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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지방선거에서 이겨야 합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정권탈환을 담보해주는 제도
 
임두만 | 2014-03-29 09:13: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방자치제, 비록 지방토호들의 정치적 권세를 유지시키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행정과 의회자치제에서 교육자치제까지 시행되고 있으므로 지방자치제의 절반가량 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지방경찰제, 지방검찰제, 지방법원자치제가 시행된다면 완벽한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형편없으므로 이는 앞으로도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 중앙정부 예산지원이 없으면 지방행정기관의 공무원 급여도 부족할 자치단체가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위스와 같이 지방세와 국세를 따로 거두는 이중 세제를 실시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세목별로 지방세와 국세가 다르고 자치단체별로 지방세를 징수합니다만 이는 엄연히 중앙정부와 국회가 제정한 세법에 따른 징수이므로 스위스와는 체제 자체가 다릅니다. 진정한 지방자치제란 세법까지 자치단체의 자율에 맡겨져서 자치단체별로 필요한 세수를 조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결국 재정상태가 이 정도인 나라에서 이 만큼이라도 지방자치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당연히 야당에게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주기 위함입니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은 사실상 자치제가 부담스럽고 싫죠. 도지사 광역시장 같은 장관급 광역단체장은 물론, 시장군수라는 고위 공직자들을 임명할 권한을 정권을 책임진 대통령과 여당이 갖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야당은 정권을 잡을 엄두를 낼 수도 없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1995년 전국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1997년 정권이 교체된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이처럼 거대한 선물입니다. 이런 깊은 내막을 이해하지 못한 안철수 같은 신진인사가 자신의 ‘상표’하나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기초단체장을 다 여당 측에게 넘겨준다면 야당이 정권을 되찾을 기회는 영영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앙정권을 잃었더라도 야당은 어떤 식으로든 지방정권을 단 한곳이라도 더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요구하면서 지방검찰제, 지방경찰제 지방법원자치제까지 이끌어 내므로 중앙종속적 자치제가 아닌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정권교체의 틀을 만듭니다.

이런 점 때문에 야권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를 야권후보 단일화란 핵심이슈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자율적 단일화도 되었고 자율적 단일화가 되지 않은 지역은 정당이 다름에도 경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거의 강제적 단일화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거는 야권의 압승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유권자 인식이 여야로 양분된 상태이므로 이 방식 외에는 여권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례가 있음에도 지금 야권은 ‘명분’하나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의 게임에서 패배를 각오한다는 패배의식만이 팽배합니다. 패배가 정당하다는 억지논리도 횡횡합니다. 선거에서 패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정 정당은 패배를 알면서 그 많은 돈을 들여 선거전에 나서고, 국가는 특정 정당의 싹쓸이를 위햐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희한한 게임을 우리는 봐야 합니다.

이 희한한 게임이 성립되지 않으려면 게임 룰이 정당해야 합니다. 한 쪽에서 지키지 않겠다면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은 가장 기초입니다. 아무리 억지논리를 들이대도 야당은 그 억지논리를 물고 늘어지며 룰의 정당성을 고집해야 합니다.

민생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장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선거를 이겨야 합니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낙선자들의 정당이 무슨 방법으로 민생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정치인이 입으로 주장하면 그게 민생정치입니까? 정책을 집행해야 민생정치입니다. 집행 권한은 선거에서 이겨 당선자가 되어야 생깁니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노력의 첫째가 룰의 공정성입니다. 기존의 법은 정당공천제인데 정치지도자들의 약속으로 이 법을 무공천으로 개정하기로 했으면 개정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무공천 공약을 한 대통령에게 지키라고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목숨을 건 단식이라도 해야 합니다.

1989년 1월 24일,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야3당 총재는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1989년 내에 광역자치단체장 선출을 포함, 지자제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야3당 총재회담 합의에 따라 3월 4일 지방자치법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이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4월 26일 다시 회담을 연 야3당 총재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계속 노태우 대통령과 여당인 민정당을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10월 19일 야3당 총재회담에서 “공동 노력하여 정기국회에서 지자제법을 통과시키기로” 재차 합의하는 것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결심을 촉구했습니다.

이윽고 1989년 12월 15일 청와대 4자(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종필)회담은 야3당이 제출한 지방지치제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소수 여당이 다수 야당의 반대를 뚫고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을 처리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기국회 폐회일인 1989년 12월 19일, 여야 4당 간에 극적인 대타협이 이루어져 국회에서 관계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벽두인 1월 22일.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은 자신들이 이끌던 3당을 합당한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이 합당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와 관련된 모든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특히 김영삼과 김종필은 자신들이 야당 총재일 때 지방자치제가 필수라고 주장하면서 김대중의 평민당과 지방자치제 법안 통과에 온 힘을 쏟더니 합당 후 여당이 되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돌변한 것입니다,

3당 합당 후 정계가 거여 대 소야 개편된 1990년, 거의 1년 내내 김영삼과 김종필에게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이들이 합의를 지킬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해 10월 8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호적은 1924년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1923년생인 김대중 총재의 당시 나이가 만 67세, 우리나이로 68세였습니다. 이 노령의 단식은 목숨을 건 단식이었습니다. 특히 소금도 물도 먹지 않은 단식이었기에 측근들과 당내의 반대도 많았습니다. 당 중진을 비롯한 의원들의 단식중단 호소가 있었으나 김대중 총재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동조단식 등 다양한 방식의 당내 응원이 답지했습니다.

단식 8일 째, 탈수현상이 생기면서 생명이 위독해졌습니다. 측근들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에서도 단식을 풀지 않았습니다. 단식 중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병실을 찾아왔을 때, “나와 김 대표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민주화란 것이 무엇이오. 바로 의회 정치와 지자제가 핵심 아닙니까. 여당으로 가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외면하려 하시오.”라고 질타했습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가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10월 20일 13일간의 단식을 끝냈습니다. 여·야 간 극한 대치가 협상으로 판이 바뀌면서 12월 6일 전면적 지방자치제 실시를 최종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1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1992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합의를 여당은 다시 지키지 않았습니다. 1992년 1월 10일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6월 30일 이내 실시하기로 되어 있던 자치단체장 선거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총선과 대선이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법에 정해진 시기를 늦출 수 없었기에 1992년 대선에서 당선 된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에 가서 제1회 동시 지방선거를 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을 당선시켰으며 인천과 경기를 빼앗겼지만 전면적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1997년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이를 뒤돌아보면 1995년 지방선거 실시 및 야당승리가 정권을 교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터전이었습니다.

야당에게 지방선거 승리는 이처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의 한나라당 전면적 승리는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습니다. 2010년 야권의 전면적 지방선거 승리는 이명박 정권 전체를 흔들었으며 한나라당이 당명까지 새누리당으로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실상 야당에게 매우 좋은 여건이었으나 정치력에서 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려 총선도 패하고 대선도 패했지만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 역사상 전무한 130석 거대의석을 지니게 한 원동력입니다.

이런 역사에서 보듯 지방자치제는 야당을 위한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없다면 대통령은 17개 장관급 광역 단체장과 교육감, 244개 이사관급 이상의 기초단체장의 인사권까지 총괄 행사하는 제왕이 됩니다. 지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이들의 인사권이 국민인 유권자에게 넘어가 있어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만약 이런 인사권까지 지닌 대통령이라면 어떤 제왕이 부럽지 않습니다. 실지로 지방자치제를 폐지한 박정희는 18년을 제왕으로 지냈고 전두환 7년 노태우 5년도 제왕적 대통령이었습니다. 물태우라고 불렸으며 총선 패배로 잠시 흔들렸으나 노태우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말할 사람 없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글의 명료한 답안입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정권탈환을 담보해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정권탈환을 논하는 것은 메아리도 없는 바다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짓입니다.

제도의 악용으로 지방 토호들이 득세하고 이 토호들을 장악한 중앙의 정치 권력자들이 지방의 공무원 조직까지 장악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개혁은 분명하게 필요하나. 이를 위해 더 필요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면 ‘명분’ 때문에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것입니다. 애초 기초공천제 폐지는 잘못된 공약이었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보다가 기초공천제 폐지공약은 잘못된 공약이었다고 새누리당은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방토호의 득세, 지방 공무원의 줄세우기는 공천제가 가져 온 폐해이기는 하지만 이 폐해가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이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 방식이 맞다고 해도 공직선거법 상 공천이 보장된 것이 현재의 룰인 만큼, 이 법을 개정하든지, 개정이 안 되면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의 정상적 정치행위입니다.

따라서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강요하고 강압하는 게 첫째이고, 그래도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법대로 따르는 것이 둘째입니다. 게임의 룰이 바뀌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룰에도 없는 것을 약속과 명분이란 이유로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정당 지도자의 독선입니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가 명분과 실리 싸움에 개차반이 된다면 이것은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후퇴입니다. 특히 일부 명망가들이 명분이란 이유로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라 독재입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해야 기득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한 수순이 있습니다. 첫째, 약속을 지키라고 상대에게 계속 강압하는 것입니다. 그 방식은 위에 인용한 김대중의 방식보다 더 강한 방식이어도 됩니다. 당 지도부의 단식투쟁이나 농성투쟁이 시작되면 현역 새정치민주연합 시장군수는 물론 예비후보까지 릴레이 단식으로 룰의 공정성을 압박해야 합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국정목표입니다. 선거과정의 공정한 룰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 첫걸음입니다. 이를 강압하고 그래도 지키지 않을 경우 정치소비자인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이 약속을 지키라는 강성투쟁입니다. 이 강성투쟁에 여권이 굴복하여 무공천으로 돌아서면 우리도 예측 가능한 정치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소비자인 국민이 예측가능한 정치가 선진정치입니다.

만약 그래도 여권이 공천을 고집하면? 야권도 법에 명시된대로 공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정한 룰 안에서 치루는 게임입니다. 1:1싸움이어야 승리를 바라볼 수 있고 승리해야 새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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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증거' 내고도 당당한 검찰, 세 가지 '꼼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3/29 11:07
  • 수정일
    2014/03/29 11: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자의 눈] 검찰 "유우성은 간첩임이 분명하다"고? 증거는?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9 07:59:40

 

 

 

 

 

 

 

 

28일 오후 4시 경. 검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목소리의 톤은 점점 올라갔다. 유우성 씨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형사법정에서 검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유가려 씨 진술 번복 등의 신빙성 검증 작업이 항소심에서 증거 조작 논란에 가려져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증거 조작 논란이 간첩 사건 진실을 밝히는데 걸림돌이나 된 것처럼 당당했다. 공판 기일 추가 요구의 핵심 요지는 이 부분이었다. 이 쯤에서 세 가지 '꼼수'가 포착된다. 
 
첫째 '꼼수'
 
국정원으로부터 조작한 증거를 받아 법정에 제출해놓고, 그 증거의 위조를 사실상 인정하고 철회해 놓고도, 검찰은 재판정에서 당당했다. "'위조'라고 하는 것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고 진상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현철 부장검사는 "위조 논란이 있지만 항소심에 제출된 기존의 증거로도 (간첩 입증이) 충분하다"며 "피고인이 간첩임이 분명한데 국민에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증거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일단 의문이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

 
검찰의 '꼼수'는 간단하다. 위조된 증거 문건 3건은 증거 능력 판단 전에 철회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검찰은 위조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피고와 재판부를 기망해도, 후에 위조됐다 판단될 경우 '당황하지 않고', 그냥 철회하면 '끝'이다. 얼마나 깔끔한가. 변호인 측 이의 제기가 없었다면 위조 증거가 그대로 인정됐을 것이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걸까. 
 
둘째 '꼼수' 
 
심지어 검찰은 유우성 씨의 출입경기록(출-입-입)이 전산 오류가 아니라는 내용을 입증하기 위한 전문가 소견까지 제출했다. 변호인 측이 "검찰이 이미 위조된 것으로 판명난 것을 (위조가 아니라고) 입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반박할만 하다. 
 
검찰의 논리는 중국 정부가 위조 문서에 대해 '정식 문서'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검찰의 증거조작 사건팀은 이미 수사를 통해 간첩 사건 팀이 제출한 문서의 위조 여부를 다투고 있다. "국정원이 고의로 증거를 위조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입증하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최소한 그렇게 전제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검찰 측은 "아직 위조로 판명나지 않았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위조 여부에 대한 변호인들의 입장 표명 요구도 사실상 거부했다. 한 쪽에서는 위조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한 쪽에서는 아직 위조 여부를 알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동료들의 입증 실패라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위조된 증거를 제출하고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검사들에 이미 면죄부가 주어진 것일까. 동료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상 날조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간첩 수사팀 검사들이 저리도 느긋한 이유를, 도저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셋째 '꼼수' 
 
검찰의 '꼼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왜 검찰은 공소장 변경과 함께 추가 기일을 요구했을까. '진짜 이유'는 공판 과정에서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별개로 유우성 씨의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여권법 위반 부분에 사기죄를 끼워넣기 위해 공소장 변경을 청구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청구한 것이 아니라 "다음 기일에 (다음 기일이 만약 허락된다면)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검찰의 요구를 들어줬다. 
 
변호인은 강력 반발하며 "북한이탈주민 보호법 위반 부분은 우리만 항소를 한 부분이어서 우리가 항소를 취하하면 검찰이 공소장 변경 자체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물론 변호인 측은 항소 취하라는, 극단적 선택까지는 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측이 유우성 씨와 변호인들의 사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재판부에 의해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을 검찰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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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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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살 유행병 특별 기획 조명

알자지라 생방송, 한국 자살 유행병 특별 기획 조명
-한국 자살률 증가 추세, 젊은층 절반 자살 생각
-자살에 대해 무감각해져,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CNN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알자지라 아메리카 방송이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주목하고 나섰다. 특히 알자지라 더스트림은 한국과 미국 등의 전문가를 연결하여 38분간이나 집중적인 기획보도를 내보내 비정상적인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에 대해 원인과 대안 등을 모색해 한국의 자살 문제는 이제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보도는 Jooyea Lee(활동가), 글로벌 포스트의 Geoffrey Cain 기자,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 이준영 소장, B.C. Ben Park 브랜디와인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을 연결하여 토론 형식으로 선진국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 자살 현실과 그에 대한 원인, 배경 그리고 대안 등을 집중적으로 모색했다.

알자지라는 한국의 자살률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교통사고를 제치고 자살이 한국 젊은 층의 가장 높은 사망원인이 되었다고 강조한 뒤 한국의 젊은이들 중 절반이 자살을 생각해보았다고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이 방송은 젊은 층들의 과도한 학업, 성공에 대한 중압감, 외모 지상주의 등을 젊은이들의 자살원인으로 꼽았다.

알자지라는 또한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에 주목하며 노년층의 자살률은 더 높다고 주목했다. 알자지라는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 증가가 ‘한국의 문화적 가치의 변화와 더불어 노년층의 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보도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사회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졌고 한 때는 터부시 되었지만 현재 자살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고귀하거나 명예롭다고 여겨진다’며 ‘늘어만 가는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 (유명 인사,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접하며 대중들은 자살에 무감각해졌고 심지어 삶이 약간 힘들어졌을 때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제임스 강이라는 네티즌의 의견을 내보냈다.

이러한 자살률 증가를 막기 위해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도한 알자지라는 한국 정부는 자살예방을 위한 정신 건강 센터와 복지 기관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는 @metempirics의 의견을 온라인으로 받아 보도했다. 실시간으로 네티즌들이 참여해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는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기획보도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고 한국의 자살 문제에 대한 대책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다음은 알자지라 더스트림 기사 전문을 뉴스프로가 번역한 것이다.

번역 감수: 임옥

더스트림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pleGpa

더스트림 방송 바로가기 ☞ http://bit.ly/1h4oDAs

 

Shining a light on South Korean suicides

한국 자살문제 조명

How can the country tackle its suicide epidemic?

유행병처럼 퍼지는 자살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Mar. 27, Aljazeera

aljazeera_0327_2014_1

South Korea has the highest suicide rate among OECD members with more than 40 Koreans committing suicide every day. It’s the leading cause of death among young people and a recent poll found more than half of teens have suicidal thoughts. While the government has taken steps to curb the epidemic, there seems to be no signs the rate is declining. Join our live conversation at 19:30GMT.

매일 40여명의 자살로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젊은층에서는 가장 높은 사망요인이며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10대 청소년 절반 이상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정부가 이 현상을 줄여보려 대책을 세웠지만 숫자는 줄지 않는 듯 보인다. 그리니치 표준시간 오후 7시30분 실시간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In this episode, we speak to:

이 토론에 다음 사람들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Jooyea Lee @crea_pass
Activist
facebook.com/creapass

Geoffrey Cain @geoffrey_cain
Correspondent, Global Post
globalpost.com

JuneYoung Lee @junelee558
Program Officer, Rainbow Teen Safe Space

B.C. Ben Park
Sociologist, Brandywine University

With the highest suicide rate of any developed nation, at least 40 South Koreans kill themselves every day. As suicide rates across much of the developing world have started to fall, in South Korea they continue to trend upward as shown in the graph below: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며 최소 40명의 한국인이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개발도상국에 속한 대부분 국가에서 자살률이 감소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자살률이 다음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속 증가추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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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anking car accidents, suicide is the leading cause of death among young people in South Korea. Today, over half of the country’s youth experience suicidal thoughts.

교통사고를 제치고 자살은 한국 젊은 층의 제일 높은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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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tairGale: Poll Shows Half of Korean Teenagers Have Suicidal Thoughts http://on.wsj.com/1eos7ks

여론조사는 한국 10대 청소년들 절반이 자살을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Therapists and researchers attribute this to the enormous amount of pressure that students face to succeed in school. Many study for more than 12 hours a day in hopes of getting into top universities.

치료전문가들과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학업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막대한 양의 중압감으로부터 이것이 기인한다고 본다. 일류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희망으로 많은 학생들이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공부한다.

On a test day, one South Korean tweeted:

시험 날, 한 한국인이 트윗했다.

@eddiebyun: Please pray for life and protection for the students of Korea today as they take their college entrance exam. Many commit suicide after.

@eddiebyun: 대학입학 시험을 보는 한국의 학생들의 생명과 보호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많은 학생들이 시험 후에 자살합니다.

Online, some described the competitive nature of the South Korean education system:

온라인 상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경쟁적인 한국교육제도를 언급했다:

@AKG1593: @AJStream Competitive pressure makes education a life and death question. Same is the case with a major %age of Indian high school students.

@AKG1593: @AJStream 경쟁적 중압감이 교육을 죽고 사는 문제로 만든다. 인도 고등학생의 대다수와 경우가 같다.

@ESLBarry: @raisazaidi sure, for many success is only going to a prestigious school and working for a conglomerate. Of course not all can do this.

@ESLBarry: @raisazaidi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이란 단지 일류 학교에 가는 것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Nyawade Sidigu: The pressure to perform academically is huge in . There are probably a few other big factors, but I think that’s the primary motive for suicide by their youth. Japan has a similar problem, though there are definitely differences. I imagine most of this occurs in the cities, though.

Nyawade Sidigu: 학업성취도에 대한 중압감은 아주 크다. 아마도 몇 가지 다른 큰 요인들이 있겠으나, 나는 그것이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가장 주요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도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Naa Adorkor Pappoe: Pressure in their education system, obsession to look nice in other to fit in.and many more why wont their suicidal rate increase..

Naa Adokor pappoe: 교육제도 내의 압박, 어울리기 위해 외모에 집착하는 강박관념. 그리고 또 자살률 증가의 더 많은 이유들..

Others felt the level of attention paid to one’s physical appearance has led to the high rates of suicide among youth:

다른 이들은 신체적 외모에 주어지는 관심의 정도가 청소년의 높은 자살률을 초래했다고 느꼈다:

Xandra Escorsa: Because they’re not contented with their physical appearance and many resort to plastic surgery just to be accepted by the society. South koreans teens think they’re ugly without plastic surgery done in their face and body and this thought forces them to commit suicide due to low self esteem and inferiority complex leading to depression.

Xandra Escora: 그들이 자신들의 신체적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성형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은 얼굴과 몸에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낮은 자신감과 열등감으로 우울증에 이르게 되고 이 생각이 이들을 자살하도록 몰아간다.

Weera Chak: Too stressed out seeking perfection in looks and all else, especially social standing and relationships.

Weera Chak: 외모와 그외에 모든 것, 특히 사회적 지위와 관계들에서 완벽을 추구하느라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Roaa Ramadan: No, they commit suicide from bullying, and how they perceive their own look and beauty.

Roaa Ramadan: 아니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는 것과 그들 자신의 용모와 미모를 어떻게 스스로가 인지하는 것으로 인해 자살을 한다.

Some pointed out, however, that the issue may be more complex: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문제가 아마도 더 복잡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oseph Kim: @loisnam @AJStream @hohocho @AskAKorean @JaeyeonWoo I think the issue goes beyond social norms or expectations and is far more complex

Joseph Kim: @loisnam @AJStream @hohocho @AskAKorean @JaeyeonWoo 나는 이 문제가 사회적 표준 혹은 기대치를 넘어서며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With half of South Korea’s elderly in relative poverty, the suicide rate among Korea’s older generation is even higher:

한국 노년층 절반이 상대적 빈곤층이며, 이들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은 더 높다:

aljazeera_0327_2014_5

This is attributed to the economic situation of the elderly, combined with changing cultural values in the country.

이것은 한국의 문화적 가치의 변화와 더불어 노년층의 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In light of the high rates among the youth and elderly, some online feel society has become numb to the problem:

청년층과 노년층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몇몇 네티즌은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무감각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James Kang: once a taboo, now suicide became acceptable, even noble or honorable in the society. more people associate suicide with courage instead of cowardice. not sure how this started, but the increasing frequency of suicide among public figures (including top celebrities, politicians including former president) make general public numb to this epidemic and make them to think suicide is a viable option when life gets a little rough.

James Kang: 한 때는 터부시 되었지만 현재 자살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고귀하거나 명예롭다고 여겨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비겁함이 아나라 용기와 연결시킨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늘어만 가는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 (유명 인사,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접하며 대중들은 자살에 무감각해졌고 심지어 삶이 약간 힘들어졌을 때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Steve Miller: @loisnam Most have accepted this behavior as routine. There’s no outrage or call for real change. Until that happens, the rate stays high.

Steve Miller: @loisnam 대부분 이 현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분노를 표현하거나 실질적인 변화를 요청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이 없다면 높은 자살률은 변함없을 것이다.

Several initiatives have been implemented to combat the suicide epidemic facing the country. In 2012, the government outlawed the sale and storage of Gramoxone, a herbicide linked to suicides. The ban was credited with cutting the suicide rate by 11 per cent in first year of implementation.

한국이 직면한 자살 유행병을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정책들이 시행됐다. 2012년, 정부는 자살과 관련있는 제초제 ‘그라목손’의 판매와 보관을 금지했다. 이 조치가 시행된 첫 해 자살률이 11% 감소하는 성과가 있었다.

A more controversial initiative is the Samsung-sponsored project, “Bridge of Life”. In a campaign to decrease the number of people jumping from the Mapo Bridge in Seoul, the municipal government rebranded the bridge, installing motion-sensor lights and inspirational messages on its guard rails.

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조치로, 삼성이 후원하는 프로젝트인 “생명의 다리”가 있다. 서울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으로, 서울시는 동작감지 조명을 달고 난간에 고무적인 메시지를 새겨 마포대교의 이미지를 새로이 했다.

‘The Bridge of life’ by Samsung Life Insurance (삼성생명의 “생명의 다리”)

The bridge created controversy when it was reported that the number of suicide attempts quadrupled in the project’s first year of existence. The government disputed the criticism, stating the campaign had actually reduced the fatality level.

그러나 이 생명의 다리는, 시행된 첫해에 자살시도 건수가 4배로 증가한 것으로 보도되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정부는 이 캠페인으로 인해 사망률이 실제로는 줄었다며 비난에 이의를 제기했다.

Other Koreans experience “fake funerals” in effort to “die” in order to learn how to live. As described in the report below, some say the experience teaches them how to better appreciate life:

또 일부의 한국인들은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의 장례식”을 하기도 한다. 아래의 보도에서와 같이 이 경험을 함으로써 삶을 더 잘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몇몇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韓国の偽葬式 – A Good Day to Die: Fake Funerals in South Korea

죽기 좋은 날: 한국에서의 모의 장례식

Online, some felt the government and society needed to do more to improve mental health services:

온라인에서 일부 사람들은 정부와 사회가 정신 건강증진을 위한 사업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metempirics: @AJStream South Korean government’s investment 4 mental health centers and the welfare organizations in suicide prevention should increase.

@metempirics: @AJStream 한국 정부는 자살예방을 위한 정신 건강 센터와 복지 기관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

Syed Ahmed commented:

Syed Ahmed가 글을 남겼다:

facebook.com: The status of mental health services needs to be renovated. Korean psychiatrists, therapists and counselors needs to become more inclusive of teen health. I’m sure cultural barriers exist from getting help from professionals and this must also be addressed.

정신 건강증진사업에 대한 현황은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정신과의사, 치료전문가, 상담사들은 10대들 건강에 더 폭넓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는 것에 문화적 장벽이 존재하며 이것 또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insim05: @raisazaidi It can only be curbed by raising awareness among people, and people should manage to get counselling they need in time.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제어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때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상담을 받아야 한다.

Others shared personal experiences relating to suicide in the country:

다른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자살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들을 공유했다.

Jae Hee: @AJStream In the area where I live, I heard 2 students committing suicide in recent days. middle schooler & high schooler. No press coverage

내가 사는 지역에서, 최근에 2명의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Jaehwan Cho 조재환: @loisnam When I heard my military colleague committed suicide, I felt why the society cannot giving us a better society.

내가 군 동료가 자살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왜 이 사회가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사회를 주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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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총참모부 "남조선 해군 NLL 침범..어선 귀순 강요"

 

"예민한 수역, 여러가지 대책 취할 것"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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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8  23: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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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선박 1척을 우리 군이 나포, 송환한 것과 관련, 북한군 총참모부는 "남조선 해군이 서해 우리측(북측) 수역에 불법침입하였다"며 "어선에 귀순을 강요하면서 폭력을 가했다"고 28일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27일 밤 남조선 2함대 소속 쾌속정 편대가 조선서해 우리측(북측) 수역에 불법침입하여 평화적인 우리 어선을 강압적으로 나포하는 엄중한 도발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말했다.

대변인에 따르면, 27일 밤 옹진군 마합도부근 수역에서 조업 중인 '옹진수산사업소' 소속 22hp어선 '539-52456'호가 기관고장으로 항로를 잃었다.

당시 짙은 해무가 낀 상황에서 해당 어선은 닻을 내리고, 나침판으로 방향을 고정하던 중, 남측 2함대 소속 쾌속정이 다가와 50여발의 총탄을 쐈다는 것.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선박 1척이 백령도 동방해역 NLL을 1마일 가량 월선, 오후 8시에 나포했으며, 고속정을 근접 기동해 수차례 경고통신과 경고사격으로 퇴거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북측은 "남조선 해군 2함대 소속 쾌속정 무리들이 우리 해상군사분계선을 넘어 불시에 침범하였던 것"이라고 상반된 설명을 내놨다.

우리 해군이 해당 어선을 나포, 관계기관 등과 침범 경위 등을 조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북측은 "어선에 뛰여든 남조선 해군 깡패무리들은 무작정 선원들을 쇠몽둥이로 후려치면서 실신상태에 빠뜨린 다음 족쇄를 채우고 눈까지 싸맨 상태에서 어선을 백령도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문제는 우리 어선을 쇠갈구리로 마구 찔러대며 강압적으로 나포한 해상깡패 행위가 항로를 잃고 표류하고 있던 평화적인 어선을 대상으로 '귀순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밝힌 인원들을 대상으로 고의적으로 저지른 망동이라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귀순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합참은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 "평화적인 어선이며 불비한 기관으로 정상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을 뿐 아니라 선원들의 귀순의사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고 대변인이 밝혔다.

그러나 대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선을 백령도로 끌고간 남조선 해군깡패무리들은 인원들을 서로 격리시켜 놓고 총구까지 겨눈 상태에서 귀순을 강요하면서 폭행을 가하며 강박대기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의 진상을 간파한 우리 인민군총참모부는 당일 22시20분 서해지구 북남군통신선을 통하여 남조선군 합동참모본부에 평화적인 우리 어선을 즉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하면서 만약 어선 귀속이 늦어지는 경우 예상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긴급경고통지문을 내보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조선 해군 2함대 소속 깡패무리들은 우리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불법월선'했다느니, 수차례 경고를 하였지만 불응했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나포했다느니 하면서 거짓말과 변명을 했다"며 "결국 28일 1시 28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어선에 실려온 우리 인원들은 귀순을 강요하면서 가한 치떨리는 야수적인 만행으로 실신상태에 있으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예민한 수역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모든 어선들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대책을 취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문답에서 북한 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여러가지 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대책이 나올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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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순국일 비밀과 헤이그 정상회담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일까…
 
장유근 | 2014-03-27 19:01: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순국일 비밀 담긴 잘린 손가락과 헤이그 정상회담-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일까…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형편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민족적 자긍심 따위는 찾아볼 수 조차 없게 된 세상이다. 민족적 자긍심은 커녕 불의가 횡행하고 거짓이 상식으로 돌변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작질을 통해서라도 거짓을 사실로 꾸며대야 하는 나라로 변해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나라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사실 내지 진실을 통해 가치를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 쯤으로 여기게 된 절망의 시대는, 최소한 을사늑약(1905년) 후부터 10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사회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주일 전 필자는 남산을 다녀올 기회가 생겨서 안중근(1879~1910) 의사 기념관 곁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남산을 찾는 사람들 조차 잘 찾지않는 기념관 근처에는 안 의사의 왼손 장인(掌印)이 찍인 논어의 한 귀절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있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는 뜻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돌아봤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2014년 3월 26일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면 무능한 사람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뺀질뺀질 남의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보며 실속을 챙겨도 시원찮을 마당에, 얼마되지 않는 이익을 챙겨겨 정의를 생각하고 이웃과 나라의 위태로움 때문에 목숨을 주라고 한다면, ‘너나 잘하세요’라며 빈정거리지 않는 것 만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은 의로운 일을 통해 여전히 우리의 거울이 되어 희망을 일깨우고 있는 것.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동지 11명과 함께 죽음으로써 나라를 위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할 때 손가락을 끊었다. 안 의사의 왼손 약지(넷째 손가락) 첫 마디가 없어진 비밀은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권총으로 세 발을 명중시켰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시킨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탄'과 관련해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된 것이다. 안 의사 나이 31세 때의 일이었다. 위대한 거사를 앞 두고 왼손 약지를 잘라 흔들림 없이 거사를 행했는 데 안 의사를 위대하게 만드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였다. 여사께선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抗訴)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거라.”

나라와 민족이 힘들어 할 때마다 어머니는 위대함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안 의사의 어머니께서 남기신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삶과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 놓은 어미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텐데 호연지기를 심어준 위대한 어머니께선 죽음 앞에서 조차 비굴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손수 장만하신 수의 한 벌과 ‘선량한 천부의 아들’과 같은 형벌 같은 바람을 아들에게 전하며 자랑스러워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 의사는 순국 이틀 전 감옥 속에서 옥중 유묵(遺墨)을 남겼는 데 그 중 하나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던 것. 안 의사의 거사가 있기 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는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들이 <만국평화회의보>와 인터뷰를 통해 일제의 불법적 조선침략을 폭로하기도 했다.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여 자주 국가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데 대한 특사파견이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26개국의 대표가 참석하는 제 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1906년 4월 고종은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과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이 회의에 파견하게 된 것인 데 일제의 반대로 회의 참석이 제지되고 만국 평화 회의 참석이 제지되는 참담함 앞에 놓이게 되자 이준 열사께서 복부를 베어 자결을 시도한 사건이 헤이그에서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님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사 서거 104주기를 맞이한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자부심이나 자긍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조직된 국가정보원의 첩보요원들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댓글사건을 통해 짝퉁 대통령을 양산하는 범죄를 버젓이 저지르는 나라가 됐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선량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조작질을 서슴치 않게 됐으며, 서류 위조가 발각되자 이번에는 개인과 특정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자살극을 벌이는 나라가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몰상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행해져도, 이를 부추기거나 합리화 하며 국론분열을 일삼는 정치세력이 버젓이 활개치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안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해 숭고한 넋을 기리는 분들이 통곡을 하며 억울해 하는동안, 바다 건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한미일 3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른바 ‘헤이그 정상회담’에서는 댓글사건 수혜자 박근혜가, 제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극우주의자 아베신조와 전쟁에 광분하는 미국과 함께 동족상잔을 부를 수 있는 ‘북핵 대응책’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이 헤이그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 선조님들이 구국충정을 보인 성스러운 땅 헤이그에 친일 유신독재자의 딸이 선조님들의 얼을 더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26일)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4주기를 맞이한 날이자,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한 날이었다. 안 의사께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나라와 민족을 더럽힌 원흉을 처단했다. 그러나 뼛속까지 친일.친미의 피가 흐른다며 자랑스러워 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군 당국 등으로부터 정리된 천안함 사건은, 46명의 호국영령을 여전히 백령도 앞 바다에 수장시키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의혹은 여전한 데 의혹을 가진 국민을 향해 ‘음모론’이라 주장하며 나라와 민족을 ‘정치적 이익’에 악용하고 있는 사람들.

안 의사께선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잡는 건 고사하고 옳은 일과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나라와 시민을 짓밟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선조님들 볼 면목이 없다.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인지 다시 되새겨 보는 참담한 새벽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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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채동욱 보도'의 한국신문상 수상에 대해

[주간 프레시안 뷰]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는 '청부 보도'?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8 10:49:53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프레시안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이사장 박인규입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로 돌아와 잠시 황제로 복위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랑스 언론들은 처음에는 '대역죄인 나폴레옹 엘바 섬을 탈출하다' 식으로 보도하다 막상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황제, 파리에 복귀하시다'라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고 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그해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일화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간사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 26일 자 <조선일보> 8면 기사

▲ 26일 자 <조선일보> 8면 기사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보도로 한국신문협회가 주는 '2014 한국신문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위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6일 지면 전체를 할애해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 이것이 언론 본령'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총장의 사적 일탈을 빌미 삼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보다 큰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덮기 위한 '청부 보도'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해 6월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은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실상을 밝혀내기 위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의 기소 시점인 6월 11일을 전후해 채동욱 총장 사생활에 대한 청와대의 내사가 시작됐고, 결국 9월 6일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로 채 총장은 낙마했습니다. 이후,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이 해체되는 등 수사는 흐지부지됐습니다. 만일 채 총장과 수사팀이 관련 수사를 계속했다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실상이 지금쯤 낱낱이 밝혀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검찰총장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입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권력자의 잘못이 있다면 언론은 '용기 있게'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자 한 사람의 사적 일탈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라는 민주주의 과정에 불법 개입한 공적 탈선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적인 일탈은 개인적인 비행일 뿐이지만, 국가기관의 공적인 탈선은 전체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이 언론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면, 18대 대선 과정에서 행해진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 실상을 파헤치는 데에도 그런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국정원 감싸기로 일관했습니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 아들 보도가 '청부 보도'라는 느낌은 그래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사례에서 보듯 권력 앞에 약해지는 것이 언론의 생리(生理)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언론이 권력의 비리를 비판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민주주의는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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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권분립 원칙 훼손, 민주주의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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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우성 결심공판... 검찰 '연장전' 시도 성공할까?

'공소장 변경·추가 기일' 주장 관철 여부 주목

14.03.28 08:14l최종 업데이트 14.03.28 08:1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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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찹한 표정의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 유우성(전 서울시공무원)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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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28일 열린다. '공소장 변경'을 내세워 추가 기일을 얻어내려는 검사와 이미 늦춰진 공판일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변호인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28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형사대법정에서 제7형사부(김흥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이 사건 공판은 검사의 증거 및 증인 철회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하루 전 밝힌대로 위조정황이 드러난 유우성씨의 북-중 출입경기록과 관련 문서 등의 증거와 전직 중국 출입경관리 공무원에 대한 증인신청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이다. 

또 지난 25일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주장했듯 공판에서 검사들은 '공소장 변경을 위해 공판기일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유씨가 신분을 위장해 정착지원금 등 탈북자 대상 지원금을 타냈다는 기존의 북한이탈주민지원법 위반 혐의에 형법상 사기혐의를 적용,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추가 기일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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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유우성 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출석 간첩혐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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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사 측 주장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7일 재판부에 의견서를 내 공판 연장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변호인 측은 '공소장 변경을 이유로 내세운 추가 기일 지정 주장은 시간끌기일 뿐'이라며 검사 주장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도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달 28일 열린 공판을 결심공판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2월 중순 법원 인사이동으로 인해 새로 구성된 재판부가 지난달 28일 공판에서 '재판부 교체 뒤 열린 첫 공판을 결심공판으로 하기엔 심리에 부담이 크니 다음 기일을 결심공판으로 하자'고 제안해 미뤄진 게 이번에 열리는 공판이다. 

재판부로선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이날 공판이 결심 공판이 되면 검사가 구형을 하게 되는데, 1심과 같이 징역 7년을 구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심에서 기소한 내용에서 더 추가된 범죄사실이 없기 때문에 구형에 변화를 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유씨 출입경기록 등 검사 측 증거가 철회되면서 검사들은 이 사건 항소심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게 됐고, 다시 시작한 첫 날이 마지막 공판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추가로 제출할 증거나 증인도 없는 상황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검사 측은 항소이유서의 논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즉 유씨 동생 유가려씨가 지난해 3월 증거보전절차에서 한 오빠의 간첩혐의 관련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라 그 신빙성을 높게 봐야 한다는 것. 1심 재판부는 유가려씨의 진술이 다른 객관적 사실들과 부합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신빙성을 낮게 판단했다. 
태그:탈북자 간첩사건, 증거위조, 처음처럼, 유우성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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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곡간' 1만5천㎡ 논 내놓은 농부

 
윤순영 2014. 03. 27
조회수 2683 추천수 0
 

철원 권재환씨 부부 논 1만6000여㎡ 두루미 위해 쾌척, 한탄강변 먹이터

낱알 하나까지 거둬가는 세태, 이대로면 철원은 월동지 아닌 중간기착지 전락

 

크기변환_dnsSY3_1920.jpg» 한탄강 두루미 무리. 

 

겨우내 소리와 몸짓의 향연을 펼치던 두루미는 번식지로 떠나고 그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아지랑이가 봄을 재촉한다. 해마다 철원평야를 방문한 지도 17년, 두루미의 생태를 죽 관찰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크기변환_dnsDSC_1593~2.jpg»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로 가기 위해 기류에 몸을 실고 선회하는 두루미 무리.

 

크기변환_dnsCRE_9428.jpg» 볏짚을 말아놓은 곤포 사일로. 뒤로 어렴풋이 재두루미가 보인다.

 

우리나라 최대의 두루미 도래지라지만 철원평야에는 곤포 사일로용으로 모두 걷어가 볏짚은 찾아 볼 수 없고 당연히 낙곡도 사라져버렸다. 철새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평야를 비닐하우스가 뒤덮고 있다.


철원평야는 한반도와 일본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크기변환_dnsYS2_9064.jpg» 일본 가고시마 이즈미로 월동을 하러 떠날 채비를 하는 재두루미들.

 

재두루미가 번식지인 러시아를 떠나 2000㎞의 긴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철원평야에 들른다. 10월 중순이면 3000여 마리가 이곳에 도착한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의 월동지로 떠날 재두루미 무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철원평야의 하늘을 날아다닌다. 시끌벅적 마음껏 떠들고, 몸짓 언어와 날개를 흔드는 자리 다툼의 춤사위 향연이 11월 말까지 한바탕 펼쳐진다.

 

크기변환_dnsDSC_7827.jpg» 철원 평야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가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철원에 온 재두루미 가운데 2000여 마리는 일본으로 떠나고 남는 개체는 70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많은 수의 재두루미가 떠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면 머나먼 일본으로 날아갈까?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의 환경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닐까?

 

그나마 탐조와 촬영 목적으로 한탄강 잠자리에 먹이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한탄강 잠자리에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를 지어 1만원씩 받고 있다.

 

크기변_dnsSY2_0385.jpg» 촬영을 위해 뿌려 놓은 먹이를 먹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한탄강은 두루미에게 잠자리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소이다. 평야에서 먹이를 먹던 두루미들이 목을 축이러 들른다. 또 다슬기나 물고기를 잡아 영양부충을 하고 목욕과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한탄강에 먹이를 공급하는 것보다는 평야에 먹이를 주어 생태의 습성과 자연성을 살려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탐조와 촬영 장소가 한탄강 잠자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방해로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이리 저리 잠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어 잠자리에 대한 보호와 특히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두루미를 보호 의식이 절실하다.

 

크기변환_dnsYS1_9159.jpg» 아침 햇살이 퍼지자 여울의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두루미 무리.

 

철원군에서는 올해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에 탐조와 촬영을 위해 둑 위에 수억 원을 들여 지하벙커를 계획하고 있다. 탐조와 촬영하는 사람이 두루미와 접할 수 있는 개선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지하벙커가 있어서 두루미가 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두루미 처지에서 생각하면 안정적으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더 많은 두루미가 정착하는 데도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당장 두루미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10년 안에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두루미는 거의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월동하는 철원의 두루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자칫 가을과 봄 두루미가 중간 기착지로 이용만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두루미 보호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관심, 재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막연한 피해 의식, 그리고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평야엔 낱알이 없고 먹이를 줄 만한 논 한 뙈기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크기변환_dnsCRE_9010.jpg»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탄강 상류 두루미 잠자리.

 

김포시 홍도평 재두루미는1992년 김포시 홍도 평에서 7마리가 관찰된 이후 모이주기를 계속한 결과 2001년에는 최대 120마리로 늘어났다. 하지만 무분별한 농지매립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다는 이유로 모이주기에 반대하는 등 농민들의 항의와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재두루미는 점차 줄어 현재 10마리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크기변환_dns매립DSC_2049.jpg» 눈치를 살피는 홍도평 재두루미 뒤로 농경지 매립 차량이 보인다.

 

지난 1월 한탄강 상류인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권재환씨 집에서 민박할 기회가 있었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길리 동네 앞 한탄강에는 두루미 잠자리가 있고 그나마 안정적으로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군인들의 순찰로 인한 방해가 간혹 발생해 군부대와 순찰시간을 조정하면 천혜의 두루미 잠자리인 여울이다.

 

크기변환_dnsCRE_2230.jpg» 한탄강에서 바라 본 이길리 마을. 

크기변환_dnsYS1_4277.jpg» 여울 잠자리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는 두루미.

 

권재환씨의 안내를 받아 남방한계선까지 접근하여 두루미의 생태를 관찰해 보았다. 그곳 역시 사람의 방해는 받지 않았지만 곤포 사일로 탓에 들판에 볏짚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먹이가 부족한 상태였다.

 

3박4일 동안 민박을 하면서 두루미 보호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던 권재환씨 부부가 선뜻 두루미를 위하여 한탄강과 인접한 본인의 논 1만6000여㎡(약 5000평)를 내놓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크기변환_dns두루미곡간_2751.jpg» '두루미 곡간'으로 활용 될 이길리 387-2번지 농경지.

 

그동안 두루미를 위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튿날 그 논에 가보았다.  두루미들이 선호하고 먹이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계단식 형태의 논이다. 동쪽 방향은 한탄강 풍광과 어우러져 뛰어나다.

 

 크기변환_dnsCRE_9275.jpg» 철원평야 전역에 서 있는 전봇대. 자칫 날던 두루미에게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다.

 

서쪽은 토교저수지, 남쪽은 금학산이 보이고 북쪽은 오성산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곳 논엔 전봇대가 하나도 없어 다행이었다. 철원평야 어디를 가나 전봇대가 즐비하게 서 있어 두루미가 위태롭게 비행하곤 한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3_0282.jpg»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 도지회설립 인증서를 들고 있는 권재환(왼쪽), 김일남씨 부부.

 

내친김에 이들 부부에게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 가입을 권유하였다.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지난 3월17일 부인인 김일남씨가 협회 강원도 지회장, 남편인 권재환씨가 부지회장직을 맡았다.
 
올 9월부터 철원에 찾아오는 두루미는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먹이터를 볼 것이다. 이곳에는 두루미가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생태연구, 탐조, 촬영이 가능한 기반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환경이 나빠 먼 일본으로 가야만 했던 재두루미 무리도 이곳에서 월동을 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곳 이름을 '두루미 곡간'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두루미들이 마음껏 먹고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두루미 곡간을 제공한 권재환 부부에게 감사를 드린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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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마저 울린 45분짜리 '안중근' 영상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26일 도쿄서 첫 안중근 추도식 열어

14.03.27 12:10l최종 업데이트 14.03.27 15:12l
 
 
 
 
 
 
 
 
 
 
 
 
 
 
 
 
 
 
 

 

 

안중근 '장군'의 104주기 추도식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개적으로 열렸다. 

나는 엉겁결에 안중근 추도식 홍보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책임이 막중해졌다. 우선 많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무서웠다.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는 지난 8년 동안 매년 8월 15일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생생하게 경험해왔다. '도쿄에서 처음 열리는 안중근 추도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폭력이 난무하는 충돌을 먼저 떠올렸다.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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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장군 104주기 추도식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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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미완성 걸작 '동양평화론'은 충돌을 원치 않는다. 안중근, 그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운명공동체를 꿈꿨던 이상론자이면서 또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공부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그를 침략주의 야욕에 불타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으로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대신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때문에 외부에, 이를 테면 일본 매스컴에 추도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 충돌은 쉽사리 짐작됐다. 

아마도 2월 중순이었을 게다.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아래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의 "안중근 장군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 사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즈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기국회에서 "안중근은 당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살해해 사형을 받은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말만 들어가 있지 않을 뿐, 저 표현에는 안중근에 대한 아베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지금,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 한복판에서 연다는 것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때 정 대표가 한 말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여는 것이다. 안중근 정신은 일본인들까지 감화 시킬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꿈꾼 성인이다. 지금 한국·중국·일본의 상황을 봐라. 지금이야말로 안중근 정신을 되새겨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를 논해야 할 시기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45분짜리 동영상을 소개했다. 그 동영상은 1995년 7월 일본 공중파에서 방영된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이었다. 이 방송을 본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이 동영상 내용이 일본 교과서에 실려야"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3gViezMO5s#t=0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3gViezMO5s

'20년 전의 일본 방송국은 이 정도로 대단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 방송을 추도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안중근 '의사'라 불렀던 내가 '장군'으로 부르게 된 것도 전적으로 이 방송 덕분이었으니까. 

동영상을 본 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그 눈물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였고 알게 모르게, 그러니까 '비밀리에' 모든 준비가 진행됐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4년 3월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안중근 장군 순국 104주기 기념 추도식이 100여 명의 총련계·민단계·뉴커머·일본인 전부를 아우르는 가운데 개최됐다. 

식순은 간단했다. 개인 묵념과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 상영 그리고 청년아카데미가 제정한 안중근 평화상의 시상 및 저녁식사가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도식 준비위원회 사람들은 영상의 힘을 믿었고 그것은 명백히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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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10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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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흐르는 동안 객석에서는 끊임없는 탄성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재일동포나 한국인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일본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석한 다지마 미야코씨는 "추도식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고 좋은 공부가 있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공부가 됐다"라면서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와사키 겐이치씨는 "이런 내용을 일본 중·고교 교과서에 반드시 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중근은 재평가돼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벌써부터 2015년 3월 26일이 기다려진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안중근 장군이 돌아가신 3월 26일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동양평화 기원의 날'로 제정하고 싶다"라고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 박수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추도식이 끝난 뒤 수많은 참가자들이 사회를 본 내게 이구동성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라며 "앞으로도 매년 이 행사를 제발 열어 달라"라고 말했으니까. 

안중근 장군은 물론 한일간의 근현대사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젊은 여성 유학생의 감상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추도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은 놀랍도록 청아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내년에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해야 겠다고. 안중근 장군, 당신이 마지막까지 그 어떠한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것처럼. 

내년 3월 26일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은 이 자리에 다시 모일 것이다. 1년 후 오늘이 벌써부터 들뜨고 설렌다.
 
태그:안중근, 추모, 도쿄, 일본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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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협동조합 품은 해방촌성당, 장독에 뭐가 들었을까지역 주민과 신자 함께하는 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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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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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촌성당에서 다사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따뜻한 엿기름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메주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서 덜 빨갛다.”
“그럼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지.”
“얼마만큼 넣어야 하지?”
“적당량이지, 적당량.”

지난 20일 오후, 서울 해방촌성당 지하에 삼삼오오 모여 고추장을 만드는 이들은 지난 2월 23일 창립한 다사리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조합원들은 익숙한 듯 장맛을 보며 ‘적당량’과 ‘눈짐작’으로 일관하지만, 젊은 조합원들은 계량기와 레시피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엿기름 삭힌 물에 찹쌀가루를 풀어 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본당 주임사제인 이영우 신부와 조합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고춧가루를 푼다.

한편, 성당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장독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다. 장독 안에 있는 것은 2월에 조합원들이 함께 담근 간장이다. 천일염으로 짠맛을 낸 물에 우리 콩으로 만든 메주, 숯과 고추 등을 함께 넣어 두었다. 장의 맛에는 담그는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사리 협동조합도 가장 맛이 좋다는 ‘정월장’을 담갔다. 4월초, 담근 지 100일이 지나는 날 즈음에 메주를 건져 간장은 간장대로, 메주는 된장으로 숙성시킬 계획이다. 그렇게 1년쯤 지나면 그제야 맛 좋은 간장과 된장이 된다. 젊은 조합원들도 우리 음식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본 장 담그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지난 2월 다사리 협동조합에서 담근 간장이 익어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시작은 ‘본당 식구들끼리 장을 함께 담가 먹자’는 주임신부의 제안이었다. 이영우 신부는 “안 좋은 첨가물을 많이 넣어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된장, 고추장 말고 우리가 만들어 먹자”고 했다.

“우리 본당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기술이 있으니까요. 저도 옛날에 시골에서 장 담그는 걸 보면서 컸거든요. 어르신들은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장을 담그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도 좋지만, 함께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잖아요.”

누가 만들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할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신자들과 나누던 중 협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해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고민했다. 수익금을 의미 있게 쓰자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사리 협동조합이 시작됐다. 23명의 조합원 중 해방촌성당 신자는 이영우 신부를 포함해 16명, 지역 주민은 7명이다. 출자금은 한 구좌에 20만원, 조합원들은 한 구좌에서 다섯 구좌까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출자했다.

다사리 협동조합 남기문 이사장은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낯설어하는 본당 신자 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을 떠올리면서 이념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도 있었고, 긍정적이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뜻에 동의한 몇몇 신자들과 협동조합이 첫 발걸음을 떼고, 텃밭이었던 성당 한쪽 구석에 장독대가 들어서자 처음에 경계했던 본당의 어르신들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본당 어르신들은 햇빛을 어느 쪽으로 받게 해야 한다, 몇 월에 담그는 게 좋다 등 장독대를 보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겨운 광경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조합원들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남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마을 단위에서 최적화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앞날을 4~5년 긴 호흡으로 전망하면서 “결국 협동조합의 자양분은 마을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 해방촌성당 주임 이영우 신부가 장독을 열어 간장을 살펴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이영우 신부도 협동조합이 성당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에 뿌리내리기를 원했다. 성당이 모태가 됐지만, 뿌리를 잘 내려 지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인다면 도시에서 어르신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공간도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잘되면 학교 급식업체나 구청 등에 납품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작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자리와 수익을 나눌 수도 있을 듯해요.”

고추장은 맛이 깃든 두세 달 뒤쯤, 장은 1년 뒤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고추장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맛있는 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고춧가루 덩어리가 남지 않게끔 끝까지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팔다리가 꽤 고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세 항아리의 고추장을 가득 채워 넣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25년간 해방촌에 살았다는 한 젊은 조합원이 웃으며 말했다.

“혼자 했으면 힘들고 엄두도 안 났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혼자 만들다 실패한 집이 많거든요. 하지만 같이 하니까 재미있네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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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처럼 통일 말하며 이념·종북 공세 이어갈 것"

 
[통일대박론 점검 좌담회①] 김연철 교수·김창수 실장·이철희 소장
14.03.26 21:28l최종 업데이트 14.03.26 21: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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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열린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에 참석한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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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1월 6일)→북한 '중대제안'(1월 16일)→남북 고위급접촉(2월 12일, 14일)→이산가족 상봉(2월 20~25일)→통일준비위원회 설치 발표(2월 25일)→박 대통령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독트린' 발표 예정(3월 28일)

직접 통일준비위원장까지 맡은 박 대통령이 '통일 드라이브'를 제기하고 있는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의 대응은 어떠했나.

각각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온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와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그리고 이들에 비해서는 한 발 떨어져서 남북관계를 지켜봐온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이 문제들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21일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통일-규제완화 프레임으로 지방선거에 대응하려 하고 있으며, 박정희· 노태우 정권 때처럼 '통일드라이브'와 이념 ·종북 공세를 함께 구사할 것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같은 공세가 가해질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반면 김 실장과 김 교수는 통일대박론의 실체와 이후 전망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두 사람이 '햇볕정책' 그룹 소장파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다음은 그날 나눈 문답이다.

"통일대통령 되려는 생각" - "급변사태론에 근거해 통일대박론 제기"

사회(황방열 기자) : 최근 발언을 보면 김창수 실장은 통일대박론이 실체가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큰 파도가 올 것이라고 보는데 비해 김연철 교수는 의견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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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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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 박 대통령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임기 내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서 언론이 말하는 '통일 대통령'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국민적 합의, 북한과의 신뢰 조성,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의 협조,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모호한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철 : 장성택 처형 전후로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졌는데, 이런 상태로 가면 북한 내부에 급변상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만간 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통일대박론을 꺼낸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런 의도와 이 담론이 정책차원에서 준비되는 과정과는 굉장한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정부도 내부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꺼내든 통일대박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유지되면서 계속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하나 더 얘기하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는데 통일은 준비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붕괴라는 가정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정책이나 과정, 이런 게 필요 없다. 곧 무너지는데 뭐.

사회 : 이 소장은 어떻게 보시나.

이철희 : 굳이 대비를 해본다면 이전에 야권과 진보세력은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에 방점을 두면, 그 정치적 대척점에는 대한민국 보수의 정통인 분단보수, 안보보수가 서게 된다. 결국 평화의 대비로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 안보보수의 헤게모니를 상당부분 용인해줬고 앞으로도 그렇게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통일론으로 표현하는 것 같고, 이것과 대쌍으로 묶인 게 규제완화라고 생각한다. 안보보수만으로 갈 수는 없고 시장보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시장보수의 이해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현 정부에서는 규제완화로 표현된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한국 사회의 총노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북한 급변에 무게를 뒀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아버지가 (1972년) 7·4공동성명을 얻어내고 그 이후 어떻게 해왔는지를 봤기 때문에 일종의 학습효과가 작동한, 다분한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론과 규제완화를 대쌍으로 패키지로 묶어 가는 것이고,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취했던 '개혁적 보수'는 벗어 던지고 원래 자기 정체성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도 된다. 

나름대로 1년 만에 전체적인 우리 사회 역(力)관계를 잘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정치노선을 제시했다고 본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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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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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이해, 각각 통일과 규제완화로 대변"

김연철 : 이 소장 얘기하신대로 국내정치적 접근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이 정부의 통일담론은 결정적으로 국내 정치 전략으로서 종북 공세와 충돌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생각하는 통일은 붕괴론과 급변사태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종북 공세나 색깔론과 충분히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대목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 논리로 보면, 원래부터 이 두 가지는 한 쌍이다. 

유신 때 대통령 선거를 금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드는 이유를 두고 통일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총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내부에서 정부 비판을 해서되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난 대선처럼 이념공세를 할 것이라고 본다. 통일담론이란 것을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야당이 정부 비판하는 것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철희 : 과거 (노태우 정부의) 6공화국이 북방정책을 할 때도 국내적으로는 공안 통치를 했다. 말이 안 되는 두 개가 같이 묶였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 박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를 반드시 이기려 한다는,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보수를 최대한 동원해낼 수 있는 어젠다가 뭘까? 안보라는 개념보다는 통일이 더 긍정적인 이미지이고 폭도 넓다. 햇볕론자들과 대비점도 분명하기 때문에, 통일프레임이 효과가 클 것이다. 

저소득층,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도 선물을 줘야 하는데, 당장 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이 안 보이면 전체 분위기라도 들썩들썩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하고 손잡고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뭐가 없다. 어설프게 툭툭 던지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서 - 그 고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포석을 깔고, 규제개혁 토론회를 몇 시간씩 생중계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시달렸던 것을 이번 선거 승리로 완전히 해소·제압하고 가겠다는 열망을 갖는 것 같다. 이를 위해 포인트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착실하게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이 기조로 갈 것이고, 그 이후에도 안보보수와 시장보수를 한 데 묶어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국내정치적 이용, 남북정권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것"

사회 :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임기도 정해져 있다. 정상회담, 철도연결 등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종북몰이를 계속 하면서도 이게 가능할까.

김창수 : 큰 틀에서 봐야 한다. 통혁당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이 있었음에도 7·4공동성명이 진행됐던 것은 남북 간에 다른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철도도 연결하고, 정상회담도 정례화하고, 노벨평화상도 받아서 통일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할아버지가 사상강국, 아버지가 군사강국을 만들었으니 자신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남한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 각각 그리는 큰 그림이 있는데, 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린다면 그 과정에서 남북 양 정권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부분은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김연철 : 이번에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좀 더 진전된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드레스덴은 동독의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일단 장소가 갖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선언과 비교하는데 큰 차이가 있다. 그때는 남북관계가 다 끊어져서 아무 대화 채널이 없는 상태에서 대화 의지가 있다, 정상회담 용의가 있다, 남북관례를 어떻게 풀어가겠다고 얘기한 것인데 지금은 채널이 있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의제들도 많이 나와 있고, 북한과 채널 가동해서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남북관계 보다는 국내 정치적 효과가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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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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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김창수 : DJ 베를린 선언 때도 국내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야하는데 왜 외국에 나가서 그러느냐고 비판했었다. 박 대통령이 독일 가서 어떤 선언을 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박 대통령이 독일의 모델을 성공사례로 통일이 이런 대박을 가져온다고 통일 관련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큰 그림을 제시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독일에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론, 동아시아평화협력구상, DMZ평화공원,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을 다 담는 뭔가를 내놓을 것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이 '내년이 분단 70년'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정부 부처는 이에 맞춰서 뭔가 일을 해야 한다. 내년은 북한에게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이다. 국내외적으로 뭔가 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도 대형 이벤트를 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다른 국내정치 이슈는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병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돼도 뭐라고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 말로는 쉬운데 남북관계에서 뭘 만든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된다, 마음만 먹으면 정상회담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남북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단계와 절차가 있다. 북한도 한번쯤 쇼를 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7·4남북공동성명 같은 쇼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는 1~2년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게 유지되려면 정부부처 안에서 정책 결정과정도 뒷받침돼야 하고, 상충되는 많은 현안도 정리해야 하고 풀어야 할 부분도 많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정책결정 구조, 철학, 의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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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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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3/27 08:16
  • 수정일
    2014/03/27 08:1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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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친 통합신당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습니다. 민주당 126석과 새정치연합 4석을 합쳐 130석의 거대 통합신당이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라는 정치 집단이 합쳐진 만큼 많은 기대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내부를 보면 기존 야당 지지자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당황스러운지 살펴보겠습니다. 

' 외형은 안철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다' 

이번 통합신당의 외형은 한 마디로 안철수 의원이 이끌었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의 공식 약칭이 '새정치연합'으로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이라는 약칭이 계속 사용됐던 과거와 비교하면, 민주당이라는 존재가 명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 파워를 이용, 앞으로도 민주당이라는 존재보다 '새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공식 대표는 '안철수'의원입니다. 물론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 시스템으로 활동하지만, 공식적으로 중앙당 등록에 따른 대표를 '안철수' 의원으로 표기한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안철수 의원을 내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아이엠피터는 민주당이 당명이나 당대표를 양보하는 부분에서는 '거인 민주당'이 '꼬마 안철수'를 배려해야 하는 차원으로는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에 대한 이미지와 지지율만 민주당이 흡수, 외형만 포장해 '바지사장'으로 만든다면, 갈등과 분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시스템을 보면 안철수 대표가 앞에서 나아가고 김한길 대표가 내부에서 밀어주는 시스템으로 갈 듯합니다. 이럴 경우 선거 패배나 어떤 정치 사안의 책임론이 제기된다면, 안철수 의원에게 비난이 집중적으로 쏟아질 수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냐, 외부적인 문제냐를 따지고 안철수 대표가 몇 퍼센트, 김한길 대표가 몇 퍼센트 등으로 책임소재를 따지다 보면 내분으로 비칠 공산도 큽니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물론이고 각종 계파가 존재해 있는 새정치연합이 어떻게 계파 간의 갈등을 잘 조율하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느냐입니다. 

서로 다른 집단이 모였을 때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전권을 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권이 독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보다 더 민주적이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힘의 합체와 분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제일 큰 고민이자, 성공과 실패의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새정치연합 정강정책에서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새정치연합이 창당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의 역사의식이 논란이 됐습니다.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4·19 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삭제요청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안철수 대표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됐던 부분은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은 더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점은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현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서 바뀌거나 달라진 부분입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민주정부 10년의 정치·경제·사회 개혁과 남북평화 및 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하되 반성과 성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을 보면 민주당에는 있던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민주정부 10년을 정통성으로 가지고 있던 야권 지지자에게는 충격을 주면서, 새정치연합이 중도 보수 또는 우클릭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라는 대재앙을 가져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분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긍정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이런 표현과 문구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야권지지자들이 제기했던 '독재 정권의 산업화와 민주화 문제점'을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중도보수를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 가졌던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기억과 정통성을 무조건 지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 정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야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리얼미터가 2014년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과의 지지율이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새누리당 47.8%, 새정치연합 38.3%의 정당지지율을 보였습니다. 3월 둘째 주에는 새누리당 49.6%, 새정치연합 34.8%를 기록, 첫째주 9.5%의 격차가 14.8%까지 벌어졌습니다. 

언론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벌어지기 때문에 벌써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아이엠피터는 야권 지지율의 최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당지지도를 보면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 등으로 지지율히 하락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13.7%까지도 떨어졌습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해졌던 시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보수층의 공격이 극대화되면서입니다. 이때부터 보수층이 집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런 진보와 보수의 지지율은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층이 모두 집결하면서 과거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엄청난 지지율이 박근혜 정권 들어서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려 60%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언론, 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는 물론이고 박근혜 지지자들이 모두 힘을 합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종북논란 등을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 그들을 흡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야권이 가진 지지율의 한계가 40%내외라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즉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전략을 가지고는 언론,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박근혜 지지자들이 합친 지지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새정치연합'의 창당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통합이 무조건 성공하리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세력의 합체와 정치적 사상의 변동과 수용이 있다고, 한국의 모든 기득권 세력이 합쳐진 박근혜 정권 지지율을 뛰어넘기 힘든 구조가 현재의 정치판이기 때문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창당했습니다. 이제 진짜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역량을 총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을 빼고도 '새정치연합'이 성공한다면 그들은 진짜 새로운 정치를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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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국방위 검열단 '천안함 침몰'4주년 맞아 비망록 발표

 
천안함 침몰사건, "北 소행설 더 이상 거론말라"北국방위 검열단 '천안함 침몰'4주년 맞아 비망록 발표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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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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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천안함 침몰 4년을 맞는 26일 비망록을 발표해 북측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참가한 진상 조사에 응하거나 북한 잠수정에 의한 폭침 주장을 중단하라는 양자택일의 해법을 제시하고, 이 사건을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을 막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비망록 '백년, 천년이 흐른다 해도 '천안'호 침몰사건의 '북 소행'설은 절대로 통할 수 없다' 전문을 공개했다.

비망록은 먼저 "남조선 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계속 떠들어 댈 심산이라면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무조건 받아들여 사건의 진상부터 명백히 조사공개하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존하고 있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지금이라도 남조선에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판문점이나 기타 합의되는 장소에 '천안'호 침몰사건과 연계된 모든 물증들을 내놓고 세계 앞에서 그 진상을 명쾌하게 해명할 의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비망록은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다시는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떠들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 확약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천안'호 사건과 관련한 여러가지 의혹을 공명정대하게 밝히기 위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시는 '천안'호 사건의 '북 소행'설을 거론해대지 말라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주장"이라고 비망록은 부연했다.

비망록은 이와 함께 "현 남조선 당국은 북남관계 개선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염원에 맞게 불미스러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여야 할 것"이라며, "'천안'호 사건을 더 이상 북남관계 개선을 막아나서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도 안되며 긴장완화의 걸림돌로 방치해놓아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북남관계 개선과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바란다면 이명박 일당이 '천안'호 사건과 관련하여 취하였던 '5.24 대북조치'와 같은 모든 동족대결조치들을 대범하게 철회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비망록은 "우리가 내놓은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현지 파견제의도, 북남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도, 판문점 북미 군부 장령급 회담제안도 성사되지 못했다"며, 천안함 침몰사건 당시부터 남북관계의 악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들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백년,천년이 흐른다 해도 《천안》호침몰사건의 《북소행》설은 절대로 통할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 비망록--(전문)


온 겨레를 경악케 하고 온 세계를 아연케 했던 《천안》호침몰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4년이 되였다.
이 기간은 《천안》호침몰사건이 철두철미 극도의 동족대결광들이 고안해낸 민족사상초유의 특대형모략극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만천하에 낱낱이 확증해준 나날이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수치이고 비극이다.
그러나 지금 남조선에서는 《천안》호침몰사건 4주년을 맞으며 또다시 반공화국대결광풍이 거세게 몰아치고있다.
남조선당국은 침몰사건이 발생한 3월 26일을 그 무슨 《치욕의 날》,《응징의 날》이라고 하면서 해괴한 광대극들을 도처에서 벌려놓고있다.
당국의 주관하에 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4주기 추모행사》가,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공동안보쎄미나르》가,광주지방에서는 《〈천안〉함용사 4주기 추모손도장찍기 및 추모헌화》,《추모걷기대회》 등이 일제히 벌어지고있다.
특히 남조선군부는 《〈천안〉함 피격사건상기기간》이라는것을 설정한 가운데 조선서해 5개섬의 열점수역에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참배》와 《해상위령제》라는것을 벌려놓고 각급 해군부대들에서 《적보복의지》를 담은 현수막을 게시하고 《해양수호결의대회》라는것을 진행하게 하고있다.
온 남조선땅이 《천안》호사건을 거들며 광란적인 반공화국대결도가니로 달아오르고있는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검열단은 현 남조선당국이 이미 거덜이 난 동족대결의 꿰진 북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구 두드려대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천안》호침몰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현재까지 제기된 사실들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밝히기로 하였다.

1. 시간이 흐를수록 백일하에 드러나는 특대형모략극의 흑막

2010년 3월 26일 밤 9시경 조선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근해에서 남조선군함선 《천안》호가 원인모르게 두 동강이 나 침몰되는 사건이 발생한 그때로부터 50여일이 지난 5월 20일 리명박일당은 그 무슨 《조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그해 9월에는 《최종보고서》를 내놓았다.
결론은 《천안》호가 우리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되였다는것이였다.
《북 어뢰공격》설에 대한 주장은 발표되는 즉시 《온갖 의혹투성이의 종합체》,《해괴한 론리에 의한 억지》 등과 같은 민심과 여론의 신랄한 질타를 면치 못하였다.
남조선경내는 물론 세계각지에서의 비난과 조소는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의 본거지인 미국과 서방나라들에서까지 중구난방으로 쏟아져나왔다.
정견과 신앙,언어와 인종의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정의와 진리를 지향하는 세계의 량심적인 정계,사회계,학계 인사들이 이 사건에 주목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무게있게 표명하였다.
벌어진 사태의 정치적배경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들과 물증들에 대한 과학적해명,사건발생과정에 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한 해석에 준하고있는 그 모든 주장들을 총괄해보면 《천안》호사건이 동족대결을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된 한갖 모략극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우선 사건해명을 위한 《합동조사단》구성부터가 비정상이였다.
올해정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호출된 《민군합동조사단》성원은 당시 미국에서 신분과 경력도 모호한 조사성원들이 합세했지만 그들은 《천안》호침몰조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고 미국장비만 팔아먹기 위해 안달이 난 장사군처럼 놀아댔다는것,영국에서 온 조사성원들도 자기 나라에서 공식파견한것이 아니라 남조선당국에서 막대한 돈을 섬겨바치며 《모셔왔다.》는 사실을 실토하였다.
그러면서 국제공조하에 《북소행》을 《검증》하려고 외국조사단을 《초청》했으나 미국,스웨리예,오스트랄리아,영국에서 온 24명의 조사성원들은 서면으로 된 보고서는 일체 제출하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몇마디 설명으로 그쳤다고 하였다.
명단공개는 호상 비밀에 붙이기로 사전약속이 돼있다면서 절대로 밝힐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외국에서 온 조사성원들이 제이름을 밝히는것을 거절하고 침몰원인에 대한 일가견을 공식발표하지 않은데는 리유가 있다.
《북소행》설을 립증하여 내놓은 모든 자료들과 주장들이 너무나도 황당무계했던것이다.
《북어뢰》의 핵심증거라고 하면서 공개한 알루미니움합금쪼각만 보아도 우리 금속공업부문에서 만든 어뢰제작용 강철합금편이 아니였다.
보다 가관은 그 출처로부터 공개에 이르기까지 《의혹추진체》로 락인된 어뢰추진체였다.
초기 《북 어뢰공격》을 립증하는 어뢰추진체를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유리함에 넣어 내놓았다가 그것이 일반사람들에게서까지 의혹을 증폭시키게 되자 다른 어뢰추진체로 교체하여 전시하였는데 그것이 더 큰 골치거리로 되였다.
어뢰추진체가 우리의것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내놓은 《북의 도면》이라는것도 ㎝단위로 설정한 치수가 실물과 전혀 맞지 않은것이였으며 도면용어도 남조선표현 등으로 되여있었다. 또한 50여일동안 바다물속에 있었다는 어뢰추진체가 몇년동안이나 잠겨있은것처럼 험상하게 부식되고 낡아빠졌다는것이 확인되였다.
어뢰추진체의 출처도 문제였다.
추진체내부에 대한 정밀검사과정에 꽃모양의 흰색물질이 붙어있는 조개껍질이 발견되여 오랜 기간 바다물속에 있었다는 산 증거로 된데다가 추가로 발견된 붉은색물질은 조선동해에서만 서식하는 《붉은멍게》라는것이 판명된것이다.
결국 침몰사건은 조선서해에서 발생하였는데 어뢰추진체는 조선동해에 있었으니 모략과 날조에 하도 미치다나니 초보적인 고려도 없이 앞뒤가 맞지 않게 허둥거린것이다.
《북소행》설의 결정적증거의 하나로 내놓은 《1번》글체는 론할 여지조차 없는 엉터리조작품이였다.
《1번》글체에는 진상해명에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였다. 《1번》글체에 대한 분석결과에 따라 침몰사건의 진상이 해득될수 있다는데로부터 《1번》글체에 대한 고정밀분석에는 세계 여러 나라 물리학자 지어 잉크전문생산업자들까지 동원되였다.
분석결과는 물론 완전조작된것으로 판명되였다.
마지크로 쓴 《1번》글체가 폭발이 발생한 가열에도 타없어지지 않은것,침몰된 배의 다른 부유물은 바다염도에 의해 부식되였으나 《1번》글자부위만 생생한것,고열에 견딜수 있는 외부칠감은 타버린 대신 저열에도 타버리는 잉크가 그대로 남아있는것,《1번》글자의 잉크가 남조선에서 많이 쓰이는것,《1번》이 우리의 표기방식이 아닌것 등이 다 그러하였다.
과학적빈곤과 무식으로 서툴게 꾸며낸 《1번》글체는 모략가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 날조의 흑막을 폭로하는 1번이 되였다.
이외에도 현지수역에 대한 우리 잠수함의 《ㄷ자형침투경로》설의 허황성,폭침에 의한 물기둥으로 둔갑한 천둥에 의한 섬광,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부식기간측정놀음,함선좌현에서 일어났다는 폭발에도 불구하고 멀쩡한채로 있는 좌현스크류와 지어 선체가 두동강난 부위에 설치되여있은 형광등까지 생생하게 존재해있는것,과학적부정을 당한 알루미니움흡착물과 자취를 감춘 비공개영상자료 등은 《북소행》설을 립증한 《최종보고서》를 완전한 불량기소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에 대한 반신반의와 의혹,불신이 얼마나 컸는지 당국의《조사결과》발표를 전면반박하는 《〈천안〉함프로젝트》라는 기록영화까지 제작되여 방영되고있다.
기록영화는 《천안》호가 좌초 또는 충돌에 의하여 침몰되였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립증하는것으로 《북 어뢰공격》이라는 당국의《조사결과》를 단죄하고있다.
특히 어뢰에 의한 폭발시 열분포상태와 《천안》호침몰때 촬영한 영상감시기록을 대비하고 백령도앞바다속의 암초들이 긁혀진 흔적들을 공개하여 《천안》호가 암초에 부딪쳐 변을 당하였거나 미군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되였다는것을 객관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여론들은 이 영화를 보면 당국의 《조사결과》에 의혹을 느끼게 될것이며 그것은 《북소행》설을 순식간에 날려보내게 될것이라고 평하였다.
진실을 밝히려는 이 영화가 국제영화축전에서 상영되고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자 당국이 직접 영화상영을 중지시키기 위해 야단법석하고있는 판이다.
지금 남조선《KBS》방송 프로의 하나인 《추적60분》(《천안》함편)이 당치않은 재판을 받고있는것도 그러하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천안》호침몰사건이 《북소행》이라는 당국의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다고 하여 남조선군부가 검찰에 기소한 이 제작자의 《죄목》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4년째 판결을 끌어오고있다. 그것은 아무리 전문가,법학자,언론학자 등의 견해를 들어보아도 누구라없이 《북소행》설이 생억지에 불과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있기때문이다.
당국이 《북 어뢰공격》설을 발표한데 대해 남조선의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조선일보》까지도 《정부의 무신경과 여론결정요인에 대한 무지,군의 무사려(생각부족)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조사결과〉에 대한 불신분위기는 당연하다,〈천안〉함의 진상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밝혀지게 돼있다. 그 심판의 시각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지 않으려면 정파와 리념을 넘어 모두가 진상앞에 정숙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최종보고서》에 대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검증》해야 한다면서 이 《리해불가능》의 자료,《검증》결과를 보고도 북을 주범으로 본다면 기자노릇을 그만두어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남조선언론계에서는 《〈천안〉함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언론은 가짜》라고 단정하였다.
《천안》호침몰사건에 대한 언론검증위원회는 당국의 《조사결과》발표에 대해 과학자들과 함께 다섯달가까이 검증한 다음 《더이상〈버블제트〉(수중에서 폭약이 터지면서 선체를 파괴하는 방식)는 없었다.》는 종합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천안》호사건을 조사한 로씨야조사단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판단할 아무러한 근거도 찾을수 없다.》고 실토하고 합동조사에 망라되였던 스웨리예조사단도 《북소형잠수정의 소행》이라는 립장을 공개석상에서 보류하였으며 중국,도이췰란드,로씨야,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천안》호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주장해나서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당국은 《민군합동조사단》의 《최종보고서》에서 제시한 증거와 론리들이 언론검증위원회를 비롯한 단체와 전문가들에 의해 모두 반박당하고있지만 아무런 해명자료와 새로운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귀먹은 벙어리흉내만 내고있다.
여론들은 리명박일당이 당시 《산에서 고래를 만난격의 대발견》이라며 자화자찬했던 폭발물질립증도 국제과학계에 내놓지 못하고 정부에 부역했던 조사성원들의 말잔치로 끝나 결국은 론문통과도 안된 꼴불견이 됐다고 지적하면서 《천안》호폭침이라는것은 들판에 매놓은 황소가 영각소리까지 내며 웃을 일이라고 비평하고있다. 그러면서 재조사할 근거는 충분하지만 《당국이 한사코 회피하는 의지만 보이고있다.》고 조소하고있다.
《천안》호침몰사건은 시간이 가면갈수록,《북소행》설을 떠들어대면 댈수록 우리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는것만 증명될것이며 그 모략의 흑막을 폭로하는 의혹과 불신만 더 무성해질것이다.

2. 《천안》호침몰사건을 북남대결에 악용한 용납 못할 망동

력대로 대결광신자들은 례외없이 모략과 날조를 자기의 생존방식으로 삼아왔다.
사건발생초기 우리 군대는 비록 침몰된 함선이 남측 군함이고 괴이하게도 장교들은 무사하고 46명의 애젊은 사병들만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이 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될 불상사로 간주하고 이에 유감을 표시하였다.
남조선당국에서도 사건발생시 《북의 특이동향》이 없은것으로 보아 《북이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공언하였으며 실지 정세가 긴장할 때에 실행하는 《대북》정보감시태세 《워치콘》도 가동시키지 않았다.
사고가능성으로도 백령도부근의 수많은 기뢰부설에 따른 《기뢰에 의한 사고》와 《천안》호가 낡아 《자연피로파괴》였다고 하였다. 사고수역의 얕은 수심때문에 잠수정의 기동이 어려운 대신 어뢰는 쉽게 탐지될수 있다면서 《어뢰공격에 의한 사고》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에서 조심스럽게 울려나온 《북소행》설은 점차 《북의 직접개입》설로,공공연한 《북 어뢰공격》으로 확대되면서 모든것이 우리와 침몰함선을 련결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우리와의 련관을 부정할수 있는 증거들은 조사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였다.
리명박일당은 밀실에서 《원인발표-대통령담화-국방부성명》이라는 각본을 짜놓고 여느날도 아닌 《지방선거》를 위한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첫날에 《천안》호침몰원인을 《북 어뢰공격》으로 매도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해명하자는 우리의 원칙적인 립장이 내외에 천명된 후 궁지에 빠지게 된 리명박이가 직접 공개석상에 나타나 그 무슨 《대국민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그가 발표한 《대국민담화》는 날조극,모략극의 정체를 은페해보려는 서툰 연극이였고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광신자의 악담이였으며 사건해명보다는 우리에 대한 그 무슨 《응징》과 《보복》,국제사회를 통한 《제재》를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기도의 산물이였다.
《주요전군지휘관회의》라는 전쟁모의판에 머리를 내민 리명박이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처할것》이라고 반공대결의 열을 올린데 이어 수하졸개들이 덩달아 《단호한 응징》과 《응분의 대가》를 줴쳐대며 대결광기를 부려댔다.
군부는 함선침몰일을 《치욕의 날》이라고 고아대면서 서해상에서 미제침략군 핵잠수함의 참가하에 대규모련합잠수함훈련을 강행하였으며 전연일대에서 반공화국심리전방송을 재개하였다.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내몰아 우리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호가 침몰되였다는 엉터리동영상까지 제작하여 살포하도록 하였으며 우리 선박들의 제주해협통과 불허,개성공업지구사업을 비롯한 북남경제협력교류의 전면차단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특히 리명박일당은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치면서 《천안》호침몰사고가 《북에 의한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회부하여 《테로지원국재지정》 등 국제적제재포위망을 실현하기 위해 날뛰였으며 그 대가로 아프가니스탄파병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양보도 서슴지 않았다.
《북소행》설에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좌익빨갱이》,《친북》으로 몰아댔으며 《조사결과》를 비방하거나 집회를 벌리면 가차없이 진압해버렸다. 나중에는 과학적인 론거밑에 의혹을 표시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지어 저들의 날조극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 《북편들기》,《북감싸기》라고 삿대질까지 해댔다.
동족대결이 얼마나 골수에 뱄는가 하는것은 통일부장관이였던 현인택이가 며칠전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공동안보쎄미나르》라는데서 《〈천안〉함피격 4주기가 됐으니〈5.24조치〉를 조금 완화하는게 어떠냐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줴쳐대면서 동족대결만이 살길이라고 한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이 무모한 대결광기는 미국상전의 적극적인 부추김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미국은 《천안》호가 침몰되기 바쁘게 우리 군대가 관여했다는 여론을 조성하였는가 하면 남조선당국의 조사과정에 대해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느니,《북 어뢰공격》발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느니 하면서 《대북》적대와 강경대결에로 적극 떠밀어주었다.
남조선당국이 《천안》호침몰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그를 비호하는 미국의 성명이 뒤따랐으며 리명박의 《대국민담화》가 발표되면 그를 두둔하는 미국의 지지립장이 공개되였다.
미국은 워싱톤에서 국무성과 국방성,중앙정보국의 악명높은 모략사환군들로 꿍꿍이판을 벌려놓고 필요한 정책공조와 협력유지립장을 꺼리낌없이 공개한것으로도 부족하여 허울만 남아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사건현지에 대한 《특별조사단》을 파견하게 하는 광대극을 놀아대게 하였으며 이미 조락되여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정전위원회》라는 유령기구를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는 기만극도 공동연출하였다.
동시에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8군사령부를 《전쟁수행사령부》로 전환하는데 따른 북침대비태세에 돌입하면서 정세를 인위적으로 격화시키였다.
《천안》호침몰사건은 추악한 야욕과 흉심밑에 동족을 모해,압살하기 위한 리명박일당과 미제상전과의 치졸한 모략극으로 북남관계사에 특대형범죄행위로 기록되였다.

3.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해명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시종일관한 성의와 노력

동족간에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시킨 민족의 재앙거리인 《천안》호사건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는 그가 북남관계의 개선을 바라는가,악화를 노리는가를 규정짓는 척도로 된다고 말할수 있다.
《천안》호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북남관계사가 그것을 실증해준다.
우리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북남관계가 《천안》호사건으로 하여 더욱 악화된 국면을 타개하고 민족적단합과 평화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갈 일념밑에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남조선당국이 아무런 물증도 없이 침몰원인이 우리의 어뢰공격에 있는것처럼 날조된 첫 《조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고 내외여론을 오도하던 그 때에 우리 국방위원회는 대변인성명에서 진상조사를 위한 검열단을 남조선현지에 파견하겠다는 공식립장을 밝히였으며 인민무력부장명의로 괴뢰국방부장관에게 직접 공식서한을 내보내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남측이 우리를 걸고든것만큼 피해자로서의 초보적인 권리이며 더우기 북남간에 이루어진 법적요구이기도 하였다.
불가침에 관한 북남기본합의서 제2장 10조에는 쌍방사이에 발생하는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대하여 명백히 밝혀져있으며 부속합의서 제2장 8조에도 쌍방합의서를 위반하는 사건에 대하여 공동조사를 하여야 한다고 지적되여있다.
남조선당국이 《천안》호사건을 빗대고 동족대결정책의 극치인 《5.24대북조치》라는것을 내놓고 북남관계를 완전파탄에로 몰아갔을 때에도 우리는 여러차례나 남측에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으며 북남고위급군사회담을 개최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과학적으로 해명할것을 제의하였다.
여기에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사건현지에 파견하여 함선침몰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초기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조건에서 북남고위급군사회담을 열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대결이 아닌 대화로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해결하려는 우리의 요구는 또다시 거부당하였다.
리명박일당의 대화거부자세가 명백한 조건에서 우리는 부득불 조미군부장령급회담을 개최하여 《천안》호사건을 다루기로 하였다.
2010년 7월 15일부터 10월 27일까지 7차에 걸쳐 진행된 판문점조미군부대좌급실무접촉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미군측은 앞에서는 우리의 합리적인 제안과 문제해결방도에 관심이 있는듯이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문제해결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시간을 끌었으며 이 사건을 《국제화》하는것으로 리명박일당의 유엔안전보장리사회 회부책동에 편승하여 《북소행》설을 기정사실화해보려고 하였다.
우리는 너무나도 편견적이고 불손한 미군측의 행위에 높은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이기 바쁘다면 《북소행》설을 확증하는데 리용된 증거물들을 판문점에 가지고나와 공동조사하자는 아량있는 제안도 내놓았다.
미군측은 이 최종적인 요구를 더는 회피할수 없게 되자 접촉을 일방적으로 결렬시키는 무례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내놓은 국방위원회 검열단의 현지파견제의도,북남고위급군사회담제안도,판문점조미군부장령급회담제안도 성사되지 못하였다.
막아서는 난관과 장애도 무릅쓰고 《천안》호사건을 해결하여 북남관계문제를 기어이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그 이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우리는 극악무도한 동족대결책동의 연장선우에서 감행된 남조선군호전광들의 연평도포격도발로 정전직후 처음으로 북과 남사이에 불과 불이 오가고 연평도가 통채로 불바다로 되였던 그 첨예한 전쟁접경속에서도 2011년 2월 8일과 9일 북남관계개선의 인위적인 장애물을 제거할 순수한 목적밑에 북남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안하여 실현하는 대범한 용의도 보여주었다.
남조선당국이 불순한 흉심밑에 2011년 5월 베이징비밀접촉을 제안해왔을 때에도 탓하지 않고 북과 남,해외의 온 민족이 충분히 납득할수 있는 사건해결의 합리적인 방도를 내놓으면서 다각적이며 신축성있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온갖 성의를 다 보여주었다.
사실 리명박일당이 북남비밀접촉을 요구해온것은 북남관계를 전면적으로 파탄시킨 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어리석은 속타산에서였다.
우리는 원래 리명박일당의 체질화된 동족거부감과 병적인 대결본색에 대해 알고도 남았지만 그들이 《천안》호사건과 연평도포격전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립장을 밝히면서 비밀접촉을 가지자고 여러차례나 제안해온것만큼 이 기회에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갈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를 최종확인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에 응하게 되였다.
그러나 비밀접촉과정에 나타난 그들의 태도는 민족적화해와 단합,평화와 긴장완화를 바라는 시대와 겨레의 요구에는 아랑곳없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보려는 오직 한가지 흉책실현에만 집착되여있었다.
리명박과 그 일당이야말로 앞뒤가 다른 철면피한들이였고 기만과 위선으로 민족을 우롱해온 역겨운 인간추물들이였다.
우리가 기울여온 진지한 노력과 아량있는 태도는 미국상전의 조종을 받은 리명박일당의 고의적인 훼방으로 하여 허사로 되고말았다.
만약 우리가 내놓은 건설적이며 합리적인 모든 제안들이 다 성사되였다면 《천안》호사건의 진상은 털끝만한 의혹이나 단 하나의 미결건도 없이 이미 세상에 명명백백히 밝혀졌을것이다.

4. 《천안》호침몰사건이 빚어낸 동족대결의 악순환을 단호히 끝장내야 한다.

온 민족의 기대와 념원에 맞게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과학적으로 공명정대하게 끝까지 밝혀야 한다는 우리의 립장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래일도 변함이 없다.
유구한 반만년민족사를 자랑하며 한강토에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겨레가 외세에 의해 강요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쓰라린 비극을 겪고있는것도 가슴아픈 일인데 무고한 젊은이들까지 수장시키면서 동족대결을 획책한 범죄자들을 반드시 찾아내여 민족공동의 이름으로 준엄한 철추를 내려야 한다.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을 바란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천안》호사건해결을 위해 내놓은 모든 제안들을 지체없이 받아들여 실현하는 정책적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로, 남조선당국이 아직까지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계속 떠들어댈 심산이라면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무조건 받아들여 사건의 진상부터 명백히 조사공개하여야 할것이다.
동족대결의 인위적산물인 《천안》호사건으로 하여 초래된 불신과 반목질시,적대감과 대결을 한시바삐 바로잡는것은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선차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로 나선다.
우리는 현존하고있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지금이라도 남조선에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판문점이나 기타 합의되는 장소에 《천안》호침몰사건과 련계된 모든 물증들을 내놓고 세계앞에서 그 진상을 명쾌하게 해명할 의지도 있다.
《천안》호사건의 진상이 영원히 흑막속에 가리워지는가 아니면 밝혀지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
만약 진정으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루려 한다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것이며 반대로 이 사건을 동족대결과 전쟁책동에 계속 악용하려는 흉심을 품고있다면 언제가도 그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을것이다.
남조선당국은 북남사이 대화를 통하여 신뢰를 쌓고 발전적인 북남관계를 이루어나가겠다는 귀맛좋은 언사를 늘어놓는데만 그치지 말고 모략과 날조로 일관된 동족대결의 흑막을 대담하게 밝혀내겠다는 실천적의지를 보여야 한다.
둘째로, 우리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받아들일수 없다면 다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떠들지 않겠다는것을 공식 확약하여야 할것이다.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파견하겠다는 검열단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는것은 초보적인 상식도 결여된 자가당착적인 행동이다.
온 세계가 평화와 안정을 지향해나가고있는 때에 유독 우리 민족만이 한줌도 안되는 대결광신자들의 서푼짜리 모략에 말려들어 적대와 대결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는것은 참으로 통탄할 현실적비극이다.
동족대결의 악몽을 털어버리지 못하면 북과 남은 언제가도 평화번영의 길에 들어설수 없으며 조선반도는 영원히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수 없다.
민족적화해와 평화번영의 대세에 역행하여 치졸한 모략극을 동족대결에 악용하는것은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
남조선당국은 동족대결광들의 모략과 날조극을 그대로 답습하는 《인간앵무새》로 되여도 안되며 미국상전의 날강도적인 조종대로 움직이는 《미국산로보트》가 되여서도 안된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천안》호사건과 같은 반공화국대결광증에 매달린다면 남조선당국은 민족사에 특대형모략극날조의 원흉,천하에 둘도 없는 악질대결광,통일의 훼방군인 또 다른 리명박일당이 될것이다.
《천안》호사건과 관련한 여러가지 의혹을 공명정대하게 밝히기 위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을 거론해대지 말라는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주장이다.
셋째로, 현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개선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념원에 맞게 불미스러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여야 할것이다.
예로부터 과거에 구속되여있으면 전도가 없고 앞을 내다볼 때만이 밝은 미래가 펼쳐진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현 남조선집권자가 선거공약때부터 리명박과의 《차별화》를 표명한데 대해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있다.
그가 누구든 극악무도한 동족대결정책으로 화해와 협력의 북남관계를 대결과 전쟁국면에로 몰아간 리명박의 전철을 절대로 밟지 말아야 한다.
북남관계사를 돌이켜보면 설사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호상 책임을 따지고 사죄를 요구하기전에 회담탁에 마주앉아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지향에 맞게 풀어나간 좋은 전례들이 많았다.
외세가 그어놓은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에 의하여 서해교전이 발생함으로써 함선이 침몰되고 사상자가 생겼지만 그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공통된 일념을 안고 휘황한 앞날을 내다보며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위한 새로운 합의들을 련이어 채택한것이 다름아닌 6.15시대,북과 남의 참모습이였다.
북남관계의 발전과정은 상대방이 수락할수 없는 부당하고 일방적인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의견상이는 뒤로 미루고 아량과 선의를 보여온 나날들로 이어졌다.
반대로 북남관계의 대결과정은 반목과 질시,적대와 충돌을 조장시키기 위해 없는것도 날조해내고 부당한것도 정당한것으로 둔갑시키고 그 책임을 대방에게 무작정 전가시키는것으로 일관되여왔다.
《천안》호사건을 더이상 북남관계개선을 막아나서는 인위적인 장애물로 남겨두어도 안되며 긴장완화의 걸림돌로 방치해놓아도 안된다. 북남관계개선과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바란다면 리명박일당이 《천안》호사건과 관련하여 취하였던 《5.24대북조치》와 같은 모든 동족대결조치들을 대범하게 철회하여야 한다.
력사는 말이 없다.
그러나 정의와 불의,진리와 허위를 순간순간 놓침이 없이 자기 페지에 정확히 기록하고 후세에 영원토록 소리쳐 전하고있다.
남조선당국은 기존의 구태와 사고에서 벗어나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지향에 부합되게 현명한 정책적의지를 발휘하여야 할것이다.

주체103(2014)년 3월 26일
평 양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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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쏜 뒤 서 있는 안중근... 신을 보는 느낌"

[나만의 특종 (18)] <영웅 안중근>의 3·26 순국

14.03.26 12:04l최종 업데이트 14.03.26 13:27l

 

 

2014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기념일이다. 나는 이 날을 기념하고자 그분의 생애에서 가장 장쾌했던 1909년 10월 26일 의거와 가장 거룩했던 1910년 3월 26일 순국을 재구성하였다. 나는 의거 100주년 기념일 날인 2009년 10월 26일부터 아흐레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장을 그대로 추적한 뒤 순국 100주년 기념일 2010년 3월 26일 <영웅 안중근>을 눈빛출판사에서 펴냈다. 이 기사는 그때의 취재노트를 다시 펼쳐 2회로 축약, 그날의 장쾌한 의거와 거룩한 순국의 모습을 무딘 필치로 그려보았다. - 기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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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수감된 감방의 책상과 의자. 여기서 숱한 유묵을 남겼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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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5일 저녁

1910년 3월 25일 저녁, 뤼순감옥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중근에게 귀띔을 했다. 

"내일 오전에 형 집행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하얼빈 일본영사관에서부터 안중근을 호위하고 뤼순감옥 수감 동안 내내 감시해 왔다. 안중근은 그 말을 듣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동양평화론은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안중근은 동양평화론 탈고 때까지 형 집행을 연기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의 뜻이 아닐 거라고 곧 마음을 추슬렀다. 안중근은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긴 묵상에 잠겼다. 사형수답지 않게 그의 마음은 명경지수로 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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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을 떠나기 직전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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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아침

1910년 3월 26일 날이 밝아왔다. 감방 창문 밖으로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중근은 예삿날과 마찬가지로 몸가짐을 가다듬은 뒤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이생에서 마지막 아침밥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간수 지바가 찾아와 머뭇거렸다. 안중근이 눈치를 채고서는 물었다.

"어제 부탁한 것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쓰지요."
"감사합니다."

지바는 고개를 숙여 예를 드리고는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책상 위의 벼루에 먹을 갈았다. 안중근은 뤼순감옥에 수감된 뒤 숱한 글씨를 남겼다(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200여 점을 썼다고 하는데 현재 확인된 것은 50여 점이다). 그때 안중근의 머릿속에는 문득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8자가 떠올랐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은 마음속으로 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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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마자막으로 쓴 유묵(안중근기념관 소장).
ⓒ 안중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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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이것을 위해 오늘까지 살아왔던 거야.'

안중근은 붓을 들고는 온 정성을 다해 힘차게 써내려갔다. 

爲國獻身軍人本分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아주 통쾌했다. 마치 농부가 추수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는 흐뭇한 심정이었다. 아니 목동이 양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평화로운 심경이었다. 군인이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뿌듯한 마음이었다. 

안중근은 온갖 정성을 다한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왼손에 먹을 묻힌 뒤 낙관을 찍었다. 

"신품(神品)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지바가 감동하면서 말했다. 

"그동안 고마왔소."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뒤 지바는 뤼순감옥 근무를 마치고 간수직을 퇴직했다. 지바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면서 그의 집 한편에 안중근의 반명함판 사진과 이 유묵 족자를 신주처럼 모셨다. 

그는 그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 1944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도 남편을 따라 아침저녁 안중근의 사진과 유묵 앞에서 예를 드렸다. 그들 부부는 후사가 없자 조카 미우라를 양녀삼아 이 일을 잇게 했고, 미우라는 뒷날 이 유묵을 한국 안중근기념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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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가족, 부인 김아려(마리아) 여사와 큰 아들 분도(오른쪽), 그리고 둘째 준생(안 의사 의거 직후 하얼빈에서).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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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안중근은 형장을 가기 전에 두 아우 정근, 공근을 면회했다. 안중근은 담담한 말로 아우들에게 유언을 받아쓰게 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은 두 아우가 형의 사형 집행 전 마지막 면회임을 알고 비통해 하자 나무랐다.

"나는 티끌만한 상심도 없는데 너희가 왜 그러냐?"

그 말에 아우들도 마음을 가다듬자 차분한 목소리로 일렀다.

"오직 늙으신 어머님께 효도를 다하라. 앞으로 정근은 공업에 종사하여 한국공업의 후진성을 벗어나는데 이바지해 주고, 공근은 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들 분도를 꼭 신부로 만들어 달라."

안중근은 두 아우와 마지막 면회를 마치고 감방에 돌아온 뒤 어머니가 동생 편에 차입해준 흰 명주저고리와 검정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런 뒤 그 위에 흰 두루마기를 걸친 다음 이승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안중근은 두 간수가 양팔을 잡고 이끄는 대로 교형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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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 3. 26. 10시 직전으로 안 의사가 간수의 안내로 의연하게 교형장으로 가고 있다.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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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구리하라(栗原貞吉) 전옥이 사형집행문을 낭독한 다음 마지막 유언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리 대한국이 독립해야 동양 평화가 보존될 수 있고, 일본도 위기를 면하게 될 것이다."

안중근의 말이 끝나자 형 집행 간수가 백지를 접어 두 눈을 가리고 그 위에 흰 수건을 둘러맸다. 그런 뒤 안중근을 부축, 계단을 오르게 하여 교수대 위에 세웠다. 

"잠시 기도할 시간을 달라."

구리하라 전옥이 이를 허락하자 안중근은 교수대에서 3분 남짓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가 끝나자 안중근의 목에 밧줄이 드리웠다. 그때가 오전 10시 4분이었다. 곧 흰 천이 내리고 철거덕 교수대 밑 마루가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그로부터 15분 뒤, 뤼순감옥 전속의사가 바닥에 떨어진 안중근 의사의 절명을 확인했다. 

사형 집행 후 안중근의 두 동생은 뤼순감옥 측에 안 의사의 유해 인도를 요구했지만 끝내 일본은 이를 들어 주지 않았다. 안 의사의 유해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기에 때문이었다.

안중근의 유해는 송판으로 된 관에 안장된 채 그날 오후 뤼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날 새벽부터 내린 보슬비는 하관할 때까지도 내렸다. 이천만 대한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에게 흘리는 눈물이었다. 뒷날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 의사의 총탄을 발에 맞았던 다나카 세이지로 만철이사의 회고담이다. 

"나는 당시 현장에서 10여 분간 안중근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의연히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신(神)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음산한 신이 아니라 광명처럼 밝은 신이었다. 그는 참으로 태연하고 늠름했다. 나는 그같이 훌륭한 인물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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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의사가 순국 후 묻혔을 것으로 보이는 옛 뤼순감옥 묘지, 대련 안중근연구회 박용근 회장이 그 당시 뤼순감옥 측의 사형수 시신 처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안 의사 유해를 특별히 관리해 오지 않은 한, 그것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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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낙조

그날 안중근 의사의 하관을 마치자 날씨가 활짝 갰다. 그날 해가 질 무렵에는 뤼순 앞바다가 저녁놀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늘이 한 영웅의 순국을 기리고자 베푸는 장엄한 낙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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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옥산에서 내려다 본 천연 요새 뤼순항으로 근세 중, 일, 러시아 3국의 각축장이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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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시인 조지훈은 안중근 의거 그날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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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 지음, <영웅 안중근>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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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 것은 권총이었지만
그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당신의 손가락이었지만

원수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            
성낸 민족의 불길이었네.
온 세계를 뒤흔든 그 총소리는

노한 하늘의 벼락이었네.


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차라리 홍모(鴻毛)와 같이
가슴에 불을 품고 원수를 찾아
광야를 헤매기 얼마이던고

그 날 하얼빈 역두(驛頭)의
추상같은 소식
나뭇잎도 우수수

한때에 다 떨렸어라.

당신이 아니더면 민족의 의기를
누가 천하에 드러냈을까
당신이 아니더면 하늘의 뜻을
누가 대신하여 갚아 줬을까
……….
- <안중근 의사찬(安重根 義士讚)>



안중근 의사 만세!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만세!
영웅 안중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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