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노건호, 김무성에 “전직 대통령 죽음으로 몰아” 직격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5/24 08:15
  • 수정일
    2015/05/24 08:1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5-05-23 16:20수정 :2015-05-23 17:32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건호씨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건호씨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 봉하 묘역서 엄수
아들 건호씨 김 대표에 “제발 나라 생각 좀 하라” 쓴소리
추도식에 앞서 추모객들 “김무성 물러가라” 소리치기도
“사과도 반성도 필요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작심한 듯 강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 대통령 묘역에서 ‘시민의 힘!’을 주제로 열렸다.

 

3000여명의 추모객들이 묘역 옆 추도식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앞줄에 나란히 앉아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여야 대표는 자리에 앉을 때 인사를 나눈 것 외에는 추도식 내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족을 대표해 노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무대에 올라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엔엘엘(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비 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며 앞줄에 앉은 김무성 대표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건호씨는 또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한 일도 없으시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과? 반성?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라고 쏘아 붙였다. 그는 또 “국가의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국가 권력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하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힘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힘 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을 어떻게 하시려고 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십니까.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추도식 30분 전 주요참석자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입장하자, 여러 추모객들이 “김무성은 물러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뒤이어 입장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차리리 탈당하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추도식 시작 직전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 건호씨 등과 함께 입장했다. 노 대통령 사저 앞에 둘러서있던 추모객 수백명은 문 대표와 유족들이 나오자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김은경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애국가·<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참석자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추모공연에선 가수 조관우씨가 노 대통령을 추모하며 만든 노래 <그가 그립다> 등을 불렀다. 또 바리톤 손현상씨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6주기를 맞은 이제부터는 추모를 넘어 역사를 반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올해 추도식 주제를 ‘시민의 힘’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추도식이 엄수됐다. 사진은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가 입장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추도식이 엄수됐다. 사진은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가 입장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추모동영상은 노 대통령이 연설하던 모습을 편집해 마치 지금 국민 앞에서 연설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동영상은 ‘누가 미래를 준비했습니까?’ ‘누가 평화를 지향했습니까?’ ‘누가 안보를 실천했습니까?’ ‘누가 통합을 열망했습니까?’ ‘누가 분열에 저항했습니까?’라며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의 치적을 소개했다. 또 동영상 속에서 노 대통령은 ‘진보의 역사를 이끌어갈 주체는 누구입니까?’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자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나서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완성합시다”라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추도사에서 “이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문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기신 미완의 과제와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대범한 정치적 자세를 배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남기신 역사적이며 근본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미완의 숙제를 해내야 합니다. 그러한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보다 더 구체화하고 끝끝내 관철해내야만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추도사를 한 노무현장학생 정선호(21·성공회대 1년)씨는 “저는 감히 맹세합니다. 당신의 길을 걷겠습니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두가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왼쪽 둘째)가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눈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 건호씨(왼쪽)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왼쪽 둘째)가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눈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 건호씨(왼쪽)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건호씨는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전국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추도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상 깊은 수많은 추모행사를 전국에서 자발적 움직임으로 준비해 주신 데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힘이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 묘역에 줄지어 걸어가서 헌화하는 것으로 추도식을 마쳤다. 김무성 대표는 헌화를 마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봉하마을을 떠났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위원장은 “김무성 대표가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건호씨가 고민 끝에 유족 인사말을 작성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 다른 사람과 의논은 없었다. 새누리당 대표가 처음으로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엔엘엘 발언을 당사자인 그가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그저 왔다 가는 것은 노 대통령 추도식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는 추도식에 왔다가 돌아갈 때까지 건호씨 등 유족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화보-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 모습]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국정원 '불법 공화국'에서 주권을 실현할 '무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5/23 12:18
  • 수정일
    2015/05/23 12: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국정원 '불법 공화국'에서 주권을 실현할 '무기'
[프레시안 books] 국순옥 <민주주의 헌법론>
 
 

어느새 우스개로 다가오지만,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내내 부르댄 정치인이 있다.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농민과 노동자가 '법질서'를 지키는 공권력에 맞아죽은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당시 이른바 '야당' 대표였던 그 정치인은 되레 자신이 집권하면 '흔들리는 법질서부터 바로 세우겠다'고 호언했다. 마침내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당선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불법 선거 자금 혐의까지 불거졌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박근혜는 물론,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데 용춤을 추어온 독과점 언론사들도 언죽번죽 시치미를 떼고 있다.

생게망게한 나라꼴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주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님을 사무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적잖은 이들이 실망을 넘어 좌절하고 있는 까닭이다.

절망이 감도는 '진지'를 재구축하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우리에게 '무기'가 될 책이 나온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신간 <민주주의 헌법론>(아카넷, 2015년 4월 펴냄)은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부르대는 정치인들, 그들 앞에 헌법 제1조를 외친 주권자들이 두루 정독해야 할 책이다. 전자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후자에게는 주권 실현의 무기가 될 이 책의 저자는 '명망'을 좇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법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그것을 사회에 구현하는 데 앞장서온 학자들에겐 명성 높은 스승이다.

인하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며 대학원 안팎에서 숱한 법학자를 길러낸 국순옥 명예교수(이하 저자)는 '민주법학의 스승'이자, 그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올곧게 '법학운동'을 펴나가는 길에 변함없는 나침반이다. 법학자들 사이에 저자의 논문들은 "언제나 치열하게 벼려낸 논리를 꼼꼼히 다듬은 문장으로 빚어낸 명문"으로 회자된다. 바로 그 명문들을 제자들이 모아 <민주주의 헌법론>에 담았다.

'민주법학의 스승'이 주권자들에게 건네는 '무기' 
 

ⓒ아카넷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저자의 글은 '민주주의와 헌법 실천' 들머리에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리 헌법은 자본주의헌법의 계보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근대자본주의헌법의 자유주의적 기본틀은 물론 현대자본주의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들도 아울러 담고 있다."

두 문장이지만, 헌법에 대한 우리의 접근 수준을 단숨에 높여준다. 대한민국 헌법이 '자본주의 헌법의 계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환기시켜줄뿐더러 '자유주의적 기본 틀'은 근대 자본주의 헌법이고, 현대 자본주의 헌법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개량주의적 성과들'을 담고 있다는 진실을 깨우쳐준다. 이어 개량주의적 성과들 또한 "투쟁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근대자본주의헌법과 현대자본주의헌법은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는 이질적 범주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성립한 자본주의헌법의 역사적 현상형태들에 불과하다. 근대자본주의헌법이 신흥부르주아계급의 주도 아래 전개된 반봉건투쟁의 산물이라면 현대자본주의헌법은 노동자계급이 선봉에 선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다." 

그 맥락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부르주아계급이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몇몇 강단 출신 지식인이나 관료 출신 지식인이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헌법을 밑그림 삼아 이리저리 엮어놓은" 것으로 "1948년의 우리 헌법은 우리 현실과 거리가 먼 일종의 초현실주의 추상화나 다름없었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왜 제1조부터 철저히 무시당해 왔는가를 직시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긍정적 의미를 평가하는 데 인색하진 않다. '강단 헌법학 비판'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격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반쪽 해방 공간에서 적지 않은 산고 끝에 태어난 1948년 헌법이 진보주의 이념을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고 분석한다. "진보주의 이념을 떠받쳐주는 사회변혁적 해방 잠재력이 아직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 "민주주의적 계몽 기획으로 우뚝 서야 할 1948년 헌법이 걸어간 길"은 아쉽게도 진보주의 이념을 하나씩 털어내는 "고난의 행진"이었다.

저자는 단순한 법학 교양을 넘어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새 지평을 열어준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손꼽을 것"으로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의 내발적 추동력인 부르주아계급의 원초적 결락 현상"을 든다. 

혹 '부르주아계급'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기 검열이나 '경계'에 들어갈 독자를 위해 서평자가 '각주'를 달고 싶다. 부르주아는 서구의 시민혁명을 일으킨 계급으로 말뜻 그대로는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토지에 기반을 둔 중세 시대에 상인과 공인들은 성 안에 살았다. 그들 "근대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서구의 신흥부르주아계급은 그 뿌리가 봉건사회 해체기의 독립 자영 소생산자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건사회의 신분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이들 독립 자영 소생산자층은 반봉건투쟁에서 몸과 마음을 다진 자유의 전사로서 평등 그리고 독립의 인격주체로 홀로서기를 열망한 자유주의 이념의 고전적 화신들이었다. 그들은 신흥부르주아계급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근대자연법이론의 세례를 통하여 이념적 자기 정립과 윤리적 자기 도야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밑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부르주아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빈 공간을 채운 것은 "국가 주도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의 그늘 아래에서 양적 성장을 거듭한 천민부르주아계층"이다. 

서구 부르주아계급과 달리 한국의 천민 부르주아층은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치적 상상력이나 윤리적 지평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 차이는 지금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어떤 성명을 내놓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 스스로 신분제도에 맞선 혁명의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한국의 상공인계급은 "근대자본주의헌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대 냉소주의적 무관심을 보이거나 국외자의 입장에서 시종 방관자적 자세를 보였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유리한 군부독재에 대해 그들의 태도는 '방관자'를 넘어선 '부역자'였다. 비단 과거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오래 역임한 박용성이 대학 이사장이 되어 강행한 '기업식 학사 개편'에 교수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치겠다"고 으름장 놓은 것은 저들이 얼마나 천민적인가를 2015년 오늘에도 생생하게 입증해준다.

근대 자본주의 헌법의 고갱이에 대해서도 무지한 한국 상공인들이 현대 자본주의 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인 사회권적 기본권을 어떻게 여길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천민부르주아계급의 자본 축적 활동과 모순관계에 있는 노동 관련 기본권에 대한 적대적 반응"이 그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이 노동 관련 기본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삼성의 경영을 '위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천민 부르주아층의 인식이 이미 한국 사회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체 부재의 헌법"으로 출범한 헌법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무릇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일차적 관건이다. 이 책은 우리의 헌법 현실과 헌법 실천을 날카롭고 깊이 있게 제기한다. "자본주의헌법의 계보에 속하면서도 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부르주아계급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주체 부재의 헌법으로 출범"한 "헌법 현실에서 헌법 실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사회적 실체를 탐색하는 것은 이 책의 실천적 미덕이다. 

그 "헌법 실천의 주체"에게는 이중의 과제가 놓여 있다.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현대자본주의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들을 사회 발전의 디딤돌로 지켜나가는 것"과 "천민부르주아층을 대신하여 우리 헌법의 자유주의적 기본틀을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더욱 다져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개념적 인식이 사고의 지평을 얼마나 확대해주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대안 헌법 이론'에서 "1987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 실천 주체들의 등장"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 뒤 전개된 현실에 저자의 분석은 냉철하다.

노동자계급이 헌법 현실에 발 딛고 스스로 헌법 실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찾은 저자는 "헌법 실천 주체의 외연이 생산활동 영역의 노동자에서 생산활동 영역 밖의 노동자로 확대된"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제까지 단결권의 행사가 금기시되어온 사회 각 생활영역, 예컨대 교육현장 언론매체 의료사업장 등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조직 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의 뒤를 이은 김영삼 정권은 이른바 문민정부의 탈을 쓰고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폈고, 1997년 끝 무렵 밀어닥친 "금융환란의 무거운 짐을 노동자계급이 고스란히 떠안음으로써 모처럼 물오르기 시작한 노동자계급의 헌법 실천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헌법 실천의 또 다른 주체로 제시한 학생운동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냉엄하다. "대학생 활동가 집단들의 관념적 급진주의"가 "우리 헌법 현실은 묶음표에 가두어놓고 추상적 관념의 세계에서 유리알놀음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는 비판은 사뭇 서슬 푸르다. 저자는 "우리 헌법 현실의 뒷전에서 이념 과잉의 공상헌법 수필만 엮어내는 데 골몰"하기보다 "우리 헌법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분석의 결과를 헌법 실천적 대안으로 구체화"해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시민운동이 헌법 실천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스스로를 무계급 또는 초계급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민운동 특유의 허위의식"을 지적한다. 그 결과로 "시민운동 단체들의 헌법 실천적 개입에서 부르주아적 생활세계의 중심 무대인 소비생활 영역의 기본권이 주로 호명의 대상이 되고 생산활동 영역과 관련된 기본권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분석한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는 근대화 기획의 첫걸음" 

헌법 실천의 주체로 노동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을 짚은 저자는 "민주주의를 기본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기본권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시민사회적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는 기본권은 기본권 일반이 아니라 기본권 담지자 시민들의 사회적 교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사소통의 자유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사소통의 자유는 지배적 기본권 담론에서도 역시 대문자 주제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표현의 자유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포함된다. 이처럼 시민사회적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고리로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전진을 계속할 때, 우리는 마침내 근대화 과정의 문턱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아직도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는 근대화 기획의 첫걸음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좋을 것이다."

다만, 기본권 중심의 민주주의 사고가 지나친 나머지 탈민주주의적 "기본권 물신주의"로 빠져들지 않도록 "자기 한정"이 필요하다는 경계도 잊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헌법 실천', '강단 헌법학 비판', '대안 헌법 이론' 중심으로 짚어보았지만, 풀어쓰면 각각 책 한 권이 될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한 논문들이 가득하기에 갖춰두고 틈틈이 정독하기 좋을 책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수직적 심화"와 "수평적 확장"을 제시하는 저자의 차분한 제안은 '헌법 실천'에 나설 때 유념할 개념이다. '사법권력'과 '사회국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우리 의식을 고양시켜준다. 민주 시민은 물론 언론인과 법조인들이 탐독해야 할 이유다. 로스쿨과 법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에게도 훌륭한 학습 교재다. 강단 헌법학을 비판하고, 대안 헌법 이론을 제시한 저자의 책에는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헤겔, 칼 슈미트,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상을 깊이 있게 분석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내용과 문체가 두루 빼어난 저자의 명문들을 책으로 펴내는 데는 민주법학 후학들의 힘이 컸다. 실무를 맡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김종서 편집위원장은 책 들머리에서 "몇 년 전 연구소로의 전환 시도가 뜻하지 않은 난관으로 좌절된 이후 상당히 정체되었다고 할 수 있는 민주법연"에 이 책의 출간이 "어떤 신선한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법학이 '좌절된 뜻'을 이참에 구현한다면, 그것은 법학자들만의 진지는 아닐 성싶다. '법대로'를 외마디로 질러대는 이 '불법 공화국'에서 희망을 만드는 참호 아닐까.

 


*2010년 7월 31일 첫 호를 내고서 5년간 이어온 '프레시안 books'가 새 단장을 위해서 한두 달의 휴식 기간을 가집니다. 그간 '프레시안 books'는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좋은 책을 공들여 쓴 서평으로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프레시안 books'는 더 적극적으로 책을 매개로 한 소통에 나설 예정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역사는 당신들 셋보다 신상철을 기록할 것
 
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김갑수 | 2015-05-23 08:50: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역사는 당신들 셋보다 신상철을 기록할 것
- [다시 역사를 논한다] - ⑥

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117년 전인 1898년 2월 15일,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 순양함 메인호의 폭발 원인은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밝혀진 사실은 모두 사고 후의 것들인데, 미군 26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 미국은 이것을 스페인의 기뢰 공격으로 인한 폭발로 몰아붙였다는 사실, 스페인은 이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부정한다는 사실, 사고 당시 기뢰 폭발이었으면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물기둥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당시의 미국 정치인과 언론과 시민 대다수는 스페인의 공격 때문이라고 믿었거나 주장했다는 사실, 미국 사회에 “메인 호를 리멤버하라”는 구호가 유행했다는 사실, 이를 기화로 미국은 대 스페인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 결과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 필리핀을 먹었다는 사실, 이어서 미국은 일본에 조선을 먹으라고 부추기며 대폭적인 지원을 했다는 사실 등이다.

이로부터 66년이 지난 1964년 8월 4일 미국 존슨 행정부는 북베트남에서 미군 구축함 매덕스와 터너조이가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두 구축함은 북베트남 연안 12해리 이내로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었다. 아주 궂은 날씨에, 주위에는 북베트남 함정이 한 척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을 건수 잡아 북베트남을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했다.

다시 이로부터 54년이 지난 2010년 3월 26일, 한국의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천안함 역시 메인 호처럼 아직도 사고 원인이 미궁 속에 있다.

역시 밝혀진 것은 모두 사후의 사실들,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 6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사고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단정했다는 사실, 북한은 이것을 부정해 오고 있다는 사실, 어뢰 폭발이면 당연히 있었어야 할 물기둥이 목격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이다.

지금 미국인에게 117년 전 메인 호의 폭발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태반이 메인 호가 뭐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들은 메인 호 자체를 ‘리멤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다르다. 일부는 미국의 자작극이라 하기도 하고, 일부는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반면 스페인의 기뢰 공격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수라는 점이 아니라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얼간이 또는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래 한국인들은 훗날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천안함 폭침 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몰래 들어와서 천안함 공격 후 북한으로 도주했다.”(문재인, 2015. 3.25)

“나는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박원순, 2011. 10.10.)

 “북한의 폭침 만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재명, 2014. 3.26)

이명박, 박근혜, 김무성 등의 천안함 발언은 더 이상 진실의 영역을 축소하지는 못한다. 어차피 그들만의 ‘반공 언어’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 등의 발언은 이 땅에서 진실의 영역을 대폭 축소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아마도 이들의 발언은 동족에게 범죄자의 누명을 씌운 민족 배신 행위로 기록되지는 않을는지. 확신하건대 역사는 이들 셋보다 신상철의 이름을 명예롭게 거명할 날이 필경 오고야 말 것이다.

지난 2013년 상영된 <천안함프로젝트>에 출연한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 사진=아우라픽처스

지금 미국인에게 통킹만 사건을 물으면 십중팔구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대답한다. 주요 관련 인사들의 폭로와 비밀문서의 공개 때문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 내에서 격렬하게 일어난 반전운동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과 관련된 미국의 음험한 진실들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베트남의 진실들을 하나하나씩 알아차렸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1945년 8.15 이후 주한미군정의 문서들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한국의 사례에 유추하여 베트남의 사례를 읽은 것이다.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도 이 과정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는 천안함의 진실을 어디에 유추하여 건질 것인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21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명예욕에 설 자리 잃은 '무시무시한' 광주 이야기

 

[주장] <넘어 넘어> <광주일지>를 두고 벌어진 민망한 일들

15.05.22 21:42l최종 업데이트 15.05.22 21:42l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현장 보고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 재발간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민주화, 인권운동사에 남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중요 기록물이 절판된 지 10년이나 지났는데도 재발간 되지 못하고 있다. 영문판의 번역편집자인 설갑수씨가 영문판 재발간과 관련한 소회를 보내왔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광주일지'(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 설갑수 옮김, 1999)'.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책을 한 번은 읽는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10일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아래 <넘어 넘어>, 1985)가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책을 다른 나라말로 옮길 기회가 온다면, 개인에게는 큰 기쁨이리라. 나는 그 기쁨을 1999년에 누렸다. 

그해 5월, 나와 내 친구 닉 마매타스(Nick Mamatas)는 함께 <넘어 넘어>를 번역해 '광주일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아래 <광주일지>)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당시 미국 UCLA대학에서 아시아태평양 기록물 시리즈(UCLA Asian Pacific Monograph Series)로 출판되었다.

<넘어 넘어>는 한국에서 출간되자마자 금서가 됐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당시 저자 명의를 빌려준 소설가 황석영부터 책을 출간한 풀빛출판사 사장 나병식까지 모두 체포해 버릴 정도로 전두환 정권이 무서워했던 책. 그러면서, 전두환 자신도 읽어봤다는 책. 그 후 합법 비합법으로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책이 <넘어 넘어>다. 

올해로 <넘어 넘어>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넘어 넘어>가 금서이던 1980년대, 그리고 베스트셀러였던 1990년대가 이 책의 황금기였다. 반면 최근 <넘어 넘어>와 <광주일지>를 두고 아쉽고 민망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주주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나는 이제 더 늦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물의 실명을 쓸 것이고, 존칭은 생략하겠다(관련기사 : "밖에선 <죽음을 넘어~> 영문본 절판...").

커밍스, 촘스키, 샤록을 흔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이야기'

<광주일지>를 번역하게 된 개인사부터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내가 <넘어 넘어>를 처음 접한 것은 책이 나온 1985년 5월,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같은 반 친구였던 최경송이 목사였던 부모님이 몰래 돌려보던 책을 자기도 읽었다며 무시무시한 책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 무시무시한 책이 <넘어 넘어>였다. 

5월 광주항쟁에 대해 풍문 정도를 들었던 내가 던진 첫 질문은 "공수부대가 학생들을 많이 죽였겠네"였다. 그런데 경송이의 대답은 당시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니, 대학생들은 다 도망가고, 노동자들만 죽었어." 몇 주 후, 우연히 책을 구해 볼 수 있었고, 앞에서 말했듯이 <넘어 넘어>는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물론, 그 '뒤흔들린 경험'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넘어 넘어>가 기록한, "군인들이 나라 지키라고 준 총으로 제 나라 백성 쏴 죽이고, 똑똑하고 정의롭게 보이던 대학생들은 도망가고 민중이 최후에 남았던" 광주항쟁의 진실은 한국의 한 세대를 뒤흔들어 버렸다. 내 친구 최경송은 지금도 경기도 과천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저러해서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 그리고 서점에 갈 때마다, 아쉬움이 생겼다. 1990년대 초, 중국의 천안문 항쟁 직후라서, 서점에는 천안문 학살에 대한 책이 넘쳐나고 있었다. 실록부터, 분석서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아시아에서는 적어도, 광주항쟁이 현대 민중항쟁의 원조 격인데, 천안문 항쟁처럼 국제 사회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외면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과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어 해외 언론에 한국 민주화와 광주항쟁이 재조명을 잠시 받을 때, 나는 <넘어 넘어>를 번역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또한, 1995년 5월 당시 진보월간지 <말>이 <넘어 넘어>를 실제 집필한 사람은 황석영이 아니라 이재의(당시 광남일보 논설위원)였다는 기사를 보도했다(이재의가 주도적 역할은 한 것은 사실이나, <넘어 넘어>를 그가 단독 집필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아래에 다루겠다). 그해 12월, 당시 <말>의 미국 통신원이었던 김민웅 목사(현 경희대 휴마니타스 교수)를 통해 이재의와 연락이 닿았고, 풀빛출판사와 영어판 판권 계약을 했다.

<넘어 넘어>는 번역하기에 녹록한 텍스트가 결코 아니었다. 운동권 글투답게, 대부분 문장에서 주어는 생략되었고, 수동태가 태반에, 과장된 어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번역 과정에서 이러한 생생한 분위기를 영어권 독자들이 이해하는 한도 안에서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이 복잡한 과정에서 탁월한 편집자 마매타스의 역할은 매우 중대했다. 작업 초기에는 번역 문장 하나하나를 두고 서로 다퉜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기를 몇 차례, 그러면서 몇 가지 원칙이 정해졌고, 작업은 신속히 진행됐다. 이 과정 탓인지, 마매타스는 그 후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편집자·소설가로 진로를 바꾸었고, 현재 버클리에 있는 출판사의 책임 편집자다.

번역 작업의 속도가 붙었으나, 일의 심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마도 <넘어 넘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낱말은 '구타'일 것이다. 같은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영어 어법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군인이 민간인을 구타했다"라는 말을 수없이 다른 낱말로 옮겨 써야 했다. 통닭구이, 원산폭격 등 광주 시위대가 거리에서 당한 고문도 옮기기 힘든 부분이었다. 직역 대신 의역으로 고문을 묘사하려니, 희생자가 직접 겪은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몸으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가슴 벅찬 순간이 더 많았다. 나는 번역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당시 새로 나온 광주항쟁 관련 자료를 통해 사실 확인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광주일지>는 주석도 많고, 이재의의 동의로 본문을 다시 쓴 부분도 있다. 그런 탓에 <넘어 넘어>의 80%가 <광주일지>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주석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5시경 시민군이 전남대 병원 옥상에 설치한 2대의 LMG 기관총에 대한 것이다. 그날, 계엄군 발포 직후, 시민들은 무장하기 시작했다. 12층 병원 옥상에 설치한 2대의 기관총은 계엄군이 임시 사령부로 사용했던 4층 도청건물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였다. 항쟁 나흘 만에, 시민들이 처음으로 확보한 전술적 고지였던 셈이었다. <넘어 넘어>는 시민군이 도청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고, 그것이 계엄군의 후퇴를 재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통해 그것은 잘못된 기술이었음이 드러났다.

시민군은 기관총을 쏘지 않았다. 그것은 위협용이었다. 나는 기관총을 쏘지 않아서 광주가 더 위대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기관총을 쐈다면, 계엄군도 피해를 보았겠지만, 도청 주변의 시민들도 총탄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터였다. 항쟁 첫 나흘 동안, 공격하는 계엄군과 방어하는 시민의 폭력성은 계속 격화되고 있었다. 쌍방은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유리한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상황을 더는 악화시키지 않은 것은 시민들이었다. 

애초 폭력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유리한 상황에서 스스로 사용할 수 있었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광주 시민들이 무기를 든 이유는, 그러지 않고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정당방어였다는 사실을 발포하지 않은 기관총은 증언하고 있었다.

번역이 마무리된 1996년, 미국과 영국의 여러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 출판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첫 반응은 한결같았다. 도대체 이런 사건이 언제 있었으며, 이 학살이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시카고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넘어 넘어>가 사실에 대한 기록임을 한국학의 대표적 교수로서 보증하는 편지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때까지, 커밍스와 나의 관계는 그가 연사로 나온 콘퍼런스의 청중으로서 악수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커밍스가 나를 기억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커밍스는 출판사에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줬고, 책의 편집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조언 중에 하나가 광주항쟁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서문을 넣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왕이면 그 서문을 커밍스가 썼으면 좋겠다고 민망하게 매달렸다. 커밍스는 그 뻔뻔한 청을 흔쾌히 받아줬다.

그뿐만 아니었다. 커밍스는 MIT(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놈 촘스키(Noam Chomsky)를 소개해 줬다. 원고를 읽은 촘스키는 몇 차례 미국 출판사들에 <광주일지> 출판 필요성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줬다. 또한 <광주일지>에 한국의 독재 정권을 계속 지원한 미국의 대한정책에 대한 글을 넣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도 해줬다.

촘스키의 충고를 따르는 일은 뜻밖에 쉽게 풀렸다. 같은 해, 저널 오브 커머스(Journal of Commerce) 탐사기자인 팀 샤록(Tim Shorock)이 광주항쟁 당시 미국 국무부와 주한 대사관 사이에 오간 전문, 소위 체로키 파일(Cherokee files)을 정보공개법으로 입수, 폭로한 것이다. 샤록에게 <광주일지> 원고를 보낸 며칠 후, 그의 신문사로 전화했다. 그리고 체로키 파일에 기반을 둔 원고를 부탁했다. 샤록은 <광주일지> 원고를 읽어보고 결정하겠노라는 밋밋한 답을 줬다.

그가 원고를 다 읽을 즈음 다시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샤록의 목소리가 의외로 흥분되어있었다. 답변은 간단했다. "<광주일지> 원고 읽으며, 많이 울었다. 특히, 접대부들이 '부상자를 위한' 헌혈을 거부당하자 통곡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다. 체로키 파일에 대한 원고를 써주겠다." 솜씨 좋은 저널리스트답게, 샤록은 체로키 파일을 항쟁 10일 기간으로 재구성한 값진 원고를 써줬다.

그렇게 <광주일지>가 1999년에 세상에 나왔다.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넘어 넘어>가 한국의 많은 젊은이를 흔들어버린 것처럼, 마매타스, 커밍스, 촘스키, 그리고 샤록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이 제기한 인권, 민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이들이 감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사 관련 사진
▲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을 처음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이 내년 5월 간행된다. 지난 1985년 5월 초판 간행 당시 책의 표지와 수첩의 모습 (팜플릿 캡쳐 사진)
ⓒ .

관련사진보기


대표집필자 못 정해 <넘어 넘어> 증보판 무산... 사적 공명심의 피해자는?

이제는 다소 어렵고, 다소 민망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난해 7월, <넘어 넘어> 출간 당시, 전청연(광주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 회장이었던 정상용과 이재의의 주도로 <넘어 넘어> 증보판 간행위가 결성됐다. 책 발행 35주년인 올해에 증보판을 내기로 하는 게 목적이었다(관련기사 : "5·18 폄하 예상은 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극심").

알려진 대로, 1985년 당시 <넘어 넘어>는 황석영 명의로 나왔다. 유명인사 이름으로 나와야 집필진과 <넘어 넘어> 프로젝트를 추진한 전청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게 풀빛출판사 사장 나병식의 생각이었다. 이재의는 <광주일지> 서문에서 이 부분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출판사는 여러 유명인사에게 이름을 빌려줄 것을 간청했으나,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사람은 황석영 혼자라고 했다. 황석영은 육필증거를 만들기 위해, 타자본 <넘어 넘어>를 원고지에 베껴 썼다.

이재의의 서문에 따르면, <넘어 넘어> 집필은 조양훈, 최동술과 같이한 공동작업이었다. 자료수집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영어판 <광주 일지>에 적어도 그 두 사람을 공동저자로 넣는 게 옳았다. 저자를 황석영에서 이재의로 바꾼 이유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복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넘어 넘어>의 많은 부분은 소준섭(현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이 1981년 수배 중 광주에서 쓰고, 이듬해에 지하 출간한 <광주백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 사실상 <넘어 넘어>의 뼈대가 <광주백서>인 것이다. 그러나 1985년 <넘어 넘어> 집필과 출판에 관여했던 사람 누구도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소준섭은 <넘어 넘어> 증보판 간행위 참가를 고사했다. 

결국, 30주년 증보판은 나오지 못했다. 대표필자를 정하지 못해, 증보판 발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광주시 인권 옴부즈맨이자 간행위 실무자인 안종철의 전언이다. 전두환의 엄혹한 독재 속에서도 나왔던 책이, 30년 지난 공적 다툼에 30살 생일상도 못 차려 먹고 있다. 알려지는 게 두려워 유명인사 이름을 빌려 간신히 나온 책이 뒤늦게 이름 내고 싶은 사람들 다툼에 복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심정도 이해한다. 공이 있으면 상도 받고, 칭찬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책이 복간된 후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서로 공명심에 치우치다 보니, 소준섭 같은 이의 공헌을 인정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내 언사가 지나친가? 나도 이 처참한 상황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사적 공명심의 피해는 <광주일지>도 입었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이재의에게 다음을 수차례 간곡히 부탁했다. 책은 비영리 기관에서 나왔고, 그 누구도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다만 책의 영속성을 위해, 광주의 적당한 기관이 저작권 계약을 통해 <광주일지>를 발행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몇 년 후에 내가 들은 풍문은 광주에서 <광주일지> 해적판을 찍는다는 것이었다. 그 풍문이 사실임을 2005년 한국 방문 시, 광주시 관계자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필요해서 몇 부 찍어서 해외에도 보냈다"고 했다. 

큰 충격이었다. 그 광주시 관계자의 말은 결국 제 공명심에 책 좀 찍어 여기저기 뿌렸다는 말 이상은 아니었다. 사실, 비영리 기관과 정식계약을 맺고 책을 발행하는 것과 해적판 제작 사이의 생산비 차이가 얼마나 나겠는가? 자신의 명예와 광주의 전통을 갉아먹는 광주시 관계자의 단견에 두고두고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주로 대학교재로 매년 200부 이상 팔리던 <광주일지>는 2006년 UCLA의 아시아태평양 기록물 시리즈가 중단됨에 따라 절판됐다. 그 후, 나는 미국에서 새로운 출판사를 구해보려고 몇 번 마음을 먹었으나, 그뿐이었다. 한마디로 흥도 안 나고, 환멸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광주항쟁에 감화를 받아서 번역과 기고에 참여한 3명의 미국인 앞에 면이 서지 않았다. 물론 우리 4명은 <광주일지> 발간 전후로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말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 번역서인 <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By Lee Jai-eui/ Translated by Kap Su Seol and Nick Mamatas, 1999 UCLA Asian Pacific Monograph Series)의 저작권자인 설갑수(46)씨. 그는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 중이며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ESG Research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 설갑수

관련사진보기


"국회도서관 소장 5·18 기록물 영문판도 해적판... 기가 찼다"

최근 박원석 정의당 국회의원이 <광주일지> 재발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지난 5월 13일, 뉴욕에 잠시 들린, 박 의원의 비서관 조태근과 재발간 문제를 의논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조 비서관이 국회도서관에서 대출해 가져온 <광주일지>도 해적판이었다. 일단 떠돌기 시작하면 통제 불능이란 게 해적판이라지만, 다시 한 번 기가 찼다.

박원석 의원은 <광주일지> 재발간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이라도 할 기세다. 다시 한 번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책의 영속성을 고려한다면, 그 방법이 최선은 아닌 듯하다. <넘어 넘어>이건 <광주일지>건, 그 주인은 광주이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나는 광주의 책임 있는 공적 기관이 이 두 기록물을 맡아, 영속성을 보장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 광주의 진실, 미국인들의 심장에 새길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역사기록물을 개인들이 맡고 있으니, 잡음만 많고, 보존도 안 된다. 물론 책임 있는 기관이 나서준다면, 나를 포함한 <광주일지> 집필진 4명은 그 보전의 당사자이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 힘을 보탤 것이다.

흔히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수구 정권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전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방치하지는 않았을까? <넘어 넘어>와 <광주일지>의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80년 광주라는 집단기억을 우리 스스로가 지우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금지곡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가녀린 민주주의 전통 앞에 사랑은 저버리고, 명예와 이름만 찾는 우리네 마음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오래 전에 금지곡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기만 한 광주항쟁 35주년 주간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IS가 장악한 고대도시 팔미라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사실

 

 

게시됨: 업데이트됨: 
PALMYRA

고대 사막 유적이 있는 도시 팔미라가 IS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라 사라즈 박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지우고 유물을 팔아 치우려는 강경한 전투원들이 세계 문화 유산을 파괴할까봐 운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팔미라의 높은 크림빛 기둥에서 아주 가까운, 악몽의 장소인 타드모르 군사 교도소를 향했다.

사라즈와 같은 많은 시리아 인들에게 있어 팔미라(아랍어로는 타드모르라고 한다)는 많은 사랑을 받는 역사적 유명 장소일 뿐 아니라 아사드 정권 하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압제의 가장 큰 상징이기도 하다. IS가 시리아 정권을 몰아내고 팔미라를 점령할 때 국제적 관심은 팔미라의 고대 역사에 쏠렸지만, 사라즈는 현대에 팔미라에서 자행된 잔인함이 간과되었다고 말한다.

“타드모르는 끊임없는 고문과 공포다. 그곳은 죽음의 수용소다.” 현재 시카고에서 살며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사라즈는 스카이프를 통해 월드포스트에 이야기했다.

시리아의 전 대통령 하페즈 아사드 시절,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타드모르 군사 교도소는 즉결 처형과 대학살로 악명 높았다. 그의 아들 바샤르 아사드가 집권하고 난 뒤 2001년에 – 최소한 서류상으로는 – 이곳은 문을 닫았다. 정말로 닫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011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뒤이어 전쟁이 터진 뒤, 시리아 인들은 타드모르가 다시 열려 반체제 인사들을 수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 아사드 대통령 시절, 휴먼라이츠워치(HRW)가 1996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1980년에 단 하루에 최소 500명 이상의 재소자가 학살 당한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며 이곳을 ‘죽음과 광기의 왕국’이라고 불렀다. 2001년의 암네스티 보고서에서는 재소자들이 ‘외부 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고 하며, 이 교도소가 ‘재소자들에게 최대한의 고통, 모욕, 공포를 줄 수 있도록’ 설계된 것 같다고 했다.

고문 기술로는 걸어놓은 타이어에 죄수 매달기, 막대기와 케이블로 전신 구타하기, 억지로 척추를휘게 만드는 금속 장치인 ‘독일 의자’에 묶어 놓기 등이 있었다.

시리아의 여러 감옥에서 12년을 보내며 그 중 9년을 타드모르에서 지낸 사라즈는 타드모르를 ‘자유롭게 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자신이 혐오하는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포스트에 따르면 IS 전투원들이 타드모르 재소자들을 풀어 주었다는 말도 있지만, 월드포스트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palmyra

2015년 5월 20일에 IS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IS와 시리아 정부군이 홈스와 팔미라를 잇는 길에서 전투를 벌이며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 ⓒAP

“이건 자유 세계의 폐단이다. 만약 다에쉬가 타드모르를 자유롭게 했다면, 자유 세계는 뭘 하고 있는 건가?” 다에쉬는 IS의 아랍어 별명이다.

국제인권감시기구 중동-북아프리카 부회장인 나딤 호우리 역시 시리아의 억압의 상징인 타드모르의 문을 연 것이 IS라는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다.

“잔혹한 지배를 벗어나 다른 잔혹한 지배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가 전화로 말했다.

U.N. 인권고등판무관 대변인인 라비나 샴다사니는 목요일에 제네바에서 시리아 정권은 IS가 몰려오는데도 정부 세력이 팔미라를 떠날 수 있게 될 때까지 민간인들이 팔미라를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고 말했다. IS가 팔미라에서 저지를 범죄에 대한 깊은 우려도 표명했다.

“IS가 팔미라에서 집집마다 뒤지며 정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주에 팔미라에서 최소 14명의 민간인이 처형 당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로이터에 한 말이다.

팔미라를 점령한 IS는 민간인 수만 명을 총부리 앞에 두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시리아 곳곳의활동가들을 통해 전쟁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영국의 반전 그룹 시리아 인권 감시 단체에 따르면, 목요일 기준으로 그들은 시리아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5월 17일에 이라크의 요충지 라마디를 장악한 뒤 불과 사흘 만이다.

palmyra

2015년 5월 20일 IS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IS 대원들이 홈스와 팔미라를 잇는 길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전투 중에 몸을 숨기고 있다. ⓒAP

매체에서는 2,000년 된 유적 이야기를 호들갑스럽게 늘어놓지만, 사라즈는 그곳에 얽힌 자신의 어두운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지금도 고문 받던 친구들의 비명과 벽의 핏자국을 기억한다. 그는 감옥에 갇혀 낭비한 그의젊은 시절의 여러 해, 마음을 다 앗아가는 공포와 참담한 권태를 잊을 수가 없다.

21세의 대학생이던 사라즈는 1984년에 시리아 정보국에 끌려가 12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그는 자신이 수감된 이유를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하페즈 아사드가 정치적 목적으로 정치범 1,000명 이상을 석방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성인 남성이었다. 신분증도, 직업도, 인생도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옮긴 뒤였다. 그는 다행히 미국 비자를 얻을 수 있었다. 12년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그들은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사라즈의 가족 역시 사라즈처럼 훨씬 늙어 있었고, 그는 가족들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bara sarraj

사라즈 박사가 시리아 정보국에 끌려가 악명 높은 타드모르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해의 사진

“눈물이 고인 걸 보고 내 가족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겐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사라즈는 잃어버린 시간을 메꾸려고 하바드와 노스웨스턴 등에서 공부했지만, 타드모르는 지금도 그를 괴롭힌다. 그는 시리아 정권이 죄값을 치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제 50대가 되었지만 타드모르 교도소의 마당,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또 한 차례의 고문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던 기억이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그때 생긴 흉터가 지금도 그의 몸에 남아있다.

그는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들에게 통폭탄(barrel bomb)을 투하하는데,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IS 거점만 공격한다며 바샤르 아사드를 공격하지 않는 서방세계를 비난했다.

“내 생각엔 그건 위선이다. 시리아 인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palmyra

2014년 3월 14일에 찍은 사진. 다마스커스에서 북동쪽으로 215km 떨어진 고대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 전경. 시리아의 전설적인 그레코-로만 오아시스 유적 팔미라에 마지막으로 여행자가 찾아온 것은 시위가 시작된 지 6개월 후인 2011년 9월이었다. 가장 최근에 찾아온 것은 폭력과 약탈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러 시리아 인들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세계 문화 유산이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가?

“유적은 중요하다. 유적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IS가 장악했다고 해서 타드모르에 관심을 갖지만, 홈스나 다마스커스에는 관심이 없다면 그건 정말 한심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글과 사진들이 전부 사실이면 어쩌나, 시리아 정권 세력이 퇴각한 뒤에도 아직 타드모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 사라즈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남아 있는 재소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데일리 비스트’에서 팔미라의 반 아사드 조정 위원회 회원이라고 설명한 칼레드 옴란은 정권 측이 타드모르의 재소자들을 사용해 팔미라를 요새화해서 IS를 막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데일리 비스트’에 “재소자들을 태운 버스 10대 정도가 전선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목요일에는 트위터에 확인되지 않은 글이 돌았다. IS 대원들이 레바논 인 이십여 명을 포함한 타드모르의 재소자들을 석방했다는 내용이었다. 월드포스트가 직접 사실 확인을 할 수는 없었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타드모르에 정말 아직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재소자들이 있었다면 IS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 우려했다.

베이루트에 있는 호우리는 타드모르 등의 군사 교도소에서 연락이 두절된 가족들의 정보를 수십 년 째 기다리는 레바논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때였다면 예전에 억류되었던 사람들의 가족들이 교도소로 달려갔겠지만, 지금은 어떤 일이 생길지 불확실하다. 사라진 사람들의 파일이 있었다는 증거물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집단 무덤과 재소자 파일 정보는?”

사라즈는 타드모르 밖의 세상과는 단절된 채 아직 남아 있는 재소자들이 있다면 IS에 합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내가 석방되었을 때, 난 소련이 붕괴했다는 것도 몰랐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다른 세상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풀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방에 맞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 월드포스트(The World Post)의 중동 전문기자 소피아 존스가 쓴 'Palmyra, ISIS' Latest Conquest, Has Dark History Of State Torture And Abuse'(영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더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올챙이 낳는 개구리, 구르는 사막 거미…10대 신종

 
조홍섭 2015. 05. 21
조회수 11409 추천수 0
 

국제생물종탐사연구소, 지난해 발견 1만8천종 중 특이한 10종 발표

추정 생물종 1200만종 중 200만종만 밝혀져, 신비와 가치 관심 촉구

 

지난해 학계에 새로 보고된 1만 8000종의 생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10가지가 선정됐다.  미국 뉴욕주립대 환경 임학 대학(ESF)의 국제 생물종 탐사 연구소(IISE)는 21일 ‘2015 올해의 10대 신종’을 발표하면서 발견되기는 것보다 빠르게 사라지는 생물종의 신비와 가치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 연구소 퀜틴 박사는 “전체 생물종으로 추정되는 1200만종 가운데 현재까지 200만종 정도만이 이름을 얻었을 뿐이다. 나머지 1000만종은 우리의 기원을 밝히고 자연을 보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귀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올해 선정된 10대 신종의 일부이다. 전체 목록은 이 연구소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 올챙이 낳는 개구리

 

1. Limnonectes larvaepartus. Male (left) and female (right).jpg» 체내수정으로 난관속에서 올챙이로 기르는 개구리(왼쪽이 수컷)와 난관 속의 올챙이. 사진=Jimmy A. McGuire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 사는 이 개구리(Limnonectes larvaepartus)는 개구리 가운데는 드물게 체내수정을 한다. 암컷은 알을 100개쯤 낳는데, 난관 안에서 부화해 올챙이가 된다. 
 
이 올챙이는 알의 노른자를 먹으면서 다 자란 뒤 밖으로 나온다. 올챙이는 난관 속에서 어미의 배설물이나 죽은 형제들을 먹을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가 처음 이 개구리를 채집했을 때 손바닥 위에 올챙이를 낳는 바람에 이런 사실을 알았다. 세계의 개구리 6455종 가운데 체내수정을 하는 종은 10여종이 그친다.
 
★ 관련 논문:  Kusrini MD, Rowley JJL, Khairunnisa LR, Shea GM, Altig R (2015) The Reproductive Biology and Larvae of the First Tadpole-Bearing Frog, Limnonectes larvaepartusPLoS ONE 10(1): e116154. doi:10.1371/journal.pone.0116154
 
■ 공중제비로 굴러가는 사막 거미

 

1. Cebrennus rechenbergi.jpg» 위험에 닥치면 먼저 상대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다. 사진=Prof.Dr.Ingo Rechenberg,Technical University Berlin

 

2. Cebrennus rechenbergi.jpg» 공중제비를 도는 식으로 굴러가는 사막 개미. 사진=Prof.Dr.Ingo Rechenberg,Technical University Berlin

 
모로코에서 발견된 이 거미(Cebrennus rechenbergi)는 위협을 느끼면 겁을 주는 동작을 취하다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줄행랑을 놓는다. 처음엔 달리지만 곧 체조 선수가 공중제비를 넘는 방식으로 굴러 속도가 곱절로 늘어난다.
 
놀랍게도 도망치는 방향은 위협하는 상대 쪽이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사막에서 멀리 도망가야 숨은 곳도 없다. 굴러 이동하는 방식을 흉내 내려는 소형 로봇 개발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6억년 전 화석동물?

 

2. Dendrogramma enigmatica.jpg» 6억년 전 멸종한 원시동물을 닮은 신종 해양생물. 새로운 '문'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사진=Jørgen Olesen 


1986년 과학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남동해안의 1000m 해저에서 처음 보는 생물을 채집했다. 버섯 비슷하게 생긴 이 동물(Dendrogramma enigmatica)은 해파리나 산호와는 전혀 달라 생식기관도 신경계도 없었다. 
 
지난해 연구자들은 논문을 내 이 동물을 독자적인 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보다 상위 분류 단위인 새로운 ‘문’이 될 가능성도 있다. 6억년 전에 멸종한 선사 동물 에디아카라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개미 마개’로 새끼 보호하는 말벌
 

Deuteragenia ossarium 4.jpg» 거미를 잡아먹는 이 말벌은 새끼를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개미의 주검을 활용한다. 사진=Michael Staab


중국 남동부에서 거미를 잡아먹고 사는 말벌 가운데 일부(Deuteragenia ossarium)는 독특한 행동을 한다. 나뭇가지의 빈속에 흙으로 공간을 구분해 방마다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른다. 그런데 새끼 방의 들머리는 비워두고 죽은 개미로 채운다.
 
독침을 쏘는 이 개미의 주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휘발성 물질이 다른 기생 동물의 침입을 막아준다. 이런 마개 덕분에 이 말벌은 둥지를 파는 다른 종보다 기생충 감염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Deuteragenia ossarium 1.jpg» 나뭇가지 빈틈을 흙으로 막아 방마다 새끼를 기르는 말벌의 둥지. 사진=Michael Staab

 

Deuteragenia ossarium 2.jpg» 둥지 들머리에 개미 주검으로 채운 방을 배치했다. 사진=Michael Staab 
 
★ 관련 논문: Staab M, Ohl M, Zhu C-D, Klein A-M (2014) A Unique Nest-Protection Strategy in a New Species of Spider Wasp. PLoS ONE 9(7): e101592. doi:10.1371/journal.pone.010159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과거 10대 신종 기사:

콧속 거머리, 발광 버섯 등 지난해 신종 톱10

외계인 닮은 새우, 외계로 침범할 미생물…10대 신종

발광 바퀴벌레 등 신종 톱10

소시지만한 노래기, 걷는 선인장, 스폰지밥…2012 신종 톱1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천안함 5년 36회 공판에서 밝혀진 사실들

 
[공판 취재기] “국가가 국민 속일수 있음을 드러낸 재판”… CCTV 시간 하나도 안 맞아,
 
미디어오늘  | 등록:2015-05-21 15:10:04 | 최종:2015-05-21 16:12: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안함 5년 36회 공판에서 밝혀진 사실들 
[공판 취재기] “국가가 국민 속일수 있음을 드러낸 재판”… CCTV 시간 하나도 안 맞아, “함장이 어뢰로 보고하라 시켰다” 
(미디어오늘 / 조현호 기자 / 2015-05-21)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해군 장교들이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를 고소한지 19일로 만 5년이 흘렀다. 2010년 8월 27일 검찰의 공소장이 접수된 이후 천안함 재판은 공판준비기일만 1년이 걸렸고, 공판이 진행된지 4년이 됐다. 공판 횟수만 해도 36회를 채웠을 뿐 아니라 증인은 47명에 달하고, 남은 증인까지 포함하면 70여 명에 이를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결론을 낸 뒤 덮고자 하고 있으나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문이 사실로 밝혀져왔다. 지난 5년의 천안함 재판을 정리했다.

생존자들 증언 “아무 이상 없었다…쾅 다른 선박과 부딪힌 줄 알았다”

무엇보다 사고를 전후로 핵심 위치에 있던 생존자들은 사고순간까지 특별한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며, 사고 순간에도 무언가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지난 2013년 12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신상철 대표 공판에 출석한 김기택 전 천안함 음탐사(해군하사)는 자신의 직전 근무자로부터도 특이사항을 전달받은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사고순간까지도 음탐상 이상을 감지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 신호가 있었으면 모니터와 스피커에 나타나, 이상상황이 있으면 보고하는데,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며 “(당시 감지된 소리는) 일반적으로 나오는 여러가지 소음과 노이즈”였다고 전했다.

특히 폭발위치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휴식중이던 생존장병은 다른 선박과 부딪힌 줄 알았다고 전했다. 사고순간 천안함 흘수선 아래 침실(CPO-수면하 침실)에 누워있던 천안함 전탐장 김수길 상사는 지난해 10월 27일 공판에 나와 “당직시간인 그날 16~20시 근무후 교대한 뒤 취침하러 ‘CPO실(수면하침실)’로 내려와 21시20분쯤 스탠드를 켜고 눈감고 있을 때 ‘쿵’소리가 들렸다”며 “다른 선임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다른 함정하고 부딪혔나 하고 있었는데, 몇십초 만에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넘어졌다. 뭐에 부딪히는 소리인 줄 알았다. (천안함보다) 큰 함정이거나 동급함정에 부딪힌 줄 알았다”고 전했다.

평택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사진=조현호 기자

그는 첫 번째 ‘쿵소리’ 이후에 들었던 ‘쾅’ 소리에 대해 “처음 ‘쿵’ 소리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번째 쾅 할 때도) 물체(함정)와 배(천안함)가 부딪힌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사고순간 41포 RS실에서 당직근무중이던 천안함 병기병 안재근씨 역시 지난해 12월 22일 공판에서 “‘쾅’ 하는 충돌음 소리 뒤엔 길게 찢겨지는 소리가 났다”며 “뭐가 와서 때리는 소리였다”고 진술했다.

“함장이 어뢰로 보고하라고 시켰다”

합조단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직후 모든 보고라인엔 천안함이 파공후 침수 또는 좌초된 것으로 전달됐으나 20여 분 뒤부터 보고내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뢰피격으로 변경된 것이다. 천안함 포술장 김광보 대위가 당일 21시28분 “좌초다”라고 보고한지 20여 분 만인 21시51분 천안함 통신장 허순행 상사는 “본국 어뢰, 어뢰로 사료됨”이라고 백령도 레이더기지에 보고한 것으로 보고서엔 나온다.

보고 내용이 바뀐 것과 관련, 허 상사는 최원일 천안함장의 지시에 의한 보고였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 8월 27일 공판에 출석해 사고 직후 백령도 기지와 호출부호를 통해 침몰사유 통보 요구가 와 갑판에 나와있던 일부 장병들과 최 함장이 상의한 뒤 “어뢰피격으로 보고해”라는 지시를 받아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 판단 근거에 대해 “정확히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해경 부함장 “좌초 전문받아” 해작사 작전처장 “‘9시15분 좌초’로 합참에 보고”
백령도 초병 “중대상황실에서 9시31분, 좌초 전달받아”

천안함 재판 시작부터 증인들이 사고 초기 보고 상황은 좌초였다고 증언했다. 천안함 구조를 지휘한 유종철 해경501함 부함장(경위)은 2011년 8월 22일 첫 공판에 출석해 “구조하러 가는 중에 ‘좌초’라고 연락을 전문으로 받았다”고 증언했다. 심승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은 그해 9월 19일 공판에서 “해작사에서는 합참에 보고할 때 (최초상황이) 21시15분경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언론에도 ‘21시15분 좌초,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발표했던 해경의 이병일 전 경비과장은 2013년 12월 9일 공판에서 “(상부의) 지시사항에 의해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과장은 2010년 3월 28일 해경 보도자료에 ‘21시15분’으로 기재된 경위에 대해 “인천해양경찰서가 해군 쪽으로부터 사고 발생 이후 통보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백령도 해병대 247초소 위치에서 본 천안함 사고해역. 사진=조현호기자 

또한 천안함 사건 직후의 유일한 목격자인 백령도 초병 2명은 사고가 좌초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승창씨(당시 일병)는 지난 2012년 11월 26일 공판에서 “당시 PCC가 좌초됐다는 중대본부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했으며, 함께 근무중이던 선임자 박일석씨(당시 상병)는 그해 12월 17일 공판에서 “그날 밤 9시23분에 ‘쿵’ 소리와 함께 퍼져보이는 불빛(섬광)을 보자마자 즉시 상황실로 보고한 뒤 9시31분에 ‘PCC가 좌초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증언은 지난 3월 출간된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이 쓴 <스모킹 건>에도 기록돼 있다.

CCTV 시간 하나도 안맞아, 생존자가 마지막 CCTV 사진에 등장

천안함의 폭발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선체 내부 CCTV 11개가 모두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재판과정에서 확인됐다. 복원된 11개 CCTV 가운데 사고시각(21시21분57초)에 가까이 촬영된 영상의 시각이 21시17분03초인 이유에 대해 합조단의 사이버영상팀장(해군 헌병단 중령)은 2012년 9월 24일 공판에서 “카메라(에) 내장(된) 시계상의 오차 때문이라고 판단했다”며 “그 외의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전 팀장은 “카메라마다 시계가 있고, 11개 영상이 저장되는 본체 컴퓨터(통제컴퓨터)에도 시계가 있다”며 “하지만 본체에 있는 시계는 복원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에 당시 형사36부 주심판사는 “폭발시각은 미리 정해져있는데, 합조단이 폭발시각에 (끼워)맞춘 것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합조단 보고서의 자료사진에 함미 후타실에서 희생자들이 운동하던 모습이 담긴 것과 관련해 이 가운데 생존자인 김용현 병장이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어뢰 수거 대평호 선장 “해군이 준 좌표대로 작업”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의 공격이라는 결정적 증거라는 이른바 ‘1번 어뢰’ 인양 과정의 의문도 재판과정에서 나왔다. 김남식 대평호 선장이 1번 어뢰를 수거한 것은 2010년 5월 15일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 전날까지 3차원 입체 촬영기기를 보유한 고성능 탐색함이 한달 넘게 그 인근을 샅샅이 훑었으나 찾지 못했다.

김남식 선장은 지난해 7월 21일 법정에 나와 “(해군이 준) 포인트(좌표)를 정해놓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종성 합조단 군측 조사단장은 지난달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합조단 폭발위험분과에 소속된 ADD(국방과학연구원) 연구원들이 어뢰 폭발시 어느정도 되면 어뢰추진체가 후방 30~40m 지점에 떨어질지 시뮬레이션한 결과 어느 정도 위치에 떨어질 것이라는 자료 등을 어선에 전부 보내줬다”고 증언했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5년을 이어온 천안함 재판은 국가가 스스로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안위와 관련된 중대사항에 대해 속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며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뛰어넘는 일로 반드시 진실이 가려져야 할 재판”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3년 상영된 <천안함프로젝트>에 출연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사진=아우라픽처스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203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746&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리아연대, 〈종로서장·202경비단장 파면! 박근혜 퇴진!> 노숙농성 ... 종로서 등 4곳서 매일 1인시위

  • [사회] 코리아연대, 〈종로서장·202경비단장 파면! 박근혜 퇴진!> 노숙농성 ... 종로서 등 4곳서 매일1인시위
  •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법폭력성추행 인권유린 종로서장·202단장 파면! 불법정치자금 민주파괴 박근혜<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코리아연대 진영하회원은 21일 오후3시30분경 광화문 세종대왕상앞에서 <세월호참사는 오늘의 광주학살 쓰레기시행령은 오늘의 계엄령>, <광화문은 오늘의 금남로 가자 청와대! 끝내자 박근혜!>, <불법폭력성추행 인권유린 종로서장. 202단장 파면하라!>, <불법정치자금 민주파괴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진보노동자회(단결과혁신을위한진보노동자회)사무국장이기도 한 진영하회원은 지난 4월5일부터 21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노숙농성을 전개했고 4월7일부터 18일까지 대표자단식단으로도 참가했다. (관련기사 : [인터뷰] 진영하대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은 곧 박근혜<정권> 퇴진>, 2015.4.13, 기사링크 http://www.minzokilbo.com/xe/107029 )

     
    <민주주의수호와 공안탄압저지를 위한 대표단단식농성>도 진행한 진영하회원은 특히 지난 4월11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행동>범국민대회에서 행진대오 맨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연행돼 48시간동안 구금됐으나 인정심문과 지문날인도 거부한 묵비단식투쟁을 했다.

     

    진영하회원은 노숙농성에 돌입하기 앞서 오후1시 경찰청앞에서 열린 <박근혜불법부패정권퇴진과 불법폭력성추행경찰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관권부정선거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권>가 그 하수인 광견찰들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광견찰들을 민중의 지팡이로 바꾸기 위해 노숙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오후2시 탑골공원앞에서 열린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주최 <국가보안법철폐! 양심수석방!> 1026회 목요집회도 참가하고, 박<정권>의 부정부패·무능·민주주의파괴·민생파탄을 규탄하고, 광견찰의 야만성과 불법성, 폭력성을 폭로했다.  

     

    이날 바로 통일애국인사 안학섭선생이 농성장을 방문해 격려했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노숙농성하는 진영하회원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응원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뿐 아니라, 이날 코리아연대는 광화문광장인근 미대사관앞·세월호농성장앞·세종문화회관앞과 종로서앞에서 <박근혜<정권>퇴진!> 촉구 1인시위를 각각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코리아연대회원들은 미대사관앞에서 <세월호참사는 오늘의 광주학살 쓰레기시행령은 오늘의 계엄령, 박근혜는 오늘의 박정희·전두환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피켓을, 세월호농성앞에서는 <세월호참사 학살이다 학살정권 퇴진하라!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피켓을, 세종문화회관앞에서는 <세월호차사 학살이다 학살정권 퇴진하라! 선거쿠데타 민주파괴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1시간가량 펼쳤다.

     

    종로경찰서앞에서는 오후3시부터 5시까지 2시간동안 <세월호참사 학살이다.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도 수사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진행했다.

     

    한 시민은 <코리아연대회원들 다 석방됐냐?>고 묻고, 박근혜 그냥 놔두면 망한다. 코리아연대대가 힘내야 이 나라가 산다.>고 격려했고,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이 <더운 날씨에 수고많다>, <힘내라!>라며 지지·응원을 보냈다.

     

    코리아연대는 매일 낮12시부터 1시간동안 미대사관앞·세월호농성장앞·세종문화회관앞에서, 종로서앞에서는 낮12시부터 3시간동안 각각 1인시위를 동시다발로 진행할 계획이다.

     

    photo_2015-05-21_17-34-50.jpg

     

    photo_2015-05-21_15-52-18.jpg

     

    photo_2015-05-21_17-29-46.jpg

     

    photo_2015-05-21_17-29-49.jpg 

     

     

    photo_2015-05-21_15-14-23.jpg

     

     

     

     

     

     

     

    photo_2015-05-21_15-14-16.jpg

     

    photo_2015-05-21_17-35-02.jpg

     

    photo_2015-05-21_17-30-00.jpg 

     

    photo_2015-05-21_15-53-03.jpg 

     

     

     

     

    photo_2015-05-21_15-52-47.jpg

     

     

     

    photo_2015-05-21_17-29-56.jpg

     

     

     

    임진영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올해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 눈에 띄는 3가지 변화는?

올해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 눈에 띄는 3가지 변화는?
 
 
 
nk투데이 김혜민기자 
기사입력: 2015/05/22 [06: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한에서 제18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가 5월 11일 평양 3대혁명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고 통일뉴스가 12일 보도했다.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는 1998년부터 매년 5월 즈음에 평양에서 열어왔던 행사이다. 

 

 이후 북한이 전람회 사업을 더욱 확대하여 2005년부터는 매년 9월이나 10월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도 개최해 왔다.

 

매번 전람회에서는 단순한 상품 전시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이 북한 회사에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되어 왔다고 한다.

 

올해 18차를 맞은 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는 북한을 비롯하여 뉴질랜드,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스위스, 싱가포르, 중국, 캄보디아, 프랑스, 폴란드, 호주,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각 국가 소속 300여개 회사가 참가했다고 한다.

 

이는 12개 나라와 지역들에서 140여개 단위들이 참가했던 2013년, 14개 나라와 지역들에서 290여개 단위들이 참가했던 2014년에 비해 더 많은 회사들이 참가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 기계, 금속, 건재, 운수, 식료, 일용 등의 분야에서 ‘선진과학기술'을 도입해 생산한 제품들을 많이 출품되었다고 한다.

 

 

 

 

올해 전람회는 예년에 비해 새로운 변화 3가지가 있었다.

 

우선 예년보다 북한 무역회사 참가수가 많이 늘었다.

 

1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그 이유를 공장, 기업소의 생산활동이 활성화된 데다 북한식 경제관리방법을 받아들이고 자기 실정에 맞는 경영활동을 벌이는 과정에 이룩된 성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두 번째 변화는 다양한 나라들 중에 특히 러시아, 중국의 참가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올해 러시아는 고기가공과 건설, 콩생산 등 다양한 분야의 12개 기업(<프리모르스카야 소야>, <달리폴리메탈> 등)에서 20여명의 기업인들이 참가했다. 

 

이번에 러시아 참가기업들이 늘어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이 사업을 추진하는 연해주상공회의소와 연해주수출발전센터를 직접 밀어주고 협조하면서 전람회에 참가할 기업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14일 온바오뉴스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도 훨씬 많이 참가했다고 한다

 

량퉁쥔(梁彤軍) 조선중국상회 회장은 온바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중국 기업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으며 전시 품목도 더 대중화돼 현지의 수요에 부합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변화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포함해 각 도의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개막 당일 함께 진행한 것이다.

 

북한은 5월 27일 금강산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 설명회를 할 예정이지만 전람회에서 미리 간략한 투자설명회를 열어 외국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친 셈이다.

 

1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투자설명회에서 경제개발구 안의 개발행위에 대한 법적 보장, 외국투자가의 기업 창설 및 경영규정, 현재 북한 내 경제개발구들의 실태와 전망 등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제공되었다고 한다. 

 

한편, 중국 뉴차이나뉴스와 일본 교토통신에서는 이번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를 직접 방문하여 보도하였다. 

 

특히 뉴차이나뉴스는 전람회에 참가한 독일 CVE 기업의 알렉산더 마이스뷘켈(Alexander Meiswinkel)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뉴차이나 뉴스를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교토통신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14일까지 진행된 이번 봄철국제상품전람회는 성황리에 폐막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후 예정된 전람회는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로 올해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금강산 다시가기 운동’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 “남북교류확대 말이 필요없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5.21  15:20:29
트위터 페이스북
   
▲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는 21일 오전 성동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성동 금강산 다시가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지난 1994년부터 통일한마당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 온 서울지역 주민단체가 광복 70돌과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을 맞아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남북 민간교류 재개를 위해 ‘금강산 다시가기 운동’을 시작한다.

성동구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는 21일 오전 성동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던 때로 돌아가기 위한 활동”인 ‘성동 금강산 다시가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부진환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남북 민간교류의 왜 필요한지, 5.24조치가 왜 해제되어야 하는지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기획하게 됐다”고 행사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는 이를 위해 지역내 신협조직인 ‘논골신협’, 민주노총 동부지구협의회, 성동지역전국금속노동조합, 성동주민자치운동센터 등으로 ‘공동추진단’을 구성, 앞으로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시점에 첫 관광단으로 금강산을 방문할 계획이다.

또 금강산 관광 전이라도 백두산, 오키나와 등을 대상으로 평화기행을 기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금강산 다시가기 운동’은 온 민족의 만남과 교류를 상징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여 남북 간 화해와 단합의 시대를 다시 열어가자는 국민들의 요구와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금강산관광으로 대표되는 남북의 왕래와 민간교류가 활성화되어야 남과 북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수경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사진제공-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추진위원회는 이를 위해 온라인 사이트와 참가자 조별 사전모임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성동구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지역차원에서부터 금강산 관광을 통한 소통과 교류 활성화를 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취지에 동의하는 지역 주민들은 각 단체나 온라인을 통해 ‘금강산 다시가기’ 신청서를 작성한 후 논골신협에서 ‘금강산 다시가기’ 관련 저축상품을 개설하면 된다.

최초 개설 기준금액은 2만원이며, 이후 자유저축 형태로 최대 월 1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고 한다.

계좌를 개설하면 신협 최;고금리인 2.6%에 우대금리 0.5%가 적용되며 추가로 적립되는 통일기금 0.5%의 금리는 성동지역 통일기금으로 신청자가 직접 추진위 기부계좌로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추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6월 15일까지 1차 대상자 모집을 시작하며, 8월 15일, 10월 4일을 계기로 2, 3차 모집할 계획이다.

“지역신협에 적금들어 금강산 관광 다시가자”
<미니인터뷰> 부진환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 부진환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뉴스 : 먼저 성동구 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부진환 집행위원장 : 1994년부터 매년 시작한 통일한마당 행사를 1998년 한해를 빼고 올해 22회째가 되니까 서울에서도 몇 군데 남지 않은 구 통일한마당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대체로 통일한마당은 매년 10.4선언 즈음해서 주말에 하는데 단순히 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추진위로 묶인 노동조합, 시민단체, 학생들이 함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평화통일운동을 한다.

특히 5.24조치 이후에는 남북교류가 전혀 되지 않아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더 중요하게는 단체들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해 보자는 차원의 고민이 많았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금강산관광을 다시 가자는 제안을 하고 일을 만들어나가는 발상이 특이하다. 계기가 있었나?

■금강산관광은 잘 알려진 대중적인 사업이고 무엇을 반대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저 금강산을 가자는 긍정적인 구호의 운동이어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마침 논골신협에서 통일한마당행사를 꾸준히 후원해주었기 때문에 주민들과 노동자들이 직접 적금을 들어서 나중에 관광재개가 되면 제일 먼저 금강산에 가자는 취지로 제안하게 됐다.

그동안 활동의 기반도 있고 해서 주민들이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남북 민간교류가 왜 필요한지, 5.24조치가 왜 해제되어야 하는지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기획하게 됐다.

□오늘부터 시작인데, 이후 진행은 어떻게 되나?

■기자회견 끝나고 논골신협에 참가단체 대표들이 먼저 가서 직접 신청서도 쓰고 가입도 해 보면서 절차를 상세히 안내할 수 있도록 체험하고 있다. 오늘부터 주민들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개인별로 신청할 수 도 있지만 단체별로 신청서를 작성하면 공장이나 장애인센터 같은 곳으로는 신협직원들이 방문해서 접수를 하기도 한다.

□0.5%통일기금은 어떤 방식으로 적립이 되나?

■개인이 계좌를 해지할 때 신협에서 지급할 이자 중의 일부를 통일기금으로 기부하는 게 아니라 신청할 때부터 개인이 체크해서 현금으로 내던지 일시불 계좌이체 방식으로 내는 방식이다. 신협은 사실상 1%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각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이중 일부를 통일기금으로 직접 기부하는 것이다.

□당장 백두산, 오키나와 평화기행 등 계획은 있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일단은 6.15까지는 모집사업을 집중적으로 해야 하고 모집된 분 들이 직업 참여할 수 있는 평화기행 등은 이후에 좀더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성동지역에서는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개인과 단체가 통일한마당추진위원회에 두루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6.15공동행사를 준비하는 ‘평화통일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 등에서 계획하던 일도 다 관련이 있다. 8.15 행사때는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연습해서 합창무대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납득도 공감도 안 가는, 대통령의 '새 총리' 카드

황교안 국무총리? 정홍원을 돌려달라

[게릴라칼럼] 납득도 공감도 안 가는, 대통령의 '새 총리' 카드

15.05.21 17:23l최종 업데이트 15.05.21 17:23l

 

 

기사 관련 사진
▲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설마가 사람을 잡을 때가 있다. 아니 널리고 널렸다. 특히나 박근혜 정부의 인사 정책은 말이다. 아시다시피, 총리 난관은 말이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자마자 육성으로 '설마...'를 내뿜었더랬다.   

하긴 '설상가상'과 같은 일이 이 정부에서 어디 한둘이었던가. 이런 생각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21일 오전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박근혜, 총리 후보로 황교안 지명. 과거 이 공간에서 황교안 총리 될 것 같다고 툭 던졌는데 진짜 실현되었다. 독실한 보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초강경 공안검사로 박근혜의 통치철학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국정운영의 방향이 가히 짐작된다."

그렇게, 21일 오전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신임 총리 후보자로 전격 지명됐다. 이완구 전 총리 사퇴 이후 25일 만이다. 이 시각 무려 721일 동안 총리 관저를 지켰던 정홍원 전 총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죽했으면, 로이터통신 제임스 피어슨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과 사진을 게재했을까. 

"Park Geun-hye nominates Justice Minister Hwang Kyo-ahn as new Prime Minister - wonder if he will pass, otherwise:"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가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빽 투 더 정홍원'이 공감을 얻는 이유 

"총리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것 같은데 그냥 없는 대로 갑시다."

어느 SNS 사용자의 '웃픈' 일성이다.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총리 잔혹사'를 몸소 실천했던 박근혜 정부의 현재를 단적으로 드러낸 일성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이번 황교안 카드는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라는 표현마저도 부끄럽게 만든다. 반면, 청와대가 이러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 낙점한 인사가 결국 황교안 후보자라니 과연 상상한 것 이상을 보여주는 '콘트롤타워'답다고 해야 할까.

전문성? 탕평책? 그런 거 하나도 중요치 않다.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으로, 현직 의원들이 특보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장수 법무부장관이었던 황교안 후보자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균관대 사랑도 도드라진다. 정홍원 전 총리와 이완구 전 총리 모두 성대 출신이었다. 여기에 허태열 전 비서실장, 이남기 전 홍보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수석들만 5명이었다. 이 부분은 이명박, 노무현 정부 역시 편향성을 보여줬으니 형평성 측면에서 넘어갈 수 있다고 하자. 총리 후보자를 향한 대통령의 지독한 검경 편애는 무서울 지경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손 흔들어 인사 하는 정홍원 전 총리 이임식을 마친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입구앞에서 장관들과 인사를 마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초대 후보였으나 5일 만에 물러난 전 헌법재판소장 출신의 김용준 후보자를 시작으로 최장수 총리였던 정홍원 전 총리 역시 사시 14회의 검찰 특수통 출신이었다. '20억 전관예우'로 스스로 물러난 안대희 후보자 역시 대법관 출신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홍원 총리를 총리 공관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한 문창극 후보자만이 유일하게 언론인 출신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황교안 후보자가 왔다. 

'공안검사', '미스터 보안법'이 '책임총리'라니 

황교안 후보자는 지명 기자회견에서 "나라의 기본 바로 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나라의 기본'이 어떤 방향인지는 그가 법무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활약을 살펴보면 간단하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의 논평을 빌려와 보자.   

"황 후보자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내사, 정당해산 심판 등의 사건에서 진실과 정의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권에 충성을 다 해 온 인물이다(중략). 총리 내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공안검사'로 활약했던 시절의 굵직한 사건만 꼽아 봐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코드가 얼마나 '환상의 짝꿍'에 가까운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잘 알려지다시피,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며 부실수사 논란을 부채질한 것도 바로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서 공안 수사를 지휘했던 그의 작품(?)이었다. 

같은 해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논란의 중심에 선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사건을 담당했던 것도 그였다. 결국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불구속 수사와 관련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사태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2002년 당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던 것 역시 황 후보자의 지휘였다. 

'미스터 보안법'과 같은 별명으로 유명한 이 공안통 검사가 이명박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더니, 이윽고 박근혜 정부 들어 법무부장관을 거쳐 총리 후보자의 자리로 올라선 것이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였으니, 민주정부 10년을 인고의 세월로 느꼈을 것은 당연지사.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두고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란 발언을 서슴없이 한 것도 일견 이해를 해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 다음의 대통령이 누굽니까. 노무현 대통령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됐던 분이에요. 앞의 김대중 대통령은 불구속기소, 구속되진 않고 재판에만 회부됐는데, 이 노무현 대통령은 공안부 검사들에 의해서 구속까지 됐던 분이에요. 대우중공업 사태와 관련해서 구속까지 됐던 분이에요.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또 여전히 곱지가 않겠지요." (부산 고검장 시절이던 2011년 5월 11일 부산 호산나교회 강연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도덕적으로 문제없는 인사"가 황교안? 

"저는 인사는 정말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그런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제가 힘든 어려운 국정을 그래도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누구보다도 능력 있고 도덕성에 있어서도 국민들한테 손가락질받지 않는 그런 인재를 찾는 데 있어서 저만큼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전제조건하에 또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인사 원칙 중 일부다. '유체이탈 화법', '멘붕 화법'에 이어 최근 '구글번역체 화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해석하자면, "정말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인사로 황교안 후보자가 본보기가 되는 셈이다. 
 
기사 관련 사진
▲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처 관계자와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과연 그럴까.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한 황 후보자가 이번 청문회 역시 패스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요인으로 '20억' 전관예우 때문에 낙마했던 안대희 후보자와 비교해 (황 후보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16억'의 수임료를 자랑하는 황 후보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황 후보자는 2011년 9월부터 태평양 고문변호사로 재직하며 16개월여 동안 월평균 1억 원의 급료를 받았고, 재판 수임 건수는 단 1,2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병역면제, 장남의 불법증여와 증여세 탈루, 지방세·자동차세 등 과태료 상습 체납, 석사학위 논문 특혜, 용인 수지아파트 투기 등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도마 위에  올랐던 의혹들은 더욱 깊숙이 파헤쳐질 전망이다. 이완구 전 후보자보다 결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전력의 황 후보자를 박근혜 대통령은 그래도 "적재적소의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야당과 여론의 몫일 것이다. 결국 총리 후보자감이 전혀 아니었던 이완구 전 총리를 낙마시킨 것은 '성완종 리스트'의 힘이었다. 명명백백 밝혀진 의혹 앞에서도 우리는 '그런 (이완구)총리'를 기어코 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볼 수는 없다. 지난 세월호 1주기 추모제때 보여줬던 경찰의 폭압적인 진압이야말로 황교안 후보자의 주종목이다. 더욱이 "없어도 그만인" 지금의 총리가, 그 자리가 과연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나 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지, 정치를 강력하게 개혁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통합'을 추구해야 할 총리가 '공안정국'을 부활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감시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을 더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차라리,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빽 투 더 정홍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궁금해지는 지금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첨단 핵탄두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 공식 선언

북, 첨단 핵탄두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 공식 선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5/21 [12: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지난 5월 러시아 승전기념식에서 공개한 야르-24 대륙간탄도미사일, 토폴미사일을 개량한 것으로 러시아 최강의 미사일이다. 러시아도 이런 미사일 개발에 북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의 미사일 개발 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 북이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과 2013년 7.27 전승기념절 열병시에서 선보인 화성13호 , 러시아 야르24 미사일과 바퀴 수가 같다. 비슷한 사거리의 미사일인 것이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20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20일 조선중앙TV로 방송한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의 핵 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라면서 "중단거리 로켓은 물론 장거리 로켓의 정밀화, 지능화도 최상의 명중 확률을 담보할 수 있는 단계"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북이 소형핵탄두를 장착한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최초의 공식선언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은 2013년 초 한반도 전쟁위기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휘소 벽면에 부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 미 본토 공격계획 작전지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보유사실을 암시하는 등 미 본토 타격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해왔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 종류와 능력까지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로 공식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핵타격수단들이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라는 말은 소형핵무기와 다양한 종류의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말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핵폭탄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일반 핵폭탄에 중성자를 다량 발생시킬 수 있게 조작하여 구조물 안의 생명체만 모두 죽이는 중성자탄, 파괴력을 증가하기 위해 핵융합반응을 이용한 증폭핵분열탄, 핵분열과 핵융합을 여러 번 반복케하여 가장 무서운 파괴력을 갖게 한 수소폭탄 등이 있는데 북도 어느 한 핵폭탄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핵폭탄을 오래 전부터 연구하여 이미 실전배치해온 것 같다.

이런 핵무기를 미사일과 같은 운반수단에 장착하려면 소형화를 시켜야 하는데 그에 대한 개발도 끝낸지 오래라는 것이다.

 

북은 이런 핵폭탄을 유도로켓 즉 미사일에 장착하여 투발하거나 핵배낭을 짊어진 특수부대원들이 직접 목표물로 접근하여 공격하는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는데 주된 방식은 미사일이다. 그 미사일도 정밀타격과 요격회피기동을 능란하게 하는 첨단기능을 갖추게 되었다고 이번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그  중단거리 로켓은 물론 장거리 로켓의 정밀화, 지능화도 최상의 명중 확률을 담보할 수 있는 단계"라는 표현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통상 ‘정밀화’라는 말은 반경 5미터 원 안에 꽂아넣을 수 있는 정확도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관성유도장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gps위성유도를 적용해가 가능한 정확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10대의 나이에 북 포병체계에 gps 위성유도를 전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후 북의 포병체계를 gps방식으로 전면적으로 혁신했던 것으로 중앙일보 등이 입수 보도한 자료를 통해 알려져있다. 
물론 북은 자체의 gps위성은 없지만 미국 등 상대국의 gps 시스템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능화는 미사일에 인공지능 기능을 넣어 요격미사일이 접근할 경우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기동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회피만 해서는 안 되고 회피한 후에는 다시 목표물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매우 뛰어난 인공지능컴퓨터를 미사일에 탑재해야 한다.


이는 결국 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능력이 좌우한다. 북의 청년들이 컴퓨터게임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경우의 수가 많아 어렵고 복잡한 컴퓨터 바둑게임 경연대회에서 한중미일 연합팀을 간단하게 제압하고 싸우면 싸울 때마다 모조리 승리하는 괴력을 발휘한 바 있고 최근 인도에서 진행한 코드셰프대회에서도 최계 최강 구글팀을 청년들이 완전히 제압하고 1, 2, 3등을 모두 싹쓸이한 바 있다.
따라서 북의 미사일이 세계 최강의 정밀도와 요격회피 능력을 보유했다는 북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공식 발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 군사력 전문가들이 인터넷 상에 올린 글이나 북에서 암시한 여러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러시아에서 요격회피기동 능력을 처음으로 장착한 토폴미사일 개발에 북이 이런 측면에서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관련 보도에는 북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지난 5월8일 성과적으로 진행된 우리 전략잠수함의 탄도탄 수중시험발사는 조선의 군력 강화에서 최절정을 이룬 일대 장거"라며 "세계가 놀라움과 부러움 속에 환호하고 격찬하고 있다"고 선전했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바로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이 그런 정밀화, 지능화된 미사일이며 그 안에 다양한 종류의 핵탄두를 장착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아 좀더 두고 볼 필요는 있겠지만  북이 이렇게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공식 입장으로 대륙간핵탄두미사일 보유사실을 선언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공개한 바 있으며 방사능이 검출된 경우, 전혀 검출되지 않는 경우 등 여러 핵시험을 진행한 바가 있기에 이번 정책국 성명은 더욱 주목해서 봐야할 것이다.

정부 당국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일 신밀월시대 개막-글로벌 동맹으로 진화

미일 신밀월시대 개막-글로벌 동맹으로 진화

2015. 05. 20
조회수 65 추천수 0
 

  아베 일본 총리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었던 날인 4월 28일을 맞춰서 미국을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일점령의 기본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전후 미국의 대일정책의 기본 목표는 ‘비군사화’와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추구했던 미국의 정책은 1947년 4월 평화헌법 제정으로 현실화되었다. 전쟁을 포기하고, 무력을 가지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하는 9조는 평화헌법의 핵심이다.

1.jpg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이즈모 헬기호위함. 명칭은 호위함이지만 실제론 경항공모함이다

 

글로벌 동맹으로 진화한 미일동맹

 

  하지만 국제정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소 갈등으로 냉전이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공산혁명이 일어났으며 6.25 전쟁이 발발했다.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했던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은 일본을 미국의 아시아 전진기지로 만들려는 목표로 바뀌었다.
  그 결과 1952년 4월 28일 미일안보조약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4월 28일에 맞춰서 아베는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 일본의 외교 국방장관들은 뉴욕에서 미일 안전보장위원회를 개최(4.27)하여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은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과 역할분담을 규정한 정부간 문서이다. 1978년에 만들어졌고(가이드라인 78) 1997년 한 차례 개정(가이드라인97)되었다. 이번에 18년 만에 재개정(가이드라인 15)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정부간 문서이므로 그 차제로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일본은 가이드라인에 따른 자위대의 역할을 법적으로 부장하기 위해서 자위대법이나 주변사태법과 같은 관련 법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표> 가이드라인 변화 과정과 변화 내용

 

 

가이드라인78(제정)

가이드라인 97(1차 개정)

가이드라인 15(2차 개정)

적용상황

일본 유사시

평시

평시

주변사태시

영향사태시

유사시

일본 유사시

3국 피습시

일본 재난시

 


  이번에 두 번째 개정된 방위협력지침으로 미일동맹은 글로벌 동맹으로 변화하였다. 자위대는 일본과 주변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미군과 함께 진출하여 지구방위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차대전 직후 일본의 비군사화를 목표해서 평화헌법을 제정했지만 일본의 비군사화는 이미 철회된 지 오래다. 이미 그동안 지속적으로 무력화 조치가 취해진 평화헌법도 이번 미일방위협력 지침 개정으로 크게 퇴색하고 있다. 

미일 안보조약과 미일 가이드라인 제정

  1951년 체결되고 1952년 발효된 미일 안보조약은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통치 아래서 만들어졌다. 일본은 미군에 기지를 제공하고 미군은 일본에 대한 외부 공격시 방어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당시에는 자위대가 없었으므로 일본의 군사역할은 명시하지 않았다. 1960년 개정된 미일안보조약(신안보조약)에는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능력 발전과 일본 유사시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공동방위를 명시하였다. 자위대의 군사 역할을 강화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후 1978년에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제정(가이드라인 78)하여 자위대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1960년에 개정된 미일신안보조약에는 5조에서 일본에 대한 제3국의 공격이 발생하는 ‘일본유사시’를 상정하고 미국의 군사적인 대응을 정리하고 있다.  6조에서는 ‘극동유사시’를 상정하고 이 경우 미일의 방위협력을 약속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에 들어와서 동아시아에서 미군철수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소련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증대했다. 그 결과 1978년에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78) 제정으로 이어졌다.  미일안보조약 5조에 따른 일본 유사시와 6조에 따른 극동유사시를 상정하고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세부적인 역할을 규정했다. 미일 신안보조약의 이행을 위한 방침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78’에서 일본 유사시에 대해서는 무력공격을 미군과 자위대가 연합하겨 격퇴한다는 내용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극동유사시에 대해서는 상호합의한다는 원칙에만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자위대의 역할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a2.jpg

 미군과 합동으로 상륙훈련을 준비하는 일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대 보통과(보병)대원들

 

 

탈냉전기의 미국 세계전략과 일본의 역할

 

 1997에는 방위협력지침이 개정(가이드라인 97)된다. 일본은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서 일본의 대외팽창주의적인 노선을 추구하게 되었다. 일본에게는 미일협력의 구도를 활용하면 일본이 독자적인 대외팽창이라는 주변국가들의 의혹과 불만을 해소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에 미국은 일본과 책임분담을 통해서 안보비용을 절감하고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이드라인 97’의 배경은 1996년에 발표된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에서는 미일 안전보장의 범위를 아시아 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하고 이를 위한 두 나라의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탈냉전기에 미국의 세계전략 수립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이 강화된 것이다. 미일 신안보선언의 기초는 조셉 나이가 1995년에 작성한 ‘나이 이니셔티브’ (Nye Initiave)이다. 조셉 나이는 미일동맹의 역할을 ‘대소봉쇄’에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 유지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재정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탈냉전 이후 세계전략을 추구하는데 든든한 조연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셉 나이의 구상은 일본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미일 신안보공동선언과 1997년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15년에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꿈꾸는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와 접목하고 있다. 오바마와 아베가 미일정상회담에서 ‘동맹의 전환’을 강조한 것도 나이 구상의 부활이자 강화이다. 나이 구상으로 미일가이드라인이 개정(가이드라인 97)되었다면, 나이 구상의 부활은 가이드라인 2차 개정(가이드라인 15)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가이드라인 1차개정과 주변사태

 

  ‘가이드라인 78’에서는 미일 신안보조약 5조에 따른 일본 유사시에 대한 대응만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6조에 따른 극동유사시에 대해서는 원칙적 합의만 있다. 가이드라인 97은 바로 6조에 따른 극동유사시 자위대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가이드라인 97에서는 이것을 ‘주변사태’라고 하고 있다. 즉 가이드라인 97은 평시, 유사시, 주변사태시 라는 3개의 상황을 설정하고 각각의 상황별로 미일 군사협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가이드라인 97은 가이드라인 78에서 일본 유사시에 중점을 두고 있던 것을 주변사태를 강화하는 변화가 생겼다. 주변사태시 40개 항목으로 자위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공해상에서 활동, 기뢰제거, 선박검사, 탄약수송 등으로 집단적 자위권행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나이구상과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에 따른 것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주변사태의 범위이다. 가이드라인 97에서는 주변사태를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상황적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사태의 본질은 대만해협과 한반도라는 지리적 개념이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여론은 가이드라인 97이 자위대의 아시아 재침략을 보장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유사시를 전제해 일본인 구출 및 난민 수용문제 등을 검토해 왔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63년의 미쓰야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65년 6월 오카다 가쓰오 의원이 자위대통합막료회의의 ‘63년도 방위도상연구 실시계획(미쓰야 연구)’를 폭로했다. 당시 폭로된 내용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인데 자위대 출동과 일본 총동원 체제 수립을 내용으로 한다. 
1983년부터 일본에서 시작된 ‘극동사태연구’는 극동사태가 일본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경우 일본이 작전 중인 미군에 협력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이다. 그 대상지역이 필리핀, 일본, 한국, 대만이 포함되나 일반적으로 극동사태라고 할 경우 한반도 유사시를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97에서 주변사태를 명시한 것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는 일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는 작전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은 가이드라인 97에서 주변사태를 구체적으로 명기한 이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1999년에 주변사태법을 제정했다. 주변 사태 발생시 미군에 대해 후방지역 지원과 수색 및 구조 지원 등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주변사태법 역시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해 일본이 응급조치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일본 영향’ 사태와 2015 미일 가이드라인 2차 개정

 

 2015년 4월에 2차 개정된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15)의 가장 큰 특징은 주변사태를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 시’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유사시는 일본 유사시, 제3국 피습시, 일본 재난 발생시라는 3개 상황으로 세부화한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즉 ‘가이드라인 15’는  평시, 일본에 영향을 주는 위기시, 일본 유사시, 제3국 피습시, 재난시로 세분화했다. 그리고 각 시기별로 정보, 감시정찰, MD, 해상안보, 군사훈련, 재난구호  등 미일 공동 대비책을 마련했다.
  주변사태를 삭제하고 이를 일본에 영향을 주는 위기시로 대체한 것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이 섬)에서의 중국과의 분쟁을 상정함과 동시에서 궁극적으로 자위대의 역할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미군 가는 곳에 자위대가 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처럼 주변사태를 일본에 영향을 주는 사태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 97때는 주변사태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고 숨겼으나 이번에 주변사태는 지리적 개념이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가이드라인 97’ 이후에는 주변사태법을 제정하고 자위대법과 미일 물품 상호제공협적(ACSA)를 개정했다. ‘가이드라인 15’ 이후 도 마찬가지로 일본은 국내법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 개정과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 14일 각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자위대법, 무력 공격사태 법, 주변사태 법,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 등 10개 법안의 개정을 일괄한 ‘평화안전법 제정비 법안’과 국제 분쟁에 대처하는 타국군의 후방 지원을 수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법안인 ‘국제평화지원법안’ 등 2개다. 이에 앞서 아베는 지난 4월 미국 상하원연설에서 8월까지 법적 정비를 마치겠다고 해서 일본 의회로부터 월권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새롭게 제정하는 법은 ‘국제평화지원법’이다. 이 법은 자위대가 외국 군대의 지원을 용이하게 해준다. 아울러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대해서도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에 영향을 주는 사태 발생시에 자위대가 손쉽게 세계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법안인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가 한국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중요 영향 사태법에서 ‘영역국가 동의’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유사시에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군이 가지고 있고, 미군은 일본과 공동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역국가 동의’ 규정은 집단 자위권 관련법인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안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이번 지침은 무엇보다 북핵위협을 넘어 중국의 부상 등 근본적인 안보환경 변화에 맞춰 미일간 중장기적 협력 방향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아태 재균형 정책의 틀 속에서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역할 증대 요청에 일본이 적극 부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 제정과 미일 신밀월시대 개막이 가지는 엄중한 정세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은 주변사태를 일본에 영향을 주는 위기로 확장해서 한반도에 일본이 미군 지원 명목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강화해서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하여 한국이 제3국의 분쟁에 개입할 소지가 커졌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개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과 한국이 동맹에 연루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갈등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충돌 가능성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미일의 충돌에 한국의 연루 가능성,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한미일 3국 군사력의 공동작전 가능성 △주일미군과 함께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 진출 가능성 등 4가지 문제가 대두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창수(코리아연구원 원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한미일에 “임전태세 있다” 경고

 
 
국방위원회 정책국 “미사일 다종화 경량화 정밀화 지능화”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5/20 [20: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조선은 핵타격 수단이 다종화 경량화 소향화, 지능화, 정밀화 되었다며 한미일은 임전태세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언론들은 20일 북 언론을 인용 조선국방위원회가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핵 타격 수단이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력 강화 조치에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대변인 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포기한 기구로 전락했다고 맹비난했다.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우리의 핵 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며 중단거리 로켓은 물론 장거리 로켓의 정밀화, 지능화도 최상의 명중 확률을 담보할 수 있는 단계"라고 주장했다.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 5월8일 성과적으로 진행된 우리 전략잠수함의 탄도탄 수중시험발사는 조선의 군력 강화에서 최절정을 이룬 일대 장거"라며 "세계가 놀라움과 부러움 속에 환호하고 격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변인 성명은 그러나 미국과 일본, 남한의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고 저들에 대한 가장 엄중한 도발이며 따라서 처절함을 감수하게 대응하고 국제적인 공조 분위기를 돋구어 제제와 압박의 도수를 높이려 한다."고 비난했다.
 
성명은 유엔 안보리를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버리고) 주권 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라고 몰아부쳤다. 
 
대변인 성명은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대해 "그 누가 '도발'이라고 걸고 들고 '중지'하라고 고아댄다고(떠든다고) 하여 포기할 일이 아닌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력 강화 조치이며 합법적인 주권행사"라고 피력했다. 
 
성명은 계속해 "진짜 도발이라면 남의 땅에 침략무력을 끌고와 우리 '수뇌부 제거'와 '평양 점령'을 노리고 벌리는 미국의 화약내 풍기는 전쟁연습소동이며 진짜 위협이라면 핵타격 수단을 들이밀어 벌리는 공공연한 핵공갈 소동"이라고 미국을 지목했다.
 
이어 "미국과 온갖 불순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공갈이 계속되고 침략과 제도전복의 날강도적인 책동이 노골화되는 오늘의 세계에서 나라의 국방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국방력 강화 계획을 더욱 힘차게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과 일본, 남한을 '불구대천의 원쑤'로 규정하며 "제도전복을 꿈꾸는 침략자들의 준동을 짓 부시고 민족의 존엄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우리의 위력한 타격수단들이 정면과 익측뿐 아니라 등 뒤의 임의의 장소에서도 명중탄을 안길 임전 태세에 있다"고 경고를 이어 갔다.
 

 


한편 조선은 지난8일 잠수함 미사일을 발사를 한후 사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한국과 미국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드러나는 정전체제의 민낯


 국제여성평화걷기와 유엔사의 ‘DMZ 관할권’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5.20  23:53:08
트위터 페이스북

 

   
▲ 국제여성평화걷기 참석자들이 평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판문점' 통과의사를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의미 있는 첫 행사는 오는 24일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 참가단의 판문점 통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한국 정부는 판문점이 아니라 개성을 거쳐 경의선 육로를 차량으로 이동해 줄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 메어리드 맥과이어를 포함한 30여 명의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은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판문점을 통해 DMZ를 넘기로 결정했다”고 분명히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WCD 참가단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정전체제를 넘어 판문점을 오간 사람들

미국, 스웨덴, 일본 등 다양한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과 해외동포들로 구성된 WCD 참가단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올 경우 진풍경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판문점은 인도적 신병인도나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한 통일운동가의 일방적 귀환 외에 이같은 평화행진이 이뤄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보통 표류해온 남북 어민들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는 경우가 가장 많고, 1993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송환에 이어 6.15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송환됐고, 2005년 10월 2일 비전향장기수 정순택 유해가 북측 유가족에게 인도되기도 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했던 문익환 목사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귀국해 구속됐지만 전대협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은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과해 내려와 곧바로 구속됐다. 이후에도 김일성 주석 1주기 조문을 다녀온 박용길 장로와 6.15 10주년 평양행사에 참가한 한상렬 목사,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노수희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 등이 판문점을 거쳐 돌아와 구속됐다.

이 외에도 1959년 <프라우다> 평양지국 이도운 기자가 귀순해왔고, 가장 유명한 귀순사건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기습 귀순한 이수근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다. 2012년 10월 북한 병사가 전방부대 초소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이른바 ‘노크 귀순’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10월 25일에는 월북했던 남측 주민 6명을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인계해주기도 했다.

정전체제의 민낯, 유엔사의 DMZ와 JSA 관할권

 

   
▲ ‘Women Cross DMZ’는 국내외 여성 평화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3월 11일 뉴욕에서 '국제여성평화걷기'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처음부터 DMZ를 도보로 횡단하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WCD 참가단은 19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잔재”라면서 “대표단이 판문점으로 DMZ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유엔사 측에 거듭 요청했다.

 

WCD 측은 이 행사를 기획할 때부터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5월 24일 판문점을 걸어서 통과하겠다는 구상을 세웠고, 지난 3월 11일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같은 구상을 밝힌 뒤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20일 “유엔사와 우리 정부가 협의해 판문점 보다는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내려오면 좋겠다고 WCD 쪽에 권고했다”며 “판문점은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곳이지 민간인들이 출입하는 곳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우발적 사건이라도 안전 문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곳인데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겠느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비무장지대(Korean Demilitarized Zone, DMZ)는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의해 성립된 지대로, 군사분계선(MDL)에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범위로 설정되어 있다.

정전협정 제1조(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⑽항에는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이, 이북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공동으로 책임진다”고 명기돼 있다. 즉, DMZ 남측 구역은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실정.

더구나 이들이 통과하길 희망하는 판문점은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에 속한다. JSA는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관리하는 군사정전위원회(유엔사측과 북한.중국측으로 구성) 운영을 위해 군사분계선상(MDL)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지대다. 유엔사의 직접 관할하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엔사측은 남북 철도연결 사업 당시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지점에 대해 행정권인 관리권(adminstration)을 남측에 이양했지만 관할권(jurisdiction) 마저 넘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고, 지금도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경의선 육로 통과자들의 명단이 유엔사에 통보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사 관계자는 19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출입하는 문제이며, 유엔사는 관할구역인 DMZ를 건너는 상황에 대해서만 관여한다는 입장”이라며, “한국 정부의 승인이 났을 때 유엔사는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유엔사와 남측 정부가 WCD 참가단의 판문점 통과를 꺼리는 이유가 유엔사 모자를 쓴 주한미군에 의해 이곳의 관할권이 행사되고 있다는 ‘정전체제의 민낯’이 전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전협정에 의해 유엔사가 남측 관할권이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남북이 군사적 대치 상황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여성평화걷기, 평화체제 서막 여나

 

   
▲ ‘2015 Woman Cross DMZ 한국위원회’는 4월 23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변안전보장을 못 받더라도 여성들은 걷는다”고 선언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WCD 한국위원회 실행위원인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상임대표는 “오늘 통일부측의 요청으로 면담을 가졌지만, 통일부는 여전히 경의선으로 오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역사적 공간으로서 판문점의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재강조했다.

 

안김정애 상임대표는 “WCD 국제공동대표단은 이미 어제 오후 북한에 들어가서 전혀 연락도 안 되고, 취할 방법도 없다”며 “그들은 원하는 대로 판문점으로 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WCD한국위원회는 이들이 내려오는 24일 버스 2대를 이용해 판문점으로 마중나가기 위해 유엔사측에 명단 제출을 추진 중이다.

안김정애 상임대표는 “여성이 평화체제의 주체가 돼 정전체제를 깨는데 의미가 있다”며 “유엔사와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바람대로 해주길 원한다”고 촉구했다.

2013년 8월 오토바이를 타고 경의선 육로를 통과한 뉴질랜드인 5명이나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8월 진행됐던 국제오토랠리(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는 모두 경의선 육로를 이용했다.

따라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국제여성평화운동가 30여명이 처음으로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순간은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WCD 참가단에 해외동포들은 포함돼 있지만 남과 북의 여성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남북 당국과 민간은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는 것을 환영하며, 광복 70주년 을 계기로 남북의 민간과 당국도 남북을 오가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기대해 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