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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탄저균 훈련, 2013년부터 용산기지 포함 본격 시행

[단독] 주한미군 탄저균 훈련, 2013년부터 용산기지 포함 본격 시행

주한미군 “이번 훈련이 처음” 해명...2013년 “한국 내 최소 5곳에서 실험” 발표와 엇갈려

최근 불거진 주한미군의 '탄저균 사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이 이미 2013년부터 탄저균 등 생화학 무기와 관련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이번에 오산기지에서 처음으로 훈련을 실시했다는 해명은 사태의 파장을 우려한 거짓일 것으로 보여 또 다른 파문이 예상된다.

'민중의소리'가 최근 확보한 관련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이미 2007년을 전후하여 미군 '생화학방어합동참모국(Joint Program Executive Office for Chemical and Biological Defense (JPEO-CBD))'을 중심으로 북한의 생화학 공격이나 예상치 못한 전염병 발발에 대비하기 위해 특히, 주한미군의 방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작업은 미 육군의 '에지우드 생화학센터(Edgewood Chemical Biological Center(ECBC))'가 주관이 돼 이른바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JUPITR))'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한국명:주피터)로 추진됐다.

'주피터 프로젝트', 한국 내 최소 5곳에서 실시 드러나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맡은 책임자인 에지우드 센터 소속 피터 엠마뉴엘 박사가 이끄는 팀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한국에 상주하다시피 해가며 주한미군에 있는 각 연구소에 최근 노출 사건이 발생한 탄저균 등 생화학 물질의 탐지 및 분석 병력들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교육과 관련 최신장비 도입을 마친 뒤, 본격적인 첫 주피터 실행 야전 훈련을 2013년 6월 17일과 23일에 공식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훈련은 현재 탄저균 사건이 발생한 주한미군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용산 미군기지 그리고 미 '육군공중보건국(USAPHC)' 산하 연구소 등 한국 세 군데 지역 이상에서 최소 5곳이 넘는 한국 소재 미군기지 연구소에서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3년 6월 주피터 계획이 오산, 용산 등 미군 기지 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을 보여주는 자료
2013년 6월 주피터 계획이 오산, 용산 등 미군 기지 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을 보여주는 자료ⓒ미 ECBC 공개자료
피터 박사 일행이 2013년 전 2년 동안 한국 (주한미군 기지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피터 박사 일행이 2013년 전 2년 동안 한국 (주한미군 기지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미 ECBC 공개 자료

당시 훈련과 관련하여 이미 미 육군 관계자들은 2014년 3월 12일 발행된 미 육군 관보를 통해 이 주피터 프로젝트가 한반도에서 대단히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JUPITR program takes shape on Korean Peninsula)고 강조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ECBC의 제임스 라이트 생물학자는 "일대일 주피터 방법은 혁신적(innovative)이며 그것은 탐지병들이 즉시 결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연구소 과학자로 참여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같은 해 9월 12일 미 육군 관보를 통해 USAPHC 연구소포트폴리오 책임자인 겔리 할버슨 대령은 "한반도에 새로운 환경 실험실뿐만 아니라 총 6개의 USAPHC 연구소가 설치되고 있다"며 "모든 연구소들은 같은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어 어떤 연구소가 분석을 하든 적합한 결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마디로 이미 2013년 첫 실전 테스트 등 훈련을 통해 주피터 프로젝트가 안착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와 관련 한반도에서 관련 미군 연구소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 이미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피터 프로젝트에 관해 이를 총괄한 ECBC의 피터 박사는 한반도에서 공식 훈련을 하기 얼마 전인 2013년 6월 4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주피터 프로젝트의 핵심은 생물학 분석 능력(BICS)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5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표본들을 많게는 24시간 안에 짧게는 4~6시간 안에 표본의 독성 유무 등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미 관련 최신 장비가 다 도입되어 있는 한국 미군기지에서 관련 병사들이 해당 샘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분석해 대응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하려면 당연히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표본들이 한국으로 보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탄저균 표본을 비롯한 수많은 생화학 표본들이 주한미군 측에 전달되었다는 것에 관한 또 다른 방증이다.

한국으로 이송된 표본 숫자 방대할 것으로 추정돼

2013년 주피터 관련 주한미군 병사들이 탐지 장비를 설치하고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2013년 주피터 관련 주한미군 병사들이 탐지 장비를 설치하고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미 육군 공개 사진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주한 미 공군이 관할하는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용산기지 등 주한미군 관할 다수의 연구소에서 관련 실험과 훈련을 이미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한 연구소에서 약 5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표본들을 24시간 안에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주피터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드러나 그동안 한국에 전달됐던 검사 표본들의 숫자가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미 국방부는 이번 탄저균 사태를 지난 22일 인지하고도 이 사실을 우리 정부에는 사건 발생 5일이나 지난 27일에 통보했다고 민중의소리에 공식 답변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주한미군이 이미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런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주한미군이 이번 사건이 터지자 이를 오산기지로 한정하고 "처음으로 실시한 훈련(This was the first time the training has been conducted.)"이라고 해명한 것은 이번 사건을 축소 내지 은폐하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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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 그리운 대동강맥주


[친절한 통일씨] 대동강맥주, 5.24가 앗아간 또 하나의 즐거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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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01: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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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해당화식당 내 대동강생맥주집(지난해 10월 31일). [캡쳐사진 - 재미동포연합]

2000년 5.24 대북제재조치와 함께 사라진 것 중 요즘 같이 때이른 더위에 더욱 진한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것이 있다.

한 때 국내에도 반입·시판돼 인기를 누렸던, 그러나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대동강맥주’이다.

대동강맥주는 가장 가까이는 최근 재미교포 신은미 씨가 토크콘서트에서 했던 ‘대동강맥주가 맛있더라’는 발언을 타고 몇 년 만에 또 한 번 인구에 회자된, 그닥 새롭진 않은 소재이다.

2008년 3월 <로이터통신>은 평양에서 대동강맥주를 맛본 일부 맥주전문가들을 빌어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적은 없지만 아주 훌륭한 맥주”라고 소개했다.

당시 로이터가 전한 대동강맥주 시음평가는 미묘한 반향을 일으켰다.

“달콤하면서도 중후한 무게감이 느껴진 뒤 입 안에서 살짝 감도는 쓴맛의 여운…. 남한에서 대량 생산되는 맥주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시음해 본 외국인들의 평가.”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맥주 맛은 따분하다.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도 맛이 없다”는 ‘충격적인’ 보도로 국내 맥주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2013년 3월 30일부터 8일간 평양에서 맥주 양조장들을 방문한 미국인 조시 토머스 씨는 그해 9월 19일 <미국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대동강맥주는 햄버거로 치면 고급 수제 햄버거, 다른 아시아 나라 맥주들은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다”는 ‘대동강맥주 찬양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미국 소재 북한 전문 여행사인 ‘우리투어스’는 지난해 1월 대동강맥주 양조장 등을 돌아보는 관광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영국 <인디펜던트>도 연달아 대동강맥주 시음기를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2월 7일자 ‘이런 경영전략이 세계적인 우리의 것을 창조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대동강맥주공장의 품질관리활동을 평가하면서 대동강맥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소개한 후 ‘자본주의 세계에 던져진 맥주폭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대동강맥주 종류별 특징

   
▲대동강맥주의 번호별 주요 특징 안내판. [캡쳐사진 - 재미동포연합]

지난해 12월 22일 재미동포연합은 방북 취재기사에서 지난 2013년 4월 개관한 평양 해당화관을 찾아 식당 안에 있는 대동강맥주집에 들러 이곳에 비치돼 있는 대동강맥주의 종류별 특징을 설명한 안내판을 촬영해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맥아(麥芽, 몰트)와 쌀의 배합비율과 첨가한 향의 종류에 따라 7가지로 나뉜다.

알콜 성분은 4.5%에서 6% 사이이며, 원액함량(원엑스)은 대개 10~11%이고 6번 흑맥주만 15%이다.

1번 맥주는 알콜 도수 4.5%에 ‘100% 보리길금(맥아)로 만들었고 길금(맥아)향이 짙고 쓴 맛이 적당하여 진한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맥주’이다.

2번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70%와 흰쌀 30%로 만들었으며,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기본 품종의 맥주로써 소비자의 호평이 좋다’고 소개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소비자가 경험해 본 병맥주가 주로 2번 맥주이다.

3번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50%와 흰쌀 50%를 혼합해 만들었다. ‘흰쌀의 깨끗하고 상쾌한 맛과 맥아의 부드러운 맛, 쓴맛이 조화롭게 겸비되어 유럽과 아시아의 맥주품격을 다 같이 갖춘 맥주’이다.

4번 맥주는 알콜 도수 4.5%에 맥아 30%와 흰쌀 70%를 혼합, ‘맥주 고유의 맛을 가지면서도 흰쌀의 향미, 깨끗한 맛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주정과 쓴맛이 낮을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맥주’이다.

여성용으로 개발된 대동강맥주 5번은 100% 흰쌀로 만든 알콜 도수 4.5%의 맥주. ‘색이 매우 연하고 거품이 좋으면서도 흰쌀 고유의 향미와 호프맛이 조화롭게 어울린 특이한 맛을 가진 것으로 하여 여성들의 기호에 특별히 맞는 맥주’라고 설명되어 있다.

흑맥주인 6번과 7번은 진한 맥아에 흰쌀을 넣어 만든 맥주.

원액함량(원엑스)15%, 알콜 도수 6%로 제일 독한 대동강맥주 6번은 커피향을 첨가한 흑맥주. ‘맛이 진하고 풍부하며 강한 커피향과 높은 주정, 쓴맛을 가진 전형적인 흑맥주’로 분류된다.

쵸콜렛 향을 첨가한 흑맥주인 7번 맥주는 ‘기본 맛이 연하고 상쾌하면서도 뚜렷한 초콜렛 향과 부드러운 쓴 맛의 흑맥주로써 새 세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흑맥주’이다.

안내판에는 대동강흑맥주인 6번, 7번 맥주가 ‘맛이 독특하며 풍부한 멜라노이딘 성분의 항산화 작용으로 하여 노화방지에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동강맥주와 함께 제공하는 안주거리는 프렌치 프라이(굵게 채를 썰어 튀긴 감자)와 ‘탈피’라고 불리는 말린 황태.

특히 노릇노릇한 ‘탈피’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새콤한 겨자 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왜 대동강맥주인가?

그렇다면 대동강맥주에 쏠리는 호평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재료선택부터 생산관리,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품질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 때문이라고 북측은 말한다.

올해 2월 재일 <조선신보>는 대동강맥주공장을 방문해 대동강맥주가 외국인들로부터 ‘동방제일맥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며, 그 인기비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신문에 따르면, 먼저 대동강맥주에서 일하는 품질관리과 직원들은 원료산지인 황해남도(보리), 양강도(호프) 농장에 직접 나가서 품질을 따져가면서 수령하고, 특히 호프는 진공 포장해 매월 정기검사를 진행할 정도로 원료 보관 및 관리에도 공을 기울인다.

즉, 좋은 재료를 철저한 관리하에 제품생산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 맛과 향의 설계를 위해 세계적인 맥주의 추세와 ‘인민들의 기호에 대한 연구’를 선행하며, 시제품을 만든 후에는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한 생산 공정별 기술관리를 모두 진행한 후에야 제품을 출시한다.

그동안 경영전략의 중심을 제품의 질 향상에 두고 과학적인 품질관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는 것을 강조한 평가이다.

이로 인해 대동강맥주공장은 올해 1월 북한내에서 최우수제품에 부여하는 ‘12월15일품질메달’을 받았다.

곧 대동강맥주 병맥주에는 ‘12월15일품질메달’ 도안이 함께 인쇄된 제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 대동강맥주공장은 지난 2002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속에 조업을 시작한 이래 2007년 이후 품질관리를 위주로 경영관리를 전환했으며, 2008년과 2010년 12월에 ‘ISO 9001 품질관리체계인증’과 ‘HACCP 식품안전관리체계’를 받았다.

   
▲대동강맥주 생맥주집 전경. [캡쳐사진 - 조선의오늘]
   
▲경흥관맥주집 내부 [캡쳐사진 - 조선의오늘]

대동강맥주의 품질관리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맥주집에서 ‘인민들의 반향을 수집’, 품질개선대책을 세운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평양시내에 150여개의 식당 및 맥주집에서 대동강 상표의 생맥주가 팔려 나가고 있는데, 품질관리과 종업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아무리 맛있는 맥주라도 식당에서 우리가 정한 기준과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본연의 맛을 제공할 수 없다”며 성의껏 돕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속에 생산을 시작한 대동강맥주에 대한 사회적 보장도 특별한 구석이 있다.

북에서는 콩우유, 닭고기 등 식품들과 함께 대동강맥주 운송차들도 통행우선권을 부여받아 이들 차량이 지나갈 때는 교통안전원이 다른 차량을 모두 멈춰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용무보다 대중적 목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북측 매체에는 최근에도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삼삼오오 모여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띨 정도로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북에선 맥주를 ‘청량음료’, ‘대중음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대동강맥주 한잔 쭉 들이킬 수 있을까.

대동강맥주 레이블(Label) 읽는 법

   
▲ 대동강맥주 앞면 레이블(왼쪽)과 뒷면 레이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동강맥주에도 그만큼 복잡하지는 않지만 레이블 규칙이 있다.

레이블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처음 보는 맥주라도 언제 생산된 제품인지, 몰트 원액 함량과 알콜도수, 주요 성분 비율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맨 위쪽 가운데 대동강맥주 마크 옆에 표기된 ‘11°’는 몰트 원액함량을 뜻한다. 북에서는 ‘원엑스’라고 말한다. 알콜도수와는 다른 의미이다.
보리함량을 뜻한다거나 마시기 적당한 온도를 적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가운데 위쪽 방향 사선으로 쓰여 있는 대동강맥주 글씨 아래쪽에 표기된 ‘②’는 대동강맥주 1~7번까지 종류 중 2번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이걸 보면 이 맥주는 알콜 도수 5.5%에 맥아 70%와 흰쌀 30%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레이블 왼쪽 위에서 아래로 1,2,3...12까지 쓰여 있는 숫자와 레이블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1,3,5...31까지 쓰여 있는 숫자 옆의 표식을 보고 생산 월일을 알 수 있게 했다.

△레이블 뒷면을 보면 주요 성분과 알콜 도수, 용량과 유통기한 등이 적혀 있다. 앞면 레이블과 함께 읽어보면서 대동강맥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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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103명 전원 패소, 동아일보와 사법부의 추악한 야합

 
[기고]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만인의 상식’으로 인증된 진실을 부정하는가
 
입력 : 2015-06-01  09:56:26   노출 : 2015.06.01  10:00:10
김종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media@mediatoday.co.kr    
 

2015년 5월 29일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또 하나의 암흑의 날’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1975년 3월 17일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일제강점기보다 긴 40년 동안 활동해 왔는데 대법원이 “그런 단체는 애초부터 태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적 사건들인 3·1운동, 4월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의 정당성과 실존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 팔만대장경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동아일보사가 국가(안전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민일영)가 내린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사에) 의견 제출 기회를 제공했다는 자료가 없는 점을 보면 동아일보사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행정소송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동아투위가 2006년에 진실화해위(위원장 안병욱)에 제기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과 언론인 강제해직에 관한 진실 규명 요청’의 결과를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공식 기구로 창설된 진실화해위는 2년여에 걸친 정밀조사를 한 결과를 2008년 10월 21일 동아투위에 통보했다. 요지는 아래와 같다.

정부는 이미 1975년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광고탄압 방식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았던 수단, 즉 광고 수주를 차단하여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사 사주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하였다. 광고주들을  중앙정보부 남산 조사실로 불러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여성동아. 신동아 심지어는 동아연감에까지 계약된 광고를 취소케 하였고,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를 쓰게 하였다. 개인 소액광고주에게까지 이러한 위압을 행사하였다. 광고면이 백지상태로 발간되는 동아일보를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시민들의 격려광고에 대해서도 당국은 조사하여 압력을 행사 하기에 이르렀다. (···) 이는 동아일보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뿐 아니라 언론 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훼손하고 침해한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 8일부터 5월 1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민주공화당 의장 박준규가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으며, 또 이러한 인사 조치에  대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항의농성도 통행금지가 있던 새벽에 정부의 비호 아래 동원된 인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동아일보사는 언론자유 수호에 앞 장선 언론인들을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순응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대량 해임·무기정직시킨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의 광고 탄압으로 인한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동아일보사도 정부의 강압을 기화로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탄압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중앙정보부 및 문화공보부 등 당국은 자유언론실천을 주장하는 기자들을 해임 또는 무기정직 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했고, 복직도 막았으며, 재취업마저 방해하였다. 이는 비판언론과 언론인을 언론계에서 추방·격리시켜야 한다는 유신정권의 언론통제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침내 정부의 치밀한 주도하에 진행된 일련의 탄압조치로 비판언론 거세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자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해제하였다. (···)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사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더욱이 사측은 이후에도 정권의 강압에 의한 해임이라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동조하였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들의 생존권 침해를 초래하였다. (···)

국가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에서 동아일보사 및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사 및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일보사는 비록 정부의 편집권에 대한 간섭과 물리적인 압력, 그리고 광고탄압을 통한 경영상의 압력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되었고,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 피해자인 해직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권고한다.

사법기구가 아닌 진실화해위는 위와 같은 이유로 정부와 동아일보사가 동아투위 위원들에게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의 그런 결정은 동아투위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받아낼 수 없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 때 공식기구의 그런 ‘결정’이 나오자 동아투위 위원 103명은 정부를 상대로 민사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6부(재판장 부장판사 이승호)는 2009년 6월 21일부터 2011년 1월 14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친 공판 끝에 “동아투위 위원들이 진실화해위 결정대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해직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까지는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김영삼 정부부터는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항소하자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부장판사 김용빈)은2011년 7월 20일부터 2012년 3월 23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열린 공판 끝에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으므로 국가는 그 손해를 위자할 의무가 있으나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국가는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동아투위는 2012년 4월 10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언론인들이 1974년 10월 24일 편집국에서 유신정권의 탄압에 맞서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2014년 12월 24일 대법원 제2부(주심 대법관 신영철)는 사실상 원고 전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원고들은 민법상 화해를 한 것으로 보아 소송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한편, 진실화해위에 진상조사를 신청한 50명과 그렇게 하지 않은 53명 가운데 생활지원금을 받지 않은 14명에 대해서만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그 14명에 대해서도 동아일보사가 진실화해위 결정에 관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다면 그 14명은 자동적으로 패소한다는 ‘예고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은 2014년 5월 29일 대법원이 확정한 ‘동아일보사 승소’로 추인을 받았다. 그렇게 됨으로써 동아투위 ‘103인 소송’은 전원 패소로 결말이 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법부의 ‘갈팡질팡’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동아투위 103명이 제기한 국가 상대 민사배상 소송 1심과 2심에서 재판부는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박정희 정권이 동아일보사에 광고탄압을 가하는 한편 사주를 강압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 113명을 강제해직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가 면밀한 조사를 통해 그런 사실을 확인한 뒤 국가와 동아일보사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권유하는 결정을 내리자 동아일보사는 행정소송을 통해 그 결정을 ‘허위사실’로 확정해버렸다.

사법부 안에서 이렇게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이런 사례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유독 아버지의 유신체제를 세습한 박근혜 정권 아래서 ‘사법부의 망나니 칼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언론탄압과 인권유린을 없었던 일로 돌리려는 권력의 ‘기획’에 어용화한 사법부가 순응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동아일보사의 손을 들어준 이튿날인 5월 30일자 동아일보는 8면에 “대법 ‘동아일보 해직사건 과거사위 규명 결정은 잘못’”이라는 제목으로 가로 2단 기사를 내보냈다. 그 회사로서는 희희낙락해야 마땅한 판결이 그렇게 시답잖은 기사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일까?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대량해직 당시 사장인 김상만, 그의 장남으로 사장과 회장을 지낸 김병관, 그의 장남인 현재 사장 김재호에 이르기까지 동아투위 113명 강제해직과 민중의 열렬한 성원을 배신한 행위에 대해 단 한마디 사죄도 하지 않았다. 김재호는 행정소송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을 뒤엎고 집요하게 ‘공작’을 거듭한 끝에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거짓’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동아투위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 사주의 추악한 야합 때문에 거리로 쫓겨난 것이 아니라 광고탄압으로 인한 경영난 때문에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만인의 상식’으로 인증된 진실, 곧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투쟁 때문에 박 정권이 광고탄압을 했고 결국 대량 강제해직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로 만든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그런 죄과와 악업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민주진보세력은 물론이고 당시 격려광고를 통해 열정적으로 민중운동을 벌였던 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부역하고 ‘조·중·동’의 말석에서 권력에 아부하기를 일삼았다. 이제 동아일보사는 사법부의 ‘날라리 판결’을 기화로 ‘동아투위는 없다’고 주장할 것인가? 앞에 적었듯이 동아투위는 40년을 의연하게 싸워온 엄연한 실체이다. 동아일보 사장 김재호는 ‘이 찰라의 승소’를 방패삼아 동아투위를 부정하고 권력에 더욱 아부하는 길로 치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깨어 있는 국민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의 증조부인 친일파 거두 김성수가 동아일보를  ‘국민신문’에서 일가의 사유물로 둔갑시킨 사실을. 그리고 그의 장남 김상만이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대한 민중의 열렬한 성원을 배신하고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사원 113명을 강제해직한 역사를. 또 그의 장남 김병관이 1987년 6월 항쟁 직후 동아투위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가 노태우가 전두환의 후계자가 되자 재빨리 그 손을 거두었던 일을. 그리고 김병관의 아들인 김재호가 동아일보를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고 종편인 채널A를 ‘기레기 방송’으로 전락시킨 죄과를.

양심을 팔아버린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렸든지 간에 동아투위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이 그랬듯이 자유언론을 실천하고, 궁극적으로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동아투위의 영원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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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X파일 라스트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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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5/31 14:14
  • 수정일
    2015/05/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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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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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뉴스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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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31  12:33:28
수정 2015.05.31  12: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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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를 빼앗긴 전세계 동포들을 위한 공식 지하뉴스, 상해임시정부 23회가 지난 주 팟캐스트 포털 사이트 팟빵과 유투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27일 고발뉴스 홍대 이한열 방송센터에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는 <이상호 X파일-황교안 X파일 고발>, <민동기 옥석뉴스-삼성 승계작업, 7부야 8부야?>, <이이제윤 문화방송-TV광고 얼마나 심각하기에> 등을 주제로 토크쇼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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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없는 시장사회의 비극, 그래도 언론이 희망이다”

[특별대담]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핏대’의 정신 살려야… 민주주의에는 종착점이 없다”
 
입력 : 2015-05-27  16:02:51   노출 : 2015.05.31  00:45:04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20년 전인 1995년 5월, 김중배(81) 언론광장 대표는 고 강원용 목사와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함께 미디어오늘 창간특집 좌담을 열었다. 당시 그는 “미디어오늘은 언론에 대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시범도 보여줘야 한다.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비판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미디어오늘 20년에 대한 채점을 부탁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이 대담을 진행했다. 꼬깃꼬깃한 그의 원고에는 쉽게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쓰인 노(老) 기자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미디어오늘, ‘핏대’ 정신 지향했던 언론

신학림 : “1995년 5월 17일 미디어오늘 창간호에 강원용 목사, 최장집 교수와 특별대담을 하셨다. 미디어오늘 20주년을 바라보는 감회를 듣고 싶다.”

김중배 : “미디어오늘 창간 시기는 내가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한겨레신문 갔다가 백수로 살 때다. 권영길 언론노조위원장이 미디어비평지를 창간하고 싶다고 했는데, 창간될 때까지 조금씩 내 나름의 의견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이 처한 어려운 여건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분한 요구나 기대를 하는 것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미디어오늘과 육체적으로 함께 하진 않지만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 원로 언론인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오른쪽)가 지난 25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과 미디어오늘 20주년 특별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창간호에서 김 대표는 언론 비평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에만 저널리즘 비평지를 찾아볼 수 없고, 권력화한 언론을 견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20년 전의 기억을 물었다. 

김중배 : “고인이 된 강원용 목사가 많이 그립다. 그에게는 여러 별칭이 있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은 ‘핏대’였다. 강 목사는 세상의 불의나 반민주 현실에 대해 늘 핏대 올리는 어른이었다. 물론 핏대만으로 세상 어려움이 풀리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어려움을 풀기 위해선 핏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핏대 정신을 쭉 지향했던 언론이다. 앞으로도 지녀야 할 가치라고 본다. 핏대를 출발점으로 해서 한국 언론 문제가 하나하나 풀려가는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신학림 : “창간호 대담을 보면 1995년이 아니라 2015년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언론을 다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고 막막하다.”

김중배 : “20년 전 유럽이나 이런 쪽으로 보면 보수, 중도, 진보 언론이 균형을 이뤘다. 반면, 한국 현대사가 본질적인 변혁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언론 지형은 한 쪽으로 쏠려 있었다. 지금도 대동소이하나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안타까운 건 더욱 비인간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와 진보가 힘을 잃고 보수가 압도해가는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화라는 구호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가 굉장히 거칠고 사납게 세상을 압도해 왔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견제, 개혁 논의와 정책이 더러 꿈틀거리고 있으나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신학림 : “비인간화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중배 : “신자유주의의 자유가 한 쪽에는 압도적으로 부여돼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억압과 착취가 확대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지 않나. ‘닭장에 이리나 늑대를 넣어 놓고 병아리들하고 같이 살라’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평화, 공존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세상 모습 아닌가. 언론이 이러한 뿌리를 응시하지 않으면 가지나 이파리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를 지배하는 언론의 작태 가운데에서도 행위의 주체인 언론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되는 언론사에 종사하면서 종래의 언론 풍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반민주, 반정의적인 언론 행위를 과감하게 자행하는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가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의 질문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80년 광주, 절대 공동체의 전범(典範)

신학림 : “지난 18일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격정적인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살아남은 후배 언론인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김중배 : “꼭 언론인이라고 국한할 필요가 있나. 5·18은 국내 민주화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아랍의 봄에도 일정한 파급을 끼쳤다는 견해도 있고. 광주 시민들이 당초 의도했던 것은 아니겠으나 5월 19일 이후 항쟁 기간 획기적으로 사람 사는 세상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학자는 광주에 대해 ‘절대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절대 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하고 서로 축복하고 모든 사회적 속박과 절대 해방을 경험했다. 모든 시민들은 이 순간 이젠 죽어도 좋다는 극도의 환희를 느꼈고 투쟁은 축제로 변했다.’ 통절의 역사, 아픔의 역사이지만 죽음의 시대의 주검들 위에서 피어난 절대 공동체의 전범(典範)이 5·18이다.”

김 대표가 언급한 학자는 사회학자 최정운 서울대 교수다. 그는 1999년 5·18 진상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 <오월의 사회과학>을 펴냈다. 최 교수는 “그날 시민들이 죽음을 넘어 싸운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고 그들은 절대 공동체를 이루어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중배 : “광주는 민주적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돼야 하며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전범(典範)이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었다. 광주 시민들은 평등했다. 영웅이나 지도자가 나와서 선동하고 주도하는 항쟁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고대 민주 정치에서 연원한 민주주의 근원, 다시 말하면 민중의 ‘자기 통치’, 이것이 단기간이나마 실현됐다. 생존의 처절함, 무고한 민중의 학살, 군부 독재의 잔학사, 그것을 잊어서도 안 되지만 절대 공동체의 전범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거기서 찾아볼 수 있다. 체험하지 못한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이다.” 

신학림 : “선생님은 지난 16일 광주에서 열린 ‘5·18과 언론’이라는 심포지엄에서 5·18과 언론을 생각할 때 ‘35년 전 광주는 밀실이자 봉쇄된 동굴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김중배 : “(외부자, 언론에서 보면) 광주는 명박산성, 근혜산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벽에 갇힌 밀실이었다. 특히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럼에도 시공간과 인간까지 ‘3간’(間)이 차단된 철벽 안에서 언론 행위는 존재했다. 소통도 하고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투사회보’와 ‘민주시민회보’, 민주화 운동의 내용을 담은 팜플렛, 예술인들의 포스터와 연극, 학생들의 외신 인터뷰 등 언론 행위가 있었다. 5·18 항쟁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절대 공동체의 전범을 보았다면, 언론 종사자 시각에선 철저히 차단된  밀실에서 다시 언론이 피어나는 모습을 짚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원형 아닌가.”

신학림 : “5·18 항쟁을 기념하면서도 언론이 당시 기록을 너무 소홀히 한 게 아닌가 반성한다.”

김중배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 중에도 밀실 언론 공간에서 언론 행위를 했던 기자들의 기록이 있다. 물론 해직기자협회에서 단행한 제작거부 투쟁, 언론인의 저항도 충분히 깊게 논의, 연구돼야 한다고 보지만 광주에서 원초적 모형으로서의 언론 행위와 기존 언론인의 기록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깊이 봤으면 좋겠다. 미디어오늘이 나서주길 바란다.(웃음)”

신학림 : “여전히 광주를 폄하하는 이들과 언론이 있다.” (김 대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 의혹’을 주장하는 지만원씨를 비판했다).

김중배 : “명색이 평론가, 학자였다는 사람이 책에다 그런 주장을…. 인민군 몇 백 명이 항쟁을 촉발시키고 무사히 철수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광주 5·18기념재단을 방문했을 때 그 얘기를 한번 꺼내봤다. 역시 광주를 깊이 생각하는 분들답게 비난 대신 한마디 하더라. ‘인민군 600명이 들어왔다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비상계엄하에서 그들을 들어오게 한 전두환 군부의 국방안보는 무엇이냐’는 거다. 안전하게 철수했다는 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의 안보는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당시 복면을 두르고 저항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전사들이 바로 인민군이라고 주장하던데, 이에 명예훼손을 제기하려니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어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이 복면했던 시민들을 찾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나라가 됐나. 인간이 사는 세상인가 싶어 괴롭다.” 

지만원씨와 일부 세력들은 지난해 발행한 ‘5·18 분석 최종보고서’와 대도시 순회강연, 인터넷 등을 통해 북한군이 광주시민을 선동해 폭동을 주도했고, 계엄군 철수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근거로 든 것은 복면 쓴 시민군 사진이었다. 광주시와 5·18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왜곡과 폄하 주장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지난 3월부터 명예훼손 피해자 특정을 위해 ‘복면 시민군 찾기’ 활동을 벌여 왔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 창간20주년 특별 대담을 위해 200자 원고지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왔다. (사진=김도연 기자)
 

박근혜의 동굴 협소해진다

신학림 :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이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김중배 :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 설을 제시하지 않았나. 도킨스를 잘 읽어보면, 거기에 ‘밈’(Meme)이라는 게 있다. 이기적 유전자 충동 촉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요소. 그것이 진화의 동력이면서 결과이고, 다시 새로운 진화의 동인이 되는 역할을 한다. 20억 년, 30억 년 진화를 해온 우리의 인간성이 어떻게 말살됐는가. 도킨스 식으로 말하면, 이기적 유전자의 욕망은 한없이 분출하고 인간의 인간다움을 촉진시키는 밈이라는 요인은 한없이 억압됐다. 그 결과가 아닐까. 언론 종사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권력욕에 완전히 함몰되고 그런 가치관을 체화했다. 그저 정권의 나팔만 불어대는 것이다. 공식적 제도적 언론으로서 그러한 행태가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신학림 : “5월 18일 광주와 서울에서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판단을 여쭈고 싶다.”

김중배 :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세로서 민중항쟁의 기념곡이 됐고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자 정혜신은 박근혜에 대해 ‘부성 콤플렉스’에 갇힌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을 감안해도 비극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굴의 우상을 깨고 모든 사람이 광장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하는 거다. 또 광장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게 언론의 소임인데 현재 언론은 어떠한가. 요즘 보면 소위 수구 언론도 이 문제(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 대해서는 제법 다른 시각을 갖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어떤 분’이 갇혀 있는 동굴이 점점 협소해지는 것 같다.(웃음)”

신학림 : “언제나 선생님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김중배 :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어떤 조사를 보면, 이민을 생각해봤다는 비율이 40%에 달했다. 충격이었다. 모두가 다 이민을 갈 수 없지 않는가.(웃음) 결국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서도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복지도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하고, 평화도, 생태도 그렇다. 민주주의를 확장하다보면 불교적 개념과 맞닿아 있다. 차별 없이 만물에 민주주의가 적용되는 세상, 그런 것이 민주주의 꿈과 이상 아닌가. 민주주의에는 종점이 없다. 민주주의는 진행형일 뿐이지 종착점이 없다.”

신학림 : “지금도 인간성이 말살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저항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다.”

김중배 : “박정희·전두환 군부 독재 시대의 언론은 오늘날보다 억압돼 있었다. 세월호에서 재확인된 ‘받아쓰기’ 관행이 더 횡행했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지금하고는 분명히 달랐다. 언론 종사자 내부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있었다. 언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있었다. 지배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상당히 많은 미디어 집단에서 그런 공감대가 무너졌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저항이 이뤄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강정, 밀양 등. 서울 한복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한다. 이러한 저항이 국부(局部)화한 데는 역시 공감대의 깊이나 폭에 변화가 있어서다. 콘크리트화하고 있는 30%대의 수구 세력이 현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른 미디어가 하지 않거나 왜곡하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치열한 비판이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론이 스스로 ‘낙관의 단서’가 돼야 하고, 될 수 있다고도 본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의 특별 대담에서 “5·18이 작위(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면, 세월호는 부작위에 의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팽목항 앞 바다엔 정부가 없었다. 광주를 방불케 했다”고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팽목항과 광주에 국가는 없었다

신학림 : “5·18 항쟁의 아픔을 경험했던 선생님에게 지난해 세월호 참사는 남달랐을 것 같다. 참사 국면에서 언론을 어떻게 보셨나.”

김중배 :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수탈하는 경제 질서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유민아빠 손을 잡아주었다. 일부 ‘대량언론’(김 대표는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주류 언론’이라는 말 대신, 조중동을 ‘대량언론’이라고 불렀다)들은 교황의 행보에 대해 ‘파격’이라고 덧붙였다.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게 천주교와 기독교가 해야 하는 일이고, 교황은 ‘파격’이 아니라 ‘전격’이라고 말해야 한다. 세월호와 관련해 언론 얘기를 더하면, 한 출판 단지 옆에 가면 ○○아울렛이 있다. 거기에 거울 세 개가 있다. 한 거울 앞에 서면 키가 커지고, 옆 거울에 서면 난쟁이가 되고, 또 다른 거울에 서면 물구나무 선 꼴이 된다. 대량언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는 언론만의 행태는 아니다. 권력의 행태, 일부 시민들의 행태이기도 하고.” 

신학림 : “세월호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무능했다. 구조에 나서지도 않았고 박 대통령의 행방은 묘연했다.”

김중배 : “유가족에게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평생 남는다. 대통령이라면 유가족 죄책감의 반의 반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박근혜는 국회 연설을 하러 가면서 유가족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그런 죄책감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거다. 전 세계 이세계인들이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몇 시간 동안 목격했다. 어떤 정치학자는 국가에 검은 구멍 두 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무능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지다. 세월호 참사는 검은 구멍 두 개가 일치한 결과였다. 무능할 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었던 사고였다.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국가 대(大)개조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개조는커녕은 대 개악으로 가고 있다.”

신학림 : “5·18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나.”

김중배 : “5·18이 작위(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면, 세월호는 부작위에 의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온다. 팽목항 앞 바다엔 정부가 없었다. 광주를 방불케 했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의 표정과 눈빛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광주와 광화문을 오가며 언론인으로 살아간다. (사진=김도연 기자)
 

탈선의 자유 누리는 ‘대량언론’

신학림 : “선생님은 19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을 물러나면서 앞으로 정치권력보다 자본의 압력과 영향력이 언론과 언론인에게 더 큰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중배 : “진부한 얘기가 돼 버렸다.(웃음) 시대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정치·경제 권력이 분리될 수 없는, 분리되기 어려울 만큼 일체가 된 시대다. 요즘 시장 만능주의는 경제 부문을 넘어 전 사회에 뻗어 있다. ‘시장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 자체가 시장화한 거다. 아이를 더 낳게 하기 위해 돈을 지원하는 등 만사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세월호 참사에서 통감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 자본주의 본질이 재난 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산업’이 생기지 않나. 언딘 등이 재난 자본주의 산업 아닌가. 사고가 나지 않으면 굶어죽는 산업이 등장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장려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재난대응도 방위산업처럼 효자산업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현재 가속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가 재난이다.”

낙관의 단서, 도처에 있다

신학림 : “80세가 넘는 연세인데도 언론인으로서, 시민운동 지도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김중배 : “참여연대 대표를 MBC 가기 전까지 7년 정도 했다.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운동을 같이 하던 때다. 언론인들의 민주언론 운동만으로 민주언론이 달성되기 어렵다. 시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민주주의의 토대가 없으면 민주언론이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아닌데 민주언론이 가능할 수 있겠나. 아까 예를 들었지만, 닭장 안에 병아리와 늑대를 넣어 놓고 경쟁을 하라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 언론이 그렇다. 한 쪽에서는 자유언론을 만끽하고 있다. 탈선, 방종, 횡포에 가까운 자유언론을 하고 있잖나. 반면 MBC 후배들, 정말 가슴 아프다. 과잉과 과소의 언론 지형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지.”

신학림 : “언론을 바로 세워서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접근은 옳지만 그것만으로는 현 지형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말씀인 것 같다.”

김중배 : “나는 신문기자 쉽게 해먹었는데 앞으로 당신들은 어려운 신문기자, 통섭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신문기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 같다.(웃음) 단순히 언론의 영역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국가가 필요할까.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신학림 : “언론, 정치 그리고 미래에 관해 진보와 보수 모두 걱정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할지…”

김중배 : “낙관의 단서는 도처에 있다. 횡포한 시장사회의 광풍, 탁류 속에서도 세월호 아이들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촛불을 밝히고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민주주의 궁극이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고 했는데, 생명 세포 속에 있는 에너지 근원인 미토콘트리아는 인간과는 관계없는 미생물에서 온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을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게 무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사람하고만 말하는 건 아니다. 좋은 경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나잖나. 그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언론 아닌가. 저널리즘적인 교과서에 너무 구애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인식을 공유하면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웃음)”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사진= 김도연 기자)
 

◇ 김중배는 누구인가

김중배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돈과 권력과 말이 몸으로 부딪치는 접경지대에서 치열하게 사회비평을 하고자 몸으로 노력한 언론계의 원로다.

1957년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민국일보를 거쳐 1963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1991년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자본의 언론 통제에 항거하며 사표를 냈다. 1993년 한겨레신문 사장, 2001년에는 문화방송 사장을 지냈고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광장 대표로 시민운동과 언론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인 1987년 5월, 박종철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졌을 때 언론은 일제히 침묵했으나 김중배 대표는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 주기 바란다”고 썼다. “이제 거짓의 하늘은 사라져야 한다, 거짓의 땅도 파헤쳐져야 한다”는 그의 글은 넥타이 부대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한국 언론 역사 최고의 명 칼럼으로 꼽히는 글이었다.

김중배 대표는 1991년 9월 사주의 편집권 개입에 맞서 이른바 ‘김중배 선언’을 남기고 동아일보를 떠나 언론 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동아일보가 급격히 무너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선생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영합하는 언론권력의 폐해를 고발하고 비판하면서 “이제 언론도 제약의 무덤 속에서 헤쳐 나와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는 여전히 현역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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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호남? 호남 유권자에게 텃밭은 옛말이다

 
 
[여론조사 분석] “다음총선… 현역의원 새정치연합 안 찍어” 현역 비상
 
임두만 | 2015-05-30 19:01: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광주·전남 지방 주민이 스스로를 진보성향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반수가 넘었다. 실제 호남=진보라는 등식이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광주·전남 지방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가졌다는 광주일보는 지령 20,000호를 맞이하여 전문 여론조사기관 ‘한백리서치’에 의뢰, 광주·전남 거주 만 19세 이상 남녀 540명을 대상으로 지난 15일 ‘호남·호남인’ 전화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광주일보를 통해 이 조사결과를 여러꼭지에 나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면 광주·전남 지방 주민들은 스스로의 정치성향에 대해 ‘진보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률이 57.2%(중도 진보 35.5%·진보 21.7%)로, 과반수가 넘었다. 특히 ‘진보 성향’ 응답률은 광주 거주층(52.3%)에 비해 전남 거주층(60.8%)에서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20대(62.5%) 30대(62.0%), 40대(67.2%) 등 젊은 층은 ‘진보 성향’이라는 응답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50대(44.4%)와 60대 이상(43.3%)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진보 성향’보다 높았다.

이런 기본적인 정치지향이 나타난 이 여론조사는 그래서 정치권, 특히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했다. 야당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음이다.

▲ 5.18 기념일에 광주를 방문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냉랭한 광주민심에 당황하고 있다. ©임두만 

첫째, 현역 국회의원 재지지 여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2.7%가 내년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해 ‘지지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지지의향’ 층은 42.9%였다. 특히  ‘잘 모르겠다’ 4.4%로 보면 이 지역의 유권자 상태를 확연히 읽을 수 있다.

부동층이 5%미만인데 현역 비토 비율이 52.7%라면 정치권이나 정당에서 물갈이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유권자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당 지지도에서 ‘텃밭’이라고 자부하는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42.1%에 그쳐 50%이 미치지 못했으나 그 지지층에서도 현역들에 대한 ‘지지의향이 없다’는 응답률이 40.8%로 나타났다.

둘째, 내년 총선에서 정당후보 지지의향에 대해서도 새정치연합은 비상이 걸려 있었다. 우선 45.5%가 내년 총선 시 정당후보 지지의향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률은 26.3%에 그쳤다. 현역 비토율이 높을 까닭에 새정치연합 후보에 대한 비토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 후보(12.6%) ▲새누리당 후보(9.2%) ▲기타 정당 후보(5.7%) ▲정의당 후보(0.9%) 순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면 실제 내년 총선은 새정치연합과 신당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즉 이 여론조사에서 광주·전남인들은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정치세력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45.5%..이들이 변화의 핵심이다.

셋째, 정당 지지도의 변화가 확연하다. 즉 광주·전남지역의 정당 지지도는 ‘지지정당 없음’의 무당파층이 45.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새정치민주연합이 42.1%, 새누리당 7.3%, 기타 정당 4.6%, 정의당 1.0% 순이다. 또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파는 지역별로는 광주(45.7%)와 전남(44.5%)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20대(52.4%)와 30대(51.3%), 40대(49.2%)에서 무당파층이 많았고,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이 각각 49.9%, 50.1%로 높았다. 결국 이런 수치는 지난 해 7.30 재보선의 순천곡성에서 새정연 후보 낙선, 지난 4.29재보선 당시 광주의 천정배 후보 압도적 당선으로 나타나듯이 이미 이곳 주민들에게서 새정연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것이다.

▲광주전남의 변화기류를 알고 무소속으로 광주서구을에 출마한 천정배 전 장관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뒤 손을 번적 들어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광주전남 정치권 변혁의 핵이다. ©임두만

마지막으로 신당 창당 및 야권재편론에 대한 방향에 대한 여론조사 수치가 이 변화의 방점을 찍었다. 일단 ‘신당창당 보다는 새정치연합 중심으로 단결해야한다’ 39.1%, ‘신당 창당을 통해 야권을 재편해야 한다’ 35.6%, ‘잘 모르겠다’는 25.3%에서 보듯 창당파와 단결파는 오치범위 내에서 팽팽하다. 그러나 아직은 새정연도 신당도 다 관망상태인 ‘잘 모르겠다’ 25.3%가 핵심 키를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새정연을 압도할 신진인사와 중량급 인사들을 망라하는 조직을 엮어낼 수 있다면 새정연 대체세력은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역별로 광주에서 ‘신당창당을 통한 야권재편’ 응답률이 40.9%로, ‘신당창당 보다는 새정치연합 중심 단결’(37.7%) 보다 우세했으며, 연령대별로는 50대(45.8%)에서 신당창당을 통한 야권재편 의견이 우세한 점 때문이다.

광주일보는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조사 표본은 광주 230명, 전남 310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내에 ±4.2%포인트이며, 응답률은 15.9%였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론 주도층의 신당바람이 의외로 강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신당 드라이브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인데, 이는 지난 4.29재보선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된 ‘천정배 효과’로 보인다. 즉 지역 내에 새로운 세력을 견인할 추동력을 가진 인사가 배출되었으므로 그만큼 변화의 폭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이다. 결국 이제 새정치연합과 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야권재편 세력의 진검승부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새정연에 대한 지지는 거부하면서 신당은 필요없다’는 세력, ‘새정연을 비토하니까 신당이 필요하다’는 세력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결국 신당추진세력의 참신성, 혁신성, 진보성에 승패가 걸려있다. 새정연이 이 이슈를 선점, 변화하면 신당 바람을 잠재울 것이며, 신당세력이 이 이슈를 선점 기세를 잡으면 야권재편에 성공한다는 말이다.

호남에서는 이제 ‘텃밭’개념이 없어지는 정치적 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호남민심을 현 야권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궁금하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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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살아있는 탄저균>반입 진상규명, 소파 개정>

  • [사회] 시민사회 〈〈살아있는 탄저균〉반입 진상규명, 소파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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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진보연대,  새로하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참여연대 등 56개 시민사회단체는 29일오후2시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즉각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미국방부대변인은 <탄저균이 실수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주남미군 오산기지로 배달됐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폐기됐다.>고, 주한미군사령부는 <유해물질관리팀은 해당표본을 질병통제센터규정에 따라 폐기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표본은 미국 유타주 더그웨이에 있는 국방부산하 연구소인 생화학병기실험실로부터 배달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생화학병기실험실은 미국방부소속으로 생물무기위협에 대비한 실험을 하는 곳이다.

     

    생화학무기인 탄저균은 세계 180여국이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고위험성 병원체로, 치사율이 95%에 이르며, 탄저균 100kg을 대도시 상공위로 저공비행하며 살포하면 100~3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탄저균의 표본이 배달된 시점이 언제인지, <적절한 절차>가 무엇인지, 한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오산미군기지내 <주한미군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실험까지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지적하면서 미국의 해명을 요구했다.

     

    이어 <만일 미국에서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미군으로부터 사전에 통보를 받은 바가 있는지, 처리과정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과 검증을 실시했는지를 국민들에게 밝혀야함에도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발표도 하고 있지 않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탄저균실험과 관련해 어떠한 통지도 받은바가 없다면 이는 명백한 국내법위반으로 그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규탄했다.

     

    계속해서 <법을 위반한 자가 주한미군이라고 해도 법원은 한강독극물방류사건 등에서 국내 환경법을 적용해 처벌한 바가 있고, 한미간 행정협정인 소파에 규정이 없다는 것이 위법의 근거가 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며 <관계당국은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탄저균은 <생화학무기법>상의 생물작용제로, 법에는 생물작용제를 제조하거나 수입하기 위해서는 수입목적 등에 관해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생물작용제를 보유하는 자는 보유량과 보유경위 등을 산자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돼 있다. 

     

    또 감염병예방법에 의하면 탄저균과 같은 <고위험병원체>는 학술연구 등의 목적이더라도 이를 국내에 반입하려면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겨우 처벌받는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은 탄저균반입사건발생의 근본적 이유가 불합리한 소파규정에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해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생물무기, 화학무기, 핵물질 등> 위험한 물건의 반출입시 한국정부에 사전통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주한미군기지내에 무엇이 반입되고, 반출되는지 알아야만 정부가 상황을 관리·통제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으며, 이는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밝혔다.

     

    끝으로 <한미당국이 이번 탄저균반입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의 안전과 주건을 최우선으로 해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그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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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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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SLBM시험발사로 격화되는 북미대결전

북 SLBM시험발사로 격화되는 북미대결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5/31 [01: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진 12> 2015년 5월 9일 공개한 북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장면     ©자주시보

 

미국과 서방의 유엔안보리를 통한 대북제재 움직임

 

20일 북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북의 잠수함탄도탄 시험발사와 관련한 미국과 추종국들의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 가능성 언급에 대해 “조선은 핵타격 수단이 다종화 경량화 소향화, 지능화, 정밀화 되었다며 한미일은 임전태세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유엔 안보리를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버리고) 주권 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라고 몰아붙이는 등 강력한 경고를 내놓은 후 관련 정세가 계속 격화되고 있다.
 
2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유엔 산하 북한제재위원회는 28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 정례보고를 하면서 북한의 SLBM 수중발사 시험이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를 위반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북한이 제재 결의를 위반했다고 결론나면 북한에 추가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날 보고에서는 북한의 SLBM 수중발사 시험이 안보리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안보리 이사국 간 의견 대립이 있었음을 유엔 소식통이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는데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대의견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가해지는 미국의 봉쇄와 압박 때문인지 북과의 관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도 주변에 핵보유국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최근에도 표명한 바 있고 그간 유엔을 통한 서방의 제재에 대해 결정적인 반대는 하지 않고 동의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미국과 영국 등이 강력하게 대북제재를 밀어붙이면 통과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날 일부 서방국가들은 잠수함탄도탄과는 전혀 상관없는 안건인 '북한 인권문제'를 재론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등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내용도 연합뉴스에서 지적하였다.

결국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북의 잠수함탄도탄 개발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미사일과 상관없는 인권문제 등도 들고 나와 북을 압박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북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강경한 북의 반발

 

이에 대한 북의 대응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30일 연합뉴스 [북한, 남한 국제공조 비난…“전쟁 불길 치솟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북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국 외교장관이 방한해 대북공조 방안을 논의한 것과 정부가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에 서한을 보내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문제를 제기한 것을 거론하며 "남조선 집권세력의 친미사대 매국행위가 역사상 최악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과 반공화국 대결 공조를 강화하는 것은 미국의 북침전쟁 물방앗간에 물을 대주는 어리석은 망동"이라며 "우리의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 발사를 계기로 벌이는 국제공조는 조선 반도에 엄중한 재난을 몰아올 수 있다"고 지적, “전쟁불길이 치솟아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북은 더불어 한국정부와 서방의 대북인권압박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어 주목된다.
29일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서기국 보도에서 "서울에 '북인권사무소' 문패가 달리는 순간부터 박근혜 일당은 용서를 모르는 우리의 백두산 총대의 첫번째 타격 대상이 되어 가장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적대 행위에 가담하는 자들은 설사 유엔의 모자를 쓴 자들이라고 해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불소나기를 피할 수 없다"며 "적대 세력의 도발이 노골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대응 강도는 천백배로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같은 날 연합뉴스에서 보도했다.


특히 조평통은 “인권사무소 설치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 간섭과 체제 전복을 위해 써오는 상투적인 수법이며 침략전쟁 도발의 전주곡”,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감히 도전하는 또 하나의 용납 못할 특대형 정치적 도발이며 우리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포고"라며 남한과 미국이 남북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 버지니아급 잠수함 내부 어뢰발사관     © 자주시보

 

 

해법


북은 이미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은 물론 아직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하지 않은 미 본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이미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내용을 20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런 물리력을 과시하는 일을 언제든 단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 국방부에서도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북의 물리적 조치는 더 강한 서방의 제재를 초래할 것은 자명하다. 북미대결전이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서울에 유엔의 북인권사무소가 개설되는 경우 이에 대한 타격까지 북에서 경고하고 있어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물론 북이 그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도 많이 내놓았지만 실제 치명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았기에 북인권사무소 개설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거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경고가 바로 실제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 시대들어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졌고 대북삐라풍선에 고사포 사격을 가하는 등 전에 없던 직접적인 군사적 타격이 가해져 오고 있기에 지금 나오는 북의 경고를 의례적인 경고성 발언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본다.

 

한반도는 아직 50년 한국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정전상태로 언제든 총포탄이 바로 오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이다. 하기에 작은 충돌도 전면전으로 비화될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30일 중앙일보는 거의 한 면을 다 할애하여 버지니아급 원자력 잠수함 내부를 직접 취재하여 자세히 소개한 기사를 보도했다. 한방으로 배 한 척을 그대로 침몰시킬 수 있는 어뢰 24발, 순항미사일 12발에 수십기의 하푼 미사일을 장착한 이 잠수함을 한국언론에 자세히 공개한 것은 북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불안한 심리에 빠진 동맹국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런 미사일에 핵무기를 장착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핵탄투를 장착하여 쏠 수 있는 강력한 핵무력이 바로 이런 미국의 잠수함들이다.


이런 잠수함과 항공모함 등으로 북을 압박하니 북도 그에 대한 대응으로 각종 미사일에 잠수함발사 미사일까지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결국 북미 사이의 핵무력 군비경쟁을 끝내려면 군사적 경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이 북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북의 핵무력을 제거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런 해법은 이미 전에 북미와 주변국들이 모여 합의한 바 있다. 바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 그것이다.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미국은 북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과 동시에 북은 차근차근 비핵화를 진행한다는 9.19성명은 여전히 평화적인 한반도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해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재 그런 대화의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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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잊어버린 야당


외교 통일 리더십 실종은 여야 불문
유창선  |  yuc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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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9  14: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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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박근혜 정부가 외교 통일 안보 분야에서 무능하다는 지적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남북한이 서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다시 대결의 분위기로 치닫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측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여러 차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기회들이 있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한 채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거기에는 물론 북측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조차 풀고 넘어설 수 있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 또한 면제될 수는 없다.

국정원이 나서서 북한에서의 처형극을 자극적으로 폭로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들의 공포정치를 비난하는 광경은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일관된 비전이나 정책보다는 그때그때의 즉흥적인 대응 논리가 앞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반도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일의 새로운 밀월관계가 급속히 형성되고 있고, 일본 자위대는 그 군사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고 있고, 특히 한국을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미국이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체면조차도 고려하지 않고 거의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드 배치 움직임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동북아 역학관계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고립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중대한 시기에 박근혜 정부가 매달리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이라는 낡은 동아줄 밖에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래도 외교 안보는 잘한다던 집권 초기의 여론조사 결과들은 신기루를 쫓은 허상이었음이 판명되고 있다. 다른 내치에서 실패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외치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아니, 외치에 관한한 아무런 대책도 비전도 없는 속수무책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나라는 지금 외교 통일 안보 리더십의 부재 상황에 처해있다.

박근혜 정부만 못한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주변정세에 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면 야당은 그것을 견제하거나 아니면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야당에는 그런 전통이 있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이끌었던 시절, 누구보다 그 자신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전문가이기도 했지만, 외교 통일 안보에 관한 전문적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당내에 여럿 있곤 했다. 실제로 이들은 대북정책이나 동북아정책 등에 관해 정부보다 더 우수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들을 많이 제시하곤 했고 상당한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을 보면 그런 정치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비례대표들을 영입해도 ‘투사’들은 많이 들여왔지만,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한반도 문제를 책임지고 다룰만한 인물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북관계가 파국 직전으로 치달아도, 일본 자위대의 해외 진출이 눈앞의 일이 되어도 야당 안에는 그 흔한 위원회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기적인 정치대결에만 갇혀버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민족 생존의 문제를 잊어버린 야당의 모습이다.

정부나 여당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야당 또한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의 생존을 지킬 리더십은 공백상태에 처해있다. 박근혜 정부야 태생적 한계의 결과라 하더라도, 야당까지 무능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민족의 살 길은 누가 책임지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새정치민주연합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연세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SBS, EBS, B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역임
전) 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 
전) 경찰청 경찰혁신위원회 위원 
전)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일보> <국제신문> <부산일보> <시사저널> 고정 칼럼 연재
현) <주간경향> <폴리뉴스> 고정칼럼 연재

 

수상) 2010 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 대상 수상
        2012 아프리카TV 대상 시사부문 최우수상 수상

저서) <정치의 재발견> 지식프레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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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북한인권 전도사가 된 사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5/30 11:13
  • 수정일
    2015/05/30 11: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곽동기  | 등록:2015-05-30 09:40:34 | 최종:2015-05-30 10:10: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근 한미당국은 틈만 나면 북한인권을 문제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은 “외교 채널을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올 수 없게 됐다는 결정을 전달받았다”며 5월 8일로 예정되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이 무산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는 “북한 내부 문제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 소식을 공개했습니다.

이러자 미국과 한국에서는 그 원인으로 북한내부의 위기를 지목하고, 나아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에 인권을 끼워넣은 셈입니다.

미국 <CNN>은 5월 11일 서울발 기사에서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모인 김경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독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5월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최근 제기된 ‘김경희 독살설’에 대해 “매우 근거가 약한 일방적인 얘기이고, 현재 이상 징후는 발견된 게 없다”며 “김경희는 현재 병원 치료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문제제기 후 이틀 만에 반론에 부닥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국정원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설을 입수하였다며 언론에 퍼뜨렸습니다. <노컷뉴스>는 숙청설 공개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신미국안보센터의 밴 잭슨 연구원은 5월 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도 북한 내부 상황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밴 잭슨은 북한이 권력기반에 자신있다면 많은 고위 관리들을 처형할 필요가 없다며 여러 숙청설을 단정적으로 두둔하였습니다.

이제는 마약소식까지 들려옵니다. <연합뉴스>는 5월 29일, 북한인민해방전선이 "북한에서 최근에는 중학교 학생들까지 마약을 소지하는가 하면, 결혼식 부조금, 대학 입학, 승진 뇌물로도 마약을 선물할 정도로 마약이 성행하고 있다"는 탈북자 A씨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탈북자의 직접 증언이 아니라 탈북자가 다른 탈북자의 증언을 전달한 황당한 보도인데요, 중학생까지 마약을 소지하고 결혼식 부조금, 승진뇌물로 마약을 선물한다는 이들의 증언은 허위일 가능성에 매우 높습니다. <TV조선>은 아예 북한 주민의 70%가 마약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3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로부터 <하나원>을 통해 북한의 생활상과 정보를 캐내었겠지만, 지금까지 증언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특히나 북한주민이 가난하다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주민의 70%가 마약을 한다고 하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정보입니다.

결국 최근의 이러한 보도들은 미국과 박근혜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입니다. 현 시기 당국이 북한인권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배후는 미국

북한 인권문제에 집중하는 진원지는 바로 미국입니다.

2012년 3월 28일, 한국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앞으로도 북한의 정보자유화와 시민사회 기초마련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한미의 공동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대해 북한 당국의 책임을 묻는 데 전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내의 숱한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바다 건너편의 북한 인권에 매달리는 목적은 북한정권 붕괴입니다. 2015년 1월 24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유튜브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의 국가를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며 북한체제에 대한 반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전쟁보다 인터넷을 앞세우면 북한정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부터 대북전단살포에도 미국인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1월 19일, 미국인권재단 (HRF : Human Rights Foundation)의 토르 하버슨 대표 등 미국인들과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통일부의 자제권고마저 간단하게 무시하고 파주와 연천 등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였습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2015년 4월 21일, 미국인권재단(HRF)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 15만장과 북한 지도자를 조롱한 영화 ‘더 인터뷰’ USB 2500개와 DVD 2500개를 날렸다고 합니다. 4월 9일에 전단 30만장을 뿌리려다 당국의 제지로 실패한 박상학 대표는 이번에는 전단을 기습적으로 뿌렸기에 당국은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상황에서도 인권문제에 집중하는 황당한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2015년 5월 18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북한이 가장 큰 안보 우려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케리 장관은 북한 내의 숙청설을 연계하며 "북한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가장 없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유엔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잠수함 탄도미사일에 인권으로 대응한 모습입니다.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해 미국이 지금까지와 달리 군사적 대응 대신 북한인권문제에 매달리는 속내를 어찌 보아야 하나요? 미국으로서는 이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제지할 수단이 없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북한의 핵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보니 북한인권문제라도 자꾸 건드려서 북한을 고립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미국이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만큼 다른나라들이 북한과의 적극적 외교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의 북한인권공세는 북한주민 구출보다 북한정권고립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시키자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 박근혜 정권의 의도

박근혜 정권은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인권 제기에 전폭적으로 화답하며 대북인권공세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는 기본 방식으로 인권문제를 통한 북한 고립압박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북한인권을 공격하는 내용들은 근거가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대부분 “풍문으로 들었소” 수준의 모호한 이야기입니다. 

일례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당했는지, 실각 당했는지, 아니면 제3의 장소에서 요양 중인 것인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북한이 정말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고사총으로 공개처형하였다면, 지난 장성택 부위원장의 경우처럼 숙청을 언론에 대서특필하며 대대적으로 경고하는 것이 맞습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왜 그를 죽이게 되었는지 소상히 밝혀 숙청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경우는 북한당국의 아무런 입장발표가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언론에서는 5월에도 현영철 부장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숙청설을 퍼뜨리고, 이를 계기로 인권을 거론하는 행태는 필연코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상대를 자꾸 의심하고, 어두운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두터운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입장을 바꾸며 북한에서 별다른 근거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고모를 독살했을 것이라고 대서특필한다면,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허위로 판명되더라도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악담이 대서특필되는 것은 남과 북이 관계를 개선할 수 없는 분위기를 구축하는데 목적이 있는, 대단히 반민족적인 행동입니다.

신뢰가 없어지면 앙금이 남고, 앙금이 쌓이면 필연코 충돌합니다. 지금 남쪽에서는 북한의 SLBM 발사시험과 더불어 연평도 인근 갈도의 진지구축, 북한해군의 스텔스 고속정 배치 등을 묶어보며 서해공격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들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처럼 남북간 핫채널이 있었다면,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북긴장태세와 비방중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그런 채널도 없을뿐더러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북측 설명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비방중상은 서로의 신뢰를 훼손합니다. 인권문제 제기는 결국 남북간 군사적 충돌에까지 확산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나하면 정국의 사면초가에 빠진 박근혜 정권이 지금 정국수습의 탈출구를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2014년, 집권 2년 차가 되는 시기를 상반기 세월호 참사와 하반기 정윤회 파문으로 통채로 날려먹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해보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부패척결”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부패의 희생양이 될 것을 강요당한 성완종 회장이 부정부패 관련 리스트를 남기고 자살함으로써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거론되어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18%, 30대의 지지율은 25%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60대 이상의 노령층만 5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 대통령 전체 지지율이 40%라는 거품이 완성되는 것이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원성은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박근혜 정부로서는 남북 간 화해보다는 대북대결태세를 더욱 굳건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사적 긴장을 높여 여론을 북한으로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어차피 그 책임도 북한의 무력도발로 떠넘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서해교전과 연평도 포격전이 바로 그러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현 정부 일각에서는 군사적 충돌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면, 미국의 지지도 받으면서 현 정국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3. 정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가 이런 식으로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인권은 사회구성원이 사회로부터 보장받는 권리입니다. 절대적 빈곤과 경제수준만으로 사회의 총체적 인권수준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례로 2014년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습니다. 풍요로운 먹거리와 놀이시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어린이 인권유린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만을 절대화하며 대한민국이 인권유린국가라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도 숱한 논란을 불러올 것입니다. 인권문제가 정상적으로 회자되려면, 구체적인 사실자료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사리 입수한 북한 내부 사진 몇 장과 몇몇 탈북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증언만으로 북한사회의 인권을 종합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단지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인권문제가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북한체제가 여전히 유일사상체계를 고수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과 더불어 북한은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사상+경제난=인권유린 이란 등식이 우리 국민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권에는 사회적 자살의 수치와 불법구금의 규모와 실태, 선거의 공정성, 빈부격차의 정도가 구체적으로 파악되는 가운데에서 거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자살자의 수치와 불법구금의 규모와 실태, 빈부격차의 정도가 원인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구체적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인권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주장에는 미성년 자살자 수치와 앞서 언급한 행복수치, 빈부격차 등 구체적 판단지표들이 있습니다. 북한인권도 그 정도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모든 문제가 북한체제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인권이 어디에 있습니까? 북한인권만큼은 정치투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75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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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SLBM, 미국 뒤통수 또한번 후려쳐>

  • [정치] 북 〈SLBM, 미국 뒤통수 또한번 후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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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신문은 정세론해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를 29일 게재했다.

     

    해설은 <미국이 요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며 <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우리 공화국이 완전성공한 사실이 아메리카제국의 뒤통수를 또한번 후려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은 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반도를 통채로 병탄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 그 누가 <도발>이라고 시비를 하든 <중지>하라고 고아대든 우리에 대한 불순적대세력들의 도전이 쉬임없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더 완벽하게 다지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백배천배로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길로 나아갈것이다

     

    미국이 요즘 안절부절 못하고있다.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우리 공화국이 완전성공한 사실이 아메리카제국의 뒤통수를 또 한번 후려친것이다.

    혼비백산한 미정객들속에서는 탄도탄수중시험발사가 국제사회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느니 뭐니 하는따위의 비난이 그칠새없이 울려나오고있다.여기에 일본과 남조선괴뢰들도 상전과 꼭같은 악청을 돋구어대며 아부재기를 치고있다.

    병적인 거부감속에 우리가 하는 모든것을 사사건건 범죄시하는 미국이니만큼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 심사가 삐뚤어져 내뱉은 넉두리나 복닥소동이 새삼스러운것은 아니다.그래 묻건대 우리 탄도탄의 파편쪼각이 미국본토나 주변나라들에 떨어지고 미국함선이나 비행기에 자그마한 흠집이라도 냈단 말인가.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제손가락이 깨끗한가부터 먼저 보라고 하였다.도발에 대하여 말한다면 남의 땅에 침략무력을 끌고와 우리 《수뇌부제거》와 《평양점령》을 노리고 벌리는 미국의 화약내풍기는 전쟁연습소동보다 더 큰 도발은 없다.그리고 때없이 핵전략폭격비행대와 핵항공모함전단을 비롯한 핵타격수단을 들이밀어 로골적으로 벌리는 공공연한 핵공갈소동이야말로 위협중에서 진짜위협이다.도발을 일으키고 위협을 조성하는 주범이 그에 대응한 자위적인 행동을 《도발》로,《위협》으로 강변하며 국제사회를 기만하고있는것은 양키식기준이 얼마나 파렴치한것인가를 다시금 립증해줄뿐이다.

    돌이켜보면 반세기이상에 걸치는 장구한 세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미국이 감행한 범죄적책동은 철두철미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양키식기준에 준하고있다.

    그 뿌리는 미국의 《리익》이다.

    미제가 제창하는 《리익》이 어떤것인가는 1999년에 발표한 《국방보고서》에서 명백히 드러났다.21세기에 대비한 세계전략을 밝혔다고 하는 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리익》에는 적대적인 지역동맹이나 패권국출현의 저지와 함께 거점시장,전략자원에로의 제한없는 접근보장이 포함되여있다.결국 미제가 내든 《리익》이란 곧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강화하여 제 리속을 차리는것이다.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은 그 《리익》을 실현하기 위한것이다.그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반도를 통채로 병탄하려고 하고있다.

    미국이 1945년에 남조선을 강점한 후 우리 공화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 내용과 방식,기간에 있어서 가장 악랄하고 집요하며 장기적인 적대시정책을 실시하고있는것도,론쟁거리로 될수 없는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들을 문제시하면서 국제화하기 위해 발악하고있는것도 여기에 기인된다.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시기 조선문제가 우리 민족의 자주적요구와 의사에 배치되게 렬강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처리된 때로부터 남조선에서의 괴뢰정권조작,조선전쟁발발,조선분렬의 장기화,조선반도핵문제발생 등은 전적으로 국제기구의 이름을 도용하고 추종국가들을 끌어들인 미제에 의한것이다.

    미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해방된 조선인민에게 《자치능력이 부족》하기때문에 조선에 대한 국제적《신탁통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떠들었다.그런가하면 남조선괴뢰정권이 유엔에 의하여 《수립》되였기때문에 남조선을 지원할 임무가 유엔에 있다고 하면서 조선전쟁에 추종국가들을 끌어들이였다.21세기를 전후해서는 《핵문제》,《미싸일문제》,《인권문제》 등 별의별 구실을 내들고 우리 《문제》를 국제무대에 끌고가 반공화국여론조성에 광분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침략자,간섭자로서의 저들의 정체를 은페하고 전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국제적인 명분을 마련하는데 있다.동시에 정치와 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와 압력의 포위망을 형성하여 저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손쉽게 달성하자는것이다.

    원래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켜 어부지리를 얻는것은 미제의 상투적수법이다.제1차 세계대전시기에 미제는 처음에는 《중립》의 간판밑에 무기를 교전쌍방에 팔아 막대한 돈벌이를 하였다.전쟁의 마감에 전후 분배몫분할에서 한몫 얻기 위하여 《협상국》측에서 전쟁에 참가하였다.

    전쟁기간 미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많은 리득을 보았으며 채무국으로부터 채권국으로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도 미제는 큰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도 반파쑈련합국으로 행세하여 막대한 폭리를 획득함으로써 전후 자본주의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진 제국주의우두머리로 되였다.

    1950년대의 조선전쟁은 또 하나의 생동한 실례이다.

    미제가 온갖 권모술수를 써가며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조선전쟁에 15개 추종국가군대들을 끌어들인것은 동맹국들의 희생의 대가로 전쟁을 치르어보려는데 있었다.

    조선전쟁시기 미제는 목숨을 내대야 하는 곳에는 례외없이 추종국가군대들을 내세웠다.

    수많은 《유엔군》이 포위섬멸되고있던 총퇴각시에만도 영국침략군부대들이 퇴각하는 미군의 엄호에 나섰다가 전멸되였다.조선전쟁에 뛰여들었던 프랑스침략군의 한 중위는 프랑스병사들은 우둔한 노새처럼 리용되고있다고 하면서 《가렬한 전투의 주요부담은 우리들의 잔등에 업혀 놀려는 미국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짊어지고있다.》고 일기에 썼다.

    미국의 교활한 침략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최근년간 미국이 허구적인 우리의 《위협》타령으로 세계여론을 어지럽히는 한편 《유엔군사령부》부활을 떠드는것은 그것을 아시아판나토와 같은 《다국적련합기구》로 둔갑시켜 저들의 아시아태평양지배전략실현에 써먹으려는데 있다.급속히 쇠퇴몰락하는 미국에 있어서 저들의 군사적공백을 대신할수 있는 동맹국들의 힘이 절실히 요구된다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그러나 미국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미국이 첨예한 조선반도사태의 본질을 외곡하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압박도수를 높이려고 발악한다고 하여 결코 진실이 가리워지는것은 아니다.

    영국의 국제문제전문가 피니안 쿤닝함은 사회계에 전해지는 모든 소식들과 보도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도발자》,《핵위협》의 장본인으로 비난하고 미국을 가장 리성적이고 평화애호적인 《정의의 국가》로 만드는데 집중되고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날조외곡된것이라고 단죄하였다.스웨리예신문 《쒸드외스트란》은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조선이 자기를 방어하고 전쟁을 억제할 목적에서 핵을 가졌다는것을 리해한다고 전하였다.

    로씨야과학원 극동문제연구소 조선연구쎈터 소장 알렉싼드르 줴빈은 조선의 핵보유는 미국의 부당한 대조선정책의 산물이라고 까밝혔다.

    미국의 전문기관이 전세계 68개 나라에서 6만 8 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많은 응답자들이 미국을 세계평화에 대한 최대의 위협국으로 꼽았다.

    오늘날 조선문제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수십년세월 가증되는 핵위협으로 평화애호국가의 자주적발전을 가로막아나서는 장본인,조선반도정세를 전쟁의 극단에로 몰아가며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주범인 미국을 단죄하고있다.

    우리의 자위적조치들은 원쑤들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인민의 안전을 지키고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자주권행사이다.이번에 완전성공한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를 통하여 세계는 우리의 전략타격수단개발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조치에 대해 그처럼 악의에 차서 헐뜯는것은 모략의 명수들이 고안해내고 력대 미집권자들이 강행해온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걸음마다 짓부시며 승승장구하는 선군조선에 대한 위압감과 불안감의 발로이다.때문에 천만군민은 불에 덴 승냥이마냥 날뛰는 원쑤들의 망동에서 우리의 전진,우리의 승리를 가슴뿌듯이 확신하고있다.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그 누가 《도발》이라고 시비를 하든 《중지》하라고 고아대든 우리에 대한 불순적대세력들의 도전이 쉬임없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더 완벽하게 다지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백배천배로 강화될것이다.

    이 행성우에 살판치는 부정의와 란무하는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며 보란듯이 솟구치는 우리 공화국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가로막을자 이 세상에 없다.

     

    (노동신문, 2015.5.29) 

     

     

     

     

    송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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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대전 선동한 한국 대통령의 황당무계 '반올림 개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01> 조봉암과 진보당, 아홉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2015.05.30 07:07:09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 번째 이야기 주제는 조봉암과 진보당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4253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프레시안 : 1954년 5.20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개헌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만 공천을 주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선거가 끝난 후 이제 헌법을 바꾸는 문제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중석 : 개헌 문제가 급박하게 대두된다. 자유당은 개헌 정족수인 재적 인원의 3분의 2를 채우기 위해 국회의원을 계속 끌어들인다. 김두한이 그때 종로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그런 김두한도 선거법에 걸릴 만한 게 많이 있지 않았겠나. 그러니 김두한도 여기에 넘어왔다. 김두한의 약점을 쥐고서 그런 식으로 한 것인데, 어쨌건 그런 방식으로 3분의 2가 넘는 136명을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확보했다. 그것으로 됐다 싶었는데 7월 2일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원 투표라는 걸 했다. 뭐냐 하면 새로운 변영태 총리를 선두로 한 국무원이 구성됐는데, 이 변영태와 다른 국무원들을 일괄해 신임 투표를 한 것이다. 법 해석을 가지고도 이때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이 투표를 했다. 그랬는데 인준을 못 받았다. 재적 과반수(102표)만 획득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조차 인준이 안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유당은 '이러니 어떻게 개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위기에 빠진다.

그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7월말 이 대통령은 미국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우리들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자"고 하면서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하자"고 이야기했다.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 생산하기 전에 그렇게 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나선다. 미국 정부 인사들과 미국 의회 의원들은 기겁을 했다. 남의 나라 정치인이 와서 3차 대전을 일으키자고 하니, 참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세계적 위인, 세계적 반공 지도자라는 걸 미국에 가서 확실히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됐고 이 양반이 돌아오자마자 북진 통일 운동이 또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면서 9월 6일 자유당은 이기붕 외 135명이 서명해서 드디어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건 재적 의원 3분의 2를 넘는 숫자다. 그런데도 자유당은 겁이 나서 표결을 할 수가 없었다.

뉴델리 밀회 사건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자유당 

프레시안 : 소련을 정말 공격했다면 그건 핵전쟁을 기본으로 한 3차 대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할 턱이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을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공개석상에서 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수많은 사람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시 돌아오면, 자유당은 왜 그토록 겁을 낸 것인가. 

서중석 : 왜냐하면 당시 여론 조사만 보더라도 그 결과가 너무나 나빴다. 개헌안의 골자는 크게 봐서 네 가지였다. 하나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1952년 발췌 개헌 때는 시일이 워낙 촉박했고, 이 중임 제한 철폐 문제까지 내놓으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니까 그때는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제 강화였다.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국무원의 힘을 약화시켜 대통령을 중심으로 몰고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국민투표제였다. 지금 중공 등에 의해 중대 상황, 국가 위기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럴 경우 국민투표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경제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제헌 헌법에는 통제 경제 내지 사회주의적 균등 경제를 강조하는 요소가 상당히 있지 않았나. 국유화, 공영화도 강조했다. 그런데 그걸 전면적으로 바꾸라고 미국이 수년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에 맞춰 자유 경제 체제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개헌 골자였는데, 다른 것도 다 인기가 없었지만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한국일보> 여론 조사를 보면 16.9퍼센트만 찬성하고 78.8퍼센트가 반대한다고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당 내 반란표가 안 생기리라고 어떻게 보장하느냐, 이 말이다. 그런데 하늘이 자유당을 돕는 일이 생겼다. 
 

▲ 해공 신익희. ⓒ연합뉴스

프레시안 : 무엇인가.

서중석 : 유명한 뉴델리 밀회 사건이 발생한다. 이름만 보면 스파이 사건 같기도 한데, 야당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졸아들고 있던 민국당의 선전부장 함상훈이 10월 27일 '전 민국당우에게 고함'이라고 하면서 "우리 당에 제3세력이 침투했다"고 주장했다. 제3세력은 그전에는 주로 조봉암을 가리켰다. 극우 반공 세력을 제1세력이라고 하면 제3세력은 중도파,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함상훈은 민국당 당수인 신익희를 제3세력으로 몰아갔다.

신익희가 195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 국가를 대표해 국회 의장으로서 참석했는데, 귀국할 때 인도 뉴델리에 들러 조소앙(한국전쟁 당시 납북)을 만났다는 주장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이 양반은 그때 대관식을 하고 지금까지 60년 넘게 여왕으로 있는데, 어쨌건 그 시기에 신익희가 남북 협상 문제에 관한 밀담을 조소앙과 나눴다는 것이었다. 협상파는 다 제3세력이었다. 그러고 나서 북한에서 조소앙의 밀사 오경심이라는 여자가 내려와서 신익희를 또 만났다는 것이다. 이것도 정말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인데, 민국당 내 옛 한민당 핵심 세력들이 신익희가 다음 대선에 못 나오게 하고 자기들이 나가려고 이런 짓을 꾸미지 않았나 싶다. 이걸 뉴델리 밀회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때 신익희와 동행했던 김동성 국회 부의장이 그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걸 국회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으로 이 사건은 끝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당으로서는 드디어 큰 것을 문 것이다. 이건 국가에 관한 중대사라고 하면서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 공안 분위기, 긴장을 고조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긴급 동의로 국회에서 '남북 협상, 중립화 배격 결의안' 등 아주 강경한 결의안을 연달아 막 제출해 통과시켰다. 국회 바깥에서는 드디어 또 민의대가 동원되기 시작해 지방 의회 의원들이 속속 올라와서 개헌안 통과 촉구 결의문을 전달하고, 반공혈전대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민국당은 역적"이라는 유인물이 나돌았다.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은 '휴전 감시 위원단 중 적성국 대표들은 일주일 이내에 철수하라. 불응하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게 헌병 총사령관이 할 이야기가 전혀 아닌데도 그렇게 하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또 서울운동장 같은 데서는 총궐기 대회 등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그러면서 공안 정국을 띄우는데, 이때부터 1990년대 초까지 그야말로 40년간 공안 정국이라는 걸 맛보게 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사오입 개헌 밀어붙인 이승만 정권 

프레시안 : 공안 정국 조성은 예나 지금이나 지배 세력이 뭔가 딴마음을 품고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다. 자유당 정권은 이때 무엇을 노리고 그렇게 한 것인가. 

서중석 : 이렇게 공안 정국을 형성해 안보 공세로 나아가고 긴장을 고조시킨 것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유당 내분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반란표가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자유당뿐만 아니라 무소속 중에도 유동적 의원들이 많았는데, 이런 쪽 사람들 사이에서도 '긴장 분위기이니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그걸 또 개헌안에 있던 국민투표제와 연결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자유당 지도부에서는 몇 번이고 표 검사를 했을 것 아닌가. 이제는 틀림없다 싶어서 11월 20일에 상정해 11월 27일 표결에 부쳤다. 그런데 여기서 자유당이 원한 것과 아주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다. 최순주 국회 부의장이 사회를 봤는데 재적 203명 가운데 202명이 참석해 가 135, 부 60, 기권 7, 그렇게 해서 1표 차이로 부결됐다. 그래서 최순주가 이 개헌안은 부결됐다고 하면서 '땅땅땅' 두드렸다.

그런데 그다음 날인 11월 28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국회도 아니고 자유당도 아니고 정부에서 갈홍기 공보처장이 '국회의원들은 사사오입(반올림)도 모르냐'고 하면서 수학적으로 사사오입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헌안이 통과됐다는 게 정부 견해라고 밝혔다. 아니, 국회에서 결의하고 나서 정부가 이런 설명을 하면 또 모르겠는데, 국회에서는 부결됐다고 명백하게 처리한 것을 가지고 정부에서 그건 통과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다음 날인 11월 29일 야당 의원들이 총퇴장한 가운데 최순주는 다시 '개헌안 부결 번복 가결 동의안'이라는 긴 이름의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게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이다.

프레시안 : 사사오입 개헌은 언제 들어도 어이없고, 관련자들이 두고두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전장에선 장병들이 쓰러지고 방방곡곡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던 1952년 우격다짐으로 발췌 개헌을 한 데 이어 2년 만에 그런 일을 또 벌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서중석 : 사사오입 개헌으로 자유당은 영구 집권을 할 수 있게 됐고, 그야말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특히 여당 국회의원들은 거수기가 됐다. 그렇지만 이승만 정권이나 이 대통령이 꼭 이득만 본 건 아니었다. 시민들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렇지 않나. 누가 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아닌가. 자유당 정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 냉소적인 태도 같은 것이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야당은 대단한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이거 우리 야당 쫄딱 망하는 것 아냐? 이렇게 되면 야당이 할 일도 없어지게 되는 것 아냐?' 그러면서 '새로운 야당으로 탄생해야겠다. 범야당을 만들어내자'는 움직임이 호헌동지회라는 야당 단체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정치적으로 매장당하고 쫓겨났던 조봉암이 이래서 다시 살아나고 화제의 초점이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조봉암을 배척하고 탄생한 0.5 보수 야당, 민주당 

프레시안 : 야권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 건설 운동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나.

서중석 : 호헌동지회에는 민국당은 물론이고 무소속까지 합쳐서 61명의 의원이 참가했다. 여기서는 모두 '이제는 야당이 하나로 뭉쳐서 이승만 정권하고 대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에는 잘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바로 양 파로 갈라졌다. 하나는 조병옥, 장면, 곽상훈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파였고 다른 하나는 장택상, 서상일, 신도성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대동파였다. 서상일은 한민당, 민국당의 중진이었고 신도성은 한민당 이래 민국당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런 이름이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자유민주파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조봉암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조봉암은 사절한다. 이 당에 못 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민당의 지주라고 볼 수 있는 김성수는 그 당시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런 김성수가 '조봉암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자유민주파는 완강하게 버텼다. 이와 달리 민주대동파는 '모든 민주주의 세력은 뭉치자. 그러니까 조봉암은 당연히 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자유민주파는 왜 그토록 강하게 조봉암의 합류를 막으려 한 것인가.

서중석 : 우선 한민당 골수 세력은 조봉암하고 숙원 관계였다. 한두 해 그런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건과 세월을 두고 원수,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같은 관계였다. 이런 점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곧 선거가 있는데 조봉암이 들어와서 휘젓고 다니면 다음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가 누가 될 것인가. 조봉암은 지난번 대선 차점자 아니냐',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을까라고 보는 견해도 많았다. 신익희도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 했고, 조병옥과 장면 역시 적어도 부통령 후보로라도 나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경우건 '조봉암이 들어오면 아주 어렵다. 문제가 심각하다', 이걸 느낀 것이다. 그래서 자유민주파를 중심으로 1955년 9월 민주당이 생겨나게 된다. 

신익희를 대표 최고위원으로 한 민주당 출범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야당들은 이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야당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이 신민당과 함께 바로 이 민주당이다. 왜냐하면 1955년 이후의 민주당, 이게 국민들한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민주당이 실제 내건 것 자체는 별것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내각 책임제 그리고 '자유 경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었고 다른 건 별게 없었다. 그리고 민주당은 권력을 정말 장악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정당이라고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비실비실한 면이 보였다. 정책적으로도, 새로운 정부를 떠맡을 수 있는 대안자로서도 능력이 있는 정당이라고 사람들이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민주당을 0.5 야당 또는 0.5 보수 야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사랑을 받았느냐. 이승만 정권한테 되게 당하면서 참 힘들게 야당 노릇을 했다는 것도 있지만, 도시민의 불만을 야당이 해소해주기를 바라는 강한 분위기가 이 시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이때는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던 시기 아닌가. 그래서 야당이 좋아서 야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승만 정권과 여당이 미워서 야당을 지지하는 한국적 현상이 바로 이때부터 나타난다. 이건 나중에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미워서 야당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도 민주당의 출현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진보 정당 결성 움직임과 조봉암의 구상 

프레시안 : 민주당 탄생 과정은 그 후 한국 야당이 보인 반공주의적 속성의 근원을 잘 드러낸다. 아울러 바로 이해(1955년) 이웃 나라 일본에서 자민당이 결성되며 '55년 체제'(자민당의 압도적 우위를 기본으로 한 자민당-사회당 양당 체제)가 만들어진 것과 대비하며 음미할 대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중석 : 일본에서는 자민당-사회당의 보혁(보수·혁신) 체제가 이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간 계속된다. (자민당은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할 때까지 38년에 걸쳐 장기 집권한다.) 한국의 경우 자유당과 민주당은 뿌리가 같다. 둘 다 분단 반공 세력으로 불리지 않나. 따라서 이 당시 진보당이라는 것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정당제로 차라리 보혁 제도가 발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그것이 9월 1일 광릉 회합으로 나타난다. 뭐냐 하면 해방 직후에는 좌파가 무지하게 많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좌파가 활동하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지 않나. 그 후 잔존한 진보 세력의 다수가 9월 1일 광릉에 모였다. 이걸 광릉 회합이라고 부른다. 이때 조봉암은 물론이고 서상일, 장건상, 정화암, 최익환, 박용희, 서세충, 정이형처럼 한때 유명했던 원로들과 함께 윤길중, 신도성, 김기철, 이명하, 조규희 같은 신진, 청년들도 모였다. 전쟁에서 잔존한 진보 세력이 상당수 망라됐는데, 이렇게 모임을 한 것도 1956년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온다. 

프레시안 : 진보 정당의 조직 방식, 노선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조봉암은 일종의 용광로론을 제시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중석 : 광릉 회합 이후 여러 차례 회합을 하면서 많은 논란이 오갔다. 지도층 구성에서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갖고도 논란이 일었고, 노선 문제에 대해서도 진보 세력으로서는 또 논란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장건상, 정화암 등은 선이념 통일, 후창당을 주장했다. 먼저 이념을 통일하고 나서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은 선창당, 후이념 통일을 주장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념 통일부터 먼저 하려고 하면 신당 발족은 백년하청이다, 이 말이었다. 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정당은 정치 단체이지 사상 단체가 아니라고 조봉암은 주장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을 한 가마 속에 다 털어 넣고 거기서 쇠는 쇠대로, 금은 금대로 가려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건 현실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당시 진보 세력 또는 혁신 세력은 굉장히 다양했다. 일제 때 어디서 활동했느냐, 이것부터 다 달랐다. 예컨대 만주, 노령 지방, 중국 관내, 일본, 국내 중 어디서 활동했느냐에 따라 사상적으로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해방 후 그 복잡한 정국에서 여러 가지 이합집산이 있었고 전쟁을 겪으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그랬나. 그런 여러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진보 세력을 어떻게 결집할 것인가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니까 먼저 당을 만들어놓고 당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구체적인 논의를 해나가자, 이게 조봉암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진보당을 보면 진보당이 인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그게 한국적 혁신계다. 어떻게 보면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이념이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민중당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나. 

"피해 대중의 자각과 단결" 강조한 진보당 발기 취지문 
 

ⓒ오월의봄

프레시안 : 우여곡절 끝에 진보당이 그 지향을 세상에 드러내는 단계에 접어든다.

서중석 : 1955년 12월 22일, 드디어 진보당 발기 취지문과 강령 초안이 발표된다. 진보당이라는 이름은 조봉암이 주장한 것인데, 진보당 발기 취지문과 강령 초안 발표는 우리나라 진보 세력의 노선, 길에서 아주 중요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발기 취지문에는 "진정한 혁신은 오로지 피해를 받고 있는 대중 자신의 자각과 단결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걸 깊이 인식하고"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것도 조봉암이 집어넣은 것으로 돼 있다. 여기서 "피해를 받고 있는 대중"이라는 게 뭐냐 하는 것이 나중에 크게 논란이 된다. 진보당 사건을 일으킬 때 극우 반공 세력은 '이게 바로 노농 독재를 하려는 주장'이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강령을 보면 "공산 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배격"한다고 돼 있다. 1946년 방향 전환을 할 때 이미 주장한 것인데, 조봉암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 주장을 했다. 제일 논란이 되는 것으로 통일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도 아직 평화 통일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다만 "민주 우방과 제휴하여 민주 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국 통일의 실현"을 말했다. 이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의 극우 세력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일 텐데, 표현을 그렇게 했다. 

진보당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진보당 추진 준비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는데,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닥쳐버렸다. 1956년 3월에 가서 진보당 추진위원 208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여기에는 조봉암, 이동화, 서상일, 윤길중, 신도성처럼 이름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지만 원내 의원은 신도성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유명한 '장군의 아들' 김두한 의원도 여기 들어왔다. 그걸 보면 김두한도 뭔가 생각하는 게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백두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권 서평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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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세월호 추모 뮤직비디오...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현장] 첫선 보인 추모 뮤직비디오 '네버엔딩스토리'... 70여 유가족 동참

15.05.29 22:16l최종 업데이트 15.05.29 22:3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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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넘게 이어진 발표회가 끝날 즈음, 무대 위에는 발표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가족 등 20여명이 무대 위에 섰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함께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행사는 끝이 났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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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짜리 짧은 영상이었다. 캄캄한 무대 위 화면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부른 '네버엔딩스토리' 뮤직비디오 영상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발표회 겸 첫 상영회 현장이었다. 

"가슴이 짠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참사 후 가족들이 싸워왔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영상에 나오는 (단원고) 빈 운동장과 빈 철봉, 빈 의자들을 보면서 그 많은 단원고 아이들 250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남석, 고 이창현군 아버지)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사고 후에 계속 '난 이제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뮤비(뮤직비디오)에선 아주 평범한 모습들이 나오잖아요. 가족들이 요즘 '빨갱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참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아픈 일을 당했다는 걸 알길 바라요." (최윤아, 고 최윤민양 언니)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강하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유족들이 부르는 '네버엔딩스토리(김태원 원곡)' 노래를 배경으로, 화면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어릴 적 사진이 돌아가며 등장한다. 젖먹이 때부터 유치원 소풍, 가족여행 등 성장하는 순간순간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70여 유가족, 1000여 장의 사진들이 모여 세월호 선체 형상을 이루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아이 얼굴 도저히 못 보겠다' 참여 못해 아쉬워한 유족도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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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네버엔딩스토리 뮤비에는 희생자들의 어릴 적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참사 희생자로, 유가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뮤비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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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이 뮤비에는 희생자들의 어릴 적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참사 희생자로, 유가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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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에는 특히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많이 등장했다. 모두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유족들을 일일이 찾아가 유품사진을 모았다는 이미경(고 이영만군 어머니)씨는 "동참하고 싶은데도 '아이 얼굴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며 사진을 못 준 가족들도 많았다, 다들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제작부터 섭외까지 총괄한 건 5남매의 평범한 엄마이자 '리멤버0416' 대표인 오지숙씨다. 참사 발생 후, '유족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광화문 1인시위에 나섰던 오씨였다(관련기사: 독수리 오남매의 엄마 "저에게 1초만 주소서"). 그는 "제가 오히려 무모했기 때문에 이 꿈을 현실로 만든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차를 운전하면서 음악들을 들었다. 어떤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흘렀다. 노래 가사와 함께 머릿속에 선명한 영상들이 지나갔다. 반복해서 들으며 계속 울었다. 어떤 구상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되기만 하면 참 좋겠지만 안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실현된다는 건 꿈에 가깝다. 이 꿈을 꾸어도 될 것인가? 
('네버엔딩스토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씨가 쓴 글)

뮤직비디오의 시작은 2월 초, 음악을 듣다 떠오른 영상이었다고 한다. 첫 구상부터 발표까지는 딱 107일이 걸렸다. 안 될 가능성이 더 큰, 그의 표현대로라면 '꿈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오씨는 고민 끝에 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게 오늘 우연히 한가지 생각이 났는데, 상의 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 내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데이트 됐다.
  
오씨는 원곡 저작자이자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가수 김태원에게 직접 일곱 장의 손편지를 쓰고, 회사에 찾아가기도 하면서 결국 원곡 저작물의 사용동의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영상제작을 맡아줄 감독을 찾아갔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편곡자와 음악감독을 섭외했다고 한다. 

발표회에서는 촬영과정이 담긴 제작 필름도 공개됐다. 한 공간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연습이 끝난 뒤 휴지를 나누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결국 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유족들이 모여 뮤비 촬영을 시작했다. 제작비도 190여 명의 후원으로 3일 만에 모였다. 

'윤민 언니' 최윤아씨는 "제 동생 윤민이는 희생자 304명 중 한 명이 아니라 윤민이 딱 한 명"이라고 말하던 도중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던 윤민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뮤비에도 그런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란 최씨의 말에 객석에서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건 '그들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합창으로 막 내린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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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회에서는 촬영과정이 담긴 제작 필름도 공개됐다. 한 공간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연습이 끝난 뒤 휴지를 나누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 오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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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세월호 추모뮤비인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발표회 겸 첫 상영회가 열렸다. 무대 위에 선 유가족들과 제작자들의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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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7일 월요일 – 보컬 첫 연습> 
저녁 7시, 안산합동분향소 가족대기실 공방에 어머님, 아버님, 언니들이 모였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보컬이 정해졌다.부모님 다섯 분, 형제자매 다섯 명, 이렇게 10명의 메인 보컬과 416가족합창단과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함께하기로 했다. 가족분들께 노래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 혹시나 결례가 아닐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다. 노래를 부르시는 부모님과 언니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오씨는 "매일 유가족이 투쟁하고 싸우는 모습만 보던 사람들에게, 이들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우리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말했다. "너무나 행복했던 이 일상이 참사로 인해 다 사라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발표회 생중계를 맡아 내보낸 유가족 문종택(고 문지성양 아버지, 416TV 총괄)씨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할 언론을 만나고 싶다, 유족들의 슬픔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특별법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유족들의 한스러운 목소리를 싣는 언론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제작발표회 이후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이 뮤직비디오를 알릴 계획이다. 영어자막도 함께 제공된다. 2시간 넘게 이어진 발표회가 끝날 즈음, 무대 위에는 발표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가족 등 20여 명이 무대 위에 섰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함께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행사는 끝이 났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09일째의 모습이었다.  

"한 사람의 작은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 여럿의 노력이 더해져 큰 울림이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끝으로 여기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끝나지 않는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보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 가족의 마음으로 불러주세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서, 저희 같은 유가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416 유가족 합창단, 이런 것도 더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더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남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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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 창간기념식 소박하지만 뜻깊게 진행

자주시보 창간기념식 소박하지만 뜻깊게 진행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5/29 [20: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자주시보 창간기념식     © 자주시보

 

▲ 자주시보 창간기념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자주시보 창간을 축하합니다."   © 자주시보

 

28일 향린교회에서 ‘자주민보 창간 15주년 및 자주시보 창간 기념식’을 100여명의 애독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행사장 입구에는 530여명의 창간발전위원 명단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자주민보 폐간 저지 범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하여 자주민보를 사수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폐간 확정판결을 받게 되자 그대로 ‘자주시보 창간 준비위원회’로 전환하여 자주시보를 더욱 대중적인 언론, 시민의 언론, 국민의 언론으로 만들기 위해 그간 창간발전위원을 모집해왔었는데 이렇게 많은 애국시민들이 힘을 더해주어 자주시보를 당당한 국민의 언론으로 선포하는 창간기념식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창간발전위원 현수막을 자주시보 창간 기념식 입구에 걸어놓은 모습     ©자주시보

 

▲ 27일 5시 집계 자주시보 창간발전 위원 명단     ©자주시보

 

양심수후원회 김익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기념식에서 자주시보 창간발전위원회 권오헌 공동대표는 ‘여는말’을 통해 북바로알기 등 자주민보 활동의 의의와 그간 진행한 폐간저지투쟁의 경과, 그리고 자주일보, 자주시보로 이어졌던 지난했던 자주시보 창간과정을 감회깊이 되돌아보면서 자주시보 창간을 뜨겁게 축하해주었다.

 

▲ 권오헌 회장의 여는말     © 자주시보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도 이어진 축사에서 최근 6.15, 8.15 행사 성사를 위해 여러 해외 동포들을 만나고 왔는데 많은 해외동포들이 자주민보가 폐간되어 분노하고 가슴아파했는데 자주시보가 창간되어 다들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면서 진보진영에서도 자주시보가 발전할 수 있도록 힘껏 돕겠다며 연대와 축하의 뜨거운 마음을 전해주었다.

더불어 한충목 공동대표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6.15는 서울에서 8.15는 평양에서 반드시 개최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굳은 의지까지 밝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언론계 대선배로서 자주민보 이름도 제안해주고 기사쓰기 방법에서부터 명예훼손법, 보안법 등 언론활동을 하면서 주의해야할 법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려주는 등 자주민보, 자주시보 창간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박해전 전 한겨레신문 기자도 축사에서 “이 시대 언론이 나아갈 길은 오직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라며 자주민보가 앞장에 서서 그것을 열심히 해왔는데 자주시보도 앞으로 더욱 더 잘 해주기를 바란다며 “자주시보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영광이 있을 것”이라며 뜨거운 축하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이어 그간 지난한 자주시보 창간과정을 정리한 ‘자주민보 강철의 역사와 자주시보 창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관람하였는데 자주민보 폐간을 막기 위해 애써 준 수많은 애독자들의 투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이정섭 기자가 한 달여 동안 미국 전역의 애독자들과의 만나는 과정에 느낀 뜨거운 재미동포들의 자주민보, 자주시보 사랑에 대한 보고를 진행하였다. 

 

▲ 자주시보 홍번 대표의 대회사     © 자주시보

 

이어 자주시보 홍번 대표의 대회사가 있었다. 
그는 “이 치욕의 분단을 극복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언론활동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되고 감옥에 가야할 일이라면 기꺼이 가겠다”며 불같은 의지를 당당히 밝힌 홍번 대표는 “그래도 탄압을 받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우리 자주시보 기자들에게 너무 모나지 않게 모서리좀 깎으면서 글을 쓰라고 당부하고 있다”며 통일의 그날까지 자주시보가 계속 좋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주시보를 책임지겠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열화와 같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렇게 달아오른 자주시보 창간 기념식 절정 분위기에 박금란 시인이 연단에 올라 ‘자주시보여 영원하라’라는 축시를 낭송하여 참가자들과 자주시보 기자들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 자주시보에서 수여한 자주통일상을 수상하는 이규재 범민련 의장     © 자주시보

 

이어 자주시보에서 이 땅의 훌륭한 애국자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옥중고초를 겪고 나오자마자 전국의 노조를 순회하며 조국통일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니는 등 통일운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이 자주통일상을 수상하였고 평화통일상은 많은 청년학생들과 통일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힘겨운 재판을 받을 때 큰 도움을 주고 또 스스로 민권연대 상임공동대표 일을 맡아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 헌신해온 김승교 변호사가 수상하였으며 해외동포에게 주는 민족대단결상은 재미동포 강산 선생이 받았다. 강산 선생은 북을 방문한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려 북 주민들의 삶을 널리 알려 민족동질성 회복에 큰 도움을 준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 이성원 후원회장의 수여로 진행된 자주시보 감사장 전달식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이어 감사장 전달식을 진행하였다. 이중엔 특별히 많은 후원금을 내 준 애독자도 있고 많지는 않지만 어려운 조건에서도 꾸준히 후원해준 후원인, 후원인을 많이 모아 준 후원인도 포함되어 있으며 꼭 돈이 아니라 자원봉사활동, 기고 등을 통해 자주민보, 자주시보 운영에 뜻깊은 기여를 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권가현, 김을수, 이태성, 하성원, 하종근, 박창숙, 소수영, 손세영, 이윤섭, 김영식, 이광일, 이상일 부부, 한호석, 양은식, 윤길상, 현준기, 김현환, 이미일, 김범훈, 김상일, 이인숙, 이용오 부부, 이준무 전화심 부부, 노길남, 유태영 선생에게 감사장이 전달되었다.

 

▲ 자주시보 창간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 모습     © 자주시보

 

마지막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일어나 노래 ‘조선은 하나다’를 뜨겁게 열창하면서 자주시보 창간 1부 기념식을 마쳤다.


2부엔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가족들이 준비한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담화의 시간을 가졌다. 
홍번 대표의 건배사 ‘조국통일을 위하여’ 등 많은 건배사가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이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다며 다들 접시 가득 음식을 몇 번씩 가져다 먹으며 정담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겨운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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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성공단 불만과 남한 정부의 선택

 
2015. 05. 29
조회수 78 추천수 0
 

  개성공단은 남북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생산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남북의 정치․ 경제적인 힘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곳이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면서도 외관상으로는 유일하게 정경분리가 적용되고 있는 장이기도 하다. 남북의 정치적 관계가 경제를 압도하는 곳에 북한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개성공단 활성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진로는 대북한 정치, 군사적 관계와 연계한 남한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래도 설비와 기술투자를 제공하는 남한이 토지, 인력을 제공하는 북한에 우월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북한이 아무리 개성공단 개발을 원해도 남한이 들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이는 5·24조치가 기업이 원하는 설비증강에 제한을 가하고 있는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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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불만은 더딘 공단개발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북한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공단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있다. 개성공단과 관련, 발생하는 큰 문제는 대부분 여기에 연원한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은 애초 기업의 당면한 어려움을 타파하고(남측), 북한의 노동력 채용을 통한 임금확보(북측), 더 나아가 남북관계의 개선(남북한)을 지향하기 위해 출발한 사업이었다. 총 2,000만평(공단 800만평, 배후도시 1,200만평)을 10년 내 개발하려고 했으나,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법이 공포된 지 13년째인 현재에도 1단계 100만평도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가동되고 있는 개성공단만 하더라도 북한에게는 임금이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다. 북한이 임금 확보와 인상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것도 개성공단이 무시할 없는 외화벌이 창구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이 중국, 베트남 공단과 비교, 절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했지만 그래도 수용해 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외화벌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와 같은 대북한 징벌적 조치(5․24조치 등)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개성공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낮은 임금의 개성공단이 비록 일부지만 남한기업의 경쟁력을 유지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남북은 개성공단을 국제화하고, 국제적 기준에 입각해 운영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북한이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말할 것 없이 임금이었을 것이다. 남한은 공단 운영의 안정성을 생각했겠지만, 북한에게는 임금 인상의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음직하다. 개성공단 임금 수준이 국제기준에 비교, 턱없이 낮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북한에게 남한이 주장하는 근로인력의 간접 채용이나 물자 반출입상의 어려움 등 국제기준과 다른 여타 제한적 조건은 안중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3월 북한은 낮은 임금 수준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방적 임금인상을 통보한다. 물론, 이 문제로 개성공단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갈 의사는 없었던 것 같다. 최저(기본)임금의 인상이 남북이 합의한 기준에 불과 0.18%를 상승한 5.18%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말로 파국으로 몰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이보다 훨씬 높은 인상률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에 과잉 대응한 측면이 많았다. 협상을 통한 원만한 타결보다는 합의서에 의한 원칙을 고수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것이 오히려 임금 협상의 유연성을 없애고 더 큰 갈등으로 치닫게 한 것 같다. 결국 남한 정부가 원하는 원칙을 지켜내기는 했으나, 갈등의 골은 더 깊게 만들어졌다. 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문제는 북한이 개성공단의 임금이 타 공단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일방적인 인상을 계속 시도할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개입 최소화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개성공단은 북한 지역에 소재해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북한이 개발조성하고 남한의 기업들에게 직접 분양해야 했었다. 분양을 받은 남한 기업들은 북한과 직접 협상하여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물론, 임금협상을 위해서는 진출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 단체 차원에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한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개발의 대가를 북한이 치를 수 있도록 했거나, 토지비용으로 상쇄하거나 했어야 했다. 나머지는 차관형식으로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북한의 협력 사업에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정부는 개입해야 할 것과 개입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개입은 되도록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개성공단이 정치·군사화하는 지름길이 된다. 개성공단의 정경분리를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남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개입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지원하고 지도하는 데에만 국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성공단과 관련된 대부분의 협상(임금, 개발 및 운영 등)은 모두 개성공단 기업 또는 기업협의회의 몫으로 돌려주고, 개성공단 운영을 기업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개성공단의 질서 있고, 원칙 있는 운영은 정부의 통제를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성공단 외에도 북한 지역에서 사업을 한다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에 민간 기업이나 민간단체가 없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는 궁색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그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자신의 권한을 시장에 돌려주기 바란다.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회장

 **남북물류포럼 <KOLOFO 칼럼>(2015.5.26)으로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 에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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