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언론개혁시민연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인터넷여론장악 위한 정부의 시도˃

  • [사회] 언론개혁시민연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인터넷여론장악 위한 정부의 시도〉
  •  

     

     

     

    언론개혁시민연대가 11일 논평을 통해 네이버·다음이 포털뉴스서비스개선을 위해 독립적인뉴스평가기구인 공개형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이는 정부가 포털을 장악하려는 시도˃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평은 그 근거로 전날 10일 동아일보 황우택논설주간의 칼럼에 공개형 뉴스제휴평가위원회와 관련 ˂청와대 민병호뉴미디어비서관에 막후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기술돼 있는 점을 들었다.

     

    이어 황주간의 칼럼에는 민병호비서관은 인터넷매체인 데일리안의 발행인겸 대표로 10년간 재직했고 특히 외부강연 등에서 <인터넷매체문제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해놓고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또 <지난해 7월 <데일리안>은 민비서관의 임명소식을 전하며 <박대통령이 (폐지했던뉴미디어비서관제를 다시 신설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사태이후 인터넷과 SNS상에서의 유언비어와 각종 허위보도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한 여권관계자는 <데일리안>에 <세월호사태뿐 아니라 문창극전총리후보자 때도 이제는 기존 보수매체의 여론형성과 여론장악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며 <민병호비서관에게 주어진 임무가 인터넷여론장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네이버와 다음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수 없다>면서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뉴스서비스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네이버와 다음은 기자회견을 열고 어뷰징기사 증가에 따른 이용자의 불만과 사이비언론의 퇴출을 명분으로 공개형 뉴스평가위원회를 언론에 제안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박근혜 정권사이비 언론 핑계로 포털장악에 나서나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이 왜 포털의 뉴스서비스 정책에 개입 했나 -

     

     

    지난달 28일 네이버와 다음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양사는 ‘(가칭공개형 뉴스평가위원회를 언론에 제안했다언론사의 포털 입점과 퇴출을 언론계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이들은 어뷰징 기사 증가에 따른 이용자의 불만과 사이비언론의 퇴출을 명분으로 내세웠다그러나 공개형 뉴스평가위원회의 제안 과정과 운영계획을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인터넷 매체의 난립과 어뷰징 등 포털 뉴스서비스의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포털 뉴스서비스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양사는 이번 정책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 결과라고 밝혔다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이처럼 중대한 정책변경을 전격적으로그것도 1, 2위 경쟁업체인 네이버와 다음이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부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모양새다누군가 외부에서 그림을 그려 제안한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동아일보에 의문을 풀어줄 칼럼이 실렸다황호택 논설주간은 기명칼럼에서 청와대 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의 막후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밝혔다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은 친여 극우성향의 인터넷매체인 <데일리안>의 발행인 겸 대표로 10년간 재직한 인물이다칼럼에 따르면 그는 외부 강연 등에서 인터넷 매체 문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해 놓고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고 한다지난해 7월 <데일리안>은 민 비서관의 임명 소식을 전하며 박 대통령이 (폐지했던뉴미디어비서관제를 다시 신설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 사태 이후 인터넷과SNS상에서의 유언비어와 각종 허위보도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 된다고 보도했다한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에 세월호 사태뿐 아니라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때도 이제는 기존 보수 매체의 여론 형성과 여론 장악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민병호 비서관에게 주어진 임무가 인터넷 여론 장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신설한 국정홍보 차관보와 홍보협력관제다문화부는 지난 5월 국정홍보 차관보에 이의춘 <미디어펜대표를 임명했다이 차관보는 “(세월호유가족은나라를 망치고 있다여기에 반미 반체제 좌파인사들이 파리 떼처럼 달라붙어 반정부투쟁으로 악용하고 있다”, “좌파시민단체들은 악마의 집단 같다.”며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원색적으로 비난해 물의를 일으킨 언론인이다그는 2011년부터 13년까지 <데일리안편집국장을 지냈다당시 <데일리안대표가 바로 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이다이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이의춘 차관보의 임명을 민 비서관과 연결 짓는 목소리가 많다민 비서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문화부는 최근 이 차관보를 보좌할 홍보협력관 2명을 언론인 출신으로 채웠다홍보협력관제가 친정부 언론인을 동원한 언론통제 수단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볼 때 네이버와 다음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청와대는 민병호 뉴미디어비서관이 왜 포털 사업자의 뉴스서비스 정책변경에 개입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아울러 문화부는 국정홍보 차관보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 무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언론연대는 청와대가 신설해 가동하고 있는 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청와대)이의춘 국정홍보 차관보홍보협력관(문화부)’으로 이어지는 정부 홍보 담당라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 뉴스서비스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안 그래도 뉴스서비스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이들이 청와대 비서관이 개입한 정책을 개선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이용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정권의 입맛에 맞추고기득권 언론과의 카르텔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회피하려는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뉴스 서비스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이를 잘 아는 포털 양사가 친여 성향의 언론 기득권 단체에게 뉴스 통제권을 넘겨 공정성을 구현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사이비 언론 정리를 핑계로 언론을 줄 세우고조중동 등 보수 기득권 언론을 중심으로 포털을 재편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포털은 사이비 언론의 피해자가 아니다막강한 독점력을 행사해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의 파괴자이다이용자와 국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네이버와 다음은 청와대 개입 의혹의 진상을 밝히고 이용자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11

    언론개혁시민연대

     

    *기자제휴 : 21세기대학뉴스
    21세기민족일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법원 제출 의견서]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한 의견서

프로펠러 모형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신상철 | 2015-06-13 08:16: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법원 제출 의견서]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한 의견서

 

의 견 서

사건번호 : 2010고합1201
피 고 인 : 신상철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6월 8일 제37차 공판(노인식 충남대 교수에 대한 증인신문) 및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하여 첨부와 같이 의견서를 제출하고자 하오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프로펠러 손상이야말로 천안함이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천안함 스스로 온 몸으로 보여주는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며,

둘째, 그럼에도 노인식 교수는 학자적 지위와 권위를 이용,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사되고 판단되어야 할 과학적 사실에 대하여 특정한 결론에 맞추어진 시나리오를 펼침으로써 사실관계를 현저히 왜곡하며 진실을 호도하고 있으며,

셋째, 이러한 사실이 일반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최고 권위의 과학자가 분석한 것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줌으로써 천안함의 진실규명에 상당한 저해요소로 작용함에 대한 우려와 함께,

넷째, 프로펠러 손상의 원인 규명에 있어 단순 프로그램상의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체적 실험이 가능하며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과 재연이 가능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 첨부 :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하여

2015년 6월 12일

피고인 신상철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귀중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하여

1. 프로펠러 손상의 개요

천안함 우현 프로펠러의 블레이드(Blade)가 휘어져 있으며, 블레이드의 휘어진 부분은 마치 샌딩(Sanding)을 한 것처럼 빤질빤질하며 따개비가 모두 떨어져 나간 형태입니다. 그리고 블레이드의 끝단부는 부러져 있거나 부분적으로 손상이 나 있습니다.

 

 

이것은 천안함이 해저지반(모래톱)에 좌초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이며 좌현 프로펠러는 멀쩡한 반면 우현 프로펠러가 집중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은 천안함이 좌초시 우현 프로펠러가 모래톱에 파묻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식적으로 좌현하부에서 폭발이 존재했다면 좌현 프로펠러가 손상이 큰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좌현 프로펠러는 멀쩡한데 우현 프로펠러가 손상이 큰 것은 좌현 하부에서의 폭발이 존재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노인식 교수는 법정 증언석에서 이 문제에 대해 “왜 그런지 모르겠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프로펠러의 손상에 대한 원인을 밝힐 수 있을만큼 우리가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 스스로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이며 프로펠러 관련 논문만 수 십편 썼다고 하면서 “실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입니다.  


2. 프로펠러 손상 원인의 99%는 <좌초>

저는 재판에서 노인식 증인에게 “선박의 프로펠러가 손상받는 원인 가운데 좌초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질문하였으나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제가 다시 “프로펠러 손상의 95%이상은 좌초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증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재차 묻자 노인식 교수는 “그 정도 될 것”이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장담컨대, 저는 <프로펠러 손상원인의 99%는 좌초(충돌 포함)>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프로펠러는 선박의 제일 뒤쪽, 제일 하단에 설치되어 있고 선저면 보다도 더 아래로 내려와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펠러가 부러지거나 휘어지는 손상을 입었다면 그것은 99% 해저지반에 닿거나 어떤 물체와 부딪쳤을 때 발생가능한 것입니다.

선박의 프로펠러가 외부폭발에 의해 손상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어뢰폭발을 만날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 0.001%의 확률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프로펠러 손상의 여러 사례들

 

그런데 충남대 노인식 교수는 프로펠러 손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처음부터 99% 확률의 <좌초>는 완전 배제한 채 0.001% 확률도 되지 못하는 <폭발>만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정부와 국방부에서 설정해 놓은 <천안함은 어뢰폭발로 격침>이라는 가이드라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법정 증언에서 분명히 발언하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프로펠러의 손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난 뒤”라고 증언한 것이지요. 그가 말하는 <모든 상황>이란 합조단의 최종결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합조단에서 <어뢰 폭발>로 결론을 내려놓고 있는데 그가 <프로펠러 손상의 원인은 좌초>라는 의견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공학 전문가로서, 그는 <프로펠러 손상은 폭발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고 원인에 대한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합조단의 최종결론을 유보시켰어야 옳습니다. 그것이 학자적 양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폭발의 결론에 자신의 소견을 끼워맞추었던 것입니다.


3. 천안함 프로펠러 손상 세부분석

천안함 우현 프로펠러에 나타나 있는 손상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그 하나하나를 짚어보면 천안함이 어떤 사고를 접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현 프로펠러 단순 휘어짐 (Simple Bending)

 

프로펠러가 휘어지는 현상은 해저지반 혹은 어떤 물체와 부딪혔을 경우인데, 해저지반과 접촉한 것을 나타내어주는 증거는 접촉면의 상태입니다. 우현 휘어진 부분이 샌딩(Sanding)한 것처럼 빤질빤질하고 따개비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은 우현 프로펠러가 모래톱에 묻힌 상태에서 회전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우현 프로펠러 S자 휘어집 ('S' Bending)

 

우현 프로펠러 가운데 하나는 블레이드가 마치 ‘S'자 형태로 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천안함이 좌초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가며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안함은 ‘가변피치프로펠러(Variable Pitch Propeller)이므로 전진이든 후진이든 돌아가는 방향은 일정합니다. 우현은 오른쪽, 좌현은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다면 블레이드의 각도를 조절하여 전진과 후진시 날개의 각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전, 후진을 반복하였을 경우 블레이드가 'S'자 형태로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프로펠러의 각도를 달리하며 전.후진 실험을 해보면 입증될 것입니다. 프로펠러 모형 실험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3) 우현 프로펠러 끝단부의 손상

우현 프로펠러가 모래톱에 파묻한 상태로 작동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끝단부의 손상입니다.

 

 

모래톱이라는 해저지질은 모래와 자갈 그리고 조개껍데기 등이 혼재된 상태의 해저지반입니다. 따라서 프로펠러가 모래를 파면서 돌아가는 동안 그 속의 자갈을 만날 경우 블레이드의 날이 깨어지거나 금이가는 손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4) 좌, 우현 프로펠러 비교 - 따개비 유무

좌현 프로펠러는 모래톱을 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현 프로펠러는 모래, 자살, 조개껍데기가 혼재된 해저지반을 파면서 휘어지고 금이 가는 손상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따개비>입니다.

 

 

따개비가 프로펠러에 달라붙는 형태는 좌우현 프로펠러가 동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상이 발생된 후 좌우현의 모습은 확연히 다릅니다. 좌현은 따개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반면, 우현 프로펠러는 따개비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부위는 마치 페퍼로 문지른 것처럼 빤질빤질 합니다. 이것은 우현 프로펠레가 모래톱을 만났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 노인식 교수는 “(폭발에 의한 충격에) 따개비가 떨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참으로 궁색한 변명입니다. 좌우현이 고스란히 비교가 되고 있는 마당에 ‘충격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으며 이 또한 간단한 실험으로 입증이 가능한 것입니다.

(5) 2009 하와이 앞 바다에서 좌초한 미 순양함과의 비교

2009년 미 순양함 'Port Royal'호가 훈련을 마치고 귀항하던 중 하와이 앞바다 산호초 해역에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좌초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엔진을 전,후진으로 쓴 결과 좌우 스크류 프로펠러가 부러지고 휘어졌습니다.

 

 

 

 

암초에 좌초한 Port Royal호 스크류는 부러지기까지 하였습니다만, 모래톱에 좌초한 천안함은 휘어지는 손상을 입은 것이 차이점입니다. 두 함선 모두 휘어진 프로펠러 블레이드의 모습이 샴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4. 천안함이 좌초한 지점은 어디인가?

제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천안함은 좌초 후 충돌로 침몰하였다>입니다. 이것은 처음 제가 천안함 사고를 들여다 보며 주장한 이후 줄곳 견지해 온 저의 분석이며 판단입니다.

그러나 가끔 검사님께서 저의 주장을 모르지는 않으실 터인데도 증인들에 대한 신문을 하면서 “이 지점(천안함 침몰지점을 지칭)에서 좌초가 가능한가?”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점은 수심이 47m입니다. 그곳에는 암초도 없습니다. 그것은 해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따라서 천안함이 침몰한 지점은 천안함이 좌초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천안함이 좌초한 지점(1차 사고지점)은 백령도에 가까운 모래톱이며 수심이 6.4m인 지점입니다. 그리고 천안함이 침몰한 지점(2차 사고지점)은 수심 47m이며 그곳에서 천안함은 수중함선과 충돌로 침몰한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분석이며 변함없는 주장입니다.

(1) ‘최초좌초’지점 (1차 사고지점)

천안함이 좌초한 지점(1차 사고지점)은 천안함 사고 다음 날인 2010년 3월27일 오전 2함대 사령부에서 희생자 가족들께 브리핑하기 위해 만든 작전상황도에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지점은 모래사구가 발달한 지점입니다. 수 천년 동안 대동강에서 흘러내려온 고운 모래는 백령도 인근에 가라앉아 넓디넓은 저수심 지대를 형성합니다. 해도상에 나타나는 저수심 지역은 백령도와 대청도를 합친 면적보다도 더 넓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백령도의 사곳이라는 해안은 수km에 달하고 고운모래가 단단히 굳어져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정도입니다. 

 

 

백령도 서안을 휘감아 돌면서 와류에 의해 가라앉기 시작한 고운모래들은 마치 게불(해저생물)과 같은 모습으로 길게 저수심대를 형성하며 그 끝단은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해도상 'S, SH'로 표기된 것이 바로 모래톱을 의미하며 모래, 자갈, 조개껍질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지점의 해도상 평균수심은 8.6m이지만 작전상황도에는 6.4m로 메모되어 있습니다. 흘수가 4m인 천안함이 평균수심 6.4m 지역에서 좌초가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2~3m의 파고(해수면의 오르내림) 그리고 선체의 트림(1m)과 프로펠러 하단의 기저면 돌출부의 깊이(1m)를 감안할 경우 충분히 좌초하고도 남는 지점입니다. 

해군 스스로 ‘최초좌초’라고 표기한 것은 천안함 사고 자체가 ‘단 한번’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반파에 이르는 사고는 ‘최종사고’가 되겠지요. 천안함은 ‘최초사고’인 ‘좌초’를 겪으면서 선체 하부가 찢어지고 파공이 되면서 심각하게 침수가 발생합니다. 그것이 천안함이 기동력을 상실하고 2차 사고를 당할 때까지 표류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2) 침수 후 반파

 

청와대에도 ‘침수’ 보고가 이어졌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바와 같이, 천안함 사고를 최초로 보도한 KBS의 화면에는 ‘침수 5km 표류후 침몰’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좌초(1차 사고)로 인한 침수 / 5km 표류 / 충돌(2차 사고)로 인한 반파 침몰’ 이것이 천안함 사고입니다.

는 이 기동력을 상실하는 최초의 사고를 ‘최초사고’라 표기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3) 충돌후 반파 침몰

이번에 제출하는 의견서는 ‘프로펠러 손상의 원인은 좌초’라는 사실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으므로 ‘충돌’에 대한 상세는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기존의 공소장에 제가 주장하며 작성한 칼럼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보다 상세한 내용을 포함하여 별도의 의견서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5. 프로펠러 모형 실험에 대하여

저는 이번 37차 공판에서 재판장님께 ‘프로펠러 모형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충남대 노인식 교수는 그 스스로 국내에서 자신만큼 프로펠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만, 저는 그분이 참으로 과학자 답지 못한 거짓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식 교수께서 프로펠러에 대해 얼마나 연구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항해를 하면서 프로펠러를 써봤고, 조선소에서 신조선 감독을 하면서 프로펠러 제작 공정을 주물단계에서부터 완성될 때까지 제작검사하는 일을 여러차례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프로펠러 손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그렇게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과학적 지식이 동원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황에서 겪는 ‘관성의 원리’ 그것을 국방부와 노인식 교수는 주장하는 것이고, 저는 ‘그것은 참으로 황당한 얘기’이며 <100% 좌초의 경우 발생하는 상황>으로 결론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한 실험으로 입증가능합니다. 우리가 천안함과 동일한 초계함 하부에 어뢰를 터트려보는 실험을 한다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것은 여건이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펠러의 경우 모형 실험만으로도 충분히 원인 규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실제로 선박을 최초 건조할 때, 프로펠러 모형을 만들어서 실험을 하고 선주의 승인을 득한 후 제작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노인식 교수의 시뮬레이션

노 교수는 자신 스스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우현 스크류가 10cm 축밀림이 발생했다는 보고 내용에 근거하여 시뮬레이션 하였다 하였습니다.

 

 

백번 천번 양보하여 10cm 축밀림이 있었다 하더라도, 겨우 10센티 축밀림 현상으로 프로펠러 블레이드에 관성의 힘이 미쳐 다섯 블레이드 모두 휘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노인식 교수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서 적용된 ‘힘(Force)의 값이 얼마냐?’라는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변합니다. 오로지 시간 데이터만 넣었을 뿐이지 힘의 값은 알 필요도 없고 모른다는 겁니다. 힘이 작용하여 블레이드가 휘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서 힘의 값이 얼마인지 모르는 실험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2) 피고인이 주장하는 실험의 개요

간단합니다. 1/10 모형을 만들어 프로펠러를 모래톱에 파묻은 채 작동을 하는 실험을 하였을 경우, 천안함 프로펠러에 나타난 현상이 고스란히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노인식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힘을 가하여 <프로펠러 샤프트가 부러질 정도로 힘의 값을 늘이면서 실험을 해도 천안함 블레이드가 휘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며 그러한 실험을 하여 밝혀보자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들라고 하면 ; 

첫째, ‘어뢰의 백색 흡착물질’입니다.

이 백색물질의 성분분석은 천안함 하부에 폭발이 존재했는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미국의 박사분들과 함께 그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정기영 박사의 ‘백색물질은 알루미늄황화수산화염이라는 결론’은 천안함 하부에 폭발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뢰의 존재여부를 탄핵하는 것입니다. 

둘째, ‘제3의 부표’입니다.

천안함 함수와 함미는 사고 다음날인 3월 28일 저녁 8시~10시 사이에 모두 발견하고 제1부표(함미)와 제2부표(함수)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3월29일 한주호 준위가 어선을 빌려 어군탐지기를 작동하여 제3의 물체를 찾아 그곳에 또 하나의 부표를 설치합니다. 이름하여 ‘제3의 부표’입니다. 그곳에는 천안함과 충돌하여 반파 침몰케 하고 그 스스로도 떠내려와 자신도 가라앉은 곳, ‘제3의 부표’의 진실은 천안함 두 번째 사고를 결정짓습니다.

셋째, ‘프로펠러 손상’입니다.

상선의 항해사는 물론, 배를 좀 타봤다는 어부들조차도 한 눈에 알아보는 손상이 프로펠러 손상입니다. 프로펠러 손상의 형태는 어떤 해저지반과 어떻게 접촉하였는지를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러시아 조사단이 ‘해저지반과의 접촉’이라고 단언하듯, 프로펠러는 그 스스로 사고원인을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프로펠러 손상과 관련된 의견서를 제출하오며 프로펠러 모형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2015. 6. 12

피고인 신상철 드립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0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인공위성 줄기차게 솟구쳐 오를 것”

 
 
“안보리 결의로 인공위성 막는 시도 불법 무도 허황”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13 [06: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이 지난 2012년 12월 12일 발사에 성공한 광명성 3호 2호기를 경축하는 자리에 선보인 은하 9호 모형     ©

 


조선은 미국 등 적대세력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로 자신들의 인공위성을 막아보려는 시도는 불법 무도하며 허황한 것으로 인공위성이 줄기차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지난 12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과의 대담을 통해 북은 인공위성 개발의 정당성을 재차 주장하며 미국이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대담에서 "인공지구위성 제작 및 발사국으로서 우리의 지위는 적대세력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으며 우주개발사업은 그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포기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대담에서 미국이 조선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우리의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이며 도전"이라고 반박했다. 
  
대담은 "우리(조선)의 평화적 성격의 위성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보다 우위에 있는 국제법에 의해 공인된 주권 국가의 당당한 자주적 권리"라며 유엔 구성원 중 조선의 위성 발사에 대해 '시비질'을 하는 것은 대북 적대정책을 펴는 미국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 따위로 우리의 합법적인 위성발사를 막아보려는 시도가 얼마나 불법무도하고 허황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그때까지 우리의 위성들이 줄기차게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조선의 이번 외무성 대변인 대담으로 미루어 볼 때 인공위성 발사 시기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광복70돌 준비위, 14일 ‘6.15 15돌 민족통일대회’


분산개최·메르스 확산 우려 감안...일정 통합 축소(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6.12  15:11:20
트위터 페이스북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70돌 준비위)는 12일 대변인 성명을 발표, 올해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분산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광복70돌 준비위 대변인은 지난 1일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의견을 보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를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경주해왔으나 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를 서울과 평양 등에서 각기 분산 개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변인은 “아울러 6.15 15돌 행사가 분산개최되는 조건과 특히 메르스 확산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감안하여 모든 행사 일정을 통합 축소하여, 6월 14일(일) 오후 4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통일대회’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고 말했다.

또 “이번 6.15 15돌 기념행사의 남북 분산 개최에도 불구하고, 광복70돌 준비위는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반드시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변인은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이 이번 공동행사 무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회의 성사 그 자체보다는 공동행사를 계기로 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변화와 개선인만큼 “정부가 말로만 ‘대화’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진실로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14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탄저균 불법 반입 실험 규탄, 한반도 사드 배치 저지 자주평화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당초 민주노총이 이날 개최할 예정이었던 '노동자 자주통일대회는 메르스를 이유로 취소했다.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대변인 성명 (전문)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광복70돌준비위원회)는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를 서울과 평양 등에서 각기 분산 개최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송구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께 알리는 바입니다.

광복70돌준비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의견을 보내왔음에도 불구하고, 6.15 15돌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를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경주해왔습니다.
6.15민족공동행사에 대해 ‘순수한 사회문화 차원의 행사’ 등의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 변화를 위해 지난 6월 4일부터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대북정책 전환과 조건없는 민족공동행사 보장’을 내걸고 시국농성을 전개하였으며,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남북의 대표단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로 치닫고 있는 메르스사태까지 겹치면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6.15 15돌 민족공동행사가 분산 개최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군사적 압박과 대결을 앞세우면서 나날이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온 데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6.15 15돌 민족공동행사 무산의 책임이 우리 정부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이 이번 공동행사 무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기념행사의 일회적 성사가 아니라 공동행사를 계기로 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변화와 개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말로만 ‘대화’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진실로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 역시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민 앞에 약속한 서울에서의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를 불가피하게 분산 개최할 수밖에 없게 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 아울러 6.15 15돌 행사가 분산개최되는 조건과 특히 메르스 확산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감안하여 모든 행사 일정을 통합 축소하여, 6월 14일(일) 오후 4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통일대회’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는 점도 함께 알려드립니다.
이번 6.15 15돌 기념행사의 남북 분산 개최에도 불구하고, 광복70돌준비위원회는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반드시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국민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지원을 호소합니다.

2015년 6월 12일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대변인

(추가, 16;4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메르스 기사, 10년 전 '황우석 사태' 생각나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6/12 11:16
  • 수정일
    2015/06/12 11: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프레시안, 응원합니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서어리 기자2015.06.11 15:19:38
 
 
요새 프레시안 편집국에선 새삼스레 10년 전을 추억하는 기자들이 늘었다. 선배 기자들은 "캬~" 하고 후배 기자들은 "읭?" 하는 까마득한 옛일,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 선배 기자들은 당시를 회고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두려웠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와 지금의 메르스 정국을 놓고 보면, 절묘하게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일, 프레시안은 소송을 각오하고 '메르스 병원' 6곳의 실명을 최초로 공개했다. 한 마디로 '질렀다'. 김선종 연구원과 문화방송(MBC) 제작진의 인터뷰 녹취록을 단독 보도했던 10년 전 그때처럼. 병원 공개 이후로도 단독 기사와 35번 의사 환자 등 후속 기사를 쏟아내며 프레시안 기자들은 조금은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이 잇따랐다. '용기 있는 보도였다'며,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래도 외로웠다.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위해 많은 언론이 프레시안과 함께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정부가 5일과 7일 두 차례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 다수 언론이 침묵을 지켰다. 단 한 곳,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만 빼고. 뉴스타파는 지난 5일 '메르스 감염 지도' 기사를 통해 메르스 병원 6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프레시안과 함께 병원 실명을 공개한 언론이 하필 뉴스타파라는 점도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뉴스타파의 대표 얼굴이 된 최승호 앵커, 그는 황우석 사태 당시엔 MBC <PD수첩> 책임 프로듀서(CP)로서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파헤쳤다. 여러모로 프레시안과 연이 깊은 그는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메르스 첫 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인 4일,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스튜디오에서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최 앵커가 만났다. 기시감을 느낀 건 전홍기혜 편집국장만이 아닌지, 최 앵커 또한 10년 전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프레시안(최형락)

 

 
"방송 중단 속상해 밤새 술 마시고 일어나니, 프레시안이 사고를?!"


때는 2005년 12월 4일 오후 세 시경. 당시 최 앵커는 12월 6일 자 <PD수첩>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이 가짜임을 밝힐 결정적 증거들을 한창 편집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TV를 보라고 해서 틀어 보니, YTN이 'MBC 제작진이 취재윤리를 위반하면서 황 교수를 음해하려 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MBC와 제작진을 향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MBC 내부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 연구원을 압박한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논문이 가짜라는 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 막혔다. 국민 정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무기한 방송 중단'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요. 방송을 하면 그 논문이 가짜인 게 밝혀지는데 왜 못 하게 하는지…. 그날 <뉴스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한학수 PD랑 밤새도록 술 마셨어요."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릴 즈음, '줄기세포 논문 가짜 의혹' 보도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고를 친 곳이 어딘가 하고 보니, 프레시안이었다. <PD수첩>이 쥐고 있던 줄기세포 유전자 지문 분석 결과뿐 아니라, 한학수 PD와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까지 공개했다. 제작진이 프레시안에 자료를 건넨 건 아니었다.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내보낸 보도였다.

"'방송이 중단됐으니 이렇게 진실이 묻히는 건가' 하고 우리 제작진들은 상당히 암울해했어요. 그런데 프레시안 보도를 보면서 다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그 보도가 나간 뒤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죠. 그래서 누군가는 그랬다고 해요. '고래들이 싸움을 끝낸 뒤 새우가 칼 들고 나섰다'고."

파문이 크게 일자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황우석 논문의 진위 여부를 캐기 시작했다. 의혹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MBC 사장이 프레시안에 엄청난 영광을 줬다고 봐요. 혹시 사장이 프레시안을 굉장히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웃음)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MBC <PD수첩>을 진행했던 최승호 앵커의 모습. ⓒ뉴스타파

 

 

"죽지 않고 끝까지 버틴 프레시안, 대단합니다"

지금이야 다 밝혀진 상태이니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보도 하나, 방송 한 번 하는 게 살 떨리도록 무서운 일이었다.

"가짜 논문 의혹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워낙 황 교수를 애국자로 떠받드는 분위기라, 과연 방송을 했을 때 <PD수첩>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어요."

다행히 나중에 방송이 다시 나갔지만, 대중을 떼로 등진 대가는 혹독했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못 이긴 광고주들이 광고를 하나둘 끊기 시작했다. 줄기세포 조작 의혹 첫 방송 다음 주에는 광고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방송 타이틀이 나가자마자 스튜디오 화면이 나온 유일무이한 방송'이 됐다.

"권력하고 싸운 건 여러 번 경험이 있지만, 대중과 싸운 건 황우석 사태가 처음이었어요. 'PD수첩 폐지' 보도자료가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격을 당했죠. 대형방송도 못 견딜 만큼 힘들었는데, 프레시안처럼 작은 회사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MBC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안쓰러웠죠. 그런데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텼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거대 권력뿐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도 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이에요."

 

 

▲최승호 앵커가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칠흑같은 어둠 속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잡은 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결국 이겨낼 겁니다."

 

 

 

 

 

 
"우리 '새우 언론'들, 칼 들어야죠"

황우석 사태를 포함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던 최 앵커는 결국 2012년 장기 파업 이후 MBC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면 쫓겨났다. 새 둥지를 찾았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이곳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MBC 때와 달리 지금은 피디부터 작가까지 혼자 1인 다역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경영진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 취재할 수 있다. 취재한 내용은 고스란히 방송에 반영된다. '차 떼고 포 떼는' 방송이 아니라는 데서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차 안 떼고 포 안 떼는' 방송은 정직한 뉴스를 갈구하던 언론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후원 회원 3만5000명. 뉴스타파는 광고 하나 없이 오롯이 후원금만으로 뉴스를 제작한다.

조세피난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사고 보도 등을 통해 세운 뉴스타파의 위상은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무기력한 공영방송 또한 뉴스타파의 입지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준공영방송' MBC에서 쫓겨 나왔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중이 언론을, 정부를 믿지 못하면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언론 구성원이 두 눈 부릅뜨고 스스로를 감시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MBC, KBS 구성원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것 같아요. 그럴수록,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가 칼을 들 듯이 '새우 언론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새우처럼 작은 언론을 독자들이 많이 도와준다면, 새우 언론이 공영언론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새우가 살기 위해선, 작고 여린 이 생물이 살아남을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새우 언론이 고사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언론 지형은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들이 먹고 살기 힘든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우리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존재해야 하는 언론이지 않습니까. 광고 많다는 이유로 보기 싫다고 거부한다면, 프레시안이라는 좋은 언론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기사 공유와 후원이 새우 언론을 좀 더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조합원으로서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이번 메르스 기사들을 보니, 황우석 사태 때 매섭게 기사를 쏟아냈던 과거의 프레시안이 생각납니다. 무척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고, 앞으로도 이렇게 존재감 있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언론협동조합으로서 발전 또한 기원합니다."

 
 
 
 
 
[프레시안, 응원합니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서어리 기자2015.06.11 15:19:38
 
 
요새 프레시안 편집국에선 새삼스레 10년 전을 추억하는 기자들이 늘었다. 선배 기자들은 "캬~" 하고 후배 기자들은 "읭?" 하는 까마득한 옛일,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 선배 기자들은 당시를 회고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두려웠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와 지금의 메르스 정국을 놓고 보면, 절묘하게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일, 프레시안은 소송을 각오하고 '메르스 병원' 6곳의 실명을 최초로 공개했다. 한 마디로 '질렀다'. 김선종 연구원과 문화방송(MBC) 제작진의 인터뷰 녹취록을 단독 보도했던 10년 전 그때처럼. 병원 공개 이후로도 단독 기사와 35번 의사 환자 등 후속 기사를 쏟아내며 프레시안 기자들은 조금은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이 잇따랐다. '용기 있는 보도였다'며,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래도 외로웠다.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위해 많은 언론이 프레시안과 함께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정부가 5일과 7일 두 차례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 다수 언론이 침묵을 지켰다. 단 한 곳,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만 빼고. 뉴스타파는 지난 5일 '메르스 감염 지도' 기사를 통해 메르스 병원 6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프레시안과 함께 병원 실명을 공개한 언론이 하필 뉴스타파라는 점도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뉴스타파의 대표 얼굴이 된 최승호 앵커, 그는 황우석 사태 당시엔 MBC <PD수첩> 책임 프로듀서(CP)로서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파헤쳤다. 여러모로 프레시안과 연이 깊은 그는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메르스 첫 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인 4일,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스튜디오에서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최 앵커가 만났다. 기시감을 느낀 건 전홍기혜 편집국장만이 아닌지, 최 앵커 또한 10년 전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프레시안(최형락)

 

 
"방송 중단 속상해 밤새 술 마시고 일어나니, 프레시안이 사고를?!"


때는 2005년 12월 4일 오후 세 시경. 당시 최 앵커는 12월 6일 자 <PD수첩>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이 가짜임을 밝힐 결정적 증거들을 한창 편집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TV를 보라고 해서 틀어 보니, YTN이 'MBC 제작진이 취재윤리를 위반하면서 황 교수를 음해하려 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MBC와 제작진을 향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MBC 내부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 연구원을 압박한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논문이 가짜라는 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 막혔다. 국민 정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무기한 방송 중단'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요. 방송을 하면 그 논문이 가짜인 게 밝혀지는데 왜 못 하게 하는지…. 그날 <뉴스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한학수 PD랑 밤새도록 술 마셨어요."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릴 즈음, '줄기세포 논문 가짜 의혹' 보도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고를 친 곳이 어딘가 하고 보니, 프레시안이었다. <PD수첩>이 쥐고 있던 줄기세포 유전자 지문 분석 결과뿐 아니라, 한학수 PD와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까지 공개했다. 제작진이 프레시안에 자료를 건넨 건 아니었다.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내보낸 보도였다.

"'방송이 중단됐으니 이렇게 진실이 묻히는 건가' 하고 우리 제작진들은 상당히 암울해했어요. 그런데 프레시안 보도를 보면서 다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그 보도가 나간 뒤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죠. 그래서 누군가는 그랬다고 해요. '고래들이 싸움을 끝낸 뒤 새우가 칼 들고 나섰다'고."

파문이 크게 일자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황우석 논문의 진위 여부를 캐기 시작했다. 의혹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MBC 사장이 프레시안에 엄청난 영광을 줬다고 봐요. 혹시 사장이 프레시안을 굉장히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웃음)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MBC <PD수첩>을 진행했던 최승호 앵커의 모습. ⓒ뉴스타파

 

 

"죽지 않고 끝까지 버틴 프레시안, 대단합니다"

지금이야 다 밝혀진 상태이니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보도 하나, 방송 한 번 하는 게 살 떨리도록 무서운 일이었다.

"가짜 논문 의혹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워낙 황 교수를 애국자로 떠받드는 분위기라, 과연 방송을 했을 때 <PD수첩>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어요."

다행히 나중에 방송이 다시 나갔지만, 대중을 떼로 등진 대가는 혹독했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못 이긴 광고주들이 광고를 하나둘 끊기 시작했다. 줄기세포 조작 의혹 첫 방송 다음 주에는 광고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방송 타이틀이 나가자마자 스튜디오 화면이 나온 유일무이한 방송'이 됐다.

"권력하고 싸운 건 여러 번 경험이 있지만, 대중과 싸운 건 황우석 사태가 처음이었어요. 'PD수첩 폐지' 보도자료가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격을 당했죠. 대형방송도 못 견딜 만큼 힘들었는데, 프레시안처럼 작은 회사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MBC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안쓰러웠죠. 그런데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텼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거대 권력뿐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도 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이에요."

 

 

▲최승호 앵커가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칠흑같은 어둠 속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잡은 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결국 이겨낼 겁니다."

 

 

 

 

 

 
"우리 '새우 언론'들, 칼 들어야죠"

황우석 사태를 포함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던 최 앵커는 결국 2012년 장기 파업 이후 MBC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면 쫓겨났다. 새 둥지를 찾았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이곳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MBC 때와 달리 지금은 피디부터 작가까지 혼자 1인 다역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경영진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 취재할 수 있다. 취재한 내용은 고스란히 방송에 반영된다. '차 떼고 포 떼는' 방송이 아니라는 데서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차 안 떼고 포 안 떼는' 방송은 정직한 뉴스를 갈구하던 언론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후원 회원 3만5000명. 뉴스타파는 광고 하나 없이 오롯이 후원금만으로 뉴스를 제작한다.

조세피난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사고 보도 등을 통해 세운 뉴스타파의 위상은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무기력한 공영방송 또한 뉴스타파의 입지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준공영방송' MBC에서 쫓겨 나왔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중이 언론을, 정부를 믿지 못하면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언론 구성원이 두 눈 부릅뜨고 스스로를 감시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MBC, KBS 구성원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것 같아요. 그럴수록,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가 칼을 들 듯이 '새우 언론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새우처럼 작은 언론을 독자들이 많이 도와준다면, 새우 언론이 공영언론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새우가 살기 위해선, 작고 여린 이 생물이 살아남을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새우 언론이 고사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언론 지형은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들이 먹고 살기 힘든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우리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존재해야 하는 언론이지 않습니까. 광고 많다는 이유로 보기 싫다고 거부한다면, 프레시안이라는 좋은 언론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기사 공유와 후원이 새우 언론을 좀 더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조합원으로서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이번 메르스 기사들을 보니, 황우석 사태 때 매섭게 기사를 쏟아냈던 과거의 프레시안이 생각납니다. 무척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고, 앞으로도 이렇게 존재감 있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언론협동조합으로서 발전 또한 기원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 퇴진하고 미군은 철수하라”

 
 
민가협 “민족공동행사 파탄. 세균전 시도” 규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11 [22: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가협 목요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권 퇴진과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민가협이 6.15민족공동행사를 파탄 시킨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며 퇴진을 요구하는 한편 미국이 우리민족을 생화학전과 각종 범죄로 말살 시키려한다며 철수를 요구했다.
  
민가협과 양심수후원회 회원 등은 11일 서울 종로구 삼일문 앞에서 1029차 목요집회를 열어 미군 장갑차에 학살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탄저균을 비롯한 세균반입 사건 등을 거론하며 미군범죄를 폭로했다,
  
집회 단체와 참가자들은 또한 광복 70주년과 6.15남북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남과북 해외가 민족공동행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박근혜 정권이 이를 의도적으로 개입해 파탄 시켰다며 규탄했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6.15민족공동행사를 가로막은 박근혜정권과 세굱ㄴ을 실시하려는 미군을 싸잡아 비난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올해는 분단 70주년과 6.15공동선언 15주년으로 우리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해”라며 “우리 8천만 겨레는 올해를 뜻 깊게 맞이하기 위해 6,15공동행사는 서울에서, 8.15 행사는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으나 박근혜 정권이 나서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현 정부를 질타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박근혜 정부는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외세와 공조해 불신과 대결을 추구하며 동족대결 책동에 나서고 있다”며 “집권 후 해외나들이를 다니면서 동족인 북을 헐뜯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북대결을 부추기며 험담만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남과북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 없는 것 만큼 동족대결 정책을 중단하고 대화와 단결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6.15민족공동행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한충묵 진보연대 상임대표는 6.15 민족공동행사 파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박근혜 정권의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행동을 타파하기 위해 투쟁 할 것을 약속했다.
 

▲ 민족공동행사 공동대표인 한충묵 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민족공동행사 파탄이 남측 정부에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을 규탄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한충묵 상임대표는 “6.15민족공동행사가 비록 무산되었지만 14일 서울로 집중하여 6.15 선언 이행을 정부에 촉구하는 행사를 가질 것”이라며 국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한 상임 대표는 “미군은 살아있는 탄저균과 탄저균의 10만배에 달하는 보톨리눔을 한국 땅에 들여와 비밀리에 실험해 왔다”며 “미국은 뿐만 아니라 우리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드를 배치하려 하고 있다. 우리민족에게 고통을 가하는 미군을 이제 철수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며 미군을 규탄 배격하기 위한 집회를 14일 오후 2시 미군사령부 앞에서 갖는다고 발표했다.
 

▲ 평통사 김종일 공동대표가 효순이와 미선이를 학살한 미군은 당장 이땅을 떠나야 한다며 미군철수 투쟁에 국민들이 함께 할 것을 호소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김종일 공동대표는 2002년 6월 13일 양주군에서 미군장갑차에 압사당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자세히 설명한 후 “우리들의 딸을 학살한 미군들은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고발하며 미군을 더 이상 우리 땅에 둘 수 없다며 미군 철수 투쟁에 떨쳐나설 것을 당부했다.
  
한편 6,15민족공동행사남측위는 14일과 15일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행사를 전격 취소하고 14일 오후 4시 천도교 본관에서 6,15선언이행 촉구행사로 바꿔 개최하기로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뉴스’가 아니다

 
언론의 베껴쓰기 관행, 대량 오보를 불러일으켰다
 
임병도 | 2015-06-12 09:34: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5년 6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YTN은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기에 젊은 의사의 사망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러나 YTN의 뉴스 속보는 오보였습니다.

YTN의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오보가 나오기 전, 한국일보는 오후 6시 33분에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1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와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는 기사에는 ‘A씨는 뇌 활동이 모두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가족들이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일보의 기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호흡 곤란이 있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아님을 주치의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2

결국, 한국일보는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뇌손상 위중’이라고 바꾸었습니다.
 
한국일보는 수정된 기사 말미에 “본지는 앞서 박씨의 상황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뇌사 상태’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으나 의료팀이 뇌사를 공식 확인하지 않은 만큼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뇌사’라는 표현으로 가족과 독자 여러분께 걱정을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3

현재까지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는 생명이 위독하지 않다고 하고 있기에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YTN의 오보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상태가 안 좋다는 말과 ‘뇌사’, ‘사망’이라는 표현은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YTN의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사망’은 단순한 오보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술했습니다.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기사를 내보낸 시간이 6월 11일 오후 6시 33분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약 1시간 40여 분 뒤에 한국일보의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 해명 자료’를 배포합니다. 오후 8시 32분 YTN은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뉴스 속보를 내보냅니다.

YTN이 보건복지부가 8시 10분에 발표한 ‘보도 해명 자료’만 봤어도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오보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YTN은 충분한 검증 없이 ‘사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정확한 사실 파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팩트 체크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생명조차 이들에게는 한낱 뉴스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언론의 베껴쓰기 관행, 대량 오보를 불러일으켰다’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뇌사’, ‘사망’ 오보는 많은 언론에서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마구잡이식으로 베껴 쓰는 언론의 관행이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포털 뉴스에는 한국일보의 기사를 인용한 ‘메르스 의사 뇌사’라는 속보 등이 수십 건씩 올라왔습니다. 자극적으로 ‘장례 절차 준비’라는 제목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일보의 기사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냥 베껴서 비슷한 기사를 수십 건씩 올렸습니다.

마치 진실인양 보도했던 기사들이 오보로 밝혀지자, 이번에는 ‘오보’를 가지고 뉴스를 만들어 올립니다. 자신들이 오보를 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다시 포털에서 클릭률을 높이기 위한 기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다른 매체를 인용한 기사였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보도한 기사가 오보라고 밝혀졌다면, 최소한 이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사 중에서 정확한 오보 경위를 밝힌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속보보다 사실관계 확인이 더 중요한 저널리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지난 2009년에 벌어졌던 마이클 잭슨의 사망 보도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TMZ.com이라는 연예 전문 매체는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AFP통신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들은 TMZ.com이 보도한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인용해서 속보로 내보냈습니다. 한국의 YTN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CNN은 마이클 잭슨의 상황을 보도하면서도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글로벌 뉴스 포럼에서 닉 렌 CNN 부사장은 ‘마이클 잭슨 사망이 돌았을 때 우리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서 이를 믿지 않았고 결국 사망 소식을 가장 늦게 보도한 언론사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CNN은 추가 검증을 하면서 100% 확실하다고 할 때까지 확인했고, 결국 사망 진단서가 나왔을 때 보도했습니다. 닉 렌 CNN 부사장은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고 사실이 확실할 때만 보도하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준다’고 밝혔습니다.4

미국 언론사들도 속보를 내보내면서 오보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영향력이 높은 언론사라면 최대한 팩트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5
 
보건복지부의 보도 해명 자료만 봤어도 YTN의 어처구니없는 오보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YTN의 사망 오보는 저널리즘을 깡그리 무시한, 언론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찌라시라고 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미드 HBO의 드라마 ‘뉴스룸’은 가상의 방송국 ACN을 통해 뉴스의 제작 과정과 속내를 보여줍니다. 시즌 1의 4화에서 여성 하원 의원이 총격 사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ACN 뉴스는 ‘총격 사건’만 보도하지 ‘사망 소식’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스태프가 앵커에게 다른 방송국이 속보로 ‘사망’을 보도하지 않으니 ‘매 초마다 1000명이 채널을 변경해’라며 다그칩니다. 갑자기 다른 스태프가 소리칩니다. ‘아직 살아 있대요. 마취 의사가 수술 준비 중이라고 확인해줬어요’6
 
미드 뉴스룸의 ACN방송국이 진짜 방송국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사라면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한국 언론은 불과 1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엉망이라며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 지키자고 했습니다.7 그러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닙니다’

1.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 한국일보 2015년 6월 11일. 현재는 제목과 기사가 수정된 상황 https://www.hankookilbo.com/v/d0bf3ad3006b4347b11266d2d6f16ce0 
2. [6월 11일자 한국일보]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
http://www.mw.go.kr/front_new/al/sal0301vw.jsp 
3.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뇌 손상" 위중. 한국일보. 다음뉴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611184612741&RIGHT_REPLY=R1 
4. 도 넘은 여객선 침몰 보도. KBS. 2014년 4월 20일.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849422&ref=A 
5. SNS가 영향력이 높다고 한들 언론사를 따라 잡을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한국 언론이 SNS의 영향력을 따지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간혹 웃기기도 한다. 
6. 세월호 보도, 미드 ‘뉴스룸’ 만큼만 해줬으면. 스포츠경향 2014년 4월 23일.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404230632003&sec_id=540201
7. 기자협회 정관, 재난보도준칙. http://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0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교안 총리?... 안대희·문창극 억울해서 어쩌나

 

[게릴라칼럼] 뻔뻔했던 3일간의 총리 청문회, 답이 없다

15.06.11 19:52l최종 업데이트 15.06.11 19:52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변호사 시절 수임한 사면 관련 자문건에 관한 야당 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최근 종영된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총리 후보자 청문회의 뒷거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바 있다. 그 리얼리티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어느 정도냐고? 법조계 출신 전직 총리가 한국 최대의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와 함께 인사청문회 시나리오를 짠다. 생생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전관예우는 물론 고액 수임료, 병역 문제, 증여세까지 줄줄이 소환 당한다. 드라마 속 보수의 아이콘 한정호(유준상 분) 대표마저도 그 쇼를 준비하는 사이 개인 이력을 조사하며 '비리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렀을 정도다. "작작 좀 하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보다 수적 우위에 있는 여당의 표결로 그 후보자는 무사통과된다. 

하필, 청문회를 1주일 앞두고 드라마의 막바지 에피소드가 현실을 적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니 이런 '한국적인'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은 지금, 현재, 여기에서 또다시 펼쳐지는 중이다.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이 "적임자"라고 호명한 황교안 후보자 청문회와 일련의 분위기가 이를 다시 입증하고 있다.  

뻔뻔하게도,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 또 하나의 총리 후보자 황교안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이 시장에 가서 아주머니들과 함께 어묵 국물을 먹는다든가 하는 서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안 하다가 선거를 코앞에 앞두고서만 그런 모습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희망', '소통', '미래' 같은 슬로건을 보면 모두 다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허황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 국회의원들의 웹사이트도 방문해봤습니다. 비슷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전략이 먹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계속 그렇게 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1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한 주 늦게 방영된 인터뷰 속 그는, 한국 정치인들의 행태를 이렇게 비꼬았다. 일견 총리 후보자들도 비슷해 보이지만, 황교안 후보자에게 그대로 돌려드리면 이렇게도 바꿀 수 있겠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청문회 즈음만 되면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든지 하는 지극히 정치인과 같은 언사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안 하다가 청문회를 코앞에 앞두고서만 그런 모습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소통', '화합', '최선'과 같은 슬로건을 보면 모두 다 알맹이가 없는 허황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청문회를 보면서 이 정권 내 다른 후보자들의 청문회 답변도 찾아 봤습니다. 비슷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전략이 먹히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계속 그렇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청문회 전까지 말을 최대한 아꼈던 황교안 후보자의 이번 청문회를 두고 11일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황 후보자가 마치 게임하듯이 국민의 눈을 속이고 진실은 은폐했다"고 논평했다. 이미 불성실한 자료 제출로 국민을 기만할 준비를 마친 채 청문회에 임했던 황교안 후보자는 지금 총리 공관을 차지할 기대에 부풀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무서운 학습효과와 '메르스 수혜자'와의 결합 

10일까지 3일간 이어진 황교안 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지켜보며 가장 화가 돋았을, 억울했을, 혹은 비통했을 인물은 누구일까. 전통적인 야당 지지자들? 전임 총리? 전자는 '연속극 재방송' 같은 기분일 수도 있고, 후자는 '아, 내가 총리였다면 메르스 사태를 어찌 했을까'며 고민했을 테니 살짝 핀트가 어긋나 보인다. 

이미 일각에서 지적한대로, '낙마'한 두 후보자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아닐 수 없겠다. 전관예우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보다도 수익률에 있어서 월등한 '전관예우'의 예를 보여주며 '19금 문서'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던 황교안 후보자. 그는 문창극 전 주필과 종교관을 비교해도 '발언 수위'만 달랐지, 별 다를 것 없는 독실함과 편향성을 암시하지 않았나. 

청문회나 그 이전 과정만 놓고 본다면, 황교안 후보자의 정도는 극심하다고 볼 수 있다. 법무부장관 청문회보다 더 강도 높은 모든 의혹들에 대해 "청문회 때 밝히겠다"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랬던 그가 정작 청문회 당시엔 부실하다 못해 의도가 뻔한 '자료 미제출'로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피해갔다. 이 대목에선, <풍문으로 들었소> 속 '쇼'보다 더한 작전과 연출임을 스스로 자임하는 꼴이 됐다. 하긴, 법무부장관 출신으로 평생 법을 집행하는 검사였던 그가 "법을 잘 몰라서"란 답변까지 했으니 '후안무치'가 울고 갈 작전임이 틀림없었던 것 같다.  

학습효과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법무부장관 청문회는 물론 '총리 잔혹사' 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결국은 "황교안도 거기서 거기겠지"와도 같은 학습효과를 만들어냈다. 청와대나 여당의 자신감도 여기서 비롯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어 보인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며, 황교안은 그 스스로 '메르스 사태' 최대의 수혜자가 됐다. 이러니, 안대희나 문창극과 같은 전임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병역면제부터 전관예우, 사면 사건, 세금 미납 등등 그의 부적합 사유가 고스란히 '선례'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황교안 후보자가 총리로 내정되고 임기를 마치게 된다면, <대한민국 국무총리 청문회 무사히 통과하는 법>, <의혹백화점 총리 후보자, 이 정도면 통과된다> 같은 책을 써도 무방할 지경이다. 여기저기서 '작전의 승리'라는 뒷담화가 들려오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박근혜 집권 하반기, '공안 총리' 맞이하나
 
기사 관련 사진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병역 면제 의혹 등에 관한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총리로서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소통과 국민화합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이번 청문회는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이 시대 총리의 사명과 책임을 일깨워 준 값진 기회였다.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평소 생각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충분한 답변을 드리지 못한 점도 있지 않았나'하는 송구스러운 마음을 피할 수가 없다."

황교안 후보자의 마무리 발언 요약이다. 정말이지, 정답과도 같은 주옥같은 명문들이 아닐 수 없다. 애국이 흐르고, 충정이 넘쳐나며, 진정성이 뚝뚝 묻어난다.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일 수 있다. 

사실 진짜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자신이 받은 거액과 의혹들과 불법, 탈법들을 '최선'으로 바꿔치기 하는 저 심리 상태. 그리하여 자신의 행적들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치환하는 저 자가당착의 대범함. 그간 자신이 휘두른 공안의 검으로 피해 입은 이들에게 '사명'이고 '책임'이었다고 외칠 당당함. 

그러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공안검사'의 대표격이자 고위권력층의 아이콘이며, 종교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지독한 편향성을 입증한 그가 총리가 됐을 때 벌어질 박근혜 집권 하반기의 국정 말이다. 

고액의 수임료를 챙기거나, 증여세나 세금을 피하는 것 말고는 경제와 무관했던 그에게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일말의 가능성을 엿본 이가 그 누구인가. 대통령을 보좌해 '국민소통'에 힘쓸 거라 믿는 이가 여전히 존재하는가. 오히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이후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공안 정치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우리가 확인한 것은 역시나 '노(No)답'인 이 정부의 '불통'의 자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으로라도 총리 임명을 강행 처리할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선 "인사청문회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 때까지 국무총리 임명동의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지만, 힘없고 무능한 야당이 어디까지 전면전에 나설지도 미지수다. 이래저래, 피곤하고 또 불쌍한 건 국민들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완구 시즌2' 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 편집ㅣ곽우신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치적 이해를 떠나 대의를 위해 일하라"

"정치적 이해를 떠나 대의를 위해 일하라"민가협과 양심수후원회, '6.15공동선언 이행' 촉구 기자회견
이태우 인턴기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6.11  12:30:49
트위터 페이스북
   
▲ 민가협과 양심수후원회는 11일 정부종합청사 앞 '6.15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태우 기자]

11일 오전 10시 40분부터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의 '6.15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회견은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 70돌 준비위)'가 지난 1일 북측이 '6.15민족공동행사' 분산 개최를 제의한 이래 4일부터 시작한 농성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참가자들은 11시에 인근에서 예정된 전국민주노동조합(민주노총)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규탄 집회를 배려해 회견 시간을 10시 40분으로 앞당겼다. 회견은 또한 연일 동일한 장소에서 이어진 시민단체들의 집회와 요구사항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이 전격 연기됨에 따라 간략하게 진행됐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여는 말을 통해 "만나야 통일이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민족공동행사 이후 7년 만에 서울에서 갖기로 했던 6.15민족공동행사를 박근혜 정부에서 파탄내고 말았다"며 "우리가 만나서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을 해야한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해야 한다"며 남북의 대화를 통한 자주통일을 촉구했다. 

이어 "왜 우리는 분단의 당사자로서 70년간 이어진 동족간의 대결을 방관하고 있는가"라며 "박근혜 정부는 반국대결정책을 중단하고 6.15남북공동행사를 서울에서, 8.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라"고 주장했다.

11시에 예정된 민주노총 집회를 준비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연대사를 통해 "통일대박을 운운하길래 마음 열고 통일의 길을 여나 싶었지만 결국 위정자들이 권력이 흔들릴 때 안위를 위해 사용한 수사에 불과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역행하는 당국 정책을 지탄했다.

그리고 "심지어 노동자들이 통일축구를 통해 교류의 길을 열려고 했지만 이 또한 훼방을 놓았다. 악화된 남북관계를 방치하고 통일을 반대하는 반민족적 정부임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에 굴하지 말고 함께 화해와 협력의 통일시대를 열어가자"고 이날 회견에 힘을 실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회견문 낭독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이번 6.15민족공동행사를 '북한의 정치적 선전의 장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순수한 사회문화교류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억지논리로 민간통일운동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개입하려 했다"며 "민족공동행사는 그 어떤 정치적 이해득실을 초월해 민족적 대의인 통일을 위해 진행해야 한다"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정치적 계산을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푸틴의 막강한 지정학적 무기 가스프롬의 행보

중국과의 계약을 통한 전략적 우회로 유럽은 손실을 입게될 것

2015. 06. 11
조회수 65 추천수 0
 

가스프롬.png

북극 주변 시베리아 야말 반도의 보바센코보에서의 가스 개발, 2010 - 제레미 니숄


 가스프롬은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쓰이는 무기로 간주되는 게 보통이나, 이에 더해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성장을 도모하는 일개 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가스프롬은 경제적 이유 및 지정학적 이유에 따라 고객의 다각화를 추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스프롬과 러시아 정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그렇다고 가스프롬이 정부에 완전히 흡수된 건 아니다. 과거 소비에트 가스산업부를 직접적으로 승계한 가스프롬은 1989년 재정과 경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국영기업으로 변모했다. 당시 가스프롬의 회장이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은 1992년 총리직에 오르고, 이듬해 그는 가스프롬을 합작 주식회사로 만든 다음 대대적으로 주식을 공매한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여전히 지분율 38%의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러 연방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막강한 지정학적 무기에 대한 정부 통제권을 다시 쥐게 된다. 푸틴이 자신의 측근인 알렉세이 밀러를 기업의 대표로 앉혔으며, 러시아 정부의 보유 지분도 51%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천연가스 비축량의 72%를 장악하고(1) 전 세계 보유 가스 매장량의 16.8%를 차지하는(2) 가스프롬은 세계 최대의 가스 생산업체이다. 2013년에는 생산량 4,870억㎥로 엑손모빌과 셸을 앞질렀고, 수출 물량도 2,337억㎥로 러시아 전체의 재화 및 서비스 수출량의 12%를 차지했다. 
  가스프롬이 생산하는 천연가스 중 절반은 국내시장에서 소비되는데, 이는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스프롬은 정부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에게 절반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며, 개인 및 기업 고객 모두 동일한 가격 혜택을 받는다. 저렴한 가격의 에너지 공급은 가계 입장에서도 사회적 완충제로서의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산업 부문에서도 간접적인 지원책이 된다. 대신 가스프롬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가스프롬 엑스포트를 내세워 가스송출관을 통한 천연가스의 수송과 수출을 독점하는 특수를 누린다. 수출과 관련한 이같은 부수입의 일부는 정부 예산으로 흘러들어간다.
  러시아의 다른 모든 석유 부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가스프롬 역시 수익세 이외에 다른 두 가지 세금을 더 납입해야 한다. 바로 수출세와 광물 추출세이다. 독립적인 민간 생산업체의 경우에는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이다. 이에 따라 가스 부문 기업들은 러시아 정부 세수의 5% 정도를 기여하는데, 러시아 정부로서 이는 부수적인 수입에 불과하다. 석유 부문 전체에서 기여하는 세수가 36%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스프롬의 이해관계가 러시아 정부의 이해관계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스프롬은 과거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일단 정부의 부속기관이 아닌 하나의 엄연한 기업으로 바로 서기를 희망한다. 가스프롬 지도부와 러시아 정부 모두 가스프롬이 여느 메이저 업체와 다름없는 국제적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가스프롬은 국내외 안팎으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성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추구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해외 수익의 대부분을 실현하는 유럽연합 시장에서의 상황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gazprom.jpg

 가스프롬의 모스크바 본사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추구가 관건
 
시장점유율 30%의 러시아는 유럽연합 외부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 공급원이 다른 국가로 대체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유럽 중부 지역에서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70% 이상이 모두 러시아 산이다. 수입 물량 면에서 따져보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이 규모가 큰 전략적 시장을 구성한다. 가스프롬은 소비에트연방 시절 유럽의 주요 사업자와 맺었던 Take or Pay (TOP: 의무 인수 계약) 형태의 계약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이탈리아 석유그룹 ENI, 독일의 에온 루흐르가스E.ON-Ruhrgas, 프랑스의 GDF-Suez 등이 그 주요 고객사이다. 20-30년 기간으로 체결된 이 계약에 따르면 유류 제품 가격에 가스 공급가가 연동되며, 또한 물량 면에서의 의무 조항도 부과된다. 이에 따라 구매자 측에서는 매년 정해진 가격에 일정량의 천연 가스를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며, 예정된 물량을 책임지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내야 한다. 위험 분담의 원칙과 안정적인 관계에 기반을 둔 이 같은 계약 구조 덕분에 러시아는 가스 공급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해 서시베리아의 거대 가스전으로부터 가스를 추출해 유럽 시장에 공급해왔다.
  가스프롬이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의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이 같은 계약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가스프롬이 제한적으로 단기계약이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으며, 현재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계약 조건의 완화도 가능하다. 사실 1996년과 1998년 가스 관련 지침의 채택 이후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더욱이 2009년에는 수송 부문과 생산 부문을 분리함으로써 전기 및 가스 시장의 개방을 마무리하기 위한 제3차 통합 에너지 기후변화 패키지가 채택된다. 2008년 이후에는 경제 위기에 따른 수요의 정체에 더해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채굴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가스 공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기계약 시장은 이 같은 불경기의 영향으로 금세 가격이 하락했고, (유럽연합 가스 수입량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장기계약의 공급가도 급락하긴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경우보다는 조금 더 느린 하향세를 보였다. 장기계약과 단기계약 사이의 격차가 꽤 벌어졌으나 이 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이다. 
  2011∼2012년 무렵 큰 폭으로 시장이 축소된 가스프롬은 유럽 고객사 대부분과 계약 조정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가스프롬은 연동제의 기본가를 낮추고 10~20% 정도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3) 더욱이 2014년 6월에 비해 50% 이상 유가가 떨어지는 등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가스프롬은 한층 강화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했다. 
  2000년대 초 이후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에는 본격적으로 굴곡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이에 따라 양측은 공동정책을 정하는 데에 상당한 애로사항을 겪는다. 독일은 노르드 스트림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가스 공급 라인을 보다 안정적으로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인 반면,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폴란드는 가급적 공급원의 다각화를 시도한다. 2006년과 이후 2014년에 있었던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가 있었음에도 가스프롬은 유럽의 신뢰할만한 가스 공급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하나의 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귄터 외팅거 에너지 부문 집행위원이 주도한 협상에서는 긍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양측의 의지가 드러났으며, EU와 러시아 양측은 우크라이나의 가스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우크라이나를 통한 경유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굴지의 기업인 가스프롬이 지닌 강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스프롬은 시장에서 가장 낮은 가스 생산가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신규 생산 지역이 늘어나 이러한 비교 우위도 줄어들 수 있긴 하나 그럼에도 러시아의 가스 생산가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러시아의 가스 생산 중심지는 서시베리아 나딤푸르타스 지역인데, 우렌고이, 얌부르그, 메르베예 등 세 개의 가스전이 있는 곳이다. 1970∼1980년대부터 가스 생산에 들어간 이 대규모 가스전은 오늘날 그 추출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카라해(海)를 따라 이어져 있는 북극권의 야말 반도와 극동 지역, 그리고 해상에서의 가스 추출 등이 차츰 그 뒤를 이어 갈 전망이다. 가스프롬은 야말 지역과 동시베리아만 하더라도 2020년경 생산량의 20% 이상을, 2030년에는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yamal-lng.jpg

 

 동북아 시장에 뛰어드는 가스프롬
 
  러시아 국내 시장에서도 가스프롬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노바텍처럼 소위 ‘독립적’이라고 하는 민간 가스업체나 로스네프트같이 정부가 자본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 기업을 포함한 석유회사들은 이미 에너지 생산량의 27%를 담당하고 있다. 전기 산업 부문과 발전소에서도 현지의 수많은 에너지 수송 및 유통망을 관리하는 가스프롬 자회사 메이레기온가스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은 상태다. 이렇듯 정부는 자국의 주요 기업을 경쟁에 노출시키고 있으며, 시장의 위력에 기대어 속칭 ‘정부 안의 정부’라 일컬어지는 거대 가스업체 가스프롬을 훈련시키는 상황이다.
  가스프롬이 신규시장의 개척에 있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으나, 2014년 5월 중국과의 장기 계약 체결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유럽연합 측과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전략적‧경제적으로 상당한 효력을 나타냈다. 가스프롬의 이 같은 전략적 우회는 2014년 12월 가스프롬이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구축 사업을 포기한 것에서 확인됐다.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는 흑해를 통해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여 불가리아까지 가스관을 부설하는 사업이었는데, 모스크바는 현재 이 같은 사우스 스트림보다는 터키로 연결되는 ‘터키 스트림’ 사업 쪽으로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를 비롯해 그리스에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이 현재 이 가스관의 연장을 준비하고 있다(보조기사 참고). 아시아 지역의 경우, 일본과 한국의 시장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south-stream.jpg

 

 

 물론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계약이 규모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게 사실이다. 30년간 매년 380억㎥ 정도만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약은 러시아가 완전히 동쪽으로 몸을 트는 기점이 됐다. 더욱이 이는 사할린에서 나가는 LNG 수출량을 늘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30년간 공급되는 대(對) 중국 수출량은 대략 4천억 달러(3,800억 유로) 규모이다. 양국 간에 체결된 계약 조항은 대부분 기밀로 부쳐졌지만 계약가를 감안하면 러시아의 대 중국 수출 가스의 가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요율은 MBTU당 10~12달러(㎥당 0.33유로)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4) 이 정도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들여오는 가스나 LNG 등 러시아의 주요 경쟁국에 비해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러시아의 대 중국 수출 사업을 위해서는 신규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이는 아무르강 유역 하바롭스크를 거쳐 야쿠티아 지역의 차이안딘스코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스전을 이어주는 신규 파이프라인이 된다. 가스프롬은 또한 LNG 프로젝트의 수도 일정량 늘릴 예정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일본으로 LNG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이다. 중기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는 연간 100G㎥ 이상을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전망이며, 동시베리아와 극동아시아 지역에 신규 생산 기지가 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차얀다 가스전 다음으로는 이르쿠츠크 지역의 코빅타 가스전 사하 공화국 내의 탈라칸 같은 곳에서 또 다른 가스전 개발이 이어질 예정이다.(5) 이 같은 수출 사업은 2007년 채택된 보다 포괄적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동 기획의 목표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생산 및 수송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와 가스프롬은 러시아 산 가스 공급 문제를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쟁을 부추길 전망이며, 가격에 따라 이들 두 시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시아는 꽤 많은 이점을 누릴 것이고, 유럽은 꽤 많은 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1) 가스프롬 기준 자료
(2) 2013년 British Petroleum 확인 매장량,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London, 2014년 6월. 
(3) James Henderson, Simon Pirani, <The Russian Gas Matrix: How Markets Are The Driving Change>,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2014. 
(4) Million British Thermal Units: 1MBTU=가스304㎥.
(5) 백근욱, <Sino-Russian Oil and Gas Cooperation: The Reality and Implications>,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2012.
 

글‧카트린 로카텔리Catherine Locatelli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PACTE-EDDEN 연구실, 그르노블 알프Grenoble Alpes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의 역서가 있다.
 
 


 사우스.jpg 
 
 <보조> 러시아가 사우스 스트림을 포기하는 이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4년 12월 1일 터키를 방문하면서 불가리아와 흑해 해저를 거쳐 유럽연합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하는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건설 계획을 최종적으로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계획 실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며 특히 아시아를 염두에 두며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우리 자원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유럽 투자자(프랑스의 EDF, 이탈리아의 Eni, 독일의 Wintershall)들이 함께 참여한 이 계획은 카스피해 가스전과 중부유럽을 잇는,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나부코 가스관 계획을 중지시키기 위해 2006년에 시작됐다. 이 결정은, 2014년 3월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채택하면서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사우스 스트림 포기는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3차 에너지 패키지 정책 시행을 두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의 오랜 협상에서 궁지에 몰렸다. 유럽연합은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스관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모든 공급자들에게 가스관을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예전에는 가스관 참여 에 있어 독점적 위치에 있던 가스관 보유회사들이 더 이상 예비적인 수송능력을 둘 수 없게 됐다. 러시아 회사는 필요한 투자액(약 320유로)을 경감하기 위해 예외조항을 주장해왔다. 
  여전히 러시아의 최대 시장인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러시아는 사우스 스트림을 흑해를 거쳐 터키로 가는 두 번째 가스관(Nabucco 일명 블루 스트림)으로 대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가 이미 이 계획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경로가 대단히 불확실해진다면 유럽은 엄청난 비용의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가스 터미널이 들어서게 될 그리스-터키 국경으로 가스를 찾으러가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의 대형 가스회사들은 가스프롬과 마찬가지 이유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지속가능한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루트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가스 채무 관련 분쟁을 해결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넣고 우크라이나 가스 산업 자유화를 위한 경제 지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글‧엘렌 리샤르Hélène Richard  언론인/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이 글의 출처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5년 6월호

 <크레믈린의 지원아래 급성장하는 가스프롬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791) > 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누가 이 예쁜 이정희를 종북이라 하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6/11 12:20
  • 수정일
    2015/06/11 12: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포토뉴스] 세월호 3보1배단에게 김밥으로 점심을 제공한 이정희
 
임두만 | 2015-06-11 11:01: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모형 세월호를 끌고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3보1배 행진을 하는 안산 단원고 2학년 故 이승현군 아버지와 누나 ‘아빠하고 나하고’ 세월호 3보1배단… 그들이 드디어 행군 110일 만에 서울에 입성했다.

이들의 고행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들의 고행이 시작될 당시는 상당수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으며 시민사회도 후원을 포함한 지지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들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그럼에도 시민사회는 이들 일행이 서울에 도착한 현재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6월 10일)은 무려 50여 명의 시민이 모형 세월호를 끄는데 동참했다.

▲이정희 전 대표가 故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손수 가져 온 차를 대접하고 있다. © 임두만

그런데 이들 고행길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나타났다. 그녀의 정성이 담긴 엄마표 김밥과 함께였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해맑은 얼굴로 이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김밥을 제공하며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손수 보여줬다. 이 화보는 이정희 전 대표의 엄마표 김밥으로 행복해하는 3보1배단의 현재 모습이다.

▲고행길에 동참한 일행들 모두에게 김밥을 제공한 이정희 대표의 소녀같은 모습이다. © 임두만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이정희의 웃음이 이를 증명한다 © 임두만

▲ 이정희 전 대표가 손수 준비했다는 엄마표 김밥 30인분이다. 사진제공 송정근 목사님.  © 임두만

한편 지난 2월 20일에 시작된 이 고행은 오늘로 110일이 지났으며 현재 서울 양재동에 도착해 있다. 그리고 오는 토요일 광화문에 입성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 투혼의 대미를 위해 오늘은 무려 50명이 넘는 인원이 모형 세월호를 끄는데 동참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2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 코리아연대회원 2명 미대사관 진격투쟁 전개

 
  • [속보]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코리아연대회원 2명 미대사관 진격투쟁 전개
  •  

     

     

     

    주남미군의 불법적인 탄저균반입과 실험, 이에 대해 어떠한 항변도 하지 못하고 방임하는 박근혜<정권>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김대봉, 정태호회원이 6.10항쟁28주년인 10일 오후2시10분경 미대사관앞 정문건너편 광화문광장에서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플랑카드를 펼치고 구호를 외치며 미대사관으로 향해 수백장의 전단을 뿌리며 돌진했다.

     

     

    전단에는 <탄저균 반입 THAAD 강요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 <탄저균 방임 THAAD 배치 종미사대 박근혜정권 퇴진!>, <6.15불허 탄저균 방임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제2의 6월항쟁으로 박근혜정권 끝장내자!> 등이 적혀있다.

     

     

    경찰들은 미대사관으로 돌진하는 코리아연대 두회원을 바로 저지했으나, 이들은 오랫동안 완강히 버티며 계속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라고 구호를 외쳤다.

     

     

    수십명의 경찰들이 두회원의 사지를 끌어 경찰차에 태워 연행했다.

     

     

    현재 금천경찰서로 이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화학무기인 탄저균은 치사율이 95%에 이르며 분말 100kg을 대도시상공위로 저공비행하며 살포하면 300만명이 사망한다.

     

     

    주남미군은 5월27일 <남코리아에서 탄저균을 실험했다>고 밝혔으나, 2013년 6월부터 서울 용산, 경기도 오산 등 3곳의 미군기지내 연구실에서 생물학전대응실험을 하는 <주피터(JUPITER, 연합주남미군포털및통합위협인식)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탄저균과 함께 가장 강력한 독소로 규정된 보툴리눔실험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19일 미국방산업협회가 주최한 포렴에 발표된 자료에는 주피터프로그램의 독소분석1단계실험대상은 <탄저균과 보툴리눔A형 독소>라고 설명돼 있다.

     

     

    코리아연대는 오후4시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리는 <6.10민중항쟁정신계승 및 박근혜정권퇴진·미군철수60구호발표 기자회견>에서 상세한 내용과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기자회견은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기독교평신도대책위, 코리아연대 등이 공동주최한다.

     

    photo_2015-06-10_15-45-28.jpg photo_2015-06-10_15-45-41.jpg photo_2015-06-10_15-45-47.jpg photo_2015-06-10_15-45-51.jpg photo_2015-06-10_15-46-57.jpg photo_2015-06-10_15-47-01.jpg photo_2015-06-10_15-47-05.jpg photo_2015-06-10_15-46-27.jpg photo_2015-06-10_15-46-31.jpg photo_2015-06-10_15-46-35.jpg photo_2015-06-10_15-46-39.jpg photo_2015-06-10_15-46-42.jpg photo_2015-06-10_15-46-46.jpg photo_2015-06-10_15-46-49.jpg photo_2015-06-10_15-46-53.jpg photo_2015-06-10_15-47-09.jpg photo_2015-06-10_15-47-13.jpg photo_2015-06-10_15-47-21.jpg photo_2015-06-10_15-47-17.jpg 1.jpg 2.jpg 3.jpg 4.jpg 

     

    임진영기자

  •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작권 환수 두려워 한 장군들 이라크군보다 못한 한국군 만들어"

 

[인터뷰] <위기의 장군들> 펴낸 김종대 편집장

15.06.10 21:22l최종 업데이트 15.06.10 21:22l

 

 

기사 관련 사진
▲  2010년 11월 24일 오전 전날 오후 발생한 북한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연평도 주택가의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2010년 11월 23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북한군의 포탄이 우리 영토에 떨어졌다. 이 공격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의 군인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 사망했다.

이 시각 우리 군 수뇌부는 '우리 마음대로 북한을 공격해도 되는지'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합동참모본부의 고위 장교들은 "미국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우리가 단독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자위권이냐, 교전규칙이냐를 놓고 허둥지둥하던 군 수뇌부는 상황이 다 끝난 뒤 전투기로 보복공격을 할 수 있는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이 "국지전에서 전투기로 타격하는 것이 교전규칙 사항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를 한미연합사에 물었고, 1주일 뒤에야 "한국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답신을 받았다.

이 일을 놓고 한미연합사 정보작전부장 존 맥도널드 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 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한국군 수뇌부가 보여줬던 난맥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군대가 과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이 최근에 펴낸 <위기의 장군들>(메디치)은 이런 의구심과 관련한 우리 군의 불편한 진실들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김 편집장은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지만, 한국전쟁 때 마련된 규범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변화된 체제에 맞는 규범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미군에 의존적인 한국군 장교들은 자신의 임무환경에 전혀 맞지 않는 규범을 적용받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실전 상황을 통해서야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군의 미래를 결정할 전작권 전환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 한국군 장군들이 보여주고 있는 견해의 획일성은 맹목적으로 한 가지 이데올로기를 추종한 결과"라면서 "이런 모습은 정신적인 빈곤함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편집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김종대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은 한반도 평화와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군 장교단의 폐쇄적 군사문화를 비판했다.
ⓒ 김도균

관련사진보기


- 권력과 진급을 향한 별들의 전쟁이라는 부제 아래 '항명' '원한' '변신' 등 29개의 키워드를 뽑아 책을 구성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 한국군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군인이 공적인 존재이고, 국가의 공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인간이다.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위에 군대가 작동하고 있다. 지위 경쟁의 당사자로서 공적가치와 인간적 욕망 사이에 끊임없는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고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군대, 결국은 권력을 향한 진급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지상 과제로 자리 잡은 한국군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제창했던 마키아벨리로 보는 것이다."

"한국군 하면 떠오르는 것? 별로 없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불편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명을 언급하기 때문에 내가 책이나 글을 쓰면 앓아눕는 예비역 장군들이 꼭 한두 명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관계로 강화되더라. 사실 <위기의 장군들> 같은 경우에도 불편해 할 사람들은 꽤 있다. 장군들의 세계는 보호 받아야 되고, 자기들만이 공유해야 되고, 국가 안에서 존중 받아야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나는 이 이미지들을 다 해체해버린다. 그랬을 때 남은 밑천이 뭔가에 대해 장군들은 두려워한다. 

독일군 하면 떠오르는 '혁신을 잘하는 군대', 이스라엘하면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교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한국군은 뭐가 떠오르나? 별로 없다. 이러니 자신들 세계가 해체되고 해부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외부의 자극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빈곤한 집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위기의 장군들>, 김종대 저.
ⓒ 메디치

관련사진보기

- 이 책에서 참여정부 당시 전시작전권(아래 전작권) 환수 문제를 놓고 미국과 밀고 당기는 협상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한국군의 빈곤한 정신세계가 나타난 한 단면으로 봐도 괜찮은가.
"전작권 환수와 같은 우리 군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한국군 장군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의 획일성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데서 기인한다. 장군들이 내는 목소리는 겉으로는 일치 단결된 의지의 표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맹목적인 한 가지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있는 정신적 빈곤함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전작권 환수에 대한 우리 군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방황'이다. 오랫동안 자기 군대를 지휘해보지 못한 자신감의 부족, 전통과 역사 없는 군대가 새롭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정신이 붕괴되고 방황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 군대의 패러다임 전환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 어려운 일이다."

- 방황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 세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군대는 스스로 지휘하겠다는 이런 본성에서 위배된 군대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군인의 본성을 이데올로기가 가로막고 있을 때, 정책을 다루는 핵심 장교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전작권을 한국군이 행사한다고 해도 나라가 망하는 일은 절대 없고, 우리 군대가 파산될 위험도 전혀 없다.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을 능력을 고양시키는 좋은 계기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라는 이데올로기, 이 패러다임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기존의 장군들이 살아 있는 이상 후배 장교들은 여기에 절대로 도전하거나 일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군의 원로, 선배 장군들이 사라져야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모든 아버지는 죽는다, 아들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대사처럼, 아버지는 아들의 시대를 열기 위해 사라져줘야 한다."

- 군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시대를 앞서서 끌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없을 때, 남이 만든 역사에 주석만 붙일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된 군대, 방황하는 군대는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항상 안보는 보수언론이 선동을 하고 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닌가.

북한에 새로운 게 뭐라도 나타났을 때, '기존의 군사력으로는 대책이 없다'고 보수언론이 선동하면 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무인기 대책을 왜 세워야 하는가? 그것은 <조선일보>가 선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지금 한국군은 보수언론이 만들어 낸 여론이라는 괴물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대책만 내놓는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군대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아웃소싱 되어 있는 한반도의 위기관리... 한미동맹의 '덫'"

-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때 한국군 수뇌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런 난맥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비정상적 지휘체계 때문이다. 연합방위 체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지만, 규범은 다 옛날 것이다. 예컨대 유엔사 정전시 교전규칙은 지난 1994년 우리가 평시작전권을 돌려받은 후로도 고치지 않았다. 한국군 장교들은 자신의 임무환경에 전혀 맞지 않는 규범을 적용받고 있다. 이런 것들이 실전 상황을 통해서야 확인된 것인데 왜 평소에 확인할 수는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한미동맹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니까.

연평도 포격전 때는 우리가 전투기로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 주요지휘관들이 일주일 동안이나 논쟁을 했다. 이게 자위권 사안이냐, 교전규칙 사안이냐를 놓고 헷갈리니까, 국방부는 대학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주겠다고 브리핑했다. 그러면 앞으로 전쟁이 터지면 대학교수, 변호사 불러놓고 쏠까, 말까를 물어봐야 하겠네. 자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한반도의 위기관리, 전쟁에 관한 문제는 우리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이 문제가 다 아웃소싱 되어 있다가 막상 우리가 위기를 관리해야 할 시점에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눈앞이 하얗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동맹의 덫'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보수 정부는 그렇다 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은 대체 무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군 개혁은 보통 20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계획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전후임 정권이 서로 협력해야 성취되는 초(超)정권적인 과업이지, 한 정권이 열심히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란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IMF라는 국가재정 위기 속에서 국방비를 증액시킬 수 없으니, 연구개발비를 대폭 증액했다. 지금 당장의 현존 군사력이 늘어나지 않아도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국방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을 전환하고 장기 국방개혁 방안을 세우되, 거기 수반되는 비용을 충분히 마련해 줌으로써 군이 스스로 개혁의 길로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자는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군에 있어서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중 국방개혁안을 완결 짓지 못하고, 다음 정권의 숙제로 물려주는 순간 즉각 변질되고 말았다. 개혁의 목표를 훼손하지 말고 관리만 잘했어도 되는데 정말 안타깝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국방예산이 사실상 삭감되고, 당장의 안보위기에서 군대가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처지로 군이 내몰렸다. 그러다보니 장기적 안목에서 '군사력의 미래상'이란 관점을 놓치기 시작했고, 현상유지 또는 체념적인 군대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아예 국방개혁이란 말이 사라졌다. 

군인들이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세웠던 개혁의 목표를 스스로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아마 앞으로 20년 이상 군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결국 박근혜 이후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군인들 자신을 군인들이 배신한 셈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국주의 미국> 1. 미국의 생성과 기원

<제국주의 미국> 1. 미국의 생성과 기원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5/06/11 [03: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연재서문]

 

우리사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우리를 지켜주러 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북-미 관계개선을 거부하고 대북압박을 지속합니다. 한반도 평화보다 군사적 긴장이 미국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독재정권의 편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뿌리내리게 한 산파였으며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찰떡공조를 과시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불편했던 미국은 다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망국세력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까? 바로 미국이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께서는 한국보수를 보면 혀를 끌끌 차면서도 미국 행정부의 정책결정만은 객관적, 내지는 합리적이라고 믿곤 합니다. 우리 생활 전반에 미국식 사고방식이 만연해 미국식 자유와 미국식 인권이 보편적 가치이며 미국식 정치가 그나마 나은 정치라는 착각에 빠져든 것입니다.

미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사회연구소는 우리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쳐왔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1. 미국의 생성과 기원

 

 

미국은 비단 한국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입니다. 미국은 지난 2차 대전을 통해 세계 패권국가로 등장해 소련과 냉전을 벌였고, 소련 붕괴 이후 일극지배체제를 확립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세계 여러 국가들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는 식민지 민중의 해방투쟁과 미국의 등장이라는 양대 축으로 설명됩니다. 당시 제국주의 수탈에 대한 저항은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되며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화되었습니다.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혁명의 열풍은 동유럽을 휩쓸었으며 한반도와 중국대륙, 인도차이나반도까지 뻗어나갔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촉발된 민족해방투쟁은 광범위한 제3세계 식민지에게 독립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은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해 제국주의 대 식민지의 수탈관계를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의 변형된 형태로 경제수탈 관계를 지속, 연장시켰습니다.

 

냉전시기, 미국은 지난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희망과 같은 등불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이 유라시아 대륙을 집어삼킬 듯 확산되자 서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뭉쳐야 했습니다. 2차 대전에서 본토에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미국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서유럽 국가들에게 마셜플랜으로 대규모 지원을 단행하고, 일본에 군대를 주둔하고 한반도 남쪽을 강점했습니다. 1950년 초, 미국의 매카시 상원의원은 공산주의를 미국의 주적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공산숙청을 벌입니다. 그 해 여름 6.25 전쟁에서 미국은 16개국의 참전을 지휘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전선은 결국 불을 뿜고 말았습니다.

 

 

1) 미국의 탄생을 자화자찬하는 견해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와 같은 지난 제국주의 열강들은 2차 대전 후 공산주의를 “역병”처럼 두려워했습니다. 이들에게 미국은 공산주의를 물리칠 유일한 세력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열강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단결한 후에야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억누를 수 있었고, 나아가 소련을 붕괴시켰습니다.

 

그런 역사적 과정을 거쳤기에 미국은 스스로를 세계패권국으로 치장하였습니다. 미국은 자신을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처하였고,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였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기득권에 기생하는 친미진영은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미국을 양키(yankee)라고 얕보던 유럽인들도 어느덧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칭송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은 스스로를 진보적인 사람들의 나라, 선택받은 사람들의 나라라고 미화했습니다. “자유”를 동경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목숨 건 항해로 메사추세츠에 닻을 내렸다는 미국의 첫 정착동화는 봉건의 질곡에 저항하던 당시 유럽인들의 투쟁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권용립 교수의 “미국외교의 역사”에 따르면 미국 정착 초기였던 16세기에서 17세기의 기간에, 영국 동부의 이스트 잉글리아 지방의 청교도들이 지금의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 해안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잉글랜드 남부과 서부의 기사계급과 계약 노동자들이 남부의 버지니아에 정착했습니다. 잉글랜드 중북부 출신은 펜실베이니아 해안과 델라웨어 밸리에 정착했으며 스코틀랜드 저지대와 아일랜드 계열은 펜실베이니아 내륙과 메릴랜드, 사우스 캐롤라이나 일대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부터 존재하였던 미국인들의 거주지는 훗날 도시로 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미 동부 해안을 따라 존재하는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입니다.

 

미국은 초기 정착민들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다고 선전했습니다. 미국이 전면화하고 있는 “자유”라는 이념도 따지고 보면 유럽의 봉건사회에 대한 반발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중세 유럽, 백작과 남작이 다스리는 봉건제에서 농노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저항과 반발의 개념에서 미국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2) 처음부터 미화된 미국의 역사

 

물론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은 유럽봉건사회의 귀족중심 세계에 반발한 이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초기 정착민들은 새로운 사회체제를 능동적으로 열어나갈 만큼 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봉건의 질곡에 반대하였지만 그 질곡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봉건의 기득권을 답습하는 그릇된 방향으로 사회를 운영하였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초기 정착민들의 인디언 정책입니다. 미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에서 북미 인디언들과 훗날 수천만에 달하는 흑인노예의 “자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이 추구한 “자유”가 봉건착취의 청산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새로운 기득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인디언들이 주인이었지만, 미국인의 “자유”를 위해 인디언들은 인종청소에 가까운 절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천만명에 달했던 북미대륙의 인디언들은 미국인들의 공격에 굶어죽고 병들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었습니다. 인디언의 무덤 위에 미국인들은 번영의 축배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광범위한 흑인노예들이 만연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자유”보다 “이윤”을 더 중시하였습니다. 미국남부는 유럽귀족사회를 동경하였으며 20세기 초반까지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이 추구한 것은 “이윤”이었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자유”의 이름으로 포장된 “이윤”이었습니다. 

 

 

 

3) 필요에 따라 만든 미국의 독립선언

 

 

미국에 정착한 초기 정착민들은 일관되게 “기득권”을 추구합니다. 이들이 영국의 개입에 반대해 독립전쟁을 벌인 것도 영국왕조의 식민수탈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미국자본의 이해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1776년까지 있었던 미국의 독립전쟁을 “자유를 향한 외침”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멜 깁슨이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 “패트리어트”에는 그런 이데올로기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미국인들은 자유를 향한 갈망보다 독립선언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에 독립선언을 하였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을 한 번 살펴봅시다. 권용립 교수의 “미국외교의 역사”를 한 번 더 인용해봅시다.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7년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북미대륙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우세한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그 때까지 영국은 프랑스의 눈치를 보며 미국 식민지의 세금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괜히 세금을 올렸다가 미국 정착민들이 프랑스와 손을 잡을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7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꺾은 이후 북미대륙에 개입할 힘이 부족해지자 영국은 눈치볼 것 없이 미국 정착민들에 대한 세금을 올렸습니다. 1763년부터 영국은 미국 식민지에 대해 압박적인 조세정책을 강행하였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이라고 하는 “보스턴 차사건”도 세금문제가 불거져 보스턴 항에 차를 실은 배를 불 지른 것이었습니다.

 

한편 7년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장기적으로 영국의 힘을 빼려는 목표를 세우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독립을 종용했습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 프랑스가 동맹이 되어주겠다고 설득한 것입니다. 이미 1776년의 독립전쟁 이전부터 프랑스의 대미 군사원조는 도처에서 드러납니다. 프랑스의 원조와 후원을 믿은 미국 정착민들은 영국에 높은 세금을 낼 바에 프랑스의 도움으로 독립전쟁을 해서 그 이윤을 모두 미국이 차지하자는 생각 속에 독립전쟁을 결정합니다.

 

 

4) 이윤을 위해 연방제를 선택한 미국

 

이 대목에서 왜 미국이 ‘연방제’라고 하는 특이한 정치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당시 북미대륙에는 메사추세츠와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분리된 정착촌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미국과 캐나다가 다르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다른 것처럼, 보스턴과 뉴욕 등 각 정착지 사이의 연계나 유대관계는 크지 않았습니다. 북부 메사추세츠 지역은 상업자본이 발달하였고 남부 버지니아 일대는 농장에 기초한 농업자본이 발달해 사회구성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입장에서는 영국의 힘을 최대한 빼려면 미국의 모든 식민지가 한꺼번에 독립하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서로 교류가 밀접하지도 않고 공동체 의식도 없이 때로는 서로 반목하고 때로는 서로 질시하던 북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영국 식민지들은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1776년 7월 4일, 한꺼번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미국 13개주의 주 정부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연방 대통령도 특정 주에서 연속적으로 집권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배경과 문화, 경제적 여건과 산업이 서로 다른 북미의 13개주는 독립 후에도 메사추세츠와 뉴욕, 워싱턴 등 지역의 각 주정부 그룹으로 나뉘어 자주 충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내의 갈등은 19세기 중엽에 흑인노예를 두고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던 남부 주들이 반발해 연방탈퇴를 선언, 남북전쟁(1861-1865)을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부 연방파의 승리로 미 연방은 해체되지 않았고, 통합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오늘날 미합중국 (United State of America)은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미국은 정착민들이 영국의 잔혹한 학정을 견디다 못해 목숨 건 독립투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독립하면 영국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프랑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독립전쟁에 뛰어든 것입니다. 프랑스의 원조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들은 연방이라는 생소한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독립과 공화제 수립을 미국 독립혁명이라고 칭송하는 견해는 미국에 의해 과대포장된 것입니다. 독립을 전후해 미국사회에서 공화제가 수립되기는 했지만 이는 프랑스 혁명처럼 봉건체제의 신분제를 철폐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독립은 미국사회 내의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에 항거에 벌인 전쟁이 아니라 미국사회의 현지 지배층이 영국의 식민지 본토에 저항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당시 봉건제의 억압과 통치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는 사건이 있었지만, 민중의 진출이 아니라 지배계급 간 갈등과 분쟁이 중심이었던 미국 독립은 민중과 정부의 투쟁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형태가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독립선언은 정치적인 선언인 동시에 외교적 선언이었다고 합니다. <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강박 버리자 얻은 깨달음

 
조현 2015. 06. 09
조회수 528 추천수 0
 

 

 

 

놓아버렸을 때 온 뜻밖의 행복

 

 

g1.jpg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은 척추만 곧추세우고 최대한 몸을 이완하는 ‘놓아버리기’ 명상을 한다.

 

 

다음달 ‘명상대전’ 여는 각산 스님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길이 되는 이들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참불선원장 각산(55) 스님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새 길을 내는 사람이다. 그가 이번에도 돈키호테처럼 일을 냈다. 10여년간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스승을 찾아 미얀마와 타이, 인도, 스리랑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쓸고 다녔던 그가 이번에 각국의 불교 고승들을 우리나라의 한자리에 모은다.


오는 7월18일부터 6박7일간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릴 ‘세계 7대 성자 명상대전’에서다. 1천명의 스님을 비롯해 3천명의 참석자가 고승 7명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명상을 하는 대규모 캠프다.
이번에 초청되는 스님들은 아잔 간하(아짠 깐하·타이), 아잔 브람(오스트레일리아), 툽텐 갸초(티베트), 소운 스님(중국), 심도 스님(대만), 우 자틸라 사야도(미얀마), 혜국 스님(한국)이다.


타이 왓 프래담마람 수도원장인 아잔 간하(66) 스님은 47년간 밀림에 은둔해 수행해온 수행자다. 세계 명상계의 거봉이던 아짠 차의 조카인 그는 신문과 텔레비전도 접하지 않고, 대중법문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가 각산 스님을 만난 뒤 자신의 비용을 들여 이번 대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소운(77) 스님은 근대 중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허운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명으로 숭산 소림사의 선당(禪堂) 수좌를 지냈다. 그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나는 나다”라며 앉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고 한다. 대만의 심도(68) 스님은 화교지만 남방불교권인 미얀마에서 태어나 출가해 남방불교의 위파사나와 북방불교의 간화선을 함께 지도하는 통합불교의 선구자다. 이 밖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도 출신으로 타이에서 출가해 오스트레일리아 불교를 개척한 아잔 브람(65)도 2013년과 2014년에 이어 다시 방한한다. 또 영국 의학도 출신의 서양인 티베트 고승인 툽텐 갸초(78), 미얀마 위파사나의 대가인 우 자틸라 사야도(80)가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해인사에서 10만 배 정진을 하고 손가락을 태워 수행 의지를 다지고, 충북 충주 석종사에서 참선을 지도하는 혜국(68) 스님이 참석한다.


세계적 고승 초청해 7월 일주일간 ‘7대성자 명상대전’ 여는 참불선원 각산 스님. 10여년간 선재동자처럼 미얀마, 타이, 스리랑카 등지로 구법순례 뒤 ‘놓아버리기’ 명상을 전파했다. 프랑스 테제공동체 같은 누구나 자유롭게 명상하는 상시캠프 여는 꿈도 꾼다.

 

g2.jpg

 

 

 

이 스님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법문하는 하이원리조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들의 출입이 허용되는 카 지노가 있는 곳이다. 돈 놓고 돈 먹는 도박이 성행하는 한가운데서 마음을 다스리는 고수들을 모시고 명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명상캠프에 이어 7월25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는 ‘세계 7대 성자 수계대법회’가 선묵혜자 스님의 ‘백팔산사’와 공동으로 열리며, 26일과 27일에는 각각 부산과 대구에서 강연이 있다.


어떻게 각기 다른 전통에 따라 수행해온 고승들을 한자리에 모실 생각을 했을까. 이는 각산 스님의 순례 여정에 따른 것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각산 스님은 사업을 하기도 하고, 한때 정치를 꿈꾸는 야망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불교를 접한 뒤, 부모를 위한다거나 혹은 세상을 위한다고 했던 일조차, 결국은 부모나 세상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고통이란 현실과 욕망의 차이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내 분수대로 살자’며 출가를 감행한 것은 35살 때였다. 늦깎이로 출가했으나 해인사 승가대학을 다니던 사미 시절부터 참여불교에 심취해 세미나 개최를 주도하는 등 일찍부터 행동대장의 기질을 내보였다. 그러나 그는 수행을 통해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 끝에 선방으로 향했다. 송광사, 범어사, 통도사 등 선방에서 간화선을 수행한 것이다. 그러다가 불교엔 간화선 외에도 다양한 수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저 해외 불교를 순례하며 간화선과 위파사나, 티베트불교 수행을 회통해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려 했던 지산 스님(2010년 입적)을 만난 게 큰 자극제가 됐다. 못 말리는 탐구열이 발동한 것이다.


그는 미얀마로 떠나 양곤의 여러 수행처를 거쳐 선정(삼매)수행의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유명한 미얀마의 숲속으로 파욱 스님을 찾아가 수행했다. 6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그곳에서 인정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스스로를 돌아볼 때 번뇌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경지는 무엇일까.”

몸은 만신창이가 될 만큼 고행을 했지만 진솔한 성찰의 결과는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면 왜 종교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지, 왜 사람들 사이 화합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해질 뿐이었다. 그런 의문이 그를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타이로 가서 당대의 고승들을 찾아다녔다. 그가 지금의 스승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잔 브람에 대해 들은 것은 스리랑카에서였다.

 

그는 아잔 브람이 타이에서 수행을 한 뒤 오스트레일리아 땅 100만평에 만든 보디냐나 사원에 가기로 작정했다. 스리랑카 스님이 둘이서 가겠다고 연락을 하자, 그쪽에서는 방이 없다며 혼자만 오라고 했다. 그런데도 각산 스님은 오스트레일리아행을 강행했다. 아잔 브람은 불청객에 대해 “문제없다”며 환영해줬다. 그런데 해병대보다 군기가 세다는 해인사 행자 출신으로 용맹정진이 주특기인 그가 보기에 보디냐나의 군기는 한심할 정도였다. 아잔 브람은 일체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쿠티’라는 개인 수행처소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도, 온종일 책을 읽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수행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이 무너졌다. 긴장에 긴장을 더하는 강박적 수행을 놓아버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부여잡기보다는 놓아버리고, 계율로 구속하기보다는 ‘자율 속의 타율’이 살아 있는 게 더욱 불교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아잔 브람 식의 ‘텅 빔’ 수행 속에서 전에 맛보지 못한 선정을 체험하면서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다. 그는 귀국 후 ‘놓아버리기’ 수행을 널리 알렸다.

맨땅에 헤딩하듯 상가 2층에 참불선원을 열고, <불교방송> 법문을 통해 새로운 명상의 길을 알렸다. 이런 명상에 목말랐던 이들의 호응은 의외로 컸다.

 

‘세계 7대 성자 명상대전’은 각산 스님이 10여년 동안 몸을 상해가며 동남아시아 숲속을 헤매고 세계를 돌며 만난 고승들을 대중들이 한자리에서 뵙게 하기 위함이다. 각자가 원하는 명상을 접해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지 불법의 대해로 나아가게 하겠다는 꿈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한국의 수행법을 폄하하고 상대의 수행법을 인정하지 않는 닫힌 벽을 넘어 다른 전통을 인정하고 화합하며 진리에서 하나로 만나자는 꿈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는 초청 고승들을 ‘성자’로 칭한 것에 대해 “불교에선 번뇌를 소멸한 경지인 아라한 외에도 사다함, 수다함, 아나함 등의 단계도 성자로 인정한다. 우리부터 이를 인정하고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각산 스님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누구나 와서 기도하는 기독교 공동체인 프랑스 테제처럼 세계인들이 ‘쿠티’와 텐트 등에서 자유롭게 명상할 수 있는 상시 명상캠프를 꿈꾸고 있다. 술, 담배만 금하고 최대한 자유롭게, 기독교인도 개인 쿠티 안에서 십자가를 걸고 기도해도 좋을 ‘열린 명상공동체’를 우리나라에 열겠다는 것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