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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논에 직사로 물 뿌리는 박근혜, 예고된 재앙

‘2015년 1월, 예고됐던 가뭄’ 예측된 가뭄, 왜 막지 못했나?
 
임병도 | 2015-06-22 08:54: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월 21일 일요일, 휴일이었지만 온라인에서는 사진 한 장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진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가뭄 피해 지역을 방문해 마른 논에 물을 뿌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차를 동원한 비상급수 차량에 연결된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뿌렸는데, 직사로 물을 뿌리는 모습이 많은 국민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줄기가 강한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뿌릴 경우 대부분 공중으로 물을 뿌립니다. 워낙 물줄기가 강하기 때문에 논에 있는 벼가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청와대와 삼성동 자택, 국회에 있던 사람이 논에 물을 뿌리는 방법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사전에 청와대 참모진 중에 농사 경험이 있었다면, 이런 사진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도 농사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논에 물을 뿌리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흔히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을 뿌린다고 하지 않고, 물을 댄다고 말합니다. 보통 '물대기'는 논의 가장자리에 물 호스를 연결해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합니다. 소방차나 급수차를 이용할 경우, 수압이 낮으면 가장자리에 물을 공급하고, 수압이 높은 경우 허공에 물을 뿌려 벼가 상하지 않도록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압이 센 소방호스를 허공으로 향해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좌우로 흔들면서 논으로 소방호스를 향하는 모습도 몇 번씩 나오기도 했습니다.1 이 방법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입니다. 모내기한 지 오래되지 않은 벼의 경우 조그마한 충격에도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이 물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사진을 연출할 때,가뭄을 막아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너무 과하게 보여주려다 발생한 일로 보입니다.


‘2015년 1월, 예고됐던 가뭄’
 
박근혜 대통령이 논에 물을 뿌리는 방법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논에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뭄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불과 3년 전인 2012년,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습니다. ‘104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라는 당시 기록을 보면, 비는 평년의 10%밖에 내리지 않았고, 서울의 낮 기온은 12년 만의 최고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이후 5~6월 강수량이 가장 적었습니다.2
 
날씨는 덥고 건조하면서 비는 내리지 않아 전국적으로 물 부족 현상을 나타냈고, 당시에도 지금처럼 소방차와 급수차를 이용해 논과 밭에 물을 대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2015년 1월, 환경전문가와 기상학자, 언론들은 2015년에 대가뭄이 온다고 예측했습니다. 이유는 지난해 강우량이 예년의 절반도 안 됐기 때문입니다.3 전국적으로 저수지들의 수위가 낮아져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38년짜리 가뭄주기의 정점에 해당이 되고요, 124년짜리 가뭄 주기의 시작점에 해당되기 때문에 가뭄이 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라고 예측했으며,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한반도는 강우량 부족 등으로 가뭄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예측된 가뭄, 왜 막지 못했나?’
 
삼국사기 등 고전 문헌을 봐도 한반도는 항상 주기적으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MB는 4대강 사업으로 가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이 커진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물그릇이 정작 필요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만들어졌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보 16개 중 11개가 물 부족 지역과 무관한 곳에 위치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무조정실 4대강사업조사평가위 보고서를 봐도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의 위치 선정이 기준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4대강 사업으로 가뭄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용수공급계획과 용수공급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4
 
이 말은 4대강 사업으로 16개의 보를 만들어 물그릇을 크게 만들었지만, 이 물을 가뭄으로 물이 필요한 곳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물 공급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급수차와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날라서 논에 물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4대강 사업 이후에도 가뭄비상 왜’라는 기사에서 정치논쟁에 휘말려 농업용수 공급시설을 못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5 4대강으로 만든 물그릇이 커졌으니 이 물을 농업용수로 공급하기 위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 플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회 예산 삭감 등으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계획으로 ‘하천수(4대강) 활용 농촌용수 공급 사업’ 또는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 수립’이 있습니다.6 이 계획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물그릇을 농업용수로 공급하기 위한 별도의 사업입니다. 어쨌든 물그릇이 만들어졌으니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면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비 1조 913억 원'이 든다는 얘기는 쏙 빼놓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22조 원을 투자했는데, 별도로 1조 913억 원이 드는 사업을 해야만 농업용수 공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1조913억 원만 든다고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4대강 사업으로 가뭄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조 원의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뭄이 비상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민,관,군이 협력하여 가뭄 극복에 총력대응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준설 적기인 본격 장마 시작 전까지 물그릇을 키울 수 있도록 준설작업을 최대한 실시하고, 근본적인 가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7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사고나 재난이 닥쳐야 준비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물그릇을 키운다는 의미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라면 이미 충분합니다. 그러나 저수지 준설이라면 필요합니다. 4대강 준설과 저수지 준설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물그릇을 키우느냐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물그릇을 어떻게 농업용수로 공급하느냐입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MB의 4대강사업 연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MB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나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그 구성원은 동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똑같은 정권인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 다시 수조 원의 돈을 들여야 하는 하천용수(4대강) 사업을 진행하기가 껄끄러울 것입니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가뭄을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의 대책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물그릇을 공급하는 방식이든, 저수지를 준설하는 방식이든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몫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호스로 벼를 향해 직사로 물을 뿌리는 일은 물대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놓고, 이미 예견됐던 가뭄을 막지 못한 실패의 책임과 함께 장기적인 가뭄 대책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1. 박근혜 대통령, 강화도 가뭄 피해 현장 방문. YTN. 2015년 6월 2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52&aid=0000694008&sid1=001 
2. 기상청,file:///C:/Users/LG/Downloads/150423_%EB%B3%B4%EB%8F%84%EC%9E%90%EB%A3%8C%25283%EA%B0%9C%EC%9B%94_%EC%A0%84%EB%A7%9D_2015%EB%85%84_5%EC%9B%94-7%EC%9B%94%2529.pdf 
3. 강우량 절반…2015년 한반도 대가뭄 오나?.KBS뉴스.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PAGE_NO=4&SEARCH_NEWS_CODE=2999479 
4. 4대강은 ‘물 찰랑’ 주변은 ‘가뭄 쩍쩍’. 경향신문 2015년 6월 17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172228475&code=620100 
5. 4대강 사업 이후에도 가뭄비상 왜. 동아닷컴. 2015년 6월 19일.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619/71952270/1 
6.‘하천수 이용 농촌용수공급사업 마스터플랜 안’ 단독입수 총력 분석. 경향신문. 2015년 6월 20일.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201644431 
7. 청와대. http://www1.president.go.kr/news/newsList.php?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11162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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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현금'에 집착한다!

 
[함께 사는 돈 탐방기] 물고기를 줘야 하는 이유
 
 
<프레시안>과 녹색당,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함께 사는 돈 탐방기'라는 공동기획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각자 생존'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수준인 48.1%에 달하고, 체감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이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실태에 대해 진단하고,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기본소득은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낯선 개념은 아니다. 기초노령연금이나 무상급식처럼 소득기준을 철폐한 분배방식이 미흡하나마 정책화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와 같은 민간단체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해왔다. 
 
기존 작업은 유럽사회에서 구축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기본소득 법안이 제정되었거나 일부 시행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주로 소개했는데, 복지에 대한 관심과 신자유주의적 개입이 동시에 똬리를 튼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이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면 유럽중심성을 탈피한 다양한 경험적 연구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라? 현재 어업이 숙련된 노동을 요구하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관한 제임스 퍼거슨(James Ferguson) 교수(미국 스탠퍼드대 인류학과)의 작업을 소개하는 것은 이 같은 취지에서이다. 퍼거슨 교수는 아프리카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중심으로 빈곤과 개발, 이주와 현대성 문제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의 논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류학자이다. 2012년 11~12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와 한국문화인류학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현금 거래'의 사회적 삶: 돈, 시장, 그리고 빈곤의 상호의존성', ''사회적인 것' 이후: 신자유주의적 위기와 새로운 복지국가' 주제로 강연을 했고,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와 좌담회를 가졌으며, 2015년 그간의 작업을 바탕으로 저서 <물고기를 줄 것: 새로운 분배 정치학의 모색>(Give a Man a Fish: Reflections on the New Politics of Distribution, Duke University Press)을 출간했다.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그냥 준다면 그를 하루만 배부르게 할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평생을 배부르게 할 것이다." 
 
개발과 빈곤퇴치 사업에 참여하는 정부나 NGO, 종교단체가 구사해 온 이 관용적 수사를 현시기 어업(fishing)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것으로 퍼거슨 교수의 논의는 시작된다. 오늘날의 어업은 과거와 달리 아시아의 양식업에 상당 부분 의존하며 일반 어업의 경우 고도로 자본화, 기술화된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는 상태다.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실직 어민이 넘쳐나는 판국에 현재의 어업이 정말로 숙련된 노동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우리가 지금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작금의 어획량은 이미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할 만큼 엄청나다. 어획량을 무작정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러한 비유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생태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분배가 아닌 생산에서 탈빈곤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다. 아프리카에서 공식부문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는 전체 성인인구 중 극소수에 불과하며, 실업률은 기약 없이 치솟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은 일시적 잡일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적당히 손 벌리거나, 자잘한 소매치기로 '땜질'을 반복하는데, 과거 식민지배자들이 "부랑자"라 불렀고, 마르크스(Karl Marx)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라 칭했던 이들은 이제 남아공에서 나이가 40대든 50대든 상관없이 '청년'으로 통한다. '청년'이 단순히 세대 범주가 아니라 공식부문 고용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결혼과 출산, 양육을 통해 가족을 구성할 기약이 없이 만성적 유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일반에 대한 통칭이 된 것이다.
 
실업률이 35퍼센트에 달하는 남아공은 물론 극단적 사례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와 무관한 금융자본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기업이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아니라 각종 인턴십과 자원봉사기회만 선물보따리처럼 제공하는 한국사회에서 ‘청년’ 집단이 살아갈 사회가 남아공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못사는' 남아공은 동정의 대상으로 남겨둔 채 이미 파산선고를 한 유럽 복지국가체제의 파편들을 짜깁기하는 게 유일한 대안일까? 
 

ⓒ프레시안(최형락)

 
유럽 복지국가에 노스탤지어를 가질 필요없다
 
퍼거슨 교수는 (대부분의 비서구인들이 경험해보지도 않은) 유럽 복지국가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근간이자 현재 종말을 고했다고 이야기되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은 '정규직 임금노동자와 그의 가족들'만을 대상으로 사회적 돌봄을 제도화했던 불완전한 구성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안정적인 임금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s)가 새로운 노동자의 전형으로 급부상한 시대에 조응하는 체제도 아니라 주장한다. '보편적인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종말 이후 무엇이 올 것인가가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인 것'(this social) 이후에, 남아공의 역사로 한정 짓자면 "백인 정착자와 흑인 노동귀족만을 위한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위계적이었던" 사회적인 것 이후에 무엇이 등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파괴한 주범으로 곧잘 거론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하에서 남반구의 많은 나라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지원체계를 실험 중이다. 과거의 차별정책이 종식되고 첫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1994년 이후 남아공의 사회적 부조체계는 계속 확대되어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1500만 명의 국민이 정부의 사회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극빈 지역의 경우 이 수치는 전체 가구의 75퍼센트에 다다른다. 
 
이를 두고 유럽에서 이미 한물간 '사회적인 것'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퍼거슨 교수는 강조한다. 아프리카에서 등장하는 '사회적인 것'은 유럽 복지국가의 근간이었던 임금노동과 보험 메커니즘과 거리가 멀며, 대규모의 사회적 지원은 오히려 임금노동에서 배제된 다수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998년 이후 대대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아동지원보조금의 경우 결혼 여부를 따지지 않으며, 오직 보조금 지원 대상이 아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돌보는 자인지만 조사한다. '정상적'인 가족을 더 이상 복지 급여의 기준으로 전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모든 남아공 국민에게 매달 15달러 수준의 현금을 지급할 것을 주창하는 기본소득 캠페인은 가족구조는 물론이고 임금노동의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임금이라는 공식적 대가를 지급할 직업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추구하는 다수를 끌어안는 작업을 제안한 것이다. 
 
빈자들, 사회적이며 현금에 집착한다
 
이쯤에서 다시 물고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남아공의 사례에서 보듯 기본소득운동이 제안하는 것은 물고기 자체라기보다는 '현금화'된 물고기이다.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를 사회적, 도덕적 연대의 대척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현금 지급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퍼거슨 교수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이 아니라 현금을 주자고 호소하는 기본소득 입안자들의 주장을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옹호한다. 빈자들은 굉장히 사회적이며, 동시에 굉장히 현금에 집착한다. 
 
이들의 일상에서 시장의 논리와 공통 연대의 논리는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 호주머니 안의 돈이란 (결국 생사의 문제이기도 한) 사회성, 상호의존성의 기회를 배가시켜줄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다. 교통비가 없어 이동조차 못 한다면 자신이 의존할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현금거래란 결국 사회적 세계에 '의존성'을 새로이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빈자들의 삶에서 덜 해악적인 의존의 관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방향적인 의존관계가 상호의존이라는 좀 더 평등한 형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호혜성의 통로를 열어젖히는 창구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주라는 게 무작정 현금을 베풀자는 게 아니라는 점, 토지든 지하자원이든 특정인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공동의 세계에 대해 '지분'을 가진 개인들에게 배당하는 것임을 첨언해야겠다. 노동권이 아닌 사회적 성원권을 강조했던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1842-1921)의 말을 인용하자면, "내가 어떤 재화를 생산하기 때문에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우리 공통의 산출물에 대한 상속인으로서의 지분을 갖기 때문에 배당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새로운 정치 형태의 포문을 여는 것인지, 아니면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처럼 현재의 구조적 모순을 야기한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값싼 해결책에 불과한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크로포트킨이 주장한 정당한 지분(rightful share)이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배당될 수 있는가도 현재로써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퍼거슨 교수는 프롤레타리아트 임금 노동의 찬양, '룸펜'이나 금전적 관계에 대한 경멸 등 이론적 연역에서 출발한 편견이 수십 년간 좌파 정치학에 전혀 도움이 못되었다는 점을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다른 출발점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가들의 생각이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관찰로부터 급진적인 정치를 실험해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의 '안티'로 자족하기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로 문제의 지형을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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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에 어류 떼죽음"... 낙동강 어민, 첫 선박시위

"4대강사업에 어류 떼죽음"... 낙동강 어민, 첫 선박시위

[현장] 내수면어민총연합회, 25척 참여... 하굿둑, 대형 보 철거 등 촉구

15.06.21 14:38l최종 업데이트 15.06.21 14:38l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에 인간도 살 수 없다. 낙동강 하굿둑과 대형보를 철거하라."

낙동강 어민들이 4대강사업 뒤 첫 '선박시위'를 벌였다.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회장 박남용)와 낙동강재자연화 부산경남대구경북본부는 21일 오전 낙동강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였다.

어민들은 선박 25척에 갖가지 구호를 새긴 펼침막을 매달고 머리띠를 두른 채 총 20km 길이의 강 위에서 시위를 벌였다. 어민들이 선박시위를 벌인 것은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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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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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통발에 잡히는 새우와 물고기들이 거의 대부분 죽고 있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용존산소량 부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환경단체와 어민들은 하굿둑과 4대강사업으로 생긴 낙동강의 8개 보로 인해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썩은 강'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55년째 낙동강에서 어업활동을 해온 유점길(70)씨는 "옛날에는 낙동강 물을 그냥 떠서 마실 정도였다"며 "4대강사업 뒤 당분간은 괜찮았는데, 특히 올해 들서 어류 폐사가 심하다, 통발 하나를 건져 올리면 어류는 전멸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낙동강에는 잉어, 붕어, 장어, 동자개 등 어류가 많았다, 4대강사업 뒤부터 강가에 있던 수초가 모두 없어졌다, 물고기는 수초가 있어야 산란도 하면서 살 수 있다, 심지어 어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곳에 있는 수초를 가져와 심자는 말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낙동강오염방지협의회 박용수 회장은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은 담수 됐다, 그러면서 부영양화가 심해졌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잘못된 4대강사업 탓이다, 그리고 하굿둑으로 인해 낙동강 하류 물 정체 현상이 심하다, 어류가 자랄 수 없는 여건이 되면서 낙동강은 생태계 병화가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4대강사업 이후 어류 못 사는 환경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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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는데, 화명대교 아래에 녹조가 창궐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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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낙동강 하류는 녹조가 심했다. 녹조 알갱이가 둥둥 떠 있었고, 배가 달리자 물보라가 생겼는데 녹색이었다. 특히 화명대교 위에서 보니 녹조가 심했다. 

어민들은 선박에 "호수냐 산이냐 녹조 때문에 구별을 못하겠다"거나 "30년 기다렸다 하굿둑을 열어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사퇴하라", "낙동호수 물고기 죽으면 어민들도 죽는다"고 외쳤다.

다른 어민들는 하굿둑 옆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홍수통제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생명그물, 대구환경연합,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창녕환경연합,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에 인간도 살 수 없다, 낙동강 하굿둑과 대형보를 철거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환경청은 이번 물고기 폐사가 용존산소량 부족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왜 용존산소량이 부족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조사하거나 분석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존산소량 부족의 원인은 대형보로 인해 유속이 느려지고 강바닥이 뻘층으로 변해 혐기성 부폐가 진행되고 있으며, 녹조창궐과 낙동상 수온 상승 때문임이 틀림없다"며 "이제는 낙동강의 자체 정화 능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심각한 위기임을 판단해야 할 시기에 돌입했다"고 덧붙였다.

어민들은 "박근혜정부는 4대강조사위원회의 결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전환을 위한 실천보다는 용역만 반복하고 있다"며 "집단 폐사가 4대강사업의 부작용이라면 생태환경의 근본적 변화라는 환경재앙적 측면에서 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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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다. 55년간 낙동강에서 어민활동을 해온 유점길(70)씨가 선박시위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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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고, 다른 어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홍수통제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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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고, 다른 어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홍수통제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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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낙동강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자 '낙동강내수면 어민총연합회'는 21일 오전 대동선착장에서 하굿둑까지 선박시위를 벌이며 '하굿둑과 대형 보 철거'를 촉구했고, 다른 어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홍수통제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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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촛불.. “이제 국민이 정부 압수수색 하러 간다”


빗속 토요 촛불문화제.. “정부 탄압 불구 진실규명 외침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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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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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0  21:47:38
수정 2015.06.20  2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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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정부 시행령 폐기촉구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월호 인양, 압수수색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부의 어떤 탄압에도 우리는 진실규명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토요촛불문화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렸다. 궂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100여 명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온전한 선체 인양, 실종자 수습 등을 촉구했다. 특히 전날 경찰의 4.16 연대 사무실 압수수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규탄 발언에 나선 단원고 고 임세희양의 아버지 임종호씨는 “어제 경찰이 압수수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임씨는 “국가가 당연히 밝혀야 될 진실을 밝히지 못해 국민과 유가족들이 나서서 밝히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마저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김혜진 4·16연대 상임운영위원도 발언에 나섰다. 김 위원은 “경찰이 압수해간 물품 목록을 보니 세월호 관련 강의 교환 내용 4개와 1주기 토론회 책자 3개 등 7개였다. 압수만 하지 말고 반드시 그 내용을 읽어보면 자신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토요촛불문화제에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 go발뉴스(강주희)
   
▲ 극단 '끼'© go발뉴스(강주희)
최영준 ‘다함께’ 운영위원은 “정부는 4.16 가족협의회의 사단법인 설립을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가로 막고 있다. 4.16연대가 정부를 감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규탄 발언에 이어 극단 ‘끼’가 무대에 올라 ‘하숙집 낭독극’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펼쳤다. 하숙생 ‘새누리’와 ‘새민련’ 그리고 하숙집 주인인 ‘박근혜’가 사는 집에 새로운 이사온 주인공 ‘국민이’의 이야기다. 메르스 사태를 비꼰 재치있는 대사와 풍자에 시민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역시 엄마 장조림은 말해야 입만 아파요”(새누리)
“내 말이. 어쩜 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워? 아줌마 이거 무슨 고기예요?”(새민련)
“이거? 낙타고기. 호호호”(박근혜)

이날 문화제 마지막 발언은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유 위원장은 “정부와 경찰이 가족과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며 “문제는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배후를 가지고 탄압을 하든 말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압수수색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유 위원장은 최근 민간업체 88수중환경이 세월호 선체를 촬영한 것에 대해 해수부가 방관한 사실을 규탄했다. 88수중환경은 지난해 11월 세월호 실종자 수습 수색을 중단했다.

유 위원장은 “88수중이 세월호 선체의 수중촬영 했다는 것을 제보받고 해수부에 확인했더니 그런 사실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실종자 수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정부는 아무나 들어가서 헤집고 다녀도 모를 정도로 바닷속에 있는 세월호를 방치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음 주는 우리가 압수수색 하러 가는 날”이라며 “의지가 없는 정부가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다. 세월호가 온전한 모습으로 올라올 때까지, 미수습자들이 가족품으로 돌아올때까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족협의회는 오는 27일 오후 7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시행령 개정 촉구 문화제와 국민대회가 열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 개정안 수용을 정부에 요구하는 10만 서명운동 결과를 모아 30일 청와대에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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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된 며느리에게 담배 가르친 시아버지

 

[답사] 경북 성주와 봉화로 떠난 '심산(心山) 역사기행'

15.06.20 20:31l최종 업데이트 15.06.20 20:3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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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교도원 제1회 입학기념 촬영(성균관 명륜당, 1949.3.8.). 앞줄 가운데부터 차례로 정인보·김구·김창숙 선생이다.
ⓒ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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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베푸는 '심산 역사탐방'의 답사단이 심산 생가인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30일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는 이른 점심을 챙겨먹고 정오 전에 일찌감치 사도실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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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
ⓒ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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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은 경북 성주가 낳은 독립투사다. 대가에 그의 생가가, 읍내에 심산기념관이 있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그를 숱한 독립지사 가운데 한 분이라고 여기고 만다. 그러나 심산은 역사평론가 이덕일이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유교는 역사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열혈 독립 운동가였다. 

"그때에 왜정 당국이 관직에 있던 자 및 고령자 그리고 효자 열녀에게 은사금이라고 돈을 주자 온 나라의 양반들이 많이 뛸 듯이 좋아하며 따랐다."
- 김창숙 <벽옹 73년 회상기> 중에서

경술국치(1910)를 당했을 때 매천(梅泉) 황현은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도 어렵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봉건적인 충(忠)을 지키고자 한 게 아니라 '글을 아는 자', 즉 '선비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 지적한 것처럼 나라가 망하고 나서도 선비로서의 양심은커녕 국망(國亡)에 무심하고 세속의 이욕만을 좇던 양반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고 그 선비들이 일생을 바쳐 천착한 성리학이 나라의 지배적 사상이었는데도 그랬다. 

'을사오적 참형소'로 시작된 독립투쟁의 길

일제가 대한제국을 점령한 직후인 1910년 10월 '합방 공로작(功勞爵)'을 받은 76명의 한국인들은 모두 양반 유학자들이었다.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에 따르면 이완용·송병준 등과 대원군의 조카 이재완, 순종의 장인 윤택영, 명성황후의 동생 민영린 등이 귀족 작위를 받았다. 이때 일제가 이들 지배층에게 내려준 은사금(恩賜金)은 1700여만 원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이 가까워오는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 등이었다. 정작 거기 유림 인사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 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심산은 유교 대표가 한 명도 없음을 보고 통탄해마지 않았다.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교가 이번 독립운동에 참여치 않았으니 세상에서 고루하고 썩은 유교라고 매도할 때에 어찌 그 부끄러움을 견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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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 김우옹을 모시다가 고종 때 훼철된 후, 1992년 복원된 청천서원. 현판은 백범 김구의 글씨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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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독립운동은 일찍이 을사늑약(1905)이 체결되자 스승 이승희와 함께 상경하여 이완용 등 오적을 참형에 처하라는 상소를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의 독립운동은 낡은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한 '척사위정(斥邪衛正)'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1945년 8월 초순 건국동맹 결성 사실이 드러나 일경에 체포되어 수감될 때까지 그는 오직 독립투쟁 한길을 갔다. 

심산은 영남의 문벌사족인 의성김씨, 조선조 중엽의 명현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13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재주가 남달랐으나 성품이 얽매이기를 싫어하여, 열서너 살이 되어 비로소 사서(四書)를 읽었다. 부친이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대계 이승희(李承熙, 1847∼1916)에게 교육을 부탁했으나 성리학설을 싫어하여 문하에 들지 못하였을 정도였다.

그가 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896년 부친상 후부터다. 당시 열여덟 심산은 이승희(성주)·곽종석(경남 산청)·장석영(경북 칠곡) 등 원근의 유학자들 문하를 두루 찾아 경서에 대해 물었는데 특히 이승희를 각별히 따랐다. 당시 명문가 출신으로 일제하에서도 안일한 삶을 누리고 있던 양반 지주들이 많았지만 심산은 이때부터 구국활동에 몸을 던져 간난과 형극을 길을 걷게 된다. 

"사직은 중하고 임금은 가볍다"

1905년 '을사오적 처단상소' 이후 심산은 매국단체 일진회가 한일합병론을 제창하자 '역적을 치지 않는 사람 또한 역적이다'라는 격문을 돌리고 동지를 규합하여 중추원과 일간지에 이들에 대한 성토문을 보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일본 헌병 성주분견소에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때, 분견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은 그가 수구적 충군(忠君)의식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보여준다. "황제가 합방을 허가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고 묻는 헌병에게 심산은 "황제가 역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설령 허가하더라도 어지러운 명령이니 따르지 않겠다"고 답한다.

헌병이 '황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역(逆)'이라고 하자, 심산은 "사직은 중하고 임금은 가벼운데 난명(亂命)에 따르지 않음이 충이다"라고 답한다. 이는 그의 의식이 이미 '국가'와 '정부'를 구별하고 국가 수호를 위해서는 정부의 통치도 거역할 수 있다는 데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심산이 태어난 사도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답사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생가가, 오른쪽 길섶 동강의 불천위(不遷位)사당과 어깨를 맞댄 고가가 있다. 심산이 1910년에 연 성명학교(星明學校)다. 

성명학교는 동향으로 배치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집이다. 고종 때 청천서원이 훼철되자 심산의 부친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晴川書堂)으로 중건했고, 심산이 여기에 성명학교를 연 것이다. 심산은 '김창숙이 나고 청천이 망하고 말았다'는 완고한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교를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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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학교는 동강을 모신 청천서원이 훼철되자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중건한 청천서당(晴川書堂)에 연 학교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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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칸 대청 안벽에는 '청천서당' 현판이, 대청 앞 기둥에 '성명학교' 현판이 걸렸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는 1칸 온돌방을 들였다. 서당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지만 마당에는 씀바귀와 고들빼기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그해 8월, 나라가 망하자 심산은 "선비로서 세상에 산다는 것은 치욕이다"라며 음주와 미치광이 노릇으로 3년여를 보냈다. 그러다가 모친의 가르침을 받들어 4, 5년간 독서에 정진하게 된다. 이후 심산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데 소양이 된 학문과 문장은 모두 이 시기에 기반을 닦은 것이었다.  

심산은 행동성이 강한 편이었지만 청년기에 스승인 이승희나 곽종석의 의병활동에 참가하지 않았다. 앞서 밝힌 대로 그의 독립운동은 낡은 존화양이(尊華攘夷)에 입각한 '척사위정론'을 벗어나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근대 국제관계의 현실적 상황 속에서 조선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독립주권의 회복을 기도했던 것이다.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하다

이러한 심산의 독립운동은 자연히 대외적으로 선전·섭외 활동을 중심으로 출발하게 된다. 이는 바로 그 자신이 참여하지 못한 3·1운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1919년 심산이 파리평화회의에 조선 독립청원서를 보낸 파리장서(長書)운동은 심산의 대외적 선전·섭외 활동의 첫 출발이었다. 

심산은 전국 유림을 규합하려 했지만 보수적 유생들의 지역·학통·사색당파·사고의 차이 때문에 이를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곽종석·김복한 등 영남과 충청도 유림 130여명이 연명한 장서를 작성하여 극비리에 출국, 상하이로 갔다. 거기서 독립청원서를 영역하여 파리의 김규식에게 보내 회의에 제출하게 하는 한편, 장서를 인쇄하여 중국의 정계·언론계, 외교사절, 해외 교포와 국내 지방 향교에 우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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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의 야성송씨 문중을 이끈 송준필이 1919년 파라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한 백세각(百世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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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심산이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했다는 봉화군 해저리 만회고택(晩悔古宅). 심산의 부친 김호림은 이 마을에서 자라 심산의 조부에게로 출계(出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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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읍 해저리 송록서원 앞에 2014년에 건립된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서명한 유림 가운데 봉화 출신은 9명이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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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당황한 일제가 국내 유림 500여 명을 체포하는 등 대규모 옥사를 벌이니 이것이 이른바 '제1차 유림단 의거(1919~1921)'다. 이 의거는 국내 민중운동을 바탕으로 민족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심산은 파리에 가는 대신 중국에 머물면서 임시정부 수립을 협의하였고 임시의정원 4차 회의에서 경상도 의원에 선임되었다. 심산은 자신의 유학·한문학적 교양을 통하여 중국과의 대일본 공동항쟁을 위한 연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심산이 혁신유림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선각자로 기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하이에 임정을 수립했지만 1921년을 고비로 국내외 독립운동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 심산은 1925년 베이징에서 이회영(李會榮)과 함께 만주와 몽골 접경에 황무지 3만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하고 여기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로 잠입했다. 

'일제 총독하의 모든 기관 파괴', 나석주 의거를 기획

그러나 모금활동은 부진했고 심산은 "친일 부호들의 머리를 베어 독립문에 달지 않고는 우리의 독립이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며 분노하였다. 심산의 국내 잠입 모금활동 사실이 드러나며 다시 6백여 명의 유림 인사들이 검거되는데 이것이 '2차 유림단 의거(1925~1926)'다. 

심산은 모금의 실패가 민심이 죽어 있고, 그것은 일제의 위장된 '문화정치'에 매수된 지식층과 주구화된 식민지 관리 및 일부 부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먼저 일제 총독 하의 모든 기관을 파괴하고, 다음 친일 부호들을 박멸하고, 그리하여 민심을 고무시켜 일제에 대한 저항을 다시 불붙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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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 표석.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왼쪽 화단에 있다.
ⓒ 국가보훈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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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로 돌아온 심산은 이동녕과 김구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모금한 돈으로 청년결사대를 국내에 파견하기로 한다. 1926년 국내로 잠입하여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동척사원과 경찰 간부 등 여럿을 죽이고 일경과 교전 중 자결한 나석주(1892~1926) 열사는 바로 심산이 파견한 청년이었다. 

이듬해(1927) 심산은 국내에 보냈던 맏아들 환기의 부음을 들어야 했다. 환기는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출옥 후 바로 사망한 것이었다. 아들의 주검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심산은 지병이 악화되어 상하이 조계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이를 탐지한 일경에 체포되어 국내에 압송되었다.

1928년, 심산은 1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병세가 깊어지면서 혼절하여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그는 일제의 고문에 굴하지 않았고 한국인 변호사들의 무료변론도 거절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포로'로 자처하면서 구차히 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의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의 법률을 부인하면서 만약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얼마나 대의에 모순된 일인가?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히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1934년 병이 위중하여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무렵, 이미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해 사람들이 '벽옹(躄翁-앉은뱅이)'이라고 부르자 스스로도 이를 별호로 썼다. 그러나 그의 저항정신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하는 등 그의 투쟁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1940년, 일제의 감시가 다소 느슨해지자, 그는 고향집을 찾아 어머님 묘소에서 2년 간 시묘(侍墓)했다. 1920년 정월, 망명지 상하이에서 모친의 부음을 들었지만 그는 어머니와 영결(永訣)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그 시묘는 실로 20년 만의 뒤늦은 자식 노릇이었던 셈이다.

심산은 1944년 8월에 서울에서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동맹에 남한 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비록 실질적 활동은 못했지만 일제의 패망과 민족 해방에 대비하고 있었던 이 지하조직에 심산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민족적 양심을 대표하는 존재였다는 점에서 충분한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심산이 해방 소식을 접한 것은 1945년 8월초, 건국동맹을 결성한 사실이 드러나 일경에 체포되어 왜관경찰서에 수감되어 있을 때였다. 을사늑약 체결 후에 스승과 함께 상경하여 '오적참형소'를 올린 때부터 40년이 흘러 스물여섯 청년은 예순여섯의 노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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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생가 안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01년 중수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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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의 둘째 며느리 손응교 여사. 옆은 아들 김위 씨. 손여사는 젊어 남편을 잃고 걸음조차 어려운 시아버지의 손발이 되었고 만주와 중국에 세 번, 국내는 30여 차례나 오가며 심산이 국내외 독립운동가에게 보내는 '비밀편지'를 전했던 숨은 독립유공자였다.
ⓒ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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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로 보낸 차남, 유해로 돌아오다

그해 10월에 심산이 1943년 충칭(重慶)의 임시정부로 보냈던 차남 찬기가 유해로 돌아왔다. 1927년 맏이 환기를 떠나보낸 지 꼭 18년 만이었다. 아들 셋 가운데 둘을 조국 해방 투쟁에 바친 심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스물일곱에 청상이 된 둘째며느리에게 담뱃대에 불을 붙여달라고 하면서까지 담배를 가르쳤다. 

그것은 남편을 잃고 걸음조차 어려운 시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삯바느질로 힘겹게 생계를 꾸린 젊은 며느리에게 베푼 시부의 사랑이고 위로였다. 일찍이 그이는 만주와 중국에 세 번, 국내는 30여 차례나 오가며 심산이 국내외 독립운동가에게 보내는 '비밀편지'를 전했던 숨은 독립유공자였다. 

며느리와 함께 담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른바 '맞담배'를 한 독립투사를 상상해 보라. 불의엔 굽힐 줄 모르는 성정이었지만, 구태의연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개방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를 지녔던 이가 심산이었던 것이다. 

도착한 답사단과 함께 어느덧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둘째며느리 손응교 여사가 홀로 지키고 있는 심산 생가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을 뵈면서 답사단은 옷깃을 여며야 했다. 그이가 감내한 세월이 바로 이 땅의 고단한 현대사였음을 새삼 떠올리면서.

그이가 갓 결혼해 남편과 처음으로 시아버지를 뵈러 간 데가 대전형무소였다. 심산은 그때 이미 고문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여서 간수에게 업혀 나왔다. 며느리는 시집 와서 시아버지가 걷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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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에 반대하여 반독재호헌 구국선언을 발표한 국제구락부 사건으로 심산은 투옥되었다. 사건 당시 연행되고 있는 심산.
ⓒ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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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은 해방 공간에서 성균관 초대 관장과 성균관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유도의 재건과 개혁에 앞장섰다. 성균관대학에서.
ⓒ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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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진정한 해방'을 위한 심산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해방 공간에서 유도회를 조직하고 성균관 초대 관장과 성균관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유도(儒道)의 재건과 개혁에 앞장섰다. 그는 유도의 현대적 재건을 좌우 대립의 이념적 혼란을 극복하고 민족 통일을 추구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로 파악했던 것이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반독재 투쟁

특히 무엇보다도 민족의 분열을 경계했던 심산은 일찍이 임시정부의 노선에 비판적이었지만 해방공간에선 임정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이른바 '동일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또 김구·김규식·홍명희·조소앙·조성환·조완구 등과 더불어 '7인 지도자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남북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극력 반대하였다.  

김구를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이 암살되는 정국의 혼란을 거치면서 친일파가 정권과 유착하여 다시 실세로 떠오르자 심산은 이제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독재에 단신으로 맞섰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심산은 여전히 탄압받고 거듭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 대통령 하야 경고문,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에 반대하여 반독재호헌 구국선언을 발표한 국제구락부 사건, 이승만 삼선 취임 반대, 보안법 개악 반대, 민권쟁취 구국운동 등 독재와 맞서는 외로운 싸움에서 그는 늘 전면에 있었다. 

1955년 무렵부터 독재 권력과 주변세력들에 의해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분규가 확산되자 심산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심산은 집 한 칸 없이 곤궁한 생활 속에 여관과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일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는 그의 선비정신이 대학을 세우고 총장을 지내고서도 셋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한 것이었다. 

1957년 겨울, 병으로 가마에 실려 고향에 돌아온 심산은 '쇠약한 몸으로 병상에 누우니 온갖 감회가 층층으로 나와, 고시(古詩) 한 편을 지어 여러 일가에게 보'였다(심산 자주(自註))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던가. 시에는 이루지 못한 평화와 통일을 절절하게 그리는 노 독립운동가의 회한이 짙게 배어 있다. 

천하는 지금 / 어느 세상인가.
사람과 짐승이 서로들 얽혔네.
붉은 바람, 미친 듯 / 땅을 휘말고
태평양 밀물, 넘쳐서 / 하늘까지 닿았네.

아아, 조국의 슬픈 운명이여.
모두가 돌아갔네. / 한 사람 손아귀에,
아아, 겨레의 슬픈 운명이여.
전부가 돌아갔네. /반역자의 주먹에

평화는 어느 때나 / 실현되려는가.
통일은 어느 때에 / 이루어지려는가.
밝은 하늘 정녕 / 다시 안 오면
차라리 죽음이여 / 빨리 오려무나.

 - <통일은 어느 때에> 중에서

1962년 5월 10일, 불요불굴의 저항정신과 실천적 행동주의의 표상이었던 심산은 서울 중앙의료원에서 그 열혈의 삶을 마감했다. 향년 84세.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사회장이 엄수되었고, 그의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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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은 1962년 5월 10일 중앙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5월 18일, 서울운동장에서 선생의 사회장이 엄수되었다.
ⓒ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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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전통과 원칙을 지켜나갈 때 비로소 대의명분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 비타협·불복종의 행동주의자. 한평생 격동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스스로를 갈무리해 온 심산은 지나간 시대의 '마지막 선비'였다.

역사와 역사적 인물은 곧잘 그 당대의 삶과 자취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환기해 주곤 한다. 비록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일이지만 그 성찰의 시간으로 우리의 비루하고 속된 삶의 민낯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1박2일은 얼마나 값진 시간이 될까. 

과거를 통해 오늘을 돌아보는 역사 탐방, 심산기행은 이튿날 오전, 1919년 심산이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했다는 봉화군 해저리 만회고택(晩悔古宅)에서 그 공식 일정을 마쳤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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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유치에 나선 국민안심병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6/21 11:17
  • 수정일
    2015/06/21 11: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무수한 바이러스들 중에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는 정치바이러스
 
장유근 | 2015-06-21 10:26: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환자유치에 나선 국민안심병원
-한국에서만 호들갑 떠는 메르스-

메르스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19일 오후, 최근 건강검진을 받은 서울 강남의 M병원을 다시 찾아가게 됐다. 건강진단결과를 문서로 제출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다른 이상한 풍경 때문에 슬며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 병원에 출입하는 내원객 전부를 대상으로 명단(출입자)을 작성케 하는 한편, 준비된 소독약(젤)으로 손바닥을 비벼 소독을 하게 했다. 아울러 체온 측정을 위해 이마 가까이 측정기를 들이밀었다. 생전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어서 무엇 때문에 내원객을 불편하게 만드느냐며 약간은 짜증투로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손님(환자)들이 안심하고 병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입니다.”
“이거(소독) 때문에 더 불안한 데요.”
“우리 병원은 안심병원…”

필자는 이 병원이 내원객을 상대로 소독을 하는 조치에 대해 짜증이 난 게 아니었다. 정부가 언론 등을 통해 무한 방치하거나 부풀리며 호들갑 떠는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따라서 병원 관계자를 향해 최근 유럽을 출장 다녀온 지인의 이야기를 덧붙여 말해주었다. 지인은 귀국후 일성을 통해 대한민국을 어지럽히고 있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온 나를 입국장에서 아무런 제재나 추가조치 없이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을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만 호들갑 떨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

필자는 볼 일을 끝마치고 나오면서 병원 입구에서 안심조치(?)를 하고 있는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 몇 장과 영상을 남기게 됐다. M병원에서 하고있는 對메르스 바이러스 조치는 내원객을 상대로 손바닥을 소독하게 해 2차감염을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와 함께 내원객의 체온을 체크하는 게 전부였다. 또 비치된 마스크를 참조하면 필요에 따라 마스크를 나눠줄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다. 메르스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게 아니라 감염자와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따라서 지인이 말해준 메르스의 정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이미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저항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들로, 어쩌면 감기 바이러스 보다 더 못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3사 혹은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불필요한 의혹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메르스의 정체에 대해 '정치바이러스'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특정 병원이 ‘안심병원’이라는 명목하에 환자 유치에 들어가거나, 해외 관광객 등이 한국을 기피하는 현상 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부채질 하는 일면으로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드는 것.

메르스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그곳엔 위정자들로부터 대국민 기망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세월호 참사는 해를 넘겨도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자국민이 바다속에 수장된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법을 만들어 자국민 구출에 나서겠다는 희한한 논리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던 것. 여야가 따로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잘 보도하고 있는 JTBC 손석희 사장에 대해, 검찰이 입질을 하는 모습을 통해 정치가 한계에 다다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자국민 300여 명이 수장되는 순간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박근혜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 친 모습은 시사하는 바 컸다. 정부와 새누리당 등 정치권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을 메르스 바이러스가 메우고 있다면 과장된 상상일까.

외국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단박에 알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면, 이 사실은 곧바로 지구촌으로 알려져 각국의 출입국 관리소는 한국인 또는 한국을 경유한 여행객들을 상대로 특별 관리에 들어갈 것. 지구촌의 네트웍은 하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여행객들이 붐비는 유럽의 한 공항에서 한국인(여권)에 대해 본체만체(?) 출입허가 도장을 쾅 찍어준다는 건 상상밖의 일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바이러스들 중에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가 정치바이러스란 거…알랑가몰라.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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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꿈꾸는 이들 "채용 갑질에 후졌다"

 
[집담회] 예비 언론인 5명 “무한스펙 요구에 모호한 채용기준… 저널리즘스쿨 연계도 또 다른 갑질”
 
입력 : 2015-06-17  10:54:21   노출 : 2015.06.21  09:00:55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언론사 입사준비 풍경은 다른 분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익, 한국어능력시험 등 스펙을 쌓으며 채용정보를 모으고 논술과 작문을 준비한다. 아랑(언론사 지망생 인터넷 카페), 스터디 모임을 통해 서로 의지하거나 몇몇 대학에서 운영하는 언론고시반에 들어간다. 저널리즘스쿨 명목으로 설립된 입사대비기관이나 언론사에서 개설한 글쓰기 강좌도 이용한다. 

1년 4개월째 기자를 준비하고 있는 김재희(여)씨는 다른 분야의 회사를 다니며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두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부모님이 ‘기자일이 힘들다’며 우려해 다른 곳에 취직했지만 야근과 주말출근이 일상이었고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나중엔 부모님도 그럴 바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김씨는 본격적으로 기자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퇴직금은 등록금이 됐다. 첫 번째 회사를 그만뒀을 때 언론사 입사준비를 조금 했지만 사정상 재취업을 해야만 했다. 일하면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대학원은 언론사 지망생들이 모여 언론인 출신 교수진에게 수업을 듣는 곳이다.  

오경환(남)씨는 지난해 초 한겨레 아카데미를 수강한 뒤 3월부터 다른 분야의 회사에서 1년간 일을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입사준비)스터디를 하며 준비하려했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을 쉬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은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기자준비를 하고 있다. 

기자준비를 한지 1년 정도 된 박혜연(여, 가명)씨는 낮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경야독이다. 수험생들은 생계와 꿈 사이를 오가며 산다. 박씨는 신문사에서 인턴도 했다. 정민경(여)씨도 인턴기자 경험이 있다. “열정착취이기도 했지만 배우는 것은 많았죠.” 수험생들은 착취도 감당해야 한다. 

몇몇 대학교에서는 언론고시반을 운영한다. 2년 동안 기자준비를 해온 권동현(남, 가명)씨는 고시반에서 수업을 듣고 글 쓰고 책도 보며 기자를 준비하고 있다. 권씨는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명이 (고시반을) 담당하고, 전·현직 언론인이나 스피치 강사들이 와서 수업을 해주는데 이보다 열악한 학교들도 많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이 예비언론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한국 언론의 채용제도와 대안으로 제시된 미국식 저널리즘스쿨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 예비언론인 5명이 미디어오늘 회의실에서 언론사 채용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 언론사 채용이 불규칙하기도 하고 문도 좁다. 입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 

정민경(이하 정) : 뭘 준비해야할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합격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가장 문제다. 서류전형에서는 스펙을 보고, 필기시험도 보고, 실무평가도 보면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점수가 객관화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 지원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박혜연(이하 박) : 오래 준비한 사람이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기자 한 번 해볼까’해서 (기자가) 될 때 가장 낙담하게 된다. 채용제도가 다양했다면 그렇게 낙담했을까 싶다. 

김재희 : 지역MBC들이 사정이 어려워서 채용을 줄이고 있어서 채용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다.
  
오경환 : 지인이 기사를 웹페이지에 맞게 수정 작업하는 일을 한다. 웹디자인에 능숙해야 하지만 기사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도 저널리스트로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은 비슷했다. 종합일간지 대여섯 가지를 수험생들이 나눠 읽고 요약해서 서로 공유한다. 논술은 최근 이슈를 주제로 선정하고, 언론사 논조에 맞춰서 논술이나 작문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식시험은 시중에 나와 있는 시사 상식책을 여러 번 돌려보고 아랑에 올라온 상식을 취합하기도 한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만큼 불안감도 커진다. “스펙도 중요한 것 같고 자기소개서도 중요한 것 같고…”(오경환) “공기업 중에는 스펙 상한선이 있다. 예를 들어 토익이 820점 이상이면 다 만점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사는 ‘고고익선’이다.”(정민경) 지원자들은 전형 과정에서 탈락했을 때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 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 

   
▲ 오경환씨. 오씨는 언론사들이 정기적이지 않다며 “1년은 신입을 뽑고 1년은 경력기자를 뽑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정철운 기자
 

“1년은 신입 뽑고 1년은 경력 뽑는 것 같다”(오경환) 언론사 채용은 정기적이지 않다. 채용인원도 언론사 당 10명을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문은 좁은데 통과하려는 자는 많다.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도 생겨났다. 지망생 필수코스로 알려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기자들이 진행하는 언론사 취업용 글쓰기 강좌 수업료는 40만원(10회)~ 85만원(16회)에 이른다.

1995년부터 언론계 사교육 시장을 주도한 한겨레에 이어 조선일보는 저널리즘아카데미(2011년), 경향신문은 정치저널리즘스쿨(2012년)을 각각 선보였다. 2007년부터 이화여대에서 운영하던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은 지난해부터 SBS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100~120만원(6개월)이던 수강료를 무료로 바꿨다. 

세명대에는 대학원 과정도 있다.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전교생이 기숙사에 살면서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 학생 중 40%는 장학금을 받는다지만 2년간 매학기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지원자들만 다닐 수 있다. 언론인 출신 교수진이 지속적으로 직접 글을 봐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지원자들은 열심히 준비하지만 채용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MBC가 2013년 12월 이후 대졸신입공채를 진행하지 않다가 최근 이를 공식화했다. 한겨레는 수습기자 채용전형 4주 동안 현장실습을 실시한다고 공고했다가 지원자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현장실습 기간을 2주로 단축하기도 했다. 전형절차가 까다로워졌다는 불안감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21(제1064호)은 무너지는 저널리즘에 대한 해결책을 언론사 공채제도의 변화에서 찾았다. 저널리즘스쿨과 연계한 채용방안을 내놨고, 세명대저널리즘스쿨과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을 소개했다. 한겨레21은 저널리즘스쿨과 연계한 상시인턴제도도 운영할 계획이다. 

   
▲ 정민경씨. 정씨는 저널리즘스쿨 연계채용에 대해 “스펙도 있어야 하고 시험 준비도 하면서 언론사 공동 취재경험까지 있어야 한다는 소린데 이는 수험기간만 늘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사진=정철운 기자
 

이에 언론사 지망생들은 “또 하나의 스펙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정민경씨는 “지금도 대졸기자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스쿨까지 마치고 오라는 것은 지원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KBS 정연주 전 사장은 지방쿼터제와 같이 합리적 채용을 위한 노력이 있었는데 (한겨레21은) 너무 미디어 엘리트만 키우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인턴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정씨는 “미국식 저널리즘스쿨에서는 상시인턴을 통해 좋은 기사를 쓰면 기자가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스펙도 있어야하고 시험 준비도 하면서 이젠 인턴을 하거나 언론사와 공동 취재 경험까지 있어야 한다는 소린데 이는 수험기간만 늘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인턴은 곧 ‘열정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월 40만~50만원을 주는 언론사 인턴프로그램들이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운영되고 있다. 상시인턴과 상시채용에 대해 오경환씨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용해 먹고 말 것 같다는 뉘앙스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지난 13일 일반인턴 2~3명, 세명대와 프론티어저널리즘스쿨 연계형 인턴 2~3명을 뽑겠다고 밝혔다. 수천명에 이르는 기자 지망생이 있는 가운데 두 저널리즘스쿨 학생 200여명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저널리즘의 문제를 채용제도에서 찾는 것도 예비 언론인들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권동현씨는 “일본 NHK와 KBS는 비교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채용제도로 (저널리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고시형 채용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미국은 중앙언론사 입사를 위해 저널리즘스쿨에서 인턴 등의 경험을 통해 지역언론사로 입사해 경력을 쌓은 뒤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널리즘스쿨을 바라보는 지망생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로스쿨이 도입될 때도 진입장벽이 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진학이)불가능한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것이다.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나오면 자격증이 생긴다. 하지만 언론사는?”(박혜연)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을 추천해 채용하는 방안에 대해 권동현씨는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게 부담스럽고 지금껏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거부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언론사 지망생들은 저널리즘의 문제를 채용제도로 돌리는 언론사 태도는 ‘비겁하다’는 입장이다. 언론사 면접도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많은 기업의 면접관들이 채용 전에 따로 교육을 받는다. 면접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원자들에게 해야 할 질문과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익힌다. 하지만 언론사 채용 전형을 겪어본 지원자들은 공통적으로 언론사 면접관들이 지망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고,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한번은 면접관이 이렇게 말했다. ‘방금 전 지원자는 외국에 나가보지도 않았는데 토익이 970점인데 외국도 다녀 와놓고 점수가 이거밖에 안되느냐’ 잠깐 외국에 다녀 온 것은 사실이지만 면접장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스럽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몸무게, 키, 가족사항, 종교, 취미, 흡연여부 등까지 묻는다. 떨어지고 나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종교가 없어서 떨어졌나? 토익을 더 높여야 하나?”(김재희) 

   
▲ 김재희씨. 김씨는 얼마 전 한 언론사 면접관에게 ‘다른 지원자는 외국에 안가고도 토익 970점인데 외국 다녀 와놓고 점수가 이거밖에 안 되냐’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사진=정철운 기자
 

“지금 언론사 채용은 후진적이다. 얼마 전 경향신문에서 여성차별 논란도 나오지 않았나? ‘늘 그렇게 뽑았으니 계속 뽑지 뭐,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더 잘난 애들 뽑으면 되지 뭐’ 이런 식이다. 일반기업도 이렇게 채용 안한다. 갑이 을 대하듯이 지원자를 대하는 곳은 언론사가 유일한 것 같다.”(박혜연)

그럼에도 지원자들은 이른바 잘 나가는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1인 미디어나 대안언론에 눈을 돌려 경험을 쌓아보라는 의견이 있다. 이에 오경환씨는 “언론사 뿐 아니라 취업시장 전반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처음부터 근로조건이 열악한 곳으로 취업했다가 좋은 곳으로 이직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혜연씨는 “(어느 매체에 있든)유능한 기자가 되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어느 매체냐에 따라 기자의 보상이 달라질 뿐”이라고 말했다. 김재희씨는 “대부분 기사가 모바일을 통해 다음, 네이버에서 소비되는 상황에서 중앙언론사말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는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사들이 수습기자보다 경력기자 채용을 선호하는 흐름도 있다. MBC는 상시채용으로 바꾼 뒤 경력기자만 뽑고 있으며, 연합뉴스도 경영악화를 이유로 당분간 수습기자 채용을 중단한 상황이다. 

권동현씨는 “MBC는 (공채에 기반한) 기수문화를 파업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경씨도 “MBC가 노조를 깨는 수단으로 채용제도를 바꿨다는 비판이 있는데 노조가 깨졌을 때 피해를 입는 것은 젊은 기자들과 예비언론인이 될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광고영업을 시키는 곳도 있다는 소문이나 언론이 사양산업이라는 얘기도 익숙하다. 이들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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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 야망에 즉각 대응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6/21 10:29
  • 수정일
    2015/06/21 10: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미국 패권전략, 러시아 핵 암초에 걸려
 
러시아, 미국 야망에 즉각 대응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21 [08: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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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나토의 군사력을 강화시키며 러시아를 자극, 이 지역 패권을 구사하려 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핵잠력이라는 암초에 결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러시아 언론 스프티닉은 20일 “발틱해 연안 지역에 나토 군사력을 강화시키며 러시아 접경선에 접근하고 있는 미국의 '지정학적 야망'이 러시아의 '핵잠재력'이라는 큰 걸림돌에 걸렸다”는 인도의 정치 평론가의 분석을 보도했다.
  
스프티닉은 펜타곤은 폴란드, 루마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에 군사 중장비 배치 문제를 검토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나토 동부군사력을 강화시킬 계획이라고 덧 붙였다.
  
정치평론가 멜쿨란가라 브하드라쿠마르는 “미국이 서방 동맹국들을 통해 러시아에 도전하는 전법을 쓰고 있다”면서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독립 노선에 평정을 유지할 수 없어 이 같은(나토국가들을 동원한) 전법으로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멜쿨란가라 브하드라쿠는 마르국제무대를 배경으로 모스크바의 독립적 대외 정책은 워싱턴의 '지정학적 야망(지역적 패권)' 실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주권 실현을 지향하는 타 국가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적 정책 발표가 나오는 즉시 이에 대응한 반응을 내 놓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고위급 한 관계자는 발틱 연안 지역에 탱크와 포격 시스템 배치에 대해 냉전 이후 펜타곤과 나토가 가장 공격적 행보를 걷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가 전략적 핵군사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미국에 경고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40 개 이상 배치하고 항공 목표물 포착을 위해 레이더 ‘노드’를 개발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인도의 정치 평론가는 “러시아가 핵 잠재력을 강화하겠다는 결정은 냉전시절 통했던 패권을 미국이 다시 잡아보려는 지정학적 야망에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라면서 “또 미국은 지금 전쟁위기를 고조 시켜 과거의 패권적 지위를 되찾으려 한다. 우크라이나 를 비롯해 유럽 지역에 전투 가능성을 확대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끝으로 유럽 지역에 부는 '폭풍'이 아시아 지역 안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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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발생으로 조사받는 중



 
 
 
한국 성균관대, 마스크 착용한 홍콩 학생들을 교실에서 쫓아내
 
뉴스프로 | 2015-06-20 10:40: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욕타임스, 한국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발생으로 조사받는 중
– 메르스 환자를 폐렴 환자로 오진하는 실수 저질러 감염자 절반의 진원지 돼
– 병원 감염이 압도적, “도떼기시장” 같은 병원 풍경이 메르스 확산에 기여
– 값싼 의료비 탓에 환자는 “병원 쇼핑”, 병원은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받자” 만연해

뉴욕타임스는 17일 “한국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발생으로 조사받는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최고의 의료 시설인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자 절반의 진원지가 돼 비난을 받은 소식과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 의료 시스템과 병원 문화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먼저 기사는 명성이 자자한 삼성 서울병원 의사들이 메르스 감염환자를 단순 폐렴 환자로 오진하는 실수를 저질러, 이 환자가 사흘 동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응급실과 복도에서 수십 명을 감염시키는 “슈퍼 감염자”가 되도록 해 한국에 메르스 위기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또 이런 실수가 치명적인 이유로 삼성서울병원이 그냥 한 종합병원이 아닌 유명한 대기업 삼성의 소유로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며 진료를 받기 위한 환자와 가족들로 항상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병원에 문턱이 없다”는 한 보건부 공무원의 말처럼 아주 저렴하며, 이는 환자들의 “병원 쇼핑”을 부추기고, 또 병원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문화를 형성한다고도 설명했다.

기사는 메르스에 양성인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서 감염된 사실을 들며, 환자들과 간호인들 그리고 방문객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마치 “도떼기시장”처럼 보이는 병원 상황이 한국병원들을 특히 메르스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또 삼성병원은 처음에 한 실수뿐 아니라,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삼성병원에서 14번 환자를 통제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라는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의 지적처럼 감염 가능자에 대한 격리와 수많은 방문객들을 추적하는 데도 실패해 비난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비평가들이 위기에 대처하는 “삼성 스타일의 관리 방식”을 비난한 가운데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대중의 건강보다 이윤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그들의 성향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더 결정적인 예방 조치 실행을 못 하도록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Lg6i7T

South Korean Hospital Scrutinized in MERS Outbreak
한국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발생으로 조사받는 중

By CHOE SANG-HUN
JUNE 17, 2015

Nearly half of all confirmed MERS cases in South Korea have been traced
to the Samsung Medical Center in Seoul, regarded as the nation’s best hospital.
Credit Jeon Heon-Kyun/European Pressphoto Agency
한국 메르스 감염자의 거의 절반이 한국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진원지가 추적됐다.

SEOUL, South Korea — It is the jewel of South Korea’s medical service: a 1,900-bed hospital of steel and glass owned by the famous Samsung conglomerate. It also is where a 35-year-old man whose symptoms were misdiagnosed as pneumonia languished for three days in an overcrowded emergency room and hallway, where he coughed up sputum teeming with the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virus and exposed dozens.

한국 서울 – 한국 의료 서비스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이 병원은 1,900개의 병동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그 유명한 대기업 삼성의 소유다. 이 병원은 또한 35세의 남성이 폐렴으로 그 증세가 오진되어 사흘 동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응급실과 복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로 가득한 가래를 뱉어내며 수십 명을 감염시킨 곳이기도 하다.

Doctors of the renowned hospital, the Samsung Medical Center in Seoul, were the first to confirm the disease, known as MERS, in another patient a week earlier but failed to detect the connection between the two cases. Investigators now say the misdiagnosed patient, awaiting a vacant bed in a general ward upstairs, wheezed and expectorated in common areas with no oversight, turning into a MERS “superspreader.”

명성 있는 삼성서울병원의 의사들은 메르스로 알려진 이 질병을 또 다른 환자에게서 1주일 전에 확진했지만 이 두 사례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했다. 조사자들은 이 오진된 환자가 위층의 일반 병동에 병상이 비기를 기다리며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공공장소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가래를 뱉으며 메르스의 “슈퍼전파자”가 됐다고 이제 말한다.

The mistakes by the Samsung Medical Center are now the focus of much that has gone wrong to escalate South Korea’s MERS crisis, the worst outbreak beyond Saudi Arabia, where the disease first appeared in 2012. As of Tuesday, nearly half of all 162 confirmed MERS cases in South Korea have been traced to Samsung, historically regarded as the nation’s best hospital.

삼성서울병원이 저지른 실수는 이제 2012년 처음 질병이 나타났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고 최악의 발생으로 한국 메르스 위기를 몰고 간 많은 실수들의 중심에 있다. 화요일 현재로 한국에서 확진된 162 감염자의 거의 절반이 역사적으로 한국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던 삼성서울병원으로 진원지가 추적됐다.

South Korea Fights MERS Outbreak
한국은 메르스 발생과의 투쟁 중

Gimpo International Airport in Seoul is being disinfected while heat-detecting cameras monitor passengers. The number of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ases in the country continues to rise.
By Reuters on Publish Date June 17, 2015.
김포국제공항에서 열 감지 카메라가 승객들을 점검하는 동안 공항이 방역되고 있다.
한국의 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의 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Several hundred of its patients are under quarantine in the hospital or elsewhere, either because their infections have been confirmed or they are under observation for symptoms. Nearly 300 of its 3,900 medical and other staff members are under similar quarantine. Other hospitals have refused to accept patients from Samsung for fear of infection. By Sunday, it stopped taking new patients as it struggled to prevent the virus from further spreading beyond its gleaming compound.

수백 명의 삼성 환자들이 감염이 확진되었거나 증세가 나타나는지를 관찰 받기 위해 병원과 다른 장소에 격리되어 있다. 3,900명의 삼성 의료진 혹은 일반 직원들 중 거의 300명 역시 비슷하게 격리 중이다. 타 병원들은 감염이 두려워 삼성의 환자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멋지게 꾸며진 병원 건물 밖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일요일부터는 새 환자를 받지 않았다.

“We offer our deep apologies to all MERS patients and those quarantined because of our employees,” said Song Jae-hoon, the president of the medical center, bowing before television cameras.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우리 병원 직원들로 인해 감염된 모든 메르스 환자분들과 격리된 분들에게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머리 숙여 절하며 말했다.

Up until now, Samsung’s reputation for quality had gone unchallenged. South Koreans looked no further than its list of patients: Lee Kun-hee, the country’s richest man and the chairman of the Samsung conglomerate, has been hospitalized there, holed up in a 20th-floor V.I.P. room, since his heart attack last year.

지금까지 삼성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판은 독보적이었다. 환자들의 명단만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며 대기업 삼성의 회장인 이건희는 작년 심장마비 이후 20층의 VIP룸에 몸을 숨긴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Nobody was surprised when Samsung diagnosed the country’s first case of MERS on May 20, attributing the discovery to its medical skills.

삼성서울병원이 5월 20일 첫 메르스 환자를 확진했을 때 삼성서울병원의 의료기술 덕분이라 여기며 아무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Calling Samsung a general hospital hardly explains its place in South Korea’s system.

삼성을 종합병원이라 부르는 것으로는 한국 의료 시스템 내에서 그 입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In South Korea, when a parent gets sick, it is widely considered a filial duty for the children to mobilize all connections to secure a bed in Samsung or at a few other mega-hospitals, including one run by another family-controlled conglomerate, Hyundai, that they believe provide the best care.

한국에서는 부모가 아프면, 자식들이 삼성서울병원 혹은 또 다른 가족 경영 대기업인 현대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을 포함한 몇몇 대형병원에 부모를 입원시키기 위해 온갖 인맥을 동원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널리 여겨지며 이들 병원들이 최고의 치료를 제공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When that strategy fails, patients are often taken into the hospitals’ emergency rooms, where they can wait for days for a bed in a general ward to be available.

그러한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환자들을 종종 그 병원들의 응급실로 입원시켜 그곳에서 일반 병동의 병상이 비기를 며칠이고 기다리게 한다.

The Samsung hospital beds were usually filled, with 1,800 patients, with a long waiting list. Each day, 8,500 outpatients passed through.

삼성서울병원 병상은 대개 1,800명의 환자들로 가득 찼고, 긴 대기자 명단이 있었다. 매일 8,500명의 외래환자들이 거쳐 갔다.

Workers on June 9 outside the closed emergency room at the Samsung Medical Center in Seoul. CreditJeon Heon-Kyun/European Pressphoto Agency.
6월 9일 폐쇄된 서울 삼성의료원 응급실 밖에 있는 의료진들

But it was not just the fame of Samsung that attracted patients. Medical service is so affordable under the country’s universal medical insurance system that “there is no threshold at hospitals,” said Kwon Jun-wook, a senior Heath Ministry official.

그러나 환자들을 끌어들인 것은 삼성의 명성만은 아니었다. 의료서비스는 한국의 일반 의료보험체계 하에서 아주 저렴해서 “병원에 문턱이 없다”고 보건부 고위공무원인 권준욱씨는 말했다.

“Patients go to hospital as if they go shopping,” Mr. Kwon said, referring to the widespread practice of hospital hopping to get a second opinion or to get a referral to a mega-hospital, some of them with more than 2,000 beds.

권 씨는 다른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서나 2,0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에 외진을 추천받기 위해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보는 만연된 관례를 언급하며 “환자들이 마치 쇼핑하듯 병원에 간다”고 말했다.

Low medical fees also mean that hospitals must treat as many patients as possible to stay profitable. The big hospitals get more crowded as family members and private nurses they hired stay with patients, sleeping on cots between hospital beds. It is also important to social etiquette for South Koreans to visit hospitalized relatives, friends and colleagues, often with gifts like fruit boxes. Church members cluster around a patient’s bed, praying and singing.

낮은 의료비는 또한 병원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형 병원들은 가족들이나 그들이 고용한 개인 간병인이 병원 침대 사이의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환자와 함께 머물기 때문에 더욱 북적거린다. 또한 종종 과일 상자와 같은 선물을 들고 입원한 친척들이나 친구들 및 동료들을 방문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사회적 예절상 중요하다. 교인들은 환자의 침대 주변에 모여 기도하며 노래를 부른다.

The overall scene, as Koreans like to say, looks like a “flea market.”

한국인들이 흔히 말하듯이 이 전반적인 풍경은 “도떼기시장”처럼 보인다.

It is this overcrowded hospital condition that a World Health Organization mission said had made the otherwise modern South Korean hospitals particularly vulnerable to MERS. All those in the country who have the virus were infected in hospitals. Of them, 65 were relatives, friends or family-hired caretakers who contracted the disease while they were visiting or looking after hospitalized patients.

세계보건기구의 한 관계자는 이 북적대는 병원 상황이 다른 면에서는 모두 현대식인 한국병원들을 특히 메르스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 바이러스에 양성인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서 감염됐다. 그들 중 65명은 친척들, 친구들 또는 가족, 간병인으로서 병원을 방문했거나 환자들을 돌보는 동안 질병에 노출됐다.

Hospital workers with a patient suspected of having MERS last week at Samsung Medical Center in Seoul. Credit Yonhap, via Associated Press
지난주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감염으로 의심되는 환자와 함께 있는 병원 직원들.

“The Samsung Medical Center is a national hospital in the sense that there are no regional boundaries in medical service in the country and everyone wants treatment there,” said Kim Woo-joo, head of the Korean Society of Infectious Diseases. “The MERS outbreak was a stress test of our medical system, revealing its problems.”

“삼성병원은 이 나라에서 지역의 구분 없이 누구나 그곳에서 치료받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국립병원이다”고 김우주 감염학회 회장은 말했다. “메르스의 전염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의료시스템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At Samsung, the system began faltering when the 35-year-old man, whom investigators called Patient No. 14, arrived at its emergency room on May 27, a week after Samsung discovered the first case.

(조사자들이 14번 환자로 명칭한) 35세의 남자가, 삼성에서 첫 번째 환자가 발견된 후 일주일이 지난 5월 27일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삼성병원의 시스템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Patient No. 14 had been infected by the first patient when both were in the same hospital south of Seoul in mid-May. But neither he nor Samsung doctors had any clue that he was infected. Unlike the first case, he had no record of having visited the Middle East.

14번 환자는 첫 번째 감염자와 5월 중순에 서울 남쪽의 한 병원에 함께 있었을 때, 첫 번째 환자로부터 전염됐다. 그러나 그 남자도, 삼성병원의 의사도 그가 감염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첫 번째 감염자와 달리, 그 남자는 중동을 방문한 기록이 없었다.

Samsung doctors diagnosed his case as pneumonia. But with no room in wards upstairs immediately available, he waited in the overcrowded emergency room for three days and sometimes loitered outside, investigators say.

삼성 의사들은 그를 폐렴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위층의 입원실이 바로 나지 않아 그는 밀집된 응급실에서 사흘을 기다렸고 때로는 복도를 돌아다녔다고 조사자들이 말한다.

It was not until May 29, when the Korean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told them about the man’s possible link to the first case, that the emergency room doctors were alarmed, according to Samsung officials. By then, the man had become the biggest “superspreader” in the outbreak, infecting people in South Korea’s best hospital.

삼성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5월 29일이 돼서야 한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그 남성이 첫 번째 감염자와 연관됐을 가능성에 대해 말해주었고 응급실 의사들은 깜짝 놀랐다. 그때는 이미, 그 남성이 메르스 발병의 가장 큰 “슈퍼전파자”가 돼 한국 최고의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감염시킨 후였다.

“It’s the nation that was penetrated,” Chung Doo-ryeon, a Samsung doctor, responded during a parliamentary hearing last week, when lawmakers criticized the hospital for failing to control the outbreak. But blunders continued at Samsung.

“뚫린 것은 국가다”고 삼성병원 의사인 정두련씨가 지난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삼성병원이 메르스 발병 통제에 실패했다고 비난하자 이같이 대답했다. 그러나 삼성병원에서 실수는 계속됐다.

After Patient No.14 tested positive on May 30, the hospital listed 893 people who may have come in contact with him in the emergency room, and placed them in quarantine or in self-isolation at home. But it failed to trace many visitors who had been in the room.

14번 환자가 5월 30일 양성 판정을 받은 후, 삼성병원은 응급실에서 그와 접촉했을 수 있는 893명을 공개했으며, 그들을 격리하거나 자가 격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삼성병원은 응급실을 다녀간 수많은 방문객들을 추적하는 것에 실패했다.

About half of the 80 cases that were traced to the Samsung hospital were found outside that list. Not bound by quarantine, they had gone about their lives, riding subways and visiting saunas. Some visited other hospitals when fever and other symptoms occurred. A Samsung doctor continued to work until he developed symptoms last week. A 55-year-old employee at Samsung carried 76 patients, some in wheelchairs, before he tested positive on Friday.

삼성병원으로 진원지가 추적된 80명의 감염자 중 절반가량은 그 명단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격리되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타고, 사우나를 찾는 등 일상적으로 생활했다. 몇몇 사람들은 열과 그 밖의 다른 증상이 생기자 다른 병원들을 방문했다. 한 삼성병원 의사는 지난주 증상이 생길 때까지 계속 일했다. 55세의 삼성 직원은 금요일 양성 판정을 받기 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포함하여 76명의 환자를 운반했다.

The breach in the quarantine at Samsung complicated the national battle against the disease.

삼성병원의 격리 체제에 생긴 틈은 이 질병과 벌이는 국가적 싸움을 어렵게 만들었다.

So far, a total of 162 MERS cases have been found in 13 hospitals, including 20 deaths. But before the disease was diagnosed, the patients also passed through 70 other hospitals, raising fears that they may have infected people there. In some train stations, the local authorities have used heat-detecting cameras to stop potential MERS carriers from entering their towns. More than 6,500 people are in quarantine or in self-isolation at home, many of them after visiting the Samsung hospital.

지금까지 13개 병원에서 총 164건의 메르스 감염사례가 발견됐고 20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질병이 확진되기 이전에 이 환자들은 또한 70개의 다른 병원들을 거쳐 갔으며, 거기에서 사람들을 감염시켰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몇몇 기차역에서는 지역 당국이 메르스 감염 가능자들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열 감지기 카메라를 사용했다. 6,500명 이상이 격리 중이거나 자가 격리 중이며, 그들의 상당수는 삼성 병원을 방문했던 사람들이다.

“What pains us the most is our failure to contain Patient No.14 at the Samsung hospital,” said Kwon Deok-cheol, a senior official at the government’s MERS response headquarters.
Mr. Kwon said that the government planned to overhaul the country’s “hospital culture,” such as unrestrained visits. But critics also blamed a “Samsung-style management” for the crisis.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가 삼성병원에서 14번 환자를 통제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고 권덕철 중앙메리스관리대책본부장이 말했다. 권 씨는 정부가 무제한적 문병 같은 “간병 문화”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또한 위기에 대처하는 “삼성 스타일의 관리 방식”을 비난했다.

The mass-circulation daily Chosun Ilbo said of Samsung Medical Center in an editorial this week: “It’s fair to say that their tendency to put profit and efficiency before public health prevented them from taking more decisive pre-emptive steps to contain the virus.”

최대발행 부수의 일간지 조선일보는 이번 주 사설에서 삼성병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의 건강보다 이윤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그들의 성향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더 결정적인 예방 조치 실행을 못 하도록 했다고 말할 수 있다.”

The Samsung conglomerate, the biggest among the enormous South Korean corporate empires that have been compared to “tentacles of an octopus,” moved into the hospital business when it opened the Samsung Medical Center in 1994. Opening a modern hospital was said to reflect the wish of Mr. Lee, the conglomerate’s chairman, who used to travel to the United States for cancer treatment.

“문어발”로 비유되는 한국의 거대 기업 왕국들 중에서도 가장 큰 삼성 복합 기업은 1994년에 삼성의료원을 설립해 병원 산업에 진출했다. 현대식 병원의 개원은 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여행하곤 했던 이건희 회장의 소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CCTV, 성균관대에서 마스크 착용한 홍콩 학생들 교실에서 쫓아내
– 성대 교수 “민감한 분위기와 감정을 우리나라로 가져오지 말라”
– 많은 홍콩 학생들 귀국 희망, 한국과의 계획 취소나 연기

CCTV 아메리카는 17일, “한국 성균관대, 마스크 착용한 홍콩 학생들 교실에서 쫓아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두 명의 홍콩 학생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서울의 한 대학교 교실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으며 이는 온라인상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밍 파오 데일리를 인용하여 보도했다.

기사는 두 학생에게 한국 교수가 과거 홍콩과 남중국을 강타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치명적인 바이러스 질병인 사스로 인해 생긴 “민감한 분위기와 감정을 교실이나 우리나라로 가져오지 말라고”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메르스 발생 때문에 많은 홍콩 학생들이 귀국을 희망하거나 홍콩에 있는 학교와 단체들이 한국과의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CCTV 아메리카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IRhnbZ

South Korean university kicks out Hong Kong students for wearing masks
한국 성균관대, 마스크 착용한 홍콩 학생들을 교실에서 쫓아내

June 17, 2015

(Image: CCTV News)

Two Hong Kong students were told to leave the classroom for wearing face masks in a university in Seoul, according to Ming Pao Daily. The news later triggered heated debate online.

밍 파오 데일리에 따르면, 두 명의 홍콩 학생이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교실을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 뉴스는 나중에 온라인상으로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Currently, South Korea is in the middle of a fatal epidemic due to the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or MERS virus. So far, 20 people have died of the virus and 162 are confirmed to be infected.

현재 한국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 혹은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한 치명적인 유행병이 한창이다. 지금까지 20명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했고 162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진됐다.

The two students were from the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and went to study in South Korea under an exchange program at Sungkyunkwan University in Seoul.

두 명의 학생은 홍콩 시립대학의 학생들로서 서울 성균관대학교와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공부하러 한국에 갔다.

A professor told them “not to bring sensitive moods and feelings to the classroom and the country.” He also added that such sentiments were caused by SARS, another deadly viral disease which struck Hong Kong and southern China between 2002 and 2003, causing hundreds of deaths.

한 교수가 두 학생에게 “민감한 분위기와 감정을 교실이나 우리나라로 가져오지 말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또한 그는 2002년과 2003년 사이 홍콩과 남중국을 강타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치명적인 바이러스 질병인 사스로 인해 그런 정서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Due to the outbreak, many schools and organizations in Hong Kong have decided to cancel or postpone their arrangements in South Korea, with many Hong Kong students expressing a wish to move back home.

메르스 발생 때문에 많은 홍콩 학생들이 귀국 희망을 표하면서 홍콩에 있는 많은 학교와 단체들이 한국과의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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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메르스 잡겠다더니 세월호 압수수색-공안몰이"

 
[2신 : 오후 5시 45분] 
"황교안, 메르스 진압하겠다더니 공안 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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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4·16연대 압수수색 서울 종로경찰서 직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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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연대 압수수색에 빈 박스만 들고 나가는 수사관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빈 박스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날 압수수색에 입회한 박주민 변호사는 "통장 사본이나 공개되지 않은 조직도는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얻지 못했고, 정관·회의록 등만 가져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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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연대 압수수색 마친 경찰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물품이 담긴 박스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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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40분께 6시간 가량 이어진 경찰의 압수수색이 끝났다. 경찰은 가방 3개 분량의 서류 등을 압수했다. 경찰은 4·16연대 조직도와 통장 사본 등을 요구했다. 압수수색에 입회한 박주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통장 사본이나 공개되지 않은 조직도는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얻지 못했고, 정관·회의록 등만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는 "집회가 폭력적이었는지, 누가 집회를 주도했는지는 현장 채증 동영상·사진 등으로 경찰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면서 "압수수색을 하면서 조직 체계와 통장 내역을 보겠다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조직의 배후까지 (수사를) 뻗쳐보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은) 황교안 총리의 인준을 기다리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압수수색이 끝나기 직전, 4·16연대 활동가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압수수색을 '공안몰이의 시작'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지금 온 국민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분노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정부는 이 틈을 노려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총리를 밀어붙였고, 인준된 총리는 4·16연대에 대한 공안 탄압의 칼을 뽑았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칼날을 겨누고 있는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황교안 총리가 취임인사를 이 따위로 하고 있다. 어제(18일) 취임장을 받으면서는 메르스 진압 선봉에 서겠다더니 공안 총리답게 공안 몰이부터 시작했다"면서 "메르스 때문에 불안에 떠는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이것부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압수수색이나 4·16연대 활동가들 구속으로 세월호 참사가 덮어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반드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와 맞서 싸우겠다. 박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가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문종필씨는 "정부의 다음 수순은 안산에 있는 정부 합동분향소 유가족을 향해 들어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경찰이 지난해 4월 16일 정부가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정보를 내어달라고 하면 다 내어주겠다"고 비꼬았다.

[1신 보강 : 19일 오후 1시 24분]
황교안 총리 취임 이튿날, 세월호 사람들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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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수수색 당한 4·16연대 "공안몰이 중단하라"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맨 오른쪽)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경찰의 4·16연대 압수수색에 대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국민의 열망을 짓밟는 공안탄압이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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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 컴퓨터 압수수색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자, 세월호 유가족과 4·16 관계자들이 이를 지켜보며 의아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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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국무총리가 취임한 이튿날인 19일 경찰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아래 4·16연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를 두고 공안정국의 시작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18일 법무부 장관 이임식에서 "헌법가치를 확고히 지켜나가고, 법치를 통한 국가개혁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면서 '법질서 확립'을 거듭 당부했다(관련기사 : '미스터 국보법', 이임사로 공안정국 예고?).

서울 종로경찰서는 오전 11시께부터 박주민 변호사 등 4·16연대 관계자들의 입회 하에 서울 중구 저동에 있는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정채민 종로경찰서 수사과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저를 포함해 수사관 7명은 오전 8시 20분부터 이곳 사무실 앞에 나왔고, 4·16연대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오전 11시부터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와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4·16연대의 불법 시위 관련해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4·16연대는 이날 오전 "(경찰은) 오늘 오전 박래군 상임운영위원, 김혜진 운영위원 차량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지금은 4·16연대 사무실과 인권재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면서 "공안통 황교안 총리가 취임인사를 떠들썩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메르스를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잡는 일인데, 엉뚱하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라고 정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세월호 사람들' 잡기에 나섰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여기는 정권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세력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4·16 연대로 굳게 뭉쳐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 만들어야겠다"고 강조했다.

4·16연대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이날 낮 기자들과 만나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은 지난 4~5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던 일련의 집회들이 박래군 상임운영위원과 김혜진 운영위원의 주도 하에 이뤄진 것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압수수색은 컴퓨터에 설치된 파일을 검색해 복사하거나 서류를 수색해 압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모두 마무리되려면 3~4시간은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4·16연대는 유가족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단체이고, (4~5월) 집회의 불법성과 위헌성을 두고 여러 가지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축시키려는 것 아니냐"면서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서울로 올라와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단체 배서영 사무처장은 "경찰은 유가족 회의록까지 들여다보고 있는데,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유가족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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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수수색 당한 세월호 유가족 "수사가 필요한 곳은 진실 감추는 정부"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TV' 팀장인 단원고 지성 아버지 문종택씨가 사무실을 들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통제하고 있다. 이날 문 씨는 "경찰이 언제든지 세월호 관련 자료를 요청해도 줄 수 있는데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수사가 필요한 곳은 진실을 감추는 정부이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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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연대 압수수색에 모인 세월호 유가족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자, 압수수색 뉴스를 접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사무실에 모여 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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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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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남, 북침망상에 생화학전 기도>

  • [정치] 북 〈남, 북침망상에 생화학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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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신문은 19일 정세론해설 <생화학전책동의 하수인, 공범자>를 게재했다.
     
    해설은 <최근 미국이 <공포의 백색가루>로 악명높은 탄저균을 남조선에 극비밀리에 끌어들인 사건을 계기로 상전의 생화학전쟁책동에 적극 추종해온 남조선당국의 범죄적 망동이 여론화되고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조선당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함께 생화학무기개발을 다그쳐왔다.>며 <남조선호전광들은 생화학무기를 북침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실전능력을 갖추기 위해 미쳐날뛰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남조선호전광들의 생화학무기공격기도는 현 <정권>의 등장이후에도 노골화되고있다.>며 <북침망상에 사로잡혀 감히 생화학전을 기도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는 오직 가차없는 징벌과 비참한 죽음만이 차례지게 될것이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생화학전책동의 하수인,공범자
     
    최근 미국이 《공포의 백색가루》로 악명높은 탄저균을 남조선에 극비밀리에 끌어들인 사건을 계기로 상전의 생화학전쟁책동에 적극 추종해온 남조선당국의 범죄적망동이 여론화되고있다.
     
    얼마전 남조선당국자들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오산미공군기지에 반입한 상전의 행위를 비호하며 그 무슨 《북의 탄저균공격에 대응한 정당방위》니 뭐니 하는 뻔뻔스러운 망발을 줴친것은 미국과 함께 북침을 노린 생화학전쟁을 도발하려고 미쳐날뛰는 저들의 흉악한 정체를 감추기 위한 술책이다.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다.력사와 현실은 우리 민족을 생화학전의 대참변속에 몰아넣으려는 미국과 공모결탁해온 그들의 반인륜적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남조선당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함께 생화학무기개발을 다그쳐왔다.미국에 있어서 새로운 세균무기의 생체실험과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장으로서는 남조선보다 적합한 곳이 없다.미국이 세균무기연구소를 남조선의 오산미공군기지에 설치한것도 바로 그때문이다.북침야망에 사로잡힌 남조선집권세력은 생화학무기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줌으로써 생화학무기기술과 재료를 획득할 흉심을 품었다.
     
    남조선통치배들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사람의 장기와 태아는 물론 산 사람까지 세균무기실험용으로 팔아넘겼다.1970년부터 1976년까지의 기간에만도 1만 2 000여개의 태아와 6만여개에 달하는 사람의 콩팥을 미국에 넘겨주었다고 한다.당시 미국의 제네랄연구소는 1970년이래 해마다 남조선으로부터 4 000개이상의 사람의 콩팥을 사들였다는것을 인정하였다.그 대가로 남조선통치배들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군 731부대에 의해 개발되고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사용된 콜레라,천연두,페스트,류행성출혈열,발진티브스 등을 발생시키는 20여종의 각종 세균 및 비루스배양기술을 비롯하여 세균무기연구개발과 관련한 기술자료들을 미국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넘겨받았다.
     
    미국의 뒤받침밑에 남조선통치배들은 생화학무기의 연구와 생산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남조선당국의 생화학무기개발책동은 전두환역도의 집권시기에 더욱 강화되였다.미국이 윁남전쟁에서 사용한 생화학무기의 효률성을 직접 목격한 역도는 1981년 6월 청와대에서 극비모임을 열고 《〈정권〉의 운명을 생화학무기개발에 걸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느니,과거와는 달리 앞으로는 《화학전이 전쟁승패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것이라느니 하는 매우 위험한 폭언을 늘어놓았다.
     
    전두환역도는 생화학무기개발조를 뻔질나게 미국에 보내여 상전의 경험을 터득하게 하였다.한편 세균무기연구소에서 세균,비루스의 생체실험을 위한 여러가지 곤충류,진드기류,설치류들을 대대적으로 기르도록 하는 한편 미국방성산하의 생화학무기연구소들과의 공동개발을 적극 추진하였다.이리하여 1980년대 중반기에는 세균과 비루스의 생체실험에 성공하였으며 화학무기용독해물생산을 공업화단계에 진입시켰다.남조선언론들이 오래전에 《생화학무기개발과 저장은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섰다.》고 폭로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남조선호전광들은 생화학무기를 북침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실전능력을 갖추기 위해 미쳐날뛰였다.《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때부터 시작된 생화학전훈련은 해마다 강화되여왔으며 각종 북침전쟁연습에는 례외없이 생화학전훈련이 동반되고있다.1988년부터 륙,해,공군부대들에 화생방부대학교를 내온 호전광들은 각 군단,사단,련대들에 생화학공격체계를 수립하였으며 생화학전쟁을 통일적으로 지휘할수 있는 화생방방호사령부까지 내왔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남조선호전광들의 생화학무기공격기도는 현 《정권》의 등장이후에도 로골화되고있다.호전광들이 2004년에 미국본토로 철수하였던 미륙군 23화학대대를 다시 남조선에 끌어들인것은 생화학전쟁의 불집을 기어코 터뜨리려는 범죄적계책을 낱낱이 폭로해주고있다.
     
    한피줄을 나눈 동족을 해칠수만 있다면 그 어떤짓도 서슴지 않는 남조선호전광들이야말로 추악한 매국반역의 무리이다.
     
    남조선호전광들이 미국과 야합하여 벌려놓고있는 생화학전쟁책동은 멸망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망동이다.
     
    북침망상에 사로잡혀 감히 생화학전을 기도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는 오직 가차없는 징벌과 비참한 죽음만이 차례지게 될것이다.
     
    (노동신문, 2015.6.19)
     
    송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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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욱 전 한미연합사령관 통역관을 만나다

 
이규정 2015. 06. 19
조회수 113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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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동맹이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한미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협력의 관계지만 때로는 치열한 군사외교의 무대이기도 하다. 국가를 대표해 발언하는 대통령, 외교관, 장군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들의 말을 즉각 다른 언어로 바꾸는 통역관의 임무는 그래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김장욱 성신여대 초빙교수는 2002년부터 2011년7월까지, 9년 가까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 전속통역관으로 일한, 베테랑 통역관이다. 2011년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통역관을 끝으로 군사통역관을 그만둔 김 교수는 2012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도 그가 여전히 몰두하고 있는 대상은 영어, 외교무대에서의 수사학이다. 그는 매일같이 유수의 정치인, 장군들의 연설문을 분석하며 이를 수업교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2012년부터 <디펜스21플러스>에 <연설문으로 배우는 외교영어>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9년간 한·미 동맹의 생생한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연유로 통역관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한미연합사 사령관 전속 통역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익숙했다. 1살부터 9살까지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께서 집에서 영어를 쓰게 하셨다. 한국에서 나온 영어교재 거의 모든 걸 집에 가져다 놓고 그걸 보고 영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익숙했다. 한국에 와서도 영어를 꾸준히 했고 그러다보니 통역장교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공군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했는데 이 때 통역장교로 지원해 3년간 공군에서 통역장교로 일하게 됐다. 
  1998년 공군 통역장교로 시작해서 2011년까지 총 12년을 통역관으로 일한 셈이다.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을 20회 정도 참가했고 미국 국방장관, 미 합참의장 등이 방한했을 때 통역도 맡았다. 연합사령관 전속 통역관이 된 계기는 이렇다. 2002년 전에는 연합 부사령관실에 통역장교가 있었고 연합사령관은 이 통역장교를 빌려 쓰곤 했다. 연합 부사령관과 그 통역장교는 한국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사령관 입장에서는 불편함을 겪을 때가 있었던 모양이다. 2002년에 토머스 슈와츠코프(Thomas A. Schwartz) 장군이 자기 전속 통역관을 둬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당시 나의 신분은 현지 채용 군속 즉, 한국 군무원이 아니라 미국 군무원 소속이었다. 연합사령관 통역관이 되기 직전 나는 미국 회사에 취직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마케팅 업무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미국 MBA 출신이 더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역관 일이 정말 좋았고 잘 할 자신도 있었다.

 

 -총 4명의 연합사령관 전속 통역관이었는데 슈와츠코프, 라포트, 벨, 그리고 샤프 사령관이다. 통역관으로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모습은 남다른게 있었을텐데..  
  =슈와츠코프 장군은 ‘칭찬의 달인’이다. 그 분은 말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줄 아는 분이다. 본인은 큰 틀을 짜고 세부적인 것들은 참모들이 많이 했다. 라포트 사령관은 정말 인간적이었던 분이다. 한국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저와 따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를 공부했다.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 사령관이 계실 때는 한국에 엄청난 반미시위가 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2명을 압사한 사건 때문이었다. 라포트 사령관은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고 잠도 못 잤다. 눈이 빨갛게 충혈 된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라포트 사령관은 개인적으로도 슬퍼하고 사령관으로서도 애석해했다. 그때 라포트 사령관이 미군기지 내 성당에서 추모 미사에서 공개적으로 ‘remorse’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어로 하면 ‘애도를 표하다’ 정도인데. 미국식 문화에서 ‘remorse’는 최고의 사죄의 표현이다. 
 버웰 벨(Burwell B. Bell III) 사령관은 전형적인 전사(warrior)다. 2007년 버웰 벨 사령관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이 예산 혹은 정치적 이유로 중단되면 '여기에 맞서 싸우겠다(I'll fight this)'라는 발언을 했다. 그만큼 거침없었다.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사령관은 침착하고 뛰어난 전략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월터 샤프 사령관 재임 기간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 사건 때 긴장감은 어마어마했다. 저로서는 정말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샤프 사령관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수시로 상황을 보고 받았다. 연합사령관 네 분을 9년 가까이 모시면서 리더십에 대한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리더십, 비전, 그리고 전략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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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령관 통역관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 사이에서 통역 중인 김장욱 교수

 

  -한・미 양쪽을 두루 보셨던 것 같다. 한미 양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던 적은 없었나? 이를테면 우리는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미국사람들은 직설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게 어떤 면에서는 오해다. 국익이 걸려있는 문제를 두고 논하는 자리에서 돌려서 말하는 한국 사람은 없다. 통역 할 때마다 저는 우리 주권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특별히 문화적 차이를 느꼈던 것은 없었다. 
  우리 쪽 군인들이나 외교관들도 호통칠 때는 호통 쳤다. 국방부에 파견 나온 한 외교관이 인상 깊었다. SPC(Security Policy Initiative) 미팅을 하고 있는데 그 외교관이 해병대 장군에게 호통을 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위직에 있는 합창의장, 장관들도 팽팽하게 할 얘기 다 한다. 
  또 미군들이 한국의 정서를 상당히 고려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분향식에 가기 전에 사령관들은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는 지 물어보고, 유가족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통역관의 업무가 단순히 언어에 국한되는 것 같지 않은데 통역관은 어떤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언어 이외에 어떤 것에 통달해야 하는가?

 =우선 통역을 좋아해야한다. “죽음 아니면 통역을 달라” 정도여야 한다.(웃음)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통역관이 사령관 계급장을 달면 안 된다. 간혹 통역관이 자신이 장군의 계급인 것처럼 느낄 수가 있다. 이를 경계하고 항상 겸손해야한다. 
  또 통역관은 자기 앞에서 진행되는 일을 꿰고 있어야 한다. 사안에 대한 이해 없이 통역을 하게 되면 말 그대로 ‘외계어’가 될 뿐이다. 그래서 통역관으로 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종이에 써 있는 거는 다 읽었다. 공군 통역 장교 처음할 때, 연합사 와서도 그렇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읽었다. 
  전방의 어떤 고지에서 통역을 하는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부사령관이 제게 호통을 쳤는데 고지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때 부사령관에게 ‘작전요무령’이라는 책을 받았다. 거의 그 책을 외우다시피 했다. 
  실수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사령관이 애국가 가사를 보고 싶다고 요청한 적이 있다. 너무 긴박할 때라 제가 급하게 2절까지만 번역된 애국가를 찾아서 사령관에게 들고 갔다. 보고하기 마지막 순간에 보니까 애국가가 아니라 북한 국가였다. 
  사령관이 연설에 애국가를 인용하려고 찾아오라고 한 거였는데 만약 내가 그대로 건냈다면 대형사고가 될 뻔했다. 북한 국가인 줄 알자마자 도망쳐 나왔다. 통역관으로서 크게 실수한 적은 없지만 할 뻔한 적은 있다. 그 뒤로 꼼꼼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 중요한 건 체력과 집중력이다. 회의 중에 집중력이 흐려지면 그런 망신이 없다. 또 사령관의 스케쥴을 따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UFG), 독수리 훈련(Foul Eagle), 키리졸브 훈련(KR)할 때는 1~2주를 꼬박 밤을 샌다. 보통 2월 말 ,8 월말에 훈련이 있는데 훈련이 끝나고 나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지금도 야전의 퀘퀘한 곰팡이 냄새를 잊지 못한다. 2월 말, 8월 말 되면 뭔가 훈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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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잘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로버트 케네디 미 대통령

 

  -통역관으로 12년을 거쳐 4년째 학교에서 가르치며 본지에 <연설문으로 배우는 외교영어>를 연재하고 있다. 수많은 연설문을 보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설가가 있는가? 또 외교영어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디펜스21플러스>에 실을 연설문은 최근 이슈를 담고 있는 것으로 고른다. 또 너무 미국 연설문에만 편중되지 않게 아시아권 연설문도 찾아본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수사학적인 분석을 하니까 <디펜스21플러스>에 기사로 나가는 연설문을 고를 때의 관점과는 다르다. 
  요즘은 2차 대전 전승일을 기념해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수전 라이스 전 국무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의 관련 연설문을 분석하고 있다. 
  연설을 잘 하는 정치인을 꼽자면 미국은 단연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이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들은 정말 공감대 형성을 잘한다. 또 이야기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말로 길을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고 가정해보자. 굽은 길, 돌부리 등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를 한다. 노 대통령은 가슴에 와 닿는 연설을 잘 하는 것 같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신인 시절 때 한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연설이다. 그때도 잘했지만 대통령 8년 차인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수사학’이다. 즉석에서 어떤 말을 해도 고급스러운 수사학이 나온다. 
 국방 관련 연설문은 수업시간에 많이 쓴다. 군인들은 형식과 의식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그리고 애국심, 결의 이런 표현이 다양하다. 지휘관 이임사 같은 경우도 그냥 흘려 볼 게 아니다. 이임사에는 지휘관이 사령부에 쏟았던 애정, 부하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이런 연설문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레 안보의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외교 국방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분야에서의 통역이라는 게 단순히 영어만 잘해서는 통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나는 다시 태어나도 30대에는 통역관을 하고 40대에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군대에서는 리더십과 대인관계를 배웠다. 그런데 왜 그만뒀냐면 사실 어떤 면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전역하기 몇 달 전 미국에서 최고위층 인사가 북한도발과 관련된 내용을 상의하러 온 적이 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제가 그만 졸고 말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면서 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은 그래서 후학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합동참모대학에서 4년째 강의하고 있다. 군에서 배웠던 지식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더 큰 무대에서 후배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이규정 디펜스21+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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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하계 국민대토론회 개최

전문가들 "사드 배치, 중국과 관계 고려해야"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하계 국민대토론회 개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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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19  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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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 찬반론 국민대토론회가 19일 서울 글로벌피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한반도 배치문제에 대해 동북아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는 19일 오후 서울 서강로 글로벌피스센터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찬반론'을 주제로 2015년 하계 국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 등 동북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드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최영미 서울대 교수와 곽태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1명 중 44명이 사드배치가 한.중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나머지 7명은 보통이라고 답했을 뿐,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특히, 답변한 학자들이 보수 16명, 진보 19명, 중도 16명의 정치적 성향을 지녔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학자들이 사드배치의 한.중관계 영향을 우려했다. 한.러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20명이 부정적인 입장, 19명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미 관계와 한.미 동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각각 37명, 39명이 답해, 사드 한반도 배치가 한.미 관계에 국한될 뿐, 동북아 안보질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드배치의 남북관계 영향에 대해서는 36명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답했고, 한반도 통일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조사됐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드 한반도 배치가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가 발표됐으며, 찬반, 중립론 입장에서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사드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한.중 관계 영향에 대해 이날 토론회에서는 찬반의 입장이 분명했다. 사드 반대론을 펼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북핵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 및 일본과 함께 미사일방어시스템(MD) 능력을 강화할 수록 북한은 핵억제력으로 맞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중국은 미국이 MD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6자회담을 비롯한 북한과의 협상을 피하려고 한다는 시각이 대단히 강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은 사드배치가 단순한 북한 대응용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글로벌 MD'의 일환으로 본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전략적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즉, 사드 배치와 관련해 사드 자체가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태평양이 아닌 북극을 궤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관하지만, 사드와 함께 운용되는 'X-밴드' 레이더는 중국의 미사일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드 한반도 배치를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주한미군 기지 내 사드를 비롯한 MD 능력이 강화될 경우, 미.중간 무력 충돌시 주한미군 기지가 대중국용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한 몫한다는 설명이다.

   
▲ 이날 토론회는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공동 주최로 열렸으며, 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에 찬성론의 입장을 밝힌 정경영 '동아시아외교안보정책연구소' 소장은 "만일 중국 외압으로 사드 배치를 외면하면 중국의 술수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사드가 중국에)위협적이지 않은 데 (한국을) 위협하면서,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한국을 중국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휘말리는 격"이라고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간섭을 반대했다.

정경영 소장은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중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다는 국가전략상 중대한 변화를 추구한다면 몰라도 사드 문제로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결단코 우리 안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한.미동맹 대신에 중국과의 동맹은 상상할 수 없다. 공산주의체제이고 북.중간 자동개입하는 북.중동맹이 있다. 한.중 동맹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드는 중국의 ICBM 궤적과 무관하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위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 찬반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밝힌 강종일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회장은 "한국의 대미, 대중 균형외교를 통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국이 사드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중국의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중립적 입장에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현재와 같은 전략적 모호성 유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 체인(Kill Chain) 구축 목표시점(최종 2023년)까지 사드 배치 불가 선언, △국민의견 반영,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안보환경 조성 등을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는 곽태환 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 서인택 '한국글로벌피스재단' 회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 토론회에는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 서인택 '한국글로벌피스재단' 회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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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직격탄, 박근혜 지지율 20%대로

메르스 직격탄, 박근혜 지지율 20%대로
29%로 추락, 취임후 최저 수준… 대구경북·50대에서도 부정적평가 높아
 
입력 : 2015-06-19  10:31:56   노출 : 2015.06.19  10:50:03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20%대로 하락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메르스 확산에 대처하지 못해 여론이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사흘간 전국 성인 1000명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질문한 결과, 29%는 긍정 평가한 반면, 61%는 부정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9%는 의견을 유보했다(어느 쪽도 아님 5%, 모름/응답거절 5%).

이 같은 박 대통령 지지율(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전 주 대비 4%포인트 떨어진 데 반해, 부정률은 3%포인트 올하 긍정-부정률 격차가 32%포인트까지 늘었다. 직무 긍정률 29%는 취임 이후 최저치로, 연말정산/증세 논란이 일었던 올해 1월 넷째 주와 2월 첫째 주에 이어 세 번째라고 갤럽은 분석했다.

특히 50대에서도 2주 연속 부정률이 긍정률 보다 높았으며 대구경북 지역 조사에서도 부정률이 긍정률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는 20대의 경우 각각 13%(긍정률)와 77%(부정률)로, 30대 11%와 84%, 40대 16%와 71%, 50대 40%와 49%, 60세이상 60%와 27%로 조사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갤럽 여론조사 지지율 조사결과 추이. 그래프=한국갤럽
 

주요 지지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397명)은 56%가 ‘잘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248명)은 87%가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318명)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더 많았다(긍정 16%, 부정 69%).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부정적 평가를 한 응답자들(606명)은 그 이유로(자유응답) ‘메르스 확산 대처 미흡’(33%)(전주 대비 6%포인트 상승),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12%), ‘리더십 부족/책임 회피’(12%), ‘소통 미흡’(11%), ‘인사 문제’(5%), ‘안전 대책 미흡’(4%), ‘전반적으로 부족하다’(4%) 등을 꼽았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갤럽은 “메르스 사태가 3주째 대통령 직무 평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조사결과에서 대전·세종·충청권(36%→23%)과 부산·울산·경남(41%→29%)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권(55%→41%)에서조차 직무 긍정률이 10%포인트 이상 하락한 것을 들어 갤럽은 “메르스 확진·사망 또는 경유 병원이 추가로 또는 타 지역에 비해 늦게 나타난 곳들”이라며 “대구/경북에서 부정률이 긍정률을 앞선 것은 지난 2월 둘째 주(긍정 44%, 부정 53%) 이후 처음”이라며 “올해 월별 통합 기준 이 지역 직무 긍정률은 1월 48%, 2월 45%, 3월 53%, 4월 55%, 5월 57%였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갤럽이 메르스 감염 우려 정도를 조사한 결과 ‘매우 우려된다’ 28%, ‘어느 정도 우려된다’ 34% 등 62%가 감염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별로 우려되지 않는다’는 27%, ‘전혀 우려되지 않는다’는 10%로 우려된다는 견해가 크게 웃돌았다. 이번 조사 기간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9시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확진 165명, 사망 23명, 격리 대상은 6729명이라고 갤럽은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한국갤럽의 지지율 조사결과. 지역별 집계 현황표.
 

‘(매우+어느 정도) 우려된다’는 응답은 지지난 주(6월 2~4일) 67%에서 지난 주(9~11일) 54%로 감소했으나 이번 주(16~18일) 62%로 다시 증가했다고 갤럽은 설명했다. 갤럽은 “지난 주 초에는 환자 발생·경유 병원 정보 공개, 병원 내 감염이 다수라는 발표가 있었고 한때 확산세도 주춤했으나 이후 사망자 수와 확진자 발생·경유 지역, 4차 감염 사례 등이 증가함에 따라 불안감도 다시 증폭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우려된다’는 응답은 대전·세종·충청권(45%→67%)과 대구·경북(47%→59%), 부산·울산·경남(49%→57%)을 비롯한 전 지역에서 늘었으며, 세대별로는 50대(46%→61%)와 60세 이상(46%→59%)에서 특히 변화폭이 컸다고 갤럽은 분석했다.

향후 메르스 상황 전개에 대해서는 42%가 ‘수일 내 진정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46%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번 조사결과의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이며, 응답률은 18%(총 통화 5,585명 중 1,000명 응답 완료)였다고 갤럽은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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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김정은의 '밀당'... 아깝다, 한국은 보기만

 

[한반도워치] 북한 김정은, 9월 2일 하바롭스크 기념식에 참석할까

15.06.18 20:42l최종 업데이트 15.06.18 20:42l

 

 

최근 푸틴과 김정은이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회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중국발 뉴스가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9월 2일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소련군 출병 및 중국·북한의 항일전쟁 70주년 기념식에 김정은을 초대하여 정상회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참전했던 러시아 극동 부대인 제88여단 기념비 제막행사도 동시에 준비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김일성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김정은이 극동에 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 그 기회를 이용해 정상회담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극동의 도시 중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톡이 개방적이며 경제 중심의 도시라면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가 있는 하바롭스크는 지금도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력한 보수적인 도시이다. 하바롭스크는 1918년 이동휘가 이끄는 독립운동단체이자 볼셰비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인사회당이 결성된 도시이며, 김정일의 실질적인 출생지이기도 하다. 

김정은 시대에는 최룡해, 이수용 외무상도 하바롭스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북한의 영사관, 벌목공 등 많은 북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5월 다자 간 정상회담의 성격을 띠는 전승절 행사가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김정은에게 부담감을 주었다고 보고 김정은이 편하게 올 수 있는 지역으로 하바롭스크를 준비하였을 것이다.

푸틴-김정은 만남 소식, 중국 매체서 나온 까닭

푸틴과 김정은과의 회동을 보도한 뉴스 매체가 러시아나 북한이 아닌 <중국청년보>라는 신뢰성이 높지 않는 중국통신사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지금 시진핑 정부는 9월 3일 항일승전기념일 행사를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다. 3일간에 걸친 국가 공휴일 지정은 물론이고 더 많은 외국 정상들을 초청하기 위해 중국 외교부는 초비상이다. 

시진핑 정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과 북한의 참석을 위해 오래 전부터 외교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은 아직 확정적이지 않지만 중국과의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현안으로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북한의 김정은이 참석한다면 중국의 외교적 위신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온 북한의 반응으로 보아 김정은의 베이징 참석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과 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관계에 놓여 있으며 김정은은 모스크바 전승절 불참과 마찬가지로 다자 간 정상회담을 부담스러워한다. 북한은 이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바쁜 일정 때문에 오는 9월 중국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언론보도도 내놓았다.

북한은 여전히 중국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로서는 김정은이 전승절에 참석하면 베스트이지만 엉뚱한 길로 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김정은이 만약 9월 2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푸틴만 만나고 중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9월 3일 행사가 조명을 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중국 언론을 이용해 김정은의 방러 가능성의 김을 빼려는 의도에서 이런 내용을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보도가 나온 며칠 이후 6월 16일 러시아 정부는 하바롭스크 러-북 정상회담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중국의 의도가 일단은 통한 것으로 보인다. 

러북 정상회담 적극 추진하는 푸틴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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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軍) 수산 부문의 공로자들을 노동당 청사로 불러 직접 표창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28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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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러시아가 9월 2일 푸틴-김정은 회동을 추진하는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5월 전승절 기념에 불참한 김정은에 대해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러관계는 실질적인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6월 25일부터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군악 페스티벌 '아무르의 물결' 행사에 김정은은 북한 군악대에 참가를 직접 지시하였다. 

2015년 '북-러 친선의 해'를 두고 다양한 경제협력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세레킨(Maxim Sherekin) 러시아 극동개발부 차관은 앞으로 극동개발에 북한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참여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에다 원유와 식량을 국제 시세 이하로 지원해주고 있다.

푸틴이 김정은 회동에 목을 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을 설득하여 극동의 긴장완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다. 푸틴은 국제적으로 고립에 빠진 김정은에게 손을 내미는 유일한 인물이다. 푸틴이 김정은을 통해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핵 문제를 중재한다면, 강대국 러시아의 국가 위신을 세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협력을 매개로 본격적으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전면화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극동에서 러시아가 가장 희망하는 사업은 북한을 통한 가스관 연결사업이다. 가스관만 연결된다면 러시아는 한국이라는 거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발판으로 철도, 전력, 극동개발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푸틴은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까? 6월 16일자 러시아 정부 발표대로라면 9월 2일 정상회담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의 성격상 시기는 유동적이지만 러북 정상회담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푸틴은 소련 KGB 출신으로 공작에 능하며 추진력은 역대 러시아 대통령 중 최고다. 

푸틴은 서방으로 넘어가려는 우크라이나를 두 조각 냈으며 복잡한 카프카즈 문제를 안정화시켰다. 푸틴은 북한 문제 해결 없이는 러시아의 극동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푸틴이 김정은을 만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이 김정은을 만나기만 한다면, 갓 서른을 넘긴 외교 초짜인 북한의 지도자를 설득하고 구워 삶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현 체첸 대통령인 람자 카디로프(Ramzan Kadyrov)가 푸틴에게 설득당해 푸틴의 양아들임을 자처하는 것처럼 김정은도 푸틴에 전적으로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냉전의 한가운데인 동독에서 스파이로 복잡한 국제문제를 다루어왔고 러시아의 피 튀기는 권력투쟁을 통해 '차르'로 등극한 푸틴 앞에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대등한 협상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인다.  

김정은은 왜 국제무대에 나오는 걸 주저하는가

푸틴의 적극적 구애에도 김정은은 왜 쉽게 만남을 허락하지 않을까? 김정은은 푸틴과 정상회담을 통해 무기 및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핵 문제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정은의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 불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평양 내부의 공식 반응을 확인할 수 없어 아직도 정확한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후돌레이(Konstantin Khudoley)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푸틴과의 회동을 주저하는 이유는 북한의 입장에서 북러관계는 북미관계보다 전술적으로 낮은 차원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은 최근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예의주시하면서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최악의 갈등을 벌이는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다면 전략적 목표인 북미관계의 개선이 어려울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북한 때리기'가 계속 되고 있고 미국이 조만간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포스트 오바마'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냉혹한 권력정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정은 체제가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김정은이 외부 방문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2년 전 김정은은 북한의 2인자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였으며 지난 5월에는 북한 군부의 1인자인 현영철 무력부장을 제거했고 지금도 김정은에 반대하는 권력층을 솎아내고 있다. 

김정은과 조직지도부의 핵심 측근들은 김정은이 북한을 비울 경우 내부 쿠데타나 정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당분간 북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 

9월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북한에서 정책 결정은 1주일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떠한 새로운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김정은을 국제무대에 올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구애와 강대국 사이에서 몸값을 올려 체제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의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정작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은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윤성학 박사는 고대 러시아CIS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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