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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

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새정치연합, 긴급 의총 열고 고영주 이사장 해임 촉구 결의
 

 
▲ <사진제공 = 뉴시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

진 교수는 7일 “박근혜는 1년차 국정원 대선개입, 2년차 세월호에 십상시, 3년차 메르스 사태… 경제는 바닥, 민생은 파탄”이라며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는 저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에 들어간 듯”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는 “정신병원, 아니면 반인권적 범죄자로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며 “고영주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수준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로 남을 듯”이라며 “이 중요한 10년을 저들이 하는 닭짓을 보며 고스란히 날려 보내야 하다니…”라고 탄식했다.

   
 

한편, 고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에 새정치연합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고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번에 한 발언이 실수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가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며 “그러나 어제 미방위 국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민중민주주의자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명백히 이야기하며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사상을 알고 찍었으면 이적행위 동조자”라며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 넘는 국민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동조자로 몰은 것으로 이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태”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결의문을 내고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갔던 백색 테러가 고영주 이사장의 입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며 “본인과 다른 생각을 말살시키고야 말겠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인식은 다양한 가치관의 존중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고 이사장의 즉각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등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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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 때려 부숴도 기뻐하는 사람들

 

[쿠오바디스, 전세난민②] 별이 지고 아파트도 무너진다네

15.10.07 08:14l최종 업데이트 15.10.07 08:14l

 

 

[이전 기사] 서울 '전세 1억' 아파트, 거기 제가 살았습니다 

고덕주공 입주자, 특히 3단지보다 2단지 주민에게 재건축에 따른 이주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우리 가족도 언제 이사 가야 하나 늘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날로 치솟는 서울 전셋값이 너무 야속했다. 고덕주공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심 재건축이 천천히 진행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2014년 하반기 들어서는 그다음 해 봄쯤 재건축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렸다. 우리 가족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이따금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워 근처 다른 지역 매물을 알아보았다. 경기도 하남, 송파구 석촌동을 살폈다. 아파트는 어림없었고 빌라(다세대주택)나 단독 다가구 주택 위주로 찾았다.

전세 물건이 많지 않았고 고덕주공보다 비쌌다. 석촌동 전세 빌라를 직접 보고 온 적도 있다. 고덕주공보다 덜 낡았고 직장이 있던 강남역과 가깝다는 건 나은 점이었다. 하지만 더 좁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았으며 주택가라 주차가 곤란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고덕주공 전세 보증금은 비교적 싼 편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왜 저런 집밖에 구할 수 없는 걸까'하는 무력한 의문만 들었다. 

지난 1월, 추위를 뚫고 퇴근한 어느 날이었다. 몸에 두른 모직 코트와 목도리가 무거웠다. 한 달 전부터 판교로 출근했다. 회사가 강남역에서 사옥을 옮겼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10분쯤 지하철을 타고 천호에서 내려서 6시 35분에 출근버스를 타는 나날이었다.

저녁이 되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도 지쳐갔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힘없이 열고 들어갔다. 1층 각 세대 우편함마다 꽂힌 종이봉투가 눈에 띄었다.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 보낸 이주 안내문이었다. 빠르면 3월부터,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차피 회사 사옥도 옮겼기에 출퇴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이사 가고 싶은 참이었다. 맞벌이가 아니어서 배우자의 직장 위치를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고 어렸기 때문에 전학 문제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하여 최대한 빨리, 3월이 오면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 올 사람 없는 아파트, 하루에만 화물차 10대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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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축 재건축 이주안내 현수막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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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웠다. 회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출발지로 두고 지도를 살폈다. 성남 구도심, 분당, 용인 쪽을 검색했다. 우연히 분당 동쪽 수내동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지만 주택가가 있어서 분당 다른 지역보다는 보증금이 낮을 것 같았다.

수내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중개인이 권하는 매물을 보았는데 역시 그곳에서도 '그 돈으로 왜 저런 집 밖에?'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개인은 수내동이 분당에서도 학군이 좋고 학원이 몰려서 전셋값이 비싼 곳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도 모르고 주택가랍시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중개인은 우리 가족 상황을 듣고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일대를 추천했다. 광주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광주? 그게 어디지? 게다가 읍, 리라니. 물론 호남의 광주(광역시) 말고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다는 건 알았다. 나나 아내나 지방 출신이고 경기도 권역에는 연고가 없었다. 수도권 지도를 볼 때면 동유럽 지도를 보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 이름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사무소 벽에 걸린 지도를 짚으며 설명했다. 광주 신현리는 분당 바로 동쪽에 붙은 곳이라고. 서울이나 분당보다 싸고 새로 지은 빌라가 많이 들어섰다고. 

광주에서 둘러 본 집들은 서울이나 분당과 비교하면 조건이 확실히 좋았다.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 보증금과 똑같은 값의 빌라(단독 다가구주택)를 전세로 구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가 그 세대의 첫 입주자가 될 터였다. 

30년 넘은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자 적잖이 설레기도 했다. 임대차계약을 마친 날, 아내와 나는 광주라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삶의 방향이 무작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지난 3월 첫 번째 금요일에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을 떠났다. 그 날 우리 집 말고도 열 곳 넘는 집으로 화물차량이 들어섰다. 가까이서 내가 본 것이 그만큼이었다. 같은 날 이사 간 집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으로 이사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서로 맞추어야 할 게 없어서 편했다. 재건축조합에서 알려준 대로 미리 한전, 도시가스 회사, 수도사업소에 연락했다. 전기·가스·수도를 차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계약할 때 본 집주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50대 초중반 남자인데 점잖고 친절했다. 함께 재건축조합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퇴거절차를 마쳤다. 헤어지기 직전, 그냥 떠나기도 어색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이곳에 아파트 새로 지으면 이사 와서 사시는 건가요?"

집주인 또한 가볍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 쑥스럽다는 듯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예, 그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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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삿짐 트럭 맨 앞 차가 우리 집 이사 트럭. 그 뒤로 보이는 트럭들은 각각 다른 세대의 이삿짐 차량이다.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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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가게 다시 찾았는데... 이미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떠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찾은 고덕주공 2단지 아파트. 입주자는 드문드문 남았지만 상가는 모두 다 빠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혹시 아직 남은 가게가 있다면 몇 가지 물어보려 했다. 입주민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장사는 되는지, 이제 어디로 떠날 건지.

하지만 모두 가까이 또는 멀리 가게를 옮긴다는 말을 남기고 이미 가버렸다. 물건 오천 원어치 사면 쿠폰 스티커를 한 장씩 주던 슈퍼 아주머니도, 텔레비전 채널을 KBS1에 고정해두던 약사 할아버지도, 떠나면서 화분 가져가도 된다고 써붙인 꽃집 아주머니도 지금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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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상가 문 닫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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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폐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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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안내 '점포를 급히 이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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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도 수명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위험하거나 미관을 해칠 수 있으며 살기 불편할 수 있다. 부분 개보수가 어려워 전체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철거가 더욱 나은 주택공급을 위한 후생의 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있을 한국 사회의 재건축·재개발은 안타깝고 지나친 면이 많다.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을 때려 부수는데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부동산 차익과 개발이익을 두고 벌이는 아귀다툼, 해임 재선임 고소 고발 손해배상 운운 현수막이 걸리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고 오히려 낯익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같은 독립잡지 발간 소식은 반갑고도 소중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편집장 이인규씨는 고덕주공보다 세 살 위인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묻어 버릴 풍경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사진을 싣고 글을 엮어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 뒤 추억을 지키고 싶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져 잡지 2, 3호를 냈다. 이씨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반영할 가치를 재건축참여 건축교수와 함께 고민하거나 아파트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동체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관련기사 : 재건축아파트 속 사람이야기 기록하는 아파트키드).

광주 신현리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여행스케치 1집에 실린 <별이 진다네>였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중략)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 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 만이 짙어가는데

곧 아파트가 헐린다. 내 삶의 흔적과 추억 한 부분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평생 보던 나무를 베어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아메리칸 인디언이 한 말이라고 한다(김영하 작가의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138쪽 참조).

고덕주공은 그저 오래된 부동산일 뿐일까. 같은 자리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덕주공에 살면서 사귄 이웃이 없다. 증인 삼을 사람도 없다. 나와 아내의 주민등록초본, 아들의 출생등록지가 이곳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직장, 학교, 부담스런 보증금 등 여러 사정 때문에 고덕주공 2단지를 멀리 떠나기 어려운 전·월세살이 입주민이 많았을 것이다. 3단지 2580세대도 머지않아 이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 많던 입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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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주공 3단지 표지판 내 고향은 어느 쪽인가.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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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고덕주공아파트 놀이터와 벚나무, 다시 볼 수 없을 풍경. 2014년 4월 어느 봄날에.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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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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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조홍섭 2015. 10. 07
조회수 70 추천수 0
 

산호초 물고기 먹이 사냥에 같은 종 또는 다른 종과 협동 잇따라 밝혀져

청소물고기는 '명성'까지 신경 써, 복잡한 인지능력 이전에 협동 발달 가능성

 

fish2_Jordan Casey2.jpg

흔히 물고기는 둔하고 사회성 없는 찬피동물로 그려진다. 그런 선입견이 차츰 깨지고 있다. 지적이고 사회성 있는 물고기가 발견되고 있다.
 

상대방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는 호혜적 행동은 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 일부에서만 나타난다. 그만큼 복잡한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혜택을 베풀었는데, 받기만 하고 도망친다면 곤란하다. 그래서 호혜적 행동을 하려면 상대방을 인식하고, 지난 행동을 기억하며, 나중에 보답을 예상하고 의식적으로 먼저 투자하는 능력이 전제가 된다.
 

그런데 어떤 물고기는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이먼 브랜들 박사 등 오스트레일리아 제임스쿡대학 연구자들은 대보초(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서식하는 물고기인 독가시치에서 직접적인 호혜행동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9월2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fish1_Jordan Casey.jpg» 협동사냥을 하는 다른 종류의 독가시치. 같은 성끼리 늘 붙어다니며 사냥하는 독특한 행동이 연구의 계기가 됐다. 사진=조던 케이시
 

연구자들은 잠수를 통해 여우독가시치 등 산호물고기 4종의 행동을 조사했다. 이들 물고기는 같은 성의 짝과 함께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는데, 한 마리가 먹이를 먹는 동안 다른 짝은 그 위에서 헤엄치며 머리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행동을 한다.


이들의 먹이는 산호초 틈 깊숙한 곳에 있는 조류와 해면 등인데,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기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띄면 매우 취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료가 망을 봐주면 마음 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외톨이 개체에 견줘 짝을 이룬 독가시치가 경계와 먹이 먹기에서 훨씬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계와 식사 당번은 수시로 바뀐다. 또 경계를 서던 물고기가 위험을 느끼면 지느러미를 쳐서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다른 산호물고기에게서도 발견되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경계 물고기가 자리를 뜨면 먹이를 먹던 물고기도 어김없이 뒤를 따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동물의 호혜적 행동이 진화하려면 복잡한 인지적 사회적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이제껏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로 그런 능력이 호혜적 행동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Richard Ling _Epinephelus_tukula_is_cleaned_by_two_Labroides_dimidiatus.jpg» 그루퍼의 기생충을 잡아먹는 청소물고기. 그러나 기생충보다 물고기의 피부보호 점막을 쪼아먹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Richard Ling,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연구 이전에도 물고기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왔다. 산호지대에서 큰 물고기와 청소물고기 사이의 관계는 대표적인 예이다.

 

청소가 이뤄지는 산호초의 특정 장소에 큰 물고기가 와 입과 아가미를 벌리고 있으면 청소물고기가 안팎을 드나들며 기생충을 잡아먹도록 해 기생충 제거와 먹이 획득의 공생이 이뤄진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이들의 관계는 훨씬 복잡했다.

 

청소물고기는 그루퍼 등 큰 물고기의 기생충보다 영양가가 풍부한 피부 보호 점막을 선호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점막을 뜯어먹는데 그때마다 손님은 깜짝 놀라 몸을 뒤튼다.

 

큰 물고기는 이처럼 서비스가 나쁜 청소 장소는 기피하게 된다. 청소물고기도 다른 경쟁자가 많거나, 다른 고객 또는 배우자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딴 짓을 줄여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피했다.

 

곰치.jpg» 두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도 다투지 않고 오히려 협동해 사냥하는 행동을 한다. 사진=리두안 브샤리 유튜브 동양상 촬영

 

산호초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도 유명한 사례다. 이집트 홍해 등의 산호초에서 관찰한 두 포식자는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 힘을 합쳤다.

 

■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 사냥 유튜브 동영상

 

 


그루퍼는 산호 틈에 숨어있는 곰치에 다가가 머리를 흔들며 마치 "사냥하러 가자"고 제안하는 행동을 한다. 곰치가 따라나서면 그루퍼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산호 틈을 곰치가 뒤져 먹이가 튀어나오면 기다리던 그루퍼가 낚아챈다.

 

먹이가 숨어있는 바위틈에 그루퍼가 거꾸로 선 자세로 "여기 먹이가 숨어있다"고 하듯이 곰치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동도 관찰됐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imon J. Brandl & David R. Bellwood, Coordinated vigilance provides evidence for direct reciprocity in coral reef fishes, Scientific Reports, 5:14556, DOI: 10.1038/srep1455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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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선봉적 부대'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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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6  2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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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조선노동당과 국가를 알기 쉬운 것은 당 규약을 살펴보는 일이다.

초기 조선노동당의 강령은 표면적으로 민주주의적 완전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고 진보적 민주주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표를 표방했다. 그리고 해방이후 독립국가의 경제건설을 위해 경제개혁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러한 당 규약은 70년 역사를 거쳐 북한 내부변화와 국제정세에 맞춰 바뀌어왔다. 그리고 주체사상의 확립과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확고히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어 왔다. 당 규약의 변천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의 변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1961년 제4차 당 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주석. 당시 북한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당 강령, 선봉적 부대→혁명조직→김일성의 당→김일성.김정일의 당

당 강령 및 전문, 총칙에는 당의 위상과 지도사상, 당면목적, 투쟁내용 등이 서술되어 있다. 당 규약은 1946, 1948년 제4장 41조, 1956년 제10장 62조, 1961년 제9장 70조, 1970, 1980년 제10장 60조으로 구성, 최종적으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발표된 제10장 60조로 돼 있다.

46년 제1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에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근로대중의 이익의 대표자이며 옹호자'라는 내용으로 당의 위상을 서술하고 13개의 과업을 제시했다. 그리고 제4장 41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48년 제2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 내용과도 유사하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조선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것, △토지개혁을 실시할 것, △광산, 철도 등을 국유화할 것, △민족군대조직과 의무적 군사징병제를 실시할 것,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인방과 평화를 애호하는 각 국가 각 민족들과 튼튼한 친선을 도모할 것 등이 담겼다.

구체적인 당의 지도사상은 없지만, '조선 근로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부강한 민주주의적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근로대중의 정치경제 및 문화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해방 후 당과 국가의 전망을 제시했다.

56년 제3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강령은 '우리나라 노동계급과 전체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적 부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이익 대표', '일본 및 식민주의자에 반대하여 투쟁한 조선 인민의 혁명적 전통의 계승자'로 위상이 구체화됐다.

또한, '맑스-레닌주의 학설'에 근거해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 완수, △공산주의 사회건설, △인민 민주주의 제도 공고화 등의 목적이 담겼다.

'맑스-레닌주의'가 들어간 이유는 제3차 당 대회 당시 있었던 소련.연안.빨치산파의 파벌갈등을 반영한다. 즉, 소련 흐루시쵸프 서기장의 스탈린 비판연설을 감안, 당이 맑스-레닌주의의 국제적인 원칙에 근거해 공산당으로서 정당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61년 제4차 당 대회 들어 소련.연안파의 숙청으로 김일성 단일지도체계가 성립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위상과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원리, △조선혁명실천활동에 창조적으로 적용, △수정주의, 교조주의의 반대, △'맑스-레닌주의 순결성 고수' 등의 지도사상이 반영된다.

이는 김일성 외 파벌의 주장인 수정주의, 교조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1960년대 중.소분쟁을 배경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 진영의 맑스-레닌주의 논쟁에 '순결성'으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토대로 조선노동당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보장, △사회주의 제도 공고화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즉, 네 번째 당 규약 개정은 조선노동당이 '김일성의 당'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됐다.

   
▲ 1980년 제6차 당 대회 준비를 점검하는 김일성과 김정일.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명문화했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의 당'임을 확고히 한다. 70년 11월에 열린 제5차 당 대회에서 당은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에서 '노동대중의 최고형태의 혁명조직'으로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이 지도사상으로 등장했다. 또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이 새로운 당의 목적으로 제시됐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김일성 동지께서 창건한 주체형의 혁명적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당'의 위상에 맞게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지도사상을 토대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강조한다.

즉,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가 명문화된 것이다.

김정일 시대 들어 30년만인 2010년 9월에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으로서의 위상이 당 규약에 명문화됐다. 여기에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지도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인민근로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로 규정됐다.

그리고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 '근로인민대중의 대중적 당'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이 당면과제로 제시됐다.

여기서 특징은 54년동안 견지해 온 '맑스-레닌주의'가 빠졌다는 점이다.  대신 선군정치 노선과 당 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고 영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당시 제3차 당 대표자회가 김정은으로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당 정비 차원의 행사였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변모했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당'의 위상으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또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밑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위업,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가 포함되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한 당이 됐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당 창건 70돌 기념 노작에서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옳게 계승하지 못하면 당이 변질되고 결국에는 혁명의 좌절을 가져오게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었다"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당의 핵심사상임을 강조했다.

당원, 공민→혁명투사→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형의 혁명투사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당원의 자격이 명시되어 있다. 북한에서 당원은 조선공민이라는 초기 정의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의식을 지닌 자각적인 혁명투사, 당과 수령,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한 주체형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의미가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무장한 주체.사회주의 위업을 달성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당원을 규정한다.

제1,2차 당 대회에서는 20세 이상으로 1년 이상의 당 연한을 갖고 서로 아는 사이인 당원 2명이 보증을 서면 입당자격이 주어졌다.

이렇게 입당한 당원은 △자주독립국가건설, △법령.당 규약 준수, △당 상급기관 복종, △당 회의 의무참가, △입당금 당비 및 의연금 납부, △대중교양, △기술생산능력, △모범의 의무를 지녔다.

그러나 제3차 당 대회가 열리면서 당원 자격은 18세 이상으로 연령이 낮춰졌다. 이는 조선노동당을 확립하면서 당원의 확보가 관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1년 이상 당 활동을 한 2명의 추천, △조선민주청년동맹원의 입당보증은 1명 등으로 조선노동당 입당 조건을 다소 까다롭게 했는데, 이는 당시 종파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독립 및 인민민주주의제도 공고화, △사상.조직 통일, △맑스-레닌주의 이론 연구, △비판 수용, △의무보고, △비밀엄수 등 당 규약을 토대로 의무조항을 늘려 김일성의 당에 복종하는 당원 양성을 꾀했다.

   
▲ 2013년 11월 6일 해군 구잠함 233호 지휘관과 해병들에게 당원증이 수여됐다. 사진 속 붉은 색 소책자가 당원증으로 파악된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제4차 당 대회에서부터는 입당 추천인 자격이 2년 이상 당 활동을 한 자로 좁혀진다. 그리고 후보당원 조항을 추가해 추천을 받더라도 1년의 후보당원 활동을 해야한다. 후보당원이 됐다고 무조건 정식 당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행 정도에 따라 자격이 주어진다.

당원의 의무도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건설, △당의 혁명전통 체득, △종파.지방.가족주의 반대, △공산주의적 도덕품성 항목을 추가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 확립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했다.

김정일 시대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 △주체사상.선군사상.혁명전통으로 무장,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하나로 움직임, △혁명적 사업기풍과 생활기풍, 당비 매달 납부 등으로 10개 의무조항을 뒀다.

또한 "상급이 주는 어떤 과업이라도 그것이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어긋날때에는 그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권리조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명예당원 항목을 신설해, 나이가 많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당원을 명예당원으로 하고 명예당원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2012년에 개정된 당 규약은 현재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구체적인 당원의 입장조건과 의무조항을 확인할 수 없으나, 대체로 2010년 당원 항목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노동당이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규정됐다는 점에서 당원의 의무도 '김일성-김정일주의' 무장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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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나선 큰물피해 한달만에 ‘와다닥’

 
 
1천8백가구 건설 새집들이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07 [07:5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북은 큰물 피해를 입은 나선시에 1천800여 가구 규모의 주택을 새로 짓고 입주를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6일 조선중앙방송을 인용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선시 선봉지구 백학동지역에 1천300여세대의 단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일떠서 옹근 하나의 주택구역이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어 "청계동, 유현동, 관곡동지구 등 여러 곳에 500여세대의 소층 단층살림집들이 주변 풍치와 어울리게 새로 건설돼 새마을들이 생겨났다"며"인민군 군인들은 단 2일동안에 1천300여세대의 살림집 기초공사를 끝내고 열흘만에는 전반적 살림집들의 벽체축조를 완성하는 성과를 이룩했다"고 소개했다.

 

▲     © 이정섭 기자

중앙방송은 또 "주택 보수에 동원된 인민군 군인들은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선봉지구 2천700여 세대의 살림집 보수를 와닥닥 해제꼈다"고 강조했다.
나선시에서는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지난 8월 22∼23일 폭우가 내려 40여 명이 사망하고 가옥 1천여 채 이상이 파손됐으며 1만1천 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학실한 피해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사업을 중요 의제로 상정하고 인민군이 나서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 작업을 당 창건일 이전에 끝내라는 당부와 함께 사회주의 선경으로 건설할 것을 강조한 후 직접 수해복구 지역을 현지지도했다.

 

한편 김정은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주민들에게 집들이 선물도 전달했다. 선물 전달식은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김평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용진 내각 부총리,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5일 나선시 곳곳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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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왜 배워? 박 대통령이 갔잖아

 
 
‘야당이 하면 종북, 박근혜 대통령,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하면 관광’
 
임병도 | 2015-10-07 08:33: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월 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역사교육 정상화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발언이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시중에 출판된 한국사 참고서를 문제로 들면서 ‘균형 잡힌 역사인식 형성을 위한 한국사 교과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일부 한국사 교과서에 나온 ‘주체사상’이나 ‘만경대에 왜 온 건가?’ 등의 예문을 제시하면서 ‘이런 것을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정교과서 추진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왜 학생들이 ‘주체사상’이나 ‘만경대’를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경대 방문 논란’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구체적으로 누구와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어디를 방문했는지는 현재까지도 상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내용은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방북기에는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을 찾았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로 수정됐습니다. 왜 갑자기 방북기의 내용이 수정됐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기에 나온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이라는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방북기에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내용이 올라오자 언론들은 이를 보도했고, 논란이 일자 수정된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만경대 방문은 또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 측에서는 “공연이 있었던 만경대 소년궁전만 갔을 뿐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에는 간 적이 없으며, 이것은 당시 통일부도 확인한 사안”이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만경대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 아이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만경대 방문 논란을 알기 위해서는 만경대 정도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체사상탑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2008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이 영상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체사상탑을 방문하고, 주체사상탑 찬양 현판들을 둘러보는 모습도 자세히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체사상 방명록에 “기다리던 단비가 오는 가운데 평양의 전경을 잘 보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깁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나 방북기에는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체사상탑은 김일성의 70회 생일에 맞춰 1982년에 완공된 높이 170미터의 석탑입니다. 주체사상탑 자체가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기념하기 위한 탑입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주체사상탑에 갔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그냥 ‘관광’차원에서 갔다고 해명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처럼 “평양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라고 해서 올라가 살펴본 것밖에 없다”는 변명밖에 하지 못합니다.


‘야당이 하면 종북, 박근혜 대통령,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하면 관광’
 
2002년 방북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정치인 자격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상황이었고,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특별기를 보냈고, 김대중 대통령이 머물렀고 백화원 영빈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김정일이 직접 백화원으로 찾아와 단독으로 1시간가량 면담도 했고, 김정일의 제안으로 베이징이 아닌 판문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치인으로 가지 않은 순수한 방북이었다고 하기에는 북한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통령 의전 급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경대나 주체사상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홈페이지에 방북기를 잘못(?) 쓰지도 않았고, 관광이라고 가자고 했더라도 주체사상탑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보나 야당 인사들이 주체사상탑과 만경대를 방문하면 ‘종북’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가면 관광이라고 합니다.

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과의 대화 내지는 향후 통일을 위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만 알면 됩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마치 현행 역사교과서를 ‘종북 교과서’로 왜곡하면서 국정교과서 추진을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왜 알아야 하느냐고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과거에 갔다 와서 논란이 된 이유 정도는 고등학생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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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물리학>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박근혜 대선 압승? 지도만 바꿔봤을 뿐인데..."

[e사람] <세상물정의 물리학>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15.10.06 09:01l최종 업데이트 15.10.06 10:15l

 

 

'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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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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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대통령선거 결과를 인구 비례에 맞춰 다시 그린 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득표율은 51.6% 대 48.0%로 박빙이었지만, 지역별 1위 후보를 표시한 전통적 지도만 보면 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역 면적으로 인구 밀도에 맞춰 늘이거나 줄였더니 두 후보가 차지하는 면적이 실제 득표율에 더 가깝게 나타났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보이는 정보라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 대학원생 이일구, 조우성 씨와 함께 이 지도를 만든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48)는 언뜻 과학과 무관해 보이는 선거 결과에 간단한 물리학 방법론을 적용해 오랜 고정관념을 깼다. (관련기사: [사이언스온] '51.6 대 48.0' 득표율 그대로 보여주는 인구비례 전국지도

오지랖 넓은 물리학자,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이처럼 과학 연구 결과가 세상의 관심을 끄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자연과학 가운데서도 물리학은 왠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을 깨는 데 '세상에 뛰어든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오지랖'도 한몫했다. 김 교수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수많은 '입자'에 해당하는 '빅데이터'에 물리학 방법론을 적용한 사회적 연구 결과물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프로야구팀들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표를 짠다든지, 윷놀이에서 유리한 전략을 계산한 게 대표적이다. 컴퓨터로 무려 10억 번 계산했더니, 같은 편을 업고 가는 '평화적인' 전략보다 상대편 말을 잡는 '공격적인' 전략이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펴낸 <세상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에는 이런 '오지랖 넓은' 연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에서 따왔다는 책 제목처럼, 지난 10월 2일 찾아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 있는 김 교수 연구실 모습도 사회학자의 연구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보고 분석하는 데 쓰는 컴퓨터와 프로젝트, 강의할 때 쓰는 장난감 같은 모형들이 고작이었다. 

때마침 김 교수는 10년 만에 연구년(안식년)을 맞아 강의는 없었지만, 제자들 논문 지도와 각종 연구로 여념이 없었다. 책에 포함된 상당수 내용들이 논문으로 선보였지만 정작 앞서 인구 비례 지도는 논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 물리학자인 마크 뉴먼 미시건대 교수가 지난 2006년 미국 대선 결과에 사용한 방식을 단순히 우리나라 실정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중부는 인구가 적은데 보수층이 많아 공화당 지지가 많고, 동부와 서부는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데 보통 지도를 그리면 전부 빨간색(공화당)이고 파란색(민주당)은 거의 없어 보여요. 마크 뉴먼 교수가 인구 밀도에 맞춰 그리니 가운데가 쪼그라들고 양쪽이 커지니까 비슷비슷하게 경쟁했다는 걸 알게 돼요. 우리나라도 2012년 대선 때 처음 그려봤어요. 박근혜-문재인 득표율 차이가 없었는데 지도를 보면 박근혜 후보가 압승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반반이었다는 게 명확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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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 지역별 1위 득표자를 표시한 지도(왼쪽)와 지역별 인구밀도를 감안해 그린 인구 비례 지도. 붉은색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파란색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 김범준 교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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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등장에 30년 남짓... 결국 정치인들 작품"

지난해 4월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지도에 표시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지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인구 밀도를 적용하면 강원도를 비롯한 도 면적은 줄고 서울과 6대 광역시 면적이 늘면서 양당이 균형을 맞췄다.

김 교수는 마크 뉴먼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의 뿌리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1963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한 후보의 득표율을 인구비례지도로 그려봤더니, 1971년까지만 해도 동-서간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1987년 대선부터 점차 커지더니 1997년 대선에서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그래프를 토대로 김 교수는 "한국을 동서로 양분하는 지역감정은 (백제-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길게 잡아 30년도 안 되는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기간에 만들어지고 고착화됐다"면서 "지역감정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투표로 선출되기를 바란 정치인을 위해 조장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현재 '서울 영등포구와 구로구에서 야당 지지 성향이 높은 이유가 전라도 출신이 많아서'라는 명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통계청 전입·전출 자료를 토대로, 전라도 지역 출신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때 아버지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확률, 현재 거주지 주변 사람들 영향을 받아서 그 지역 대다수가 지지하는 후보로 바꿀 확률 등을 계산한 뒤 실제 선거 득표율과 비교해 보는 방식이다. 

"마크 뉴먼 교수 연구도 자세히 살펴보면 각 지역 인구 밀도를 정의하고 인구밀도가 균일하게 퍼지는 수학적 과정을 정의한 상당히 아카데믹한(학문적인) 연구예요. 하지만 저 지도를 달리 그려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거죠. 저도 살다 보면 궁금한 게 참 많은데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해 본 거죠."

"과학자는 가치중립적? 맘에 안 드는 결과 선택 안 할 수도"

김 교수가 이렇게 색다른 연구 주제에 빠진 계기는 이처럼 개인적인 '궁금증'과 '재미', 그리고 '비판의식' 때문이다.

"보통 과학자들 활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맘에 든다, 안 든다 판단할 수 있거든요. 한 과학철학자가 과학하는 사람들이 철학이나 가치관이 없다고 하지만, '체크인 안하고 몰래 들여온 수화물' 속에는 반드시 있다고 한 것처럼 모든 인간 활동이 마찬가지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거론한 '때맞음(동기화)' 관련 논문이 대표적이다. 한 연구팀은 계층화된 어떤 조직에서 여러 구성원이 동시에 박수 소리를 내려고 할 때 상명하복의 계층구조가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런데 김 교수팀이 개개인마다 '진동수'가 다르다는 변수를 추가해 오히려 시간은 더 걸려도 계층 간 의사소통이 활발할 조직일수록 더 '때맞는' 박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상반된 결론을 끌어냈다.

"일단 그 논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논문에서 고려하지 않은 요소들이 보이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똑같다고 가정하는데 실제로 그렇진 않잖아요?"

한마디로 논문에는 진보와 보수 같은 과학자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만, 어떤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처음 연구도 수학적으로 올바른 논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면 난 그 논문을 쓸까 말까 고민했을 거예요. 비판적인 생각이 들어 제 연구를 시작한 거죠. 그렇다고 논문에 민주적 구조니 상명하복 같은 말을 넣을 순 없어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고 집단적으로 의논해서 좋은 결론을 내리고, 시간은 오래 걸려도 위에서 시키면 나는 한다는 '상명하복' 스타일보다는 훨씬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개인적으로 기뻤던 연구예요. 그 논문을 쓰고 나서 물리학자의 가치관이나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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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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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여론 조작, 페이스북은 안 돼도 트위터는 통한다"

'통계학'이나 '물리학'은 그나마 익숙하지만 '통계물리학'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다.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학문인 걸까?

"물리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미시적인 입자 하나하나가 어떤 상호작용을 해 우주를 만드는지 연구해요. 그 입자가 굉장히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구하는 게 통계물리학이에요. 통계학도 많은 샘플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듯 통계물리학도 굉장히 많은 입자들 가운데 의미 있는 양을 추출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관심 대상이 사회 영역까지 조금씩 넓어진 거죠."

통계물리학은 이른바 '빅데이터' 연구의 성장으로 물리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분야지만 국내 연구자는 40명 정도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와 정하웅 카이스트 석좌교수,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장이 대표적이다. 

빅데이터의 힘을 얘기할 때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트위터에 한 아이디(계정)로 올린 글을 다른 아이디로 '인용(리트윗)'하고, 그걸 다른 아이디로 퍼 나르는 일을 반복해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처럼 호도했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72쪽. '리트윗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하지만 다른 한편 저렇게 소수가 여론을 조작한다고 대선 결과까지 뒤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대선 결과가) 바뀔 수 있죠. 사람들이 전부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 처음 만든 트윗을 본 사람은 얼마 안 돼도 점점 퍼지게 돼요. 사람들 성향이 책 살 때 베스트셀러 목록 보듯 메시지 내용보다 많은 사람이 언급하면 그걸 더 중요시해요. 소수라도 많은 트윗을 날리고 중요한 것처럼 판단되면 메시지 진위에 상관없이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이른바 '마당발'일수록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결망 효과'다. 하지만 당시 트위터 마당발 상당수는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조직적인 여론 조작 세력에 맞서 '상쇄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반인이 헌신적으로 여론 호도하려 하지는 않죠. 자발적인 힘과 조직적인 힘의 싸움이라면 조직적인 게 영향이 더 있을 수밖에 없어요. 페이스북은 그룹끼리 얘기하는 방식이어서 영향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트위터 속성상 한 사람이 다수를 향해 말하는 방식이고 상대방의 팔로워(구독 신청)를 거절할 수도 없어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퍼트리기에 유리해요. 트위터는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광자보다 빛알, 물리학 용어부터 알기 쉽게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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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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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가 세상에 다가가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어려운 물리학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다. 앞서 '동기화'를 '때맞음'으로 바꿨듯, '공명'을 '껴울림'으로, '광자'를 '빛알'로 바꾸는 식이다. 꼭 우리말이 아닌 한자라도 '만유인력' 대신 '보편중력'으로 바꾸면 훨씬 의미 전달이 쉽다. 하지만 때맞춤, 껴울림 같은 우리말이 더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때맞음'이 어색한 건 우리가 '동기화'를 먼저 배워서 그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광자'란 말을 이해시키려고 한자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20년 전부터 물리학용어집을 발간하면서 은사인 최무영(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많이 노력했지만 반발도 컸어요. 그래도 지금은 두 용어를 병행하고 수업시간에 '빛알'을 쓰는 교수들도 늘고 있어요. '만유인력'도 다른 데서 '만유'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보편적 중력'이라고 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잖아요."

'세상물정'이란 융합 테이블에서 만난 사회학과 물리학

김 교수는 10여 년 전 노명우 교수와 같은 아주대에서 교수 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공교롭게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세상물정...>이라는 책 제목도 양쪽 출판사 대표들의 친분 덕에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노 교수는 이 책 원고를 먼저 보고 "사회학자와 물리학자는 동일한 세상에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임을 '세상물정'이라는 융합의 테이블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했다"면서 "물리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회학자는 그 테이블에서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통찰에 감탄했다"는 인상 깊은 추천사를 남겼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은 김 교수도 "이 책을 보며 인문사회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고 감탄하면서 "노 교수도 기존 사회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강단 사회학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회학을 얘기하자는 메시지로 들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세상물정의 물리학>도 물리학이 사회와 대중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 전반에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강한 비판과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도 느껴졌다.

"개인적 가치관인 것 같아요.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목격하는 시기와 (학창시절이) 겹치고 과거 독재에서 벗어나 사람이 참여해서 바꾸는 사회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개인적 경험으로도 많은 사람이 토론해서 내린 결론이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하는 것보다 당연히 좋겠죠. 그렇다고 집단이 만든 결정이 항상 옳은가,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가 숙제죠. '숙의 민주주의'란 말처럼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집단지성은 생각 없이 손든 사람들 숫자를 세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의미가 있어요."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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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06 08:34
  • 수정일
    2015/10/06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김용택 | 2015-10-05 10:07: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공자의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변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군대”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다시 자공이 묻자 공자는 “양식”이라고 답했다. 논어에 실린 내용이다. 양식이나 국방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는 가르침이다. 공자뿐만 아니라 신뢰가 통치의 기반이라는 것은 성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가 아닌가? 박근혜대통령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공약이다. “저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위에 남북한의 신뢰, 국제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습니다.”

이런 박대통령의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우리도 반세기 동안 동족간의 반목과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공존, 통일의 시대를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기 2년여를 남겨 놓고 현실에서 신뢰프로세스는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는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가장 심각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어렵게 만든 남북이산가족 상봉조차 성사될지 의문이다.

‘약속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다’

지난 7월 1일 JTBC 손석희 아나운서가 9시뉴스를 진행하면서 꺼낸 클로징 맨트다. 오죽하면 뉴스 진행자의 입에서 이런 험담까지 들어야할까? 19대 총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국회 의석수 48석을 아우르는 서울에서 선거를 완패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자 박근혜의원을 당대표로 추대하면서 당기와 당명까지 바꾸면서 새누리당의 개혁이 시작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꺼낸 카드를 보면 우리 정치도 후진성을 벗고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이런 약속을 듣고 있으면 왜 아 그렇겠는가?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국민행복의 길을 열어갈 첫 번째 과제로,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정당한 기업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로, 저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전통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겠습니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어 내수 중소기업을 키워나가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2012년 7월 10일, 새누리당 예비후보 박근혜)

이런 공약 역시 국민들이 열광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의 공약을 들을 때마다 이제 유럽 선진국처럼 다른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 벅차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의 공약 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공약을 시행되기는커녕 하나같이 공약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배신감과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얼마나 지켜지고 있나?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후보로서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어디 지역에서 살든, 어떤 계층에 속하던 간에, 억울한 일없이 정당하게 대우받도록… ‘차별도 없고 특혜도 없는 세상,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경제, 불공정거래가 발붙일 수 없는 경제, 좋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성장시스템을 만들고, 위기와 갈등, 반칙과 불공정, 그리고 불확실성과 혼란의 악순환을 끊고 국민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미지 출처 : 늙은 도령>

박대통령의 공약과 현실을 비교해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차라리 그런 공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기 격이다. 아니 노골적으로 의도된 공약(空約)으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저는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거짓말… 그가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면 소가 웃을 얘기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와 같은 공약은 이행이 아니라 거꾸로 가고 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면서 철저하게 친재벌정책을 펴고 있다. 4대구조개혁이니 노동개혁을 보면 그렇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며 ‘노동시장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미운살이 박힌 노동자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단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유치원수업시수까지 늘리고 시행도 하기 전의 교육과정을 또 바꾸겠단다. 나라사랑을 말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한자병행을 강행하겠다는 게 박근혜정부다. 그가 얼마나 사기에 가까운 정책으로 포장하는지는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게 왜 죄가 되는가? 취업을 해도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요, 그것조차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와 철도 교육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는 게 박근혜정부다.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 비정규직 800만, 1천만 노동자를 두고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확대… 라는 정책이 어떻게 복지정책이며 경제민주화인가?

3포시대, 5포세대도 모자라 7포세대라는 청년들의 한탄의 소리가 SNS를 채우고 있겠는가? 이제 3포, 5포 7포세대 뿐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민 가고 싶다고 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두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 민영화, 교육민영화,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자본이 행복한 사회는 노동자도 행복할까? 박근혜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공약을 믿고 기다리는 국민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는 그의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다리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오기나 할까?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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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김일성.김정일의 당, 어머니당'[친절한 통일씨] 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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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5  17: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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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거리에 걸린 당 창건 70돌 축하 문구. 북한 조선노동당 당기 중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중앙노란색 망치, 낫, 붓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의미한다.[자료사진-통일뉴스]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 "조선노동당은...인민대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어머니당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간다."

지난 2012년 개정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의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인민을 보살피는 당이라고 풀이된다.

김일성-김정일주의 당, 어머니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 혁명의 참모부 등 다양한 표현을 지닌 북한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북한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안다는 것도 사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속 깊이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다. 분단 70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조선노동당의 출발

북한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창건됐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출발이 1920년대라고 설명한다.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17일 일제에 맞서 결성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이 조선노동당의 토대라는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ㅌ.ㄷ'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반제청년동맹 등을 결성하고 공산주의자 육성과 도시와 농촌 의식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당시 함께 활동한 이들이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김혁은 김일성이 생전에 잊지 못한 동지로 평가받았고, 훗날 부총리가 된 김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어 김일성은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중국 만주 장춘현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대회'(카륜회의)를 열고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지도사상과 혁명노선 및 전략전술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7월 3일 첫 당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조선노동당의 기원이다.

이후  1930년 10월 온성일대 당 조직 결성, 1934년 5월 조선인민혁명군(훗날 조선인민군) 당 위원회 결성, 1936년 2월 남호두회의, 5월 조국광복회 창건 등으로 이어져 해방 후인 194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의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창립됐다.

   
▲ 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이 발표된 평양 중앙지도부 건물. 현재 북한은 당 창건 사적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당시 '서북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 마지막 날인 13일에 창립이 선포됐지만, 김일성 주석이 연설을 한 날짜인 10월 10일을 창립 날짜로 지정했다. 이어 14일 펑양시군중대회에서 김일성은 지도자로 소개됐다.

그리고 1946년 2월 김두봉,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을 중심으로 창당된 조선신민당과 8월 합당대회를 통해 '북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광범한 근로대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묶어세우고 조직동원할 수 있는 통일적인 대중적 당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편, 남측에서는 1945년 9월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재건, 1946년 1월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해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됐다. 그러나 1949년 6월 남북조선 노동당은 1국 1당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1926년  'ㅌ.ㄷ'에 뿌리를 둔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선포를 거쳐 1949년 6월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 북한은 "피어린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장기간에 걸쳐 억세게 다져온 주체형의 당 창건 위업의 실현"이라고 표현한다.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 구조

70년 역사를 지닌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은 무엇인가.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은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로 시작한다. 즉, 김일성이 당을 만들고 김정일이 당을 강화 발전시켜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라고 밝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화하는 성격을 지닌 당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조선노동당은 최고 형태의 혁명조직이고 수령, 당, 계급, 대중이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 아래에서 향도적인 영도역량이며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노동당은 노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 원칙을 토대로 △사상, 기술, 문화 3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와 사회주의 문화발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의 민족의 통일, △반제자주 연대성 강화를 통한 세계자주화, 평화 및 세계사회주의운동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성격과 목표를 지닌 조선노동당은 집체적 지도기관으로 당 대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당 중앙군사위원회을 두고 있다. 서열로 본다면, 당 대회-당 대표자회-전원회의-정치국 순이나 당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 당 대표자회, 그 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당 대회는 조선노동당 규약 2장 14조 1항에 명시된 '가장 상위에 있는 최고지도기관'으로 2010년 개정된 규약에는 소집시기가 명시되지 않지만 1980년 당 규약에는 5년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1946년 8월 제1차 당대회, 1948년 3월 제2차, 1956년 4월 제3차, 1961년 제4차, 1970년 11월 제5차, 1980년 10월 제6차가 열렸을 뿐 3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긴급한 당의 정책이나 전략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위해 당 대표자회를 소집하도록 한다. 당 대표자회는 1958년 3월 1차, 1966년 10월 2차, 2010년 9월 3차, 2012년 4월 4차가 열렸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하는데 △전 당에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며,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립하고, △당과 혁명대열을 공고히하며, △행정 및 경제사업을 지도조정하고, △혁명적 무력을 조직, 그들의 전투능력을 높이며, △기타 정당 및 국내의 기관의 활동에서 당을 대표하고,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임무와 역할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당 중앙위원회 위원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당한 위상을 의미한다. 제1차 당 대회시 중앙위원은 43명이었으며, 지난 1980년 6차 당 대회에는 정위원 145명, 후보위원 103명이었다. 1명의 위원이 약 1만명의 당원을 대표한다고 할 때, 1980년에는 약 248만명이 노동당원인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하도록 한다.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 내각성원, 도당 간부, 사회단체 간부, 주요 기관 및 공장 기업소 간부들이 참석한다. 여기서는 당의 주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중이 크다.

하지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상시적으로 열리는 회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핵심은 당 정치국 및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하는 정책 수립의 절대권력기관이다.

그래서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의 변동은 북한의 정책 혹은 정책변화를 읽을 수있는 키워드가 된다. 이 중 상무위원회는 1980년 10월 김정일 권력승계 당시 설치된 것으로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이 상무위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다 1981년 김정일이 김일성 다음에 불렸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이며, 위원은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등이고, 후보위원은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 등이다.

조선노동당의 또 다른 기구로 비서국이 있다. 비서국은 상설기관이 아닌 협의기관으로 당 내부사업과 그 밖의 실무적 문제들을 토의.결정해 집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정치국에는 당 일꾼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포진된다면, 비서국은 전임 당 일꾼들인 비서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밤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 당 비서를 맡고있다.

그리고 이들 비서국은 전문부서를 두고 있는데, 조직지도부, 간부부, 경공업부, 계획재정부, 과학교육부, 국제부, 군사부, 근로단체부, 기계공업부, 당역사연구소, 문서정리실, 민방위부, 선전선동부, 신소실, 재정경리부, 총무부, 통일전선부, 38호실, 39호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당 중앙 검열위원회, 당 중앙 검사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으며, 지역에도 도.시 당 대표자회, 도.시 당 위원회가 있다.

   
▲ 1945년 12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결정서 초안을 토의하는 김일성.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 시대의 조선노동당(1945~1994)

조선노동당 70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 당 대회, 당 대표자회,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너무 내용이 방대해 여기서는 북한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내용만 다루기로 한다.

김일성 시대는 조선노동당 창건과 공화국 창건 등 북한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1946년 8월 1차 당대회를 시작으로 1948년 3월 2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 체제 틀을 잡았고,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계급교양강화를 통한 사회주의교양과 혁명전통교양사업이 심화됐다.

그러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와 소련파가 숙청되고 1958년 3월 열린 제1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반종파투쟁'을 일단락하고 김일성 유일지도체계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1961년 9월 4차 당대회,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를 거쳐 대내외 자주노선을 강조한 권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50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현 상무위원회)에서 군대 내 정치기관 조직, 1950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의 당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 강화, 1951년 11월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 195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등에서는 한국전쟁 극복을 통한 당 강화 발전이 강조됐다.

그리고 1953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 중공업 우선 발전, 1956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천리마운동 시작, 196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의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 채택, 1967년 5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통한 전당 유일사상체계 확립 등 김일성 시대 당의 기틀이 완성됐다.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시대에서 김정일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맞이했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 과업을 제시했다고 북한이 평가하는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를 거쳐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서열 5위로 발표되며 후계구도를 명확히했다.

   
▲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 대회. 여기서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시대의 조선노동당(1994~2011)

1994년 총비서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 시대 공식적인 당 회의는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가 유일하다.

제3차 당대표자회의는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식화하는 회의의 성격이 컸다. 김일성 시대의 당 대회, 당 대표자회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는 당 건설과 국가 발전이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김정일 시대에 공식적으로 열린 당 회의는 후계구도에만 치우쳐있다.

그래서 일각에서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시기는 당과 국가체계가 약화된 시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1980년 제6차 당 대회로부터 30년,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로부터 44년만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 후계구축을 위해 당 기능을 복구하고 '김일성 동지의 당', '선군정치', '영도의 유일성', '계승성' 등을 당 규약에 명확히했다.

   
▲ 2012년 4월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제1비서로 추대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2011~현재)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은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유일영도체계를 김정은 제1비서로 확고히 했다.

또한, 조선노동당을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세우고, 2013년 1월 제4차 당 세포비서대회, 2013년 2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2013년 2월 3대혁명소조회의,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 2014년 2월 제8차 사상일꾼대회, 2015년 8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등이 개최돼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 김일성 시대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의 뒤를 이었고,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장성택을 숙청해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히했다.

또한, 경제 등 국내정책을 다루는 화요회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금요회의 등 협의기구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 시대는 당을 중심으로 한 국가운영을 강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Q&A]

(1) 북한의 당원은 아무나 되나요? 당비도 낼까?

북한의 당원 가입과 당비 등은 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2012년 당 규약은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2010년 당 규약에서 당원 가입, 당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 당원은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이며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가 든든히 서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며 당 규약을 준수하려는 근로자"이어야 한다.

해당 조건에 맞으면 18세가 되면 입당 청원서와 당원 2명의 입당 보증서를 당 세포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이 입당하려 한다면, 시.군 청년동맹위원회의 입당 보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입당 보증인은 2년 이상의 당 생활 경력을 지녀야 하며, 입당 문제는 개별심의를 거쳐 1년의 후보당원 기간을 지내야 한다. 그럼에도 입당 자격이 안 되면 제명되며, 입당하게 되면 당원증을 받고 입당 선서를 한다.

당비는 월 수입의 2%로, 매달 당비를 내야 한다.

(2) 북한의 당 마크는 뭔가요?

북한 조선노동당의 마크는 망치, 낫, 붓을 교차한 표식이다. 당 규약은 마크에 대해 "당이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뭉친 노동자, 농민, 인텔리(지식인)를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전위부대이며, 인민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당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당기는 붉은 색 깃발에 중앙에 당 마크를 새겨넣은 것으로,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의미한다.

(3) 북한에는 당이 하나만 있나요?

북한에도 조선노동당 외에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 청우당 등이 있다.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11월 3일 창당,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민대중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적 지향과 요구를 배경으로 중소기업가, 상인, 수공업자, 소시민, 일부 농민, 기독교인 등으로 이뤄진 민주정당이다.

천도교 청우당은 1966년 2월 8일 창당했으며, 보국안민의 애국사상과 척양척왜의 자주정신으로 제국주의의 침략과 예속성을 반대하고 민족적 자주와 부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천도교를 믿는 농민들을 주로 한 민주주의적 정당이다.

여기서 사회민주당은 조선노동당과 같이 연합하고 청우당은 조선노동당의 3대혁명노선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으로 정의되지만, 일반적인 정치적 속성을 지닌 정당으로 보기는 힘들다.

(4) 북한 조선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어떤 차이가 있죠?

북한과 중국은 국가 지향점이 우선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로 외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중국은 '노.농 연맹에 기초한 인민 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로 다당합작제를 중심으로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의 출발도 북한 조선노동당은 2차대전 일본 제국주의에 대응한 반제, 반봉건주의로 항일 빨치산이 정치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창당했다는 점에서도 1차 대전 이후 청의 몰락과 서구열강의 진입, 러시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영향을 받아 산업노동자, 농민, 학생을 정치기반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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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0/06 [05: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창숙 통일인사 석방 촉구 기자회견     ©자주시보

 

통일뉴스, 뉴시스 등 합법적인 언론사에서 보도한 북 관련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도 보안법상 북 찬양 고무죄 위반이라는 검찰이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5일 수원지방법원 410호실에서 2시부터 7시까지 5시간여 진행된 박창숙 통일운동가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 증인으로 나온 보안수사대 수사관 2인은 5,000여 쪽의 방대한 증거자료를 몇 보따리 싸가지고 왔는데 그 주된 내용이 합법적인 언론사들의 글을 복사하여 박창숙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그것도 친구들에게만 공개한 것이었고, 그마저도 지난 1차 재판 도중에 비공개처리한 것임에도 북 찬양고무죄 위반이라며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남성욱 변호인은 “찬양고무죄와 관련된 판례가 여러 차례 나왔고 최근 2015년에도 나온 것이 있는데 그 판례와 이 증거들은 충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라고 묻자. 보안수사대 수사관은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재판장에서 웃음이 터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기준으로 이적성을 판단합니까?”
“내부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도 판례를 반영하여 변경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러자 은퇴를 앞둔 경험많은 수사관이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며 대답을 바꿈)

 

“도대체 이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재판정 웃음이 터지자 판사가 조용히 할 것을 요구)”

 

증인들의 대답은 심문이 진행될수록 거의 이런 식으로 ‘모르겠습니다. 답변할 수 없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등등 무성의하고 현실에 맞지 않은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남성욱 변호사는 이적목적성이 뚜렷하고 실질적인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확실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 들을 들어가며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라는 이적 규정은 시대 추세에도 맞지 않고 국민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면 개성공단사업, 북 어린이 돕기, 나무심기 돕기 등등 대부분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다 이적행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박창숙 씨를 촬영한 100장의 사진을 범민련 등 사람들과 만난 증거로 제출하였는데 실제로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진 등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인 수사활동인지, 관련 영장을 받아서 적법하게 진행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모르겠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등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실 범민련 사람들과 만났다고 해서 바로 죄가 될 수도 없다.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무슨 일을 모의했는가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재판을 참관한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의 과도한 적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실제 두 정부 들어 유엔인권위원회의 한국 인권 지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인터넷에서의 사상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21세기 들어 한국만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어 세계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음 재판은 19일 오후 3시(앞 재판이 일찍 끝나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음) 수원지법 410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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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급식 비리’ 폭로한 충암고 교사, 전방위 압박당했다


등록 :2015-10-05 21:09수정 :2015-10-05 21:49

 

‘짬짜미 의혹’ 폭로 교사 “제자들 한 학기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상급기관의 감사와 제재도 학교를 바꾸지 못했다. 2011년 충암학원은 학교 공사비 횡령과 회계 부정 등의 비리 사실이 적발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법인 이사 전원에 대한 임원취임승인 취소 처분 등 제재를 받았다. 제재에 따라 감축됐던 학급수는 한 해 만에 원상복귀됐다. 임원승인이 취소된 이사장은 ‘법인 사무국장’으로, 해임을 요구받은 충암고 교장은 교감으로 돌아왔다.

 

학교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충암고 소속 ㄱ교사는 지난해 학교의 급식운영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끼니를 챙겨 먹고도 자꾸 배고프다고 했다. 성장기여서만이 아니다. 애초에 밥상이 부실했다. “똑같은 재원을 갖고도 질이 다른 음식이 나올 순 있지만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ㄱ교사는 판단했다. “우리 학교 3학년 제자들이 한 학기만이라도 개선된 급식을 먹고 학교에서 겪은 상처 일부를 치유하고 졸업하게 하고 싶었어요.”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ㄱ교사는 말했다.

 

 

5개월전 교내서 공개 비판하자
전 이사장이던 법인실장이 불러
“내가 그런짓 하라고 채용했나”

 

급식업체는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
직원들 시켜 ‘수업 사찰’한 의혹도

 

업체의 고소에 검찰 “무혐의” 불구
학교선 교사 징계 절차 진행중

 

 

위탁배송업체와의 짬짜미 의혹 등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일 밝힌 충암중·고교 감사 결과는 ㄱ교사가 학교 안에서 먼저 제기한 문제들이다.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급식운영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바뀐 것은 ㄱ교사의 처지였다. 학교와 학교의 위탁을 받은 업체, 학부모들이 전방위적으로 그를 압박해왔다.

 

지난 5월 급식 관련 교내 1인시위를 벌인 뒤 전 이사장인 ㅇ사무국장이 ㄱ교사를 불러 다그쳤다. “‘내가 채용할 때는 그런 짓 하라고 채용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허락 안 해줬으면 여기 학교에 왔겠어?’라고 말하더군요.” 명백한 학사 개입이고 압박이었다. 학교와 계약을 맺은 위탁배송업체의 직원이 수업을 사찰한 의혹도 있다. “설마 싶었지만 여러 차례 학생들이 저에게 ‘조리종사원 형들이 선생님이 수업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나 급식 이야기를 하느냐면서 녹음까지 했다. 선생님을 음해하려는 것 같다’고 제보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지요.”

 

해당 업체는 ㄱ교사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충암고 교감의 ‘급식비 막말’ 논란 이후 ㄱ교사가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것을 문제삼았다. “ㄱ교사의 폭로로 인해 운영하는 식당의 체인점 계약이 몇 건 날아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9월 해당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학교와 업체의 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ㄱ교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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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여전히 학교의 징계 절차는 진행중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징계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 징계 절차가 일시 중단되긴 했지만 ㄱ교사는 “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학교는 징계를 진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의 앞날을 생각해서 용기를 내긴 했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학교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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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교과서 안 돼"... 서울대부터 학부모까지

타임라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 사회 전반 확산

15.10.05 19:57l최종 업데이트 15.10.05 19: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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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 역사정의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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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교사, 교수, 학생, 학부모, 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교육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애초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8일 이후로 발표 시기를 미뤘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감사 이후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하려고 한다"면서 "처음에는 8월에 결정을 보자고 그랬는데 9월로 넘어오고 9월에 찬반이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에서는 국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역사교육 정상화 첫걸음 내딛을 때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변화다"라면서 "시중에 고교 참고서를 보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 확립과정을 이해해야 된다고 나왔다.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9월 2일부터 <한국사> 교과서 반대 목소리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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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정용욱 한국역사연구회장(왼쪽 세번째)이 9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이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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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은 9월 초부터 쏟아졌다. 당시 교육부가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나왔던 때다. 

9월 2일 전국역사교사 모임 소속 교사 2255명은 교사 선언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강조하지만, 그 진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 시키려는 시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결정되면 즉각 폐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서울대 역사학 전공 교수들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반대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에는 역사학 전공 교수 44명 가운데 77%인 3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 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운동후손·단체, 학부모, 14곳의 시도교육감, 법학연구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진,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일반 교사 등도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서울대에 이어 부산대·덕성여대·고려대·서원대·성균관대·연세대·한국교원대·동국대·가톨릭대·한국외대·신라대 교수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충남, 대구·경북 교수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10월 1일에는 전국 23개 대학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회가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다양한 검정 교과서로 한국사를 만나며 역사교사의 꿈을 키워 온 우리 예비 역사 교사들은 당연히 우리가 만날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검정 교과서로 미래의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비롯해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전국 470여 개의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등이 힘을 합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인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는 7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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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전투기는 ‘번개’에 맞아 격추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05 20:13
  • 수정일
    2015/10/05 20: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스텔스전투기는 ‘번개’에 맞아 격추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7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10/05 [12: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평양공습 노리는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
2.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조선에서 목격한 P-18급 조기경보레이더
3. 스텔스전투기의 공중우세신화는 이렇게 깨졌다 
4. 모든 스텔스기능 작전기종을 탐지, 추적하는 위상배열레이더
5. ‘번개’와 함께 등장한 접이식 위상배열레이더
6. 사세보 미해군기지 상공 감시하는 조선의 최신형 조기경보레이더  
7. 미국의 공해전 교리와 ‘작계 5015’는 어떻게 파산하였나?

 

▲ <사진 1> 미국이 '세계 최강 전투기'라고 자랑하는 F-22 스텔스전투기는 대당 가격이 1억5,000만 달러나 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최첨단 전투기다. 그런데 실전연습을 해보았더니, 이 전투기는 근접공중전에는 적합하지 않고 공습전에만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공군은 이 전투기를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가데나공군기지에 12대 배치해놓고, 기습적인 평양공습을 노리고 있다. 이 전투기가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이륙하면, 평양상공에 도달하기까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미공군은 전시에 이 전투기 12대를 1시간 거리에서 출격시켜 서해 상공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평양공습을 감행하려는 속셈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1. 평양공습 노리는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 10월 10일부터 서울공항과 성남공군기지에서 진행될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에 F-22 스텔스전투기 2대를 출품할 것이라고 한다. F-22 스텔스전투기 2대가 그 전시회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기간은 10월 20일부터 25일까지 닷새다.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순식간에 먹잇감을 덮쳐 잡아먹는 맹금(raptor)이라는 별명을 가진 F-22 스텔스전투기는 200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187대가 미공군에 실전배치되었다. 이 최신형 전투기에는 강력한 스텔스기능이 장비되었고, 레이더경보장치, 자외선/적외선미사일탐지장치, 추격회피레이더 같은 최첨단 전자장비들이 장착되면서 개발비용을 790억 달러로, 대당 가격을 1억5,000만 달러로 각각 끌어올렸고, 그래서 ‘세계 최강 전투기’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이런 사정을 보면, F-22가 적국의 방공레이더망을 뚫을 수 있다는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자신만만한 예견은 과대망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 1>


그런데 미국 <ABC> 텔레비전방송 2012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6월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진행된 ‘붉은기(Red Flag)’ 공군훈련에 참가한 F-22 스텔스전투기가 유로파이터(Eurofighter) 비스텔스전투기와 여러 차례 근접공중전을 벌였으나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세계 최강’이라는 F-22 스텔스전투기가 근접공중전에는 약하고, 공습전에만 강한 기종임을 말해준다. 그 전투기의 주특기는 공습인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중국을 겨냥하여 F-22를 전진배치한 거점은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가데나(嘉手納)공군기지다. 서해의 백령도에서 정남방에 있는 그 공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1,325km다. F-22는 시속 1,960km로 날아가고, 백령도에서 가데나공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1,325km이므로, 그 공군기지를 이륙한 F-22가 정북방으로 북상하여,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1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백령도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불과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2011년 4월 F-22 생산기업인 미국의 거대군수기업 락키드 마틴(Lockheed Martin) 경영자는 그 전투기가 조선에 대한 신속한 공습임무에 아주 적합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신속한 공습을 노리는 F-22가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출격하여 가장 먼저 전선에 투입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공습작전에 투입되는 F-22에는 위성항법장치(GPS)로 날아가는, 무게가 450kg이며 투발거리가 28km인 대형정밀유도폭탄인 통합직격탄(JDAM) 2발이 실리거나, 또는 무게가 110kg이며, 투발거리가 72~110km가 되는 중형정밀유도폭탄인 GBU-39 4발이 실린다. <사진 2>

 

▲ <사진 2> 공습작전에 투입되는 F-22 스텔스전투기에는 대형정밀유도폭탄인 통합직격탄(JDAM, 제이담이라고 읽는다) 2발 또는 중형정밀유도폭탄 GBU-39 4발이 실린다. 위의 사진은 통합직격탄을 F-22에 장착하는 미공군기지 작업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통합직격탄은 무게가 450kg이고, 28km를 날아가 타격대상을 파괴하는데, 위성항법장치(GPS)로 유도되므로 정밀타격을 할 수 있다. 고성능폭약이 들어있으므로 파괴력이 매우 강하다.     © 자주시보


스텔스전투기의 공중우세를 자랑하는 미국은 2010년 7월 하순 F-22 4대를 한미연합공군훈련에 처음 참가시켜 평양을 노린 공습전을 연습하였고,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일촉즉발상태로 고조되었던 2013년 3월 31일에는 가데나공군기지에 배치해두었던 F-22 2대를 오산미공군기지에 긴급히 전개하여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2014년에는 가데나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F-22를 12대로 대폭 증강하였다.  
F-22의 움직임에 관련된 위와 같은 정보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불과 1시간 만에 F-22 12대를 출격시켜 평양공습을 전격적으로 감행하려는 타격씨나리오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꾸민 평양공습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예상해보면,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의 날, 주한미공군 전투기들 및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들이 한반도 중부상공에서 뒤엉켜 혼전양상의 근접공중전을 벌이는 사이에 미공군 F-22 12대가 서해 상공으로 우회, 북상하여 평양을 공습하려고 접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개전 시각으로부터 1시간 만에 F-22 12대가 조선 서해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 정밀유도폭탄으로 평양을 공습하면, 조선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간다는 F-22 스텔스전투기를 요격할 방도는 없는 것일까?

 

▲ <사진 3> 비행체나 선체에 적용되는 스텔스기술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교전상대의 탐지레이더가 발사하는 전자파를 흩뜨려놓음으로써 전자파가 반사되어 전자파발신자에게 되돌아가지 않도록 비행체와 선체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거기에 더하여 전파흡수도료까지 비행체나 선체에 칠해놓아 전자파를 흡수하게 만든다. 비행체나 선체를 특수한 모양으로 설계하고, 일반도료와 다른 특수도료를 겉면에 칠해놓았기 때문에, 스텔스비행체나 스텔스함선은 비스텔스비행체나 비스텔스함선과 비교하여 외형이 다르게 생겼다.     © 자주시보

 

 

2.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조선에서 목격한 P-18급 조기경보레이더

 

스텔스기술은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묘술이 아니다. 그것은 교전상대의 탐지레이더가 발사하는 전자파를 흩뜨려놓거나 비행체 또는 선체에 흡수되는 원리에 따라 개발된 기술이다. 지방공기지의 탐지레이더나 추격기의 탐지레이더는 공중이동표적을 탐지하기 위해 전자파를 공중으로 계속 쏘아대는데, 그 전자파가 표적에 부딪칠 때 발생하는 반사파가 전자파발신자에게 되돌아가 표적의 위치를 알려주게 된다. 이것이 탐지레이더의 작동원리다. 그러므로 탐지레이더망을 뚫는 스텔스기술은 비행체 또는 선체에 부딪친 전자파가 반사되어 전자파발신자에게 되돌아가지 않고 주위에 흩어지게 만드는 각도로 비행체 또는 선체를 설계하고, 전파흡수도료를 비행체 또는 선체 겉면에 칠해놓는 것이다. <사진 3>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스텔스기술에 대항하는 반스텔스탐지기술(anti-stealth detection technology)을 개발하면 스텔스전투기를 요격할 수 있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탐지라는 것은 육안이 아니라 레이더로 탐지한다는 뜻이므로, 반스텔스탐지기술은 기존 탐지레이더와는 차원이 다른 반스텔스탐지레이더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술인 것이다. 
이동표적을 정밀하게 탐지하려면 주파수 파장이 긴 고주파레이더를 사용하고, 먼 거리에서 이동하는 표적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주파수 파장이 짧은 저주파레이더를 사용한다. 적국의 비행체나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되도록 먼 거리에서 조기에 탐지하여야 하므로, 조기경보레이더는 주파수 파장이 짧은 저주파를 사용하게 된다. 
반스텔스탐지기술은 아무나 개발할 수 있는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그 기술은 몇 차례 개발단계를 거치며 상향발전되었는데,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극소수 기술선진국들이 지나온 경험을 돌아보면 아래와 같다. 
소련이 1970년에 실전배치한 P-18 조기경보레이더는 주파수 파장이 매우 짧은 초단파(VHF)를 사용하였는데, 이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250km이고, 탐지고도는 35km다. 
지난 냉전시기에 소련은 적국의 공습을 먼 거리에서 차단하기 위해 P-18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어냈지만, 조기경보레이더를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필요성을 소련보다 더 절감한 나라는 조선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자체 기술로 P-18급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선이 자체 기술로 만든 조기경보레이더의 존재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처럼 존재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그 조기경보레이더의 명칭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생산되어 실전배치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조선이 P-18급 조기경보레이더를 실전배치하였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때는 그것이 실전배치된 때로부터 세월이 퍽 흐른 2009년이었다. 2008년 11월 27일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평안북도 대관군에 있는 레이더생산공장을 방문하였을 때, 그 군사대표단 성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촬영한 현장사진들이 2009년에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에게 조선의 P-18급 조기경보레이더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08년 11월 27일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평안북도 대관군에 있는 레이더생산공장을 방문하였을 때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이 2009년에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조선이 P-18급 조기경보레이더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250km, 탐지고도는 35km다.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의 보고서는 이 조기경보레이더가 1960년대에 중국이 생산한 레이더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착오다. P-18 조기경보레이더는 1970년에 소련에서 생산된 것이며, 위의 사진에 나타난 레이더는 조선이 자체 기술로 만든 P-18급 조기경보레이더다.     © 자주시보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은 자기들이 방문한 조선의 레이더생산공장에서 “1960년대에 중국이 생산한 대형 레이더”를 보았다고 자기 보고서에 기록하였지만, 그들이 본 레이더는 중국산 레이더가 아니라 조선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초단파를 사용하는 P-18급 조기경보레이더였다. 
미국의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2008년에 펴낸 ‘공중전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초단파레이더의 파장길이는 1~3m인데,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는 길이가 19m, 폭이 13.5m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초단파를 사용하는 조선의 P-18급 조기경보레이더가 250km 밖에서 비행하는 F-22 스텔스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은 탐지레이더가 F-22 스텔스전투기를 향해 네 종류의 레이더전자파를 쏘았을 때 나타나는 각이한 현상을 색깔별로 표시한 것이다. 표적이 탐지레이더에 포착된 상태는 빨간색으로 표시되었고, 표적이 탐지레이더에 부분적으로만 포착된 상태는 노란색으로 표시되었으며, 표적이 탐지레이더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상태는 초록색으로 표시되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초단파(VHF)를 사용하는 탐지레이더는 표적을 전체적으로 포착하였으나, 다른 세 종류의 주파수를 각각 사용하는 탐지레이더들은 표적의 정면을 향해 레이더전자파를 쏘는 경우 거의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자주시보

 

 

3. 스텔스전투기의 공중우세신화는 이렇게 깨졌다

 

P-18 조기경보레이더에는 결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화면해상도가 낮고, 다른 전파의 간섭을 받기 쉬우며, 레이더를 설치하여 가동하기까지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결점들이다.  
이런 결점을 극복한 신형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어낸 나라는 냉전시기의 체코슬로바키아였다. 그 나라의 방위산업체인 테슬라-파두비쓰(Tesla-Pardubice)는 1985년에 타마라(Tamara)라는 이름을 가진 신형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었다.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의 특징은 센티미터파(SHF)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P-18 조기경보레이더가 사용하는 초단파(VHF)의 파장길이는 1~3m인데 비해,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가 사용하는 센티미터파의 파장길이는 1~10cm밖에 되지 않는다.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P-18 조기경보레이더보다 200km나 더 긴 450km로 대폭 늘어났다.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는 먼 거리에서 날아가는 공중이동표적을 탐지하는 뛰어난 성능을 가진, 당시로서는 최첨단 레이더였으므로 소련과 동독에 각각 수출되었다. <사진 6> 

 

▲ <사진 6> 지난 냉전시기의 체코슬로바키아는 P-18 조기경보레이더보다 성능이 더 좋은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를 1985년에 만들어냈다. 위의 사진은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를 촬영한 것이다. 이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450km다. 그런데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 생산업체가 1998년에 파산하였을 때, 물류창고에 남아있던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 가운데 2대가 행방불명되었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행방불명된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가 무기중개상을 통해 중국에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영국 언론매체 <텔러그래프(Telegraph)> 2002년 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방위산업체 테슬라-파두비쓰가 1998년에 파산하였을 때, 물류창고에 남아있던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 가운데 2대가 파산 와중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보나마나, 무기중개상을 통해 다른 나라에 밀수출된 것이다.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는 어느 나라로 넘어갔을까? 은밀히 거래되었기 때문에 그 레이더가 어느 나라로 넘어갔는지를 입증할 자료는 없지만,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된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가 중국에게 넘어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 추정은 빗나간 게 아니었다. 중국의 조기경보레이더를 촬영한 사진이 2006년에 공개되었는데, 바로 그 사진에 의해 그런 추정이 강하게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그 사진에는 중국이 만든 YLC-20 조기경보레이더가 나타났는데, 기본형태가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와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의 기술자료를 분석하여 YLC-20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YLC-20 조기경보레이더를 지대공미사일 발사체계와 연계하면, 전투기는 물론이고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중국이 생산한 YLC-20 조기경보레이더를 촬영한 사진이다. 외형을 보면,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와 흡사하다. 이 조기경보레이더를 지대공미사일 발사체계와 연계하면, 전투기는 물론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     © 자주시보


지난 냉전시기에 소련은 타마라 조기경보레이더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닌 또 다른 조기경보레이더를 개발하였다. 콜추가(Kolchug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조기경보레이더의 생산은 당시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맡았다. 우크라이나는 1987년부터 콜추가 조기경보레이더를 생산하였는데, 총생산대수는 44대였다. 그 가운데 14대는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소련이 해체되어 콜추가 조기경보레이더의 처분권을 갖게 된 우크라이나는 그 레이더를 중국, 이란, 파키스탄에 수출하였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 콜추가 조기경보레이더의 기술자료를 분석하여 YLC-20 조기경보레이더의 성능을 개량한 최신형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DWL-002 조기경보레이더다. 
기존 레이더는 전자파를 공중에 발사하여 표적을 탐지하지만, DWL-002는 공중이동표적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를 지상에서 포착하여 그 표적의 위치를 탐지한다. 이를테면,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는 여러 종의 전자장비를 가동하면서 비행하기 때문에 그 전자장비들에서 전자파가 계속 방출되는데, DWL-002는 바로 그 전자파를 아주 먼 거리에서 포착하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기존 레이더는 전자파를 발사하여 표적을 탐지하지만, 중국이 개발한 DWL-002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공중이동표적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를 포착하여 그 표적의 위치를 탐지한다.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는 여러 종의 전자장비를 가동하면서 비행하기 때문에 그 전자장비들에서 전자파가 계속 방출되는데, DWL-002는 바로 그 전자파를 아주 먼 거리에 포착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중국인민해방군은 DWL-002를 훙치(紅旗)-9 지대공미사일 발사체계에 연계하여 탐지-추적레이더로 사용하고 있다. 2010년 10월 8일 중국인민해방군은 훙치-9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를 가상한 공중이동표적을 격추하는 요격훈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DWL-002 조기경보레이더가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적진에 내습한다는 F-22 스텔스전투기를 잡아내는 강력한 탐지 및 추적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DWL-002 조기경보레이더가 스텔스전투기의 공중우세신화를 깨뜨려버린 것이다. <사진 9>

 

▲ <사진 9> 이 사진은 중국이 생산한 DWL-002 조기경보레이더를 촬영한 것이다. 이 조기경보레이더는 소련이 설계하였고, 1987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제조되었던 콜추가 조기경보레이더에 기초하여 만든 것이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콜추가 조기경보레이더를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한 중국은 그 레이더의 기술자료를 분석하여 DWL-002를 만들었다. 지금 이 레이더는 지대공미사일 훙치-9 발사체계에 연계되어 탐지-추적레이더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10월 8일 중국인민해방군은 훙치-9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를 가상한 공중이동표적을 격추하는 요격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스텔스전투기의 공중우세신화는 그렇게 깨지고 말았다.     © 자주시보

 

 

4. 모든 스텔스기능 작전기종을 탐지, 추적하는 위상배열레이더

 

2014년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중국 광둥성 주하이(珠海)에서 제10차 중국국제항공항천박람회가 진행되었다. 중국은 자기 나라에서 개발된 각종 신형 항공기들과 반항공군사장비들을 그 박람회에 출품하였는데, 특히 반항공군사장비들 가운데서 군사전문가들의 눈길을 끈 것은 JY-26 위상배열레이더였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방위소식(Defense News)> 2014년 11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그 박람회에 출품된 JY-26 위상배열레이더는 초단파(VHF)와 극초단파(UHF)를 사용하여 스텔스비행체를 탐지하는데, 공중이동표적 500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JY-26 위상배열레이더는 전파교란회피기능과 전자전대응기능도 가졌다고 한다. <사진 10>

 

▲ <사진 10> 이 사진은 2014년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중국 광둥성 주하이에서 진행된 제10차 중국국제항공항천박람회에 출품된, 중국이 개발한 JY-26 위상배열레이더를 촬영한 것이다. 스텔스비행체를 탐지하는 이 최신형 레이더는 공중이동표적 500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고, 전파교란회피기능과 전자전대응기능도 가졌다. 이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500km로 추정된다.     © 자주시보


중국은 주하이박람회에서 처음 자기 모습을 드러낸 JY-26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외부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그 레이더의 탐지거리를 500km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이 JY-26 위상배열레이더를 가동하여 미공군의 스텔스전투기, 스텔스전폭기, 스텔스무인정찰기를 모두 탐지, 추적할 수 있으며, 그 레이더를 장거리지대공미사일 발사체계와 연계하면 그 어떤 스텔스기능 작전기종도 500km 밖에서 모두 요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 언론매체 <환구쉬바오(環球時報)> 2014년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산둥반도에 배치된 JY-26 위상배열레이더는 당시 조선을 위협하기 위해 군산미공군기지에 출동하였던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하였다고 한다.

 

▲ <사진 11> 이 사진은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돐을 경축하는 군사행진에 등장한 조선의 접이식 위상배열레이더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이 위상배열레이더를 3축6륜 차량에 탑재하여 번개-5 지대공미사일 발사체계와 연계시켜 사용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위상배열레이더 탑재차량, 번개-5 자행발사대, 요격통제차량을 모두 합해 '종합미싸일요격체'라고 부른다. 동시에 100개의 공중이동표적을 탐지할 수 있는 이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300km로 추정된다.   ©자주시보

 

 

5. ‘번개’와 함께 등장한 접이식 위상배열레이더

 

2008년 11월 하순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조선인민군 야전부대들과 국방공업시설들을 시찰하고 작성한 보고서 가운데 조선의 군사용 레이더에 관해 서술한 대목에는 자기들이 조선에서 “현대적인 레이더체계(modern radar system)”를 시찰하였다고 기록한 문장이 있다. 그 보고서는 조선의 “현대적인 레이더체계”가 숫자식으로 컴퓨터화된 레이더체계라고만 지적하였을 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의 보고서에 기록된 조선의 현대적인 레이더는 어떤 것일까?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간 때로부터 이태가 지난 2010년 10월 10일 조선에서 당창건 65주년을 경축한 그 날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바로 그 현대적인 레이더가 마침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 레이더는 3축6륜 차량에 탑재된 접이식(flap lid) 위상배열레이더였는데, 번개-5 지대공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에 연계된 탐지-추적레이더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위상배열레이더 탑재차량, 번개-5 자행발사대, 요격통제차량을 모두 합해 ‘종합미싸일요격체’라고 부른다. 미국은 번개-5를 ‘KN-06’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사진 11>


내가 2013년 6월 초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였을 때, 중무기전시실에서 번개-5 발사관 3개를 탑재한 자행발사대 실물 1대가 전시된 것을 목격하였는데, 그 앞에 세워진 설명판에는 “100여 개의 공중이동표적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적혀있지 않았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의 지대공미사일 번개-5가 러시아의 지대공미사일 S-300과 같은 급이라고 인정하였는데, S-300 발사체계에 연계된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가 300km이므로, 그와 같은 급인 번개-5 발사체계에 연계된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도 300km로 추정된다. 
접이식 위상배열레이더의 형태를 부착식으로 바꾸면, 전투함 선체에 부착, 설치할 수 있는데, 부착식 위상배열레이더는 신형 전투함에 설치된다. 이런 전투함을 이지스급 전투함이라 한다. 조선이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하는 신형 호위함에 부착식 위상배열레이더가 설치되었다. 놀랍게도, 조선은 자체 기술로 만든 신형 이지스급 호위함을 실전배치한 것이다.

 

▲ <사진 12> 2012년 5월 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면서 지휘부 청사 앞마당에 임시로 전시된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자행발사대를 살펴보았다. 위의 사진에서 옆모습 일부만 나타난 이 자행발사대에는 번개-5보다 한 급 높은 번개-6 지대공미사일이 탑재되었다. 번개-6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공인된 러시아의 S-400과 같은 급이다. 러시아의 S-400 발사체계에 연계된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가 600km이므로, 번개-6 발사체계에 연계된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도 600km인 것으로 추정된다.     ©자주시보

 

 

6. 사세보 미해군기지 상공 감시하는 조선의 최신형 조기경보레이더 

 

2012년 5월 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였는데, 그 날 지휘부 청사 앞마당에는 처음 보는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자행발사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자행발사대를 살펴보았다. 조선 언론매체들에 보도된 현장사진에는 그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자행발사대의 옆모습 일부만 나타났다. <사진 12>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그 날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 청사 앞마당에서 살펴본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자행발사대는 번개-5보다 한 급 높은 번개-6을 탑재한 자행발사대다. 번개-6 지대공미사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공인된 러시아의 S-400 지대공미사일과 같은 급이다. 조선이 번개-6 지대공미사일을 만들어냈으므로, 그에 걸맞은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도 만들어 번개-6 발사체계에 연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의 S-400 발사체계에 연계된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S-300 발사체계에 연계된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에 비해 2배가 늘어난 600km다. 따라서 S-400 발사체계와 같은 급인 번개-6 발사체계에 연계된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도 600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탐지거리가 600km나 되는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가 한반도 중동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되면, 저 멀리 제주도 남방해역 상공을 감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대조선공격거점으로 구축해놓은 일본 사세보(佐世保) 미해군기지 상공까지 감시할 수 있다.  
러시아군에 실전배치된 S-400의 요격거리가 400km이므로, 조선인민군에 실전배치된, S-400과 같은 급인 번개-6의 요격거리도 400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정보를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조선을 향해 날아가는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를 600km 밖에서 탐지하고, 400km 밖에서 요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공습을 노리는 미공군 F-22 스텔스전투기의 접근을 400km 밖에서 차단하는 장거리요격임무는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맡는다. 그런데 2012년 5월 조선은 조선인민군 공군이라는 기존 명칭을 항공 및 반항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명칭변경은 항공군의 전투력과 반항공군의 전투력이 각각 비상히 증강되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반항공군의 요격훈련을 여러 차례 직접 지도하였지만,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반항공군 요격훈련에 관해 보도한 적은 거의 없다. 미공군 공습을 막아내는 반항공타격능력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기 위해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2년 5월 3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면서 지휘부 청사 앞마당에서 최첨단 지대공미사일 번개-6 자행발사대를 살펴보았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5년 1월 12일 그 지휘부를 또 다시 시찰하였다. 두 번째 시찰은 새로 개발된 번개-6 자행발사대가 지난 3년 동안 조선인민군 반항공군 야전부대들에 실전배치됨으로써 요격능력이 최상의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미공군, 한국 공군, 일본항공자위대가 출격시키는 비스텔스 전투기들의 접근을 매우 먼 거리에서 차단할 장거리요격능력을 갖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공군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F-22 스텔스전투기, B-2 스텔스전폭기, RQ-170 스텔스무인정찰기의 접근도 400km 밖에서 차단할 최강의 요격능력까지 갖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교전상대가 발사한, 초속 8km의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도 230km 밖에서 번개-6으로 요격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황해남도 남단에서 번개-6을 발사하면, 군산미공군기지 상공을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13>

 

▲ <사진 13> 이 사진은 조선의 '기록영화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 주체 100(2011)'에 나오는 장면이다. 2011년 9월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화력타격훈련 중에 발사된 지대공미사일이 연기를 내뿜으며 상승비행하고 있다. 화면에 나타난 시뻘건 화염은 상승비행 중에 증폭분사장치를 가동하면서 내뿜은 화염이다. 증폭분사장치는 미사일의 속력을 증폭시켜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비행하도록 추동하는 장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대공미사일 번개-6을 실전배치한 조선인민군의 반항공군은 미공군의 모든 스텔스기능 작전기종을 요격할 수 있는 강력한 타격력을 가졌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던 스텔스공습능력과 미사일공격력은 한반도 상공에서 결국 좌절되었다. 이것은 미국군의 공해전 교리와 '작계 5015'의 파산을 의미한다.     © 자주시보

 

 

7. 미국의 공해전 교리와 ‘작계 5015’는 어떻게 파산하였나?

 

2014년 9월 15일 미국군은 서태평양의 군사전략거점들인 괌(Guam)과 타이니언(Tinian) 주변해역에서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2014’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대규모 전쟁연습을 진행하였다. ‘용감한 방패’라는 전쟁연습은 미국군이 서태평양에서 2006년부터 단독으로 실시해오고 있는 격년제 실전연습이다. 당시 9월 15일부터 9월 23일까지 계속된 이 전쟁연습의 목적은 미공군과 미해군의 통합작전능력을 강화하려는 데 있었다. 
‘용감한 방패 2014’에는 전투병력 18,000명, 항공작전기 200여 대, 대형 전투함선 19척이 동원되었다. 그와 같은 대규모 전투역량은 당시 일본 요꼬스까 미해군기지에 배치되었던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미국 본토 쌘디에고 해군기지에 배치된 핵추진 항공모함 칼 빈슨호를 각각 주축으로 하는 2개의 항모강습단, 미해군 해상지원함 6척,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미해병제3원정군, 일본 이와꾸니 미해병대기지에 주둔하는 미공군제36작전단, 미국 하와이주에 주둔하는 미육군제94육군항공 및 미사일방어사령부에서 각각 차출되었다. 이런 동원실태를 보면, ‘용감한 방패 2014’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연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14>

 

▲ <사진 14> 이 사진은 2014년 9월 15일 서태평양의 괌 주변해역과 타이니언 주변해역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진행한 대규모 전쟁연습 '용감한 방패 2014'의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미공군과 미해군의 통합작전능력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된 이 전쟁연습은 2010년 2월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미국군의 공해전 교리를 실전상황에 적용한 전쟁연습이었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2개의 항모강습단이 좌우에 각각 항진하고, 가운데에는 미해병제3원정군을 실은 상륙강습단이 항진하였으며, 공중에는 B-2 스텔스전폭기 1대를 선두로 하여 12대의 F-22 스텔스전투기들이 비행하였다. 이 사진만 보면, 엄청난 공중-해상무력을 동원한 것 같지만, 강력한 반항공타격력을 가진 조선인민군 반항공군, 항공모함 격침전술을 연마한 조선인민군 항모격침결사대,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의 비대칭공격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 자주시보


그 전쟁연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공군과 미해군의 합동해상타격전을 연습하는 ‘해상전쟁훈련(war-at-sea exercise, WASEXs)’이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해상전쟁훈련’은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미국군의 공해전 교리(Air-Sea Doctrine)를 실전상황에 적용한 전쟁연습이었다. 이 전쟁교리는 항모강습단과 원정상륙단을 동원하여 작전을 펼친다는 점에서 기존 공지전 교리(Air-Land Doctrine)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미공군과 미해군이 합동으로 스텔스전투기, 스텔스전폭기, 스텔스무인정찰기를 선봉에 내세운 공습작전을 전개한다는 새로운 특징을 지녔다. 이 새로운 특징은 미국이 개발한 스텔스기술이 미국군의 전쟁교리에 일정한 변화를 일으켰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공해전 교리의 그런 새로운 특징은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에게 승전소식이 아니라 패전소식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최첨단 위상배열레이더와 연계된 번개-6 지대공미사일을 실전배치하여 대폭 증강된 조선인민군의 반항공타격력은 미국군의 공해전 교리가 그들의 대조선전쟁에 적용될 기회를 박탈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기술적 우세를 자랑하며 스텔스전투기, 스텔스전폭기, 스텔스무인정찰기로 조선을 위협하던 미공군은 조선인민군의 강력한 반항공타격력에 짓눌리고 말았으니, 한반도와 그 주변의 작전구역에서 조선인민군의 눈치를 살피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공해전 교리가 실전에 적용되기도 전에 사실상 파산하였음을 의미한다. 공해전 교리의 파산은 그 교리에 기초하여 수립된 미국의 대조선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가 전시에 작동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사진 15>

 

▲ <사진 15> 2011년 12월 4일 이란혁명수비군은 이란 영공을 깊숙이 침범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무인정찰기 RQ-170을 전파교신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공중에서 나포하여 지상에 강제착륙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RQ-170 스텔스무인정찰기는 미공군과 미중앙정보국이 각각 운영하던 비멸병기였다. 위의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이 공중나포한 스텔스무인정찰기를 공개한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던 RQ-170이 이란혁명수비군에게 공중나포되므로써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이란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RQ-170을 분해하여 얻어낸 기술자료를 분석하여 스텔스무인정찰기를 제작하는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였으며, 결국 RQ-170에 필적하는 최첨단 스텔스무인정찰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국의 스텔스기술신화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 자주시보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지난 60여 년 동안 조선이 복수의 일념을 안고 별러온 ‘최후결전’이 공해전 교리와 ‘작계 5015’가 사실상 파산한 특별한 시기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1950년대에 일어났던 6.25전쟁은 장장 26,280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교전쌍방에 모두 혹심한 전쟁피해를 안겨주었지만, 지금 조선은 과거의 전쟁지속시간을 365분의 1로 급감시켜 불과 72시간 만에 자기의 ‘최후결전’을 속결할 것이라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전쟁지속시간이 365분의 1로 줄어드는 경우 전쟁피해도 365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2015년 7월 25일 6.25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조선의 전승절을 맞아 평양에서 진행된 제4차 전국로병대회 축하연설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근 조선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역전된 대미군사상황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전쟁방식에도 다 상대해줄 그런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제의 핵전쟁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놈들이 핵을 쥐고 우리를 위협공갈하던 시대는 영원히 종식되였으며 이제는 미국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이상의 위협과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도리여 우리가 미국놈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과 공포로 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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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지역 불평등을 되돌아보다

경기 용인과 전남 신안, 차라리 다른 나라였으면…
[서리풀 논평] 추석에, 지역 불평등을 되돌아보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5.10.05 09:13:41
 
 

이동과 만남은 불평등을 몸과 마음에 새로 새기는 계기가 된다. 막 지난 추석에 벌어졌던 '민족 대이동'도 그랬을 것이다. 3200만 명이 이동하고 서로 만났으니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다른 어떤 것보다, '귀성'과 '귀경'이 압축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터.

개인의 변화가 시간을 통해 드러난다면, 불평등이라는 집단(사회적) 현상은 주로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귀향은 많은 사람에게 개인의 변화, 예를 들어 누가 얼마나 더 부자가 되었고 또 다른 누구는 얼마나 더 나이가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기회다. 개인 '안'에서의 비교와 반성을 피할 수 없다.

'재사회화'는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명절이라는 의례, 그리고 재회를 통해 다른 공간에 사는 누군가의 삶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대상에는 물질과 정신, 삶의 양식이 모두 포함된다. 개인 '사이'에서 일자리와 돈벌이, 집, 교육 따위는 물론이고, 삶의 보람과 미래의 가능성도 저절로 드러난다.

공간의 차이는 집단의 삶과 그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개인을 넘어 한 단계 더 추상화되어야 한다. 개인의 변화에 비해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적 존재인 한, 결국 비교를 통해 격차를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도 지역 불평등은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의 격차다.

지역 간 차이는 특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차이를 가리킨다. 말도 여러 가지다. 불균형, 불평등, 불균등, 격차 등등. 조금씩 다르지만, '지역' 사이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불평등 현상을 가리킨다. 추석을 계기로 다시 불려 나왔지만, 오래되어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 내재화된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보자. 조명래는 영호남 격차로 상징되는 구지역 격차(불균형)와 비교하여 1990년대 이후 현재를 신지역 격차(불균형)로 표현하는데, 지역 불평등의 새로운 양상은 정치, 경제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민주화와 지방 자치제의 실시 및 경제 구조의 첨단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불평등 한국, 복지 국가를 꿈꾸다>(이정우·이창곤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

"새로운 격차 혹은 불균형은 경쟁력이 있는 수도권과 그렇지 않은 비수도권으로 나누어지는 '광역적 지역 간 격차', 생활 관계나 개발 가치가 장소 간에 분화되고 차등화되는 '미시 지역 간 격차' 등 다층적 양상을 띠고 있다. (…) 새로운 공간 격차의 이면엔 하나같이 권력의 탈중앙화와 지방화, 그리고 신자유주의화의 논리가 깔려있다. 새로운 격차 양상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8년 IMF 위기 이후다. IMF 위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줄던 지역 간 격차도 다시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의 공간적 반영이라 할 수 있다." (245쪽)

지역 간 격차가 신체를 통해 실현된 것이 바로 건강 불평등(격차)이다. 소득과 교육, 문화의 불평등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데에 비해, 이들 요소가 작용한 결과인 질병과 사고, 장애, 사망은 눈에 보이고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건강 불평등이 다른 불평등의 분명한 증거인 셈이다.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은 어떤 지표로 보더라도 뚜렷하고 일관된다. 마침 최근 출간된 책에서 해당 부분을 인용한다(<한국의 건강 불평등>(김창엽·김명희·이태진·손정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총사망률이 가장 낮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와 가장 높은 전남 신안군의 격차는 10만 명당 286명에 이르며, 상위 10개 지역과 하위 10개 지역의 상대적 격차는 최대 2배에 달한다. 상위에 오른 지역들은 사회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곳들로 수도권과 신도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위권은 부산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군 단위의 농촌 지역들이다. 이러한 양상은 3대 사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25쪽)

질병과 사망, 장애는 개인에게 나타나지만,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으며 더 심한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집단 사이의 비교 결과, 즉 사회적 현상이다. 태어나고 사는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사망률 격차가 두 배다! 어떻게 개인의 탓이겠는가.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건강 불평등은 온갖 종류의 불평등이 집약되어 신체를 통해 실현된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지역에 따라 다른 정도의 "박탈과 물질적 결핍, 혹은 포괄적인 사회적 배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보건의료 자원(의료 인력이나 시설, 재정)의 지역 간 차이, 건강 행태, 사회 문화적 요인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건강 불평등을 비롯한 지역 불평등 문제는 새롭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물음도 지루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문제와 물음은 묵은 것이지만, 해답과 노력은 아직도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문다. 오히려 후퇴하는 징후도 보인다.


한 가지 새로운 것이 있다면, 문제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인 신지역 격차(불균형)의 시기에는 문제 자체를 부인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시기적 특징으로, 지역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이유와 문제를 부인하는 이유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경쟁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때라는 것, 그리고 좁은 땅에서 지역을 구분하고 격차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뿐 아니라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것.

정책에서는 포기한 분위기가 더 확연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온갖 이유로 조만간 무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수가 적다고 앞 다투어 캠퍼스를 옮기는 대학은 정부와 정책의 무력함이 드러낸 한 가지 결과일 뿐이다.

건강과 의료도 다른 것이 없다. 공중보건의는 줄어든다는데, 농어촌 지역에 의사를 확보할 어떤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다.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한다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관련 기사 : 30킬로미터 거리 분만 병원 찾아 운전대 잡은 39세 임산부…분만 인프라 붕괴의 현실)

다시 생각해도 삶의 방식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다시 짜지 않으면 어렵겠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경제 성장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라면 뾰족한 해답이 없다. 국가와 지역 수준에서 발전의 새로운 틀과 방향을 모색하는 길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서 다시 정치를 불러낸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익숙한 지향은 말할 것도 없고,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 '참살이(부엔 비비르, Buen Vivir)'를 모색하는 것도 정치의 힘이자 역할이 아닌가. 정치는 현실의 평화와 연관되지만, 또한 꿈과 희망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실천이다.

정치의 한 부분인 현실 정치까지 가보자. 지역 불평등 문제를 두고는 마침 인구 과소지역 선거구를 논의하는 우리의 딱한 사정이 밟힌다. 농어민의 대표성을 내세우다니, 지금까지 무슨 역할을 했다고 갑자기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는지 착잡하다. 지역 불평등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까? 당위적 역할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더 아득하다.

다만 한 가지. 현실과 삶이 있는 한, 멈추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의 도덕이자 의무라는 점에 기대를 건다. 선거구를 지키느라 오랜만에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국회의원들에게 부탁한다.

그 알량한 선거구에 목숨을 걸 것이 아니라, 지역 불평등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라. 당신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은가. 그 열정이면 (적어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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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제국주의 : 위기의 미국과 이스라엘

[정대화 칼럼] 흔들리는 제국주의 : 위기의 미국과 이스라엘

정대화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전 유엔 사무국 관리 최종업데이트 2015-10-04 15:27:55
 

1.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제 70회 유엔총회에서 “새로운 국제관계”(A new type of international relations)를 천명하였다. 중국은 (1)패권(Hegemony)이나 확장(Expansion)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2)크고 힘센 나라나 부자 나라가 작고, 약하고, 가난한 나라를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All nations, big, strong, and rich should not bully the small, weak, and poor). 그리고 중국은 (3)동맹(Alliance)보다는 동반자 관계(Partnership)를 선호한다면서, 승자가 모두를 취한다(Winner takes all)와 같은 이제 낡아버린 사고방식(Outdated mind-set)에서 헤어나야 한다며 새로운 국제질서를 요구했다. 그는 새로운 대국 관계에 대해서도 중-미 회담에서 설명하였다.

중국의 중앙방송 CCTV의 한 평론가는 이를 ‘정글의 법칙’(The Laws of Jungle)에 의한 국제관계에 비유하며 이제는 이러한 구태에서 벗어나 보다 문명되고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평가했다. 필자가 듣기에는 2차 대전 이 후 미국의 패권정책이나 확장정책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

시진핑이 말하는 “크고, 힘세고, 부자 나라가 작고,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못 살게 굴어 온 것”이 바로 미국과 서방이다. 지금도 이들은 이슬람보다는 기독교를, 아랍국가들보다는 이스라엘을 선호한다. 또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군을 지원하고 훈련시키며 군사적 폭력으로, 국제법은 아랑곳 않고 정글의 법칙 즉, 국제정치의 ‘비천한 현실주의’를 실행하고 있다. 시진핑은 “약자도 보호받은 세상”을 얘기하고 있으나 약자로서 미국에 의해 보호받는 나라는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중국은 21세기에, 미국의 군사적인 방법과는 대비되는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을 진행하고 있는데 세계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 즉, 중국은 현재 일대일로(一帶 一路) 즉, 해양 실크로드와 대륙 실크로드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따라갈 수 없는 세계전략인데 살펴보면 (1)과거 아프리카 횡단철도(앙골라-탄자니아)를 과거에 건설해 준 것을 복구하고, (2)남미 안데스 횡단철도(대서양의 브라질에서-태평양의 페루까지, 장장 5,300Km)가 완성되면 파나마운하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3)중국-파키스탄의 경제통로인 횡단철도(중국 신장에서 아라비아해의 과다르항까지 3,000Km)는 중동으로 관통한다, (4)아시아-유럽 대륙횡단 철도(약 6,000Km)가 완성되면 EU와 동북아 경제축이 연결된다.

중국은 이런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MOU를 해당 나라들과 체결했다. 대륙 실크로드는 5대양을 있는 해양 실크로드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미국의 뒤꼍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의 철도 부설을 도와주기로 했다. 미국은 이것을 확장정책이라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과거의 실크로드를 아무도 확장정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적인 하나의 경제벨트였고 상호호혜의 진정한 무역로였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9월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9월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발언하고 있다.ⓒ기타

2. 이와 같이 국제환경과 국제정치의 패러다임 변경이 요구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현지시간 9월 30일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대항하여 역사적인 군사 개입을 시작하였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유엔 창설 70주년 연설에서 “서방은 민주주의라는 미명으로 혁명을 수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의 중동 여러 나라에 대한 정권교체 정책이 이슬람 테러단체들을 양산하고 ISIS와 ISIL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IS를 척결하는 연합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역시 시리아에서 IS를 척결하는 데는 누구와도 협력하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우리의 최근 기억에만 해도, 미국은 한반도의 내전에 개입했고, 베트남 내전에 개입했으며, 9.11을 구실 삼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9.11 이전부터 이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함),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을 제거했으며,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의 가다피를 제거하고, 현재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해야 한다며 5년째 시리아에서 불법 개입을 자행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말하는 악의 축(Axis of Evil)은 시리아와 이란, 그리고 북한이다. 미국은 이란과는 핵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북한을 악의 축, 불량국가,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악평하며 정권의 붕괴와 김정은의 제거를 획책해 왔다. 시진핑의 말대로 미국은 약소국만을 골라서, 그들 자신의 자원 확보, 패권유지, 이스라엘 보호 목적 등으로 중동과 시리아에서 폭력을 휘둘러 온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차에 러시아가 시리아와 아사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러시아가 중동에 개입하는 것이 1989년 아프가니스탄 개입 이후 26년 만이라고 한다. 시리아 내전은 이제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으나 러시아의 목적은 군사적 대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시리아와 아사드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러시아 시리아 공습
러시아 시리아 공습ⓒAP/뉴시스

미국이 그동안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하여 반군을 지원해 왔으며 그들은 과거에도 남미에서도 반군 콘트라(Contra)를 지원했고,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도,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도 친미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지시간 9월 30일 IS를 표적의 명목으로 공중폭격을 개시하였다. 프랑스가 처음으로 시리아를 폭격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라, 아마 러시아가 시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결단을 위하여 (1)러시아 상원은 러시아 군의 해외작전을 승인했으며, (2)러시아는 국제법에 따라, 또한 시리아 대통령과 정부의 초청에 따라 시리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선언했으며 (3)현재 아사드 정권과 터키의 쿠르드족만이 IS와 싸우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4)미 공군이 전투기를 더 이상 시리아 상공에 띄우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것은 시리아 내전에서의 획기적인 변화이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초긴장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은 이런 사태발전에 따라, 러시아 공군이 IS보다는 미국이 지원하고 훈련시키고 있는 시리아 반군 밀집 지역을 폭격하고 있고, 러시아가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서방언론을 동원하여 역선전을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시리아에 개입했고 자신들 역시 무차별로 민간인을 희생시켜온 미국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 측은 미국이 개입한 5년 동안 약 30만 명의 시리아인이 사망했으며(미국의 추산은 20만이라고 축소함) 2,300만 명 인구 중 1,1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3. 미국의 시리아 정책은 러시아의 개입으로 이제 더 이상 아사드 대통령의 제거를 장담할 수가 없게 됐으며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내적 모순을 심화시켜 모순과 위기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시리아 문제 해결에 아사드를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포함하며 한 발 물러서고 있다.

4. 아프가니스탄 역시 북부에서 최근 탈레반이 쿤두스시(市)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현재 일부를 탈환했다고 하나, 완전 탈환한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해외 전쟁에서 가장 오래인 14년이 된 아프간 전쟁에서 최근 쿤두스시의 가장 큰 병원을 미 공군이 폭격하여 환자가 침상에서 타 죽고, 국경없는 의사회 직원 등이 죽고 다치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미국은 이렇게 심각한 도전과 위기에 처하고 있으며 그들의 군사정책의 약점을 만천하에 노정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2일(현지시간) 카불 북부 도시 쿤두즈에서 미군 공습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2일(현지시간) 카불 북부 도시 쿤두즈에서 미군 공습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AP


5. 이라크에서는 이라크대로 러시아와 시리아, 이란과 정보공유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국의 약점을 노출시켜 역시 미국을 당황케 하고 있다.

6. 이란은 최근에 미국과 핵협정을 맺었으나, 시리아와 중동에서 러시아와 공동제휴하고 있으며 최근 시리아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을 정도이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봉쇄가 해제됨에 따라 앞으로 중동대국으로 위상 회복할 기회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7.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개입 중 결혼식장 폭격 등으로 민간인 131명을 사살하여 미국의 동맹으로서 신뢰를 잃고 있다.

8. 미국의 동맹 이스라엘은 북방의 안보요충지인 시리아에 러시아가 군사적 개입을 함으로써 이제 좌불안석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동쪽은 요르단과, 남쪽 역시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와 국경를 공유함으로써 항시 심각한 안보문제가 상존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 이후 불법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의 현상유지와 집단촌 건설 등으로 “두 개의 국가 해결”(Two-State Solution)이라는 정책에는 발전이 없다. 그러나 아바스 수반은 최근 유엔 연설에서 회원국 다수의 승인으로 유엔 회원국이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 국기를 유엔에 게양하게 되는 성과를 성취하였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부심하는 ‘악의 축’ 중에서 이제 시리아의 국운과 아사드 대통령의 운명은 보호받게 되었고,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서 자위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셋 중 가장 강력한 이란은 유라시아 한복판에 위치한 전략적 위치상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대통합의 중앙에 위치하여 유라시아 대동단결의 백미요 화룡점이 됐다. 이란의 부상에 이스라엘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국제 경제적으로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유라시아 경제 통로에 이어,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 연합, 브릭스(BRICS) 개발 은행, SCO(상하이협력기구),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등 가지가지다. 핵심은 이 모든 프로젝트들이 동일한 관심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교류와 통합의 완성이다. 장기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전쟁에도 나쁜 전쟁(제국주의 침략전쟁)이 있고 좋은 전쟁(민족해방 전쟁, 약소국 독립 전쟁 등)이 있다. 미국은 약소국만 골라가며 개입하는 나쁜 전쟁의 주역으로 세계의 약소국들을 괴롭히고, 평화를 파괴해 왔다. 또 유엔의 권위와 권능, 제재를 백안시 해 온 이스라엘은 지켜주면서, 그에 비교가 되지 않는 북한을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제재와 억압으로 학대해 왔다. 이것은 대국으로서 위선적이고 불공정하며 정의가 없는 망동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국제정치가 행동(Action)과 반작용(Reaction), 그리고 자극(Stimulus) 과 반응(Response)이며,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의 연속이라고 할 때, 러시아의 대응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또한 위에서 지적한, 오늘날 중동과 세계 도처에서의 미국의 군사정책의 실패와 위기를 상기할 때, 부상하는 중국과 재기하는 러시아의 영향력과 능력으로 볼 때, 이제 미 제국주의는 세계도처에서 흔들리고 있으며 그들의 정책이 파산에 직면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위기에 봉착했음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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