에 걸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력으로 헤쳐온 조선의 핵무력증강의 장정은 마침내 김정은 시대에 종착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6> 조선의 수소탄시험과 관련하여 조선정부가 발표한 성명을 읽어보면, 조선은 기존 수소탄과 구분되는 시험용 수소탄을 이번에 새로 개발하여 폭발시험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작전용 수소탄을 가진 조선은 이번 폭발시험에 사용하기 위해 시험용 수소탄을 별도로 개발한 것이다. 조선이 보유한 작전용 수소탄은 탄두화되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대지탄도미사일에 장착되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행진에 등장한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를 촬영한 것인데, 그 미사일 탄두부에 수소탄두가 장착된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4. 현 위기국면이 지적하는 다섯 가지 사실


조선을 포함한 6대 핵강국들이 보유한 수소탄은 핵탄보다 100배, 1,000배 더 강한,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진 최종병기다. 조선은 그런 수소탄을 어디에 쓰려고 만들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조선이 자기의 주적인 미국과 최후결전을 벌일 때 쓰려고 수소탄을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수소탄은 그들이 계획한 반미결전의 마지막 순간에 쓰일 가장 강력한 공격수단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의 수소탄은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기 때문에 조선이 계획한 최후결전에서만 쓰일 것이다.


조선이 자력으로 개발한 1메가톤급 수소탄은 탄두화된 수소탄두다. 수소탄두는 조선이 2015년에 공개한 최신전략무기들인 화성-14호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북극성-1호 잠대지탄도미사일에 각각 장착되었다. 화성-14호나 북극성-1호는 조선의 최후결전에서 미국 본토 타격에 사용될 가장 강력한 전략무기들이다. <사진 6>


군사학의 논법으로 말하면, 최후결전에서 조선인민군이 주한미국군과 주일미국군을 동시격파하기 위한 공격에 나섰을 때, 조선에 대한 미국의 보복핵공격기도를 좌절시킬 억제수단이 바로 조선의 수소탄인 것이다. 조선이 보유한 다른 무기들은 수소탄만큼 확실한 억제수단으로 되지 못한다.


그런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후결전의 마지막 억제수단으로 쓰일 수소탄을 보유하였음을 2015년 12월 10일에 공식적으로 언명하였고, 수소탄시험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12월 15일에 하달한 까닭은, 최후결전이 임박하였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일 최후결전이 임박하였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이제껏 최후결전의 마지막 억제수단으로 비장해온 수소탄을 굳이 세상에 공개하여 자기 핵무력의 결정적인 부분을 외부에 노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전쟁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적대관계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때, 바로 그럴 때 전쟁이 일어나는 법이다. 2015년 8월 한반도에서 일어난 8월위기사태는 적대관계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이 어떻게 급속히 확대되어 전쟁재발위험을 격화시켰는지를 체험하게 해준 계기였다.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한국군의 대북확성기방송재개→한국군의 비무장지대 포격사건→조선인민군의 전쟁태세돌입으로 이어진 일련의 증폭된 위기사태는 한반도의 위태로운 정전상태가 갑작스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8월위기사태는 한국군의 대북확성기방송 중단조치로 전쟁재발위험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중대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8월위기사사태 당시의 사정과 다르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한국군이 확성기방송을 사용하는 대북심리전을 재개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8.25합의 이전의 위기사태로 되돌아갔다고 보도하였지만, 8월위기사태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미증유의 위험 속에 빠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비난하고, 확성기방송을 사용하는 대북심리전을 재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문화일보> 2016년 1월 8일 보도에서 한국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지적한 것처럼, 대북확성기방송은 단순한 대북방송이 아니라 일종의 군사작전이다. 8월위기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확성기방송을 사용하는 대북심리전은 조선을 심히 자극하여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듯한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2016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확성기방송을 사용하는 대북심리전을 재개하자 조선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은 즉각 경계태세에 돌입하였고, 한국군 최전방부대들도 최고경계태세에 돌입하였다. 
한국군의 대북심리전 재개가 오죽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보였으면, 얼마 전 일본을 방문 중인 영국 외무장관도 한국군의 대북확성기방송 재개에 대해 우려하면서 자제를 촉구하였겠는가.


둘째, 2016년 1월 10일 서태평양의 미국령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전략폭격기 1대가 오산미공군기지 상공까지 장거리를 비행하고 괌으로 돌아갔다. 미국과 최후결전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조선이 여섯 번째 수소탄보유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수 없었던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으로 출동시켜 조선을 위협하려고 한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2016년 1월 10일 오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수소탄시험을 성공시킨 핵과학자, 기술자, 군인건설자, 노동자, 당일군들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불러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었을 때, 오산미공군기지 상공에 미공군 B-52 전략폭격기 한 대가 호위기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위의 사진은 <국방일보>에 실린 현장보도사진이다.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그 전략폭격기는 오산미공군기지 상공까지 장거리를 왕복비행하면서 조선을 위협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미국의 핵공격을 막아내고, 보복핵공격으로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미공군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 자주시보


그러나 내막을 파헤치면 한국의 언론보도와는 다른 실상이 드러난다. 조선은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지 못했던 지난 시기에는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이 조선에게 위협적이었지만, 조선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게 된 이후에는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이 조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그것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는 B-52 전략폭격기를 동중국해 상공에서부터 감시, 추적할 수 있는 장거리탐지레이더가 조선인민군에게 있고,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비행체를 격추할 수 있는 최첨단 장거리지대공미사일 번개-6이 조선인민군에게 있고,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B-52 전략폭격비행대를 요격할 비행사결사대가 조선인민군에게 있으므로, 조선은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조선을 위협해보려는 미국의 의도는 크게 빗나간 것이며, 조선이 미국의 호전성을 비난할 구실을 주는 역효과만 불러오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이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동시킬 수밖에 없는 까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극도로 반발하는 한국과 일본의 안보불안감을 덜어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오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은 자기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을 의심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이 대미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수 없다.


셋째, 미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유엔안보리로 끌어갔고, 유엔안보리는 조선에 대한 추가제재를 결정할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조선에 대한 추가제재를 결정하면, 조선은 그에 대한 응징조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도 조선은 유엔안보리가 자기에 대한 추가제재를 결정할 때마다 응징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추가제재에 대한 조선의 응징조치는 실행준비를 끝내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명령을 기다리는 위성발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하는 것이다. 조선이 위성을 발사하면, 미국은 조선의 위성발사를 유엔안보리로 끌어갈 것이며, 유엔안보리는 조선에 대한 또 다른 추가제재를 결정할 것이다.


한국군이 확성기방송으로 대북심리전을 재개하고, 미국군이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을 감행한 가운데, 유엔안보리의 대북추가제재가 연쇄적으로 반복되면, 8월위기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심각한 전쟁재발위험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미국은 해마다 3월초부터 4월말까지 강행해온 ‘키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을 올해도 강행할 것이다. 미국은 특히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증강된 대북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심히 자극할 것이다. 이것은 조선을 최후결전으로 떠미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다섯째, 이전에 발표된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한 것처럼, 조선은 결전준비를 완료하고 결정적인 기회를 기다려왔다. 이를테면,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이 진행한 2015년 12월 23일의 쌍방실동훈련과 2016년 1월 4일의 포사격경기는 조선이 결전준비를 완료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만일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세력들이 위에 서술한 것처럼 극단적인 대북적대행동을 계속 감행하는 경우, 조선은 그들이 기다려온 최후결전의 결정적인 기회가 마침내 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난해 8월위기사태 당시에 조선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지만, 올해 그보다 더 심각한 위기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조선은 전시상태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8>

 

▲ <사진 8> 2016년 1월 9일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국들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빌미로 대북적대행동의 강도를 차츰 높이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새해를 맞아 인민무력부를 축하방문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날 인민무력부 회의실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혁명 앞에 조성된 복잡한 정세에 대하여 통보해주시"고, 조선의 수소탄시험은 "미제와 제국주의자들의 핵전쟁위험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조치"라고 하면서 "올해 인민군대사업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중심과업"을 제시하였다.     © 자주시보


조선이 요구한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한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조선의 수소탄이 미국의 존립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불가역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철지난 6자회담 재개설을 되뇌이던 미국에게 지금 남은 것은 뼈저린 후회와 미증유의 패배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비난하면서 언급한 ‘값비싼 대가’는 그가 적대시하는 조선이 아니라 그가 철석같이 믿는 미국이 치루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병기까지 세상에 공개한 조선에게 지금 남아있는 선택의 길은 최후결전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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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들쥐근성'에 맞서는 시민정신을 보며

'소녀상' 앞에서 36년 전 '들쥐론'을 떠올리다

[주장] '들쥐근성'에 맞서는 시민정신을 보며

16.01.11 09:24l최종 업데이트 16.01.11 20: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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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상 주변에 놓인 수많은 꽃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소녀상 지키기 2차 토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폐기와 평화의 소녀상 이전 반대를 요구하며 꽃을 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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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했다. 도발적일 정도로 전격적인 것이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다수의 국민들에게 선전포고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야당 대표는 즉각 반대 성명을 내었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많은 시민 단체들이 반대 시위에 돌입했다. 

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한일 양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4일 발표했다. 주교회의 성명은 한일 위안부 합의문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행동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한일 합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의 거친 시위에 당당히 맞서는 '효녀연합' 등 청년단체와 시민들의 행동은 한결 뜨거운 기운을 발산한다.  

소녀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노년층 보수단체들과 청장년층을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들의 대립 현상을 보면서 나는 우습게도 위컴의 '들쥐론'을 상기한다. 조금은 엉뚱한 생각일 것도 같지만, 전적으로 생뚱맞은 것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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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연합’에 맞선 ‘효녀연합’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홍승희씨 등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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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36년 전 위컴의 '들쥐론'을 떠올리는 심정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할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 위컴이 했던 말을 나는 확연히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들쥐론'이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건 그를 따른다"라는 말이었다. 

좀 더 명확히 풀어 말한다면, "한국인은 '들쥐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도자가 되건 전후좌우를 따지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설혹 그름을 알더라도 전적으로 그를 따르고 복종하며 충성한다"라는 뜻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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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쥐'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위컴 당시 주한 미 8군 사령관
ⓒ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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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모욕감으로 치가 떨렸다.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하고 정권 찬탈을 방조한 미국의 한국 주둔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라니,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한 모욕감이 아니었다. 이상한 모멸감이었다. 겉으로는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속으로는 찔리는 것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 민족의 열등한 근성과 치부를 들켜버린 데서 오는 미묘한 자기모멸감 같은 것이 실은 더욱 뼈아팠다. 말하자면 이중의 아픔이었다. 외국인에게서 모욕을 당했다는 감정과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 내 가슴에서 쌍곡선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위컴이 지적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을 되새기고 확인하는 비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을 생각하면 위컴의 '들쥐론'이 오버랩 되곤 한다. 북한의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는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는 비결은 바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에 있다. 그것을 빼고는 북한의 신기하고도 가공할 독재체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거기에서도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 북한도 우리 동포, 같은 민족이 아닌가. 바로 우리 민족에게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내게 좀 더 얄궂은 수치심으로 작용한다. 정말이지 우리 민족은 별종이다. 세계인들에게 창피스럽고, 그만큼 슬프다.

북한의 독보적인 폐쇄왕조 체제를 가능케 하는 들쥐근성은 남한에도 있다. 남한 사회의 곳곳에서도 들쥐근성의 유형들을 접하고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세습 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개신교의 일부 대형교회들이다. 대형교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신(狂信)의 기류들이 잘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특이성이 빠른 기간 내에 가공할 성장을 이룩하여 수많은 대형교회들을 출현시켰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 세습체제의 유사성

'반공'을 입에 달고 사는 일부 대형교회의 교역자들은 기절초풍할 말일지 모르지만,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는 한마디로 닮은꼴이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성격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기에 가까운 극렬함, 두 기둥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1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가 1, 2, 3위를 비롯하여 7개나 되고, 세계 5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들이 절반에 가까운 23개나 되는 현상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특이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으로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이상한 공포감마저 갖게 한다.  

최근 세상에 드러난 박성배 목사의 66억 탕진 도박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목사를 무조건 믿고 따르며 추앙하는 신앙 태도, 들쥐근성의 발호 때문에 66억을 탕진하는 목사의 도박 행위도 발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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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합의 반대시위 “기억하는 것이 책임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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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근성과 광기에 가까운 극렬성은 '조중동' 등 수구 족벌언론도 마찬가지다. 친일과 친미와 반공을 입에 달고 사는 세습 족벌언론들의 토양도 사실은 들쥐근성이다. 세습 족벌언론들을 지탱시키는 조건도 따지고 보면 북한의 폐쇄적 왕조체제, 그리고 남한 대형교회의 세습체제와 같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폐쇄적 왕조체제 속에서 광기 어린 모습을 연출하는 북한 주민(세분하자면 주요 행사에 참석하거나 동원되는 사람)들이나, 세습체제가 유지되는 남한 대형교회 교역자(또는 교주)들의 광적인 설교를 들으며 아멘 소리를 연발하는 극렬 신자들이나, 언론 본연의 사명보다는 사주(社主)의 이익에 맹종하는 세습 족벌언론의 먹물들이나 동질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 내면에 잠재된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기는 위치와 상황은 다르더라도 매한가지다. 

우리 민족의 그 특이성, 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30여 년 전에 위컴이라는 미국인이 지적한 '들쥐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은 그 근성이 오늘의 '들쥐천국'을 만들었다. 남한의 들쥐상황은 북한의 들쥐왕국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시야가 좁은 들쥐의 습성 때문이다. 

한국인인 내가 1980년에 처음 들었던 미8군 사령관 위컴의 '들쥐론'을 회억하며 우리 한국인들의 특이성을 말한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에도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내가 오늘 또 다른 유형의 '들쥐우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절망에 가까운 슬픔과 공포를 느낀다.

이 대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 현상, 이른바 '박정희 향수'로 말미암은 박근혜 정권의 출현도 북한의 왕조체제를 가능케 하는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설파할 수 있으나, 그 얘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들쥐근성의 발호를 제어하는 오늘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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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상 지키기 위해 꽃 들고 나왔어요” 학생과 시민들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무효선언 국민대회를 마친 뒤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폐기와 평화의 ‘소녀상 이전’ 반대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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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앞에서 오늘 다시 위컴의 들쥐론을 떠올리는가? 들쥐론의 세 갈래 작동을 뼈아프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정부의 태도에서 들쥐론의 음험한 기운을 느낀다. 이번 '한일 합의'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일본을 지극히 편애해온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를 편들며 한일 합의를 한국 정부에 종용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인들의 반발심리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한국인들을 얕잡아보고 공개적으로 들쥐론을 발설했던 30여 년 전 위컴의 시각이 오늘 그들의 심중에 내포되어 있었다. 

아베의 일본 정부는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얕잡아보는 태도로 협상을 밀어붙였다. 한국 정부가 미국이라면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종용이 쉽사리 성사되리라는 것을 믿고 그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올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발휘한 들쥐근성이다. 한국 정부 또한 보수층의 들쥐근성만을 믿고 일을 저질렀다. 자신들이 어떻게 결정하든 국민들은 따라줄 것으로 믿었고, 국민 아무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으면서 국민은 정부 결정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강변했다. 국민 의사는 전적으로 무시한 채 미국의 종용에 굴종하여 쉽게 일본과 타협을 한 것은 그야말로 들쥐근성의 발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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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소녀상' 축복식 2014년 5월 28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유무상통마을(미리내실버타운)에서 ‘동양평화 소녀상’ 제막식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 초대받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행사 후 천주교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리노 주교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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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존심도 없고 줏대도 없는 국가로 치부되고 있다. 그것은 세게 각국의 언론 보도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 사실을 한국 메이저 언론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한일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보수층만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의 국민대중은 30여 년 전 미군사령관 위컴이 들쥐론을 설파할 때와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젊은 층은 재래의 들쥐근성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일본 돈 10억 엔에 민족의 자존심과 역사를 팔아넘기는 것을 거부한다. 아울러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거부한다. 정부 말만 듣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젊은 층의 깨어 있는 행동이 이 나라를 미래로 견인한다. 그것의 상징적인 현상이 오늘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한일 합의를 '역사의 매듭'이라고 강변하며 찬성 시위까지 해대는 보수층의 들쥐근성은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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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 실험은 '자강력제일주의'의 산물?

[신년특집⑤]수소폭탄 실험은 '자강력제일주의'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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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외교공세가 아닌 핵실험을 선택했을까?

북한은 왜 외교공세가 아닌 핵실험을 선택했을까?<연재> 정창현의 ‘색다른 북한이야기’ (2)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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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1  1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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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월 6일 전격적으로 4차 핵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직후 북한은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며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5월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후 5년 8개월이 흐른 시점이다. 2014년 3월 말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약 2년만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핵융합 반응을 기본으로 하는 수소탄이 아니라 증폭핵분열탄(원자폭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기본 기술에 중수소를 이용해 폭발력을 증폭시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수소탄이든 증폭핵분열탄이든 이번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 실험에 이어, 수소탄 개발이라는 일반적인 핵 개발 수순을 밟고 있고, 핵탄두 소형화․경량화․다종화 기술에서 상당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은 분명하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핵실험을 시사하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를 분석하면서 필자는 5월 초 노동당 7차대회 개최 시점까지 북한이 국제적 고립 탈피와 경제건설을 위한 대외환경 조성을 목표로 적극적인 외교공세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교공세가 아닌 ‘핵무력’ 시위를 선택했다.

북한의 핵실험 자체는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이었다. 2014년 제기된 ‘4월 위기설’부터 시작해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제기한 ‘전략적 도발설’까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자신들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 하는 것이다. 2년 전쯤인 2014년 4월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이미 붉은 선(레드 라인)을 그어놨다. 미국은 이걸 넘어서는 안 된다. 넘을 경우 우리가 어떤 대응조처를 취할지 미국은 알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방식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권 교체를 하려는 어떤 시도도 금지선(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상정한 금지선을 미국이 넘어섰기 때문에 핵실험으로 대응했다는 것이 된다.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수소탄 발언을 보도한 것은 지난해 12월 10일이다. 북한 보도매체의 관행을 고려하면 12월 9일 이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은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의 갑작스런 ‘수소탄 발언’은 미국 재무부가 12월 8일(현지시간) 북한 전략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한 직후에 나왔다. 미국의 추가 제재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리고 6일 후 김 제1위원장은 “첫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수소탄 발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한 맞대응으로 핵실험 실시

   
▲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와 연관돼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1일로 추정되는 SLBM 발사 장면. [자료사진 - 통일뉴스]

형태상으로 보면 과거 북한의 핵실험은 장거리 로켓발사 후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단행됐는데, 이번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후 나온 미국의 제재에 대한 맞대응으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2년 4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공개연설에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하다”라고 해 ‘자주권’을 더 강조했다.

북한은 위성 탑재 로켓 발사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도 자주권 차원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이번 핵실험에 대해서도 북한은 “미제와 제국주의자들의 핵전쟁위험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북한은 자주권과 자위권 차원으로 주장하는 미사일 개발에 대해 미국이 제재, 그것도 미사일 부대를 지휘 총괄하는 전략군을 제재 대상으로 하자 곧바로 핵실험을 결정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받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특별한 제안을 내놓지 않은 것이 주목된다. 더 이상 미국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9일 미국이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며, 이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다.

1월 18일 싱가포르에서 북한 리용호 외무성 부상을 만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도 “리 부상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의 대가로 핵실험과 함께 핵탄두 소형화 노력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성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평양 방문도 무산됐다.

그러자 북한은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끝난 후인 5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를 해 미국을 압박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경제와 핵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을 더 많이 만들며 핵무기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보다 위력하고 발전된 핵무기들을 적극 개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핵무기 운반수단’의 다양화 차원이다.

남북 간에 8.25합의가 성사된 후 북한은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다시 제안했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모든 문제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사항을 포함한 모든 문제들이 타결될 수 있다”며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 논의를 제의한 것이다. 미국은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로 가려면 그 전에 비핵화의 핵심 이슈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으로 대응했다.

10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강화만을 강조해 압박을 통해 북한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11월 11월 한국과 미국은 “실질적인 (대북)제재 조치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는 합의했고, 이틀 후 미국은 김석철 주미얀마 대사를 비롯한 북한인 4명과 북한 기업 1곳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11월과 12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지난해 미국을 향한 북한식 대화와 압박정책이 현재로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강도의 대미압박책으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미국이 협상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자신들의 핵 능력이 갈수록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위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인내’나 인권문제 등을 통한 대북압박이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신정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종 서명하고, 6일에 핵실험을 단행한 데는 5월 초에 열리는 노동당 대회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당창건 70돌 기념열병식에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북.중 관계의 회복과 북.중 정상회담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전 행사로 기획된 모란봉악단 방중 공연이 무산되는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서 대중외교가 의도대로 진행되기 어렵게 됐다.

어렵게 성사된 12월 11~12일 남북차관급 당국회담도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됐다. 북한으로서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을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대회 전에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대화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주관적 희망’이 담긴 전망일 뿐이었다.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까지는 외길 수순

2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되면 4월 초까지는 예년처럼 남북 간에 긴장국면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4월까지는 총선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적극적인 외교공세나 남북대화가 별 다른 성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와 그나마 대화의 통로를 열 수 있는 시점은 상반기까지다. 오바마 행정부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핵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차기 행정부와 협상에 대비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이번 핵실험이 전략적 선택에 따라 이뤄진 만큼 북한은 국면 전환 카드도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대해 ‘벼랑끝 전술’이라고 폄하하지만 북한은 1990년대 북핵문제가 발생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벼랑 끝에 선 적이 없다. 항상 강온책을 구사하며 국면을 전환시켜왔다.

물론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까지는 외길 수순이다. 미국과 한국은 한.미.일 차원의 국제공조를 통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대북 추가제재 및 실효적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추가제재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방법은 없고, 중국의 협력 없는 경제제재는 더 이상 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결의차원의 대북제재에는 동참하겠지만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는 분리 대응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외교부를 통한 국제공조에 나서면서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월 말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되고 여기에 핵미사일로 무장한 미국의 전략무기와 항공모함이 참가할 경우 북한의 대응에 따라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긴장국면에 도달할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며 도상연습까지 마쳤다.

역설적으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의 긴장국면은 ‘핵실험정국’의 종결과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4월 총선이 다가오면 북핵대응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공방만 치열해질 것이다. 북한은 5월 초 당대회 개최 전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그 때쯤이면 북한은 다시 ‘핵실험과 핵탄두 소형화 시도 중단’을 내세워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와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할 수도 있다.

긴장국면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것인가 하는 것은 소극적이고 단기적 대응책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북한붕괴론에서 벗어나 장기적 평화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 방안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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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에 전쟁 언급하며 평화협정 압박”

 
 
“미국적대정책 종식 확인되면 우려 상황 순간 해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1/11 [06: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이정섭 기자

 

조선이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을 선언한 이후 미국에 전쟁을 언급하며 평화협정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러시아 통신 스푸티니크와 해외동포 웹싸이트는 지난 10일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을 인용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것은 모든 문제의 화근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긴장격화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사항을 포함한 그 밖의 모든 문제들은 순간에 해결될 수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평화조약 체결한 이후라야 한반도 평화 보장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며 “미국 행정부의 '근거 없는' 시각이 현재 북한과 미국간 평화조약 체결이 아닌, 한반도 비핵화 행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을 거론한 뒤 “비핵화타령은 우리를 무장 해제시키기 위한 기만술책에 불과하다.”면서 “우리(조선)는 미국의 핵위협공갈책동에 대처하여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핵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한 “오늘 우리(조선)의 핵은 미국의 핵위협공갈을 끝장내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며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만능의 보검으로 되고 있다. 오늘에 와서 미국이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영원히 끝장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미국 내 조선문제 전문가들 속에서 미행정부의 ‘전략적인내’ 정책은 완전한 실패작이며 대조선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울려나오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며 “클린톤 행정부시기 국방성 전파방지(핵 확산)정책담당 부차관보로 근무한적 있는 미첼 월러스타인은 ‘북조선핵위협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실수로 될 것’이라고 하면서 ‘북조선은 핵물질보유량을 늘이는 한편 장거리미사일과 미사일발사장치, 소형핵탄두개발에서 진전을 이룩하였다. 지금까지 북조선은 제재에도 충분히 대처해왔다.지금은 미국이 북조선과의 적대관계종식을 위한 과감한 행동에 나설 때”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실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분별을 잃고 우리에 대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한사코 매어 달릴수록 우리의 자위적국방력은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면서 “이번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수소탄시험은 그에 대한 명백한 실증으로 된다. 미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명백히 말하건대 미국의 ‘전략적인내’정책은 파멸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미국에 우리를 기다려보겠으면 실컷 기다려보라고 말해둔다.”고 미국에 적대정책 포기를 압박했다.

 

특히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조미대결전에서 언제나 시간은 우리 편이였으며 승리도 우리의 것”이라며 “미국은 이제라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올바른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현명한 처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미국 정책 담당자들과 대조선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략적인내 정책’은 실패 했다며 워싱턴과 평양이 대화와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협정과 조지관계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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