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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의 권고, 지역화 통해 행복한 경제 전환을

 
김정수 2015. 09. 09
조회수 1009 추천수 0
 

인터뷰: <오래된 미래> 지은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구촌 다양한 환경·사회 문제엔 세계화 추구 경제 구조가 밑바탕”

“국제연대 통해 부자나라 더러운 빨랫감 가난한 나라 떠넘기기 막아야”

노르베리 호지 .jpg» 국제 지역화운동 단체인 '로컬 퓨터스' 설립자이자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70)가 3일 전북 전주시 팔달로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불행들, 우울증과 마약중독, 자살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기후변화 같은 환경 문제를 한 걸음 물러서서 지구적 시각에서 보면 그 핵심에 세계화된 경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런 문제들이 자신들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행이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요. 파괴적인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주장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반면, 환경과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로 옆 나라까지도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대안으로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지역화를 주창하는 국제단체 ‘로컬 퓨처스’의 설립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3일 전주 팔달로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처럼 규제를 받지 않는 자본이 전세계를 넘나들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듯이 수조 달러의 돈을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시민들이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그 방향이 수정될 수도 있다”며 “이를 위한 국제 연대에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뜻을 같이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5[503].jpg» 전주시과 공동주최로 4~5일 전주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서 노르베리호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주시

 

환경 분야 고전의 하나가 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지은이로 잘 알려진 그는 4~5일 전주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를 전주시와 공동 주최하려고 방한했다. 이 국제회의는 인간과 생태가 조화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려면 세계화에서 벗어나 지역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을 확산시키려고 로컬 퓨처스가 여는 행사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를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에서 열렸으며, 이번 전주 회의가 7번째다.
 

40년 전 영국 런던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던 스물아홉살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티베트고원 지대에 위치한 북인도의 라다크를 찾았다. 지정학적으로는 인도의 일부이지만 문화적으로는 티베트에 속해 ‘작은 티베트’로 알려진 라다크의 언어를 연구하려는 목적이었다.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을 가진 그는 라다크 체류 1년여 만에 라다크말을 불편 없이 구사하게 됐고, 라다크 사람들한테 매료됐다. 그들은 ‘여름에는 탈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 8개월 동안 온 지역이 얼어붙는’ 혹독한 환경의 오지에서 ‘범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십대 소년이 극히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할머니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사회’를 이루어 세상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라다크는 그가 처음 발을 디딘 1975년부터 인도 정부의 개방 정책으로 개발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 뒤 16년 동안 라다크가 변화해간 과정의 관찰 기록에 해당하는 것이 <오래된 미래>다.
 

라다크가 세계화 경제 시스템에 편입돼 붕괴돼 가는 것을 지켜보던 노르베리호지는 1980년 지역에 기반을 둔 생태적 개발 모델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라다크 프로젝트’를 조직했다. ‘로컬 퓨처스’는 이 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
 

37년 전 결혼한 영국 출신 남편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그는 일흔이 된 지금도 1년에 4개월가량은 국외 여러 곳을 돌며 로컬 퓨처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경제학은 다국적 거대 기업들과 은행, 규제를 받지 않는 자본이 세계 시장을 넘나들며 일으키는 사회·환경 파괴 등 불행을 해소하려면 세계화에 저항하고 지역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메시지로 한다.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더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즉 젊은 사람과 노인, 가족 간의 상호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사람들 사이에 더 행복감이 넘쳐흐른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화를 통해서 에너지 소비와 환경오염이 줄어들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8[125].jpg» "세계에서 지역으로!".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전주 선언문. 사진=전주시
 

행복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먹거리를 어떻게 생산하느냐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먹거리를 지역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달하느라 에너지 사용과 쓰레기가 늘어나고, 암 유발,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다품종 소량으로 재배해 소비하는 것이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대, 물 이용의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잡은 생선이 중국으로 보내져서 뼈가 발라진 뒤에 다시 노르웨이로 오고, 영국에서 잡은 새우는 타이로 가서 껍질이 벗겨진 다음 다시 영국으로 와서 판매된다. 그런 운송과 그 과정에서의 냉장·포장의 필요가 지구 온난화를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며 “지구가 맞닥뜨린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인 기후변화는 부유한 나라가 자신의 더러운 빨랫감을 가난한 나라에 전가하는 것처럼 이산화탄소를 이전하는 것을 막는 정책적 변화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40년 전 라다크와의 만남이 이후 그의 삶을 결정했다. 그는 “라다크에서 늘 활기에 넘치고 유머 감각 있고, 즐겁게 살던 사람들이 개발 압력에 밀려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을 본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좀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40년 동안 그는 거의 해마다 라다크를 찾았다. 이번에 방한하기 직전에도 3주 동안 라다크에서 머물다 온 길이었다.
 

“과거에는 재생에너지 보급 등의 사업을 하며 현장에서 뛰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교육을 위해서 갑니다. 현지 엔지오들과 협력해 워크숍이나 강연 등을 진행하는 것 외에 라다크를 찾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진보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그는 “라다크의 중심 도시인 레를 가보면 엄청난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질병들이 나타나고, 예전에는 한 세대에 한 번 정도 있던 자살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특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점점 많은 라다크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라다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선회시킬 때가 됐다고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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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 큰 물결, 서울을 확 바꿔보겠습니다"

 

[인터뷰] '서울 혁신' 이끄는 전효관 서울특별시 혁신기획관

15.09.09 20:29l최종 업데이트 15.09.09 20:2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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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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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행정의 힘만으로 거대도시 서울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혁신을 통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가 시대적 흐름인 이유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4년차. 그동안 서울특별시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정 구석구석에 '혁신'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시청 신청사 2층에는 혁신기획관실이 들어서서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은평구 3만평부지에 자리 잡은 서울혁신파크는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박 시장은 급기야 지난 6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나 단체들은 어려움에 당할 때마다 너도나도 혁신으로 스스로를 확 바꿔보겠다고 부르짖는다. 선거를 앞둔 정당들도 혁신 대열에 동참한다. 그럼 과연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이고 왜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

지난 3일 기자와 만난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 박원순표 서울 혁신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관계의 단절'로 풀이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개인들이 지나치게 고립됐고, 그로인해 관계가 단절되다보니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문제는 고스란히 서울시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전 기획관은 이같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혁신으로 본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회복된 '보다 인간적인 도시'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사실 간단하고 작은 것들이다. 외로운 노인과 갈 곳 없는 청년들이 같이 살고, 손편지 쓰기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하고, 이웃과의 공유로 주차장 부족을 해소하고, 시민의 제안으로 새벽에도 다니는 버스를 만들고….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면 거대한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위해 마을공동체센터, 청년허브, 인생이모작센터와 같은 중간조직을 만들어 민간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이 혁신기획관실의 일이다. 

전 기획관은 서울시의 혁신 사업이 "지금은 확산되는 단계라고 본다"며 "확산되면 반드시 시스템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행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서울시가 선도하면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오는 '서울모델'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박 시장이 퇴임하면 혹시 다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마을공동체사업 모델은 경기, 대구 등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자체에서 오히려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청년정책 지원기관인 '청년허브' 센터장을 지낸 뒤 작년 7월 부임한 전 기획관은 남은 임기 중 "민간 역량을 강화하는 보다 전향적인 조치로 혁신 노력이 단발로 끝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전 기획관의 일문일답.

성미산마을에 학교폭력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

-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인가.
"혁신에는 기술혁신도 있고, 행정혁신도 있다. 서울시가 주목하는 혁신은 사회혁신이다. 사회 문제를 국가가 행정의 힘으로 푸는 방법도 있고 시장이 경제논리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가나 시장이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할 때, 다양한 해법들을 새롭게 찾아보는 것이 사회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 같은 조직을 통해, 그리고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고, 작게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찾을 수도 있다."

- 서울은 왜 혁신이 필요한가.
"서울은 문제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웃음) 고령화 문제, 지나친 경쟁, 도시빈민, 공해 등등 도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고 행정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또한 그 다음 서울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와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서울혁신기획관실은 사회혁신, 공유도시, 마을공동체, 청년생태계 조성, 거버넌스, 갈등조정 등 낯선 일들을 추진하는 조직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사실 서울시와 같은 거대 도시가 사회혁신이나 공유도시와 같은 플랜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사회혁신이나 협치의 실험이 행정영역과 결합되게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와 같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아직은 불충분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과 나라에서 이런 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 연결해서 효과를 만들어낼지 묻는 일들이 아주 많아졌다.

이런 사회적 흐름이 새로운 가치영역과 새로운 행정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민간에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아주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런 흐름들은 한국사회에 아주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 사회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흐름은 때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이런 흐름들이 연결되고 상호학습하는 장이 마련된다면, 담론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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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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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시민사회 영역에 있는 조직들 아닌가. 시민사회를 행정조직 안으로 끌어들인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마을공동체센터 같은 경우는 지역에 있는 마을활동들을 지원하는 민간과 행정의 중간 역할을 한다. 서울시는 자원을 지원하고 민간의 성과가 축적되도록 상호협력을 한다."

- 그럼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겠다는 건가.
"개인들이 워낙 고립되어 있으니까 관계를 맺으며 풀어보자는 것이 하나의 측면이고, 또 다양한 영역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거다."

- '관계'를 많이 강조하는 것 같다. 관계를 맺으면 서울시의 많은 문제가 풀린다고 보나.
"그렇다. 마포의 성미산마을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그 동네 아이들을 다 아니까 학교폭력 같은 게 잘 안 일어난다. 관계라는 것 속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문제가 풀리고 인간다움이 가능해진다.

영국에서 나온 <관계국가>라는 보고서를 보니, 그 전에는 국가가 서비스를 전달하는 '전달국가'였지만 이제 '관계국가'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즉, 예전의 질병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늘어난 만성질환, 우울증 등은 관계 없이는 치료나 발생억제가 안 된다. 이런게 거버넌스나 혁신이 행정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인 거 같다. 공공은 판만 짜주고, 주민들이 풀어가는 영역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로운 노인과 집 없는 젊은이가 한 집에 산다면?

- 결국 서울 혁신의 목표는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어가자는 것인가.
"그렇다. 어느 사회나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그런 문제들을 행정과 민간이 공동으로 해결해가자는 것이다."

-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혁신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달라.
"성북구 등에서 많이 하고 있는 '한지붕세대공감'이란 사업이 있다. 청년들은 주거할 곳이 없다고 난리인데, 노인들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분들이 많다. 이런 청년과 노인들을 결합해주는 것이다. 청년들은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노인들은 외로움을 덜면서 약간의 수입까지 생긴다.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살려면 불편한 게 있을 수 있다. 그럼 시에서 약간의 주거 리모델링비를 지원해준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아파트에서는 손편지 쓰기 같은 걸 하는 사례도 있다. 위아랫층 간에 서로 알고 지내면 갈등이 해결된다. 아파트의 지하에 대피소가 있는데 이것을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든지 주민들의 휴식처로 만들기도 한다.

심야에 다니는 '올빼미 버스'는 시민이 아이디어를 낸 거다. 밤에도 다니는 버스가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통신회사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시민들이 야간에 제일 많이 다니는 노선도가 나온 것이다. 기업의 데이터와 행정서비스가 결합되는 것이지만 시민의 제안이 없었으면 아마 그런 거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주차장을 공유하는 사업은 서울시 입장에선 주차장 확보하는 데 드는 돈이 줄어들고 이 공유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이같이 당면한 도시 문제를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푸는 게 혁신이다."

- 재미있고 의미있는 아이디어이지만, 무언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혁신학교로 유명한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이것이 정책과 맞물리면서 혁신학교 정책이 됐다. 일부 사례가 정책과 만나 확산된 것이다. 2, 3년 전만 해도 '공유도시'라고 하면 다들 낯설어 했다. 집에서 공구 쓸 일 1년에 몇 번이나 있나. 공유하면 소비를 절약해주고, 창고에 가야 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작은 동네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다. 작을 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곳에서 함께 한다면 큰 사회적 효과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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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함께 나눠 쓰면 소비가 위축된다고?

- 그러면 공유경제가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반론이 나오지 않을까.
"숙박 관련 공유사례로 유명한 '에어비앤비'를 보자. 미국에서 빈 방 하나를 빌려주면 방 하나에 연 600~700불의 수입을 올린다. 자기 집에 노는 빈 공간을 이용해 수입이 올라가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경제 활성화가 되는 거다. 몇 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여행가방이나 취업면접 보러 갈때나 입는 양복정장을 왜 사야 하나. 이런 것을 빌려 쓰면 문화나 경제차원에서 이득이다."

- 이전 시장님들은 큰 사업들을 선호했다면, 박원순 시장은 작은 일을 꼼꼼하게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이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지금은 확산되는 단계라고 본다. 확산되면 반드시 시스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기존의 제도 안에서라도 서로 협력해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 새로운 행정이 나올 수도 있다 최근 이뤄진 주민센터 개편을 보자. 지금까지는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복지서비스를 받았다. 앞으로는 행정이 찾아온다. 또 동사무소라는 공간을 공무원들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행정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동사무소일 것이다. 행정이 변하는 거다. 행정이 찾아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큰 혁신이다. 동사무소가 변하면 행정의 시스템 변화를 초래한다. 행정이 주민 사이에 있다는 혁신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 다 좋은데 시민들은 '이게 박원순이 한 거다'라는 생각을 안 할 것 같다.
"누가 했든, 굉장히 중요한 전환기에 있는 것은 맞다. 서구도 사회적으로 잘 안 풀리면 다른 해법을 모색하는 방식을 많이 추구한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6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됐다. 서울이 혁신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박원순 시작 퇴임하면 혁신사업 흐지부지 된다?

- 박 시장이 퇴임하면 다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부침은 있겠지만. 마을공동체사업 모델은 새누리당 소속인 권영진 시장의 대구, 남경필 지사의 경기도 같은 곳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이것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으로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센터는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다 하고 있다."

- 서울시 혁신기획관 같은 조직이 다른 지역에도 있나.
"시민소통이라고 하든, 시민참여라 하든 이름은 달라도 광주와 제주 등 많은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한 혁신운동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종의 '서울모델' 같은 게 형성되고 있다."

-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회혁신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까.
"먼저, 사회 내부에 사회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단위들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민선 5기, 행정에서는 낯선 중간지원조직들이 만들어졌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허브, 인생이모작센터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센터들은 민간의 새로운 흐름들을 촉진하고, 지원하고, 연결하는 일들을 해왔다.

두 번째로는 행정 내부의 변화 노력이다. 내부적으로는 많은 행정혁신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의전에 대한 혁신, 절차에 대한 혁신, 계약 관계에 대한 혁신 등을 통해 행정 내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야만 행정이 유의미하게 민간의 자발적 흐름과 연계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사회혁신의 기반을 만들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다. 정보공개를 통해 행정정보를 가공해 시민의 서비스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공공데이터를 통해 항생제를 많이 쓰는 병원을 추려내 시민들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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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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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공간' 서울혁신파크의 가슴 벅찬 미래

- 은평구에 조성하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서울혁신파크를 '서울의 보석같은 공간'이라고 칭했던데,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 입주단체 1차 모집이 끝나고 2차에 들어간다. 올해 안으로 단체와 기업들 200~300개가 입주하게 된다. 그러면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 수천 명이 모여들게 될 것이다. 담장이 헐리고 야외는 빈 공간을 활용해서 시민들과 교류, 공유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넣으려 한다. 혁신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서로 알게 되고 새로운 활동이 일어날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있을 거라고 본다. 아마 기반조성사업이 끝나는 내년말 내후년초 되면 크고 작은 건물들도 정비되고 어린이 복합시설이 들어서면 공간의 모습도 많이 바뀔 거다."

- 개방직으로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는 개인 입장에서 해야 하는 일과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스템 내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80년대에 청년시기를 보내고, 1990년대 후반에 하자센터 등을 통해 문화 시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과 30대 후반을 보냈다. 각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금 시점에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고, 사실은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일이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논의하고 동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마당을 깔아보는 일이었다. 서울시 청년허브를 만든 맥락이다. 

그 정도가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하다, 서울시에 들어와서 일하게 되어 이 시간 동안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지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행정 내부에서 사회혁신에 속하는 일이 변방처럼 존재하지 않고, 행정 내부에서 그 의미를 인정받게 하는 일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사회혁신의 흐름이 작은 흐름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라는 것을 실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내 여러 조직들이 이미 몇 년 동안 그러한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그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일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하는 일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노력이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인데, 이는 민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좀 더 전향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거버넌스 2단계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대략의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10일부터 서울시가 박람회 2개를 한꺼번에 연다. 무슨 일인가.
"하나는 서울광장에서 여는 함께서울정책박람회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여는 서울마을박람회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추석 전에 열려고 하다보니 겹쳤다. 둘 다 이번이 4회째인데, 정책박람회는 이번에 1인가구문제, 젠트리피케이션 등 예민한 문제를 많이 다룬다. 마을박람회는 전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집단작업으로 마을선언을 만들어 발표한다. 지금까지 마을은 뜻맞는 사람들이 재밌게 살자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줄 계획이다. 지방정부협의회가 출범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기초단체만 50개가 혁신파크에 모이니 아마 떠들썩 할 거다. 시민 여러분들도 많이 오셔서 잔치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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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0 08:30
  • 수정일
    2015/09/10 08: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연발소총 차고 9.11테러14주기 경계근무 강화 ...평화미국원정단 26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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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미국원정단은 8일 펜타곤, 백악관앞에서 26일째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전개했다.
     
    원정단은 펜타곤지하철역앞에서 출근시간인 오전7시부터 1시간동안 카톨릭워커회원들과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펜타곤앞을 지키는 경찰은 카톨릭워커회원들과 원정단을 향해 인사를 한 후 피켓시위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했다. 무전기와 권총을 찬 채 근무를 서던 평소와 다르게 이날 어떤 경찰은 연발소총을 몸에 걸친 채 펜타곤지하철역주위를 돌며 피켓시위대앞을 지나치는 등 긴장을 조성시켰다.
     
    카톨릭워커회원은 <9.11테러14주기가 다가오면서 경찰들이 총들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테러위협에 대비하려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긴장감을 조성시키며 이데올르기공세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출근시간에 시민들과 펜타곤직원들은 대부분 원정단의 피켓시위를 대충 훑고 지나갔지만 몇몇사람들은 원정단의 피켓에 유다른 관심을 보이며 한참동안 서서 읽기도 했다. 
     
    펜타곤으로 출근하는 한 여성직원은 카톨릭워커회원과 잠깐 인사를 나눈 다음 원정단의 피켓문구를 읽더니 수고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미소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어 출근자들이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연달아 관심을 보였다. 어떤 한 흑인은 오랫동안 서서 피켓을 끝까지 읽은 후 옅은 웃음띤 얼굴로 인사를 나눴으며 시위대와 눈이 마주친 한 군인은 눈을 피한 채 바삐 걸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펜타곤역 <Free Speech Zone>시위장에서 반전평화를 외치던 10여명은 1시간의 투쟁을 마무리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원정단이 피켓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경찰들은 여느 때와 다르게 차량을 세운채 운전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원정단은 백악관앞에서 11시30분부터 1시간동안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24일째 전개했다.
     
    노동절연휴가 끝나 관광객들은 줄어들었지만 50여명의 단체관광객들이 백악관앞에 와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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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역사속 오늘] 9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nk투데이 이동훈 기자 
기사입력: 2015/09/09 [21: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9월 9일은 북한의 주요 기념일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입니다. 1948년 9월 9일에 창건했다고 하여 '9·9절'이라고 하거나 '공화국 창건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임시 인민위원회에서 정부 수립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신은 북조선인민위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해방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행정기구입니다.

1945년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전국 곳곳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조직은 8월 말까지 남북 전역에 140여개의 지부가 건설되었으며, 실제 자치권과 치안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행정조직으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미군이 진주하기 직전인 9월 6일, 정부 수립을 위한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해방된 조선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38선 이남에는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탄압을 받았습니다. 미군정이 자신들을 유일한 정부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불법조직이 되어 강제로 해산 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8선 이북에서 군정을 실시하던 소련군은 인민위원회를 인정했습니다. 정해구 교수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구체적인 행정은 도인민위원회에서 직접 시행되었고 소련은 핵심적인 지침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6년 2월, 북한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1946년 11월 도, 시, 군 지방선거를 통해 1947년 2월 '임시'자를 떼고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립 경축대회ⓒ민족21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립 경축대회ⓒ민족21

 

 

남북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남북에는 다른 성격의 임시 기구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북조선인민위원회도 통일이 되기 전 임시기구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분단이 가시화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945년 12월 미국과 소련, 영국의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갖고 조선의 독립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것이 모스크바 3상회의입니다. 서중석 교수의 책 '현대사 이야기'에 따르면 3상회의 결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만들고 미소공동위원회가 남북의 민주적 정당들 및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남북을 아우르는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세우며, 미·소·영·중 4개국은 임시정부의 독립과 민주적 발전을 위해 신탁통치(또는 후견)를 하고 그 기간은 5년 이내로 한정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떤 단체들이 미소공동위원회와 함께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서 1947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1947년 9월 16일)하면서 분단이 가시화되자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이 벌어졌습니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논문 '1948년의 남북협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47년 10월 3일 북한의 김일성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북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 회의에서 남북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를 제안했습니다. 남한에서도 중도파를 중심으로 남북회의를 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등 여러 제안이 오갔습니다. 비밀 협의가 이루어진 끝에 1948년 4월 18일 역사적인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와 '4인회담'(김구, 김규식, 김두봉, 김일성, 가나다 순) 등이 평양에서 열려 단독선거 불인정 등을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가시화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대처하는 조치들도 있었습니다.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회의 3차회의는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임시헌법초안'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서 조선은 북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아직 통일이 되기 전이므로 '임시헌법'을 만들고 통일 이후 이를 통합하거나 정식으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참고로 북한 뿐 아니라 남한도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가 만들어졌을 때 7장 58조로 구성된 임시헌법을 만든 바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10일 단독선거가 치러지게 됩니다. 남한에는 국회가 구성되었으며 헌법을 심의, 제정하는 등 정부 수립이 진척되었습니다.

북한은 이에 6월 28일부터 7월 5일까지 제2차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개최했습니다. 회의에서는 5.10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를 "비법적 조직체"로 규정하고 남북 총선거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회의 이후 대의원을 뽑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북한지역에서는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해 212명의 대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38선 이남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 지하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신철 교수의 논문 '북한 민족주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 총유권자의 77.5%가 선거에 참여했으며 선거 결과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1080명의 대표가 선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남측 대표들은 1948년 8월 21일, 38선을 뚫고 해주에 모였는데 38선을 넘는 도중 일부가 참가하지 못해 결국 997명이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정당·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360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북한의 첫 최고인민회의에는 북한 대의원 212명에 남측 대의원 360명을 합쳐 572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으며 이 중 528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가 9월 2일 열렸습니다.

 

1차최고인민회의 
1948년 열린 1차 최고인민회의

 

 

북한은 남측의 지하선거와 남측 대의원을 근거로 자신들의 정부가 남북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정부 수립 이후 첫 내각을 구성할 때 구성 비율에서 남북을 각각 10명 씩 두어 균형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5일 헌법 초안을 약간 수정한 뒤 통과시켰고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과국 헌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선거를 통해 김두봉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에 홍남표, 홍기주 등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인민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이 정권이양에 관한 성명 진술을 한 뒤 북조선인민위원회의 권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이양했으며 수상으로 김일성 위원장이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9월 10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강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수립 3일 후인 9월 12일 평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군중대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김일성 수상은 '모두 다 공화국정부 주위에 굳게 단결하여 민주조선창건을 위하여 전진하자'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수립 기념일을 축하하는 북한 사람들 연도 미상 ⓒ민족21 
정부수립 기념일을 축하하는 북한 사람들. 연도 미상 ⓒ민족21

 

 

 

북한에서 공화국 창건일이란

북한에서는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국가를 세운 뜻 깊은 날"이라고 규정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창건한 날인만큼 북한에서는 9월 9일이 되면 행사를 치릅니다. 지난해의 경우 '공화국창건 66돌'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열렸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당, 국가, 군대 책임일꾼들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 묘에 헌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학생들의 무도회가 평양을 비롯한 전국 주요 시군에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북한에서 '꺾어지는 해'라고 표현하는 5년 10년 단위 기념일의 경우에는 더욱 성대하게 행사가 치러집니다. 지난 2013년에는 '공화국창건 65돌'을 맞아 로농적위군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공화국 창건 65돌 열병식 장면 ⓒputevki43.ru 
공화국 창건 65돌 열병식 장면 ⓒputevki43.ru

 

 

9월 9일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중요한 내용이 발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8년 창건일 40주년이던 때, 당시 김일성 주석은 '연방제 통일 논의'를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사이에 대화와 협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러 평양에 찾아오는 데 대해서는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고 언급해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제의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65돌 행사에서는 중앙보고 대회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을 비롯한 강령적 지침과 6.15통일시대가 개척되어 조국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이 펼쳐지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67주년 경축대회에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읽을 수 있는 표현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박봉주 내각 총리는 경축대회 연설자로 나서 "북남관계에서 대전환·대변혁을 일으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며 "공화국정부는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여러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적극 확대 발전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동훈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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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이슬람 경제 : 진화하는 '아시아적 가치'
이병한 역사학자 2015.09.08 08:06:50
 
 

1997 : 복습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했다. 1965년 싱가포르가 떨어져나가기 전까지 한 몸이었던 나라이다.

과연 입출국 절차는 간단했다. 출국 수속을 공항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에서 밟았다는 점이 특이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쿠알라룸푸르까지 직행하면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착공 중인 고속철이 완공되면 한 시간 대로 줄어든다. 탈식민의 여로에서 갈라섰던 두 나라가 재차 긴밀히 엮이고 있는 것이다. 분리 독립에서 대통합으로 판세가 뒤바뀌고 있다.

견문이 늘 계획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예기치 않게 싱가포르 일정이 다소 늘어났다. 탓에 말레이시아 일정은 단축되었다. 왕년의 해상 무역 도시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한 말라카는 보는 둥 마는 둥이었다. 고즈넉한 옛 도시에서 지긋하게 역사를 음미해보고자 했던 애초의 기대는 접어야 했다.

곧장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처음부터 말레이시아 행의 목적은 뚜렷했다.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이슬람 경제를 집중적으로 살피고자 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금융과 할랄 산업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조바심은 기우였다. 쿠알라룸푸르 버스 역에 내리자마자 이슬람 금융 상품을 선전하는 간판들이 여럿 보였다. 숙소를 향해 걷는 20여 분 동안에도 이슬람 은행에서 발행하는 신용카드와 이슬람 보험 상품의 광고를 수시로 접할 수 있었다. 이슬람 경제는 이미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듯 보였다.

말라카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새내기 시절을 한참 회상했다. 1998년 최초의 정권 교체와 더불어 대학생이 되었다. 외환 위기(IMF 구제 금융 사태)로 나라가 한참 혼란스럽던 시절이었다. 원인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참 많았다. 베스트셀러도 확연히 갈렸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펴냄)가 '내 탓'에 치중했다면, <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펴냄)은 '남 탓'을 하는 쪽이었다. 덩달아 '아시아적 가치' 논쟁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시 나는 오락가락이었다. 개발 독재를 엄호하는 유교 자본주의론이 탐탁지 않으면서도, 신자유주의로의 재편 또한 내키기가 않았다.

돌아보니 커다란 착시가 있었다. 당시 IMF(국제통화기금)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가장 소리 높여 외친 주역은 마하티르 모하마드였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수상이었다. 이슬람 국가의 총리였던 것이다. '유교'로 퉁 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싱가포르가 정치적 영역에서 서구형 민주와 일선을 긋는 독자적인 통치 모델을 실현했다면, 말레이시아는 경제적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에 편승하지 않으며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차이를 깊이 인지하지 못했다. 솔직히 관심도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의 나의 사고 지평이란 서구의 이론과 한국의 현실 사이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동남아는커녕 동북아도 잘 몰랐다. 응당 이슬람 세계는 더더욱 멀었다. 그래서 17년이 더 지난 2015년이 되어서야 1997년 당시 말레이시아의 담론 지형을 복기하고 복습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 말라카. ⓒ이병한

 

 

1997년 중엽부터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의 가치가 급락하고 주식 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는 즉각 국제 투기 자본을 지목했다. 아시아 금융 위기는 해외 투기꾼들의 탐욕과 무책임의 소산이며, 투기적 활동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국제 금융 시장의 구조적 문제라고 성토했다. 그래서 고정 환율제와 자본 통제로 맞대응했다. IMF의 처방과는 정반대로 응수한 것이다. 그리고 조기에 금융 위기에서 벗어났다.

평판은 크게 갈라졌다. 서구에서는 이단자로 취급했다. 말레이시아서는 경제 주권을 지킨 민족주의자로 받들었다. 양쪽 모두 일면적이고 편파적이었다. 마하티르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경제 개방과 세계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가 발표했던 '비전 2020'은 말레이시아를 선진 산업 국가로 변모시킴으로써 가장 현대적인 무슬림 국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었다. 즉 민족주의도 반서구주의도 반쪽자리 독법이다. '비서구적 세계화'를 추진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그래서 일국적 발전주의에 그치지도 않았다. 이슬람과 세계화를 결합시킴으로써 무슬림 세계의 첨단이 되기를 도모했다.

그런데 마하티르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당시의 금융 위기를 진단하는 세력도 있었다. 제 1야당, 파스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정치 세력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여당이 암노(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였고, 야당이 파스(PAS·Parti Islam Se-Malaysia)였다.

암노는 말레이 중산층에 화인 자본가들이 연합하여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파스는 이슬람에 기초한 정당이었다.

물론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이슬람 가였기에 암노 역시 이슬람을 적극 동원했다. 다만 근대화와 세계화를 성취하기 위한 훈육 기제로서 이슬람을 활용한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암노가 말하는 이슬람이란 초기 자본주의 정신을 일구었다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거의 판박이였다. 마하티르가 주창했던 '신 말레이인'이 바로 자본주의에 적응한 이슬람의 상징이었다.

반면 파스는 이슬람에 기반을 두고 근대화와 세계화를 교정하려는 세력이었다. 여와 야가 보수/진보, 좌/우로 나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근대화에 대한 태도로 갈라진 것이다. '어떤 이슬람인가'가 관건이었다. 파스의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한 독법은 한층 과격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간 앙숙 관계의 연속으로 간주했다. 십자군 전쟁에 빗대는 견해도 분출했다. 유태인을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래서 금융 위기의 근본적 원인 또한 세속화와 서구화 자체에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기초한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만이 근본적 해법이라 주장했다.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설득력도 떨어진다. 1997년 금융 위기를 함께 겪은 태국(타이)이나 한국 등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지극히 내부적인 발언이라고 하겠다. 마하티르의 집권 세력과 척을 지고 무슬림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동원하기 위한 내수용 언설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음미할 대목 또한 적지 않다. 신자유주의라는 당대의 지배 질서가 윤리와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지점은 부정하기 힘든 진실이다. 종교와 철저히 단절된 세속주의가 경제 위기의 근원이라는 지적 또한 막 싱가포르에서 만나고 온 프라센지트 두아라의 독법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프라센지트 두아라와의 대화)

게다가 이들은 서구의 자본주의만큼이나 마하티르의 경제적 민족주의에도 비판적이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이 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부터 호사스러운 새 총리 관저까지 낭비가 심한 건설 프로젝트를 단호하게 성토했다. 절제와 검소를 강조하는 이슬람 윤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실은 그런 대규모 사업이 서구가 비판하는 정경유착과 부패의 핵심 고리이기도 했다. 집권당과 결탁한 친인척 기업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파스가 더 많은 경제 개방과 더 시장 친화적인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IMF와 달리 독자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이슬람 경제'로의 전환이었다. 문득 갈팡질팡하던 새내기 시절 읽었던 또 다른 책들이 떠올랐다.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상호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양희승 옮김, 중앙북스 펴냄) 등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불교 경제학을 설파하고 있었다. 종교(영성)와 경제(세속)의 재결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이슬람과 불교의 차이를 넘어 공명하는 바가 있었다.
 

▲ 말레이시아 익스프레스 버스. ⓒ이병한


2057 : 예습

1950~60년대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이 출범했다. 그러면서 자국을 식민지로 전락시켰던 서구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 체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주지하듯 일부는 소련을 전범으로 삼아 사회주의로 기울었다. 반면 자신의 문명에 근거한 변화를 꾀하는 쪽도 있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이슬람 부흥(dakwah) 운동이 그것이다. 더불어 이슬람 경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증가하였다. 1960년대 중엽에 이미 독자적인 분과 학문으로 확립되었고, 1980년대 초부터는 정책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란, 수단, 파키스탄이 선도적이었다. 즉 '경제의 이슬람화'는 새 천 년에 불쑥 등장한 핫 트렌드가 아니다. 20세기 후반, 이슬람 세계의 탈식민과 함께 점진적으로 확산, 심화되어온 것이다. 일종의 이슬람 판 '개혁 개방'이다.

이슬람 경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제3의 길을 추구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라는 환상, 혹은 허상에 도취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이익 추구를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반면 공산주의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총체적인 지배와 억압으로 귀결되고 만다. 따라서 이슬람 경제는 개인의 이익 및 사회적 책임 사이에 균형을 도모한다. 애초 종교와 경제, 정신적 생활과 물질적 생활은 불가분이었다. 근대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물질적 생활만을 절대시하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경제는 인간 생활의 한 요소일 뿐이다.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거는 역시 이슬람의 성경, 코란이다. 코란은 사유 재산을 인정한다. 상업과 산업 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가를 독려한다. 빈부 차이 또한 속세의 불가피한 현실로 수용한다. 그럼에도 가진 자는 사회 전체를 위하여 정의로워야 하고, 동정심을 발휘해야 한다. 생산적 경제 활동이 곧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예배와 합치되도록 살아야 한다. 그래서 코란은 사기, 독점, 매석, 투기, 고리대를 엄격하게 금지했다. 도박성, 불확실성, 착취적 요소를 포함한 경제 활동을 일절 금지시킨 것이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를 통치했던 마다니 사회(masyarakat madani)가 이상적인 이슬람 경제의 원형적 모델로 거듭 환기되었다.

말로만 그치지도 않았다. 파스가 집권한 지방이 실제로 있었다. 클란탄(Kelantan) 주와 트렝가누(Trengganu) 주가 대표적이다. 중앙의 세속적인 암노 정부에 맞서서 이슬람 사회를 건설하는 실험장이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정 국가'의 비관용성과 종교적 극단주의만 부각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비관용성과 극단주의의 산물이다. 이참에 살펴보니 의외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았다.

일단 지방과 농촌에 기반을 둔 정당답게 '農本(농본)'을 중시했다. 도시 중산층을 핵심 지지층으로 삼는 암노와 달리 농업과 산업의 공진화를 추구했다. 그래서 집권 5년 만에 클란탄 주를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로 탈바꿈시켰다. 사회 복지의 향상과 부패의 척결도 돋보였다. 농민층의 빈곤율은 크게 떨어졌고, 출산 휴가는 60일로 크게 늘어났다. 저렴한 공공 주택 보급도 확산되었다.

주지사가 앞장서서 일상의 변화도 선도했다. 이슬람 교사 출신의 주지사는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사치와 낭비 대신에 '적절한 소비'를 강조했다. 그 자신이 몸소 '깨끗한 정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정신과 물질의 균형과 조화도 도모했다. 오피스, 쇼핑 센터, 호텔 등 상업과 관광이 발전하는 만큼이나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학교도 늘어났다.

고리대를 없앤 이슬람 전당포도 성업을 이루었다. 이슬람 경제에서는 이자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 전당포에서는 대여금 이자 없이 저렴한 수수료만 부가하도록 했다. 혹시 기일 내에 갚지 못하더라도 저당물을 몰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경매에 붙여 대여금과 밀린 수수료를 공제하고는 차액은 저당자에게 돌려주도록 한 것이다.

코히랄(Kohilal) 이라는 생활협동조합도 눈길을 끈다. 식품과 화장품 등 신체와 관련된 이슬람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대항마로써 이슬람적 생산-소비망을 개척한 것이다. 전자를 이슬람 금융의 원형으로, 후자를 할랄 산업의 원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슬람 경제의 창조적 근대화를 꾀한 지방 정부의 실험이 새 천 년 말레이시아의 국책으로 승격된 것이다.

1997년과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서구 자본주의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항변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슬람 경제로부터 대안적 발상을 얻고 현장에서 실험하며 부단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동남아시아의 역동적 변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나아가 글로벌 이슬람 세계에도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식 세속화도 아니요 중동식 근본주의도 아닌, 이슬람의 새 출로와 새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독립 100주 년을 맞이하는 해는 2057년이다. 21세기의 한복판, 말레이시아의 장래와 이슬람 세계의 미래를 예습하는 차원에서라도 이슬람 금융과 할랄 산업의 현재를 한층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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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러제재, 부메랑되어 자기머리 강타 중

미국의 대러제재, 부메랑되어 자기머리 강타 중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9/08 [20: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5년 9월 4일 동방경제포럼 본회의에서 연설을 하는 푸틴 대통령, 자세부터 여유만만!     © 자주시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3-5일까지 열렸던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 4일 본회의 연설에서 현재 조성된 루블화 폭락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할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고 밝혔다고 4일 러시아 인터넷뉴스 스푸트닉이 보도했다.

 


✦ 러시아 경제위기 얼마든지 감당할 수준

 

푸틴 대통령은 루블의 급격한 평가절하 및 국내총생산 저하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이 재앙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으며,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2008년과 2009년에도 유사한 상황을 잘 견뎌냈고 경제 및 비지니스 부양책을 이미 알고 있다. 해결해야 할 것은 오로지 어떤 장치를 어떤 규모로 실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사태가 발발하자 러시아는 바로 크림반도를 합병해버렸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미국과 유럽은 강력한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발동하여 루블화 폭락사태가 빚어졌다. 거기다가 사우디가 석유 증산 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석유와 천연가스 값이 폭락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이중 직격탄을 맞아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원수출 중심 경제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킬 기회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관련 정책을 펴오고 있다. 사실 루블화의 폭락은 러시아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고 있어 세계 철강시장 등에서 러시아 제품이 최근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우리 포스코와 같은 철강기업들이 새우 싸움에 등 터지는 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석유 값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연간 예산의 전환에 대한 정부의 이니셔티브(계획)을 지지한다고 언급하면서 경제 위기 상항에서도 정부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할 것이며 특별 부문에 대해서는 스팟 지원(중점 지원)을 감행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 대비책이 있어 그를 통해 사회복지나 필요한 부문에 지원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지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믿음은 확고부동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어려움이 미국과 유럽의 악의적인 제재에서 나온 것임을 국민들이 잘 알기에 오히려 반미감정은 더 고조되고 있으며 푸틴대통령의 지지율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푸틴 대통령은 요즘 갈수록 여유만만 자신만만이다.

 

▲ 아름다운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2015, 제1차 동방경제포럼이 30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폐막되었다.     © 자주시보



✦ 미국의 대러제재, 부메랑 되어 오히려 자기머리 강타 중

 

특히 푸틴 대통령은 현재 석유, 천연가스 값의 하락은 새로운 공급자의 등장으로 나타난 정상적인 현상이라고까지 진단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공급자란 셰일가스 기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단위 당 생산단가가 높은 셰일가스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에너지 생산 1위국인 사우디가 증산을 통해 저유가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내 생각에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세계 경제는 에너지 부문을 포함하여 자연스럽게 발전해가야 하며, 외부의 정치적 요인의 압력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러시아 석유가스 업체들이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루트를 뚫으며 내수 시장을 견고히 함과 더불어 러시아 수출 역량을 드높일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했다.

 

실제 러시아는  정유관련기술이 높아 루블화 하락 기회에 석유화학제품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를 수출량을 증대함으로써 나름 잘 방어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러시아 석유 채굴 지수가 5억2천6백만 톤 이상에 달하는 사상 유래 없는 기록을 갱신했다고 상기시켰다. 작년 가스 채굴도 6억4천만톤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량의 증가에는 중국의 수입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친미 친서방 사우디는 저유가 정책으로 오히려 정부의 재정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러 미국 국채까지 팔아치우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랄 경우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국채를 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여유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모양이다.

 

미국과 서방은 반미 진영에 대한 제재가 오히려 자기들의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큰 무리는 없지만 미국 국채 보유 3위국인 사우디의 미국 국채 매도가 계속된다면 미국에게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국도 지금 주가폭락을 막고 위안화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대적으로 팔아 위안화를 사들이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미국도 뭐라고 할 수 없다. 중국 경제가 대혼란에 빠지면 결국 미국과 서방도 엉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왕양 중국 부총리와 유리 트루트네프 극동지역 대통령 특사,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협력 강화는 세계질서의 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 자주시보

 

미국과 함께 대러제재에 참여했던 유럽의 기업들도 죽을상이다. 그래도 좀 나은 편이라던 프랑스, 독일도 대러 자동차 수출길이 막히면서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

결국 미국과 유럽 등 친미진영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와 자기들의 이마을 찍어대고 있는 형국이다. 그에 비해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은 그런 위기를 오히려 자국의 경제구조 혁신 등에 활용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다. 중국도 가지고 있으면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미국 국채를 이번 증시폭락, 위안화 폭락 사태를 계기로 잘 팔아치우고 있지 않는가. 그 위안화로 AIIB은행을 활성화할 자금 등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게 될 것이다.

 


✦ 세계 경제질서의 대변혁기 흐름을 잘 타야

 

블라지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동방경제포럼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제1차 극동경제포럼이 이미 효력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은 참석자 수, 권위자들, 이미 성사된 합의 및 서명된 문서 등의 근거를 가지고 그것을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 지역의 효율적이고도 최적화된 개발 루트 탐색 및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통합이 동방경제포럼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투자자들에게 자본의 효율성을 보장하며 러시아 극동 선두 비지니스 센터들과 경쟁할 수 있는 최상의 비지니스 환경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 투자자를 비롯하여 중국, 호주, 아태지역 국가들과 인도 투자자들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고 러시아 극동이 서방의 비지니스를 위해 개방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에 참가한 사업가들을 향해 비지니스의 성공을 기원하며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하였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 등 주변국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 인도 등 친미국들에게도 극동투자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의 자신만만한 여유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성장 한계에 봉착한 미국과 서방진영은 갈수록 경제적으로 중국,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물론 미국이 과거처럼 강력한 군사패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주도권을 전쟁을 통해 가져갈 수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시리아 내전 사태만 보더라도 미국은 이제 전쟁에 발을 담그는 것을 진저리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이 흔들리고 있기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질서 대변혁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미국, 일본과의 교류에 크게 의존해온 우리나라 경제 체질도 이번 기회에 개선하여 브릭스국, 개발도상국으로 그 교류 영역을 시급히 확대하지 않는다면 장기침체의 늪으로 더욱 급속히 휘말려들어갈 우려가 높다고 본다.

자신만만한 푸틴 대통령의 배짱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그 배경을 우리 당국자들과 기업가들이 깊이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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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 떠나라!> ... 코리아연대청년회원들 9차미대사관진격투쟁

  •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 떠나라!> ... 코리아연대청년회원들 9차미대사관진격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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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가 9차 미대사관진격투쟁을 전개했다. 코리아연대 차상엽·최혜련 두 청년회원은 오늘 8일 오전 7시5분경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플랑카드를 들고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은 떠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전단5종류를 뿌리며 미대사관으로 돌진했다. 
     
    코리아연대회원들은 70년전 오늘 맥아더포고령1호에 명백히 나와있듯이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을 규탄하면서 당장 이땅을 떠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추종하며 탄저균반입에 말 한마디 못하고 싸드(THAAD)를 배치하려는 박근혜<정권>의 종미사대매국성을 함께 비난했다. 
     
    이에 놀란 종로서경비과를 비롯 공안경찰들은 코리아연대 두회원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며 호송차에 태워 구로경찰서에 수감시켰다. 동시에 이 현장을 취재하던 두여기자들까지 함께 연행하며 언론의 자유를 유린하는 파쇼폭압적인 만행을 자행했다. 
     
    한편 그 즈음 조깅을 하던 리퍼트미대사가 코리아연대회원들의 반미시위현장에서 목격됐다. 
     
    코리아연대는 미군이 이땅에서 완전히 떠날 때까지 정의로운 반미투쟁을 결코 멈추지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두회원의 결의와 투쟁을 담은 편지와 사진, 그리고 진격하는 사진과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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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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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퇴출로 뭔가 심각한 일 벌어졌다 짐작"

 

[이영광의 거침없는 인터뷰 269] 현상윤 신임 미디어협동조합 이사장

15.09.08 20:17l최종 업데이트 15.09.08 20:1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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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윤 신임 미디어협동조합-국민TV 이사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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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BS에서 정년퇴직한 현상윤 PD가 미디어협동조합-국민TV(이하 <국민TV>)의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국민TV>는 지난 8월 29일 열린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현 PD를 경영부문 이사에 선출했다. 곧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대의원 132명 중 104명의 동의를 얻어 이사장에 선임했다.

1985년 PD로 KBS에 입사한 현 신임 이사장은 1999년 KBS 노조위원장과 2002~2004년까지 전국 언론노조 수석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KBS에서 정년퇴임한 후엔 새언론포럼에서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지난 2일 합정동에 위치한 웰빙빌딩 내의 국민 카페에서 현 신임 이사장을 만나 이사장 선출 소감과 함께 <국민TV>의 현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현 신임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지난달 29일 <국민TV> 이사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큰 책임을 맡겨준 대의원님들과 미디어협동조합원님들께 감사드려요. 제가 미디어협동조합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잘해낼 수 있을까란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대의원들이 현 이사장을 선택한 이유, 뭐라고 보시나요?
"2012년 대선으로 많은 사람이 권력과 자본에 포섭된 언론의 진면목을 새삼 느끼게 되었잖아요. 그때 좌절하고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미디어협동조합의 깃발이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죠. 2만 8천 명이라는 많은 깨어있는 분들이 모여서 그렇게 <국민TV>를 세웠지만 2년도 채 안 돼 리더십의 분열과 반목으로 점점 초라해지는 <국민TV>를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새로운 혁신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봅니다."

"<국민TV> 설립 초기에는 무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걱정 많았다"

- 이전에 <국민TV>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저는 지난해 KBS에서 정년퇴직한 후 언론시민운동을 한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국민TV>의 복잡한 내부사정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어요. <국민TV>가 좀 폐쇄적인 탓도 있었죠. 설립 초기에는 무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걱정을 했어요.

그러나 노종면과 김용민이라는 걸출한 스타들 덕에 초기에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어요. 하지만 금세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했고 특히 JTBC와 뉴스 시간대가 겹치면서 큰 타격을 받았어요. 노종면의 퇴출로 '뭔가 내부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구나'란 짐작은 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습니다."

- 들어와 보니 어땠나요?
"최근 언론 시민 단체 내에 <국민TV> 공대위가 생기면서 내부의 반목과 분열상, 그리고 심각한 재정위기 상황 등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오프라인으로 조직된 2만8천 명이라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열정이 <국민TV>를 지탱하는 커다란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돈 만 원 내시는 후원자라는 소극적 참여자가 아니더라고요.

미디어협동조합이라는 생활 문화 공동체를 통해 오염되지 않은 맑은 정보를 생산해 공급하고 자본주의 병폐를 협동조합적인 삶의 공동체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분들의 조직이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죠."

- 이사장 출마는 어떻게 나서게 되었나요?
"지난 7월 28일 언론단체대표자회의가 소집돼 <국민TV>노조원들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프리랜서라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다는 얘기에. 어떻게 대안매체라는 국민TV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놀랐어요. 

그래서 이런 일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대위가 구성되어 경영진의 얘기도 청취하고 중재안도 제시했는데 경영진에게 퇴짜를 맞으면서 밖에서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히 공대위 내에서 동아투위 선배님들께 나서달라고 간청을 하게 됐죠, 대안언론의 소중한 실험이 또 하나의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죠. 그러나 오히려 그분들은 오히려 제가 나서줄 것을 권유하시더라고요.

자유언론을 위해 40년을 투쟁해온 선배님들의 제대로 된 언론에 대한 염원이 내재한 권고를 쉽게 내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국민TV>라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을 통해 더욱 큰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생겨서 출사표를 내게 되었죠."

- 권유받았을 때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갈등의 깊이가 깊고 재정상황도 아주 안 좋더라고요. 상황이 어려울 때 제가 저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하면 돋보이지 않겠어요? 출마를 결심하고 선거일 열흘 정도 기간 동안 거의 잠을 안 자고 게시판을 통해 조합원분들과 소통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조합원님들의 선택을 받아 이사장의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당연히 보답해야죠. 제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끌어모아 2만8천여 조합원들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국민TV>에 가장 적합한 방송이 무엇인가 찾아내서 많은 시민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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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윤 신임 미디어협동조합-국민TV 이사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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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마음을 모을 계획이신가요?
"어려운 부분인데 무조건 화합하자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에요. 지나온 과정에서의 공과를 정확히 판단해야겠죠. 그래서 잘못한 부분은 허심탄회하게 인정하고 관용하면 다 함께 뭉칠 수 있는 바탕은 세워진다고 봅니다."

"<국민TV>의 정체성은 소외된 사람들이 중심에 서는 대중매체"

- <국민TV>에 적합한 방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국민TV>의 정체성 부분인데 한마디로 기존 미디어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미디어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중심에 서는 대중적인 매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국민TV>에 적합한 뉴스의 포맷을 혁신하고 현장성을 강화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쌍용차나 세월호 등 사회적 수요가 있는 주제들이 기존 미디어에서 완전 자취를 감췄어요. 자본과 권력에 포섭된 언론들이 꺼리고 은폐하는 소재들을 집중적으로 차별성 있게 부각하면 많은 열광적 팬들이 생길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적 연대입니다.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깨어있는 시민들과 대중조직들과의 연대를 통해 함께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매체로 키울 생각입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제 저희의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굴뚝으로 올라간 사람들, 희망버스를 타고 가는 탄압의 현장, 투쟁의 현장이 저희의 메인 뉴스가 되고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불통이었는데 어떻게 소통하실 생각이신가요?
"노조와 불통하는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노조 지위를 당연히 인정해야죠. 그리고 조직개편이 문제가 되는데 충분히 의견을 듣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혁신위를 통해서 지향점과 방법에 대한 공감대를 이룰 것입니다.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답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야 시너지 효과가 생기고 작지만 큰 힘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 제작 거부로 인한 노조 징계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불이 났는데 다 함께 달려들어 불을 꺼야죠. 징계자니까 저 구석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징계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법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더 좋은 방송으로 책임을 다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 생각합니다."

"외부에서는 친노 매체로 보지만 그렇지는 않다"

-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조합원들이 줄줄이 탈퇴했는데 이분들의 마음을 돌리고 조합원을 늘리기 위한 복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협동조합의 구심점이 새로 생겨서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국민TV>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서 그것이 조합원들 마음에 와 닿을 때 다시 힘을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 언론에서 공정성은 대단히 중요하잖아요. 그러나 <국민TV>는 개국부터 지금까지 특정 정파 매체로 규정되어 온 게 사실인데 이걸 어떻게 극복하실 건가요?
"외부에서는 친노 매체로 보지만 제가 와보니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확인한 바로는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 모임은 아니에요. 공통분모가 하나 있는데 현행 기득권 집단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그들만의 천하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TV>는 21세기 한국의 양산박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즐거운 반역을 꿈꾸는 곳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한때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 역할의 정점이었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외부에서 특정 정파 매체로 보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깨지 않으면 <국민TV>의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국민TV>의 장점은 온·오프라인이 결합한 조직이라는 것이죠. 자본주의의 맹점을 극복하고 인본주의적인 삶을 지향하는 생활문화공동체로서의 협동조합 이념과 독극물이 제거된 건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미디어의 조합이 최대의 강점입니다. 방송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선명한 <국민TV>의 깃발이 휘날릴 때 많은 국민이 함께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 앞으로 <국민TV>를 이끌어 나가실 텐데 어디에 중점을 두실 계획인가요?
"저희는 소외된 사람들의 매체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저희의 체력에 맞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다리가 찢어진 꼴인데 저희만이 잘 할 수 있는 방송이 무엇인지 찾아야죠. 분명 틈새시장은 존재합니다. 기존 미디어가 은폐하고 왜곡하는 사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각오와 함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국민TV>에 관심을 가져주신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에게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대안언론, 독립언론 간에는 매체의 구분 없이 제휴하고 연대하고 협력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서 비정상인 사회를 상식적인 사회로 바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국민TV>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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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상봉 이견없이 합의..금강산관광은 안 다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9/09 03:42
  • 수정일
    2015/09/09 03: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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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행 적십자 수석대표, '이산문제 근본해결' 협의로 지연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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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8  1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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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행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수석대표가 8일 오전 12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서 접촉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북은 지난달 24일 남북고위당국자접촉에서 합의한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다음달 20~26일 금강산에서 남북 각 100명씩 200명 규모로 진행하기로 8일 합의했다.

7~8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은 이날 오전 12시 통일부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관련해서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각 100명씩 상봉하기로 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서는 한분이나 두 분의 가족이 동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의 내용을 밝혔다.

남북은 이번 실무접촉에서 전체회의와 11차례의 수석대표 접촉을 통해 문안에 합의하고 종결회의에 최종 서명했으며,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대해서는 큰 이견없이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7일 오전부터 시작된 실무접촉이 이날 자정을 넘겨 8일로 이어지자 회담장 주변에서는 다음달 10일 노동당 창건일과 관련해 상봉일시를 정하는 문제, 남측에서 관심을 갖고 있던 이산가족 상봉의 근본적 문제를 비롯한 의제 확장 등으로 인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 남북은 7~8일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다음달 20~26일 금강산에서 남북 각 100명씩 200명 규모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제공 - 통일부]

이덕행 대표는 “접촉에서 우리 측은 전면적 생사주소 확인을 위한 명단 교환, 상봉 정례화, 서신교환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촉구”한 반면, “북측은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한 실무적 논의에 집중할 것을 주장하였다”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이 대표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대해서는 북측도 필요하다는 인식은 같이 했지만 “심도 있는 문제 협의를 위해서는 적십자 본회담에서 개최하자”는 북측 주장과 “지난 8.25합의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에 합의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합의서에 담자”는 남측 주장을 충분히 협의하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문에는 이산가족 상봉 일시와 장소, 규모 등을 규정한 1항과 함께 2항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상봉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비롯 상호관심사를 협의한다는 구절이 추가됐다.

반면, 이번 실무접촉을 가능케 한 지난 8.25 공동보도문 5항은 “북과 남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9월초에 가지기로 하였다”고만 정리돼 있다.

이 때문에 실무접촉이라는 한계를 갖고 시작한 논의 틀에서 실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을 넘어서는 합의를 도출해 내려는 무리한 시도가 결국 밤샘협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구체적인 내용도 없는 합의문구로 귀결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관심이 모아졌던 이산가족 상봉 시기에 대해서는 “우리 측은 가급적 이번 상봉이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취지인 만큼 가급적 빨리 할 것을 제의했고, 북측은 추석 연휴도 있고 북측 내부의 행사도 있기 때문에 준비기간을 고려할 때 좀 늦추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을 해서 서로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사확인 의뢰대상이 남측은 250명, 북측은 200명으로 다른 것은 남측의 국군포로, 납북자 등 특수이산가족 50명이 추가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산가족 상봉시 특수이산가족을 몇명씩 포함시켜온 관례에 따른 것이지만 지난해 상봉에 이어 의뢰대상이 별도로 늘어난 셈.

한편, 이 대표는 이번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최근 수해피해와 관련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며, 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관련해 금강산관광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한 바 없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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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유언비어 유포자는 국민안전처 장관이었다

 
 
‘1시간 이내 특수구조대 대응? 8시간 걸린 특수구조대’
 
임병도 | 2015-09-08 09:14: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9월 5일 제주 추자도 해상에서 낚시어선 돌고래호가 전복됐습니다. 이 사고로 10명이 사망했고 3명이 구조됐습니다. 현재 실종자 8명은 수색 중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국민안전처 박인용 장관은 페이스북에 ‘제주 추자도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 현장을 다녀왔습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박 장관은 ‘해경이 고의로 구조를 안 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댓글에 “유언비어에 대해선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박 장관의 답변에 다른 페이스북 사용자는 ‘대응해야 할 것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이 우선 아닙니까?’라며 국민안전처가 유언비어가 아닌 국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신설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돌고래호 사건에서도 정부의 대응은 무능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해봤습니다.


‘1시간 이내 특수구조대 대응? 8시간 걸린 특수구조대’

국민안전처는 2015년 연두업무보고에서 ‘안전혁신 원년의 해,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 조기 실현’이라며 전국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재난 안전사고에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재난 사고가 발생하면 ‘육지는 30분, 해상에서는 1시간 이내 특수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현장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그냥 보고용에 불과했습니다.

돌고래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돌고래호1호 선장이 상추자도 해경 출장소를 방문한 시간은 오후 8시 10분입니다. 그러나 돌고래호 승선원 명부를 확인하느라 해경은 사고 접수 시간을 9월 5일 20시 40분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경 특수구조대는 과연 몇 시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까요?

특수구조대는 9월 6일 오전 4시, 그것도 사고현장이 아닌 완도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연합뉴스는 부산에 있는 중앙해양특수구조대 9명이 출발했는데 헬기 대신 육상으로 완도항까지 이동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해경의 공식 신고 접수 시간을 8시 40분이라고 해도 사고해역 근처까지 가는 데만 무려 8시간이 넘었습니다.

[시사] - ‘일본 특수구난대’ 한국 오니 세월호 때와 똑같아졌다

아이엠피터는 불과 한 달 전인 7월에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이 국민안전처의 주장과는 다르게 사고현장 도착 소요시간이 너무 늦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결국, 이번 돌고래호 낚시어선 전복 사고에서도 1시간 현장대응은 말뿐이었습니다.


‘예산 없어 수리조차 하지 못한 V-Pass’

돌고래호 선장은 배에 이상이 있자 승객들에게 해경에게 연락이 가서 구조가 금방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선장이 말한 구조연락 시스템은 V-Pass입니다.

V-Pass는 선박 출, 입항 자동신고시스템으로 조난시 구조와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정부와 언론은 V-Pass 시스템으로 조난 발생 시 구난신호가 발신되며 사람이 해상 표류 시 수색구조용 장비로 활용될 수 있다고 홍보해왔습니다.

V-PASS사업은 2011년 개정된「어선법」(모든 어선에 위치발신장치 설치를 의무화)에 따라 모든 어선에 위치발신단말기(GPS단말기)를 설치하고, 해경청상황실과 파출소, 경비함정에서 선박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1년부터 어선크기별로 단계적으로 시작하여 2015년까지 국내 모든 어선에 설치하게 됐지만, 사업은 계속 지연됐습니다.

김승남 의원은 2013년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실시간으로 어선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V-PASS사업이 계획 및 사업관리 부실로 전체사업이 지연되고 있으며, 갑작스러운 조난사고 시 작동불능문제에 대한 조속한 기술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해경은 345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어선 71,825척, 경비함정 261척, 329개소의 파출장소에 V-PASS 시스템 구축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축된 V-Pass 시스템은 오류와 고장이 빈번했습니다. 2014년 1월부터 8월까지 단말기 고장은 전국적으로 총 994개소였습니다.

고장이 발생한 V-Pass 단말기를 수리하려면 예산이 필요합니다. 2015년 유지보수 예산안은 7억 3천9백만 원이었지만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해경은 어선과 경비함정, 파출장소에 설치된 V-PASS 시스템 유지보수 예산 3억 7천4백만 원을(어선용 2억 3천만 원. 경비함정‧파출장소 1억4천4백만원)을 요청했으나 경비함정‧파출장소 예산 1억 4천4백만 원만 확보했습니다.

V-Pass 시스템으로 표류 중인 어선을 구조한 사례가 있습니다. 잘만 활용하면 좋은 시스템이지만, 이번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고장이 나면 무용지물입니다. 수리 예산이 없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미 나왔지만, 결국 돈 때문에 인명 사고가 더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돌고래호 전복 사고에서도 민간어선이 생존자를 구했습니다. 안전에 더 신경 쓰겠다며 해경을 해체했지만, 매번 구조와 수색에 민간어선이 성과를 내는 이유는 정부가 그만큼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 경비와 안전, 구조에 600명의 인력을 늘린다고 했지만, 실제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광역수사전담반 등을 새로 만들면서 수사 업무에 치중했습니다.

진짜 필요한 구조 작업과 인력, 안전 시스템 구축에는 돈이 없다면서 포기하고, 일이 터지면 그제야 무슨 대책을 내세우는 정부, 해상구조와 국민의 안전은 말로만 해서는 될 수 없습니다.

1시간 이내에 특수구조대를 현장에 도착하겠다고, ‘안전혁신 원년의 해,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실현하겠다며 큰소리 쳤던 국민안전처의 말이 진짜 유언비어가 아닐까요?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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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합의 이후 남과 북이 해야 할 일


<칼럼> 곽태환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곽태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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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7  1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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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43시간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타결로 남과 북이 6개항의 남북 공동보도문에 합의하였고 향후 남북 간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틀(framework)을 제공하게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남북협상의 핵심 쟁점은 북한이 완강히 부인했던 목함지뢰 매설과 지뢰폭발에 대해 사과 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었다. 그리고 김정은 제1비서의 양보와 타협 없이 극적타결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북측이 부인해온 사실을 번복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행이도 남북의 체면도 살리면서 남과 북이 합의할 수 있는 차선책 방안을 모색한 것은 남북 최고지도자의 통 큰 결단의 결과였다.

공동보도문 2항에서 북측이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지만 결국 김정은 제1비서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다. 북측의 유감 표명은 남측이 요구한 ‘사과’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김정은 체제생존을 위해 그의 대승적 결단이 엿보인다.

남북이 극적 타결을 도출하게 된 것은 상호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양측의 체면을 세우면서 타결방안을 모색한 결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도문 2항을 놓고 남측과 북측이 자기들이 편 한데로 해석을 해 대단히 유감스럽다. 객관적으로 분석 해 보면 북측은 DMZ 남측지역에 지뢰 매설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부인하였고 마라톤 협상과정에서 끝까지 완강히 부인한 사실을 감안하면 남과 북이 마라톤협상에서 극적타결을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남측도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극적 타결을 위해 차선책으로 남과 북이 상호양보와 타협을 통해 2항에 합의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배운 교훈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 상황 속에서도 남북 2+2 고위급 접촉에서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에서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해 남북 간 화해 협력의 새로운 틀 (framework)을 얻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남북한 협력 차원에서 남과 북이 강력한 대화의지만 갖게 되면 한반도문제를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하여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두 남북 최고지도자의 대화와 협상의지가 상호 양보와 타협을 통해 8.25합의를 도출하는데 크게 기여한 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권위와 존엄을 존중하고 상호비방을 삼가 하며 대화의지를 보일 때 협상타결을 도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국제협력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핵심적 역할이 8.25합의를 도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튼튼한 한미동맹과 중국의 대북압력도 협상타결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미.중 공조가 남북합의를 도출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미.중.남북한 4국은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며 평화적으로 일촉즉발의 한반도위기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보였고 이러한 4자간의 협력이 궁극적으로 정전협정을 4자간 평화조약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미.중.남북한 4자간의 건설적인 대화와 4자간 협력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공하였고 향후 한반도문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현명하게 이 틀을 이용할 것을 기대한다.

남과 북이 풀어야 할 2개 핵심 장애물

남과 북이 함께 6개항 합의를 성실히 이행 한다면 상생, 공존과 공영의 새로운 남북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 중에 남과 북이 핵심적인 장애물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과 북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핵심적인 장애물을 풀어나가야 한다. 남측이 풀어야 할 대북전단 살포 문제이고  북측이 풀어야 할 장거리 로켓 발사 문제이다. 남과 북이 두 개의 핵심 사안을 대승적으로 풀면 화해협력 프로세스에서 핵심 걸림돌이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대북전단 살포 문제부터 검토해 보자.

8.25 남북 합의 이후 남북 간 해빙무드 속에서 탈북자 시민단체가 9월초 다시 “대북전단 50만 장을 풍선 20∼30개에 나눠 북쪽으로 날려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대북전단 살포와 진행 중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사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측이 8.25합의를 남측이 위반했다고 하지 않을까? 대북전단 살포를 무시하고 북측이 남북 적십자 회담에 순순히 참석하여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논의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고민해야할 것은 8.25 남북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탈북자 단체가 추진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방관할 것인가?  8.25 남북합의 이행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 봉쇄 할 의도가 있는가?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 신뢰 프로세스에서 독(毒)인가?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이룬 대화 불씨를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꺼지게 될까 두렵다.

다음은 8.25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북한이 고민해서 조속히 해야 할일이 있다. 역사적인 8.25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큰 걸림돌로서 등장하게 될 것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여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북은 인공위성 발사라고 함) 여부이다. 이 문제가 향후 화해 협력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차단하는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중단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핵심이 될 것이고 중국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의 입장은 북한이 순수한 인공위성 발사는 국제법상에 보장된 주권국가의 권리이기 때문에 허용하지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이기에 유엔안보리 5개 결의안 위반일 뿐만 아니라 중국은 이런 미사일 실험은 불용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이번 한.중 정상회담(9.2)에서 재확인하였다.

필자의 정책 제언

문제는 북한의 불신과 관계가 있다. 과거에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로 위장하여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였다. 그래서 북한은 순수한 인공위성 발사와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분리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로, 중국은 6자회담 당사국들로 구성된 국제참관단을 구성하여 인공위성 발사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만약 북측이 참관을 거절하면 이것은 인공위성 발사로 위장하여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시도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제사회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둘째로, 중국이 이번 박근혜-시진핑 한.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히 한 것은 한.중은 9.19공동성명(한반도 비핵화)과 유엔안보리의 5개 결의안들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한.중 정상이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이 위장된 인공위성 발사가 아닌지를 검증하고 참관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통해 6자회담 당국자와 유엔 감시기구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참관할 수 있도록 북한은 적극적으로 협조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인공위성 발사와 장거리 핵탄두 로켓 발사를 구분한다면 남측과 북측이 함께 우주 과학 연구를 위해 위성발사 사업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남과 북이 이 두 가지 걸림돌을 제거한다면 건설적인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남측으로부터 얻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6년 이상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재개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가 복원되면 상생 공존공영의 새로운 남북관계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곽태환 박사 (미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 원장)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1969).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1969-1999);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95-1999); 통일연구원 원장(1999-2000).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사) 동북아 공동체연구재단 상임고문, 통일전략연구협의회 (Los Angeles)회장. 

31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200편 이상의 학술논문출판; 주요 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1999). 

공저: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1997)등; 영문책 Editor &Co-editor: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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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 가장 야만적인 인권 유린국 첫 처벌 대상"

북, "미국 가장 야만적인 인권 유린국 첫 처벌 대상"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08 [08: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조선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유린국은 미국이라며 그에 대한 첫번째 처벌 대상 역시 미국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7일 조선중앙통신이 주한미군의 남한 점령 70주년을 맞아"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 유린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발표한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인권연구협회는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권리가 참혹하게 말살되고 있는 인권 범죄국들을 조사하고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해 미국과 서방의 인권유린 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조선인권연구협회는 조선이 1992년 '인권 연구사업'을 위해 설립한 단체로, 주로 탈북자들을 중심으로한 대북 악담과 행동을 이어가는미국을 비롯한 서방 단체들의 활동을 폭로하며 조선인권 상황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모두 6개 장으로 정치적 자유와 권리, 민사적 권리, 사회경제적 권리, 사회문화적 권리,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폭력, 인종 탄압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조선에 있는 여러 기관과 사회·학술 단체, 인권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해 작성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과 그 추종 세력은 인권 옹호자로 자처하면서 선택적인 나라에 정치적 압력과 내정 간섭을 노골화하고 있다"며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 유린국으로 처벌받아야 할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미국"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통신은 보고서가 "미국과 서방의 위선적인 전모를 발가놓는 고발장이고 세계 최대의 
인권 범죄국을 인권 재판정 피고석에 끌어내는 기소장"이라며 "미국과 서방 나라들은 제 집안의 어지러운 오물부터 청소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조선 남조선인권대책협회도 같은 날 발표한 조사통보를 통해 효순·미선 사건 등 미군의 범죄를 나열하면서 "미제침략군의 남조선 강점사는 일제의 구식민지통치사에 이은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 력사"라고 못박았다.

 

남조선인권대책협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마치 저들이 남조선의 그 무슨 진실한 우방국, 굳건한 동맹자, 인권의 수호자나 되는 듯이 미화분식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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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빵 아빠 부실 수사’가 정부·여당 비판 기사?…새누리 황당 보고서

등록 :2015-09-07 20:00수정 :2015-09-08 08:15

 

‘포털 뉴스 분석 보고서’ 살펴보니
KTX 수출 부진·대학 성범죄 등
각 부처·기관 기사까지 싸잡아
여권에 불리한 기사로 간주
‘포털, 야당에 편향됐다’ 결론
“보고서 너무 자의적” 지적 

 

오는 10일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소속 기관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포털업체들이 정치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펴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객관적 근거로 내세운 해당 보고서를 살펴보니, 언론과 포털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은데다 데이터 조사·분석 과정에서 여러가지 기초적인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어 객관적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의적 왜곡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형우 서강대 교수 연구팀이 최근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 제공한 용역 연구 결과(‘포털 모바일 뉴스 메인화면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7일 <한겨레>가 빅데이터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아 살펴본 결과다. 보고서는 ‘올해 1월부터 6개월간 네이버(3만482건)와 다음(1만9754건)의 포털 모바일 뉴스를 분석했더니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야당에 대한 부정적 기사보다 8배나 더 높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당·정치 기사뿐 아니라 ‘크림빵 아빠 초동수사 부실’, ‘대학 성범죄 얼룩, 교육부 통계도 못 잡아’, ‘최신 핸드폰은 안 먹혀…먹통 앱 방치하는 정부 3.0’ 등 경찰이나 부처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한 기사도 모두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기사’ 또는 ‘부정적 표현을 한 기사’로 분류했다. 이런 식의 분류를 통해 보고서는 네이버·다음에서 여당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 포함된 기사가 모두 1176건으로 야당(116건)보다 10배 가까이 많다고 주장했다. ‘여당’에는 청와대 및 전체 정부부처와 정부기관 등이 모두 포함됐고, ‘야당’에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통합진보당 등만 해당돼 기사량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여야 간 정당 기사만 비교하면, 네이버의 경우 전체 기사 대비 부정적 표현을 쓴 기사의 비율이 여당 23.3%, 야당 23.4%로 거의 같다. 집권여당과 야당의 부정적 기사 수가 비슷하다면, 이는 새누리당 주장과 정반대로 오히려 야당에 불리한 언론·포털 환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도 각각 19.1%, 19.6%로 엇비슷하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최형우 교수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과 여당 비판, 야당 비판을 구별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개별 기사의 속성을 ‘부정’, ‘중립’, ‘긍정’으로 분류했는데, 그 방식이 매우 모호하다. 최 교수는 “연구팀 6명이 특정 기사에 동일하게 긍정 또는 부정이라고 판단하면 그렇게 분류했고, 의견 정리가 안 되면 중립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주관적 판단에 의한 수작업 방식으로, 단순히 연구원 6명의 결정에 맡기는 방식이어서 대량의 데이터를 객관적 시스템으로 분석하는 ‘빅데이터 분석’이라고 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몇 명의 연구자에게 코딩룰(평가 기준)을 알려주고 긍정·부정을 가려내는 방식은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다, 코딩룰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편향적으로 데이터를 유도할 수 있어 빅데이터 분석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포털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노출 빈도가 더 높다’는 분석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조사가 이뤄진 1~6월 각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에 제공한 양당 대표의 기사 자체가 김 대표 17만8130건, 문 대표는 20만1472건이었다. 문 대표에 대한 기사 자체가 많았던 것이지, 포털이 자의적으로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문 대표의 노출 빈도를 늘린 게 아니었다. 게다가 새정치연합 전당대회가 지난 2월에 열려 문 대표에 대한 기사량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이 보고서는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을 비판·견제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언론의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털에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많았던 건,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을 비판·감시하는 기사를 훨씬 많이 다뤘기 때문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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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율 종교화, 이게 나라인가 싶다가도..."

 

[다시, 역사 바로 세우기 기획인터뷰③]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15.09.07 20:51l최종 업데이트 15.09.07 20:51l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우리 현대사는 유례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일구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을 소유한 이들의 학살, 내란, 부정선거, 고문과 각종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와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준비위'는 뒤틀린 우리 역사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역사의 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운동을 촉구하는 기획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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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겸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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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편이 '파리의 택시 운전사'였건만,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의 아내는 서울에서 택시 타기를 꺼린다고 했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택시기사들이 빼놓지 않고 말을 걸어오고, 곤란한 정치 얘기를 꺼내는 통에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제 돈 내고 타는 대중교통인데도 손님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두고 홍세화 대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설득이란 게 어려운 겁니다. 택시 기사분들, 대부분 한 달에 150~200만 원 벌면서 주말에 쉬면서 종편 보고 여당을 지지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택시 기사 한 명을 설득하고 이해시킨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그런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헌법 열전의 편찬도 그런 출발의 일환이라고 했다. 노동당 대표까지 지낸 지식인이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활약하는 것도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 노역 신세를 져야 하는 이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기구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 주기. 

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이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 당위와도 어쩌면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홍세화 대표는 개개인을 실질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러기 위해 이미 역사를 공부한 이들은 자기성찰을, 역사를 외면한 이들은 '부끄러움'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헌법 열전이 한국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편찬 작업을 앞둔 반헌법 열전의 의의를 듣고자 지난달 31일 홍세화 은행장을 만났다. 현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을 외치고 있었다. 역사로부터 먼저 배운 이가 지녀야할 당연한 전망이라는 듯이. 다음은 홍세화 은행장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반헌법 열전 편찬은 한국사회가 꼭 해야만 하는 과업"

- 최근 한겨레신문에 '반헌법 열전' 편찬의 의의를 설명하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과업이고, 꼭 해야만 하는 과업이죠. 역사를 알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는데 이 나라는 공부를 한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나간 잘못들은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문제는 당대까지도 몰상식하고 반헌법적인 일들이 너무 만연해 있다는 거죠.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해요.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앞으로라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죠."

- 과거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는데요. 
"그때는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뒤라서 그나마 덜 예민한 편이었죠. 이번에는 현실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래서 더 뻔뻔하게 방해공작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어쨌건 친일인명사전이든 반헌법 행위자 열전이든, 한뿌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과거처럼 중앙정보부에 끌고 들어가서 고문하는 시절은 아니니까, 그거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래도 압박이랄지 다양한 방해 공작이 있을 수는 있겠죠." 

- 친일인명사전은 노무현 정권에서 탄생했습니다. 지금은 무려 박근혜 정부인데.  
"애당초 노무현 정권이든 김대중 정부든, 실제로 그들은 정치부분에서만 잠시 소수파로 밀렸을 뿐이지, 정부든, 언론이든, 기업이든 대학이든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여전히 그들이잖아요. 그 부분은 크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은, 현실정치 영역에서 대통령을 빼앗겼고, 국회에서 잠시 소수파로 밀렸던 것 뿐이거든요. 

사실 김대중 정부도 김종필과 DJP 연합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열세 때문에 삼성공화국과 같은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 정부 10년이 분명 의미 있는 기간이었지만, 분단 이후 70년 역사를 봤을 때 완벽한 분절이나 단절이었을까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 그 잃어버린 10년 이후 말씀하신 그 '뿌리'가 공고해진 느낌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열전의 의미가 더 소중하지 않는가요. 그런 시도를 시민사회가 한다는 것 자체가요. 워낙 저들의 힘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진행될까 싶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거겠죠.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질문이 나온 시점에서 또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현실을 바꿔나가야 하는 거고."

"남북 문제는 남한 정권 꽃놀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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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8월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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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암살>의 흥행은 둘째치더라도 관객들이 이렇게까지 공감하고 공분하는게 좀 놀라웠어요. 
"어쨌든 잘 만들었잖아요. 또 영화에서 (친일파 청산이) 실패로 돌아가고, 염석진(이정재 분)이 재판장에 서서 연설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잖아요. 나라가, 국가가 제대로 섰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해방 후 암살이란 방법을 써야 하고. 일제 시기가 단절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다는 걸 <암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관객들, 대중들도 그런 면에서 이중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해요. 현실의 문제가 잘못됐다고 알고 있는 거잖아요. 현실이나 일상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몰입하고 그 행위 자체를 위안으로 삼는 거고." 

- 최근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성대히 치렀습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전혀 없죠, 감흥이. 해방이란 의미 자체도 그렇고, 나라다운 나라인가 문제인 건데. 우리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이런 얘기들도 하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메르스 사태도 그렇고, 국정원의 행패는 더 그렇고. 선거조작처럼 별짓을 다하고 해킹까지 마구 하고 있는데다 검찰과 사법부가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시대…. 흔히들 이게 나라인가라고 하는데, 감흥보단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앞서는 거죠."

- 하지만 남북의 고위급 회담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어요.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꽃놀이패예요. 남한의 지배세력은 북한을 이용할 수 있는 거죠. 북한이 도발을 하든 유인을 하든. 이후 완화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인기가 치솟고. 토크빌의 말처럼,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대변하는 건데. 여전히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40%대가 꼽는 걸 보면, 국민 수준이 그 정도라 말할 수밖에요. 세월호든, 메르스든, 국정원이든,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어떻게 이 정부를 지지하느냐. 이제 또 어떤 일이 일어나야 지지를 접을까 싶은 거죠. 잘 모르겠어요. 이제는 거의 종교화, 신앙화된 건 아닌가."

-그런 종교화에 종편이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김대중 정부 이후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를 따져보고선 공영방송을 지목한 거죠. 유월항쟁 이후 MBC나 KBS, YTN 노조가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건강했고, <PD수첩> 등 보도부문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인사권을 통해 무력화시킨 거죠. 이를테면, 방송의 조중동화라고 할 수 있고요. 공영방송을 그야말로 정권의 경비견으로 만드는."

- 같은 의미에서, 최근 교과서에서 1930년대 독립군에 대한 언급을 축소한다는 보도도 있었어요. 
"뿌리 자체가 일제에 부역을 했고, 그런 역사관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재벌뿐만 아니라 정부, 군대, 언론, 법조, 문화예술 분야의 주도권을 다 장악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역의 역사를 감추려고 하는 거고. 제가 칼럼에도 썼지만, 3년 전 알제리 독립 50주년 때 알제리 국회에서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진실을 감추거나 잊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건설할 수 없다'고 했어요. 감춘다고 해서, 왜곡한다고 해서 다 가능할 수는 없는 거죠."

- 정치의 영역에서 분명 해야 하고 할 일이 있을 텐데요. 
"그래왔고, 또 그래야 하는데요. 심각한 한계는 평가나 분석, 그에 따른 개탄은 잘 하는데, 그 종교화된 개개인에게 다가가 설득하는 일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 세상이 엉망이라고 분개하는데 그치는 것 아닌가. 정치인들까지도요. 반면 플래카드 하나만 놓고 봐도, 새누리당이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는 훨씬 더 잘해요. 기득권 수구 세력이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철통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좀 더 다가서고 대화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선 약하지 않았나 싶어요."

"진보정당과 야당은 지리멸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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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독립운동 정신 훼손'을 우려하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독립운동가 후손과 독립운동 단체 대표자들과 면담에 앞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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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당 대표까지 지냈는데, 진보정당의 대처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지리멸렬이죠. 그동안엔 오만했고요. 실제로 특징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냐면 지적 우월감, 지적 오만함과 더불어 열악한 진보진영에서 고생을 한다는 윤리적 우월감까지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학습도 실제로 잘 하지 않죠. 

그런데, 요즘 당면한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미국, 분단, 일제 부역의 뿌리, 자본과 신자유주의, 재벌 문제, 생태주의, 가부장적인 문제까지 다 얽혀 있는데, 이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자체로도 어려운데 겸손하지 않다는 거죠. 그러한 우월감들이 진보진영을 지리멸렬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2012년 대선 상황이나 <나는 꼼수다> 이후 야당 지지자들의 성향도 조금씩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참여가 자위하거나 끼리끼리 즐기게 하는 것이었지, 기존의 생각을 바꾸었는가. 애당초 야당 지지자들은 투표를 할 사람들이었어요. 반대편 지지자들을 끌어 온 게 아니라는 말이죠. 실제로 수구 기득권 세력을 결집시킨 부분도 있고요.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현상만 보고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현혹되면 안 됩니다. 통찰이 필요해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언론도 그래요. 오마이뉴스든 프레시안이든 한겨레·경향이든, 누가 보느냐는 거죠. 뉴스타파도 그렇고, 이미 접하는 사람들은 일정 정도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는 거죠. 내용에 충실해질 뿐이지 방향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기득권들은 기대난망이고요." 

-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와 함께 실망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습니다.  
"야당이, 진보진영이 지리멸렬하니까요. 야당답게 제대로 싸우고 있나? 메르스 사태, 세월호 참사, 국정원 사건을 지나면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혀 못 내고 있어요. 경제 정책도 복지나 경제민주화나 공약만 내걸고 입을 싹 씻었는데 공격도 잘 못하는 걸 보면 야당이 맞나 싶고요. 실망이 커지고 좌절감이 무관심으로 기울면서, 탈정치화가 이어질 위험이 있어요. 엄중한 세상입니다. 조건은 나빠지고 있는데, 내년은 총선이, 또 대선이 다가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대상과 경쟁대상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 최근 20대들의 안보의식이 강화됐다는 보도도 있고, 일베를 비롯해 20대들의 보수화 혹은 우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20대의 경우 전망이 불투명하니까 불안한 거죠. '삼포'니 '오포'니 전망이 없을 때는 방어할 수밖에 없죠. 전 세계적으로 공통인 건, 불만이 쌓이면 희생양을 만든다는 거죠. 책임을 반사시키고. 극우세력들이 그렇게 이주노동자를 활용하잖아요. 한국은 분단 상황이라 더 심하죠. '일베'가 약자와 여성을 공격하는 게 좋은 예고요. 이런 상황에 새누리당이 일자리를 주겠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 걸 보면…. 미래에 대한 전망 부재가 불안요인인데, 청사진이 없다는 게 불안한 인간성을 더 훼손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이, 설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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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의 명함.
ⓒ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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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답답한 현실에 대한 얘기만 나누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반헌법 열전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까요.  
"박근혜 대통령이나 집권층들이 바로 '친일' 부역에 근간을 둔 세력인데, 그간 한 번도 정리가 없었어요. 이게 필요한 거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과거 친일인명사전이 나온 거잖아요. 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만, 과거를 오늘의 문제로 연결하고자 열전이 나오는 거고요. 그만큼 역사를 두려워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유럽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의 쌍두마차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독일이 나치의 역사 범죄를 철저히 반성하고 그에 따른 조처를 했기 때문이거든요. 프랑스도 프랑스대로 4년에 걸쳐 부역자를 철저히 심판했고. 양자가 서로 맞아 떨어진 거죠. 반면 일본이 우리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제대로 사과를 안 하는 게 결국 친일이라는 우리 안의 문제가 반사된 거거든요. 우리 스스로 제대로 청산하고 매듭을 끊어야 합니다. 그 일환이 바로 이번 반헌법 열전이고요."

- 그 매듭을 끊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물론 쉽지 않아요.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설득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아니, 설득이 정말 안 되는 사회죠. 근본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생각을 하고 사고를 해야 반성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죄다 암기 위주로 공부를 하니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설득이 안 되죠.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회의를 해야 상대방을 설득하고 경청할 수 있는데 한국 사람이 어디 경청을 하나요. 그래도 계속해서 설득을 해 나가야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 그러한 반헌법적인 조직과 개인들에게 고초를 겪기도 하셨습니다. 반헌법 열전의 편찬이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과거야 중요한 건 아니고요. 칼럼에도 썼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어요. 일제 부역자들은 삼대가 잘 먹고 잘 살고, 독립운동가들은 자식들까지 가난에 찌들고. 통계가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잖아요. 이게 다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해 나타난 결과겠죠. 

인간은 죽는 순간이 되면 순수해진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자들이나 1970~80년대 고문을 일삼았던 이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반성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열전이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힘의 문제니까요. 힘이 없고, 한번도 정리해 본 적이 없으니까 저들이 철저하게 오만한 거죠. 말 그대로, 불의한 사회입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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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8월위기사태의 급박했던 3일

 
 
한호석의 개벽예감 <17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9/07 [12: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 <사진 1>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다. 그 대비계획은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그 문서에 서명한 날부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다.     © 자주시보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했다. 대비계획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사실상 작전계획이다. 이 새로운 작전계획은 전시전면전이 아니라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사진 1>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 사이에서는 평지국지전 작전통제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문제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다. 평시국지전은 전시전면전과 달리 평시에 일어나는 무력충돌이므로,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평시국지전은 한국군 합참의장의 평시작전통제권 행사에 따라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는 전투인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단일지휘를 받는 연합군체제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주한미국군은 한국군 곁에서 그들의 전투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현실과 어긋나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전시전면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도 행사하는 새로운 작전지휘방침이 요구되었고, 그런 요구에 따라 나온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이 바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3년 3월 22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13년 3월 한국 언론매체들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함께 서명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군이 작전을 주도하고 미국군은 한국군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나 그것은 자의적인 억측이다.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자기들 마음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 없고, 반드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사전협의절차를 거쳐야 가동할 수 있다고 그 계획에 명문화되었다는 것이다. 사전협의절차라는 것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시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감독, 통제하고,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에 따라 평시국지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지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감독, 통제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연합뉴스> 2012년 6월 15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12년 6월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부록문서를 합의하는 것으로 하여 “북한의 국지도발 시 한미연합군의 대응이 자칫 확전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미측의 우려감이 해소됐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경우 확전될 것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확전위험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확전위험을 우려한다는 사실은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서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 중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의 공격원점과 지원세력을 타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는 자기의 작전개념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하자고 요구하였으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과도하게 보복공격을 하면 확전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조선인민군 지휘세력에 대한 보복타격은 평양타격을 뜻한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장한 대로 평시국지전에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면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과정에서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양타격을 주장한 반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확전위험을 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평양타격으로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다는 사실이다. 2013년 11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한국군이 패한다고 단언했는데, 그런 사실을 아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면서 만용을 부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미국의 대북선제타격능력을 너무 과신하기 때문이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보다 먼저 대북선제타격을 개시하여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국군 합참본부를 그런 만용으로 떠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믿어서는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어버린 오판으로 보인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오판과 만용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에 대북선제타격이 포함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미국군은 조선인민군과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하는데, 아래의 정보에서 그런 회피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한국군 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확전위험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의 견해차이가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의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 서명으로 해소된 줄 알았더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열린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지휘세력타격을 놓고 한미 양측 대표단 간에 설전이 벌어졌”는데, “한반도에서 국지도발이 벌어져도 어떤 식으로든 확전을 피하려는 미측과 북한을 제대로 혼내주려는 우리측 사이에 간극이 커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2015년 4월에 열린 한미통합국방협력회의에서 한국측과 미국측은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한국측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고, 미국측은 평양타격자제론을 주장하였다. 이런 견해차이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서명 이후 2년이 지난 오늘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 자주시보


둘째, 미국군이 확전을 피하려는 까닭은,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는 경우 각종 항공작전기 1,741대와 각종 군함 및 잠수함 152척을 운용하는 태평양사령부 예하 26만6천명 병력이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받게 될 미증유의 위험, 그리고 미국 본토의 심장부가 조선인민군의 보복핵타격을 받게 될 파멸적 위험을 매우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군과 한국군에게는 확전이고, 조선인민군에게는 최후결전이다.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확전위험을 우려하며 우물쭈물하는 미국군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최후결전을 벼르며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확전의 순간 치명적인 전술핵탄공격을 개시하는 쪽은 미국군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다. 미국군은 이런 확전씨나리오를 예상하기 때문에 확전위험을 피하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예상한 미국군은 그처럼 확전위험을 피하려고 조심하는 판인데, 한국군은 그런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만 믿고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평양을 타격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파멸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오판이 아닐 수 없다.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동아일보>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는 30여 개에 이르는 평시국지전씨나리오가 포함되었는데, “서북도서에 대한 기습포격이나 무력강점, 북한 공기부양정이나 저속항공기의 기습침투, 특수부대의 후방침투, 잠수함의 아군 함정 공격 등”이 거기에 들어있다고 한다. 위의 보도기사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이번 8월위기사태 중에 일어날 뻔하였던 군사분계선에서의 국지적 무력충돌도 평시국지전씨나리오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평정된 8월위기사태 중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당연히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를 가동하였어야 한다. 조선인민군이 2015년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라고 한국군에게 요구하며 이에 불응하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적어도 8월 22일부터 가동되었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2015년 8월 15일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는 한국군이 재개한 대북확성기방송을 8월 22일까지 전면 중단하고 그 시설을 철거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그 요구에 불응하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시한부 최후통첩을 보냈고, 8월 2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긴급보도를 통해 최후통첩을 재확인하였다. 평시국지전위험이 그처럼 최고조에 이르렀는데도, 평시국지전에 대처한다는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가동될 리 없었다.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3일 동안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작전계획도 없이 갈팡질팡하며 피격위험을 자초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그런데 한국 언론매체들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에 대해 상반된 보도기사를 내놓았다. 이를테면, 2015년 8월 21일 <연합뉴스>는 8월 21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사상 처음으로 가동되었다고 보도한 반면, 2015년 8월 24일 <조선일보>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시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있을 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가동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이처럼 상반된 보도내용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일까?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를 파악하려면, 아래에 열거한 두 가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뉴시스> 2015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8월 20일 육군 28사단 예하부대에 발령했던 ‘진돗개 하나’를 8월 21일 전군으로 확대하였다. 셋에서부터 하나까지 3단계로 구분되는 ‘진돗개’는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데, ‘진돗개 하나’는 평시국지전에 대처하기 위해 발령되는 전투동원태세다.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진돗개 하나’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이중으로 발령되지 않으므로 한국군 합참본부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국군은 데프콘(DEFCON,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전투동원태세를 구분한다. 데프콘은 5단계로 구분되는데,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 것을 의미하며, 데프콘 5에서부터 데프콘 3까지는 평시상태에 해당하고, 데프콘 2와 데프콘 1은 전시상태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일어날 위험에 근접하였던 8월위기사태 중에 당연히 데프콘 3이 발령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평시국지전위험에 대처하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으므로,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인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둘째, <문화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2사단은 8월 20일 오후부터 예하 모든 부대들에서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을 금지시키고, 1개 소대마다 5분 대기조를 편성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으며, 예하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를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인근에 있는 사격훈련장으로 이동시켜 다련장로켓포 사격을 준비시키고 야간작전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 <사진 4> 다련장로켓포,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한미국군의 전투동원태세는 평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에 머물렀다. 최전방에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의 주력부대인 210포병여단 예하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만이 사격위치가 아니라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위의 사진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에 배속된 다련장로켓포의 발사훈련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위의 보도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한 것은 1개 대대뿐이고, 그것도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춘 것이 아니라 훈련장에 가서 사격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격준비태세는 평상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로 전환한 것이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된 긴박한 상황에서 취하는 태세가 아니다.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으므로, 주한미2사단의 전투동원태세는 그런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진 4>


8월위기사태 중에 평시국지전위험이 고조되었는데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왜 가동되지 않았을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단서는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한미작전계획에는 자위권 행사를 제외하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식이 빠져있”기 때문에 “연평도포격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한국군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에서 발생한 견해차이가 해소되고 않았기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작전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OPT, Operation Planning Team)을 가동하였다. 이것은 8월위기사태가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는 없었으므로 공동작전기획단을 서둘러 결성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대응작전계획도 없이 평시국지전위험에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한심한 형편이었으므로, 그들은 8월위기사태 당시 급박하게 전개되는 수시로 변동되는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  

 

▲ <사진 5> 평시국지전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5년 8월 22일,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위용을 정찰위성을 통해 주시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하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4년 1월 30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소속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잠수함 3척이 보인다. 이 잠수함들은 남하해류를 타고 습격항로를 따라 저소음침투항해술로 스텔스잠항을 하여 수중매복구역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조선은 잠수함을 독자적인 기술로 건조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잠수함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잠수함강국이다. 그런 잠수함강국이 8월위기사태 당시 전례 없는 위력을 과시하였는데, 2015년 8월 22일 오전부터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함함대가 전개한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이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들은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시키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사진 5> 


2015년 8월 23일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평소보다 10배나 더 많이 출동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인민군 잠수함은 평시에 4~5척 출동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10배가 더 많은 잠수함들이 출동하였으니 50여 척이나 되는 잠수함이 대거 출동한 것이다. 다른 나라 해군의 경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기껏해야 2~3척으로 편성된 잠수함대가 출동하는 것이 상례인데, 무려 50여 척에 이르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한꺼번에 출동하였으니 그 상황을 정찰위성을 통해 관측한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아연실색하였을 것이다. 그 많은 잠수함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2015년 9월 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출연한 미국의 조선인민군연구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 Jr.)는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한꺼번에 수중작전에 투입된 사실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 동안 조선인민군이 잠수함의 훈련, 유지, 보수에 기울인 노력이 이번에 “분명한 성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평하였는데, 그 많은 잠수함이 들어가는 거대한 지하해군기지들이 조선에 건설된 것도 놀랍지만, 그 많은 잠수함들을 혼잡 없이 한꺼번에 출동시키는 수중작전투입능력은 더 놀랍다. 이러한 수중작전투입능력은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고도화된 기습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사진 6> 서호급 호위함, 이것은 미국 상업위성이 2004년 4월 20일에 촬영한, 조선인민군의 서호급 호위함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나타난 사진이다. 조선이 1983년에 건조한 서호급 호위함은 길이 74m, 배수량 1,845t이다. 함대함미사일 4발을 장착하고, 대잠작전헬기 1대를 비행갑판에 탑재한다. 서호급 호위함은 30년이 지난 함선이므로, 그 이후 신형 호위함이 건조되었는데 외부에 그 실물이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인민군이 발표한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이 다가오기 몇 시간 전에 동해와 서해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에 그 신형 호위함도 참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주목하는 것은, 8월위기사태 당시 조선의 동서해에서 출동한 것이 잠수함대가 아니라 잠수함련합함대라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는, 적어도 20척 이상의 잠수함들이 선봉에 서고 그 뒤로 40련장 122mm 방사포를 장착한 연속타격고속정, 76mm 함포를 장착한 파도관통형 고속정, 사거리 260km의 금성-3호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쌍동선체 스텔스 고속공격정, 대잠작전헬기 1대를 실은 호위함 등 최신형 함선들로 종합편성된 초강력한 수중수상연합함대다. <사진 6> 그런 잠수함련합함대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2015년 8월 24일 <CNN> 방송취재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리가 “우리는 북조선 해군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실토하면서 자기들이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하였을까.


<연합뉴스> 2015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해군은 동해와 서해에 각각 출동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그 많은 잠수함들이 어디에 있는지 잠항위치를 식별하지 못한 까닭에 당시 상황을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동해, 서해, 남해를 포괄하는) 광역초계활동에 돌입”하였는데, “북한의 잠수함위협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지만 실제 그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대잠탐색망을 뚫고 어디까지 남하잠항하여 수중매복구역에 들어가 있었는지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였다. 


이전부터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에 맞설 방어능력이 자기에게 없다는 점을 우려해왔는데, 이번에 그런 우려가 현실로 전개되었다.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동해, 서해, 남해에 배치된 한국 해군 함대들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대파, 격침되었을지 모른다.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2015년 9월 2일 한국 언론매체들은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정찰비행을 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도하였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뒤늦게 보도된 까닭은, 한국 국방부가 그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들이 남하하여 정찰비행을 하자 한국 육군이 전술체계망(ATCIS)을 가동하였는데, 그 전술체계망 가동상황이 나타난 컴퓨터 현시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유포한 혐의로 한국군 해병대 현역 중위가 군당국의 수사를 받은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는 바람에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까지 언론보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전술체계망이 급박하게 가동되는 상황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포한 해병대 중위가 <일베저장소>라는 웹싸이트의 게시판에 올려놓았으나 얼마 뒤 삭제된 자료를 보면, 한국 국방부가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도 숨겼음을 알 수 있다. 유출된 자료를 인용한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2일 오후 조선인민군 Ml-2 공격헬기가 서해 상공에 출현하였고, 조금 뒤에는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현리 상공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서부전선에 출현하고, 그 직후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한 사실을 모두 감추었던 것이다. 

 
유출된 자료와 언론보도를 종합하여 당시 조선인민군의 무력전개상황을 재구성하면, 동해와 서해에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출동하여 남진공격태세를 갖추었고, 중부전선에서는 평소보다 2배나 더 증강된 포병무력이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즉시사격태세를 갖추고, 그 가운데 일부 포병부대들은 실탄사격을 연습하였고, 서부전선에서는 고속침투공기부양정들이 전전배치되고 공격헬기가 남하비행을 하였고, 동부전선에서는 무인정찰기가 남하비행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조선인민군이 전체 전선에서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전체 전선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압도적인 무력시위는 평시국지전이 터지는 순간, 조선인민군의 공격전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미리 말해주는 ‘예고편’이었다. 8월위기사태 중에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쌍방의 전투동원태세를 분석하면 매우 급박했던 상황이 드러나는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래와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사진 7> 북 공격헬기 혁신-2,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혁신-2 공격헬기를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서 출격시켜 백령도 상공으로 근접비행하게 하였다. 이 공격헬기가 최남단 출격기지를 이륙하면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위의 사진은 조선에서 전승절을 맞은 2015년 7월 2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5》에 참가한 혁신-2 공격헬기가 대회장에 운집한 장병들의 머리 위로 낮게 비행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2015년 8월 22일 서해 상공에서 대남근접비행을 하였던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된 Ml-2라는 수입기종이 아니라 조선에서 1980년 중반부터 자체로 생산하는 혁신-2라는 자국산 기종이다. 순항속도가 시속 440km인 혁신-2 공격헬기는 사거리가 5km인 57mm 철갑관통 로켓포 16발, 2련장 23mm 속사포 1문, 최대 500kg의 항공폭탄, 대전차미사일, 공대공미사일로 중무장하였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현시된 자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혁신-2 공격헬기는 140대에 이르는데, 그로부터 오늘까지 10년 동안 생산이 계속되었으므로 2015년 현재 그 기종의 보유수량은 200대 정도로 추산된다. <사진 7> 


그런데 <연합뉴스> 2012년 7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2년 5월부터 백령도에서 불과 수 십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황해남도의 태탄비행장과 누천비행장에 혁신-2를 포함한 각종 작전헬기 50여 대를 전진배치하고 대지공격훈련과 고속기동훈련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기자는 작전헬기 50여 대가 배치되었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예하 2개 직승기 대대에 배속된 작전헬기 70대가 전진배치된 것이다.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이 2013년 1월 14일 웹싸이트 <노스 코리언 이커노미 웟취(North Korean Economy Watch)>에 올려놓은 글에 따르면, 황해남도 태탄군 기암리에 있는 태탄비행장에 공격헬기격납고 36개소가 새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태탄비행장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최남단 출격기지인데, 여기에 상시배치된 공격헬기들은 출격 이후 불과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백령도에는 한국 해병대 제6여단과 해군 고속정기지가 있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태탄비행장에서 출격하여 2~3분 안에 백령도를 기습할 수 있는데 비해, 한국 공군 전투기들은 경기도에 있는 공군기지들에서 출격하여 백령도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30분 이상 걸린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 공격헬기들은 백령도 상공에서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조우하기 전에 백령도의 군사기지들을 파괴하고 황해남도 출격기지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태단비행장에서 출격하여 대남근접비행을 시작하자, 화들짝 놀란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긴급히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공군은 F-15K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고, 주한미공군도 덩달아 F-16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다. 그러나 그 전투기들의 항로는 백령도 상공으로 이어진 게 아니었다. 그 전투기들이 출격하였을 때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대남근접비행을 마치고 출격기지로 복귀한 뒤였으므로, 요격대상이 이미 사라져버린 서북5도 상공으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의 요격위험을 무릅쓰고 뒤늦게 날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전투기들은 2015년 8월 2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무력시위비행에 나섰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공군기지에서 이륙한 한국 공군 F-15K 4대와 경기도 오산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주한미공군 F-16 4대가 동해 상공에서 만나 한미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무력시위비행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격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사진 8>

 

▲ <사진 8> 조선인민군의 혁신-2 공격헬기가 백령도 상공 가까이 근접비행을 하자, 화들짝 놀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전투기 8대를 긴급출격시켰다. 하지만 그 전투기들은 백령도쪽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동해 상공에서 만나 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서횡단비행을 하였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 자주시보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한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8월 22일 오전 11시 59분쯤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한국군 일반전초(GOP) 상공까지 남하하였는데, 그 날부터 8월 24일까지 사흘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 1~2분씩 군사분계선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 8>


한국군의 저고도방공레이더와 중앙방공통제소(MCRC) 레이더에 간헐적으로 포착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희미한 항적은 한번에 30초 이상 식별된 적이 없었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일정한 속도로 비행하였다.

 

▲ <사진 9>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군사분계선을 넘어 정찰비행을 시작하였다. 그 무인정찰기는 그 날부터 3일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다. 한국군 정보당국은 당시 동부전선에 출현하였던 무인정찰기가 조선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기종인 '방현'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위의 사진은 '방현'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출현하자, 바짝 긴장한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육군은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기종인 AH-1 코브라 공격헬기를 긴급출격시켰다. 무인항공기를 격추하는 데는 공격헬기가 적격인데, 현장에 도착한 코브라 공격헬기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남쪽으로 9km 떨어진 지역상공에 설정된 북방비행금지선에 근접하여 탐색비행을 하면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실패하였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에 나타나 사흘 동안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는데도, 한국군 코브라 공격헬기는 그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사진 9>

 

▲ <사진 10>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하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육군 항공대가 운용하는 코브라 공격헬기를 현장에 긴급출동시켰다. 위의 사진은 미국산 공격헬기 코브라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코브라 공격헬기는 현장 상공에 출동하였지만 3일 동안 계속 동일지역상공에 나타난 무인정찰기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무인정찰기 탐색작전실패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나타난 강원도 인제군은 해발고가 1,304m나 되는 대암산을 비롯한 높은 산들이 들어찬 동부전선 산악지대인데,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그런 산악지대 상공을 저고도로 비행하였으므로, 그 항적이 한국군 방공레이더망에 희미하게 나타났고, 코브라 공격헬기의 시야에서도 벗어났던 것이다.


원래 무인정찰기는 공중에서 지상관측대상을 촬영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정찰수단이기 때문에, 초저공으로는 비행하지 않고 지상으로부터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게 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 공격헬기가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지역상공을 여러 차례 비행하는 무인정찰기를 찾아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3km의 고도로 날아가는 무인정찰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을 태우고 달빛도 없는 무월광 심야에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타고 지상으로부터 500m 정도의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저고도침투비행기(일명 우뚜바)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8월위기사태 당시 한국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행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우려가 현실로 입증된 사례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에서 가까운 최전방에 산재한 한국군 작전거점들에는 고위험 전투병력이라 부르는 전투원 10만 명이 배치되었는데,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들 10만 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8월위기사태 당시 남과 북에서 각각 전개된 전투동원태세를 비교해보면,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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