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직접 체험한 북의 현실 ... 평범한 대학생이 느낀 감정과 견해 전하고 싶어>

  • <직접 체험한 북의 현실 ... 평범한 대학생이 느낀 감정과 견해 전하고 싶어>
  •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미국 뉴욕대학 학생이 기자들과 회견>을 보도했다.

     

    보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남조선계 미국영주권자인 미국 뉴욕대학학생 주원문이 25일 평양에서 국내외의 기자들과 회견하였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비법입국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보도매체들과 인터네트를 통해 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자료들을 보고 들으면서 공화국의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하려고 한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공화국정부의 관대한 조치에 따라 직접 체험한 공화국의 현실과 그를 통하여 한 평범한 대학생이 느낀 감정과 견해를 사실그대로 알림으로써 공화국에 대한 미국사회전반의 인식이 얼마나 왜곡된것인가를 까밝히고싶은 욕망과 의무감으로부터 여러 기자들과 만나게 해줄것을 요청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그 누구의 지시를 받거나 그 어떤 관용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싶다. 저의 체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하여 이해할수 있게 한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래는 회견전문이다.

     

    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미국 뉴욕대학 학생이 기자들과 회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남조선계 미국영주권자인 미국 뉴욕대학 학생 주원문이 25일 평양에서 국내외의 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주원문이 발언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의 이름은 주원문이고 21살이며 현재 미국 뉴욕대학에서 기업경영학을 전공하고있다.

        저는 1994년 4월 9일 남조선 서울시에서 태여났으며 7살때인 2001년 3월 부모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현재 미국 뉴져시주에서 살고있다.

        미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9월 미국 뉴욕대학에 입학하였으며 2015년 1월까지 공부하였다.

        8월까지 휴학신청을 한 다음 2월 15일부터 3월 27일까지 미국에서 려행하는 기간 인터네트를 통해 중국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들어갈수 있다는 자료를 보았다.

        공화국에 들어가기 위해 3월 28일 미국을 떠나 남조선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조중국경과 린접한 중국 단동을 거쳐 공화국으로 넘어갈 결심을 하였다.

        4월 20일 남조선 인천을 떠나 21일에 중국 단동에 도착하였으며 4월 22일에는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공화국에 들어왔다가 단속되였다.

        제가 비법입국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보도매체들과 인터네트를 통해 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자료들을 보고 들으면서 공화국의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하려고 한데 있다.

        공화국정부에서는 제가 범죄자이지만 매우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해주었으며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싶어하는 저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저는 공화국정부의 관대한 조치에 따라 직접 체험한 공화국의 현실과 그를 통하여 한 평범한 대학생이 느낀 감정과 견해를 사실그대로 알림으로써 공화국에 대한 미국사회전반의 인식이 얼마나 외곡된것인가를 까밝히고싶은 욕망과 의무감으로부터 여러 기자들과 만나게 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저는 물론 조선의 력사와 조선반도의 현정세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공화국의 현실을 철저히 객관적인 립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려고 하였으며 따라서 이제부터 제가 말하는 모든것은 제스스로 인식한것이며 그를 통해 얻은 저자신의 견해이며 분석이다.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것이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라는것이다.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는 기간 보도매체들과 사회여론을 통하여 공화국에 대해 보고 들은데 의하면 공화국은 《핵무기로 무장한 악명높은 호전국》으로서 《독재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하여 인민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면서도 자기들은 호화롭게 살고있다는것이였는데 제가 체험한 현실은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그릇된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저는 편견없는 마음을 안고 평양시를 비롯하여 공화국의 여러곳을 돌아보는 과정에 미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한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였다.

        극장,도서관을 비롯하여 제일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두 일반시민들을 위한것으로서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는것이다.

        인민대학습당,문수물놀이장,릉라곱등어관,개선청년공원을 비롯하여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모두 일반시민들의 복리에 이바지하는 문화생활의 거점으로 되고있다.

        실례로 인민대학습당만 놓고보아도 전민이 학습하는 규모가 대단히 큰 도서관으로서 특정한 사람들만이 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 로동자,농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국가의 배려에 의하여 무상으로 각종 도서들을 읽고 외국어,음악 등 여러 과목들을 배우고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국가의 부담으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학업에 열중하고있다. 현대적인 전자도서관에는 인터네트와 국부망을 사용할수 있는 콤퓨터들이 들어차있고 교원들과 학생들이 여가시간에 무상으로 피로를 풀수 있는 훌륭한 수영관도 있었다.

        저는 평양학생소년궁전도 돌아보았는데 공화국에서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라면 누구든지 국가의 관심속에 학비에 대한 걱정없이 무료로 성악과 무용,악기를 배우면서 마음껏 희망을 꽃피울수 있다는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또한 훌륭하게 꾸려진 문수물놀이장에서는 많은 가족들이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었다.

        자연적인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편리하게 리용할수 있게 꾸려진 모란봉의 정각들에서는 사람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외국인들이 평양시를 공원속의 도시라고 부르는 리유를 알수 있었다.

        7월 27일과 8월 15일에는 청년학생들의 무도회와 야회도 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곳에 모여 경축분위기에 휩싸여있는 모습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상과 같이 체험을 통하여 저는 공화국에서는 모든것이 인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그들에게 복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공화국에 대하여 좋지 못한 선전만 들어온 저에게 놀라움과 함께 이러한 인민중심의 제도가 어떻게 펼쳐졌는가 하는 물음을 주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저는 그에 대한 해답을 공화국이 인민의 어버이들에 의하여 창시되고 심화발전된 주체사상이 인민생활의 모든 분야에 구현된 인민대중중심의 독특한 사회주의국가이라는데서 찾았다.

        학교들과 박물관들을 비롯하여 제가 돌아본 건축물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모든것이 인민의 복리를 증진시키시려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김정은원수님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건설되였다는것이다.

        제일 큰 감동을 받은 곳은 평양육아원,애육원과 옥류아동병원이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평양육아원,애육원건설장을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원아들의 생활에 자그마한 불편이 있을세라 친부모의 심정으로 세심하게 보살펴주시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의 배려는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목욕실에 깔아놓은 고무깔판에까지 미치고있었다. 비록 부모없는 아이들이지만 훌륭한 침실과 놀이방,물놀이장과 진료소가 있는 보금자리에서 세상에 부러운것 없이 지내고있었는데 그들은 행복에 겨워 김정은원수님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공화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 수령들을 어버이로 존경하고 따르는 리유에 대하여 리해하기 시작하였으며 감상록에 《오늘 참관을 통하여 저는 어린이들이 어째서 위대한 김정은원수님을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리해할수 있었습니다. 부모잃은 아이들을 포함하여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을 그처럼 돌보시는 김정은원수님은 사랑과 위대함을 체현하고계십니다. 저는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였다.

        후대들에 대한 김정은원수님의 자애로운 사랑은 최신식의료설비들을 갖춘 옥류아동병원에서도 찾아볼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평양시는 물론 지방에 이르기까지 갓난 애기로부터 16살까지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대한 치료를 세계적수준에서 해주면서도 돈 한푼 받지 않는 현실을 목격하였다.

        저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동상이 높이 모셔진 만수대언덕에서 결혼식을 하는 신혼부부를 보게 되였다. 공화국에서는 신랑,신부가 결혼식날에 수령님들의 동상을 찾아 존경을 표시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또한 김일성광장,개선문,주체사상탑,평양지하철도를 돌아보면서 자기들에게 나아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들에 대한 인민들의 흠모의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만경대고향집을 돌아보면서 수수한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여 소박하고 애국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시였으며 모진 시련을 이겨내시면서 나라를 해방시키시고 인민들을 오늘에로 이끌어오신 김일성주석님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그분께서 집필하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는 과정에 주체사상이 어떻게 창시되고 그것이 공화국의 사회현실에 어떻게 구현되여왔는가를 리해할수 있었다.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은 저는 공화국의 수령님들께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국가수반들과 정치인,인사들이 올린 수많은 진귀한 선물들을 보면서 그분들께서 세계적으로 높은 존경을 받으시였으며 각계각층에 걸쳐 그처럼 많은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가지고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였다. 선물들은 사람중심의 정치철학을 내놓으시고 주체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신 공화국의 수령님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저는 7월 19일 지방주권기관의 대의원들을 선거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 행운을 지니였다. 선거장들은 선거자들이 그 누구를 반대하거나 후보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리는 마당이 아니라 인민들이 후보자들을 지지하고 후보자들은 사회를 위하여 복무할것을 약속하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명절처럼 선거날을 경축하였다.

        공화국에 있는 기간 저는 안정된 정치,경제,문화제도하에서 집과 식량,보조금,의료상방조 등 생존권이 담보되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활에 대해 매우 만족하게 여기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인민의 복리가 모든것의 중심에 있는 국가이기때문에 공화국에서는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경쟁속에서 살고 일하는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리익을 위해 노력하고있다. 다시말하여 사회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는 인민이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정신을 가지고 사회와 개인의 리익을 다같이 보장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태여나 성장한 제가 사회주의사회인 공화국에서 체험한 모든것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게 될것이며 그에 대해 이 자리에서 다 말하기는 어렵다. 명백한것은 서방이 흔히 떠드는것처럼 이 나라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인권문제》나 《폭압정치》를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는것이다.

        저는 미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공화국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하여 많이 들었기때문에 나쁜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간 이른바 공화국의 피난민들이 《새 생활》을 할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단체인 《북조선해방》구락부의 한 성원이였다.

        2011년경 《북조선해방》조직성원들인 미국사람 3명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와서 자기 조직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다음 공화국에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새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같은것을 보여주었다.

        대학에 다닐 때 선물로 받은 실화소설에는 조중국경을 넘어 공화국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는데 공화국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강제적인것으로 묘사하고있었다. 2015년 3월에는 인터네트에서 한 외국관광객이 공화국의 시장에서 마약을 샀다는 내용의 글을 본적도 있다.

        공화국은 항상 온갖 도전과 많은 고난을 이겨내고있지만 현 정치제도하에서 사람들은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있으며 발전할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있다. 수령과 인민은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미래를 락관하면서 살며 일하고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인민대학습당을 돌아볼 때 저는 대학생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남조선출신 미국대학생에 대한 그 어떤 반감이나 쌀쌀한 태도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벗으로 될수 있다고 하면서 나를 환영하였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자기 사업에 대한 락관을 가지고있었으며 서로 돕고 이끄는 풍조가 사회를 지배하고있었다.

        흔히 서방에서는 공화국을 두고 《고립되고 페쇄된 국가》라고 하면서 정부에 의하여 인민들이 외부세계에 대해 모르고있다고 선전하고있지만 저는 평양국제영화회관에서 서방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인디아예술영화 《테즈》를 관람하였으며 중앙텔레비죤방송과 록화기를 통해 로씨야,중국,인디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 영화들을 수많이 보았다.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서 제 눈으로 학생들과 교원들이 인터네트에 접속할수 있는 콤퓨터들을 사용하는것을 목격하였으며 인민대학습당에서는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이 쓴 소설 《하클버리휜의 모험》을 보았고 다른 많은 외국소설들과 참고서들을 일반시민들이 마음대로 읽고있었다.

        저는 정치가도 력사가도 아니며 미국에 사는 조선사람으로서 평화와 공정성을 바라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신천박물관도 돌아보았는데 조선전쟁을 공화국이 아니라 미국이 일으켰다는것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증거자료들과 전쟁기간 미군이 감행한 만행자료들도 볼수 있었다.

        못과 톱 같은것을 리용하여 감행한 몸서리치는 대학살만행자료들은 사진들과 목격자들에 의하여 증명되고있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것은 어떤 창고들에 아이들과 그의 어머니들을 따로 갈라놓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인것으로서 저는 당시 학살장소에서 살아난 3명의 생존자들중 한명을 만나 그로부터 직접 학살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으며 그 만행장소에도 가보았다.

        저는 학살된 아이들의 묘에 꽃다발을 놓으면서 고등학교에서 받은 수업들이나 다른 기회들에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하여서는 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박물관을 돌아본 다음 저는 감상록에 《전쟁은 인류에게 재난을 주는것입니다. 저는 이런 비극이 조선반도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적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악한들은 자기의 죄행에 대하여 스스로 자수하여야 하며 그런 날은 곧 올것입니다.》라고 썼다.

        조선반도의 긴장한 현정세하에서 미국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조선인민이 품고있는 적대감에 대해 리해할수 있었고 특히 미국이 아직까지도 자기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있는것으로 하여 조미관계가 더 악화되고있으며 이것은 평화의 장애물로 된다고 생각하였다.

        정전협정은 체결되였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북과 남은 아직 전쟁상태에 있는것으로 하여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현실에 대하여 거의 모르고있다.

        공화국의 현실을 체험한 저는 북과 남이 서로 형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것은 조선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극이고 슬픔이며 이제는 과거를 잊고 통일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선민족은 북에 있든 남에 있든 언어와 문화가 서로 같은 한 겨레이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으며 온 겨레가 통일을 지향하고있는것만큼 70년동안 지속되여온 분렬상태를 끝장낼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저의 체험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 특히 미국과 남조선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세계의 량심적인 인민들과 언론들이 공화국에 대하여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남조선정부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공화국을 인정하는것을 비롯하여 정책을 전환할것을 요구한다.

        나는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대학생으로서 평화와 협력,통일을 위한 제안들인 김일성주석님께서 내놓으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 북남사이에 이미 채택된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합의사항들을 불변의 지침으로 틀어쥐고 나아감으로써 다음 세대들은 하나로 통일된 강토에서 살게 되기를 바란다.

        저는 21살밖에 안되였지만 이 위업에 자신을 바칠것이다.

        나는 그 누구의 지시를 받거나 그 어떤 관용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싶다. 저의 체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하여 리해할수 있게 한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

        끝으로 제가 공화국의 여러곳을 돌아볼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어주신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공화국인민들에게도 사의를 표한다.

        이어 주원문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조선중앙통신 2015.9.25

     

    이수진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 방위사업청은 왜 '록히드마틴'과 계약했나

한국 방위사업청은 왜 '록히드마틴'과 계약했나

게시됨: 업데이트됨: 
 
 

 

F35

청와대가 18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청와대는 방위사업청이 기술 이전을 약속한 보잉사를 제외하고 선택한 록히드마틴을 선택했다 뒤늦게 '기술이전 불가'를 통보받은 배경 등에 대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9월25일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방사청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 지난 2013년 차기전투기로 F-35A를 제안한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KF-X 개발기술 확보를 위한 절충교역 협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살펴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록히드마틴, 4가지 기술 이전을 거부하다

124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록히드마틴이 미국의 정책상 난색을 표하며 기술이전을 거부한 4가지는 AESA 레이더, 적외선 탐색 및 추적 장비(IRST), 전자광학 표적 추적 장비, 전자파 방해 장비다. 방사청은 애당초 기술이전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까? 물론 알았다. 거짓말로 뭉개다 뒤늦게 일이 커졌다.

방위사업청은 작년 9월 미 록히드마틴사와 계약 체결 직후 "기술 이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합의 각서에 따라 항공기 제작사의 이행 보증금을 몰수하겠다"며 "합의된 사항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해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월 미 정부가 4가지 핵심 기술 이전을 반대한 것이 드러나자 "승인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추진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24일 "당시 협상할 때 록히드마틴사가 체계 통합 기술 이전은 어렵다고 했는데 (체계 통합 네 항목은 기술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9월25일, 조선일보)

 
 


그러나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서 탈락한 보잉사는 기술이전을 약속한 것으로 밝혀져 협상배경에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24일 기자 설명회에서 “2013년 3차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경쟁구도하 절충교역 협상 때 핵심기술 4건에 대해 F-35A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며 제안 자체를 거부했지만, F-15SE의 보잉과 ‘유로파이터’의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2곳은 이들 기술 4건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9월25일)

 
 

이로 인해 2025년 개발을 예고했던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에서는 국내 기술개발과 유럽 기술을 들여오겠다는 입장이지만 시간과 돈이 지금보다 훨씬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24일 “KFX의 핵심 장비 가운데 고성능 위상배열(AESA)레이더 개발에 착수한 국내 업체가 국외 업체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나 전투기와 이 레이더의 체계를 통합하는 것이 난제”라면서 “2025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시기를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록히트마틴, 공군-해군 항공기 314대 27조원 규모 계약

f35a

또 방위사업청이 공군과 해군의 항공기에 앞서 언급한 록히드마틴과 314대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나 배경에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규모는 27조7천9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추진 중인 대형 항공전력 사업 규모는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120대, KF-16 성능개량 134대, 해상초계기(S-3 바이킹) 구매 20대, 차기전투기(F-X) F-35A 구매 40대 등 모두 314대이다. 이들 전력사업 중 7조4천억원 규모의 F-35A는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 계약이 끝났고 나머지 3개는 이 업체와 사업을 추진 중이다. 4개 전체 사업비 규모는 27조7천900억원에 달한다. (연합뉴스 9월25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을숲에서 얼숲(페이스북)을 보다

 
 
과거엔 나무를 심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심는다.
 
김욱 | 2015-09-25 13:27: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예전에는 마을마다 숲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 들머리 등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유지했다. 이와 같은 마을숲은 흔히 보는 마을경관의 한 부분이었다.

마을숲은 마을의 안과 밖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마을숲은 마을을 외부로 부터 감싸 안아 안온한 느낌을 주었다.

마을숲은 풍수지리의 수구막이(水口+막이) 역할로 많이 조성되었다. 수구막이란 말 그대로 물을 막는 것인데 마을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거나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었다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마을숲은 풍수적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마을숲은 실질적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수분 증발을 줄여주는 생태적인 기능을 했다. 마을사람들은 쾌적한 공간인 마을숲에서 휴식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마을숲은 종교적으로는 신앙의 대상이 되고 풍수적으로는 비보의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홍수 태풍 파도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휴식, 모임, 놀이 등과 같은 여러가지 일상적 활동을 수용하는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마을숲을 벗어나 마을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불안한 무질서의 세계로 다가옵니다.”

<마을숲을 찾아가자> 저자 정명척 박사 인터뷰 중에서
http://blog.daum.net/rda2448/6979004

 

마을숲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단어의 유사성 때문인지 ‘얼숲’이란 말이 떠올랐다. ‘얼숲’은 페이스북을 우리말로 고쳐부른 말이다. 5년 전 ‘얼숲’을 제안한 김식 씨는 당시 글에서 ‘face’를 뜻하는 얼굴의 ‘얼’에 ‘book’은 우리 언어문화에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단어로 ‘숲’을 떠올려 두 글자를 붙여 ‘얼숲’을 만들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note.php?note_id=135171159838132 (김식 씨 글 출처)

가만 생각해보면 얼숲은 단어만 아니라 현대에서의 역할도 마을숲과 유사하다. 옛날 사람들이 불안을 떨치기 위해 풍수지리의 수구막이에 의존해 마을숲을 만들었다면 현대인들은 얼숲에 의존해 불안을 떨친다. 웬만하면 지지해주는 친구들의 숲은 좋은 기운은 잡아주고 나쁜 기운은 막아주는 우리에게 정신적 수구막이다.

과거엔 나무를 심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심는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과 교감했지만 풍수지리와 토테미즘이 통용되지 않는 오늘날 우리의 주된 교감 대상은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안온하게 하고 불안을 떨쳐주고 재해를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얼숲’이다.

도시화와 개발 등으로 마을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숲은 사라져도 마을숲의 기능은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숲의 역할은 다른 대상으로 분산 전이되어 우리 주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얼숲은 그 중 하나다.

옛날 사람들이 나무를 사람처럼 대했다면 우리는 사람을 나무처럼 의지한다. 옛날 사람들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마을숲에 가서 나무를 사람처럼 대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0&table=wook_kim&uid=7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환경과 평화, 교황의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은?

 
조현 2015. 09. 24
조회수 311 추천수 0
 

 

 

교황의 물음에 우리도 답해야한다

 

쿠바에 이어 미국을 방문한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의 심장부에서도 소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교황은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이민자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특히 교황은 공화당과 다국적기업들이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구상을 ‘용기 있는 일’이라고 칭찬하면서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하는 데 있어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의 집’은 지난 6월 교황 자신이 발표한 ‘찬미를 받으소서’란 환경회칙에서 언급한 ‘어머니 지구’를 말한다.

 

kh.jpg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 AP뉴시스

 

교황은 2013년 즉위 직후부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한 데 이어 ‘환경보호는 비용과 이익을 따지며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사실상 더 강력한 환경규제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교황은 미국에서 인디언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학대한 스페인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1713~1784)를 성인으로 선포해 미 대륙의 최대 약자인 인디언들로부터 아전인수라는 비난을 사기는 했다. 그러나 이민자 포용과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사회적 발언은 개인적 이익에 민감한 미국인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성인들의 70% 이상이 교황의 발언에 공감한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적당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달리, 지구 공동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그의 발언이 양심을 깨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하자’는 교황의 환경회칙과 발언이 가톨릭이나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물 부족을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4대강 공사가 끝난 지 3년이 넘었지만, 녹조 낀 강물이 현재의 이상 가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실한 얘기다.

 

더구나 콜롬비아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51년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상이 교황의 막후조정으로 급진척될 것이란 관측은 정전협정 6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 공동의 집’이 벼랑 끝을 오가는 우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매연 배출량을 속인 폴크스바겐 디젤차의 판매가 금지된 것에 대해 국내 기업이 상대적 이익을 누릴 것이란 점에만 환호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눈을 뜨게 하는 교황의 물음에도 답해야 할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테냐”고 묻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원입대 LA한인 청년에게 닥친 ‘애국심의 말로’

불법을 저지를 수 없다며 한국인으로서의 병역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22살의 청년
 
임병도 | 2015-09-25 09:10: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미국 LA에서 초중고를 다닌 김믿음 군은 한국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12년간 미국에 거주했던 가족의 신분이 모두 해결될 예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의료선교사였던 김 군은 ‘선교를 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불법 (입대기피)을 저지를 수 있느냐’며 한국 군대에 자원입대했습니다.

김믿음 군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 엄마는 공항에 가서까지 뜯어말렸습니다. 그러나 김 군은 엄마를 뿌리치고 2015년 3월 9일 한국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 후 홍천에서 운전병 훈련을 받던 김 군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의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꾀병으로 훈련일수가 부족하면 다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해열제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해열제를 복용하고도 열이 계속 나고 토했던 김믿음 군은 결국  의무실에 입실했습니다. 김 군의 상태는 더 악화됐고 5월 9일 뇌수막염으로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수도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훈련 이틀 뒤부터 열이 났던 김 군은 2주간 방치됐다가 3주가 지나서야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김믿음 군의 뇌는 손상됐고, 한 달 반 만에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시켰을 때는 이미 의사로부터 ‘생명을 보장못한다. 살아난다 해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믿음 군의 중대장은 ‘훈련일수 때문에 아이들이 참는 경우가 많다’라며 모든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습니다. 김믿음 군은 홍천 부대에 복귀됐다 다시 상태가 나빠져 12사단으로 옮겨져 의가사 제대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김 군에게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면 정신 이상 등의 이유로 ‘현역부적합자’라는 판단을 통한 ‘불명예제대’를 내리려고 합니다.

김 군의 어머니는 “(군대) 절대 보내지 말아라.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군에서 벌어졌던 별별 끔찍한 이야기를 다 들었다. 장애인이 된 아이를 꾀병이라고 하고, 마약 중독자로까지 몰았다. 한국 군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라며 언론과 청와대, 국방부 등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있지만, 그녀의 외침은 혼잣말에 불과했습니다.

불법을 저지를 수 없다며 한국인으로서의 병역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22살의 청년
그와 가족에게 남은 것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과 막대한 재활 치료비입니다. 
이것이 김믿음 군이 보여준 ‘애국심의 말로’입니다.
 
김믿음 군의 어머니 Anna Kim씨의 페이스북바로가기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1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친미사대 매국노 새누리당” 비난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 “북인권법” 단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5 [08: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북측은 새누리당과 국회의 북인권법 추진을 언급하며 친미 사대매국 간상배들의 집합체라고 비난해 나섰다.

 

국내 주요 언론들과 탈북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은 지난 24일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최근 남조선의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략꾼들이 대결적인 북인권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발표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이것은 남조선의 정상배들이 당리당략과 권력유지를 위해 북남사이의 대결과 민족분열을 가증시키는 악법까지 모략적인 방법으로 조작하는 더러운 야합행위이라고 단죄했다.

 

대변인 담화는 새누리당은 애초에 인권에 대해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면서 이승만의자유당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은 남조선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인민들의 생존권을 파쇼 독재의 칼날로 무참히 난도질해온 희세의 반인권적악행으로 얼룩져있다.”고 주장했다.

 

담화는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이 감행한 살인강도강간약탈 등 치 떨리는 반인권적범죄에 대해 항변은 고사하고 도리어 미국상전을 등에 업고 돌아가는 추태를 부리고 온갖 부정부패와 성추행만을 일삼으며 세상의 못된 짓만을 골라하는 쓸개 빠진 친미사대매국노너절한 정치 간상배들의 집합체도 다름 아닌 새누리당이라고 비난했다.

 

담화는 새누리당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근로대중의 혈세를 빨아내 탕진하는데만 정신 팔 것이 아니라 저들의 반인민적악정으로 인해 세계최악의 인권폐허지대로 전락된 제집안 꼴이나 바로잡는데 낯을 돌리는 것이 그나마 체면이라도 유지하는데 좋을 것이라고 훈계했다.

 

그러면서 민주와 통일을 표방하는 남조선의 야당이 파쇼독재의 본산인 반역정당에 동조하고 반 통일세력과 야합하면서 민심을 등질 것이 아니라 제정신을 가지고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할 하라고 촉구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권연대, '10.4 남북공동토론회' 추진..정부 승인 촉구

민권연대, '10.4 남북공동토론회' 추진..정부 승인 촉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09.24  17:21:06
페이스북 트위터
   
▲ 민권연대는 24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4선언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 민권연대]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를 추진하겠다며 24일 통일부에 승인을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통일부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가 진행될 수 있게 븍측 민족화해협의회에 제안서 팩스를 전달해줄 것과 10월 초 실무회담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북은 8.25합의를 이뤄내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서 “민간교류 확대에 대한 통일부 장관의 발언들이 진심이라면 이제는 민간교류의 빗장을 풀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가 10.4 남북정상선언을 인정하고, 민간교류 활성화의 의지가 있다면 남북공동토론회를 승인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는 진정성 있는 자세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아울러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을 기념하고 8.25 남북공동보도문을 적극 이행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 남북공동토론회를 제안한다”며 “남북공동토론회를 위한 실무접촉을 10월 초순에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민권연대는 “10.4 남북정상선언과 남북관계 진단”, “8.25 남북공동보도문의 의미와 이행 과제” 등의 주제로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개최를 추진하되 10월 중순경 금강산에서 여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보내는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제안]

지난 2007년 남과 북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공동 서명한 10.4 남북정상선언이 발표된 지 8년이 흘렀습니다. 10.4 선언은 정치, 화해, 평화, 경제협력, 사회문화, 인도적 분야 등 40여 개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의제를 포괄하는 통일 실천 강령이었습니다.
10.4 선언의 가치는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절 더욱 빛났습니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인 10.4 남북정상선언은 상호존중과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활짝 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의 실천 강령인 10.4 남북정상선언을 더욱 발전시켜야합니다.
8.25 남북공동보도문이 발표되고 남북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을 기념하고 8.25 남북공동보도문을 적극 이행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 남북공동토론회를 제안합니다.
 
1.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 승인을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2.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과 관련된 부처와 연계를 요청 드립니다.
 
3. 남북공동토론회를 위한 실무접촉을 10월 초순에 진행할 것을 요청 드립니다.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가 광복 70년 주년을 맞는 올 해, 남북관계 발전에 이바지 했으면 합니다.
 
2015년 9월 24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서 열린 수요집회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하루에 수도 없이 상대... 결국은 수혈까지 시켰지"

[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독일서 열린 수요집회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15.09.24 20:47l최종 업데이트 15.09.24 20:47l

 

 

기사 관련 사진
▲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녀 바라보니 그녀 얼굴의 주름이 그동안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인권운동가로서 우리가 마음 한켠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얼굴입니다.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북에서부터 남까지,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한반도 소년들을 여기저기로 데려가고 소녀들 또한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데려가 '위안소'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일본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이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에 보란 듯이.

그리고 그즈음인 지난 22일(현지시각), 한 한국 인권운동가가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호소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한 강당에 섰다. 그는 15살 남짓한 나이에 집을 떠나 대만을 거쳐 중국 광둥으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김복동 할머니다. 

강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독일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서로 뒤엉켜 들려오던 중 무대 위로 김복동 할머니가 올라서자, 모두가 숨죽였다.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 
 

기사 관련 사진
▲  김복동 할머니가 독일 학술관련 전문가와 함께 일본의 위안부 역사 대해 증언하는 모습.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발표자로 독일 함부르크재단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Dr. Regina Mühlhäuser, 문화·학술 연구 분야)가 나섰다. 

"저는 일본의 역사적 관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침묵, 또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분들의 심적·육체적·경제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독일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독일은 마치 나치 시대의 역사를 사죄하고 과거사에 대해 청산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에도 성 노예 및 성폭행,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국가적 배상은 미흡합니다. 독일 정부는 일본의 민주주의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는데, 아베와 같이 국수주의적이고 일본의 힘을 강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하는 부분은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의 발언이 끝난 뒤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대 위로 올라선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사는 삶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들려줬다.  

"하루에도 몇 명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했어. 상처가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러다 하늘이 새카맣도록 비행기가 들어오더니 일본이 손들었다 했어... 철수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젊은 여자는 간호사로 훈련시키고 늙은 여자들은 주방으로 보냈지. 일본 군인이 수술을 해야 돼서 피가 모자라면 여자들 피검사를 해서 수혈을 시켰어..." 

김복동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동안 무대에 함께 올라와 있던 두 명의 독일 학자와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번역 이어폰을 끼고 그의 끔찍했던 과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독일 

이후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와 일본 간토 가쿠인 대학의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각 나라별 연구와 대책마련활동에 대해 발제했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활동과 진행과정들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한편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Hayashi Hirofumi)는 "지금까지 일본 도처에 흩어진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일본 정부는) 위안소를 설치하면 점령국의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가 줄어들 거란 생각으로 추진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성범죄를 더욱 유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안부 문제는 노예범죄이자 성차별이고 민족차별, 계급차별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전쟁이 끝난 지 한참 후인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과거사 청산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보상을 주장했다. 
 

기사 관련 사진
▲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 번역 이어폰을 낀 채 일본과 한국의 위안부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독일 쪽 패널인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Uta Gerlant) 활동가는 "독일의 나치 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독일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의 불매운동 및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급물살을 타며 진행되었다"라며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독일의 경우, 나치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은 2007년에 완료되었고 이후 그와 관련한 재단을 설립해 나치 과거사 청산 및 생존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한 도의적 책임은 독일 의회가 도맡았고,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법적소송은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계에서 50%, 정부에서 50%씩 지원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지원활동이 이루어졌다. 

우타 겔란트 활동가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국가의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독일 역시 여성 성노예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주 인상 깊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진행하는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투쟁과 사업들은 오히려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몇 십 년 동안 이뤄지고 있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투쟁과 활동이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성 노예 피해를 입은 세계 곳곳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했다.

발표가 다 끝난 후, 객석에 앉은 청중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마침 이번 행사에 참석한 콩고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나비'의 활동으로 자기 나라의 성 노예 피해 여성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한 독일 여성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이야기하며 남과 북이 서로 연대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했다. 윤미향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남북연대는 우리 단체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분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고향은 남쪽인데, 중국 위안부에 있다가 이후 걸어서 북한에 도착, 북한에 정착한 분들도 계십니다. 저희는 정치적 이념을 넘어, 남북이 연대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2008년 남북 긴장 상태 돌입 후, 남북연대운동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북의 소식은 일본이나 중국의 언론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도 계속된 수요집회
 

기사 관련 사진
▲  베를린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수요집회 모습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 다음날인 23일 오후 2시, 베를린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독일인들을 비롯하여 일본인 그리고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참석했다. 

집회에 참석한 여러 일본인들 중 한 여성은 직접 만들어온 피켓을 펼쳐 보이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진상규명을 위해 NGO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라며 "일본 정부와 많은 국민들이 진정한 사과를 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관련 사진
▲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일본인의 모습.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집회에 참석한 독일인 안드레아스 칼레(Andreas Kahle)는 "베를린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위안부 관련 책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일본 정부가 하루 빨리 진정한 사과와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 한국, 일본을 대표하는 5명은 베를린주 일본대사관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면담을 진행하였다. 면담을 하고 나온 코리아페어반트의 한정화 국장은 "(정작 만나야 할) 김복동 할머니와의 면담을 거부한 이유를 물으니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고 전했다. 

대표자들은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전달 받은 서한을 정부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전 세계의 일본대사관에서 이러한 서한을 비롯한 원자력문제에 대한 항의문서를 처리하는 데에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집회의 막바지, 김복동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일본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독일 국민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90이 넘는 노인인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겠는가.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 할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싸울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는 앞으로 독일 언론 <슈피겔>과의 인터뷰 및 독일 외무부 면담, 국회의원 면담을 진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이제는 혼자서 걷기 힘든 김복동 할머니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9월 한 달 동안 노르웨이 오슬로,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을 이동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호소하고 연대를 구하고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논평] 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오바마와 연설, 박근혜의 노동개혁
 
뉴스프로 | 2015-09-23 14:10: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논평] 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오바마와 연설, 박근혜의 노동개혁

이하로 대기자

[출처 : 백악관 홈페이지]

오바마 연설 바로가기 : http://1.usa.gov/1KbJLn2

오바마 연설 번역기사 바로가기 : https://thenewspro.org/?p=14132

미국의 노동절을 전후해 지구의 이편과 저편에서 ‘노동’, 또는 ‘노동자’라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쪽에서는 노동자를 죽이려는 단어로, 또 다른 쪽에서는 감동을 함께한 노동자의 가치라는 단어로 쓰였다. 한국의 임금피크제로 대별되는 ‘노동 시장 구조 개혁’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동절 연설 이야기다. 천고에 변치 않을 것 같은 동맹인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며 정말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천민자본주의가 극대화된 한국에서의 가속화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죽이기. 오늘날 미국의 가치를 노동자들의 거룩한 희생에서 찾으며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는 미국 대통령의 연설. 오바마의 연설로만 보면 경제의 중심을 노동자에 두는 미국과 경제의 중심을 기업의 이익에 두는 한국, 두 동맹의 노동에 대한 차이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크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헬조선’이란 말이 실감 나는 부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일 행한 보스턴 노동협의회 노동절 기념 조찬 연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국의 노동 현실과 비교되며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의 연설을 주목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가장 큰 화두는 김무성의 뽕사위가 아니라 바로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논란이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개혁’ 또는 ‘선진화’라는 말로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을 몰아붙이고 있는 형국이고 이에 대해 노동계는 ‘개악’, ‘재벌 배불리는 구조 조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개혁의 중심에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 피크제’가 있다 이 ‘임금 피크제’라는 것은 임금의 최고점, 즉 피크를 정해놓고 피크가 지나면 단계적으로 임금을 낮추어가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재원으로 내년부터 3년 만에 18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재벌들이 ‘임금 피크제’를 통해 절약된 돈을 가지고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소가 웃을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이 돈이 없어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없다. 재벌들이 곳간에 쌓아놓고 있는 돈만 해도 7백조 원이 넘어가는 마당에 이제 ‘임금 피크제’를 통해 ‘열심히 일한 당신’의 임금을 줄여 그 돈으로 재원을 마련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풀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할 의지가 없어서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재벌들을 위해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짜내어 재벌들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의지를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 세대의 임금을 줄여 아들 세대에게 주겠다는, 세대 간의 갈등을 촉발 시키는 기도 안 차는 논리를 들고나온 것이다.

현재 재벌들의 곳간에 가득 차 있는 사내유보금 역시 재벌 봐주기, 면세 혜택을 통해 쌓인 것으로 국민과 노동시장, 사업장으로 돌아와야 할 몫을 재벌들이 가로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임금피크제’라는 것이 한국의 재계가 발표한 통계나 자료 말고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사례가 없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인 ‘억지’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아들이 아버지더러 ‘내 일자리 내놓고 물러나라’는 시위라도 벌이기를 박근혜 정부는 바라는 것일까?

오바마의 연설로 돌아가 보자. 오바마는 미국이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외모를 하고 있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나라, 심지어 자신처럼 최고의 공직, 즉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정의한 뒤 “우리는 일한 대가로 자존감과 안정감을 보장해주는 직장에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면 우리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으며, 근면함과 타인을 존중하는 것의 가치, 나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는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탔다는 것, 우리가 미합중국이라는 개념을 자녀에게 심어줄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며 계속 조국의 현실이 대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참담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오바마는 이것, 즉 노동운동이 미국을 세운 신념이자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한 중산층을 만들어낸 신념이라며 “바로 이것이 수대에 걸쳐 노동 운동이 해온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한국의 노동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오바마는 위대한 미국이 바로 노동자들 덕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가정이 잘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위하고 조직했던 근면한 미국인들이 이룬 것, 자기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급여를 요구했을 뿐 아니라 옆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직장의 보장을 더 많이 요구했던 근면한 노동자들이 이룬 것”이라고 강조한 뒤 “그들은 피켓을 들고 추운 날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핑커튼과 싸웠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때로는 노조를 만들다가 두드려 맞거나 해고를 당하고 협박을 받으면서 모두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옹호했던 사람들이었다”고 미국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짚었고 이들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오바마는 노조가 이루어 낸 것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분들, 여러분의 부모님들, 조부모님들, 증조 부모님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얻어내 주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시간 외 근무 수당, 최저임금, 그리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얻어내 주신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연금, 노인의료보험 및 퇴직연금을 가져다준 것은 그분들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노조가 얻어낸 것들입니다.” 노조의 위대함을, 노조의 수고를, 노조의 가치를 대통령이 인정하고 칭송하고 이어받자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노조를 압박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며 비정규직이 넘쳐나며 그나마 10프로의 노동자만이 가입되어 있는 노조마저 파괴하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나서고 있는데 말이다.

오바마는 노동자들이 이루어낸 중산층의 가치란 ‘미국인의 98%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고 상위 2%에게 조금 더 세금을 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며 ‘학자금 대출을 개조하고 펠 그랜츠를 늘려서 모든 아이들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2년제 커뮤니티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야 하며 ” 1천6백만 미국인들이 건강보험 가입 혜택을 얻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고 청사진을 펼쳤다.

오바마는 이것이 “ 어느 누구도 단지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무일푼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중산층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라고 정의했다. 오바마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과 적당한 근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싸워주며, 규칙을 지키는 이들을 보상해줄 때 그래야 모두가 더 잘 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할 때 미국이 더 앞서 나간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오바마는 여러 가지 미국이 당면한 개혁에 대해 이야기 했고 청중들은, 아니 미국민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미국민들의 이러한 반응은 미국의 유일한 사회주의 의원이라는 샌더스 의원의 돌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구의 이쪽에서는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조파괴와 노동 말살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구 저쪽에서는 노동자와 노조가 이 나라를 이루어냈고 그 가치를 이어가야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재벌들의 곳간을 더 채우기 위해 여전히 세금을 감면해주고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최상위 부유층들에 대한 세금 과세는 당연하다고 대통령이 이야기 하고 있다. 오바마의 노동개혁은 노동의 가치를 계승 발전해나가는 것이고 박근혜의 노동개혁은 노동자를 죽이는 것이다.

난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20세기 이후 모든 인류사적 범죄행위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약탈한 부를 통해 미국이 잘 먹고 잘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마바의 저런 자부심과 저런 연설이 솔직히 부럽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바마에게 직접 말할 수 있다면 한마디만 하고 싶다. 그런 정의가, 그런 가치가 왜? 꼭! 미국에게만 해당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왜 미국의 것이어야만 하냐고.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6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양서 발견된 1천만 마리 '개미제국', 개발로 사라지나

안양서 발견된 1천만 마리 '개미제국', 개발로 사라지나

김정수 2015. 09. 23
조회수 719 추천수 0
 

연말 이전 축산검역본부 정원서, 50년전 시작된 일본왕개미 초군체
 “생태계 전시와 보전 가치 높다”, ‘제국의 운명’ 안양시 선택에 달려

 

ant1.jpg» 안양시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 화단의 경계석 사이 개미굴 입구에 몰려 있는 일본왕개미들. 약간 커 보이는 개체들은 일개미 가운데서도 병정개미다.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경기도 안양시 만안경찰서 사거리와 현충사거리 사이에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은 아름드리 벚나무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으로 제법 알려진 곳이다. 일제 때인 1942년 이곳에 터를 잡은 조선총독부 가축위생연구소 지소에서 출발해 이름만 바뀌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런 역사를 몰라도 누구나 아름드리 벚나무들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선 가슴높이 지름이 1m가 넘는 거대한 버드나무만 보면 이 정원의 짧지 않은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7000여㎡에 이르는 이 구내 정원과 그 아래 땅속이 정원의 역사만큼 오래된 일본왕개미의 거대한 제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름과 달리 이 개미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이름에 ‘일본’이 붙은 건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명명돼서다.

 

인가 주변과 공원, 산지의 건조한 풀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왕개미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미 120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몸길이가 최대 15㎜에 이른다.

 

ant2.jpg» 일본왕개미 초군체가 서식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을 본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지난봄 국립생태원에 전시할 열대개미 검역 문제로 축산검역본부를 찾았다가 잠시 쉬려고 정원에 들어선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의 눈에 심상치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일본왕개미들이 정원의 산책로 주변에 수십마리씩 몰려다니고 있었다.

 

개미들은 산책로와 화단 사이에 둘러쳐진 경계석을 마치 고속도로처럼 이용하고 있는 듯했다. 개미의 생태를 소개한 <개미제국의 발견>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개미 전문가의 탐구심이 발동했다.
 

최 원장이 본부 구내를 천천히 돌며 살펴보니 본부 건물 앞 정원 전체를 일본왕개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개미들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군체들이 모여 있을 때 종종 발견되는 군체 간 전쟁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 원장은 바로 간단한 실험에 들어갔다.


“멀리 떨어져 활동하고 있는 개미 무리 가운데서 몇마리씩 붙잡아 다른 무리들 사이에 떨어뜨려 봤어요. 서로 군체가 다르면 싸움이 벌어지는데,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더군요. 어쩌면 정원에 있는 전체 개미가 한 군체, 즉 어마어마한 초군체(supercolony)를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nt4.jpg» 화단경계석을 고속도로처럼 이용하는 일본왕개미 무리.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IMG_9049.JPG» 일본왕개미가 둥지를 파느라 퍼낸 흙더미.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최 원장의 연락을 받은 국립생태원 생태진화연구부 연구팀의 정밀조사 결과는 최 원장의 예상대로였다.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정원 안에 서식하는 일본왕개미들이 적어도 50년 전에 결혼비행을 마치고 정착한 한마리의 여왕개미로부터 출발한 한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원 땅속에 미로처럼 얽힌 개미굴에는 2만~3만마리 규모로 알려진 일본왕개미 일반 군체 크기의 수백배인 1000만마리 이상의 초군체가 거대한 왕국을 이루고 있으리라 추정됐다. 최 원장의 책 제목 그대로 ‘개미제국의 발견’이었다.
 

최 원장은 “일본·미국 등 외국에서 확인된 초군체 규모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한 규모”라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국내에서 그 정도 규모의 일본왕개미 군체를 직접 확인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찾아간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에서 가장 많은 개미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정원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였다. 어른 둘이 팔을 둘러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 나무의 표면은 온통 오르내리는 개미들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개미들의 최종 목적지는 잎사귀였다. 이들이 한두마리씩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에는 모두 검은색의 작은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ant3.jpg»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의 버드나무 잎에서 공생하는 일본왕개미와 털진딧물. 조용철 생태사진가
 

노푸름 국립생태원 생태진화연구부 전문위원은 “검은색 벌레는 털진딧물 종류”라며 “개미들이 딱정벌레와 같은 진딧물의 천적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단물을 제공해주며 서로 공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내 정원 안 산책로와 가장자리 곳곳에는 개미들이 굴을 파느라 밀어내 놓은 흙더미들이 쌓여 있었고, 최 원장이 보았던 대로 경계석을 따라 길이 1㎝ 안팎의 개미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1㎝ 이상의 큰 개미들은 일개미 가운데서도 병정개미들이었다.
 

국립생태원에서 개미탐험전을 진행하고 있는 최 원장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정원은 서식하는 개미 군체의 규모가 거대할 뿐 아니라 개미들이 마치 화단 경계석을 고속도로로 이용하는 것처럼 경계석을 따라 움직이고 있어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교육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며 “이곳의 개미 군체들을 잘 보존한다면 전체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나라는 물론 국외에서도 보기 힘든 생태 교육·전시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에 수십년간 존속해왔으리라 추정되는 이곳 개미제국의 운명은 안양시에 달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올해 말 경북 김천으로 이전하며 안양시가 개미 군체 서식지를 포함한 본부 터 5만6000여㎡의 새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축산검역본부가 떠난 것을 계기로 이곳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이라도 벌어진다면 개미제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안양시청 도시정비팀 백수임 주무관은 “시가 2018년 5월까지 매입대금 1293억원의 분납을 완료해 이 땅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활용하는 방안으로 공공기관과 상가가 한데 들어가는 관상복합타워, 아이티(IT)·벤처단지, 유보지와 공원 등 다양한 제안을 놓고 검토가 진행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련희씨, "생이별 비극은 분단모순 때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9/24 06:54
  • 수정일
    2015/09/24 06: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국과 가족에 미안, 통일에 모든 것 바칠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3 [19: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탈북자라는 이름표를 낙인처럼 달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여인이 있다. 조국과 아버지, 어머니, 딸, 남편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는 여인, 고향 품으로 돌려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조국 품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수면제를 먹고, 동맥을 자르며 죽음으로 송환을 요구한 평양 시민 김련희 씨다.

 

지난 22일 북측은 처음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유인랍치 된 김련희를 돌려보내라’고 남측당국에 요구했다.

 

그런데 남측 당국은 아직은 돌려보낼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김련희 씨는 인권과 자유를 말하는 한국 당국이 “왜 천륜을 끊느냐”고 항변했다.

 

그녀는 한국정부가 인권과 자유를 말한다면 자신은 물론 송환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전원 송환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는 일은 분단모순 때문이라며 통일의 절박함을 피력했다.

 

그녀는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출신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남도 북도 모두 조국이라고 이야기하고, 평양시민이자, 대구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 세상의 가장 비극적인 분단모순을 끝내고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을 위해 온 겨레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탈북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김련희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남으로 왔다며 북으로 송환을 요구해 온 김련희씨는 자신과 같은 비극을 끝장 내기 위해서는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요즘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의논하기 위해 여러 인권단체들과의 모임에 참여하고 영국의 BBC, 미국의 CNN 인터뷰로 서울에 올라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송환대책을 위해 보내다 보니 어제 회사에서 그만두라는 해고 통지가 왔네요.

 

- 어제는 북측에서 유인납치 된 김 선생을 돌려 보내달라고 촉구했고 남측에서는 법적인 문제를 들며 보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심경이 복잡할 텐데 지금 마음이 어떻습니까. 
  
▲ 어제 북측 조국에서 남측 조국에 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너무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예요. 이렇듯 병든 자식을 더욱 껴않는 부모와 같은 나의 조국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 고통스럽고 지옥 같은 4년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어요?
독감방의 철창 속에서 저의 온몸을 쇄사슬로 꽁꽁 묶어놓고 구둣발로 내리밟아도 매일같이 벽에 우리 공화국기를 그려 붙여 놓고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너무나 소중한 나의 조국이예요.
 남측에서 열백번을 다시 묶어놓는다 해도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저의 결심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 남측 정부 당국은 김 선생이 자유의사로 조선의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고 서약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 김련희씨는 중국 친척 언니를 방문했다가 지병인 간경화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비 때문에 남한까지 왔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남측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속아서 잘못 온 것이니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강경하게 요구했죠. 하지만 국정원은 대한민국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국정원에서 나갈 수 없으며 여기서 죽어도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가 여기서 그 누구도 모르게 죽으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운 생각에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약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 무엇 때문에 중국에 갔으며 남한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 2011년6월에 중국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 여행을 가게 되죠. 그곳에서 저는 원래 앓고 있던 간경화가 심해져 치료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조국하고는 치료 체계가 너무 달랐어요. 조국에서는 돈 한 푼들이지 않고도 치료를 할 수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사촌언니에게 치료비를 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내 자신이 치료비를 벌어 병치료를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만 한국에 가서 일하면 많은 돈을 벌어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브로커의 속임수에 넘어가 최악의 실수로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 김 선생은 강제로 남한에 왔다는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강제로 협박하거나 납치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 남한에 오기까지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 탈북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심양에서 정주라는 곳에 가게 되죠, 그 곳에서 어느 한 건물에 다른 분들과 함께 갇혀있게 되요 그때 옆에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두달만에 중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내가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저는 도망가려고 브로커에게 빼앗겼던 여권을 돌려달라고 항의하지만 여권이 벌써 자기 윗사람에게 가있다면서 돌려주지 않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남한행을 하게 됩니다

 

- 남한에 와서 바로 북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했다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서약서를 쓴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또 다시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 입국 첫 순간부터 돌려보내줄 것을 강경하게 요구하지만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고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여기서 나갈 수 없으며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모른다고 협박을 해요.

 

그때 탈북자들을 통해 사회에 나가면 6개월만 지나면 여권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당시 생각으로 사회에 나가면 여권을 받아서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국정원의 압력을 받아 서약서를 쓰게 됐어요.

 

▲ 브로커에 속아 남한으로 왔다가 끊임없이 송환을 요구해 오고 있는 평양시민 김련희 씨가 가족들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며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작성해 대한적십자자사에 제출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북으로 다시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요

 

▲ 국정원에서 조국으로 돌려 보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1달 동안 단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식 투쟁이라는 말도 모른 채 밥을 먹지 않으면 나의 요구가 받아 들여 들여지리라 믿은 것이지요. 단식 당시에 국정원 직원들은 나에게 밥을 먹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후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6개월 후 여권을 신청했으나 1년 동안 승인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정원에 문의하니 “북으로 도망갈 수 있어 여권을 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답변을 듣고 합법적으로는 조국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밀항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밀항을 위해서는 2천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위조여권 싸이트를 알게 되어 위조 여권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 약속했던 25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고 중단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 노력들이 경찰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과 공문서 위조 혐의로 조사를 받고 기소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조국에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고 조국을 떠나서는 제 자신을 생각할 수 없다는 양심에 따라 많은양의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보름동안 병원 치료를 받고 생명을 부지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을 퇴원한 다음날 또 다시 손맥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으나 또 다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되고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가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조국과 가족에 대한 최소한 도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간첩이 되면 강제 추방 되어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탈북자 17명의 신상을 수집하여 휴대폰에 입력한 후 경찰에 북측에 전달하려고 하니 빨리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신고를 하게 되었죠. 그러나 경찰은 이상하게도 열흘이 되도록 잡으로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열흘 후 다시 경찰에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요청을 했습니다. 전화 통화 후 대구 모 식당에서 경찰 두명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저의 휴대폰을 보여 주며 내가 간첩 맞지 않느냐 이것이 증거다라고 말했지요. 이후 20여일이 지나 경찰이 가택 압수수색을 진행 한 후 간첩죄로 체포해 감옥에 넣었습니다.
      

▲ 김련희씨는 가족의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이라며 남한 당국이  자신을  조국과 가족에게 돌려모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간첩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되었는데 어떻게 결과가 나왔나요.

 

▲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부는 간첩이라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던지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해 올해 4월 석방되었지요. 말그대로 집행유예 간첩이네요.
간첩이 이렇게 쉬운건지 너무 웃겨서 제가 수사관에게 물었답니다.“이 나라에서는 내가 살인자요 한다면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느냐고요. 살인자가 되려면 살인 동기나 과정, 증거물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요.”

 

- 북에 있는 가족과는 연락을 한 적이 있으시거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 중국에 있는 사촌언니 집으로 부모님과 남편, 딸이 보낸 편지로 소식과 사진 등을받아 가족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조국에 있는 가족들은 4년동안 돌아오지 않는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애타게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과 남편 딸을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생이별의 아픔만큼 큰 것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울음)

 

- 남쪽이나 서방 언론에서는 북의 인권이 참혹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의 가족이나 탈북자 자신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한다던데 만약 송환이 이루어진다면 처벌이 두렵지는 않습니까.

 

▲ 저는 북에서 40여년간을 살면서 고문이나 수용소등은 알지도 못했고 들어 보지도  못 했어요. 다만 교양적 차원에서 노동 교화소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나와서 소위 탈북자의 이름을 쓰고 북의 인권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은 조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배려를 많이 받으며 살다가 엄중한 죄를 짓고 죄 값을 치르기 싫어 배은망덕하게도 자기를 키워주고 공부시켜 내세워준 어머니조국을 배신하고 도망쳐 나온 반역자들이예요. 그런 범죄자들의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을 이용하는 정부당국을 보면서 진실로 통일을 원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조국에 돌아가면 조국이 관대하게 용서해준다 해도 저는 제 스스로 죄 값을 치를 것입니다.

 

▲ 김련희씨는 남쪽 조국에 와서 분단 모순을 절감하게 되었다며 조국통일을 위해 남은 생을 다바치겠다고 다짐하며 활짝 웃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마지막으로 가족과 북측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조국과 가족에게 죄송합니다.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순간의 실수로 조국과 가족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조국과 가족은 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부모에게는 불효한 자식, 딸과 남편에게는 걱정을 끼치는 어머니,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가 못 다한 자식노릇 부모 노릇, 아내 노릇, 조국의 딸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특히 나는 이번에 남쪽 조국에 와서 분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중요성도 더욱 실감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남에 있건 북에 있건 조국통일에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칠 결심을 했어요. 한 핏줄인 우리민족, 한 맥을 잇고 있는 조국강토가 하나로 되어야 하는 것은 온겨레의 염원입니다. 왜 우리가 생이별을 하고 살아야 합니까. 남북해외동포 모두에게 절절히 호소합니다. 통일에 나서자고요. 감사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 개천절 행사에 북측 대표단 초청


개천절준비위 기자회견, 평양행사는 무산..서울 공동행사 '기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09.23  11:25:49
페이스북 트위터
   
▲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23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 개천절 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단기 4348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해온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개천절준비위)는 23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개천절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정중히 초청’한다고 밝혔다.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 “우리는 귀측의 상황을 감안하여, 10월 3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4348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정중히 초청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8명의 대표단이 방북해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봉행한 바 있는 개천절준비위는 올해도 평양 공동행사를 추진했지만 북측이 부정적 입장을 전해오자 서울 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 것.

도천수 개천절준비위 준비위원장은 경과보고에 나서 ‘개천절 공동행사 사실상 무산’ 보도에 대해 “잘못된 보도”라며 “올해도 평양 단군릉 행사를 북에 제안했지만, 북이 당 창건 행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평양에서 공동행사 하는 것은 어렵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회장 류미영) 측은 지난 12일 평양시가 오는 10월 10일 당창건 70주년 ‘축전’ 준비로 붐비는 등 여러 사정으로 평양에서 개천절 공동행사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앞줄 왼쪽 두 번째)이 '국민께 드리는 글'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도천수 준비위원장은 “평양 행사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북의 대표단이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공동행사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해둔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실무회담이 진척이 안됐지만 일부 잘못된 전달에 의해서 행사가 무산된 것으로 보도됐는데,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개천절준비위는 지난 12일 북측 팩스를 받고 13일 ‘서울 공동행사’를 북측에 수정 제안했지만 북측은 아직까지 입장을 통보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승길 사무총장은 “개천절을 통해 민족이 하나 되어서 우리 민족의 위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막아낼 수 있는 단합된 힘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금년에도 가능성이 조금 있다고 본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원 회장은 “2014년 남북 정세의 어려움을 뚫고 단군릉에서 남북이 함께 하늘에 천제를 올리며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공동개최해 왔다”며 “우리는 이번 개천절이 종교와 이념, 계층과 지역을 넘어 민족 분단의 고통을 끝내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숭고한 개천절민족공동행사가 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우리는 개천절행사를 성대하게 봉행하여 남북 민간교류의 중대한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만들고자 하며, 아울러 원시조 단군성왕의 후손으로 체제와 이념을 넘어 민족 통일의 대로를 열어야 한다”면서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광화문광장에 선 민주노총
최루액 맞고 차벽에 막히고

[현장]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15.09.23 16:53l최종 업데이트 15.09.23 23:37l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을 향해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유성호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유성호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한 노동자의 멱살을 잡으며 강제연행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최종신 : 23일 오후 6시 40분]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에 진출했지만, 경찰이 마구잡이로 쏜 최루액과 차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혀 흩어진 뒤, 다시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노동자들은 오후 5시 40분께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사이 세종대로를 점거한 뒤 "쉬운 해고 반대한다", "박근혜를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권은 늘 경찰의 장벽 뒤에 숨어 있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통치를 빙자해 노동자, 서민의 생존을 폭격하는 정권을 끝내자"라고 외쳤다. 

그는 "오늘 투쟁에 이어 10월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저항의 불꽃을 지피겠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아 반격의 포문을 열겠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해산하는 과정에서도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도로에 있던 일부 노동자들을 인도로 밀치자, 노동자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마구잡이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쏘면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와 노동자 최소 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민주노총은 10~11월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10월 12~17일에는 '노동개악 가이드라인 분쇄 총파업 총력투쟁'을 벌이고, 11월에는 총파업에 나서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수배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신문로 구세군회관앞에 바리케이트와 물대포를 배치해 저지하고 있다.ⓒ 권우성
[1신 : 23일 오후 4시 53분]
민주노총, 총파업 후 행진 시도 "청와대로 간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저지되자 다른 길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권우성
23일 오후 3시 '노동 개악 반대'를 걸고 총파업 집회를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세종로 사거리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4시 20분께 행진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그러나 500m도 못 가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혔다.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이들은 대열을 돌려 이동해 늦은 오후 광화문 광장에 집결, 청와대로 가는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날 총파업 집회에는 산하 전국서비스노동조합연맹·전국금속노동조합 등 전국 16개 지역본부 조합원 1만여 명이 참여했다(경찰 추산 4500여 명).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혁 박살 내자", "노동자 다 죽이는 노동개혁 끝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사무실 앞 새문안로 8차선 도로 중 일부를 점거한 채 집회를 진행했다. 점거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경찰 측도 이날 오전부터 서울시청 앞부터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광화문 일대 도로에 경찰 버스 수십 대와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 개악 찬성할 수 없다"

이날 현장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 총파업과 5월 노동절 집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6월 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당시 민주노총 측은 "추후 조사를 받겠다고 했음에도 체포 영장을 재청구한 것은 명백한 노동탄압"이라고 반박했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 안에서 석 달 가까이 지내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위원장은 "노동 개악으로 인해 쉬운 해고 등 야만의 시간이, 우리 자녀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분노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서도 비정규직 악법을 막아내지 못한 탓에, 또 정리해고로 인해 수많은 동료를 잃었는데 더 많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이번 노동 개악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우리 아들·딸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며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민주노총도 역사적 사명을 다 하겠다, 오늘 청와대로 간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 위원장은 이를 위해 10월 24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11월 14일 '전국노동자대회 및 민중 총궐기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연대 발언에 나선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양혜영씨는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으로 아들·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노사정위 결과를 보니 아들·딸은 평생 비정규직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제 살 깎아 먹으라는 것으로, 상생 고용이 아닌 '살생 고용'이다, 청년들은 여기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측은 "이번 총파업은 지난 9월 13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악 방안을 야합하고, 16일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비정규직 확대 등 입법안을 발표한 데 따른 즉각적 경고"라며 "정부와 여당이 노사정위원회 야합을 근거로 '노동개혁'으로 가장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어 투쟁이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비슷한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는 노사정위 합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다가 4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취재중이던 한겨레신문 기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항의를 하자 경찰은 한참 뒤 풀어줬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취재기자를 강제연행하는 경찰에 항의하던 노동자가 사지가 들려 강제연행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자, 경찰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노총 등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발족


23일 노동개악 반대 총파업, 상경투쟁...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09.22  17:09:52
페이스북 트위터
   
민주노총을 비롯한 58개 부문별 단체들이 22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발족시키고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민주노총]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빈민연대 등 58개 부문별 단체들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일자리·노동, 농업, 민생빈곤, 청년학생, 민주주의, 인권, 자주평화, 세월호, 생태환경, 사회공공성, 재벌책임 강화 등 11대 분야에 걸쳐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를 제시하고 오는 11월 14일 서울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투쟁본부는 비정규직문제해결을 위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와 함께 정부의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현장 국민투표를 다음달 19일부터 말일까지 주 1회 이상 진행하기로 했다.

또 다음 달 초순 이후에는 시·군·구와 단위 노조 및 제 단체들이 나서 시·군·구 및 부문별 민중총궐기운동을 선언하고 현재 710조에 이르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민중총궐기위원회 차원에서 적극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후 강원, 대전, 경남, 부산, 울산, 충북, 서울, 전남, 충남, 대구·경북, 경기, 전북, 제주 등 광역지역에서 지역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이 여세를 몰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는 일정이다.

투쟁본부는 각 분야에서 절박한 당사자들의 호소문을 담아 ‘청와대로 가자’는 대중운동을 벌여달라고 제안했으며, 지역과 거점에서 진행되는 노동악법 국민투표와 밥쌀 수입 반대 온라인 서명에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10월 중순경부터는 총궐기위원회 대표단이 나서 전국을 행진하며 11월 14일 총궐기대회 참여를 직접 호소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1천만 시대, 재벌은 배가 터지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300만이 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부는 모든 위기를 여전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며 "이 정권을 단죄하지 않고 민중은 살아갈 수 없다. 민주노총은 모든 것을 걸고 이 투쟁의 선두에서 진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조덕휘 전국빈민연합 의장, 김현후 빈민해방실천연대 위원장은 총궐기 투쟁에 함께해 정권심판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쟁본부 발족선언문에서 지난해 29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비극이 올해 메르스 사태로 재현돼 36명의 생명이 또다시 스러졌다며, 민중의 안전과 생존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는 정권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는 남북대결정책 고수와 흡수통일 노골화로 이 땅에 전쟁의 긴장을 높이고 있으며, 사드 배치를 추진, 이 땅을 미국의 대중 군사대결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고용불안정화로 당면한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반발했다.

밥쌀용 쌀 수입이 그대로 지속돼 농민의 생존권이 마지막 벼랑에 섰으며, 재개발·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도 쉼 없이 지속되고 있고 청년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 ‘망한민국’이라 부르며, 이 땅을 떠나겠다고 절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쟁본부는 11월 14일 대회를 노동자·농민·빈민·청년학생·장애인대회 등 각계 각층의 부문대회를 개최한 뒤 본대회로 집결하는 방식으로 진행, 10만 명을 목표로 하는 민중 총궐기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재벌들이 추구하는 반민중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갖고 오는 23일 총파업-상경투쟁을 결정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청계선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개최, 가맹 산하조직 조합원 7천여 명과 함께 쉬운해고와 강제임금삭감,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에 반대하는 9.23 총파업, 상경투쟁을 결의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

 

○ 일자리노동

-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중단

-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모든 서민의 사회안전망 강화

 

○ 농업

- 밥쌀 수입 저지 / TPP 반대

-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 민생빈곤

- 노점단속중단, 순환식 개발 시행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 청년학생

- 재벌 곳간 열어 청년-좋은 일자리 창출 요구

- 대학구조조정 반대

 

○ 민주주의

- 공안탄압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해체, 양심수 석방

- 역사왜곡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폐기

 

○ 인권

-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 중단

- 국가인권위 독립성 확보, 정부 및 지자체 반인권행보 중단

 

○ 자주평화

- 대북적대정책폐기, 남북관계개선! 5.24조치해제, 민간교류보장!

- 한반도사드배치반대, 한미일삼각군사동맹중단! 일본의 군국주의 무장화 반대!

 

○ 세월호

- 세월호 온전한 인양,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 안전사회건설

 

○ 생태환경

-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계획 폐기

- 신규원전 건설 저지 / 노후원전 폐기

 

○ 사회공공성

- 의료 철도 가스 물 민영화 중단

- 제주 영리병원 추진 중단, 공공의료 확충

 

○ 재벌책임 강화

-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로 최저임금 1만원 실현

-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하청노동자 직접교섭 참여 등 재벌 사용자 책임 이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다의 포르셰’ 참다랑어, 양식장 그물과 충돌 사고

 
황선도 2015. 09. 22
조회수 176 추천수 0
 


참치로 알려진 다랑어, '맛의 백화점' 인기 독차지

속도광이자 멸종위기종 참다랑어는 완전양식 길 열려

 

03543345_R_0.jpg»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앞바다에서 시험 양식중인 참다랑어. 사진=제주수산연구소 
 
‘참치’란 이름은 동해 지역 사투리
    
뭐라 해도 가장 값비싼 횟감으로는 ‘다랑어’를 꼽을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참치’라고 알려졌고, 영어로는 ‘튜나(tuna)’라고 부른다. 
 
참치라고 불리는 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넙치, 꽁치, 멸치, 쥐치, 가물치, 한치 등과 같이 생선에 접미어로 붙이는 ‘치’ 자에 으뜸을 나타내는 ‘참(眞)’ 자를 붙여 진짜 생선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공식 이름인 다랑어 대신 참치가 더 일반적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해방 후 해무청 어획담당관이 참치라는 명칭이 동해 지역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고서에 기록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은 원양회사에서 상표에 쓰면서 오히려 주류가 되었다.
   
다랑어는 고등어, 망치고등어, 삼치 등과 함께 농어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외양성 고도 회유종으로 수만 킬로미터를 유영할 정도이다. 다랑어는 잠잘 때도 뇌 기능만 수면을 취할 뿐 10여 년이란 일생을 통해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헤엄친다.
 
유영속도가 평균 시속 60킬로미터, 순간 최대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참 고단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출 1위의 ‘돈 되는 생선’ 

참다랑어.jpg» 평생을 쉬지 않고 헤엄치는 태평양 참다랑어. 사진=open cage

   
다랑어가 사는 곳은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아열대 및 온대해역의 5대양에 널리 분포한다. 초여름에는 고위도로 올라오고 늦가을에 다시 저위도로 계절회유를 한다. 
 
일반적으로 열대성 다랑어에는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가다랑어가 있고, 날개다랑어는 온대성 다랑어로 분류된다.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참다랑어로 몸길이가 3미터를 넘고 무게는 600킬로그램이나 나가며, 새치류는 몸길이가 6미터 정도가 되고 무게는 9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것이 있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에 많지는 않으나, 동해와 동중국해 먼바다에 회유하여 들어온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1957년 인도양에서 처음 조업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주요 어획종이 되었다. 
 
한국원양어업 통계를 보면, 원양에서 2014년에 가다랑어 22만 9588톤, 황다랑어 6만 3970톤, 눈다랑어 2만 2868톤, 날개다랑어 1310톤, 남방참다랑어 783톤을 어획했고,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참다랑어 1311톤을 잡았다. 
 
어획한 다랑어는 대부분 횟감과 통조림용으로 수출하며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이다. 이들 다랑어와 새치는 열대성 표층어 중에서 가장 큰 고도 회유종으로서 성장이 빠르고 맛이 좋기 때문에 원양수산자원으로서 매우 귀중히 여긴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

tu1.jpg» 최초 상업 원양어선, 지남호. 사진=<수산자원조사 50년> 

감칠맛 뱃살 다른 부위보다 2~3배 값 
 
생선 중 ‘맛의 백화점’으로 불리는 참치는 1980년대만 해도 식도락가나 엘리트 층의 고급 횟감으로만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흔한 생선이 되었다. 이게 다 원양어업과 식품가공업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참치 관련 식품회사들이 계속하여 통조림 등 다양한 상품들을 널리 유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랑어는 용도에 따라 횟감용과 통조림용으로 나뉜다. 횟감용 다랑어는 살코기 속에 기름기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 크기에 상관없이 참다랑어와 눈다랑어가 참치회로 가장 좋다. 
 
통조림에 좋은 다랑어는 크기가 적당해야 한다. 지나치게 큰 것과 어린것은 좋지 않다. 가다랑어와 날개다랑어가 통조림으로 이용된다. 
 
이처럼 참치가 여전히 횟감 중 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역시 참치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맛 덕분이다. 참치의 참맛은 바로 잡아 올렸을 때의 색깔 그대로가 유지된 것이 최고로 손꼽힌다. 냉동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어디서나 싱싱한 참치를 만끽할 수 있다. 
 

03088312_R_0.jpg» 참다랑어 옆구리살로 만든 초밥. 사진=박미향 기자

 

이러한 참치도 부위에 따라 맛과 가격이 현저히 다르다. 가장 맛이 좋고 비싼 부위는 뱃살이며 다른 부위보다 2~3배 비싸다. 
 
그 이유는 뱃살에는 토로라 불리는 지방이 등살에 비하여 수십 배 더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소하다. 다랑어 고유의 감칠맛은 이노신산이라는 성분이 많기 때문인데 이는 핵산조미료의 구성성분이 된다. 
 
참치의 살이 붉은 이유는 근육에 혈액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빠른 유영을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소를 근육에 보내야 하므로 근육에 모세혈관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고기 살에 혈액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잘못 보관하면 금방 부패해 버린다. 참다랑어의 붉은 살코기는 지방이 35%나 된다. 
 
일본사람들은 전통식품으로서 가다랑어를 이용하여 조미용 국물을 얻기 위한 건조가공품을 만드는데 이것을 ‘가쓰오부시’라고 한다. 다랑어를 알맞게 다듬어 건조, 발효를 반복하여 몽둥이 모양의 단단한 제품을 만들어, 이를 얇게 썰어서 국물을 우려내는데 이용한다. 가쓰오부시에는 핵산 조미료 성분인 이노신산, 히스티딘염이 많이 들어있다.
 
03901585_R_0.jpg» 다양한 부위의 참치 회.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돼지고기보다 단백질 많아
 
다랑어는 일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인들에게도 생선의 대들보 격이라고 생각해서 ‘바다의 귀족’, 또는 닭고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해서 ‘바다의 닭고기’라 불릴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다랑어는 단백질 비중이 27.4%나 되어 생선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육류인 돼지고기, 쇠고기나 닭고기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지방은 6.6%로 육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고단백 저열량 식품이다. 다랑어는 비타민 B군, 토코페롤,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이 많아 어린이의 균형있는 성장을 도우며, 탄수화물이 거의 없고 지방이 적어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환자의 영양식으로도 추천된다. 
 
고등어, 정어리, 다랑어, 연어 등 소위 등푸른 생선에 많다는 EPA와 DHA가 풍부해 동맥경화, 고혈압, 뇌혈전 및 심근경색 등의 성인병 예방에 상당히 효과적이며 머리를 좋게 하는 건뇌식품의 보고처럼 각광받는 생선이라고 평가하고 있어 참치 예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안 된다. 참치는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수은 등 난분해성 유해물질이 농축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임산부나 가임여성, 유아 등은 메틸수은 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냉동 참치를 주 1회 이상 먹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tu2.jpg» 여러 종류의 다랑어를 설명하고 있는 포스터. 그림=국립수산과학원 
 
참다랑어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른다. 2013년에 일본 도쿄의 수산시장에서 222킬로그램짜리 참다랑어 한 마리가 18억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18억 짜리’를 잡았다면 로또라 할 만하겠다. 
 
이 참다랑어로 만든 초밥 2점 한 접시를 원가로 따지면 60만원에 해당한다고 하니 감히 입에 넣을 수 있기나 하겠는가. 아무리 참치 좋아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라면 참치 사랑이 아니라 참치 전쟁 수준이다. 

04165511_R_0.JPG» 2012년 도쿄의 한 참치회 식당 주인이 약 8억원에 낙찰받은 참다랑어를 해체하고 있다. 이듬해 이 기록은 껴졌다. 사진=AP 뉴시스

 
하지만 이는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고, 보통 무게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경매가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니 많이 잡을 것이고, 그래서 다랑어 자원은 급감하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다랑어 조업 규제와 보ㅈ존조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하니 과열 경쟁으로 경매가가 치솟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는 다랑어도 길러서 잡아먹는 것이 대안이다.
    
다랑어의 또 다른 별명 하나는 ‘바다의 포르셰’이다. 다랑어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헤엄친다. 서거나 후진하는 일도 없고 오로지 전진만 한다. 
 
그러니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물고기이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질주 본능은 다랑어 양식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05384259_R_0.jpg» 전남 여수 거문도 참다랑어 양식장에서 그물망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60일쯤 키운 어린 다랑어는 꼬리지느러미가 발달하면서 헤엄칠 때 가속도가 붙게 되는데 그물에 충돌해 상당수가 죽어버린다. 또 알에서 부화한 뒤 개체마다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다랑어 양식을 위한 수정란이 없었다. 수정란을 생산할 어미 암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랑어 양식은 일본 수산청에서 1970년부터 3년에 걸쳐 프로젝트로 시도하여, 2002년에 일본 긴키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완전양식에 성공하였다. 그후 긴키대학과 도요타통상은 참다랑어의 완전양식 생산량을 현재의 연간 80톤(약 2000마리)에서 2020년에는 약 3배인 240톤(약 6000마리)으로 증가시킬 방침이라고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04862520_R_0.jpg» 참치의 완전양식이 이뤄지기 전 양식용 참치를 포획해 대형 그물에 가둔 채 운반하고 있다. 양식을 위한 포획도 참다랑어를 심각한 멸종위기로 빠뜨리게 한 원인의 하나다. 사진=그린피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006년 참다랑어 양식기술 개발에 관한 로드맵을 만들고, 그 후 외해 가두리양식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지중해 몰타에서 수정란을 들여와 연구에 돌입한 지 1년 만에 인공종자 생산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2만 마리의 인공종자를 월동시켜 중간육성기술까지 확보하였고, 2015년 8월9일과 11일에는 두차례에 걸쳐 국내 최초로 국산 참다랑어 어미로부터 자연산란을 유도해 수정란 채집에 성공했다. 참다랑어 양식기술이 수정란 생산, 종자생산, 중간육성, 완전양식 등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3단계까지 성공한 셈이다.
    
우리 바다에서도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위판할 정도의 상품성 있는 다랑어도 있지만 상당수는 3∼5킬로그램짜리 어린놈들이다. 

05278749_R_0.jpg» 우리나라 근해에서도 어린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지난 3월 부산 어시장에는 1만8000상자, 약 250t의 다랑어가 위판됐다. 사진=연합뉴스

 
어린 참다랑어는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잡어로 분류돼 양식장 사료용으로 팔렸다. 2011년 전남 여수 앞바다 정치망에 새끼 참다랑어 110마리가 잡혔다. 정치망은 작업을 잘만 하면 고기를 산 채로 잡을 수 있어 이 참다랑어 새끼들을 여수 거문도 가두리에서 사육하여 65킬로그램까지 키웠다. 
 
기특하게 이 4∼5세가 된 참다랑어들이 양식장에서 수정을 하여 30만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한국산 참다랑어의 시조가 탄생한 것이다. 새끼 참다랑어를 어미로 키워서 수정란을 대량 확보함으로써 참다랑어 완전양식의 길이 열렸다. 
 
■ 다양한 다랑어의 세계

Danilo Cedrone.jpg» 그물에 걸린 대서양 참다랑어. 3m 넘게 자란다. 사진=Danilo Cedrone, 위키미디어 코먼스


■ 3m까지 자라는 ‘참치의 왕’ 참다랑어
    
참다랑어는 다랑어 중에서도 진짜라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일식집에서는 흔히 일본말로 ‘혼마구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로마구로’라고도 불리는데, 등이 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를 직역해서 흑다랑어라고 쓰지만 이름은 함부로 붙이는 게 아니다. 서양에서는 블루핀튜나(Bluefin tuna)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지느러미가 청색을 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등 색깔이 짙은 청색을 보이는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모든 다랑어류가 다 그렇듯이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 부분은 원추형이라 헤엄칠 때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형이다. 몸의 등쪽은 짙은 청색을 띄며 몸의 중앙과 배쪽은 은백색 바탕에 여러 개의 폭이 좁은 가느다란 흰색 가로띠와 그 안에 둥근 점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참다랑어는 열대 원양에 살며 표층을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몸집이 아주 큰 어류로 전 세계에 3종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미국, 멕시코 해역에 분포하는 태평양참다랑어(Pacific bluefin tuna, Thunnus orientalis), 지중해를 포함한 대서양에 분포하는 대서양참다랑어(Atlantic bluefin tuna, Thunnus thynnus), 적도 이남의 남반구에 분포하는 남방참다랑어(Southern bluefin tuna, Thunnus maccoyii)가 그것이다. 
 
이들 참다랑어는 외견상 거의 비슷하나 엄연히 다른 종이다. 태평양참다랑어는 북반구 온대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북서태평양에서는 마셜군도 및 필리핀에서 일본 북해도에 이르는 연안역에 서식한다. 
 
참다랑어는 대양성 어류이나 계절적으로 연안 가까이 오는 수도 있다. 북동 태평양에서는 6~9월에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회유하며, 서부태평양에서는 일본 해안을 따라 여름에는 북쪽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회유한다.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초여름에 동해로 들어와서 오호츠크해까지 회유하며, 동해를 빠져나갈 때는 일본 북부의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다. 산란기는 대만 근해에서는 4~6월,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8월이다. 성장하면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동부 태평양으로 회유하며 다시 산란장으로 되돌아온다. 
 
10세 이상의 200센티미터 정도 크기가 되면 대서양참다랑어는 멕시코만과 지중해에서 산란하는데, 표층에 한번 산란에 1000만 개 이상의 알을 1~2일 간격으로 낳는다. 2일이 지나면 알에서 2.8밀리미터 크기의 새끼가 부화하여 30일 정도의 치어기를 지낸다. 
 
참다랑어는 주로 멸치, 꽁치, 오징어 등을 먹으며, 범고래에게는 먹이가 되는데 대형어일수록 포식자는 줄어든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커서 최대 몸길이는 300센티미터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대개 200센티미터까지 이르며, 체중은 450킬로그램까지의 기록이 있다. 대서양에서는 458센티미터 크기, 684킬로그램 체중까지 자라며, 15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대형선망과 정치망 등에 잡힌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고가이므로 우리나라가 어획한 것은 대부분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양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다랑어는 어획시기와 장소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며,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참다랑어는 주로 횟감으로 애용된다. 참다랑어를 회로 먹을 때 생강과 함께 먹으면 생강의 살균 작용이 날 회로 인한 소화문제를 예방해줄 수 있어 궁합이 좋다. 참다랑어는 육질이 붉은색을 띠고 눌러봤을 때 단단하고 탄력 있는 것이 최고급이다.   
 
 
■ 상어와 함께 회유하는 눈다랑어 

Thobe_u0_눈다랑어.gif» 눈다랑어. 그림=Thobe_u0,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다랑어(Thunnus obesus, 영명: 빅아이투나, Bigeye tuna, 일명: 메바치めばち, 眼撥)는 체형이 높고, 굵으며, 눈이 특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슴지느러미는 적당하게 길어 제2등지느러미 끝자락까지 다다라 자칫 날개다랑어인 줄 착각할 수가 있다. 

눈다랑어는 전 세계의 열대, 아열대, 온대 해역에 걸쳐 수온 10도 이상 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특히 태평양은 북반구에 많이 분포한다. 열대 해역에서 산란하고 먹이를 먹고 성장하기 위하여 계절에 따라 고위도 해역으로 남북 방향 회유를 한다. 
 
체장 100센티미터가 되면 산란하기 시작하며, 1회 산란 수는 300만~1000만 개로 알려져 있다. 최대 250센티미터, 210킬로그램, 11세까지 성장한다. 
 
어릴 때는 표층 가까이에 살다가 성장할수록 점차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눈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는 가장 깊은 수심에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수심에 도달할 수 있는 기다란 원 줄에 가지 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와 미끼를 달아 조업하는 주낙(연승)으로 어획한다. 눈다랑어는 유목에 붙어다니거나 상어와 같이 회유하는 경우가 많아 낚시에 걸린 눈다랑어는 때때로 상어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눈다랑어의 살색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초밥과 횟감으로 많이 이용되며, 일본의 관동지방과 동북지방에서는 봄철이 끝날 무렵 참다랑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다랑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 복숭아 살색 황다랑어

황다랑어.jpg» 노란 등지느러미가 두드러지는 황다랑어. 사진=open cage 
 
황다랑어(Thunnus albacares, 영명: 엘로우핀튜나, Yellowfin tuna, 일명: 키하다, キハダマグロ,黃蘗)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토막지느러미 등 대부분의 지느러미가 밝은 황색을 띠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와 눈은 상대적으로 작고 꼬리부분이 길다. 제2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낫 모양으로 매우 큰 것이 특징으로 체장의 20% 이상이나 된다. 
 
전 세계 대양의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며, 다랑어류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온을 좋아하여 남·북위 25도 사이에 주어장이 형성된다. 황다랑어는 특히 산소가 풍부한 상부 수심에 한정되어 서식하는데, 이것은 빠른 유영을 위해 많은 산소가 필요한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황다랑어의 살색은 봉숭아 색이고, 초밥 및 횟감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여름철과 가을철에 맛이 좋으며, 통조림이나 어육의 원료로도 이용된다.

 

■ 참치통조림 주인공 가다랑어
 

Momotarou2012 _1280px-Skipjack_tuna_Stuffed_specimens.jpg» 가다랑어 표본. 사진=Momotarou2012,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다랑어(Katsuwonus pelamis, 영명: 스킵잭투나, Skipjack tuna, 일명: 가쯔오, かつお, 松魚, 堅魚)는등쪽이 어두운 청자색, 배는 은백색으로 체측 아랫부분에 4~6개의 뚜렷한 흑청색의 세로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다랑어는 전 세계 열대 대양에서 떼를 지어 서식하며, 분포 수층은 낮 동안에는 표층에서 260m까지의 깊은 수심에 서식하며 밤에는 거의 표층에 머문다. 먹이는 어류가 대부분이며 갑각류, 연체동물 등도 먹는다. 때로 다른 다랑어류 및 새치류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표층에서 어군을 형성할 때, 가다랑어는 물새, 유목, 상어, 고래 혹은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함께 떼를 이루는데, 이때 점프나 거품 형성 등의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여 가다랑어 어군을 찾기도 하는데,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헬리콥터를 갖춘 원양선망어선은 주로 가다랑어를 어획하는 것이다.
    
가다랑어는 우리가 즐겨먹는 통조림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여름철에 가장 맛있어 회 또는 다져서 먹기도 하나, 해수에 삶아서 말린 후 대패로 얇게 썰어 다시 용으로 쓰인다.

 

■ 가슴지느러미가 멋진 날개다랑어

Rvalette -_1280px-Cuvier-47-Germon-Thon.jpg» 날개다랑어 암수의 그림. 사진=Rvalette, 위키미디어 코먼스

    
날개다랑어(Thunnus alalunga, 영명: 알바코어, Albacore, 일명: 빈나가, びんなが)는 가슴지느러미가 아주 발달하여 날개처럼 길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가슴지느러미가 제2등지느러미를 지나 가랑이 체장의 30%를 차지할 정도이다. 날개다랑어는 90센티미터이면 성숙을 하고 보통은 100센티미터 정도인데, 큰 것은 140센티미터, 40킬로그램으로 9년생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표층 수온 15∼19도 범위를 보이는 대양에 주로 서식하며, 더 큰 놈은 10도 이하의 더 깊은 수심에서도 발견된다.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떼를 지어 다니기도 하는데, 이는 떠다니는 유목이나 해조류 덤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연안성 다랑어가 있으며, 우리나라 연해에는 몸뚱아리 아래 부분에 알 모양의 흰색 반점이 밀집해 있어 쉽게 구분되는 백다랑어(Thunnus tonggol, 영명: longtail tuna, 일명: 코시나가 )와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작고 검은 반점이 여러 개 있어 구별되는 점다랑어(Euthynnus affinis, 영명 : Kawakawa, Mackerel tuna, black skipjack, 일명 : 수마)가 출현한다. 그리고 유사종으로 몽치다래(Auxis rochei, 영명: Bullet mackerel, 일명: 마루소다)와 줄삼치(Sarda orientalis, 영명: Striped bonito, tunny albacore, 일명: 하가쯔오) 등이 있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 관련 기사헤밍웨이의 그 바다와 고기를 찾아서 


 

관련글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