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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왜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인가

 
김원식 재미언론인 
기사입력: 2014/04/19 [09:0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청와대는 지난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오전 진도 인근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와 관련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현재 청와대는 김장수 안보실장이 위기관리센터에서 사고와 구조현황을 파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관련 상황을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언론들도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부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현장 및 구조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김장수 안보실장이 위기관리센터로 자리를 옮겨 사고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군과 경찰의 구조 현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관련 상황을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워낙 국가적인 대형 참사가 발생하다 보니 단 한 명의 실종자를 구하는 것이 다급한 마당에 정부가 국가 안보에 관한 최고의 컨트롤타워를 동원해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관련 법률이나 시행령을 위반한 월권행위입니다. '국가안보실'의 존재 이유는 "국가안보실은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한다"고 명확히 해당 법령에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위기관리센터 역시 국가 안보에 관한 위기를 관리하는 것으로 "위기관리센터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외교부 소속 외무공무원 또는 통일부 소속 공무원이나 이에 상응하는 국방부 소속 현역장교 또는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대체하여 충원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은 전쟁, 테러 등 긴급한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국방부 등 관련 부처의 공무원을 차출하여 이러한 안보 위기 상황에 관해 총괄적인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기구입니다. 안전행정부 공무원을 명시적인 차출 규정으로 두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점입니다.


늑장 대응, 사고 수습 혼란 등 모든 책임을 '국가안보실'은 질 수 있나?

우리 정부는 국가적인 중대 재난 사태와 관련하여 안전행정부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중앙대책본부'를 가동하게 법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대책본부에 안전행정부 소속 공무원 등 관련 공무원들을 차출하여 재난사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형 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에서는 이보다도 결국 '국가안보실'을 상위 컨트롤타워로 하여 모든 상황을 보고하고 지휘하게끔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번 참사의 구조 과정에서도 특히, 해군 특수 잠수 요원 등 국방부가 관할하는 군인이 많이 투입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협조 사항으로 반드시 '국가안보실'이 이번 대형 여객선 침몰 참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데 대한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앙대책본부 등 관련 기관에서도 얼마든지 국방부가 관할하는 육해공군 등의 인력 파견과 협조를 요구할 수 있는 장치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이 총괄 컨트롤타워로 나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청와대는 선전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사건 발생 초기 실종자 숫자도 제대로 집계가 안 되는 등 총괄적인 재난 사태 대응력 부족 등 난맥상의 모습만 보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대형 참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고 원인을 포함한 늑장 구조 등 모든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밝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관련 법률에 따라 조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즉 정부의 신속한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 책임은 국가의 안보를 총괄하는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니면 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대형 참사이지만 여객선 침몰이라는 사건이 과연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대테러 사건도 아닌 여객선 침몰에 '국가안보실'이 지휘하는 나라는 없다

다시 말해 테러 등 국가 안보와 관련성이 없는 사건에서 왜 국가안보실이 나서야 하며 총괄적인 지휘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테러와 관련이 없는 대형 사고에 국가안보회의(NSC) 같은 대통령 보좌 기구가 전면에 나서 상황을 총괄적으로 진두 지휘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해당 정부가 행정부 등 관련 기관들의 무능함을 사전에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번 고위급 회담을 비롯해 이번에 발생한 무인기 사건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관련 행정 기관인 통일부와 외교부를 무시하며 "김장수 안보실장 나오라"며 아예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해 가면서까지 비아냥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허수아비에 불과한 통일부와 외교부를 상대하기 싫다는 그들의 행동과 주장이 실질 행정 기관에 대한 무례를 넘어 실권자(?)를 직접 상대하겠다는 오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남북한 간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전행정부를 비롯하여 국가 내부의 중대 재난 사태와 관련하며 엄연히 관련 법률에서 규정한 기관들이 있음에도 대통령령으로 다시 신설된 '국가안보실'이 해당 신설 규정에도 맞지 않게 이러한 재난 사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월권행위가 과연 재난 사고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인지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국가안보실'은 국가의 안보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기구이지 모든 행정기관을 지휘 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01&table=newyork&uid=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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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실종자 가족들 호소문 발표

 

등록 : 2014.04.18 09:47수정 : 2014.04.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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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3일째인 18일 오전 실종자 가족 대표가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 가족 호소문’ 발표를 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모두 구조됐다는 발표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현장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정부의 신속한 구조와 정확한 정보전달을 호소했다.【진도=뉴시스】

실종자 가족들 “상황 책임지고 전달·지시하는 사람 없어”
“구조작업 투입 인력과 장비도 정부가 거짓말해” 주장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부실한 대처에 분노해 국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모여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18일 오전 발표한 호소문에서 “현 시점에서 진행되는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16일 낮 12시쯤 전원 구출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이곳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도 실내체육관 비상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있게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상황실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가족들은 이어 “우리가 알고 싶은건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도,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또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라며 “민간 잠수부 동원해 지원 요청했지만 배도 못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우리는 소동피고 난리쳐서 책임질수 있는 사람 보내달라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또 “어제 현장을 방문했는데 (구조)인원은 200명도 안됐고, 헬기 두대, 군함 두 척, 경비정 두 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구조대원 8명이 구조작업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원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라며 호소문을 끝맺었다.  

 

온라인뉴스팀

 

<여객선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 대국민 호소문 전문>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

 

4월 16일 오전 9시께 사고가 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낮 12시쯤 모두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존자 82명, 학생 74명, 교사 3명, 일반인 5명이 도착한 시각인 오후 5시 30분께 실내체육관 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고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현재 진행되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학부모 대책위를 꾸려 오후 7시쯤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2곳으로 나누어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민간 잠수부를 동행해 자원을 요청했지만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우고 난리를 피워서 책임지는 사람을 보내달고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오후 10시 넘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구조는 없었다. 계속된 요청에도 17일 오전 1시께 다시 한다고 전달받았지만 조류가 심하다,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얼버무렸다.

 

군과 경찰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학부모와 민간 잠수부는 오열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인원은 200명도 안 됐다. 헬기는 단 2대, 배는 군함 2척, 해양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오전 9시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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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사고선박 주변에서 모 여학생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가방 안에는 학생의 명찰, 화장품, MP3 재생기, 약통, 교통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2014.4.17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얼굴을 가리고 눈물 짓고 있있다. /2014-04-08 로이터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세월호 침몰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여객선 침몰 사고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바램이 전 국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뉴스1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단원고 1·3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등 인근 학교 학부모 수백여 명이 참석해 촛불 기원제를 열고 있다.이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한 손에는 촛불 대신 스마트폰 후레쉬를, 한 손에는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란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실종자 학생들의 전원 무사귀환을 기원했다.뉴스1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단원고 1·3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등 인근 학교 학부모 수백여 명이 참석해 촛불 기원제를 열고 있다.이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한 손에는 촛불 대신 스마트폰 후레쉬를, 한 손에는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란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실종자 학생들의 전원 무사귀환을 기원했다.뉴스1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전남 진도 해상 침몰 여객선에서 실종된 학생들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눈물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전남 진도 해상 침몰 여객선에서 실종된 학생들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17일 밤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여객선 침몰 이틀째인 17일, 안산 단원고 실종학생 가족들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가족들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자 가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비가 오는데 오가고 있다.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4월 16일 팽목항에 앉아있는 생존자의 모습/ 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상황실이 마련된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글귀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글귀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7번째 사망자 박영인 군의 어머니가 17일 오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다. 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세월호 침몰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사고선박 주변에서 모 여학생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가방 안에는 학생의 명찰, 화장품, MP3 재생기, 약통, 교통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2014.4.17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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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돌아와줘, 기다릴게”...안산 단원고를 밝힌 500여명의 염원

안산=김백겸 기자  발행시간 2014-04-18 00:06:02 최종수정 2014-04-18 07:26:33

17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는 전날 전남 진도 인근 해안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이 모였다.

이날 오후 8시 30분 단원고 운동장에는 세월호 실종 학생들의 선·후배와 다른 학교 친구들, 시민 등 500여명이 모여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이들은 행사를 시작하기 1시간 전부터 학교에 모여들었다. 친구끼리 만나 실종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감정에 북받쳐 오열하다 실신하는 학생도 있었다.

단원고 학생들, 세월호 생존자 우리가 구해줄께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1시간가량 운동장에 그대로 서서 ‘모두들 돌아와줘, 기다릴게’, ‘희망 잃지 마’,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 ‘너희들 미소가 그립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해줄게’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무사귀환을 염원했다. 참가자들이 펼쳐든 무사귀환 메시지에는 그리운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메시지 뒤에 핸드폰 불빛을 비춰 마치 작은 은하수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우산이나 우비도 없이 쌀쌀한 날씨에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자리를 지키는 학생도 많았다.

학생들은 1시간 뒤 학교 건물로 올라오자 참아왔던 감정을 쏟아내듯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열하는 친구에게 울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세월호 생존자 구조, 단원고 500여명의 기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실종된 김진희·강부정 양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던 한 여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친해져서 고등학교가 달라졌어도 매일 만났다”며 “친구들이 보고 싶다.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이 학생은 ‘희망을 잃지 마’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단원고 옆 단원중학교 학생들도 선배들이 무사하길 기원했다. 단원중 3학년인 한 남학생은 “자주 축구를 같이 하면서 잘 놀아 주던 형이 실종됐다”며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학년 4반 박정훈 군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노승리(16) 군은 “축구나 농구 등 운동을 같이 하던 친한 형”이라고 박 군을 소개하며 “제발 다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인 에어포켓에 사람이 있다고 한다”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단원고 행정실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애들이 이런 것을 계획하다니 잘했고 기특하다”며 “아이들이 구조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고 그때까지 학교에서도 지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시 와동에서 온 백모(37) 씨는 학생들이 운동장에 서 있는 동안 주변에서 촛불을 들고 마음을 함께 했다. 백씨는 “아이들을 보면서 짠하다”며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단원고 전교회장의 이름으로 올라온 “이번 일로 우리가 후배들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다 같이 마음을 모아서 메시지를 전달해볼까 한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인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이번 행사가 이뤄졌다.

앞서 이날 단원고에서는 오후 8시 실종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도 열렸다.

세월호 생존자 우리에게 돌아와줘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수학여행 중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안산단원고
안산단원고 학생 등 500여명이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친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원하는 단원고 학생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보고싶어 돌아와 단원고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보고 싶은 단원고 학생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수학여행 중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위한 눈물의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눈물의 촛불 기도, 세월호 생존자 구해주세요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원하는 아이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위해 기도하는 안산 시민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 세월호 생존자를 위해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도하는 시민들의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사고자들을 위한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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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저녁6시 청계광장에서 정부를 성토하자!

 
국정원비리, 세월호 고교생도 못구하는 이 정부는 뭐하는 정부?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4/04/18 [01: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못살겠다, 갈아보자-! 어게인419
민중혁명으로 부정부패 대통령 이승만을 몰아내었던 1960년 4월19일.
그날을 기념하며 또다시 모인다. 
사월혁명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19일 오후 6시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대규모 국민대회를 개최해 현정권의 관권 부정선거와 오바마 방한 반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등을 규탄할 계획이다.
 
시민단체는 한 인사는 "최근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부의 부도덕함과 더불에 무능함을 여실히 경험중"이라며 "대선 부정, 국정원 사태로 이미 그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었던 박근혜 정부는, 이번 세월호 진도 침몰사고에 대처에서도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피해자 가족들로 부터 터져 나오고 있지 않느냐"며 분노를 표했다.
 
  
 
▲ 함께 모여 이 정부를 성토합시다, 어게인 419     © 이호두 기자

박근혜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백은종 편집인(현 서울의소리 www.amn.kr)은 
 
"박근혜는 이명박근혜라는 별명처럼 자본의 대변자였던 이명박과 한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정통성부터 인정받지 못한 귀태와도 같은 정권입니다."라며 "박정권이 탄생한 이후로 대한민국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북풍이 불고 장난감 비행기가 날고 이제는 어린 학생들을 태운 배마저 뒤집혀 꽃다운 청춘들이 구조도 받지 못한채 차가운 바다속에 갇혔습니다. 세모녀 대변되는 극빈자 층은 늘어만 가는데 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9200억이나 퍼준답니다.그 돈으로 어서 바닷속에 갇힌 우리 아이들같은 학생들이나 먼저 구해주십시요."라고 항변했다.
그는 "이 정권이 한게 무엇이냐"며 "그들이 바다밑바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 말고 지금 한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외치고 소리치고 나와서 국민의 무서운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핸드폰으로 입진보한다면 박근혜가 무서워하겠습니까? 큰소리로 외쳐서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들리도록 소리지르십시요!"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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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조평통 “남재준 있는 한 남북관계 파국 막을 수 없어”

北 조평통 “남재준 있는 한 남북관계 파국 막을 수 없어”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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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7  23: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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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6일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 증거조작이 드러났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경질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며, 남재준 원장이 있는 한 남북관계의 “파국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 17일발에 따르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서기국 보도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어처구니없는 허위날조로 꾸며낸 모략사건”으로 드러났다면서 “문제는 그 책임을 아래 놈들에게 뒤집어씌워 몇 놈의 목을 떼는 것으로 그치고 모략사건의 두목인 정보원 원장 남재준 놈은 빼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남재준 놈은 뻔뻔스럽게 ‘안보’를 줴치며(이런저런 소리를 마구 하며) 정보원 수장자리에 그냥 눌러앉아 있을 속심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박근혜 역시 남재준을 적극 두둔하면서 놈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조평통은 “박근혜가 이번 사건의 주범인 남재준 놈을 빼돌려 두둔해주며 오히려 놈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박근혜도 남재준과 똑같은 공범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평통은 “남재준 놈과 같은 무지막지한 ‘유신’ 잔당깡패를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에서 폭압정치의 부활과 북남관계의 파국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이번 사건은 정치적 야욕과 동족대결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열한 모략도 서슴지 않는 정보원의 추악한 정체와 죄악을 내외에 고발해주는 또 하나의 산 증거”라고 규정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보도 제1059호

지난 14일 괴뢰검찰은 남조선에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온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에 대한 최종수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은 정보원이 서울시의 《탈북자》출신 공무원에게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북에 넘겼다는 《간첩》혐의를 들씌운 사건이다.
그런데 정보원이 《위력한 증거》라고 제시했던 자료들이 모두 정보원《수사팀》에서 위조한것이라는것이 조사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특히 정보원놈들은 3국의 공문서까지 비법적으로 위조하여 이번 모략사건을 조작하는데 써먹었다.
그 죄행이 드러나 외교적문제까지 발생하자 위조공문서를 만든 정보원첩자와 사건조작에 직접 가담한 정보원직원은 상층부의 지령을 받은 사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하는 추태까지 벌리였다.
진상을 더이상 감출수 없게 된 괴뢰검찰은 이번 최종수사결과발표를 통하여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이 어처구니없는 허위날조로 꾸며낸 모략사건이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제는 그 책임을 아래 놈들에게 뒤집어씌워 몇놈의 목을 떼는것으로 그치고 모략사건의 두목인 정보원 원장 남재준놈은 빼돌린것이다.
정보원 원장놈을 무혐의처분한데 대해 남조선에서 여론이 죽가마끓듯 하자 급해맞은 남재준놈은 물론 박근혜까지 나서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느니,《책임을 통감한다.》느니 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사과》하는 놀음을 벌렸다.
그러나 남재준놈은 뻔뻔스럽게 《안보》를 줴치며 정보원수장자리에 그냥 눌러앉아있을 속심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박근혜 역시 남재준을 적극 두둔하면서 놈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붙는 불에 기름친격으로 더 큰 대중적분노를 자아내고있다.
남조선야당과 사회 각계를 비롯한 광범한 여론은 《정보원과 검찰,법무부,외교부가 총동원되여 감행한 모략사건》,《끔찍한 범죄소굴》,《암덩어리》,《꼬리자르기》 등으로 규탄하면서 정보원해체와 남재준해임을 강력히 요구하고있다.
지어 《새누리당》안에서도 정보원을 성토하면서 남재준을 지체없이 파면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오고있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야욕과 동족대결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렬한 모략도 서슴지 않는 정보원의 추악한 정체와 죄악을 내외에 고발해주는 또 하나의 산 증거이다.
더우기 박근혜가 이번 사건의 주범인 남재준놈을 빼돌려 두둔해주며 오히려 놈에게 힘을 실어주고있는것은 박근혜도 남재준과 똑같은 공범자라는것을 보여준다.
남재준으로 말하면 《유신》잔당으로서 민심의 규탄을 받고 이미 오래전에 청산되였어야 할 군사깡패늙다리이다.
이러한 력사의 오물,극우파쑈대결광신자를 끼고돌면서 《유신》독재부활과 반공화국모략책동에 계속 써먹으려 하고있으니 이제 남조선이 파쑈와 폭압이 더욱 판을 치는 암흑천지로 전락되고 북남관계가 보다 엄중한 파국에 처하게 될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박근혜의 기만적인 《사과》놀음은 최측근 졸개인 남재준을 계속 끌어안고 권력의 지탱점으로 삼아 통치위기를 모면하며 이번 모략사건이 지방자치제선거에 미칠 부정적영향을 차단하고 정보원을 유지할뿐아니라 보다 파쑈적으로 《개혁》하려는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그것은 또한 모략과 음모의 소굴인 정보원을 우리와의 대결의 전면에 계속 내세워보려는 흉악한 기도의 발로이다.
남재준놈과 같은 무지막지한 《유신》잔당깡패를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에서 폭압정치의 부활과 북남관계의 파국을 막을수 없다.
남조선의 각계각층은 파쑈탄압과 동족대결의 총본산인 정보원을 해체하고 남재준을 매장해버리기 위한 투쟁에 더욱 과감히 떨쳐나서야 한다.
박근혜가 파쑈대결미치광이들에 의거하여 통치위기를 수습하고 집권안정을 유지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오산은 없다.
박근혜는 남재준을 계속 두둔하다가는 자기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것을 똑똑히 알고 분별있게 처신해야 한다.

주체103(2014)년 4월 16일
평 양 (끝)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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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北 박근혜 제안 ‘정신병자의 몽상’ 맹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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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만8천원짜리 오찬, 방통위엔 야당도 소통도 없다

[기자수첩] 조직이 비정상인데 위원장은 “안타깝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 되풀이
 
입력 : 2014-04-16  16:26:54   노출 : 2014.04.17  09:03:42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새누리당 추천으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온 허원제 위원은 부위원장으로 호선되기 전 전임 김충식 부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16일 오전 과천 방통위 대회의실에는 청와대, 새누리당 추천 상임위원 3명뿐이었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 두 명 중 한 명은 공석이고, 또 다른 야당 추천 김재홍 위원은 의결을 거부했다. 여권 추천 위원만으로 진행한 전체회의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방통위는 비공개로 부위원장을 호선했다. 내년 10월까지 부위원장은 허원제 위원이다.

회의를 끝낸 최성준 위원장은 부랴부랴 근처 식당으로 달려왔다. 기자 54명과 방통위 직원들 총 80여명이 위원장을 기다렸다. 기자도 참석했다. 평소에 조찬, 오찬 모임에 참석하지 않지만 이날은 꼭 가고 싶었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이 ‘비정상’ 상황인데 적어도 술과 안주가 있는 자리에서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 50여명의 기자들과 일일이 직립악수 행사(?)를 진행한 최성준 위원장은 출입기자 대표단 테이블로 옮긴 뒤 마이크를 들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아직 한 분의 위원이 임명 안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위원회의 모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산적한 문제가 많아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회의를 갖고 시급한 안건을 논의했다.” 전체회의 모두 발언과 똑같은 말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이전부터 야권 추천 고삼석 박사가 임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은 있으나 밝히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고, 이날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출입기자 대표단에 속한 기자가 고삼석 박사에 대해 재차 물었다. 최성준 위원장은 “지금 상태에서 제가 판단하건데 이건 방통위원장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임명권자와 국회 간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인 이슈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야 뭐, 위원장이지만 행정부의 관료로서 일하는 사람이 거기에 개입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며 “그것은 안타깝지만 제가 나서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방통위원장이 방통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최성준 위원장은 되레 청와대 편을 들었다. 그는 ‘(방통위가 법제처에 고삼석 박사 자격요건에 대해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이) 청와대가 시킨 것인지만, 월권 아닌가’라는 질문에 “아마도 사무국 직원이 그렇게 처리한 것은 질의가 들어왔을 때 법령 해석에 의문이 생기면 행정부는 법제처에 문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추천했는데 무작정 따르라는 의견도 있다’는 질문에 “국회에서 선출한 것도 있고, 추천하는 것도 있다”며 “(두 경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김재홍 위원이 의결을 보이콧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최성준 위원장은 ‘묘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월요일(14일)에도 그렇고 여러 얘기를 나눴다”며 “반대의 목소리는 좋지만 위원회 내에서 말씀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분 채워지는 게 중요한 문제는 맞다”며 “그럼에도 그 부분의 해결을 위해 조금 늦췄는데, 어떻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을 하기 힘들다.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 파행을 방치하겠다는 이야기다.

그저 그런 발언만 있는 ‘위원장 기자오찬 풀’ 파일을 열고 ‘괜히 갔다’ 생각했다. 몇몇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위원장의 기립박수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방통위 직원이 말렸지만 밥값을 따로 계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두 잔과 밥 한 공기, 불고기 여섯 젓가락을 먹은 기자는 2만1100원을 계산했다. 밥값 못한 오찬이었다. 총 비용 168만8천원, 최성준 위원장과 출입기자 54명의 오찬에 소신은 없었다. 지금 방통위에는 야당도 소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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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터진 최악의 해난 사고, 왜?

[안종주의 건강사회] 세월호 참사, 안전 불감증이 불렀다

기사입력 2014.04.17 11:19:43

 

 

 

 

 

 

참담하다. 비통하다. 죄송하다. 억장이 무너진다. 가슴이 미어진다. 슬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분노가 치민다. 삼가 명복을 빈다. 아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참사가 바다에서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일어난 최대의 참사다. 해난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사건으로는 1970년에 일어난 부산-제주 정기여객선 남영호 침몰 사건이 꼽힌다. 정원 초과와 높은 파도로 338명 탑승객 가운데 12명만 살아남고 326명이 숨졌다. 그다음으로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께 전북 부안군 위도 북서쪽 3킬로미터에서 위도-부안 격포항을 오가는 여객선 위도 페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번에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인천-제주 정기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아직 정확한 사망자 수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사망자와 실종자를 모두 더하면 296명이나 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위도 페리호 침몰 사건보다도 더 대형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고 희생자 가운데 대다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생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44년 만에 터진 최악의 해난 사고다.
 
▲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해양경찰청

▲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해양경찰청

 
이번 사고로 온 국민은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정부가 희생자가 거의 없다고 발표해 언론을 접한 국민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는 불과 몇 시간 뒤 정부의 집계 잘못으로 인한 오보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엄청난 숫자의 학생 등 승객이 구조되지 못하고 실종됐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종자 대부분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배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21년 전 위도 페리호 사건이 다시금 떠오른다.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이 사건은 잊혔겠지만, 당시 필자는 정치부 기자로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맡았다. 건교위원들이 현지를 방문해 국정조사를 벌일 때 동행 취재를 한 적이 있어 아직도 당시 사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언제까지 비극적 뉴스를 들으며 살아야 하나?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던 신문사에서 페리호 백 선장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이미 배 안에서 숨진 백 선장을 찾느라 많은 경찰이 동원돼 위도 전체를 수색하는 등 일대 소동을 벌였다. 그러다 며칠 만에 오인 신고로 인한 오보로 밝혀진 일이 있어 더욱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백 선장 생존 보도는 한국 언론사에서 대표적 오보 사건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진도 여객선 참사에서도 몇 시간 만에 정정되기는 했지만, 희생자가 전혀 없다시피 하다는 대형 오보가 많은 유가족을 분노케 했다. 국민도 이 오보를 질타했다.
 
페리호 침몰은 사실상의 인재였다. 그날 출항하기에는 적절치 못할 정도의 높은 파도가 친데다 정원을 엄청나게 초과한 승객을 태운 것, 스크루에 걸린 폐그물 등이 사고 원인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을 토대로 전문가와 언론들은 배가 항로를 급격하게 변경하다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침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개가 많이 끼었음에도 무리하게 출항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인재나 다름없다. 사실상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던 셈이다. 
 
여기에다 인명 피해가 왜 이렇게 큰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고 후 선장이 제때 신고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신고 당시 교신 내용을 살피면, 대형 사고 신고가 아니라 마치 가벼운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난 뒤 신고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여객선 안에서 승무원들이 승객 안전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학생 등 승객들은 사고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에 대해 앞으로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아침 9시께 일어난 사고이고 바다가 잔잔했다고 하니 사고 직후 구명정을 모두 재빨리 내린 뒤 구명조끼 등을 입히고 탈출했더라면 이런 엄청난 피해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장 등 승무원들의 초동 대처 실패가 피해 규모를 키운 게 아닌가 싶다. 
 
이는 물론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몰라서 하는 지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사고가 난 뒤 배가 순식간에 기울어져 밖으로 승객들이 잘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선장이나 선원들이 밖으로 나와 한꺼번에 몰리면 배가 더 일찍 침몰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학생 등 탑승객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 사고 직후 상당한 시간 동안 방송으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했다고 하는 증언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정신적 충격도 무시할 수 없는 구조자와 유가족, 상담 힐링 캠프 열어야 
 
이번 사고로 가장 큰 슬픔과 충격을 받은 사람은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상으로 고통을 겪는 승객과 악몽 같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정신적 충격에 빠진 승객들도 하루빨리 적절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문민정부라고 일컬었던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취임 이후 구포 열차 탈선 사고, 아시아나기 목포 추락 사고, 위도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그야말로 육해공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대형 참사가 벌어져 국민들을 불안케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의 끝은 국가 부도 사태가 장식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지난 2월 경주 외곽에 있던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해 이곳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부산외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도 전형적인 인재였다. 체육관 부실 시공과 관리 허술 등 안전 불감증이 빚은 대표적 사고였다.  
 
육지에서 일어난 이 사고에 이어 이번에는 바다에서 대형 참사가 생겼다. 이 때문에 김영삼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육해공에서 모두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이른바 사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는 언론인들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세월호 침몰 사고도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서는 안 되는 사실은 안전 불감증 사회에서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위험 사건이 터졌을 때는 구체적인 내용을 숨기려 하지 말고 정직하게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른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즉 위해 소통의 첫걸음마는 신뢰이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덜도 더도 말고 상대방이나 청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 16일 전남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구조된 한 여학생을 엄마가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만나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 16일 전남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구조된 한 여학생을 엄마가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만나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에 안전 보장 시스템 갖춰 안전 생활화해야  
 
정치는 모름지기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가장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잘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박근혜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안전 불감증을 없애고 노동자를 포함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실히 보장해줄 법·제도와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 사고, 특히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점검이 필요하다. 
 
사고에 차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요령이 몸에 배도록 어릴 때부터 철저히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영어, 수학이 아니라 안전교육이다. 안전박물관이나 안전교육관 같은 곳을 전국 곳곳에 만들어 학생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안전 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형 참사를 해부해보면 대개 공통점들이 보인다. 주로 '설마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사고가 일어나겠느냐'와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다. 하지만 자연은 방심하는 사람이나 정부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도 있지만, 핵발전소 같은 곳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사고가 발생하는 이른바 '정상 사고'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사고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다. 그래도 사고는 우리가 어떤 선택과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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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네수엘라 반혁명 기도

 

[번역]우크라이나 식 ‘느린 쿠데타’
김성윤 번역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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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6  15: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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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성윤 <통일뉴스> 객원기자
출처 : <The Guardian>, <The 4th Media> 2014년 4월 10일자 뉴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가디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시위는 미국이 석유를 원한다는 징후”라며 오바마 행정부가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식 ‘느린 쿠데타’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정부 가두시위를 지속시켜 자신의 정부를 전복한 후, 베네수엘라 석유를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부자들의 폭동’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지난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런 ‘부자들의 폭동’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며 현재 볼리바리안 혁명은 2002년 미국이 후원한 반 차베스 쿠데타 당시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어졌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는 지금 반정부 가두시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주된 배경은 높은 물가, 물자 부족, 그리고 범죄 때문인데, 지난 2월부터 야당 지도자들이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사회주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두로는 “그들은 자신들의 시위가 ‘아랍의 봄’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이미 봄을 맞고 있다. 우리의 혁명은 21세기를 열었다”라며 1개월 이상 계속된 반정부 시위를 ‘부자들의 폭동’이라 일축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39명이 죽는 등 마두로 정부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남아메리카 지역기구, 남미국가연합(UNASUR)이 제안한 야당과의 평화회담에 동의했으나 현재까지 야당은 정부 주도의 대화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이 사태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이 정부 전복을 위한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휴먼라이트 워치’와 가톨릭계는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인권탄압이라고, 국제엠네스티는 양쪽의 인권학대를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기도해왔던 미국의 새로운 반혁명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1960년대 브라질에서부터 2009년 온두라스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배후조종한 쿠데타나 쿠데타 시도를 근거로 제시했다.

버스기사, 운수노조 지도자 출신인 마두로 대통령은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연설을 통해 야당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태와 같이 전국 주요 도시와 거리가 폐쇄되고 행정력이 마비되어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야당도 그와 ‘유사한’ 계획이 있다고 인정했다.

인플레-갈등-폭력-고립-개입-퇴진

“그들은 경제전쟁으로 생활필수품 공급을 중단하고 인위적으로 인플레를 가중시키며, 사회갈등과 폭력을 야기하고 나라가 온통 화염에 뒤덮이는 장면을 연출하여 국제적 고립과 개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5년간 사회적 공급의 빠른 증가와 불평등의 감소에 대해 마두로 대통령은 “내가 노조위원장이었을 때 교육, 의료, 주택, 임금에 대한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베네수엘라는 일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부자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곳이며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행복을 노래하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베네수엘라 시위의 발단은 57%에 육박한 인플레였는데, 지금은 월평균 2.4%로 낮아졌다. 생활필수품의 공급부족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웃국가 콜롬비아로부터의 밀수품이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외환거래 완화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성장률도 지속적으로 높아지며 빈곤율은 낮아지고 있다. 다만, 시위참여자들이 문제제기하는 베네수엘라의 살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난 2개월간의 소요로 약2,200명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190명이 아직 구금되어 있다. 야당 지도자들은 “투쟁으로 거리를 밝히자”고 선동하고 있는데, 지난해 12월 지방선거에서 마두로 지지자들은 야당을 10% 이상 이겼기 때문이다. 

사망자들에 대한 책임문제는 뜨거운 논쟁지점이다. 사망자들 중 8명은 경찰이나 비밀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4명의 야권 활동가들-이중 1명은 친정부 지지자-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이로 인해 경찰간부들이 체포되었다. 살해 추정 7명은 친정부연합의 활동가이며 13명은 바리케이트 안에 있던 야권 지지자였다.

시위 사망원인의 95%가 극우의 실수

정부가 이들 사망자들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가 쟁점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사망원인의 95%가 극우그룹의 실수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3명의 오토바이 이용자들은 바리케이트를 묶어놓는 쇠줄에 걸려 사망했다고 지적하고, 사망 경위에 따른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국제 언론들이 독재정권이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가상현실’을 상정하고 베네수엘라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며 “세계의 어느 정부이든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으로 시행착오는 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마두로의 이런 응답이 대학가의 타오르는 불길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선출된 정부를 엎게 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 반정부 시위는 주로 학생들과 부자동네 출신들이 주도하는데 정부청사, 대학, 버스정류장의 방화로 이어졌다. 2월 수십만 명이 참가한 집회가 최절정이었는데, 지금은 시위대의 숫자도 줄어들고 야당 근거지인 콜롬비아 접경지, 타치라 주 등은 시위가 금지되고 있다. 

2002년 쿠데타에 참가한 적이 있는 강경파 야당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즈와 2명의 야당 시장들이 체포되어 폭력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시위의 후원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카도는 의회 내에서조차 우편물이 검열당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런 것들은 ‘불법행위’가 아니며 “야당은 완전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우리는 열린 민주주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합법정부의 전복을 선동하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 거리를 파괴하고 대학과 대중교통수단에서 방화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면, 법원이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법원이 이미 정치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간섭 

지난 3월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베네수엘라가 대국민 ‘테러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남미국가연합(UNASUR)과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지지하기로 입장을 모았으며 정치적 대화를 촉구했다.

시위 군중과 미국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뭐냐는 질문에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대한 미국의 간섭으로도 부족한가? 아이티, 니카라과, 과테말라, 칠레, 그라나다, 브라질을 간섭해오지 않았는가?”, “부시 미 대통령이 저지른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로도 부족한가? 왜 미국은 전 세계에 2천여 개의 군사기지를 갖고 있는가? 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뒷마당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어제와 오늘의 간섭에 대해 위키리크스 폭로 자료,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난 미 국무부 문서를 인용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대사가 차베스 정부 시기 ‘분열’ ‘고립’ ‘조종’ 계획이 담긴 전통문이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베네수엘라 야당세력에 자금을 지원해온 것이다. 그 일부가 미국 국제개발기구(USAID)를 통해 은밀하게 또는 공공연하게 지원되었는데, 지금도 500만 달러 이상이 예산에 들어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문제제기는 지난주 드러난 미국의 쿠바 야권 지원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개발지원’이란 명목이라 밝혔으나, 끊임없는 정치 불안을 부추기는 ‘플레시몹’을 퍼뜨리는 인터넷매체 지원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 지원 프로그램이 쿠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반 엘리트 편향은 정당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야당들이 참가를 거부해 정부 지지로 편향되었다는 지적이 있으나 국가평화협의회를 소집했다. 또 만일 야당이 폭력을 반대한다면 바티칸의 중재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와 차비스타운동(Chavista movement, 차베스를 따르는 운동)이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민주주의에서 편향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 세계 추세가 되고 있다. 편향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나는 모든 민주사회가 편향적이기를 바란다. 정치적으로 성숙해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란 기능적 역할을 할 뿐이다”, “정치란 엘리트나 중도우파, 중도좌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권력과 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진다”고 마두로 대통령은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긍정적 편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공공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성숙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 편향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한다. 우리는 이를 국가적 차원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한 정치변혁의 중심에 서왔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역발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차베스가 1992년 “21세기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했을 때, 황홀한 이상이었으나 오늘은 이상이 현실로 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영원한 것은 민중의 힘

베네수엘라가 2009년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연임 제한을 폐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를 통해 이러한 이상의 현실화는 계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두로 대통령은 “영국에서 총리는 선출되고 소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왕은 누가 선출했는가?”라며 유럽식 선출과 소환을 반대했다. “내가 대통령에 머물 시간은 민중들이 결정할 것이다. 만일 내가 아니라면 또 다른 혁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영원한 것은 민중의 힘. 그것뿐이다”라고 강조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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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해운 소속 세월호 침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4/17 11:09
  • 수정일
    2014/04/17 11: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는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과 선원 등 총 459명이 탑승했었습니다. 

탑승객 459명 중 4월 17일 새벽 4시 현재, 174명이 구조됐고, 4명이 사망했으며, 284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엄청난 사고 소식에 많은 언론과 정부가 앞다퉈 보도와 구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태까지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수십 번 배를 타고 다녔던 아이엠피터의 경험과 각종 자료를 통해 어떤 점이 의문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세월호의 구명보트는 왜 펼쳐지지 않았나?' 

아이엠피터는 배를 타면 구명조끼와 구명보트의 위치를 꼭 확인합니다. 그것은 처음 제주에 올 때 탔던 오하마나호 (세월호와 같은 청해진 해운 소속)에서 너무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이주] - 만삭의 아내와 풍랑속에서 제주행 배를 탄 사연.

풍랑주의보 속에 탔던 오하마나호에서 혹시 몰라 구명조끼와 구명보트의 위치를 확인했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 배를 탈 때마다 항상 확인합니다. 

어제 육지에 올라가는 공항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월호와 같은 커다란 배는 라이프 레프트(LIFERAFT)라고 불리는 구명정,구명보트가 선박 좌우에 규정 인원에 맞춰 비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화면을 지켜보면서 이상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월호 갑판에 비치된 구명보트가 펼쳐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침몰한 세월호에는 둥근 원통의 소형 구명보트가 있는데, 이것을 바다에 던지면 자동으로 보트가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월호에는 15명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 60여 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략 900여 명을 대피할 수 있는 구명보트가 세월호에 있었다는 것인데, 침몰한 세월호에서 펼쳐진 구명보트는 단 한 대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 침몰한 이태리 유람선 코스타콩코디아의 당시 사진을 보면 구명보트 여러 대가 난간에 달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사용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대피용 구명보트가 작동했다는 사실을 짐작합니다. 그러나 세월호는 구명보트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엠피터의 생각으로는 구명보트 작동레버의 잠금 장치나 밧줄 등을 세월호 선원들이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선박에 설치된 구명정의 오작동으로 지난 5년간 국내에서도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박들이 구명정 작동레버를 풀기 어렵게 해놓았고, 아이엠피터가 탔던 여러 대의 선박 중에는 아예 잠금장치를 해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만약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구명보트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과연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 승객은 156명만 구조됐는데, 선원은 무려 17명?'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의문이 드는 또 하나는 선원들이 생각외로 많이 구조됐다는 점입니다. 
 

 

▲탑승인원 459명을 기준으로 계산. 정부의 정확한 통계조차 믿을 수 없어 추후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세월호 탑승객은 429명이었고, 선원은 30명이었습니다. 그중에 구조된 승객은 156명이었고, 선원은 17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승객보다 선원이 많이 구조된 편입니다. 

물론, 선원도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선원이 비율적으로 승객보다 더 많이 구조됐다면, 선원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임무를 다했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구조승객 대부분이 세월호의 안내방송에 따라 배에서 그대로 머물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선원들이 승객의 대피를 완료하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태리 코스타콩코디아의 생존자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선원들이 승객 대피를 주도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구조된 승객 대부분이 그저 배에 머물라는 안내방송만 들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세월호 사진을 보면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승객보다 먼저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조자들의 증언으로는 진도 도착 초기 구조자들 사이에 선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사고가 접수됐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시간은 낮12시 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해경에 구체적인 사고 정황을 제대로 알려줬어야 합니다. 

구명보트가 작동하지 않았다거나, 승객이 현재 객실에 많이 갇힌 상태, 유속이 빠르다는 내용 등을 해경에 제공했다면 초기 사고 수습에 많이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앞서 구명보트의 미작동과 함께 세월호 선장은 '총인원 퇴선신호'를 하고 배를 빠져 나왔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조사해야 합니다. 

' 엉망인 정부, 한심한 언론'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대하는 다수의 국민이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안일한 대처입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알려주는 브리핑 내용이나 발표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엠피터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첫 번째 사진의 탑승인원과 중간중간 나오는 탑승인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와 언론마다 탑승인원과 승무원 수, 구조자 수가 제각각이라, 아이엠피터도 무엇이 맞는지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이렇게 탑승객 인원이 맞지 않는 이유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선박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생년월일과 전화번호, 성명을 적은 승선개찰권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가 인천을 떠난 시간이 4월 15일 오후 9시입니다. 배를 출발하면서 제출했던 승선개찰권을 사고가 나서도 확인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엄청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원은 제외하고라도 승객이 제출한 승선개찰권과 인적사항만 가지고도 정확한 탑승인원이 나왔을 것입니다. 
 

 

 


4월 17일 새벽 4시 현재까지의 여객선 세월호의 구조자 명단입니다. 이 명단은 해경 사이트에만 있고, 안행부,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 어디서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엠피터는 과거 [외교] - 필리핀 태풍 한국인 실종자, 이렇게 찾아보자 라는 글 등을 통해 한국도 IT강국이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재난시스템은 정부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고, 이는 국민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정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의 엄마와 아버지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원 구조'라는 엉뚱한 발표가 나왔고, 이런 사실이 마치 진실처럼 언론과 SNS에 퍼졌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해경, 안행부,지자체,소방서 등으로 나뉘어 따로 재난 시스템이 운영됐기 때문에 숫자와 명단 등이 차이가 났습니다. 

재난대비 사이트가 제대로 구축됐고, 확실한 구조자 명단이나 탑승명단이 나왔다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받는 이런 일들은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면서 참담했습니다. 재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언론이 재난보도 기준도 지키지 않고, 속보 경쟁에 너나없이 뛰어들어 막무가내로 오보를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일보의 석간 초판을 보면 얼마나 우리가 나태하게 여객선 세월호 침몰을 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MBC를 보면 구조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돈 얘기를 합니다. KBS를 보면 생존자나 구조소식보다 대통령의 동정을 더 중요하게 보도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그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하면서 친구들과 나누며 꿈꾸었던 세상을 우리 어른들이 짓밟았습니다. 
 
아이들아 참 미안하다.
아저씨가 블로거로 수없이 제주와 육지에 배를 타고 다니면서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한 글 한 편 제대로 써놓지 않아, 너희가 배에 물이 들어오는데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그대로 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팠단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너희가 꿈꾸었던 세상을 모조리 빼앗아 갔던 일을 어떻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미안하다. 

어쩌면 이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가족과 친구밖에는 없을지 모르겠다. 아저씨가 꼭 약속하마.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마.

참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애타게 엄마,아빠를 불렀던 너희들을 잊지 않으마.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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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일제의 만행을!

한미일 군사 동맹 저지, 평화 염원 사진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4/16 [14: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제국주의의 만행을 잊는 것은 미래를 버리는 것이다.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일본 군국주의 부활ㄴ을 막는 첫 걸음이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재무장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최대 조직인 전쟁평화실현국민연대(이하 전쟁반대 국민연대)가 일본의 만행과 재침략 의도를 고발하는 특별 사진전을 시작했다. 

전쟁반대 국민연대는 16일 정오 청계 광장에서 아베 정부 등장 이래 과거사 왜곡, 영토분쟁 움직임이 격화된데 이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무기수출 금지정책 폐기 등 군국주의 우경화 정책이 계속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평화 사진전을 개막했다.

사진전 개막식에 앞서 전국여성연대 손미희 상임대표는 “이번 사진전은 보수단체들의 허구와 진보진영의 평화의 싸움”이라며 “분단을 만들어 낸 일본과 미국을 향한 진실의 고함”이라고 사진전의 의미를 부여했다.

예수살기 방현섭 목사는 “미국은 전범 국가인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등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동북아 긴장을 고조 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합진보당 민병렬 최고위원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은 과거 군국주의 만행을 숨기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사진전이 일본의 군국주의 의도를 막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왜(倭, WHY) 침략의 역사는 되살아나는가." 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사진전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관동 대지진과 제암리 학살 사건, 종군 위안부 사진 등 일제의 잔학상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어 보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오늘부터 19일 까지 청계광장 소라 탑 옆에서 진행되며 21일부터 25일까지는 광화문 미대사관 앞으로 옮겨 열릴 계획이다.



 
▲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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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죽여라'…학생 시신 속 쪽지의 비밀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6> 4월혁명, 다섯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4.16 09:36:2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4월혁명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프레시안 : 4월혁명의 원인을 3.15 부정 선거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이 일각에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 선거를 몰랐다는 강변과 맞닿은 흐름으로 보인다. 이는 4월혁명의 의의를 축소하는 것에 더해, 중요한 여러 현상(예컨대 도시 하층민이 적극 참여한 것 등)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중석 : 3.15 부정 선거와 '피의 화요일' 4.19 시위, '승리의 화요일' 4.26 시위 같은 각종 시위에는 이승만 정권의 전반적인 성격이 집약돼 있다. 단순한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라고 볼 수 없는 면이 그 시기에 너무나도 강하게 드러난다.

 

2.28 시위 하나만 보더라도 학생들을 일요일에 강제 등교시키고 어떤 학생들은 토끼몰이에 보내버리는 것을 단순한 부정 선거 문제라고 볼 수가 없지 않나. 무서운 강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재 사상, 폭정이라고 볼 수 있는 식의 사고가 아니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눈뜨고 지시할 수 있느냐, 이 말이다. 그건 이승만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를 말해준다.

 

2.28 시위에서 3.15 시위 사이에 여러 고등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난다. 제일 많이 나오는 구호가 뭐냐 하면 '학원에 간섭하지 말라. 우리 학교를 감시하지 말라', 이런 요구다. 특히 사찰계 경찰을 동원해서 국민과 학생을 감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 시기에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4월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마산 시민들의 항쟁이다.

 

서중석 : 4월 11~13일 사이에 마산에서 두 번째 항쟁, 제2차 마산의거가 일어났다. (3월 15일에 일어난) 제1차 항쟁도, 제2차 항쟁도 굉장히 중요하다. 부정 선거가 일어났는데도 (많은) 국민이 침묵했다. 선거 종사자들도 침묵했다.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했다. 사실 교원노조가 빨리 만들어진 것도 (그간 정권의 간섭에 시달리고 부정 선거에 거듭 동원됐던)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승만 하야 발표 이틀 후인 4월 28일 바로 교원노조 발기인회가 소집된다. 어쨌건 부정 선거에 대해 (많은) 국민이 항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마산 시위가 3월 15일에 벌어졌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시위가) 있긴 있었다. 광주에선 약간 크게 있었고 서울, 춘천, 진주에서 조그마하게 있었는데, 그렇게 눈에 띌 만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더더군다나 제1차 (마산) 시위에서 8명이나 죽었다. 도대체가 폭력 강권 정권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사태가 났겠나.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러 나오면서 어떻게 실탄을 장전하고 나오느냐, 이 말이다. 참 무서운 일이지 않나. 시민을 향해 총탄을 막 쏴서 8명이나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게 나중에 논란이 된다. (발포가 주요 문제로 떠오르면서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물러났다. 이기붕은 "총은 쏘라('쓰라'로 들었다는 이도 있다)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편집자>)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1960년 김주열과 1987년 박종철…어머니는 강했다

 

프레시안 : 제2차 마산의거는 4.19와 직결된다.

 

서중석 : 그렇다. 그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제2차 마산의거는 (3.15 시위 때 경찰 발포로 사망한) 김주열의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오전 10시 조금 넘어서 떠오르고 그 시신이 도립(마산)병원에 안치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러면서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시신 모습이 전국적으로 신문에 나오는데,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모습인가. 김주열은 마산상고 예비 학생이었다. 4월 1일 마산상고에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시위에 나섰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마산에서 3일간 계속 시위가 일어난 것도 (1980년) 광주항쟁, (1979년) 부마항쟁 같은 걸 제외하면 아주 드문 일이다. 연달아 계속 일어나는 일이 별로 없는데, 마산에서는 3일간 일어났다. '김주열 시신이 저렇게 끔찍하게 나타났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양심이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 이런 분노가 전국을 맴돈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을 들끓게 해 4.19가 난 것이다.

 

사실 제2차 마산의거가 없었으면 4.19는 조금 늦게 일어났거나 어쩌면 상당히 늦게 일어났을 수도 있다.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던 이승만·이기붕 정권은 어차피 망하게 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2차 마산의거가 없었으면) 시간을 더 끌었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더 크게 겪었을 거다. 제2차 마산의거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4.19로 바로 이어지는 도화선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프레시안 : 제2차 의거 당시 마산 분위기는 어떠했나.

 

서중석 : 시신이 안치된 도립병원으로 학생들도 막 뛰어오고 그랬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도 많이 달려왔다. 놀라운 건 여성이 굉장히 많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이 '주열이를 살려내라', '내 아들도 이렇게 안 될 거라고 누가 보장하느냐'고 울부짖고 소리치고 하면서 다시 시위가 시작된 거다. 그런데 첫날 시위에서 이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이 정말 놀랄 만한 구호가 나왔다. "이승만 정권 물러나라", "이기붕을 죽여라", "학살 경관 처단하라", 이것이다.

 

4월 11일에 어머니들, 여자들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위는 지금까지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만큼 어머니들이 분노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1987년) 6월항쟁 때 박종철 군 시신을 보면서 어머니들이 그렇게 분노한 것과 똑같은 거다. '내 자식도 저렇게 당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면이 있었던 거다.

 

그 플래카드를 보면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쓰여 있다. 4월 18일 고려대생 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19일 시위에서도 '이승만 물러가라'고 직접 요구하는 건 일부에서만 나온다. 주된 구호가 아니었다. 이게 주요 구호로 등장하는 건 4월 25일 교수단 시위 후반부에 가서다. 그런데 4월 11일에 '국부',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어야 했던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정면으로 나온 거다. AP통신이 이걸 전 세계에 타전했다. '한국에서 지금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그다음 날부터 시위는 크게 벌어지지만 이런 구호는 (한동안) 안 나온다. '부정 선거 다시 하라' 등의 다른 구호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첫날 시위는 굉장히 강렬했다.

 

 

▲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 ⓒ연합뉴스

▲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 ⓒ연합뉴스

 

 

부정 선거에 대한 단순한 항의? 이승만 정권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프레시안 : 4월 11일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왔다는 점은 여러모로 눈여겨볼 만하다.

 

서중석 : 왜 이런 구호가 나왔느냐, 이걸 생각해야 한다. 얼마만큼 마산 시민들이 분노했는가, 이게 단적으로 드러나 있는 거다. 그렇게 된 데는 3.15 부정 선거도 역할을 했지만, 그 부정 선거에 대해 시위를 했더니 정권이 어떤 식으로 나왔느냐(도 크게 작용했다). 중앙에서는 이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이 난동, 폭동이라고 얘기했고, 현지에서는 경찰이 도처에서 청년이나 학생들을 잡아갔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검문검색을 하고 사람들을 연행해서 굉장히 심한 고문을 했다. 데모 주동자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다. 또 당시 몇 개 파출소가 불타지 않았나. 방화범으로 몰아세우려 한 것이었다. (북마산파출소 방화 사건은 경찰이 시민을 고문해 조작한 사건임이 드러났다. <편집자>)

 

(정말 무서운 건) 그것 정도가 아니라 '공산당 지하 조직이 좌익 폭동을 일으켰다' 하는 걸로 의거를 몰고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져) 도립병원에 안치된 세 젊은이의 시체 호주머니에다가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 죽여라' 이런 쪽지까지 집어넣었다. 나중에 도립병원 원장이 '그런 일 없었다'고 부정하긴 하지만, 세상에 이승만 정권이 어떤 정권이었느냐 하는 걸 이 과정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경찰은 10대 학생의 시신에 문제의 쪽지를 집어넣고, 시위를 빨갱이 폭동으로 몰아가려 했다. 이에 따라 당시 도립병원장에게 시신에 그런 쪽지가 있었다는 내용의 검안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병원장은 검안서를 그렇게 작성하는 것을 거부했다. <편집자>)

 

이러니까 마산 시민들이 그야말로 격앙될 대로 격앙됐다. 그 이전에 몇몇 시신을 못 찾고, 김주열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내 아들 찾아내라'고 마산 시내를 소리 지르고 다니고 그랬다. 바로 이런 점이 마산 시민들을 그렇게 격앙시켜 '물러나라', '죽여라', '처단해라' 같은 강한 구호가 첫날 나오게 만든 것이다. 제2차 마산 항쟁은 단순히 3.15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가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 전체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점이 아주 중요하다.

 

프레시안 : 친일 청산 문제가 왜 중요한지도 마산 항쟁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서중석 : 이런 일을 저지른 자들이 대개 친일파였다. 이 점도 중요하다. 당시 마산경찰서 사찰계장이 강상봉이었는데 이 사람이 현장 지휘를 한 셈이고, 사찰계 형사 주임이던 노장현이라는 사람이 아까 이야기한 쪽지를 집어넣게 한 걸로 나중에 드러났다. 김주열 시체를 바다에 유기한 사람은 경비 주임 박종표였는데, 일본군 헌병 출신이다. 일제 때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이니까 이승만 정권 때 또 비슷한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얘기가 되는 거다. (강상봉과 노장현은 1950년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에 관여한 인물로 유족들에게 지목됐다. 친일, 학살, 반민주 행위가 한국 현대사에서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다. <편집자>)

 

제2차 마산 항쟁이 일어나자 중앙 정부에서 어떻게 나왔느냐. 이것도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대처하려고 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빨갱이몰이에 나선 정권, 4.19 없었다면? 생각하기도 무섭다

 

프레시안 : 이승만 정권은 어떤 모습을 보였나.

 

서중석 : 4월 12일 국회 답변에서 내무부 장관 홍진기는 '마산은 과거의 역사를 볼 때 공산 계열이 많이 준동할 수 있는 곳으로 공산당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고 말했다. 신언한 법무부 차관은 한술 더 떴다. 홍진기가 법무부 장관을 하다가 (내무부 장관이) 됐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은 궐석이었다. 신 차관은 '시위의 양상이나 규모를 볼 때 공산당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런 짓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서 '당국이 일본 조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에서 마산 학생들을 격려하는 무전을 입수했고 어떤 사람은 당시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국회에서 서슴없이 했다. 두 사람은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서 '마산 사태는 적색 마수가 배후 조종한 혐의도 있어서 수사 중', 이런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13일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이걸 읽어보면 글자 한 자 한 자를 그렇게 공들여 썼을 수가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레드 콤플렉스를 아주 교묘하게 자극했다. 요즘 사람들처럼 직설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난동에는 뒤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도 있어서 지금 조사 중인데 난동은 결국 공산당에 대해서 좋은 기회를 주게 할 뿐이니 모든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극히 조심해야 될 것이며',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4월 15일 특별 담화문은 더 심하다. 여기엔 공산당이란 단어가 아홉 번이나 나온다. 훨씬 심하게 몰아붙인다. 마산의거를 '철모르고 덤빈 폭동'으로 비하하고 '해내외에서 들어오는 소식은', 참 이 양반, 전혀 이런 일이 아닌 건데 이렇게 표현했더라. '마산에서 일어난 폭동은 공산당이 들어와 뒤에서 조종한 혐의가 있다는 것', 도대체 이런 해내외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공산당의 선전에 이런 일을 한다면 가증스러운 일이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선동하여 난동을 하다가 필경 이러한 불상사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것을 우리가 그냥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참 무서운 말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담화문에서 막 하고는 '난동을 일으켜서 결국 공산당에 좋은 기회를 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딱 못을 박아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글의 앞부분을 보면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여수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수류탄을 제 부모들에게까지 던졌다'고 하는 (사실과 전혀 다른) 말도 나온다. 참 이 양반, 굉장히 교묘하게 마산의거를 여순사건과 연관해서 생각하게끔 한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주의와 정의를 요구한 국민들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이다.

 

서중석 : 이 대통령이 13일 담화에서 '지금 조사 중'이라고 한 것도 간단한 게 아니다. 그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대공 3부 합동수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건 한국전쟁 때 (이른바 부역자를 처벌하기 위해) 특무대, 검찰, 경찰로 구성된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생긴 이후 처음 생긴 것이다. (합동수사위원회 구성원은) 대검찰청 오제도 검사, 조인구 치안국장, 하갑청 육군 특무부대장이었다. (사상 검사로 유명한) 오제도 검사, 무서운 사람이다. 조인구 치안국장은 조봉암 진보당 사건 때 담당 검사였던 사람이다. 엄청난 빨갱이 사건을 조작하려고 이걸 만든 것 아니겠나. 마산 사건이 어떻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그런데 이걸 빨갱이 사건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19가 났기에 망정이지, 4.19가 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나. 6월 12일 <경향신문>에도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혁명이 며칠만 뒤늦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는 일이다." 마산 사람들, 정말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이런 걸 보면 이승만 정권이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서울대 문리대에서 나온 4.19 선언문에 잘 집약돼 있다. 이렇게 쓰여 있지 않나. "적색 전제"와 함께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을 비판했다. 이게 중요하다.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 전제"를 하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이건 반공 전제와 같은 것이다. 파시즘적인 통치를 이 당시에 그렇게 불렀다. 그러면서 관료, 경찰을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라고 못을 박았다. 김주열의 시신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이라고 불렀다. 그냥 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며 우리도 싸우겠다고 얘기한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4월혁명은 제2의 해방

 

프레시안 :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도 4월혁명의 밑바탕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중석 : 4월혁명 50주년을 맞아 <4월혁명 사료 총책>이 나왔는데, 편집위원장으로서 그것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거기에 중요한 사료가 있다. 연세대 4월혁명 연구반에서 1960년에 만든 목격자 수습 조사서다. 4.19를 목격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를 물어본 건데, 4.19와 제일 가까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40문항 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번 4.19 사태를 가져온 동기는 뭣이라고 생각하나", 이것이다. 거기 보면 "독재 정치(독단적인 일당의), 자유당 정부의 실정, 일당 독재, 정치적 부패, 경제적 불평등", 이런 것들도 들어가 있다, 부정 선거는 이보다 꼭 많은 게 아니더라. 부정 선거, 마산 사건에 자극받아 4.19를 일으켰다고 보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더 많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3.15 부정 선거와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 전체의 상을 보여주는 것이자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단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바로 이런 상태에서 두 차례에 걸친 마산의거, 그리고 4.19, 4.26이 일어난 것이다.

 

진영숙이라는 한성여중 2학년 학생이 있었다. 몇 살이었을지 짐작되지 않나? 이 학생이 4월 19일 가난한 홀어머니한테 써놓고 나간 쪽지가 있다. 거기에 이런 마음이 실려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다. "민족의 해방", 무서운 말이다. 그래서 내가 4월혁명을 제2의 해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무수한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2.28부터 나선 거다. 4월 19일, 이 학생은 유탄에 맞아 죽었다.

 

며칠 후인 4월 23일 모 신문에다가 수송국민학교 4학년 강명희 학생이 시를 하나 놓고 갔다. 수송국민학교는 4.19 한복판에 있던 학교여서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 오빠와 언니들이 / 왜 피를 흘렸는지". 이런 심정, 이런 정의감으로 이렇게 어린 학생들까지 이런 글을 쓰고 그랬다.

 

 

▲ 1960년 4월 19일,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경찰. ⓒ연합뉴스

▲ 1960년 4월 19일,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경찰. ⓒ연합뉴스

 

 

부정 선거범보다 부정 축재자가 더 욕먹었다

 

프레시안 : 4월혁명에서 도시 하층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희생자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들이다. 그럼에도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서중석 : 4월 19일에 불우한 아동, 청년 학생들이 많이 가담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4월 25일과 26일도 비슷했는데, 4월혁명 때 이 사람들이 중등 학생들과 함께 제일 많이 죽었다. 대학생보다 훨씬 많이 죽었다. 이건 광주에서도 마찬가지다.

 

1958년부터 우리나라가 또 불황에 들어갔다. 미국 원조가 그때부터 많이 줄면서다. (그로 인해) 상황이 나쁘기도 했지만, 1950년대가 전반적으로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불우한 소년 소녀가 참 많았다. 그 가운데 구두닦이, 껌팔이, 신문팔이 소년들이 무척 많았다. 당구장에 가면 맨 실업자투성이였다. 한 집 건너 다방, 한 집 건너 당구장이 있었고 다방 앞에는 반드시 구두닦이들이 있었다. 내가 (1960년대 후반) 서울에 와서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하여튼 4월 19일 낮 12시 전후, 서울대 문리대생들이 태평로 국회 의사당 앞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대개 거기만 가곤 했다. 그런데 이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자 동국대생, 서울대 사범대생, 일부 고등학생들이 '우리는 저쪽으로 가자' 하면서 광화문 쪽(지금의 청와대 즉 경무대 쪽. <편집자>)으로 틀기 시작했다. 이게 4.19에서 결정적인 전환이다. 여기서 전환이 일어난 거다. (1948년 제헌 국회가 첫 회의를 연 곳은 중앙청이었다. 한국전쟁 후 국회는 태평로에 있던 옛 부민관 건물을 의사당으로 사용했다. 1975년 국회 의사당은 여의도로 옮겨간다. 태평로 국회 의사당 건물은 오늘날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은 해방 후 미군정청, 중앙청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철거됐다. <편집자>)

 

이들이 광화문 쪽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하고 중앙청 쪽 담을 돌 때 이 사람들(불우한 아동, 청년 학생들)이 막 쏟아져 나온 거다. 돌팔매질을 한 건 이 사람들이 먼저라고 난 본다. 4월 19일에 이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제일 많이 했을 거다. 그러면서 많이 죽었다. 이 사람들이 돌팔매질 같은 걸 막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면서 데모대가 효자동에 있는 제2저지선을 뚫고 제3저지선으로 갈 때, 오후 1시 40분 무렵 경찰이 콩 볶듯이 총을 쏘기 시작한다. 이게 '피의 화요일'로 변하는 순간이다.

 

프레시안 : 도시 하층민이 적극 나선 것은 높은 실업률, 부정 축재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이어져 있다.

 

서중석 : 불우한 소년 소녀들뿐만 아니라 실업자 청년들도 (시위대에) 참 많았다. 이 사람들이 4.19에 적극 참여한 건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이 제일 큰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특권층, 부정 축재자들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크다는 게 나중에 드러난다.

 

민석홍 서울대 교수가 4월혁명이 혁명인 이유 중 두 번째로 든 게 있다. '이건 특권적인 재벌이나 기업가층 몰락의 바탕을 마련했다.' 무서운 말이다. 지금 들어보면 불온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우리한테 서양사를 가르쳤던 분이다. 민석홍 선생이 1960년 6월 <사상계>에 그렇게 썼다.

 

장면 정부 국무원 사무처에서 (1960년 말) 제1회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3.15 부정 선거범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건 33.1퍼센트 나왔는데 '부정 축재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건 37.3퍼센트가 나왔다. 4.2퍼센트포인트가 더 나온 것이다. 총을 쏘고 부정 선거를 저지른 사람들보다도 특권층인 부정 축재자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컸던 거다. 말하자면 돈을 많이 번 자들이 정상적으로 돈을 번 게 아니라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국민 의식, 서민층의 불만이 쌓여 있었고 이게 4.19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부정 축재자 처벌을 들고나와서 허정 과도 정권이나 장면 정부를 무척 애먹인다고 볼 수 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서른일곱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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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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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여객선 구조 학생... "못 빠져나온 학생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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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0여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창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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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16일 낮 12시 30분]
침몰 여객선 구조학생 "물이 차서 못 나온 학생 있는 듯"

16일 오전 수학여행 고교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침몰 직전에 배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침몰 여객선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의 박수빈양은 'KBS 뉴스특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배에) 남아있는 학생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양은 "헬기로 구조됐다. 진도에 있는데 어딘지 모른다"며 "(배에) 남아있는 학생도 많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친구들은 껴서 못나왔다(는 말이 있다)"며 "물이 차서 못 나온 학생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양은 "(선내)방송에서 침몰 얘기가 나와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전달하라고 했다"며 "(당시) 기상시간이 지나 자는 친구는 없었다"고 전했다. 박양은 배가 기울고 침수가 시작되자 "갑판으로 올라가거나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했다"면서 "당시 배가 기울어져 갑판에 못 올라온 아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진도 여객선 내부 수색에 군 특공대원을 투입했다"며 "내부 수색 결과는 차후 브리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침몰 여객선 소속 회사인 청해진해운의 김재범 기획관리부장은 "안산고 학생들은 전원 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경미한 부상 정도는 있을 수 있고,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침몰 원인을 "암초에 의한 좌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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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기울어진 선체에서 빠져나오는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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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쏟아진 컨테이너 박스 등 물건들이 물위에 떠다니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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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기울어진 선체에서 줄을 잡고 탈출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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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6일 낮 12시 3분]
"침몰 여객선 사망 1명"... 중대본 "161명 구조"

침몰 여객선에서 사망자 1명이 발견됐다. 해경은 16일 오전 11시 46분경 "침몰 된 여객선 인근 해상에서 여성 1명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사망자는 해운사 직원 박지영(27)씨로 알려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아래 중대본)는 이날 오전 11시 35분경 브리핑을 통해 "현재 구조된 사람은 161명"이라고 밝혔다. 중대본은 이어 "해경 외에도 민간 어선 등에서도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구조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학생·교사 338명 전원이 구조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오보로 확인됐다.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의 한 관계자가 잘못된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단원고등학교에는 학부모 250여 명이 몰려와 항의 중이다. 정확하게 구조 상황이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왜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얘기를 했느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30분 전까지만해도 "학생 전원 구조"라는 TV 자막을 보고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던 학부모들은 다시 침통한 표정으로 변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침몰선에서 구조가 된 이아무개 학생과 통화를 한 한 어머니는 "내 아이는 일단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배를 통해 구조가 됐다"며 "함께 구조된 학생은 11명인데, 한 학생은 다리가 부러졌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구조된 학생 47명이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고, 이들은 병원에 이송 중이다.

중대본은 "해군특수부대 21명을 사고해역에 투입해 추가 구조자 수색에 나섰다"고 밝혔다. 세월호는 오전 11시 40분 현재 머리 부분을 남기고 완전히 침몰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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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에서 촬영한 세월호의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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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세월호 상공에 헬기들이 모여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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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보강 : 16일 오전 11시 24분]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고교생 등 450여명을 태운 여객선이 진도 해상서 좌초돼 해경이 긴급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16일 오전 8시 55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6825t급)가 "선체가 기울어져 있다"며 조난신호를 보냈고, 해경·해군이 긴급 구조에 나섰다.

세월호는 전날(15일) 오후 8시 30분께 인천항에서 출발,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과 교사 14명을 포함해 약 450명이 승선하고 있다.

선체는 90% 이상 기울어 침몰 직전이다. 이날 오전 11시 5분경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등 338명을 구조 중이다. 경찰 측에 따르면 승선 중인 한 학생이 부모에게 "침몰 중이다"라는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에서는 "여객선의 침몰이 임박했으니., 탑승객은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선내방송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행정부는 여객선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아래 중대본)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대본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는 해군·소방·경찰·해경 헬기 18대와 선박 34척이 급파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는 길이 146m, 폭 22m 규모의 여객선으로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 적재할 수 있는 대형 카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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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알갱이의 위협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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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4/16 12:01
  • 수정일
    2014/04/16 12:0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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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2014. 04. 16
조회수 331 추천수 0
 

수십년 섞여든 플라스틱 미세 입자 수산물 내장서 잇따라 검출

한국 해역 오염 세계 최고 수준, 먹이그물 거쳐 인체 도달 가능성도

 

pl2.jpg»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인 줄 알고 먹은 요각류 동물성 플랑크톤들의 모습. 형광색으로 처리한 것이 미세 플라스틱이다. 사진=<인바이런먼틀 사이언스·테크놀로지>

 

바닷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기물과 무기물의 ‘칵테일’이다. 해저 지각에서 녹아 나온 물질, 육지에서 바람에 날리거나 강물을 타고 흘러든 온갖 물질이 모두 섞여 있어서다.

 

과학을 무기로 지구의 모습을 바꿔온 인간은 지표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의 구성 성분까지 바꿔놓았다. 인류는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마이크로 플라스틱(미세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대량으로 섞어 넣었다. 그 결과 지금의 바닷물은 과거와 전혀 다른 상태가 됐다.
 

‘미세 플라스틱’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크기에서부터 최대 길이 1~5㎜까지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인데, 이제 지구 모든 곳의 바닷물에서 발견된다.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영국 플리머스대의 리처드 톰슨 교수와 영국 엑스터대 스테파니 롸이트 교수 등이 지난해 2월 국제 과학저널 <환경오염>에 함께 실은 리뷰 논문을 보면, 한국 주변까지 순환하는 해류인 북태평양 아열대 순환류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1ℓ에 최대 0.25㎎꼴로 들어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640px-Nurdles_01_gentlemanrook.jpg»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너들. 생산공장 주변에는 이런 알갱이가 퍼져 있기도 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희귀원소인 알루미늄·구리·은·금·인·몰리브덴·주석·납·수은·안티몬 등을 모두 합한 것보다 100배 이상 높은 함량이다. 국내의 대표적 미세 플라스틱 연구자인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장은 “미세 플라스틱은 세계 어느 바다를 조사해도 나온다. 많은 곳은 동물 플랑크톤의 양과 비슷한 수준인 곳도 있다”고 말한다.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원으로 최근 주목받는 것은 각질 제거나 세정, 연마 등의 기능을 위해 화장품이나 스크럽제, 치약 같은 생활용품에 넣는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들이다. 이 알갱이들은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바다로 그대로 흘러든다.

 

생활용품 속 미세 플라스틱 추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환경단체 ‘파이브 자이어스(5Gyres)’가 조사한 것을 보면, 이런 제품 가운데는 지름 500㎛ 이하의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많게는 수십만개까지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 떠다니는 다양한 플라스틱계 쓰레기가 풍화 작용과 자외선에 의한 광화학 반응으로 부서져 만들어지기도 한다. 따져 보면 이런 2차 미세 플라스틱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합성섬유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릴 때 떨어져 나오는 미세한 섬유 부스러기도 주요 발생원으로 지목된다.

 

pl4.jpg» 하와이 제도의 산 산호초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바닷새 알바트로스 한 마리의 위장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조각. 뉴질랜드 더니든 왕립 알바트로스 센터에 전시된 것이다. 사진=케이트 휴슨(Kate Hewson) 
 

미세 플라스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해양 쓰레기와 관련한 사람들의 관심은 버려진 그물과 낚싯줄에 걸리거나,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이로 잘못 알고 삼켰다가 소화기관이 막혀 죽어가는 해양 생물들의 불행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200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톰슨 플리머스대 교수는 ‘바다에서 사라지다:플라스틱은 모두 어디 있나’란 제목의 논문에서 플라스틱이 바닷속에서 미세 플라스틱 형태로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고 보고했다. 그 뒤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규명하려는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다. 
 

해양 생물들이 먹이로 잘못 알고 먹거나, 물과 함께 체내로 빨려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은 생물체에 포만감을 줘서 영양 섭취를 저해할 수 있다. 체내 장기의 좁은 부분에 걸려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난연제·가소제·열안정제·자외선차단제 등의 플라스틱 첨가제에 함유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과 중금속 성분은 체내에 축적돼 생물체의 성장을 저해하거나 생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생물학 분야 유명 저널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동시에 실린 영국 플리머스대와 엑스터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가 높은 곳에 사는 갯지렁이들은 먹이를 덜 먹게 될 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과 함께 체내로 들어온 유해 화학물질 탓에 건강이 나빠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 플라스틱이 인간에게도 위협이 될지를 두고는 과학자들도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 단장은 “결국 미세 플라스틱의 크기 문제”라고 짚었다.

 

pl3.jpg» 한 치약 제품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 까맣게 보이는 것이 연마제로 들어간 지름 0.03㎜ 가량의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다. 사진=댄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물체의 소화기관에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면, 생물체의 위나 내장 속에만 머물다 배설될 것이다. 하지만 세포막을 통과할 정도로 충분히 작으면 세포에 흡수돼 축적될 수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생물체 체내에 축적된다면,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까지 전달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심 단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플라스틱이 마이크로(100만분의1m) 크기보다 더 작게 쪼개질 수 있다는 걸 연구자들 대부분이 예상하지만 아직 이를 증명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 실험실에서 양식장 부자로 사용되는 스티로폼을 조금 세게 풍화를 시켰더니 나노(10억분의1m) 크기까지 쪼개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가운데) 나노 입자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밝혀지면 (미세 플라스틱 문제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

 

나노 입자는 생체에서 주요 장기는 물론 뇌 속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외에서는 물고기·홍합·굴·바닷가재 등 다양한 수산물의 내장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열린 관련 전문가 국제 워크숍에선 북해산 새우의 조직에서 합성섬유를 분리했다는 벨기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통째 먹는 작은 물고기나 조개류를 즐기는 이들은 수산물의 체내에서 미처 배출되지 못한 플라스틱 조각까지 함께 섭취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한국의 남해 연안 바닷물 속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이 조사한 것을 보면, 거제도 해역 바닷물 1㎥에는 평균 21만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들어있다.

 

pl1.jpg» H5s2012년 9월 중순 태풍 산바가 지나갈 때 양식장 스티로폼 부자에서 부서져 나온 미세 플라스틱이 경남 통영시 인평동 민양마을 북신만해상공원 앞 바다를 눈처럼 하얗게 뒤덮고 있다. 이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수거 되지 않아 파도에 쓸려 먼 바다로 모두 흩어졌다.사진=이종호, ‘동아시아 바다 공동체 오션’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 싱가포르 해역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평균(2000개) 보다 100배 넘게 많은 것이다. 남해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양식장 등에서 대량 사용되는 스티로폼 부자다.

 

스티로폼은 다른 플라스틱보다 잘 깨지고 더 잘게 부서진다. 62ℓ짜리 스티로폼 부자가 2.5㎜ 크기까지 모두 깨지면 760만 조각이 되고,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더 쪼개지면 조각 수는 수천조 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의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오염 실태가 심각하지만, 우리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나 조개 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발견한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어느 연구기관도 그런 목적의 조사를 시도해보지 않은 탓이다.
 

심 단장은 “유럽에서는 미세 플라스틱이 수산물의 안전성 등에 끼칠 영향을 두고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수산물에 대한 민감도가 워낙 높아 조사를 미뤄놓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세 플라스틱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도 안 돼 아직 심각성과 관련해 말하기 어렵지만, 우려할 순간이 되면 이미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예방적 관점에서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 미세 플라스틱 대응책은?

생활용품 다른 재료 사용

스티로폼 부이 유입 차단

 

microplastics.jpg» 풍화돼 잘게 쪼개진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미국해양대기국(NOAA)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에 촛점을 맞춘 국제사회의 구체적인 행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다.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장은 “행동을 취하기에는 과학적 연구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학계는 미세 플라스틱의 기준에 대해서도 최대 길이 1㎜로 할 것인지, 5㎜로 할 것인지 사이에서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유엔환경계획(UNEP)·국제해사기구(IMO) 등 유엔 산하 기구에 해양환경 보호와 관련한 과학적 측면을 자문하는 전문가 그룹(GESAMP)은 2010년에야 미세 플라스틱 해양 오염에 주목하고 본격적인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 심 단장도 참여하고 있는 이 그룹의 최종 보고서는 오는 11월에 나올 예정이다. 
 

미세 플라스틱의 실태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등은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많지만,  미국의 ‘파이브 자이어스’, 영국의 ‘플라스틱 오션’과 같은 비정부기구(NGO)들은 예방 차원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추방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들은 비닐 봉지와 같은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소비 줄이기와 미세 플라스틱이 바닷물 속에 추가로 흘러드는 걸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바다에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를 의미 있는 수준까지 제거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치약, 세정용 스크럽과 같은 생활용품에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를 넣는 제조업체들에게 호두 껍질이나 코코넛 껍질과 같은 유기물질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소비자를 상대로는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생활용품을 쓰지 않도록 하는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캠페인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3년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는 2015년까지 자사의 글로벌 제품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추방하기로 했다. 이어 로레알, 콜게이트, 프록터앤갬블, 존슨앤존슨 등도 시한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유니레버와 비슷한 약속을 했다.
 

국내에선 아직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환경보전 단체인 ‘동아시아 바다 공동체 오션(대표 홍선욱)’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 단체는 스티로폼 부자가 부서져 생기는 2차 미세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 부자 소재를 다른 재료로 바꾸거나 사용을 줄이는 양식법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해양수산부의 제2차 해양쓰레기관리기본계획에 반영됐다. 올해부터는 남해안 양식 어민들과 함께 스티로폼 부자 폐기물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 적용하는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이 단체 부설 한국해양쓰레기연구소 이종명 소장은 “국내는 아직 외국과 같은 포괄적인 캠페인을 진행할 근거가 되는 연구 자료가 부족해 우선 해양 쓰레기 중에 미세화 문제가 큰 스티로폼 부자 문제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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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방위, “무인기 소동은 제2의 천안함 모략극”

 

남측에 공동조사 제의, “청와대 김장수 안보실장 나와라” (전문)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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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5  0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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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14일 무인기 추락 사건이 북측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중간조사발표를 반박하고 이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남측에 제의했다.

<조선중앙통신> 14일발에 따르면, 북한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이날 ‘무인기 사건의 북소행설은 철두철미 천안호 사건의 복사판’이라는 제목의 진상공개장을 발표하고 “우리는 발생한지 4년이 된 ‘천안’호 사건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마당에서 남조선당국이 제2의 모략극을 날조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위는 ‘터무니없는 북소행설’의 하나로 우리 정부가 무인기의 기관축전지 앞면에 쓰인 ‘기용날자 2013.6.25’를 제시한 것과 관련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제품에 ‘기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조선말대사전에는 애당초 ‘기용’이라는 단어의 해석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국방위는 “이것은 마치 ‘천안’호 사건의 ‘북소행’설을 입증하는 절대적 증거의 하나로 ‘1번’ 글씨를 내세웠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그때 우리는 생산제품에 ‘1호’, ‘2호’라는 표현은 써도 체육선수들처럼 ‘1번’, ‘2번’이라고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국방위는 “‘천안’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이번 무인기 사건은 남조선당국이 추구하고 있는 불순한 범죄적 기도를 여지없이 폭로해주고 있다”며 △“우리를 무인기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붙여 악화되고 있는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첨예한 전쟁국면 조성의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것” △“또 하나의 ‘천안’호 사건을 조작하는 것으로 제2의 ‘5.24대북조치’를 취하여 북남관계를 영원한 대결관계로 만들어놓으려는 것” △“그 무슨 ‘안보태세강화’를 구실로 미국상전을 저들의 무력증강에 깊숙이 끌어들여 ‘전력공백’의 허점을 메우고 우리에 대한 군사적 압살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 것” 등을 열거했다.

나아가, 국방위는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농협’ 금융컴퓨터망 마비사건, ‘3.20해킹 공격사건’, ‘GPS 전파교란사건’에 이어 무인기 사건 등을 우리와 연계시키는 것은 곧 북남대결을 추구하는 것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공공연한 파괴로 된다”며 그간 우리 정부가 북소행설로 규정했던 사건들을 부정했다.

특히, 국방위는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남조선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 사건의 ‘북소행’설을 걷어 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2, 제3의 ‘천안’호 사건을 계속 날조해내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것을 해명할 용의가 있다”면서 “‘천안’호 사건을 포함한 모든 ‘북소행’ 관련 사건들을 공동조사하자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위는 “민족의 거대한 관심 속에 진행될 진상조사에는 남조선의 ‘국가안보’를 총괄한다는 청와대 김장수 안보실장이 남측을 대표하여 나오면 될 것”이라고 정식 제의했다.

한편, 이날 오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진상공개장에서 “(남한) 국방부는 4월 11일 무인기 사건과 관련한 중간조사결과라는 데서 결정적 근거는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무작정 ‘북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 기어코 우리와 연관시켜 제2의 ‘천안’호 사건을 날조해낼 흉심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은 철두철미《천안》호사건의 복사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

지금 남조선당국이 동족대결의 범위를 정치,군사분야만이 아닌 사회의 모든 령역에까지 확대하기 위한 반공화국날조극,모략극들을 계속 꾸며내고있다.
그것이 온 남녘땅을 대혼란속에 몰아넣고있는 그 무슨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이다.
《중앙합동조사단》이라는것을 조직하여 발견하였다는 무인기들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한다 어쩐다 하며 복닥소동을 피워대던 남조선당국은 드디여 4월 11일 《북소행》으로 단정한 《중간조사결과》를 공식발표하였다.
이미전부터 무인기사건의 배후에 《북이 있다.》고 정해놓은 상태에서 그를 립증하는데로 조사방향을 집중하고있었다는것을 놓고볼 때 《중간조사결과》발표는 별로 놀라운것이 아니다.
우리는 발생한지 4년이 된 《천안》호사건이 흐지부지되고있는 마당에서 남조선당국이 제2의 모략극을 날조해낼수도 있다는것을 예감하였던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남조선당국이 떠들어대고있는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이 철두철미 《천안》호사건의 복사판이라고 락인하면서 지금까지 밝혀진 사건진상을 그대로 세상에 공개한다.

1. 무인기사건의 실상

지난 3월 25일 경기도 파주시 봉일천주변 야산에서 한 민간인이 추락된 무인기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한주일후인 3월 31일 백령도 사곶근처에서도 무인기가 발견되였다고 한다.
초기 남조선군당국은 《대공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 무인기가 《골동품》으로써 《민간에서 만든 수준》이기때문에 《안보위협》은 크게 없다고 하였다.
이 무인기들을 남조선에 있는 애호가들이 띄웠을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 정형을 조사해보려 한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무인기 1대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청옥산중턱에서 더 발견되였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4일경 약초채취를 하던 한 주민이 야산에 추락한 무인기를 보았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냈다는것이다.
남조선국방부는 강원도에서 발견된 소형무인기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북소행》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를 립증하기 위해 《중앙합동조사단》에서 정밀분석할것이며 조속한 시간내에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할것이라고 하였다.
청와대 대변인도 공식석상에서 백령도와 파주에 국적불명의 무인기가 추락한데 대해 《북소행》으로 단정하고 검토하고있으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수도방위사령부》 등이 대비책을 발표하게 된다고 선언하였다.
말하자면 《북소행》에 초점을 맞추고 《짜맞추기식수사》를 진행한다는것을 꺼리낌없이 공개한것이다.
남조선군당국은 4월 2일 무인기들이 북에서 날려보낸것이라고 결론한 1차《조사결과》라는것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무인기의 발견위치와 시점,카메라에 촬영된 내용,내부장치와 외부도색 등이 서로 류사하기때문이며 백령도에서 추락한 무인기가 북쪽에서 날아왔고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에 《북쪽글씨》가 씌워져있다는 점에서 모두 《북의 제품》으로 판단할수 있다는것이다. 여기에 2012년 4월 우리의 열병식때 등장하였던 무인기와 비록 차이는 있지만 도색방식과 기관종류,착륙용락하산탑재방식 등이 비슷한것도 증거라고 덧붙이였다.
남조선국방부는 《조사결과》에서 이번 무인기의 추락원인에 대한 분석자료도 내놓았다.
그에 의하면 자체결함으로 추락하였거나 북이 의도적으로 추락시켜 저들의 대응태세를 타진해보는것과 함께 남조선사회에 긴장과 혼란을 조성해보려 하였을수 있다는 어정쩡한 소리뿐이였다.
다만 무인기추락이 박근혜를 향한 《무언의 협박》일수 있다는것은 확정적인것처럼 강조하였다.
초기 공개했던 자료들도 대폭 수정변경하였다.
무인기기체에 없었다던 송수신장치도 꼬리부분에 달려있었다는것으로 바뀌였으며 청와대에 근접하지 않았다던 무인기가 숙소까지 촬영한 사진들도 내놓았다.
무인기사건을 《북소행》으로 공개한 즉시 남조선당국은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놓고 3시간이 넘도록 무인기조사결과에 따른 대응방안을 론의하였다.
이어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긴급소집되였다.
특히 박근혜는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해놓고 우리의 로케트발사와 추가핵시험가능성 등에 대하여 비난해대다 못해 《북의것》으로 추정되는 무인비행체들이 발견되면서 《불안》이 커지고있다는 식으로 무인기의 《북소행》설을 기정사실화해버렸다.
남조선민심은 이러한 당국의 움직임에는 아랑곳없이 《정체불명의 무인기 군방공망을 무인지경으로 헤집고다녀》,《무인기 하나에 온통 뒤집힌 이남땅》,《호언하던 청와대방공망에 치명적인 구멍을 숭숭 뚫어놓은 무인기가 북의것이라고?!…》,《아닐세라 이번에도 북에 책임 떠넘기는 당국》 등 신랄한 야유조소를 쏟아내고있으며 군사불한당 김관진이가 무인기의 《북소행》을 떠들며 자폭기능까지 가능하다고 한데 대해서는 《파괴력이 더 굉장하고 정확한 미싸일을 보유하고있는 북이 굳이 무인기로 공격할 리유가 없다.》고 일축해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심에는 관계없이 남조선국방부는 4월 11일 또다시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을 고집하는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것이 거센 반발과 의혹만 불러일으키게 되자 현재 발견된 무인기의 GPS에 입력된 복귀좌표가 《훼손》될것이 우려돼 해독을 못하고있다고 하면서도 《북소행》인것만은 분명하다는 식으로 계속 여론을 확대시키고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벌어진 무인기사건의 객관적인 실상이다.

2. 터무니없는 《북소행》설

남조선당국의 《중간조사결과》를 비롯하여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은 발표되자마자 앞뒤가 맞지 않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상식적인것으로 하여 내외의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있다.
《북소행》으로 《확실시》된다고 지적한 사실자료들만 보아도 정체불명의 무인기사건은 《천안》호사건때를 신통히도 련상케 하고있다.

말못하는 《증인》으로 나선 사진들

남조선당국은 무인기들에서 나온 촬영사진들이 《북소행》을 립증하는 가장 위력한 증거라고 하였다.
파주에서 수거한 무인기의 경우 북쪽에서 서울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청와대를 포함한 서울과 경기도북부의 주요시설들을 촬영한 사진 193장이 나왔다고 하였다.
백령도에서 수거한 무인기도 소청도에서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로 날아가는 도중 남측의 군사시설물들을 100여장이나 촬영하였다고 하면서 이것만 보아도 북에서 무인기를 보냈다는것을 강하게 뒤받침해준다고 하였다.
남측의 론리대로 한다면 북에서 남으로,남에서 북으로 오가는 비행체는 다 《북의것》으로 되며 그것이 어떤 물체이든 남측지역을 촬영한 사진들이 나오면 모두 《북의것》으로 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에서 남과 북으로 오가는 비행체는 다 남조선의것이며 북측지역을 촬영한 사진이 나오면 그 비행체 역시 남조선의것이라는 귀결이 주어지지 않는가.
사건해명치고는 단순함을 벗어나 유치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다.
하긴 얼마나 궁색했으면 무인기의 비행방향과 말못하는 사진을 《증인》으로까지 내세웠겠는가 하는것이다.
아마도 사진들이 《입》을 열게 된다면 《북소행》을 떠드는 모략가들의 뺨을 정신이 번쩍 들게 후려갈겼을것이다.

무식의 결정체 조선글자표기

《중앙합동조사단》은 무인기가 《북의것》이라는 가장 위력한 증거의 하나로 기관축전지에 표기되여있는 우리 글자를 들고나왔다.
현재 무인기의 기관축전지 앞면에는 《기용날자 2013.6.25》, 《사용중지날자 2014.6.25》라고 씌워진 상표가 붙어있다고 한다.
이것이 북에서 일반적으로 쓰고있는 제품표기법이며 저들이 쓰고있는 《날짜》를 《날자》라고 쓰는것이 《북조선식표기》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초보적인 상식조차 결여된 우격다짐에 불과하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제품에 《기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우리 나라 조선말대사전에는 애당초 《기용》이라는 단어의 해석조차 없다.
사람들은 《기용》이라는 표현은 남조선에서 많이 쓰는것으로 알고있다.더구나 무인기에 표기된 글자서체가 남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서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많다.
이것은 마치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립증하는 절대적증거의 하나로 《1번》글씨를 내세웠던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때 우리는 생산제품에 《1호》,《2호》라는 표현은 써도 체육선수들처럼 《1번》,《2번》이라고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리명박일당은 누구에게도 통할수 없는 《1번》글씨를 《북소행》설을 립증하는 결정적증거로 내놓고 한사코 우겨댔던것이다.
이번 《조사결과》에서는 축전지뒤면에 중국어와 일본어표기가 있다는것과 무인기의 비행자세를 유지해주는 장치가 일본 후따바의 제품이라는 자료도 발표되였다.
만약 조선어표기가 있기때문에 무인기가 《북의것》이 된다는 론리라면 중국어와 일본어표기,일본산 장치가 있는것은 무엇이라고 주장할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우리에 대한 체질적인 대결의식과 병적거부감을 가지고있는 통일부장관 류길재까지도 그런 엉터리《조사결과》라는것을 내놓은데 대해 얼마나 민망스러웠던지 그런 서체를 가지고 《북소행》이냐 아니냐를 따지는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참다 못해 핀잔을 하였겠는가.
남조선당국이 글자표기를 근거로 무인기를 《북의것》이라고 우겨대면 댈수록 자기의 무지와 몰상식만을 드러낼뿐이다.

귀신도 곡할 지문확인놀음

이번 무인기의 《북소행》설을 립증하기 위한 하나의 증거로 지문이 거론되였다.
무인기에서 식별된 지문을 정밀감지한 결과 남조선에는 없는 《미등록지문》 6개를 확인했다는것이다. 따라서 그 지문들이 북조선사람들의것이 분명하며 결국 무인기가 《북의것》으로 된다고 하였다.
무인기에서 발견되였다는 지문이 남조선사람들의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턱대고 북조선사람들의것으로 된다는 주장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했다면 과연 누가 믿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이다.
남조선땅에 숱한 외국사람들이 들어와있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지문도 남조선사람들의 지문과 다를터인데 남조선당국은 《북조선지문》만을 확인하는 《특별도구》라도 가지고있는지는 귀신도 모를것이다.

초보적인 지리상식도 없는 무인기리륙지점

남조선국방부 대변인은 초기 《국방예산으로 30조원이상을 써도 북의 무인기가 어디서 발진했는지 리륙지점을 파악하는것은 쉽지 않을것이다.》라고 발표한바 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에는 같은 입으로 무인기의 리륙지점이 확인되였다고 하면서 황해남도 온천비행장이라고 찍었다.
거짓말을 꾸며대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아무러한 과학적증빙자료도 없이 무인기의 리륙지점을 북쪽지역으로 서둘러 단정한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지명조차도 제대로 모르면서 확인되였다고 밝힌것이 더욱 가관이다.
우리 나라 온천비행장은 평안남도에 있지 황해남도에 있지 않다.
국방부 대변인은 백령도와 가까운 지역이 황해남도라는것만 알고있다나니 온천비행장이 황해남도에 있는것으로 발표해야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한것 같다.
그가 《북소행》설을 립증시키는데 얼마나 몰두하였는지 초기 실언한 지명을 며칠후에 다시 정정하여 발표한다는것이 오히려 더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번에 잘못 발표한 지명을 정확히 밝힌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무인기리륙지점이 황해남도 옹진부근의 한 비행장이라고 한것이다.
우리는 옹진부근에 비행장이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이제 GPS복귀좌표를 해독하고 비행경로를 검증하여 리륙지점을 밝힌다고 하는데 모름지기 그 리륙지점이 북이라고 조작해낼것이다.

《북조선색갈》로 공인된 하늘색과 흰색

남조선당국은 무인기들이 《북의것》이라고 확증할수 있는 증거로 동체색갈이 하늘색이기때문이라고 하였다.
다시말하여 동체에 하늘색바탕과 흰색구름무늬를 하였기때문에 우리의 무인기이며 그 색갈이 열병식에 나타난 우리 장비색갈과 같기때문에 《북의것》이 분명하다는것이다.
그러면서 동체의 도색을 놓고 무작정 우리를 걸고들기가 아무래도 멋적었던지 전파탐지 및 육안감시를 피하기 위해 위장도색을 한것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날조에 이골이 난 능수라고 하여도 《북소행》임을 립증하기가 여간 조련치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동체색갈까지 우리와 련계시키니 말이다.
남조선당국의 주장대로 한다면 하늘색이나 흰색은 다 《북조선색갈》이라는것인데 이에 공감할 사람이 세상에 있기나 하겠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현재 하늘색과 흰색으로 된 옷을 입거나 물품을 소유하고있는 남조선사람들은 즉시 다른 색갈로 교체하여야 할것 같다.
자칫하면 그들모두가 《종북》으로 몰려 족쇄를 차고 감옥에 갈수 있기 때문이다.

《북이 아니면 누구?!》로 된 항속거리

《주변국에서 발진하기에는 짧은 거리이고 그렇다고 남한내에서 한것은 아니기때문에 북에서 했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는 《중간조사결과》발표에서 무인기의 항속거리를 《북소행》으로 판단한 대목이다.
남조선군당국은 연료통크기와 기관배기량,촬영된 사진 등을 검토한 결과 무인기가 최저 180㎞에서 최고 300㎞의 항속거리를 가진것으로 분석됐다고 하였다.
남조선당국은 이러한 항속거리를 놓고 《북소행》으로 단정짓기에는 제스스로도 부끄럽고 게면쩍었던지 기상조건이나 왕복거리까지 더 고려해보았다고 덧붙였다.
항속거리가 짧으면 짧아서 《북소행》이고 항속거리가 길면 길어서 《북소행》으로 된다는 격이다.
그렇다면 항속거리가 짧은 이 세상의 모든 비행체는 그것대로,항속거리가 긴 비행체는 또 그것대로 다 《북 비행체》란 말인가.
제 흉심을 달성하자니 이런 생억지도 꺼리낌없이 부려대는것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남조선내부에서 단마디로 반박해나섰다.
총체적무게가 12㎏인 무인기가 항속거리 300㎞에 필요한 연료를 5㎏이나 장착하면 뜨지조차 못한다는것이다.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이 아닐수 없다.

조소만 자아낸 《비행고도측정》놀음

남조선국방부는 3월 31일 공군지휘기 《E-8》의 전파탐지기가 북에서 백령도로 날아오던 무인기를 포착하였으므로 이 무인기들이 우리측 지역에서 발진했다는것을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발견한 즉시 3차례에 걸쳐 300여발의 발칸포탄을 발사했으나 발칸포의 최대사거리가 2㎞밖에 안되기때문에 5~6㎞고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무인기를 격추할수 없었다고 변명하였다.
《중앙합동조사단》은 제편에서 이런 말을 내뱉았는지에 대해 감감 잊었는지 백령도에서 발견된 무인기가 1.4㎞의 고도에서 시속 100~120㎞로 지그자그형태로 비행하다가 연유부족으로 추락됐다고 발표해버렸다.
그것이 여론의 의혹을 증폭시키게 되자 백령도에 당국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인기가 출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이외에도 무인기가 《금형틀》로 제작되고 전자회로기판을 나무에 부착한것이 남조선식이 아니며 무인기리륙에 필요한 발사대와 추가장비를 남조선땅에서 발견했다는 목격자나 신고자가 없다는것까지도 《북소행》의 근거로 내든것을 비롯하여 말이 되든 안되든 마구 꾸며댄것이 《중간조사결과》이다.
남조선당국은 아무래도 《북소행》을 안받침하는 근거자료들이 미미한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2010년 3월 《천안》호가 《북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될 때도 전파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무인기로 《천안》호의 항로를 추적하고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였을것이며 그해 11월 연평도포격전때 저들의 포진지가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된것도 무인기가 사전정찰을 하였을수 있기때문이라는 황당한 억측까지 내놓는것으로 어떻게 하나 저들의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해보려 하고있다.
사람들은 이 석연치 않은 행동을 두고 《북소행》설을 조작하고 립증시키기가 여간 수월치 않은 모양이라고 수군거리고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사실자료가 공개되면 될수록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이 완전히 날조라는것은 더 명백히 드러나게 될것이다.

3. 무인기사건의 《북소행》설에 비낀 범죄적기도

모략과 날조는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자들이 추구하는 상투적수법이다.
지난 시기에도 그러하였지만 이번에도 례외가 아니다.
《천안》호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이번 무인기사건은 남조선당국이 추구하고있는 불순한 범죄적기도를 여지없이 폭로해주고있다.
첫째로, 우리를 무인기사건의 주범으로 몰아붙여 악화되고있는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첨예한 전쟁국면조성의 책임을 전가시켜보려는데 있다.
지금 조선반도의 정세는 첨예하다.
남조선당국이 외세를 끌어들여 광란적으로 벌려놓고있는 《키 리졸브》,《독수리》합동전쟁연습,군사분계선 전지역에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내몰아 로골적으로 감행하는 반공화국삐라살포행위,어용보수언론매체들의 대대적인 비방중상,군부호전광들을 부추겨 무고한 우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무지막지한 해상깡패행위 등만 보아도 그것을 알수 있다.
이것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데 대한 우리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과 공개서한을 발표한데 이어 흩어진 가족,친척상봉을 성사시켜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대범하고 아량있는 동포애적조치에 대한 남조선당국의 전면도전으로 된다.
내외여론들은 구태의연한 대결관념에 사로잡혀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가고있는 남조선당국의 부당한 처사를 강하게 비난하고있다.
더우기 우리의 정상적인 로케트발사훈련을 그토록 목에 피대를 세우고 악착스럽게 헐뜯던 남조선당국이 뒤에 돌아앉아 500㎞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싸일발사시험을 남몰래 강행한 안팎이 판판 다른 이중적행태에 쓰디쓴 환멸을 금치 못하고있다.
이에 바빠맞은 남조선당국은 저들에게 쏠리는 내외의 비난을 막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구실마련이 필요했다.
사건수사가 종료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박근혜가 돌연 공개석상에 머리를 내밀고 우리의 그 무슨 《추가도발》을 운운하며 《즉각차단,격퇴할수 있는 대비책강구》를 력설해댄것도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켜보려는 술책에서이다.
둘째로, 또 하나의 《천안》호사건을 조작하는것으로 제2의 《5.24대북조치》를 취하여 북남관계를 영원한 대결관계로 만들어놓으려는데 있다.
2010년 5월 리명박역도가 《천안》호사건을 계기로 취한 《5.24대북조치》는 북남화해와 협력을 위한 인원들의 래왕까지도 차단한 극악무도한 동족대결조치이다.
지금 북남관계개선을 가로막는 《5.24대북조치》를 철회하라는 불같은 독촉앞에 급해맞은 현 남조선당국은 《특례적인 사례》,《편의적인 례외》와 같은 희귀한 표현을 써가며 북과 남사이의 인원래왕과 접촉을 마지 못해 묵인해주고있다.
사실상 《5.24대북조치》는 이미 시대의 페물이 되여 제스스로 시궁창에 처박히고있다.
이를 달가와하지 않고있는 극우보수패당에게는 어떻게 하나 북남관계의 단절을 고수하고 우리에 대한 고립압살을 지속시킬 제2의 《5.24대북조치》를 만들어낼 모략극이 절실하였다.
이로부터 발생한 무인기사건을 《북소행》으로,우리의 《도발》과 《위협》의 련속으로 날조해대는 억지공사를 벌려놓고있는것이다.
사병들의 목숨까지 반공화국대결의 제물로 바치면서 특대형모략극을 연출해내는 남조선군부가 국적도 증거도 불투명한 무인기사건을 《북소행》으로 조작해낸것을 보면 앞으로 제3,제4의 《천안》호사건으로 대결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셋째로, 그 무슨 《안보태세강화》를 구실로 미국상전을 저들의 무력증강에 깊숙이 끌어들여 《전력공백》의 허점을 메우고 우리에 대한 군사적압살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데 있다.
지금 다계단으로 소형화되고 집약화된 고도의 화력타격능력과 첨단전략무기를 보유한 우리의 자위적군사력에 질겁한 남조선당국은 미제침략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실현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있다.
여기에서 기본은 전시작전통제권전환시기를 연기하는것으로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강화하는것이다.
그러자면 파격적인 《안보불안》이 필요하였다.
이미 연평도포격전을 도발한후 그 후과를 만회한다는 구실밑에 미국의 도움을 받아 조선서해5개섬일대에 《서북도서방위사령부》라는것까지 만들어낸 남조선당국은 같은 수법을 되풀이하려 하고있다.
남조선군당국은 벌써부터 무인기에 10㎏의 탄저균을 탑재하여 서울상공에 살포할 경우 24만명을 살상할수 있다느니,무인기가 자폭무기로 리용될수 있다느니 하면서 해외에서 전술정찰비행선을 도입하고 저공목표발견용 전파탐지기 등을 구입하여 지상탐지능력을 보강하겠다고 떠들어대고있다.
무인기침투사건이 정전협정과 유엔헌장의 위반이라면서 이 사건을 국제무대로 끌고가기 위한 꿍꿍이에 골몰하고있는가 하면 총련이 련루되였다는 《증거》를 확보할 경우 일본정부와 련계하여 제재를 가하겠다는 비렬한 흉계도 숨기지 않고있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매체들은 《군 뒤늦게 〈무인기는 북한제〉라고 주장》,《군의 여전한 뒤 북대응이 문제》,《군 얻어맞고야 〈방공작전체제보안〉》,《일이 터진 후에야 북을 치는 군의 고리타분한 〈뒤 북대응〉행태》라고 개탄하고있다.
제반 사실은 제2의 《천안》호사건을 조작하는것으로 북남관계를 영원히 파탄시키려는 남조선당국의 대결광기가 더는 걷잡을수도 수습할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4. 《북소행》설은 영원히 통할수 없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충격적인 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우리와 련결시키며 반공화국대결광기를 부려대는것이 남조선당국의 체질화된 악습이다.
그를 립증하고있는 사실자료들은 부지기수이다.
2011년 4월 2일에 발생한 남조선《농협》(농업협동조합중앙회)금융콤퓨터망이 통채로 마비된 사건을 《북소행》으로 매도한것도 남조선당국이다.
정보원과 검찰 등을 동원하여 《합동조사》를 벌려놓은 남조선당국은 어용언론매체들을 동원하여 우리가 《대남싸이버테로를 자행》하고있다느니, 우리 군대가 《해킹부대를 운영》하고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여론을 내돌리면서 나중에는 똑똑한 증거도 없이 《북소행》이라고 최종결론을 내렸다.
당시 커다란 피해를 당한 《농협》당사자들이 《북소행》이라고 밀몰아붙인 당국의 발표가 과학성이 없는 《서뿌른 결론》이라고 항변해나서고 남조선군 기무사마저 벌어진 사태를 《북군부의 공격》이라고 밀어붙일수 있는 혐의가 없다고 공식발표하였으나 리명박일당은 막무가내였다.
2013년에 있은 그 무슨 《3.20해킹공격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은 3월 20일 오후 2시부터 남조선의 주요방송업체들과 크고작은 금융업체들이 련속적인 싸이버공격을 받아 일제히 마비되고 남조선전역이 《사상초유의 대혼란》에 빠진것을 말한다.
수천수만대의 봉사기들과 콤퓨터들이 파괴되고 관련망들이 《먹통》이 되여 방송사들의 보도업무가 중지되고 금융망들의 모든 봉사가 마비되는 《전산대란》이 벌어진것이다.
이것 역시 《북소행》일수 있다는 결론부터 내리고 남조선당국이 전면수사에 착수하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해킹공격이 제3국에서 시작된것으로 판명되고 나중에는 《후이즈》라는 이름을 가진 국제해커팀이 저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통에 세계면전에서 톡톡히 망신만 당하였다.
마지 못해 《3.20해킹공격사건》의 막을 내렸던 박근혜일당은 날과 달이 바뀐 4월 10일 갑자기 싸이버전공격이 《북소행》으로 판명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물론 이 엉터리조사결과는 남조선각계로부터 《북에 책임 떠넘기는 만능정부》,《북소행이라는 정부발표 예상했더니 아닐세라…》,《해킹코드에서 발견된 수많은 1번, 참 희한하다.》,《어제 농작물망치게 내린 눈도 북이 만들었을것이다.》는 야유조소만 쏟아져나오게 하였다.
이외에도 《GPS전파교란사건》을 비롯하여 저들내부에서 비정상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북소행》설을 들고나오는것은 남조선당국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하긴 다른 나라의 문서까지 조작하여 애매한 서울시공무원을 간첩으로 매도하는 당국일진대 무슨 짓인들 날조해내지 못하겠는가.
남조선당국이 제 땅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에 대해 우리와 련계시키지 않으면 조사결과라는것을 도무지 발표할수 없게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남조선에서 급작스레 걷어들였다는 11대의 무인기들에 대해 과연 어떤 조사결과를 내놓겠는가를 주시하고있다.
아마도 모략가들이 이제는 기력이 진하여 《북소행》설조작을 중도반단할수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있지만 두고보아야 한다. 원래 모략과 날조에 이골이 난 자들은 죽을 때까지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기때문이다.
명백한것은 남조선당국이 《북소행》설을 들고나올수록 자기의 뿌리깊은 대결적정체만을 더욱 드러낼뿐이라는것이다.
《천안》호사건과 연평도포격전,《농협》금융콤퓨터망마비사건,《3.20해킹공격사건》,《GPS전파교란사건》에 이어 무인기사건 등을 우리와 련계시키는것은 곧 북남대결을 추구하는것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공공연한 파괴로 된다.
유치하고 졸렬한 모략극을 계속 날조해대면서 동족대결에 미쳐날뛰는것은 제무덤을 파는 길이다.
민족의 리익을 해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그가 누구든 우리를 걸고드는 반공화국대결정책에 매달릴수록 민족사에 모략극날조의 주범으로,천하무도한 악질대결분자로,통일의 훼방군으로 락인될것이며 천추만대를 두고 저주와 규탄을 받게 될것이다.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남조선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걷어들이지 않았을뿐아니라 제2,제3의 《천안》호사건을 계속 날조해내고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것을 해명할 용의가 있다.
《천안》호사건을 포함한 모든 《북소행》관련사건들을 공동조사하자는 우리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검열단은 지금까지의 모든 《북소행》설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명하고 모략극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치게 될것이다.
민족의 거대한 관심속에 진행될 진상조사에는 남조선의 《국가안보》를 총괄한다는 청와대 김장수안보실장이 남측을 대표하여 나오면 될것이다.
북남관계를 악화시키는 장애물들을 제거할 의지가 있다면 뒤구석이 아닌 공식석상에 나와 문제해결에 당당히 림하라는것이다.
민족의 평화와 안전이 직결되여있는 중대사를 즉시 명쾌하게 해결하는것이 쌍방당국앞에 지워진 첫째가는 의무이며 겨레를 위한 옳바른 처사로 된다.
남조선당국이 꺼릴것이 없다면 《천안》호사건발생초기부터 요구하여온 우리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외면할 아무런 리유가 없을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남조선당국의 호응을 기다릴것이다.

주체103(2014)년 4월 14일
평 양 (끝)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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